지구온난화가 섭씨 4도 상승까지 진행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지구온난화 압박이 (기후와 관련 없는) 사회적·경제적·인구적 압박들과 결합함에 따라 사회 시스템 임계점 초과의 위험이 커지고 있다. 한계 상황에 이르면 대응 조치를 지원할 기존 기관들은 효력을 잃거나 심지어 붕괴할 가능성이 높다. 일례로 저지대 국가들의해수면 상승이 통제적·적응적 이주가 어려운 수준으로 진행돼 결과 - P316
적으로 해당 섬이나 지역을 완전히 유기할 수밖에 없는 사태에 이를수 있다. 또한 폭염, 영양실조, 해수 침투에 따른 식수 악화 등의 보건악재들이 의료 시스템에 과중한 부담으로 작용해 결국 더는 대응이불가능해져 사회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기후 영향의 성격과 규모에 대해 온전히 알지 못하는 이 같은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지구 온도 4도 상승에 대응이 가능하리라는 확신도없다. 4도 세계에서는 지역사회와 도시와 나라들에 극심한 붕괴・손상.혼란이 닥치고, 이런 위험의 대부분이 불평등하게 확산될 것이다. 빈곤층이 최대 피해자가 될 것이며, 지구 공동체의 분열과 불평등이지금보다 더 심화될 것이다. 4도 상승 예측은 결코 실현돼서는 안 되며, 온도를 반드시 낮춰야 한다. 오직 신속한 국제 협력과 선행 조치들만이 이를 달성할 유일한 방법이다. - P317
로마클럽 보고서와 세계은행 보고서 모두 지구온난화가 인류에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해수면 상승, 기상이변, 사막화와같은 온난화 결과들에 집중합니다. 이 보고서들에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인류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요인이 두 가지 더 있습니다. 첫 번째는 메탄가스의 대기중 방출입니다. 방출원도 다양합니다. 영구동토층도 그중 하나입니다. 영구동토층 해빙이 진행되면 식생이부패하고, 메탄수화물이 녹아 엄청난 양의 메탄가스가 방출됩니다. 메탄가스의 지구온난화 효과는 이산화탄소의 스물다섯 배에 달합니다. 앤드루 웡(Andrew Wong)이 얼터너티브스 저널(Altermatives Journal)』 1월호에 썼듯 알래스카만 해도 "빙하의 후퇴와 영구동토층 해빙이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50~70퍼센트 더 많은 매탄을 방출하고 있습니다." - P317
우리의 물리적 환경은 인간 생활의 기반이자 사회체제의 기반입니다. 이제 이 물리적 환경이 급변하면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 문제들의 관점에서 저는 ‘변화‘, ‘방법‘, ‘세상‘을 극히 원초적인 방식으로 정의하고자 합니다. ‘세상‘이란 총체적 세상을 말합니다. 즉 기체, 액체, 고체로 이루어진 물리적 공간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이자 우리의 사회적 공간들을 에워싼 공간이죠. ‘변화‘는 물리적 변화입니다. 즉 물과 공기와 땅과 기후에 일어나는 변화를 의미합니다. ‘방법‘이란 우리의 물리적 공간에 영향을 미칠 긍정적 물리적 개입과 부정적 물리적 행동의 조합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물리적 공간을보존해서 목숨을 부지하려면, 우리의 오래된 방식 중 일부는 바꿔야합니다. 그리고 현재 하는 일 중 일부는 멈춰야 합니다. - P318
각각의 기술은 양날의 검입니다. 한쪽 날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자르지만, 반대쪽 날은 우리의 손가락을 베죠.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불과500년 전 사람에게는 마법의 세상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마법사와는거리가 멉니다. 우리가 병에서 지니를 풀어놓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지니를 병에 도로 욱여넣는 것은 현재로서는 우리의 능력 밖입니다. 우리는 통제 불능의 소용돌이를 창조했고, 그 안에 살고 있으며, 만약그것이 멈추면 끔찍한 혼돈과 난장판이 닥칩니다. 전기가 모두 나가고 기차와 차가 운행을 멈추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해보세요. 현재 인류의 대부분은 도시에 사는데, 도시에서는 단 며칠 만에 식량이바닥날 겁니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우리가 구축한 기묘한 메커니즘 안에 있고,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이 메커니즘에 근본적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종국에는 이것이 우리를 배속에 넣은 채로 스스로를 잡아먹고 말 겁니다. - P324
아마도 인류 최대의 실패는 현대의 실패일 겁니다. 우리는 나머지세계와의 연을 끊어버렸고, 모두는 나머지 모두와 연결돼 있다는 것을깨닫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입니다. 자연과 별개가 아닙니다. 하지만 막대한 돈이 암 치료법 같은 멀어지는 무지개들로 계속 향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대부분의 암은 우리가 우리 몸에 쏟아붓는 산업 화합물과 부산물 때문에 생긴 것 아니었나요? 또한 불로장생의 꿈과 우리 뇌를 컴퓨터에 업로드해서 우주로 발사하겠다는 야망에도 막대한 돈이 투입됩니다. 반면 생물권의 기능 보존을 위한 필사의 노력에는 우리 부의 티끌만큼, 기부금 전체의 3퍼센트 미만만이 찔끔찔끔떨어질 뿐입니다. - P327
우리가 지구를 생명 전체에 부적당한 곳으로 만드는 게 빠를까요, 인간만살지 못할 곳으로 만드는 게 빠를까요? 당연히후자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발악을 해도 적어도 일부 곤충, 규조류, 혐기성 미생물, 심해 오징어에는 못 당합니다. 어쩌면 자연은 우리의 멸종을 기다릴 겁니다. 그럼 우리에겐 자연이 필요한가요? 결단코 필요합니다. 인간이 호흡하지 않고 사는 방법을 개발하지 않는 한 그렇습니다. 화학과 물리학은 흥정이란 게 없습니다. 항상 장부를 착착 맞춤니다. 열이 증가해서 에너지가 발생했다면 거세진 바람과 높아진 파도의 형태로 방출되어야 하고, 증발로 올라가는 게 있으면 폭우와 눈보라로 내려오는 게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했던 지구는 이제 기후변화로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2010년 환경운동가 빌 매키번(BillMcKibben)이 『우주의 오아시스 지구』에서 경고한 덜 친절하고 더 불안정한 새로운 행성이 이미 우리 코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거기에 적응하는 것입니다. 사는 규모를 줄여서, 우리가 촉발한 맹렬한 소모의 과정을 되돌리거나 최소한 중단해야겠죠. 아니면 현대사회의 붕괴에 뒤따를 비참함을 감당하든지요. - P328
해변을 뒤덮고, 먹이를 싹쓸이해 토착 어종의씨를 말리는 등 오대호 환경을 파괴하는 골칫거리가 되었습니다. 저는그 원주민 어부에게 물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당연히 어부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의 생계와 직결된 문제니까요. 하지만 그는 미소만 지었습니다. "자연이 알아서 할 겁니다." 나는 어부의 말을 자연이 얼룩말홍합을 없애줄 거라는 의미가 아니라 결국 새로운 균형이나 질서가 부상할 거라는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부의 말이 맞습니다. 자연은 항상 그랬으니까요. 그 결과가 우리의 바람과 다를 수는 있지만, 어차피 자연은 인간의 바람 따위신경 쓰지 않습니다. 물리학과 화학은 기회를 두 번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희망을 포기할 수 없어요. 우리는 두 번째기회를 갈망합니다. 우리의 종교적 우화와 설화와 영화는 두 번째 기회들로 넘쳐납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면 그것이 실현된다고 믿습니다. 이제 우리가 인류의 미래 생존을 간절히 빌어야 할 때가 온 듯합니다. 그것을 정말로 원한다면, 우리가 자찬해 마지않는 인간 지능을 이용해 미래를 벌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 P329
우리에겐 번역가들이 있습니다. 번역가들이 더 나아요. 왜냐하면 기계와 달리 그들은 어감을 인식할 수 있고, 각자의 해석을 창조할 수있으니까요. 지금까지 여러 훌륭한 번역가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그들의 눈과 귀를 통해 제 작품을 보는 것은 제 작품에심지어 저에게도 새로운 차원들을 더했습니다. W. G. 제발트가 그의번역가에게 한 말이 제 마음입니다. "이보다 나은 결과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이 일에 쏟았을 긴 시간과 엄청난 노력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번역가 여러분. 작가로서 우리는 여러분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독자로서 우리는 여러분이 열어주지 않았다면 잠겨 있었을문으로 들어가고, 여러분이 아니었으면 침묵했을 목소리들을 듣습니다. 창작 자체처럼 여러분의 일도 인간 소통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에기반합니다. 그것은 결코 작지 않은 희망입니다. - P354
여자아이들은 꽤 이른 나이부터 아름다움과 얽힌다. 거기에는 미의 개념(너 정말 예쁘다!"), 탐미와 연계된 사물(거울 속의 너를 봐), 심지어 미적 현혹에 대한 금기("저건 엄마 립스틱이야. 손대면 안 돼")도 포함된다. 아이에게 아름다움은 어딘지 마법적이다. 아름다움은 분홍색이다. 반짝반짝 빛나고 아른아른 빛난다. 아이에게 아름다움은 입을 수 있는 것이다. 처음으로 동화 속 공주의 발레리나 드레스를 입은 다섯 살배기들은 대개 벗기를 거부한다. - P355
약 오르게 사랑스러운 여주인공을 보면서 그들이 느꼈을 자괴감을 언젠가부터 아이들이 바비 인형의 외관을 일부러 망가뜨리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다락방 트렁크에서 머리털이 뽑히고, 보라색 매직펜 문신으로 뒤덮이고, 양팔이 떨어져 나간 바비가 심심찮게 발견된다. 한때 이들의 주인이었던 소녀가 자신이 신데렐라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에, 마치공감 주술 의식의 반대 버전처럼, 자기 인형에다 화풀이를 한 건 아닐까? 이렇게 화난 소녀들은 훗날 메이크업 주말강좌, 패션 컨설팅, 일품 손톱 관리로 자존감을 회복했을까? 어쩌면. 하지만 가능성은 낮다. - P357
우리가 어릴 때 책에서 배운 미의 개념의 긍정적 측면은 아름다움이출세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좀 더 커서 그리스신화에 본격적으로 빠졌을 때 아름다움에 부정적 측면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나치게 아름다우면, 가학적이고 막돼먹은 신들의 반갑지 않은 관심을 끌게 된다. 미녀에게 주목한 신이 남신이면 미녀는 쫓기는 신세가된다. 결과는 페르세포네처럼 납치당해 지하세계로 끌려가느냐, 레다처럼 백조로 변한 제우스에게 겁탈당해서 알을 낳느냐 중 하나다. 이런 운명을 피하는 방법은 나무나 강으로 변하는 것뿐이다. 이는 우리가 원하던 토요일 밤의 데이트가 아니었다. 미녀에게 주목한 신이 여신이면, 미녀는 대회의 상품이 되거나 불같은 질투의 대상이 된다. - P357
신반인의 지위와 맞먹었다. 농염한(glamorous), 매력적(charming), 매혹적(fascinating), 황홀한(entrancing), 고혹적(enchanting). 이 단어들의 어원은모두 초자연적 현상과 닿아 있다. 아름다움이 한 꺼풀이든 아니든, 저주이는 축복이든, 오만하든 매혹적이든, 현실이든 고안된 환상이든, 아름다움에는 마법의 힘이 있다. 적어도 우리의 상상 속에서는 그렇다. 그리고 이것이 립글로스 튜브들이 수없이 그리고 끊임없이 팔려 나가는 이유다. 우리가 여전히 요정을 믿는다는 뜻이다. - P360
에세이 제목은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 세계였지만, 이때의 저는 막상거기서 무엇을 이해해야 할지 몰랐던 것 같아요. 저는 열아홉의 제가 논리의 갈피를 잃고 해매는 것을 지켜봅니다. 아버지-권위주의 모티프를 들먹였다는 것은, 카프카의 작품과 그의개인사를 다시 붙이겠다는 뜻인가요? 카프카는 평생 강압적인 아버지와 갈등을 겪은 것으로 유명하거든요. 하지만 저는 이 쟁점을 비껴갑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저는 카프카가 살았던 역사적 시기(제1차세계대전 이전, 도중, 이후 시대. 카프카는 히틀러가 뮌헨 폭동을 일으킨 직후인1924년에 사망했습니다), 그를 둘러싼 지리적 위치와 문화적 환경(체코슬로바키아와 중부 유럽), 그리고 (체코어를 쓰는 프라하의 독일계 유대인이었던그의 처지와 결코 무관하지 않았을) 그의 취약하고 고립된 정체성에 대한쟁점들도 모두 피해 갑니다. - P366
열아홉 살의 제게 진정한 예술이란 플라토닉한 추상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었고, 현실과 아무 접점 없이 지구 위를 떠도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믿으면 제가 그때 쓰고 있던 어두컴컴한 소설들에 제 전 남자친구들을 투입했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없었어요. 그러다 저는 진정한 예술에 대한 카프카의 견해를 잡을 기회를 놓쳤습니다. 카프카의 유명한 단편들 중 몇 편은 사실상 진정한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것이었는데, 저는 그것도 몰랐던 거죠. 예를 들어 가수요제피네 혹은 쥐의 족속(Josefine, die Sängerin oder Das Volk der Mäuse)」의 요제피네는 노래 실력이 별로라서 쥐 관중에게 경멸을 받지만 노래를 멈추지 않습니다. 「유형지에서는 유죄 선고 자체가 형 집행입니다. 무수한 바늘이 작동하는 기계장치가 죄수의 몸에 죄목을 새기며 그를 심판합니다. 또한 「단식 광대(Ein Hungerkinstler)」는 처음에는 열광적인 관심을 받지만 대중이 그의 단식에 흥미를 잃자 방치된 상태로 결국 굶어 죽고 맙니다. - P367
이제 시간을 빨리 감아서 1984년으로 가볼까요. 25년이 지났고 저는 이제 마흔넷이고, 가족과 함께 서베를린에서 살고 있습니다. 기쁘게도 주(駐)체코 캐나다 대사관의 후원으로 카프카의 도시 프라하를방문할 기회가 왔고, 우리는 그 기회를 잡았습니다. 당시 체코슬로바키아는 통제가 삼엄한 소련 위성국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건물 안이나 차안에서 사회를 비판하는 것을 피했습니다. 예를 들면 연탄 사용에 따른공기 오염 수준이 살인적이라느니 하는 얘기요. 곳곳이 도청되고 있다고 봐야 했습니다. 공원 한복판 정도만 안전해 보였어요. 우리가 호텔방에 이르자 벨보이가 샹들리에를 가리키더니 손짓을 하며 우리를 한구석으로, 숨겨진 마이크에 소리가 잡히지 않는 우묵한 곳으로 불러 모있습니다. 그러더니 달러 환전을 원하는지 물었습니다. - P368
도시 위로 프라하성이 어둡고 을씨년스럽게 떠올라 있었습니다. 카프카의 『성』이 생각났습니다. 그것은 단지 추상적인 상징이 아니었습니다. 실제의 성이었습니다. 카프카가 죽었을 때 성』은 미완으로 남았고, 이후 지금까지도 평단은 작품의 의미를 궁리중입니다. 성의 답답한 미로 속을 헤매는 주인공 K가 찾고 있던 것은 무엇일까? 그 상황에서 자신을 도와줄 관리? 이 책은 관료주의의 무도함에 대한 비판일까? 아니면 K도, 베케트의 주인공처럼 존재를 드러내는 법이 없지만 그럼에도 거기 존재하는 신을 찾고 있었던 걸까? 1959년 열아홉의 저라면아마 카프카의 성과 관계있거나 아니면 맥락이라도 통하는 여러 문학적 성들을 거론했겠죠. 예를 들어 독일 낭만주의 고딕 양식의 음울한성들, 에드거 앨런 포의 「붉은 죽음의 가면(Masque of the Red Death)」에나오는 성(엄밀해 말해 이 경우는 성이 아니라 대사원이었습니다), 월터 스콧의 『아이반호』에서 처녀들을 감금하고 유대인들을 고문하는 악명 높은 토퀼스톤성, 죽지 않는 자들이 출몰하는 불길한 드라큘라의 성 등. 19세기 사람들에게 성은 그다지 신나고 유쾌한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 P369
카프카라면 이런 경험을 여러 관점에서 향유했겠죠? 카프카와의 세 번째 조우는 먼젓번과 몹시 달랐습니다. 다시 빨리 감기를 해보죠. 이번에는 1990년대 후반으로 갑니다. 베를린장벽은 이미허물어졌고, 소련은 붕괴했고, 냉전도 이미 종식됐고, 바야흐로 쇼핑이제2의 섹스였습니다. 우리는 다시 프라하를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서구스타일의 문학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제 도시는 관광객으로 붐볐고, 각종 보헤미안들의 핫스폿이 되어 있었고, 나중에 알았지만 세계의 부동산 시장에서 암약하는 러시아 마피아의 격전지이기도 했습니다. 프라하는 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에서 살아남았고, 히틀러가 도시의 아름다움에 반한 덕분에 대대적 파괴를 면했습니다. 휘황하게 불 밝힌 프라하는 동화 속의 도시 같았습니다. 카를 다리의 조각상들도 제자리로 돌아왔고, 한때 귀신의 집 같았던 프라하성은 관광의 중심이 됐고, 구시가 광장은 수공예박람회로 성황이었습니다. - P371
자신이 이렇게 기념의 대상이자 돈벌이의 수단이 된 것을 알면 카프카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제 생각에 그는 웃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열아홉에서 예순 살 사이에 카프카에 대해 알게 된 것 중 가장 의외였던 것이 뭔지 아세요? 카프카는 자기 작품 상당수가 엄청나게 웃기다고 생각했어요. 소송이 웃기다고? 「단식 광대」가 웃겨? 유형지에서가 웃겨? 음, 그래요. 어떤 견지에서 보면 웃기죠. 그리고 당시는 훗날 히틀러가 출현해 현실 세계에서 어떤 일들을 벌일지 몰랐던 때였으니까요. 어쨌든 우리는 카프카 기념품 모음에서 다소 기괴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아니, 카프카적 인상이라고 해야겠죠. 하지만 이 경우는 음울한카프카가 아니라 보다 익살맞은 카프카, 또는 적어도 보다 쾌활한 카프카였어요. 만약 제 1959년 에세이를 21세기의 두 번째 10년에 접어든 지금 다시 쓴다면 저는 이런 면의 카프카에 더 중점을 두렵니다. - P372
이런 카프카도 있습니다. 고립되고 박해받는 K가 아닌 카프카, 이름없이 익명의 군중에 섞여 있지만 자유로워서 거의 노래 부를 지경인그가 있습니다. 하지만 ‘거의‘일 뿐입니다. 카프카는 언제나 ‘거의‘만허용해요. 삶에서처럼 문학에서도, 여자들과도 그는 어느 한곳에 머무를 줄 모릅니다. 그를 딱 꼬집어 정의할 방법은 없습니다. - P373
저는 아직 노르웨이의 실제 숲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거기에 대해 뭐라 평할 수 없습니다. 저는 미래 도서관의 장서실에 들어가 다른저자들의 이름과 그들이 기증한 작품들의 제목을 볼 수도 없습니다. 아흔 번째 저자, 아흔다섯 번째 저자 등 먼 훗날의 저자들은 그들의 봉인된 상자가 열리고 그들의 작품이 출판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고, 그책을 읽는 사람들이 동시대인이 될 겁니다. 하지만 제 작품을 읽을 사람들은 100년이나 떨어진 미래에 있습니다. 그들의 부모도 아직 태어나지 않았고, 그들의 조부모도 아직 세상에 없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미지의 독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요? 그들은 제가 살았던세상, 제가 미래 도서관에 맡긴 작품의 토대가 되었던 세상에 대해 무엇을 이해하게 될까요? 그리고 그때는 말의 의미가 어떻게 변해 있을까요? 언어 자체는 지각의 암석처럼 압력과 변형에 약하니까요. - P375
사이언스 픽션은 공간여행 - 저자가 한 번도 본 적 없고, 어쩌면 인간의 상상에만 존재하는 장소들로의 여행을 재료로 하는 예술입니다. 시간여행도 비슷합니다. 미래 도서관의 경우 저는 제 원고를 시간 속으로 떠나보냅니다. 그곳에 제 책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인류가 남아있을까요? ‘노르웨이‘가 있을까요? ‘숲‘이 있을까요? ‘도서관‘이 있을까요? 기후변화, 해수면 상승, 삼림 해충의 습격, 범지구적 유행병을 포함해 오늘날 우리를 괴롭히는 온갖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젝트의 모든 요소들이 미래에도 계속 존재할 것으로 믿는 것은 분명 희망의 행동입니다. - P375
미래 도서관이란 그런 것입니다. 한때는 있었지만 이제는 과거로 사라진 삶들의 편린을 담은 용기가 될 겁니다. 하지만 종류 불문모든 글쓰기는 사람의 소리를 보존하고 전달하는 방법입니다. 펜, 인쇄기 잉크, 붓, 침, 끌이 만든 글쓰기 자국들은 악보의 음표들처럼 죽어누워 있을 뿐입니다. 독자가 거기 도착해서 목소리를 회생시키기 전까지는 말이죠. 오랜 세월 침묵하던 제 목소리가 100년 후에 갑자기 깨어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참 묘합니다. 아직은 세상에 체현되지 않은 미래의 손이 그것을 봉인된 함에서 꺼내 첫 페이지를 열 때, 그 목소리는 가장 먼저 무슨 말을 하게 될까요? 제 텍스트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독자의 만남이란 언젠가 제가 멕시코의 동굴 벽에서 붉은 손바닥 자국을 보았던 경험과 비슷하지 않을까생각합니다. 그 손도장은 3세기 넘게 봉인돼 있었습니다. 지금의 누가그 흔적의 정확한 의미를 판독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그것의 일반적의미는 범지구적입니다. 어떤 인간이든 그 의미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 손자국은 이렇게 말합니다. 안녕. 여기에 내가 있었어. - P376
앞서 말했듯 저는 세상에 일어난 적이 없거나 가용 기술로 실현할수 없는 일은 책에 담지 않았습니다. 저는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독재 정권, 히틀러가 폴란드를 비롯한 점령국에서 벌인 아동 강탈, 나치친위대를 위한 일부다처 정책, 아르헨티나의 군부독재 등 다양한 역사적 사건들을 참고했습니다. 미국 노예에게 강요된 문맹, 초기 모르몬교, 중세의 집단 교수형(모두가 줄을 당기면 죄책감도 공유되니까?)에서도영감을 얻었습니다. 제물로 바쳐진 사람을 손으로 찢어 죽였던 고대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숭배 의식도 참고했습니다. 몇 가지 예만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시녀‘ 의상은 1940년대 ‘올드 더치 세제(Old Dutch Cleanser)‘의 패키지 삽화를 참고했습니다. 얼굴을 가리는 하얀 모자와 풍성한 치마의 여인이 어릴 적의 제게 충격적인 인상을 남겼거든요. - P391
작중의 전체주의국가 길리어드의 사회구조를 모든 남자가 모든 여자보다 우월한 지위를 가지는 절대적 남존여비 구조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길리어드는 젠더 구분에 따른 독재라기보다 전제주의(主義) 또는 전체주의체제입니다. 따라서 고위층 남성의 아내도 남편보다는 낮지만 높은 지위를 누립니다. 또한 하층민 남성은 고위층 여성보다 낮습니다. 이는 역사상 흔하게작동했던 방식입니다. 길리어드에서는 고위층 남성만 가임기 여성을한 명 이상 가질 수 있습니다. 즉 출산을 위한 ‘시녀‘를 따로 둘 수 있습니다. 이 역시 현실에 분명히 있는 일입니다. 본부인이 가정에서 지배권을 행사하고, 다른 젊은 아내들은 그녀의 처분을 따릅니다. 고위층남성은 이들 모두에게서 자식을 얻습니다. 능력이 되면요. 하층민 남성은 ‘경제부 econowifie)‘한 명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경제부‘는 하층민 남성의 아내를 말하는데, 고위층에서 여러 여성이 분담하는 일본부인의 대외적 사교 기능, 정부와 첩의 섹스 기능, 하녀의 가사노동-을 혼자 다 해야 합니다. 제가 시녀 이야기』의 세계관을 이렇게 정한것은 이것이 현실 세계에 종종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P392
두 번째 문학적 영향은 아시다시피 성경에서 왔습니다. 성경은 하나의 책이 아니라 여러 두루마리 기록의 모음집으로 시작된 매우 복잡한 작품입니다. 코덱스북-책등이 있고 거기에 책장을 엮어서 넘기며볼 수 있게 만든 오늘날의 책 형태요-이 개발되자 비로소 ‘비블리아(biblia, 작은 책들)‘가 하나의 책으로 묶였고, 그때서야 성경이 하나로 통합된 작품의 외양을 갖추게 됐습니다. 각 부분이 각기 다른 시기나 시대에 각기 다른 사람에 의해 쓰였기 때문에 성경에는 엇갈리는 메시지들이 수두룩합니다. 과부 · 고아 빈민 · 피지배민 등에게 매우 호의적인메시지들이 있는가 하면, 정반대 분위기의 메시지들도 뽑아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적들을 풀 한포기 남김없이 초토화하고 그들을 자식까지 잡아먹는 처지로 만들겠다는 저주도 등장합니다. 사실 지금껏 많은이들이 이런 메시지들에 더 열광했죠. - P393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변수가 너무 많고 미지의 요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죠. 여럿이 아무리 면밀히 판을 짜도 일은 언제나 빗나갈 수있습니다. 경험에 따른 추측과 그럴듯한 예상은 할 수 있지만, 거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시녀 이야기』에 대한 많은 것들을 털어놓았습니다. 그 혈통과 기원, 과거와 현재를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시녀 이야기』의 미래만큼은 여러분의 손에 독자들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책이 됐든 책의 미래는 독자가 결정합니다. 작가는 책을 쓰고 나면 그것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하고 기차역에서 손을 흔들어 작별을 고할 뿐입니다. 그러면 책은 미지의 땅들과 미지의 마음들을 향해 여행을 떠납니다.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싫어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어느 책에나 일어나는 일이죠. 이렇게 오랫동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이 책을 좋아했다는 것만이 늘 놀라울 따름입니다. - P398
내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다. 이렇게 어렵게얻어낸 자유를 어째서 여러 서방국가의 시민들은 찍소리 없이 때로는기꺼이 포기했던 걸까? 대개는 공포 때문이다. 그리고 공포는 여러 형태를 취한다. 때로는 그것이 급여를 못 받을지 모른다는 공포로 귀결된다. 기차가 제시간에 다니고 내 일자리가 보장되는 한,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엄지 매달기‘ 고문을 당하고 있다 해서 법석을 떨 이유가 있을까? 그렇게 ‘엄지 매달기‘ 고문이 본격화하면 다른 종류의 공포가 자리잡는다. 엄지손가락을 보전할 유일한 방법은 개구리 연못의 수면 아래에 납죽 엎드려 있는 것이다. 괜히 머리를 들거나 크게 울어대는 건 금물이다. 우리는 아무런 ‘허튼짓‘도 하지 않으면 어떠한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허튼짓‘은 매우 유동적인 범주다. 나쁜 일은 결국 일어난다. 하지만 그때쯤에는 이미 자유언론에는 재갈이 물려 있고, 독립적 사법부는 전부 해체돼 있고, 독립적 작가·가수·예술가도 남김없이 진압돼 있을 것이므로 우리를 방어해줄 거라곤 전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알아야 할 한가지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아무 책임감도 견제 장치도, 균형 감각도 없는 전제주의 체제는 가공할 권력 남용을 만들어낸다. 이는 예외 없는 법칙이다. - P405
우리 대부분은 이중으로 부자유하다. 우리의 ‘자유‘는 승인과 감독을 받아야 하는 것들에 한정돼 있고, 우리의 ‘하지 않을 자유‘는 우리를 죽음으로 내몰 많은 것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지 못한다. 욕조는 시작에 불과하다. 대기와 물에 퍼진 유독성 화학물질에서 벗어날자유? 홍수와 가뭄과 기근을 겪지 않을 자유? 결함 있는 자동차로부터무사할 자유? 매년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잘못된 약물 처방을받지 않을 자유?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모든 기술은 양날의 도구다. 데이터 - P407
가 새는 구멍들로 가득한 인터넷도 말은 일사천리로 전파한다. 덕분에전보다 권력 남용을 밝히기가 쉬워졌고, 청원에 동의하고 항의의 목소리를 내기가 쉬워졌다. 물론 그 자유도 양면적이다. 내가 서명한 탄원이 내 정부가 나를 공격하는 증거로 이용될 수 있다. 모이솝우화 중에 왕을 원했던 개구리 이야기가 있다. 신은 왕을 내려달라고 청하는 개구리들에게 통나무 하나를 던져주었다. 통나무는 물에 둥둥 떠다닐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개구리들은 한동안은 만족했지만 이내 불평을 늘어놓으며 더 활동적인 통치자를 보내달라고 했다. 귀찮아진 신은 그들에게 황새를 보냈고, 황새는 개구리들을 몽땅먹어치웠다. - P408
우리의 문제는 서방세계 정부들이 점점 통나무 왕과 황새 왕을 합친불쾌한 조합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사찰하고 통제할 자유를 행사하는 데는 능하고, 시민에게 이전에 누렸던 자유를 허용하는 데는 서툰 정부. 보안법을 고안하는 데는 능하지만 그 부작용에서 우리를 보호하는 데는 서툰 정부. 그 부작용에는 없는 문제도 있다고 하는 긍정오류도 포함된다. "당신이 첩자가 아니라는 증거를 대봐." 내 정체를 정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누구라도 내 데이터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을디지털 기술이 삶을 엄청 편하게 만들어준 것은 사실이다. 일단 클릭하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그동안 할양했던영토를 일부라도 탈환해야 할 때가 아닐까? 블라인드를 내리고, 염탐을 차단하고, 사생활 개념을 복구할 때. 오프라인으로 전환할 때. 먼저 나설 사람? 맞다. 그럴 줄 알았다. 쉽지 않은 일이다. - P408
치장은 인간의 아주 오래된 관심사다. 문신에서 가발과 귀걸이, 버슬 엉덩이와 빅토리아시크릿까지 우리는 먼 옛날부터 우리 몸을 장식해왔다. 복장이 그 사람을 말해주진 않아도, 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생각하는지에 대한 유용한 힌트는 될 수 있다. 소설에서 이는 지극히중요하다. 우리가 셜록 홈스를 사랑하는 것이 그의 추리력 때문만은아니다. 그의 사냥 모자 때문이기도 하다. 혹시 여러분도 이런 디테일에 집착하는가? 당당해져도 좋다. 그래서 만약 내가 양방향 스트레칭 거들에 대해 실수하면, 모쪼록 내게 힐난의 편지를 보내주기 바란다. - P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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