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케를 번역하고 있거든. 아이들에게는 젊은 독일인 가정교사를 구해줬는데, (운이 닿았는지) 지난2년을 릴케를, 특히 내가 옮기고 있는 바로 그 시들을 연구하는데 바친 사람이야 이 청년은 시 이야기를 할 때면 신이 나서 머리가 쭈뼛 곤두서고, 뿔테 안경이 흘러내려 코끝에 걸리는데, 중력의 기적으로 떨어지지 않고 거기 멈추곤 해. 선생이 아이들을서둘러 데리고 갈 때면, 호수 안쪽으로 그들을 멀리 데려가는자그마한 보트 위로 그들이 조그마해지는 걸 지켜봐. 그다음에는 하얗고 헐벗은 육체 둘이 보트 위에 서 있는 모습을, 그리고번쩍하고 첨벙, 그러고는 동그란 머리 둘만 물속에서 까닥거리지. 그제야 나는 릴케로 돌아가. - P352
지상에 더 이상 살지 못하는 것은 얼마나 기이한가 배운 관습들이 더 이상 소용없어지는 일, 더 이상 장미로도 그밖의 특별한 약속으로도, 인간의 운명을 그리지 않는 일은. 한때 우리였던 존재가 더 이상 아니게 되는 일, 어느 때보다도 끔찍한 손아귀에 붙들려 있는 일, 우리 자신의 이름마저도 부서진 장난감처럼 내버린다는 것은! 기이해, 우리의 소망을 더는 소망하지 않는 일! 얼마나 기이한가, 세계가 모두 얽혀 우주에 자유로이 떠다니는 것을 보는 일은! 죽음은 의미가 텅 빈 권태, 태양 우리가 서서히 영원을 품는. - P353
어느 책에서 당신이 보낸 아주, 아주 오래된 편지를 찾았어. ‘비타에게로 시작하는독일군, 아니면 그 잔재는, 아침마다 자갈 위로 대포를 우르룽거리면서 옮기고, 저 멀리 군악대가 연주하는 소리가 호수 너머로 반향을 일으켜 릴케 사이사이에 내 소설을 생각하고, 조각보 이불 비슷한 것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지만, 아직까진 조각들이 그저 나란히 놓여 있을 뿐 꿰매는 일은 시작하지 못했어. 야심만만한 게 나을까, 소박한 게 나을까? 후자가 안전하겠지. 하지만 안전한 건 질색이고, 우중충하게 성공하느니 영광스럽게 실패하는 게 낫겠어. 아무튼 ‘더 나은 것‘에는 관심 없어 아 ‘무리 결심을 여러 번 해도 내 펜은 물처럼 자기만의 수위를 찾을 테고, 나는 내 방식대로가 아니면 쓸 수 없으니까. 적어도 무성하게 자란 내 어린 시절이 지금쯤이면 예쁘게 다듬어져 있으리라고 확신해, 그리고 그 자리에 나무처럼 울창하게 자랐길. 그러니 지켜보자고, - P354
당신의 소설을 쓰면서 왜 그렇게 소심하면서도 자만심으로가득 차 있어, 그것도 동시에? 당나귀 웨스트가 야망과 실패라... 고 부르는 게 뭔데? … 물론, 지난 10년 가까이 당신은 자르고다듬고 뿌리를 팠지. 무화과나무를 키우려면 뭘 해야 한댔더라? 그러다 보니 당신은 때때로 꼬리가 쥐꼬리처럼 되도록, 갈비뼈가 알프스 지도처럼 솟아오르도록 훈련에 시달린 경주마처럼 써. 부디 당신 소설을 써, 그러면 당신도 사실 같지 않은 세계, 버지니아가 사는 그 세계에 들어오게 될테니. 그 불쌍한 여자는 더 이상 다른 곳에서는 살 수도 없지∙∙∙ - P356
근데 당신이 "에서 샌즈가 우리에게 충고하기를" 등등을 말할대 당신이 (우리‘라는 호칭으로 의미하는 게 당신과 레너드야, 아니면 당신과 나야? 당신이 동요하도록 둬야지, 상당히 재밌거든. 그냥 이 말만 할게 와서 당신이 내내 불행할 것 같으면 오지 마. 하지만 그렇지는 않을 거야. 영국의 8월이 아름답다는 말은 하지 말아줘. 여기는 너무 추워서 무릎 위까지 깃털 이불을 덮고 있거든. 거의 매일 비가 내려. 정말 날씨가 몹시 사나운 동네야. 영국은 아름답다는 둥, 다운스 지역은 황금빛이라는 둥, 그런 소리 하지 마. 그럼 내 운명에 반감이 생길지도 몰라. - P359
"그렇지만 당신의 톨스토이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고 말하려고 했어. 지금까지 내가 본 당신이 쓴 비평 중 최고라고 생각해. 당신의 훌륭한 글쓰기 실력은 내 공로라고 늘 생각하니까, 스스로에게도 만족했지... 당신은 여지가 있다면 마땅히 찔러야 할 곳을 정확히 찔렀어. 사진 같은 것일 수도 있었을 톨스토이의 리얼리즘을 전혀 다르게 만든 요소가 뭐냐는 문제 말이야. 그 작가의 리얼리즘은 반대로 감동적이고 흥미진진하고 그 외에도 모든 걸 갖췄지... 하지만 당신이 그렇게 흥미로운 것들을쓸 때가 좋아. 그리고 할 말도 아주 많고.… 당신 소설에 관해서. 내가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그때는 소설 쓰기에 관 - P360
한 아주 심오한 에세이처럼 느껴지더라고… 나는 소설을 시작할 때 감정을 느끼는 일이 핵심이라고 믿어. 그걸 쓸 수 있느냐말고, 언어가 건널 수 없는 만 건너편 저 먼 곳에 존재하고 있음을 말이야. 숨 막히는 고통을 감수해야만 도달할 수 있지. 기고문을 쓰려고 앉았을 땐, 1시간 안팎이면 쓰려고 한 생각을 확실히 포획할 단어의 그물이 내게 있어. 하지만 소설은 말했다시피, 쓰기 전에는 쓸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게 좋은 거야. 보이기만할 뿐 그러니 아홉 달을 절망 속에 살다가 뭘 하려고 했던 건지잊었을 때에야 쓴 책이 나쁘지 않게 여겨지지 당신에게 장담하는데, 내 소설 전부가 쓰이기 전에는 일류였어…래드클리프 홀 문제는 동의해. 하지만 어쩌겠어? 그녀가 직접무죄와 존엄을 주장하는 편지를 써서 우리에게 서명을 부탁했고, 달리 보낼 사람도 없었어. - P361
그리고 우리는 결국 그걸 못 봤지. 하지만 나르텍스 열둘도 아쉽지 않을 만큼 관광한것 같아. 아무튼 나는 다른 존재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어. 올여름 내내 나는 고양이처럼 예민했거든. 깜짝 놀라거나 꿈을 꾸고있거나 생각에 잠겨 있었지. 이제 나는 다시 힘이 넘치고 팔팔해졌고, 다시 한 번 삶에 굶주려 있어. 다 당신 덕분이라고 믿고있어. 그러니 이 편지는 감사장이지. 1시 15분 전이야. 버지니아가 잠자리에 드는 시간에서 거의 2시간이 지났지. 내 소중한 사람,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해. 세상모든 시빌들과 톰 엘리엇들도 나처럼 당신을 사랑하지는 않을걸, 당신이 내게 이런 존재여서 정말 감사해. 농담이 아니라, 몹시도 엄중한 진실이야. - P367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 자정의 별빛에 의지해 당신이 쓴 편지는 아주아주 훌륭했어. 늘 그 무렵에 쓰도록 해. 당신의 심장을 녹이려면 달빛이 필요한 모양이니까. 내 심장은 가스 불에 바싹 익었어. 이제 겨우 9시밖에 되지 않았고 11시에는 잠자리에 들어야 하거든. 그러니당신이 내게 해줬던 것처럼 비애를 위로하는 말은, 나는 늘 비애에 잠겨 있으니까, 한마디도 하지 않을래. 내가 당신을 얼마나 지켜봤는지!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어땠냐면 말이지!) 글씨, 어디선가 분수가 물을 흩뿌리는 동안 위아래로 솟구쳤다 가라앉곤 하는 작은 공을 본 적이 있거든. 당신은 분수야. 나는 공이고, 당신에게서만 느끼는 감각이야. 육체적으로 자극이 되면서동시에 평온을 주지... - P368
그러니까 당신은 막 돌아왔을 테고, 저녁 시간이 지났고, 나는혼자 밥을 먹었어. 내게 쓴 편지참 좋더라! 내가 당신 글을 흥미로워하면서 되새기는 거 알아? 이제는 당신 의견이 확고하게 ‘선것 같아. 작가로서 내가 관심을 두는 사람은 거의 없어. 하지만 당신의 다음 시는 주의 깊게 읽어야겠다고 생각하지. 그리고 당신이 절정기의 톰과 리드에게 분연히 맞서는 방식도마음에 들어, 영국의 근위병이로군. 지금 무슨 말 하려다가 잊어버렸다. 뭔가 엄청 재밌는 거였는데, 이 오후에 이마와 머리카락사이에서 날 강타한 뭔가…확고하게 의견을 내세우는 것, 내가 작가를 좋아한다면 이 때문이야. 데즈먼드는 얼버무리고, 나는 너무 비약하지. 신경 쓰지마, 생각을 더 정리해서 나중에 말해줄게. 아, 맙소사! 당신이 내게 어떤 기쁨인지. - P379
내 사랑스러운 포토, 나 화 안났어. 그저 울프 부인을 못 보게 되어 실망했을 뿐이지. 내가 울프 부인을 만나길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잖니. 그녀는 모르지만, 너와 나는 알지. 울프 부인에게 내 말을 전해줄래? 내가 화요일 1시 5분에 갈것이고, 나는 엘레나가 손톱만큼도 보고 싶지 않다고. 이렇게말하면 울프 부인은 이해할 거야. 아니면 내가 점심은 부인 혼자서 평화롭게 드시게 두고, 저녁을 먹으러 가는 게 낫겠느냐고도 물어보렴. 저녁 먹고 같은 파티에 참석해야 하니 말이야. 올프 부인이 내게 엽서를 보낼까? 나는 둘 중에 어느 쪽이든, 혹은 둘 다 갈 수 있는데. 울프 부인에게 내가 허친슨 부인과 기분 좋은 대화를 나눴고, 허친슨 부인이 언젠가 울프 부인과 함께 여기 와서 머물고 싶어하더라고 전해줘. 사랑스러운 포토, 울프 부인에게 내가 화가 나지 않았다고 설명해줄래? 그저 슬플 뿐이라고? - P384
저 못된 포토가 노란 구슬을 온통 달고 다녀. 이리저리 굴리고 돌아다녀서 도무지 떼어낼 수가 없네. 앞발 털을 짧게 잘라왔는데, 당신이 이거 싫어하는 거 나도 알아. 하지만 이번 한 번만 한마디 해도 될까? 선물은 금지야. 우리에 온통 그렇게 쓰여있어 쟤네 성격 망쳐놔서 안 돼. 장기적으로 보면 그것 때문에고통받는다니까. 이번 한 번은 용서해줄게. 하지만 다시는, 다시는 주면 안 돼. 당신이 나를 유혹해 붙잡은 그 밤, 그 겨울, 롱반에서, 당신이 스테인경의 종이칼을 몰래 가지고 갔지. 그래서단순한 규칙을 정해줄게. 그 칼로 당신은 우리 심장에 틈을 내고말거야. 구슬에도 같은 규칙이 적용돼. - P387
제 시간의 길이란 얼마나 중요한지 않은지 확실히 알려줬어. 전에는 베를린 전체가 순전히 혐오스럽기만 했거든. 이제는 사랑의 기운을 받은 장소들이 몇 군데 생겼지. 프린츠 알브레히트가, 포츠담 푼크툼. 심지어 브뤼켄가조차 당신의 향취를 얼마간 머금고 있어. 그러니 네 명이나 되는 사람을 베를린까지 데려온 일이 허튼짓은 아니었지. 그리고 나는 비교철학을 하며 남은 나날을 편안히 보낼 거야. 그러면 롱반 봄이, 나이팅게일들과 당신의 커다란 침실이, 그리고 나머지 것들이 찾아오겠지. 하지만 그때쯤이면 당신 마음 상태는 변했을까? 내게 충실하지 않게 될까? 메리 크리스타벨? 맙소사, 난 당신을 절대 용서하지 못할거야. 안 되지, 당신의 나를 위해 당신 자신을 아껴줘. - P397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 여기 이기적인 병자의 소식을 하나 더 보내. 그래도 당신에게편지 쓰고 싶었고, 내 이야기뿐이어도 당신은 싫어하지 않겠지. 아직 침대에 묶여 있지만, 오늘은 정말 나아졌어. 지금 아프고오한이 드는 건 그저 평소와 다름없는 두통일 뿐인데, 지나가겠지... 아플 때면 내가 당신을 어찌나 원하는지, 이상할 정도야. 비타가 온다면 모든 게 훈훈하고 행복해질 것 같아. - P402
날이 좋으면 큐에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전에 당신이 햄스테드의 키츠 집에 데려가주겠다고 말한 적 있는데, 당신 바빠? 나는 프랜시스 비렐과 점심을 먹을 거야. 그 외에는 비어 있고, 버지니아가 보고 싶은데, 그녀는 최근에 내가 무척 심각하게 그리워하는 사람이지. 그나마 사진들이 나를 행복하게해줘. - P425
하지만 소설*은 어떻게 쓴담? 나는 걷기는 잘하지만, 소설 쓰기는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어. 쓰고 또 써도 다 써놓고 다시 읽으면 안 써도 됐겠다는 마음이 들거든. 내 주머니에서 큰 종이를 꺼내 사보이가 보이는 바위에 등을 기댄채 1908년에 정거장에서 마주치곤 했던 그 버스의 냄새를 정확하게 되살려보려고 애써 버스의 고무 없는 타이어가 내는 우르릉 소리를 그 집문을 들어서는 순간 훅 끼쳐오던 사치와 낭비의 인상을 하인들무리를 침실 문 작게 패인 홈에 적힌 사람들의 이름을 저녁 식사 후 통로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던 졸린 하녀들을 이런 인상들이 내게 그 이후 벌어진 다른 많은 일보다 훨씬 더 생생하다는걸 깨달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뭔가를 전달할 수 있을까? 그래도 여전히 매달려 있고, 언젠가는 호가스 출판사라는 각인아래 서점에 진열된 모습을 보고 싶어. - P434
아마도 당신은 이런 편지는 내밀한 편지가 아니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동의하지 않아. 내가 이 순간 쓰는 책은 나의 가장 내밀한 일부, 내가 가장 삼엄하게 비밀로 간직하던 순간에얽혀 있는 나의 일부야. 이 책에서 풀어낼 삶의 밀도와 비교한다면, 사랑이나 성이 다 뭐야? 하찮은 것에 불과하지. 그런 건 꼭대기에서도 외칠 수 있는 거라고. 그러니까 내가 당신에게 내 책 - P434
에 관해 쓴다면, 정말 내밀한 편지를 쓰는 셈이야. 아주 흥미롭진 않지만 이만하면 내 말이 증명됐지? 하지만 당신은 차라리내가 포토와 버지니아가, 털 아래 바늘을 숨긴 그 보드라운 생명체들이 보고 싶다고 말하길 바라겠지. 그러니 그렇게 말할 거야. 내가 돌아가면 둘이 와서 머물 건지 아주 궁금한데? 포토는강아지들을 마음에 들어 할 테고, 버지니아는 훌륭하고 커다란침대와 11시의 커피를 좋아할 거야. 그리고 허가되거나 허가되지 않은 시간들에 그녀에게 내가 보일 모든 애정도 4일에 돌아갈 것 같아. 베를린 영국대사관 주소로 내게 보낸 편지들은 해럴드의 주머니에 들러서 내게 전해질 테고, 독일 남부 어딘가에서 며칠 중에 합류할 거거든. 아주 좋겠다. 그러니까, 편지 말이야 전달 받은 편지가 없었으니, 달리 말해 돌아가면 잘 묶인 편지 뭉치가 있단 뜻이지! - P435
아, 당신을 보기 전에 내가 어떤 고통을 겪는지, 당신은 절대모를 거야. 책장에 놓인 당신의 자필 원고나 내 방의 당신 사진들을 보는 일이 견딜 수 없어. 이 물건들은 죄다 여러 자루의 단도 같기만 해. 내가 어떻게 했어야 할까... 하지만내상상력이반기를 들지. 모든 것이 잘 끝나면, 나는 필시 이 일이 대단한통찰력을 주었음을 인정하게 될 거야. 단지 당신 두통이 정말로 그 일 때문이었다면 나로서는 이 상황이 잘 끝났다고 생각할 수 없겠지. 그게 사실이라면 이 일은 처참하게 끝날 테니까. 당신이 나아졌는지 알려주겠어? 나는 당신이 아는 것보다 훨씬당신에게 조바심을 내고 있어. 하지만 당신이 내가 그러리라 생각했다면 그 정도는 아니고. - P440
아니, 아프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그냥 평소의 두통이었고 다시 완전히 멀쩡해졌어옥스퍼드 학부생이 쓴 소설 원고를 읽는 중인데, 이 사람 주인공이 "우리 시대 살아 있는 최고의 시인들보다 훨씬 더 섬세한 시, 《대지》에 나온 이 구절들을 알아?"라는 대사를 하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사람 책을 내지 않을 거야. 내 인생에 열정의 대상은 단 한 가지, 요리뿐이야. 끝내주는석유 난로를 막 샀거든. 뭐든지 요리할 수 있어. 나는 요리사들로부터 영원히 해방이야. 오늘 송아지 커틀릿과 케이크를 만들었어. 바보 같은 짓이란 말로 부족한, 이 책들을 쓰는 일보다 이쪽이 훨씬 낫다고 당신에게 장담할 수 있지. ....뭐, 신은 우리가 만날 수 있을지 아실 거야. 당신은 바르셀로나로 떠나겠지... - P465
돌아오면 여기 올래? 당신이 보이는 모든 것에 황홀해하고 있을까? 전에도 그리스에 가봤으니 당신기억은 더 강렬하겠지. 나도 알아. 사람들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와 함께 있지않을 때 뭘 경험하는지 생각하면 무서워. 맞아, 내가 당신과 함께 있으면 좋겠어. 우표 묶음은 내 것이었어. 적어도, 담배갑에 넣어놨던 우표 묶음 하나를 잃어버리긴 했으니, 그게 당신이 의자 밑에서 찾은그 물건일 거야. 고마워. 보랏빛과 황갈빛의 비탈을 보고 있겠지, 그리고 10월에 그리스에 갔던 나는 본 적 없는 온갖 야생화들도 당신이 얼마나 부러운지. 당신과 함께 있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부러운지. 사는 게 너무 복잡해. 때로는 어찌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어. - P472
방금 당신 편지를 받았고, 당신 편지를 받아서 아주 좋아. 하지만 당신이 알다시피 감정에 아주 민감한 나는 당신이 몹시 슬프고 뭔가 고민하거나 애쓰고 있다는 느낌이야. 왜 그래? 이 순간 삶이 왜 그렇게 복잡한데? 돈? 도티? 글쓰기 어찌 알겠어... 맞아, 내가 어디 있었는지, 혹은 그게 언제였는지도 거의 잘모르겠는, 여기 다시 돌아오니 정말 이상해. 아크로폴리스에서내려오는 스물셋 시절의 내 유령이 있더라. 그녀가 얼마나 가엾던지!… - P473
가장 소중한 사람, ... 내가 보고 싶은 사람이 딱 하나 있는데, 그녀는 장밋빛의붉은 탑과 홉 정원과 홉 말리는 숱이 있는 광경 말고는 아무것에도 열의가 없어. 그게 누구게? 시를 한 편 썼고, 어머니가 있고소한 마리와 해자도 갖고 있다더군. 글을 정말 못쓰겠어.. 너무 사람을 많이 만나 사는 게 너무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펜에는 머리카락이 끼었어. - P476
와, 이거 정말 신난다! IN SI당신이 돌아온다니.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내 돌고래가 다시생선 장수의 가게로 돌아왔어! 하지만 나는 언제 비타를 만날수 있지? 우리는 일요일 오후까지 여기(루이스 385)에 있을 거야. 그다음에는 열흘 동안 런던에 가. 그다음에는 이탈리아에 가고. 전화해줄 수 있어? 당신 목소리까지 바뀌었다고 말하진 마. 그리고 언제든 어떤 제안이든, 그게 사람을 죽이는 일이라도 승낙이야... 이제 당신은 당신의 세계를 돌봐야겠지. 아, 미국 전역을 보고분홍 탑으로 돌아오다니, 당신이 어찌나 부러운지. - P493
가장 소중한 당신, 편지를 전혀 쓰지 않다니, 나 정말 못됐다. 당신은 신경 쓰지않겠지만, 내가 신경 써야 할 방문객들이 빗발쳐서 도망칠 수가없었어. 다음 주는 가망이 없어. 하지만 23일 이후에는 내가아는 한 고맙게도 아무도 오지 않을 예정이야... 세상에, 당신은 정말 친절한 여자야! 당신이 레너드에게 쓴 편지를 읽으며 나는 딱 이렇게 말했어. 게다가 이 말이 내가 만든격언을 다시 확인해주지. 레너드는 아주 마음 졸이며 우리가 당신에게 명예, 진실성, 우정, 관대함 등을 강요한다고 생각하지나는 ‘아, 하지만 비타는 원래 그런 사람인걸‘이라고 말했어. 그후에 당신 편지가 와서 그걸 확인해줬지. 하지만 1천기니를 오리 연못에, 아니면 하수구에 팽개친 건 고귀한 행동이었어. 진실을 말하자면 나는 하트 데이비스"의 실물도, 케이프의 정신도좋아하지 않아. - P518
그 책이 왔어. 그리고 새로운 시를 한두 편 읽었어. 마음에 들어. 그래, 이니드 배그널드에 관해 쓴 시가 좋았어. 그리고 당신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할 수 있는지 알게 된 것 같아. 시인으로서 당신은 기이하게 뒤섞여 있어. 당신이 ‘구식‘인 점, 그러면서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점이 좋아. 그게 당신이 자유롭게 변신할 수 있는 이유지. 자유롭고 활기차고…아, 어쩌지, 이 시들의 너머를 읽을 수 있으면 좋겠어. - P530
3부 우정 1934-1941
두 사람의 연애는 끝났지만, 우정은 지속된다. 1939년 영국이제2차 세계대전에 휘말리면서 불안해진 비타는 버지니아와 더욱 자주 만나며 다시 가까워진다. 로드멜과 시싱허스트는 둘 다공습 지대에 위치해 그들 집 위에서 공중전이 벌어진다. 1941년2월 17일, 로드멜에서의 만남이 두 사람의 마지막이었다. - P531
당신도 알겠지만, 내가 성이라면 못 배기잖아. 아랫마을에 있는 작은 호텔에서 출발해 일몰에 분홍빛으로 변하는 이 성을 매일 저녁 보곤 했지. 그래서 조사를 좀 했어. 이성이 비었고, 세를 준다는 거야. 제노바에 있는 대리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5분만에 즉시 입주하기로 했지. 여기 올라오는 길이 하나뿐이어서, 이 지역에 사는 주민 절반이 등에 우리 짐을 지고 날라야만 했어. 우리는 문간에서 붓꽃과 수선화로 만든 커다란 다발을 들고선 정원사와 테레사와 안젤라라는 완벽한 이탈리아인 하인 두사람에게 환대를 받았지. 이들은 꽤 ‘인물‘인데, ‘인물‘들은 늘 그렇듯 쉽게 지루하게 만들어. 이런 삶이야말로 제대로 사는 방법이라는 데 의심할 여지가없어. - P534
...소중한 당신, 나는 모험을 갈망해. 하지만 적어도 8과 1/2분만이라도 당신과 단둘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넣고 싶어. 특별히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 단지 애정으로, 분홍빛유리 안 돌고래의 추억 말이야. 난 먼지와 쓰레기더미에 푹 파묻혀 있었어. 하지만 이제 봄이왔지・・・내 마음은 낭만적인 만남들의 꿈으로 가득해. 보랏빛 폭풍이칠 때 큐에 앉았던 일을 기억해?···그러니 내게 알려줘. 그리고 더, 더 나를 사랑해줘. 사다리에다른 가로대를 대서 내가 올라가게 해줘. 당신에게 내 새로운사랑 이야기를 했던가? - P540
세상에, 늙다리 에설 일은 정말 골칫거리겠다! 안타깝지만 그 문제라면 나 자신도 이해가 안 가니 전혀 설명해줄 수가 없어. ...확실하게 말하는데, 나는 어떤 이야기도 듣지 못했어. 그런소리가 내 귀에 들어오면 내가 에설에게 따질 거야. 아니면 내가에설에게 편지라도 보낼까? 부활절 지나야 만날 것 같거든. 하지만 공정하게 말하자면, 에설이 적이나 그저 알고 지내는 정도의 사람들에게 누구 욕을 하고 다니진 않아. 그런 말을 듣고 넘기리라고 믿을 만한 오랜 친구들에게나 그러지. 하지만 이런 일이 늘 걱정이 된단 건 나도 알아... - P544
텐트 문가에 앉아서 당신에게 편지를써 우리 주변은 온통모래 언덕이야. 하지만 어떤 감정을 당신에게 전해야 할까? 혹은 어떻게 그걸 당신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이건 다른 무엇과도 달라. 계곡, 야트막한 산맥, 산마루, 봉우리, 눈처럼 순수한비탈이 모두 황금빛 모래로 만들어진 낯선 지형뿐이야. 황금빛, 맞아, 태양 아래서는 그래. 하지만 그늘이 지면 분홍빛이나 보랏빛으로 변하고, 시시각각 모양과 색깔이 바뀌기도 하지. 우리는아랍인(유목민) 일곱 명, 낙타 두 마리, 노새 한 마리, 양 한 마리(먹으려고), 가젤을 사냥하는 데 필요한 슬루기 한 마리와 함께있어. 때때로 아랍인 중 하나가 플루트나 음울한 노래의 짧은소절을 부르곤 하지. - P545
왜 ‘한때‘ 버지니아야? 왜 당신 편지에 내가 답장을 안 해? 물론 내가 당장 앉아서 답장을 쓰게 만들려는 수작이겠지? 당신이 왜 쓰레기통이야? 그리고 우리가 왜 짧은 여행을 못 가? 왜, 왜, 왜? 왜냐하면 당신은 켄트의 진흙에 주저앉아 있기를, 나는 런던의 깃발들 위에 있기를 택했기 때문이지. 하지만 이게 사랑이 사그라들 이유는 아니잖아, 안 그래? 진주와 돌고래가 왜 사라져야 한다는 거야.…그러니 그만. 하지만 당신 팬이 다시 들썩이기 시작하면, 그러게 둬. 왜냐하면, 나의 소중한 비타, ‘한때의 버지니아‘라고 말하는 일이 내가 살아 있는 현시점에 무슨 효력이 있겠어? 덧붙이면 포토 또한 마찬가지지. - P561
그 책이 내일 나와 단조롭고 읽기 힘든 글이고, 당신이, 마땅히도, 안 좋아했던, 바로 그 진지한 산문 <세월>의 주제를 훨씬 더 진지하게 반복해서, 당신에게 보낼 생각을 못 했어. 하지만 감사의 뜻으로 보낼테니 읽을 필요도 없고 읽었다고 편지를쓰거나 말해줄 필요도 없어. 후련하게도, 그 책 두 권 모두 이제내 마음에서 떠났어. 그 책들을 왜 꼭 써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하늘만 아시겠지. - P571
내가 당신의 《3기니》에 감사편지를 아직 쓰지 않았다면, 그것은 다만 당신이 스카이 섬으로 떠났음을 알고 있기 때문일뿐, 내가 그 책을 음미하지 않아서가 아니야. 당신은밀고 당기기를 잘하는 작가야 한순간 당신의 사랑스러운 산문으로 사람을 매료시키다가도 다음 순간 사람을 현혹하는 주장으로 화를돋우니까. 있지. 이 책은 너무 도발적이어서 편지 한 장 따위로는 감사를 표할 수가 없어. 책만큼 긴 답장이 필요할 텐데, 그럼호가스 출판사가 출판할 거리가 생기겠지. 당신과 공식적으로싸울 생각은 없어 주먹다짐이라면 내가 당신을 때려눕힐 수도있겠지만, 펜싱이라면 늘 내가 점수를 잃을 테니까. 당신이 신사의 게임을, 신사의 기술로 하는 한 당신이 이기겠지. 나는 내 생각을 썩 잘 설명하지 못해. 실은 아주 요령 없고 혼란스럽게 설명하지. 그러니 우리가 만날 때까지 이 문제는 미뤄도 될까? 그전에, 내가 당신 책을 아주 즐겁게 읽었다는 건 말해둘게. 비록책 절반을 넘기며 "아, 버지니아, 그렇지만..." 하고 외치고 싶었어도 말이야. - P572
...당연히 당신이 《3기니》를 싫어할 줄 알았어. 그래서 당신이그 문제를 언급한 엽서를 보내기 전까지 당신에게 줄 생각을 못했던 거야. 그래도 역시 잘 이해가 안 돼. 당신은 그 책의 50퍼센트에 동의할 수 없다며. 그럼, 당연히 동의못하겠지. 하지만 당신이 나의 "현혹하는 주장에 화가 돋는다고 말하니 묻는 건데, 그게 무슨 뜻이야? 당신이 잔다르크의 성격을 이해하는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야 있지만, 내가 잔다르크에 관해당신의 주장이 "사람을 현혹한다"라고 하면, 어떤 효과를 위해서 진실하지 못한 것을 스스로도 아는 사실을 부정직하게 왜곡했다고 말하는 셈 아냐? 그게 당신이 말한 "현혹한다"의 의미라면 칼이 됐건 주먹다짐이 됐건 이 문제를 확실히 해결해야겠어. - P574
건초! 야단났네, 건초라고! 내가 건초를 구하러 켄트 지역의월드 전체를 구석구석 다니지 않았겠어? 건초가 없어. 우유도귀해. 그래서 당신에게 버터도 더 못 보냈어. 그리고 그런 까닭에 올해는 시싱허스트의 잔디도 전혀 베지 않고 자라게 뒀지. 건초! 아이고, 맙소사! 휘발유 쿠폰에 관해서는 레너드가 이번에 잘못 알았어. 나도레너드만큼이나 불법적인 일은 전혀 안 해. 하지만 버스로 오는걸 정말 견딜 수 있다면 호크허스트까진 쉽게 마중 나갈 수 있어. 오후에 당신을 엘런 테리에게 데려갔다가 호크허스트로 다시 태워줄게. 당신은 내게 알려주기만 하면 돼. 3월 19일과 20일만 빼면 아무 때나 괜찮아. 19일에는 위원회가 있고, 20일에는뭐가 있게? 지역 여성 학교가 있어. - P632
<뉴스테이츠먼>에서 온, ‘버지니아울프 양 앞으로 된 이 편지좀 봐. 정말 이상한 텔레파시지! 아니, 난 당신이 아냐. 작은 앵무새들은 키우지 않아. 루이는 살아남았어. 음식 부스러기를 먹으며 살고 있지. 하층계급의 소박한 새들인 것 같아. 우리가 가게 되면, 혹시 살아남으면 한 쌍 데리고 갈까? 전부 금방 죽으려나? 우리가 언제 가게 될까? 신은 아시겠지.… - P633
멍크스하우스에서 쓴 이 편지를 마지막으로 버지니아 울프는 1941년 3월28일 우즈 강에서 자살했다. 비타는 소식을 접한 뒤 3월 31일 남편 해럴드에게 편지를 썼다. "방금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 버지니아가 스스로 목숨을끊었다. 보도는 안 됐지만 레너드와 버네사가 편지를 보냈어. 레너드 말로는 버지니아가 최근 몇 주 동안 안 좋았고, 다시 미칠까봐 무서워했다.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어. 그렇게 사랑스러운 정신, 사랑스러운영혼을 지닌 사람이 더군다나 내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는 정말 잘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거든. (・・) 여전히, 나는 거기 가서 버지니아가 어떤 심리 상태인지 알았다면 그녀를 구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 P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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