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다행인 것은 그동안 제대로 등교하지 못하면서, 역설적으로 학교의 위상이 분명해졌다는 점이다. 부모들도 자녀가 종일 집에 머물면 본인이 힘든 것만이 아니라 아이의 성장이제대로 이뤄질 수 없음을 확인했다. 아이들도 오랫동안 외롭게지내다가, 학교가 다시 열리면서 예전보다 등교를 더욱 즐거워한다는 이야기를 교사들로부터 자주 듣게 된다. 학교교육에서수업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아이들 사이의 관계 맺기다. 코로나19의 후유증으로 당분간 소통의 어려움이 있겠지만, 아이들은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스스로 익히면서 ‘사회‘를 복원해갈 수있다. 어른들은 그 회복력을 믿고 지지하고 격려해주어야 한다. - P104
소통에서 양념 역할을 하며 지루한 분위기를 반전시켜주는 유머는 우스갯소리 자체보다 표정과 소리를 통해 드러나는사람들의 반응이 더 큰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줌에서는 웃는 얼굴은 보이지만 웃음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기에, 유머로 촉발되고 고양되는 집단 에너지를 느끼는 데 한계가 있다. 언젠가 카메라에 달려 있는 센서가 웃는 얼굴을 인식하여, 몇초동안 음소거 기능을 해제하고 자동으로 웃음소리를 전달해주는 시스템이 등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화상회의시스템을통해 우리는 소리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새삼 확인하게 된다. - P109
얼굴을 자주 보는 사람들끼리도 서먹해지는 경우가 있다. 특별히 껄끄러운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관계가 어색하다. 상대방의 얼굴을 바라보지만 시선이 자꾸만 흩어지고, 안부를 묻거나 축하해주는데 ‘영혼‘이 없는 말로 떠다닌다. 내 말에 귀를기울이는 듯해도 건성으로 흘려듣는 것만 같다. 앞서 인용한 시구처럼 찾아온 친구를 ‘마음도 없이‘ 맞아들이고, 애인과 길게 - P122
통화할 때도 마찬가지다. 몸은 여기 있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가 있다. 정보가 폭증하고 두뇌에 과부하가 걸리기 쉬운 미디어환경에서, 우리는 상대방을 온전하게 대면하기 어려운 정황을 자주 맞닥뜨린다. - P123
반면,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화상 시스템을 통해 서로를 오롯이 응시하며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면 충만한 대면이 경험된다. 대면이나 비대면이냐가 아니라,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가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대면의 반대말은 비대면이 아니라 ‘외면‘이다.
‘외면‘의 사전적 정의는 ‘상대한 사람과 마주 대하기를 꺼리어 얼굴을 다른 쪽으로 돌려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를, 어떤 이유로 외면하는가 싫어하는 사람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가 하면, 아무 생각 없이 상대에게 소홀해질 때도 있다. 왜 소홀해지는가. 상대방을 업신여기는 마음 때문일 수 있다. 또는 산 - P123
두려움이 외면을 낳기도 한다. 내 잘못이나 약점을 추궁하는 사람을 똑바로 바라보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불안에 휩싸이면 안으로 움츠러들면서 외부 세계를 차단하게 된다. 권력의격차가 큰 사람들 사이에는 편안한 시선이 오가기 어렵다. 힘의우열이 억압적으로 작용하는 관계에서 약자는 강자의 눈치를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실수나 허물이 드러날까 봐 두려운 마음에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마음의 문을열지 못하면 상대를 정면으로 응시하기가 어렵다. 두려움을 일으키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이나 감당하기 어려운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하는가. ‘애써‘ 외면할 때가 많다. 마주하는 것이 무서워서 자꾸회피하게 되는데, 그럴수록 문제가 더 꼬인다. 상황을 직면해야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면하려고만 든다. - P124
사람들은 저마다 가치관이나 취향을 갖고 살아간다. 그것이 비슷할수록 관계 맺기가 쉬워지고 집단의 결속력도 높아진다. 전통사회에서는 대체로 동질적인 문화를 공유했기에 그 내부 갈등이 비교적 첨예하지 않았다. 그에 비해 현대사회는 전혀다른 생각과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 뒤섞여 살아간다. 다양성은즐거움과 창의성의 원천이 되기도 하지만, 이질감을 자아내면서 마찰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 역학 관계에 따라 한쪽이 다른 쪽을 일방적으로 배척하는 상황으로 비화되기 쉽다. 장애인이나 성 소수자가 보기 싫다는 선언은 전형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다. - P132
왜 보고 싶지 않은가. 자기를 위협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인간은 대상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려는 욕망을 갖고 있다. 자신에게 체화된 삶의 문법에 상대방을 온전히 포섭하고 싶은 것이다. 근대적 주체는 그러한 자기 동일화의 경향을 강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어차피 사람은 제각각이기에 자기 질서로 환원되지않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을 수용하려면, 자기 아닌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서 이해해야 한다. 철학자 레비나스는 그것을 ‘타자성altérité‘이라고 불렀다." 결코 대상화하거나 환원할수 없는 절대적 타자성을 마주하게 될 때 우리는 불편함 또는불쾌함을 느끼게 된다.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다름을 제거해버리려는 충동이 폭력적으로 표출되기도 하고, 그 에너지가 집단화되어 전체주의로 나아가기도 한다. - P133
자기 안의 타자성을 대면하는 것은 두려운 일일 수 있다. 오랫동안 견지해온 세계관이 흔들리면서 존재가 위협받는다고느끼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단초를 제공한 타인을, 자아의 온전함을 훼손하는 이물질처럼 여긴다. 기생충 같은 벌레로 취급하면서 아예 시야에서 사라지게끔 박멸하려고 한다. 이러한 비인간화의 바탕에 깔려 있는 선입관과 편견은 동질적인(엄밀히말해 스스로 동질적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의 비좁은 응집 속에서 증폭되고, 이질적인 집단을 더욱 철저하게 배제하려는 움직임으로 나아간다. 모습이 드러나지 않도록 밀어낼뿐더러 목소리도 들리지 못하게 그들의 입을 막거나 자신의 귀를 닫는다. 2022년 장애인들이 이동권을 확보하고자 시민들에게 불편함을끼쳐가면서 지하철 시위에 나서게 된 것도, 정치인과 미디어 등사회의 주류 세력이 그들의 아우성을 묵음mute 처리해왔기 때문이다. - P135
다시 말해 혐오감은 싫음과 미움의 복합체로서, 거기에 적개심, 우월감, 두려움 등의 감정도 혼재되어 있을 수 있다. 특히공포감과 강한 친화력을 갖는다. 따라서 그 대상에 대한 태도도 여러 가지 모습으로 드러난다. 회피, 외면, 격리, 비아냥, 멸시, 조롱, 모욕, 악마화, 적대시, 비난, 공격, 정죄, 저주…… 이모든 것이 합성되면 이른바 ‘극혐‘이 될 것이다. 혐오의 수위가 점점 높아져서 극단에 이르게 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누군가가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극혐이야‘라고 서슴없이 내뱉는다. 과장법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언어와 마음은 상호 순환적이다. 극단적인 표현을 통해 감정은 증폭된다. 사회는 점점난폭해진다. - P136
사람다움은 타인(들)에 의해 끊임없이 확인되어야 한다. 우리가 만나고 헤어질 때 인사를 주고받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몸짓과 표정과 말로 이뤄지는 미시적인 의례를 통해 인격에 대한 기본적 경의를 나누면서 관계의 안전함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 상호작용의 문법과 질서를 위반하는 것은 타자의 존엄을 위협하는 공격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상대방의 악수를무시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저버리는 모욕이자, 일종의 도덕적 폭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 P140
몸짓과 표정, 말투 그리고 침묵에 배어 있는 감정을읽어내지 못해서 엉뚱하게 반응하고 만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문해력‘이 지성의 발달에서 필수적 능력으로 강조되는데, 말을이해하는 능력 (굳이 명명하자면 ‘언해력‘이 될 수 있겠다.)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것은 지적 능력의 문제인 동시에태도의 문제다. 상대방에게 마음을 온전히 기울이지 못하면 그의 말을 속 깊게 이해하지 못한다. 왜 마음을 다하지 못하는가. 빡빡한 업무나 생계에 쫓기고있거나, 갈등 상황이나 복잡한 생각과 씨름하고 있거나, 두려움이나 분노 등 부정적 감정에 시달리고 있거나, 아니면 심신이너무 지쳐서 그렇다. 거기에 덧붙여, 적정 용량을 초과하는 정보를 처리하느라 주의력이 분산되는 것도 중요한 원인이다. 어느 경우든,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을 소홀하게 여기는 태도로 나타난다. 몸으로는 함께 있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다. 귀가열려 있기는 해도 경청은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 P145
아이들의 발육과 성장에 필요한 것은 유기적인 경험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표정을 읽으면서 상호작용하는 것, 울퉁불퉁한 물건들을 만지작거리면서 그 질감을 느끼는 것, 알쏭달쏭한 공간을 탐색하면서 신체감각을 익히는 것, 아기자기한 풍광을 자유롭게 관찰하면서 상상의나래를 펴는것…… 이 모든 것이 이른바 인성교육의 필수아미노산이고 창의성의 바탕이다. - P154
부모가 스마트폰을 과용하는 또 하나의 유형이 있다. 아이를 너무 많이 촬영하는 것이다. 모처럼 공원에 아이를 데리고나온 부모가 아장아장 돌아다니는 모습을 영상에 담느라 여념이 없는 장면을 종종 접한다. 잠깐이 아니라, 영화를 찍듯이 아주 오랫동안 전화기를 붙들고 있다 보니 함께 놀아주지 못한다. 스마트폰에 빠져 아이를 방치하는 것보다 나을지 모르지만, 촬영할 때 아이는 단지 피사체로 격리되어 있을 뿐 부모와의 상호작용이나 교감은 없다. 부모는 영상 기록을 위해 머리를 쓰느라가슴으로 ‘지금 여기를 누리지 못한다. 그 시선은 불과 20, 30센티미터 앞에 있는 화면에 갇혀 있다. 아이도 부모 대신 카메라만 쳐다보아야 한다. - P159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공부가 직업인 나도 주의력의 지속 시간이 점점 짧아지는 것을 느낀다. 지금도 원고를 쓰면서 조금만 막히면 메시지를 확인하거나 뉴스를 검색하고 싶어지는데, 그 습관적 욕망을 애써 억눌러야 한다. 정보 미디어가 발달할수록 생각의 근육이 퇴화하기 쉽다. 사물의 여러 모를 찬찬히 짚어보면서 깊이헤아리는 일에 점점 서툴러지는 한편, 단편적인 지식이나 뉴스에 현혹되어 엉뚱한 믿음에 사로잡힌다. 정작 관심을 가져야 할일들은 외면하면서, 정치적인 선동에 휩쓸리고 적대와 혐오에감정 에너지를 낭비하기 일쑤다. 그렇게 해서 증폭되는 반지성주의는 개인과 사회의 안녕을 위협한다. - P169
고요함은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고, 우리 머릿속에 끊임없이 떠오르는 ‘정신적인 찌꺼기‘의 흐름을 관찰하게 한다. 고요함은 마음을 열고 여유와 인내심을 키우는 데 필요하다. 아무 도움도 안 되면서 시간을 빼앗고 고요함을 방해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잡지 기사는 피하자. 그런 눈요기는 우리를수동적인 상태로 빠뜨려 어리석게 만들 뿐이다. 고요함은 그빈 공간 안에서 우리가 성장하도록 도와준다. 고요함은 열린공간이다. 그 고요함이 우리를 이끌게 하자. -도미니크 로로, 『심플하게 산다』에서 - P170
불필요한 것에 대한 관심을 줄이면, 주의력을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는 역량이 늘어난다. 그리고 삶이 풍요로워진다. 주어진 환경에 일방적으로 예속되지 않고, 다각적으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내공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서도 상대방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진다. 대화를 나누면서 말로 표현된 것이면에 깔려 있는 마음의 움직임을 섬세하게 살필 수 있다. - P172
정보의 폭주 속에서 만성적인 주의력 결핍에 시달리는 우리 자신을 살펴보자. 행여 가족이나 가까운 동료들에게 정성이 소홀하여 섭섭하게 대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자. 주의력이 자라나려면, 마음이 고요하고 담백해야 한다. 그를 위해 과잉 섭취되는 정보를 의식적으로 줄여가야 한다. 주의력 다이어트attention diet 또는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하다. 그러 - P172
려면, 심심함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금단증세처럼 힘들겠지만, 곧 익숙해지면서 오히려 일상이 윤택해진다. 무료함속에서 마음의 부피가 자라나고 문화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안에서 솟아오르는 힘으로 인간은 자신만의 탄탄한 삶을 창조해갈 수 있다. 자아 형성의 공간을 다양하게 열어놓을 때, 우리는자기를 정당하게 사랑하며 타인을 존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무의식과 즐거운 소통을 할 수 있도록, 세계와 자유롭게 교섭할 수 있도록 자신에게 여백을 허락하자.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며, 주변의 사물들에 물음표를 달면서 다가갈 일이다. - P173
정확한 발음을 가르치기 위해서라면, 구연동화 전문가들이읽어주는 목소리를 녹음이나 유튜브로 듣는 것이 더 효율적일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누군가와 몸으로 함께 있으면서, 어떤 대상에 오롯이 마음을 모으는 경험이다. 존재의 온전한 연결을 통해 살아가는 힘을 키워가는 만남이다. 아이들은 책을 읽으면서 부모와 눈을 포개어 또 다른 세계를 두드릴 수 있다. 그러한 탐험의 원체험은 성장하는 동안 부모 이외의 타인들과 함께, 책 이외의 다른 대상을 매개로 다양하게 변주되고 확장될 수 있다. - P178
지성은 여러 가지 지적 역량으로 구성된다. 기억력, 이해력, 분석력, 추리력, 표현력, 판단력, 문제 해결력, 인내력, 자제력, 결단력, 추진력, 실행력, 회복력, 공감력, 상상력…… 이른바 ‘사고력‘이라는 것은 이렇듯 여러 범주로 세분화할 수 있으며, 타고난 유전자와 후천적 학습 및 경험에 의해 다르게 배합된다. 어떤 상황에서 특별히 더 요구되는 것이 있고, 생애의 단계에따라 강조되는 것이 달라질 뿐이다. 그런데 어느 역량이든 ‘주의력‘의 토대 위에서 작동한다. 주의를 집중하고 목표하는 대상에 정확하게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아무리 지능이 뛰어나도 소용이 없다. 주의력을 훈련함으로써 수학 성적을 향상시킨 사례가 그것을 반증한다. - P190
이러한 훈련을 통해 주의력이 신장되면 인지능력의 향상에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예술적 감수성 또한 고양된다. ‘아름답다‘는 말의 어원이 ‘알음+답다‘라는 견해가 있다. 무엇을 제대로알고 나면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아는 만큼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라는 말과도 상통한다. 심미적 감각은 섬세한 관찰력을 요구한다. 눈으로 빤히 보면서도 놓치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제대로 보아야 한다. 깊이 들여다보면 새로운 것이 드러나면서 발상과 혁신의 실마리가 된다. 인공지능으로 대신할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안목‘이다. 주의 깊은 관찰은 창의성의 토대를 이루고, 행복한 삶의 원천이 된다. - P191
관찰의 즐거움을 전해주는 작가로, 프랑스의 미셸 투르니에를 빼놓을 수 없다. 전통적인 이야기 형식과 신화적 상상력으로 현대사회를 조명한 그는 소설 이외에도 많은 산문을 남겼다. 그 가운데 하나가 『외면일기』로, 여행을 하면서 또는 한적한마을에 혼자 살면서 겪은 일들을 틈틈이 메모해두었다가 묶어낸 책이다. 짤막한 글들이지만 평범한 일상사에서 비범한 무언가를 발견하는 눈썰미가 탁월하다. 형형색색으로 변모하는 자연에 대한 예찬, 인생의 흐름에 대한 단상, 프랑스어의 몇몇 관용구에 대한 새로운 해석, 동네 사람들과의 익살스러운 대화 둥다채로운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책을 왜 썼는지에 대해 작가는이렇게 말한다. - P193
‘외면 일기‘는 사물의 겉모습이라는, 잊혀가던 외면의 고전적인 뜻을 새삼 환기시켜주었다. 겉모습은 겉치레나 꾸미기 등을 연상시키면서 부정적인 뉘앙스를 띨 때가 많다. 그러나 미셸 투르니에처럼 겉모습을 바라보면서도 표면에 머물지 않고심층의 실재를 들여다볼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은 무엇일까. 외면으로 드러나는 것을 관찰하기. 그 이면에 숨어 있는 것을 통찰하기. 그 지성과 감성으로 내면을 성찰하기………외면과 내면은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바깥을 자세히 응시하면 안쪽이 보인다. 안으로 시선을 뻗어가다 보면 겉모습이 다시보인다. - P195
보이는 것이 많아질수록 보는 것은 오히려 줄어든다. 시각정보의 범람 속에서 시선의 주체가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찬찬히 살펴보고 요모조모 따져볼 때, 정보를 조합하고 지식을 창조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인간관계에도 정성을 기울인다. 섣불리단정하지 않고 애매한 것을 견디며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을 겸허하게 기다릴 줄 아는 경청의 공간이 열리는 것이다. 나는 어느 야간 대학원에서 강의할 때, 매시간 수업이 끝날무렵 불을 끄고 다 함께 음악을 듣는다. 어둠을 꽉 채우는 선율은 각별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밝음 속에서 보이지 않던 삶의무늬가 드러나는 듯하다. 그리고 배움을 함께하는 동료들이 새삼스럽게 의식된다. 눈을 감을 때 비로소 열리는 차원이 있다. 일상의 이면을 더듬으면서,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생각의 씨앗을돌보게 된다. 더 나아가 미망과 맹목의 굴레를 자각하기도 한다. 이따금 조명을 끄고, 자신의 무명을 응시해보자. "인생에서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우리에게 들리는 것도 읽히는 것도 보이는 것도 아닌, 우리에 의해 살아지는 것이다." 키르케고르의 말이다. - P200
어느 노인복지센터의 센터장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매일방문하는 한 할아버지가 민원을 남발해 직원들을 힘들게 했다. 저녁에 귀가하고 나면 센터에 전화해서 시설의 운영 방식이나직원들의 서비스에 대해 시시콜콜 트집을 잡고 불만을 늘어놓는 것이 일과일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것만으로 기분이풀리지 않았는지, 센터에 다시 찾아와서 고성을 지르며 소란을피웠다. 게다가 분을 못 이기고 112에 전화를 걸어 신고까지 했다. 경찰이 출동하여 상황을 파악했고 아무 일도 아님을 확인했다. 경찰은 노인의 마음을 달래준 다음, 차에 태워 귀가시키기로 했다. 그 모습을 보던 센터장이 안타까운 마음에 물었다. "할아버지, 왜 그러셨어요?"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외로워서 그랬어" - P203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비전체주의 세계의 사람들이 전체주의 지배를 맞이할 자세를 갖게 된 것은, 한때 노년처럼 사회적으로 주변부적 조건에서 겪는 한계 경험이었던 외로움이 이제 우리 세기의 점점 더많은 대중이 매일 겪는 일상 경험이 되었기 때문이다. 전체주의는 대중을 무자비한 과정 속으로 내몰고 그들을 조직하는데, 이 과정은 현실로부터의 자멸적인 도피 행각처럼 보인다. 〔……) 단 한 사람의 전제적·자의적인 의지에 의해 지배당하는 모든 사람의 비조직적인 무기력보다 조직적인 외로움이 훨씬 더 위험하다. - P206
각자도생의 시대로 치달아온 세상, 코로나19로 더욱 고립되고 분절된 마음을 추스르고 ‘사회‘를 복원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어디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다행히 우리 안에는 타인과 공명하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유전자가 살아있다. 에고의비좁은 울타리를 넘어,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고 느끼는 체험을 통해 마음은 고양된다. 사회적 감각은 인간이라는 종을 하나로 묶으면서 서로의 존엄을 일깨워준다. 그러한 자각 속에서 파편화된 ‘점‘들이 ‘선‘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다시 ‘면‘으로확장될 수 있다. - P216
고립과 외로움을 극복하려면 사람들 사이의 연결이 중요하ㅣ만, 관계 맺기에는 적절한 경계 또한 지켜져야 한다. ‘좋은 담함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다. 일정한 경계와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면 관계에 탈이 나기 쉽다. 지나친 친밀감이집착으로 변질되어 과도한 요구를 하게 되고, 그것이 충족되지않을 때 섭섭함과 원망을 품게 된다. 자기와 다른 상대방의 고유한 영역(생각, 취향, 감정, 욕구 등)과 자율성을 간과하면서, 일방적인 지배 또는 과도한 의존으로 흐를 수도 있다. 저마다의내밀한 세계를 침해하지 않는 정도의 선線을 지킬 때, 무리하지않으면서 서로 의지하고 신세도 질 수 있다. - P227
경계는 각자 온전히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울타리다. 나를보호하면서 너를 지켜주는 방어막이다. 자기다움을 잃지 않을수 있는 한계가 명료하게 의식되고 존중되어야, 대등한 교류가가능하고 건강한 정체성과 자존감이 유지된다. 그러려면 자아의 밀실에 갇히지 않고 주책없이 상대방에게 휘둘리지 않도록균형 감각과 유연성을 갖춰야 한다. 공감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면서 이뤄지는 정서적 지지다. 감정이입도 마찬가지다. 심리학자 하이코 에른스트는 이렇게 말한다. - P228
참된 감정이입은 모든 것을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일정한거리두기를 요한다. (・・・・・…) 공감이란 단순히 ‘함께 느꼈기 때문에 분노하거나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배울 점을 찾고 배운 것을 적용해서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잘 공감하는 것이 끝이 아니라는 얘기다. 공감을 통해 우리는 지식의 레퍼토리와 행동의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으며, 세계와 사람에대한 이해도 깊어진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문제를 풀고 위기를 극복하며 더 깊은 원인을 포착하는 것이 모두 쉬워진다. 그래서 감정이입은 ‘사회적인 좋은 삶‘을 여는 가장 큰 열쇠다. - P228
타인의 곁에 있으면서도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최악은, 곁에 있지 않으면서 아무 때나 내키는 대로 선을 넘어 훅 들어오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애정도 없으면서 함부로 조언하고, 쓸데없는 질문으로 기분을 상하게 하며, 제멋대로 평가하는 행태다. 인간에 대한 예의는 신중함에서 비롯된다. 서로에게 손을내밀되 일정한 간격을 유지해야 관계가 지속 가능하다. ‘사이좋게 지내려면, ‘사이‘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적절한 넓이의 사이가 확보되면, 상대방을 통해 자기의 마음을 더욱 명료하게 비추어볼 수 있다. 마치 어떤 사람이 들고 있는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려면, 약간의 거리를 두고 서 있어야 하는 것과 같은원리다. 서로를 아끼면서도 각자의 개별성과 고유한 영역에 유념해야 한다. 그렇게 형성되는 안전한 경청의 공간에서 우리는저마다의 이야기를 내놓을 수 있다. - P229
타인을 충분히 배려하되, 나에게 불편한 감정을 일으키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적절한 거리를 두거나관계를 정리해야 한다. 상대방의 속 깊은 이야기나 나를 위한진심 어린 조언에는 귀를 쫑긋 세워야 하지만, 별생각 없이 툭툭 던지는 말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야 한다. "지혜란 무엇을 간과해야 하는지를 아는 기술이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말이다. 『둔감력 수업이라는 책의 제목처럼, 둔감해지는 것도 능력이 될 때가 있다. 핵심은 분별력이다. 지나쳐버려야 할 것들을 붙잡고 있지 않은가. 멈춰서 짚어보아야 할 일들을 놓치고 있지 않은가. 무시해도 되는 사람의얼굴을 계속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마음을 써야 할 사람에게무심하지 않은가. 피상적 판단을 거두어내자. 상투적 감정을 내려놓자. 속물적 통념에 삐딱선을 그으면서 틈새를 만들어보자. 그 자유로운 공간에서 너와 나의 진면목을 대면할 수 있을 것이다. - P230
이런 생물학적 역설은 사회적으로도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나‘(또는 우리)는 ‘나 아닌 것‘(또는 우리가 아닌 것)과 구별되는 정체성을 추구하지만, 이질성을 배제하면서 동질성만을추구하면 위험한 상황이 초래된다. ‘나 아닌 것‘을 받아들여야온전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 ‘나‘는 ‘나 아닌 것‘에 의해서 성립되는 것이다. 자기 안의 타자성을 수용할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서 드러나는 여러 모순을 편안하게 긍정하게 된다. 그리고 자기와 다르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너그러워질 수 있다. 그 결과 사회적으로 다양성이 증진되면서, 개인적으로도 인생이 풍요로워진다. - P232
도저히 상종할 수 없다고 여기던 사람들인데, 막상 얼굴을맞대고 대화하면 이해의 틈새가 열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대면상황에서는 글이 아닌 말로 생각을 나누기에 표정이나 몸짓 등의 신호를 감지하면서 섬세하게 소통할 수 있다. 그리고 서로를몸으로 만나게 되면 그 ‘존재‘의 엄연함을 마주하게 되고, 상대방을 어떤 틀이나 범주로 섣불리 재단하기 어려워진다. 각자의생각에 갇히는 대신, 감정을 나누고 인격을 체감하면서 공유의지점을 탐색해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 결과,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다른 감정과 상태로 헤어질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애매함을 견디는 마음이다. 우리 두뇌는무엇이든 확실하게 규정하고 싶어 하지만, 인식의 대상은 늘 분명하지 않다. 사람이든 현실이든 언제나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를 품고 있기 마련이다. - P243
확신을 내려놓고, 명료함을 구해야 한다. 자기를 겸허하게 비우고 경청하기. 정직하고 열린 질문으로 다가가기. 모름을 투명하게 받아들이고 순수한 삶을 향하여 함께나아가는 마음에서 우리는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 그여백에서 상호 이해의 길이 열린다.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 문제에 대한 진단과 해법도 더욱 유연하고 우아해질 수 있다. 그런의미에서 겸허한 질문과 경청은 창의성의 원동력이 된다. - P247
시선이 머무는 곳이 곧 삶이 깃드는 장소다. 깊이 응시하다보면, 보이지 않던 것이 눈에 들어온다. 탁 트인 벌판(野)에 설때, 시야視野가 펼쳐지면서 가슴이 열린다. 거기서 만나는 공동의 세계에 접속하면서, 우리는 타인과 세계에 충만하게 연결될수 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산등성이를 따라가고 숲의 언저리를 찾아가고 들판도 걸어보자. 야외로 나가면 자연스럽게 시선이 멀리 닿고, 아득한 풍경에 눈길이 머문다. 시인의 말대로, 이런 습관은 눈 건강에 도움이 되고 마음의 부피도 키워준다. 그대면에서 우리는 근시안을 벗고 세상과 인생을 드넓게 조망할수 있다. 맑고 밝은 호연지기 일상을 충전할 수 있다. - P263
보이는 것이 많아지면, 보는 것이 줄어든다. 윤해서 작가의말대로 "보이는 것들이 보는 것을 가로막는다. 보여지는 것들이 보아야 하는 것들을 뒤덮는다." 그 결과,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 방치되고 마는 사각지대가 곳곳에 생겨난다. 보아야 할 사람을 놓친다. 아예 보이지 않아서 못 보기도 하고, 보긴 보았지만 무심결에 지나쳐버리기도 한다. 코로나19 속에서 시선은 더욱 가로막혔다. 거리두기와 격리 기간이 길어지며 왕래가 두절되었는데, 그동안 번거로운 만남과 접촉에 시달리다가 홀가분해진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고립과 단절 속에서 생계와 일상이빈곤해진 경우도 많다. 우울증의 증가가 한 가지 지표다. 마음이 연결되는 사회적 공간을 어떻게 회복할까. - P266
3년에 걸친 비상사태는 일상의 속살을 예리하게 드러냈다. 기존의 상식들을 낯설게 바라보게 해주었다. 거기에서 존재에대한 자각이 일어났다. 삶은 거대한 그물망으로 존립한다는 것. 생명은 무한한 사슬로 얽혀 있다는 것. 우리는 서로의 일부라는것….… 길게 지나온 재난의 터널을 돌아보면서 그 여정에서 일어난 배움을 되새겨보자. 퇴계 선생은 말씀하신다. "마음을 두 갈래 세 갈래로 흩트리지 말고, 한 가지로 올곧게 모아 만 가지 변화를 주시하라." 시선의 속도를 늦추면 마음이 보인다. 눈에 보이는 것의 안과밖을 넘나드는 직관이 자라난다. 로그인과 로그아웃이 유연하게 교차하고, 대면과 비대면은 순환해야 한다. 그 속에서 우리는 관심의 주권을 회복할 수 있다. 마스크 너머로 주고받던 따스한 눈빛으로 악수를 나누면서, 경청과 환대의 공간을 빚어낼수 있다. 팬데믹 시대를 건너가는 사회적 면역력은 거기에서 배양된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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