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때문에 이게 뭐야!" 그는 부러진 채찍을 집어들며 화를 냈다. 총나는 가늘게 훌쩍이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내 소년 시절을 통틀어 매질을 당해 눈물까지 흘리고 만 건 그때뿐이었던 것 같은데, 이상하지만 그때도 나는 아파서 운 게 아니었다. 두 번째 매질 역시 별로 아프지 않았던 것이다. 공포감과 수치심이 마취 효과를 낸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운 건 그게 상대가 기대하는 바라는 느낌이 들어서이기도 했고 정말뉘우치는 마음이 있어서이기도 했는데, 그게 다는 아니었다. 어린 시절에만 느끼는 것이라 전달하기 쉽지 않은, 보다 깊은 슬픔이 있었던 것이다. 그건 적대적인 세상에 갇혀버렸다는, 지배가 너무 완강해서 나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선악의 세상에 감금돼버렸다는 처량한 고독감과 무력감이었다. - P378

대개 어느 시기에 대한 사람의 기억은 당시로부터 멀어질수록 약해지기 마련이다. 사람은 끊임없이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기에 지난 일들새로운 사실에 자리를 내주기 위해 잊혀져야만 한다. 스무 살 때였더라면 지금으로선 가히 불가능하리만큼 정확하게 내 학창 시절의 역사를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기억이 더 날카로워지는 경우도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과거를 새로운 눈으로 볼수 있으며, 전에는 다른 것들과 무차별적으로 뒤섞여 있던 것을 따로 떼어놓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경우엔 내가 한편으로 기억하고는 있었지만 최근까지 별로 이상하거나 흥미롭게 느끼지는 않았던 점이두 가지 있다. 하나는 두 번째 매질을 내가 정당하고 합리적인 처벌인듯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한 번 매질을 당한 것, 그리고 어리석게도 그게 안 아팠다고 자랑을 하다 그보다 훨씬 심하게 또 매질을 당한 것ㅡ모두 내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 P379

세인트 시프리언스는 학비가 비싸고 속물근성이 넘쳐나는 학교였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알기론) 더 그런 곳이 되어가고 있었다. 특별히 연고가 있는 사립학교는 해로우 Harrow 였지만, 내가 다니던 동안에는 이름으로 진학하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 대부분은 부모가 부자였다. 단, 그 부모들은 대체로 귀족 혈통은 아닌 부자로, 본머스나 리치몬트에 있는 숲이 우거진 대저택에서 자동차도리고 집사도 두고 살지만 시골에 부동산은 없는 유의 사람들이었다.
학생들 중에는 얼마 안 되긴 해도 외국에서 온 아이들도 있었다. 남미에서 온 아이들도 있고, 아르헨티나 부호의 아들들도 있고, 러시아 아이도 한둘 있고, 삶(태국) 왕자도 있고, 다른 어디 왕자라고 하는 아이도있었던 것이다. - P380

세인트 시프리언스의 경우에는 솔직히 모든 게 일종의 신용사기를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우리의 임무는 실제로 아는 것보다 더많이 안다는 인상을 심사위원에게 심어줄 것들만 배우고, 뇌에 부담이되는 것들은 가능한 한 피하는 것이었다. 시험을 잘 안 보는 지리학 같은 과목은 거의 무시됐고, ‘문과classical‘ 인 경우에는 수학도 무시됐다.
과학은 어떤 식으로도 가르치지 않았고(자연사에 조금만 관심을 보여도 머쓱해질 만큼 멸시하는 분위기였다) 여가 시간에 읽으라는 책들도 ‘국어 시험‘에 나올 만한 것들뿐이었다. 라틴어와 그리스어는 장학생 선발의 주요 과목이어서 중요한데도 의도적으로 겉만 번지르르하고 부실하게 가르쳤다. 이를테면 우리는 그리스어나 라틴어 저자의 책은 단 한권도 통독을 해본 적이 없었다. 번역 문제로 나올 만해서 골라놓은 짧은 구절들만을 읽을 뿐이었던 것이다. 장학생 선발 시험을 보기 전 1년 남짓 동안,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기출문제를 달달 외는 데 바쳤다.  - P384

이 가난한 것들은 사격이나 목공 같은 ‘특활‘은 단념해야했고, 옷이나 소지품 때문에 수치를 맛보아야 했다. 이를테면 나는 나만의 크리켓 배트를 결국 마련하지 못하고 말았는데, "네 부모는 그럴 형편이 못 될걸"이란 말 때문이었다. 이 말은 학창 시절 내내 날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우리는 집에서 가져온 돈을 학교에서 사적으로 보관할 수가 없었다. 대신에 매 학기 첫날 돈을 내놔야 했고, 지도를 받아가며이따금 쓰는 것만 허용되었다. 나를 비롯해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은 맡겨둔 돈이 충분한데도 모형 비행기 같은 비싼 장난감을 사려고 하면 언제나 제지당하고 말았다. 특히 플립은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 보잘것없는 처지를 각인시켜주려고 작정을 한 듯했다. "그게 너 같은 애가 사도되는 물건이라고 생각하니?" 그녀가 어떤 애한테, 그것도 모두가 보는앞에서 이런 말을 했던 것도 기억난다.  - P388

나는 사립학교 장학금을 타지 못하는 한 그럴싸한 앞날을 누릴 가망이 없다는 인상을 아주 일찌감치 받았다. 장학금을 타거나, 아니면 열네살에 학교를 졸업한 뒤 삼보가 즐겨 하던 말대로 "연봉 40파운드인 사무실 사환 아이"가 되거나 둘 중 하나였다. 내 여건에서는 그런 말을 믿는게 당연했다. 세인트 시프리언스에서는 누구나 ‘좋은‘ 사립학교(거기에 해당하는 학교는 15개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에 진학하지 못하면 인생을망치는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모든 걸 결정해버리는 끔찍한 전투 같은시험이 다가옴에 따라(열한 살, 열두 살 열세 살 그리고 마침내 운명의 나이!)아이가 느끼는 중압감과 불안감은 어른에게 전달하기는 쉽지 않다. 약2년이라는 기간 동안, ‘시험‘ 이란 것은 깨어있는 동안의 내 의식을 단하루도 떠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시험은 가장 중요한 기도거리였다. - P389

나는 삼보와 플립을 증오했다. 어느 정도 부끄러움과 양심의 가책을느끼면서도 그랬다. 하지만 그들의 판단을 의심하는 법은 없었다. 그들이 내게 사립학교 장학금을 타든지 아니면 열네 살에 사환이 되든지 둘중 하나라는 말을 했을 때, 나는 그것들이 내 앞에 놓인 피할 수 없는 두갈래 갈림길인줄로만 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삼보와 플립이 자 - P393

신들은 내 은인이라고 한 말을 믿었다. 물론 지금은 삼보 입장에서 볼때 내가 좋은 투기감이었다는 사실을 안다. 그는 나한테 묻어둔 돈이 있었고, 그걸 명성의 형태로 되찾고자 했던 것이다. 만일 내가 장래성 있던 아이들이 이따금 그랬듯 "맛이 가버렸다"면, 그는 나를 지체 없이 내쳤을 것이다. 결국 나는 때가 되어 장학금 두 개를 따냈으니, 그는 학교안내서에 나를 충분히 활용했을 게 뻔하다. 하지만 학교란 게 우선적으로 장사라는 걸 어린아이가 깨닫기는 어렵다. 아이는 학교라는 게 교육을 위해 존재하며, 교장이 훈육을 하는 것은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면남 괴롭히는 걸 좋아해서라고 생각한다. 플립과 삼보는 내 친구가 되어주기로 했고, 그들의 우정은 매질과 나무람과 창피주기를 아우르는 것이었으며, 그 덕분에 나는 사부터 시작하는 사무실 붙박이 인생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게 그들의 설명이었고,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따라서 나는 그들에게 엄청난 신세를 진 것이었다.  - P394

누구든 자신의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서 그 시절이 불행하기만 했다고 진심으로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 경우에도 세인트 시프리언스에서의 수많은 나쁜 기억들 사이사이좋은 추억이 있다. 여름날 오후면 가끔 다운스Downs라는 낮은 산맥을넘어 벌링갭Birling Gap이나 비취헤드 Beachy Head 같은 마을로 소풍을가는 신나는 때도 있었다. 우리는 석회암투성이인 그곳 바닷가에서 험하게 물놀이를 하고서 몸 여기저기 생채기가 난 채로 돌아오곤 했다. 그보다 더 신났던 건 한여름 밤에 평소처럼 잠자리로 몰아넣지 않고, 긴황혼 녘 동안 운동장에서 마음대로 노닐다가 마무리로 9시쯤 수영장에뛰어들게 해주는 특별한 경우였다. 여름날 아침엔 일찍 일어나, 모두가잠든 햇빛 쏟아지는 기숙사 방에서 1시간 동안 아무 방해 없이 책을 읽는 즐거움도 있었다. - P395

자기 어린 시절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과장과 자기연민을 경계해야 한다. 나는 내가 순교자였거나 세인트 시프리언스가‘두더보이즈 홀‘같은 곳이었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당시의 기억이 대체로 혐오스러운 것이었다고 적지 않는다면, 내 기억을 조작하는 일일 것이다. 바글바글한 곳에서 충분히 못 먹고 잘 씻지 못했던우리의 생활은, 내가 기억하는 한 ‘분명‘ 혐오스러운 것이었다. 눈을 감고 "학교"라고 말할 때 나에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물론 물리적 환경이다. 크리켓 경기장이 있는 납작한 운동장과 소총 사격장 옆에 있는작은 헛간, 외풍이 심한 기숙사, 먼지투성이에 꺼끌꺼끌한 복도, 체육관 - P400

앞의 아스팔트 광장, 뒤뜰에 있는 멋없는 목조 예배당. 그리고 이것들대부분의 경우 불결한 무언가가 동시에 떠오른다. 일례로 우리에게 죽을 담아주던 백랍 그릇 가장자리에는 돌출된 부분이 있었는데, 그 밑부분에는 상한 죽이 켜켜이 쌓여 있었고, 긁어내면 기다란 띠처럼 벗겨질정도였다. 죽 자체에도 누가 일부러 넣지 않은 이상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많은 덩어리와 머리카락, 그리고 정체불명의 거무튀튀한 것들이 섞여 있었다. 그러니 먼저 검사를 해보지 않고 죽을 먹는다는 건 결코 안전하지 못한 일이었다. 목욕탕 물은 끈적끈적했고(탕은 길이가 12피트 혹은 15피트 정도였는데 아침마다 온 학생들이 다 들어가게 되어 있었지만 물을 자주 갈기는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언제나 축축한 타월에서는 치즈 냄새가났다. 겨울이면 가끔 가던 근처 수영장은 더러운 바닷물을 바로 끌어왔는데, 한번은 사람 똥이 떠다니는 것을 보기도 했다. 땀 냄새 진동하는탈의실의 세면대는 언제나 기름기투성이였고, 바로 옆에 줄지어 있는불결하고 낡은 변소는 문에 잠금장치 같은 게 아예 없어 변기에 앉아 있을 때마다 누가 불쑥 밀고 들어오곤 했다.  - P401

아이 입장에서 진정으로 독자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게 얼마나 어려웠는지는 플립에 대한 우리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학생들 모두가 그녀를 미워하면서 두려워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 더없이 비굴하게 그녀에게 아양을 떨었고, 그런감정의 표층을 형성한 건 죄책감에 사로잡힌 충성심 같은 것이었다. 플립은 삼보보다 학교의 규율을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이 컸음에도 엄한 법으로 다스리는 척을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녀는 노골적으로 변덕을부렸다. 어떤 날엔 매 맞을 만한 일을 다음날엔 소년다운 장난으로 웃어넘기고, 심지어 "배짱이 있다"며 칭찬해주기도 했다. 그녀가 움푹한 눈으로 추궁하듯 바라보면 모두가 몸을 움츠리는 날이 있는가 하면, 그녀가 연인 같은 신하들에게 둘러싸여 웃고 농담하고, 아낌없이 돈을 뿌리거나 그럴 것을 약속하며 추파를 던지는 여왕처럼 행세하는 날이 있었다("너 이번에 해로우 역사상을 타면 내가 카메라 케이스를 사주지!").  - P404

나는 사람이 자기 의지와 어긋나게 잘못을 저지를 수 있음을 일찌감치 알게 되었으며, 머지않아 사람이 자기가 무엇을 했는지도 그게 왜 잘못됐는지도 모르면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너무미묘해서 설명할 수 없는 죄란 게 있었으며, 너무 끔찍해서 딱히 뭐라할 수 없는 죄도 있었다. 이를테면 언제나 표층 바로 밑에 억눌려 있다가 내 나이 열두 살 무렵 느닷없이 폭발해버려 엄청난 소란을 불러일으킨 성性이란게 있었다.
동성애 문제가 없는 예비학교도 있겠지만, 내 생각에 세인트 시리언스가 ‘악평‘을 얻게 된 건 대개 영국 소년들보다 한두 해 더 빨리 성숙해지는 남미 소년들 덕분이었다. 당시 나는 관심도 없었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딱히 알지도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집단 자위행위였다. - P406

나는 육신과 영혼을 망쳐버린 혼이 행복하고건강해 보인다는 사실에서 다른 추론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여전히 삼보와 플립이 가르쳐준성에 관한 신화를 믿고 있었던 것이다. 신비롭고 끔찍한 위험은 여전히 도사리고 있었다. 아침에 눈언저리가 까만 날이면자기 역시 구제 불능의 영혼임을 알 수 있었던 까닭이다. 더 이상 그게큰 문제가 아닌 듯 여겨진다는 것만 다를 뿐이었다. 아이의 마음속에 그런 모순이 쉽게 공존할 수 있는 건, 그만큼 아이에게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어른이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받아들이되 안 그럴 방법이 있는가?) 아이의 생기 있는 신체와 물질세계의 달콤함은 아이에게다른 얘기를 해준다. 지옥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열네 살 무렵까지 공식적으로는 지옥을 믿었다. 지옥은 거의 확실히 존재하는 것이었으며, 생생한 설교에 몸이 떨릴 정도로 공포스러울 때도 있었다.  - P412

세인트 시프리언스에서 내놓는 여러 규범들(종교적, 도덕적, 사회적 지적 규범들은 그것들이 암시하는 바를 따져보면 서로 모순되기 십상이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19세기의 금욕주의 전통과 1914년 이전 시대의사치 및 속물근성 사이의 충돌이었다. 한편에는 교회파 성서 기독교 성적인 청교도주의, 근면에 대한 강조, 학문적 능력에 대한 존중,
방종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똑똑함‘에 대한 경멸과 운동경기에 대한 숭배, 외국인과 노동계급에 대한 멸시, 가난에 대한 신경증적 공포, 그리고 무엇보다, 돈과 특권은 중요한 것이며 그것을자기 힘으로 이루는 것보다 물려받는 게 낫다는 사고방식이 있었던 것이다. 대체로 말해서 그것은 기독교인인 동시에 사회적으로 성공을 하라는, 불가능한 명령이었다. 나는 우리에게 제시된 여러 이상들이 서로 상쇄되어 무효가 된다는 것을 당시에는 간파하지 못했다. 내가 알았던 건 그것들이 모두(또는 거의 다) 나로서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이라는 사실뿐이었다. 모든 게 내가 무엇을 하느냐뿐만 아니라 내가 어떤신분이냐에도 달려 있었던 것이다. - P413

그래서 제일 중요한 건 축구였는데, 나로서는 젬병이었다. 나는 축구를 아주 싫어했다. 그러니 축구에서 무슨 재미나 가치를 발견할 수 없었고, 축구를 하며 나의 담력을 보여준다는 건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보기에 축구는 딱히 공 차는 재미 때문에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싸움박질이었다.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작은 아이들을 때려눕히고 짓밟는 데 능한 크고, 난폭하고, 속임수에 능한 아이들이었다. 학교생활 돌아가는 게 그런 식이었다. 언제나 강자가 약자에게 승리를 거두었던 것이다. 미덕은 이기는데 있었다. 즉, 미덕이란 남들보다 더 크고, 강하고, 잘생기고, 부유하고, 인기 좋고, 세련되고, 거리낌 없는 데 있었다. 달리 말해 남을 지배하고, 괴롭히고, 고통스럽게 하고, 바보 같아 보이게 하며, 모든 면에서남보다 앞서는 데 있었던 것이다. 삶이란 본래 위아래가 있어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그 자체가 옳은 일이었다. 강자가 있어 그들은 이겨 마땅하고 언제나 이겼으며, 약자가 있어 그들은 져 마땅하고 언제나, 끝없이지기만 했다.
- P419

나는 돈도 없고, 약하고, 못생기고, 인기 없고,
기침을 달고 다니고, 겁 많고, 냄새나는 아이였던 것이다. 이런 면모가내 공상만은 아니었다는 점을 덧붙여 말할 필요가 있다. 나는 매력 없는소년이었다. 설령 그 전에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세인트 시프리언스는금세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이가 자기 결점에 대해 갖는 믿음은 실제 사실에 크게 영향받는 게 아니다. 예컨대 나는 내가 ‘냄새난다‘
고 믿었는데, 순전히 개연성만을 근거로 한 판단이었다. 비위에 거슬리는 사람은 냄새가 난다고 하기 십상이었기에, 나 역시 지레짐작으로 그렇게 단정지어버린 것이다. 또한 나는 그 학교를 영영 떠난 뒤로도 내가초자연적으로 못생겼다는 믿음을 버리지 못했다. 그건 내 학우들이 한말이었고, 나로서는 참고할 만한 다른 근거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성공한다는 건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는 확신은 어른이 된 지 한참이 지나서까지 내 행동에 아주 깊은 영향을 끼쳤다. 나는 서른 살 무렵까지 내인생 설계를 할 때면 언제나 큰일을 맡다간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을뿐만 아니라 앞으로 몇 년밖에 더 살지 못한다는 가정을 따랐다. - P422

한편으로 그런 자괴감과 반드시 실패한다는 예감을 상쇄하는 것이있었으니, 생존 본능이란 것이었다. 약하고, 못생기고, 겁 많고, 냄새나고, 그럴싸한 데라곤 없는 존재일지라도 살고 싶으며 나름대로 행복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이다. 나는 기존의 가치 체계를 뒤집거나 성공하는 존재로 변모할 수는 없었지만, 내 실패를 받아들이고 나름대로최선을 다할 수는 있었다. 그리고 내 처지를 감수하여 분에 맞게 살아남으려고 노력할 수 있었다.
살아남는다는 것, 또는 적어도 나름의 독자성을 유지하는 것은 범죄나 마찬가지였다. - P422

적어도 그게 그녀의 표정에서 내가 읽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그 겨울날 아침 기차가 나를 싣고 떠날 때 나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빛나는(내 기억이 맞다면 짙은 녹색에 밝은 파랑에 검정이었다) 새 실크 넥타이를 목에 감고서! 마치 잿빛 하늘에 파란 균열이 난 것처럼, 세상이 내 앞에 아주 조금이나마 열리고 있었다. 사립학교는 근본적으론 마찬가지로나와는 이질적인 곳일 테지만, 세인트 시프리언스보다는 재미가 있을것이었다. 가장 필수적인 것이 돈, 작위 가진 친척, 운동 실력, 재단사가만든 옷, 단정히 다듬은 머리, 매력적인 미소인 세계에서 나는 변변찮은존재였다. 그곳에서 내가 확보한 것이라곤 숨 쉴 만한 공간뿐이었다. 약간의 정적, 약간의 방종, 벼락공부로부터의 약간의 유예-그리고 그다음은, 몰락, 어떤 종류의 몰락일지는 나도 몰랐다. 식민지나 사무실 걸상, 아니면 감옥이나 요절일지도 몰랐다. 아무튼 처음 한두 해는 느긋하게 지내면서 파우스트 박사처럼 죄의 단맛을 보는 게 가능할 것이었다. - P427

나는 내 운명이 궂으리라 믿으면서도 너무나 행복했다. 순간을 즐기며살 뿐만 아니라 그 사실을 충분히 의식하면서 그럴 수 있다는 것, 장래를 예상하되 걱정은 안 할 수 있다는 것은, 열세 살 나이의 장점이다. 다음 학기에 나는 웰링턴에 가게 되어 있었다. 이튼 장학금도 탔지만 결원이 날지 확실치 않아 웰링턴에 먼저 가야 했다. 이튼에는 자기 방이 따로 있었고, 방에 벽난로가 있는 경우도 있었다. 웰링턴에도 작지만 자기방이 있었는데, 저녁이면 손수 코코아도 타먹을 수 있었다. 그런 사생활과 어른 대접이란! 도서관에 가서 어정거려도 되고, 여름날 오후 운동경기를 피해 교장의 인솔 같은 것 없이 혼자 전원으로 나가 빈둥거려도될 터였다. 게다가 당장은 방학이었다.  - P427

이 모든 게 30년도 더 지난 일이다. 그렇다면 한가지 질문 지금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같은 식의 경험을 할까?
정직한 답은 ‘우리는 확실히 모른다‘ 뿐일 것이다. 물론 교육을 대하는 오늘의 ‘태도‘ 야 과거에 비한다면 엄청나게 더 인간적이고 분별 있는 게 분명하다. 내가 받은 교육의 핵심이었던 속물근성은 지금은 거의 생각하기도 힘들 정도다. 그런 것을 조장하던 사회 자체가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세인트 시프리언스를 떠나기 1년 전쯤에 했던 대화가떠오른다. 크고 금발이며 나보다 한 살 많았던 러시아 아이 하나가 내게 물었다. - P429

더 낫게 느껴지라고 내가 짐작한 액수에 몇백 파운드를 더해서 말했다. 단정한 걸 좋아하던 러시아 소년은 연필과 수첩을 꺼내더니 계산을하기 시작했다.
"우리 아버진 너네 아버지보다 200배 이상을 버는구나." 그는 제법깔보듯 흐뭇해하며 그렇게 말했다.
그게 1915년의 일이었다. 몇 해 뒤에 그 돈이 다 어떻게 됐을지 자못 궁금하다. 그보다 더 궁금한 건 과연 그런 식의 대화를 요즘 예비학교에서도 하는가 하는 점이다.
확실히 세계관이 많이 변했고, 사람들의 ‘계몽‘ 수준이 별 생각 없이 - P429

사는 일반 중산층의 경우에도 전반적으로 높아졌다. 이를테면 종교적인신념도 다른 종류의 난센스들과 함께 대부분 사라졌다. 요즘은 아이한테 자위를 하면 정신병원에 끌려갈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주 적을것이다. 매질도 신뢰성이 크게 떨어져서, 많은 학교에서 아예 하질 않고있다. 충분히 먹이지 않는 것도 더는 정상적이며 칭찬할 만한 행동으로간주되지 않는다. 이제는 공공연히 학생들한테 되도록이면 음식을 적게주려고 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며, 식사는 앉을 때만큼 배고픈 채 일어날정도로 하는 게 건강에 좋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아이들의지위는 전반적으로 향상됐는데, 부분적으론 아이들 수가 상대적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간의 심리학 지식이 전파됨에 따라 부모와 교사가 훈육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일탈에 탐닉하는 게 더 힘들어졌다.  - P430

두려움과 수줍음이 더해져 이루어진 베일에 의해 차단된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아이가 어른에게서 ‘신체적인 위축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성인의 거대한 몸집, 볼품없고 뻣뻣한신체, 거칠고 주름진 피부, 축 처진 눈꺼풀, 누런 치아, 그리고 움직일때마다 풍기는 퀴퀴한 옷과 맥주와 땀과 담배의 냄새! 아이에게 어른이못나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아이는 대개 밑에서 위로 올려다보며, 그렇게 봤을 때 최상인 얼굴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아이는 자기자신이 모든 면에서 생기 넘치고 깨끗하기 때문에 피부나 치아나 혈색에 대하여 지극히 높은 기준을 갖고 있다. 그런가 하면 무엇보다 가장큰 장벽은 아이가 나이에 대해 갖는 착각이다. 아이는 서른 이후의 삶을잘 상상하지 못하며, 사람의 나이를 판단할 때 엄청난 실수를 범한다.
이를테면 스물다섯인 사람을 마흔으로 보고, 마흔인 사람을 예순다섯으로 보는 식이다.  - P432

그리고 아이는 나이 먹는 일을 거의 가당찮은 재앙처럼 여긴다. 무슨 신비로운 이유 때문에 자기한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일로 보는 것이다. 때문에 아이가 보기에, 서른이 넘은 사람은 누구나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일에 대해 끊임없이 떠들어대고, 살아가는 이유도 없이 그냥 살아 있는 즐거움이라곤 없는 괴상한 존재인 것이다. 아이가 보기엔 아이의 삶만이 진짜 삶이다. 학동들의 사랑과 신뢰를 받고있다고 생각하는 학교장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실제로는 아이들이 등뒤에서 그를 흉내내며 웃고 있다. 위험해 보이지 않는 어른은 거의 항상우스워 보이는 것이다. - P432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고, 자신이 믿던 난센스와 자신을괜히 괴롭히던 사소한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자. 물론 내 사례는 나름의변주가 있는 경험이겠지만, 본질적으로 무수한 다른 아이들의 그것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약점은 백지 상태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아이는 자신이 사는 사회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의문시하지도 않는다. 아이는 그렇게 잘 믿기 때문에 어른한테 영향받기 쉬우며, 그만큼 열등감에 물들거나 불가사의하고 끔찍한 법을 어기는 데 대한 공포감에 휘둘리기 쉽다. 세인트 시프리언스에서 나에게 일어났던 모든 일은 가장 ‘계몽‘ 된학교에서도(보다 미묘한 방식일진 몰라도)  - P434

작가와 리바이어던


국가 통제의 시대에 사는 작가의 위치는 이미 꽤 많은 논의가 있었던주제다. 관련이 있을 만한 대부분의 증거를 아직 입수할 수 없는 형편이지만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국가가 예술을 후원하는 것에 대한 찬반 의견을 표명하고 싶지는 않으며, 다만 국가가 국민에 대하여 행사하는 ‘어떤 유형‘의 통제는 지배적인 지적 분위기에 어느 정도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달리 말해 여기서는 어느 정도작가와 예술가 자신들의 태도에, 그리고 그들이 자유주의 정신을 기꺼이 지켜나가겠다는 자세 같은 것에 달려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앞으로 10년 뒤에 우리가 즈다노프 같은 이 앞에서 굽실거리고있다면, 그건 아마도 그런 현실을 자초한 우리 자신의 책임일 것이다. - P437

영국 문단의 지식인들 사이에선 이미 전체주의로 가는 유력한 경향이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단, 여기서 나는 공산주의처럼 조직화되고 의식화된 운동에는 관심이 없다. 정치적인 사고가 선의를 가진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 그리고 정치적으로 어느 편을 들어야 할지에 대한 필요성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지금은 정치적인 시대다. 전쟁, 파시즘, 집단수용소, 경찰, 원자탄등등은 우리가 매일같이 생각하는 주제이며, 그래서 대놓고 거론하지는않더라도 상당 부분 우리가 쓰는 글의 주제가 되었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만일 우리가 가라앉는 배에 있다면 우리의 생각은 가라앉는배에 관한 것이 될 터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주제는 협소해졌을 뿐만아니라, 문학에 대한 우리의 태도 역시 우리가 적어도 이따금은 비문학적이라고 자각하는 충심에 완전히 물들어 있다. 나는 시절이 아무리 좋을 때라도 문학평론은 사기라는 느낌을 종종 받곤 했다.  - P438

물론 정치가 문학을 침범하는 현상은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전체주의라는 특별한 문제가 생기지 않았어도 분명히 발생했을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조부모들은 느끼지 않았던 일종의 양심의 가책을 세상의 엄청난 불의와 비참에 대한 자각을, 그런 세상을어떻게 해야 한다는 죄책감을 키우게 되었으며, 그런 죄책감 때문에 삶에 대해 순전히 미학적인 태도를 취하는 게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누구도 조이스나 헨리 제임스 같이 오로지 문학에만 전념할 수는없게 되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제는 정치적 책임을 받아들인다는게 정통성이나 ‘당 노선에 자신을 내어준다는 뜻이 되어버렸으며, 아울러 온갖 소심함과 불성실이 수반된다는 뜻이 되어버렸다. 빅토리아시대의 작가들과 비교해볼 때, 우리는 정치 이데올로기들이 확연히 구분되며, 얼핏 보기만 해도 어떤 생각이 이단인지를 대략 알 수 있는 시대에 산다는 불리함을 안고 있다. - P439

그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바는, 이런 문제를 좌파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사람들과는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없다는 점이다.
임금을 낮추고 노동시간을 늘리는 일은 생래적으로 반사회주의적인 조치라 생각되기 때문에, 경제 상황이야 어떻든 아예 논의 대상에서 제외돼야 할 문제다. 그런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은 우리 모두가 두려워하는 딱지들이 붙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니 이런 문제는일단 비켜가고 기존의 국민소득 재분배함으로써 모든 걸 바로잡을 수있는 척하는 게 훨씬 안전한 것이다.
정통성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언제나 해결되지 않은 모순을 이어받는 일이다. 이를테면 민감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산업주의와 그 산물에반감을 느끼면서도, 빈곤을 타파하고 노동계급을 해방하기 위해서는산업화가 덜 필요한 게 아니라 더욱더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는 사실을생각해보자.  - P443

물론 나는 양심적 불성실이 사회주의자들과 좌파 세력 일반에게 특수하거나 아주 흔한 속성이라는 주장을 하는 게 아니다. ‘어떤 정치 이념을 받아들이면 문학적 성실성을 지키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이는 일반적인 정치투쟁의 영역 밖에 있다는 주장들을 하는 평화주의나 개인주의 같은 운동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사실무슨 주의ism로 끝나는 말은 소리만 들어도 선전의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집단에 대한 충심은 필요하긴 하지만, 문학이 개인의 창작물인 한에서는 문학에 독이 된다. 그런 충심이 창조적인 글쓰기에 어떤 영향을,
심지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면, 창의성이 왜곡될 뿐만 아니라사실상 고사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치와 거리는 두는 게 모든 작가의본분이라는 결론을 내려야 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지금 같은 시대에는 생각이 있는 사람치고 진정으로 정치와 거리를둘 수 있거나 실제로 그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P444

다른 어느 누구와도 마찬가지로, 그는 찬바람 새는 회관에서 연설을 하고, 길바닥에 분필로 글을 쓰고, 투표를 호소하고, 전단을 나눠주고, 심지어 필요하다 싶으면 내전에 참가할 각오도 되어 있어야 한다. 단, 자기 당에 대한 봉사로 다른 건 무엇이든 해도 좋지만 당을 위해 글을 쓰는 것만큼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자신의 글이당과는 무관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원한다면 당의공식 이데올로기를 철저히 거부하면서도 당에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생각이 이단에 다다를지라도 그런 사고의 과정에 등을 돌려서는안 되며, 자신의 비정통성이 남들에게 감지되더라도 너무 개의치 말아야 한다. 오늘날엔 작가가 반동적인 성향이 있다는 의심을 사지 않을 경우, 좋은 작가는 아니라는 증표가 될 수도 있다. 20년 전에는 공산주의에 동정적이라는 의심을 사지 않으면 좋은 작가가 아니라는 증표였듯말이다. - P445

창의성 있는 작가가 격동기에 자기 삶을 두 영역으로 나눠야겠다는뜻을 내비친다면, 패배주의자 아니면 어리석은 자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실제로 그가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스스로를 상아탑에 가두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당의 기구는물론이고 집단 이데올로기에도 자발적으로 굴복한다는 것은 작가로서의 자신을 죽이는 일이다. 우리는 이런 딜레마가 고통스러운 것임을 안다. 정치에 관여할 필요성을 느끼되 그게 얼마나 지저분하고 품위 없는일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들 대부분은 모든 선택이, 그리고모든 정치적인 선택 역시 선과 악의 문제이며, 필요한 일은 옳은 일이기도 하다는 오래 이어져온 신념을 아직도 갖고 있다. 나는 우리가 탁아소에나 어울리는 그런 신념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에선 둘 중어느 쪽이 덜 악한지를 판단하는 것 이상은 결코 있을 수 없으며, 악마나미치광이처럼 행동해야만 가까스로 탈출할 수 있는 상황들이 있다.  - P446

이를테면 전쟁은 필요할 수도 있지만 옳거나 온전한 일이 분명코 아닌 것이다. 심지어 총선도 딱히 유쾌하거나 그리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그런 일들에 관여하게 된다면(나는 노년이나 우둔함이나 위선의 갑옷을입은 게 아닌 한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일부는 불가침 영역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생활이 이미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같은 형태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들은 여가시간에만진정으로 살아 있으며, 그들의 일과 정치 활동 사이에는 아무 정서적 연결고리가 없다. 또한 그들은 노동자로서 정치적 충심이라는 이름으로스스로의 품위를 떨어뜨리도록 요구받는 일이 없는 게 보통이다. 그에비해 예술가는, 특히 작가는 바로 그런 요구를 받는다. 사실 그것은 정 - P446

치인들이 그에게 유일하게 요구하는 바다. 그런 요구를 거부한다고 해서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의 전부이기도 한- 그의 절반은 다른 누구 못지않게 단호하게 필요하면 누구보다 맹렬하게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글은 어떤 가치를 갖는 한 언제나 보다 온전한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가담하지 않은 채 사태를기록하고 사태의 필요성을 인정하되 속아서 사태의 본질을 잘못 보게되기를 거부하는 절반의 자신 말이다. - P447

간디에 대한 소견


성인이라면 모름지기 결백이 입증될 때까지는 유죄 판결을 받아마땅할 것이다. 단, 성인이 거쳐야 할 시험은 물론 모든 경우에 똑같지는 않다. 간디의 경우 던져봤으면 싶은 질문은 이런 것들이다. 간디는얼마만큼이나 허영 (즉 자신을 기도방석에 앉아 영적인 힘으로만 제국들을 떨게 만드는 수수하고 벌거벗은 노인으로 의식하는 것)에 이끌려 행동했을까?
그리고 본질적으로 강제 및 사기와 불가분의 관계인 정치에 입문함으로써 자신의 원칙과 얼마만큼 타협했을까? 정답을 얻으려면 간디의 행적과 글을 아주 꼼꼼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의 온 삶은 행동 하나하나가 의미심장한 일종의 순례였기 때문이다. 1920년대로 끝나기에 부 - P449

분적이라 할 그의 자서전‘은 그의 편이 되어주는 강력한 증거인데, 그가그의 삶에서 거듭나지 못한 부분이라 말할 면모를 가려주고, 성인으로서의 면모 속에 그가 원하기만 했다면 변호사나 행정가나 심지어 사업가로서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을지도 모를 대단한 수완과 능력도 있었다는 점을 상기시켜주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자서전이 처음 신문에 연재될 무렵, 나는 인쇄 상태가 엉망인 어느 인도 신문에서 첫 몇 장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 글들은 나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는데, 그때도 간디 자체에 대한 인상은 좋은 게 아니었다. 간디 하면 연상되는 것(손수 짜는 천, ‘영혼의 힘‘, 채식주의)은 매력적인 게 아니었고, 그의 중세 찬미적 강령은 굶주리고 인구 과밀인 후진국에서는확실히 실현 가능한 게 아니었다. - P450

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그 누구의 절친한 친구가 되어서도,
독점적인 연인이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간디는 절친한 친구가 위험한 것은 "친구끼리는 서로에게 반응하기"
때문이며, 친구에게 충실하다보면 잘못을 저지르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이는 의심할 바 없이 맞는 말이다. 게다가 하느님이나 인류를 사랑하려면, 특정 개인을 선호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 역시 맞는 말인데, 이지점에서부터 인본주의적 태도와 종교적 태도가 더 이상 조화를 이룰수 없게 된다. 보통의 인간에게 사랑이란 것은 남들보다 어떤 누구를 더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 P454

그런데 간디의 평화주의는 그의 다른 가르침과 어느 정도 분리될 수있다. 그것의 동기는 종교적이었지만, 그는 그것이 바라는 정치적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 분명한 테크닉 또는 방안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간디의 태도는 서구 평화주의자 대부분의 그것과는 달랐다. 그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처음으로 발전시킨 사티아그라하‘ 정신은 일종의 비폭력 전투행위였다. 달리 말해 자기도 다치지 않고 증오를 느끼거나 불러일으키지도 않으면서 적을 무찌르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시민불복종이나 파업, 기찻길 앞에 드러눕기, 경찰의 돌격에 달아나지도 받아치지도 않고서 버티기 등과 같은 행위를 수반했다. 간디는 사티아그라하‘를 ‘수동적 저항‘이라 번역하는 데 반대했다. - P456

누군가가 단추를 눌러 로켓들이 마구 날아다니게 되기 전, 우리에게 남은 몇 년 안에 말이다. 문명이 또 한 번의 대전을 버텨낼 수 있을지는 의문스러우며, 적어도 출구는 비폭력이라는 생각을 해볼 만하다. 간디는 위에서 내가 제기한 것과 같은 식의 질문에 정직하게 고민해볼 준비가 되어 있었을 것이고, 그게 간디의 장점이다. 실제로 그는 그가 쓴 수많은 신문 사설들 어디에서인가 그런 질문들을 다루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그가 이해하지 못한 것이 많긴 했지만 그가 말하거나 생각하기를 두려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나는 간디를별로 좋아할 수는 없었지만, 정치사상가로서의 그가 대체로 부적절했다고 확신할 수는 없으며, 그의 삶이 실패였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그가암살당했을 때, 그를 흠모한 많은 사람들이 그가 자신의 인생 역작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게 될 정도만큼만 오래 살았다며 비탄했다는 건 좀 이상하다. 왜냐하면 인도가 내전에 빠져든 것은 권력 이양의 부산물로서언제나 예견되었던 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디가 인생을 바쳐 한일은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의 대결을 진정시키는 게 아니었다. 그의 주된 정치적 목표는 영국의 지배를 평화롭게 종식시키는 것이었으며, 그것은 결국 성취되었다. - P459

다른 한편으로, 이 사건을 주도한건 노동당 정부인데, 보수당 정권 특히 처칠이 수반인 정부였다면 크게달라졌을 게 분명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1945년에 영국에서 인도의 독립에 동정적인 여론이 크게 일었다고 할 경우, 간디 개인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그리고, 만일 인도와 영국이 결국 점잖고 우호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면(그럴 만한 일이다), 끝까지 증오 없이 집요한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정치의 공기를 소독한 간디가 기여한 바는 얼마만큼일까?
이런 질문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는 자체가 간디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말해준다. 내가 그랬듯이 우리는 간디를 미학적으로 싫어할 수 있고, 그를 성인으로 추대하자는 주장을 거부할 수도 있다(간디 자신은 그런주장을 한 적이 없다). 성인됨이라는 것 자체를 이상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그때문에 간디가 기본적으로 추구한 바를 반인간적이고 반동적인 것으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를 정치인으로만 볼 때, 그리고 우리 시대의 다른 유력 정치인들과 비교해볼 때, 그가 남긴 향기는 얼마나 맑은가! - P460

역자 후기


언어의 타락과 오늘의 글쓰기


"우리 시대에 정치적인 말과 글은 주로 변호할 수 없는 것을 변호하는 데 쓰인다"
- 「정치와 영어」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 「나는 왜 쓰는가」


1950년 이전에 활동한 작가 중에 오늘날 조지 오웰(1903~1950)만큼널리 읽히는 이는 많지 않다. 오웰이란 작가를 아는사람들 대부분은 그의 이름을 들으면 우선 『동물농장』과 『1984』부터 떠올리게 된다. 그럴만도 한 게, 이 두 소설은 10년 전쯤의 추정에 따르자면 공식 영어판만4000만 부 이상이 팔렸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누린, 그의 대표작인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소설은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서 생계를 꾸리기 위해 그가 쓴 어마어마한 양의 저술 중에서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라 해도 좋을 만큼 적은 일부에 불과하다. 그는 생전에 11권(소설 6권,
르포 3권, 에세이집 2권의 책을 낸 것 말고도 수백 편의 길고 짧은 에세이 - P474

를 썼는데(서평과 칼럼 등을 포함해서다) 그의 에세이는 미국의 한 평론가가 그를 18세기 영국 문단 최고의 문사였던 사무엘 존슨 이후 최고의에세이스트로 꼽을 만큼 탁월하다.
생전에 책으로 다 묶이지 못했던 그의 에세이들은 사후에 다종다양한에세이집으로 계속해서 묶여 나오고 있다. 본 에세이집은 지금 우리에게 보다 큰 의미를 줄 수 있다 싶은 오웰의 에세이들을 양적으로 다소무리가 따르더라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보자는 시도의 결과물이다. 오웰의 그 많은 에세이들을 일일이 꼼꼼히 읽어보고 선별한다는 것은 나에게 허락된 시간과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오웰의 산문 중 생전에 단행본으로 출간된 소설과 르포 이외의 중요한 글들을 모은 저작집"에서 오늘의 우리에게도 울림이 클 만한 에세이를 골라 번역것은 어렵긴 해도 보람 있는 작업이었다. 오웰의 글이 매력적인 것은 문체 자체가 간결하고 명쾌할 뿐만 아니라 예리한 통찰, 특유의 유머와 독설이 빛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글을 쓰기 위해서는 그만큼 독특한 개성과 경험이 있어야 했을 텐데, 여기서 그의 별난 이력과면모를 간단히 소개할 필요가 있겠다. - P475

"자유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다면, 남들이 듣기 싫어하는 소리를 그들에게 할 권리일 것이다." 오웰의 전기‘를 쓴 피터 루이스는 『동물농장』의 미발표 서문에 나온다는 이 말이 오웰의 개성을 단적으로 잘 드러내준다고 말한다. 오웰은 "고약한 양심의 가책‘ 때문에 자신이 누리던 특권을 내팽개친 사람이다. 그는 사립 명문 이튼 졸업생으로선 유일하게대학을 포기하고 식민지 경찰이 되었고, 안정된 경찰 간부직을 포기하 - P475

고서 부랑자나 접시닦이가 되었다. 2차대전 전에는 런던에서 문단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시골 마을에서 작은 가게를 하며 텃밭을 일구는생활을 했고, 전쟁 후 명사가 되었을 때는 한적한 섬에서 은거하는 쪽을택했다. 그런 그를 동시대 소설가 V. S. 프리체트Pritchett는 "자국 내에서 원주민이 되어버린 사람이라고 했다. 오웰은 자기 이력을 통해 패턴과 인습을 거부한 작가였던 것이다. 또한 그는 인간의 모순적이고 역설적이고 비이성적인 면에 주목한 작가이기도 했는데, 그 점은 본 에세이집의 어느 글을 보아도 뚜렷이 드러나는 그의 개성이지 싶다.
책의 제목을 ‘나는 왜 쓰는가‘로 한 것은, 같은 제목의 에세이가 그의문학론과 정치적 입장을 단적으로 가장 잘 대변해주며, 작가로서의 자신에 대한 짤막한 자서전으로 봐도 좋을 상징적이고 대표적인 작품이기때문이다.  - P476

그는 또 이 에세이에서 정치와 문학은 별개가 아니며, 어떤글쓰기도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입장을피력한다. 그렇다고 오웰을 정치적이기만 한 작가로 본다면 큰 오산이다. 작가로서의 그에겐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 가장큰 관심사였던 것이다. 그는 또 작가가 정치적인 활동은 하되 일반 시민으로서 개입해야지 작가로서 어떤 정치 노선에 따라 글을 쓰는 것만큼은 거부할 줄 알아야 한다고 경고한다.(작가와 리바이어던) 정치적 충심에 따라 행동하는 자신과 작가적 예술가적 양심에 따라 글을 쓰는 자신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 다른 얘기일지 모르지만 나는개인적으로 오웰의 에세이들 중에 평론적인 글보다는 소설가적 면모가드러나는 경험적인 글이 더 좋았다. 물론 어느 한쪽만이 부각된 오웰은작가 오웰의 온전한 모습이 아닐 테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작가 오웰에게서 구할 수 있는 미덕은 무엇일 - P476

까? 언어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심지어 업으로든 아니든 글쓰기를 하는사람이라면, 오웰이 주목한 언어의 타락(정치와 영어」)에 대하여 오늘우리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어머니의 젖줄에 비유되는 강을파헤치고 댐을 쌓아 물을 가두는 일을 강 ‘살리기‘ 라 부르고 ‘녹색‘뉴딜이라 일컫는다. 오웰은 말한다. 생각이 언어를 타락시킬 수 있다면 언어도 생각을 타락시킬 수 있다고 죽이면서 살린다고 하고, 나무와 습지를 파내면서 ‘녹색‘ 이라고 하는 것은 1984』의 전체주의 사회에서 선전을 담당하는 기관이 "전쟁은 평화/자유는 예속/무지는 힘"이라는 슬로건을 내거는 것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더구나 이 기관의 이름은 "진실"부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는 전쟁이 나도 평화인 줄 알고, 노예가 되어도자유로운 줄 알고, 모르는 게 자랑인 줄 알며 살게 될 것이다. 하물며 비판은 못할지언정 "변호할 수 없는 것을 변호하는 일에, 그런 타락에 곡학아세하며 동조해서야 되겠는가? - P477

마지막으로 이 에세이집의 구성에 대해 간략한 소개를 하고자 한다.
여기에 실린 29편의 에세이들은 오웰이 글을 써서 발표한 시기에 맞춰순차적으로 배열을 했다. 그리고 각 작품이 발표된 시기의 정황에 대한이해를 돕도록 각주를 달았고, 책의 맨 뒤에는 상세한 오웰 연보를 붙여두었다. 더구나 자전적인 소설처럼 읽히는 작품들이 있는가 하면, 시대상을 반영하는 논평 같은 글들도 있으니 이 한 권의 에세이집은 오웰의자서전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으리라 본다. 오웰은 생전에 자신의 전기를 쓰지 말라는 부탁을 했고, 그래봤자 물론 사후에 많은 전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말았는데, 실은 그의 작품들 곳곳에 자전적인 서술이 있으며그것은 에세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아울러 각주를 300개 이상단 것은, 오웰의 글이 60여 년 세월이 흐른 지금도 오늘의 어떤 영미 - P477

계 작가보다도 잘 읽히는 명쾌한 문체로 씌어졌지만, 시간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오늘의 우리와 거리감이 있는 부분도 있기에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리고 기술 진보의 아이러니라고 할까, 각주의 대부분을 ‘위키피디아‘ 라는 인터넷 백과사전에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어렵고 기나긴 작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데에는 걸으면서 마음을 달랠 수 있게 해준 동네 뒷산의 도움이 무엇보다컸다.  - P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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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 단상


제비보다 먼저, 수선화보다 먼저, 아네모네보다 조금 늦게, 두꺼비는봄이 다시 찾아온 것에 대해 나름의 경의를 표한다. 지난가을부터 들어가 누워 있던 땅속 구멍에서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적당한 물웅덩이 쪽으로 최대한 빨리 기어가는 것이다. 무언가가(땅속의 어떤 떨림인지 아니면그냥 온도가 몇 도 올라서인지 잘은 모르지만) 두꺼비에게 깨어날 때가 되었다고 말해준 것이다. 그런가 하면 몇 마리는 내내 잠만 자다 한 해를 아예 빼먹기도 하는 것 같다. 한여름에 땅을 파다가 멀쩡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두꺼비를 몇 번이고 본 적이 있으니 말이다.
이 무렵 두꺼비는 오래 굶주린 뒤라 대단히 영적인 모습인 것이 흡사사순절 막바지에 다다른 엄격한 가톨릭 신자 같다. 동작은 늘어진 듯하면서도 목표가 뚜렷해 보이며, 몸이 오그라들어 눈은 유난히 커 보인다.
때문에 우리는 다른 때엔 느낄 수 없을지 모르지만, 두꺼비가 다른 어떤동물보다도 아름다운 눈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 P277

물에 들어간 뒤 며칠 동안 두꺼비는 작은 벌레들을 잡아먹으며 원기를 회복한다. 그러면서 곧 본래의 몸집도 되찾게 되며, 이윽고 강렬한성생활 단계를 거치게 된다. 그가 아는 것이란(아무튼 수컷이라고 할 때)무언가를 얼싸안고 싶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녀석에게 막대기나 손가락이라도 내밀어보면, 높은 놀라운 힘으로 그것에 단단히 들러붙어 그것이 암컷 두꺼비라도 되는지 한참을 살펴본다. 두꺼비 열 마리 스무 마리가 물에서 한 덩어리로 아무렇게나 뒤엉켜 있는, 그것도 성별 구분 없이아무하고나 붙어 있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다 그것들은 점차서로를 가려내어 이성과 하나씩 짝을 지으며, 결국 수컷이 암컷의 등에맞춤하게 올라탄다. 그때부터 보는 사람은 암수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수컷이 더 작고 짙으며, 암컷의 목에 팔을 단단히 휘감고서 올라타 있기때문이다. 하루나 이틀 뒤면 암컷은 기다란 줄 모양으로 알을 낳으며,
그것은 갈대 안팎으로 감겨들어 이내 자취를 감춰버린다. 그러고서 몇주가 더 지나면, 물에 조그만 올챙이들이 와글와글해진다.  - P278

봄에 관해서라면 영국은행 주변의 좁고 음침한 길들도 빼놓을 수 없다. 봄은 어디나 스며들어 찾아오는 것이다. 어떠한 필터라도 통과할 수있는 신형 독가스처럼 말이다. 봄을 흔히들 ‘기적‘이라 부르곤 하는데,
이 닳고 닳은 비유는 지난 5~6년 동안 새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 우리가 견뎌야만 했던 겨울들 때문에 봄이 다시 기적처럼 여겨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겨울을 몇 해 동안 보내면서 우리는 봄이 다시 찾아올 거라고 믿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게 되었다. 1940년부터 나는2월이면 항상 이번엔 겨울이 영영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하지만 하계의 여왕인 페르세포네는 두꺼비처럼 거의 같은때만 되면 죽은 것들 가운데서 일어난다. 그리하여 3월 말쯤이면 느닷없이 기적이 벌어지며, 내가 사는 형편없는 빈민가도 변모한다.  - P279

권투 시합을 벌이는 광경을 보고 서 있으면서, 할 수만 있다면 그런 나의 즐거움을 막고자 할 중요한 사람들 생각을 얼마나 많이 해보았던가.
하지만 그들은 그럴 수가 없다. 우리가 딱히 아프거나, 배고프거나, 공포에 떨고 있거나, 감옥 또는 행락지에 갇혀 있지 않은 한, 봄은 여전히봄인 것이다. 공장엔 원자탄이 쌓여가고, 도시엔 경찰이 어슬렁거리고,
확성기엔 거짓말이 넘쳐흐른다 해도, 지구는 여전히 태양 주변을 돌고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이 아무리 못마땅한들, 독재자도 관료도 그것을막을 수는 없다. - P282

어느 서평자의 고백


추우면서도 공기는 탁한 침실 겸 거실. 담배꽁초와 반쯤 비운 찻잔이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좀먹은 가운을 입은 남자가 쓰러질 듯한 탁자 앞이 앉아 먼지 쌓인 종이 더미 속에서 타자기 놓을 자리를 찾아내려고 한다. 그렇다고 종이들을 버릴 수는 없다. 쓰레기통이 벌써 넘쳐날뿐더러,
답장 못한 편지들과 아직 못낸 공과금 고지서들 사이에 현금으로 바꾸지 못한 게 거의 확실한 기니짜리 수표가 끼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주소록에 주소를 옮겨 적어야 하는 편지들도 있다. 하지만 그는주소록을 잃어버렸고, 그걸 찾을 생각을 하면 그뿐 아니라 무엇이든 찾을생각을 하면 극심한 자살 충동에 시달리게 된다. - P283

이 사람은 말할 것도 없이 작가다. 그는 시인일 수도, 소설가일 수도,
시나리오 작가일 수도, 라디오 방송작가일 수도 있다. 글 써서 먹고사는사람들이 대개 다 비슷하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선 서평자라고 하자. 종이 더미 속에는 묵직한 소포 꾸러미가 반쯤 감춰져 있고, 그 안에는 편집자의 쪽지 왈, ‘일맥상통‘ 할 거라는 다섯 권의 책이 들어 있다. 그게도착한 것은 나흘 전이었지만, 서평자는 48시간 동안 도덕성이 마비되었던 탓에 소포를 열어볼 수 없었다. 그리고 어제서야 굳게 마음먹은 일순간, 소포 끈을 확 풀어버리고 다섯 권의 책을 확인한 것이었다. 교차로의 팔레스타인』, 『과학적인 낙농업』, 『유럽 민주주의의 짧은 역사』(이책은 680 페이지에 무게가 4파운드였다), 포르투갈령 동아프리카의 부족 관습, 그리고 아마 실수로 포함됐을 드러눕는 게 더 좋아』라는 소설이었다. 그의 서평 (800단어 분량이었다)은 다음 날 정오까지 입고 되어야만 했다. - P284

나는 왜 쓰는가


아주 어릴 때부터, 아마도 대여섯 살 때부터 나는 내가 커서 작가가되리란 걸 알고 있었다. 열일곱살 때부터 스물네 살 때까지는 그 생각을 포기하려고 했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그게 내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며 조만간 차분히 앉아 책 쓰는 일을 해야 하리란 의식을 갖고 있었다.
나는 삼남매의 둘째였고 아래위로 다섯 살씩 차이가 났으며, 아버지는 여덟 살이 될 때까지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난 좀 외로웠고, 이내 남들이 싫어할 만한 버릇을 들이는 바람에 학창 시절 내내인기가 없었다. 나는 외로운 아이들이 흔히 그렇듯 이야기를 지어내고상상 속의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는 습관을 갖게 됐는데, 애초부터 나의문학적 야심은 고립됐고 과소평가됐다는 느낌이 뒤섞여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에게 낱말을 다루는 재주와 불쾌한 사실을 직시하는 능력이 있다는 걸 알았고, 그것이 나날이 겪는 실패를 앙갚음할 수 있게 해 - P289

주는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내가 어린 시절과 소년 시절을 통틀어 써낸 심각한(즉 심각한 의도로 쓴글은 대여섯 페이지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네댓 살 때 처음으로 시를썼는데, 내가 하는 말을 어머니가 기록한 것이었다. 지금으로선 그게 호랑이에 대한 시였고, 그 호랑이가 ‘의자 같은 이빨을 가졌다는 것 말고는 기억나는 게 없다(꽤 훌륭한 표현 같지만 아마 블레이크의 시 호랑이, 호랑이」를 표절한 것이지 싶다). 1914~1918년 전쟁이 터진 열한 살 때에는 애국시를 써서 지역신문에 실리게 되었고, 2년 뒤 키치너‘의 죽음에 부쳐다른 애국시를 써서 역시 신문에 실렸다. 좀더 나이가 들어서는 서투르고 대개는 완성하지 못한 조지 시대 풍‘의 ‘자연시‘를 이따금 쓰곤 했다. 두 번쯤은 단편소설을 시도했다가 엄청난 실패를 맛보기도 했다. 그시절을 통틀어 내가 심각한 의도를 갖고서 실제로 종이에다 쓴 작품은그 정도가 전부였다. - P290

지금은 별로 대단해 보이지도 않지만 당시엔 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구절이고, "he" 대신 "hee"를 쓴 것도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묘사의 필요성에 대해서라면 나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만일그 시절 내가 책을 쓰고 싶어 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게 어떤 유의 책이었는지는 분명하다. 나는 결말이 불행하고, 섬세한 묘사와 빼어난 비유가 가득하며, 어느 정도 소리 위주로 단어를 구사한 현란한 구절 또한가득한 아주 묵직한 자연주의 소설을 쓰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처음으로 완성한 소설로, 서른 살 때 썼지만 훨씬 전부터 구상했었던
‘버마 시절이 실은 다소 그런 유형의 책이다. - P292

‘내가 이런 배경 설명을 일일이 하는 것은, 어릴 때 어떤 식으로 성장했는지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한 작가의 동기를 헤아리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글의 주제는 그가 사는 시대에 따라 결정되겠지만(적어도 우리 시대처럼 격동적이고 혁명적인 시대에는 그렇다) 그는 작가 생활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이미 나름의 정서적 태도를 갖게 되며, 그것은 그가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무엇이다. 물론 그는 마땅히 자신의기질을 다스려야 하고, 미성숙한 단계에 고착되거나 비뚤어진 심기에매몰되는 경우를 피해야 한다. 하지만 일찍이 받은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버린다면, 글을 쓰고자 하는 충동 자체가 없어져버릴 것이다.
나는 생계 때문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글을 쓰는 동기는 크게 네 가지라 - P292

고 생각한다(적어도 산문을 쓰는 데 있어서는 말이다). 이 동기들은 작가들다 다른 정도로 존재하며, 한 작가의 경우에도 시기별로나 시대 분위기별로나 그 정도가 다를 것이다.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순전한 이기심.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자신을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을 하고 싶은 등등의 욕구를 말한다. 이게 동기가 아닌 척, 그것도강력한 동기가 아닌 척하는 건 허위다. 작가의 이런 특성은 과학자, 예술가, 정치인, 법조인, 군인, 성공한 사업가 등, 요컨대 최상층에 있는모든 인간에게 공통되는 특성이다. 사람들 절대다수는 그다지 이기적이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 서른 남짓이 되면 개인적인 야심을 버리고(많은 경우 자신이 한 개인이라는 자각조차 거의 버리는 게 보통이다) 주로남을 위해 살거나 고역에 시달리며 겨우겨우 살 뿐이다. 그런가하면 소수지만 끝까지 자기 삶을 살아보겠다는 재능 있고 고집 있는 사람들도있으니, 작가는 이 부류에 속한다. 나는 진지한 작가들이 대체로 언론인에 비해 돈에는 관심이 적어도 더 허영심이 많고 자기중심적이라고 생각한다. - P293

2. 미학적 열정.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또는 낱말과 그것의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을 말한다. 어떤 소리가 다른 소리에 끼치는 영향, 훌륭한 산문의 견고함, 훌륭한 이야기의 리듬에서 찾는기쁨이기도 하다. 자신이 체감한 바를 나누고자 하는 욕구는 소중하여차마 놓치고 싶지가 않다. 미학적인 동기가 상당히 약한 작가들도 많긴하지만, 팜플렛이나 교과서를 쓰는 저자라 해도 비실용적이지만 매력과애정을 느끼는 낱말들과 문구들이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어도 글꼴이 - P293

나 여백 같은 것들에 상당한 매력을 느끼는 수가 있다. 철도 안내책자수준을 넘어선다면, 어떤 책도 미학적인 고려로부터 딱히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3. 역사적 충동.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를 말한다.
4. 정치적 목적. 여기서 정치적‘ 이라는 말은 가장 광범위한 의미로사용되었다. 이 동기는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를 말한다. 다시 말하지만,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것이다. - P294

이런 충동들이 서로 얼마나 충돌할지, 사람과 때에 따라 얼마나 오락가락할지는 알 만한 일이다. 나는 천성적으로(여기서 말하는 ‘천성‘ 이란 막어른이 되었을 때의 성격이라고 하자) 앞의 세 가지 동기가 네 번째 동기를능가하는 사람이다. 평화로운 시대 같았으면 나는 화려하거나 묘사에치중하는 책을 썼을지 모르며, 내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서 지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실제로는 일종의 팜플렛 저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먼저 나는 안 맞는 직업을 택하여 5년을 지냈고(버마에서 ‘인도 제국경찰 노릇을 했다) 그뒤로 빈곤과 좌절을 겪었다. 그로 인해 권위에 대한 나의 타고난 반감이 커져갔고, 처음으로 노동계급의 존재를 충분히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버마에서 일해본 덕분에 제국주의본질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경험들만으로는정확한 정치적 지향을 갖기에 부족했다. 그러다 히틀러가 등장하고, 스페인내전이 발발하는 등등의 사태가 벌어졌다.  - P294

스페인내전과 1936~1937년에 있었던 그 밖의 사건들은 저울을 한쪽으로 기울게 했고, 그뒤부터 나는 내가 어디 서 있는지 알게 되었다.
1936년부터 내가 쓴 심각한 작품은 어느 한 줄이든 직간접적으로 전체주의에 맞서고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들이다.
우리 시대 같은 때에 그런 주제를 피해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내가 보기엔 난센스다. 누구든 어떤 식으로든 그런 주제에 대해 쓰고있는 것이다. 그저 어느 쪽을 편들고 어떤 접근법을 따르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편향을 의식하면 할수록, 자신의 미학적·지적 진정성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정치적으로 행동할 기회가 많아지게 된다. - P297

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 나의 출발점은 언제나 당파성을, 곧 불의를 감지하는 데서부터다. 나는 앉아서 책을 쓸 때 스스로에게 예술 작품을만들어내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쓰는 건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이나 주목을 끌어내고 싶은 어떤 사실이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나의우선적인 관심사는 남들이 들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미학적인 경험과 무관한 글쓰기라면, 책을 쓰는 작업도 잡지에 긴 글을 쓰는 일도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작품을 꼼꼼히 읽어보는 사람이라면, 노골적인선전 글이라 해도 전업 정치인이 보면 엉뚱하다 싶은 부분이 꽤 많다는걸 알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에 갖게 된 세계관을 완전히 버릴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계속 살아 있는 한, 그리고 정신이 멀쩡 - P297

한 한, 나는 계속해서 산문 형식에 애착을 가질 것이고, 이 지상地上을사랑할 것이며, 구체적인 대상과 쓸모없는 정보 조각에서 즐거움을 맛볼것이다. 나 자신의 그러한 면모를 억누르려고 해봤자 소용없다. 내가할 일은 내 안의 뿌리 깊은 호오, 이 시대가 우리 모두에게 강요하는 본질적으로 공적이고 비개인적인 활동을 화해시키는 작업이다.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자면 문장의 구성과 표현에 있어서의 문제가 발생하며, 충실성의 문제가 새롭게 개입된다. 보다 투박한유형의 어려움이 있는 예를 하나 들어보자. 내가 스페인내전에 대해 쓴카탈로니아 찬가』는 물론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책이다. 하지만 대체로어느 정도 초연한 마음으로 형식을 고려하며 쓴 작품이다. 나는 이 책에서 나의 문학적인 본능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모든 진실을 말하기 위해상당히 애를 썼다.  - P299

그런데 다른 무엇보다 이 책엔 프랑코와 내통한다는혐의를 받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을 변호하는 신문 인용문 따위가 가득한긴장이 있다. 이와 같은 장은 1~2년 뒤면 일반 독자의 관심에서 멀어질, 말하자면 책을 망칠 게 뻔한 부분이었다. 내가 존경하는 한 평론가는 그 부분에 대해 내게 훈계를 했다. "그런 걸 뭐하러 다 집어넣어요? 좋은 책이 될 만한 걸 보도물로 만들어버렸잖아요." 그의 말은 옳았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영국에선 극소수의 사람들만 알수 있었던, 무고한 사람들이 억울한 혐의를 뒤집어쓰고 있다는 사실을어쩌다 알게 되었다. 그 사실에 분노하지 않았다면 나는 책을 쓸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다시 제기된다. 표현의 문제는 더 미묘한것이라 거론하자면 너무 길어질 것이다. 일단 내가 근년에는 기발하게쓰기보다는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해왔다는 점만 밝히기로 하자. 아무튼 - P299

내가 보기엔 어떤 스타일을 완성하고 나면 언제나 그 스타일을 벗어나게 되는 것 같다. ‘동물농장』은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십분 자각하면서)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해보려고 한 최초의 책이었다.
나는 7년 동안 소설을 쓰지 않았는데, 이제는 조만간 또 하나의 소설을쓰고 싶다. 그것은 실패작이 될 게 뻔하고, 사실 모든 책은 실패작이다.
단, 나는 내가 어떤 종류의 책을 쓰고 싶어 하는지 꽤 분명히 알고 있다.
마지막 한두 페이지를 돌이켜보니 내가 글을 쓰는 동기가 오로지 공공의식의 발현이라는 인상을 심어준 듯하다. 나는 그것이 마지막 인상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모든 작가는 허영심이 많고 이기적이고 게으르며, 글 쓰는 동기의 맨 밑바닥은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 P300

책을 쓴다는건 고통스러운 병을 오래 앓는 것처럼 끔찍하고 힘겨운 싸움이다. 거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귀신에게 끌려다니지 않는 한 절대 할수 없는 작업이다. 아마 그 귀신은 아기가 관심을 가져달라고 마구 울어대는 것과 다를바 없는 본능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자기만의 개별성을지우려는 노력을 부단히 하지 않는다면 읽을만한 글을 절대 쓸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동기들 중에 어떤 게 가장 강한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게 가장 따를 만한 것인지는 안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 P300

정치 대 문학: 『걸리버여행기』에 대하여


걸리버 여행기」에서 인간은 적어도 세 가지 각도에서 공격 또는 비판을 당하는데,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걸리버의 성격 자체가 조금씩변한다. 1부에서 그는 전형적인 18세기 항해자로서, 대담하고 실용적이며 비낭만적이다. 그의 수수한 면모는 교묘하게 독자들의 인상에 남는데, 그 장치는 도입부의 자세한 전기적 설명, 그의 나이(모험을 떠날 무렵마흔의 나이에 두 자녀를 두었다), 그의 주머니에 든 이런저런 물건들 특히여러 차례 등장하는 안경이다. 2부에서는 대체로 비슷한 성격을 보이나, 이야기가 요구하는 바에 따라 순간순간 ‘예술과 군사력의 여왕이자프랑스의 재앙인 고귀한 우리 조국‘이니 뭐니 하는 자랑을 늘어놓는 동시에 자신이 사랑한다고 공언한 조국에 관한 온갖 수치스러운 사실을누설하는 백치 같은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3부에서는 1부에서와 상당 - P301

스위프트가 이상으로 삼는 존재인 휴이넘인은 기계적인 감각에서도9뒤떨어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 금속의 존재를 모르고, 배라는 것이 있다는걸 들어본 적이 없고, 딱히 농사를 짓는다고도 할 수 없으며 그들의 주식인 귀리가 절로 자란다"는 말이 나온다), 아직 수레바퀴를 발명하지 못한것으로 보인다. 그들에겐 문자가 없으며, 물리적인 세계에 대하여 아무래도 별 호기심이 없는 듯하다. 그들은 자기네 말고는 사람이 사는 나라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며, 해와 달의 운행과 일식·월식의 본질을 이해하긴 하지만, "그게 그들이 가진 천문학의 최고 수준"일 뿐이다. 그에 반해 날아다니는 섬 라퓨타의 학자들은 언제나 수학적인 사색에 골몰해 있어서 그들에게 말을 걸려면 풍선으로 귀를 찰싹 때려줘야만 주목을 끌 수 있다. 그들은 1만 개의 항성을 분류했고, 93개 혜성의 주기를 산출했으며, 화성에 2개의 위성이 있다는 것을 유럽의 천문 - P309

학자들보다 먼저 알아냈다. 그런데 이 모든 정보를 스위프트는 우스꽝스럽고 무익하고 시시한 것으로 여기는 게 분명하다. 예상할 수 있는 바와 같이, 그는 과학자의 본분은(본분이라는 게 있기는 하다면) 실험실에 있는 것이며 과학 지식은 정치 문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것이다.


내가 ……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이 뉴스와 정치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갖는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쉴 새 없이 사회문제에 대해 알려고 하고, 나랏일에 대해 왈가왈부하며, 정당의 견해에 대해 조목조목 논쟁을 하는것이었다. 나는 내가 아는 ‘유럽의 수학자들 대부분에게서도 같은 성향을관찰한 바 있다. 나로서는 두 분야 사이에서 아무런 유사성도 발견할 수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것은 그들이 아무리 작은 원도 아주 큰 원과 각도가 같다는점에서, 세계를 단속하고 관리하는 일이 지구의를 만지고 돌리는 것보다 더한 능력을 요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P310

우리는 그가 걸리버 여행기』의 3부를 쓰지 않았다 하더라도,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 그가 톨스토이나 블레이크처럼 자연의 이런저런 작용을 연구한다는 생각 자체를 혐오한다는 추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휴이넘인의 속성으로서 그토록‘찬미하는 ‘이성‘의 우선적인 뜻은 관찰되는 사실로부터 논리적 추론을 이끌어내는 힘이 아니다. 그보다는 딱히 말은 안 해도, 대부분의 문맥에서 상식(즉 명백한 것은 받아들이고 억지나 추상을 경멸하는 것)을, 또는걱정이나 미신이 없는 것을 뜻한다. 대체로 그의 견해는, 우리는 알아야할 것들을 이미 다 알고 있으며 우리의 지식을 오용하고 있을 뿐이라는것이다. 이를테면 의학이 무용한 학문인 것은, 우리가 보다 자연적인 생활을 하면 병이 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위프트는 생활을간소하게 하자거나 ‘고결한 야만인‘이 되자고 하는 게 아니다. 그는 문명에도, 그 산물인 온갖 기술에도 찬성한다. 그는 훌륭한 예의범절과 대화법의 가치를, 심지어 문학이나 역사 같은 공부의 가치를 인정할 뿐만아니라, 농업이나 항해나 건축을 연구할 필요가 있으며 유리하게 발전시킬 수 있다는 점도 알고 있다. - P311

먼저, 스위프트는 건설적‘ 이면서 ‘진보적‘ 이기까지 한 면모를 이따금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유토피아 문학에서 종종 일관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활력이 있다는 증거라고 해도 좋으며, 스위프트는 풍자적이기만 해야 할 부분에 때때로 찬사를 끼워넣곤 한다. 그래서 아동교육에 관한 그의 견해는 릴리푸트인의 그것과 같으며, 릴리푸트인은그 문제에 관해 휴이넘인과 같은 견해를 갖고 있는 것이다. 또한 릴리푸트인은 스위프트가 자기 조국에도 보급되길 바라는 다양한 사회제도와법률제도를 갖추고 있다(이를테면 노령연금 제도가 있으며, 법을 어기면 벌을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키면 보상을 받는 제도가 있다). 스위프트는 이 구절한가운데서 자신의 풍자적 의도를 기억하고는 이렇게 덧붙이기도 한다.
"이상과 이하의 각종 법률들에 관하여, 내가 말하는 건 본래의 제도이지 인간의 퇴폐적 본성 때문에 이 사람들이 빠져든 더없이 추악한 부패상을 가리키는 건 아니라고 해야 말뜻이 이해될 것이다."  - P313

스위프트는 톨스토이, 즉 행복의 가능성을 불신했던 또 한 사람과 상당히 비슷하다(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더 그렇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선 두 사람 다 무정부주의적 관점을 지녔고, 그것은 권위주의적 기질을 감추는 노릇을 했다. 또한 과학에 적대감을 느끼고, 반대자의 견해를 참지 못하며, 자신이 흥미를 못 느끼는 문제의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같다. 그리고 톨스토이의 경우엔더 늦게 다른 경로로 찾아왔지만, 둘 다 인생살이 자체에 일종의 혐오감을 느꼈다. 두 사람의 성적인 불행은 같은 종류의 문제가 아니었으나,
둘다 혐오의 본질이 병적인 집착과 뒤섞여 있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톨스토이는 개심한 방탕자로서 만년엔 완전한 성적 금욕 생활을 설교했으나, 자신은 고령이 되도록 계속해서 정반대의 생활을 했다. 스위프트는성불구였던 것으로 보이며, 사람 똥을 지나치게 혐오했는데, 그러면서도 그의 작품들 도처에 분명히 드러나듯 끊임없이 똥 생각을 했다.  - P319

그런가 하면 시에 대한 취미가 그들의 자질 중에 두드러지는 것은, 시가 스위프트의 관점에서 가장 무익한 추구인 과학에 대립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일 수 있다. 3부에서 그는 라퓨타의수학자들에게 전적으로 결여된 바람직한 능력으로 "상상, 공상, 창의"
를 지목한다(그들은 음악을 아주 좋아하긴 한다). 여기서 우리는 스위프트가해학시의 명수이긴 해도 그가 가치 있다고 생각한 시는 아마도 교훈시에 더 가까웠으리란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는 휴이넘의 시에 대해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에 관해서라면 다른 어떤 존재보다 뛰어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비유의적절함, 묘사의 정확함과 세밀함은 도무지 흉내낼 수 없을 정도다. 그들의 시는 이 두 가지 점에서 아주 뛰어나며, 대개 우정과 박애의 관념을 고양하거나경주 등 운동의 우승자를 찬미하는 내용이다. - P322

지적으로 공평무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과 입장이 전혀 다른작가의 장점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즐기는 건 다른 문제다. 좋거나 나쁜 예술이란 게 있다고 한다면, 좋거나 나쁜 속성이 예술작품 자체에 (그것도 보는 사람보다는 보는 사람의 기분과 전혀 무관하게 존재해야 한다. 때문에 어느 시에 대해 월요일에는 좋고 화요일에는 나쁘다고 평한다면, 어떤 의미에서 옳을 리 없는 말이다. 그러나 그 시가 불러일으키는 감상感想에 따라 판단한다면, 그 말은 분명 옳을 수 있다. 왜냐하면 감상이나 향유는 주관적인 상태이며, 남이 강요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교양있는 사람이라도 깨어 있는 시간의 상당 부 - P324

분을 아무런 미적 감정 없이 보내며, 감정을 느끼는 능력은 너무나 간단히 훼손될 수 있다. 공포나 허기에 시달리거나 치통이나 뱃멀미를 앓을때, ‘리어왕』은 『피터 팬보다 하등 나을 게 없을 수 있다. 지적으로는더 낫다는 걸 알 수 있을지 몰라도, 그야 기억하는 사실일 뿐이다. 『리어왕의 장점을 ‘느끼게 되려면 정상 상태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미적인 판단은 정치적이거나 도덕적인 의견 차이 때문에 마찬가지로 극심하게(이 경우 원인을 알아차리기가 더 어려우므로 더 심할 수 있다) 뒤바뀔 수 있다. 어떤 책 때문에 노하거나 마음의 상처를 받거나 놀랄 경우, 책의 장점이 무엇이든 즐기지 못할 수 있다. 책이 자신에게 대단히 해롭거나 남들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방식으로 영향을 끼칠 것 같아 보인다면, 그 책에 아무런 장점도 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미학 이론을 세울 수도 있다. 오늘날의 문예비평이란 주로 그런 두 가지 기준 사이를 교묘히 오가는 식이다. 그런가 하면 정반대의 경우도 발생한다.  - P325

우리 마음의 일부는(정상인의 경우 가장 우세한 부분이다) 인간이 고귀한 동물이며 삶은 살 만한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에 비해적어도 이따금씩은 존재의 끔찍스러움에 아연실색하는 일종의 내적 자아 같은 게 있는 것이다. 참으로 묘하게도, 쾌락과 혐오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인간의 신체는 아름답다. 그런가 하면 인체는 역겹고 우스꽝스럽기도 한데, 이는 아무 수영장에나 가보면 확실히 검증할 수 있는 사실이다. 인간의 성기는 갈망의 대상이기도 하고 혐오의 대상이기도 한데,
예컨대 다는 아니어도 많은 언어에서 성기의 명칭 자체가 욕설로 쓰인다. 고기는 맛있지만 푸줏간에 가면 속이 메스꺼워진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은 궁극적으론 다른 무엇보다 우리가 끔찍스러워하는 똥과 시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유아기를 지나도 세상을 여전히 새로운 눈으로 보며, 경이로움 못지않게 혐오스러움에도 마음이 움직인다. 이를테면 코딱지와 침, 인도에 싸놓은 개똥, 구더기가가득한 채로 죽어가는 두꺼비, 어른의 땀 냄새, 대머리에 주먹코인 노인의 흉한 몰골이 주는 혐오감에도 크게 끌리는 것이다.  - P327

흔히들 어떤 책이 명백히 그릇된 인생관을 표방한다면 ‘좋은 책이라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하곤 한다(적어도 주제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사람들은그렇게 주장한다). 예컨대 우리는 우리 시대에 진정한 문학적 장점을 지닌책은 어느 정도 ‘진보적‘ 성향을 보인다는 말을 듣곤 한다. 그런데 이는사실을 무시하는 말이다. 역사를 통틀어 지금과 같은 진보 대 반동의 투쟁은 언제나 있어왔으며, 어느 시대든 최고의 양서들은 항상 다양한 관점을(다른 것들에 비해 명백히 잘못된 관점들까지도) 반영해왔던 것이다. 어느 작가가 선전원 노릇을 하는 한, 우리가 그에게 요구할 수 있는 최선은 그가 자신이 하는 말을 진정으로 믿을 것, 그리고 심하게 어리석은말은 하지 않을 것 정도다. 오늘날에는 이를테면 가톨릭 신자나 공산주의자, 파시스트, 평화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또는 옛날 스타일의 자유주 - P328

14의자나 일반 보수주의자가 좋은 책을 쓸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심령술사나 부크먼 추종자, KKK 단원이 좋은 책을 쓸 거라는 생각은할 수 없을 것이다. 작가의 관점은 정신건강 차원의 온전함, 그리고 자기 생각을 밀어붙이는 힘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 이상으로 우리가요구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재능일 것이며, 그것은 확신의 다른 이름이라할 수 있을 것이다. 스위프트는 정상적인 의미의 지혜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서울 정도로 강렬한 비전은 확실히 갖고 있었으며, 그것은 숨겨진 진실 하나를 골라내어 확대하고 비틀어서 볼 줄 아는 능력이기도 했다. ‘걸리버 여행기』가 오랜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작가의 세계관이 온전함이라는 기준을 겨우 만족시키는 수준일지라도, 작가의 확신이 뒷받침해준다면 위대한 예술 작품을 충분히 낳을 수 있음을 알게 된다. - P329

가난한자들은 어떻게 죽는가


1929년, 나는 파리 15구에 있는 병원‘ ‘에서 몇 주를 보낸 적이 있다. 병원 창구 직원들은 접수처에서 내게 통상적인 고문 코스를 거치게했다. 한 20분 내내 질문에 답하게 만들고 나서야 나를 받아주었던 것이다. 라틴계 국가에서 서식을 작성해본 사람이라면 내가 말하는 질문이란 게 어떤 것인지 알 것이다. 그때까지 며칠 동안 나는 열씨를 화씨로 환산할 줄 몰랐지만 내 체온은 화씨 103도 정도였고, 면담이 끝날무렵에는 내 발로 서 있기가 힘들 정도였다. 내 뒤로는 체념한 환자들무리가 색색의 보따리를 들고서 질문 받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질문 다음은 목욕이었다. 감옥이나 구빈원의 경우처럼 새로 온 사람이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과정인 듯했다. 옷을 다 벗어서 내놓은 다음,
나는 깊이가 5인치밖에 안 되는 미지근한 온탕에 앉아 몇 분을 덜덜 떨다가 리넨 잠옷과 짧은 파란색 플란넬 가운을 지급받은 뒤(슬리퍼는 내 - P331

그것은 운 좋은 사람들, 즉 늙을 때까지 사는 사람들이 맞이하는 죽음이었다. 사람은 물론 살고 싶어 하며,죽음에 대한 두려움 덕분에 계속 살아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때이후로 나는 험하게, 그리고 너무 늙지 않았을 때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을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전쟁의 참상에 대해 얘기하곤 하는데, 인간이 만들어낸 무기치고 서민이 병으로 죽어가는 참혹함에 근접이라도 하는 게있을까? ‘자연사 란 정의상 더디고 냄새나고 고통스러운 무엇이어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연사를 하더라도 공공시설이 아니라자기 집에서 죽음을 맞을 수 있다면 질적으로 다른 일이다. 거의 다타버린 초처럼 깜빡깜빡하다 꺼져버린 그 가련한 노인은 임종하는 사람하나 없을 정도로 하찮았다. 그는 숫자 하나에 불과했으며, 의대생들의해부 ‘교재 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장소에서, 아무나 다 보는 데서죽어가는 비참함이란!  - P338

나는 옷을 되찾고 걸어다닐 정도가 되자마자, 때가 되어 정식으로 퇴원을 하기 전에 X병원을 탈출해버렸다. 그곳이 내가 탈출한 유일한 병원인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음침함과 삭막함, 불쾌한 냄새,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병원 특유의 묘한 정서적 분위기는 내 기억 속에 예외적인것으로 남아 있다. 내가 그 병원에 간 것은 그곳이 내가 거주하는 지구에 있었기 때문이며, 나는 입원한 뒤에야 그곳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알 수 있었다. 내가 나오고서 1~2년쯤 뒤에는 저명한 사기꾼인 아노Hanaud 부인이 수감 중에 병이 들어 X병원으로 실려갔다가, 며칠 뒤 간수들을 용케 따돌리고 택시를 타고서 교도소로 돌아가서는 감옥이 더편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X병원은 그 시절에도 프랑스에서 꽤 별난병원이었던 게 분명하다. 거의 대부분이 노동자인 그곳 환자들은 놀라울 정도로 체념적이었다. 그들 중 일부는 그만하면 지낼 만하다고까지여기는 것 같았다. 적어도 두 사람은 겨울을 나기 좋겠다는 생각으로 입원한 가난한 꾀병 환자였던 것이다. 간호사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체했는데, 꾀병 환자들이 허드렛일을 자청함으로써 도움이 되었던 까닭이다. - P340

하지만 대다수의 태도는 이런 것이었다. 물론 여긴 형편없는 곳이다. 하지만 더 이상 뭘 기대하겠는가?‘ 그들에게는 새벽 5시에 깨워져3시간을 기다린 후에 멀건 수프를 먹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해야 하는것도 아무도 곁에 있어주지 않는 가운데 사람이 죽어야 하는 것도, 심지어 치료받을 기회조차 의사가 지나칠 때 얼마나 눈길을 잘 끄느냐에달려 있다는 것도 별난 일이 아니었다. 그들이 살아온 바에 따르면 병원이란 으레 그런 곳이었다. 심각하게 아프면 그리고 자기 집에서 치료를받을 만한 형편이 못 되면 병원에 가야 하는 것이고, 일단 병원에 가면군대에 간 기분으로 거칠고 불편한 환경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건, 지금 영국인의 기억에선 거의 사라져버린 옛이야기들, 이를테면 순전히 호기심 때문에 메스를 들이대거나 마땅한 권한을 위임받기도 전에 수술부터 해버리는 걸 즐겁게 여기는 의사에 대한 이야기들 - P341

극빈자들 사이에선 아직도 남아 있을 터이며,
일반인들의 경우에도 최근에 와서야 사라졌다. 그것은 우리 의식의 표피 속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발견되는 어두운 일면이다. 앞에서 나는 X병원의 병동에 들어가면서 묘한 익숙함을 의식했다는 말을 했다. 그 풍경에서 내가 떠올린 것은 물론 악취가 진동하고 고통이 가득한 19세기의병원이었고, 그것은 내가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사람들 사이에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로 알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무언가가, 아마도 너저분한 검은 가방을 든 검은 옷 차림의 의사가 아니면 단지 그 지독한 악취가 내 기억 속에서 20년 동안 잠들어 있었던 테니스의 시 「아동병원」을들추어내는 요술을 부린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어릴 때 간호사에게 그시를 소리내어 읽어달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 간호사는 테니슨이 그시를 쓴 당시에도 간호사 노릇을 했을지 모를 정도로 나이가 많았다. 그녀에겐 그 옛날 병원의 공포와 고통이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우리는 그 시를 함께 읽고 들으며 몸서리쳤고, 그뒤로 나는 그 시를 잊고살았다. 시 제목을 들었다 해도 아무 기억도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 P345

리어, 톨스토이 그리고 어릿광대


톨스토이의 팜플렛 글들은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덜 알려져 있으며,
그중에 셰익스피어에 대한 공격‘은 적어도 영어 번역본으로는 구하기조차 쉽지 않은 문헌이다. 그러니 이 팜플렛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그 내용을 요약해보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톨스토이는 셰익스피어가 자신에게 평생 "어찌할 수 없는 반감과 따분함"을 불러일으켰다는 말부터 시작한다. 문명 세계의 평가가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걸 의식한 그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러시아어와 영어와 독일어로 읽고 또 읽기를 거듭했으나 "매번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말한다. 그것은 "반감과 지루함과 당혹감‘이었다. 그러던 그는 75세가된 마당에 셰익스피어의 전작을 역사극까지 포함하여 전부 다시 읽어보고는 이렇게 소감을 밝히고 있다.
- P347

셰익스피어의 명성이 ‘시작‘ 된 정황에 대하여, 톨스토이는 18세기 말독일 교수들의 "자극"이 있었다는 설명을 단다. 그의 명성은 "독일에서발원한 다음 영국으로 전이됐다"는 것이다. 톨스토이의 말로는 독일인들이 셰익스피어를 띄우기로 한 것은 이렇다 할 독일 드라마는 없고 프랑스 고전문학은 딱딱하고 인공적인 느낌을 주기 시작하던 무렵, 셰익스피어의 "기발한 장면 전개에 사로잡히고 그에게서 자신들의 인생관이 표현되고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괴테가 셰익스피어를 위대한시인이라 칭송하자, 다른 모든 비평가들이 앵무새 군단처럼 떼를 지어그를 따랐고, 그뒤로 다같이 셰익스피어에게 홀리는 현상이 지속됐다는것이다. 그 결과 드라마는 질이 더욱 떨어졌고(톨스토이는 당대의 연극판을힐난하면서 자신의 희곡들도 포함시키는 세심함을 발휘한다) 보편화된 도덕관은 더욱 타락하게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이어서 톨스토이는 "셰익스피어에 대한 그릇된 찬미" 가 그 자신이 싸울 의무를 느끼는 중요한 해악이라고 말한다. - P352

톨스토이의 팜플렛을 읽은 영어권 독자의 눈에 제일 먼저 띄는 점 하나는 글이 셰익스피어를 시인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책자에서 셰익스피어는 극작가로 다뤄지며, 그의 인기가 위조된 게 아니라면 그 인기의 비결은 영리한 배우들에게 좋은 기회를 주는 연출에 있다는게 톨스토이의 주장이다. 그런데 적어도 영어권 나라들만 놓고 볼 때그런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셰익스피어 애호가들이 가장 높이 사는 희곡들(이를테면 ‘아테네의 타이먼)은 좀처럼 또는 아예 상연되지 않으며,
반면에 제일 공연하기 좋은 한여름 밤의 꿈』같은 작품은 제일 추앙을덜 받는 까닭이다. 셰익스피어를 제일 좋아하는 사람들이 으뜸으로 꼽는 그의 장점은 언어 구사력이다. 이는 또 한 명의 혹독한 비판자인 버나드 쇼 같은 사람도 "저항할 수 없는" "언어 음악으로 인정하는 바이다. 하지만 톨스토이는 그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며, 시가 해당 언어를구사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가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모르는 듯하다. 그런가 하면 톨스토이의 입장이 되어 셰익스피어를 외국 시인으로생각하려 해도 톨스토이가 빠뜨린 무언가가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 P355

톨스토이는 성인은 아니었지만 성인이 되기 위해 몹시 노력했으며, 그가 문학에 적용한 기준은 탈속적인 것이었다. 성인과 범인의 차이는 정도가 아닌 부류의 차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달리 말해범인을 성인의 불완전한 형태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튼 톨스토이가 생각하는 유의 성인은 속세의 삶을 개선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그런 삶을 끝내고 그 대신에 다른 걸 갖다놓으려고 한다. 그런 태도를 확실히 표현해주는 것이 결혼보다는 금욕적 독신 생활이 더
‘고매‘ 하다는 주장이다. 톨스토이는 사실상 우리가 번식과 싸움과 투쟁과 향유를 그만둘 수만 있다면, 우리의 죄뿐만 아니라 우리를 지상에 묶어두는 다른 모든 것들(한 인간을 다른 인간보다 편애한다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사랑을 포함해서)을 제거할 수만 있다면, 모든 고통스러운 과정끝나버리고 하늘나라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 P364

톨스토이가 팜플렛에서 말한 대로라면, 톨스토이는 셰익스피어에게선 아무 장점도 발견할 수 없었으며, 동료 작가인 투르게네프나 페트‘등과 같은 이들의 생각이 자신과 다른 것을 보고 언제나 몹시 놀라곤 했다. 우리는 거듭나지 않았던 시절의 톨스토이였다면 이런 결론을 내렸으리라 확신해도 좋을 것이다. "당신은 셰익스피어를 좋아하고, 나는안 좋아할 뿐. 그쯤만 해두자." 그러다 나중에 세상엔 온갖 일이 다 있기마련이라는 인식이 그를 떠나버리자, 그는 셰익스피어의 글이 자신에게위험한 무엇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셰익스피어에게서 더많은 즐거움을 발견할수록 톨스토이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니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걸 누구에게도 허용해선 안 되듯이, 셰익스피어를 즐기는 걸 누구에게도 허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물론톨스토이는 강제로 막으려 하지는 않았다. 그는 경찰이 셰익스피어의책들을 전부 압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에 그는 할 수만 있다면 셰익스피어에 대해 심술을 부리려고 한다. 그는 모든 셰익스피어 애호가의 마음속에 들어가 생각할 수 있는 온갖 수법(그의 팜플렛을요약하며 언급한 바와 같이 자기모순적이거나 정직성이 의심되는 주장들을 포함한다)을 동원해 그들의 기쁨을 말살하려 한다. - P370

그런 시험이 타당하다면,나는 셰익스피어 건에 대한 판결은 ‘무죄‘ 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모든 작가들처럼, 셰익스피어 역시 조만간 잊혀질 것이다. 그러나 그에 대해서는 더 호된 고발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톨스토이는아마도 당대에 가장 존경받은 문인이었을 것이며, 팜플렛 작가로서의실력도 떨어지는 편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셰익스피어를 향해 전함의모든 포문을 한꺼번에 열듯이 온 힘을 다해 비난을 퍼부었다. 결과는 어찌 됐는가? 40년이 지난 지금, 셰익스피어는 아무 영향도 받지 않은 채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그리고 그를 쓰러뜨리려는 시도는, 누렇게 바랜팜플렛 종잇장들 외에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 거의 아무도 읽지 않는,
만약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의 작가마저도 아니었다면, 완전히 잊혀졌을 팜플렛 말이다. - P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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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좋을대로


어느 기고자가 나를 "부정적"이고 "언제나 무언가를 공격하는 사람이라며 꾸짖었다. 사실 우리는 크게 기뻐할 일이 별로 없는 시대를 살고있다. 하지만 나는 칭찬할 게 있을 땐 기꺼이 칭찬하는 사람이다. 그러면 여기서 울워스‘에서 산 장미에 대한 칭찬 몇 줄을 적어볼까 하는데,
지나간 일에 대해서라는 건 유감이다.
울워스의 물건값이 6페니를 넘어가는 게 없던 좋은 시절, 가장 괜찮은 것 중 하나가 장미였다. 그것들은 아주 어린 묘목이었지만 두 번째해가 되면 꽃이 폈는데, 내 경우엔 한 그루도 죽은 적이 없다. 제일 재밌는 건 꼬리표가 맞게 붙은 장미는 아예 없거나, 있어도 극히 드물었다는점이다. 한 번은 ‘도로시 퍼킨스‘ 장미인 줄 알고 산 게 피고 보니 속이노란 예쁜 백장미였는데, 내가 본 덩굴장미 중에서 최고였다. 노랑 폴 - P175

리앤사 장미라는 꼬리표가 붙은 건 피고 보니 짙은 빨강이었다. 또 한번은 앨버턴 장미라고 해서 산 게, 앨버턴을 닮긴 했지만 꽃잎이 더 많아 아주 화사했다. 이 장미들은 하나같이 깜짝 과자 봉지 같은 재미를선사했고, 언제나 뜻밖의 새로운 품종이 나타나 별난 이름을 붙여봄 직한 기회를 누리게 해주었다.
지난여름 나는 전쟁 전에 살던 작은 시골집‘을 지나가게 되었다. 내가심을 땐 아이들 새총보다 크지 않았던 조그만 백장미가 거대하고 왕성하게 우거져 있었고, 앨버틴 또는 그 비슷한 무엇은 분홍 꽃송이를 구름처럼 터뜨린 채 울타리 절반을 뒤덮고 있었다. 둘 다 내가 1936년에 심은 것들이었다. 그때 떠오른 생각은 전부 겨우 6 페니 주고 산건데!" 였다. 나는 장미가 얼마나 오래 사는지 알지 못한다. 평균수명이 10년은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살아 있는 동안 내내, 덩굴장미는 해마다 한달 내지 6주 동안 꽃이 활짝 피어 있을 것이고, 덤불장미는 적어도 넉달에 걸쳐 꽃이 피고 지기를 거듭할 것이다. 전부 겨우 6 페니 주고 산것이었다. 전쟁 전 기준으로 플레이어‘ 담배 10개비, 마일드 생맥주 한잔반, <데일리 메일 일주일 구독료, 공기 텁텁한 극장에서 보는 영화20분 정도에 해당하는 값이었으니! - P177

민족주의 비망록


바이런은 어디선가 ‘롱괴르 longueur‘라는 프랑스어 단어를 쓰면서지나가는 말로, 영국에는 딱히 그런 ‘단어‘는 없지만 그런 ‘개념‘은 상당히 많다고 언급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심리 습성 중에는 워낙 두루 퍼져 있어서 거의 모든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끼치면서도 아직 이름은 없는 게 존재한다. 그런 것 중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나는 ‘민족주의nationalism‘라는 단어를 골라봤다. 단, 여기서 내가 말하는 민족주의가 일반적인 의미와는 좀 다르다는 건 잠시뒤에 밝히도록 하겠다. 그것은 내가 민족주의라는 말로 이야기하고자하는 감정이 민족nation이라는 것, 즉 단일한 인종이나 지리적 영역에만 속하는 건 아니라는 점만으로도 그렇다. - P179

우선 여기서 내가 말하는 ‘민족주의‘는, 인류를 곤충 분류하듯 나눌수 있으며 수백만이나 수천만 명의 사람들을 싸잡아 좋으니 나쁘니 하는 딱지를 붙일 수 있다고 여기는 모든 습성을 뜻한다. 그런가 하면 둘째로는(이게 훨씬 더 중요하다) 자신을 단일한 나라 또는 다른 집단과 동일시하되, 그것을 선악을 초월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그것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것만이 전부라고 여기는 습성을 뜻한다. 그리고 민족주의를애국주의와 혼동해선 안 된다. 두 단어 모두 대개 아주 모호하게 쓰이고있기 때문에 어떤 정의든 시도해볼 수 있겠지만, 둘 사이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대립되는 개념들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애국주의patriotism‘ 란 특정 지역과 특정 생활양식에 대한 애착이며, 그것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라 믿되 남들에게강요할 마음은 없는 것이다. 애국주의는 속성상 군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방어적이다. 그에 비해 민족주의는 힘에 대한 욕구와 분리할 수 없다. 모든 민족주의자의 변치 않는 목적은 더 많은 세력과 위신을 확보하는 것이며, 그것은 자신을 위한 게 아니라 자신의 개성을 억누르고서 섬기기로 한 나라로 또는 다른 어떤 집단을 위한 일이다. - P180

이런 개념은 독일이나 일본 등의 나라에서 있었던 보다 악명 높고 알아보기 쉬운 민족주의 운동에 적용하면 모든 게 명백해진다. 바깥에서볼 수 있는 입장에서 나치즘 같은 현상과 대면할 경우, 그것에 대한 의견은 거의 모두가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앞서 언급한 말을되풀이해야 한다. 즉, 내가 ‘민족주의‘ 란 단어를 사용하는 건 더 나은말이 없기 때문일 뿐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보다 확대된 의미의 민족주의는 공산주의, 정치적 가톨릭주의, 유대주의, 반유대주의, 트로츠키주의, 평화주의와 같은 운동과 경향들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것은 반드시 어느 정부나 국가에 대한 충성을 뜻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 ‘조국‘
에 대한 충성은 더더욱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대상으로 삼는 집단이 실제로 꼭 존재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 분명한 예로 유대민족, 이슬람,
기독교계, 프롤레타리아, 백인종을 들 수 있는데, 모두 열렬한 민족주의적 감정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정말 존재하는지는 중대한 의문점일 수 있으며, 그중 어느 하나에도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정의가 없다. - P181

모든 민족주의자는 과거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다. 그는 자기 시간의 일부를 역사적 사건이 자기가 바라는 대로 일어나는 공상의 세계(이를테면 스페인 무적함대가 승리를 거두거나 러시아혁명이 1918년에 분쇄되는 세계)에서 보내며 이 세계의 단편들을 가능한 한 역사책에다옮겨놓으려고 한다. 우리 시대 선전선동가의 저술 중 상당수는 노골적인 허위에 해당한다. 구체적인 사실은 억압당하고, 날짜가 바뀌어버리며, 인용은 맥락이 제거되고 조작되어 의미가 달라져버린다. 일어나지말았으면 싶은 사건들은 언급되지 않고 있다가 결국 부인되고 만다. - P192

객관적 사실에 대한 무관심은 세상의 일부가 다른 일부로부터 완전히차단되는 바람에 더욱 부추겨지며, 그 때문에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러다보면 어마어마한 사건들이 정말 벌어지고 있는지를 의심하는 경우도 흔히 생겨나곤 한다. 예를들어 지금의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수백만 아니 수천만 단위로도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계속해서 보도되는 참화들(전투, 학살,
기근, 혁명)은 일반인들에게 비현실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경향이 있다. 그들로선 사실을 검증할 만한 방법이 없고, 그런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는 확신을 갖기도 어려우며, 항상 각기 다른 출처에서 비롯된 서로 완전히 다른 해석들만을 접하게 되는 것이다. - P193

지금까지 나름의 분류를 해봤는데, 내가 좀 과장도 하고, 지나친 단순화도 하고, 근거 부족한 추측도 하고, 그럴싸한 동기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가피한 일이었다. 이 에세이에서 내가 따로 떼어놓고 규명하고자 한 경향들은 우리 모두의 심리에 존재하면서 우리의 정상적인 생각을 방해하는데, 그게 딱히 순전한 상태에서발생하거나 지속적으로 작용하는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대목에선 내가 지나치게 단순화할 수밖에 없었던 부분을 어느 정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먼저, ‘모두가 아니면 모든 지식인이 민족주의에감염된다고 여길 수는 없는 일이다.  - P202

지금까지 나는 민족주의자가 이렇게 한다느니 저렇게 한다느니 하는얘기를 했다. 그것은 마음속에 중립지대라곤 없으며 세력 투쟁 외에는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는, 극단적이고 거의 광적인 민족주의자를 예로들기 위해서였다. 한데 그런 사람은 실제로 꽤 흔하기 때문에 굳이 여기서 애써 언급할 가치는 없다. 실생활에서 엘튼 경이나 ID. N. 프릿Pritt,
휴스턴 준남작 부인, 에즈라 파운드, 반시타트Vansittart 경, 코린Coughlin 신부 등과 같은 지겨운 족속들은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이지만,
그들의 지적 결함은 여기서 굳이 지적할 필요도 없다. 편집은 재미가없으며, 상대적으로 더 고집불통인 민족주의자치고 몇 년 뒤에도 읽을만한 가치가 있어 보이는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은 어느정도 악취를 제거하는 노릇을 한다.  - P203

이 모든 사실들은 각 당사자의 감정이 개입되지 않을 때에는 명명백백하다. 하지만 각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에게 그런 사실은 ‘용인‘이 불가능한 것이므로 부인되어야 하며, 그런 부인을 바탕으로 잘못된 가설이 세워진다. 앞에서 언급한 지금 전쟁의 잘못된 군사적 예측 이야기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내가보기엔 지식인들이 일반인들에 비해 전쟁의 진척 상황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게 더 많으며, 그것은 그들이당파적인 감정에 더 휩쓸렸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옳은 것 같다. 예컨대일반적인 좌파 지식인들은 1940년엔 전쟁은 이미 진 셈이라 여겼으며,
1942년엔 독일이 이집트를 차지할 것이라 믿었고, 일본은 점령한 땅에서 절대 밀려나지 않을 것이며 영미 연합군의 폭격은 독일에 별 인상을남기지 못할 것이라 믿었다.  - P205

그렇게 믿었던 건, 영국 지배계급에 대한미움이 워낙 커서 영국의 계획이 성공한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감정에 휩싸인다면 어떤 바보짓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 없다. 예컨대 나는 미군이 유럽에 진주한 게 독일군과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국의 혁명을 분쇄하기 위해서였다는 발언을확신을 갖고서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런 식의 말을 믿는 사람은 틀림없이 지식층에 속할 것이다. 일반인이라면 그런 바보 같은 말을 믿을리가 없다. 히틀러가 러시아를 침공했을 때, 정보부 관리들은 러시아가6주 안에 점령당할지 모른다는 경고를 일종의 ‘배경 지식‘으로 내놓은바 있다. 그에 비해 공산주의자들은 전쟁의 매 국면을 러시아의 승리로여겼으며, 러시아인들이 거의 카스피 해로 내몰리고 포로 수백만 명이 - P205

목숨을 잃을 때조차도 그랬다. 더 많은 사례를 예로 들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요는 두려움, 증오, 질투, 그리고 세력에 대한 숭배가 개입되자마자, 현실감각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무엇이옳고 그른가에 대한 감각마저도 상실하게 된다. ‘우리‘ 편이 저지른 짓이면 어떤 범죄도 용서받지 못할 게 없다. 어떤 범죄가 저질러졌다는 걸부인하지는 않는다 해도, 다른 경우엔 비난했던 범죄가 똑같이 저질러졌다는 걸 알았다 해도, 그것이 부당하다는 걸 지적인 차원에서 인정한다 해도-그것이 잘못됐다고 느낄 수는 없는 것이다. 충성이 개입되면 연민이 기능을 멈춰버리는 것이다.
민족주의란 게 생겨나고 확산되는 이유는 여기서 제기하기엔 너무나큰 주제다. 영국 지식인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양상으로 보건대 민족주의는 외부 세계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는 무시무시한 싸움의 왜곡된 반영이라고, 민족주의가 더없는 우매함을 낳은 건 애국주의와 종교적 신앙이붕괴된 탓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 P206

그리고 이런 식으로 생각을 따라가다보면 일종의 보수주의나 정치적 정적주의로 빠져들 위험이 있다. 이를테면 애국주의는 민족주의에 대한 일종의예방책이고, 군주제는 독재 정권에 대한 보호 장치이며, 조직화된 종교는 미신에 대한 안전장치라는 주장이 그럴듯해지는 것이다(어쩌면 옳을지도 모른다). 편파적이지 않은 관점이란 불가능‘ 하며, ‘어떤‘ 신조나 대의든 다를 바 없는 거짓과 우매와 야만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나올 수 있다. 그리고 정치는 아예 멀리해야 한다는 근거로 그런 주장이흔히 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 지금의 세계에서는 지식인이라 할 만한 그 누구도 무관심해진다는 의미에 - P206

서 정치를 멀리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렇다. 나는 지식인이라면 정치에(넓은 의미의 정치를 말한다) 개입할 수밖에 없으며 나름의 선호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즉, 똑같이 나쁜 수단과 더불어 제시된다 하더라도, 어떤 대의가 다른 대의보다는 객관적으로 낮다는 인식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민족주의적 애증에대해 다시 말하자면, 그런 애증은 우리 마음에 들건 안 들건 우리들 대부분이 가진 기질의 일부인 것이다. 그런 기질을 없앤다는 게 가능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에 맞서 싸우는 것은 가능하며 그런 투쟁은 본질적으로 ‘도덕적 노력이라고 확신한다. 이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이과연 어떤 사람인지 자신의 감정이 과연 어떤 것인지를 알아내는 문제이며, 그다음으로는 불가피한 편견의 여지를 두느냐의 문제다.  - P207

러시아를 증오하고 두려워한다면, 미국의 부와 세력을 부러워한다면, 유대인을 경멸한다면, 영국 지배계급에 대하여 열등감을 갖고 있다면, 그런 감정을 생각만으로는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감정을 갖고 있다는 걸 인식할 수는 있으며, 그것 때문에 사고 과정이 오염되는 일은 방지할 수 있다. 피할 수 없으며 어쩌면 정치적 행동을 위해 필요하기까지한 정서적 충동은, 사실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병존할 수 있어야 한다.
단, 거듭 말하지만 거기엔 도덕적 노력이 요구되는데, 우리 시대의 주요한 문제에 대하여 최소한 죽어 있지는 않은 동시대 영국문학만 놓고봐도 우리들 가운데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 이는 너무나 적다는 걸 알수 있다. - P207

그게 사실이었다면 역사의 모든 흐름은 갑자기 바뀌었을 것이다. 대국과 소국의 차이는 사라졌을 터이고, 국가가 개인에게 갖는 힘은 크게 약화됐을 것이다. 그러나 트루먼 대통령의 발언과 그에 대한 다양한 논평으로 보건대 원자탄은 터무니없이 비싼 무기인 듯하다. 그리고그것을 제조하는 데 어마어마한 산업적 노력이 필요해서 만들 수 있는 곳은 전 세계에서 서너 국가밖에 안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이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원자탄의 발명이 역사를 역전시키기는커녕 지난10여 년 동안 명백해 보였던 추세를 강화할 뿐이라는 의미일 수 있기때문이다.
문명의 역사는 대체로 무기의 역사이기도 하다는 주장은 이제는 흔한 말이 되어버렸다. 특히 화약의 발명과 부르주아에 의한 봉건제 전복의 연관성은 누차 지적된 바 있다. 물론 예외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다음과 같은 규칙이 일반적인 사실로 판명될 것이라 생각한다. - P210

과학은 실험실에서 벌어지는 무엇을 뜻한다. 달리 말해 과학이란 단어는 그 자체로 그래프나 시험관, 천칭, 분젠버너, 현미경 같은 그림을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생물학자, 천문학자, 어쩌면 심리학자나 수학자까지도 과학 하는 사람‘으로 불리는데, 누구도 그 말을 정치인이나 시인, 언론인, 심지어 철학자에게도 적용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자라나는 세대에게 과학교육을 더 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거의예외 없이, 더 정확히 생각하는 법보다는 방사능이나 천체나 자기 몸의생리에 대해 더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렇게 단어의 의미가 애매모호해진 것은 어느 정도 의도적이기도 하거니와 그 자체로 상당한 위험을 안고 있다. 과학교육을 더 해야 한다는요구에는, 과학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모든 분야에 대하여 더 현명한 접근을 하게 된다는 주장이 함축되어 있다. 이를테면 과학자의 정치적 견해는, 사회학적인 문제나 도덕, 철학,
심지어 예술에 대한 견해도 일반인에 비해 나을 것이라는 가정을 하는것이다.  - P216

그렇다면 그런 협소한 의미의 ‘과학자‘가 비과학적인 문제에 대하여남들보다 객관적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과연 맞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할 근거는 별로 없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이를테면민족주의를 견디는 능력이 그렇다. 막연하게 과학은 국제적‘ 이란 말을흔히들 하지만, 실제로 만국의 과학 종사자들은 작가나 예술가에 비해양심의 가책을 덜 느끼며 자국 정부 쪽에 줄을 선다. 독일의 과학계 전반은 히틀러에게 아무 저항도 하지 않았다. 히틀러가 독일 과학계의 장기적인 전망을 망쳐버렸는지는 모르나, 합성석유나 제트기, 로켓, 원자탄 같은 것들에 대하여 필요한 연구를 할 재능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다. 그들이 없었다면 독일의 군수품들은 절대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 P217

100년 전에 찰스 킹즐리는 과학을 실험실에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일"이라고 했다. 1~2년 전에 젊은 공업화학자 한 사람은 내게 잘난체하며 자기는 "시가 무슨 소용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추가 왔다갔다하는 셈인데, 내가 보기엔 어느 쪽도 더 나은 태도라고 할 수 없다.
지금 현재 과학은 오름세에 있고, 그래서 우리는 대중이 과학교육을 더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마땅히 듣게 된다. 그러니 반대로 과학교육을 적게 하는 게 과학자들 자신에게 오히려 이롭다는 주장은 들리지 않는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직전에 미국의 한 잡지에서 영국과 미국의 많은 물리학자들이 원자탄 연구를 애초부터 거부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들은그것이 어디에 쓰일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미치광이들의 세상 속에이렇게 정신 멀쩡한 사람들도 있다. 구체적으로 거명된 건 아니지만, 나는 그들 모두가 일종의 종합적인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추측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역사나 문학이나 예술에 대한 식견을웬만큼 갖춘, 간단히 말해 지금 쓰이고 있는 뜻에서 순전히 과학적이지만은 않은 데에도 흥미를 느낄 줄 아는 이들일 것이다. - P219

수백 명이 모인자리에서 (아마도 그중 절반은 문필업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이들이었으리라) 언론의자유 문제를 건드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그게 무언가를 뜻하기나 한다면, 달리 말해 무언가를 비판하고 반대할 자유를 뜻한다면 말이다. 의미심장한 건, 정작 기념한다는 팜플렛을 인용하는 연사가 아무도 없었다는 점이다. 전쟁 동안 이 나라와 미국에서 ‘살해 당한 여러 책들에 대한언급도 전혀 없었다. 최종적인 결과만을 놓고 말하자면, 이 대회는 검열에 찬성하는 시위였던 것이다."
3하지만 딱히 놀랄 일도 아니었다. 우리 시대에 지적인 자유라는 개념은 두 방향으로부터 이미 공격받고 있었던 것이다. 한쪽에는 이론적 적인 전체주의 옹호자들이 있고, 또 한쪽에는 직접적이고 실질적 적인독점과 관료 지배 체제가 있다. 게다가 성실성을 지키고자 하는 작가나저널리스트라면 적극적인 박해보다는 사회의 대세 때문에 좌절당하고만다.  - P222

지난 10년 동안 지속된 전쟁 분위기 (그로 인한 왜곡 효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를 들 수 있다. 우리 시대엔 모든 게공모하여 작가를, 또 그 밖의 모든 예술가를 하급 관리로 만들어버린다.
그리하여 위에서 내려준 주제만을 다루도록 하며, 사실의 전모全貌로 보이는 것들을 절대 언급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가 이런 운명에 저항하며 발버둥을 친다 해도 자기편의 도움을 받을 수조차 없다. 그가 옳다는 확신을 심어줄 규모 있는 여론 자체가 없는 것이다.  - P223

전체주의 국가들이 행하는 조직적인 거짓말은, 이따금 주장되는 것처(183)럼 군사적인 속임수와 같은 성질의 임시방편이 아니다. 그것은 전체주의에 필수적인 무엇이며, 강제수용소와 비밀경찰이 더 이상 필요하지않게 된다 해도 계속될 무엇이다. 지적인 공산주의자들 사이에 지하의전설처럼 떠도는 얘기가 있다. 러시아 정부가 지금은 거짓 선전이나 조작된 재판 같은 것들을 할 수밖에 없지만, 사실을 몰래 기록하고 있으며때가 되면 그것을 공포하리라는 것이다. 나는 절대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고 본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심성은, 과거란 바뀔 수 없으며 역사에 대한 정확한 지식은 당연히 값진 것이라 믿는 자유주의 역사가의 심성이기 때문이다. 전체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역사는 배우기보다는 창조해야 하는 무엇이다. 전체주의 국가는 사실상 신정국가이며, 그 지배계급은 자기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결코 실수가 없는 존재로 인식되어야 한다.  - P228

지금까지 나는 문학 전반이 아니라 정치 저널리11즘 분야에 대한 검열의 영향만을 다루었다는 인상을 심어준 것인지도모른다. 만일 소련이 영국 언론에서 일종의 금단의 영역이라는 것을, 폴란드나 스페인내전이나 독소불가침조약 같은 문제는 심각한 논의의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을, 통념과 상충되는 정보를 입수했을 경우 그것을 왜곡하거나 함구하는 것을 모두 당연시한다 하더라도, 보다 넓은의미의 문학이 굳이 영향 받을 필요가 있는가? 모든 작가가 정치인이고, 모든 책이 단도직입적인 ‘르포‘ 일 수밖에 없는가? 아무리 엄혹한독재 치하라고 해도, 작가 개개인은 내면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으며, 통념을 벗어난 자기 생각을 어리석은 당국에 간파당하지 않을 정도로 걸러내거나 위장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설령 작가 자신이 통념에동의한다 하더라도, 왜 통념 때문에 속박당한다는 느낌을 굳이 받아야하는가? 문학은 아니 그 어떤 예술도 견해의 큰 충돌이 없으며 예술가와 일반 대중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없는 사회에서 가장 번성하기 마련아닌가? 모든 작가는 반항아라고, 심지어 그 자체로 예외적인 사람이라고 여겨야만 하는가? - P230

하지만 전체주의는 신앙의 시대보다는 정신분열의 시대를 약속한다.한 사회는 그 구조가 노골적으로 인공적인 것이 될 때, 달리 말해 지배계급이 그 기능은 잃었지만 강압이나 사기로 권력을 고수하는 데 성공할 때 전체주의화 된다. 그런 사회는 아무리 오래간다 한들 관대해지거나 지적으로 안정될 여유를 가질 수 없다. 문예창작에 요구되는 사실의정확한 기록도, 감정적 진실도 결코 허용할 수 없다. 하지만 전체주의에의한 타락이 꼭 전체주의 국가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생각이 유행하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독이 퍼질 수 있으며, 그 때문에 문학적인 목적으로 쓸 수 없는 주제들이 잇따라 생겨나게 되는 까닭이다. 강요된 통념이 있으면(흔히 그러하듯 두 가지 통념이 있어도) 어디서든 좋은 글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 P233

전체주의가 운문에 끼치는 영향이 산문에 끼치는 것만큼 치명적인지는 확실치 않다. 단, 왜 권위주의 사회에서 산문작가보다는 시인이 좀더편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는 일련의 이유들이 있다. 먼저, 관료나 그 밖의 ‘현실적‘ 인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하는 말에 너무심취하는 시인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로, 시인이 하는 말은즉 그시를 산문으로 풀이할 경우 뜻하는 바는 시인 자신에게도 상대적으로 덜중요한 것이다. 한 편의 시에 담긴 생각은 언제나 단순하며, 그 생각이시의 주된 목적이 아닌 것은 한 폭의 그림이 담은 일화가 그림의 주된 목적이 아닌 것과 같다. 그림이 붓 자국의 배열이라면, 시는 소리와연상의 배열이다. 아닌 게 아니라 시는 노래의 후렴 같은 짧은 토막에서의미를 완전히 무시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시인의 입장에서 위험한 주제와 거리를 두고 이단적인 발언을 피하는 건 꽤 쉬운 일이다. 그리고 그런 발언을 한다 해도 눈에 잘 띄지 않도록 할 수 있다.  - P234

물론 인쇄물은 계속해서 이용될 텐데, 완고한 전체주의 사회에서 어떤 유의 읽을거리가 살아남을지 추측해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신문은 아마도 텔레비전 기술이 더 고도화될 때까지 존속할 것이나, 산업화된 나라의 다수 대중이 신문 외에 어떤 유의 읽을거리를 필요로 할지는지금도 의문스럽다. 아무튼 그들은 읽을거리에 대해선 몇몇 다른 취미에 드는 만큼의 돈을 쓸 의향이 조금도 없다. 아마 소설은 장·단편을 막론하고 영화와 라디오 프로그램에 완전히 자리를 내추고 말 것이다.
아니면 인간의 자주성을 극도로 축소시키는 컨베이어 벨트식 제작 과정을 거쳐 생산되는, 모종의 저급하고 자극적인 소설이 살아남을지도모른다. - P236

제작 방식에서 그보다 훨씬더 기계적으로 생산되는 것이 아주 싼 잡지의 단편소설 연재물, 그리고시다. <작가> 같은 신문들에는 문예학교 광고들이 넘쳐나는데, 하나같이 한번에 몇 실링만 내면 이미 짜놓은 플롯을 가르쳐주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플롯과 더불어 각 장의 첫 문장과 끝 문장도 제공한다고 한다. 직접 플롯을 짤 때 쓸 수 있는 공식 같은 걸 알려주겠다는 학교들도 있다. 인물과 상황이 적힌 카드를 몇 벌 제공하며, 그것들을 섞어서 맞추기만 하면 기발한 이야기가 절로 만들어진다고 하는곳도 있다. 전체주의 사회에서 문학은 아마도 이런 식으로 생산될 것이다. 문학이란 게 여전히 필요하다고 생각된다면 말이다. 글쓰기 과정에서 상상력은(어쩌면 의식도 없어지고 말 것이다. 책은 관료들에 의해 다종다양하게 계획될 것이며, 워낙 많은 손을 거침에 따라 완성될 때면 조립라인 끝에 나오는 포드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어느 한 개인의 작품이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건 무엇이든 쓰레기일 터임은 말할필요도 없으리라. 하지만 쓰레기가 아닌 건 무엇이든 국가의 체계를 위협하게 될 것이다.  - P237

하지만 자연과학이나 음악이나 미술이나 건축이 어떻게 되든 간에,
사상의 자유가 말살된다면 문학의 운명은 (내가 지금까지 밝히려고 한 바와같이) 암울할 게 확실하다. 전체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에서만그런 게 아니다. 전체주의적 관점을 받아들이는 작가, 박해와 현실 조작에 대해 변명거리를 찾아내는 작가, 그럼으로써 작가로서의 자신을 죽이는 작가도 같은 운명인 것이다. 그 길로 접어들면 헤어날 방법이 없다. ‘개인주의‘와 ‘상아탑‘을 비난하는 어떤 장광설도 ‘참된 개성은 공동체와의 합일을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다‘는 식의 경건하고 상투적인어떤 주장도, 매수된 정신은 망가진 정신이라는 사실을 넘어설 수 없다.
어느 순간에 자발성을 갖게 되지 않는 한, 문학 창작은 불가능하며 언어자체가 굳어져버린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인간의 정신이 지금의 것과완전히 다른 무엇이 된다면, 우리는 문학 창작과 지적 정직성을 분리하는 법을 배우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가 아는 것은, 상상력이란 야생동물과 비슷한 것이어서 가둬두면 번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런 사실을 부인하는지금 소련에 대한 거의 모든 찬사에는 그런 부인이 내재되어 있다) 작가나 언론인은 실은 자신의 파멸을 요구하고 있는셈이다. - P240


"물속의 달"



내가 제일 좋아하는 펍물속의 달‘은 버스정류장에서 겨우 2분 거리이지만 샛골목에 있어서, 술주정뱅이들이나 무뢰한들이 토요일 밤이라해도 제대로 찾아오지 못하는 것 같다.
이집 손님들은 꽤 많긴 해도, 대부분이 매일 저녁 같은 자리에 앉는맥주 못지않게 대화를 즐기려고 오는 단골들이다.
어떤 펍을 특별히 왜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맥주 얘기부터 하는 게 자연스럽겠지만, 내 경우엔 "물속의 달‘이 제일 마음에 드는 건흔히들 말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먼저, 이 집의 건축과 인테리어는 타협 없는 빅토리아 양식이다. 유리판 테이블이나 그 밖의 현대식 재앙도 가짜 보도, 벽난로 옆의 벽감도, 참나무 흉내를 낸 플라스틱 패널도 없다. 나뭇결을 잘 살린 목공품,
바 뒤편의 장식 유리, 무쇠 벽난로, 담배 연기에 검누르게 변한 화려한 - P249

천장, 벽난로 장식으로 붙어 있는 박제 소머리-이 모든 게 볼품은 없어도 견고하고 편안한 19세기식이다.
겨울에는 적어도 바 두 곳은 벽난로 불이 좋고, 공간 배치가 빅토리아양식이라 여유가 있다. 일반 바, 살롱 바, 여성용 바가 있고, 집에서 저녁 먹을 때 곁들일 맥주를 남들 다 보는 데서 사는 게 수줍은 사람들을위한 병맥주 판매 코너가 따로 있으며, 위층에는 식당이 있다.
게임은 일반 바에서만 할 수 있다. 때문에 다른 바에서는 날아다니는다트화살을 피하느라 고개를 숙이고 오가지 않아도 된다.
"물속의 달‘은 언제나 조용해서 대화를 나누기가 좋다. 이곳엔 라디오도 피아노도 없으며, 크리스마스이브 같은 특별한 날에도 노래를 점잖게들 부른다. - P250

여름날 저녁이면 여기서 가족 파티가 열린다. 그럴 땐 누구라도 플라타너스 밑에 앉아, 미끄럼 타고 내려오는 아이들이 신나서 지르는 소리를 들으며 맥주나 생사과술을 마실 수 있는 것이다. 아기들이 타고 온유모차는 문 가까이에 세워두면 된다.
"물속의 달‘은 장점이 많지만, 내 생각에 제일 훌륭한 건 바로 이 뜰이다. 아빠만 밖에 나가고 엄마는 집에 남아 아기를 봐야 하는 대신 온가족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아이들은 뜰에만 입장이 허용되지만, 펍에 슬며시 들어가서 부모가 마실 술을 가져오는 수도 있다. 그건 아마 불법이겠지만, 그런 법이야 어겨도 될 만하다.  - P251

그런데 이제는, 명민하고 냉정한 독자라면 이미 간파했을 무언가를밝힐 때가 되었다. "물속의 달‘ 같은 곳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런 이름을 가진 펍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나는 그곳에 대힘 모르며, 그런 장점들만 두루 갖춘 펍이 진짜 있기나 한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맥주는 맛있지만 끼니는 때울 수 없는 펍을, 끼니를 때울 순 있지만시끄럽고 북적북적한 펍을, 조용하지만 맥주가 영 시원찮은 펍을 알긴한다. 뜰이 있는 펍은 런던에서 내가 아는 데는 세 곳뿐이다.
하지만 "물속의 달‘에 근접하는 펍을 몇 군데 알긴 한다고 해야 더 공평할 것이다. 앞에서 나는 완벽한 펍이 갖추어야 할 점 열 가지를 언급했는데, 그중 여덟 가지를 갖춘 펍 하나를 알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도흑생맥주와 도자기 머그잔만은 없다.
흑생맥주와 장작불을 제대로 때는 벽난로, 저렴한 요깃거리, 뜰, 인자한 여자 바텐더가 있고 라디오는 없는 펍을 아는 분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정말 좋겠다. 그런 데라면 이름이 ‘빨간 사자‘ 기찻길 문장처럼 무미건조한 곳이어도 좋을 것이다. - P253

정치와 영어


이 문제를 조금이라도 염려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인정할 것이다.
영어란 언어가 위중한 상태에 놓여 있지만, 우리가 나서서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임을 그러니 우리 문명이 퇴폐적인 만큼 우리 언어도 어쩔 수 없이 전반적으로 함께 몰락하게 된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또 그래서 언어를 함부로 쓰는 것에 대한 저항은 옛것을 선호하는 감상적 취향으로, 전깃불보다 촛불을 좋아하고 비행기보다 마차를 좋아하는 것과 같은 일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런 주장의 근지에는 언어란 자연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며 우리 나름의 목적을 위해만들어나갈 수 있는 도구가 아니라는 반쯤은 의식적인 믿음이 깔려있다.
그런데 한 언어의 쇠락에는 궁극적으로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원인이 - P255

있는 게 분명하다. 이런저런 작가들 개개인이 나쁜 영향을 끼친 탓만으아닌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결과가 원인으로 작용하여 본래의 원인을 강화하는 바람에 더 심한 결과를 초래하는 식의 과정이 무한히 반복될 수도 있다. 자신이 실패자라는 기분에 술 마시는 버릇을 들인 사람이 술을마시는 바람에 더더욱 실패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영어의 경우에도 그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의 생각이 어리석어 영어가 고약하고부정확해지지만, 언어가 단정하지 못해 생각이 더 어리석어지기 쉬운것이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건 이런 과정을 역전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현대의 영어에는, 특히 글로 표현되는 영어에는 나쁜 습관이 너무많고 그것이 모방되어 퍼져나가고 있는데, 그것은 마땅한 수고를 아끼지 않으려는 마음만 있으면 피할 수 있는 습관이다. 그런 습관을 제거한다면 생각을 보다 명료하게 할 수 있으며, 생각을 명료하게 한다는 건정치적 개혁에 필요한 첫걸음이기도 하다. - P256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의미가 단어를 택하도록 해야지 그 반대가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산문의 경우, 단어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단어에 굴복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대상에 대해 생각할경우 먼저 단어로 표현하지 말고 생각부터 해보자. 그런 다음 머릿속에그려본 것을 묘사하고 싶다면, 거기에 맞을 듯한 정확한 단어를 모색해볼 수 있을 것이다. 추상적인 무언가를 생각할 경우엔 애초부터 단어를선택하는 쪽에 끌리기가 더 쉽다.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기존의 표현법이 마구 밀려들어 대신 작업을 해버릴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의미가 흐려지거나, 심지어 바뀌어버리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니 가능한 한 단어 사용을 미루고서 심상이나 감각을 이용하여 전하고자 하는 뜻을 최대한 분명하게 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지 싶다. 그런 다음 뜻을 가장 잘 담을 수 있는 표현을택할 수 있을 것이고(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 P276

그 이후에 반대로 자신이 택한 낱말들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인상을 줄 것인지 판단해도 좋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공을 들이면 진부하거나 뒤섞인이미지. 이미 만들어진 어구, 불필요한 반복, 그리고 허튼소리와 막연함을 대체로 피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글 쓰는 사람이 단어나 문구의 효과에 대해 의문을 느끼는 경우가 흔히 있으니, 직관이 통하지 않을 때는기댈 만한 원칙이 필요하다. 나는 다음과 같은 원칙이 대부분의 경우에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1. 익히 봐왔던 비유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 P276

2. 짧은 단어를 쓸 수 있을 때는 절대 긴 단어를 쓰지 않는다.
3. 도 지장이 없는 단어가 있을 경우에는 반드시 맨다.
4. 능동태를 쓸 수 있는데도 수동태를 쓰는 경우는 절대 없도록 한다.
5 외래어나 과학 용어나 전문용어는 그에 대응하는 일상어가 있다면절대 쓰지 않는다.
6. 너무 황당한 표현을 하게 되느니 이상의 원칙을 깬다.


이런 원칙들은 기본처럼 들리며 실제로 그렇기도 하지만, 지금 유행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는 데 적응해온 사람에게는 엄청난 태도 변화를요구한다. 그리고 이들 원칙을 다 지킨다 해도 여전히 나쁜 영어 문장을쓸 수 있지만, 적어도 이 에세이 맨 앞에서 내가 인용한 다섯 표본 같은글은 안 쓰게 될 것이다. -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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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이탈리아 민병대원을 다시는 만나지 못했고, 그의 이름조차도 알아내지 못했다. 그는 지금 죽은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2년 가까이지난 뒤, 전쟁의 패색이 짙을 무렵, 나는 그를 기억하며 다음과 같은 운문을 썼다.


위병소 탁자 곁에서
내 손을 잡아준 이탈리아 병사. 
억센 손과 허약한 손,
만날 수나 있었으랴.

총성 울리는 곳 아니었다면.
하지만 아, 얼마나 평화로웠던가!
초췌하지만 어떤 여인보다 맑은
그 얼굴 바라보며!

나를 토하게 만드는 구더기 끓는 말들
그의 귀엔 성스러웠고
내가 책으로 더디 배운 것들
그는 나면서부터 알고 있었으리.

못 믿을 총이야 제 할 말을 했고
우리 둘 다 속아서 샀지만
내가 산 모조금붙이는 진품이었으니
아! 누군들 예상이나 했으랴?

행운을 빈다네, 이탈리아 병사여!
하지만 행운은 용감한 자의 것이 아니니,
세상이 그대에게 무얼 갚겠는가?
그대가 준 것보단 언제나 적으리.

그림자와 망령 사이에
하양과 빨강 사이에
총탄과 거짓 사이에
그대 어디다 고개 숨길까?

마누엘 곤살레스가 어딨는지,
페드로 아길라르가 어딨는지,
라몬 페네요사가 어딨는지,
지렁이는 알지니.

그대의 이름과 행적은
그대 뼈 마르기 전에 잊혀지고,
그대를 살해한 거짓은
더 깊은 거짓 아래 묻히리니. 

그러나 그대 얼굴에서 내가 본 것
어떤 힘도 앗아갈 수 없으리니.
수정 같은 그 정신
어떤 폭탄도 흩지 못하리니.

p 160~162








그런데 내 또래인 사람이 H. G. 웰스를 흠잡는다는 건 일종의 존속살인과도 같은 일이 아닌가? 이번 세기가 시작될 무렵 태어난 지적인 사람이라면 어떤 면에서 웰스의 작품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일개 작가가, 특히 작품에 대한 반응이 당장 나타나는 ‘대중적인 작가 한 사람이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내가 보기에 1900년부터 1920년까지 영어로 책을 쓴 사람 중에 그만큼 어린 세대에게 큰영향을 끼친 이는 없는 것 같다. 웰스라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의 정신과 그에 따른 물리적 세계는 지금과는 확연히 달랐을것이다. 웰스를 지금과 같은 피상적이고 부적절한 사상가로 만든 것은사고방식의 획일성, 즉 그를 ‘에드워드 시대(1901~1910)‘의 탁월한 선지자인 듯 보이게 한, 그 편향적 상상력이었다. 웰스가 젊었을 때는 과학과 반동의 대립이 틀린 게 아니었다.  - P130

당시 세계는 현학자와 성직자, 골프 치는 사람의 세상이었고, 미래의 고용주는 성공 아니면 실패‘ 라고 훈계하고, 부모는 자식
‘성적인 발달을 체계적으로 왜곡하고, 아둔한 교사들은 상투적인 라틴어 인용구를 들이대며 바보스럽게 히죽거리던 세상이었다. 그런 시대에 다른 행성과 바다 밑에 사는 존재들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 있었던,
미래가 훌륭한 양반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다르리란 걸 알았던 놀라운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비행기라는 게 기술적으로 실현 가능한 것이 되기 10년도 전에, 웰스는 얼마 안 돼 인류가 날아다닐 수 있으리란 걸 알았다. 그것은 그 자신이 날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며, 그래서 연구가그 방향으로 진행되리라 확신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어렸을 때는 라이트 형제가 실제로 그들의 기계를 지면 위로 59초 동안이나 들어올렸는데도, 하느님이 우리를 날게 해줄 작정이었으면 처음부터 날개를 달아줬을 것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던 시절이었다. 그러던때라 웰스는 1914년까지만 해도 대체로 진정한 선지자였다. 신세계에대한 그의 비전은 물리적으로 상세한 부분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많이실현되었다. - P131

그는 전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민족주의와 편협한 신앙과 봉건적 충성이 그가 온건하다고 말하려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암흑시대에서 현재로 당당히 걸어 들어온 유령 같은 존재라면, 그들을 달래 과거로 돌려보내기 위해서는 적어도 강력한 마법이 필요하다. 파시즘을 가장 잘 이해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그 치하에서 고초를 겪었거나, 자기 안에 파시스트적 기질이 있는 이들이다.
강철군화는 투박하긴 하지만, 거의 30년 전에 씌어졌어도 멋진 신세계나 다가올 것들의 양상보다 미래를 더 제대로 예견하고 있다. 윌스 당대의 사람 중에 그를 바로잡을 수 있을 만한 작가를 하나 꼽아야한다면, 키플링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완력과 군사적 ‘영광‘의 사악한 목소리에 귀를 막지 않았다. 키플링이라면 히틀러에 대한 자신의태도가 어떻든 간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의 힘을 이해했을 것이며, 아마 스탈린에 대해서도 그랬을 것이다. 웰스는 현대 세계를 이해10하기에는 너무 온건하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인 일련의 하위 중산층 소설들은 이전의 전쟁 때(1차대전) 갑자기 끊어져버렸다. 그리고 1920년 이후로 그는 종이 죽이기에 재능을 허비하고 말았다. 하기야 허비할재능이 있다는 것만 해도 어딘가. - P132

스페인내전을 돌이켜본다


무엇보다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소리, 냄새, 그리고 사물의 표면 같은물리적인 것들이다.
스페인내전에 대하여 내 기억에 가장 생생히 되살아나는 게 전선으로파견되기 전 일주일 동안 받았던 이른바 훈련인 것은 묘한 일이다. 바르셀로나에 있는 거대한 기병대 병영에는 찬바람이 술술 들어오는 미구간과 자갈 마당, 세면장의 얼음처럼 차가운 펌프, 형편없지만 금속 산에따라주는 와인 덕분에 참아줄 만한 식사, 바지 차림으로 장작을 패는 민병대 여성, 그리고 아침 점호가 있었다. 영국인인 나의 무미건조한 이름은 울림이 있는 스페인 이름들 사이에서 일종의 코믹한 간주곡 같았다.
마누엘 곤살레스, 페드로 아길라르, 라몬 페네요사, 로케 바야스테르, - P133

하이메 도메네츠, 세바스티안 빌트론, 라몬 누보 보시. 내가 유독 이 이름들을 언급하는 건 하나같이 얼굴이 기억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인간쓰레기일 뿐이었지만 지금은 의심할 여지 없이 훌륭한 팔랑해‘ 당원이 되어 있을 두 사람 외에는, 아마 모두 죽었을 것이다. 둘은 확실히죽은 것으로 알고 있다. 제일 나이 많은 이가 25세쯤이었고, 제일 어린사람은 16세였다.
전쟁 체험 중에 빠질 수 없는 것 하나는 사람한테서 풍겨나오는 지독한 냄새를 결코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변소는 전쟁문학에서 지나칠 정도로 써먹은 소재이긴 하지만, 우리 병영의 간이 변소는 스페인내전에대한 내 나름의 환상을 깨는 역할을 했기에 간단히 언급하기로 한다. 쪼그려 앉아 볼 일을 봐야 하는 이 남유럽식 변소는 상태가 아무리 좋다해도 역겨웠지만, 매끈매끈한 돌로 만든 것이라 아주 미끄러워서, 미끄러져 넘어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는 데만 집중하다보면 일을 볼 수 있던 것이 장점이었다.  - P134

 어떤 성격의 전쟁에서 싸우게 되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군기 같은 것은 어떤 군대든궁극적으로는 마찬가지다. 명령은 복종해야 하고 필요하면 처벌로써 강요되며, 장교와 사병의 관계는 상급자와 하급자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 같은 책들에 나오는 전쟁 묘사는 대체로 정확하다. 총탄은 맞으면 아프고, 시체는 썩어 악취를 풍기고, 총격전이 벌어지면 너무 무서워 바지를 적시기도 한다. 어떤 군대가 만들어지게 된 사회적 배경이 그 군대의 훈련과 전술과 전반적인 능력에 영향을 끼치며,
정의의 편이라는 의식이 사기를 북돋우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런 의식은 참전 군인들보다는 민간인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긴 한다. (사람들은 전선 가까이 있는 군인들이 대개는 너무 배고프거나 두렵거나 추워서, 혹은무엇보다도 너무 피곤해서 전쟁의 정치적 기원 따위는 개의치 않게 된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하지만 자연의 법칙이 적군이라고 해서 유보되지 않는 것은백군의 경우와 마찬가지다. 이는 이고 폭탄은 폭탄이다. 전쟁의 대의명분이 어쩌다 옳은 것이라 해도 말이다. - P135

하지만 스페인 공화군 장병의 전쟁 체험은 아무튼 품위가 떨어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웬일인지 이 전쟁의 변소는 악취가 덜 나고, 군기는 덜 짜증스럽다고 본 것이다. 그들이 정말 그렇게 믿었는지는 <뉴스테이츠먼>을슬쩍 들여다보기만해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과 쏙 빼닮은 허튼소리가 작금의 붉은 군대에 대해 쓰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문명화되어 명백한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진실은 아주 단순한것이기 때문이다. 살아남으려면 종종 싸워야만 하고, 싸우자면 자신을더럽혀야 한다. 전쟁은 악이며, 차악인 경우도 흔히 있다. 칼을 드는 자는 칼로 망하며, 칼을 들지 않는 자는 악취 진동하는 병으로 망하는 것이다. 이런 케케묵은 소리를 굳이 쓸 필요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그간 임대소득이나 이자로 먹고사는 이들의 자본주의가 우릴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 P137

스페인내전에서의 잔학행위에 대하여 내가 가진 직접적인 증거는 별로 없다. 내가 아는 것은 공화파가 저지른 잔학행위가 좀 있는가 하면,
파시스트가 저지른 건(또 지금도 저지르고 있는 건 훨씬 많다는 점이다.
그런데 당시에도 그랬고, 그 이후로도 줄곧 인상적이었던 것은, 잔학행위를 믿고 안 믿고 하는 것이 순전히 정치적인 편향에 따라 좌우된다는사실이다. 모두가 증거 조사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적의 잔학행위는믿으면서 자기편의 것은 믿지 않는 것이다. 최근에 나는 1918년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잔학행위를 표로 만들어본 적이 있다. 결과는 잔학행위가 어디에서도 발생하지 않은 해가 없고, 같은 얘기를 좌파와 우파가 일제히 믿은 경우도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더 이상한건, 정치적풍경이 바뀌기만 하면 상황이 언제든 갑자기 역전될 수 있으며 어제 확실한 사실로 입증된 만행이 오늘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이 되어버릴 수있다는 점이었다. - P138

우리가 계속해서 그 200야드 거리를 내달릴 기회를 노리던 차에, 갑자기 파시스트참호 쪽에서 소란이 일더니 호각 소리가 울렸다. 아군 비행기 몇 대가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장교에게 보고를 하려는 듯한 병사 하나가 참호에서 뛰쳐나와 자신을 완전히 노출시키며 방어벽 위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반쯤 벗은 상태였고, 양손으로 바지를 추스르며 달리고 있었다. 나는 그를 쏘지 않기로 했다. 내 사격술이 변변찮아 100야드밖에서 달리는 사람을 맞힐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고, 파시스트들이 비행기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우리 참호 쪽으로 돌아갈 생각만 주로 한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긴 하되 바지춤을 추스르는 광경 때문에 총을 쏠수 없었던 것도 있었다. 나는 ‘파시스트‘를 쏘러 거기까지 갔던 것이다.
바지를 추스르며 내딛는 병사는 파시스트‘가 아니었다. 그는 나 자신과 다를바 없는 같은 인간으로 보였으니, 그런 사람을 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 P141

이 사건이 말해주는 바는 무엇일까? 어떤 전쟁에서든 늘 일어나는 유의 일이니 별다를 것도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또 하나의 기억은 다르다. 이 이야기로 읽는 분들을 감동시킬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특정 시점의 도덕적인 분위기를 전형적으로 나타내주는 사건이었고, 내게는 감동적이었다는 점만은 믿어도 좋을 것이다.
내가 병영에 있을 때 입대한 신병들 중에 바르셀로나 뒷골목 출신으로 거칠어 보이는 소년이 하나 있었다. 그는 남루한 차림에 맨발이었다.
또 피부색이 대단히 짙었고(아랍 혈통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유럽인들에게서 잘 볼 수 없는 제스처를 자주 썼다. 일례로 팔을 쭉 뻗고 손바닥은 수식으로 세우는 몸짓을 자주 했는데, 인도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동작이었다. 하루는 그 무렵에도 아주 헐값으로 살 수 있었던 시가 한 묶 - P141

음이 내 침상에서 사라졌다. 나는 꽤 어리석게도 그 사실을 장교에게 알렸고, 앞서 언급했던 망나니 두 녀석 중 하나가 당장 앞으로 나서더니자기 침상에서 25페세타가 없어졌다는 못 믿을 소리를 했다. 장교는 무슨 이유에선지 당장 피부색 짙은 그 소년을 도둑으로 지목했다. 민병대는 절도에 대해 상당히 엄했으며, 원칙상으로 총살도 가능했다. 불쌍한소년은 순순히 위병실로 따라가더니 몸수색에 응했다. 내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그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려는 시도 자체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런 상황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는 그의 태도에서.
나는 그가 얼마나 지독한 가난 속에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장교는그에게 옷을 다 벗으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그는 보는 내가 굴욕을 느낄정도로 순순히 자기 옷을 다 벗더니 뒤지라고 내주었다. 물론 시가도 돈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가 훔친 게 아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괴로웠던건 그가 결백이 입증되었음에도 여전히 부끄러워하는 모습이었다. - P142

이 사건이 왜 나를 애틋하게 할까?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이 소년과나 사이에 좋은 감정이 다시 생긴다는 게 불가능했을 터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회를 해보려고 했다 해도, 아무튼 나 때문에 도둑으로 몰려 당한.
모욕감이 풀리기는커녕 더 사무쳤을 것이다. 안전하고 문명화된 생활의결과 중 하나는 원초적이고 중요한 감정들을 역겨운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지나친 민감함이다. 그래서 아량이 비열함처럼 불쾌하게 느껴지고,
감사가 배은망덕처럼 혐오스럽게 느껴지는 게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1936년 스페인에서 우리는 평범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았다. 너그러운 감정과 제스처가 평소보다 쉬운 때였던 것이다. 비슷한 경우를 여남은 가지는 낼 수 있는데, 남들이 딱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내 마음속에 있는 무엇, 즉 당시의 특별한 분위기, 남루한 옷과 빛깔 화 - P143

사한 혁명 포스터, 누구한테나 쓸 수 있는 ‘동지‘ 라는 단어, 얇은 종이에 찍어 푼돈에 팔던 반파시스트 가요, 무지한 사람들이 중요한 말이겠거니 해서 딱할 정도로 자주 쓰던 ‘프롤레타리아의 국제적 연대‘ 같은말과 긴밀히 어우러져 있는 일들이다. 당신이라면 누구 물건을 훔쳤다는 의심을 받아 그 사람이 보는 앞에서 수치스럽게 몸수색을 당하고서도, 그 사람에게 친근감을 느끼고 언쟁이 벌어졌을 때 그 사람 편을 들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둘 다 도량이 커지는 체험을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혁명의 한 부산물이었다. 단, 이 경우에 혁명은 시작일 뿐이었고, 결국 실패할 게 뻔하긴 했지만. - P144

이런 것들이 나로서는 대단히 두렵다. 이 세상에서 객관적인 진실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져간다는 느낌이 들곤 하기 때문이다. 결국엔 그런 거짓들이 아니면 그 비슷한 거짓들이 역사가 되어버릴 개연성이 다분한 것이다. 스페인내전의 역사는 어떤 식으로 기록될까? 프랑코가죄를 계속 유지한다면 그가 지목한 이들이 역사책을 쓸 것이고, 위에서언급한 대로) 있지도 않았던 러시아 군대가 역사적 사실이 될 것이며, 학생들은 앞으로 그렇게 배우게 될 것이다. 반대로 파시즘이 결국 패배하여꽤 가까운 미래에 스페인에서 모종의 민주 정부가 회복된다면, 그때는 전쟁의 역사가 어떻게 기록될까? 프랑코에 대해서는 어떤 기록이 남게 될까? 공화국 정부 쪽에서 가지고 있는 기록들까지 복구된다 하더라도, 전쟁에 관한 참된 역사가 씌어질 수 있을까?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공화국 정부 역시 상당한 거짓을 선전했다. 반파시스트의 시각으로 전쟁에 관하여 큰 틀에서 진실한 역사를 쓸 수는 있겠지만, 세세한 부분에선 신빙성이 떨어지는 편파적인 역사가 될 것이다. 아무튼 결국엔 ‘모종의 역사가 기록될 터인데, 전쟁을 실제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다 죽고 나면 그 역사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 P147

기록된 역사 대부분은 어떤 식이든 거짓이라는 말이 유행인 건 나도안다. 나는 역사가 대체로 부정확하고 편향된 것이라는 말을 기꺼이 믿는 쪽이다. 한데 우리 시대에 와서 특이한 점은, 역사가 진실하게 기록될 수도 있다는 개념 자체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사람들이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거나, 자기 글을 무의식적으로 윤색하거나, 실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진실을 애써 추구했다. 단, 어느쪽이든 ‘사실‘은 존재하며 어느 정도 밝혀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있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을만한 사실이 늘 상당 부분 있었다. 예컨대 지난 전쟁의 역사를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찾아보면 많은 자료의 출처가 독일임을 알 수 있다. 영국과독일의 역사학자들은 많은 문제들에 대해, 심지어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서도 의견이 크게 다르겠지만, 그래도 어느 쪽도 상대에게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말하자면 중립적인 사실도 상당량일 것이다. 그런데 모든 인류가 하나의 종임을 암시하고 있는 이 합의된 공통의 기반, 바로이것을 전체주의가 없애려고 하는 것이다. 나치의 이론은 ‘진실‘이란게 존재한다는 걸 명시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 P148

하지만 전체주의의 미래에 대한 전망 때문에 너무 두려워하는 건 어쩌면 유치하거나 병적인 태도가 아닐까? 그렇다면 전체주의의 세계를실현될 수 없는 악몽으로 무시해버리기 전에, 1925년에는 지금의 세상이 실현될 수 없는 악몽 같았으리란 점을 기억해볼 일이다. 검은색이 내일은 흰색이 될 수 있고 어제의 날씨가 명령에 따라 바뀔 수도 있는 변화무쌍한 세상에 대비할 안전장치는 사실상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우리가 아무리 진실을 부인한다 하더라도, 진실은 우리 배후에 엄연히존재하듯 살아있어서, 우리가 그 진실을 모독한다 해도 군사력이 약화되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지구상의 일부가정복되지 않고 남아 있는 한, 자유주의적 전통이 명맥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파시즘 또는 여러 파시즘의 연합체가 온 세상을 정복할경우, 이 두 가지 조건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 P149

우리의 전통과 과거의안전으로 인해, 결국엔 모든 게 잘될 것이며, 가장 두려워하는 일은 절대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감상적인 믿음을 갖게 된 까닭이다. 수백년 동안 결국 정의가 반드시 승리하고 마는 문학에서 자양분을 얻어온우리는, 악은 언제나 결국 저절로 망한다는 본능에 가까운 신념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평화주의는 대체로 이런 확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악에 저항하지 말라. 아무튼 절로 망할 테니, 하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그렇다는 것인가? 그렇게 된다는 증거라도 있는가? 근대 산업국가 중에 외세의 군사력에 정복당한 경우 말고 스스로 무너진사례가 하나라도 있는가?
노예제의 부활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 노예제가 유럽에서 되살아나 - P149

리라는 상상을 20년 전의 누가 할 수 있었겠는가? 노예제는 우리 턱밑까지 복원된 게 사실이다. 유럽과 북아프리카 전역의 강제노동 수용소에서 폴란드인과 러시아인, 유대인, 그리고 온갖 인종의 정치범이 도로건설이나 습지 배수시설 현장에서 중노동을 하고 있다. 죽지 않을 정도의 식량만 배급하며 강요하는 이 노역은 다름 아닌 노예노동이다. 그나마 나은 점이 있다 해봐야 노예를 개별적으로 사고파는 건 아직 허용되지 않는다는 정도다. 그리고 다른 면에서는(예컨대 가족의 파탄 같은 것)아메리카 면화농장의 경우보다 조건이 열악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어떤 전체주의적 지배가 계속되는 동안은 이런 상황이 변하리라고 생각할 근거가 없다. 우리는 신비롭게도 노예제를 기반으로 하는 체제는‘반드시‘ 붕괴하고 만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고대 노예 제국들의 존속기간과 근대국가의 수명을 비교해볼 일이다. 노예제를 기반으로 한 문명들은 자그마치 4000년이라는 세월 동안 지속되었다. - P150

노동계급의 투쟁은 식물의 생장과도 같다. 식물은 맹목적이고 어리석을지라도 빛을 향해 계속해서 위로 뻗어나가는 것만큼은 알며, 끝없는 좌절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밀고 나간다. 그러면 노동자들은 무엇을 위해 투쟁하는가? 그야말로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며, 이제 그들은그런 삶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그런 목표에 대한 의식은조수*처럼 빠져나가기도 하고 밀려들기도 한다. 스페인 사람들은 한동안 의식 있게 행동했고, 자신들의 목표를 향해 나아갔으며, 그곳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기도 했다. 그래서 전쟁 초기 몇 달 동안 공화국 정부아래에서의 삶이 묘한 활력을 띠었던 것이다. 서민들은 공화파가 자신들의 동지이며 프랑코는 적이라는 것을 직감으로 알았다. - P152

스페인내전을 바로 보려면 그런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전쟁의 잔혹함과 더러움과 헛됨을(이 전쟁에선 음모와 박해와 거짓과 오해를 생각하다보면 꼭 발설하고픈 유혹을 느끼게 되는 말이 한마디 있다. 이쪽도 저쪽도 나쁘다. 나는 중립이다." 하지만 실제 상황에서 사람은 중립일 수 없으며, 누가 이기든 상관없는 전쟁 같은 건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거의 항상 한쪽은 다소 진보적인 쪽에 서고, 다른 쪽은 다소 반동적인 쪽에서는 법이다. 스페인 공화파가 백만장자와 공작, 추기경, 한량 블럼프 등등에게 불러일으킨 혐오는 그 자체로 형세가 어떠했는지 보여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본질적으로 이 전쟁은 계급 전쟁이었다. 이 전쟁에서이겼다면 서민들의 대의는 어디서나 한층 강화됐을 것이다. 하지만기 때문에 세계 각지의 불로소득자들은 만족스럽게 양손을 비빌 수 있었다. 그게 핵심이며, 나머지는 전부 그 위에 뜬 거품에 불과하다. - P153

다른 여러 나라 좌파들 모두가 의심의 여지 없이 그랬던 것처럼, 이길수 없는 상황에서도 계속 싸우도록 스페인 사람들을 격려한 게 옳았는지에 대해서는 답하기 어렵다. 내 경우에는 생존 차원으로만 보더라도싸우지 않고 항복하는 것보다는 싸우다 정복당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파시즘에 맞선 그들의 투쟁이 보다 큰 전략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 공화국의 남루하고 무기 없는 군대는 2년 반을 버텼고, 이는 적들이 예상한 것보다 확실히 긴 기간이었다. 그러나그 때문에 파시스트들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는지, 아니면 오히려 더 큰전쟁을 미룸으로써 나치에게 군수품을 정비할 말미를 제공했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 P156

과연 그들은 끝까지 싸웠다. 전쟁 막바지 18개월 동안 공화군은 담배도 거의 없이, 최소한의 음식만으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스페인을떠난 1937년 중반만 해도 고기와 빵은 부족했고, 담배는 드물었으며,
커피와 설탕은 거의 구할 수 없었다.
또 하나는 내가 민병대에 입대한 날 위병소에서 내 손을 잡아준 이탈리아 민병대원이다. 그에 대해서는 스페인내전을 다룬 내 책 첫머리에묘사한 바 있기 때문에 여기서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다. 그의 남루한 제복과 강인하면서 우수어린 순박한 얼굴이 떠오르면(아 얼마나 생생한지!)전쟁의 복잡하고 부차적인 문제들은 다 사라지는 듯하고, 아무튼 누가옳았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게 된다. 힘을 앞세운 국제정치와 언론의 거짓에도 불구하고, 이 전쟁의 핵심 이슈는 이런 사람들이 자신의 타고난권리인 줄 알았던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고자 한 시도였다는 사실이다.
이 사람의 최후가 어떠했을지 생각하면 이런저런 비감에 젖지 않을수 없다. 내가 그를 만난 곳은 ‘레닌 병영‘ 이었으니 그는 아마도 트로츠키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였을 텐데, 우리 시대의 특수한 여건에서 그런종류의 사람은 게슈타포한테 살해당하지 않으면 대개 GPU(소련 국가정치보안부)한테 죽게 되어 있는 것이다. - P157

시와 마이크


1년 전쯤 나는 여러 사람과 함께 문학 방송 프로그램을 인도로 내보내는 일을 했다. 주로 당대와 당대에 가까운 영국 작가들의 시를 많이방송했는데, 그런 작가들이란 예를 들면 엘리엇, 허버트 리드, 오든, 스펜더, 딜런 토머스, 헨리 트리스, 알렉스 컴포트, 로버트 브리지스, 에드먼드 블런든, D. H. 로렌스 같은 이들이었다. 우리는 가능한 경우라면언제나 시를 쓴 사람이 직접 나와 방송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딱히왜 이런 특정 프로그램을 시작했는지 (사소하고 동떨어지긴 해도 전파 전쟁에서 허를 찌르는 하나의 작전이긴 했다) 여기서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만, 우리가 인도의 특정 청취자들을 대상으로 방송을 했다는 사실이, 방송을구성하는 테크닉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다는 점은 덧붙이고 싶다. 본질적으로 우리의 문학 방송은 인도의 대학생들을 겨냥한 것이었는데, - P163

소규모의 적대적인 그 청취자들은 영국의 선전운동이라 할 만한 다른무엇으로도 접근할 수 없는 대상이었다. 우리가 기껏해야 수천 명 이상의 청취자를 기대할 수 없다는 건 진작부터 알려진 바였고, 그것이 일반적으로 방송에서 가능한 것보다 고상‘ 해도 되는 핑계가 되어주었던 것이다.
해당 언어를 알되 문화적 배경은 다른 사람들에게 시를 방송할 경우,
어느 정도의 논평과 설명은 불가피한데, 우리가 대개 따랐던 방식은 월간 문학잡지를 가장한 형태의 방송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편집진이회의실에 앉아 다음 호엔 뭘 살을까를 의논하는 시늉을 했다. 누가 어떤시를 제안하면 다른 누구는 다른 시를 제안했고, 잠시 의논을 하다 시가정해지면 다른 목소리가 시를 읽었고, 목소리의 주인공이 그 시의 작가라면 더 좋았다.  - P164

이 시는 자연스레 다른 시를 불러냈고, 프로그램은 그런 식으로 진행됐는데, 대개 두 편의 시 사이에 최소한 30초의 의논이있었다. 30분 분량의 프로그램에서 목소리는 여섯 정도가 제일 알맞은것 같았다. 이런 유의 프로그램은 짜임새가 엉성할 수밖에 없었으나, 하나의 테마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하면 어느 정도 통일성이 있어 보였다.
이를테면 우리가 상상으로 만드는 잡지의 한 호는 전쟁이란 주제를 다뤘다. 여기서 우리는 에드먼드 블런든의 시 두 편, 오든의 「1941년 9월」, G. S. 프레이저의 장시(「앤 리들러에게 보내는 편지」) 일부, 바이런의「그리스의 섬들」, 그리고 T. E. 로렌스의 ‘사막의 반란‘ 일부를 소개했1다. 이 여섯 꼭지와 그 앞뒤의 논의는 전쟁에 대하여 어떤 태도들이 있을 수 있는지를 그런대로 잘 보여주었다. 시와 산문 발췌는 20분 정도, - P164

논의는 8분 정도면 되었다.
이런 구성은 좀 우스꽝스럽고 약간 생색내는 듯하기도 하지만, 비공식적 토론의 모양새를 띠면, 심각하기도 하고 때로는 ‘어렵기도 한 운문을 방송할 때 면하기 어려운 밋밋하고 교과서적인 소개의 분위기가크게 완화되는 장점이 있다. 여러 발언자들은 서로에게 말하는 듯한 형식으로 실은 청취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다. 또한 그런 식으로접근하면 적어도 그 시가 나오게 된 맥락을 설명해줄 수 있는데, 그런맥락이야말로 일반인들이 시를 대할 때 결핍을 느끼는 부분인 것이다. - P165

물론 다른 방법도 있다. 우리가 흔히 써먹은 방법 하나는 음악 속에 시를앉히는 것이었다. 먼저 잠시 후에 이런저런 시를 방송할 것이라고 예고해준다. 이어서 음악을 1분 정도 틀어준 다음 페이드아웃하면서, 제목이든 뭐든 시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은 채 시를 낭독한다. 그리고 음악을 다시 페이드인해서 1~2분 정도 계속 틀어준다. 이렇게 해서 5분 정도에 시 한 편을 음악과 함께 소개하는 것이다. 어울리는 음악을 고르는게 중요하지만, 여기서 음악을 이용하는 진정한 목적은 말할 것도 없이프로그램의 다른 부분들로부터 시를 단절시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하면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한 편을 3분 분량의 뉴스 속보 속에 끼워넣으면서도 어쨌든 내 귀에는 크게 어색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것이다. - P166

하지만 굳이 언급을 한 것은, 그러한 시도들이 시를 대중화하는수단으로 라디오를 이용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과 관련하여 나 자신과여러 사람에게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가져다줬기 때문이다. 나는 시를쓴 사람이 직접 방송을 하는게 그저 청취자들에게만 어떤 효과를 내는것이 아니라, 시인 자신에게도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발견하고서 매료되었다. 시를 방송하는 방법에 관한 한 영국에선 별달리시도된 바가 거의 없으며, 시를 쓰는 많은 사람들이 시를 크게 소리내어읽는다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마이크 앞에 앉음으로써(특히 그럴 일이 정기적으로 있을 때) 시인은 우리의 시대와 나라에서는 달리 접할 수 없는 새로운 관계를 자기 작품과 맺게 된다. 근대에 와서(지난 200년 동안이라고 하자) 시가 음악이나 어갖는 연관성은 점점 더 사라져가고 있다. 시는 존재라도 하기 위해 종이를 필요로 하게 되었고, 시인이란 사람에게 노래나 낭송을 기대한다는 - P166

건 건축가에게 천장에 회반죽 바르는 기술을 기대하는 것보다 곤란한일이 되어버렸다. 서정적이거나 수사적인 시를 쓰는 사람은 거의 없어졌고, 누구나 글을 읽을 수 있는 나라라면 어디서나 일반인들이 시에 거부감을 갖는 게 당연시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간극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그 틈이 계속해서 벌어져가고만 있으니, 시는 주로 인쇄된 형태로소수만이 이해할 수 있는 무엇이라는 관념이 모호함과 교묘함을 더자극하기 때문이다. 단번에 뜻이 통하는 시에 대해 어딘가 분명히 잘못된 거라고 반본능적으로 느끼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다시시를 크게 소리내어 읽게 되지 않는 한 그런 경향은 저지되지 않을 것같은데, 라디오를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고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런가 하면 라디오의 특별한 장점, 즉 적절한 청취자를 고를 수 있고 무대공포증과 당혹감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을 여기서 언급할 필요가 있다. - P167

방송에서 청취자는 어차피 어림짐작이지만 ‘단 한 사람 같은 존재다. 수백만이 듣고 있을 수도 있지만, 각자 혼자 듣고 있거나 작은 그룹의 일원으로 듣고 있으며, 그 각자는 방송이 자기에게만 개인적으로 얘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혹은 받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방송하는입장에선 청취자들이 공감하거나 최소한 관심을 갖고 있다고 여겨도 무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따분한 사람은 언제든 채널을 다른 데로 돌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취자들은 공감은 할지언정 방송하는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다. 방송이 연설이나 강연과 다른 게 바로 이 점이다. 대중 연설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다 알듯이, 연단 위에서는 청중의 반응에 따라 어조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청중이 무엇에 반응하고 안 할지는 항상 몇 분 안에 분명해지며, 실제로 - P167

연사는 청중 가운데 제일 모자란다 싶은 사람을 염두에 두고 발언하지않을 수 없고, 그것도 ‘개성‘이라고 알려져 있는 소란을 떨어가며 환심을 사야 한다. 안 그러면 결과는 언제나 냉랭하고 당혹스런 분위기로 나타난다. 청중 앞에서 하는 ‘시 낭송‘이 끔찍한 건, 청중 가운데 따분해하거나 거의 노골적으로 거부감을 보이면서도 단순히 채널을 돌림으로써 다른 데로 가버릴 수 없는 사람들이 항상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셰익스피어 공연을 제대로 한다는 게 불가능한 것도 본질적으로 같은 어려움 때문이다. 극장의 관객은 선별된 사람들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방송에선 그런 상황이 존재하지 않는다. 방송에서 시인은 시가무엇인지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울러 방송에 익숙해진 시인들이 마이크에 대고 시를 읽으며 청중이보이는 데서라면 발휘할 수 없는 기량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 P168

여기서 가장하는 요소가 개입된다는 건 별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로서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통해, 시를 크게 소리내어 읽는다는 게 당혹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운 일처럼, 사람 대 사람의 정상적인 교류처럼느껴지는 상황을 시인에게 만들어줄 수 있으며, 그 자신의 작품을 종이위의 패턴보다는 ‘소리‘로 여기도록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럼으로써시와 일반인 간의 화해가 더 가까워지게 된다. 그런 화해는 전파를 수신하는 쪽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발신하는 시인의 입장에서는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상대편 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무시할 순 없는 노릇이다. 지금까지 나는 마치 시라는 것 자체가 외설적이다 싶을 정도로 당혹스러운 무엇이며, 마치 시를 대중화하는 게 본질적으로 어린아이한테약을 삼키게 하거나 박해받는 종파에 대한 관용을 세간으로부터 얻어내 - P168

는 일과 같은 전략적 술책이라는 인상을 심어줬는지도 모른다. 그런데유감스럽게도 그런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다. 우리 문명에서 시는 단연코 가장 불신받는 예술, 다시 말해 일반인들이 ‘어떤‘ 가치도 찾아내려하지 않는 유일한 예술임이 분명하다. 아놀드 베넷‘이 영어권 나라에서소방 호스보다 군중을 더 빨리 흩어버릴 수 있는 게 ‘시‘ 라는 단어라고한 건 과장이 아니었다. 그리고 앞에서도 지적했듯, 이런 유의 간극은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더욱 벌어지는 경향이 있다. 일반인들은 점점더 시에 반감을 갖게 되고, 시인은 점점 더 거만하고 난해한 존재가 되어, 결국엔 시와 대중문화 사이의 단절이 일종의 자연법칙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실은 우리 시대에만, 그것도 지구에서 상대적으로 적은일부 지역에만 있는 문제인데도 말이다. 우리는 고도로 문명화된 나라들의 평균적인 인간이 가장 미개한 야만인보다 미적으로 열등한 시대에살고 있다.  - P169

이러한 양상은 ‘의식적인 행동으로는 대체로 치유하기 어려워 보이는데, 다른 한편으로 사회가 좀더 반듯해지면 금방 저절로 나아질 것으로 예상되기도 한다. 약간씩 차이가 있겠지만 마르크스주의자도, 무정부주의자도, 종교를 믿는 사람도 모두 같은 얘기를 할 텐데, 크게 보면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리의 삶이 볼품없는 데는 정신적으로나경제적으로나 원인이 있으며, 어느 순간부터 전통이 실종됐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틀 속에서 개선이 불가능한 건 아니며, 미적인 개선이 사회 전반을 구원하는 데 불필요한 부분인 것도 아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가장 미움받는 예술이라는 특별한 처지로부터 시를 구제하여 사람들이 음악에 베푸는 만큼의 관용만이라도 받도록 하는 게 가능하지는 않을지 곰곰이 생각해볼 만하다. 단, - P169

그러자면 시가 어떤 식으로, 어느 정도로 인기가 없는지를 질문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우선 표면적으로 볼 때 시가 인기 없다는 건 더없이 완벽한 사실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 말은 좀 특수하게 한정해서 해야 한다. 먼저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고 인용되며 모든 이의 마음속에 한 바탕을 이루고 있는 민속 시가(동요 등)가 아직도 상당히 많이 남아 있다. 사람들의 호감을 잃어본 적이 없는 옛날 노래도 제법 남아 있다. 게다가 대체로 애국적이고 감상적인 유의 ‘좋으면서 나쁜 시가 인기를 누리거나최소한 용인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좋으면서 나쁜‘ 시가, 일반인으로 하여금 진정한 시를 싫어하게 만드는 듯한 요소를 전부 갖추고 있는게 아니라면, 엉뚱한 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시 역시 운문으로서 운행을 사용하고 고상한 정서와 특이한 언어를 구사하며, 더구나 현저할 정도로 그러는 게 사실이다. 나쁜 시가 좋은 시보다 더 시적‘ 이란 건 거의 자명한 일인 것이다.  - P170

그런데도 그런 시는 특별한 사랑을 받는 건 아니더라도 최소한 용인되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나는 이글을 쓰기 직전, BBC 9시 뉴스 바로 전에 늘 하는 두 코미디언의 방송을 듣고 있었다. 마지막 3분을 남겨두고 한 코미디언이 갑자기 "잠시 좀심각해지고 싶다"더니 국왕 폐하를 찬양하는 멋쟁이 영국 신사」란 말도 안 되는 애국시를 읊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느닷없이 최악의 영웅시를 듣게 된 청취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심하게 부정적인 반응은 결코아닐 것이다. 아니면 BBC에 그런 짓을 즉각 중단하라는 분노의 편지들이 꽤 날아들 테니 말이다. 그러니 다수 대중이 ‘시‘에는 거부감을 갖고있을지언정 ‘운문‘에는 큰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필요가 있다. 아무튼 사람들이 운율이라는 것 자체를 싫어했다면 어떤 노 - P170

래나 익살 5행시 limerick도 유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시를 싫어하는 것은 시가 불가해성, 지적 허세, 그리고 남들 바쁜데 혼자만 한가로운 소리를 한다는 느낌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시라는 단어 자체가 ‘하느님‘ 이나 목사의 개목걸이 (빳빳이 세운 칼라) 같은 말처럼 나쁜 인상부터 심어주는 것이다. 시를 대중화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는 후천적인 억제를 완화시켜주는 일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기계적인 야유를 내뱉는 대신에 듣도록 해주는 문제다. 내가 방금 들었다는 애국시 나부랭이가 아마 그랬을 것처럼, 진정한 시를 다수 대중에게 ‘정상‘으로 보이도록 소개할 수 있다면, 그것에 대한 편견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른다. - P171

시를 다시 대중화하는 일이 대중의 취향을 육성하려는 의도적인 노력없이 가능하다고 믿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자면 전략이 필요할 것이고,
속임수까지 써야 할지도 모른다. T. S. 엘리엇은 시가, 특히 극시가 뮤직홀이라는 수단을 통해 일반인들의 의식 속에 되살아날 수도 있다는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아직까지 그 엄청난 가능성을 한 번도 철저히 시험해본 적이 없는 판토마임이라는 수단도 추가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투사 스위나는 아마 그런 의도에서 씌었을 것이고, 실제로 뮤직홀의 한 꼭지나풍자 음악극의 한 장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라디오를 보다 희망적인 매체로서 제시했고, 라디오의 기술적인 장점을특히 시인의 입장에서 짚어보았다. 하지만 이런 얘기는 처음엔 부질없이 들릴 텐데, 그건 라디오가 헛소리 이외의 것을 퍼뜨리는 데 이용된다는 상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온 세상 곳 - P171

곳에 있는 확성기에서 그야말로 줄줄 흘러내리는 헛소리들을 듣고 있으며, 그래서 라디오를 딴 게 아니라 바로 그런 걸 들으라고 존재하는 것으로 단정 짓는다. 그래서인지 ‘라디오‘ 라는 단어 자체가 고함지르는독재자나 아군 비행기 세 대가 귀환하지 못했음을 알리는 점잖고 묵직한 음성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니 전파를 타고 들려오는 시는 줄무늬 바지 입은 뮤즈 여신들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 매체의 가능성과 그것의실제 쓰임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방송이 그 모양인 건 마이크와 송신기라는 장치 자체가 본래부터 저속하거나 시시하거나 부정직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지금 전파를 타는 전 세계의 모든 방송이, 현상을 유지하고자 하며 그래서 일반인들이 너무 똑똑해지는 걸 막으려 하는 정부와거대 독점기업의 통제하에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도 그 비슷한 일이 있었다. 영화 역시 독점 자본 형성기에 처음 나왔고, 제작부터 소비 단계까지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장르이다. 그런데 이런 경향은 모든 예술이 다 마찬가지다.  - P172

예술 작품이 만들어지는 경로가 점점 더 관료의 통제하에 들어가고 있는데, 관료의 목표란 결국 예술가를 망가뜨리는 것, 혹은 최소한 거세라도 해버리는 것이다. 현실이 이렇기만 하다면 전망은암울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진행될 게 분명한 전체주의회는 불과 5년 전만 하더라도 예견하기 어렵던 새로운 변화 덕분에 완화되고 있다.
아무튼 우리 모두가 속해 있는 거대한 관료 체제라는 기계장치는 너무 비대하면서도 계속 몸집을 불려야만 하기 때문에 삐걱거리며 돌아가기 시작할 것이다. 현대 국가는 지식인의 자유를 말살하려는 경향을 보이지만, 동시에 모든 국가가(전쟁의 압박을 받을 때는 특히 더) 갈수록 국가의 홍보를 맡아줄 지식인들을 필요로 하게 된다. 현대 국가는 이를테면 - P172

팜플렛 작가, 포스터 화가, 삽화가, 방송인 강연자, 영화제작자, 배우,
작곡가, 심지어 화가와 조각가까지 필요로 한다. 심리학자, 사회학자생화학자, 수학자 등은 말할 것도 없다. 영국 정부는 이번 전쟁에 돌입할 때 문단의 지식인들을 배제할 의사를 거의 공공연하게 밝힌 바 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시점엔 거의 모든 작가를(정치적 이력이나 견해가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정부 각 부처나 BBC로 끌어들였다. 심지어입대를 한 작가들조차도 얼마 뒤면 선전홍보 업무 아니면 본질적으로문필업인 일을 하게 된다. 정부가 내키지 않으면서도 그런 사람들을 흡수한 것은, 그들 없이는 지탱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관리들의 입장에서 이상적인 건 모든 홍보를 A. P. 허버트나 이언 헤이‘
같은 ‘안전한 사람들 손에 맡기는 것일 터였다.  - P173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충분하지 않았기에 기존의 지식인들을 활용해야 했고, 그에 따라 정부홍보물의 어조와 심지어 내용까지 어느 정도 바뀔 수밖에 없었다. 지난2년 동안 피점령국들에 내보낸 정부 팜플렛에, 육군 정훈공보실의 강연에, 다큐멘터리 영화와 방송에 정통한 사람들 중, 우리의 지배자들이 안그럴 수 있는데도 그런 식의 변화를 묵인해준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는아무도 없다. 정부라는 거대 기계는 커지면 커질수록 왜 있는지도 잘 모르거나 거의 잊혀져버리는 자리가 늘어나게 마련이다. 이러한 사실은대단하진 않지만 무시할순 없는 위안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자유주의적인 전통이 강하던 나라에서는 관료 체제의 폭압이 완벽해지는 것이 어쩌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줄무늬 바지 차림인 자들이 지배를 하되, 그들이 지식인들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이상, 지식인들은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발휘할 것이다. 예컨대 정부는 다큐멘터리 - P173

영화가 필요하면 영화제작 전문가들을 써야 하며, 그들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 그래서 관료의 입장에서 보면 완전히 잘못된 영화가 나올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복잡한 현대국가가 필요로 하는 그림, 사진, 대본, 르포, 강연, 또 그밖의 모든 예술과 유사 예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런 경향은 라디오에도 뚜렷하다. 지금 현재 확성기는 창의적인 작가의 적이지만, 방송의 양과 범위가 늘어날수록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지금으로서는 BBC가 동시대 문학에 미미하나마 관심을계속 보이고 있긴 하지만, 시 한 편을 방송할 전파 5분을 확보하는 게거짓 선전이나 녹음된 음악, 상투적인 농담, 가짜 ‘토론‘ 같은 것들을퍼뜨리기 위해 12시간을 확보하는 것보다 어렵다. 하지만 양상은 지금까지 내가 지적한 바와 같은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  - P174

그런 때가 오면 지금은 이런저런 적대적 외압 때문에 엄두도 못 내는, 운문을 방송하는 것과 관련한 진지한 실험들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런 실험들이 아주 대단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라디오는 발전 초기부터 관료화되는 바람에 방송과 문학의 관계가 제대로 검토된 적이 없다.
마이크가 시를 일반인들에게 다시 돌려줄 수단이 될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으며, 시가 글보다 말에 가까워짐으로써 유익할 것인지조차도 확실치 않다. 하지만 나는 그런 가능성들이 존재한다고, 문학을 아끼는 사람들이 너무 무시당하고 있는 매체에 더 관심을 가질지도 모른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싶다. 조드 교수와 괴벨스 박사‘의 음성 때문에 선한 도구로 쓰일 수 있는 가능성이 흐려져버렸는지 모를 이 매체에 말이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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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비밀을 누설한다


스페인내전은 아마도 1914~1918년의 대전 이후 그 어떤 사건보다 풍성한 거짓을 낳았을 것이다. <데일리 메일>지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수녀들이 대대적으로 강간당하고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고도 하지만,
제일 큰 해악을 끼친 게 과연 파시스트 신문들인지는 의심스러운일이다. 영국 대중이 투쟁의 진상을 파악하지 못하도록 훨씬 더 교묘한왜곡 수법으로 방해를 한 건 <뉴스 크로니클>이나 <데일리 워커> 같은좌파신문들이기 때문이다. - P51

이들 신문이 그토록 주도면밀하게 흐려버린 사실은 스페인 정부가(준2자치적인 카탈로니아 정부도 포함해서) 파시스트보다는 혁명을 훨씬 더 두려워한다는 점이었다. 이제는 전쟁이 모종의 타협으로 끝날 게 거의 확실하다. 게다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빌바오 를 내줘버린 정부가과연 꼭 이기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기나 한 건지 의심할 만한 근거도 있다. 그런가 하면 정부가 자체 혁명 세력을 분쇄하는 데는 너무 철저하다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얼마 전부터는 공포정치가 자행되어왔다. 정당에 대한 탄압, 언론에 대한 숨 막힐 듯한 검열, 끊임없는 첩보활동, 재판 없는 대량 투옥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6월 말에 바르셀로나를 떠나올 때 감옥은 그야말로 미어터졌다. 일반 감옥은 수용인원을 초과한 지 오래여서 수감자들은 빈 가게를 비롯해 임시 감옥으로 쓰일 만한 곳 어디로든 마구 처넣어졌다. 그런데 특히 주목할 점은지금 투옥되어 있는 사람들이 파시스트가 아니라 혁명운동가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식견이 너무 오른쪽 이어서가 아니라 너무 ‘왼쪽‘ 이어서갇혀 있다. 그리고 그들을 그곳에 가둔 데 책임이 있는 이들은 가빈‘이덧신을 신고도 이름만 들어도 부르르 떠는 무시무시한 혁명가들, 바로공산주의자들인 것이다. - P52

그 와중에도 프랑코와의 전쟁은 계속됐다. 그러나 최전선의 참호에서싸우는 불쌍한사람들이 아닌 이상, 이 전쟁을 진짜 전쟁으로 여기는 이는 공화국 정부 내에선 아무도 없었다. 진짜 싸움은 혁명과 반혁명 세력간의 대결인 것이다. 다시 말해 1936년에 쟁취했던 작은 것에 헛되이매달리는 노동자들, 그리고 그것을 그들에게서 너무나 성공적으로 탈환하고 있는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연합 세력 사이의 싸움인 것이다. 공산주의가 이제는 반혁명 세력이 되었다는 사실을 따라잡은 사람이 아직도영국에 거의 없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공산주의자들은 어디서나 부르주아 개량주의 세력과 동맹을 맺고 있으며, 혁명적 성향을 보이는 정당이 있으면 강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분쇄하거나 비방하고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우파 지식인들로부터 악랄한 ‘빨갱이‘ 라며 맹공을 당하는 공산주의자들이 실은 그들과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어이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윈덤 루이스 씨 같은 사람들은 적어도 당분간은 공산주의자들을 사랑해야만 한다. 스페인에서 공산주의와 자유주의 연합 세력은 거의 완벽한 승리를 거두고 있다.  - P53

심각한 비상사태가 벌어질 경우, 대중전선에 내재된 모순은 절로 모습을 내보이게 되어 있다. 노동자도 부르주아도 파시즘에 맞서 싸우긴하되, 둘이 같은 것을 위해 싸우는 건 아닌 까닭이다. 다시 말해 부르주아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즉 자본주의를 위해 싸우며, 노동자는 문제를이해하는 한 사회주의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 혁명 초기에 스페인 노동자들은 문제를 아주 잘 인식하고 있었다. 파시즘이 패하는 지역에서 그들은 저항 병력을 몰아내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지역위원회, 노동자 민병대, 경찰력 등등을 이용하여 땅과 공장을 장악하고 투박하나마 노동자 정부의 기초를 세우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들은 공화국 정부를 명목상으로만 통제하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 P55

이 글의 전반부에서, 나는 스페인 정부 입장에서 볼 때 진짜 싸움은혁명과 반혁명 세력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정부가 프랑코에게 지지 않으려고 몹시 애를 쓰긴 하되, 전쟁이 터지면서 일어난혁명적인 변화를 돌이키기 위해 훨씬 더 애를 태웠다고 했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떤 공산주의자는 오해거나 악의적인 거짓말이라며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혁명이 일어난 적이 없기 때문에 스페인 정부가 혁명을 분쇄한다는 말은 난센스이며, 지금 우리가 할 일은 파시즘을 꺾고 민주주의를 방어하는 것이라 말할 것이다. 바로 이 맥락에서 공산주의자들의 반혁명 선전이 과연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알아보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 공산당 세력이 아직 작고 비교적 약한 영국에서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우리는 영국이 소련과 동맹을 맺는다면 그게 어떤 상관이 있는 일인지 당장 알게 될 것이다. 아니면 더 이를 수도 있으니, 자본가들도 언젠가부터 공산주의가 자신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점점 깨달아감에 따라 공산당의 영향력은커지게 마련인 까닭이다. - P58

그렇다면 트로츠키주의자란 무엇인가? 이 끔찍한 명칭은 영국에서는이제 막 쓰이기 시작하고 있다(지금 이 순간 스페인에선 트로츠키주의자란 소문만 나도 재판 없이 감방으로 끌려들어가 무한정 갇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더 자주 듣게 될 말이다. ‘트로츠키주의자‘ (또는 트로츠키 파시스트 )란 말은 대체로 좌파 세력을 분열시키기 위해 매우 혁명적인 자세로위장한 파시스트를 지칭한다. 그런데 이 말이 지닌 독특한 힘은 그것이세 가지 뜻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즉 트로츠키주의자는,
트로츠키처럼 세계혁명을 바라는 사람일 수도, 트로츠키가 우두머리인실제 조직의 일원일 수도(정확한 용례는 이 경우 하나뿐이다), 이미 언급한위장 파시스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세 가지는 멋대로 어느 하나를다른 하나에 겹쳐놓을 수가 있다. 달리 말해 첫 번째 뜻의 경우 두 번째뜻을 포함할 수도 포함하지 않을 수도 있고, 두 번째 뜻의 경우엔 거의항상 세 번째 뜻을 동반하게 된다.  - P59

그건 그렇고, 전쟁에서 이길 수는 있을까? 공산주의자들의 영향력이혁명적 혼란을 막는 쪽으로 행사됨에 따라, 러시아의 원조와는 별개로군사적인 역량이 커진 감은 있다. 1936년 8월부터 10월까지는 무정부주의자들이 정부를 구했다면, 10월 이후로는 공산주의자들이 구했다.
그런가 하면 그들은 방어를 조직화하는 과정에서 스페인 내부의 열정을죽이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징병제를 가능케 하는가 하면 필수적인 것으로 만들기도 했다. 이미 금년 1월 초에 자발적인 모병이 사실상 없어졌다는 건 의미심장한 일이다. 혁명군은 때로는 열정으로 이기기도 하지만, 징집군은 무기로만 이길 수 있다. 그리고 프랑스가 개입하지 않는한, 아니면 독일과 이탈리아가 스페인의 식민지들을 낚아채고 곤경에처한 프랑코를 내버려두기로 하지 않는 한, 정부군이 군사력에서 우위를 점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전반적으로 정부가 궁지에 몰릴 가능성이 다분해 보인다.
그렇다면 정부는 꼭 이겨야겠다는 의지가 있는가? 지려고 하지 않는다는 건 확실하다. 그런가 하면 확실한 승리, 즉 프랑코가 망명하고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이 바다로 내몰리는 상황이 올 경우 곤란한 문제들이생긴다.  - P61

내가 이 글에서 말한 모든 것은 스페인에서, 심지어는 프랑스에서도쉽게 들을 수 있는 소리다. 그런데 영국에선 스페인내전에 대한 관심이그토록 대단함에도 스페인 정부 막후에서 벌어지고 있는 엄청난 갈등에대해 들어본 사람이 너무 없다. 물론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스페인의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엄연히 고의적인 음모가 있기 때문이다(구체적인 사례들을 들 수도 있다). 양식 있게 행동해야 할 사람들이,
스페인의 진실을 이야기하면 파시스트 선전에 이용될 것이라는 이유로모르는 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비겁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스페인내전의 진상 보도를 접할 수 있었다면, 영국 대중은 진짜 파시즘이 무엇이며 그것에 어떻게 맞서 싸울지 알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뉴스 크로니클>에서 그리는 파시즘은 경제공황 속에 블림프대령‘ 스타일의 살인들이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설쳐대는 식이고 그것이 그 어느 때보다 더 단단히 굳어져버렸다. 이렇게 우리는 파시즘에 맞서는 대전에(1914년 전쟁은 ‘군국주의에 맞서는 것이었다) 한발 더 다가서게 되었으며, 그 덕분에 파시즘의 영국식 변종은 당장이라도 우리의 목을 스치고 지나가버릴 수 있게 되었다. - P62

나는 왜 독립노동당에 가입했는가


먼저 개인적인 입장에서 접근하는 게 아마도 가장 솔직한 일일 것이다.
나는 작가다. 모든 작가는 ‘정치에 거리를 두려는 충동을 느낀다. 평화롭게 책을 쓸 수 있도록 내버려두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런 이상은 기업형 슈퍼마켓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기를 바라는 구멍가게 주인들의 꿈보다도 실현 불가능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우선 언론 자유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 영국에서 언론의 자유는언제나 일종의 사기였다. 마지막 순간에는 언제나 돈이 의견을 지배한다. 그런가 하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할 법적 권리가 있는 한 별난 작가가 빠져나갈 구멍은 언제나 있기도 하다. 지난 몇 해 동안 나는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책들을 쓰면서도 자본가계급으로 하여금 매주 및 파운드의 대가를 지불하도록 하는 생활을 어찌어찌 할 수 있었다.  - P63

나는 그런 상황에 맞서 싸워야 한다. 그것은 내가 아주까리기름이나 고무 곤봉이나 강제수용소에 맞서 싸우는 것과 매한가지 일이다. 그리고 길게 볼 때 언론의 자유를 감히 허용할 체제는 사회주의 체제밖에 없다. 파시즘이 승리한다면 나는 작가로서는 끝이다. 즉, 내가 가진 유일하게 쓸 만한 능력이 끝이라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사회주의 정당에 가입할 이유는 충분할 것이다.
개인적인 입장을 먼저 얘기했는데, 그런 사정만 있는 건 물론 아니다.
생각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금 우리 사회와 같은 곳에 살면서 변화를 바라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0년 동안 나는 자본주의 사회의 본성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버마에서 영국 제국주의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목격했고, 영국에 와서는 빈곤과 실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나로서는 그런시스템에 맞서 싸운다는 게, 주로 독서 대중에게 영향을 끼쳤으면 하는책들을 쓰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계속해서 그렇게 하겠지만, 지금 같은시기에는 책을 쓰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 P64

그렇다고 내가 노동당에 대한 신뢰를 전부 잃었다는 건 아니다. 내가가장 열렬히 바라는 바는 노동당이 다음 총선거에서 확실한 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노동당의 역사가 어떠했는지를 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끔찍한 유혹, 즉 제국주의 전쟁을 준비하기위해 모든 원칙을 배 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은 유혹이 어떤 것인지 안다.
지금은 박해를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사회주의 원칙을 타협하지 않을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일군의 사람들이 꼭 필요한 때다.
나는 독립노동당이 제국주의 전쟁이나 영국적 형태로 나타날 파시즘에 맞서 바른 노선을 견지할 수 있는 유일한 정당이라 믿는다. 지금 독립노동당은 어떤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른 지지를 받는 것도 아니고, 여러 방면으로부터 체계적인 비방을 받고 있다. 그러니 받을 수 있는 도움은 다 받을 필요가 있으며, 거기엔 내가 줄 수 있는 어떠한 도움도 포함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스페인에서 독립노동당 파견대와 함께 행동했다.
나는 그때나 그 이후로나 통일노동자당POUM이 내세우고 독립노동당이 지지한 방침에 전부 동조할 수는 없었지만, 사태의 전반적 진전을 보면 그들이 정당했음을 알 수 있다.  - P65

마라케시


시신이 지나갈 때 레스토랑 테이블의 파리들은 구름처럼 몰려가더니몇 분 뒤에 돌아왔다.
운구 행렬 한 무리가 (모두 성인 남자들과 소년들뿐이고 여자는 없었다) 곡소리를 내며, 석류 무더기와 택시와 낙타가 붐비는 장터 사이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고 있었다. 파리들의 입장에서 정말 끌리는 것은, 이곳에서는 시신을 관에 넣는 법 없이 그냥 넝마에 싸서 투박한 나무들것에싣고는 친구 넷이서 어깨에 져 나른다는 점이다. 친구들은 장지에가면 기다란 구멍을 1~2 피트 깊이로 파고는 시신을 부려놓고서, 깨진벽돌 같은 말라빠지고 덩어리진 약간의 흙으로 덮어버린다. 묘석도 이름표도, 아무 식별 표지도 없다. 장지는 버려진 집터처럼 황량한 흙무더기 언덕일 뿐이다.  - P67

이런 도시에서 (인구 20만 중에 적어도 2만은 말 그대로 가진 게 걸치고 있는누더기뿐이다) 걸어다니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또 얼마나 쉽게 죽는지를 보면, 과연 내가 인간들 사이를 걷고 있는 게 맞는가 하는 느낌을 항상 갖게 된다. 모든 식민제국은 실제로 그런 사실의 기반 위에서있다. 사람들 얼굴색이 짙으며, 그 숫자가 워낙 많다는 것이다! 그들도과연 우리와 같은 인간인가? 그들에게도 이름이란 게 있는가? 아니면벌이나 산호충만큼만 개별적인, 서로 구별되지 않는 갈색의 존재에 불과한가? 그들은 흙에서 나서 몇 년 동안 땀 흘리고 굶주리다 폐기장의이름 없는 흙더미 속으로 돌아가 묻히며, 그들이 왔다 갔다는 것을 알아주는 사람도 없다. 더구나 무덤 자체도 얼마 뒤면 금세 보통 흙으로 돌아가버린다. 산책을 하며 선인장 사이를 빠져나가다가 좀 울퉁불퉁한데가 있을 경우, 튀어나온 부분들이 어느 정도 규칙적이면 발밑에 해골이 있다는 뜻이다. - P68

노동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대체로 눈에 잘 안 띄며, 중요한일을 할수록 눈에 덜 띄는 경향이 있다. 그래도 피부색 하얀 사람들은훨씬 나은 편이다. 북유럽에서는 밭 가는 사람을 보면 한 번 더 눈길을주기가 쉽다. 그에 비해 더운 나라에서는, 예컨대 지브롤터 해협 남쪽이나 수에즈 운하 동쪽의 더운 나라에서는 그런 사람이 아예 눈에 안들어 - P71

올 가능성이 많다. 나는 그런 현상에 몇 번이나 주목한 바 있다. 열대의풍경에선 이상하게 사람만 빼놓고 모든 게 눈에 잘 들어온다. 말라붙은땅도, 석류도, 야자수도, 먼 산도 눈에 잘 뜨인다. 그러나 밭에서 괭이질하고 있는 농부만은 꼭 놓치게 된다. 그것은 그의 피부색이 흙색과 같으며, 그래서 보는 재미가 훨씬 덜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굶주리는 나라들이 관광휴양지가 되어가는 건바로 그래서다. 아무리 싸도 불황이 횡행하는 곳에 놀러갈 사람은 없을것이다. 하지만 사람들 피부가 갈색인 곳에서는 빈곤이 눈에 들어오지않는 것이다. 프랑스인에게 모로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오렌지나무숲이나 식민기구의 일자리다. 영국인에겐? 낙타, 성곽, 야자수, 프랑스외인부대, 놋쇠 쟁반, 도적떼다. 그러니 여기서 몇 년을 살아도 인구의9할은 다 침식된 토양에서 얼마 안 되는 먹을거리를 짜내느라 늘 허리가 부러지도록 노동에 시달려야 하는 게 현실이란 걸 전혀 모를수도 있는 것이다. - P72

모로코의 당나귀는 세인트버나드 종의 개보다 클까 말까 한 정도이면서 영국 군대 같으면 성인정도 키의 노새한테도 지나치다고 싶을 만큼의 짐을 지며, 무거운 길마 자체를 몇 주씩이나 아예 벗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데 특히나 가여운건 당나귀가 이 세상에서 제일 순종적인 짐승이어서 주인을 개처럼잘 따라다니며 굴레나 고삐가 필요하지도 않다는 점이다. 십여 년을헌신하다 갑자기 털썩 쓰러져 죽으면 주인은 당장 당나귀를 고랑에 밀어넣어버리고, 마을 개들은 당나귀의 체온이 채 식기도 전에 내장까지다 발라버린다.
그런 생각을 하면 피가 끓을 듯하건만, 인간의 곤경 때문에 그러는 경우는 잘 없다. 나는 지금 사실에 대한 논평을 하는 게 아니라 사실을 지적하는 것일 뿐이다. 옆집에 사는 피부색 짙은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등이 다 벗겨진 당나귀를 보고서 안쓰러워할 수 있지만, 장작더미 밑에 웅크린 노파가 눈에 띄기라도 하는 건 우발적인 사고에 가까운 것이다. - P74

행렬이 지나갈 때 아주 어린 흑인 하나가 돌아보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그가 내게 던진 표정은 익히 예상할 만한 그런 표정이 전혀아니었다. 적대적이지도, 경멸적이지도, 부루퉁하지도, 탐색적이지도않았다. 그것은 수줍어하며 눈이 휘둥그레지는, 기실 깊은 존경심이 드러나는 흑인의 표정이었다. 나는 그게 어떤 것인지 알았다. 프랑스 시민이며 그래서 숲에서 끌려와 바닥 청소나 하고 기지촌에서 매독에나 걸리게 될 이 불우한 소년은 정작 하얀 피부 앞에서 존경의 감정을 내보였다. 그는 백인종이 자신의 주인이라 배웠으며 아직도 그렇게 믿고 있는것이다.
그러나 흑인 군대의 행군을 보면 어떤 백인이든 품게 되는 생각이 하나 있다(그리고 이 점에 있어선 자칭 사회주의자도 전혀 다를 바 없다). "우리가언제까지 저들을 골려먹을 수 있을까? 얼마나 있으면 저들이 총구를 다른 방향으로 돌릴까?" - P75

정말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곳에 있는 백인이라면 누구나 마음 한구석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그랬고, 다른 구경꾼들이 그랬고, 땀흘리는 말에 올라탄 장교들이 그랬고, 그들과 함께 행군하는 백인 하사관들이 그랬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알지만 약아서 말은 안 하는 그런유의 비밀이었다. 모르는 건 흑인들뿐이었다. 무장한 자들이 1~2마일줄을 지어 평화롭게 흐르듯 걸어가는 모습이 마치 소떼가 긴 행렬을 이루어 가는 광경 같았다. 그리고 그들 위에 반대 방향으로 유유히 떠가는크고 하얀 새들은 종잇조각처럼 반짝였다. - P76

좌든 우든 나의 조국


일반적인 믿음과는 반대로, 과거는 현재보다 특별히 대단한 게 아니다. 과거가 더 극적으로 보일 수 있는 건, 여러 해에 걸쳐 따로 일어난일들이 돌이켜 볼 때 하나로 압축되며, 우리의 기억 중에 원래 그대로의진정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은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1914~1918년의 전쟁이 지금의 전쟁에 부족한 웅장하고 대서사시적인 분위기를 띠는것은 주로 그뒤에 있었던 책이나 영화나 회상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전쟁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그리고 나중에 덧붙은 것과 진짜 기억을 분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당시에 자신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게 대개는 큰 사건이 아니었다는 점을 알게 된다. 나는 예컨대
‘마른 강 전투‘‘가 당대의 일반 대중에게, 나중에 덧붙은 멜로드라마적분위기를 드리웠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나로서는 몇 해가 지나도록 ‘마른 강 전투‘라는 말 자체를 들어본 기억이 없는 것이다.  - P77

내 기억을 정직하게 가려내고 나중에 알게 된 것을 무시한다면, 전쟁 내내 그 무엇보다나의 심금을 절절히 울린 일은 몇 해 이전에 있었던 타이타닉호 침몰 사건이었다. 전쟁에 비한다면야 사소한 참사일 뿐이겠지만, 이 사건은 온세계에 충격을 주었고, 그 충격이 전쟁 당시까지도 가시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아침 식탁에서 그 끔찍한 사건의 기사를 낱낱이 읽던 소리를지금도 기억하고 있다(그 시절엔 신문을 큰 소리로 읽는 관습이 있었다). 내기억에 그 무시무시한 이야기들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지막 순간에 타이타닉호가 갑자기 곧추서서 뱃머리부터 가라앉기 시작했고, 그래서 사람들이 300피트 이상 공중에 뜬 채 배꼬리에 매달려 있다 심연으로 곤두박질했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어디서 뚝떨어질 때의 서늘한 느낌이 뱃속에 밀려오는 듯하다. 하지만 전쟁에선어떤 사건도 내게 그런 느낌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던 것이다. - P78

전쟁 중기의 일로 주로 기억나는 것은 포병들의 딱 벌어진 어깨와 불룩한 종아리와 짤랑거리는 박차다(나는 보병보다는 포병의 군복을 훨씬 더좋아했다). 전쟁 말기의 일로는 무엇이 제일 기억에 남는지 솔직히 말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간단히 ‘마린‘ 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는 위를 통하지 않고는 전쟁의 영향을 거의 느끼지 못했던 1917년 무렵 어린아이들의 고약한 이기심이 어떤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학교 도서관에는 거대한 서부전선 지도가 이젤에 붙어 있었고, 지그재그로 꽂혀 있는 압정들 사이로 빨간 비단실이 이어져 있었다. 이따금 그실은 반 인치쯤 이쪽저쪽으로 옮겨지곤 했는데, 한번 옮겨질 때마다 시체가 피라미드처럼 쌓인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나는 지능이 평균 이상인 아이들이 모인 학교에 있었지만, 어떤 큰사건도 중대한 의미를 띠고 우리에게 다가온 적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예를 들어 러시아혁명은 어쩌다가 러시아에 투자를 한 부모를 둔몇몇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우리에게 아무런 인상도 남기지 못했다.  - P79

하나는 오랫동안 두려워하던 전쟁이 결국 시작되면 오히려 마음을 놓게 될 것이라는 점이었고, 또 하나는 내가애국심이 있어 우리 편에 반기를 들지 않고 전쟁을 지지할 것이며 가능하면 참전하여 싸우기까지 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잠에서 깨어나 아래층에 내려가보니 리벤트로프가 모스크바로 날아갔음을 알리는 신문이와 있었다. 바야흐로 전쟁이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체임벌린 정부라할지라도 충성을 바칠 수밖에 없을 터였다. 물론 그런 충성이야 제스처에 불과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럴 뿐임은 말할 것도 없다. 내가 아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랬듯, 정부는 내게 어떤 자리도, 일개 사무원이나이등병의 자리조차도 주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그 때문에 내 마음이 바뀌는 건 아니다. 더구나 그런 마음은 조만간 어떤 식으로든 이용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전쟁을 지지하는 이유를 스스로 옹호해야만 한다면, 나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히틀러에게 저항하느냐 아니면 굴복하느냐의 선택에선 딱히 다른 대안이 없는 것이다. 아울러 사회주의자 입장에서 나는 저항하는 게 낫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 P83

공화파가 저항하는 것, 중국인이 일본에 저항하는 것 등등에 대하여 굴복하는 게 낫다는 주장 중에 말이 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실들이 내 행동의 감성적 바탕인 척하고 싶지 않다. 그날 밤꿈을 통해 내가 알게 된 것은, 중산층에게 주입되어온 애국주의가 마침내 효과를 본다는 것이었으며, 영국이 심각한 궁지에 빠지면 나로서는애국주의에 반기를 드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단, 여기서 오해는없도록 하자. 애국주의는 보수주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애국주의는변하고 있되 신비롭게도 똑같이 느껴지는 무엇에 대한 헌신이다. 이를테면 백군 출신으로 볼셰비키가 된 사람의 러시아에 대한 헌신 같은 것이다. 체임벌린의 영국에 충성하는 동시에 내일의 영국에 충성한다는건, 그것이 일상적인 현상임을 모른다면 불가능해 보일지 모른다.  - P84

그런데 혁명은 지금 시작됐으며, 우리가 히틀러를 막아낼 수만 있다면 꽤 빠르게 진전될 수 있을지 모른다. 계속 버틸 수만 있다면, 우리는 2년, 잘하면 1년 안에 앞일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백치라도 깜짝 놀랄 변화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나는 런던의 도랑에 핏물이 흘러야 할 것이라고감히 말하겠다. 좋다. 필요하다면 그러라고 하자. 하지만 리츠 호텔이시민 혁명군의 숙소로 이용된다 하더라도, 나는 그 오래전부터 온갖 이유로 사랑하라고 배워온 영국이 어떻게든 존속하리라 생각할 것이다.
나는 군국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자랐고, 그뒤로는 날마다 나팔 소리를 들으며 따분한 5년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도 국가가 울려퍼질 때 일어서서 부동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왠지 신성모독이라도 범하는기분이다. 물론 유치하긴 하지만, 나는 너무 ‘계몽‘ 되어서 가장 일상적인 정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좌파 지식인처럼 되느니 그런 식의 훈육을 - P84

받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정작 혁명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 움찔하며 물10러서는 이들은 국기를 보고 ‘한 번도 가슴이 두근거려본 적이 없는 바로 그 사람들인 것이다. 존 포드가 죽기 얼마 전에 쓴 시 (「우에스카의폭풍전야」)와 헨리 뉴볼트 경의 "오늘밤 클로즈에 숨가쁜 침묵 있으리""
를 비교해보라. 기술적인 차이야 시대의 문제일 뿐이니 무시해버린다면, 두시의 정서가 거의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국제여단의 일원으로 영웅적인 죽음을 맞이한 젊은 공산주의자는 뼛속까지 어쩔 수없는 사립학교 출신이었다. 그에게 있어 충성의 대상은 바뀌었을지언정정서만은 그대로였다. 이로써 입증할 수 있는 바는 무엇일까? 블림프대령의 뼈에 살을 붙여 사회주의자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점, 어떤 유의 충성심이 다른 유의 것으로 변모할 수도 있다는 점, 어수룩한 좌파들이 아무리 싫어한다 해도 애국주의와 군사적 가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것을 대체할 만한 것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 P85

영국, 당신의 영국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대단히 문명화된 인간들이 내 머리 위로날아다니며 나를 죽이려 하고 있다.
그들은 개인적으로 나에게 무슨 원한이 있는 게 아니며, 나 또한마찬가지다. 그들은 흔히 말하듯 "자기 임무를 수행할 뿐인 것이다. 나는그들 대부분이 사생활에서는 살인을 저지른다는 건 꿈도 못 꿀 선량하고 준법정신 투철한 시민임을 의심치 않는다. 반면에 그들 중 하나가 폭탄을 잘 떨어뜨려 나를 산산조각 내는 데 성공하더라도 그가 그 때문에특별히 잠을 못 이룰 리도 없을 것이다.  - P87

그리고 국가와 국가의 차이가 관점의 실질적인 차이에서 비롯된다는1점을 인정해야 한다. 최근까지만해도 모든 인류를 서로 아주 비슷한 존재로 보는 게 마땅하다는 믿음이 있었는데,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실제로는 사람들의 평균적인 행동 방식이 나라별로 엄청나게 다르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한 나라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다른 나라에서는 일어날 리 없는 것일 수 있다. 예컨대 히틀러의 6월 숙청‘ 같은 일은 영국에서는 일어날 수 없다. 그리고 서구 민족들 기준으로 볼 때, 영국인은대단히 차별점이 많은 민족이다. 이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외국인들이우리만의 생활 방식에 대해 느끼는 혐오감으로 보건대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다. 유럽인들 중에 영국에서의 생활을 견딜 수 있는 이는 얼마 없으며, 미국인들조차도 영국보다는 유럽 대륙을 더 편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 - P88

대도시의 군중은 얼굴이 조금씩 읽었고 치아가 부실하고 거동이 점잖은 게 유럽 대륙의 군중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윽고 영국의 방대함에 빠져들고 나면, 나라 전체가 단일하고 차별적인성격을 갖는다는 느낌을 한동안 잊어버리게 된다. 민족이란 게 정말 있기나 한가? 우리는 4600만이라는 제각기 다른 개인이 아닌가? 그리고우리들 각자는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한가! 그런데 랭커셔 지역 공업지대의 나막신 달가닥거리는 소리, ‘그레이트노스 도로‘를 오가는 화물차들, 직업소개소 앞에 줄지어 있는 사람들, 소호에 있는 주점들의 핀볼기계, 가을 아침 자전거를 타고 안개를 가르며 성찬례에 참석하러 가는노부인들이 모든 것들이 유일하지는 않으나 영국적 풍모를 보여주는
‘고유한‘ 단편들이다. 그렇다면 복잡하게 뒤섞인 것들 중에서 패턴을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ㅁㅁㅇ 이시비 - P89

하지만 외국인들과 이야기를 해보거나 외국의 책 혹은 신문을 읽어보라. 당장 같은 생각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그렇다. 영국 문명에는 차별적이고 알아보기 쉬운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 그것은 스페인의 그것못지않게 개성적인 문화다. 그것은 물기 없는 아침식사와 음울한 일요일,
매연 자욱한 도시와 구불구불한 길, 초록빛 들판과 빨간우체통 같은 것들과 어떻게든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것에는 나름의 정취도 있다. 더욱이 그것은 연속적이고, 미래와 과거까지 이어져 있으며, 생명체의 경우처럼 변함없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1940년의 영국은 1840년의 영국과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 어머니가 벽난로 선반에 둔 사진 속 다섯 살 때의 당신과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동일인이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은 ‘당신‘의 문명이요, 당신 ‘자신‘ 이다. 당신 - P89

이 아무리 혐오하거나 조롱해도, 그것을 떠나서 결코 오랫동안 행복하지는 못할 것이다. 선하든 악하든 그것은 당신의 것이며 당신은 그것에속한다. 그리고 이승에 있는 한 당신은 그것이 당신에게 남긴 흔적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한편 영국은 세계의 다른 어느 곳과도 마찬가지로 변하고 있다. 또한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특정 방향으로만 변할 수 있으며, 그 방향은어느 정도까지 예견할 수 있다. 그렇다고 미래가 확정적이라는 것은 아니며, 어떤 대안은 가능하고 또 어떤 건 그렇지 않다는 뜻일 뿐이다. 씨앗 한 알은 자랄 수도 있고 자라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순무 씨앗이 당근으로 자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전개되고 있는 엄청난 사건들에 대해 영국이 어떤 ‘역할‘을 할 수있는지를 추측하기 전에, 영국이란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일일 것이다. - P90

하지만 어떤 사회는 서민들은 어느 정도 기존 질서를 거스르며 살아야 한다. 영국의 진정한 대중문화는 표면 바로 밑에서 진행되고 비공식적이며 당국의 눈살을 좀 찌푸리게 하는 무엇이다. 서민들, 특히 대도시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을 볼 때 바로 눈에 띄는 것 하나는 청교도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그들은 고질적인 도박꾼이고, 벌이가 허락하는 선까지 한껏 맥주를 마시고, 음담패설을 너무 좋아하며, 아마도 이 세상에서상스러운 말을 가장 잘할 것이다. 그들은 황당하고 위선적인 법이 있어도(주류 판매 허가법이니 복권법이니 하는 것들이 특히 그렇다) 그런 취향을 충족시키며 살아야 하는데, 그런 법이란 온갖 사람을 다 간섭하려고 고안되지만 실은 온갖 일이 다 일어날 수 있게 해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또한 서민들은 분명한 종교적 신념 없이 살며, 여러 세기 동안 그래왔다. - P93

영국에서는 모든 애국주의적 과시와 허세를, 이를테면 애국가요인대영제국이여 지배하라같은 것들을 나서서 하는 사람이 극소수다.
서민들의 애국주의는 요란하지 않으며, 그런 의식 자체가 없기까지 하다. 그들이 기억하는 역사적 사건들 중에는 군대가 거둔 승전의 이름 하나조차 없다. 영국 문학에는 다른 나라 문학들과 마찬가지로 전쟁시가아주 많지만, 그중에 인기 있다 할 만한 것들이 언제나 참사나 후퇴를다루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트라팔가 해전이나워털루 전투에 대한 인기 시는 없는 것이다. 이를테면 존 무어 경의 부대가 코루나에서 해상으로 탈출하기 직전에 벌인 필사적인 후방 지연작전이(던커크에서처럼 말이다!) 눈부신 승전보다 더 끌리는 것이다. 영국에서 가장 감동적인 전쟁시는 엉뚱한 방향으로 돌격한 기병 여단을 다룬 것이다. 그리고 지난번 전쟁의 경우, 일반 대중의 기억 속에는 몽스Mons, 이프르ypres, 갈리폴리Gallipoli, 파스샹달Passchendaele이라는4개의 이름이 각인되었는데 하나같이 대참사가 일어난 곳이다. 독일군을 마침내 격파한 큰 전투들의 이름은 일반 대중에게 아예 알려져 있지않다. - P95

법이 정당한 것인 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부자를 위한 법과 빈자를 위한 법이 따로 있다는 건 누구나 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이 함축하는 바는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모두가 법이 그 자체로 존중되는 것을 당연시하며, 그렇지 않으면 흥분한다. "날 잡아넣을 순 없어, 내가 잘못한게 있어야지"라거나 "나한텐 못그럴걸, 그건 불법이니까"라는 태도가 영국 사회의 한 분위기인 것이다. 사회의 공공연한 적들에게도 이런 정서는 다른 누구 못지않게 강하다. 우리는 그런 현상을 윌프레드 매카트니의 벽에도 입이 있다나 짐펠런의 『교도소 여행』 같은 감옥 관련 책에서 볼 수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재판에서 벌어지는 엄숙한 백치행위에서도, 저명한 마르크스주의자 교수들이 이런저런 것을 "영국 사법제도의 과실"이라 지적하며 신문에 투고하는 글에서도 볼 수 있다. 누구나 내심으로는 법이 불공정하게 집행될 수 있고, 그럴 수밖에 없으며, 대체로 그렇게 되리라 믿고 있다. 하지만 법 같은 건 없고 힘만이 존재할 뿐이라 믿는 전체주의적 발상은 아직 뿌리를 내린 바 없다. 그런 생각은 지식인들도 이론으로만 받아들일 뿐이다. - P98

모든 허상은 절반의 진실이 될 수 있으며, 가면 때문에 얼굴 표정이바뀔 수도 있다. 민주주의가 전체주의와 똑같다‘거나 똑같이 나쁘다‘
고 하는 익숙한 주장들은 그런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런 주장들은 전부 결국엔 빵 반 덩어리는 빵이 없는 것과 같다고 하는 것이다.
영국에선 정의니 자유니 객관적 진실이니 하는 개념들을 아직도 믿고있다. 그것들은 허상일지 모르나 대단히 강력한 힘을 지닌 허상이다. 그 - P98

런 것들에 대한 믿음이 행동에 영향을 끼치며, 그 때문에 국민 생활이달라지는 것이다. 증거가 필요하다면 주변을 둘러보면 된다. 경찰봉이어디 있고, 아주까리기름이 어디 있는가? 칼은 여전히 칼집 안에 있으며, 그러는 동안은 부패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예컨대 영국의선거제도는 거의 대놓고 벌이는 사기다. 너무 빤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선거구는 돈 가진 계급의 이익을 위해 마음대로 변경된다. 하지만 대중의 마음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선거제도가 완전히 부패하는 법은 없다. 투표소에서 권총 든 사람들이 어디다 표를 찍으라고 말하는 경우도 표 집계를 엉뚱하게 하는 일도, 공공연한 뇌물수수도 없다.
심지어는 위선도 강력한 안전장치가 된다. 교수형을 좋아하는 가혹한판사는 주홍빛 법복을 입고 말털 가발을 쓴 악독한 늙은이에, 다이너마이트가 아니고선 지금 몇 세기를 살고 있는지 깨우쳐줄 수 없는 사람이지만, 적어도 책에 있는 대로 법을 해석할 수 있고 어떤 경우에도 뇌물을 받지 않는 영국의 상징적 인간상 중 하나인 것이다. 그는 현실과 허상을, 민주주의와 특권을, 협잡과 품위를, 미묘한 타협의 연결고리를 묘하게 섞어놓은 하나의 상징이다. 그리고 국가는 그런 상징으로써 익숙한 모양새를 유지한다. - P99

영국인이 상당한 재능을 보인 예술이 하나 있으며, 문학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학은 국경을 넘어갈 수 없는 유일한 예술이기도 하다. 문학, 특히 시는, 또 그중에서도서정시는 일종의 가족끼리만 통하는 농담 같은 것이다. 말이 통하는사람들끼리가 아니면 거의 무가치하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를 제외한다면, 영국 최고의 시인들이 유럽에서는 이름조차도 알려지지 않은경우가 많다. 널리 읽히는 시인이라 해봐야 바이런과 오스카 와일드정도인데, 전자는 엉뚱한 이유로 동경의 대상이 되고 후자는 영국인의위선에 희생됐다는 이유로 연민의 대상이 되었다."이와 더불어 거론되는 것은, 그다지 분명치는 않으나 철학적인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즉, 거의 모든 영국인들이 체계적인 사고의 필요성을, 심지어 논리를 사용하는 것 자체에 대한 필요성을 별로 못 느낀다는 것이다.
국민적 결속은 ‘세계관을 어느 정도 대신하는 것이기도 하다. 애국주의는 거의 보편적이며 부자들도 그 영향을 어느 정도는 받기 때문에,늑대 만난 소떼처럼 갑자기 온 나라가 한꺼번에 이리저리 휘둘릴 수 있다. 프랑스는 재앙을 만나 확실히 그런 때가 있었다.  - P103

영국이란 나라는 보이지 않는 사슬로 단단히 결속돼 있다. 평상시에는 지배계급이 도둑질도 하고, 관리도 엉망으로 하고, 사사건건 방해도 하고, 우리를 진창에 밀어넣기도 한다. 그러나 여론이 지배계급 인사들에게 확실히 전달되도록 하면, 즉 그들이 일반의 정서를무시하지 못하도록 밑에서 힘차게 잡아당기면, 그들도 반응하지 않기가 어렵다. 지배계급을 뭉뚱그려 ‘친파시스트‘라 비난하는 좌파 저술가들은 지나치게 단순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를 지금의국면으로 몰고 온 핵심적인 정치인 파당 중에도 과연 ‘고의적인‘ 반역자가 있었는지는 의심스럽다. 영국에서 그런 종류의 부패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거의 대부분이 자기기만에 가까운, 말하자면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는 식인 것이다. 게다가 의식하지 못하고 하는 일이기 때문에 제한적이기도 하다. 그런 현상을 가장 분명히 목격할 수 있는 분야가 영국 언론이다. 영국의 언론은 정직한가, 부정직한가? 평상시엔 대단히 부정직하다.  - P106

영국은, 자주 인용되는 셰익스피어의 구절처럼 보배 같은 섬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괴벨스 박사의 묘사처럼 지옥인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어떤 집안을, 상당히 고루한 빅토리아 시대의 집안을 닮았다고 할 수있다. 골칫덩이가 많진 않아도 찬장마다 해골이 넘쳐나는 집안 말이다.
이 집안에는 비굴하게 아침을 떨어야 하는 부자 친척도, 끔찍이 들러붙는 가난뱅이 친척도 있으며, 집안의 수입원에 대해 함구한다는 단단한공모가 있다. 또 젊은 사람들은 대체로 좌절을 겪고, 실권은 대부분 무책임한 삼촌들이나 몸져누운 숙모들 손에 있다. 그래도 집안은 집안이다. 나름의 언어가 있고, 공통의 기억이 있으며, 적이 다가오면 단결한다. 엉뚱한 식구들이 살림을 주무르는 집안-영국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그게 가장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 P107

이제는 지식인이면서 어떤 의미에서든 ‘좌파‘ 가 아닌 경우는 없다는사실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마지막 우파 지식인은 T. E. 로렌스"였을 것이다. 1930년경부터 ‘지식인‘ 이라 칭할 만한 사람이면 누구나 기존 질서에 대한 만성적인 불만 속에 살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게, 사회가 그들을 미처 수용하지 못했던 것이다. 더 이상의 발전도 없고 그렇다고 해체되지도 않는 정체된 제국에서, 그리고 우매함이라는자산밖에 가진 게 없는 이들이 지배하는 영국에서 ‘똑똑한 사람은 수상쩍은 사람이었다. T. S. 엘리엇의 시나 칼 마르크스의 이론을 이해할수 있는 머리를 가진 사람에게, 윗사람들은 절대 중요한 일을 맡기지 않았다. 그러니 지식인들은 문예비평과 좌파 정당에서만 제 역할을 찾을수 있었던 것이다.
영국 좌파 지식인들의 정서는 몇 개의 주간지와 월간지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이들 신문을 보면 당장 두드러지는 것은 대체로 부정적이고불만 가득한 태도와 언제나 건설적인 제안이라곤 없다는 사실이다. - P116

영국 지식인들의 생각은 아무튼 유럽화되어 있다. 그들은 음식은 파리 식을 즐기고 의견은 모스크바 식을 즐긴다. 자국에 대한 전반적인 애국심에 있어서, 그들은 반체제 사상의 섬을 형성한다. 영국은 아마도 지식인들이 자국을 수치스러워하는 유일한 대국일 것이다. 좌파 지식인사회에는 영국인이라는 것을 조금은 부끄러워하며, 영국의 관습은 경마에서부터 소기름 푸딩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비웃어주는 걸 의무로 여기는 정서가 항상 존재한다. 영국의 지식인들 대부분이 헌금함을 슬쩍하는 것보다 애국가를 부동자세로 서서 듣는 걸 더 창피한 일로 여긴다는 건, 이상하긴 해도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다. 중대한 시기 내내 많은좌파 지식인들은 때로는 물러빠진 평화주의자로서의, 때로는 열렬한 친소파로서 동시에 언제나 반영파로서)의 전망을 퍼뜨리고자 애쓰면서영국인의 사기를 갉아먹었다. 그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으나, 영향을 끼친 건 분명한 사실이다. 영국인들이 여러 해 동안 실질적인 사기 저하로 고충을 겪었다면, 그리하여 파시스트 국가들이 영국인은 ‘나태해졌으니 전쟁을 일으켜도 무방하다고판단했다면, 좌파의 지적인 방해 행위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 P117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중산층의 사고방식과 습성이 노동계급으로 확산되는 일이다. 영국의 노동계급은 이제 거의 모든 면에서 30년전에 비해 형편이 좋아졌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노동조합의 공로이고,
어느 정도는 자연과학의 발전 덕분이다. 한나라의 생활수준이, 그에 상응하는 실질임금의 상승 없이 소폭이나마 올라간다는 건 늘 가능한 일이 아니다. 단, 문명은 어느 정도는 제 힘으로 스스로를 일으킬 수 있다.
사회가 아무리 부당하게 조직되어 있어도, 어떤 종류의 재화는 반드시공동으로 소유하기 때문에 특정 기술의 발전은 전체에게 혜택을 줄 가능성이 높다. 이를테면 백만장자는 남들에게는 어두운 동시에 자신에게만길이 밝아지도록 할 수는 없다. 문명화된 나라의 시민들 거의 대부분은 이제 반듯한 도로와 병균 없는 식수, 경찰의 보호, 무료 도서관, 그리고 어느 정도의 무상교육까지도 누리게 되었다. 영국의 공교육은 재정이 열악했음에도 불구하고 향상되었으며, 거기엔 교사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독서 습관의 엄청난 확산이 큰 역할을 했다. 이제 점점 부자와 빈자가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영화를 보고, 같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게되고 있다.  - P119

점잖음도, 위선도, 사려깊지 못함도, 법에 대한 숭상도, 제복에 대한 혐오도, 소기름 푸딩과 안개 자욱한 하늘과 마찬가지로 계속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의민족문화를 파괴하는 데는 장기간 외적의 지배를 받는 것과 같은 정도의 엄청난 재앙이 필요하다. 증권거래소는 헐릴 수 있고, 말이 끄는 쟁기는 트랙터로 대체될 수 있고, 시골의 대저택은 아이들의 방학 캠프로바뀔 수 있고, 이튼과 해로우의 라이벌전은 잊혀질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영국은 영국일 것이다. 그것은 과거와 미래로 이어져 있는, 그리고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듯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모해도 여전히 같은존재로 살아남을 힘이 있는, 불멸의 동물과도 같을 것이다.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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