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엔 아주 뛰어난 감각기관이 존재한다. 바람에스민 아카시아 꽃 냄새를 귀신같이 눈치챌 만큼 예민한감각 말이다. 뜨거운 냄비를 만졌을 때 손이 바로 귀로가는 것처럼, 큰 목소리로 열렬히 호응하거나 느긋하고조용한 웃음을 짓는 저마다의 행복 루트 역시 뼈와 근육 사이사이에 자리할 것이다. 왜 좋냐고 따져 물을 수없다. 그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나이기 때문에 소유할수 있는 감각이니까. - P169
어쨌든 내가 몸을 떨었던 이유가 뭘지 궁금했다. 잠깐의 환기? 영혼의 스트레칭? 다시 현실로 복귀한 나는그대로인데? 달라진게 없는데? 깜빡 졸며 꿈을 꾼 사람처럼 다시 주어진 일에 골몰해야 한다. 저 새들과 함께인 줄 알았는데, 엉덩이가 묵직하게 의자와 달라붙어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렇다 할 설명을 하기에도애매한 찰나의 여행. 아주 먼 데를 다녀온 사람처럼 마음은 천천히 돌아온다. ‘찰나‘는 시간의 최소 단위를 일컫는 불교적 용어다. - P173
‘찰나‘라고 말하는 순간에도 수천 수억 번의 찰나가 사라지는 것이다. 무상함이 피부를 스치지만, 나는 그 서늘한 손길을 거절하지 않는다. 찰나의 것이든 계속되는것이든 여행은 다 좋다. 아주 작은 일에 매혹당해 그쪽으로 온몸이 끌려가는경험은 흔하지 않다. 강렬하게 붙들리지 않으면 제대로느낄 새도 없이 감각이 무뎌지기 때문이다. 얼음물이든 유리잔 표면에 흐르는 물방울, 수명이 다 된 조명의깜박임, 흰나비의 등장과 퇴장, 가로수 아래 환한 빛이드는 곳에서만 보이는 날벌레 떼. 이것을 슬로모션처럼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마음의 악력이 꽤나 강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눈이 감기는 사이에 홀연히 사라지는 장면을 붙들 수 있다는 거니까. 그렇게 붙든 장면은아름다운 헬륨 풍선이 되어 우리의 손목에 묶인다. 그리고 오랫동안 머리 위에서 동동 머문다. - P174
‘하루 단 한 번이라도, 내가 사무실에서 경험한 일분의 기적 같은 강렬한 찰나를 세상 사람들이 경험하길바란다. 오늘따라 당신의 검지를 스치는 서류의 질감이놀라울 만큼 부드러울 수도 있다. 오늘따라 당신 그림자의 걸음걸이가 유독 씩씩해 보일 수도 있다. 오늘따라 지하철 좌석에 앉은 사람들의 신발 색깔이 재미있게느껴질 수도 있다. 오늘따라 아주머니들이 쓰고 다니는양산의 무늬가 다채롭게 보일 수도 있다. 몇몇 사람만 아는 작은 디저트 가게의 케이크를 한입 맛본 순간처럼, 그 일 분은 세상 무엇으로도 교환 불가한 풍요로운 찰나로 남을 것이다. 순식간에 케이크는사라지고 접시는 외로워지겠지만, 우리 입안에 남은 달달함은 신이 와도 빼앗아갈 수 없을 테니. - P175
그리고 이젠 알 것 같다. 어린 나는 착했다. 착한 아이처럼 보이려 행세한 게 아니라. 착한 것은 나약한 것이 아니다. 착한 것은 그저 착한 것이고, 착한 것을 이용하는 자가 비겁한 것이다. 요즘은 거울을 보며 이런생각을 한다. 어떻게 살면 착하면서도 강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착하고도 제멋대로일 수 있을까. 착하고도흔들림 없는 자의 얼굴을 그려본다. 선명하게 그려지지않지만 그 고민은 괴롭지 않다. - P187
나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다. 외모뿐만 아니라 스타일, 인성, 지성, 감성 모든 면에서 특출난 게 없다고 스스로 강하게 의식화한다. 오랜 습관이다. 그렇다고 나자신을 내치진 않는다. 굉장히 성가시지만 늘 지니고다녀야 하는 신분증 정도로 여긴다. 그래, 이게 나지. 이게 내 한계지. 본성이 나왔군. 얼마든지 실망해주겠다는 태도로 삐딱하게 짝다리를 짚고 관찰한다. 나는 내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도 모른 채 얼렁뚱땅 성인이 되었고, 이십대 초반 내내 혼란스러웠다. 홀로 선 내 모습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엄마를 닮지 않은 외모가 싫었고, 엄마보다 약한 몸뚱이가 싫었고, 엄 - P188
마만큼 감정 기복이 심할 때는 형편없게 느껴졌다. 이제는 타인의 기준을 만족시키는 게 아니라 알아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성취하면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도 너무나 가혹하고 어렵게 느껴졌다. 모든 게 엉망이었다. 스스로 만족할 줄을 모르니 늘 실패한 기분만들었다. 그러나 차차 그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는 나의방식대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아도 삶을 저버리는게 아니라는 믿음. 그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세상에서가장 어색한 사람과 동거하는 기분으로 살더라도, 방점은 ‘같이 산다‘에 있는 것이지 ‘어색한‘에 찍히는 게 아니라는 것. - P189
내가 바라는 것은 하나다. 혼자 남겨진 시간 속에서모두가 무탈하게 걸어 나와 훨씬 덜 부서지며 살아갈수 있기를. 진짜 끝날 때까지 그렇게 살기를. 사람이 강해지려면 얼마나 장수해야 할까 하는 바보 같은 의문이뒤따르긴 하지만, 우리는 어쨌거나 미래로, 예정된 슬픔이 잉태된 미래로 간다. - P194
그러니 사람은 운명 앞에서 ‘나 자신‘을 최대한으로동원할 수밖에 없다. 그 ‘수‘는 믿음직스럽진 않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나일 수 있다는 희망만큼은 조금도 슬프지 않다.
혼자 남겨져도, 혼자는 혼자를 배신하지 않는다. - P195
나는 알고 있다. 우리가 훗날 그리워하게 될 장면들은 바로 그런 것이란 걸. 아침이 고요하고 온화하다는이유만으로 울음 짓는 날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란 걸. 나라는 사람은 그런 날을 위해 애인과 친구들 곁에 남아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무언가를 상실하더라도 영영 사라지지 않는 것도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 기꺼이 내 기억을 그들과 공유할 것이다. 슬픔 속에서 그저 슬픈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슬펐으면좋겠다. 꼿꼿하게 슬펐으면 좋겠다. 간혹, 슬며시 웃으며 슬퍼할 수도 있을 만큼. 그러기 위해선 지탱할 기억이 많아야 한다. - P205
핸드폰 사진첩 속 수천 개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생각한다. 시간은 저 멀리로 사라져버리는 듯하지만, 우리 안 어딘가에 퇴적된다. 그 퇴적지는 살아낸 만큼비옥해지는 땅이다. 어떤 사라짐은 너무 절대적이어서그것이 존재할 때보다 더 센 힘을 갖는다. 계속 있는 것 - P205
처럼. 나와 당신들 사이에 층층이 쌓인 이야기가 두터워질수록 삶이 튼튼히 다져지고 있다고, 믿게 된다. 마법 같은 기억력이 있는 한 나는 시간에 떠내려가지 않고, 시간을 잘 흘려보내는 사람이 될 것이다. 흘러가는풍경을 두고두고 기억하는 사람. 기억하는 만큼 삶은내 것이 된다는 말이, 정말일지도 모르겠다. 내 사랑들도 그러기를 바란다. 나보다 기억력이 좋은사람들이니 잘할 수 있을 것이다. - P206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권태와 삶에 대한 환멸감을지켜볼 때마다, 내가 너무 일찍 늙어버렸기 때문이라고믿는 수밖에 없었다. 철이 든다는 건 뭔지 모르겠지만, 분명 그때 늙어버렸다. 어느 날 뜬금없이 눈물이 터져도 놀라지 않는 이유다. 어떤 사람은 일찍 충분히 늙어버린 채 영원처럼 지속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도있다. 엄마와 나는 우리 사이에 놓인 상처를 적나라하게터놓고 나눠본 적 없다. 서로의 손등을 포크로 아프지않게 툭 찔러보는 단계는 거쳤지만, 그 이상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친하니까 할 수 있는 장난이지만 진실의무게가 아프게 실린 몸짓. - P213
서로에게 불러주는 자장가를 생각하며 각자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상상의 막을 내린다. 눈물을 견딜 수 없다. 광주의 한 낡은 아파트, 곤히 잠든 엄마를 떠올리며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우리는 ‘사랑한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란 걸. ‘사랑한다‘ 말하면 울어버리는 사람들이란 걸. 우린 이미 친구고, 우린 이미 연인이고, 우린 이미 자매고, 우린 이미 서로를 태어나게 한 사람들이다. 늘 그랬듯, 최선을 다해 각자의 하루를 버티고 그저 그런 안부를 묻는 것만으로도 그 순간을 애틋하게 여기는 사람들이다. 나는 너무나도 안심이 됐다. 우리 사이에 놓인것들을 설명할 필요도, 이해할 필요도 없다는 사실에엄마가 나를 위해 무언가를 포기하고 내가 엄마를 위해무언가를 희생했던 그 시간들까지도. 마음 놓고 받아들이면 된다. 여기까지 왔으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바다로달려가는 소녀들처럼. - P215
망한 심정으로 비척비척 거리를 걸었지만, 따뜻한 활기를 띤 골목을 보고 나니 내 마음 어딘가에도 그 골목의 불빛이 스며드는 듯했다. 그래, 이 불빛을 등불 삼아또 잘 적으면 되는 거지. 아까처럼 똑같이 쓰지는 못하겠지만 새롭게 쓰면 되는 거지. 쓰는 마음은 어디 가지않으니까. 늘 같은 자리에 있는 저 조그마한 가게들처럼. 알아서 피고 지는 꽃처럼. - P219
당신이 없으면서도 있는 여름이에요. 남겨진 자들의풍경이 많이 바뀐 것 같으면서 그대로인 것도 같아요. 하루하루 헤어지고 있는데 삶도 죽음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네요. 그와중에 열심히 사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열심히 사는 게 무엇일지 고민하는 건 포기하지 않으려 해요. 날 지켜봐도 되고 안 봐도 돼요. 그냥 내가 당신을 기억할게요. "할아버지!" 하고 불러보고픈 날이었어요. 내말, 무슨 뜻인지 알죠? - P224
창작하는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즐겨야 한다는 것. 성장이 불필요하다는 게 아니라 한계를 받아들이고 한계까지 표현해야 하는 것. 그림을 그리고 시나리오에 몰두하는 한 남자의 움직임, 그 떨림을 지켜본다. 나 역시 ‘나‘라는 유한함 안에서 손끝 발끝까지 다 써서 춤을 춰보고 싶어진다. 삶이라는 시공간 안에서도 내 하늘, 내 바닥, 내 계절을 구 - P229
석구석 만져보고 싶다. 관중이 사라진 경기장 안에서 자유롭게 뒹구는 토끼가 되어, 승패와 무관하게 이어지는 이 삶을 실컷 내달려보리.
우리, 이 이야기를 끝까지 써보자. 다 쓰고 서로에게들려주자.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가보는 거야. 밤이새도록. 새벽이 다 가도록. 우리가 사라지고 이야기만남더라도, 그 이야기가 또 다른 이야기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마음껏 길을 열어보자. 안으로 밖으로 쭉 달리자, 끝까지. 끝의 끝까지. 닿을 수 있는 그 어느 곳까지! - P230
눈발 사이로 묵묵하게 따라가는 마음. 가마미라는 낯선 이름을 가진 바다의 짠 냄새. 마침내 환하게 일렁이며 몸을 펼치는 연인의 슬픔. 그 시절, 아빠는 신부(神父)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주저하지 않고 엄마와 결혼한다. 오랫동안 엄마의 슬픔이 외롭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수십 년이 흐르고 또 겨울이 와도 여전히 두 사람은 가마미의 해변에서 손을 잡고 느릿느릿 걸어간다. 그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는, 저들의 슬픔과 믿음을 기록해야지. 저 붙잡은 손을 기억해야지. 손깍지를 타고 이어지는 곁에서 내가 울며 태어났으니나는 두 사람의 슬픔과 믿음이 건넌 바다인 것이다. 썰물이 되자 점토질의 벌이 축축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엄마 아빠가 딛는 발자국을 따라 걸었다. 물이 빠지며 단단해진 땅이다. 모래가 모래를 안는 시간, 바다가바다를 따라 떠난 시간. 그 시간, 모두가 연인들이다. - P244
엄마를 용서했다. 그녀를 더 사랑하기 위해 용서를 먼저 했다. 오십대 엄마는 딸내미의 용서 따위에 관심도없을 만큼 이미 자유롭고 노곤한 몸이 되었지만, 어쨌든 내 혼잣말 같은 용서가 이루어졌다는 건 중요하다. "엄마는 뭐가 되고 싶었어?"라고 어린 내가 물었다. 늘 과거형으로만 물었다. 초등학생밖에 안 된 나이였지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엄마라는 사람을 엄마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지 못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내가 그녀를 그저 엄마로만 생각했다는 것. 그녀에게진 내 첫 번째 빚이다. - P245
내가 불면을 앓듯 너는 우울을 앓는다는 걸 알아. 먹고사는 일이 안겨주는 공포와 열정에 짓눌려 슬픈 밤을 보낸다는 걸. 너는 너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지. 그러나 기억하렴. 깎이고 깎여 그저 너이기만한 너도 나는 사랑한단다. 너의 무상함도 사랑해. 깔깔거리는 웃음, 씰룩이는 엉덩이춤, 고양이 앞에서 해제되는 무장, 사방으로 뻗는 호감과 눈물. 아무것도 아닌모든 너를. 불면의 밤, 어두운 토양 위에 널 위한 나무 한 그루를 심을게. 너를 잊지 않을 나무를. 네가 좋아하는 능소화나 향기 좋은 라일락이어도 좋겠다. 우울에 잠식되는밤일지라도, 그 깊은 어둠 속에 널 위한 꽃그림자가 섞여 있다고 생각해주렴. 봄은 도처에 있어. 없으면서도, 언제나 있어. - P254
우리의 느린 말소리는 두런두런 사라질 듯 사라지지않고 녹음(綠陰)처럼 이어진다. 먼 우주에 우리의 말소리가 닿는다면 잠꼬대 같을까. 지구가 태양의 곁을 묵묵히 회전하는 것만이 중요한일 같은 계절. 폭염은 괴롭다. 내 몸보다 더 뜨거운 것을 견딘다는 건 원래 괴로운 법이다. 가슴속에 조금이라도 더운 감정이 있다면 한 번쯤은 툭 쏟아낼 수도 있는 거다. 이게 다 너무 더워서 그래, 하며. 여름의 열기와 함께 훨훨 증발해버릴말. 그래도 사실 너와 내 삶을 사랑한다고, 여름의 잔인함에 혀를 차며 재잘재잘 수다를 시작하는 것이다. - P258
좋은 것을 다 갖고 있는 듯 보이는 언어에 현혹되지말자. 좋은 것을 다 이해하고 있다는 듯 으쓱하는 사진에도 휘둘리지 말자. 그것들이 독점한 가치는 사실 우리 안에도 있다. 고유한 빛을 머금은 채.
자기 삶의 서사를 단단하게 쌓아가기 위해 자신을둘러싼 사랑의 고유함을 공부하는 사람. 그리하여 그사랑 한가운데 기어코 들어가 젖어보는 사람. 그런 사 - P269
람만이 타자를 ‘이해한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런 작가, 그런 에디터로 성장할 수 있을까. 혼자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결국 내가 의지해야 하는존재도 우리다. 서로 다른, 긁힌 자국투성이의, 미우면서도 사랑스러운 우리. 우리가 지킬 삶은 우리를 외롭게 하지 않을 것이다. - P270
도시를 끼고 흐르면서도 인간사와 무관하게 제 갈길을 가는 거대한 강을 본다. 내가 눈치채기 힘든 우주적인 흐름 안에 들어온 것만 같다. 다 흘러가는 중이다. 우리는 멈춘 적 없고, 언제나 어딘가로 가고 있다. 더멀리 흘러가기 위해. 도달하기 전까진 우리 사랑의 결과를 결코 알 수 없다. 어둠이 깊게 내려앉아도 길을 잃지 않는 물. 이 흐름에 의지해 기뻐지거나 깊어지거나. 왜가리가 난다. 날벌레가 우글거린다. 청초한 들꽃행렬이 강가를 따라 서 있고, 이따금 물고기가 튀어오른다. 강변에 설치된 벤치형 나무 그네에 나란히 앉아우리는 발을 구른다. 삐걱삐걱 우리의 무게만큼 묵직하게 흔들리는 그네. - P274
사람을 두려워하며 네가 울고 웃으며 해준 이야기들. 지금에 와서 하는 생각이지만, 거기에 허풍과 엄살이 다소 깊게 있었을진 몰라도 진실했다고 봐. 그러니용감하게 걸어 나와도 돼. 너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아도 빛이 난단다. 두렵다는 이유로 네가 믿는 진실을 마주할 기회를 놓치지 말기를 바라. 내 시를 걸고 너의 신, 하나님에게 말해둘게. 넌겁쟁이지만, 용감한 겁쟁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안다고 말이야. 무모하게 사랑만 많아서, 질투도 많고 좌절도 많고순수함을 꿈꾸지.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아름답고 이상적인 세계를 이야기로 만들 수밖에 없을 정도로 겁쟁이인 주제에, 괘씸하게도 마음이 뜨겁지. - P304
유월, 시 쓰기 참 좋은 계절이야. 쓰고 있어도 시가그리워져. 때론 밉기도 해. 벽을 미워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지만, 아무튼 그래. 네가 날 자주 미워했던 것과비슷한 마음이겠지. 나도 네가 날 미워해서 네가 미웠어. 이젠 그저 모두가 건강했으면 좋겠구나. 장마가 오기 전까지, 장마가 끝나기 전까지, 겨울이 되기 전까지, 다음 해로 넘어가기 전까지. 그다음 해, 다다음 해, 언제까지든.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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