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간판을 내며


출간 몇 달 만에 국가보안법으로 판매금지 당했던 <빨치산의 딸》을 다시내자는 제의를 받고 오래 망설였다. 스물다섯의 어린 나이에 쓴 글을 다시 본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를 망설이게 한 건 그 뒤로 흘러간 15년의 세월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누가 이런 묵은 이야기에관심을 가질까 싶었던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관심을 가질 것이고 그런이들은 서점에서 책을 구할 수 있어야 된다는 필맥 출판사 이주명 대표의설득에 결국은 책을 복간하기로 했다.
복 과정에서 약간의 내용 수정을 했지만 그리 많이 고친 것은 아니다. 초판에 관심을 갖고 오류를 지적해준 여러 분들의 도움으로 인명과지명, 날짜 등의 구체적인 사실을 몇 가지 바로 잡았다. 시대를 잘못 예측한 부분도 있고, 요즘의 시각으로 보면 혁명적 감상주의에 빠진 부분도있었지만 대개는 손을 대지 않았다. <빨치산의 딸>은 내 소설이라기보다소설적 형식을 띤 역사서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빨치산이나 90년 당시 변혁세력의 현실인식이 잘못된 측면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 역시 충실하게 기록돼야 하고, 그렇다면 <빨치산의 딸>은 기록의 충실성을 미덕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래전에 쓴 글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다시 한번 역사라는 것을 돌아보게 된다. 한국 현대사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목숨까지걸게 했던 ‘사회주의‘ 는 이미 역사의 뒷장으로 사라지고 있다. 중국이나베트남, 쿠바 정도가 사회주의의 명맥을 이어가ㅡ고 있지만, 사람들은 더이상 사회주의를 현실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와 생각하니 ‘사회주의‘ 란 소련이나 중국으로 대표되는 어떤 제도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었다. 우리에게 사회주의는 ‘지금보다 더 나은 무엇‘을 가리키는추상명사였다. 그렇다면 사회주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사람은 언제나 지금보다 더 나은 무엇을 추구하는 동물이므로, 사회주의가 사멸했다고 하는 지금 이 시간에도 더 나은 어떤 세상, 인간이 인간답게 살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었던 옛 사람들의 기록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위안에 불과한 것일까.
부족한 데가 너무 많아서 다시 읽는 동안 내내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빨치산의 딸》은 내 삶과 문학의 토대임을 부정할 수 없다. 나의 지리산혹은 남부군과 전남도당의 거점이었던 지리산과 백아산을 의미하는 내이름 정지아에서부터 나는 역사를 천형으로 짊어진 것이다. 버리고 싶었던 그 짐이 나이 들수록 고맙고 반갑다. 뭐가 뭔지 구분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천둥벌거숭이에게 역사와 인간이라는 화두가 있어 삶과 역사에 굳건히 발붙이고 서 있으니 고마울밖에.
<빨치산의 딸>을 쓰고 난 뒤, 평생 캐내야할 문학의 금광을 어린 나이에 미흡한 상태로 다 쏟아 붓고 나서 이제 무얼 쓸 거냐고 걱정해주신 분들이 많았다. 깊고 따스해지겠다는 말씀밖에 드릴 게 없다. 하나의 생명을 부여받고 이 땅에 태어나 단 한 번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채 쓸쓸히 소멸해가는 무수한 존재에게 불멸의 한 순간을 부여하는 것이 문학일 것이라고 요즘에야 깨닫고 있다. 그때는 몰랐지만 <빨치산의 딸> 역시그런 보잘것없는 존재들의 빛나는 한 순간의 기록이다. 《빨치산의 딸》에는 늙은 내 부모의, 부모님 세대의 빛나는 청춘의 시기가 담겨 있다. 그리고 누군가의 따스한 시선이 쓸쓸하게 늙어가는 그분들의 노년을 잠시나마 빛나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역사를 위해 목숨을 걸었고, 독재정권하에서 죽음보다 더한 모멸과 시련을 견뎌온 그분들이 역사에 바라는 것은그 따스한 시선 정도일 것이다. 이 책이 그분들의 쓸쓸한 노년을 비추는몇 줌의 따스한 시선이라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2005년 5월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단숨에 읽고 나니 [빨치산의 딸]이 읽고 싶어지는 건 당연하다. 세상에~ 처음 읽는 듯, 완전 새롭다.




내 인생 최초의 싸움은 아버지 때문에 시작되었다. 1974년 국민학교 4학년 때였다. 그날 별로 친하지 않던 그 아이와 무엇 때문에 해거름까지 학교에 남아 있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 아이가 그 엄청난 말을 꺼낸 순간부터가 소 엉덩이에 찍힌 낙인처럼 선명하게 새겨져 있을 뿐이다.
"느그 아부지가 빨갱이람서?"
무슨 말다툼 끝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아이의 말 속에는 네까짓게 빨갱이 딸 주제에, 하는 경멸과 떳떳한 자기 자신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역력히 배어 있었다.
"아니야."
아버지가 빨갱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해본 적이 없었으므로조금 당황하면서도 나는 분명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내가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그 아이의 얼굴색이 새파랗게 겁에 질려갔다. 사람이 그런 표정을 짓는 건 말하지 말 것을 말했거나 뭔가 나쁜 일을 하다 들켰을 때뿐임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 P13

머리를 빡빡 깎고 수인복을 입었달 뿐 아버지는 옛날 모습 그대로였다. 아궁이 앞에 쭈그려 앉아 번데기나 메뚜기를 구워주고, 내 말이 되어온 방안을 기어 다니던 바로 그 아버지였다. 굶주린 사람들을 채찍으로후려 패는 괴물이 아니었다. 몇 년간 사무쳤던 그리움이 한꺼번에 솟구쳐오르기 시작했다.
"아빠!"
어머니 아버지가 동시에 나를 돌아보았다. 막상 아빠라고 부르고 나자머쓱했다. 할 말이 없었다. 말 잇기 놀이를 하며 장난치던 아버지였는데,
술자리마다 나를 안고 다니던 아버지였는데도 서먹했다. 무슨 말을 해야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냥 아버지를 만져보고 싶었다. 까슬까슬한 턱에 입 맞추고 싶었다. 나를 잠재워주던 아버지의 넉넉한 등에 업히면 다시 옛날처럼 아버지가 내 곁으로 돌아올 것 같았다. 빨갱이가 아니라 내 친구였던 다정한 아버지로…...
그러나 손을 내밀어도 아버지는 잡히지 않았다. 바로 코앞에 있는 아버지를 나는 만질 수가 없었다. 면회시간 오분은 금세 지나갔다. 공부 잘하라며 돌아서는 아버지의 눈이 눈물로 젖어드는 걸 나는 보았다. 아버지의 눈물은 처음이었다. 허탈했다. 빨갱이를 본 것도 아니고 아버지를 본것도 아니고 단지 아버지의 그림자를 잠깐 스쳐간 기분이었다. - P18

나는 가난한 게 부끄럽지는 않았다.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빨갱이 자식이라는 놀림보다는 견디기 쉬웠다. 입학 때부터 입어서 무릎이 툭 튀어나오고 껑충하게 짧은 바지가 창피하게 느껴질 때면 시골이 그리웠다. 여름이면 멱 감던 섬진강, 여름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던 섬진강가의포플러나무와 하얀 삐비꽃, 오징어마질을 하다 옷이 뜯어져 울먹이던 아이들.…… 내 우상이 산산이 부서지기 전까지 참으로 좋은 시절이었다.
그때는 나보다 예쁘고 옷 잘 입은 애를 봐도 아무렇지 않았었다. 언젠가아버지가 외항선원이어서 예쁜 옷을 잘 입던 영희가 분홍빛 원피스를 입고 왔을 때, 하얗게 부서지는 햇살 속에서 분홍빛 치마를 나풀거리며 팔짝이던 모습이 얼마나 예쁘던지 넋을 잃고 바라보았던 적이 있다. 그때는부끄럽지 않던 내 모습이 이제는 왜 창피하게 느껴지는 것인지 나는 알수 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고향으로 달려가는 내 마음은 민방위훈련 날의 처참했던 기억의 벽에 부딪쳐 다시 서울로 돌아와야 했다. - P26

아무도 나를 눈여겨 봐주는 사람이 없었다. 시골애답게 새까맣고 깡마른 나는 무엇 하나 내세울 게 없어서 학기 초부터 기가 죽었다. 단발머리가 잘 어울려서 새침하게 예쁜데다 공부까지 잘하는 애들이 자꾸 나를 주눅 들게 했다. 가정조사란 걸 했을 때는 학교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였다.
가정조사란 건 결국 학생들의 빈부를 파악하자는 의도였다. 한창 민감한 나이의 여자애들 가슴에 지워지지 않을 못을 박아도 좋을 만큼 더 큰어른들의 뜻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자기 집이 있는 사람 손들어요, 자기 공부방이 있는 사람, 자가용, 냉장고, 세탁기, 카메라, 오디오가있는 사람, 수십 개의 항목 중에서 내가 손을 올린 것은 단 하나였다.
"텔레비전은 거의 다 있을 테니까 없는 사람이 손을 들지"
고개를 푹 수그린 채 간신히 머리 위로 손을 올린 사람은 나까지 네 명이었다. 손을 들기까지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텔레비전이 있고 없고 따위로 창피해 한다는 사실이 더 부끄러워서 나는 후끈거리는 얼굴을 꽂꽂이 쳐들고 손을 들었다. - P28

내 자존심을 회복할 계기를 만들어준 사람은 국어선생님이었다. 국어시간에 ‘오 분 스피치‘ 란 게 있었다. 번호순대로 하루에 한 명씩 주제를정해 오 분간 발표를 하는 것이었다. 내 차례가 왔다. 대충대충 시간이나때우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나는 며칠간 꼼꼼하게 원고를 준비하고 달달월 만큼 연습을 했다. 주제는 안락사였다. 발표가 끝나고 나자 선생님은나의 자세와 발표내용에 대해 극찬을 했다. 서울로 올라온 뒤 그렇게 칭찬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 국어선생님에게 그날은 기억조차 희미한 대수롭지 않은 추억 중의 하나로 묻혀졌을 것이 분명하다. 당시 선생님은 자기의 칭찬이 한 아이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지 상상할수 없었을 테지만 그 칭찬 한마디는 내 인생에 새로운 역전의 계기가 되었다. - P30

내가 알고 싶은 건 공산주의에 대한 것이었지만 어머니는 당황하고 난감한 얼굴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한참 후에야 엉뚱하게 다른 사람얘기를 꺼냈다. 나도 아는 사람에 대한 얘기였다. 구례에서 중학교 수학선생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우리 집과 무슨 관계인지는 몰라도 삼촌이라고 부르며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그가 지금 감옥에 있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그가 잡혀간 것은 수업시간에 북한 얘기를 잠깐 꺼낸 지 며칠 후의일이었다. 북한을 고무 찬양했던 것도 아니었다. 북한이 정말 그렇게 못사느냐는 학생의 질문에 아니라고, 거기도 우리와 똑같이 사람 사는 데라고, 평양에는 지하철도 있다고 대답한 것이 전부였다. - P33

나는 부모의 과거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들어보지 못했다. 누구에게나과거가 있기 마련이라는 생각조차 가지지 못했을 만큼 나는 부모의 과거에 대해 무지했다. 자식에게도 말하지 못할 과거를 가진 부모, 나보다 한발 앞서가는 어머니의 여윈 어깨가 모든 것을 거부하는 듯 완고하고 고집스러워 보인 것은 잠시의 착각인지도 몰랐다. 나는 어머니에게 끌리는 마음을 애써 눌렀다. 내 미래를 빼앗아간 자가 내 부모가 아니라면, 내 부모역시 나와 똑같이 과거와 미래를 차압당한 사람이라면, 내 분노를 어디로쏟아부어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었다. 부모를 적으로 생각하는 편이 훨씬 간단하고 편했다. - P40

제, 금매,
나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늙은 눈에는 눈물 같은 것이 어려 있었다. 할머니와 길을 걸으면 흡사 과거의 터널을 지나는 기분이었다. 나는 할머니를 통해 이전에 그렇게 궁금해 하던 부모님의 과거로 향하는 열쇠를 찾은셈이었다. 이를 눈치 챈 부모님이 할머니에게 나 데리고 무슨 말 하지 못하도록 말씀을 드리기도 한 모양이었지만 할머니와 나의 은밀한 여행은멈춰지지 않았다.
역사란 세계사 책 속에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걷는 이 길,
내가 사는 이 반내골에 역사의 숨결이 살아있다는 게 신비로웠다. 구름위로 솟은 지리산을 볼 때면 가슴이 뛰었다. 어머니 아버지의 삶이 비로소 구체적인 형상을 띠고 다가왔다. 할머니의 말대로 공산당이 모두 잘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었다면, 설령 두 분 때문에 연좌제 정도가 아 - P55

니라 목숨마저 허용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적어도 내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가 반쪽짜리 역사였거나 어쩌면 완전히 잘못된 역사인 것만은 분명했다. 영어단어와 수학공식은 배웠지만,
이승만과 박정희의 공적에 대해서는 배웠지만, 학교에서는 내 혼란의 일부분도 해결해주지 않았다. 왜 세상에는 차별이 있는지, 왜 나는 공산당의 딸로 태어나 불이익을 당해야 하는지, 할머니를 통해서 모든 것을 해결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할머니는 책에 씌어진 역사와는 다른, 보통사람들의 역사가 있다는 것, 내 부모는 그 역사의 와중에서 그것이 옳든 그르든, 없는 사람들의 세상을 건설하겠다는 신념으로 목숨까지 내던졌다는 것을 내게 알려주었다. - P56

아직도 한참은 더 자라야 할 몸에 걸친 양복과 구두가 생소했으며, 아이들이 거칠게 주고받는 말들 또한 내게는 낯설었다. 아마도 내가 하는말들이 내 고민들이 그 아이들 역시 낯설었을 것이며, 낯설 뿐만 아니라한심하고 화가 났을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아이들은 내 앞에서 아무 말도하지 않았다. 수줍고 쑥스럽게 안부 인사나 할 뿐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세상 사람들 누구나 나와 별다를 바 없는 고통과 절망을짊어진 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내가 빨갱이 딸이라는 표지를 달고 울부짖을 때 반내골 아이들은 가난이라는 표지를 달고 나처럼미래와 희망을 갈가리 찢기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와는 다른 그아이들의 슬픔을 이해할 것 같았다. 반내골 아이들처럼 미래의 진로가 뒤바뀔 만큼은 아니었지만 나 역시 배고픈 고통은 알고 있었다. - P57

부잣집 애들만큼 돈을 쓰는 것은 결코 황새가 되는 길이 아니었다. 더초라한 뱁새가 될 뿐이었다. 나는 그걸 몰랐다. 그래도 나는 선택받은 사람이었다. 선택의 여지도 없이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구로공단이나 부산으로 떠나든가, 남의 집 식모가 되어야 하는 애들이 태반인데 적어도내게는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미래를 한탄하고 고민할 여지라도 남아 있었다. 가난이라는 굴레는 빨갱이라는 낙인보다 더 무서웠다.
일상의 무료, 삶의 권태나 즐기던 내가 부끄러웠다. 삶이라는 것이 알지 못할 힘에 의해서 농락당하는 것이거나, 끝내는 모든 인연을 두고 빈손으로 떠나는 허망한 것일지라도 그저 물러나 있는 것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 속에서 뭔가 내가 할 일이 있을 것 같았다. 세상을너무 성급하게 알려고 덤빌 필요는 없었다. 어른들이 읽는 책을 똑같이다 읽고 아무리 어른인 척해봐야 나는 고작 열여덟이었고, 세상을 다 알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였다. - P58

처음엔 우리에게 닥친 재앙이 알 수 없는 힘 때문이라 믿었다. 분노의화살을 어디로 돌려야 할지 모른 채 덫에 걸린 산짐승처럼 날뛰던 나는그 재앙의 정체를 깨달아갔다. 현재의 쇠고기 소비량도 고려하지 않고 한꺼번에 다량의 소를 도입한 정부, 초지 조성의 가능성이나 도입 비육을위한 일체의 사전점검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초지 조성을 장려하고 도입우 비율을 권장한 정부, 도입부의 병 진단조차 못하는 실정에 병든 소를도입한 정부, 범인은 바로 정부였다. 이 무모한 정책이 독재권력의 장기집권을 위한 정치자금의 필요와 몇몇 특권층의 더 호화로운 생활을 위해필요했기 때문이라는 것, 그들에게 수많은 농민의 좌절과 고통쯤은 개똥만도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훨씬 뒤의 일이었다. - P60

"세상엔 두 개의 계급 즉,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남의 노동을 착취해서살찌는 자와 자신의 노동을 팔아서 남까지 살찌우는 자밖에 없다."
나는 두 눈이 확 터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왜 세상을 거대한 덩어리로보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진 개인으로밖에 보지 못했던가. 나는 왜 세상이정체된 채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이 정체된 세상 속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인가. 자본주의가 봉건주의의 낡은 틀을 혁명으로 파괴했듯이, 체제 안에서 해결할 수 없는 모순도 있게 마련이었다.
노동자에 대한 착취로 유지되는 자본주의는 우리의 영원한 천국이 아니었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했던 못 가진 자의 표지는 새로운 세상을 건설할 계급의 표지였고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표지였다. - P63

현실은 짐작할 수 없으리만치 풍부하고 다양했지만 결코 종잡을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의 세포에서 인간으로 진보했듯이 부조리한 모든것에는 반드시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다. 한때 나를 매료시켰던 카프카나카뮈의 부조리는 진실이 아니라 당시 시대적 상황의 즉자적 반영에 불과했다. 선생님이나 교과서나 고전이라는 문학작품의 대부분은 본질이 겹겹이 감춰진 현상만을 가진 자의 이데올로기를 가르치고 보여주었을 뿐이었다. - P63

세상을 이해하는 철학을 공부하고 우리 민족의 근대사를 알게 되면서나는 빨치산의 딸이라는 카인의 표지가 부끄러운 것도 죄스러운 것도 아님을 깨달았다. 부모님은 오히려 내게 가장 순결한 이름을 물려준 것이었다. 친일파의 딸도 아니고 제국주의를 등에 업은 매판자본가의 딸도 아니라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었다. 나는 대부분의 여성이 봉건적 인습에 묶여 있을 때 떨쳐 일어나 빨치산이 되었던 어머니의 딸이었다.  - P63

거의 모든 동지들이 죽을 때까지 살려준 목숨이라면, 총알을 비껴가게해서 살려준 목숨이라면 스스로 죽을 때까지 내버려둘 수도 있었을 텐데!
물을 사람이 있다면 묻고 싶었다. 빨갱이라서 자식에게까지 거부당했던어머니, 이제야 겨우 그 자식이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는 마당인데 어머니를 떠나보내야 했다. - P66

그 틈틈이 두분은 돋보기를 끼고 책을 읽었다. 내가 사다드린 이태의 《남부군》이었다.
흐린 불빛 아래 일에 지친 몸으로 책을 읽으며 부모님은 간혹 울고 웃었다. 책에 적혀 있는 옛 동지의 이름을 발견하고 어머니는 몇날며칠 잠을이루지 못했다. 그것은 나와 관련된 일을 제외하고 어떤 일에도 좀처럼흔들리지 않던 부모님의 얼굴에 떠오른 최초의 감정이었다. 산을 내려온이래 가슴을 닫고 살아온 부모님들이 그 굳은 마음의 빗장을 열려는 것일까? 세상은 분명 좋아지고 있었다. 목숨을 걸고 싸웠던 두 분에게는 너무나 느리고 더딘 걸음이었을지 모르지만, 세상에서는 봉인되었던 옛 이야기들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노동자 농민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어가고 있었다. - P67

"목적이 왜 없었겠냐. 더러 그런 사람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은그렇지 않았다. 조국을 미제의 손에서 해방시키고 노동자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었다. 휴전 무렵에 가서는 지리산을 무대로 한 무장투쟁이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기다리는 건 이름 없는 죽음뿐이라는 걸알았지만 그래도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우리가 다 죽으면 다음 세대가, 그리고 전 세계의 노동자가 함께 싸워 주리라고 믿었다. 그런 신념이 없었다면 어떻게 목숨까지 초개처럼 버려가면서 그 악조건을 견딜 수있었겠냐?" - P68

전남도당 조직부부장을 지낸 아버지, 그 유명한 남부군의 정치지도원을 지낸 어머니, 나는 두 분이 자신들의 과거를 두 발로 삼아 당당히 설 수있기를 기도했다. 그것이 사십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사상의 순결을 지켜내며 창살 안에서만 살아온 사람들을 위해 나와 있는 사람들이 할 수있는 최소한의 갚음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내 부모와 내 부모 같은 선배어른들의 과거를 복원하는 것, 그것은 바로 내가, 그리고 나와 같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해야 할 일이었다.
두 분은 부산하게 서두르더니 집을 나섰다. 7시, 반내골 산 위로 막 해가 솟고 있었다. 저 산으로 백운산과 지리산을 넘나들며 부모님은 역사와민족을 위해 젊음을 불태웠으리라. 그 산그림자 아래로 동지였던 아버지는 어머니를 부축하며 걷고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두 분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만나고자 하는 사람과 재회하길 빌면서, 그들의 재회가 결국울음바다가 되어 아직도 메마른 이 땅을 넉넉히 적셔주길 빌면서. - P70

멀리 지리산에도 아침햇살이 퍼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산에서 땅을뒤흔드는 함성이 들려온다고 생각했다. 결코 패잔병의 함성이 아니었다.
4.19로, 80년 광주로, 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이어져 잠자는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소리였다.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지리산을 바라보았다. 산이점점 커지더니 불쑥 내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 산등성이에 내 부모가, 내부모의 얘기 속에서 혹은 역사책 속에서 말로만 듣던 수많은 사람들이 서있었다. 나는 그들을 그 함성을 뒤쫓기 시작했다. - P7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가의 말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나 잘났다고 뻗대며 살아온 지난 세월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다.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자부했는데 나이 들수록 잘 산 것 같지가 않다. 나는 오만했고 이기적이었으며 그래서 당연히 실수투성이었다. 신이 나를 젊은 날로 돌려보내준다 해도 나는 거부하겠다.
오만했던 청춘의 부끄러움을 감당할 자신이 없으므로.
부끄러움을 견디며 오늘을 살 수 있는 것은 그나마 내가 반성할 줄 아는 인간인 덕분이다. 친구들은 나를 반성주의자(反省主義) 또는 성장애주의자(成長愛主義者)라고 부른다. 반성하고 성장하는 것이 내 특기라나 뭐라나.
잘하는 것이라곤 그 둘뿐이다. 그나마라도 그럭저럭 해내고 있으니 천만다행 아닌가. 그렇게 자위하며 살았다. 돌이켜보니 거기서부터 문제였다.
유년기의 나는 매일같이 동네 초입 팽나무 아래 앉아 읍내로 뻗어 있는 신작로를 보았다. 그 너머의 세상을 상상하며 성장기의 나는 먼 데서 기적이 울릴 때마다 그 기차가 가닿을 서울을 꿈꾸었다. 지금보다 더 멀리 더 높이,
그렇게 동동거리며 조바심치며 살다가 알게 되었다. 빨치산의 딸이므로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나의 비극은 내 부모가 빨치산이라서 시작된 게 아니었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내 비극의 출발이었다.
쉰 넘어서야 깨닫고 있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행복도 아름다움도 거기 있지 않다는것을 성장하고자 하는 욕망이 오히려 성장을 막았다는것을.
고향에 돌아오니 서울서 보이지 않던 아름다움 천지다.
섬진강변의 벚꽃길, 반야봉의 낙조, 노고단의 운해만 아름다운 게 아니다. 벚꽃은 정 없어 싫고 산수유는 없어싫다는 동네 할매, 필요 없다고 해도 밥을 묵어야 힘이 난다며 기어이 가져다주는 식당 주인, 심지어는 먹도 못할억센 나물을 삶으면 부드럽다고 뻥쳐서 파는 장터 할매,
주방에서 가장 먼 안쪽 테이블에 앉았더니 사람도 없는데 가차이 앉으라고 호통치는 식당 아줌마(알고 보니 그이는 관절염이 심했다)까지, 이곳엔 사람 냄새 넘치는 사람이 그득하다. 오죽하면 할매가 뻥을 치겠는가. 다 먹고살자고 하는 것이다. 급하면 뻥도 치고 호통도 치는 것이 사람 아닌가.
사람이 오죽하면 글겄냐. 아버지 십팔번이었다. 그 말 받아들이고 보니 세상이 이리 아름답다. 진작 아버지 말들을 걸 그랬다.
아버지. 아버지 딸, 참 오래도 잘못 살았습니다. 그래도뭐, 환갑 전에 알기는 했으니 쭉 모르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딸을 대장부의 몸으로 낳아주신 것도, 하의 상의 인물로 낳아주신 것도 다 이해할 터이니 그간의 오만을 무례를, 어리석음을 너그러이 용서하시길……… 감사합니다,
아버지. 애기도 하는 이 쉬운 말을 환갑 목전에 두고 아버지 가고 난 이제야 합니다. 어쩌겠어요? 그게 아버지 딸인걸. 이 못난 딸이 이 책을 아버지께 바칩니다.

정지아


 세상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혁명가였던 내 부모에게는 연애도, 옷도, 화장도, 별의미 없는 사치에 불과했다. 그 틈에 끼어 나는, 혁명가도 아닌 나는, 신념도 없는나는, 일상의 평범한 대화를 맛보지 못한 채 어른이 되고늙어가는 중이었다. 혁명가도 아니고 신념도 없는 주제에진지하지 않은 것은 참지 못하는 꼰대 같은 어른으로, 그러니까 아버지, 나는 억울하다니까요! 그래봤자 아버지는 죽었고, 죽어서도 혁명가인 양 영정사진 속에서 근엄한 얼굴로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 P123

그런 사연이 있는지 몰랐다. 그저 빨갱이 아버지 때문에 집안 망하고 공부 못한 것이 한이라 사사건건 아버지를 원망하는 줄로만 알았다. 아홉살 작은아버지는 잘난형 자랑을 했을 뿐이다.그자랑이 자기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갈 줄 어찌 알았겠는가. 작은아버지는 평생 빨갱이 아버지가 아니라 자랑이었던 아홉살 시절의 형을 원망하고 있는 게 아닐까. 술에 취하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었던 작은아버지의 인생이, 오직 아버지에게만 향했던 그의분노가, 처음으로 애처로웠다. - P129

아버지는 알았을까? 자기보다 한참 어린 막내가 면당위원장인 당신을 그렇게나 자랑스러워했다는 걸, 그 자랑이 당신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걸, 그게 평생의 한이 되어 자랑이었던 형을 원수로 삼았다는 걸. 어쩐지 아버지는 알고 있었을 것 같다. 그래서 아버지는 수시로 작은아버지의 악다구니를 들으면서도 돌부처처럼 묵묵히 우리 집이나 작은집 마루에 걸터앉아 담배만 뻐끔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는 몰랐을 수도 있다. 아무 - P130

도 보지 않은 그날의 진실을, 그날 작은아버지 홀로 견뎠어야 할 공포와 죄책감을 보지 않은 누군들 안다고 할 수있으랴. 역시 작은아버지에게는 작은아버지만의 사정이있었던 것이다. 독한 소주에 취하지 않고는 한시도 견딜수 없었던 그러한 사정이. - P131

나는 주로 비아냥거렸고, 아버지는 분노에 찬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며 입을 다물었다. 입을 다문 건 현실주의자인 아버지도 알기는 한다는 의미였다. 아버지는 자신의신념을 후회하지 않았지만 사람인데 설마 괴물처럼 확장하는 자본주의의 기세 앞에 절망이든 회한이든 어떠한 서글픈 감정을 잠시나마 느끼기는 했을 터였다. 목숨을 건자신들의 투쟁이 무의미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 P147

그는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자꾸만 아버지의영정을 곁눈질했다. 나도 아버지를 보았다. 고등학생 때따라가지 못했던 두 사람의 대화를 쉰 가까운 지금도 나는 따라갈 수 없었다. 질 게 뻔한 싸움을 하는 이십대의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목숨을 살려주었던 사람을위해 목숨을 걸려 했던 이십대의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영정 속의 아버지가 꿈틀꿈틀 삼차원의 입체감을 갖는 듯했다. 살아서의 아버지는 뜨문뜨문, 클럽의 명멸하는 조명 속에 순간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죽은 아버지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 P181

 살아서의 모든 순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자신의 부고를 듣고는 헤쳐 모여를 하듯 모여들어 거대하고도 뚜렷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아빠. 그 뚜렷한 존재를 나도 모르게 소리내어 불렀다. 아버지의 영정을 응시하던 그가, 아직 이름도 모르는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흰자위가붉었다. 나의 눈도 그러할 터였다. 작은 상욱이, 김상욱씨가 가만히 눈물을 훔쳤다. - P181

이 냥반 큰놈이 깡패였는디 자네 아부지가 오야붕하고 담판을 짓고는 빼내 왔다네. 광주 있으면 또 워찌 될랑가 모린다고 강화도 워디 화원에다 취직을 시켜가꼬 지금은 건실하게 잘 산당마."
아버지가 무슨 수로 깡패 두목과 담판을 지었을까? 생각해보니 언젠가 서방파의 일인자라나 이인자라나와 함께 감옥살이를 한 적이 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안면이 있으니 찾아갔겠지. 그러고 보면 감옥도 하나의 세상일지 몰랐다. 거기서도 누군가를 만나고 누군가와 사연을 쌓고 누군가를 좋아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할 테니말이다. - P183

아버지가 광주교도소에서 잠깐 만난 무등산 타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가난했던 그의 가족은 무등산 중턱에무허가 집을 지었고, 철거반원들이 그 집을 불태운 뒤 거동조차 불편한 동네 사람들의 집에 불을 지르려 하자 순식간에 장정 넷을 망치로 때려죽였다. 아버지는 그가 사형장으로 향하는 모습도 두 눈으로 봤다. 아버지가 본 사형수 중 유일하게 울지 않고 쫄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가담담하게 죽음을 맞았노라고, 아버지는 담담하게에 방점을 찍어 말했다. 내가 별 반응이 없자 아버지가 덧붙였다. - P183

"사람이 덤덤하게 죽음을 맞이하기가 쉬운 중 아냐! 총소리만 나먼 꿩 새끼마냥 대가리부텀 바우 밑으로 디미는 사람도 있었어야 갸가 김대 출신이었는디 똑똑허그나말그나 죽음 앞에 장사 있가니 대가리만 숨기면 뭐한대?
궁뎅이랑 허벅지랑 벌집이 돼가꼬 즉사했는디, 헥가란놈도 그랬는디 흥숙이 갸는 사형장으로 끌레감시롱도 덤덤하더랑게 하기사 갸는 노상 자개는 사형을 당해도 못갚을 죄를 졌다고 그랬어야. 목에 밧줄을 거는디 시상 펜안한 표정이었단다. 쬐까라도 죄를 갚는다 생각혀서 그랬겄제이. 지는 펜히 갔는디 우리는 갸가 아까와 죽겄드라." - P184

내 부모가 은혜를 갚기란 진작에 튼터, 자칫하면 은혜감기가 내 몫으로 오롯이 남을 판이었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천형에 가난까지 물려받은 것만으로도 지긋지긋한데 빨치산이 입은 세상의 온갖 은혜까지 물려받고 싶지않았다. 그래서 나는 부모의 대화에 자주 등장하여 분명몇번이고 들었을 소선생의 장남 이름을 기어코 기억에 남기지 않은 것이었다.
그래봤자 세상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 오늘 그는방명록에 이름을 남길 것이고, 나는 간혹 그 이름을 들여다보게 될 것이며, 그때마다 내 아버지가 입은 은혜를 나날이 뼛속 깊이 각인시킬 밖에는 도리가 없을 것이었다. - P187

그러나 어찌 됐든 가난한 빨치산의 장례식에는 날고 기는사람들의 장례식에도 없을 전복죽이 있다! 어쩐지 마음이 언니가 뽀땃하게 끓여 온 전복죽처럼 뽀땃해지는 느낌이었다.
어제는 깨죽을 반 넘게 남겼던 어머니가 이모들과 함께여서 그런지 전복죽 한대접을 말끔히 비웠다. 종일 앉아 있는 것만 해도 버거울 어머니였다. 나는 이모들에게부탁해 어머니를 집으로 모시게 했다. 내일 화장장이며장지까지 가려면 몇시간이라도 눈을 붙여야 했다. 줄초상을 치를 수는 없었다. - P191

사진 속의 아버지는 딴 사람인 듯 낯설었다. 아버지는어릴 때의 얼굴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버지를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낮선 건 본 적 없는 싱싱한 젊음과 정면을 제대로 응시한,
사팔뜨기 아닌 눈이었다. 사진 속 문척 모래사장은 지금과 달리 곱고 넓었고, 빛바랜 흑백사진임에도 불구하고작열하는 태양의 열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그 열기마저식힐 듯 아버지의 청춘은 싱그러웠다.  - P195

아직 사회주의를모를 때의 아버지, 열댓의 아버지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질곡의 인생을 알지 못한 채 해맑게 웃고 있었다. 사진 속소년 둘은 입산해 빨치산이 되었고, 그중 한 사람은 산에서 목숨을 잃었다. 형들을 쫓아다니던 동생은 형을 잃고남의 나라에서 제 다리도 잃었다. 사진과 오늘 사이에 놓인 시간이 무겁게 압축되어 가슴을 짓눌렀다. - P195

"나는이 상욱이 성만 보면 성이 나드라고 감옥에 가고고생은 했겄제만 그래도 지는 살아 있응게. 살아서 겔혼도 허고 새끼도 보고 희컨 머리도 남시로 늙어가게. 나는우리 성 늙어가는 것도 못 봤는디, 지는 자꼬 내 앞에서늙어강게.……."
내 부모는 평등한 세상이 곧 다가오리라는 희망을 품고 산에서 기꺼이 죽은 사람들을 늘 부러워했다. 쭉정이들만 남아서 겨우겨우 살고 있노라, 한탄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누군가는 그런 삶이 부러워 미웁기도 했던 것이다. 어느 쪽이 나은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의 마음을 짐작은 할 것 같았다. - P196

여기 사람들은 자꾸만 또 온다고 한다. 한번만 와도 되는데, 한번으로는 끝내지지 않는 마음이겠지. 미움이든우정이든 은혜든, 질기고 질긴 마음들이 얽히고설켜 끊어지지 않는 그 마음들이, 나는 무겁고 무섭고, 그리고 부러웠다.
술이 불쾌한 상태로도 지팡이를 다리처럼 자유롭게 쓰는 그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미련 없이 잘 가라는 듯 오늘도 날은 화창했고, 도로변에는 핏빛 연산홍이불타오르고 있었고, 허벅지 아래로 끊어진 그의 다리에서새살이 돋아 쑥쑥 자라더니 어느 순간 그는 사진 속 그의형보다 어린 소년이 되어 달음박질을 치기 시작했다. - P197

시속 180킬로로 고속도로를 달려 병원에 도착했을 때아버지는 시체처럼 창백했다. 몇시간 전 의식을 잃은 아버지는 얼굴의 근육이 완전히 이완되어 편안하디편안한모습이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은 어느 근육이든 긴장한 상태인 모양이었다. 세상사의 고통이 근육의 긴장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죽음이란 고통으로부터해방되는 것, 아버지는 보통 사람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으니 해방의 기쁨 또한 그만큼 크지 않을까, 다시는 눈 뜰 수 없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 P198

어느 쪽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차가운 철제 침대에 누워 수의에 싸이고 있는 저 시신과 내가 적어도 한때는 한 몸이나 같았다는 점이었다. 아버지는 나의 우주였다. 그런 존재를, 저 육신을, 이제 다시는 볼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생생하게 시간과 공간의 한 지점을 점령하고 있는 저 육신이 내일이면 몇춤의 먼지로화할 것이다.
마음 저 밑바닥에서 물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눈물로솟구쳐 나오려는 순간 누군가 나보다 먼저 울음을 터뜨렸다. 학수였다. 타인의 눈물이 가문 날의 태양 볕처럼 내 마음에 가득 차오른 습기를 불태웠다. - P201

참고로 나는 아버지와 달리 싸움에 제법 재주가 있다.
그래봤자 평생 세번 싸웠지만, 어쨌든 그 세명의 상대는처참하게 KO패 당했다. 아버지는 분노한 사람에게 진정을 하라고 다독이지만 나는 분노한 사람의 분노를 끌어올린다. 제 분에 못 이겨 울음을 터트리거나 발광을 할 때까지, 나는 그 울음을, 발광을, 참으로 침착하게 평소보다 더평온한 상태로 응시할 뿐이다. 그 차분한 응시가 보태지면 상대들은 대응할 힘을 잃는다. 그날의 아버지가 나에게 참패한 세명 중 한명이었다. - P205

"저 질이 암만 가도 끝나들 안 해야."
아, 작은아버지도 나처럼 이 길을 따라 떠나고 싶었구나 떠나려고 이 길을 걸어와봤구나. 그런데 왜 떠나지 못했냐고 나는 묻지 못했다,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어쩐지 알 것 같았다. 우리는 가자 못 간다 실랑이도 없이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갔다. 작은아버지는 우리 집 사립문 밖에 자전거를 세우고 내가 내리기를 기다렸다. 쉰내 풀풀 나는 작은아버지의 등에서 떨어지는 게 시원섭섭했다. 이 쉰내 같은 게 혈육인가 싶었다.
나를 데리러 오가느라 밴 그 쉰내가 정겨운 듯도 역겨운듯도 했다. - P209

시집 안 간 딸자식에게 언니 말이 비수처럼 날아와 꽂혔다. 비수가 꽂힐 때 알았다. 내가 어쩔 수 없이 아버지자식이라는 것을. 아버지가 가족을 등지고 사회주의에 몸담았을 때,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혈육을 뿌리치고 빨치산이 되었을 때, 이런 마음이겠구나. 첫걸음은 무거웠겠고,
산이 깊어질수록 걸음이 가벼웠겠구나. 아버지는 진짜 냉정한 합리주의자구나. 나는 처음으로 나와 같은 결을 가진 아버지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P217

너는 대체 어떤 딸이었냐고.
어떤 딸인지, 어떤 딸이어야 하는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누구의 딸인지가 중요했을 뿐이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치는 데 나는 평생을바쳤다. 아직도 허우적거리는 중이다. 빨치산의 딸이라는말에는 ‘빨치산‘이 부모라는 전제가 존재한다. 그 부모에게도 마땅히, 자식이 부모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듯 자식에 대한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을 만큼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가 무거웠다고, 나는 - P224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변명을 들을 아버지는 이미 갔고 나에게는 변명의 기회조차 사라졌다. 그 사실이 뼈아파 나는 처음으로 소리 내 울었다. 아버지를 위한 울음이 아니라 나를 위한 울음이었다. 아버지 가는 길에까지 나는 고작 그 정도의 딸인 것이다. 그런 나를 생판남인 주제에 친자식보다 더 자식 같았던 학수가 아버지처럼 무심한 눈으로,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P225

사무치게라는 표현은 내게는 과하다. 감옥에 갇힌 아버지야말로 긴긴밤마다 그런 시간들이 사무치게 그리웠으리라. 그 당연한 사실을 나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야 겨우 깨닫는 못난 딸인 것이다. 아빠, 나는 들을 리 없는, 유물론자답게 마음 한줌 남기지 않고 사라져, 그저 빛의 장난에 불과한 영정을 향해 소리내불렀다. 당연히 대답도 어떤 파장 따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도하지. 영정 속 아버지가, 이틀 내 봤던, 아까도 봤던 영정속 아버지가 전과 달리 그립던 어떤 날들처럼 친밀하게느껴졌다.  - P231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밀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했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밤은 깊어가고 정신은 더욱 맑아졌다. 마음은………… 그어느 때보다 흔들림 없이 고요했다. 나는 냉정한 합리주 - P231

오십년 가까이 살아온 어머니도 아버지의 사정을, 남자의 사정을, 이제야 이해하는 중인 모양이었다. 나 또한 그러했다. 아버지는 혁명가였고 빨치산의 동지였지만 그전 - P248

에 자식이고 형제였으며, 남자이고 연인이었다. 그리고어머니의 남편이고 나의 아버지였으며, 친구이고 이웃이었다.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개의 얼굴을보았을까? 내 평생 알아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에서 알게된 얼굴이 더 많은 것도 같았다. 하자고 졸랐다는 아버지의 젊은 어느 날 밤이 더이상 웃기지 않았다. 그런 남자가내 아버지였다. 누구나의 아버지가 그러할 터이듯. 그저내가 몰랐을 뿐이다. - P249

"그때게 할배 맴이 요상허드래. 아부지라는 거이 이런건갑다, 산에 있을 적보담 더 무섭드래. 겡찰보담 군인보담 미군보담 더 무섭드래."
아버지 유골을 손에 쥔 채 나는 울었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이상한 인연 둘이 말없이 내 곁을 지켰다. 그들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져 나를 감쌌다. 오래 손에 쥐고 있었던탓인지 유골이 차츰 따스해졌다.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 P26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삶을 마감한 것이다.
만우절은 아니었다. 만우절이라 한들 그런 장난이나 유머가 오가는 집안도 아니었다. 유머라니. 유머는 우리 집안에서 일종의 금기였다. 그렇다고 유머가 없었던 것은아니다. 누가 봐도 유머일 수밖에 없고 유머여야 하는 순간에도 내 부모는 혁명을 목전에 둔 혁명가처럼 진지했고, 그게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니 우리 집안에유머가 있었다기보다 혁명을 목전에 둔 듯 진지한 그들의어떤 행위나 삶의 방식이 유머일 수밖에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하겠다. - P7

아버지의 눈빛은, 누군가 사진으로 그 찰나를 포착했다면, 처형 직전의 독립운동가나 학살당한 동지의 시신을 목도한 혁명가라 해도 믿을 만큼 진지하다못해 비장했다. 내가 풋, 웃음을 터뜨리려는 찰나, 어머니가 꽁무니를 내리고 조용히 방을 나갔다. 열일곱의 나는, 방물장수하룻밤 재우는 일에 민중을 끌어들이는 아버지나 그 말에냉큼 꼬리를 내리는, 꼬리를 내리다 못해 죄의식에 얼굴을 붉히는 어머니나, 그때 읽고 있던 까뮈의 『이방인』보다 더 낯설었다. - P13

그날 어머니는, 허리가 아파 평소 된장찌개와 김치밖에내놓지 않던 어머니는, 찬장에 고이 모셔둔 새 접시까지총동원하여 당신으로서는 최대한의 극진한 식사와 잠자리를 대접했다. 민중에게.
아버지의 민중이 그날 밤 내게 남긴 것은 벼룩이었다.
대신 가져간 것은 서까래에 매달아놓은 마늘 반점이었다.
나는 한달 가까이 북북 몸을 긁으며 민중을 욕하다가, 혁명가를 탓하다가, 그러다가 불현듯, 낄낄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사라진 마늘 반점이 내 부모의 진지에 대한 통렬한 배신처럼 느껴진 까닭이었다. 그러나 배신당한 당사자들은 나와 달리 배신이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았다. - P13

바짓가랑이에 붙은 먼지한톨조차 인간의 시원이라 중히 여겨 함부로 털어내지 않았던 사회주의자 아버지는 마침내 그 시원으로 돌아갔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참으로 아버지답게 마지막까지 유머러스하게. 물론 본인은전봇대에 머리를 박는 그 순간에도 전봇대가 앞을 가로막고 서 있다고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민중의 한걸음 한걸음이 쌓여 인류의 역사를 바꾼다는 진지한 마음으로 아버지는 진지하게 한발을 내디뎠을 것이다. 다만 거기, 전봇대가 서 있었을 뿐이다. 무심하게, 하필이면 거기. 이런 젠장. - P16

"아이고, 우리 아리도 저런 데 나가보먼 쓰겄다."
개 이름 같은 아리는 내 이름이다. 아버지가 활동했던백아산의 아, 어머니가 활동했던 지리산의리를 딴 이름덕분에 나는 숱한 홍역을 치렀다(사실 아버지가 주로 활동한 곳은 백아산보다는 백운산이었다. 그런데도 백아산의 아를 따온 것은 백운산의 백이나 운이 여자아이 이름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그러니까 제 아무리 남녀평등을 주장했다 한들 반봉건시대에 태어나 가부장제의 그늘을 아주 벗어나지는 못한 반봉건적 사유의 발로였던 것이다), 학교에서나 관공서에서나 고아리, 내 이름을 말하면 아유, 이름이 참 예쁘네, 얼굴도 참......하면서 나를 쳐다보았고 이내 말줄임표가 뒤따랐다.  - P29

지리산은 짙은 운무에 잠겨 있었다. 태양이 높아지면운무 속에 치솟은 노고단이 모습을 드러낼 터였다. 아버지는 언제나 새벽 네시가 되기도 전에 잠에서 깼다. 새벽이 되기 직전, 어둠이 가장 깊은 시각, 아버지는 늘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웠다. 환한 낮이라면 지리산 능선과 노고단이 한눈에 바라보일 테지만 아버지 눈앞에 펼쳐진 것은깊은 어둠뿐이었다. 불도 켜지 않은 베란다에서 하얀 담배 연기를 어둠 속으로 피워 올리던 아버지의 여윈 등이불쑥 떠올랐다. 내게는 아버지의 삶처럼 비장한 풍경으로각인되었지만 기실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덤덤한 표정이었을 것이다. - P43

을 마치고 아지트로 돌아왔더니 동지들의 시신이 목 잘린채 사방에 나뒹굴고 있었다고, 아버지는 예의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는 시선으로 덤덤하게 말했었다. 밀란 쿤데라는 불멸을 꿈꾸는 것이 예술의 숙명이라고 했지만 내아버지에게는 소멸을 담담하게 긍정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었고, 개인의 불멸이 아닌 역사의 진보가 소멸에 맞설 수 있는 인간의 유일한 무기였다.
저를 지켜보던, 저 안에서 청춘을 보냈던 한 사내가 가고 없는 노동절 아침, 새벽녘의 지리산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고요히 장엄했다. - P44

고통이든 슬픔이든 분노든 잘 참는 사람은 싸우지 않고 그저 견딘다. 견디지 못하는 자들이 들고일어나 누군가는 쌈꾼이 되고 누군가는 혁명가가 된다. 아버지는 잘못 참는 사람이다. 해방된 조국에서 친일파가 득세하는것도 참지 못했고,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와 결혼하라는봉건잔재도 참지 못했으며, 가진 자들의 횡포도 참지 못했다. 물론 두시간의 노동도 참지 못했다. 그런데 얼어 죽을 것 같은 고통은, 굶어 죽을 뻔한 고통은, 생사의 고비를함께 넘은 동료들이 바로 곁에서 죽어가는 고통은 어떻게 견뎠을까? 신념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내려와봤자 기다리고 있는 건 죽음뿐이라는 지극히 절망적인 현실 인식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 P68

아버지가 평생 당하고만 살지는 않았다. 당하지 않으려고 사회주의에 발을 디뎠고, 선택한 싸움에서 쓸쓸하게패배했을 뿐이다. 아버지는 십대 후반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여든둘 된 노동절 새벽,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 짊어졌다. 사회가 개인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이렇게까지가혹하게 묻는 게 옳은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수 있다.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빨갱이 새끼들은 다 때려죽여야 한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치렀고, 아직도 휴전중인 데다남북의 이데올로기가 다르니 의견의 합치를 보기는 진작에글러먹은 일, 게다가 나는 옳고 그름을 따질 만한 주제도아니다. - P76

안개가 점령했던 도로에는 오월 첫날답지 않게 이른 아침부터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찍고 있었다. 그 빛 속으로나보다 더 억울하게 당하고 살아온 큰집 길수오빠가 허적허적 걸어오고 있었다. 위암 말기인 오빠는 동식씨 말마따나 낼모레 아버지 뒤를 따른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병색이 완연했다. 지난해 말 위암 말기 판정을 받기직전 오빠는 부군수 승진을 앞두고 있었다. 내놓을 것 하나 없는 우리 집안에서 가장 잘나가는 사람이었다.
오빠는 빨갱이 작은아버지를 둔 덕분에 육사에 합격하고도 신원조회에 걸려 입학하지 못했다. 우리 아버지가오빠 앞길을 막은 게 큰어머니는 세상 떠날 때까지 천추의 한이었다. 오빠는 마음은 어땠을지 모르나 겉으로는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 P77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함박눈 내리던 겨울날이떠올랐다. 오빠의 마음속에도 그날이 사무치게 남아 있을터였다. 그날을 마음에 품은 채로 오빠와 나는 멀어지면서 살아온 것이다. 빨갱이의 딸인 나는 오빠를 생각할 때마다 죄를 지은 느낌이었다. 빨갱이의 딸인 나보다 빨갱이의 조카인 오빠가 견뎌야 했을 인생이 더 억울할 것 같아서였다. 자기 인생을 막아선 게 아버지의 죄도 아니고작은아버지의 죄라니! - P81

곧 죽을 몸으로 죽은 자를 조문하는마음이 어떨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를 일으켜 상주 자리에 앉혔다. 나라면 이런 자리에서 누군가의 위로를 받고 싶지 않을 것 같았다. 나보다 더 야무지고자존심 강한 오빠도 같은 심정일 터였다.
오빠는 무덤덤한 얼굴로 아버지 영정을 향해 두번 절을 올렸다. 그리고 나와 맞절을 했다. 어머니는 절조차 버거워 보이는 오빠를 보며 울기만 했다. - P83

마지막 가는 길, 생전에 가장 좋아하던 음식을 맛있게먹는 아버지의 모습이 환영처럼 떠올랐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는 내가 아는 한 단 한순간도 유물론자가 아닌 적이 없었다. 먼지에서 시작된 생명은 땅을 살찌우는 한줌의 거름으로 돌아가는 법, 이것이 유물론자아버지의 올곧은 철학이었다. 쓸쓸한 철학이었다. 그 쓸쓸함을 견디기 어려워 사람들은 영혼의 존재를, 사후의세계를 창조했는지도 모른다.
조금 전 통곡하던 사촌들은 어느새 자기들끼리 시끌벅적 담소를 나누는 중이었다. 활기찬 담소와 통곡 사이 어디쯤에서 서성이며, 나는 깨죽이 담긴 쟁반을 든 채 우두커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꿈결처럼 모든 것이 낯설었다. - P98

여공으로 사는 일이, 아이 넷 낳고 사는 일이 적잖이 노곤했으리라. 어린 동생들쳐업고 똥기저귀 빨던 어린 시절처럼 동동거리며 살아왔을 영자의 지난 시간이 눈앞에서 본 듯 환하게 밝아왔다. 그 시간 속에는 우리 아버지손잡고 가슴 졸이며 수술을 기다리던 순간도 존재할 터였다. 그러니 아버지는 갔어도 어떤 순간의 아버지는 누군가의 시간 속에 각인되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생생하게살아날 것이다. 나의 시간 속에 존재할 숱한 순간의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졌다. - P1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몸엔 아주 뛰어난 감각기관이 존재한다. 바람에스민 아카시아 꽃 냄새를 귀신같이 눈치챌 만큼 예민한감각 말이다. 뜨거운 냄비를 만졌을 때 손이 바로 귀로가는 것처럼, 큰 목소리로 열렬히 호응하거나 느긋하고조용한 웃음을 짓는 저마다의 행복 루트 역시 뼈와 근육 사이사이에 자리할 것이다. 왜 좋냐고 따져 물을 수없다. 그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나이기 때문에 소유할수 있는 감각이니까. - P169

어쨌든 내가 몸을 떨었던 이유가 뭘지 궁금했다. 잠깐의 환기? 영혼의 스트레칭? 다시 현실로 복귀한 나는그대로인데? 달라진게 없는데? 깜빡 졸며 꿈을 꾼 사람처럼 다시 주어진 일에 골몰해야 한다. 저 새들과 함께인 줄 알았는데, 엉덩이가 묵직하게 의자와 달라붙어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렇다 할 설명을 하기에도애매한 찰나의 여행. 아주 먼 데를 다녀온 사람처럼 마음은 천천히 돌아온다.
‘찰나‘는 시간의 최소 단위를 일컫는 불교적 용어다. - P173

‘찰나‘라고 말하는 순간에도 수천 수억 번의 찰나가 사라지는 것이다. 무상함이 피부를 스치지만, 나는 그 서늘한 손길을 거절하지 않는다. 찰나의 것이든 계속되는것이든 여행은 다 좋다.
아주 작은 일에 매혹당해 그쪽으로 온몸이 끌려가는경험은 흔하지 않다. 강렬하게 붙들리지 않으면 제대로느낄 새도 없이 감각이 무뎌지기 때문이다. 얼음물이든 유리잔 표면에 흐르는 물방울, 수명이 다 된 조명의깜박임, 흰나비의 등장과 퇴장, 가로수 아래 환한 빛이드는 곳에서만 보이는 날벌레 떼. 이것을 슬로모션처럼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마음의 악력이 꽤나 강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눈이 감기는 사이에 홀연히 사라지는 장면을 붙들 수 있다는 거니까. 그렇게 붙든 장면은아름다운 헬륨 풍선이 되어 우리의 손목에 묶인다. 그리고 오랫동안 머리 위에서 동동 머문다. - P174

‘하루 단 한 번이라도, 내가 사무실에서 경험한 일분의 기적 같은 강렬한 찰나를 세상 사람들이 경험하길바란다. 오늘따라 당신의 검지를 스치는 서류의 질감이놀라울 만큼 부드러울 수도 있다. 오늘따라 당신 그림자의 걸음걸이가 유독 씩씩해 보일 수도 있다. 오늘따라 지하철 좌석에 앉은 사람들의 신발 색깔이 재미있게느껴질 수도 있다. 오늘따라 아주머니들이 쓰고 다니는양산의 무늬가 다채롭게 보일 수도 있다.
몇몇 사람만 아는 작은 디저트 가게의 케이크를 한입 맛본 순간처럼, 그 일 분은 세상 무엇으로도 교환 불가한 풍요로운 찰나로 남을 것이다. 순식간에 케이크는사라지고 접시는 외로워지겠지만, 우리 입안에 남은 달달함은 신이 와도 빼앗아갈 수 없을 테니. - P175

그리고 이젠 알 것 같다. 어린 나는 착했다. 착한 아이처럼 보이려 행세한 게 아니라. 착한 것은 나약한 것이 아니다. 착한 것은 그저 착한 것이고, 착한 것을 이용하는 자가 비겁한 것이다. 요즘은 거울을 보며 이런생각을 한다. 어떻게 살면 착하면서도 강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착하고도 제멋대로일 수 있을까. 착하고도흔들림 없는 자의 얼굴을 그려본다. 선명하게 그려지지않지만 그 고민은 괴롭지 않다. - P187

나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다. 외모뿐만 아니라 스타일, 인성, 지성, 감성 모든 면에서 특출난 게 없다고 스스로 강하게 의식화한다. 오랜 습관이다. 그렇다고 나자신을 내치진 않는다. 굉장히 성가시지만 늘 지니고다녀야 하는 신분증 정도로 여긴다. 그래, 이게 나지. 이게 내 한계지. 본성이 나왔군. 얼마든지 실망해주겠다는 태도로 삐딱하게 짝다리를 짚고 관찰한다.
나는 내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도 모른 채 얼렁뚱땅 성인이 되었고, 이십대 초반 내내 혼란스러웠다. 홀로 선 내 모습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엄마를 닮지 않은 외모가 싫었고, 엄마보다 약한 몸뚱이가 싫었고, 엄 - P188

마만큼 감정 기복이 심할 때는 형편없게 느껴졌다. 이제는 타인의 기준을 만족시키는 게 아니라 알아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성취하면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도 너무나 가혹하고 어렵게 느껴졌다. 모든 게 엉망이었다. 스스로 만족할 줄을 모르니 늘 실패한 기분만들었다.
그러나 차차 그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는 나의방식대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아도 삶을 저버리는게 아니라는 믿음. 그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세상에서가장 어색한 사람과 동거하는 기분으로 살더라도, 방점은 ‘같이 산다‘에 있는 것이지 ‘어색한‘에 찍히는 게 아니라는 것. - P189

내가 바라는 것은 하나다. 혼자 남겨진 시간 속에서모두가 무탈하게 걸어 나와 훨씬 덜 부서지며 살아갈수 있기를. 진짜 끝날 때까지 그렇게 살기를. 사람이 강해지려면 얼마나 장수해야 할까 하는 바보 같은 의문이뒤따르긴 하지만, 우리는 어쨌거나 미래로, 예정된 슬픔이 잉태된 미래로 간다. - P194

그러니 사람은 운명 앞에서 ‘나 자신‘을 최대한으로동원할 수밖에 없다. 그 ‘수‘는 믿음직스럽진 않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나일 수 있다는 희망만큼은 조금도 슬프지 않다.

혼자 남겨져도, 혼자는 혼자를 배신하지 않는다. - P195

나는 알고 있다. 우리가 훗날 그리워하게 될 장면들은 바로 그런 것이란 걸. 아침이 고요하고 온화하다는이유만으로 울음 짓는 날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란 걸.
나라는 사람은 그런 날을 위해 애인과 친구들 곁에 남아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무언가를 상실하더라도 영영 사라지지 않는 것도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 기꺼이 내 기억을 그들과 공유할 것이다. 슬픔 속에서 그저 슬픈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슬펐으면좋겠다. 꼿꼿하게 슬펐으면 좋겠다. 간혹, 슬며시 웃으며 슬퍼할 수도 있을 만큼. 그러기 위해선 지탱할 기억이 많아야 한다. - P205

핸드폰 사진첩 속 수천 개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생각한다. 시간은 저 멀리로 사라져버리는 듯하지만,
우리 안 어딘가에 퇴적된다. 그 퇴적지는 살아낸 만큼비옥해지는 땅이다. 어떤 사라짐은 너무 절대적이어서그것이 존재할 때보다 더 센 힘을 갖는다. 계속 있는 것 - P205

처럼. 나와 당신들 사이에 층층이 쌓인 이야기가 두터워질수록 삶이 튼튼히 다져지고 있다고, 믿게 된다. 마법 같은 기억력이 있는 한 나는 시간에 떠내려가지 않고, 시간을 잘 흘려보내는 사람이 될 것이다. 흘러가는풍경을 두고두고 기억하는 사람. 기억하는 만큼 삶은내 것이 된다는 말이, 정말일지도 모르겠다.
내 사랑들도 그러기를 바란다. 나보다 기억력이 좋은사람들이니 잘할 수 있을 것이다. - P206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권태와 삶에 대한 환멸감을지켜볼 때마다, 내가 너무 일찍 늙어버렸기 때문이라고믿는 수밖에 없었다. 철이 든다는 건 뭔지 모르겠지만,
분명 그때 늙어버렸다. 어느 날 뜬금없이 눈물이 터져도 놀라지 않는 이유다. 어떤 사람은 일찍 충분히 늙어버린 채 영원처럼 지속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도있다.
엄마와 나는 우리 사이에 놓인 상처를 적나라하게터놓고 나눠본 적 없다. 서로의 손등을 포크로 아프지않게 툭 찔러보는 단계는 거쳤지만, 그 이상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친하니까 할 수 있는 장난이지만 진실의무게가 아프게 실린 몸짓. - P213

서로에게 불러주는 자장가를 생각하며 각자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상상의 막을 내린다. 눈물을 견딜 수 없다. 광주의 한 낡은 아파트, 곤히 잠든 엄마를 떠올리며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우리는 ‘사랑한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란 걸. ‘사랑한다‘ 말하면 울어버리는 사람들이란 걸.
우린 이미 친구고, 우린 이미 연인이고, 우린 이미 자매고, 우린 이미 서로를 태어나게 한 사람들이다. 늘 그랬듯, 최선을 다해 각자의 하루를 버티고 그저 그런 안부를 묻는 것만으로도 그 순간을 애틋하게 여기는 사람들이다. 나는 너무나도 안심이 됐다. 우리 사이에 놓인것들을 설명할 필요도, 이해할 필요도 없다는 사실에엄마가 나를 위해 무언가를 포기하고 내가 엄마를 위해무언가를 희생했던 그 시간들까지도. 마음 놓고 받아들이면 된다. 여기까지 왔으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바다로달려가는 소녀들처럼. - P215

망한 심정으로 비척비척 거리를 걸었지만, 따뜻한 활기를 띤 골목을 보고 나니 내 마음 어딘가에도 그 골목의 불빛이 스며드는 듯했다. 그래, 이 불빛을 등불 삼아또 잘 적으면 되는 거지. 아까처럼 똑같이 쓰지는 못하겠지만 새롭게 쓰면 되는 거지. 쓰는 마음은 어디 가지않으니까. 늘 같은 자리에 있는 저 조그마한 가게들처럼. 알아서 피고 지는 꽃처럼. - P219

당신이 없으면서도 있는 여름이에요. 남겨진 자들의풍경이 많이 바뀐 것 같으면서 그대로인 것도 같아요.
하루하루 헤어지고 있는데 삶도 죽음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네요. 그와중에 열심히 사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열심히 사는 게 무엇일지 고민하는 건 포기하지 않으려 해요.
날 지켜봐도 되고 안 봐도 돼요. 그냥 내가 당신을 기억할게요. "할아버지!" 하고 불러보고픈 날이었어요. 내말, 무슨 뜻인지 알죠? - P224

창작하는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즐겨야 한다는 것.
성장이 불필요하다는 게 아니라 한계를 받아들이고 한계까지 표현해야 하는 것.
그림을 그리고 시나리오에 몰두하는 한 남자의 움직임, 그 떨림을 지켜본다. 나 역시 ‘나‘라는 유한함 안에서 손끝 발끝까지 다 써서 춤을 춰보고 싶어진다. 삶이라는 시공간 안에서도 내 하늘, 내 바닥, 내 계절을 구 - P229

석구석 만져보고 싶다. 관중이 사라진 경기장 안에서 자유롭게 뒹구는 토끼가 되어, 승패와 무관하게 이어지는 이 삶을 실컷 내달려보리.

우리, 이 이야기를 끝까지 써보자. 다 쓰고 서로에게들려주자.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가보는 거야. 밤이새도록. 새벽이 다 가도록. 우리가 사라지고 이야기만남더라도, 그 이야기가 또 다른 이야기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마음껏 길을 열어보자. 안으로 밖으로 쭉 달리자,
끝까지. 끝의 끝까지. 닿을 수 있는 그 어느 곳까지! - P230

눈발 사이로 묵묵하게 따라가는 마음. 가마미라는 낯선 이름을 가진 바다의 짠 냄새. 마침내 환하게 일렁이며 몸을 펼치는 연인의 슬픔. 그 시절, 아빠는 신부(神父)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주저하지 않고 엄마와 결혼한다.
오랫동안 엄마의 슬픔이 외롭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수십 년이 흐르고 또 겨울이 와도 여전히 두 사람은 가마미의 해변에서 손을 잡고 느릿느릿 걸어간다.
그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는, 저들의 슬픔과 믿음을 기록해야지. 저 붙잡은 손을 기억해야지.
손깍지를 타고 이어지는 곁에서 내가 울며 태어났으니나는 두 사람의 슬픔과 믿음이 건넌 바다인 것이다.
썰물이 되자 점토질의 벌이 축축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엄마 아빠가 딛는 발자국을 따라 걸었다. 물이 빠지며 단단해진 땅이다. 모래가 모래를 안는 시간, 바다가바다를 따라 떠난 시간. 그 시간, 모두가 연인들이다. - P244

엄마를 용서했다. 그녀를 더 사랑하기 위해 용서를 먼저 했다. 오십대 엄마는 딸내미의 용서 따위에 관심도없을 만큼 이미 자유롭고 노곤한 몸이 되었지만, 어쨌든 내 혼잣말 같은 용서가 이루어졌다는 건 중요하다.
"엄마는 뭐가 되고 싶었어?"라고 어린 내가 물었다.
늘 과거형으로만 물었다. 초등학생밖에 안 된 나이였지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엄마라는 사람을 엄마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지 못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내가 그녀를 그저 엄마로만 생각했다는 것. 그녀에게진 내 첫 번째 빚이다. - P245

내가 불면을 앓듯 너는 우울을 앓는다는 걸 알아.
먹고사는 일이 안겨주는 공포와 열정에 짓눌려 슬픈 밤을 보낸다는 걸. 너는 너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지. 그러나 기억하렴. 깎이고 깎여 그저 너이기만한 너도 나는 사랑한단다. 너의 무상함도 사랑해. 깔깔거리는 웃음, 씰룩이는 엉덩이춤, 고양이 앞에서 해제되는 무장, 사방으로 뻗는 호감과 눈물. 아무것도 아닌모든 너를.
불면의 밤, 어두운 토양 위에 널 위한 나무 한 그루를 심을게. 너를 잊지 않을 나무를. 네가 좋아하는 능소화나 향기 좋은 라일락이어도 좋겠다. 우울에 잠식되는밤일지라도, 그 깊은 어둠 속에 널 위한 꽃그림자가 섞여 있다고 생각해주렴.
봄은 도처에 있어. 없으면서도, 언제나 있어. - P254

우리의 느린 말소리는 두런두런 사라질 듯 사라지지않고 녹음(綠陰)처럼 이어진다. 먼 우주에 우리의 말소리가 닿는다면 잠꼬대 같을까.
지구가 태양의 곁을 묵묵히 회전하는 것만이 중요한일 같은 계절. 폭염은 괴롭다. 내 몸보다 더 뜨거운 것을 견딘다는 건 원래 괴로운 법이다. 가슴속에 조금이라도 더운 감정이 있다면 한 번쯤은 툭 쏟아낼 수도 있는 거다. 이게 다 너무 더워서 그래, 하며.
여름의 열기와 함께 훨훨 증발해버릴말. 그래도 사실 너와 내 삶을 사랑한다고, 여름의 잔인함에 혀를 차며 재잘재잘 수다를 시작하는 것이다.
- P258

좋은 것을 다 갖고 있는 듯 보이는 언어에 현혹되지말자. 좋은 것을 다 이해하고 있다는 듯 으쓱하는 사진에도 휘둘리지 말자. 그것들이 독점한 가치는 사실 우리 안에도 있다. 고유한 빛을 머금은 채.

자기 삶의 서사를 단단하게 쌓아가기 위해 자신을둘러싼 사랑의 고유함을 공부하는 사람. 그리하여 그사랑 한가운데 기어코 들어가 젖어보는 사람. 그런 사 - P269

람만이 타자를 ‘이해한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런 작가, 그런 에디터로 성장할 수 있을까.
혼자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결국 내가 의지해야 하는존재도 우리다. 서로 다른, 긁힌 자국투성이의, 미우면서도 사랑스러운 우리.
우리가 지킬 삶은 우리를 외롭게 하지 않을 것이다. - P270

도시를 끼고 흐르면서도 인간사와 무관하게 제 갈길을 가는 거대한 강을 본다. 내가 눈치채기 힘든 우주적인 흐름 안에 들어온 것만 같다. 다 흘러가는 중이다.
우리는 멈춘 적 없고, 언제나 어딘가로 가고 있다. 더멀리 흘러가기 위해. 도달하기 전까진 우리 사랑의 결과를 결코 알 수 없다. 어둠이 깊게 내려앉아도 길을 잃지 않는 물. 이 흐름에 의지해 기뻐지거나 깊어지거나.
왜가리가 난다. 날벌레가 우글거린다. 청초한 들꽃행렬이 강가를 따라 서 있고, 이따금 물고기가 튀어오른다. 강변에 설치된 벤치형 나무 그네에 나란히 앉아우리는 발을 구른다. 삐걱삐걱 우리의 무게만큼 묵직하게 흔들리는 그네. - P274

사람을 두려워하며 네가 울고 웃으며 해준 이야기들. 지금에 와서 하는 생각이지만, 거기에 허풍과 엄살이 다소 깊게 있었을진 몰라도 진실했다고 봐. 그러니용감하게 걸어 나와도 돼. 너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아도 빛이 난단다. 두렵다는 이유로 네가 믿는 진실을 마주할 기회를 놓치지 말기를 바라. 내 시를 걸고 너의 신,
하나님에게 말해둘게. 넌겁쟁이지만, 용감한 겁쟁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안다고 말이야.
무모하게 사랑만 많아서, 질투도 많고 좌절도 많고순수함을 꿈꾸지.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아름답고 이상적인 세계를 이야기로 만들 수밖에 없을 정도로 겁쟁이인 주제에, 괘씸하게도 마음이 뜨겁지. - P304

유월, 시 쓰기 참 좋은 계절이야. 쓰고 있어도 시가그리워져. 때론 밉기도 해. 벽을 미워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지만, 아무튼 그래. 네가 날 자주 미워했던 것과비슷한 마음이겠지. 나도 네가 날 미워해서 네가 미웠어. 이젠 그저 모두가 건강했으면 좋겠구나. 장마가 오기 전까지, 장마가 끝나기 전까지, 겨울이 되기 전까지,
다음 해로 넘어가기 전까지. 그다음 해, 다다음 해, 언제까지든. - P3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일어나지 않도록 만드는 것.

비키지 않는 것.

나는 내 자리를 알아요.






손이 자주 주춤거린다고 해서 글을 못 쓰지 않는다.
일하는 도중에 ‘ㄴ‘이 빠지기라도 하면 다시 임시로 끼워 넣느라고 진땀을 빼지만, 그렇다고 해야 할 일을 제때 못한 적도 없다. 나는 언제나 내가 감내할 수 있을만큼 불편해보려는 사람이다. 끼어드는 사고에 기꺼이들이 받는다.
아끼던 부츠 밑창이 반으로 갈라졌는데도 접착제로이어 붙여 꿋꿋하게 신고 다니고, 신을 믿지 않으면서동생을 위해 매일 기도한다. 식물 키우는 일에 흥미가없지만 선물로 받은 아이들을 여태 살리고 있고, 극도의 내향인이지만 여러 사람을 만나는 일로 돈을 번다.
줄을 서다 누군가 내 순서를 가로채 새치기해도 잠자코차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다. 그게 내 손해일까? 그날들을 후회한 적 없는데? - P7

쓰는 동안, 과거의 나에게 편지를 띄우는 기분이었다. 마지막 글의 마침표를 찍을 땐, 답장을 기다리기만하면 되는 어느 평온한 저녁을 맞이한 것 같았다. 내 숨소리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더 빨리 더 많이 행동하라고 독촉하는 듯한 세상 때문에 왕성하게 슬펐으나, 이제 고요 속에서 서서히 기쁘다. 머지않아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그 페이지 역시 내가기대하지 않은 모습일 수도 있고, 고작 키패드를 수리하는 정도일 수도 있고, 오랫동안 바라온 모습일 수도있겠지만, 지금을 서둘러 떠나지 않을 것이다.  - P8

우리 인생에는 약간의 좋은 일과 많은 나쁜 일이 생긴다. 좋은 일은 그냥 그 자체로 놔둬라. 그리고 나쁜 일은바꿔라. 더 나은 것으로, 이를테면 시 같은 것으로.

보르헤스의 말이라고 한다. 이 문장을 맞닥뜨리는 순간, 나는 순식간에 열 살로 돌아간다. 가슴에 맺힌 이슬이 손끝으로 흘러 떨어지는 감각에 들뜨던 어느 날, 시를 몰라도 시처럼 살 수 있던 유년으로 - P17

아빠가 타지로 직장을 옮겨 우리 가족이 잠시 떨어지게 된 어느 날, 아빠를 보내고 울면서 바닥을 걸레질하던 엄마의 모습을 나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코딱지만한 바닥이라 금방 끝낼 일을 엄마는 한참을 멈추지 않았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눈물방울을 계속해서 닦고 닦았다. 나는 그런 엄마와 함께 울어버리는 대신 방문 밖에 가만히 서서 생각했다. 엄마가 아름다운 성을 닦고있는 모습으로 쉽게 무너질 것 같지만, 닦으면 닦을수록 투명해지고 얼음보다 선명해지는 유리성, 유리 바닥에 고인 눈물을 나는 가장 아래층에서 올려다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그림으로 그날을 종이 위에 모셔올수 있다. 내가 시 쓰는 사람으로 자라게 된 건 당연한수순이었을지 모른다.
보르헤스의 말대로, 어린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더 나은 것이란, 시 같은 사람들과 시 같은 풍경들을 사랑하는 것밖에 없었으므로, - P22

이런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자꾸 새롭게 태어나는 시간. 그 생경한 감각을 말로 빚어 꺼내보는 시간.
내 안의 어딘가가 회복되고 새롭게 자라날 때마다 좋은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는 시간. 합평이 끝나고 모든달고 쓴 소리를 들은 이후에 얼마나 마음이 든든한지모른다. 더 열심히 쓰고 싶고, 다른 사람들의 다음 글도어서 읽어보고 싶어서 침이 고일 지경이다.
이 모든 게 시의 힘이라는 것도 기쁘다. 다른 무엇 때문도 아닌 뭔가를 쓰고 싶어서 침이 고이고 열심히 살고 싶고 자신에게 정직해지려는 게. 그리고 이 기쁨의중량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아는 사람들이 모였다는 사실이 소중하다. 모두 특별한 여자들이다.  - P27

그랬는지도 모르죠. 마음 전체를 불살랐는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품은 모든 사랑. 사랑해서밉고 사랑해서 저주스럽고 사랑해서 비참하고 사랑해서 외롭고 사랑해서 무섭고 사랑해서 궁핍한, 그 원흉을 모조리 태워버리기 위해 썼을지도 모릅니다. 그때쓴 시는 ‘말하기 위한 시‘가 아니라 ‘지우기 위한 시‘였을까요. 리셋을 위한 시. 영영 돌아오지 않을.
화마가 지나간 땅이 복구되려면 백 년의 시간도 부족하다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은 내가 다시 온전해질 일이 없다는 뜻이죠. 참 위로가 됩니다. 마음 쏟을 건, 검은 흙을 비집고 돋아난 지독한 싹들이 무엇으로 자랄 수 있는지 상상하는 것뿐입니다.
이제 나는 완벽한 사랑을 위해 아프지 않아도 됩니다.
완벽한 시도 내가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갈 수 있는데까지만 갈래요. - P33

나는 여태 시인이 되지 못했고 목화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지만, 우리는 살아간다. 변변찮은 벌이로변변찮은 자기 자신을 먹여 살리는 일은 변변찮은 게아니니까, 잘 살고 있다고 봐야겠지.
이 무료한 대화도 사실 애써 가꾼 일상 위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무료하다 하여 일상이 무력하진 않다. 불안이 우릴 잠식할 힘은 사실상 없다. 불안은 뿌리가 없으므로, 내 단단한 토양에 박힌 풀과 꽃 사이를 흘러 다닐 뿐이다. 이따금 부는 바람처럼. - P38

나는 독백처럼 말했다. 전화 너머로 목화는 내게 다행이라고 말해주었다. 그에게도 그런 바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있을 수도 있지만 그 바닥이 정말 단단하기를 바란다. 언제든 드러누울 수 있는, 
그녀가 어떤 모습으로 돌아오든 활짝 열려 있는 따뜻한 밑.
자기만의 바닥이. - P39

냉동실에서 버섯을 꺼낸다. 버섯을 넣은 된장국에 한창빠져 지내는 중이다. 된장은 광주에서 넘어온 것. 텁텁하면서도 맛깔난 전라도식 된장이라, 한 숟가락 두 숟가락사라지는 게 아깝다. 국을 끓이는 시간은 그리움의 시간이다. 그리고 자식이 되는 시간이다. 고춧가루와 청양고추를 아낌없이 뿌려 칼칼한 뒷맛을 내는 엄마의 스타일을 따라 해본다. 버섯이나 방앗잎 같은 채소를 듬뿍 넣는 아빠의 노하우도 흉내 낸다. 고슬밥과 함께 식탁 위에 차려진 버섯 된장국. 그 앞에서 나는 생각이 많아진다. 마음도 많아진다. 밥을 먹다 말고 핸드폰을 집어 든다. 표고버섯 일 킬로그램을 주문해 광주로 보내기 위해.
식사를 마치고 엄마 아빠에게 박스 잘 받으라고 전화해야지. 얼굴 근육이 벙글거린다. 다시 이어지는 달그락거리는 수저, 소리가 씩씩하다. - P44

그냥 줄을 길게 늘여보는 거다. 마음 어딘가에 꼬여있는 실타래의 끝을 잡아 당기다 보면 훌훌 풀어진다.
시든 산문이든, 난데없이 첫 문장 띄워 올리는 걸 잘하는사람. ‘쓰는 감각‘에 충실한 사람이 되고 싶다. 매일 그 시작을 응원한다는 명목으로 나에게 말을 건다. 훌훌 문장안에서 내려앉고 날기를 반복하는 나비가 된다.
목소리로 술렁대는 펜촉. 이제 쓰자. - P45

시는 어느 날 왔다. 일기에 떨어진 눈물자국보다 오래 피부에 눌러앉기로 작정한 병처럼. 내가 반할 만한옷을 걸치고 왔다. 거부하기 힘들게.
너덜거리는 마음이 적힌 일기장은 내게도 있었다. 그일기장이 내가 가진 가장 그럴싸한 것이었던 시절, 시가 잘 차려입은 내 모습을 하고 나타난 거다. 대접해주고 싶지 않겠는가? 나지만 ‘내가 아닌 나. 아는 귀신을만나면 이런 기분일지도 모르겠다. 홀연한 만남 이후로마주치기만을 기다리게 되는. - P51

시는 그 슬픔을 파고드는 구원의 빛이었다. 부모님은책상에 앉아 얌전히 공부하는 줄로만 알았겠지. 한밤중 스탠드 불빛이 나를 이끈 곳은 문제집이 아니라 아무도 보지 못하는 일기장이었다. 어느 순간 나는 매일의 기록이 아니라 시를 의식하며 쓰고 있었다. 어떤 말투로 쓸까, 어떻게 끝맺음을 할까, 어떻게 말문을 틀까.
아무도 보지 않기 때문에, 어른들과 친구들의 눈빛과말소리가 전혀 끼어들 수 없기 때문에, 한 줄 한 줄은반드시 독보적인 것이 되어야 했다. 훼손되지 않고 오롯하게 아름다운 것! - P53

당시에 쓴 것들을 읽는 시간은 정말 곤혹스럽다. 얄팍한 수를 쓴 흔적들이 보이면 내 머리통을 한 대(아니,
할 수 있는 한 여러 대 쥐어박고 싶다. 그러나 다 패고나서는, 그 매력 없는 것을 꼭 한번 안아주고 싶다. 그때의 시는 그때의 나와 닮았다. 타인에게 속마음을 말하려면 한평생 써야 할 것 같아 매일 밤 끊어 울던 나랑.
양심 없는 시라는 뜻이겠지. 자기 자신을 가눌 힘이 없어 그럴듯해 보이는 것에 의지해놓고선 자신의 고통이돋보이는 줄 아는 시. - P55

벗어나고 싶은 것도 손에 쥐고 싶은 것도 없이, 아무것도 원하지 않은 채 인생을 가벼이 여겼다. 모든 것을잃고도 깨달은 게 없으므로 삶은 가벼운 것이어야 했다. 밥벌이를 위해 궁색한 빈말을 아끼지 않았고, ‘척‘하는 말들을 육성으로 문자로 뱉으면서도 내 꼴이 그다지우습지 않았다. 상황을 나쁘게 만들지 않기 위한 것이라면 거짓말도 꽤 할 만한 짓이었다. 나는 드디어 내가어른이 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 P57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면서도 세상에 지지 않을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야만 했다. 시를 흠모하여 시로다져진 내 감각이 무엇으로든 세상에 쓰일 수 있음을,
그것으로도 이 한 몸을 지탱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시들어가는 녀석에게.
에세이, 인터뷰를 비롯한 잡지 기사, 주얼리나 향기제품 설명글, 책 큐레이션 등. 시로 터득한 나만의 화법과 관점으로 일을 해나갔고, 차츰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렇게 살고도 여태 굶어 죽지 않은이유다. 사부작사부작 다양한 작업을 했고, 대단히 벌지는 못했다. 하지만 내게는 버티는 힘이 존재한다. 그사실만으로 자긍심을 되찾고 감사한 마음으로 일할 수있다. 일은 일이고 시는 시니까. 시인은 어떤 상태일 뿐직업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후부터 나는 내시를 먹여 살리기 위해 일하는 몸으로 전환되었다. - P65

상상하는 것. 어쩌면 상상력이 밥 먹여준다는 말은틀렸을지도 모른다. 상상력은 밥 대신 미래를 짓는다.
오늘이라는 토양 위에 내일의 태양빛을 불러오도록 한다. 그 빛의 아름다움을 보도록 한다. 그리하여 살게끔한다.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죽지 않는다. 자기자신에게 연루된 다음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다가오는것들이 예상한 모습을 하고 있지 않더라도, 그것이 끝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이어지는 삶은 우리가 이어갈삶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야기는 그렇게 쓰여진다는 것을 망각할 리 없다. - P66

언젠가 애인에게 이런 말을 하고 스스로 놀랐다. "게으른 할머니가 되는 게 꿈이야. 그때도 열심히 글을 쓰고 싶진 않아. 그땐 안 써도 흡족한 날이 많았으면 좋겠어, 아주 사소한 걸로도 하루를 충만하게 보내서 글 따위에 시간을 쓰는 게 아깝게 느껴질 만큼. 다른 흥미로운 일 하느라 마감일 같은 건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 ‘아이고, 고양이랑 나란히 앉아어항을 바라보는 게 너무 즐거워서 그만 저녁을 다 보내버렸지 뭐예요?‘ 그런 말을 뱉고 입술을 오므리며 비밀스럽게 웃는 할머니."
소망을 뱉고 후련했다. 그런 사람이 되어도 괜찮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장난스러운 쪽지를 남기고, 짧은 일기에 만족하고, 어쩌다 쓴 시가 끝장나게 좋고, 장 볼 때 구매리스트를 잘 쓰는 할머니. 그런 것 말고는 사리에 어두워질문이 많은 할머니. - P71

‘겨울‘은 실제 겨울조차 낯선 풍경으로 보여준다. 딴소리, 헛소리, 덧없는 소리, 알다가도 모를 소리의 리스트는 끝없이 길어질 수 있다. 이런 단어들이 모인 내 메모장, 은유 사전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얼마간은 저낯선 소리들을 진실로 믿는다. 사전이 두꺼워질수록,
내가 가늠할 수 없었던 세상의 거대한 슬픔이나 행운을가늠해보는 용기도 얻을 것이다. - P75

아직은 자그마한 기척, 착각일지도 모르는 미동에 얼어붙을 만큼 나는 작다. 좁은 겨울 속에 머문다. 그러나겨울은 불어나고 사그라들기를 반복하며 거미줄처럼확장되고 있다.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겨울을 다 겪고 싶다. 후우. 종이 위에 깊은 숨을 불어보고 싶어진다. 곱씹고 곱씹은말을 가장 뜨거운 숨 위에, 쓰고 또 쓰고 싶다. - P76

새로운 몸은 과거를 통과해갈 것이다. 오랜 시간 방치된 시들을 최선을 다해 살릴 거다. 복원사의 자세로과거를 존중하리. 실패한 춤을 매듭짓고 그다음 춤을추러 떠나기 위해.
과거에 고여 있는 시에게 새롭게 다가간다. 함께 잠드는 보호자, 되돌아오는 애인, 입안에 들어간 머리카락을 빼주는 자식의 얼굴을 하고서. 은밀한 그 폴더는내가 자주 찾는 환한 샛길이 될 것이다. 그 길을 잊는일은 이제 없다. - P85

다정함과 섬세함에 대한 나름의 고찰은 다음과 같다.
다정한 사람들은 리액션이 좋다. 경험상 이들은 무드나환경에 약하고 상대방의 감정과 표정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따뜻한 사람이다. 그만큼 감정 기복도 심하고표정 변화도 크게 드러난다. 누군가 울 때 같이 우는 사람이 딱 ‘다정‘ 유형.
반면, 섬세한 사람은 순간순간의 리액션이 크지 않더라도 기억력이 좋은 경우가 많다. 그 사람과 어떤 식당에서 어떤 농담을 나눴는지, 그 사람은 머리가 아플 때어떤 약을 먹고 어떻게 쉬는지, 그 사람은 평소에 귀걸이를 빼서 어디에 두는지 등등, 대상에 대한 정보를 입 - P106

력하고 잊지 않는 것이다. 잊지 않았다는 것이 어떻게든 행동에서 티가 난다. - P107

주변에 다정하고 섬세한 사람들이 많다. 허술하긴 해도 내가 분류한 이 유형을 참고해 그들을 관찰하는 것은 오랫동안 흥미로울 것 같다. 다정한 사람들의 입매와 눈빛, 눈썹과 고개의 방향, 허리를 숙이는 방식. 그리고 섬세한 사람들의 행동과 그 곁의장면들.나비같고나무 같은 사람들이다. 사랑스럽고 성실한 내 사람들. - P110

섬세한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풍경 위에서 다정한 사람들이여, 내내 행복하기를! - P111

엄마가 어린 남매의 손을 잡고 놀이터로 이끌지 않았더라면, 아빠가 밀어주는 그네의 기억이 없었더라면,
아마 나는 즐거움의 필요성이 무엇인지 모르는 인간으로 자랐을 것이다. 분수나 주제 너머의 희망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는 무언가를 소원하는 마음 자체가 한 시절을 통과하도록 한다는것을 믿지 못했을 거다.
엄마가 이제 지금의 나를 보기를 바란다. 밝은 놀이터 풍경을 좋아하는 나를 아이들과 젊은 부모, 인근에사는 노인들 사이 벤치를 차지하고 앉아 여유롭게 그들을 지켜보는 나를 보기를 그리고 내곁에 앉기를 바란다. - P120

이토록 고양이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과시하는 아빠지만 녀석들과 지나친 접촉은 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이유는, 사랑하게 될까 봐.
아빠에게 ‘사랑‘은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다. 끝까지가보는 것, 이해를 위해 계속 나아가는 것. 사랑이 끝날때까지 혹은 끝내야 할 때까지 가능한 오래 마음에 품는 것이 아빠에게는 최상의 사랑인 것처럼 보였고, 사랑한 이상 도통 끝을 내지 않았다. 그게 함부로 사랑을결심하지 않는 이유다.
그러나 나는 당신 스스로 부정하고 있을 뿐, 이미 고양이를 아주 많이 사랑한다고 단정 짓고 있다.  - P1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