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지금 나는 구좌에 있다.


연북정, 비석거리, 번듯한 기와집 마을이 있고, 중산간지대에 와흘리 선흘리의 본향당신당이 신령스럽다. 교래리엔 자연휴양림도 있다. 특히나 구좌엔 김녕리, 평대리, 송당리, 세화리, 하도리, 종달리 등 이름도 아름다운 동네 열두 개가 있고 중골, 연등물, 검은흘, 솔락개, 글막개, 첫동네 등제주토속을 그대로 느끼게 하는 60여 곳의 묵은 동네가 있다.
구좌는 한라산 북사면의 저지대로 넓은 초지가 바다 쪽으로 길게 뻗어 있다. 제법 넓고 비탈진 들판의 긴 밭담 속에서 당근·양파·마늘이 철따라 푸른빛을 발하고 송당목장이 있는 송당리 일대는 마지막 테우리 (목동)들이 여전히 소와 말을 키우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비자림 (子林)도 구좌에 있다.
하도리에는 지금도 제주 해녀의 10분의 1이 변함없이 물질을 하고 있고, 갯가 곳곳엔 해녀들의 쉼터인 불턱과 세화리 갯것할망당, 종달리 돈지할망당 같은 해안가 신당이 옛날 그 모습으로 성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이처럼 구좌에는 제주의 농업, 목축업, 어업이 과거 그대로 이어져오고 있어 제주인의 건강하면서도 애틋한 삶을 속살까지 만질 수 있다. - P15

구좌는 기생화산(寄生火山) 인 오름의 왕국이다. 오름의 여왕이라 불리는 다랑쉬오름, 굽이치며 돌아가는 능선이 감미로운 용눈이오름도 여기있다. 만장굴, 김녕사굴, 용천동굴이 있는 제주도 용암동굴의 종가이기도 하다. 문주란 자생지로 유명한 토끼섬도 구좌에 있다. 게다가 1만 8천신들의 고향인 송당본향당도 여기에 있으니 구좌는 제주 자연과 인문의 원단이 모여 있는 곳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읍소재지 세화리에서 하도리 거쳐 종달리에 이르는 해안도로는 멀리성산일출봉이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져 있어 제주도 일주도로 중에서도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주는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다. 조천과 구좌는어느 면으로 보나 당당히 ‘제주답사일번지‘로 삼을 만하다. - P15

심어놓았다. 그러나 하와이나 사모아 섬에서 장대하게 자라는 나무들이제주에서는 억지로 겨우겨우 자라 대빗자루 몽둥이처럼 길게 올라간 것을 보면 감동은커녕 측은지심이 일어날 때가 많다.
진짜 제주도에서 우리의 눈과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것은 자생종 나무들이다. 구실잣밤나무, 담팔수, 먼나무, 동백나무, 후박나무, 녹나무,
협죽도 같은 늘푸른나무들이다. 자생나무로 이루어진 가로수들은 한껏우리의 눈과 마음을 기쁘게 해준다.
제주시내의 구실잣밤나무 가로수길, 서귀포의 담팔수 가로수길, 대정제주 추사관 언저리의 먼나무 가로수길, 사려니 숲길 가는 길의 삼나무가로수길, 남원 일주도로의 야자나무 가로수길, 종달리 해안도로의 수국꽃길은 그 자체가 일품이어서 차 타고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눈과 마음이 황홀해진다. - P26

‘소원을 새긴 백지!‘


사연이 많은 사람은 소지를 몇십 장 겹쳐서 가슴에 대고 빈다고 한다.
이런 높은 차원의 발원 형식이 세상천지 어디에 있을까 보냐. 본래는 글모르는 할머니들을 위해 생겨난 의식이었다고 하는데 어떤 글을 써넣은것보다 진한 감동을 주지 않는가!
일본의 사찰에 가면 소원을 써서 절 마당에 걸어놓는 강까께(願掛)가 있고, 이스라엘 ‘통곡의 벽‘에선 소원을 적어 돌 틈에 끼워넣는다고하는데 우리 제주도에선 백지에 소원을 전사(轉 寫)해서 걸어놓는 것이다. 팽나무 신목에 흰 소지가 나부끼는 와흘본향당은 제주인의 전통과정체성을 웅변해주는 살아 있는 민속인 것이다. - P41

는 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팽나무 대여섯 그루 아래 모셔진 이 다섯 석상을 보면 그야말로 서민적이고 해학적이고 무속적이고 제주도적인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면서깊은 정을 느끼게 된다. 불상을 보거나 돌하르방을 볼 때는 전혀 느낄 수없는 인간적 체취이다. 삼다도의 그 많은 돌 중에서 인체를 닮은 것, 얼굴을 닮은 것 다섯 개를 골라 거기에 이목구비만 슬쩍 가했을 뿐인데 누구도 석상 아니라고 할 수 없는 인간미가 넘친다. 조형적으로 세련되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세련되기는커녕 조형이라는 개념도 없이 민초들이자신들의 정서에 맞는 돌을 주워다 세워놓았을 뿐인데 우리는 거기에서말할 수 없는 친숙감을 느끼니 이것이 민속의 힘이고 아름다움이라고할 만한 것이다. - P46

제주도 답사에서 돌아와 학생들과 얘기하는 도중에 사실 ‘회천 석인상‘이라는 아주 별격의 옛 석인상이 있었다며 사진을 보여주자 학생들은 제각기 다른 재미있는 모습들을 보면서 만면에 웃음을 띠며 즐거워했다. 그리고 이런 곳을 데리고 가지 않은 선생이 원망스럽고 너무도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생각해보자니 제주의 유서 깊은 중산간마을인 세미마을은 오래도록많은 상처를 입었다. 마을 이름은 회천동으로 둔갑했고, 포제를 지내던신당의 석인상은 화천사 오석불이라고 불리고 몸에는 유교식 위패가 새겨졌다. 거기다 4·3사건 때 이 마을들은 전소되고 많은 희생자를 내어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세워놓은 ‘4·3희생자 위령비‘가 길가에 쓸쓸히서 있다.
- P47

성에 배치된 인원도 대대적으로 보강하여 진지의 대장 아래 상비군약 100명과 예비군 100명을 두었고 전용배가 한 척 있었다고 한다. 이때성 위에 망루를 짓고 쌍벽정(雙碧亭)이라고 했는데 선조 32년(1599)에 성윤문(成允文) 목사가 다시 건물을 수리하고는 정자 이름을 연북정이라고 바꾸었다.
오늘날 조천진의 성벽은 일부만 남아 있지만 동남쪽 정면은 높이 14자의 반듯한 축대이고 북쪽은 타원형의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어 그 옛날의 장했던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해볼 수 있다. 모양으로 보나 크기로 보나 둥그렇게 둘러진 옹성(城)이었음을 알 수 있다. - P50

연북정 정자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앞뒤 좌우로 퇴(退)가 딸린일곱 량 집이다. 일곱 량이란 서까래를 받치고 있는 도리가 일곱 개 있다는 뜻으로 세 량, 다섯 량이 아니라 일곱 량이나 되는 큰 집이라는 뜻이다. 기둥의 배열과 가구의 연결방식이 모두 제주도 주택과 비슷하며 지붕은 합각지붕으로 물매가 아주 낮다. 바람이 세기 때문에 육지의 정자처럼 기둥을 높이 올리지 못하는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북정은 시원스런 멋이 아니라 야무진 집이라는 인상을 준다.
모든 정자는 건물 자체보다 거기서 내다보는 전망이 더 중요하고, 더아름답다. 연북정에 오르면 조천항이 멀리 내다보인다. 연북정 너머 펼 - P50

 조천진지붕이 육지의 그것처럼 활짝쳐지는 먼바다에서 파도가 넘실넘실 춤을 추듯 포구로 밀려들어오다가바위섬에 부딪칠 때는 ‘처얼썩!‘ 소리를 내며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진다. 그러고는 해안에 다다라서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가만히 뒷걸음으로 물러나며 자취를 감춘다. 열지어 들어오는 한 무리 파도가 밀려가는끝까지 눈길을 주면서 몇번 일렁이나 헤아려보기도 하고, 낮은 바위를거뜬히 타고 넘는지 숨죽여 기다려보기도 한다.
연북정 정자에 앉아 검은 바위를 넘나들며 부서지는 파도의 흰 포말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 몸과 마음이 홀연히 가벼워진다. 이상(李箱)의 표현대로 ‘정신이 은화(銀貨)처럼 맑아진다. 그것이 연북정에오르는 맛이다. - P51

신영복 선생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아버님께 보낸 편지에 연북정에 대한 역설을 이렇게 말했다.


유배지에서 다산 정약용이 쓴 글을 읽었습니다. 조선시대를 통틀어대부분의 유배자들이 배소에서 망경대나 연북정 따위를 지어 임금에대한 변함없는 충성과 연모를 표시했음에 비하여 다산은 그런 정자를짓지도 않았거니와 조정이 다시 자기를 불러줄 것을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해배만을 기다리는 삶의 피동성과 그 피동성이 결과하는 무서운 노쇠를 일찍부터 경계하였습니다.


신영복 선생은 그런 마음으로 20년간 감옥살이를 했고 그랬기에 오늘날 존경받는 지식인상이 된 것이리라. - P54

너븐숭이에서 진짜 우리의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추모의 염을 일으키는 것은 길가에 있는 애기무덤들이다. 관도 쓰지 않은 무덤인지라 대야만 한 크기로 동그랗게 현무암을 둘러놓은 것이 전부인 애기무덤 여남은 개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 애처롭고 슬픈 풍경을 나는 다 표현하지못한다. 무덤가에는 시민단체들이 연합하여 세운 작은 까만 대리석 비석이 놓여 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평화와 상생(相生)의 꽃으로 피어나소서. 4·3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며 남겨진 유가족들에게도 깊은 형제적 연대감과 평화를 기원하나이다."


조촐할지언정 위로하고 추모하는 마음이 진실되어 가슴이 뭉클해진 - P72

다. 누가 이 애기무덤과 비석을 보면서 4·3을 불온분자의 폭동이라고 할수 있겠는가. 유적지의 진정성이란 이런 것이다. 그래도 더러는 애기무덤을 보면서 "아이들까지도 죽였단 말인가?"라고 적이 놀라고 의심이 가는 분도 있을 것같다. 그러나 정말 당시는 그랬고, 그보다 더 이해하기힘든 사실도 있다. 제주의 화가 강요배가 4·3사건을 주제로 한 「동백꽃지다」 연작을 전시할 때 얘기다. 요배 그림을 좋아한 그의 팬 한 분은 그의 이름까지 멋있다고 생각해서 "선생님은 이름도 예술적이에요. 아버님이 멋있는 분이었나 봐요"라고 친근하게 말하자 요배는 멋쩍은 듯 아무 말하지 않고 빙긋이 웃기만 했다.
그때 요배는 모르는 사람이라 말해주지 않았지만 그의 이름에는 4·3사건의 아픔이 그대로 배어 있다. 4·3사건의 양민학살 당시 지금 제주공항인 정뜨르에 토벌대가 수백 명의 주민들을 모아놓고 호명할 때 "김철 - P73

수"라고 불러 동명을 가진 세 명이 나오면 누군지 가려내지 않고 모두 처형했다는 것이다. 그때 요배 아버지는 내 아들 이름은 절대로 동명이 나오지 않는 독특한 이름으로 지을 것이라고 마음먹어 요배의 형은 강거배, 요배는 강요배가 된 것이다. 제주인에게 4·3의 상처는 그렇게 깊고오래 지속되었던 것이다.
너븐숭이 애기무덤 곁으로 큰길 안쪽에는 ‘순이삼촌 문학비‘가 세워져 있다. ‘순이삼촌‘이라고 새긴 기둥이 하나 서 있고 그 주위에는 순이삼촌 소설의 문장들이 새겨진 수십 개의 장대석이 널부러져 있다. 마치북촌리 학살 때 시신들이 쓰러져 있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비석을 향해가는 동안 소설의 구절들을 스치듯 읽게 되니 자연히 고개가 땅을 향하여 추모하는 자세가 된다. 제주도에서 본 가장 진정성이 살아 있는 기념설치물이었다. 그중 한 대목을 읽어보니 이렇게 쓰여 있었다. - P74

‘순이삼촌네 그 옴팡진 돌짝밭에는 끝까지 찾아가지 않은 시체가 둘있었는데 큰아버지의 손을 빌려 치운 다음에야 고구마를 갈았다. 그해고구마 농사는 풍작이었다. 송장거름을 먹은 고구마는 목침 덩어리만큼큼직큼직했다."


지금도 사람들은 행여 무슨 오해라도 살까봐 4·3을 쉬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4·3사건을 당당히 얘기해야 한다. 그것은 외면한다고 잊혀질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다. 조천에 왔으면 마땅히 너븐숭이를들러야 진정한 답사객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 P74

"오름은 제주의 빼놓을 수 없는 표정이자 제주인의 삶이 녹아 있는 곳이라!"

나는 당장 다랑쉬오름을 가보고 싶었다. 그것을 보지 않고 어떻게 그의 그림에 평을 쓸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그의 화실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이튿날 아침, 일단 제주시내로 가서 민예총의 김상철에게 전화를 걸어 답사팀을 꾸려 다랑쉬오름에 가자고 했다. 이런 일은 상철이에게 부탁하면 차질 없이, 아니 150퍼센트 해낸다. 여지없이 상철이는 자동차가진 사람을 꼬드겨서 우리 팀에 끌어넣었다.
다랑쉬오름은 구좌읍 세화리와 송당리에 걸쳐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제주의 빼놓을 수 없는 명소 비자림의 동남쪽 1킬로미터 지점이다.
제주시내에서 가자면 번영로97번 도로)와 비자림로, 중산간동로를 거쳐가거나 산천단을 지나 일단 5·16도로(1131번 도로)로 들어섰다가 산굼부리를 거쳐가는 1112번 도로로 갈 수도 있다. 제주시내에서 37킬로미터거리로, 탐방로 입구 주차장까지 45분 정도 걸린다. 어느 길로 가야 할까? 단정적으로 말하기를 잘하는 상철이는 무조건 후자로 가야 한다고했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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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기" 할 때, 두껍게 깔린 낙엽층 위에 누운 변사자 기도수 얼굴에 손전등빛이 도착, 선명한 주황색 등산복 차림, 부패가 진행 중 해준, 스마트폰으로 플래시 터뜨리면서 사진 찍는다. 폴리스 라인 안의 활동복들 사이에서 그의 양복/ 넥타이 차림은 이질적이다. 비록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었지만 고급 블루투스 이어폰이 꽂힌고인의 귀에 대고 찰칵. 손가락 관절마다 옹이처럼 단단하게 불룩하고 손톱이 다깨진 손도 찍는다. 손목의 롤렉스 시계도 찰칵. 유리 뚜껑은 깨졌고 작동도 멈췄다.
월요일 10시 2분에 해준, 망자의 시선 방향을 따라 다시 산을 올려다보며 혼잣말처럼- - P7


해준
(쌍안경에서 눈 떼지 않은 채, 한손으로 안마기를 치우며)

슬픔이 파도처럼 덮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는 거야.


심심한 듯 기도수 휴대폰을 꺼내 켜는 수완. 서래와 도수의 셀카 배경 화면을 보며심드렁하게 - - P29

해준

그래서 기도수씨 손톱에서 송서래 씨 디엔에이가 나왔단 말입니까?
(끄덕이는 서래를 보면서 끄덕이는 해준)
산이 그렇게 싫으세요?


진저리치는 서래, 전화기를 만지더니 빠르게 중국어를 한다. 당황하는 해준에게전화기를 돌린다. 통역기 앱의 목소리 -


남자 성우
공자님 말씀에,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인자한 자는 산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난 인자한 사람이 아닙니다.
(해준의 ‘이 여자, 뭐지?‘ 표정)
난 바다가 좋아요. - P37

해준
젊고 예쁘고 외국인이라서 피의자가 돼야 해?


수완
예쁜 건 인정하시는 거네요?
(한숨 쉬는 해준)
역차별이라고요…………. 여자 아니고 외국인 아니고그냥 남자 한국인이었으면
팀장님, 가서 밤새 잠복하자고 하셨을 걸요?
집에는 곧바로 가는지, 누가 찾아오는 건 아닌지 본다고.
잠복이 취미잖아요, 예? 잔소리하고.


수완을 노려보는 해준. - P52

돌아보는 해준, 서래의 진지한 표정을 읽더니 고무장갑 벗고 온다.


해준
그러게………. 그런 놈이 감옥 갈 거 각오하고 사람을 때렸네………?


서래
죽을만큼 좋아한 여자네?


서류에 붙은 ‘오가인‘이라는 여자의 사진을 함께 본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들을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해준.


해준
죽기보다 감옥을 무서워하는 놈이 살인을 이백만 원 때문에?
지구하고 나눠 가졌으니까 백만원인데?
이 오가인, 먼 데 사는데? 경기도서 미용실 하는데?
게다가 결혼도 했는데?


서래
한국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했다고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


서래를 돌아보는 해준, 눈 피하지 않는 서래. 마주치자 무안해져서 허공으로 눈길을 올리는 해준.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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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독자들에게


나는 이 책을 사십 년 전에 썼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이 책에 담긴 생각들을 믿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도 이 책을 새로운 한국어번역본으로 볼 수 있게 되었음을 축하드립니다.
이와 함께 나는 여러분들께 위대한 일본 시인 고바야시 잇사(小林茶, 1763-1827)가 두 세기 전에 쓴 하이쿠 한 편을 보냅니다. 그는 단열한 단어로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부자들을 위해
새 눈에 대해 너절한 글을 쓰는 것은
예술이 아니다.

계속 싸워 나가시기 바랍니다!

2012년 6월
존 버거

말 이전에 보는 행위가 있다. 아이들은 말을 배우기에 앞서 사물을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그러나 보는 행위가 말에 앞선다는 것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보는 행위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결정해 준다. 우리는 우리 주위으로를에워싼 이 세계를 말로 설명하고는 있지만, 어떻게 이야기하든 우리가보는 이 세계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보는 것과 아는 것의 관계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결코 한가지 방식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매일 저녁 해가 지는 것을 볼 때, 우리는해가 지평선 아래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기 때 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지식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광경과 꼭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다. - P9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또는 우리가 믿고있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 지옥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었던 중세 사람들이 보는 불타는 광경은, 오늘날 우리가 보는 불타는 광경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옥에 대한 그들의 관념은 불에 타서 재만 남고 모든 것이다 소멸되는 시각적 정경과 불에 덴 고통의 체험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에 빠져 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은 완벽해 보인다. 그 어떤 단어도 이 완벽함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으며, 사랑의 행위만이 일시적으로 그 완벽함을 표현할 수 있다. - P10

우리가 어떤 것을 볼 수 있게 되자마자, 타인도 우리를 볼 수 있다는사실을 의식하게 된다. 이렇게 타인의 시선이 우리의 시선과 결합함으로써 우리 자신 역시 가시적 세계의 일부라는 사실을 납득할 수 있게된다.
만약 우리가 저 너머의 언덕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그 언덕에서도 역시 우리가 보일 거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시각의 상호작용적 성격은 대화의 상호작용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다. 때로는 문자 그대로 또는 은유적인 의미에서 ‘자기가 무엇을 어떻게 보았는지‘ 상대방에게 설명하기 위해, 그리고 ‘상대방은 무엇을 어떻게 보았는지 알아내기 위해 대화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이 책에서 사용하는 이미지라는 단어는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이미지를 가리킨다. - P11

세잔(P. Cézanne)이 화가의 입장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있다. "세상의 삶에서 한순간이 지나간다! 그 순간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잊어버리는 것! 바로 그 순간이 되고, 예민한 감광판(感光板)이 되는 것… 우리가 본 것을 이미지로 남기고, 우리 시대 전에 나타났던 것들은 모두 잊어버리는 것…." 그림에 그려진 순간이 눈앞에 바로 나타났을 때 그것을 어떻게 그리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미술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고, 그러한 기대는 우리가 복제를 통해서 체험한 그림들의 의미가 어떤 것이었느냐에 달려 있다.
그렇다고 모든 미술이 저절로 이해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아니다. 누군가 잡지에서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고대그리스 두상의 복제 사진을 오려, 판때기에 아무런 공통점도 없는 다른 이미지들 옆에 붙여 놓는다고 해서 그 두상의 의미를 온전히 알게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 P38

이미지의 새로운 언어를 다르게 사용할 수 있다면, 이를 통해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다. 그 새로운 언어를 통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영역의 경험들을 더 정확하게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말 이전에 보는행위가 있다.) 이때 경험이란 개인적 경험뿐 아니라, 과거에 대한 우리의 관계라는 본질적인 역사적 경험을 말한다. 즉, 우리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경험, 우리 자신이 능동적인 주체가 될 수 있는 그런역사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경험 말이다. - P40

과거의 예술은 더 이상 과거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권위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이미지의 언어가 들어섰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 언어를 누가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복제본의 저작권 문제, 미술 매체와 출판사의 소유권 문제, 공공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정책 같은 문제로 이어진다. 일반적으로 이런 문제들은 극히 작은 전문적인 문제인 것처럼 보이는데, 이 책의 목적 중 하나는 현재의 위기가 훨씬 광범위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데 있다. 스스로의 과거와 단절된 개인이나 계급은 역사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을 수있는 개인이나 계급에 비해, 선택이나 행동을 함에 있어 훨씬 덜 자유롭다. 바로 그 점이 과거의 예술 전체가 이제 정치적 문제가 된 이유-단 하나의 이유-이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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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르카디아에도 있다


스칸디나비아는 인구 밀도가 희박하고, 주민들이 나란히 모여지내며 집단 crowd을 형성하는 경우에도 좀처럼 대중 mass을 이루지는 않는다. 그들은 가장 물리적인 의미에서, 뭉치지 않는다. 한데 모이는 것에 대한 이러한 거부감, 혹은 따로 지내야 할필요는 단순히 개인주의의 표현만은 아니다. 바로 그 사람들이또한 가장 순종적이고, 시민의식이 높으며, 관습적이기 때문이다. 칼뱅파 교리의 자의식도 어느 정도 관련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칼뱅파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다른 요소도 있다. 이들은 모두 어느 정도는 제 나름의 행복에 대한 이상을 가지고 있는데, 이 이상은 그들이 공유하는 기억에 의해 유지된다. 부분적으로는 만들어지는 것이고, 부분적으로는 사실이기도 한 그 기억은 어린 시절에 보냈던 여름에 대한 기억, 햇빛과물결과 끝날 것 같지 않던 하루에 대한 기억이다. 모든 문화권은 자신들만의 아르카디아arcadia (목가적 이상향―옮긴이)를만들어내는데, 이 아르카디아는 해당 지역의 기후나 지형과 밀 - P39

접하게 이어져 있다. 스칸디나비아의 겨울은 견딜 수 없을 만큼 길고 어두우며, 해마다 두 달 동안 지속되는 여름은 정확한 경도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백야 덕분에, 마치순수함이 드러날 때처럼 물리적으로 무언가를 보상받은 기분을 들게 한다.
이 글을 쓰는 동안, 갑자기 스벤이 십여 년 전 브리타니 해안앞 벨 아일에서 그렸던 그림들이 떠올랐다. 발가벗은 몸들, 파도, 바위 사이의 바닷물, 그 모든 것에 눈부시게 쏟아지던 햇빛,
끝없이 펼쳐진 시야. 그 작품들은 사실 앞에서 말한 제 나름의행복, 어린 시절의 여름에 대한 이미지들이었다.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여름이 되면 사람들이 나이에 상관없이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옷을 벗는다. 그렇게 햇빛과 물,
그리고 보상을 받는 몸이라는 세 개의 순수가 서로 접촉한다. - P40

다. 그는 절대 물러나지 않고, 공개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바꾸는 일도 절대 없다. 그는 쉬지 않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심지어 마지막 순간까지, 한 번에 이십 센티미터씩만 움직일 수있고, 오 미터 정도의 거리도 불가능할 정도로 먼 거리로 느껴질 때에도 그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고, 잠시 쉴 때는, 눈을 감고 다시 나아갈 힘을 모았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가 평생을 미술에 바치고도 천재성을 보여 주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의 눈에는 그런 끈질김에서 드러나는 고귀함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는 죽었다, 홀로, 심장마비로, 정물화를 그리기 위해 과일들을 배열하곤 하던 주방 식탁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사망했다. 일년 중 낮이 가장 길었던 날이었다. 2003년 6월 21일. 그가 발견되었을 때는 이미 낮의 길이가 조금씩 짧아지고 있었다. - P45

십오 년 전 바로 그 배가 다니는 항로를 따라 운행하는 여객선을 타고 여행했던 적이 있다. 나는 헬싱키의 사층짜리 노란·색 건물 앞에서부터는 오토바이를 탔다. 그때는 소설을 쓰고있었고, 그 배를 쓰고 있던 소설에 담았다. 나는 그 배를 죽은 이들을 싣고 저승의 강을 건너는 배로 묘사했다.
우리의 삶이 이야기대로 펼쳐진다는 것을 알고 나면, 우리는다른 이야기를 쓰게 될까. 내 생각엔 아니다. 하지만 당시 배 위에서 나는 이야기꾼으로서 운명을 결정하는 자리에 있었다. 내가 정하는 대로 가는 거였다. 심지어 선장실에 초대되기까지했다. 반면 지금 푸루순드 섬의 나는 똑같은 배가 지나가는 것을 올려다보며,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아주 작게느끼고 있다. 승객들 중 몇몇이 마치 현수교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람들처럼 우리를 내려다본다. 그들 사이에서 스벤을 알아보는 건 나뿐이다.
자작나무 사이를 지나며 바닷가에서 자라는 나무들에서만나는 특별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 P50

깨어 있음에 관하여


많은 사람들에게는 친구를 만나 술잔을 나누고 싶은, 자신이좋아하는 술집이 있다. 나는 친구들과 집에서 마시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시립 수영장은 있다. 거기서나는 나만의 속도로 레인을 오르내리고, 모르는 사람들을 스쳐지난다. 그렇게 스쳐 지날 때면 눈길을, 가끔은 미소를 주고받기도 한다.
수영모를 쓰는 것은 필수다. 다이빙을 하기 전에, 혹은 모퉁이의 사다리를 통해 풀에 들어오기 전에 비누로 몸을 씻는 것도마찬가지다. 다이빙을 하고 물 밑에서 첫번째 스트로크를 내뻗기 전, 나는 다른 시간 단위에 접어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치어린이가 집 안의 한 층에서 다른 층으로 가기로 결정했을 때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 - P53

하늘을 찌를 듯 위로 뻗은 나뭇가지들 때문에 나무 전체의 형태는 나뭇잎 하나하나와 닮았다.(대부분의 나무들은 어느 정도는 이런 경향을 보인다.) 단풍잎이 깃pinnate처럼 생겼다. ‘깃털‘을 뜻하는 라틴어가 ‘피나pinna‘다. 잎의 앞면은 샐러드의 녹색이고, 뒤쪽은 녹색빛이 도는 은색이다. 단풍잎이 깃 모양이 되는 건 운명이다.
풀에서 나오자마자 그 잎을 그리기로 마음먹는다. 종이 한장에 나무 전체와 가까이에서 본 나뭇잎 한 장을 함께 스케치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단풍나무의 유전자 코드에도 크게 어긋나지는 않을 거라고, 나는 계속 수영을 하며 속으로 혼잣말을 한다. 그건 일종의 사탕단풍나무의 텍스트가 되는 거라고.
그런 텍스트는 말없는 어떤 언어에 속한다. 우리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읽어 온 언어, 하지만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는 언어말이다. - P55

참수 장면이 공개되었다는 소식, 남자, 여자, 어린이가 포함된서른다섯 명의 인도 출신 불법 이민자들이 런던에 정박하기 위해 이제 막 북해를 건넌 화물선의 컨테이너 안에서 질식사했다는 소식을 읽었다.
새털구름은 북쪽, 수영장의 끝을 향해 흘러간다. 나는 물에뜬 채로 가만히 누워,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나는 구름을 지켜보며, 눈으로 그 넘실거리는 모양을 기록한다.
그때 풍경이 보여 주는 확신이 변한다. 변화를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천천히 그 변화는 분명해지고, 내가 받는확신도 더 깊어진다. 하얀 새털구름의 털들이 손을 머리 뒤로깍지 낀 채 물 위에 떠 있는 한 남자를 바라본다. 이젠 내가 그것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나를 바라본다. - P57

만남의 장소


나의 두 손으로
과거와 미래로부터
두 개의 돌멩이를 집어 들어
그것들을 쥐고 달리지.
가장 가벼운 산들바람에도 나는 날아올라,
더 큰 바람을 불러오지, 이리 오라고
그리고 모든 흔적을 지워 버린 후
그리고 나는 고아처럼
길가에 앉아, 애도하지
나의 두 돌멩이를.


최근에 이라크 시인 압둘카림 카시드Abdulkareem Kasid의 시를읽기 시작했다. 그의 시를 읽고 또 읽는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인상적이고, 오늘날의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아주 관련이 많다. - P59

역사에 대한 어떤 감각, 과거와 미래를 잇는 그 감각은 완전히 말살되었거나 있더라도 주변화되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일종의 역사적 외로움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프랑스어에는길거리에서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S.D.FSans Domicile Fixe (‘일정한주거지가 없는‘이라는 뜻ㅡ옮긴이)라는 단어가 있다. 우리는역사적 S.D.F가 될지도 모른다는 끊임없는 압박 아래 살고 있다. 죽은 자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를 받아들이는 인정된 의식이 이제 더 이상 없다. 매일매일의 삶은 있지만 그걸 둘러싸고 있는 건 공백이고, 그 공백 안에서 수백만 명의 우리는 오늘홀로 있다. 그리고 그런 고독은 죽음을 벗 삼을 수도 있다. - P61

카시드는 역사를 -마치 만남의 장소라도-되는 것처럼 드나든다. 그건 어떤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서가아니라, 함께할 이를 찾기 위해서다.


멀리 있는 카페 -
지금 나무처럼 보이네
가지와 잎으로 지붕을 삼고
의자들은 그 목재로 만들었지.
그곳을 찾는 이들은 거기 앉는 걸 좋아하지
가볍게, 그 가지 위에. - P62

노래에 관한 몇 개의 노트
야스민 함단을 위하여


지난주 당신의 공연을 지켜보고 귀를 기울일 때, 야스민, 당신을 그려 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습니다. 말이 안 되는 충동이었지요, 너무 어두웠으니까요. 내 무릎에 놓인 스케치북도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따금 스케치북을 보지 않고,
당신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끼적이기는 했지요.
그 끼적임에는 리듬이 있습니다. 마치 나의 펜이 당신의 목소리와 함께 움직이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펜이 하모니카나타악기는 아닌 까닭에, 지금 침묵 속에서 다시 보니 그 끼적임에는 아무 의미도 없네요. - P71

한 곡의 노래는, 불리거나 연주될 때 하나의 몸을 얻는다. 실재하는 몸을 취하여 그 몸을 순간적으로나마 소유함으로써 그렇게 하는 것이다. 더블베이스의 몸체는 줄이 튕겨지는 동안꼿꼿이 서 있고, 두 손에 쥐어진 하모니카의 몸체는 한 마리 새처럼 연주자의 입 앞에서 맴돌거나 그 입에 가서 닿는다. 드럼을 치는 드러머의 상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노래는 반복해서가수의 몸을 취한다. 그리고 얼마 후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청중들의 몸은, 그 노래를 듣고 몸짓으로 따르는 동안 무언가를기억하고 예측한다.
실재하는 몸을 취하지 않는 노래는 시간과 공간 속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노래는 과거의 경험을 전한다. 하지만 그것이 불리고 있는 동안 노래는 현재를 채운다. 이야기도 같은 작용을한다. 하지만 노래에는 노래만의 또 다른 차원이 있다. 노래는현재를 채우는 동시에 미래의 어딘가에 있는 청자의 귀에 닿기를 희망한다. 노래는 앞으로 다가간다. 이런 끈질긴 희망이 없다면 노래는 존재할 수 없는 거라고 나는 믿는다. 노래는 앞으로 다가간다. - P73

삶에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많은 일들에는 이름이 없는데, 이는 우리의 어휘가 가난하기 때문이다. 이야기들을 큰 소리로전하는 것은, 이야기꾼이 그렇게 이야기를 전하는 행위를 통해이름 없는 어떤 사건을 익숙하고 친숙한 것으로 바꾸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는 친밀함을 가까움과 연관시키는 경향이 있고, 또한 가까움은 함께 나누었던 경험의 양과 연관시키곤 한다. 하지만현실에서는 완전히 낯선 사람들이 서로 단 한 마디도 나누지 않은 상태에서도 친밀함을 공유할 수 있다. 주고받는 눈빛에 담긴 친밀함, 끄덕이는 고개, 미소, 어깨를 으쓱하는 행동에 담긴친밀함. 몇 분 동안 노래 한 곡이 불리고, 거기에 함께 귀를 기울이는 시간 동안 지속되는 가까움. 삶에 대한 어떤 합의. 아무런조건도 없는 합의. 노래 주위에서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들 사이에 자발적으로 공유되는 어떤 결론. - P83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생겨나는, 또한 점점 늘어나는 인류의 가난과 계속되고 있는 지구에 대한 착취도 유토피아의 이름으로 시행되고, 정당화되고 있다. 그 유토피아는 자유시장방식이 아무런 제약 없이 마음껏 작동할 때 보장되는 것이다. 그건, 밀턴 프리드먼 Milton Friedman의 말에 따르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넥타이 색깔을 놓고 투표하는‘ 세상이다.
어떤 유토피아에 대한 전망이든 희망은 필수다. 그 말은 곧현실에서는 희망을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들의 논리에서동정심은 곧 약점이다. 유토피아는 현재를 경멸한다. 유토피아는 희망을 독단적 교리로 대체한다. 독단적 교리가 각인되고,
그와 대조적으로 희망은, 촛불처럼 가끔씩만 깜빡거린다. - P89

우리를 둘러싼 원에는 석기시대 이후로 선조들이 우리들을위해 남겨 둔 증언들이 있고, 꼭 우리를 향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목격할 수 있는 텍스트들이 있다. 자연과 우주의 텍스트.
그 텍스트들이 대칭적인 것과 혼란스러운 것이 공존할 수 있음을, 가혹한 운명을 극복하는 기발한 방법들이 있음을, 욕망의대상이 언제나 약속의 대상보다 더 큰 확신을 주는 것임을 확인시켜 준다.
그런 다음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것과 우리가 목격한 것들을보며 버텨 온 우리는 아직 상상할 수 없는 환경에 저항하고, 계속 저항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우리는 연대 안에서 기다리는 법을 배울 것이다. - P110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가 아는 그 모든 언어로 칭찬하고,
욕하고, 저주하는 일을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이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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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나는 거의 팔십 년간 글을 써 왔다. 처음엔 편지였고, 그 다음엔 시와 연설, 나중엔 이야기와 기사, 그리고 책이었으며, 이젠짧은 글을 쓴다.
글쓰기 활동은 내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 활동 덕분에 나는 의미를 찾고, 계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글쓰기는 더 깊고 더일반적인 무언가에서 파생되는 것일 뿐이다. 그 무언가는 바로우리가 언어 자체와 가지는 관계다. 이 짧은 글의 주제는 언어다. - P7

우선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의 번역 활동을 한번 살펴보자. 오늘날 대부분의 번역은 기술 번역이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문학 번역이다. 개인의 경험을 다룬 글을 번역하는 일.
번역에 대한 관습적인 견해에 따르면, 그것은 번역자 혹은번역자들이 특정 언어로 된 페이지의 단어들을 연구해서 그걸다른 페이지에 다른 언어의 단어로 내놓는 과정이다. 여기에는소위 단어 대 단어의 번역 과정, 그리고 두번째 언어의 언어학 - P7

적 전통이나 규칙들을 따르고 거기에 맞추는 과정, 그리고 마지막으로 원래 텍스트의 ‘목소리‘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재창조하기 위해 또 한 번 철저히 연구하는 과정이 포함된다. 많은, 어쩌면 대부분의 번역은 이 순서로 진행되며, 그 결과는 물론 가치가 있지만, 최상의 결과는 아니다.
왜 그럴까. 왜냐하면 번역은 두 언어 사이의 양자 관계가 아니라, 삼각관계이기 때문이다. 삼각형의 세번째 꼭짓점은 원래의 텍스트가 씌어지기 전 그 단어들 뒤에 놓여 있던 것이다. 진정한 번역은 이 말해지기 전의 무언가로 돌아가야 한다. - P8

번역가는 원 텍스트를 읽고 또 읽으며 그것을 뚫고 나아가,
그 텍스트를 낳은 비전이나 경험에 닿으려 애쓴다. 그런 다음엔 거기서 찾은 것을 모으고, 거의 말없이 떨리는 이 ‘무엇‘을가지고 와 번역의 결과가 되는 언어 뒤에 놓는다. 이때 가장 중요한 일은 발화되기를 기다리는 그 ‘무엇‘을 받아들이고 환영할 수 있게 두번째 언어를 설득하는 것이다.
이는 어떤 언어든 사전 한 권, 혹은 한 무리의 단어나 구절 들의 총합으로 환원될 수 없음을 상기시킨다. 또한 그 언어로 씌어진 결과물들을 모아 놓은 창고로도 환원될 수 없다.
말해진 언어는 하나의 몸이며, 살아 있는 피조물이다. 피조물의 얼굴은 말이며, 신진대사는 언어학이다. 그리고 이 피조물의 집은 발화된 것일 뿐만 아니라, 발화되지 않은 것이기도하다. - P8

모국어 Mother Tongue를 한번 생각해 보자. 러시아에서는
‘Rodnoi-yazyk‘라고 하는데 가장 가까운 혹은 가장 소중한 말을뜻한다. 절박한 상황이라면 가장 사랑하는 언어라고 할 수 있다.
모국어는 한 인간의 첫번째 언어, 갓난아기가 어머니의 입을통해 처음 듣게 되는 언어다. 그래서 그렇게 불리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지금 내가 묘사하려는 언어라는 생명체가 분명 여성적이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아마 음성학적자궁이 있을 것이다.
하나의 모국어 안에는 모든 모국어가 담겨 있다. 다른 말로하자면 모든 모국어는 보편적이다. - P9

촘스키 N. Chomsky 는 모든 언어가 꼭 음성언어만이 아니라ㅡ 어떤 구조와 과정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음을 훌륭하게보여 주었다. 마찬가지로 모국어도 음성언어가 아닌 언어들 -몸짓 언어, 행동 언어, 혹은 공간의 언어 같은과 관련이 있다.(같이 리듬을 맞춘다고 해야 할까?)드로잉을 할 때, 나는 외양이라는 텍스트를 풀어내서 그대로옮기려고 노력한다. 물론 이 외양이라는 텍스트는 이미 나의모국어 안에 설명할 수 없는, 하지만 확실한 자리를 차지하고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단어, 용어, 구절 같은 것은 그들이 속한 언어 생명체에서 분리되어, 그저 이름표로만 쓰일 수도 있다. 그때 그것들은 무기력하고 공허한 것이 된다. 빈번하게 사용되는그런 예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주된 정치적 담론에서 사용되는 - P9

언어들은 그 어떤 언어 생명체에도 속하지 않는, 무기력하고죽은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 죽은 ‘공허한 말의 사용‘은기억을 지워 버리고 무자비한 자기만족을 낳는다.


오랜 시간 동안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한 것은 무언가가 말해질 필요가 있다는 직감이었다. 말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아예말해지지 않을 위험이 있는 것들. 나는 스스로 중요한, 혹은 전문적인 작가라기보다는 그저 빈 곳을 메우는 사람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다.
몇 줄을 쓴 다음엔 단어들이 다시 자신들이 속한 언어 생명체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게 내버려 둔다. 그러면 거기에서 한 - P10

무리의 다른 단어들이 그 말들을 알아보고 맞아 준다. 그들 사이에 의미의 유사함, 반대 의미, 비유, 운율이나 리듬 같은 것들이 생겨난다. 나는 그들이 나누는 담소에 귀를 기울인다. 그렇게 함께 단어들은 내가 자신들에게 부여하기로 한 의미를 놓고경쟁한다. 그들은 내가 부여한 역할에 대해 질문한다.
그러면 나는 문장을 다듬고, 단어를 한두 개 바꾸어서 다시밀어 넣는다. 다시 담소가 시작된다.
잠정적인 동의를 나타내는 낮은 웅성거림이 들릴 때까지 그과정은 계속된다. 그러고 다음 문단으로 넘어간다.
다시 담소가 시작된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작가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 내 입장에서 말하자면 나는 개새끼다. 나를 낳은 개가 누구일지 짐작이 되시는지? 안 된다고? - P11

로자를 위한 선물


당신도 감옥에서 화를 참지 못하고 쓴 편지에서 비슷한 말을했던 것 같아요. 당신은 자기 연민에 대해서는 늘 화를 냈죠. 그래서 친구가 보낸 애도의 편지에 이렇게 답장을 했습니다. "인간답게 지내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합니다. 그건 확고하고, 분명하며, 활기찬 것을 의미하죠. 네,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어떤 일 앞에서도 활기차게 지내는 것이요. 흐느끼는건 약한 자들에게나 어울리는 행동입니다. 인간답게 지낸다는것은 거대한 운명 앞에 스스로의 삶을 즐겁게 던지는 것이지요. 그래야만 한다면 말입니다. 그와 동시에 매일매일의 화창함과 모든 구름 조각들의 아름다움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겠지요." - P15

당신이 적었죠. "현대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어떤 책이나이론에서 제시한 계획에 따라 자신들의 투쟁을 수행하는 것이아니다. 현대 노동자들의 투쟁은 역사의 일부이고, 사회적 진보의 일부이며, 역사 한가운데서, 진보 한가운데서, 싸움의 한가운데서, 우리는 반드시 싸워야만 함을 배운다."
판지 상자의 뚜껑에는 1970년대 러시아의 성냥갑 상표 수집가들을 위한 짧은 설명이 있습니다.
거기에 이런 정보가 담겨 있어요. ‘진화적으로 보면 조류는다른 동물들보다 먼저 등장했다. 오늘날 전 세계에는 대략 오천여 종의 조류가 있으며, 소련에만 사백여 종의 명금이 있다.
우는 새는 일반적으로 수컷으로 알려져 있는데, 명금에 속하는조류는 목 아래쪽에 특별한 성대를 발달시킨 종이다. 명금들은보통 관목이나 나무, 혹은 땅에 둥지를 짓는데, 다양한 해충을잡아먹기 때문에 곡물 농사에 도움이 된다. 최근 소련의 외딴지역에서 새로운 울음소리를 가진 참새가 세 종 확인되었다.‘ - P19

한 사람의 일생에 해당할 만큼 오래전에 당신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현대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어떤 책이나 이론에서제시한 계획에 따라 자신들의 투쟁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현대 노동자들의 투쟁은 역사의 일부이고, 사회적 진보의 일부이며, 역사 한가운데서, 진보 한가운데서, 싸움의 한가운데서,
우리는 반드시 싸워야만 함을 배운다."
2010년 자신이 죽은 후, 그녀의 아들 비텍이 계단 아래 선반에서 이 상자를 발견하고는 자신이 배관공 겸 건설업자로 일하고 있는 파리로 가지고 왔습니다. 나한테 주려고요. 우리는 오랜 친구 사이입니다. 매일 저녁 함께 카드놀이를 하며 쌓아 온우정이죠. 러시아와 폴란드에서 주로 하는, ‘얼간이‘라는 카드놀이인데, 자신이 가진 카드를 모두 ‘잃어버린‘ 사람이 이기는놀이입니다. 비텍은 내가 그 성냥 상자를 궁금해 할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 P21

그 친구의 그림을 함께 보내요. 부리가 짧고, 이마가 툭 튀어나왔고, 세상일을 모두 알고 있을 것 같은 눈을 지닌 이 동무의 학명은 히폴레스 히폴레스이고, 일상적으로는 수목樹木새, 혹은 흉내지빠귀라고 부릅니다." 당신은 1917년 포즈난 감옥에수감된 후에도 계속 이런 편지를 썼죠. "이 새는 상당히 괴짜입니다. 다른 새들처럼 한 가지 울음소리를 가지거나 하나의 음으로 울지 않거든요. 이 새는 신의 은총을 받아 연설가가 된 것같습니다. 정원에 나와 장황하게 연설을 하는 거예요. 극적인긴장감과 빠른 전개, 고양된 비애감을 담은 큰 목소리로 연설을 하죠. 녀석은 가장 있을 법하지 않은 질문들을 던지고, 서둘러 앞뒤가 맞지 않는 대답을 하고, 가장 대담한 주장을 하고, 아무도 입 밖에 낸 적 없는 반박을 물리치고, 활짝 열린 문을 향해돌진하고는 갑자기 승리에 도취해 외칩니다. ‘내가 말하지 않았어? 내가 말하지 않았어?‘ 그리고 뒤이어 귀를 기울였든 기울이지 않았든 모두를 향해 엄숙한 목소리로 경고하죠. ‘알게될 거야! 알게 될 거야!‘ (녀석은 이런 재치있는 말을 두 번씩반복하는 영리한 습관이 있습니다.)" - P22

당신은 1900년에 이렇게 적었죠. "대중들의 지도자는 대중들 자신이며, 그들은 변증법적으로 자신들의 발전과정을 창조해 나간다."
이 성냥갑 상자를 어떻게 당신에게 전할 수 있을까요. 당신을 죽인 깡패들은 당신의 사체를 토막낸 다음 베를린 운하에 버 - P22

렸습니다. 석 달 후 썩은 물에서 사체가 발견되었죠. 그게 당신의 사체가 맞는지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지금 이 암울한 시대에 이 글을 씀으로써 나는 그 상자를 당신에게 보낼 수 있습니다.
"나는 있었고, 지금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라고 당신은 말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보여 준 본보기 안에 살아 있습니다, 로자. 그리고 여기, 나는 당신이 보여 준 본보기를 향해이 물건을 보냅니다. - P23

당돌함

최근에 알베르 카뮈의 놀라운 책 『최초의 인간 Le PremierHomme』을 다시 읽었다. 그 책에서 카뮈는 자신을 어른으로, 그리고 작가로 만들어 준 무언가를 어린 시절을 비롯한 인생의 초반부에서 찾고 있다. 그런 작업을 하면서도 그는 자기중심적이지 않다. 『최초의 인간』은 당시의 세계와 역사에 관한 책이다.
그 책을 읽고 나서 나를 지금의 이야기꾼으로 만들어 준 건무엇일까 자문해 보았다. 단서를 하나 찾았다. 카뮈가 발견한것에 필적할 만한 건 하나도 없었지만, 간략히 적어 둘 통찰은하나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일종의 고아가 된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내게는 사랑을 베풀어 준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에 그건 약간 이상한 종류의 고아였다. 안쓰럽다고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지만, 어떤 물질적 환경이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켰고, 어떤 면에서는 부추기기도 했다. - P25

열여섯 살 때 기숙학교에서 나와 런던에서 친구들과 함께 독립하려고 애썼고, 어렵지만 그렇게 할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부모님을 찾아가 함께 명절을 보냈다. 아버지가 나의첫 오토바이를 사 주셨다. 열여덟 살 때 처음으로 아버지의 초상화를 그렸다. 화가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꿈이었지만, 형편때문에 꿈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금속판에 직접 그린 그림을 기념품처럼 보관하고 계셨고, 달리아를 그린그 금속판은 어린 내게 일종의 부적 같은 역할을 해 주었다. - P26

고아는 현재의 자신에 만족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그와 함께 어떤 특별한 기술도 익히게 된다. 그는 혼자 살아가는 프리랜서가 된다.
네댓 살에 프리랜서가 된 후 줄곧 만나는 사람들 역시 나 같은 고아일 거라 생각하고 대했다. 아마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고아들끼리의 공모를 제안한다.
우리는 서로 윙크를 나누고, 위계를 거부한다. 모든 위계를, 우리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세계를 무시하고, 그럼에도 여전히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는 당돌하다. 우주의 별들 중 절반 이상이 그 어떤 성운에도 속하지 않는 외톨이별이다. 모든 성운을 다 합친 것보다 그 별들이 내는 빛이 더 많은 셈이다.
당연히 우리는 당돌하다. 그리고 내가 독자들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방식 역시 그럴 것이다. 마치 여러분들도 고아인 것처럼 말이다. - P27

넘어지는 기술에 관한 몇 가지 노트


그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매정한 것으로, 동시에 설명할수 없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그 점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의 에너지는 눈앞의 상황을 벗어나고, 조금이라도 더 밝은 무언가를 찾아낼 방법을 모색하는 일에 집중한다. 그는 삶에서반복해서 일어나는 일들, 그래서 이상함에도 불구하고, 익숙한어떤 환경이나 상황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주 어릴때부터 그는 반복해서 일어나는 이런 일상적인 수수께끼에 관한 격언이나 농담, 은근한 충고, 대처법, 혹은 피하는 법에 익숙했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 마주쳤을 때, 자신이 마주한 것에 대한 사전지식을 가지고 대처한다. 그는 좀처럼 당혹스러워하지않는다. - P29

라.
권력자들은 언제나 덩치가 크고 신경질적이다.
설교하는 사람들은 자기 목소리만 사랑한다.
매일매일 발생하는 문제들, 채우지 못한 욕구와 좌절당한 욕망을 일컫는, 혹은 설명하는 단어는 없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지 못하지만 그걸 깨닫지 못한다. 무언가에 쫓긴 채,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뒤쫓는다.
한 발 옆으로 물러나와 고개를 내밀기 전에는 당신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보잘것없는 존재다. 그때 비로소 동료들이 갑자기 멈추고 놀란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그 놀라움에 휩싸인 침묵 안에, 모국어가 지닌 이해 가능한 단어들이 모두 들어 있다.
당신이 서로를 알아보기 위한 작은 틈을 만들어낸 것이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혹은 거의 가지지 못한 지위의 사람들이 어떤 여분의 구멍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작은 사람 하나가숨기에 딱 알맞은 크기의 구멍 말이다. - P30

대부분의 건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돈이 ㅡ 혹은 돈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필요하다.
계단은 미끄럼틀이다.
창문은 물건을 내던지기 위해 혹은 기어오르기 위해 있다.
발코니는 거기서 기어 내려오기 위해 혹은 물건을 떨어뜨리기 위해 있다.
야생의 자연은 피신처다.
모든 추격전은 순환한다.
모든 발걸음이 실수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있을지도 모르는똥을 피할 수 있게 걸어야 한다.
이런 것들은 이십세기 초, 런던 남부와 램버스에서 자란 열살 -맨 처음 두 자리 숫자가 되는 나이 - 남짓한 아이가 속담을 통해 얻은 지식들이다.
이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그는 공공시설에서 보냈다. 처음엔빈민 수용 작업시설이었고 나중엔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공립학교였다. 그가 몹시 애착을 보였던 어머니 한나는 그를 돌볼여유가 없었다. 역시 런던 남부, 공연장의 배우들 사이에서 자랐던 그녀는 인생의 대부분을 정신병동에 갇혀서 지냈다. - P31

그가 그린 작품들의 소재는 수감자가 보거나 상상한, 자유로운 바깥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이 그림들에서 놀라운 점은 장소들, 그림 속에서 묘사되는 공간들이 지닌 익명성이다.
상상 속의 인물들, 주인공들은 생생하고, 표현적이고, 에너지가 넘치지만, 그들이 있는 길거리의 모퉁이나 위압적인 건물들, 출구와 입구, 고층 건물의 스카이라인과 골목길은 황량하고, 표정이 없고, 생동감이 없으며, 무심하다. 그 어디에서도 어머니의 손길이 닿았음을 암시하는 흔적은 없다. - P32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나는 두 개의 통찰을 제시하고싶다. 첫번째는 앞에서 설명한 속담을 통해 세상을 설명하는채플린의 세계관과 관련이 있고, 두번째는 광대로서 그의 천재성과 관련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그 천재성은 그가 어린 시절겪었던 시련의 산물이다.
오늘날 세계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투기 금융 자본은 정부를노예 주인처럼 활용하고, 전 세계 미디어를 마약 공급상처럼활용한다. 이 폭정의 유일한 목표는 이윤과 자본 축적인데, 이를 위해 사람들에게 소란하고, 위태롭고, 매정하고, 설명할 수없는 세계관 혹은 삶의 패턴을 강요한다. 그런 인생관은 채플린이 초기 영화를 찍을 때의 인생관보다는 열 살 소년이 속담을통해 알게 된 세계관과 더 가까워 보인다. - P35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은 매일매일 늘어나고 있다. 국가의 정치가들이 하고 있는 논쟁이 더 이상 그들이 할 수 있는 일 혹은해야만 하는 일과 아무 관련이 없기 때문에, 보편적 참정권이라는 것도 의미 없게 되어 버렸다. 오늘날의 세계를 결정하는근본적인 판단은 모두 투기 자본가와 그 대리인들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그들은 이름이 없고 정치적인 발언은 전혀 하지 않는다. 열 살 소년이 추측했듯이 "매일매일 발생하는 문제들, 채우지 못한 욕구와 좌절당한 욕망을 일컫는, 혹은 설명하는어는 없다." - P36

채플린의 익살이 지닌 에너지는 반복적이고 점점 커진다. 매번 넘어질 때마다 그는 새로운 사람이 되어 일어난다. 같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인 어떤 사람. 넘어질 때마다 다시일어날 수 있게 하는 비밀은 바로 그 복수성複數性이다.
또한 그 복수성은 그의 희망이 반복적으로 산산조각 나는 일에 익숙해진 후에도 여전히 다음 희망을 놓치지 않을 수 있게해 주었다. 그는 반복해서 굴욕을 당하면서도 평정심을 잃지않는다. 심지어 반격을 할 때도 그는 유감스럽다는 듯이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그런 평정심이 그를 무적의 존재로, 거의 불멸의 존재로 보이게 한다. 희망 없이 반복되는 일상의 사건들틈에서 그 불멸성을 감지한 우리는, 웃음으로 그 알아봄을 인정한다. - P37

채플린의 세계에서 웃음은 불멸성을 일컫는 다른 이름이다.
팔십대 중반의 채플린을 찍은 사진이 있다. 어느 날 나는 그사진들을 보다가 그 표정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떠오르지 않았지만,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확인해 보니 그 표정은 렘브란트의 자화상 속 표정과 닮아 있었다.
바로 〈웃고 있는 철학자, 혹은 데모크리토스의 모습을 한 자화상이었다.
"나는 그저 보잘것없는 코미디언일 뿐입니다." 그는 말했다.
"제가 바라는 건 그저 사람들을 웃게 하는 것입니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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