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나는 거의 팔십 년간 글을 써 왔다. 처음엔 편지였고, 그 다음엔 시와 연설, 나중엔 이야기와 기사, 그리고 책이었으며, 이젠짧은 글을 쓴다. 글쓰기 활동은 내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 활동 덕분에 나는 의미를 찾고, 계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글쓰기는 더 깊고 더일반적인 무언가에서 파생되는 것일 뿐이다. 그 무언가는 바로우리가 언어 자체와 가지는 관계다. 이 짧은 글의 주제는 언어다. - P7
우선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의 번역 활동을 한번 살펴보자. 오늘날 대부분의 번역은 기술 번역이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문학 번역이다. 개인의 경험을 다룬 글을 번역하는 일. 번역에 대한 관습적인 견해에 따르면, 그것은 번역자 혹은번역자들이 특정 언어로 된 페이지의 단어들을 연구해서 그걸다른 페이지에 다른 언어의 단어로 내놓는 과정이다. 여기에는소위 단어 대 단어의 번역 과정, 그리고 두번째 언어의 언어학 - P7
적 전통이나 규칙들을 따르고 거기에 맞추는 과정, 그리고 마지막으로 원래 텍스트의 ‘목소리‘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재창조하기 위해 또 한 번 철저히 연구하는 과정이 포함된다. 많은, 어쩌면 대부분의 번역은 이 순서로 진행되며, 그 결과는 물론 가치가 있지만, 최상의 결과는 아니다. 왜 그럴까. 왜냐하면 번역은 두 언어 사이의 양자 관계가 아니라, 삼각관계이기 때문이다. 삼각형의 세번째 꼭짓점은 원래의 텍스트가 씌어지기 전 그 단어들 뒤에 놓여 있던 것이다. 진정한 번역은 이 말해지기 전의 무언가로 돌아가야 한다. - P8
번역가는 원 텍스트를 읽고 또 읽으며 그것을 뚫고 나아가, 그 텍스트를 낳은 비전이나 경험에 닿으려 애쓴다. 그런 다음엔 거기서 찾은 것을 모으고, 거의 말없이 떨리는 이 ‘무엇‘을가지고 와 번역의 결과가 되는 언어 뒤에 놓는다. 이때 가장 중요한 일은 발화되기를 기다리는 그 ‘무엇‘을 받아들이고 환영할 수 있게 두번째 언어를 설득하는 것이다. 이는 어떤 언어든 사전 한 권, 혹은 한 무리의 단어나 구절 들의 총합으로 환원될 수 없음을 상기시킨다. 또한 그 언어로 씌어진 결과물들을 모아 놓은 창고로도 환원될 수 없다. 말해진 언어는 하나의 몸이며, 살아 있는 피조물이다. 피조물의 얼굴은 말이며, 신진대사는 언어학이다. 그리고 이 피조물의 집은 발화된 것일 뿐만 아니라, 발화되지 않은 것이기도하다. - P8
모국어 Mother Tongue를 한번 생각해 보자. 러시아에서는 ‘Rodnoi-yazyk‘라고 하는데 가장 가까운 혹은 가장 소중한 말을뜻한다. 절박한 상황이라면 가장 사랑하는 언어라고 할 수 있다. 모국어는 한 인간의 첫번째 언어, 갓난아기가 어머니의 입을통해 처음 듣게 되는 언어다. 그래서 그렇게 불리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지금 내가 묘사하려는 언어라는 생명체가 분명 여성적이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아마 음성학적자궁이 있을 것이다. 하나의 모국어 안에는 모든 모국어가 담겨 있다. 다른 말로하자면 모든 모국어는 보편적이다. - P9
촘스키 N. Chomsky 는 모든 언어가 꼭 음성언어만이 아니라ㅡ 어떤 구조와 과정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음을 훌륭하게보여 주었다. 마찬가지로 모국어도 음성언어가 아닌 언어들 -몸짓 언어, 행동 언어, 혹은 공간의 언어 같은과 관련이 있다.(같이 리듬을 맞춘다고 해야 할까?)드로잉을 할 때, 나는 외양이라는 텍스트를 풀어내서 그대로옮기려고 노력한다. 물론 이 외양이라는 텍스트는 이미 나의모국어 안에 설명할 수 없는, 하지만 확실한 자리를 차지하고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단어, 용어, 구절 같은 것은 그들이 속한 언어 생명체에서 분리되어, 그저 이름표로만 쓰일 수도 있다. 그때 그것들은 무기력하고 공허한 것이 된다. 빈번하게 사용되는그런 예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주된 정치적 담론에서 사용되는 - P9
언어들은 그 어떤 언어 생명체에도 속하지 않는, 무기력하고죽은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 죽은 ‘공허한 말의 사용‘은기억을 지워 버리고 무자비한 자기만족을 낳는다.
오랜 시간 동안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한 것은 무언가가 말해질 필요가 있다는 직감이었다. 말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아예말해지지 않을 위험이 있는 것들. 나는 스스로 중요한, 혹은 전문적인 작가라기보다는 그저 빈 곳을 메우는 사람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다. 몇 줄을 쓴 다음엔 단어들이 다시 자신들이 속한 언어 생명체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게 내버려 둔다. 그러면 거기에서 한 - P10
무리의 다른 단어들이 그 말들을 알아보고 맞아 준다. 그들 사이에 의미의 유사함, 반대 의미, 비유, 운율이나 리듬 같은 것들이 생겨난다. 나는 그들이 나누는 담소에 귀를 기울인다. 그렇게 함께 단어들은 내가 자신들에게 부여하기로 한 의미를 놓고경쟁한다. 그들은 내가 부여한 역할에 대해 질문한다. 그러면 나는 문장을 다듬고, 단어를 한두 개 바꾸어서 다시밀어 넣는다. 다시 담소가 시작된다. 잠정적인 동의를 나타내는 낮은 웅성거림이 들릴 때까지 그과정은 계속된다. 그러고 다음 문단으로 넘어간다. 다시 담소가 시작된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작가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 내 입장에서 말하자면 나는 개새끼다. 나를 낳은 개가 누구일지 짐작이 되시는지? 안 된다고? - P11
로자를 위한 선물
당신도 감옥에서 화를 참지 못하고 쓴 편지에서 비슷한 말을했던 것 같아요. 당신은 자기 연민에 대해서는 늘 화를 냈죠. 그래서 친구가 보낸 애도의 편지에 이렇게 답장을 했습니다. "인간답게 지내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합니다. 그건 확고하고, 분명하며, 활기찬 것을 의미하죠. 네,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어떤 일 앞에서도 활기차게 지내는 것이요. 흐느끼는건 약한 자들에게나 어울리는 행동입니다. 인간답게 지낸다는것은 거대한 운명 앞에 스스로의 삶을 즐겁게 던지는 것이지요. 그래야만 한다면 말입니다. 그와 동시에 매일매일의 화창함과 모든 구름 조각들의 아름다움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겠지요." - P15
당신이 적었죠. "현대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어떤 책이나이론에서 제시한 계획에 따라 자신들의 투쟁을 수행하는 것이아니다. 현대 노동자들의 투쟁은 역사의 일부이고, 사회적 진보의 일부이며, 역사 한가운데서, 진보 한가운데서, 싸움의 한가운데서, 우리는 반드시 싸워야만 함을 배운다." 판지 상자의 뚜껑에는 1970년대 러시아의 성냥갑 상표 수집가들을 위한 짧은 설명이 있습니다. 거기에 이런 정보가 담겨 있어요. ‘진화적으로 보면 조류는다른 동물들보다 먼저 등장했다. 오늘날 전 세계에는 대략 오천여 종의 조류가 있으며, 소련에만 사백여 종의 명금이 있다. 우는 새는 일반적으로 수컷으로 알려져 있는데, 명금에 속하는조류는 목 아래쪽에 특별한 성대를 발달시킨 종이다. 명금들은보통 관목이나 나무, 혹은 땅에 둥지를 짓는데, 다양한 해충을잡아먹기 때문에 곡물 농사에 도움이 된다. 최근 소련의 외딴지역에서 새로운 울음소리를 가진 참새가 세 종 확인되었다.‘ - P19
한 사람의 일생에 해당할 만큼 오래전에 당신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현대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어떤 책이나 이론에서제시한 계획에 따라 자신들의 투쟁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현대 노동자들의 투쟁은 역사의 일부이고, 사회적 진보의 일부이며, 역사 한가운데서, 진보 한가운데서, 싸움의 한가운데서, 우리는 반드시 싸워야만 함을 배운다." 2010년 자신이 죽은 후, 그녀의 아들 비텍이 계단 아래 선반에서 이 상자를 발견하고는 자신이 배관공 겸 건설업자로 일하고 있는 파리로 가지고 왔습니다. 나한테 주려고요. 우리는 오랜 친구 사이입니다. 매일 저녁 함께 카드놀이를 하며 쌓아 온우정이죠. 러시아와 폴란드에서 주로 하는, ‘얼간이‘라는 카드놀이인데, 자신이 가진 카드를 모두 ‘잃어버린‘ 사람이 이기는놀이입니다. 비텍은 내가 그 성냥 상자를 궁금해 할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 P21
그 친구의 그림을 함께 보내요. 부리가 짧고, 이마가 툭 튀어나왔고, 세상일을 모두 알고 있을 것 같은 눈을 지닌 이 동무의 학명은 히폴레스 히폴레스이고, 일상적으로는 수목樹木새, 혹은 흉내지빠귀라고 부릅니다." 당신은 1917년 포즈난 감옥에수감된 후에도 계속 이런 편지를 썼죠. "이 새는 상당히 괴짜입니다. 다른 새들처럼 한 가지 울음소리를 가지거나 하나의 음으로 울지 않거든요. 이 새는 신의 은총을 받아 연설가가 된 것같습니다. 정원에 나와 장황하게 연설을 하는 거예요. 극적인긴장감과 빠른 전개, 고양된 비애감을 담은 큰 목소리로 연설을 하죠. 녀석은 가장 있을 법하지 않은 질문들을 던지고, 서둘러 앞뒤가 맞지 않는 대답을 하고, 가장 대담한 주장을 하고, 아무도 입 밖에 낸 적 없는 반박을 물리치고, 활짝 열린 문을 향해돌진하고는 갑자기 승리에 도취해 외칩니다. ‘내가 말하지 않았어? 내가 말하지 않았어?‘ 그리고 뒤이어 귀를 기울였든 기울이지 않았든 모두를 향해 엄숙한 목소리로 경고하죠. ‘알게될 거야! 알게 될 거야!‘ (녀석은 이런 재치있는 말을 두 번씩반복하는 영리한 습관이 있습니다.)" - P22
당신은 1900년에 이렇게 적었죠. "대중들의 지도자는 대중들 자신이며, 그들은 변증법적으로 자신들의 발전과정을 창조해 나간다." 이 성냥갑 상자를 어떻게 당신에게 전할 수 있을까요. 당신을 죽인 깡패들은 당신의 사체를 토막낸 다음 베를린 운하에 버 - P22
렸습니다. 석 달 후 썩은 물에서 사체가 발견되었죠. 그게 당신의 사체가 맞는지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지금 이 암울한 시대에 이 글을 씀으로써 나는 그 상자를 당신에게 보낼 수 있습니다. "나는 있었고, 지금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라고 당신은 말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보여 준 본보기 안에 살아 있습니다, 로자. 그리고 여기, 나는 당신이 보여 준 본보기를 향해이 물건을 보냅니다. - P23
당돌함
최근에 알베르 카뮈의 놀라운 책 『최초의 인간 Le PremierHomme』을 다시 읽었다. 그 책에서 카뮈는 자신을 어른으로, 그리고 작가로 만들어 준 무언가를 어린 시절을 비롯한 인생의 초반부에서 찾고 있다. 그런 작업을 하면서도 그는 자기중심적이지 않다. 『최초의 인간』은 당시의 세계와 역사에 관한 책이다. 그 책을 읽고 나서 나를 지금의 이야기꾼으로 만들어 준 건무엇일까 자문해 보았다. 단서를 하나 찾았다. 카뮈가 발견한것에 필적할 만한 건 하나도 없었지만, 간략히 적어 둘 통찰은하나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일종의 고아가 된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내게는 사랑을 베풀어 준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에 그건 약간 이상한 종류의 고아였다. 안쓰럽다고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지만, 어떤 물질적 환경이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켰고, 어떤 면에서는 부추기기도 했다. - P25
열여섯 살 때 기숙학교에서 나와 런던에서 친구들과 함께 독립하려고 애썼고, 어렵지만 그렇게 할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부모님을 찾아가 함께 명절을 보냈다. 아버지가 나의첫 오토바이를 사 주셨다. 열여덟 살 때 처음으로 아버지의 초상화를 그렸다. 화가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꿈이었지만, 형편때문에 꿈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금속판에 직접 그린 그림을 기념품처럼 보관하고 계셨고, 달리아를 그린그 금속판은 어린 내게 일종의 부적 같은 역할을 해 주었다. - P26
고아는 현재의 자신에 만족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그와 함께 어떤 특별한 기술도 익히게 된다. 그는 혼자 살아가는 프리랜서가 된다. 네댓 살에 프리랜서가 된 후 줄곧 만나는 사람들 역시 나 같은 고아일 거라 생각하고 대했다. 아마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고아들끼리의 공모를 제안한다. 우리는 서로 윙크를 나누고, 위계를 거부한다. 모든 위계를, 우리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세계를 무시하고, 그럼에도 여전히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는 당돌하다. 우주의 별들 중 절반 이상이 그 어떤 성운에도 속하지 않는 외톨이별이다. 모든 성운을 다 합친 것보다 그 별들이 내는 빛이 더 많은 셈이다. 당연히 우리는 당돌하다. 그리고 내가 독자들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방식 역시 그럴 것이다. 마치 여러분들도 고아인 것처럼 말이다. - P27
넘어지는 기술에 관한 몇 가지 노트
그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매정한 것으로, 동시에 설명할수 없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그 점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의 에너지는 눈앞의 상황을 벗어나고, 조금이라도 더 밝은 무언가를 찾아낼 방법을 모색하는 일에 집중한다. 그는 삶에서반복해서 일어나는 일들, 그래서 이상함에도 불구하고, 익숙한어떤 환경이나 상황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주 어릴때부터 그는 반복해서 일어나는 이런 일상적인 수수께끼에 관한 격언이나 농담, 은근한 충고, 대처법, 혹은 피하는 법에 익숙했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 마주쳤을 때, 자신이 마주한 것에 대한 사전지식을 가지고 대처한다. 그는 좀처럼 당혹스러워하지않는다. - P29
라. 권력자들은 언제나 덩치가 크고 신경질적이다. 설교하는 사람들은 자기 목소리만 사랑한다. 매일매일 발생하는 문제들, 채우지 못한 욕구와 좌절당한 욕망을 일컫는, 혹은 설명하는 단어는 없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지 못하지만 그걸 깨닫지 못한다. 무언가에 쫓긴 채,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뒤쫓는다. 한 발 옆으로 물러나와 고개를 내밀기 전에는 당신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보잘것없는 존재다. 그때 비로소 동료들이 갑자기 멈추고 놀란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그 놀라움에 휩싸인 침묵 안에, 모국어가 지닌 이해 가능한 단어들이 모두 들어 있다. 당신이 서로를 알아보기 위한 작은 틈을 만들어낸 것이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혹은 거의 가지지 못한 지위의 사람들이 어떤 여분의 구멍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작은 사람 하나가숨기에 딱 알맞은 크기의 구멍 말이다. - P30
대부분의 건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돈이 ㅡ 혹은 돈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필요하다. 계단은 미끄럼틀이다. 창문은 물건을 내던지기 위해 혹은 기어오르기 위해 있다. 발코니는 거기서 기어 내려오기 위해 혹은 물건을 떨어뜨리기 위해 있다. 야생의 자연은 피신처다. 모든 추격전은 순환한다. 모든 발걸음이 실수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있을지도 모르는똥을 피할 수 있게 걸어야 한다. 이런 것들은 이십세기 초, 런던 남부와 램버스에서 자란 열살 -맨 처음 두 자리 숫자가 되는 나이 - 남짓한 아이가 속담을 통해 얻은 지식들이다. 이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그는 공공시설에서 보냈다. 처음엔빈민 수용 작업시설이었고 나중엔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공립학교였다. 그가 몹시 애착을 보였던 어머니 한나는 그를 돌볼여유가 없었다. 역시 런던 남부, 공연장의 배우들 사이에서 자랐던 그녀는 인생의 대부분을 정신병동에 갇혀서 지냈다. - P31
그가 그린 작품들의 소재는 수감자가 보거나 상상한, 자유로운 바깥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이 그림들에서 놀라운 점은 장소들, 그림 속에서 묘사되는 공간들이 지닌 익명성이다. 상상 속의 인물들, 주인공들은 생생하고, 표현적이고, 에너지가 넘치지만, 그들이 있는 길거리의 모퉁이나 위압적인 건물들, 출구와 입구, 고층 건물의 스카이라인과 골목길은 황량하고, 표정이 없고, 생동감이 없으며, 무심하다. 그 어디에서도 어머니의 손길이 닿았음을 암시하는 흔적은 없다. - P32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나는 두 개의 통찰을 제시하고싶다. 첫번째는 앞에서 설명한 속담을 통해 세상을 설명하는채플린의 세계관과 관련이 있고, 두번째는 광대로서 그의 천재성과 관련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그 천재성은 그가 어린 시절겪었던 시련의 산물이다. 오늘날 세계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투기 금융 자본은 정부를노예 주인처럼 활용하고, 전 세계 미디어를 마약 공급상처럼활용한다. 이 폭정의 유일한 목표는 이윤과 자본 축적인데, 이를 위해 사람들에게 소란하고, 위태롭고, 매정하고, 설명할 수없는 세계관 혹은 삶의 패턴을 강요한다. 그런 인생관은 채플린이 초기 영화를 찍을 때의 인생관보다는 열 살 소년이 속담을통해 알게 된 세계관과 더 가까워 보인다. - P35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은 매일매일 늘어나고 있다. 국가의 정치가들이 하고 있는 논쟁이 더 이상 그들이 할 수 있는 일 혹은해야만 하는 일과 아무 관련이 없기 때문에, 보편적 참정권이라는 것도 의미 없게 되어 버렸다. 오늘날의 세계를 결정하는근본적인 판단은 모두 투기 자본가와 그 대리인들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그들은 이름이 없고 정치적인 발언은 전혀 하지 않는다. 열 살 소년이 추측했듯이 "매일매일 발생하는 문제들, 채우지 못한 욕구와 좌절당한 욕망을 일컫는, 혹은 설명하는어는 없다." - P36
채플린의 익살이 지닌 에너지는 반복적이고 점점 커진다. 매번 넘어질 때마다 그는 새로운 사람이 되어 일어난다. 같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인 어떤 사람. 넘어질 때마다 다시일어날 수 있게 하는 비밀은 바로 그 복수성複數性이다. 또한 그 복수성은 그의 희망이 반복적으로 산산조각 나는 일에 익숙해진 후에도 여전히 다음 희망을 놓치지 않을 수 있게해 주었다. 그는 반복해서 굴욕을 당하면서도 평정심을 잃지않는다. 심지어 반격을 할 때도 그는 유감스럽다는 듯이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그런 평정심이 그를 무적의 존재로, 거의 불멸의 존재로 보이게 한다. 희망 없이 반복되는 일상의 사건들틈에서 그 불멸성을 감지한 우리는, 웃음으로 그 알아봄을 인정한다. - P37
채플린의 세계에서 웃음은 불멸성을 일컫는 다른 이름이다. 팔십대 중반의 채플린을 찍은 사진이 있다. 어느 날 나는 그사진들을 보다가 그 표정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떠오르지 않았지만,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확인해 보니 그 표정은 렘브란트의 자화상 속 표정과 닮아 있었다. 바로 〈웃고 있는 철학자, 혹은 데모크리토스의 모습을 한 자화상이었다. "나는 그저 보잘것없는 코미디언일 뿐입니다." 그는 말했다. "제가 바라는 건 그저 사람들을 웃게 하는 것입니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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