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기" 할 때, 두껍게 깔린 낙엽층 위에 누운 변사자 기도수 얼굴에 손전등빛이 도착, 선명한 주황색 등산복 차림, 부패가 진행 중 해준, 스마트폰으로 플래시 터뜨리면서 사진 찍는다. 폴리스 라인 안의 활동복들 사이에서 그의 양복/ 넥타이 차림은 이질적이다. 비록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었지만 고급 블루투스 이어폰이 꽂힌고인의 귀에 대고 찰칵. 손가락 관절마다 옹이처럼 단단하게 불룩하고 손톱이 다깨진 손도 찍는다. 손목의 롤렉스 시계도 찰칵. 유리 뚜껑은 깨졌고 작동도 멈췄다.
월요일 10시 2분에 해준, 망자의 시선 방향을 따라 다시 산을 올려다보며 혼잣말처럼- - P7


해준
(쌍안경에서 눈 떼지 않은 채, 한손으로 안마기를 치우며)

슬픔이 파도처럼 덮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는 거야.


심심한 듯 기도수 휴대폰을 꺼내 켜는 수완. 서래와 도수의 셀카 배경 화면을 보며심드렁하게 - - P29

해준

그래서 기도수씨 손톱에서 송서래 씨 디엔에이가 나왔단 말입니까?
(끄덕이는 서래를 보면서 끄덕이는 해준)
산이 그렇게 싫으세요?


진저리치는 서래, 전화기를 만지더니 빠르게 중국어를 한다. 당황하는 해준에게전화기를 돌린다. 통역기 앱의 목소리 -


남자 성우
공자님 말씀에,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인자한 자는 산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난 인자한 사람이 아닙니다.
(해준의 ‘이 여자, 뭐지?‘ 표정)
난 바다가 좋아요. - P37

해준
젊고 예쁘고 외국인이라서 피의자가 돼야 해?


수완
예쁜 건 인정하시는 거네요?
(한숨 쉬는 해준)
역차별이라고요…………. 여자 아니고 외국인 아니고그냥 남자 한국인이었으면
팀장님, 가서 밤새 잠복하자고 하셨을 걸요?
집에는 곧바로 가는지, 누가 찾아오는 건 아닌지 본다고.
잠복이 취미잖아요, 예? 잔소리하고.


수완을 노려보는 해준. - P52

돌아보는 해준, 서래의 진지한 표정을 읽더니 고무장갑 벗고 온다.


해준
그러게………. 그런 놈이 감옥 갈 거 각오하고 사람을 때렸네………?


서래
죽을만큼 좋아한 여자네?


서류에 붙은 ‘오가인‘이라는 여자의 사진을 함께 본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들을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해준.


해준
죽기보다 감옥을 무서워하는 놈이 살인을 이백만 원 때문에?
지구하고 나눠 가졌으니까 백만원인데?
이 오가인, 먼 데 사는데? 경기도서 미용실 하는데?
게다가 결혼도 했는데?


서래
한국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했다고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


서래를 돌아보는 해준, 눈 피하지 않는 서래. 마주치자 무안해져서 허공으로 눈길을 올리는 해준.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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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독자들에게


나는 이 책을 사십 년 전에 썼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이 책에 담긴 생각들을 믿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도 이 책을 새로운 한국어번역본으로 볼 수 있게 되었음을 축하드립니다.
이와 함께 나는 여러분들께 위대한 일본 시인 고바야시 잇사(小林茶, 1763-1827)가 두 세기 전에 쓴 하이쿠 한 편을 보냅니다. 그는 단열한 단어로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부자들을 위해
새 눈에 대해 너절한 글을 쓰는 것은
예술이 아니다.

계속 싸워 나가시기 바랍니다!

2012년 6월
존 버거

말 이전에 보는 행위가 있다. 아이들은 말을 배우기에 앞서 사물을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그러나 보는 행위가 말에 앞선다는 것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보는 행위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결정해 준다. 우리는 우리 주위으로를에워싼 이 세계를 말로 설명하고는 있지만, 어떻게 이야기하든 우리가보는 이 세계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보는 것과 아는 것의 관계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결코 한가지 방식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매일 저녁 해가 지는 것을 볼 때, 우리는해가 지평선 아래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기 때 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지식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광경과 꼭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다. - P9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또는 우리가 믿고있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 지옥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었던 중세 사람들이 보는 불타는 광경은, 오늘날 우리가 보는 불타는 광경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옥에 대한 그들의 관념은 불에 타서 재만 남고 모든 것이다 소멸되는 시각적 정경과 불에 덴 고통의 체험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에 빠져 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은 완벽해 보인다. 그 어떤 단어도 이 완벽함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으며, 사랑의 행위만이 일시적으로 그 완벽함을 표현할 수 있다. - P10

우리가 어떤 것을 볼 수 있게 되자마자, 타인도 우리를 볼 수 있다는사실을 의식하게 된다. 이렇게 타인의 시선이 우리의 시선과 결합함으로써 우리 자신 역시 가시적 세계의 일부라는 사실을 납득할 수 있게된다.
만약 우리가 저 너머의 언덕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그 언덕에서도 역시 우리가 보일 거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시각의 상호작용적 성격은 대화의 상호작용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다. 때로는 문자 그대로 또는 은유적인 의미에서 ‘자기가 무엇을 어떻게 보았는지‘ 상대방에게 설명하기 위해, 그리고 ‘상대방은 무엇을 어떻게 보았는지 알아내기 위해 대화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이 책에서 사용하는 이미지라는 단어는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이미지를 가리킨다. - P11

세잔(P. Cézanne)이 화가의 입장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있다. "세상의 삶에서 한순간이 지나간다! 그 순간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잊어버리는 것! 바로 그 순간이 되고, 예민한 감광판(感光板)이 되는 것… 우리가 본 것을 이미지로 남기고, 우리 시대 전에 나타났던 것들은 모두 잊어버리는 것…." 그림에 그려진 순간이 눈앞에 바로 나타났을 때 그것을 어떻게 그리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미술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고, 그러한 기대는 우리가 복제를 통해서 체험한 그림들의 의미가 어떤 것이었느냐에 달려 있다.
그렇다고 모든 미술이 저절로 이해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아니다. 누군가 잡지에서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고대그리스 두상의 복제 사진을 오려, 판때기에 아무런 공통점도 없는 다른 이미지들 옆에 붙여 놓는다고 해서 그 두상의 의미를 온전히 알게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 P38

이미지의 새로운 언어를 다르게 사용할 수 있다면, 이를 통해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다. 그 새로운 언어를 통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영역의 경험들을 더 정확하게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말 이전에 보는행위가 있다.) 이때 경험이란 개인적 경험뿐 아니라, 과거에 대한 우리의 관계라는 본질적인 역사적 경험을 말한다. 즉, 우리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경험, 우리 자신이 능동적인 주체가 될 수 있는 그런역사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경험 말이다. - P40

과거의 예술은 더 이상 과거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권위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이미지의 언어가 들어섰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 언어를 누가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복제본의 저작권 문제, 미술 매체와 출판사의 소유권 문제, 공공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정책 같은 문제로 이어진다. 일반적으로 이런 문제들은 극히 작은 전문적인 문제인 것처럼 보이는데, 이 책의 목적 중 하나는 현재의 위기가 훨씬 광범위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데 있다. 스스로의 과거와 단절된 개인이나 계급은 역사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을 수있는 개인이나 계급에 비해, 선택이나 행동을 함에 있어 훨씬 덜 자유롭다. 바로 그 점이 과거의 예술 전체가 이제 정치적 문제가 된 이유-단 하나의 이유-이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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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르카디아에도 있다


스칸디나비아는 인구 밀도가 희박하고, 주민들이 나란히 모여지내며 집단 crowd을 형성하는 경우에도 좀처럼 대중 mass을 이루지는 않는다. 그들은 가장 물리적인 의미에서, 뭉치지 않는다. 한데 모이는 것에 대한 이러한 거부감, 혹은 따로 지내야 할필요는 단순히 개인주의의 표현만은 아니다. 바로 그 사람들이또한 가장 순종적이고, 시민의식이 높으며, 관습적이기 때문이다. 칼뱅파 교리의 자의식도 어느 정도 관련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칼뱅파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다른 요소도 있다. 이들은 모두 어느 정도는 제 나름의 행복에 대한 이상을 가지고 있는데, 이 이상은 그들이 공유하는 기억에 의해 유지된다. 부분적으로는 만들어지는 것이고, 부분적으로는 사실이기도 한 그 기억은 어린 시절에 보냈던 여름에 대한 기억, 햇빛과물결과 끝날 것 같지 않던 하루에 대한 기억이다. 모든 문화권은 자신들만의 아르카디아arcadia (목가적 이상향―옮긴이)를만들어내는데, 이 아르카디아는 해당 지역의 기후나 지형과 밀 - P39

접하게 이어져 있다. 스칸디나비아의 겨울은 견딜 수 없을 만큼 길고 어두우며, 해마다 두 달 동안 지속되는 여름은 정확한 경도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백야 덕분에, 마치순수함이 드러날 때처럼 물리적으로 무언가를 보상받은 기분을 들게 한다.
이 글을 쓰는 동안, 갑자기 스벤이 십여 년 전 브리타니 해안앞 벨 아일에서 그렸던 그림들이 떠올랐다. 발가벗은 몸들, 파도, 바위 사이의 바닷물, 그 모든 것에 눈부시게 쏟아지던 햇빛,
끝없이 펼쳐진 시야. 그 작품들은 사실 앞에서 말한 제 나름의행복, 어린 시절의 여름에 대한 이미지들이었다.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여름이 되면 사람들이 나이에 상관없이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옷을 벗는다. 그렇게 햇빛과 물,
그리고 보상을 받는 몸이라는 세 개의 순수가 서로 접촉한다. - P40

다. 그는 절대 물러나지 않고, 공개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바꾸는 일도 절대 없다. 그는 쉬지 않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심지어 마지막 순간까지, 한 번에 이십 센티미터씩만 움직일 수있고, 오 미터 정도의 거리도 불가능할 정도로 먼 거리로 느껴질 때에도 그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고, 잠시 쉴 때는, 눈을 감고 다시 나아갈 힘을 모았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가 평생을 미술에 바치고도 천재성을 보여 주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의 눈에는 그런 끈질김에서 드러나는 고귀함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는 죽었다, 홀로, 심장마비로, 정물화를 그리기 위해 과일들을 배열하곤 하던 주방 식탁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사망했다. 일년 중 낮이 가장 길었던 날이었다. 2003년 6월 21일. 그가 발견되었을 때는 이미 낮의 길이가 조금씩 짧아지고 있었다. - P45

십오 년 전 바로 그 배가 다니는 항로를 따라 운행하는 여객선을 타고 여행했던 적이 있다. 나는 헬싱키의 사층짜리 노란·색 건물 앞에서부터는 오토바이를 탔다. 그때는 소설을 쓰고있었고, 그 배를 쓰고 있던 소설에 담았다. 나는 그 배를 죽은 이들을 싣고 저승의 강을 건너는 배로 묘사했다.
우리의 삶이 이야기대로 펼쳐진다는 것을 알고 나면, 우리는다른 이야기를 쓰게 될까. 내 생각엔 아니다. 하지만 당시 배 위에서 나는 이야기꾼으로서 운명을 결정하는 자리에 있었다. 내가 정하는 대로 가는 거였다. 심지어 선장실에 초대되기까지했다. 반면 지금 푸루순드 섬의 나는 똑같은 배가 지나가는 것을 올려다보며,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아주 작게느끼고 있다. 승객들 중 몇몇이 마치 현수교 위에서 내려다보는 사람들처럼 우리를 내려다본다. 그들 사이에서 스벤을 알아보는 건 나뿐이다.
자작나무 사이를 지나며 바닷가에서 자라는 나무들에서만나는 특별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 P50

깨어 있음에 관하여


많은 사람들에게는 친구를 만나 술잔을 나누고 싶은, 자신이좋아하는 술집이 있다. 나는 친구들과 집에서 마시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시립 수영장은 있다. 거기서나는 나만의 속도로 레인을 오르내리고, 모르는 사람들을 스쳐지난다. 그렇게 스쳐 지날 때면 눈길을, 가끔은 미소를 주고받기도 한다.
수영모를 쓰는 것은 필수다. 다이빙을 하기 전에, 혹은 모퉁이의 사다리를 통해 풀에 들어오기 전에 비누로 몸을 씻는 것도마찬가지다. 다이빙을 하고 물 밑에서 첫번째 스트로크를 내뻗기 전, 나는 다른 시간 단위에 접어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치어린이가 집 안의 한 층에서 다른 층으로 가기로 결정했을 때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 - P53

하늘을 찌를 듯 위로 뻗은 나뭇가지들 때문에 나무 전체의 형태는 나뭇잎 하나하나와 닮았다.(대부분의 나무들은 어느 정도는 이런 경향을 보인다.) 단풍잎이 깃pinnate처럼 생겼다. ‘깃털‘을 뜻하는 라틴어가 ‘피나pinna‘다. 잎의 앞면은 샐러드의 녹색이고, 뒤쪽은 녹색빛이 도는 은색이다. 단풍잎이 깃 모양이 되는 건 운명이다.
풀에서 나오자마자 그 잎을 그리기로 마음먹는다. 종이 한장에 나무 전체와 가까이에서 본 나뭇잎 한 장을 함께 스케치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단풍나무의 유전자 코드에도 크게 어긋나지는 않을 거라고, 나는 계속 수영을 하며 속으로 혼잣말을 한다. 그건 일종의 사탕단풍나무의 텍스트가 되는 거라고.
그런 텍스트는 말없는 어떤 언어에 속한다. 우리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읽어 온 언어, 하지만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는 언어말이다. - P55

참수 장면이 공개되었다는 소식, 남자, 여자, 어린이가 포함된서른다섯 명의 인도 출신 불법 이민자들이 런던에 정박하기 위해 이제 막 북해를 건넌 화물선의 컨테이너 안에서 질식사했다는 소식을 읽었다.
새털구름은 북쪽, 수영장의 끝을 향해 흘러간다. 나는 물에뜬 채로 가만히 누워,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나는 구름을 지켜보며, 눈으로 그 넘실거리는 모양을 기록한다.
그때 풍경이 보여 주는 확신이 변한다. 변화를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천천히 그 변화는 분명해지고, 내가 받는확신도 더 깊어진다. 하얀 새털구름의 털들이 손을 머리 뒤로깍지 낀 채 물 위에 떠 있는 한 남자를 바라본다. 이젠 내가 그것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나를 바라본다. - P57

만남의 장소


나의 두 손으로
과거와 미래로부터
두 개의 돌멩이를 집어 들어
그것들을 쥐고 달리지.
가장 가벼운 산들바람에도 나는 날아올라,
더 큰 바람을 불러오지, 이리 오라고
그리고 모든 흔적을 지워 버린 후
그리고 나는 고아처럼
길가에 앉아, 애도하지
나의 두 돌멩이를.


최근에 이라크 시인 압둘카림 카시드Abdulkareem Kasid의 시를읽기 시작했다. 그의 시를 읽고 또 읽는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인상적이고, 오늘날의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아주 관련이 많다. - P59

역사에 대한 어떤 감각, 과거와 미래를 잇는 그 감각은 완전히 말살되었거나 있더라도 주변화되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일종의 역사적 외로움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프랑스어에는길거리에서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S.D.FSans Domicile Fixe (‘일정한주거지가 없는‘이라는 뜻ㅡ옮긴이)라는 단어가 있다. 우리는역사적 S.D.F가 될지도 모른다는 끊임없는 압박 아래 살고 있다. 죽은 자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를 받아들이는 인정된 의식이 이제 더 이상 없다. 매일매일의 삶은 있지만 그걸 둘러싸고 있는 건 공백이고, 그 공백 안에서 수백만 명의 우리는 오늘홀로 있다. 그리고 그런 고독은 죽음을 벗 삼을 수도 있다. - P61

카시드는 역사를 -마치 만남의 장소라도-되는 것처럼 드나든다. 그건 어떤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서가아니라, 함께할 이를 찾기 위해서다.


멀리 있는 카페 -
지금 나무처럼 보이네
가지와 잎으로 지붕을 삼고
의자들은 그 목재로 만들었지.
그곳을 찾는 이들은 거기 앉는 걸 좋아하지
가볍게, 그 가지 위에. - P62

노래에 관한 몇 개의 노트
야스민 함단을 위하여


지난주 당신의 공연을 지켜보고 귀를 기울일 때, 야스민, 당신을 그려 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습니다. 말이 안 되는 충동이었지요, 너무 어두웠으니까요. 내 무릎에 놓인 스케치북도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따금 스케치북을 보지 않고,
당신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끼적이기는 했지요.
그 끼적임에는 리듬이 있습니다. 마치 나의 펜이 당신의 목소리와 함께 움직이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펜이 하모니카나타악기는 아닌 까닭에, 지금 침묵 속에서 다시 보니 그 끼적임에는 아무 의미도 없네요. - P71

한 곡의 노래는, 불리거나 연주될 때 하나의 몸을 얻는다. 실재하는 몸을 취하여 그 몸을 순간적으로나마 소유함으로써 그렇게 하는 것이다. 더블베이스의 몸체는 줄이 튕겨지는 동안꼿꼿이 서 있고, 두 손에 쥐어진 하모니카의 몸체는 한 마리 새처럼 연주자의 입 앞에서 맴돌거나 그 입에 가서 닿는다. 드럼을 치는 드러머의 상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노래는 반복해서가수의 몸을 취한다. 그리고 얼마 후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청중들의 몸은, 그 노래를 듣고 몸짓으로 따르는 동안 무언가를기억하고 예측한다.
실재하는 몸을 취하지 않는 노래는 시간과 공간 속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노래는 과거의 경험을 전한다. 하지만 그것이 불리고 있는 동안 노래는 현재를 채운다. 이야기도 같은 작용을한다. 하지만 노래에는 노래만의 또 다른 차원이 있다. 노래는현재를 채우는 동시에 미래의 어딘가에 있는 청자의 귀에 닿기를 희망한다. 노래는 앞으로 다가간다. 이런 끈질긴 희망이 없다면 노래는 존재할 수 없는 거라고 나는 믿는다. 노래는 앞으로 다가간다. - P73

삶에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많은 일들에는 이름이 없는데, 이는 우리의 어휘가 가난하기 때문이다. 이야기들을 큰 소리로전하는 것은, 이야기꾼이 그렇게 이야기를 전하는 행위를 통해이름 없는 어떤 사건을 익숙하고 친숙한 것으로 바꾸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는 친밀함을 가까움과 연관시키는 경향이 있고, 또한 가까움은 함께 나누었던 경험의 양과 연관시키곤 한다. 하지만현실에서는 완전히 낯선 사람들이 서로 단 한 마디도 나누지 않은 상태에서도 친밀함을 공유할 수 있다. 주고받는 눈빛에 담긴 친밀함, 끄덕이는 고개, 미소, 어깨를 으쓱하는 행동에 담긴친밀함. 몇 분 동안 노래 한 곡이 불리고, 거기에 함께 귀를 기울이는 시간 동안 지속되는 가까움. 삶에 대한 어떤 합의. 아무런조건도 없는 합의. 노래 주위에서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들 사이에 자발적으로 공유되는 어떤 결론. - P83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생겨나는, 또한 점점 늘어나는 인류의 가난과 계속되고 있는 지구에 대한 착취도 유토피아의 이름으로 시행되고, 정당화되고 있다. 그 유토피아는 자유시장방식이 아무런 제약 없이 마음껏 작동할 때 보장되는 것이다. 그건, 밀턴 프리드먼 Milton Friedman의 말에 따르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넥타이 색깔을 놓고 투표하는‘ 세상이다.
어떤 유토피아에 대한 전망이든 희망은 필수다. 그 말은 곧현실에서는 희망을 얻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들의 논리에서동정심은 곧 약점이다. 유토피아는 현재를 경멸한다. 유토피아는 희망을 독단적 교리로 대체한다. 독단적 교리가 각인되고,
그와 대조적으로 희망은, 촛불처럼 가끔씩만 깜빡거린다. - P89

우리를 둘러싼 원에는 석기시대 이후로 선조들이 우리들을위해 남겨 둔 증언들이 있고, 꼭 우리를 향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목격할 수 있는 텍스트들이 있다. 자연과 우주의 텍스트.
그 텍스트들이 대칭적인 것과 혼란스러운 것이 공존할 수 있음을, 가혹한 운명을 극복하는 기발한 방법들이 있음을, 욕망의대상이 언제나 약속의 대상보다 더 큰 확신을 주는 것임을 확인시켜 준다.
그런 다음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것과 우리가 목격한 것들을보며 버텨 온 우리는 아직 상상할 수 없는 환경에 저항하고, 계속 저항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우리는 연대 안에서 기다리는 법을 배울 것이다. - P110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가 아는 그 모든 언어로 칭찬하고,
욕하고, 저주하는 일을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이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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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나는 거의 팔십 년간 글을 써 왔다. 처음엔 편지였고, 그 다음엔 시와 연설, 나중엔 이야기와 기사, 그리고 책이었으며, 이젠짧은 글을 쓴다.
글쓰기 활동은 내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 활동 덕분에 나는 의미를 찾고, 계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글쓰기는 더 깊고 더일반적인 무언가에서 파생되는 것일 뿐이다. 그 무언가는 바로우리가 언어 자체와 가지는 관계다. 이 짧은 글의 주제는 언어다. - P7

우선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의 번역 활동을 한번 살펴보자. 오늘날 대부분의 번역은 기술 번역이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문학 번역이다. 개인의 경험을 다룬 글을 번역하는 일.
번역에 대한 관습적인 견해에 따르면, 그것은 번역자 혹은번역자들이 특정 언어로 된 페이지의 단어들을 연구해서 그걸다른 페이지에 다른 언어의 단어로 내놓는 과정이다. 여기에는소위 단어 대 단어의 번역 과정, 그리고 두번째 언어의 언어학 - P7

적 전통이나 규칙들을 따르고 거기에 맞추는 과정, 그리고 마지막으로 원래 텍스트의 ‘목소리‘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재창조하기 위해 또 한 번 철저히 연구하는 과정이 포함된다. 많은, 어쩌면 대부분의 번역은 이 순서로 진행되며, 그 결과는 물론 가치가 있지만, 최상의 결과는 아니다.
왜 그럴까. 왜냐하면 번역은 두 언어 사이의 양자 관계가 아니라, 삼각관계이기 때문이다. 삼각형의 세번째 꼭짓점은 원래의 텍스트가 씌어지기 전 그 단어들 뒤에 놓여 있던 것이다. 진정한 번역은 이 말해지기 전의 무언가로 돌아가야 한다. - P8

번역가는 원 텍스트를 읽고 또 읽으며 그것을 뚫고 나아가,
그 텍스트를 낳은 비전이나 경험에 닿으려 애쓴다. 그런 다음엔 거기서 찾은 것을 모으고, 거의 말없이 떨리는 이 ‘무엇‘을가지고 와 번역의 결과가 되는 언어 뒤에 놓는다. 이때 가장 중요한 일은 발화되기를 기다리는 그 ‘무엇‘을 받아들이고 환영할 수 있게 두번째 언어를 설득하는 것이다.
이는 어떤 언어든 사전 한 권, 혹은 한 무리의 단어나 구절 들의 총합으로 환원될 수 없음을 상기시킨다. 또한 그 언어로 씌어진 결과물들을 모아 놓은 창고로도 환원될 수 없다.
말해진 언어는 하나의 몸이며, 살아 있는 피조물이다. 피조물의 얼굴은 말이며, 신진대사는 언어학이다. 그리고 이 피조물의 집은 발화된 것일 뿐만 아니라, 발화되지 않은 것이기도하다. - P8

모국어 Mother Tongue를 한번 생각해 보자. 러시아에서는
‘Rodnoi-yazyk‘라고 하는데 가장 가까운 혹은 가장 소중한 말을뜻한다. 절박한 상황이라면 가장 사랑하는 언어라고 할 수 있다.
모국어는 한 인간의 첫번째 언어, 갓난아기가 어머니의 입을통해 처음 듣게 되는 언어다. 그래서 그렇게 불리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지금 내가 묘사하려는 언어라는 생명체가 분명 여성적이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아마 음성학적자궁이 있을 것이다.
하나의 모국어 안에는 모든 모국어가 담겨 있다. 다른 말로하자면 모든 모국어는 보편적이다. - P9

촘스키 N. Chomsky 는 모든 언어가 꼭 음성언어만이 아니라ㅡ 어떤 구조와 과정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음을 훌륭하게보여 주었다. 마찬가지로 모국어도 음성언어가 아닌 언어들 -몸짓 언어, 행동 언어, 혹은 공간의 언어 같은과 관련이 있다.(같이 리듬을 맞춘다고 해야 할까?)드로잉을 할 때, 나는 외양이라는 텍스트를 풀어내서 그대로옮기려고 노력한다. 물론 이 외양이라는 텍스트는 이미 나의모국어 안에 설명할 수 없는, 하지만 확실한 자리를 차지하고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단어, 용어, 구절 같은 것은 그들이 속한 언어 생명체에서 분리되어, 그저 이름표로만 쓰일 수도 있다. 그때 그것들은 무기력하고 공허한 것이 된다. 빈번하게 사용되는그런 예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주된 정치적 담론에서 사용되는 - P9

언어들은 그 어떤 언어 생명체에도 속하지 않는, 무기력하고죽은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 죽은 ‘공허한 말의 사용‘은기억을 지워 버리고 무자비한 자기만족을 낳는다.


오랜 시간 동안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한 것은 무언가가 말해질 필요가 있다는 직감이었다. 말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아예말해지지 않을 위험이 있는 것들. 나는 스스로 중요한, 혹은 전문적인 작가라기보다는 그저 빈 곳을 메우는 사람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다.
몇 줄을 쓴 다음엔 단어들이 다시 자신들이 속한 언어 생명체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게 내버려 둔다. 그러면 거기에서 한 - P10

무리의 다른 단어들이 그 말들을 알아보고 맞아 준다. 그들 사이에 의미의 유사함, 반대 의미, 비유, 운율이나 리듬 같은 것들이 생겨난다. 나는 그들이 나누는 담소에 귀를 기울인다. 그렇게 함께 단어들은 내가 자신들에게 부여하기로 한 의미를 놓고경쟁한다. 그들은 내가 부여한 역할에 대해 질문한다.
그러면 나는 문장을 다듬고, 단어를 한두 개 바꾸어서 다시밀어 넣는다. 다시 담소가 시작된다.
잠정적인 동의를 나타내는 낮은 웅성거림이 들릴 때까지 그과정은 계속된다. 그러고 다음 문단으로 넘어간다.
다시 담소가 시작된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작가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 내 입장에서 말하자면 나는 개새끼다. 나를 낳은 개가 누구일지 짐작이 되시는지? 안 된다고? - P11

로자를 위한 선물


당신도 감옥에서 화를 참지 못하고 쓴 편지에서 비슷한 말을했던 것 같아요. 당신은 자기 연민에 대해서는 늘 화를 냈죠. 그래서 친구가 보낸 애도의 편지에 이렇게 답장을 했습니다. "인간답게 지내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합니다. 그건 확고하고, 분명하며, 활기찬 것을 의미하죠. 네,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어떤 일 앞에서도 활기차게 지내는 것이요. 흐느끼는건 약한 자들에게나 어울리는 행동입니다. 인간답게 지낸다는것은 거대한 운명 앞에 스스로의 삶을 즐겁게 던지는 것이지요. 그래야만 한다면 말입니다. 그와 동시에 매일매일의 화창함과 모든 구름 조각들의 아름다움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겠지요." - P15

당신이 적었죠. "현대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어떤 책이나이론에서 제시한 계획에 따라 자신들의 투쟁을 수행하는 것이아니다. 현대 노동자들의 투쟁은 역사의 일부이고, 사회적 진보의 일부이며, 역사 한가운데서, 진보 한가운데서, 싸움의 한가운데서, 우리는 반드시 싸워야만 함을 배운다."
판지 상자의 뚜껑에는 1970년대 러시아의 성냥갑 상표 수집가들을 위한 짧은 설명이 있습니다.
거기에 이런 정보가 담겨 있어요. ‘진화적으로 보면 조류는다른 동물들보다 먼저 등장했다. 오늘날 전 세계에는 대략 오천여 종의 조류가 있으며, 소련에만 사백여 종의 명금이 있다.
우는 새는 일반적으로 수컷으로 알려져 있는데, 명금에 속하는조류는 목 아래쪽에 특별한 성대를 발달시킨 종이다. 명금들은보통 관목이나 나무, 혹은 땅에 둥지를 짓는데, 다양한 해충을잡아먹기 때문에 곡물 농사에 도움이 된다. 최근 소련의 외딴지역에서 새로운 울음소리를 가진 참새가 세 종 확인되었다.‘ - P19

한 사람의 일생에 해당할 만큼 오래전에 당신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현대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어떤 책이나 이론에서제시한 계획에 따라 자신들의 투쟁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현대 노동자들의 투쟁은 역사의 일부이고, 사회적 진보의 일부이며, 역사 한가운데서, 진보 한가운데서, 싸움의 한가운데서,
우리는 반드시 싸워야만 함을 배운다."
2010년 자신이 죽은 후, 그녀의 아들 비텍이 계단 아래 선반에서 이 상자를 발견하고는 자신이 배관공 겸 건설업자로 일하고 있는 파리로 가지고 왔습니다. 나한테 주려고요. 우리는 오랜 친구 사이입니다. 매일 저녁 함께 카드놀이를 하며 쌓아 온우정이죠. 러시아와 폴란드에서 주로 하는, ‘얼간이‘라는 카드놀이인데, 자신이 가진 카드를 모두 ‘잃어버린‘ 사람이 이기는놀이입니다. 비텍은 내가 그 성냥 상자를 궁금해 할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 P21

그 친구의 그림을 함께 보내요. 부리가 짧고, 이마가 툭 튀어나왔고, 세상일을 모두 알고 있을 것 같은 눈을 지닌 이 동무의 학명은 히폴레스 히폴레스이고, 일상적으로는 수목樹木새, 혹은 흉내지빠귀라고 부릅니다." 당신은 1917년 포즈난 감옥에수감된 후에도 계속 이런 편지를 썼죠. "이 새는 상당히 괴짜입니다. 다른 새들처럼 한 가지 울음소리를 가지거나 하나의 음으로 울지 않거든요. 이 새는 신의 은총을 받아 연설가가 된 것같습니다. 정원에 나와 장황하게 연설을 하는 거예요. 극적인긴장감과 빠른 전개, 고양된 비애감을 담은 큰 목소리로 연설을 하죠. 녀석은 가장 있을 법하지 않은 질문들을 던지고, 서둘러 앞뒤가 맞지 않는 대답을 하고, 가장 대담한 주장을 하고, 아무도 입 밖에 낸 적 없는 반박을 물리치고, 활짝 열린 문을 향해돌진하고는 갑자기 승리에 도취해 외칩니다. ‘내가 말하지 않았어? 내가 말하지 않았어?‘ 그리고 뒤이어 귀를 기울였든 기울이지 않았든 모두를 향해 엄숙한 목소리로 경고하죠. ‘알게될 거야! 알게 될 거야!‘ (녀석은 이런 재치있는 말을 두 번씩반복하는 영리한 습관이 있습니다.)" - P22

당신은 1900년에 이렇게 적었죠. "대중들의 지도자는 대중들 자신이며, 그들은 변증법적으로 자신들의 발전과정을 창조해 나간다."
이 성냥갑 상자를 어떻게 당신에게 전할 수 있을까요. 당신을 죽인 깡패들은 당신의 사체를 토막낸 다음 베를린 운하에 버 - P22

렸습니다. 석 달 후 썩은 물에서 사체가 발견되었죠. 그게 당신의 사체가 맞는지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지금 이 암울한 시대에 이 글을 씀으로써 나는 그 상자를 당신에게 보낼 수 있습니다.
"나는 있었고, 지금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라고 당신은 말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보여 준 본보기 안에 살아 있습니다, 로자. 그리고 여기, 나는 당신이 보여 준 본보기를 향해이 물건을 보냅니다. - P23

당돌함

최근에 알베르 카뮈의 놀라운 책 『최초의 인간 Le PremierHomme』을 다시 읽었다. 그 책에서 카뮈는 자신을 어른으로, 그리고 작가로 만들어 준 무언가를 어린 시절을 비롯한 인생의 초반부에서 찾고 있다. 그런 작업을 하면서도 그는 자기중심적이지 않다. 『최초의 인간』은 당시의 세계와 역사에 관한 책이다.
그 책을 읽고 나서 나를 지금의 이야기꾼으로 만들어 준 건무엇일까 자문해 보았다. 단서를 하나 찾았다. 카뮈가 발견한것에 필적할 만한 건 하나도 없었지만, 간략히 적어 둘 통찰은하나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일종의 고아가 된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내게는 사랑을 베풀어 준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에 그건 약간 이상한 종류의 고아였다. 안쓰럽다고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지만, 어떤 물질적 환경이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켰고, 어떤 면에서는 부추기기도 했다. - P25

열여섯 살 때 기숙학교에서 나와 런던에서 친구들과 함께 독립하려고 애썼고, 어렵지만 그렇게 할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부모님을 찾아가 함께 명절을 보냈다. 아버지가 나의첫 오토바이를 사 주셨다. 열여덟 살 때 처음으로 아버지의 초상화를 그렸다. 화가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꿈이었지만, 형편때문에 꿈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금속판에 직접 그린 그림을 기념품처럼 보관하고 계셨고, 달리아를 그린그 금속판은 어린 내게 일종의 부적 같은 역할을 해 주었다. - P26

고아는 현재의 자신에 만족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그와 함께 어떤 특별한 기술도 익히게 된다. 그는 혼자 살아가는 프리랜서가 된다.
네댓 살에 프리랜서가 된 후 줄곧 만나는 사람들 역시 나 같은 고아일 거라 생각하고 대했다. 아마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고아들끼리의 공모를 제안한다.
우리는 서로 윙크를 나누고, 위계를 거부한다. 모든 위계를, 우리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세계를 무시하고, 그럼에도 여전히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는 당돌하다. 우주의 별들 중 절반 이상이 그 어떤 성운에도 속하지 않는 외톨이별이다. 모든 성운을 다 합친 것보다 그 별들이 내는 빛이 더 많은 셈이다.
당연히 우리는 당돌하다. 그리고 내가 독자들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방식 역시 그럴 것이다. 마치 여러분들도 고아인 것처럼 말이다. - P27

넘어지는 기술에 관한 몇 가지 노트


그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매정한 것으로, 동시에 설명할수 없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그 점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의 에너지는 눈앞의 상황을 벗어나고, 조금이라도 더 밝은 무언가를 찾아낼 방법을 모색하는 일에 집중한다. 그는 삶에서반복해서 일어나는 일들, 그래서 이상함에도 불구하고, 익숙한어떤 환경이나 상황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주 어릴때부터 그는 반복해서 일어나는 이런 일상적인 수수께끼에 관한 격언이나 농담, 은근한 충고, 대처법, 혹은 피하는 법에 익숙했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 마주쳤을 때, 자신이 마주한 것에 대한 사전지식을 가지고 대처한다. 그는 좀처럼 당혹스러워하지않는다. - P29

라.
권력자들은 언제나 덩치가 크고 신경질적이다.
설교하는 사람들은 자기 목소리만 사랑한다.
매일매일 발생하는 문제들, 채우지 못한 욕구와 좌절당한 욕망을 일컫는, 혹은 설명하는 단어는 없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지 못하지만 그걸 깨닫지 못한다. 무언가에 쫓긴 채,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뒤쫓는다.
한 발 옆으로 물러나와 고개를 내밀기 전에는 당신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보잘것없는 존재다. 그때 비로소 동료들이 갑자기 멈추고 놀란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그 놀라움에 휩싸인 침묵 안에, 모국어가 지닌 이해 가능한 단어들이 모두 들어 있다.
당신이 서로를 알아보기 위한 작은 틈을 만들어낸 것이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혹은 거의 가지지 못한 지위의 사람들이 어떤 여분의 구멍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작은 사람 하나가숨기에 딱 알맞은 크기의 구멍 말이다. - P30

대부분의 건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돈이 ㅡ 혹은 돈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필요하다.
계단은 미끄럼틀이다.
창문은 물건을 내던지기 위해 혹은 기어오르기 위해 있다.
발코니는 거기서 기어 내려오기 위해 혹은 물건을 떨어뜨리기 위해 있다.
야생의 자연은 피신처다.
모든 추격전은 순환한다.
모든 발걸음이 실수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있을지도 모르는똥을 피할 수 있게 걸어야 한다.
이런 것들은 이십세기 초, 런던 남부와 램버스에서 자란 열살 -맨 처음 두 자리 숫자가 되는 나이 - 남짓한 아이가 속담을 통해 얻은 지식들이다.
이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그는 공공시설에서 보냈다. 처음엔빈민 수용 작업시설이었고 나중엔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공립학교였다. 그가 몹시 애착을 보였던 어머니 한나는 그를 돌볼여유가 없었다. 역시 런던 남부, 공연장의 배우들 사이에서 자랐던 그녀는 인생의 대부분을 정신병동에 갇혀서 지냈다. - P31

그가 그린 작품들의 소재는 수감자가 보거나 상상한, 자유로운 바깥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이 그림들에서 놀라운 점은 장소들, 그림 속에서 묘사되는 공간들이 지닌 익명성이다.
상상 속의 인물들, 주인공들은 생생하고, 표현적이고, 에너지가 넘치지만, 그들이 있는 길거리의 모퉁이나 위압적인 건물들, 출구와 입구, 고층 건물의 스카이라인과 골목길은 황량하고, 표정이 없고, 생동감이 없으며, 무심하다. 그 어디에서도 어머니의 손길이 닿았음을 암시하는 흔적은 없다. - P32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나는 두 개의 통찰을 제시하고싶다. 첫번째는 앞에서 설명한 속담을 통해 세상을 설명하는채플린의 세계관과 관련이 있고, 두번째는 광대로서 그의 천재성과 관련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그 천재성은 그가 어린 시절겪었던 시련의 산물이다.
오늘날 세계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투기 금융 자본은 정부를노예 주인처럼 활용하고, 전 세계 미디어를 마약 공급상처럼활용한다. 이 폭정의 유일한 목표는 이윤과 자본 축적인데, 이를 위해 사람들에게 소란하고, 위태롭고, 매정하고, 설명할 수없는 세계관 혹은 삶의 패턴을 강요한다. 그런 인생관은 채플린이 초기 영화를 찍을 때의 인생관보다는 열 살 소년이 속담을통해 알게 된 세계관과 더 가까워 보인다. - P35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은 매일매일 늘어나고 있다. 국가의 정치가들이 하고 있는 논쟁이 더 이상 그들이 할 수 있는 일 혹은해야만 하는 일과 아무 관련이 없기 때문에, 보편적 참정권이라는 것도 의미 없게 되어 버렸다. 오늘날의 세계를 결정하는근본적인 판단은 모두 투기 자본가와 그 대리인들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그들은 이름이 없고 정치적인 발언은 전혀 하지 않는다. 열 살 소년이 추측했듯이 "매일매일 발생하는 문제들, 채우지 못한 욕구와 좌절당한 욕망을 일컫는, 혹은 설명하는어는 없다." - P36

채플린의 익살이 지닌 에너지는 반복적이고 점점 커진다. 매번 넘어질 때마다 그는 새로운 사람이 되어 일어난다. 같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인 어떤 사람. 넘어질 때마다 다시일어날 수 있게 하는 비밀은 바로 그 복수성複數性이다.
또한 그 복수성은 그의 희망이 반복적으로 산산조각 나는 일에 익숙해진 후에도 여전히 다음 희망을 놓치지 않을 수 있게해 주었다. 그는 반복해서 굴욕을 당하면서도 평정심을 잃지않는다. 심지어 반격을 할 때도 그는 유감스럽다는 듯이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그런 평정심이 그를 무적의 존재로, 거의 불멸의 존재로 보이게 한다. 희망 없이 반복되는 일상의 사건들틈에서 그 불멸성을 감지한 우리는, 웃음으로 그 알아봄을 인정한다. - P37

채플린의 세계에서 웃음은 불멸성을 일컫는 다른 이름이다.
팔십대 중반의 채플린을 찍은 사진이 있다. 어느 날 나는 그사진들을 보다가 그 표정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떠오르지 않았지만,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확인해 보니 그 표정은 렘브란트의 자화상 속 표정과 닮아 있었다.
바로 〈웃고 있는 철학자, 혹은 데모크리토스의 모습을 한 자화상이었다.
"나는 그저 보잘것없는 코미디언일 뿐입니다." 그는 말했다.
"제가 바라는 건 그저 사람들을 웃게 하는 것입니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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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불사(佛寺) 의 석굴(窟), 언제부터인지 우리가 석굴암石窟庵)
이라고 잘못 부르고 있는 저 위대한 존상에 대하여 내가 이제부터 무엇인가를 말하려 함이 행여 하나의 오만이 아닐까 두렵다.
석불사의 석굴, 그것은 종교와 과학과 예술이 하나됨을 이루는 지고(高)의 최미(最美)이다. 거기에는 전세계 고대인들이 추구했던 이상적인인간상으로서 절대자의 세계가 완벽하게 구현되어 있다. 지금도 석불사의석굴 앞에 서면 숨막히는 감동과 살 끝이 저려오는 전율로 인하여 감히 아름답다는 말 한마디조차 입 밖에 내는 것을 허용치 않으며 오직 침묵 속에서 보내는 최대의 찬미만이 가능하다. 우리는 석굴에 감도는 고요의 심연에서 끝도 없이 흐르고 있는 신비롭고 장중한 정밀의 종교음악을감지할 뿐인 것이다. - P159

석굴에는 불(佛), 보살(菩薩), 천(天), 나한(羅漢)이 모두 마흔 분 모셔져 있다. 거기에는 절대자를 중심으로 한 천상의 질서가 정연하게 펼쳐져 있다. 팔만대장경으로 설명한 장엄하고 오묘한 불법이 이 하나의 석굴안에 요약되어 있다. 그 절묘한 만다라를 모두 해석해낼 학자는 아직 없다.
석굴은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완벽한 기술로 축조되었다. 석굴의 구조는 그 평면과 입면이 과학적이고도 철학적인 수리(數理)체계를 이루어 부분과 부분의 조화, 전체에 의한 부분의 통합이 빈틈없이 이루어져있다. 남천우 교수는 석굴을 측정하고서 그 엄청난 무게의 돌을 자르고 깎아 세우면서도 10m를 재었을 때 I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았다고 했 - P159

다. 다시 말하여 1만분의 1의 실수도 보이지 않은 것이다. 그 무서우리만큼 정확한 기술에는 우리 시대엔 상상도 할 수 없는 과학이 뒷받침되어 있었던 것이다. 20세기 들어와 보수에 보수를 거듭하면서도 온전한 보존책을 아직껏 마련치 못하고 있는 것은 현대의 기술만 과신하고 고대인의 과학을 무시했던 소치였다.
folk okk석굴의 제존상(諸尊像)은 분명 종교예술품이다. 아무런 생명도 성격도없는 돌을 깎아 거기에 영원한 생명과 절대자의 이미지를 부여한 것은 종교적 열정에 근거한 예술혼의 산물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예술성을비판하거나 의심한 사람은 없다. 그 어떤 독설의 비평가도 이 앞에선 입을열지 못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시인도 석굴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온전하게 노래하지 못했다. 고은 선생은 석굴 앞에서 "모든 이 나라의 찬미() 형용사는 그곳에 모여들었다가 하나씩 하나씩 다른 것을 찬미하기위하여 나갔으니 석굴은 하나의 형용사로서 도저히 찬미할 수 없다"고 고백하였다. - P160

그리하여 나는 석불사 석굴에 대하여 완벽한 인간공력이 이루어낸 경이로움만 말할 수 있으며 거기에 오직 한마디만 덧붙일 수 있다.

보지 않은 자는 보지 않았기에 말할 수 없고, 본 자는 보았기에 말할수 없다.

그리하여 이제부터 시작하는 석불사에 대한 나의 이야기는 다만 그 신비와 신비를 밝히기 위한 노력들과 이 위대한 인류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자신의 일생을 거기에 걸었던 소중한 인생들에 대한 증언, 그리고 20세기한국사의 슬픈 굴절 속에서 석굴이 겪어야만 했던 쓰라린 아픔을 말하는석불사 석굴의 영광과 오욕의 이력서를 쓰는 일뿐이다. - P160

석불사는 암자가 아니라 석굴사원이다. 석굴은 인도에서 기원전부터 시작되었다. 챠이티야(chaitya, 塔)라고 하여 암석을 파고 굴을 만들어 그안에 도량을 세우는 방법이다. 이는 장방형의 전실(前室)과 원형의 주실(主室)로 구성되며 주실 중앙에는 스투파(stupa, 탑)가 있어 참배자들이이 스투파를 돌며 예배하게끔 되어 있다. 석불사의 석굴도 기본구조는 이챠이티야와 같다.
챠이티야는 기원전 무불상시대에서 기원후 불상시대로 넘어오면서 주실에 불상도 모시게 되었는데 이것이 인도의 아잔타, 중국의 돈황 · 운강·용문석굴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석굴사원을조영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의 산은 노년기 지형으로 단단한 화강암이 주류를 이루기 때문에 인도나 중국처럼 쉽게 굴착될 수 있는 사암(砂岩)이없다. 그래서 이를 변형하여 백제의 서산 마애불처럼 바위에 새기거나 고신라의 감실부처님처럼 작은 규모로 바위를 깎거나, 통일신라 이후 군위의 삼존불처럼 자연석굴을 이용한 석굴사원이 있었을 뿐이다.  - P164

이 당시 모습을 그려보면 지금처럼 목조건축의 전실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금강역사상 양옆으로 팔부중상이 늘어서 있는데 그중 하나는 깨져버렸고 사천왕이 늘어선 비도(道) 앞에 무지개 형상의 돌문이 있었음을 알수 있다. 그리고 정시한은 그 다음날 봇짐을 진 한 거사를 만났는데 그는아내를 데리고 전주에서 불국사·석굴을 다니러 오는 길이라고 했다 하니당시에도 여전히 탐승객, 참배객이 그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18세기로 들어서면 우리나라의 모든 산사들이 새로운 중창의 시기를맞이하듯이 석불사도 중수(重修) 를 맞게 된다. 1740년에 발간된 『불국사 고금창기(古記)』 를 보면 "1703년에 종열(從)이 석굴암(승방)을 다시 짓고 또 석굴 앞에 돌계단을 쌓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석굴에 어떤 이상이 있었다는 말은 없다. 그후 손영기(孫永)라는 사람이 쓴 「석굴암 중수상동문(重修上陳文)」에 의하면 1891년에 석굴은 조(趙)씨 성을 가진 순상(巡相, 병마사)에 의해 크게 중수되었다고 하였는데 그 중수의 내용과 규모는 확실치 않고 다만 "불국지석굴(佛國之石窟)"이라고 한것을 보아 이미 불국사의 말사로 되었음만은 확인할 수 있다.  - P170

잊혀져가는 명작, 석불사의 석굴이 세상에 다시 알려지게 된 것은 1907년 무렵이었다.
때는 1905년 11월 일제의 군사적 협박으로 체결된 을사보호조약 이후이른바 보호정치의 명분으로 조선통감부가 서울 남산, 지금 안기부자리에 설치되고 초대 통감(統監) 으로 이또오 히로부미가 부임해왔을 때이다.
내 언젠가 다시 증언할 기회가 있겠지만 이또오 히로부미는 이 땅에 도굴을 조장한 장본인이었다. 그는 무수한 고려청자를 일본 천황과 귀족사회에 선물하였다. 그로 인해 고려시대 고분이란 고분은 모조리 파괴되는 불행을 맞게 되었다. - P171

그러나 석굴의 개수공사는 1200년을 유지해온 석굴에 돌이킬 수 없는치명상만 주었다. 그리고 외형상에도 무수한 변조가 가해져 야나기 무네요시는 장문의 「석불사의 조각에 관하여」라는 글을 『예술(藝術)』지 1919년 6월호에 발표하면서 다음과 같은 통탄의 비판을 가하였다.


나는 이것(보수된 돌담)을 보았을 때 그 몰취미한 행위에 크게 놀랐다. 무슨 이해가 있다고 거의 터널의 입구로 잘못 보는 그러한 건설을해놓았을까? 나는 이것이 석불사의 수리가 아니라 새로운 파손행위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기사는 비록 과학적인 수리를 했다 하더라도아무런 예술적 수리는 알지 못한 것 같다. … 될 수만 있다면 저 돌담을파괴해서 그 수리는 조선인 자신에게 맡기고 싶다. 석불사는 다행히도 왜구의 화를 면했다. 그러나 수리라는 이름 아래 새로운 모욕을 당했다. ..… 만약 그 수리가 단순히 천장을 덮고 각 돌담의 위치를 제자리에갖추는 데 그쳤더라면 얼마나 아름답게 되었을까? 나는 파손된 채로 있는 그때의 사진과 수리 후의 사진을 비교해보면서 예술을 모르는 죄많은 과학의 행위를 미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 P180

나는 어느 해인가 리프스의 미학책을 트렁크에 넣어가지고 경주 석굴암을 찾아 그 앞에 있는 조그만 암자에서 한여름을 지낸 일이 있었다.
리프스의 조각에 관한 이론을 기준으로 석굴암을 설명해보려 하였던 것이다. 석굴암 속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면서 무한 애를 써보았으나 어떻게 하였으면 좋음직하다는 엄두도 나지 않았다. 오래 머물러 있었던 덕에 아침 저녁으로 광선 관계가 달라진다든가, 특히 새벽에 해 돋아오를때도 좋지만 둥근 달이 석가상을 비출 때면 석굴암 전체가 그야말로 신비의 세계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우리 미술사는 석굴암을 설명할 수 없는 나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자 계속할 용기가 없어지고 말았다. 나는 기초적인 학문부터 다시 시작하여야 되겠다고 절실히 느꼈다.


그리하여 청년 박종홍의 한국미술사 탐구는 여기서 좌절되고 그 이듬해에 개교한 경성제대에 입학하여 철학개론부터 다시 배우는 대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박종홍은 훗날 야나기가 쓴 석불사에 관한 글을 읽고는 큰 감명을 받았고 그때 그만두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 P184

석불사 석굴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최초로 본격적인 글을 발표한 것은야나기 무네요시(柳宗 悅, 1889~1961)였다. 1919년 6월 예술』지에게재된 그의 「석불사의 조각에 관하여」라는 장문의 논문 부기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나는 오랫동안 조선의 예술에 대하여 두터운 흠모의 정을 품고 있다.
특히 이 석불사의 조각은 내 여행중 나를 자극한 잊을 수 없는 작품들이었다. 나는 이 세계의 걸작이 아직도 일반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을 애석하게 생각하고 이것을 널리 소개하는 최초의 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이 소개를 객관적인 것으로 하기 위해 지극히 멋없는 글이 된것을 마음 괴롭게 생각한다.
...
그러나 다소는 나의 사랑을 전달할 수 - P185

있었던 것으로 생각하며, 내가 맛본 이해의 어느 부분은 반드시 정당하다는 것을 믿는다.


사실상 야나기의 이 글은 그의 문(文)이 보여주는 아련한 분위기는 상당히 죽어 있다. 『삼국유사』와 『불국사사적』의 장문을 인용하고40개 존상의 배치를 도면으로 그려가며 일일이 설명하자니 그럴 수밖에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물 설명에 들어가면 그 해설이 자못 황홀해진다.


실로 석굴암은 분명히 하나의 마음에 의해 통일된 계획의 표현이다.
인도 아잔타나 중국 용문석굴처럼 ... 누대의 제작이 모인 집합체가 아니다. 하나의 마음을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정연한 구성이다. 서로가서로를 살리는,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유기체적 제작이다. 외형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놀랄 만큼 주도면밀히 계획된 완전한 통일체이다. - P186

걸음을 굴 밖에서 굴 안으로 옮기면 마음도 또한 내면의 세계로 들어간다. 위대한 불타는 소리없이 조용히 그 부동의 모습을 연화좌대 위에 갖춘다. 우러러보는 자는 그 모습의 장엄과 미에 감동되지 않을 수 없이다. 이곳은 완전히 내적인 영의 세계다. 그는 앞에 네 명의 여보살음을, 뒤에는 십일면관음을, 그리고 좌우에는 그가 사랑하는 열 사람의 제자를 거느리고 영원의 영광을 고한다. 감실에 있는 여러 불상들은 그 법열을 찬송하는 듯하다. 여기는 석굴 밖) 외부의 힘의 세계가 아니다.
내적인 깊이의 세계다. 미와 평화의 시현이다. 또한 장엄과 그윽함의 영기(靈氣)이다. 얼마나 선명한 대비가 굴 안팎에 나타나 있는가! 모든것이 밖으로부터 안으로 돌아간다. 힘에서 깊이로 들어간다. 움직임〔動]보다도 고요함(靜〕 속에 사는 것이다. 종교의 의미는 석굴암 속에서 다하는 느낌이다.

야나기의 해설은 그칠 줄 모르는 탄미의 연속이다. 그러나 그는 부질없 - P186

는 형용사의 나열이 아니라 심리적, 철학적, 종교적 인식에 도달하는 사색의 깊이를 지니고 있다.
야나기는 스스로 미술사를 전공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석굴의 여러 조상들을 보면서 굴 밖의 수호신상에서 굴 안의 불보살상으로 들어가면서 힘의 세계에서 내면적 성찰의 계기로 바뀐다는 탁견을 내놓았다. 뿐만 아니라 그 기법과 내용이 점차 진보된 발전의 발자취를 느낀다며그것은 마치 미켈란젤로가 씨스띠나 성당 벽화를 5년간 그리면서 최초 작품 「노아의 방주」에서 최후 작품 「천지창조」 사이에 보여준 미묘한 차이와 같다는 점까지 읽어낸 것이다.
야나기의 뛰어난 안목이 밝혀낸 또 하나의 중요한 관찰은 모든 조상들이 갖는 시선의 방향 문제이다. 그는 한 사람의 참배자, 즉 사용자 입장에서 석굴암을 한바퀴 돌 때 일어나는 모든 심리적 변화를 이 조상들의 시선처리에서 살피고 있는 것이다. - P187

나아가서 그는 석굴의 부조들 중에서 왜 정면을 향하고 있는 십일면관음과 인왕상만이 환(丸)의 높은 돋을새김을 했는가를 논하고 있다.
어느 면에서나 야나기는 뛰어난 미술사가였고 탁월한 양식분석가였다. 석불사의 조각에 대한 그의 예찬은 본존불의 설명에서 절정을 이룬다.


누가 능히 이 조각에 나타난 그 뜻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말할 수없다는 사실에 이 불상의 아름다움이 있다. 사람들은 여기에서 아무런 - P188

착잡한 수법도 보지 못한다. ・・・ 그는 아무런 과장도 복잡한 것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런데 실로 아무것도 없는 지순(純)의 그 속에서 작자는불타로서 지고의 위엄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모든 의미는 그 단정한 용모에 모여 있다. 그는 말없이 침묵을 지키고 입은 다물고 눈은 쉬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는 어둡고 고요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석굴 안에앉아서 깊은 좌선에 몰두하고 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말하는 침묵의 순...
간이다. ・・・ 모든 것을 포함한 무(無)의 경지이다. 어떠한 참된 것도 어떠한 아름다움도 이 순간보다 더한 것은 없을 것이다..… 여기에선 종교도 예술도 하나다.


석불사 석굴에 대한 야나기의 통찰과 그것을 통한 자기 내면의 성찰은미학적 고찰이 추구하는 학문적 모색과는 다른 방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를 수필가나 미가(家)로만 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침묵의 물체를 보면서 거기서 일어나는 감정이입의 상태를 말할 수 있는 것은 글솜씨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는 스스로 미학자(學者)가 아니라고 하였지만ㅡ철학을 배우는것보다 ‘철학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을 때 이미 그는
‘미학하는 법‘에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 P189

거대한 연화대좌도 아름다운 작품이지만 9척 고상(像)이 촉지항마(觸地降魔)의 인상(印相)으로 온화하고 엄숙한 봉의 눈을 반개하고동해 창파를 굽어살펴 듬직이 앉아 계신 위용! 결가부좌하신 발모습[相]도 평안하고 두루원만[ 하시거니와 무릎도 섬세한 듯圓]둥글고 무릎까지 뻗어내린 긴 손도 살찐 듯 부드럽고 온화하시거니와양어깨 양팔도 풍만하고 원하시고-가슴도 장엄하시거니와 등줄기도 곧고 엄숙하시고 귓밥도 길게 늘어뜨리고 입술도 두툼하니 내리셨거니와 콧날도 우뚝하시고 눈동자도 빼어나거니와 머리도 원만하시다.
피도 없고 물도 없고 가슴도 없고 정(情)도 없는 화강 거석에서 맥박이 충일하고 신성(神性)이 횡일하고 호흡이 가지런하고 온화함과 엄숙함이 구비된 위대한 이 상이 드러날 때 환희는 조각공의 손끝에 있지 아니하고 신라 천지에 휩싸였을 것이요, 우주 속에 메아리 쳐 퍼졌을 것이다. - P190

우현 선생은 석굴의 구조에 나타난 유동성(流動性)은 가히 기운생동(氣韻生動的) 경영이라 하며 야나기가 ‘누천의 찬사‘를 보낸 시점의 이동에 덧붙여 본존불의 광배가 석굴 후벽에 설치된 것과 천장덮개돌의 연화문 원석이 어울리는 절묘한 발상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대개 불상의 후면 광배는 원상에 직접 부착되어 있는 까닭에 매우 공예적 고정성과 비현실적 부자연성이 많은 것이지만 이 불상의 광배는원상과 멀리 떨어져 따로이 벽면에 가 붙어 있는 까닭에 이러한 결점이사라졌을 뿐더러 보는 이의 행보위치를 따라 자유로이 유동되어 급기야원상 직전에 다다라 온안(溫顔)을 우러러볼 때는 이 광배가 어느덧 정상의 연꽃으로 변하도록 설계되어 있으니 이것이 천장 정중앙에 남아있는 일타연화(一朶蓮花)의 존재이유이다. 이와같이 배광이 본체에서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체를 항상 떠나지 않고 비추고 있는 점에다른 어느 조각품에서도 볼 수 없는 특색이 있다. 일반 불상조각이 그객관적 소재성에서 받는 불가피한 고정감을 끝까지 버리고 이와같이 자연적 사실성을 살려 유동성을 발휘한 것은 실로 경탄할 신기(神)라아니할 수 없다. - P192

우현 선생은 우리나라 불상조각의 흐름을 크게 세 갈래로 보았다. 삼국시대의 그것은 상징주의, 통일신라의 그것은 고전주의 내지 이상주의, 고려시대의 그것은 낭만주의적 성격을 지녔다는 것이다.
삼국시대의 불상은 측면관을 전혀 무시한 정면성의 강조와 살붙임의 변화를 갖지 않는 부분부분의 조립적, 구축적 특질과 옷주름의 양식화된 도식적 평면전개로 전체적으로 기계적인 경직함과 추상적 신비함으로 충만된 상징주의적 경향이었다. 그러나 통일신라의 조각은 살붙임이 풍부하고따라서 입체적인 깊이와 양적 크기를 증가하여 모든 굴절은 자연적인 유기적 연관을 보유하고 설명적, 평면적 전개는 없고 가장 이상화(理想化) - P192

석굴암의 조각들은 8세기 중엽 신라 조각의 절정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이 조각들은 외형과 내면의 미를 함께 융합한 최상의 종교조각이라고 할 수 있으며, 6세기에서부터 시작하여 2세기 동안에 연마된 신라인들의 조각기술을 총집산하고 결산한 감이 있다. 침울한 표정, 조용한미소, 이러한 과거의 동작들이 지양되고 이제 신라 불상들은 고요한 정밀의 심연 속에서 정좌하고 있으며 여기에서 멈추어진 웃음을신라불상들은 다시 되찾지 못하고 만다. 그리고 그 얼굴은 시대가 내려가면서 점점 굳어지고 무서워지고 무표정해지고 그리고 차디찬 형식적인 불안(佛)으로 타락하고 마는 것이다. 석굴암의 불상들은 이러한하강이 시작되기 전의 고비에 서 있는 분수령 같은 존재이다. (김원용.
안휘준, ‘한국미술사, 서울대출판부, 1993) - P193

불상이란 곧 인간이 만들어낸 절대자의 상이다. 신, 절대자, 완전자, 그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곧 이상적 인간상의 구현이다. 그것은 모든 고대인들이 추구한 조화적 이상미이기도 하다.
모든 양극의 모순이 극복되어 하나의 이상적 질서를 이룰 때 우리는 그것을 고전적 가치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고전은 고전으로서 통한다. 그것은 양의 동서, 때의 고금을 관통하는 이상인 것이다. 그리하여 고유섭 선생은 「우리는 고대미술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에서 석불사 석굴(신라미술)의 미학을 세계사적 시각으로 풀어 이렇게 말하고 있다. - P193

석굴구성의 기본은 반지름을 12자 (지름 24자는 1일 24시간에 일치)로 하는 원 (360도는 1년 360일에 일치)이다. 석굴 출구의 12자는 1일(12刻)에 해당하고 궁륭천장(천체우주)은 같은 원둘레에 구축하여 유구한 세계를 표현하고 그 중심 (천장덮개돌)에는 원형 (태양)으로 큼직하게 연꽃덮개돌을 만들고 구면 각 판석의 사이에 팔뚝돌이 비어져별자리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 P197

나는 요네다의 짧은 일생 속에 담겨진 많은 의미를 생각해본다. 35세의젊은 나이로 죽는 그해까지도 땡볕에서 부소산성을 측량하던 백면의 기술자이고 무명의 건축학도였던 그가 7년간 말없이 성실하고 치밀하게 측량했던 그 경험을 토대로 불과 3년 만에 이처럼 위대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서 인생을 사는 법과 학문하는 법을 동시에 배우게 된다.
그의 삶과 학문은 ‘작은 것의 힘, 작은 것의 위대함,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미국의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는 그의 조수가 많은 건축시안을 제시하는 것을 보고 하나만 가져오라며 "적은 것이많은 것이다"(Less is more)라고 했다고 한다. 명나라 문인화가 동기창(董其昌)은 역대의 명화를 작은 화첩에 옮겨 그려보고서는 그 화첩의 제목을 ‘작은 것 속에 큰 것이 들어 있다‘는 뜻으로 ‘소중현대 (小中顯),
라고 하였다. 요네다의 학문에는 곧 ‘소중현대‘의 방법론적 실천이 있었으며 그의 일생은 ‘소중현대적‘ 인생이었다. - P197

나는 항시 관(官)이 하는 일보다도 민(民)이 하는 일이 빛날 때 그 문화는 성숙한다고 믿고 있다. 세상사람들이 알아주는 일에 매달리는 스테이지 체질들이 제품에 사그라들고, 남들은 뭐라고 하든 곰바위처럼 자기가 생각한 일에 일생을 거는 쇠귀신 같은 분들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소중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 4천만이 들떠서 레게춤을 흔든다 해도 단 한 명만이라도 그러지 않는 인생이 있다면 우리 문화는 죽지 않고 영원하리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지난 1세기 한국역사가 나에게 가르쳐준 값진 교훈이었다.
김효경 박사는 석굴에 기계설비 장치를 할 때의 개인적인 한 에피쏘드를 이렇게 회고하였다. - P228

그날 내게 다가오는 석불사 석굴의 조각은 맹목적 보편성을 드러내는아카데미즘이 아니었다. 신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도 인간적이고, 인간적이라고 말하기엔 절대자의 기품이 강하였다. 엄숙하다고 말하기엔 온화하고, 인자하다고 말하기엔 너무 엄했다. 젊다고 생각하려니 너무 의젓하고노숙하다고 말하기엔 너무도 탄력있었다. 남성으로 보려 하니 풍염하고여성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건장하였다. 그리하여 혹자의 "아버지라고 보려 하니 너무 자비롭고, 어머니로 보려 하니 너무 엄격했다"는 말도 생각났고, 이 세상의 질서와 평화가 저 한 몸에 있다는 말도 생각났다.
본존불의 고전주의적 기품이 중심을 이루면서 10대제자상의 강렬한 리얼리즘이 포진하고 있는가 하면 팔등신의 늘씬한 몸매의 문수·보현, 제석천·범천이 얇은 돋을새김으로 환상적 이상주의적 자태를 보여주며, 11면관음보살은 여지없는 ‘미스 통일신라‘로 석면을 뛰쳐나올 듯한 자세로 다가온다. 고개를 들어 감실의 세상 둘러보니 지장보살은 의젓하고을유마거사는 열변을 토하는데 유희좌(遊戱坐)로 몸을 비틀고서 무릎에 턱을 괸 어여쁜 보살은 상기도 조는 듯 눈을 내리고 있다. 그 아련한 분위기에 나는 오랫동안 넋을 잃고 있었다.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나는 무어라 표현할 말이 없었다. 그저 종교와 예술과 과학이 어우러진지고의 최미라는 딱딱하고 의례적인 정의 이상 내릴 수 없었다. 내가 "보지 않은 자는 보지 않아서 말할 수 없고, 본 자는 보아서 말할 수 없다"고한 것은 그때의 경험이었다. - P234

한탄강이 내세우고, 철원땅이 자랑하는 최고가는 명승지는 고석정이다.
철원평야를 가로지르는 한탄강 물줄기가 고석정에 이르러 펼쳐놓는 풍광은 우리나라 어느 지역에서도 볼 수 없는 호쾌한 정경이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강변의 정경은 백사장과 함께 어우러지는 들판아래쪽의 강이다. 그러나 고석정은 이른바 협곡으로, 넓은 들판이 푹 꺼진양 절벽 아래쪽으로 시퍼런 강물이 S자로 맴돌아 흘러가고 그 강 한가운데 우뚝 선 바위섬이 고석정이니 절벽 위에서 강물을 내려다보는 경관은마치도 부감법으로 조망하는 시원스런 눈맛을 갖게 한다.
이런 자연현상은 화산활동 때 일으킨 지각변동이 연출한 것이다. 철원땅 곳곳에 화산 용암이 파편으로 되어 숭숭이돌로 뒹구는 것이니, 궁예가후고구려의 도읍을 여기로 삼았는데 눈에 보이는 돌마다 구멍이 나 있는것을 보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는 것도 이 화산암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 P245

운문사에 당도하는 그 시각이 몇시이든 여장을 풀고 곧장 운문사로 들어가는 것이 나의 운문사행 답사 정코스이다. 해묵은 노송들이 시원스레뻗어올라 소나무 터널이 높이 치켜든 우산처럼 드리워진 솔밭 사이를 여유롭게 걷는다. 저 청정한 솔바람소리에 실려오는 낮은 소리를 들으며 무작정 걷는 순간 나는 법열에 든 스님보다도 더 큰 행복을 느낀다. 냇물이흐르는 소리이든, 풀벌레 우는 소리이든, 바람에 스치는 마른 갈대 몸 뒤척이는 소리이든, 눈보라 속에 산죽이 춤추는 소리이든, 아니면 운문사 비구니의 염불소리이든 붉은 홍송은 하늘로 치솟고 소리는 낮게 가라앉는다.
API운문사 솔밭은 우리나라에서 첫째는 아닐지 몰라도 둘째는 갈 장관 중의 장관이다. 서산 안면도의 해송밭, 경주 남산 삼능계의 송림, 풍기 소수서원의 진입로 솔밭, 봉화군 춘양의 춘양목・・・・・・ 내 아직 백두산의 홍송을 보지 못하여 그 상좌를 남겨놓았지만 남한땅에 이만한 솔밭은 드물 것같다. - P278

운문(雲門) 이라! 그 내력은 운문선사에서 따온 것이지만, 문자 그대로운문사는 구름문을 젖히고 들어오듯 안개가 짙게 내려앉는다. 그리하여붉은 홍송줄기가 습기를 머금어 불그스레 피어오를 때 운문사 소나무들은더욱 아름답다. 마치도 늘씬한 각선미의 여인들이 물구나무서기를 하고있는 듯하다. 나는 운문사 소나무의 각선미가 하도 인상깊이 박이어 이화여대 앞 어느 란제리가게 진열장에 도전적으로 배치된 스타킹 마네킹 다리를 보면서 운문사 소나무를 연상한 적도 있다.
아리따운 자태로 말하든, 늘씬한 각선미로 말하든, 늠름한 기상으로 말하든, 연륜의 근수로 말하든 운문사 소나무는 가장 아름다운 조선의 소나무이며, 조선의 힘과 자랑을 가장 극명하게 상징한다. 뿐만 아니라 운문사소나무는 조선의 아픔과 저력, 끈질긴 생명력까지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 P278

나는 겨울날의 운문사를 좋아하였다. 눈 덮인 운문사의 전경은 그 자체가 성속을 떠난 평온이라는 인상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나는 입버릇처럼 겨울날의 운문사를 말하곤 하였는데 나의 지기에게 운문사에 살면서 언제가제일 좋더냐고 물으니 지체없이 봄을 말한다.


사리암 오르는 길을 따라 운문산 학소대 쪽으로 가면 산비탈마다 낙엽송이 즐비하거든요. 이른봄 낙엽송에 연둣빛 새순이 아련하게 피어오르면 얼마나 곱고 예쁜지 몰라요. 새 생명에 대한 예찬이 절로 나와요. - P289

청도 운문사가 보존하고 있는 최고의 문화유산은 새벽예불이다. 사람들은 기행이나 답사라고 하면 아름다운 경승지나 이름높은 유물을 찾아가는것으로 생각하며 시각적 이미지의 유형문화재만을 염두에 두곤 한다. 그러나 운문사의 답사는 반드시 새벽예불을 관람하거나 참배하는 음악이 있는 기행으로 엮어져야 제 빛을 발하게 된다. 그것이 힘들다면 저녁예불이라도 보았을 때 운문사를 답사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운문사답사는 미술사 답사가 아니라 음악이 있는 기행이다.
운문사의 새벽예불은 불교방송국에서 비디오테이프로 제작, 보급하고있는 것이 있고, 통도사 스님들의 예불을 카세트테이프에 담은 「천년의소리도 나왔고, 김영동이 송광사 스님들의 예불에 대금소리를 곁들여 만든 「명상음악 선」도 벌써 전부터 보급되었으니 오늘날에는 그 가치를 인식하고 있는 분들이 많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10년 전만 하여도 나는 새벽예불의 음악성을 알지 못했고, 그처럼 장중한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 P295

이제와서 이런 얘기를 한다는 것이 부질없는 일인지도 모르지만 나의문화유산답사기』를 쓰면서 나는 그 일번지를 놓고 강진과 부안을 여러번저울질하였다. 조용하고 조촐한 가운데 우리에게 무한한 마음의 평온을안겨다주는 저 소중한 아름다움을 끝끝내 지켜준 그 고마움의 뜻을 담은일번지의 영광을 그럴 수만 있다면 강진과 부안 모두에게 부여하고 싶었다.
216실제로 강진과 부안의 자연과 인문은 신기할 정도로 비슷하며, 어디가더 우위를 점하는지 가늠하기 힘든 깊이와 무게를 지니고 있다. 강진에 월출산이 있듯이 부안에 변산이 있다. 강진에 강진만 구강포가 있듯이 부안에는 줄포만 곰소바다가 있다. 강진에 다산 정약용이 유배 와서 『목민심서』를 지었듯이 부안에는 반계 유형원이 낙향하여 『반계수록』을 남겼다.
강진이 김영랑을 낳았다고 말하면 부안은 신석정을 말할 수 있다. 강진에무위사와 백련사가 있음을 자랑한다면 부안은 내소사와 개암사로 답할 수있다. 강진이 사당리의 고려청자를 말한다면 부안은 유천리의 상감청자를말할 것이고, 강진이 칠량의 옹기가마를 말한다면 부안은 우리의 분청사기를 말할 수 있다. 강진이 동백꽃과 남도의 봄을 내세운다면 부안 역시동백꽃과 겨울날의 호랑가시나무, 꽝꽝나무의 푸르름을 자랑할 것이다. - P315

강진이 해남 대흥사와 가까이 있음을 말한다면 부안은 고창 선운사와 연계됨을 말할 수 있고, 강진이 반남의 고분군을 내세우면 부안은 고인돌까지 말할 것이며, 강진이 귀여운 석인상을 말한다면 부안은 의젓한 돌장승으로 응수할 것이다.
강진이 아름다운 곳이면 부안 역시 아름다운 곳이며, 강진이 일번지라면 부안 또한 일번지인 것이다.
월간 사회평론」에 연재를 시작하면서 내가 제일 먼저 쓴 글은 고창 선운사였다. 그 글은 곧장 부안 변산으로 이어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당시편집자가 여러 지역을 고루 써달라는 주문을 해오는 바람에 내포땅, 경주등을 두루 답사하고 강진-해남편에 와서는 편집자 요구를 무시하고 ‘남도답사일번지‘라는 제목으로 내 맘껏 쓰게 되었다. 그것이 책으로 엮어지면서 제1장 제1절을 차지하게 되었고 고창 선운사는 ‘미완의 여로‘를 남겨둔 채 맨 끝항에 실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때 쓰지 못했던 부안 변산으로 가는 길을 ‘미완의 여로‘라는 제목을 달고 이제야 쓰게 된 것이다. - P316

날이 좋아 서해의 낙조와 노을을 볼 수 있다면 그 여행은 변산의 석양이가장 강렬한 인상으로 남게 되어 여타의 유적답사가 시시해진다. 자연이주는 감동의 크기와 무게를 인공미는 감히 대항하지 못한다.
나의 미완의 여로가 1박2일 일정이면 반드시 변산이나 모항의 바닷가에서 하룻밤을 묵고, 2박3일이면 또 하룻밤을 선운사에서 묵는다. 그것이정석이다. 답사회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많이 참석한다. 그 여자들과 10년간 답사를 다니다보니 바다에 임하는 여인의 정서가 나이마다 다른 것을알 수 있었다. 노처녀는 노을진 석양의 바다를 더 좋아하고, 숫처녀는 밤바다를 더 좋아하는데, 유부녀는 아침바다를 더 좋아한다. 그 이유는 나도알 수 없는데 현상만은 그렇게 나타난다. - P324

백제 때 묘련(妙蓮)  왕사가 궁전을 고쳐 개암사를 지었다는 것이다. 작은 나라의 궁터가 절터로 바뀌었다는 얘기다.
이것이 또 뒤바뀌어 절터가 궁터로 바뀐다.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 부흥운동이 일어날 때 일본에 가 있던 부여풍(扶餘豊) 을 받들어 최후의 항쟁을 벌였다는 주류성(周留城)이 어디인가에 대하여는 충남 한산(韓山) 설과 이곳 부안설로 나뉜다. 울금산성을 놓고 위금(金), 우금(遇金), 우금(禹金), 우진(禹陳) 등 표기가 다양하고, 울금바위의 큰 굴이 백제부흥운동의 스님 복신의 굴이라고도 하고 원효방이라고도 한다. 어느 말을 믿어야 할지 나도 모른다. 다만 폐망하는 나라의 어지러운 모습만은 역력하다.
내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개암사의 저 아늑함과 넉넉함뿐이다. 그것은 끝끝내 지켜온 소중한 아름다움의 한 현장이라는 사실. 아직도 ‘미완의 여로‘ 답사길은 멀고도 먼데 떠나려야 떠날 수 없는 마음으로 돌축대한쪽 계단에 주저앉아 왜 내가 답사일정을 이렇게 짧게 잡았던가만 원망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를 결코 분리시키지 않는 역사의 접력이 아니라 아름다운 자연을 아름답게 경영한 위대한 미학의 강력한 흡입력 때문이다. 그래서 진짜로 아름다운 것은 사람의 혼을 바꾸어놓는다는 말까지도 가능해진다. 지극한 아름다움은 숭고한 이념보다도 더 위대하다고. - P344

농민전쟁의 현장에 대한 답사는 역사탐방길이다. 거기에는 문화재가 아무것도 없다. 있을 리도 없다. 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수려한 풍광을 찾거나 기대하는 자는 여기에 올 필요가 없다. 오직 드넓은 들판과 바람, 언덕 위의 솔밭과 시뻘건 황토만 있을 뿐이다. 호남의황토 중에서도 가장 붉은 빛깔을 많이 머금은 황토, 특히나 초봄에 갈아엎은 밭고랑의 뒤집어진 흙들이 아침이슬을 머금어 홍채를 토하고 있을 때우리는 100년 전 농군의 가슴에 조금은 다가설 수 있게 된다.
농민전쟁의 현장 답사에서 그 역사의 체취, 향토의 체취를 만끽하기 위해서는 걷는다는 미덕을 발휘해야 한다. 걷는 것만큼 인간의 정신을 원시적 건강성으로 되돌려주는 것이 없다. 그 미덕을 살려 나는 곧잘 녹두장군집에서 황토재까지 십릿길을 회원들과 걷는다. 버스는 황토현 전적기념관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하고 우리는 황토를 걸으면서 시골서 자란 이가 있으면 보릿대를 꺾어 보리피리를 불어보게도 한다. 납작한 토담집을 지날때면 지붕 너머로 널려진 세간살이를 넘겨보면서 무엇이 우리와 같고 무엇이 우리와 다른지를 함께 살펴보기도 한다. - P350

때면 지붕 너머로 널려진 세간살이를엇이 우리와 다른지를 함께 살펴보기도 한다. 가난하게 생긴 꽃밭에 피어난 분꽃과 달리아를 보면서 국민학교 때 가꾸던 학급 화단도 생각해본다.
그것은 동시대 같은 땅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그네들의 궁핍한 양태를 동포애로서 바라보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답사의 일정에 그만한 여유가 없을 때면 나는 호소력있는 해진목소리의 소유자를 골라 김지하의 「황토길」을 낭독하게 한다. 그럴 때면문학의 효용성과 위대함을 새삼 모두가 느끼게 된다. 

황토길에 선연한 - P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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