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1
내가 떠난 뒤에도 그 집엔 저녁이면 형광등 불빛이 켜지고
사내는 묵은 시집을 읽거나 저녁거리를 치운 책상에서
더듬더듬 원고를 쓸 것이다 몇잔의 커피와,
담배와, 새벽녘의 그 몹쓸 파지들 위로 떨어지는 마른기침소리
누가 왔다갔는지 때로 한 편의 시를 쓸 때마다
그 환한 자리에 더운 숨결이 일고,
계절이 골목집 건너 백목련의 꽃망울과 은행나무 가지위에서 바뀔 무렵이면
그 집엔 밀린 빨래들이 그 작은 마당과
녹슨 창틀과 흐린 처마와 담벽에서 부끄러움도 모르고
햇살에 취해 바람에 흔들거릴 것이다
눈을 들면 사내의 가난한 이마에 하늘의 푸른빛들이 뚝 뚝 떨어지고
아무도 모르지, 그런 날 저녁에 부엌에서 들려오는 - P82

정갈한 도마질 소리와 고등어 굽는 냄새
바람이 먼 데서 불러온 아잇적 서툰 노래
내가 떠난 뒤에도 그 낡은 집엔 마당귀를 돌아가며
어린 고추가 자라고 방울토마토가 열리고
원추리는 그 주홍빛 꽃을 터트릴 것이다
그리고 낮도 밤도 없이 빗줄기에 하늘이 
온통 잠기는 장마가
또 오고, 사내는 그때에도
혼자 방문턱에 앉아 술잔을 뒤집으며
빗물에 떠내려가는 원추리꽃들을 바라보고 있을까 부러져나간
고춧대와 허리가 꺾여버린 토마토 줄기들과 
전기가 끊긴
한밤중의 빗소리...... 그렇게
가을이 수척해진 얼굴로 대문간을 기웃거릴 

별일도 다 있지, 그는 마당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누군가 부쳐온 시집을 읽고 있을 것이다 - P83

얼마나 많은 물결을 끌어당기고 내밀면서
내뱉고 부르면서
강물은 숨쉬는가


2
그 낡은 집을 나와 나는 밤거리를 걷는다
저기 봐라, 흘러넘치는 광고 불빛과
여자들과
경쾌한 노래
막 옷을 갈아입은 성장(盛裝)한 마네킹들
이 도시는 시간도 기억도 없다
생(生)이 잡문이 될 때까지 나는 걷고 또 걸을 것이다
때로 그 길을 걸어 그가 올지도 모른다 밤새 
얼어붙은 수도꼭지를
팔팔 끓는 물로 녹이고 혼자서 웃음을 터트리는,
그런 모습으로 찾아와 짠지에 라면을 끓이고
소주잔을 흔들면서 몇편의 시를 읽을지도 모른다 - P84

도시의 가난한 겨울밤은 눈벌판도 없는데
그 사내는 홀로 눈을 맞으며
천천히 벌판을 질러갈 것이다 - P85

생활비를 벌기 위해 모터 수리공장에 일 나가던 전도사가 어느날 신학교시절에 알던 후배가 찾아올 것이니 좀 만나보라고 했다. 선배가 낯선 땅에서 개척교회를 열었으니 당연히 불원천리 위로차 온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아닌 정도가 아니었다. 전도사가 굳이 나를 부른 이유도 알 만했다.
"애인을 찾아서 왔습니다. 경산에 있는 방직공장에 위장취업을 했대요. 주소도 전화번호도 아무것도 남기지않고 갔어요. 그 여자는 내가 지긋지긋하대. 날 피해달아난 거라구요......" 그러면서도 그는 사정과는 달리밝게 웃었다. 그 사람이 박영근 시인이었다. 그는 내가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을 가진 것 같았다. 그에게 사랑은 사랑일 뿐 그밖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어떠한형식욕망도 조건욕망도 품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사랑을 사랑할 뿐 사랑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에는 관심이 - P90

없어 보였다. 그뿐 아니었다. 고통스런 현실을 말하면서도 시대적 아픔을 말하면서도, 슬픔을 과장하지도 아픔에 호들갑을 떨지도 감상에 빠지지도 궁상을 떨지도 구차스럽지도 않았다. 그가 자신에게 대단히 철저했던 것일까? 아니면 너무 깊은 좌절에 빠졌던 것일까? 단순한사고방식일까? 그가 걸어온 길에 얼마나 큰 슬픔이 있었을까? 그는 또 무엇이든 조건과 이유를 따져 묻지 않고 ‘그 자체‘를 손상하지 않고 곁에 두거나 받아들이는 습관이 있는 것 같았다. - P91

삶은 의문투성이지만, 자본지배의 시대에는 그 의문조차 그리 순수할 수 없게 된다. 많은 질문들이 본질에서벗어나 자본의 가치를 생산한다. 왜 사느냐? 하는 질문도그렇다. 그것은 삶의 근원적 의문에서 나온 질문도, 존재의 철학적 질문도, 자기성찰적 삶을 요청하는 윤리적 질문도 아니다. 오히려 이 질문은 음모적이다. 이것은 자본의 경쟁체제에 종속된 인간의, 그 행위결과의 공허함에던지는 잔인한 질문이다. 그것은 충족되지 않는 욕망을표현하면서, 경쟁은 멈출 수 없으며, 이 질문에 답할 자격을 가지려면 끊임없이 뛰어라! 아직은 멀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승자도 패자도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 그러나 자기검열의 이 질문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추궁하 - P91

고, 몰아세운다. 이것은 자본이 인간에게 강요하는 행위의 자기부정, 즉 물신화된 질문이다. 이것은 질문이 아니라 명령이다. 그 추궁을 당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자신을 위장하고, ‘그 자체‘의 외부로부터 온갖 권력장치를 끌어오고 도구적 창작물을 생산한다.
그가 대화에서, 또 그의 시에서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법은 좀체 없다. 왜?라는 질문은 외부에 던지는 질문이다. 그는 왜?가 아니라 전존재를 ‘그 자체에, 어떻게!‘ 실어갈 것인가에 관심이 있었다. 시인의 삶은 자본에 의한 인간존재의 물신화 과정에 본능적으로 저항하는 삶이었다. 그의 어떠한 일탈행위도 세상에 대한 자신만의 저항의 방식이었다.  - P92

그러나 "민중은 내가 가야 할 미래"라고 하면서도 그는 극렬한 저항시는 쓰지 않았다. 왜일까?
저항해야 할 것이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이미 물신화되어 있음을 간파하고 있었다. 이미 그는 세상의 부조리함을 인식했음은 물론 그에 저항하는 사람들조차 허위의식에 빠져 있음을 보고 있었다. 그에겐 이것이종종 큰 슬픔이 되어 세상과 정면으로 대면하지 못하게만들었다.
건전한(?) 노동생활이 없는 시인의 삶 때문에 노동문학을 생각하는 사람들 가운데 시인의 노동자성에 회의적 - P92

인 시각을 가진 사람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내 생각은 정반대다. 그가 등단 이후 줄곧 노동의 희망과 투쟁과 좌절, 그리고 민중적 삶의 진정성에 대한 미학적 고투를 쉬지 않은 것은 물론, 노동에 내면화된 자본지배의 억압적가치화로부터 시인보다 더 깊게 더 멀리 탈주에 성공한사람은 없어 보인다. 그러므로 오히려 우리 시대 최고의 노동시인으로 그를 손꼽는 데 나는 주저하지 않는다. 노동자는 노동계급의식을 가짐과 동시에 그 계급화로부터탈주해야 하고, 노동을 하면서도 동시에 노동의 판매자로부터, 자본이 구성한 삶과 가치 안에서 바로 그 가치화부터 절규하고 탈주하지 않으면 계급동일성에서 벗어날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계급의식으로 무장하고 계급해방을 해야 한다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국가와 권력관계속에서 자신의 계급을 구성하고 다시 국가와 권력 장악을 통해서 자신을 해방해야 하는, 권력 원환(圓環)의 폐쇄회로에 갇히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곧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대립하여 분열되어 있다는 말이다. 노동은 노동계급 안에서가 아니라 노동 이상의 그 무엇에서, 자신을 상품으로 팔아야 하는 판매자 이상의 그 무엇에서만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그것을 누구보다잘 알고 있었다. "악기 공장/닫힌 철문 앞에서/원직복직 - P93

을 외치는 그의 쉰 목소리를/희망이라고 불러도 좋은 것일까 (...) 돌아볼 옛날도/훗날도 없는 텅 빈 시간"(「희망에 대하여」,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이라고 한다. 원직복직을 하고 나면 다음날부터 다시 그 지긋지긋한 노동의시간이 온다. 눈물겨운 그것을 희망이라고 불러도 좋은것일까, 반문한다. 이 과정이 부르주아국가를 전복하고권력을 장악한 이후에도 다를 바 없음은 현실사회주의에서도 보아온 것이다. 그러면 그는 무엇을 희망이라고 말하는가?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말한다. "돌아볼 옛날도/훗날도 없는 텅 빈 시간"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죽은 노동의 시간을 말하는 동시에 죽음 후의 시간을 암시한다.
아직 탐사되지 않은 시간이다. 시인은 그곳까지 탈주하였다. 물론 시인의 절망이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아니 더 큰 절망이 기다리고 있다. - P94

어떤 죽음은 너무도 생생하여
다른 죽음들을 삶과 혼동하게 만든다.
어떤 죽음은 어둠이 검음보다 더 명징하여
대낮을 빛바래게 한다.
너무도 가혹한 삶의 증거가 죽음의 영역을 무색케 하고,
고독과 절망의 비유가 비리디비리다.
살았을 적 박영근의 문학은
간절하고 고달픈 ‘삶의‘ 노동문학이었다.
이제 그가 이 세상을 떠나며 남긴 시들을 읽자니
그의 문학은 벌써 ‘죽음 속‘ 노동문학이라는 생각이 든다.
뗀석기,간석기, 긁개, 자르개,
도구는 일찌감치 있었으되
예술이 매장 이후 비로소 출현하는 것을 보면
비유는 정작 자연형상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명상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박영근을 예로 들며
우리는 비로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죽음은 노동의 단절이 아니라 확장이다.
그 전에,
노동은 죽음의 연장이 아니라 심화다.....


김정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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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물 위로 꽃을 올리지 못한 봉오리 하나
몸이 얼마나 썩어야 자궁이 열릴까

숨을 틔울 바람 한점 없는 저 물속에
꽃도 뿌리도 없이 내가 꿈꾸는 것

한번은 미쳐버리고 싶은데
미쳐
활짝 깨어나고 싶은데

산마루엔 노을의 빛들이 벌겋게 터져 흐르고
저 봉오리 홀로 숨이 가쁘다 - P74

겨울, 나무


첫겨울의 숲에서 나무들은 지금
온몸 전부를 열어
몸속의 수분을 밖으로 내뿜고 있다
우듬지에서 떨고 있는 한잎의 안간힘도
몸속에서 들끓고 있는 대지의 기억도
남김없이 떨구고 가는 늦은 십일월,
나무들은 물관의 길을 끊고
가지 끝까지 흐르던 심장의 피돌기를 정지시키고
영하의 지상으로 자기 자신을 밀어내고 있다
한겨울 뿌리마저 얼어붙는 폭설의 밤을 견디기 위하여
얼어터지지 않기 위하여
몸의 물길에 열리던
뜨거운 꽃들을 뱉어내고
잎들을 뱉어내고
욕망의 절정을 뱉어내고 있다

그 필사적인 생존이 허공을 움켜쥐고 
흔들린다 - P80

어느 때쯤엔 나무들이 뿜어낸 물줄기가
잠시 겨울의 메마른 골짜기를 적시며 흘러갈 것이다




시작 메모 
요즘 나의 삶이 그렇고, 詩 또한 그러하다. 때로 시라는 비유의 세계가 현실의 삶과 한 치의 틈도 없이 일치되어 나타나는때가 찾아온다.
요즘 몸이 아프다. 욕망은 생의 에너지인가, 다만 추문인가.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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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근
1958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났고 1981년 반(反) 집에시 「수유리에서」 등을 발표하면서 시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취업공고관 앞에서(1984) 대열 (1987) 김미순(1993)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1997) 저 꽃이 불편하다』(2002), 산문집으로 「공장옥상에 올라』(1983) 오늘, 나는 시의 숲길을 걷는다.
(2004) 등을 펴냈으며, 제12회 신동엽창작상(1994), 제5회 백석문학상(2006)을 수상했다. 2006년 5월 11일 결핵성 뇌수막염과 패혈증으로 타계했다.




저 탑이
왜 이리 간절할까

내리는 어스름에
산도 멀어지고
대낮의 푸른빛도 나무도 사라지고

수백년 시간을 거슬러
무너져가는 몸으로
천지간에
아슬히 살아남아
저탑이 왜 이리 나를 부를까

사방 어둠속
홀로 서성이는데
이내 탑마저 지워지고
나만 남아
어둠으로 남아 - P10

문득 뜨거운 이마에
야윈 얼굴에 몇점 빗방울
오래 묵은 마음을
쓸어오는
빗소리

형체도 없이 탑이 운다
금간 돌 속에서
몇송이 연꽃이 운다 - P11

슬픈 눈빛


내 안에서 누군가 울고 있다

돌아가고 싶다고
오래 나를 흔들고 있다

한밤중인데 문밖에선 비 떨어지는 소리

아직도 그곳에서는 봄이면 사람들이 밭을 
갈고
논물에 비쳐드는 노을의 한때를
흥건하게 웃고 있는가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제들과
돌아갈 저녁 불빛이 있는가

종소리
시간의 먼 집으로 돌아가는
종소리 - P66

낡은 시영아파트 곁마당엔 노란 산수유가 
피고
울던 아이들은 젖을 물고 잠이 드는가
아직도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뜨거운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고
누군가
아픈 몸으로 시를 쓰고 있는가

빗소리에 꿈 밖 어둑한 머리말이 젖고
슬픈 눈빛 하나가
나를 보고 있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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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감시

최윤


아버지는 내가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보았던 바로 그 자세로, 등 없는 의자에 구부정하게 앉아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계셨다. 마치 아나운서에게서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이라도 받은 것처럼 고개까지약간 숙이고, 응접실을 들어서는 나의 기척에도 반응 없이 앉아 계셨다. 프랑스인 아나운서가 프랑스어로 하는 뉴스를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할것이 분명함에도 넋을 잃고 그 앞에 앉아 있는 아버지의 태도가 나와의 맞대면을 피하려는 위선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긴 주말이 시작되고있었다.
나는 목까지 칼칼하게 메어오는 야릇한 회한으로, 이미 흰머리가 온통 뒤덮인 아버지의 뒤통수를 노려보듯 주시했다. 텔레비전에서는 혁명 후 루마니아의 다각적인 변화의 전망을 분석하는 전문가의 격앙된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제는 너무 반복돼 그다지 새로울 것도없이, 몇 주일 만에 재빨리 구태의연하게 들리기까지 하는 목소리였다. - P155

벌써 수차 권했음에도 아버지는 소파를 마다하고 등 없는 의자를 고수함으로써 그러지 않아도 이리저리 부글거리는 내 심사에 불을 질렀다.
아버지가 중공에서 도착한 지 겨우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벌써 심신이 지쳐버렸다. 아무리 밤이 늦도록 뒤척거리면서 아버지가 북쪽으로 사라져버리기 전의 기억을 회상하려 노력해보아야 그것은 우스꽝스러운 것이었다. 아무리 천재라도 어찌 태어나기 이개월 이전의 일을 기억하겠는가. 그러나 아주 어려서부터 나는 어머니가 해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이며, 아버지의 월북 이후 어머니를 비롯해 집안 식구들이 겪은 쓰라리고 모진 고생담을 마치 내가 스스로 겪은일인 것처럼 착각하는 버릇이 붙어 있었다. 이 막연한 이야기들이 내가주변을 사릴 만큼 컸을 때 드디어 생생한 현실이 되어 더욱 깊숙이 뇌속에 자리를 잡아버린 후부터, 나는 이 일종의 대리 경험의 무게에 눌려, 너무 일찍 늙어버린 느낌이었다. 아버지가 내가 뱃속에 있을 때 사라졌건, 태어난 후에 사라졌건 그건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우리 같은경우에 처한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이런 종류의 아버지는 숨기면 숨길수록 더욱 일상의 갈피에 끼어들게 마련이다. 내가 비관적일 때 나는 아버지를 모방하려 했고, 낙관적일 때는 열렬히 아버지를 거부했다. - P156

어머니의 연세는 잊어버리고 형제들은 내심으로 어머니의 죽음을 아버지의 재출현 탓으로 돌렸다. 그 내심은 슬픔이 복받치는 순간에 공공연히 발설되어 아버지는 단번에 어머니에게뿐 아니라 우리들에게까지도 파국만 몰고 오는 죽음의 사자로 단정되기에 이르렀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우리는 아버지를 잊었다. 외국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큰형을대신해 아버지의 초청 절차를 맡은 내가 다시 편지를 쓰기 시작한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석 달이나 지나서였고, 그에 대해 아버지는 한참 동안 답신이 없었다. 그리고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 앞으로 쓴, 가위철학적이라고 할 만한 감동적인 어조로 저세상에서의 재회를 약속하는장문의 편지가 서울의 형과 내게 똑같이 도착했다. 아버지가 보낸 최초의 긴 편지였다. 이후 나는 이상하게도 어머니 생전 때보다도 더욱 열심히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답신은 다시 길어지지도 잦아지지도 않았다 - P159

이윽고 여행객들 틈에서 구식 양복에 군청색 솜 외투를 걸치고 귀밑머리를 바짝 깎아 더욱 뾰족해 보이는 얼글을 꼿꼿이 쳐들고 걸어나오는 노인을 발견했을 때, 나는 기억에도 없는 아버지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국제공항을 채운 수많은 환영객의 시전도 잊고 나는 그때 당장에는 난생처음 보다시피 한 노인이 되어버린 아버지의 품으로 달려가 그 자리에서 한바탕 대성통곡을 했다. 뿌리깊은 통한과 원망이 뒤섞인 통곡임에 틀림없었으나, 그것은 아버지를 되찾은 데서 오는 감격이나 본능적인 부자지정에서 우러난 것이라기보다는 이년 이상이나 질질 끌어온 아버지의 여행 초청 문제가 거의 해결되었을 무렵, 그토록 바라던 남편과의 재회를 눈앞에 두고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서러움이 복받쳐 올라온 까닭이었다. 유복자나 다름없는 나의 출생부터 시작해 늦게까지 독신으로 있는 나의 처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당신의 불찰 때문이기라도 한 것처럼 각별히 안쓰러워하시며 막내아들 뒷바라지를 위해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 와서 불편한 말년을 보내시다 끝내는 돌아가시고 만 어머니를 부르며 나는 바짝 마른 노인의 협소한 품안에서 헛몸부림을 쳐댔다. 아버지의 품안에서 아무리 ‘어머니이‘를 외쳐대고 얼굴을 비벼대보아야 척 와붙지 않는 껄껄하고 스산한 감촉이었다. 쭈글쭈글 주름으로 늘어진 눈꺼풀이 열리고 백태가 한 귀퉁이를 덮기 시작한 아버지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머니가 우리들의 어린 시절 귀에 못이 박히도록 그리고 또 그려낸 신화 속의 젊은 이하운의 모습을 지워버리는 처참한 눈물이었고,
나는 잠시 어머니가 이런 모습의 아버지를 맞대면하지 않고 눈을 감으신 것이 어머니의 의도적인 결단이기라도 한 듯한 착각에 빠졌다. - P163

"... 그러나 네가 어찌 들을는지는 몰라도 나는 어느 누구에게 무릎 꿇고 용서를빌 일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니라. 너희 세 형제와 네어미가 내 월북 이후 겪은 수모를 내가 상상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에대해서는 나로서도 할말이 없다. 그러나 너도 이제 세상이 뭔지 알 만한나이에 이르렀으니 얘기한다만, 그 수모의 책임 소재지를 나 한 개인에게 돌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 바란다. 물론 나는 아비 없이 성장한 경제적이고 심리적인 수모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이 땅에는없는 네 어미는 알고 있겠다만, 나는 합의하에 내 뜻을 따라, 내 처지의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다시 데리러 올 것을 약속하고 북으로 갔다. 모든일에 어찌 갈등이 없었겠고 철없는 두 아들에, 특히 만삭을 바라보는 아내를 두고 떠나는 심경에 어찌 마음의 찢김이 없었겠느냐. 그러나 뜻없이 건성으로 사는 일이 그 당시나 지금이나 내게는 가장 큰 부끄러움이니 어찌하랴. 용서할 거리가 없다고 우기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 아비는 잘 알고 있다." - P179

아버지의 말씀은 점점 더 내가 전혀 예상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잠시 사라졌던 아버지에 대한 의심이 다시금 솟아올랐다. 삼년가량이나 기다리면서 아버지가 내게 보일 수 있는 모든 태도를 상상하고 또 상상해본 나였지만 지금 아버지가 펼치고 있는 종류의 말은 너무 뜻밖이어서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이기는커녕 아버지 사고의 끄트머리를 따라잡느라 지독한 혼란을 겪고 있었다. 일생을 망령에 시달려온우리 가족에 대한 모욕 같기도 하고,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은, 어느쪽에 발을 디뎌야 할지 곤란한 말씀이었다. 한 가지 분명하게 드러나는것은 ㅡ내게는 부당하게만 보이는ㅡ 아버지의 당당함이었다.  - P179

"조금 남았습니다."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십여 년 전의 어느 
여름, 친구들과 어울려이곳을 방문했을 때의 한 장면이 기이한 선명함으로 다가왔다. 그때도 나를 포함한 세 명의 유학생은 파리 관광안내서에 따라 이곳에 왔고 역시 안내서에 씌어 있는 대로 파리코뮌의 막바지에 이곳에 스며든 국민병을 정부군이 생포 사살해 그 자리에 묻었기 때문에 역사적인 장소가 된 그 장식 없는 벽 근처로 다가갔었다. 다른 친구들은 꽃다발 하나로 조촐하게 남아 있는 흔적 없는 벽을 기억하고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내게 되살아오는 우울하고도 적막한 기억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우리가 그 벽 바로 앞에 있는 잔디밭에 앉아 막 사진을 찍고 났는데 검정 바지에 흰 와이셔츠를 입고 상고머리를 깎은, 비슷한 외양의 세명의 동양인이 그 벽 앞으로 다가갔다. 그들 중의 약간 나이가 있어 보이는 사람이 말했다.
"이곳이 불란서코뮌 당시 147명의 위대한 인민혁명 전사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싸우다가 무참히 사살된 역사적인 장소니 동무들 잘 봐두라우."
엉뚱한 장소에서 모국어를 듣는 순간 반갑다는 생각보다는 그늘에앉아 지친 다리를 쉬고 있었던 우리들은 제각기 자신도 모르게 폈던 다리를 모아들였다. 그러고는 그 특이한 사투리와 용어로 우리말을 주고 - P188

받은 사람들을 기이한 동물 보듯이 바라보았다. 막 유학생활을 시작한 우리로서는 난생 처음으로 가까이서 보게 된 북한 사람들이었다. 옆에 있던 유학생들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스쳐지나갔는지는 알 수 없어도 어느 누구도 그들 앞에서 입을 뗄 엄두를 내지 못한 채 일종의 방어심리와 호기심이 뒤섞인 모호한 표정을 하고 서로의 눈치만 보았다.
이 불편한 장면이 이토록 선명하게 기억에 되살아나는 것은 그 순간 내가 바로 아버지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나 자신 또한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에게 감히 말을 걸거나 다가간다거나 하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을 뿐 아니라 이상하게도 미친듯이 뛰는 심장 때문에 더더욱 위축된 채 숨을 죽이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저들이 빨리 설명을 좀 마치고 가버렸으면 하는 마음과 우리들의 시선을 인식하지 않고 좀더 머물러 더 떠들어주었으면 하는 상반된 감정에 묻어오던 그 어색한 거리감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의 얼굴 위에서 환각처럼, 기억에도 없는 젊은 시절의 아버지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 P189

나는 한바탕 들이닥치는 바람에 오버의 깃을 올릴 생각도 잊고 칠십대의 노인답지 않은 빠른 걸음으로 저만큼 앞서가시는 아버지의 구부정한 뒷모습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마치 십여 년 전 그 불편하던여름날 이곳에서 아버지 생각을 한 이후부터 줄곧, 행여 아버지를 만날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오기라도 한 것 같은 감정의 착각에 사로잡혀 나는 뛰다시피 아버지에게로 다가갔다. 정말 추우신지 바람에 온통 붉어지기까지 한 얼굴을 돌리시며 아버지께서 다시 물으셨다.
"거참 바람 한번 극성스럽구나. 아직도 멀었냐?"
나는 길 저쪽 끝에서부터 또 한차례 몰려오는 바람을 막을 양으로, 아버지의 어깨를 껴안으면서 대답했다.
"이젠 거진 다 왔습니다. 아버지." - P190

최윤이 이 단편을 발표하던 1990년 10월은 유럽의 세계사적 변화가절정에 올랐을 때였다. 나는 이 무렵에 베를린의 변화와 통일의 과정을목격했으며 한국 신문에서 여러 갈래의 논쟁이 어지럽게 진행되는 것을 희극처럼 멀리서 바라보았다. 좀 과장된 선배들의 전향 몸짓이 있는가 하면, 이런 변화가 보다 차원 높은 사회주의적 새로운 단계를 위한것이라는 자위적이고 비현실적인 후배들의 교조주의가 고집을 부리기도 했다. 평양에서 돌아오는 길에 옆자리에 앉았던 잘생긴 북한 외교관이 순회대사로 아프리카에 간다면서 줄줄이 무너져가던 수교국에서어떻게 밀린 돈과 식량을 받아낼지 걱정하던 모습도 목격했다. 북에서는 그맘때에 굶주림이 시작되었고 광범위한 아사를 불러온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 P196

내가 앞서 다룬 아버지를 잃어야 했던 남성 작가들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소설이 바로 최윤의 「아버지 감시」다. 어째서 작가는 제목에서 아들과 아버지의 만남을 ‘감시‘라고 왜곡시켜 말하는지 곰곰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 단편이 단순하게 이산이라든가, 화해라든가, 무슨 분단 극복이라든가 하는 화두로 시작하는 게 아님을 제목에서 읽을 수 있다. 남과 북의 개인이 만나는 것은 모두 ‘감시와 첩보전‘의 대상이며, 이는 지금도 세계 어느 곳에서든 코리안의 자의식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망령인 것이다.
가장이 떠나고 원한과 그리움의 복잡한 갈등 속에 있는 어미와 아들들의 내면을 이렇듯 실감나게 깊이 있게 다룬 작품이 드물고, 아버지와 - P196

아들이 외국에서 만나 한집에서 보내는 며칠이 이렇게 긴장 속에서 밀도 있게 묘사된 것에 나는 놀랐다. 1980년대 전반을 프랑스에서 유학생활로 보내면서 자연스레 ‘한반도에 대한 거리감‘을 갖게 된 작가의 노련한 처리라고나 할까. 이 상징적인 부자의 만남을 통해 작가는 세계 속에서의 분단을 바로 세계사적 변화의 와중에서 능숙하게 포착해낸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이탈한 자가 으레 그러듯이 북을 비난하지 않고 젊은 날 이념에 사로잡혀서 갔던 그 길을 개인으로서 견지해가는 의연한 ‘위엄‘을 보인다. 그리고 각기 다른 세계의 삶을 살았던 부자는 화해가 아닌 ‘이해의 길‘로 페르 라셰즈 묘지를 안내하며 따라간다.
나는 최윤의 이 소설에서 경계에 설 수밖에 없는 한 개인으로서의 망명자의 운명을 엿본다. 온전히 바라보는 한반도란 바로 남도 북도 아닌곳에 서 있는 자의 시선이라야 가능하다. 그것이 나의 ‘자기 연민‘을 자극했고 눈물이 고이게 만들었다. 오윤의 판화 <애비>가 생각난다. 아비가 아들의 어깨를 짚고 온 길을 되돌아보던 화면의 불안한 여백 저쪽이. 그리고 문득 ‘무하마드 깐수‘ 정수일의 ‘실크로드‘가 떠오른다. 그의 사무실 벽에 걸려 있던 만공滿空의 탁본 글씨 ‘世界一花‘도 생각난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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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한 이십 년
-1974년 봄, 또는 1973년 겨울

이인성


그때 그가 돌아오려 했던 곳은 어디인가? 여기인가? 그렇다면, 여기서. 그가 여전히 돌아가려 했던 곳은 어디인가? 어디론가 돌아가야 한다는 막연한 절실함, 그는 지나는 길에 잠시 머문 춘천을 떠나 돌아오기 위해 서울행 직행버스에 앉아 있었다. 탑승대 옆 벽시계의 커다란 분침이 뚝 일 분을 건너뛰어 네시 사십분을 가리킬 때 버스는 움직이기시작했고, 그는 또 뜻 모를 조바심을 느꼈다. 종합 정류장을 빠져나온버스는 왼쪽으로 방향을 꺾더니 곧 나타난 다리 위로 올라섰다. 다리 아래로, 반쯤 얼어붙은 너른 물폭의 공지천이 길게 내려다보였다. 깨끗하게 기슭을 다듬은 강둑 가까이 보트 한 척이 얼음 속에 갇혀 있었고, 그안에 두터운 파카옷을 껴입은 한 쌍의 남녀가 앉아 있었다. 헛되이 얼음을 저어 나가려는 것일까? 그 장면을 바라보며 불현듯 꿈터오는 그의상상 속에서, 남자가 말했다. 사랑해. 물끄러미 남자를 바라보던 여자가피식 대꾸했다. 안 믿어. 순간, 그의 두 손이, 가슴 밑으로 한낱 바늘처럼 날카롭게 관통해들어오는 통증을 움켜잡았다. - P97

헤아릴 수도 없는 작은 소리의 응어리들이 방안에 투영된 창문 앞의 사철나무를 두드린다. 소리는 나무를 물들이고, 불빛은 물기 속에 스며 나무를 드리우고 있다. 그 불빛들은 여기저기 가지의 끝에서나 잎새의 끝에서 다시 뚝 뚝 뚝 떨어져내린다. 방안 창 밑의 깊은 어둠 속으로 불빛들이 스러질 때, 어둠의 우물안에서는 설핏 빛의 소리들이 울려나온다. 창문을 열고, 나는, 그 깊은깊이를 향하여 몸을 기울인다. - P147

나는 물론 이 소설의 이야기꾼이지만, 이 소설에선 이야기꾼으로서의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본문 안에서도 여전히 이 책표지에 인쇄되어 있는 이름의 존재와 동일한 이인성이고자 하는 것이다. (…) 작가와는 다른 이름으로 무수히 가능한 다른 이야기꾼들이란, 새로운 두께로 겹쳐져, 나로 하여금 바로 나와 또하나의 나사이를 오가게 하는, 그 사이 속에 개입해 들어오는 타인의 얼굴로 다가오는 것이다. (...) 이름과 함께, 그는 나를 벗어나 독자적인 주체이자 대상이 될 테지. 나로부터의 분열이든 확산이든, 그때 하나의실체인 그는 이미 그인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 나는 그를 고스란히나 자신으로 품고 싶다. 원심력의 욕구를 가지고 나로부터 떨어져나가려는 한 의식의 반대편으로 일종의 구심력을 작용시키며, 내가 팽팽하게 둥근 하나의 폭으로 열리도록. (이인성, 「문학에 대한 짧은 생각들) - P154

열거한 기억들이 순서대로 나온다면 독자가 읽기에 얼마나 편하겠는가마는, 마치 손가락 깍지를 마주 끼듯이, 아니 손가락이라기보다는 실뜨기를 하듯이 기억들이 얽혀 있다. 그러고는 이러한 모든 기억의 서사가 끝나고 글쓰는자인 ‘나‘가 나타나 그 드러냄을 위해서 이 대목이 있는 것처럼, 비 내리는 이른 여름 밤의 빗소리를 전한다. 그것도 현재의회상 시점을 밝히려는 목적인 것 같다.
이들 젊은 날의 자잘한 상처를 짚어나가는 잡다한 편린들은 엄살을부리거나 심각하지도 않고, 그맘 때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시시껄렁하게 드러낼지언정 과장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지켜보는 나는 안쓰럽고 어딘가 아프게 느낀다. 도와줄 수도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고 그냥 등뒤에서 묵묵히 지켜본다. 남들도 내게 그러했으리라. ‘한국문학은 1974년에 스물서너 살이 된 한 상처받은 젊은이의 전형적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김현은 쓰면서 그 모습이 성숙하다고 덧붙인다.
심야 공항의 환승구역을 서성대는 여행자가 떠오른다. 그는 불 꺼진쇼윈도 위에 비치는 자기 모습을 힐끗 바라보며 지나간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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