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나 로웬하웁트 칭Anna Lowenhaupt Tsing

인류학자. 캘리포니아대학교 산타크루스캠퍼스 교수. 글로벌 자본주의를 주로 인간 사회의 정치경제적 행위로 분석하던 학계에 환경, 생태, 풍경, 다종민족지와 같은 생태인류학적이고 포스트휴머니즘적인 관점으로 이론적 지평을 넓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학자다. 첫 번째책 다이아몬드 여왕의 세계에서』로 1994년에 해리 벤다 상을, 두 번째 책 『마찰: 글로벌 연결에 관한 민족지로 2005년에 미국민족지학회가 수여하는 시니어북 상을 수상했다. 2007년부터 송이버섯 세계를 연구하는 모임 ‘마쓰타케 월드 리서치 그룹‘을 조직해 송이버섯의 다종적 결합 및 송이버섯을 둘러싼 상품사슬을 세계 여러 나라의 학자들과 공동으로 연구하고 있다. 2013년부터 5년간 덴마크국립연구재단에서 후원하는 오르후스대학교 닐스 보어 교수직을 수여받았고, 동 대학 인류세연구센터 소장으로 인문·사회 과학, 자연 과학, 예술을 포괄하는 초학제적 연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책을 비롯해 칭의 최근 연구는 인류세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함께 훼손된 지구환경에서 형성되는 다중의 관계와 이를 통한 삶의 방식을 논의한다.

넓게 번지는 버섯갓들로 가득한 다카마토 능선, 채워지고, 번창하고ㅡ. 가을 향기의 신비.
-8세기 일본의 시가집 만요슈 중에서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는가?
나는 산책을 한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버섯을 발견한다. 버섯을 통해 내 감각은 되살아난다. 꽃처럼 소란스러운 색깔이나 향기를 지 - P21

니고 있어서가 아니다. 버섯은 불현듯 나타나, 다행히도 내가 그곳에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그러면 불확정성indeterminacy의 공포 속에서도 아직 즐거움이 있음을 알게 된다.
물론 공포는 존재하며, 나만 느끼는 것도 아니다. 세계적인 기후 위기가 들이닥치고 있고, 산업 발전은 100년 전 어느 누가 상상했던 것보다 지구 생명체에 더 치명적임이 증명되었다. 경제는 더는 성장이나 낙관적 전망을 제시하지 않는다. 어떤 일자리든 간에 앞으로 닥칠 경제 위기로 사라져 버릴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비단 새롭게 등장하는 재앙만은 아니다. 나는 우리모두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왜 그리로 가는지 설명할 방법이 없음을 깨닫는다. 불안정성 precarity은 한때 불우한 이들만의 운명으로여겨졌다. 이제는 우리 모두의 삶이 불안정한 것 같은데, 돈을 벌고 있는 순간에도 그렇다. 20세기 중반에 글로벌 북반구‘의 시인과 철학자는 자신들이 우리 cage 안에 너무나 안정된 상태로 갇혀있다고 느꼈던 반면, 오늘날 글로벌 북반구와 글로벌 남반구의 많은 사람은 곤란한 상황과 끝없이 마주치고 있다.
이 책은 불확정성과 불안정성의 상황, 즉 안정성에 대한 약속이 부재하는 삶을 탐구하기 위해 버섯과 함께 떠난 나의 여행 이야기다. 1991년에 소련이 무너지자 갑자기 정부 지원을 못 받게 된 - P22

수천 명의 시베리아인이 버섯을 따러 숲으로 달려갔다는 이야기를읽은 적이 있다. 내가 쫓는 것이 이러한 버섯은 아니지만, 이 이야기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담겨 있다. 바로 우리 것인 줄만 알았던통제된 세계가 실패했을 때, 통제받지 않는 버섯의 삶이 선물이자길잡이가 되어준다는 것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버섯을 건네줄 순 없지만, 나를 따라 이 프롤로그 서두의 시에서 예찬한 ‘가을 향기‘를 음미해보길 바란다. 이 향기는 일본에서 매우 귀히 여기는 향이 진한 야생 버섯인 송이버섯 냄새다. 송이버섯은 가을의 상징으로 사랑받고 있다. 그 냄새는 여름의 풍요를 상실한 슬픔을 환기시키지만, 가을의 날카로운 강렬함과 고조된 감수성 또한 불러일으킨다. 전 지구적 진보의 풍요로운 여름이 끝날 때, 이러한 감수성이 필요할 것이다. 가을 향기는 확실하게 보장하는 것이 부재하는 보통의 삶으로 나를 데려간다. 이 책은 20세기에 안정성이라는 전망을 제시했던 근대화와 진보의 꿈에대한 비판이 아니다. 나보다 앞서 많은 분석가가 이미 그러한 꿈을분석한 바 있기 때문이다. 한때 우리는 그런 꿈에 기대어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다 같이 알고 있다고 여겼다. 이제 내가 다루고자하는 것은 근대화와 진보의 꿈에 대한 비판 대신, 그런 발판 없이사는 삶에 상상력을 동원해 도전해보는 일이다. 만약 우리가 송이버섯 진균이 갖는 매력에 마음을 연다면, 송이버섯은 우리를 호기 - P23

심의 세계로 인도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에는 그러한 호기심이야말로불안정한 시대에 협력해 생존하기 위한 첫 번째 필요조건이다.
어느 급진적 팸플릿은 이 도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많은 사람이 외면하려 하는 망령은 세계가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는 단순한 깨달음이다. ... 만약 우리가 전 지구적 혁명의 미래를 믿지 않는다면, (항상 그래왔듯이) 현재를 살아야만 한다.
- P24

송이버섯은 인간이 교란한 숲에 산다. 쥐, 너구리, 바퀴벌레처럽 송이버섯도 인간이 만든 환경 문제의 일부를 기꺼이 참아주고있다. 하지만 송이버섯은 유해 생물이 아니다. 송이버섯은 귀한 고급 식재료이며, 적어도 일본에서는 높은 가격 때문에 종종 지구상가장 귀한 버섯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송이버섯은 나무에 영양분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척박한 땅에서도 숲이 조성될 수 있도록 돕는다. 송이버섯을 따라가다 보면 환경 교란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우게 된다. 이것이 환경을 더 훼손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지만, 여하간 송이버섯은 협력적 생존의 한가지 방식을 보여준다.
송이버섯은 글로벌 정치경제의 균열도 분명히 보여준다. 지난30년간 송이버섯은 북반구 전역의 숲에서 채집되어 신선한 상태로 일본에 배송되면서 글로벌 상품이 되었다. 많은 송이버섯 채집인은 삶의 터전과 선거권을 빼앗긴 문화적 소수자다. 예컨대 미국태평양 연안 북서부에 거주하는 가장 상업적인 송이버섯 채집인들은 라오스와 캄보디아에서 이주해온 난민이다. 송이버섯은 가격이높기 때문에 어디에서 채집되든 생계에 큰 도움이 되며, 문화 회생cultural revitalization을 촉진하기도 한다. - P26

석기시대로 돌아가자고 제안하는 것이 아니다. 내 의도는 반동적이지도, 심지어 보수적이지도 않으며, 그저 전복적일 따름이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상상력은 자본주의와 산업주의처럼, 그리고 인구가 그런 것처럼 오로지성장만을 꿈꾸는 일방향 미래에 갇혀 있는 것 같다. 나는 돼지가 제 길을 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내려는 것뿐이다.
-어슐러 K. 르 귄 - P45

이것이 우리가 알아야 할 이야기다. 산업적으로 탈바꿈한다는 것은 생계 터전을 잃고 풍경을 훼손하게 될 물거품 같은 약속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런 기록에 미처 담기지않은 이야기가 있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쇠락의 결말로 마친다면모든 희망을 저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약속과 붕괴가 거듭되는 다른 장소로 눈을 돌리는 것에 지나지않을 것이다. - P47

우리는 날마다 불안정성에 관한 뉴스를 접한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도 있고, 일자리를 가져본 적이 없어 분노하는 사람도 있다.
고릴라와 민물알락돌고래는 멸종 위기다.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태평양군도 전체가 물에 잠긴다. 그러나 대체로 우리는 이런 불안정성을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에서 예외적 상황이라 여긴다. 불안정성은 체계에서 ‘예외‘라고 말이다. 그런데 만약 불안정성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 시대의 조건이라면 어떨까? 아니, 달리 말해서 우리 시대가 불안정성을 인지할 단계에 이른 것이라면 어떨까? 불안정성과 불확정성, 또 우리가 사소하게 여기는 무언가야말로우리가 추구하는 체계성의 중심을 이루는 것들이라면?
불안정성은 타자들에게 취약한 상태를 말한다. 예측 불가능한 마주침은 우리를 변모시킨다. 우리는 우리 자신조차 통제할 수 없다. 공동체의 안정적인 구조에 의존할 수 없는 우리는 가변적인 배치로 내던져지고, 이로써 우리와 관계된 타자뿐 아니라 우리 자신 - P51

도 재형성된다. 우리는 현재의 상황에 의존할 수 없다. 우리의 생존 능력을 포함한 모든 것이 유동적이다. 불안정성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다른 방식의 사회 분석이 가능하다. 불안정한 세계는 목적톤이 없는 세계다. 시간 본연의 무계획성을 뜻하는 불확정성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지만, 불안정성을 놓고 생각해보면 불확정성도삶을 가능케 한다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이 모든 얘기가 이상하게 들린다면, 그건 순전히 우리 대부분이 진보와 근대화를 꿈꾸도록 길러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틀에서미래로 이어질지 모를, 진보 및 근대화와 관련된 현재의 일부가 선별되고, 나머지는 역사에서 ‘떨어져 나가는‘ 사소한 것으로 취급된다. 여러분은 내게 되물을 것이다. "진보? 그건 19세기의 관념이요." 일반적인 상태를 말할 때 ‘진보‘라는 용어를 쓰는 일은 드물어졌고, 20세기 근대화조차 구식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디서든 우리는 진보와 근대화를 향상과 연결 지어 범주화하고 가정한다. 우리는 날마다 진보와 근대화의 목적-민주화, 성장, 과학, 희망을 상상한다. 왜 우리는 경제성장과 과학의 발달을 기대하는가? 발전이라고 명시하진 않더라도 역사에 관한 우리 이론들은이런 범주들에 물들어 있다. 우리들 개개인의 꿈도 마찬가지다. 다같이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은 꺼내기조차 어렵다는 것을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구태여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필요가 있을까? - P52

그러나 생존이란 무엇인가? 미국에서 유행하는 판타지를 살펴보면, 생존이란 항상 다른 존재와 싸워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을뜻한다. 미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외계 행성 이야기에 등장하는 ‘생존‘은 정복과 팽창의 동의어다. 나는 생존을 그런 의미로 사용하지 않겠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열린 마음으로 다른 의미를생각해보기 바란다. 어떤 생물종이든 살아 있기 위해서는 살기에적합한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이 주장하는 바다. 협력이란차이를 수용하며 일한다는 의미로, 이것은 곧 오염으로 이어진다.
협력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죽는다.
대중적인 판타지만이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하나만 살아남고나머지는 다 죽는다는 식의 이야기가 학자들 사이에서도 통용된다. 학자들은 생존을 인간이든 비인간이든 (생물종, 개체군, 유기체, 유전자 등 어떤 ‘개별자individual ‘이건 간에) 개별적 이익의 증진이라고 상상해왔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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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휴일
박준


아버지는 오전 내내
마당에서 밀린 신문을 읽었고

나는 방에 틀어박혀
종로에나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날은 찌고 오후가 되자
어머니는 어디서
애호박을 가져와 썰었다

아버지를 따라나선
마을버스 차고지에는
내 신발처럼 닳은 물웅덩이

나는 기름띠로
비문(非文)을 적으며 놀다가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바퀴에
고임목을 대다 말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이번 주도 오후반이야" 말하던
누나 목소리 같은 낮달이
길 건너 정류장에 섰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문학동네 2012) - P94

주인
이홍섭


아이가
힘겹게 뒤집기를 시작하면서
이 철없는 세상을 용서하기로 했다

마흔 넘어 찾아온 아이가
외로 자기 시작하면서
이 외로운 세상을 용서하기로 했다

바람에 뒤집히는 감잎 한장
엉덩이를 치켜들고 전진하는 애벌레 
한마리도
여기 이 세상의 어여쁜 주인이시다

힘겹고, 외로워도
가야하는 세상이 저기에 있다

터미널 (문학동네 2011) - P127

돼지머리들처럼
나희덕


하루에도 몇번씩 거울을 보며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입 끝을 집어올린다
자, 웃어야지, 살이 굳어버리기 전에

새벽 자갈치시장, 돼지머리들을
찜통에서 꺼내 진열대 위에 앉힌 주인은
웃는 표정을 만들고 있었다
그래, 이렇게 웃어야지, 김이 가시기 전에

몸에서 잘린 줄도 모르고
목구멍으로 피가 하염없이 흘러간 줄도 
모르고
아침 햇살에 활짝 웃던 돼지머리들

그렇게 웃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은 적당히 벌어진 입과 콧구멍 속에
만원짜리 지폐를 쑤셔넣지 않았으리라

하루에도 몇번씩 진열대 위에 얹혀 있다는 생각,
웃어, 웃어봐, 웃는 척이라도 해봐,
시들어가는 입술을 손가락으로 집어올린다

아- 에- 이- 오- 우-
얼굴을 괄약근처럼 쥐었다 폈다 불러보아도
흘러내린 피는 돌아오지 않는다

출근길 룸미러 속에서 발견한
누군가의 머리 하나

야생사과」(창비, 2009) - P135

첫 줄
심보선


첫 줄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써진다면
첫눈처럼 기쁠 것이다.
미래의 열광을 상상 임신한
둥근 침묵으로부터
첫 줄은 태어나리라.
연서의 첫 줄과
선언문의 첫 줄.
어떤 불로도 녹일 수 없는
얼음의 첫 줄.
그것이 써진다면
첫아이처럼 기쁠 것이다.
그것이 써진다면
죽음의 반만 고심하리라.
나머지 반으로는
어떤 얼음으로도 식힐 수 없는
불의 화환을 엮으리라.

「눈 앞에 없는 사람」(문학과지성사 2011) - P154

차심
손택수


차심이라는 말 있지
찻잔을 닦지 않아 물이끼가 끼었나 했더니
차심으로 찻잔을 길들이는거라 했지
가마 속에서 흙과 유약이 다툴 때 그릇에 잔금이 생겨요
뜨거운 찻물이 금속을 파고들어가
그릇 색이 점점 바뀌는 겁니다
차심 박힌 그릇의 금은 병균도 막아주고
그릇을 더 단단하게 조여준다고......
불가마 속의 고통을 다스리는 차심,
그게 차의 마음이라는 말처럼 들렸지
수백년 동안 대를 이은 잔에선
차심만 우려도 차맛이 난다는데
갈라진 너와 나 사이에도 그런 빛깔을 우릴 수 있다면
아픈 금속으로 찻물을 내리면서
금마저 몸의 일부인 양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창비 2014)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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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한낮


치자향 흐드러진 계단 아래 반달이랑 앉아
하염없이 마을만 내려다본다
몇 달 후면 철거될 십여호 외정 마을
오늘은 홀로 사는 누구의 칠순잔친가
이장집 스피커로 들려오는
홍탁에 술 넘어가는 소리,
소리는 계곡을 따라 산으로 오르지만
보지 않아도 보이고
듣지 않아도 들리는
그리운 것들은 다 산 아래 있어서
마음은 아래로만 흐른다
도대체 누구 가슴에 스며들려고
저 바람은 속절없이 산을 타고 오르느냐
마을 개 짖는 소리에
반달이는 몸을 꼬며 안달을 하는데
나는 어느 착한 사람을 떠나 흐르고 흐르다
제비집 같은 산중턱에 홀로 맺혀 있는가 - P54

곡진한 유행가 가락에 귀 쫑긋 세운 채
반달이보다 내가 더 길게 목을 뽑아 늘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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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 대박
싱고의 <詩누이> 에서도 박소란시인을 첫, 으로 만난다.
당신은 다정한 사람입니까?
yes.
심지어 병적으로 다정한 사람 ㅠ.ㅠ 이라고 적고나니 혼자서 뻘쭘~~~!
어이구야~! 삼월도 절반이 지나간다.




설탕

박소란


커피 두 스푼 설탕 세 스푼 당신은
다정한 사람입니까 오 어쩌면

테이블 아래
새하얀 설탕을 입에 문 개미들이 총총총
기쁨에 찬 얼굴로 지나갑니다 개미는
다정한 친구입니까 애인입니까

단것을 좋아하는 사람
달콤한 입술로 내가 가본 적 없는
먼 곳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 당신을 위해
오늘도 나는 단것을 주문하고 마치 단것을 
좋아하는 사람처럼
웃고 재잔대고 도무지 맛을 알 수 없는
불안이 통째로 쏟아진 키피를 마시며

단것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합니다
당신은 다정한 사람입니까 다정을 흉내 내는 말투로
한번쯤 묻고도 싶었는데

언제나처럼 입안 가득 설탕만을 털어넣습니다
그런 내게 손을 내미는 당신

당신은 다정한 사람입니까 오 제발 다정한
당신의 두 발, 무심코
어느 가녀린 생을 우지끈 스쳐가고

심장에 가까운 말 (창비 2015) - P22

환상의 빛
강성은


옛날 영화를 보다가
옛날 음악을 듣다가
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구나 생각했다

지금의 나보다 젊은 나이에 죽은 아버지를 떠올리고는
너무 멀리 와버렸구나 생각했다

명백한 것은 너무나 명백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몇세기 전의 사람을 사랑하고
몇세기 전의 장면을 그리워하며
단 한번의 여름을 보냈다 보냈을 뿐인데

내게서 일어난 적 없는 일들이
조용히 우거지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한다

눈 속에 빛이 가득해서
다른 것을 보지 못했다

단지 조금 이상한(문학과지성사 2013) - P32

몽유산책
안희연


두 발은 서랍에 넣어두고 멀고 먼 담장 위를 걷고 있어

손을 뻗으면 구름이 만져지고 운이 좋으면
날아가던 새의 목을 쥐어볼 수도 있지

귀퉁이가 찢긴 아침
죽은 척하던 아이들은 깨워도 일어나지 않고

이따금씩 커다란 나무를 생각해

가지 위에 앉아 있던 새들이 불이 되어 일제히 날아오르고
절벽 위에서 동전 같은 아이들이 쏟아져나올 때

불현듯 돌아보면
흩어지는 것이 있다
거의 사라진 사람이 있다

땅속에 박힌 기차들
시간의 벽 너머로 달려가는

귀는 흘러내릴 때 얼마나 투명한 소리를 내는 것일까

나는 물고기들로 가득한
어항을 뒤집어쓴 채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창비 2015) - P41

봄날
김기택


할머니들이 아파트 앞에 모여 햇볕을 쪼이고 있다.
굵은 주름 잔주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햇볕을 채워넣고 있다.
겨우내 얼었던 뼈와 관절들 다 녹도록
온몸을 노곤노곤하게 지지고 있다.
마른버짐 사이로 아지랑이 피어오를 것 같고잘만 하면 한순간 뽀얀 젖살도 오를 것 같다.
할머니들은 마음을 저수지마냥 넓게 벌려
한철 폭우처럼 쏟아지는 빛을 양껏 받는다.
미처 몸에 스며들지 못한 빛이 흘러넘쳐
할머니들 모두 눈부시다. 아침부터 끈질기게 추근거리던 봄볕에 못 이겨
나무마다 푸른 망울들이 터지고
할머니들은 사방으로 바삐 눈을 흘긴다.
할머니 주름살들이 일제히 웃는다.
오오, 얼마 만에 환해져보는가.
일생에 이렇게 환한 날이 며칠이나 되겠는가.
눈앞에는 햇빛이 종일 반짝거리며 떠다니고
환한 빛에 한나절 한눈을 팔다가
깜빡 졸았던가? 한평생이 그새 또 
지나갔던가?
할머니들은 가끔 눈을 비빈다.

사무원(창비 1999) - P47

돌멩이
오은


뻥뻥 차고 다니던 것
이리 차고 저리 차던 것

날이 어둑해지면
운동장이 텅 비어 있었다

골목대장이던 내가
길목에서
이리 채고 저리 채고 있었다

돌멩이처럼 여기저기에 있었다

날이 깜깜해지면
돌담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좁은 길로 들어서는 일이 쉽지 않았다

돌멩이처럼 한곳에 가만히 있었다

돌멩이처럼 앉아
돌멩이에 대해 생각한다 - P54

돌멩이가 된다는 것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 된다는 것
온 마음을 다해 온몸이 된다는 것
잘 여문 알맹이가 된다는 것

불현듯 네 앞에 나타날 수 있다는 것
마침내
네 가슴속에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
철석같은 믿음이 된다는 것

입을 다물고 통째로 말한다는 것

날이 밝으면
어제보다 단단해진 돌멩이가 있었다
내일은 더 단단해질 마음이 있었다

「의자를 신고 달리는」 (창비교육 2015) - P55

구름의 산책
이현승


아빠 구름은 어떻게 울어?
나는 구름처럼 우르릉, 우르릉 꽝! 얼굴을 붉히며,

오리는?
나는 오리처럼 꽥꽥, 냄새나고,

돼지는?
나는 돼지처럼 꿀꿀, 배가 고파.

젖소는?
나는 젖소처럼 음매, 가슴이 울렁거린다.

기러기는?
나는 기러기처럼 두 팔을 벌리고 기러기럭,

그럼 돌멩이는?
갑자기
돌멩이를 삼킨 듯 울컥해졌다.
소리 없이 울고 싶어졌다.

아빠, 구름은 우르르 꽝 울어요?

「생활이라는 생각」(창비 2015) - P62

슬픔
이시영


김포에서 갓 올라온 햇감자들이 방화시장 사거리 난전에서 ‘금이천원‘이라는 가격표가 삐뚜루 박힌 플라스틱 바가지에 담겨 아직 덜 여문 머리통을 들이받으며 지희끼리 찧고 까불며 좋아하다가 "저런 오사럴 놈들, 가만히 좀 있던 못혀!" 하는 할머니의 역정에 금세 풀이 죽어 집 나온 아이들처럼 흙빛 얼굴로 먼 데 하늘을 쳐다본다.

「호야네 말」(창비 2014) - P71

엄마 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오시네, 해는 시든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는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 1989)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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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란시인을 처음 만난 건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을 통해서였다. 시들이 훅! 들어왔다. <노래는 아무 것도>, <다음에>, <주소>, <배가 고파요>, <울음의 방>들에 멈춰서 서성거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용산을 추억함>.


여기에 옮기지는 않았지만 필사하면서 읽었던,  ‘너무 깊은 오해‘, ‘나의 고양이가 되어주렴‘, ‘감‘, ‘참 따뜻한 주머니‘, ‘노인‘, ‘화장실이 없는 집‘, ‘통속적 하루‘, ‘망명‘, ‘지익‘ 등등.
그리고 지금 우리들의 정서적 주소지를 묻는 시가 있다. 눈으로 몇 번을 읽고 어디서 끊어야 할지 가늠한 다음에 소리내어 읽으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우리가 자주, 꼭 읽어야 할 한 편, ˝심장에 가까운 말˝ 이 시집은 이 한 편의 시로도 충분한 값어치가 있다고 어설픈 나도 감히 말하고 싶어지는 ‘용산을 추억함‘. 역설적이게도 악몽 같은 이 사건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라도 기억해야 하는데 잊고 산다. 2009년 1월 20일의 용산을. 



용산을 추억함



  폐수종의 애인을 사랑했네 중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용산 우체국까지 대설주의보가 발효된 한강로 거리를 쿨럭이며 걸었네 재개발지구 언저리 함부로 사생된 먼지처럼 풀풀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도시의 몸 구석구석에선 고질의 수포음이 새어나왔네 엑스선이 짙게 드리워진 마천루 사이 위태롭게 선 담벼락들은 저마다 붉은 객담을 쏟아내고 그 아래 무거운 날개를 들썩이던 익명의 새들은 남김없이 철거되었네 핏기 없는 몇그루 은행나무만이 간신히 버텨 서 있었네 지난 계절 채 여물지 못한 은행알들이 대진여관 냉골에 앉아 깔깔거리던 우리의 얼굴들이 보도블록 위로 황망히 으깨어져갔네 빈 거리를 머리에 이고 잠든 밤이면 자주 가위에 눌렸네 홀로 남겨진 애인이 흉만(胸滿)의 몸을 이끌고 남일당 망루에 올라 오 기어이 날개를 빼앗긴 한 마리 새처럼 찬 아스팔트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는 꿈이 머릿속을 낭자하게 물들였네 상복을 입은 먹구름떼가 순식간에 몰려들었네 깨진 유리창 너머 파편 같은 눈발이 점점이 가슴팍에 박혀왔네 한숨으로 피워낸 시간 앞에 제를 올리듯 길고 긴 편지를 썼으나 아무도 돌아올 줄 모르고 봄은 답장이 없었네 애인을, 잃어버린 애인만을 나는 사랑했네



시집을 읽고 오래 전에 끝부분을 저렇게 썼는데 정작 시인은... 그랬단다. (끄덕끄덕)
˝오독˝ ㅡ 작품은 시인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반드시 독자를 거치게 된다.ㅡ 그것이 어디로 증폭될지.... (더 격하게 끄덕끄덕)



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오독, ‘잘못 읽거나 틀리게 읽음‘. 사전적 의미를 놓고 보면 단지 읽는 입장의 실수나 과실에 초점을 맞춘 듯 하지만 사실 실수도 과실도 아니라는것을 안다. 독자라면 글을 읽는 순간 으레 ‘창조적으로‘ 오독한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사실 또한 나를 어렵게 만드는 대목 중 하나인데, 즉 오독을 이기는 문학이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얘기니까. 우리가 "사진"이 아니라 "음악이 수반된 감각막을 원하는 한 오독은 언제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니까.
이 같은 사실은 매혹이자 동시에 두려움이다. 나는 여태껏 이 오독이 문학을 굴리는 커다란힘 중 하나라고 믿어왔다. 특히 한 번에 여러 뜻을 지시하는 시의 함축적 성질을 시의 가장 매력적인 지점이라 역설해왔다. 시적 신비라는 것이 많은 부분 여기에서 기인한다고도 생각해왔다. 하지만 오독이 수반될 수 밖에 없는 이런 과정은 때로 얼마나 위험한가. 쓰는 이와 읽는 이 모두에게 말이다. 문학이 바람직한 어떤 방향으로 오롯이 나아가, 그바람직한 방향이란 어느 쪽인지 정확히 알 수는 - P121

없으나, 누군가를 위로하고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축도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 반대에 가까운 듯하다. 카프카가 말한 "도끼날"이 "얼어붙은 호수를가르는" 것은 차치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누군가를 베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라야 할 형국이다. 문학은 가늠할 수 없는 방향으로 시시각각 증폭되어 누구든 무엇이든 상처 입힐 수 있다. 상처입히고 만다. 이것이 문학의 아픈 숙명이다.
나는 누구인가. 지금 도끼를 거머쥔 손은 어떤 것인가.


아무도 상처 입히지 않는 쓰기란, 그러므로가능한가?
나는 아직 답을 알지 못한다. 지금 내게 아무도 상처 입히지 않는 쓰기란 그저 신기루에 가까운 듯 보인다. 아무리 애를 써도 쓰는 나는 언제든무너지고 또 무너뜨릴 수 있다. 진심은 전해지지않을뿐더러 너무 쉽게 훼손되고 붕괴되는 처지에놓여 있다. 다시 말하지만, 쓰기란 얼마나 위험천 - P122

만한가. 위태롭기 짝이 없는가. 그리고 그만큼 얼마나 막강한가. 쓰는 나는 얼마나 잔혹한가. 나날이 체감하고 있다.
지금은 간신히 이 정도만을 이야기할 수 있을 뿐. 쓸 수 있을 뿐.
결국 모두 무너진다. 쓰는 이조차 그 붕괴를피할 수 없다. 붕괴하지 않는 쓰기란, 없다. 안 된일이지만 이토록 무서운 쓰기를 내가, 우리가 하고있다는 사실.
재건? 만약, 아주 만약 그런 게 가능하다면,
폐허 가장자리에서 내가 다시금 일어나 절룩이며한 삽 흙을 들어 올릴 수 있다면 먼저 이런 사실을 직시해야 하겠지. 쓰기의 무서움과 참혹함을. 그런 뒤에야 천천히 다시 무엇인가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 P123

나는 늘 실패하지만,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있고, 또다시 실패하면서, 실패를 실패하면서, 나는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지었고, 조금 더 견뎠고, 조금 더 썼고, 쓴 것들은 곧잘 지워져버리지만. 익숙한 자음과 모음, 철자들은 막무가내로 쏟아지고. 하는 수 없다는 듯 나는 또 쓰고, 쓰고, 쓰고.
금간 담벼락을 메우는 낙서들. 비뚤어진 글씨들. 때로 진심보다 더 진심인 어떤 것.
무엇을 쓸 수 있을까. 어제는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 썼고 오늘 아침에는 그가 여전히 어딘가에 살아 있을 거라는 확신과 강고한 믿음에 대해썼는데,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쓰자마자 지워져버렸다. 읽기 전에 사라지는 이상한 편지. 이상한 시.
그러나 바로 그 점이 나를 안도하게 한다, 하는 진심은 차마 발설할 수 없는 것이다. - P125

몇 시간이고 몰두하다 일어서면 현기증이 인다. 유치한 잔상에 시달린다. 시선을 가져다 대는여기저기서 기다란 막대기가 마구 쏟아진다. 손을뻗는다. 아아, 나 중독인가봐! 저 사랑스러운 헛것들. 고치고 또 고친다. 어떤 문장은 단지 고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참 다행이지? 이런 일이 세상에 있다는 게. 어딘가 기꺼이 몰두한다는 게. 시간은 군말 없이 흐르겠지. 우리는 바쁘게 늙겠지. 잊고 잊히겠지. 모든 게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럴 것이다.
테트리스가 좋다. 오늘도 하고 내일도 하자.
그러다 보면 내일 더 잘하겠지. 잘 짓겠지.
게임은 다시 시작된다. 여지없이 실패하겠지만, 그래도 하자.
테트리스를 하자. - P126

사다리를 타고


새로나세탁소와 정미부동산이 있는 삼층 건물옥상에
사람이 있다
안전모를 쓰고 토시를 낀 사람이
무언가를 뚝딱거리며 고치는 것을 응암정보도서관 일층 조그만 창으로 내다본다
시를 쓰며 본다

둘이었다가 하나였다가 다시 둘이었다가
사람이

기다란 선을 감았다가 풀었다가
사다리를 세웠다가 눕혔다가

망치를 번쩍 치켜든 오후, 해를 탕탕탕 두드리는 - P127

사람이
양손에 빵과 우유를 쥐고 잠시 난간에 걸터앉는
신발을 벗었다가 신었다가
벗었다가

먼 데를 올려다보면 하나같이 높은 곳
그 뒤로 조금 더 높은 곳

그을린 목을 한껏 젖힌다
금방이라도 닿을 듯 가까웠다가 죽어도, 죽어도 닿을 수 없을 듯 멀었다가

시를 쓰며 본다
사람이
사라지지 않는다 - P128

가까웠다가 멀었다가 가까웠다가

창을 열면
기다렸다는 듯 문장은 바깥으로
도망쳐버리고 잽싸게 날아가버리고
돌아오지 않는다

녹슨 사다리를 타고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무엇을 쓰고 있는지

땀에 전 수건 하나가 물탱크 옆에 걸려 백지처럼 펄럭일 때

하나였다가 둘이었다가 하나도 둘도 아니었다가 - P129

하늘은 천천히 책장을 덮는데
사람이
사라지지 않는다 끝나지 않는다

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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