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 소감
2013. 2. 14.
얼마 전 후배에게 전화 한받았습니다. 물기가 번진 목소리가 흔들린 건 제 처지가 안타까워서였겠지요. 검사직을 그렇게 쉽게 던질 수 있냐고 야속해하며, 저를 타박하더군요. 후배의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제 마음을 몰라주는 후배가 야속하여한참 동안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간 제일 많이 들었던, 그리고 들을 때마다 마음이 가장 아팠던 말은 ‘무죄 구형이 직을 걸 만큼 그렇게 중요하냐?"는 질문입니다. 검사의 무게가 쉬이 던질 수 있을 만큼 가벼워서가아니라, 구형이 그만큼 중요해서 부득이 직을 건 것입니다. 제가 직을 걸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구형의 무게를 동료들은너무 가볍게 보는 듯합니다. 안타까워하는 동료들의 마음을 헤아리면서도, 요 근래의 격랑에 많이 지친 제 가슴에 그 말들이멍울이 됩니다 - P75
하지만 ‘마치 검찰이 부당한 구형을 하고 과거사에 대한 입장도 잘못되었다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는 <징계 청원〉이라는글을 게시하여 외부에 전파되도록 하여 검찰 조직 내부의 혼란을 초래하고,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하게 하는 등 검사로서의 체면이나 위신을 손상하는 행위를 했다‘고 명시된 검사징계위원회 결정서를 들여다보며, 구형 변경 협의 당시 제가느꼈던 그 현실의 장벽이 얼마나 철옹성인지를 다시 한번 처절하게 절감했습니다. 그럼에도 백지 구형은 결국 시정될 관행이라는 희망을 저는 절대 놓지 않습니다. 검사게시판에 게시한 글을 징계 사유로 한 것에 대하여, - P79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글 게시를 징계 사유로 삼는 것은 극히 위험합니다. 연못의 물을 말린 다음 물고기를 잡으면 결코잡지 못하는 일이 없지만 이듬해에 다시는 물고기가 없을 것이고, 숲을 불태워 사냥하면 짐승을 못 잡는 일이 없지만 다음 해에는 짐승을 보지 못할 것이란 말이 있습니다. 제 징계 사유를 풍부하게 하는 것이 저를 중징계하는 것에당장은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는 결국 검찰의 내부 소통을 막는 비극을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검사징계위원회에서제가 아니라 검찰을 위해 검사게시판 글 게시를 징계 사유로삼는 것만은 결단코 안 된다고 간곡히 말씀드렸는데, 전혀 받아들여지지 아니하여 답답한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 P81
지난주 금요일, 제 징계를 취소하라는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막무가내 검사라는 등 언론 비난에 신문을 가려보시게 된 부모님께 바로 전화드리니 부모님의 목소리가 떨리시네요. 걱정말라고 큰소리쳤는데도, 많이 걱정하셨나 봅니다. 승소를 확신하기도 했고, 대법원까지 갈 것을 각오하고 있어 1심 판결 결과를담담하게 전화로 확인했습니다.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고 언론에 단편적으로 소개되어 오해하는 분들도 많은 듯하여 간략하게나마 말씀드립니다. - P87
2013년 12월 11일 원고의 최종진술
법은 법이 필요 없는 가지고 쥔 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 - P88
신을 보호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보호 장치입니다. 권력은 끊임없이 관행이라는 미명으로 법조문을 잠재우고, 사문화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법원과 검찰은 잠든법조문을 흔들어 깨워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우고,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을 옹호할 숭고한 의무를 부여받았습니다. 사법은 소리입니다. 법정에서 당사자의 잘못을 충고하고, 아픔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소리입니다. 그리하여 사법은개개인의 양심을 일깨우고, 이 시대와 우리 사회에 따뜻한 정의를 일깨워 사회적 약자들의 의지처가 되고, 희망이 되어야합니다. 그러한 막중한 사명을 법원과 나눠가진 검사에게 법률과 국민이 어떠한 자세를 요구하는지, 법원은 아름다운 합창을 위하여 검사에게 어떠한 하모니를 원하는지에 대한 현명한 판단을 바랍니다. - P89
징계 취소소송 경과 2 2014. 11.6.
2014년 8월 28일 항소심 최종 의견
제 사건을 간단히 정리하면, 저는 무죄 사건을 무죄라고 논고하여 징계를 받은 것입니다. 권재진 법무부 장관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무죄 구형이 아닌 상사의 직무 이전 지시위반으로 징계한 것이라고 변명했지만, 그 지시는 무죄를 무죄라고 말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어서 결국 무죄를 무죄라고 하여 징계한 것과 다를 바 없겠지요. 저는 대학과 사법연수원에서, 선배들에게서 ‘검사는 세상에서 가장 객관적인 국가기관이자 정의에 대한 국가 의지의상징‘이라고 배웠습니다. 검사는 국회의원처럼 정치적인 고려를 하지 않고, 행정부 공무원처럼 국가이익을 위해 저울질하지 않는, 오로지 진실과 정의에 따라야 할 준사법기관입니다. 검사동일체의 원칙은 검사의 권한 행사 적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것에 불과합니다. - P90
검사는 위법하거나 부당한 상사의 지시가 아니라, 법과 정의에 따라야 합니다. 법률적인 불법gesetzliches Unrecht에는 복종의무가 없습니다. 검사는 상사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충성해야 합니다. 검사는 검찰과 국가의 권력의지가 - P92
아니라, 국민과 국가의 정의에 대한 의지를 표시해야 합니다. 저는 배운 대로 검사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그결과로 징계를 받아 이 자리에 선 현실이 참 서글픕니다. 준사법기관이자 단독 관청으로서 검사가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현명한 판단을 바랍니다. - P93
오늘 제 징계 취소소송 항소심 선고가 있었습니다. 예상대로법무부 항소가 기각되었네요. 검사가 무엇인지를 두고 법무부와 다투는 비극적인 일이 없었다면 좋았겠지만, 사법 피해자가법무부에 따져 묻는 것이 아니라 검사가 법무부에 따져 묻는것이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위로하고 있습니다. 검사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만, 보잘것없는 제가 우리 검찰을 위해 무언가를 한 듯하여 뿌듯하네요. 대법원까지 가겠지만 기왕 가는 길 기쁘게 가겠습니다. 이또한 넘치는 축복일 테니까요. 저는, 우리는 권력이 아니라 법을 수호하는 대한민국 검사입니다. - P93
지난 몇 년 동안 간부들에게 사직을 종용받았고, 검사게시판글 게시 등을 이유로 징계 재회부 경고를 받기도 했습니다. 저와 친한 후배는 ‘임은정 부역자‘로 놀림받았고, 의정부지검 등지에서 저를 도와주거나 저에게 연락했던 검사들이 조직적으로 색출되는 소동을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견디다 못해, 국가배상 소송과 직권남용 고발을 결심하고 비망록을 작성하고 보이스펜을 구입하기까지 했지요. 저와 제 가족에게 참혹한 시간이었고, 우리 검찰에게도 참담한 시간이었습니다. 징계 취소소송을 제기하여 수년간 서류 공방전을 벌이며, 검사와 검찰에 대한 수뇌부의 황당한 인식과 억지를 엿보았습니다. 법무부는 검사가 무죄를 구형할 수 있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며, 이에 대한 확립된 해석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형사소송법 교재, 사법연수원과 법무연수원 검사 교육 실무 교재와 전혀 다른 주장입니다. - P95
과거사 재심 사건에서 검찰권을 올바르게 행사하려다가 오히려 중징계를 받고, 쫓겨나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며 수년간고통받은 저와 제 가족들 역시 직접적인 피해자입니다. 지휘권과 징계권, 인사권을 잘못 행사한 관계자들의 진솔한 사과를기대하는 것이 과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검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할 때, 검사의 직을 거는 용기와 희생이 요구되는 불행이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법무부 법무검찰개혁위원회 권고처럼 이와 같은 비극이 재발되지 않도록 관계 부서에서 이 사건에 관여한 분들의 권한 오남용에 대한 조사와 그 결과에 상응하는 문책, 제도 개선을 검토하고 있을 겁니다. 이에 더해 관련자들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통해 제가 막무가내 검사, 부끄러운 검사 등으로 매도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며 고통받았던 제 가족들이 다소나마위로받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P97
잠든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잠든 척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대검과 공안부에서 과거사 재심 사건 구형에 대하여 정식으로 검토하게 할 방안이 무엇인지 궁리를 거듭한 끝에 작성한 글이 <징계 청원>입니다. 날 징계하라고 몸을 던지면 징계하려고 달려들 테고, 그렇다면 백지 구형이 타당한지 여부를 정식으로 검토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소통이되지 않아 부득이 소통을 강제하려는 고육지책이었습니다. 이런 검찰이 건강한 조직일까요? 얼마 전 대검에서 전국 일선 청에 세월호 참사 관계자인 유병언과 관련된 개인 의견을 이프로스에 올리지 말라고 업무 연락을 돌린 것으로 압니다. 위기에 처하여 널리 의견을 구한 사례는 숱하게 보았어도,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것은 세월호 사건 외에는 본 적이 없습니다. 여기가 세월호입니까? ‘트리어 다다 - P111
2012년 12월 29일 어제 〈징계 청원>을 검사게시판에 11시에 올라가도록 예약게시하고, 법정 공판검사 출입문을 안에서 걸어 잠근 후 무죄구형을 했다. 후환을 예상하고 오후 반차를 미리 결재받아 놓고 재판을 끝낸 후 계속 법원을 배회하다 점심 무렵 휴대전화를 끈 채 서울 시내 인파 속으로 숨어들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었지만, 그래도 겁이 나 뭘 먹어도체하고,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아침에도 그냥 눈이 번쩍 뜨인다. 겁이 나지만 어제로 시계를 돌린다고 하여 다르게 행동할게 아닌데 견뎌내야지. 겁이 나지만, 오늘 하루도 축복임을믿는다. 역사는 행동하는 사람들에 의해 쓰인다. 당장 바뀌지는 않더라도 결국 바뀔 터. 내 의지가 그 시기를 앞당기리라고 믿는다. 난 검찰이 역사의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인데, 왜 이렇게 비장해져야 하는가. - P133
과거사 재심 사건에서 검사의 무죄 구형과 항소 포기로 신속한 1심 판결 확정. 이 마땅하고 당연한 일이 2017년 9월에야 비로소 이루어졌습니다. 수사와 기소 등 검찰권을 오남용한 검사들, 무익한 즉시항고와 상소로 무죄 확정을 지연시킨 검사들에대한 문책 역시 아울러 이루어져야 할 일인데, 언론은 검찰의직권 재심 청구와 무죄 구형에 감읍하고 환호했습니다. 정의일까요? 최선입니까? 잘못을 저지른 간부들에 대한 감찰 요구와 공익신고, 고발, 국가배상 소송 제기 등 검찰을 바로 세우기 위해 제가 할 수 있 - P138
는 일은 전부 할 각오이고, 하고 있습니다. 칼럼 기고와 SNS, 책 발간도 제 발버둥의 일환입니다. 검찰이 바로 서려면, 안과밖에서 함께 검찰을 바로 세워야 하지요. 검찰이 검찰다울 수 있도록 시민과 언론이 끊임없이 관심을기울여주시고, 검찰의 해명과 홍보 발언에 고개를 바로 끄덕이지 마시고 진의가 무엇인지, 숨겨진 진실이 무엇인지를 숙고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법과 원칙에 따른 검찰권 행사에 대한요구와 비판을 잠시도 멈추지 말아 주시기를 더욱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 P139
갑자기 입안으로 들어오는 물컹한 혀에 술이 확 깼지만, 어찌할 바를 몰라 "부장님, 살펴 가십시오"라며 아무 일 없는 척인사를 하고 돌아서 복도식 아파트를 걸어 관사로 돌아오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생각을 정리하느라 뒤따라오는 걸음소리도 못 들었지요.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제 등을 확떠미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주저앉아 문이 닫히지않게 문턱에 발을 걸고 한 손으로 문 모서리를 잡았는데, 안으로 들어간 부장이 제 오른손을 힘껏 잡아당겼습니다. "임 검사, 괜찮아. 들어와." 비명을 지를 수 없었습니다. 복도식 아파트가운데 있는 집이었고, 경주지청 관사인 것이 널리 알려져 있었거든요. 밖에 알려지면 검찰이 망한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습니다. 비명을 지르겠다고 위협하고 실랑이 끝에 겨우 내보냈는데, 복도서쪽으로 가는 걸 보고 잽싸게 일어나 문을 잠그자, 되돌아와 초인종을 계속눌렀습니다. 그 소리가 아직 생생합니다. - P141
수석 검사를 통해 부장에게 사표 제출을 요구했는데, 확답없이 휴가를 가버렸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그 직전 근무지인인천에서 같이 근무했던 선배에게 상의 전화를 드렸습니다. 저보고 "그냥 네가 사표 써라. 알려지면, 너만 손해다. 여기 와서변호사 개업해라. 밀어주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지청장을 찾아가 "주거침입강간미수 고소도 불사하겠다. 사표를 받아 달라"고 단도직입적으로 통보하여 겨우 사표를 받았습니다. 오른손등에 생긴 동전 크기 만한 멍이 한동안 지워지지 않더군요. 그리고 제 마음의 멍은 아마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겁니다. - P142
〈PD수첩: 검사와 스폰서>는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부산지검에서 있었던 일을 취재한 방송입니다. 저는 2005년 고향인부산으로 발령이 났기에, 그런 질펀한 밤 문화가 아직 횡행하던 때 부산지검에서 근무했지요. B부장은 점심시간에도 자신의 섹스 능력을 자랑했습니다. 6시간씩 섹스를 한다거나, 절정의 그 순간이 오래 가려면 마지막 순간에 숨을 끊어야 한다거나, 평소 복식호흡이 중요하다며 복식호흡을 따라 하라고 한다거나. 정신이 혼미해지는 와중에 좋게 말씀드렸습니다. "여기처녀, 총각도 있는데 듣기 그렇습니다." 그러자 처녀, 총각에게더 중요하다며 그래도 복식호흡을 따라 하라고 했습니다. 막 개업한 전관 변호사가 스폰서로 붙은 어느 저녁은 정말 - P142
질펀했습니다. 청사포 횟집에서 예의 정력 자랑을 하고, 일부검사가 감탄으로 추임새를 넣는 걸 지켜보며 구석에서 얼음이되어 있었지요. 2차를 따라가지 않으려는 저에게 선배들은 "경력 검사가 회식 중 도망가면 어떻게 하느냐? 힘든 거 아는데, 설마 더 심해지겠느냐?"면서 굳이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해운대 오션타워 지하 유흥 주점에서 분노로 몸이 바들바들 떨렸지요. 그런 저에게 모 선배가 귓속말을 했습니다. "부장님 잘 모셔. 훌륭한 분이야." 저는 그 선배 얼굴에 침을 뱉어 주고 싶은걸 겨우 참았습니다. 그리고 스폰서는 B부장을 포함한 검사들의 화대를 계산했고, 성매매 전담이었던 B 부장 등은 결국 성매매를 갔습니다. - P143
다음 날 오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그 모 선배에게 ‘그 자리에 당신의 아내와 딸이 있었다면 그런 소리를 했겠느냐? 만약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당신은 인간이 아니므로 선배라 부를 수 없고, 만약 그렇게 하지 않을 사람이라면, 당신은 남편과아버지의 자격이 있을지언정 선배의 자격이 없으므로 당신을선배라 부를 수 없으니 향후 호칭상의 결례를 양해하라‘는 메일을 보냈습니다. 부산지방검찰청 기획 업무를 담당하는 모 부부장을 찾아가 전날 밤 일을 이야기하며 "부장이 성매매 피의자로 보여 결재를 받지 못하겠으니 부서를 바꿔 달라"고 정식으로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 P144
덧붙임 1: 박은정 선배님, 연찬회가 있고 일주일 뒤 광주로전화를 주셔서 자기 일처럼 분노해 주신 것, 그 마음이 정말 고마웠어요. 저는 그때 하늘 같은 선배들한테 말하면, 뭔가 다 해결해 주실 줄 알았다가 이내 실망했지만, 선배님의 그 마음만은 절대 잊지 못합니다. 덧붙임 2: 조희진 단장님. 그때 무언가 조치해 주셨다면 - P145
2010년 서지현 검사의 불행한 피해가 없었거나, 최소한 피해가있었다고 하더라도 즉시 적절한 조치가 취해졌을 수 있었을 텐데 많이 아쉽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제가 조 단장님의 조사단장 자격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유입니다. 직장 내 성폭력이 왜지금껏 덮였는지에 대해, 조 단장님도 조사받아야 할 객체니까요. - P146
그렇게 가지가 부러지고, 도끼질을 당하는 것도 고통스러웠지만, 목이 타서 죽을 거 같았습니다. ‘이대로 말라죽을 순 없어, 수맥이 닿을 때까지 뿌리를 깊이, 더욱 깊이 내리자. 언젠가 수맥에 닿아 땅 위로 확 뻗어 나갈 수 있는 그때가 오면, 많은 후배가 내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쉴 수 있을 테고, 하늘로 뻗어 올린 내 나뭇가지가 이 부조리한 현실을 뛰어넘을 사다리가되어줄 거다‘ 그런 희망으로 저는 버텼습니다. 여자 선배들을포함한 간부들이 덮기에 급급했던 검찰 조직 내 성폭력 문제를공개해 버린 서 검사의 결단, 상부의 위법한 압력을 폭로한 안미현 검사의 용기 등 일련의 일들을 바라보며, 견뎌낸 보람을이제 비로소 느끼고 있습니다. - P148
거듭 말씀드리지만, 서 검사가 입은 피해는 안태근 등 몇몇 검사의 개인적 일탈이 아닌, 검찰의 조직적 일탈로 인한 것입니다. 진상 조사와 제도 개혁은 서 검사를 비롯한 여성 검사들의성폭력 피해에 국한할 것이 아닙니다. 검찰 간부들이 업무적, 업무 외적 일탈에 왜 거침이 없었는지, 감찰 등 브레이크 장치는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검사들은 왜 침묵하고 방관했는지등을 전체적인 틀에서 진단하여 검찰개혁을 추진해야 합니다. 조직 전부에 퍼진 암의 극히 일부만 떼어내고 암을 완치했다고 주장하시겠습니까? - P150
불이익이 두려워 말도 안 되는 일들에 침묵하고 또 침묵하다가 더는 참을 수 없을 때, ‘꽃뱀 여검사‘에서 ‘막무가내 검사‘로거듭났습니다. 꽃뱀 여검사가 처음엔 트라우마였지만, 지금은 ‘난 검찰계의 꽃뱀 구미호다. 목숨 9개 중 8개를 검찰에서 쓰고나가겠다. 아직 몇 개 남았다‘고 농담할 만큼 어느 정도 극복했고, 참지 못하고 일어서는 후배들에게 조언하고 곁에 서서 우산이 되어줄 정도의 생존 기술과 맷집이 생겼습니다. 제가 검찰 내부에서 겪은 일은 여러 선후배에게 수시로 이야기해 왔기에 검찰에서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부산지검 스폰서 B 부장 등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동료들에게 하소연하는 척 제 험담을 많이 하고 다녔었고, 간부인 그의 동료들이 부서원들에게 전달하니 전파 속도가 정말 빨랐지요. 저 역시 스폰서 성매매 이야기를 전파하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야이미 접하거나 앞으로 곧 접할 꽃뱀 헛소문으로 인한 오해를풀 수 있고, 검찰 내 성희롱·성폭력 실태에 대한 경각심도 끌어올릴 수 있어 일거양득입니다. - P153
검찰은 정의의 대변자이자 법 집행자인데, 정작 내부에서의정의 실현은 참으로 요원합니다. 서 검사의 미투가 사회 흐름을 바꾸는 큰 계기가 되었지만, 사건 발생지인 검찰 내에서는서울남부지검 김형렬 전 부장, 진동균 전 검사 등 몇몇 성폭력사범의 처벌을 뒤늦게 이끌어 내는 데 그쳤습니다. 의정부지검 시절, 모 검사장이 저를 불러 ‘검찰이 얼마나 깨끗해졌는데, 도대체 왜 이러느냐?‘고 꾸짖었습니다. 그 검사장처럼 적지 않은 간부들은 과거와 지금을 비교하며 검찰이 깨끗해졌다고 뿌듯해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현재의 검찰이 국민의 기대와 요구에 얼마나 부응하고 있는가를 평가하고 비판하지요. 기준 잣대가 달라 평가가 다르고, 그로 인해 말과 생각이 서로 부딪치게 됩니다. - P155
지금은 속이 상하고 울분이 폭발하는 동료에게 제 말이 가닿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알아주었으면 좋겠네요. 검찰청법 개정안,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관심을 두고 목소리를 높이는 분들이 검찰의 잘못을 바로잡는데도 목소리를 높였다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텐데 싶어 서글픕니다. 검찰을 고치지 않으면 파고는 계속 밀려올 것입니다. 검찰의 잘못을 바로잡는데도 목소리를 높여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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