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아주 창백했다. 강도 창백했고, 들판은 풀이 무성하고 분명 붉은 빛일 꽃들이 우거져 있는데도 아무 빛깔 없이 술렁이며 펼쳐진 채, 빛깔 없는 농가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윽고 한 농가의 문이 열리더니 농부와 그의 가족이 마치 언덕 위 교회에라도 가려는 듯이 말끔한 차림으로 말없이나타나, 엄숙한 태도로 행렬에 끼어들었다. 때로는 2층 창턱에 기대선 여자들이 재미있다는 듯 행렬이 지나가는 것을 잠자코 내려다보기도 했다. <이 사람들은 대체 뭘 보려고 수백마일씩 온 걸까?> 그녀들은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우리는마치 어느 배우와 약속이라도 지키러 온 듯한 기묘한 느낌이들었다. 그는 너무나 스케일이 커서 소리 없이 사방에서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 P152

우리는 아주아주옛날 새벽에 경의를 표하러 온 원시 세계의 남녀들이었다.
스톤헨지의 경배자들이 더부룩한 풀숲과 비바람에 씻긴 바위들 사이에서 필시 그런 모습이었을 터였다. 갑자기 어느요크셔 향사의 자동차로부터 네 마리의 크고 여윈 붉은 개들, 고대 세계로부터 온 듯한 사냥개들이 뛰쳐나와 코를 땅에 처박는 것이 마치 멧돼지나 사슴의 자취라도 찾는 듯이보였다. 그러는 사이 해가 뜨고 있었다. 구름 한 송이가 마치하얀등갓 뒤에서 천천히 불이 켜지는 것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금빛 쐐기 모양의 빛줄기가 구름에서 쏟아져나와 골짜기의 나무들을 녹색으로, 마을을 청갈색으로 물들였다. 우리 등 뒤 하늘은 연청색 호수에 하얀 섬들이 떠다니는 듯했다. 하늘은 활짝 열리고 개었지만, 우리 눈앞에는 희고 부드러운 눈의 둔덕이 쌓여 있었다.  - P153

태양은 구름들 사이로 달려 나가 그 신성한 몇 초가 끝나기 전에 결승점에 도달해야만 했다. 결승점이란 오른쪽에 있는 엷은 투명함이었다. 태양은 출발했다. 구름들이 그가 가는 길에 온갖 장애물을 던져 놓았다. 들러붙고 가로막았다.
그는 그것들을 뚫고 질주했다. 그가 보이지 않을 때도 번개처럼 날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굉장한 속도였다. 잠깐 나와밝게 빛나는가 하면, 다음 순간 구름 뒤로 없어져 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그가 결승점을 향해 그 먹장을 헤치고 나아가는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순간 그는 나타나서 우리의 안경을통해텅빈 태양, 반월형 태양을 보여 주었다. 그것은 그가우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증거일 터였다. 이제 그가 마지막 힘을 쓸 때였다. 그는 완전히 지워져 버렸다. 순간들이 지나갔다. 저마다 손에 시계를 들고 있었다. 신성한24초가 시작되었다. 마지막 1초가 지나기 전에 이기고 나오지 못한다면 그는 지고 마는 것이었다. 여전히 그가 구름 뒤에서 몸부림치며 달려 나가는 것이 느껴졌지만, 구름들이 그 - P154

를 붙들고 있었다. 구름장들이 퍼져 나가며 두꺼워지고 느슨해져서 그의 속력에 제동을 걸었다. 24초 중에 5초밖에 남지않았건만, 그는 여전히 가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치명적인순간들이 지나고 <태양이 지고 있구나, 정말로 경주에서 졌구나 하고 실감했을 때, 황야에서 모든 빛깔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푸른빛은 보랏빛이 되었고, 흰빛은 격렬하지만 바람없는 폭풍이 다가올 때처럼 납빛이 되었다. 분홍빛 얼굴들이녹색이 되었고, 갑자기 더 추워졌다. 그러니까 이것이 태양의 패배로군, 이게 다군> 하고 우리는 실망해서 우리 앞쪽의 음울한 구름 담요로부터 등 뒤의 황야를 향해 돌아섰다.
황야는 납빛이었고, 보랏빛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뭔가가 더일어나려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 예기치 않았던 무섭고피할 수 없는 것이 닥쳐 오고 있었다. 황야를 뒤덮은 그늘이점점 더 어두워지는 것이, 마치 배가 위기의 순간에 균형을되찾는 대신 조금씩 더 기울다가 돌연 전복되고 마는 것과도같았다. 그렇게 빛이 차츰 기울다가 완전히 나가 버렸다. 그것이 끝이었다. 세상의 피와 살이 죽고 해골만 남겨졌다.  - P155

다. 물고기들도 의도적으로 그런 모양을 띠고서 오직 자기자신이 되기 위하여 세상으로 미끄러져 들어온 듯하다. 그들은 일하지도 눈물을 흘리지도 않는다. 그들의 형태에 그들의존재 이유가 있다. 완벽한 실존이라는 충분한 목적 외에 다른 어떤 목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졌겠는가? 어떤 것은 통통하게, 어떤 것은 얄팍하게, 어떤 것은 등성이에 지느러미를활짝 펼치고, 어떤 것은 전기를 띤 빨간 줄무늬를 하고, 어떤것은 프라이팬 위의 새하얀 팬케이크처럼 너울거리고, 또 어떤 것은 푸른 갑옷을 입고, 어떤 것은 엄청난 집게발을 달고,
어떤 것은 거대한 구레나룻을 잔뜩 달게끔 말이다. 인류 전체보다도 대여섯 마리 물고기에게 더 많은 정성이 쏟아진 것만 같다. 우리의 트위드와 실크 밑에는 단조로운 분홍빛 맨살밖에 없다. 시인들도 이 물고기들만큼 뼛속까지 투명하지는 않다. 은행가들도 집게발은 갖지 못했으며, 왕과 왕비들도 주름 목깃이나 프릴장식을 달고 태어나지는 않았다. 요컨대 만일 우리가 맨몸으로 수족관에 넣어진다면 - 아니,
이쯤 해두자. 이제 눈이 감긴다. 눈은 우리에게 죽은 세계와불멸의 물고기를 보여 주었다. - P158

나방의 죽음

낮에 날아다니는 나방은 나방이라 불리는 것이 어울리지않는다. 그것들은 커튼 그늘에 잠들어 있는 흔하디흔한 노랑뒷날개나방이 어김없이 환기하는 어두운 가을밤과 담쟁이꽃의 기분 좋은 느낌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그것들은 잡종으로 나비처럼 화사하지도 않고 자신의 동류인 나방답게 칙칙하지도 않다. 하여간 좁다란 건초 빛깔 날개와 같은 빛깔 술이 둘린 이 나방은 살아 있는 것에 만족하고 있는 듯했다. 9월중순의 기분 좋은 아침, 공기는 부드럽고 온화하지만 여름날보다는 선득한 바람결이 느껴졌다. 창문 저편 들판에서는 이미 쟁기가 자국을 내고 있었고, 보습이 지나간 땅은 평평하게골라져 습기를 머금은 채 빛나고 있었다. 들판과 그 너머 언덕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활기 때문에 눈은 가만히 책만 들여 - P159

다보고 있기 어려웠다. 떼까마귀들도 연례행사를 벌이는지,
나무들의 우듬지 주위로 날아오르는 것이 마치 수천 개의 검은 매듭이 있는 커다란 그물이 공중에 던져지는 듯했다. 그러다 잠시 후에는 천천히 나무 위로 내려앉아, 나뭇가지 끝마다검은 매듭이 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또 갑자기 이번에는더 큰 원을 그리며 그물이 펼쳐지고 일제히 퍼덕거리며 깍깍대는 것이, 그렇게 공중에 던져졌다가 천천히 나무 꼭대기에내려앉는 것이 엄청나게 신나는 경험이기나 한 것 같았다. - P160

떼까마귀들과 쟁기질하는 사람들과 말들, 그리고 심지어풀이 말라 민둥한 언덕에까지 활기를 불어넣는 동일한 에너지가 나방을 네모난 유리창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파닥여 가게 했다.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묘한 동정심이 드는 것이었다. 그날 아침에는 즐거움의 가능성들이 너무나 크고 다양해 보였으므로, 고작 한 마리 나방, 그것도 낮에 다니는 나방 몫의 생명을 가졌다는 것이 가혹한 운명이라생각되었다. 그런데도 그 오죽잖은 기회를 최대한 즐기려는그의 열의가 비장하게 느껴졌다. 그는 자신이 갇힌 유리창의한쪽 구석으로 힘차게 날아가, 거기서 잠시 기다렸다가 또다른 구석을 향해 가로질러 날아갔다. 세번째, 네번째 구석으로 날아가는 것 말고는 그에게 달리 무슨 수가 있었겠는가? 언덕들이 아무리 크고, 하늘이 아무리 넓고, 집들의 연기가 아무리 멀리까지 올라가고, 바다에 나가 있는 증기선들이 - P160

이따금 아무리 로맨틱한 소리를 낸다 해도, 그가 할 수 있는것은 그게 전부였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그를 지켜보노라니, 마치 세계가 지닌 거대한 에너지의 아주가늘지만 순수한 한 가닥이 그 작고 연약한 몸속에 밀어 넣어진 듯했다. 그가 유리창을 이리저리 가로지를 때마다, 내게는 활기 찬 빛 가닥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는 거의 생명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는 그토록 작고 그토록 단순한 형태의 에너지로서 열린 창문 안으로 들어와 나나 다른 인간들의 두뇌 속에 있는 그토록 많은 좁고 복잡한 복도들을 지나왔으므로,
그에게는 비장한 동시에 경이로운 무엇인가가 있었다. 마치누군가가 순수한 생명의 작은 구슬을 가지고 솜털과 깃털로
"가능한 한 가볍게 꾸며서, 우리에게 생명의 진정한 본질을보여 주기 위해 춤추거나 지그재그로 움직이게 한 것만 같았다. 그렇게 제시된 것의 낯설음을 극복하기 어려웠다.  - P161

우리는 그것이 둥그스름하고 오톨도톨하고 거추장스럽게 꾸며져서 극도의 조심성과 위엄을 가지고 움직여야 하는 것만을보고, 생명에 대해서는 잊기 쉽다. 만일 그가 다른 형태로 태어났더라면 어떤 삶이 되었을지 생각하니, 그의 단순한 움직임을 연민 어린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잠시 후 그는 춤추기에 지친 듯 양지바른 창턱에 내려앉았고, 그 진기한 구경이 끝났으므로 나는 그에 대해 잊어버렸 - P161

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드니 그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그는다시금춤추려 애쓰고 있었지만, 몸이 굳어져 움직이기가 거북한지 유리창 바닥으로 퍼덕여 가는 게 고작이었고, 창문을가로질러 날아가려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나는 다른 일들에 몰두한 채, 잠시 별생각 없이 그 헛된 시도들을 바라보면서, 무의식적으로 그가 다시금 날아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마치 기계가 고장 난 원인은 생각지도 않고 다시 작동하기만을 기다리듯이 말이다. 대략 일곱 번쯤 시도한끝에 그는 나무로 된 창틀에서 미끄러져 날개를 퍼덕이며 떨어져 창턱에 널브러졌다. 뒤로 나가떨어진 그의 무력한 자세가 나를 자극했다. 그가 곤경에 처해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다리를 버둥거려 봤자 더는 일어나지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그가 바로 서도록 도우려고 연필을 뻗어 주려다 말고, 나는문득 그렇게 떨어져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것이 죽음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연필을 도로 내려놓았다. - P162

다리들이 한차례 더 버둥거렸다. 나는 그가 맞싸우는 적을 찾기라도 하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문밖을 내다보았다.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정오경인 듯, 밭일은 멈춰 있었다. 조금 전의 활기 대신 적막과 고요가 자리하고 있었다.
새들도 먹이를 찾아 개울가로 날아가고 없었다. 말들은 조용히 서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거기에는 여전히 힘이, 특별히아무것에도 괘념치 않는 무심하고 비개성적인 힘이 있었다. - P162

그 힘이 작은 건초 빛깔 나방과 맞서고 있었다. 무엇을 하려해도 소용없었다. 그 작은 다리들이 다가오는 숙명에 맞서최대한 노력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 숙명은마음만 먹으면 온 도시를, 도시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라도
‘잠기게 하려면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아무것도 죽음에 맞설수 없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잠시 지쳐 정지했던 발이 또다시 버둥거렸다. 이 최후의 항거는 훌륭했고, 너무나 필사적이라 그는 마침내 바로 서는 데 성공했다. 나는 물론 전적으로 생명의 편을 들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 작은 나방의 이거대한 노력, 아무도 돌아보지도 알아주지도 않건만 그처럼엄청난 힘에 맞서서, 다른 아무도 높이 평가하거나 간직하려하지 않는 것을 애써 지키려는 노력은 이상하게 감동적이었다. 다시금 생명이, 그 순수한 구슬이 보이는 듯했다.  - P163

나는다시 연필을 들었다. 소용없을 줄 알면서도. 하지만 바로 그순간 죽음의 틀림없는 징후들이 나타났다. 나방의 몸이 풀어지더니 즉시 뻣뻣해졌다. 싸움은 끝났다. 그 작은 생물이이제 죽음을 맛보았다. 죽은 나방을 바라보노라니, 그토록하찮은 적수에 맞선 그토록 큰 힘의 대수롭잖은 승리가 나를경이감으로 휩쌌다. 조금 전에는 삶이 기이했듯이, 이제 죽음이 기이해 보였다. 나방은 몸을 바로 하여 단정하게, 아무불평 없이 침착하게 누워 있었다. <오, 그렇다>라고 그는 말하는 듯했다. <죽음은 나보다 강하다>라고. - P163

시간은 저녁, 계절은 겨울이라야 한다. 왜냐하면 겨울이라야 샴페인처럼 밝게 빛나는 대기와 길거리의 화기애애함지,
람이 고맙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여름에 그랬던 것처럼 그늘과 고독과 건초 널린 들판에서 불어오는 달콤한 바람에 대한 동경에 도발당하지 않는다. 저녁이라는 시간 또한우리에게 무책임함을 허락하는 것이, 어둠과 가로등 덕분이다. 우리는 더 이상 자기 자신이 아니다. 날씨 좋은 저녁 4시에서 6시 사이에 집을 나서면서, 우리는 친구들이 아는 우리자신을 떨쳐 버리고 익명의 보행자들로 이루어진 저 거대한군중의 일부가 된다. 그들과의 어울림은 자기만의 방에서 누린 고독 끝이라 한층 더 유쾌하다.  - P166

눈에는 이상한 속성이 있다. 눈은 아름다움에만 머문다.
마치 나비와도 같이, 빛깔을 찾아다니며 온기를 다 자연이 스스로 한껏 갈고 닦아 모양을 낸 이런 겨울밤에도, 눈은가장 어여쁜 전리품들을 골라내며, 마치 온 지구가 보석들로이루어지기나 한 것처럼 자잘한 에메랄드와 산호 조각들을떼어낸다. 눈이 할 수 없는 것은(보통의, 비전문적인 눈 말이다)이 전리품들을 배열하여 좀 더 섬세한 각도와 관계를도출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이 소박하고 달콤한 식사를, 순수하고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아름다움을 오래 즐긴 후에 우리는 포만감을 의식하게 된다. - P170

여름이면 자기 뜰에서 키운 꽃이 담긴 화병이 먼지투성이 책 더미 위에서 가게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사방이 책이고, 언제 봐도 한결같은모험심이 우리 마음을 가득 채운다. 헌책들은 집 없는 책, 야성적인 책들이다. 그것들은 온갖 빛깔의 깃털을 지닌 방대한무리 속에 섞여 왔으며, 길들여진 도서관 책들에는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이 아무렇게나 뒤섞인 무리 가운데서, 우리는 전혀 모르던 이를 만나기도 하고, 운이 좋으면그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벗이 되기도 한다. 위쪽 서가에 꽂힌 회백색 책의 허름하고 버림받은 듯한 태도에 마음이 끌려손을 뻗칠 때면 항상 희망에 부푼다.  - P178

그러나 이런 개별적인 존재의 순간들은 훨씬 더 많은 비존재의 순간들 속에 묻혀 있다. 나는 레너드와점심을 먹으면서, 또 차를 마시면서 했던 이야기를 벌써 다잊어버렸다. 어제는 좋은 하루였는데도 그 좋았던 것이 일종의 솜 같은 두루뭉술한 것 안에 묻혀 버렸다. 언제나 그런 식이다. 하루하루의 상당 부분은 의식적으로 살아지지 않는다.
산책하고, 식사하고, 이런저런 것들을 보고, 해야 할 일들을처리한다. 고장 난 진공청소기, 저녁 식사 지시하기, 메이블에게 지시할 사항을 적어 두기, 빨래, 요리, 책 제본 등. 좋지않은 날이라면 비존재의 비중이 훨씬 더 커진다. 지난주에는약간 열이 있었고, 거의 종일 비존재였다. 진짜 소설가는 그두 가지 존재를 어떻게인가 전달할 수 있다. 제인 오스틴‘이그랬고, 트롤럽도 그랬다고 생각한다. 나로서는 그 두 가지를 다 전달할 수 있었던 적이 아직 없었다. - P206

 그런데 그를 치려고주먹을 드는 순간, 이런 느낌이 스쳤다. <왜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해? 나는 제풀에 손을 떨구고 서서 그가 나를 때리도내버려 두었다. 그 느낌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가망 없는 슬픔의 느낌이었다. 마치 무엇인가 무시무시한 것을, 그리고 나 자신의 무력함을 알아 버린 것만 같았다. 나는 끔찍하게 풀이 죽어서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버렸다. 두 번째 예도 세인트아이브스의 정원에서였다. 나는 현관 앞 화단을 바라보고 있다가 <저게 전체야>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널따랗게 잎을 펼친 어떤 식물을 보고 있었는데, 어느 한순간 그 꽃자체가 대지의 일부라는 것, 어떤 고리가 그 꽃을 에워싸고있다는 것, 그 꽃은 진짜 꽃이고 일부는 대지이고 일부는 꽃이라는 것 등이 갑자기 명백해졌다. 나는 그런 생각을 나중에 아주 유용할 것 같아서, 간직해 두었다.  - P207

 어떤 질서의 현현이거나 장차 그 현현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말로 표현함으로써 현실로 만든다. 오로지 그것을 말로 표현함으로써 온전하게 만들며, 이때 온전하다는 것은 곧 그것이 나를 아프게 할 힘을 잃었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나뉜 부분들을 하나로 합치는 것은 아마 그렇게 함으로써 고통을 없애기 때문인 듯한데 ㅡ 내게 큰 기쁨을 안겨 준다. 그것은 아마 내가 아는 가장 큰 기쁨일 것이다.
그것은 내가 글을 쓰면서 무엇이 무엇에 속하는지 발견하고,
어떤 장면을 제대로 표현하고, 어떤 인물을 온전히 드러나도록 만들 때 느끼는 황홀경이다.  - P210

이를 통해 도달하게 되는 경지를 철학이라 불러도 될는지. 하여간 그것은 나 자신이 갖고 있는 변함없는 생각이다. 즉, 솜의 이면에는 어떤 패턴이숨어 있고, 우리는 모든 인간 존재는 이 패턴과 연관된다는 생각, 세계 전체는 하나의 예술 작품이고, 우리도 이 예술 작품의 일부라는 생각이다. 『햄릿 Hamlet』이나 베토벤의사중주곡은 우리가 세계라고 부르는 이 거대한 덩어리에 관한 진리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셰익스피어도 없고, 베토벤도없고, 더더구나 신은 없다. 우리가 말이고, 우리가 음악이고,
우리가 물자체(物自體)이다. 나는 충격을 받을 때 이 사실을확인한다.
-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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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 년 전 아리스토텔레스가 시에 대해 한 일을 음악에 대해 할 기회를 갖게 되는 셈이니 말이다. 그러나 음악이라는 예술의 원리를 노정하기 위해 이루어진 일이 그렇게 적다는 사실은 우리가 새로운 음악을 판단하려 할 때 만나게 되는 어려움을 설명해준다. 전부터 있던 음악에 대해서는 그저 당연히 여기고 프리마돈나가 감기에 걸렸다든가 하는데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그것은 어느 특정한 날 단 한 시간에대한 평가이며, 내일이면 그런 인상은 잊히고 만다.
그러므로 음악의 본질까지 천착할 생각은 없어도 그렇다고 비평의 부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필자에게는한 가지 길이 있을 뿐이다. 즉, 아마추어로서 자신의 인상을적어 보는 것이다. 바이로이트의 음악회장 좌석들은 그런 아마추어들로 가득 찬다. 그들은 제각기 다른 사람만큼은 음악을 이해할 수 있다는 은밀한 믿음을 갖고 있지만, 감히 자기생각을 입 밖에 내어 말하지는 않는다. 어쨌든 그들이 음악을 사랑한다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다.  - P102

그렇지만 바이로이트에 모인 청중, 그중 상당수가 멀리서부터 찾아온 순례자들인 이 청중이 온 힘을 다해 경청한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조명이 꺼지면 그들은 좌석에서 숨을 죽이고 음악의 마지막 여운이 사라지기까지 꼼짝도 하지않는다. 뭔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라도 날라치면 다들 흠칫하는 반응이 마치 수면의 파문처럼 음악회장 전체로 퍼져 나간다. 막간에 햇볕 속으로 나설 때면, 음악에서 받은 인상을떨어내 버리려는 듯한 기운이 느껴진다. 특히 「파르치팔Parzifal은 너무나 막강한 충격을 주기 때문에, 몇 번이고다시 들은 다음에야 그것을 이리저리 되새겨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너무나 낯설어서 그 부분들을 전체로 융합시킬 수가없는 것이다. 우리는 극적인 상황이 대개 남녀 간의 사랑이나 전투 같은 것으로 설명되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막연히 어떤 위기 상황을 기다리게 되는데,  - P103

그리고 아마추어가 전문가의 경멸을 불러일으키는것이 바로 이 지점일 것이다. 미술의 경우 프라 안젤리코‘가무릎을 꿇고 그림을 그렸다고 해서 선호하는 비평가도 있고,
문학에서는 일찍 일어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책을 좋아하는이들도 있다. 음악회 프로그램에 실린 논평들을 읽다 보면가망 없이 혼란에 빠지고 만다. 음악적 인상을 문학적인 것으로 바꾸는 일의 어려움이나 언어의 환기력 때문에 문학적인 감각에 호소하게 되는 경향 말고도, 음악의 경우에는 다른 예술보다 그 경계가 명확치 않다는 데서 생겨나는 어려움이 있다. 어떤 악구가 아름다울수록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감동은 더 풍부해지는데, 우리는 그 형식을 잘 모르기 때문에해석에서도 별 제약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아름다운 음악을자신의 어떤 경험과 연관 짓거나 일반적인 어떤 개념을 상징하게 만들거나 하게 된다. 어쩌면 음악이 우리에게 그처럼놀라운 힘을 행사하는 것은 이처럼 그 효과를 정확히 표명하기 어렵다는 데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음악이 표현하는 것에는 일반화의 모든 장엄함과 동시에 우리 각자의 감정이 담겨 있다.  - P108

그러면서 우리는 말로써 음악을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절감하게 된다. 정지의 순간이 지나고 활들이현 위를 실제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우리의 추상적인 사들은 다 흩어지고 말도 달아나 버린다. 그 안도감은 엄청나지만, 마침내 마법이 깨지고 나면, 우리 자신의 도구인 말로 돌아오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어떤 예술에 한계를 부여하고우리의 감정을 규정하려는 이 모든 정의들은 실로 자의적이다. 음악이 노천의 공중으로 스러져 가는 여기 바이로이트에서, 에르미타주‘ 정원의 꽃들이 다른 마법의 꽃들처럼 피어나는 곳에서, 음악은 색채가 되고 색채는 언어가 된다. 이곳에서 우리는 일상의 세계를 잠시 벗어나 그저 숨 쉬고 보도록 허락받았을 뿐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어떤 감정과 다른감정을 나누는 격벽들이 얼마나 얇은지, 우리의 인상들에는구분할 수조차 없는 요소들이 얼마나 많이 섞여 있는지 깨닫게 된다.  - P109

집은 그들을 단단하고 독립된 개별적존재로 만들어 주는 껍질과도 같았으니, 이제 집을 떠나 노출된 그들의 뇌 속에는 광범한 일반화의 공식들이 자리 잡는다. 바퀴 소리, 창문에 블라인드가 부딪히는 소리가 인생에대한 그럴싸한 경구들의 리듬으로 바뀌고, 산문의 단편들을되는대로 떠올리게 한다. 그리하여, 멍해진 여행자들은 극도로 울적한 눈길로 풍경을, 지루할 뿐인 프랑스 중부의 풍경을 내다본다. 프랑스인들은 체계적이지, 하지만 인생은 간단해 프랑스인들은 산문적이지, 프랑스인들은 도로를 갖고 있어. 그래, 그들은 저 날씬한 포플러 나무에서부터 빈으로, 모스크바로 뻗어 가는 도로를 가지고 있는 거야. 톨스토이의집을 지나, 산악을 오르고, 그러고도 행진하여 유명한 도시들의 한복판에 있는 화려한 상가들을 지난다. 하지만 영국에서 도로는 절벽에 이르고, 바다 가장자리에서 모래 속으로빠져든다. 영국에서 산다는 것이 위험해 보이기 시작한다. - P115

보르도를 벗어나 점점 더 드넓은 들판이 나타나자,아주 간단하고 사소한 생각을 하는 데 필요한 집중력마저도남아나지 않는다. 마치 장갑이 커다란 손을 쑤셔 넣는 바람에 찢어져 버리는 것과도 같다. 붓과 물감, 캔버스를 가지고작업하는 화가들은 복이 많다. 반면 말 취약하기 짝이은없다.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다가오기만 해도 뒷걸음질 치고만다. 사람을 가장 문자적인 의미에서 혼란스럽고 당혹스러운 구렁 속에 빠뜨린다. 그 구렁 속에는 새하얀 소읍들과 외줄로 줄지어 가는 노새들과 외딴 농장들, 거대한 교회들, 저녁이면 창백하게 바스러지는 광대한 들판들, 불어 끈 성냥처럼 삐뚜름히 타오르는 과일나무들, 오렌지들로 불타는 듯한나무들, 구름과 폭풍들이 가득하다. 눈이 이 모든 것을 그 안에 들이붓는다. 아름다움은 우리를 함몰시키고, 우리는 그물속에서 허우적거린다.  - P116

병이라는 것이 얼마나 흔한지, 그것이 가져오는 정신적 변화가 얼마나 엄청난지, 건강이라는 빛이 꺼지고 나면 그제야드러나는 미답의 영역들이 얼마나 놀라운지, 그저 독감‘
가벼운 습격만으로도 영혼의 어떤 황무지와 사막이 눈앞에전개되는지, 조금 체온이 오르기만 해도 어떤 낭떠러지와 꽃떨기 흩뿌려진 풀밭이 드러나는지, 병고라는 것이 우리 안에서 어떤 굳건한 참나무 고목을 뿌리 뽑는지, 이를 한 개 뽑고 - P121

치과 의사의 팔걸이의자에서 간신히 정신을 차려 그의 입을헹구세요, 입을 헹궈요> 하는 말을 천국 대청에서 몸을 굽혀우리를 맞아 주는 신의 인사말과 혼동할 때면 어떤 사망의 구덩이로 내려가 멸망의 창수(水)가 머리를 덮는 것을 느끼다가 천사와 수금(竪琴) 타는 이들의 면전에서 깨어나는 듯한지, 이런 것들을 생각할 때면 - 그리고 자주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ㅡ 병이 사랑이나 싸움, 질투 등과 함께 문학의 주요 주제로 자리 잡지 못한 것이 이상하게 여겨진다. 독감에대한 소설, 장티푸스에 대한 서사시, 폐렴에 대한 송가, 치통에 대한 서정시 등이 진작 쓰였어야 하지 않나 싶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드문 예외를 제외하고는 드퀸시가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Confessions of an English Opium-Eater』에서 그 비슷한 일을 시도했고, 프루스트의 작품에도 여기저기 병에 대한 대목이 한두 권 분량은 될 터이지만 ㅡ 문학은그 주요 관심사가 정신임을 견지하는 데 최선을 다해 왔다. - P122

그것들이 모아지면 말로도 표현할 수 없고 이성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마음상태를 환기하게끔 해놓은 것이다. 병석에 있는 우리에게는불가해함이 지대한 힘을, 아마도 멀쩡한 자들이 허용하는 것보다 훨씬 큰 힘을 미친다. 건강할 때는 의미가 소리를 잠식한다. 지성이 감각을 지배하는 것이다. 하지만 병들었을 때는의무의 감시가 해제되므로, 우리는 말라르메나 존던의 난해한 시, 라틴어나 희랍어의 어구들 밑으로 기어들게 되며,
그러면 설령 우리가 마침내 의미를 포착한다 하더라도, 말들은 마치 미묘한 향내처럼 입천장과 콧구멍을 통해 감각적으로 먼저 다가왔기 때문에 한층 더 풍부한 것이 된다. 아직 언어가 서투른 외국인들은 우리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다. 중국인들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Antony and Cleopatra』가 어떻게 들리는지 우리보다 더 잘 알 것이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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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1

 

  몇 년 만에 고향에 다녀왔다. 지난달에 고향으로 이주를 단행한 언니의 생일을 맞아서 이른 휴가를 다녀온 셈이다. 원래는 시끌벅적한 규모의 동행들을 계획했으나 이런저런 사정들로 혼자 다녀오게 되었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휴면으로 이전되어버린 코레일 멤버십카드를 살리고 저렴하고 시간이 걸리는 무궁화 왕복표를 사고 나서야 떠나는 실감이 났다. 피를 돌게 하던 역마살이 알코올로 대체된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진 않았던 모양이다.

  기차를 탄다. 바깥의 폭염에서 기차는 비껴있다. 그리고 딱 이 시절에 썼을, 이 방향의 기차에서 시작되었을 시를 생각한다. 지금은 기차에서 김밥을 삼킬 수는 없지만 눈에 즙처럼 괴는 연두이 한 줄로 연두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시다. 그리고 이렇게 하행선, 기차 창에 눈을 두면 저 순연한 벼포기들은 포기, 포기 살아서 추억으로 다가온다.

​​

  연두에 울다

 

  떨리는 손으로 풀 죽은 김밥을

  입에 쑤셔 넣고 있는 동안에도

  기차는 여름 들판을 내 눈에 밀어 넣었다.

  연둣빛 벼들이 눈동자를 찔렀다.

  들판은 왜 저리도 푸른가

  아니다. 푸르다는 말은 적당치 않다.

  초록은 동색이라지만

  연두는 내게 좀 다른 종족으로 여겨진다.

  거기엔 아직 고개 숙이지 않은

  출렁거림, 또는 수런거림 같은 게 남아 있다.

  저 순연한 벼포기들.

  그런데 내 안은 왜 이리 어두운가.

  나를 빛바래게 하려고 쏟아지는 저 햇빛도

  결국 어두워지면 빛바랠 거라고 중얼거리며

  김밥을 네 개째 삼키는 순간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것이 마치

  감정이 몸에 돌기 위한 최소 조건이라도 되는 듯.

  눈에 즙처럼 괴는 연두.

  그래. 저 빛에 나도 두고 온 게 있지.

  기차는 여름 들판 사이로 오후를 달린다.


         나희덕 시집 [사라진 손바닥(문학과 지성사 2004)]-중에서

 

















  뜨거움은 창밖으로 향하는 시선을 오래 두지 못하게 한다. 고민하다 챙겨온 책들은 유시민의 [유럽 도시 기행]이다. 이번에 2권이 출간되었는데 1권의 내용들은 까마득하다. 연결되지 않은 여행기이지만 1권부터 읽기로 한다. 나를 포함해서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유럽의 도시들, 나는 아마 가지 못할 것이다. 예전에는 언젠가 갈 수 있다는, 언젠가는 가고 말 것이라는 생각으로 책을 읽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아마도 가지 못할 것이다'라는 전제를 깔고 여행서를 읽게 된다. 그것도 자주.

  '아마도 가지 못할 것'이기에 더 애틋하게 그곳을 보는, 그곳을 걷는 필자에게 빠져서 그곳을 같이 보고 그곳을 같이 걷게 된다. 그렇게 '아테네', '로마', '이스탄불', '파리'를 돌아보는 데는 4시간이 걸렸다.

 


  아테네 플라타 지구, 로마의 포로 로마노, 이스탄불 골든 혼, 파리 라탱 지구, 빈의 제체시온, 부다페스트 언드라시 거리, 이르쿠츠크 데카브리스트의 집, 이런 곳에 가고 싶었다. 다른 대륙에도 관심이 없지는 않았지만, 스무 살 무렵부터 내 마음을 설레게 만든 곳은 주로 유럽의 도시들이었다. 그곳 사람들이 훌륭한 사회를 만들어 좋은 삶을 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떻게 더 자유롭고 너그럽고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다가 소설보다 더 극적인 역사의 사건들을 만났고, 그 주인공들이 살고 죽은 도시의 공간을 알게 되었다. 삶의 환희와 슬픔, 인간의 숭고함과 비천함, 열정의 아름다움과 욕망의 맹목성을 깨닫게 해주었던 사람과 사건의 이야기를 그곳에 가서 들어보고 싶었다. - P5

 

  내가 도착한 곳은 '아테네'가 아니라 '나주역'이다. 고향이긴 하지만 '나주'는 여전히 서툴고 낯설다. 나주보다는 광주가 더 가깝고 살뜰한 것은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많아서일 텐데 항상 복잡한 광주보다는 여유롭고 널찍한 나주역을 이용한다. 40여 일 만에 만나는 언니네 부부가 마중 나와 있다. 길가에는 배롱나무들이 첫 꽃을 환하고 선명하게 피우고 환영 인사를 건넨다.

  반갑다.

  이런 풍경들을 기대했다. 남도의 여름은 원색으로 환하고 명쾌하다. 어디서나 기품있게 선 배롱나무들의 꽃 인사를 만날 수 있다. '카이사르'의 흔적과 역사를 만나지는 못하겠지만 이제 늙어가고 같이 낡아가는 가족들과 함께하는 유쾌하고 맛있고 즐거운 시간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것으로 됐다. 충분하다.




  712

 

  한쪽으로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 나지막하게 보이지만 멀리는 아파트가 우뚝우뚝하고, 한쪽으로는 잡목이 우거진 산이 가깝게도 멀게도 중첩되는 풍경 속에 앉아서 [유럽 도시 기행 2] ‘내겐 너무 완벽한 빈을 읽는다. 너무 달라서 닮아있는 풍경이라 그런지 아주 머나먼 곳을 떠도는 기분이다. 바깥에는 이웃집 노부부가 날이 밝자마자 시작한 메밀 작업이 한창이다. 박스마다 여린 메밀 순들이 가지런히 담기고 있고 유시민 부부는 빈을 여행 중이다.

  빈은, 책으로 말하자면, 유명한 인문학 고전과 비슷하다. 명성 높은 인문학 고전은 모르면 교양인이 아닌 것 같아서 읽는 경우가 많다. 대단한 내용이 들어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다 읽어도 내용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내게는 플라톤 · 공자 · 단테· 괴테 등의 책이 다 그랬다. 빈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내 심정은 그런 책들을 펴들었던 때와 다르지 않았다.

  빈은 명성만큼 대단해 보였다. 도심의 모든 공간이 영화 속 같았다. 건물은 하나같이 크고 멋졌으며 거리는 넓고 깨끗했다. 상가의 쇼윈도와 사람들의 옷차림에 부티가 흘렀다. 카페와 레스토랑은 실내장식이 화려했고 음식값도 그만큼 비쌌다. 바로크 스타일 건물에 들어선 공공 전시관과 세련미 넘치는 민간 갤러리에는 미술 교과서에서 보았던 거장들의 그림과 조각이 넘쳐났고, 오페라하우스와 음악협회 공연장 등에서는 유럽 최고 수준의 악단이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비롯한 대가의 작품을 공연했다. - P15

 


  우리도 길로 나선다.

  오빠네 와 언니네 중 올케언니만 평균 체격을 밑돌뿐, 우람한 넷을 태운 차의 첫 목적지는 신안으로 가는 천사 대교다. 갑자기 차 노릇에 충실해진 차 입장에서 즐거운 비명일지, 슬픈 비명일지도 모르고 아이스박스 한가득 점심거리를 싸 들고 소풍 간다. 목적지도 풍경도 불편함도 날씨를 포함한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 모든 일정과 일상을 내려놓고 왁자하게 떠들고 모두 조금씩은 들떠서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크게 웃는다. 잘못 든 길에서도 흥겹다. 돌아 나와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을 모르고 서로를 탓하고 원망하느라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살아왔다. 누구 때문도 아니다. 모두 자신의 몫을 살아내느라 버겁고 지치고 허덕거렸을 뿐이다.

  우리가 함께하는 이런 소풍, 처음이다.

  어디든 길은 비었고 날씨는 적당히 흐리고 배롱나무들은 살랑살랑 손을 흔드는 가운데 남도의 곡식들은 목마르고 뜨거운 여름을 건너는 중이다. 목포를 지나간다. 목포는 매번 거쳐 가기만 할 뿐 안으로 들어가 보지 못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목포의 변방 어디쯤에선가 녹을 뒤집어쓴 채 점점 더 '세월' 속으로 묻혀가고 있을 '세월호'에 대한 부채감에 살짝 불편하다. 당연하다. 불편하다고 시선을 피한다면 더 무거운 '세월'들이 우리를 잡아먹을 것이다. 불편하고 장이 꼬이게 불편하더라도 마주해야 할 것들은 눈 똑바로 뜨고 대면해야만 한다. 그걸 잊지 말자.

  점점이 흩어진 섬들이 보이고 압해대교를 건넌다. 이제는 고립된 섬이 아닌 압해도는 크고 넉넉하고 기름지고 포실 포실하다. 가끔 나타났다 사라지는 바다는 조금 큰 호수 같다. 이름도 크기도 다른 섬들이 1004개나 된다는 신안군에 놓은 다리 1004 대교는 자은도, 암태도. 팔금도. 안좌도 등을 잇는다. 드디어 천사들이 아닌 우리는 다리를 지난다. 시야가 탁 트인다. 가슴이 뻥 뚫린다. 무엇이든 용서할 수 있고 무엇이든 담아내는 풍경이 이어진다. 차창을 내리고 바람을 빵빵하게 채운다. 마음들은 다리를 건너 서로에게로 다가간다. 악마들에게도 천사의 마음을 돌아보게 만드는 곳, 천사 대교다.



     



  우리들의 최종 목적지는 자애롭고 은혜로운 섬, 자은도(慈恩島)의 무한의 다리다. 무인도 사이를 잇는 1004미터를 바다 위로 걸어보는 것이다. 섬과 섬 사이에는 다리가 있고 할미도 절벽에는 원추리가 엉겅퀴와 나리꽃들과 어우러져 가득하다. 원추리 향이 땀 냄새마저 향기로 만들어준다. 뒤틀리고 휘어지고 꺾인 채로 나무들은 척박함과 바람을 견디며 제 자리를 지키며 어우러져 살고 있다. 우리들의 모습도 다르지 않구나. 각각 몇 번의 수술들을 통과한 몸뚱아리들은 상흔과 뒤틀림을 견디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작정한 것도 아닐 텐데 작은 동산만 한 무인도가 건네는 이야기는 대하소설이다. 바다를 건너고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 여리고 강한 생명력을 가진 야생의 꽃들이 저마다의 향기로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휘어져도 뽑히지는 않은 채 나무들은 이렇게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며 지키고 있다고 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온 각자의 시절도 그러할 것이다. 사느라고, 살아내느라고 강하고 뚝하게 감추고 있던 감성의 속살들이 이제는 또렷하게 보이기도 한다. 다리는 섬과 섬 사이만 잇는 것은 아니다. 섬의 속살들을 만나게도 한다. 우리 안의 속살도 드러난다.

 


  713

 

  오늘의 목적지는 여수다. 고흥 녹동항, 어판장에서 횟감을 사고 팔영대교를 건너 여수에서 간장게장으로 점심을 먹고 돌아와 저녁은 회에다 ㅋ~ 한 잔의 플랜이다. 어제 마땅한 횟감이 없어 "회 먹자. ~" 노래를 부르던 나는 회 대신 오빠가 숯불에 구워주는 삼겹살을 상추에 싸 먹으면서도 입이 댓 발이나 나온 채 툴툴거렸다.

  "내일 녹동항에 가면 민어를 삽시다."라는 오빠

  "민어, 비싸기만 하고 맛없든 대." 형부

  "요즘 서대 철이고 여수· 녹동 서대는 맛있어요." 올케

  "어쨌든 내일, 녹동항에 가보고 결정하자." 분분한 의견을 단번에 정리한 큰언니는 역시 카리스마 갑이다.

  새벽에는 오늘도 메밀 작업에 분주한 이들의 굽은 등을 일별하고 잠시 빈에 다녀왔다.

 


  오래된 도시들은 저마다 역사의 상처를 지니고 있다. 아테네는 의도와 무관하게 상흔이 드러나고 부다페스트는 일부러 드러내며 파리는 감추었지만 보인다. 그런데 빈에서는 그런 것을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사람으로 치면 사기 캐릭터였다. 부잣집에서 태어난 수재인데 잘생겼고 키도 크다. 손꼽는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가족 기업을 넘겨받아 성공적으로 경영한다. 예술적 감각을 지닌 교양인에다 성격마저 원만해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산다. 약점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빈은 그런 사람 같았다. 부러워하거나 시샘할 수는 있지만 흉보기는 어려웠다.

  여행에도 상대성원리가 적용되는 게 아닌가 싶다. 빈 만큼 또는 비보다 더 대단한 도시에서 온 여행자라면 모든 게 좋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빈틈이라고는 보이지 않아서, 너무 완벽해서, 내게 편하지만은 않았다. 오스트리아는 한국보다 부유하고 빈은 지구 행성에서 가장 호화로운 도시다. 건물도 거리도 사람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노점상이나 거리 음식은 아예 없었고, 치안도 완벽해서 소매치기 걱정 따위는 할 필요가 없었다.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아무 문제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비가 내릴 때는 모두 실내에 머무는지 거리가 텅 비었다. 우산을 들고 걷는 이조차 드물어서 우리도 준비한 비옷을 꺼내지 않고 카페와 박물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빈이라고 상처가 없는 건 아니다. 수많은 역사의 상흔을 덮어버리는 데 완벽하게 성공해서 보이지 않을 뿐이다. 합스부르크 제국의 정치적 후진성은 시씨 황후의 아름다움과 바로크 궁전의 화려함으로 가렸다. 독일과 합병해 자의 반 타의 반 인류에 대한 범죄를 저질러 놓고서도 나치 잔재 청산 작업은 하지 않은 채 영세중립국으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았다. 유엔 사무총장을 연임한 쿠르트 발트하임은 나치 돌격대 가입과 독일군 중위 복무 사실이 드러나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지만 무난히 대통령에 뽑혔다. 독일은 모든 도시 모든 장소에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되새기는 공간과 시설을 만들어두었지만 빈에서는 일부러 찾아다니지 않으면 볼 수 없다. 그라벤의 삼위일체 상도 페스트의 참극을 모르는 여행자에게는 그저 멋지게 금박을 두른 종교적 조형물일 따름이다. - P92. 93

 

  가는 길에 운전대를 잡은 오빠는 네비를 끄고 우리들의 고향집이 있던 길과 추억이 있을 법한 길들을 달려 능주를 지나간다. 능주에서 사사 당한 정암 조광조의 이야기도 나누고 화순· 보성 쪽으로 가는 중이다. 화순 너릿재에 관한 추억담이 구불구불 이어져 나오고 지석천의 물들도 구불구불 흘러간다. 화순장으로 '두부'를 배우러 다니던 2014년 여름의 길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런 두부(고소하고 달큰하고 감칠맛 가득한)를 다시는 먹지 못할 것이다에 모두 한 표씩을 찍고 조금은 쓸쓸해 한다. 풍경은 우리들의 기분과는 아랑곳없이 옛길들을 지키는 늙은 벚나무와 멀리 논을 지키는 메타세콰이어들 사이에 자태를 뽐내는 배롱나무들이 여름 남도의 상징성으로 완벽하게 어우러져있다. 보성의 조성면에서 커피를 마시려고 잠시 멈춘다. 처음 들르는 곳인데 익숙한 풍경은 고만고만한 건물들과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고만고만한 가게들이 시골 어느 면 소재지나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침 조성 장날이다. 장에 나온 사람들을 구경하고 그들은 난데없는 우리를 구경하면서 정다운 길을 지나간다. 어쩐지 아는 사람들 같다.

  곳곳에서 현수막으로 '우주'를 만나니 고흥이다. 최근 누리호가 지나갔을 법한 길들을 따라 달려간다. 오래전 뚜벅이로 갔던 팔영산과 나로도의 길들도 이제는 '누리호'의 길이 되었다.

 

  드디어 녹동항. 한센병의 유배지, 소록도가 바로 지척이다. 일반인에게는 금지겠지만, 당사자들한테는 격리와 유배의 섬이던 소록도가 다리 하나로 쉽게 넘나들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다리가 놓였어도, 누구나 왕래가 가능해도, 그 병을 앓는 환자에게는 여전히 심리적인 유배지일지 모른다. '소록도'.

  팔딱팔딱한 생선들을 만나니 덩달아 살아서 펄떡이는 것처럼 걸음이 가붓해진다. 잠시 후면 경매 시간이다. 우리 눈에 들어온 것은 저 줄돔이다. 여수가 고향인 올케의 표현으로는 "샛서방한테 잡아주는 생선"이라는데 우리는 오늘 모두 '샛서방'이고 싶다. 최근에 '우리들의 블루스'에서의 이정은처럼 경매 낙찰을 옆에서 쳐다보며 그들의 제스처와 빠른 손동작을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사이, 발 빠르고 입 빠르고 손까지 빠른 오빠는 무사히 줄돔을 차지했다.



     


  요즘 마땅한 생선이 없다는 말은 사실인 듯 이쪽에서 경매를 기다리는 애들은 빈약했다. 소라나 조기 정도였고 민어가 조금 보였다. 반면에 저쪽은 이제 막 금어기가 풀린 문어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지금은 낙지가 금어기, 어제 무안에서 갯벌 낙지 '탕탕이'가 먹고 싶었던 나는 졸지에 철딱서니 없는 1인이 되었기에 오늘은 돌문어를 잔뜩 보아도 돌부처처럼 함구한다. 그러나 다음번에는 낙지를 '종류별로 다 먹어야지.' 옴팡지게 다짐한다.


  핏물을 뺀 녀석들과 아이스팩으로 채운 아이스박스를 싣고 희희낙락 고흥을 떠난다. 다리가 놓이기 전이라면 순천 쪽으로 빙빙 돌아서 갔을 여수를 고흥 영남에서 팔영대교를 건너면 여수 적금도에 닿고 '백리섬섬길'이 시작되어, '적금 대교', '낭도 대교', '둔병 대교', '조화 대교'등의 대교를 다섯 개 건너면 여수다. 각각의 다리는 각각의 섬들과 모양을 달리했지만 건너는 일에만 충실한 우리는 그저 다리들을 지나간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이토록 많은 섬들에 감탄하면서. '세계 최고'라고 우리나라의 다리를 놓는 기술에 혀를 내두르면서 각자의 마음속에 자리한 여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렇게 세세한 남도 여행은 처음인 형부의 감탄사가 가장 잦다.

  오빠 내외의 지인이 관리하는 '화양'의 요양병원에 잠시 들른다. 가파른 산 중턱에 자리한 요양병원은 저절로 숨을 깊게 쉬게 만드는 쾌적한 공기와 가까이로는 다도해가 보이고 맨발로 걸을 수 있는 황톳길이 조성되어 있어서 아프지 않아도 머물고 싶은 욕심이 드는 곳이었다. 이런 풍경과 환경이라면 치유되지 않을 병도 없을 것 같고, 내려놓지 못할 생존의 욕심도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관찰자의 시선일 뿐, 암 환자 전문 병원이라는데 생이 소멸 중인 사람은 어떠할지를 헤아릴 수가 없다.

  단지 여수에는 '간장 게장'을 먹기 위해 그 먼 길을 달려간 것처럼 '게장 골목'을 찾아, ''라면 종류 불문, 요리 불문하는 '게 마니아'인 큰언니도 인상 쓸 만큼 생각보다 별로인 '게장'과 터무니없는 '갈치조림'을 허겁지겁 먹고, 다리를 건너다니기 위해 길 위에 있는 것처럼 많은 다리를 다시 건너서, 건너서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이런저런 관광과 여행들로 여수의 곳곳을 다녀보았고 굳이 우리가 함께 가고 싶은 곳이 없기도 해서 길에서 길로, 다리에서 다리로의 여행이 되고 말았다.

  오는 길의 운전기사는 올케언니, 추억이 가득한 '남평역'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남평역을 이용하지는 않았어도 나의 탯자리가 근처이고 우리에게 자부심을 안겨주는 시가 있어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간이역이다. 2004년 가을에 이곳을 지나갔고 그 흔적은 남았다.

 

 

  가을의 시작에서 --남도(5)

 

  기차는 정해진 길로 보성, 능주, 화순……. 이름만으로도 정겨운 지명들을 지나가고 창에 묻은 이마에서는 점점 해가 거두어집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남평역입니다. 곽재구의 시사평역에서의 그곳, 임철우의 소설 사평역의 그곳이면서도 동시에 그 어느 곳도 아닌, 그냥 남평역. 이곳을 꼭 지나 보고 싶었습니다. 가까워질수록 울렁울렁 멀미가 날 것 같은 기분입니다.

 

  그래요, 남평이 제 고향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제 역사가 남아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여기를 한 번인가 두 번, 지나쳐갔을 뿐입니다. 남평에서 역은 멀리 있습니다. 우리 중 아무도 여기에 와서 막차를 기다리거나 막차를 타보지는 않았습니다. 언제나 막차를 기다리고 타면서 살아왔어도, 여기에 역이 있는지를 아는 사람도 이제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가깝고도 먼 곳입니다. 사진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뾰족한 양철지붕의 낡은 역사, 두런두런 서 있는 나무들, 잘 가꾼 화초들 사이로 배롱나무꽃이 핀 예쁜 간이역입니다. 아무도 기차를 기다리지 않고 내리는 사람도 없습니다. ‘남평역이라는 지명이 벗겨져 가는 나무 팻말과 근처의 나직한 산들을 눈에 담습니다. 어디쯤 만삭의 한 여인이 볕 바른 봄날, 몸을 풀었던 산이 있을 것입니다. 오후 한 시 남평역에 도착하는 기차의 기적소리가 그 여인의 아이에게 시간을 주었다는데 지금의 기차는 조용히 역을 떠납니다. 이제는 누구도 기적소리로 시간을 가늠하지 않습니다. 그 아이는 자신을 낳던 여인의 나이를 훌쩍 지난 지금에야 비로소 여기를 지나갑니다. 속은 여전히 울렁울렁합니다. 여인과 아이를 연결한 탯줄이 산자락 어디선가 부르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립니다. 뜨거운 이마를 차창에 얹자 지나버린 풍경을 감추듯 9월의 저녁이 살포시 내려와 있습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곽재구의 [사평역에서] 중에서---

 

  소리는 멀어집니다. 사평역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남평역은 사라져도 사평역은 언제까지나 남아있을 것입니다. 여인과 아이의 끈, 탯줄처럼.

 

            2004. 9. 14

 

 


  714


  지난밤에 야심 차게 준비했던 횟감은 실패했다. 알이 가득 차서 회를 뜰 수 없었다. 겨우 몇 점을 맛보기 하는 걸로 만족하고 숯불에 구워 먹었다. 구웠어도 '샛서방'한테 몰래 주고 싶은 맛이었다. 대신에 입에 쩍쩍 달라붙는 '서대 회 무침'으로 회덮밥을 한 양푼씩 만들어 먹고 복수박으로 입가심한 뒤 수박이 되어버린 배를 통통 두드리며 밤 산책을 했다. 오랜만에 울 집의 대표 카수, 큰언니의 노래를 라이브로 들으며 걷는 길은 좋았다.


 

   


  마지막 여정은 사진 속의 '죽림사'. 지난밤의 살생은 다 잊고, 절집이라니 거시기하긴 하다.

  아버지, 어머니, 둘째 오빠의 영가를 모시고 난 뒤, 나로서는 첫걸음이다. 주지 스님이 바뀐 절집은 고즈넉하고 한층 절집다운 침묵에 놓여있었다. 가만가만 극락전에 들러 아미타불을 만나고 서성서성 둘러보았다. 장한 배롱나무들과 거기 머물러 있을지도 모를 영혼에게 작별을 고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오는 기차에서 창에 머리를 박고 노을을 본다. 손에는 여전히 [유럽 도시 기행2]를 들고 있다.


  부다페스트는 아름다웠다. 그렇지만 슬픈 건 또 그대로 슬펐다.
  단것을 먹으면 슬픔이 덜어질까 해서 구도심의 유명한 카페에 들렀다. 19세기 부다페스트의 예술가들이 즐겨 찾았고 시씨의 단골집이기도 했다는 그 카페에서 카라멜 프라페와 카푸치노를 마시고 산딸기 요구르트 케이크를 먹었다. 시씨는 그 집을 ‘부다페스트의 보석‘이라고 했다지만 너무 달아 내 취향에는 맞지 않았다. 벽에 창업자로보이는 커다란 남자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는데 독일어로 써놓은 안내문을 보니 이름이 ‘쿠글러 (Kugler)‘였다. 유럽의 성씨는 직업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쿠글러는 공이나 총알을 가리키는 명사 쿠겔(Kugel)에서 파생했다. 총알과 대포알이 아니라 동그란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만든 그 남자는 넥타이까지 맨 양복 차림으로 카페 고객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P145


  프라하는 아름다웠다. 왕궁과 교회, 거리와 강, 카페와 박물관, 모든 것이 아기자기하게 예뻤다. 그 무엇도 대단하다고 할 수 없었지만 - P239


  프라하 자체는 대단했다. 프라하는 역사의 상처를 감추지 않았고, 그상처 때문에 고통스러워하지도 않았다. 지난날의 상흔은 지난 일로정리하고 오늘은 오늘의 즐거움을 추구한다. 그렇게 하려고 성과 속의 공존을 허락한다. 프라하의 공기는 자유와 관용의 정신을 품고 있는 듯했다. ‘심하게 지나치지만 않다면 뭘 해도 괜찮아. 사람들이 프라하를 좋아하는 것은 이렇게 말하는 도시여서가 아닌가 싶었다. - P241



  한때 고향은 환멸이었다. 아픔이었다. 눈감고 싶은, 잊어버리고 도망치고 싶은 지긋지긋한 곳이었다가 늘 그립고 가고 싶은 곳이기도 한 뒤죽박죽 엉망진창의 마음으로 만들어버리는 지명이었다. 지금은 언제나 환대해줄 가족이 있는, 아무런 기대치를 발동하지 않아도 좋은, 굳이 지금의 나를 해명하거나 꾸미거나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곳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점점 푸르게 어둠이 내리는 세상, 나의 시간도 그쯤을 지나간다. 지금 타고 있는 기차의 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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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2 2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8-13 2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작가와 그의 주인공을 동일시하는 공감은대단히 강렬한 열정이다. 그것은 페이지를 한달음에 넘기게만든다. 예술적으로는 별반 장점이 없는 것에 일시적으로나마더 날카로운 예각을 부여한다. 비픈과 리어던은 저녁 식사로 빵과 버터와 정어리를 먹었고, 기싱도 그랬으리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비픈의 코트는 저당 잡혔으며, 기상의 것도그랬을 것이다. 리어던은 일요일에 글을 쓸 수 없었고, 기상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고양이를 사랑하는 것이 리어던인지, 풍금 소리를 좋아하는 것이 기인지 잊어버린다. 확실히 리어던도 기싱도 헌책방에서 기번의 책들을 샀으며, 안개속을 뚫고 한 권씩 집으로 날랐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유사성들을 계속 찾아내며, 소설과 편지를 뒤져 가며 그런 발견에 성공할 때마다 만족감을 느낀다. 마치 소설 읽기가 작가의 얼굴을 찾아내는 게임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 P144

실로 기상은 배우기를 그만두지 않았다. 베이커가의 기차들은 그의 창문 아래로 증기를 내뿜으며 지나갔고, 아래층하숙인은 그의 방을 날려 보낼 정도로 심하게 코를 풀었으며, 하숙집 안주인은 무례했다. 식료품 가게 주인은 설탕을배달해 주지 않아 그가 직접 나르게 만들었으며, 안개에 목이 상해 감기가 든 그는 3주씩이나 아무에게도 말을 할 수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펜을 들고 계속 써나가야 했으며, 이런저런 집안 걱정 때문에 마음이 비참하게 흔들렸다.
이 모든 일이 음울하고 단조롭게 계속되는 동안 그는 자신의 나약한 성품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파르테논의 기둥들과 로마의 언덕들이 여전히 안개와 유스턴 골목의 생선가게들 위로 솟아올랐다. 그는 그리스와 로마에 꼭 가볼 작 - P148

정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아테네에 갔고 로마를보았다. 시칠리아에서 죽기 전에 투키디데스를 읽었다. 그의 주위에서삶이 변하고 있었고, 삶에 대한 그의 시각도 변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 해묵은지저분함, 안개와 파라핀유, 술 취한 하숙집 안주인이 유일한 리얼리티는 아닐 것이었다. 추함이 진리의 전부는 아니었다. 세상에는 아름다움의 요소도 있었다.
과거는 그 문학과 문명으로 현재를 굳건히 만든다. 어쨌든장차 그가 쓸 책들은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이즐링턴이 아니라토틸라 시대의 로마에 관한 것이 될 터였다. 그는 부단한 사고 속에서 <두 가지 형태의 지성을 구분해야 하는 지점에 이르고 있었다. 지적 능력만을 존숭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사색의 지도 위에 자신이 도달한 지점을 표시하기도 전에 자기 인물들의 경험을 그토록 공유해 왔던 그는 자신이에드윈 리어던에게 부여했던 죽음을 공유했다. <인내, 인내>라고 그는 죽어 가면서 곁에 서 있던 친구에게 말했다. 불완전한 소설가였지만, 대단히 교양 있는 사람이었다.
- P149

토머스 하디의 소설들


토머스 하디의 죽음으로 영국 소설에 지도자가 없어졌다고 말하는 것은, 누구나 첫손에 꼽을 만한, 우리의 존경을 받아 마땅한 다른 작가가 없다는 뜻이다. 그 자신은 결코 그런인정을 구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 세속에 물들지 않고 소박한 노인은 지금 같은 때 넘쳐나는 미사여구에 고통스러울만큼 당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살아 있는 동안은 소설이라는 예술을 존경받을 만한 일로 만든 소설가가 한 사람있었다는 것이 틀림없는 진실이다. 하디가 살아 있는 동안은그가 종사하는 예술을 천하게 여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일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그의 남다른 천재성 때문만은 아니 - P151

우연의 일치를 멜로드라마에나 어울릴 만큼 극단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는 이미 소설이 장난감도 논증도 아니며인간 남녀의 삶에 대해 거칠고 과격하나마 진실한 인상을 전달하는 수단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아마도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페이지마다 울려 퍼지는 폭포 소리이다. 그것은 그의 후기작들에서 그토록 큰 비중을차지하게 될 힘의 첫발현이다. 그는 이미 세밀하고 숙달된자연관찰자임을 입증한다. 나무뿌리에 내리는 빗소리와 경작지에 내리는 빗소리가 다르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나뭇가지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나무마다 다르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는 좀 더 넓은 의미의 자연, 힘으로서의대자연을 의식하고 있다. 그는 자연 안에서 인간의 운명에공감하거나 그것을 조롱하거나 무심한 방관자로 남는 어떤영을 느끼는 것이다. 그에게는 이미 그런 감각이 있었다. 올드클리프 양과 시더리아에 관한 서투른 이야기가 기억에남는 것은 신들의 눈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연 앞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 P153

여성은 더 약하고 육욕적이며, 더 강한 자에게 매달려 그의시야를 흐리게 한다. 하지만 그의 위대한 작품들에서 삶은이 요지부동의 틀 너머로 얼마나 자유롭게 넘쳐흐르는가!
밧세바가 짐마차에 실린 화초들 사이에서 작은 손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어여쁜 모습에 미소 지을 때, 우리는 이미그녀가 얼마나 심한 괴로움을 겪을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괴로움을 주게 될지 알아차리거니와, 이렇게 우리가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 하디의 능력을 입증해 준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인생의 모든 신선함과 아름다움이 들어 있다. 매번 그런 식이다. 그의 인물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그에게 무한히 매력적인 존재들로 보인다. 그는 남성들보다 여성들을 더 친절하게 배려하며, 그녀들에게 어쩌면 더 깊은관심을 갖는 듯하다. 그녀들의 아름다움은 헛되고 운명은가혹할지언정, 그녀들 안에 삶의 열기가 남아 있는 한 그녀들의 걸음은 활달하고 웃음소리는 감미롭다. 그녀들에게는자연의 품에 안겨 자연의 장엄한 침묵 가운데 잠겨드는, 또는 일어나서 구름의 움직임과 꽃피는 숲속의 싱그러움과 하나가 되는 힘이 있다. - P160

하지만 웨섹스 소설들의 장대한 구조를 감안한다면, 이인물, 저 장면, 이 깊고 시적인 아름다운 어구 등 사소한 점들에 연연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하디가 우리에게 물려준 것은 그보다 큰 무엇이다. 웨섹스 소설들은 한 권이 아니라 여러 권으로 된 작품이다. 그 범위가 워낙 광대하다 보니불가피한 결점들로 가득 차 있다. 어떤 것들은 그저 실패이고 또 어떤 것들은 지은이의 천재성의 그릇된 면만을 드러낸다. 하지만 웨섹스 소설들에 자신을 완전히 내맡긴 후에그 전체에 대한 인상을 추려 보면, 그 효과가 웅대하고 만족스럽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 우리는 삶이 부과하는 옹색함과 왜소함에서 해방된다. 상상력은 한껏 확대되고 고양되며, 유머 감각도 십분 만족되어 실컷 웃게 되고, 지상의 아름다움을 실컷 들이마시게 된다. 또한 우리는 비감하고 사색적인 한 영혼의 속내로 들어서게 되는 바, 이 영혼은 가장 슬픈순간에도 엄정한 강직함으로 자신을 버티며 가장 분노로 내몰린 순간에도 타인의 고통에 대한 깊은 연민을 잃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디가 우리에게 남겨 준 것은 단순히 특정 시기와 장소에 국한되는 삶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강력한상상력과 심오하고 시적인 천재성을 가진, 온화하고 인간적인 영혼이 바라본 세계와 인간 운명의 비전이다. - P170

루이스 캐럴


루이스 캐럴 전작집이 넌서치 출판사에서 발간되었다.
자그마치 1,293쪽의 두툼한 책이다. 그러니 변명의 여지가없다. 루이스 캐럴은 이제야말로 최종적으로 완결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의 전부를 온전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 이번에도 또 실패다. 루이스 캐럴을 잡았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보면 옥스퍼드의 성직자이다. 또는C. L. 도지슨 신부‘를 잡았다고 생각하는데, 다시 보면 요술쟁이 요정이다. 이 책은 우리 손안에서 두 쪽이 나버린다. 그 - P171

것을 도로 이어 붙이려면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도지슨 목사에게는 삶이라는 것이 없다. 그는 이세상을 어찌나 가볍게 지나가버렸는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그는 너무나 순순히 옥스퍼드로 녹아들어갔기에눈에 띄지 않는다. 그는 모든 관습을 받아들였고, 얌전하고좀스럽고 경건하고 익살맞다. 만일 19세기 옥스퍼드 교수들에게 본질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야말로 그 본질이었다. 그는 너무나 착해서 누이들의 칭송을 받았으며, 너무나 순수하여 조카도 그에 대해 아무 할 말이 없었다. ‘루이스 캐럴의생애에 실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을 수도 있다고 조카는 언뜻 비쳤을 뿐이다. 도지슨 씨는 대번에 그런 그림자를 부인한다. <내 삶에는 아무런 시련이나 고생이 없었다>라고 그는말한다. 하지만 이 물들이지 않은 젤리에도 완벽하게 단단한수정이 들어 있었다. 어린 시절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아주 이상한 일이니, 어린 시절은 보통 천천히 시들기 때문이다. 소년이나 소녀가 자라 남자나 여자가 된 후에도 어린 시절의 부스러기는 남는다. 어린 시절은 때로는 낮에, 좀더 흔히는 밤에 돌아온다. 하지만 루이스 캐럴에게는 그렇지않았다. - P172

그럼에도 헨리 제임스의 위대함은 우리에게 그토록 명확한 세상, 너무나 분명하고 독특하여 우리가 만족한 채로 있지 못하고 그 비상한 지각들로 더욱 실험하고 싶게 만드는
‘아름다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더 이해하기를 원하지만 작가가 따라다니며 일일이 가르치는 것이나 그의 의도,
그의 조바심으로부터는 자유롭기를 원한다. 이런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우리는 프루스트의 작품으로 향한다. 그에게서 우리는 대번에 공감이 확장되는 것을, 너무나 드넓게 확장되어 애초의 대상마저 잃게 만드는 것을 보게 된다. 만일우리가 모든 것을 의식하게 된다면, 어떻게 무엇인들 포착할수 있겠는가? 헨리 제임스의 세계가 디킨스와 조지 엘리엇의 세계에 비해 물질적 경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면, 모든것이 생각에 열려 있어서 수십 가지 의미의 음영을 받아들일수 있다면, 프루스트의 세계에서는 조명과 분석이 아예 그런경계 너머로 실려 간다. 무엇보다도, 미국인인 헨리 제임스에게는 그 세련된 도희성에도 불구하고 낯선 문명 가운데서편치 못한 그 자신이 예술의 힘으로도 결코 완벽하게 극복심리 소설가들  - P181

프루스트를 읽는 어려움의 상당 부분은 이처럼 부단한 우회에서 온다. 프루스트에게서는 개개의 중심점을 둘러싸고너무나 동떨어지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사물들이 모여들므로 그런 집적 과정은 점차적이고 복잡다단하며, 그 사물들이 이루는 최종적 관계는 극히 파악하기 어렵다. 그것들에대해 생각해야 할 것이 예상보다 훨씬 더 많다. 관계는 다른사람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날씨, 음식, 옷, 냄새, 예술, 종교,
과학, 역사, 그 밖에 무수한 다른 영향들과의 관계이니 말이다. - P183

심리 소설을 쓰는 작가는 이런 왜곡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분석하고 구별하는 지성은 공감이 든 분노든 간에 항상그리고 거의 대번에 감정으로 뛰어드는 바람에 무력화된다.
그리하여 인물들 속에 종종 비논리적이고 모순된 요소가 생겨나는 것은 아마도 보통의 감정적 물살보다 너무나 많은 것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왜 그는 그렇게 행동하는가? 라고 우리는 거듭 물으며 어쩌면 미친 사람들이나 그렇게 행동하리라고 미심쩍게 대답하게 된다. 반면 프루스트에게서는 접근 방식이 똑같이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이생각하는 것과 그들에 대해 생각되는 것, 작가 자신의 지식과 생각 등을 통해 우리는 그들을 조금씩 천천히, 하지만 마음을 다 들여 이해하게 된다. - P190

그러나 프루스트와 도스토옙스키, 헨리 제임스 등 느낌과생각을 따라가는 데 전념하는 모든 작가들에게는 항상 작가로부터 넘쳐흐르는 감정이 있다. 마치 그렇게 미묘하고 복잡한 인물들은 책의 나머지가 생각과 감정의 깊은 저수지일 때만 창조될 수 있는 듯하다. 그리하여 작가 자신이 나서지 않을 때에도, 스테판 트로피모비치나 샤를뤼스 남작 같은 인물들은 비록 언명되지는 않았다 해도 자기 자신들과 같은 재료로 된 세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이처럼 마음을 되새기고 분석하는 작업은 항상 의심과 질문과 고통의, 어쩌면 절망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적어도 그런 것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나 『악령』을 읽은 결과인 듯이 보일 것이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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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닐거나 쏘다닌다는 것이 다른 사람들보다 그에게 더 큰의미가 있었다는 것은 그의 친구 몇몇이 각기 나름으로 그원정들에 대한 회고담을 내놓으면서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그는 아침 식사 후에 혼자서 또는 친구 한 사람과 함께 출발하여 저녁 식사 직전에 돌아오곤 했다. 그런 도보 여행이 성공적이었을 때는 커다란 지도를 꺼내 새로운 지름길을 붉은잉크로 표시해 두었다. 그는 온종일 동행과 한두 마디 이상하지 않은 채 얼마든지 황야를 돌아다닐 수 있었던 모양이다.  - P12

 그가 말하지 않은 것들이 항상 그 배경에 있었다. 또한, 그는 사람들과의 일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고 일어난 일들을 잘 기억하지도못했지만, 어떤 사람을 묘사할 때면 그는 유명 무명의 많은 사람들과 알고 지냈다ㅡ 자신이 그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불과 두세 마디로 정확하게 표현하곤 했다. 그런데 그의생각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정반대일 때도 있었다. 자신에게 진실하게 비치는 느낌은 누구보다도 존중했지만, 기존의평판이나 전통적인 가치들은 예사로 뒤엎고 무시하는 특유의 버릇이 있어, 당혹스럽고 때로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할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완전히 추상적인 상념에 빠져 있는 듯하다가 문득 깨어나 그 선명한 푸른 눈을 뜨고서 자기의견을 말할 때면, 도저히 무시하기 어려웠다. 그런 버릇은- 특히 그가 점점 귀가 어두워져서 그렇게 중얼대는 의견이 남에게도 들린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되었을 때는 불편한 것이 되었다. - P15

 그의 딸들도- 비록 그는 여성의 고등 교육에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똑같은 자유를 누리는 것이 마땅했다. 한때 딸 하나가 담배 피우는 것은 무섭게 꾸짖었지만 그의 견해로는 여성이 담배 피우는 것은 좋은 버릇이 못 되었다 - 그녀가 화가가 되어도 좋은지는 그저 묻기만하면 되었다. 그는 딸이 자기 일을 진지하게 여기기만 한다면 가능한 모든 지원을 해주겠노라고 확답해 주었다. 그는딱히 그림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약속을 지켰다. 그런 종류의 자유가 천 개비 담배보다 낫다.
문학이라는 아마도 좀 더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오늘날도, 열다섯 난 딸이 따로 검열하지 않은 서재를 마음대로 드나들도록 허락하는 것이 현명한 일인가에 대해 의심하는 부모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아버지는 허락했다. 몇몇 사실에 대해, 그는 아주 간략하게, 아주수줍게 언급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읽고 싶은 것을 읽으라고 말해 주었고,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초라하고무가치한〉, 하지만 분명 다양했던 그의 많은 책들을 허락받지 않고도 다 읽을 수 있었다. 좋아하는 책들을 좋아하니까읽는다는 것, 실제로 좋아하지 않는 책들을 좋아하는 척하지 - P19

말아야 한다는 것 - 그것이 독서에 관한 그의 유일한 지침이었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가능한 한 적은 말로, 가능한 한 명료하게 써야 한다는 것이 글쓰기에 관한 그의 유일한 지침이었듯이 말이다. 그밖의 다른 것은 스스로 배워야 할 터였다. 하지만 비록 그가 자신의 견해를 강요하거나지식을 과시한 적은 결코 없었다 해도, 그것이 뛰어난 학식과 폭넓은 경험을 지닌 사람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모르는 아이는 정말이지 철없는 아이일 것이다. 언젠가 본드가의 양복점 주인이 자기 가게 앞을 지나는 아버지를 가리켜 <좋은 옷을 좋은 줄도 모르고 입고 가는 신사분>이라고 말했듯이 말이다. - P20

실제로 거리가 단점이기는 했다. 우리는 여름에만 그곳에갈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의 시골 생활은 1년에두 달, 길어야 석 달로 제한되었다. 다른 달들은 내내 런던에서 지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우리가 어린 시절에 누렸던어떤 것도 콘월에서 보낸 여름만큼 대단하고 중요하지는않았다. 런던에서 몇 달씩 지내고 난 뒤에 콘월로 떠나게 되니 시골 생활이 한층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우리 집과 우리정원이 있고, 만과 바다와 황야가 있고, 클로지, 헤일스타운늪지, 카비스 베이, 릴런트, 트리베일, 제너, 거나즈 헤드 같 - P24

은 곳들이 있고, 도착한 첫날 밤 노란 차양 뒤에서 파도가부서지는 소리를 듣고, 모래를 파고, 어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고, 바위틈을 뒤져 빨갛고 노란 말미잘이 촉수를 하늘거리는 것을, 아니면 젤리처럼 바위에 들러붙은 것을 보고, 물웅덩이에서 파닥거리는 작은 물고기를 발견하기도 하고, 별보배고둥을 줍기도 하고, 식당에서 문법책을 대충 훑으며만의 불빛들이 바뀌는 것이나 에스칼로니아 잎이 회색이나밝은 녹색인 것을 바라보고, 마을로 내려가 1페니짜리 압정한 통이나 주머니칼을 사고, 라 씨 - 하인들의 말에 따르면, 찰랑이는 곱슬머리 가발을 쓴 부인과 <광고를 통해 결혼했다는 ㅡ 집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가파르고 좁은 골목에서 나는 온갖 생선 냄새를 맡고, 생선 뼈를 물고 다니는무수한 고양이들과 집 바깥에 돋운 계단 위에서 구정물을수채로 쏟아 버리는 여자들을 보고, 날마다 노란 막이 덮인콘월 크림을 먹고, 블랙베리에 흑설탕을 듬뿍 뿌려 먹고・・・・・・ 이런 기억들로 몇 페이지라도 채울 수 있을 것만 같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세인트아이브스에서 보내는 여름이야말로 생각할 수 있는 최상의 인생 서막이 되게 했다. - P25

깃발들이 펄럭이고, 총성이 울리고, 배들이 질주하고, 수영 선수들이 물에 뛰어들거나 갑판 위로 끌어 올려지는 등아주 신나는 광경이었다. 세인트아이브스 사람들이 모여서구경하는 곳은 테라스 끝의 말라코프라는 이름의 팔각형 뜰이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크리미아 전쟁 때 만들어졌을 마을에서 유일하게 장식적인 장소였다. 세인트아이브스에는오락 시설이 딸린 부두나 산책로가 없고 오로지 이 자갈 깔린 팔각형 뜰뿐이었고, 거기 있는 몇 개의 돌 벤치에는 특유의 푸른 세타를 입은 은퇴한 어부들이 앉아 담배를 피우며잡담을 하곤 했다. 레가타 날은 내 기억 속에 그 머나먼 음악소리와 작은 깃발들이 달린 줄과 돛을 올린 배들, 그리고 모래 위에 점점이 흩어진 사람들과 함께, 마치 한 폭의 프랑스 그림처럼 남아 있다. - P33

한 번은 우리가 성대와 가자미를 연거푸 낚아 올리며 한참이나 열중해 있자, 아버지가 내게 말했다. <다음에 너희가낚시하러 올 때는 난 오지 말아야겠다. 물고기들이 잡히는걸 보고 싶지 않아. 하지만 너는 원하면 와도 된다.> 완벽한교훈이었다. 무엇을 비난하거나 금지하는 대신 단지 자신의느낌을 말하고, 그 점에 대해 내가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하게 한 것이었다. 미끼를 문 물고기가 낚싯줄을 휙 잡아채는느낌은 내가 그때까지 알던 가장 짜릿한 전율을 주었지만,
아버지의 말에 그 매력은 서서히 사라졌다. 나는 아무 불평없이 낚시를 그만두게 되었다. 하지만 나 자신의 열정의 기억으로부터 나는 여전히 그런 활동의 즐거움을 떠올려 볼수있다. 사람이 모든 경험을 충분히 해볼 수는 없을진대, 그것은 다른 사람의 삶을 그려 보는 무엇을 키울 수 있는 무한히소중한 씨앗 중 하나이다. 종종 우리는 그런 씨앗으로 만족해야 할 때도 있다. 다른 삶을 살았더라면 일어날 수도 있었을 일의 씨앗 말이다. 나는 그렇듯 <낚시>를 다른 여러 일시적으로 스쳐 간 일들, 예컨대 런던 거리를 거닐 때 지하층에홀긋 던지는 일별 같은 것들과 함께 분류해 두고 있다. - P39

세인트아이브스 서쪽 해안에 있는 트리베일이라는 내포(內浦)까지 도보 여행을 갔던 길에, 우리 일행이 집을 향해출발하기도 전에 가을 저녁이 저물기 시작했다. 어스름 속에서도 풍경은 너무나 선명하여 다들 말없이 우두커니 바라보기만 했다. 바다를 향해 장엄하게 줄지은 거대한 절벽들이밤과 대서양의 파도를 맞이하며 서 있었는데, 마치 태곳적명령에 다시 한번 순종하기라도 해야 한다는 듯 의연하고 고고한 모습이었다. 이따금 멀리서 등대의 불빛이 안개를 뚫고황금빛살을 던지며 문득문득 바위들의 거친 형태를 드러내곤 했다. 그 광경만으로도 아직 6~7마일을 더 걸어가기에는시간이 너무 늦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 P43

창밖에서 짓누르는 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잠들지 못하고 밖에 나와 어둠 속에 팔이라도 뻗어 보는 것이리라. 불빛은 그 주위에 밀어닥치는 밤의 무한한 파도에비하면 얼마나 미약한 것일까! 바다의 배도 외롭겠지만, 이황량한 땅에 닻을 내리고 밤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의물살에 홀로 노출된 이 작은 마을은 훨씬 더 외로워 보였다.
그런데도, 이 낯선 분위기에 일단 익숙해지자, 그 안에는크나큰 평화와 아름다움이 있었다. 마치 실체의 세계에서 유령과 정령들만이 나와 돌아다니는 듯했다. 언덕이 있던 자리에는 구름이 떠돌았고, 집들 대신 불꽃들만이 남았다. 눈은현실의 거친 외관에 긁힘이 없이 밤의 심연에 맑게 씻겨 기 - P46

운을 되찾는 것만 같았다. 대지는 그 무한한 세부들과 함께모호한 공간으로 용해되었다. 그처럼 감각이 새로워지고 민감해진 자들에게는, 집들이 너무 다닥다닥 붙어 있고 불빛들은 너무 강하다고 느껴졌다. 우리는 막 날아오르다 말고 붙잡혀 새장에 넣어진 새들과도 같았다. - P47

이제 나의 아버지를 묘사해 보겠다. 네사와 내가 그 이상한성격의 작렬에 아무 보호막 없이 노출된 것은 1897년 스텔라가 죽은 후 1904년 그 자신이 죽기까지의 7년 동안이었다. 스텔라가 죽었을 때 네사는 갓 열여덟 살, 나는 열다섯 살 반이었다. 내가 왜 <노출되었다고 하는지, 그리고 그를 왜 <이상한 성격>이라고 하는지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달리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 설명하기 위해서는 내 어린마음과 몸의 닳아버린 껍질 속에 다시 들어가 살아야만 할 것이다. 나는 이제 당시의 내 나이보다는 그의 나이에 훨씬 더가까워졌다. 하지만 그때보다 그를 더 잘 이해하는지? 아니면 그 엄청나게 중요한 관계의 각을 뭉개 버려, 그의 관점에서도 나 자신의 관점에서도 묘사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인지? - P55

나는 이제 모퉁이를 돌아 그를 보고 있다. 정면으로 보고 있지않다. 더구나, 『등대로』에서 어머니에 대해 글을 씀으로써 그추억의 힘을 상당히 지워 버린 것처럼, 거기서 아버지의 추억도 많이 지워 버렸다. 하지만 그도 여러 해 동안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에 대해 쓰기까지는, 입술이 절로 달싹이면서 그와 논쟁을 벌이고, 그에게 화를 내고, 그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곤 했다.
소리 내어 말하지 못했던 것들이 내 속에 얼마나 깊이 박혀 있었던지, 그중 어떤 것들은 여전히 말할 만하다. 가령, 네사가매주 수요일에 검사받던 가계부 얘기를 꺼낼 때면, 나는 여전히 그 말 못하고 쌓인 해묵은 분노를 온몸으로 느낀다.
- P56

외그의 책들을 통해 나는 작가로서의 아버지를 접할 수 있다. 하지만 네사와 내가 집안 살림을 물려받았을 때, 나는 사교적인 아버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고, 작가로서의 아버지는 그를 책에서만 만나게 된 지금보다 훨씬 더 까다롭고집요했다. 그 무렵 나를 지배했던 것은 폭군적인 아버지 -까다롭고, 격렬하고, 연극적이고, 노골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연민에 빠진, 귀가 먹은, 애절한 - 애증이 교차할수밖에 없는 아버지였다. 마치 야수와 함께 우리에 갇혀 있는 것과도 같은 상황이었다. 만일 열다섯 살의 내가 과민하고겁 많은 어린 원숭이로, 노상 침을 뱉거나 견과를 깨뜨려먹고, 껍질을 사방에 던지고, 잔뜩 찌푸린 채 꿍얼거리다 어두운 구석으로 훌쩍 몸을 날려, 우리 이쪽저쪽으로 그네를 - P69

타며 황홀경에 빠져 있었다고 하자. 그는 우리 안을 어슬렁대는 시무룩하고 위험한 사자였다. 뭔가 기분이 언짢고 마음이 상해 화가 잔뜩 나서, 갑자기 사나워졌다가는 또 아주겸손해지고, 그러다 또 위엄을 부린다. 그러고는 먼지투성이에파리가 들끓는 우리 한구석에 드러눕는 것이다. 
나는 1897년부터 1904년까지 그 불행했던 7년 앞에서 음츠러든다. 그 당시 우리의 삶만큼 고통에 시달리고 초조하고<비존재non-being〉로 무감각해졌던 삶도 별로 없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 그것은 저 두 차례의 불필요한 타격‘ 때문이었다. 그 시절을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상적이고 자연스럽게 만들어 주었을 두 사람을 잔인하고 무의미하게 죽여 버린 무차별적이고 생각 없는 도리깨질 때문이었다.  - P70

그에게 어떤 사상을, 가령 밀이나 벤담이나 홉스의 사상을 분석해 보라고 하면, 그는 (메이나드ㅅ가 내게 말해 준 대로) 예리함과명석함과 공정성의 본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어떤인물을 설명해 보라고 하면, 그는 극히 조야하고 유치하고인습적이라 그의 인물 묘사는 어린아이가 크레용으로 그리는 그림만도 못할 것이다. 이 점을 설명하려면, 케임브리지의 편파적인 교육이 내는 절름발이 효과를 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19세기의 작가라는 직업과 강도 높은 두뇌 노동의 폐해도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그는 결코 육체노동을 한 적이없었다. 그 두 가지 영향이 음악이나 미술에는 소질이 없고청교도적으로 키워진 바탕에 어떻게 작용했을지 고려해 보아야 한다. 이 모든 것과 그것이 어떤 감수성을 강화하고 다른 어떤 감수성을 위축시켰을지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 P76

그래서 그런 격렬한 분노의표출로 공포와 혐오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그런 발작에는무엇인가 맹목적이고 동물적이고 야만적인 데가 있었다. 로저 프라이" 는 문명이란 자각을 의미한다고 말한 적이 있거니와, 아버지는 그처럼 자각이 결여되었으니 깨이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깨닫지 못했다. 아무도 그를 깨우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괴로워했고, 자기감옥의 벽들을 통해 이따금 깨달음의 순간들을 얻었다.
이 모든 것으로부터 나는 한 가지 변함없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즉, 자기 본위만큼 끔찍한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어떤 것도 자기 자신을 그토록 잔인하게 해치지 못하며, 어떤 것도 어쩔 수 없이 거기 맞닥뜨린 사람들을 그토록 심하게 상처내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 이렇게 세월이 지나고 보면, 그 무렵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즉, 아버지와 우리의 나이차 때문에 가로놓여 있던 심연 말이다. 하이드 파크게이트의 응접실에는 서로 다른 두 시대, 즉 빅토리아 시대와 에드워드 시대가 대치하고 있었다."  - P77

우리 사이에는 완충 역할을 할한세40대가 있어야만 했다. 그가 격노할 때 우리 눈에 왠지 우스꽝스럽게 비쳤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우리는 미래를 바라보는눈으로 그를 보았다. 우리가 본 것은 이제는 열여섯이나 열여덟 살 난 소년 소녀에게도 너무 명백하여 설명할 필요조차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바라보면서도 철저히과거의 권력 아래 놓여 있었다. 버네사와 나는 둘 다 타고난모험가요 혁명가였음에도, 우리보다 50년은 더 늙은 사회의지배하에서 살았다. 우리의 투쟁을 그토록 힘들고 격렬하게만든 것은 이런 기묘한 사실이었다. 우리가 살았던 사회는여전히 빅토리아 사회였다. 아버지 자신이 전형적인 빅토리아 시대 사람이었다. 조지와 제럴드는 빅토리아 사람들에게
동조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과 두 가지 싸움을 치러야만 했다. 개인적인 싸움과 동시에 사회적인 싸움을 말하자면, 우리는 1910년대에, 그들은 1860년대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 P78

음악은 아직 유년기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을 흔히 듣게되는데, 그 말을 가장 잘 입증해 주는 것은 음악 비평의 애매한 상태이다. 음악 비평의 전통은 아주 얕으며, 음악 그 자체가 워낙 생동하는 예술이라 그것을 다루고자 하는 이들을 압도해 버리는 것만 같다. 문학 비평가는 놀랄 일이 별로 없으니, 거의 모든 문학 형식이 그 이전 것과 비교 가능하고 모든성취를 전부터의 기준에 비추어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에서 슈트라우스나 드뷔시‘가 하고 있는 일을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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