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열풍의 시대지만 쓴 글이 출간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내 글 역시 마찬가지다. 책으로 나올 필요도 의사도 없더라도 매일매일 쓰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언어는 현실보다 늦게당도한다. 영원히 도착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 시간차를 메우려는 예언자는 사기꾼이다.
현실을 드러내는 재현의 언어는 글쓴이의 노동으로서만 가능하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나는 내가 나를 알지 못할까 봐 두렵고, 나를 몰라서 실패를 반복해왔다. 앞으로도 쉽게 나아지지는 않겠지만 내가 쓴 글이 나를 만드는 과정을 넘어 내가 내글로 재귀(歸)함으로써 새로운 내가 탄생하기를 희망한다.
언제나 내 몸 전부를 바치는 글을 쓰고 싶지만 최선을 다하지 못해 찝찝함과 죄책감이 든다. 이 책도 그런 책이다. 진부한말인지만, 진심으로 나는 내 글이 부끄럽다. 늘 그렇듯 출판사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정성일 평론가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 그는 정은임 아나운서가 고인이 된 후, ˝당신 없이 누구랑 영화 이야길하지?˝라고 썼다. ‘당신‘이 없을 때 이 책이 ‘당신‘이기를 바란다. 큰 욕심이라 부끄럽지만, 감출 수 없다.


인류세를 영화로 건너며
슬픔의 힘을 믿으며
2022년 한여름
정희진

p35, 36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2020년)라는 제목의 책을 낸 적이있다. 이 책은 그 반대 방향에서 쓰였다. 모든 글쓰기는 대상(영화에 대해 쓰는 것이 아니다. 대상에 대해 말하는 사람을 드러내는 행위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여성‘이나 ‘동양‘은 실재하지않는다. 규범일 뿐이다. 여성은 남성이 쓴 것이고, 동양은 서양이 쓴 것이다. 간단히 말해 전자는 가부장제, 후자는 오리엔탈리즘이다. - P10

내가 만들어진 과정을 알아야 나를 알 수 있다. 그것은 쓰는행위 자체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 <내가 쓴 것(What I Have Written)〉(1995년)이 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영화 제목이 정말 좋다. 제목만으로 여러 가지 글감이 된다. 비윤리, 무지, 권력관계는 주체와 대상의 이분법에서 출발한다. 글쓰기가 힘들고 두려운 이유는 쓰는 사람이 대상을 창조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가 문제 삼아야 할 것은대상(작품)이 아니다.  - P11

글을 쓰는 주체인 나를 알기 위해 나를 대상으로 삼은(는)그들의 언어를 아는 것, 이것이 맥락적 지식이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주체도, 대상도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주체가 되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이 둘 사이를 지속적으로 왕복하는 성실성(integrity)이다. 그리고 그 누구도 객관성을 독차지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관점은 부분적 시각(partial perspective)일 뿐이다. 이에 더해 ‘왔다 갔다(流)‘ 하는 불안정한(precarious) 상태가 인간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삶이고 쾌락임을 받아들일 때 외로움도 덜하고 인생의 의미가 조금이라도 더 커진다. 이것이 지식의 본질인 맥락성, 상황이다. 언어가 아무 데나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특정 맥락 안에서만 의미가 있고 소통 가능하다. "거대 담론 말고 일상성"이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 P12

내가 영화를 보는 방식 중 하나는 덧칠된 그림 이전의 작품을 상상하는 것이다. 덧칠은 최종 버전에서는 보이지 않아도,
만든 이의 몸에는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그 흔적은 무의식이 의식화된 형태나 불필요한 장면 따위로 드러나기도 한다. 흔히 말하는 ‘반전‘은 덧칠 이전의 그림이 드러나는 순간이 아닐까. - P13

영화의 ‘보이는 밑그림들‘은 관객들의 개인적 사건이 된다.
개별적인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대체불가능한 나만의 버전일 수밖에 없다(야오이.장르처럼 이미 퀴어 예술가들은 이러한 작업을 해왔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그래서 맥락적이다. 어느 장면도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다. 어느 한 장면이아니라 그 장면 전후의 서사와 나의 이야기가 조우할 때 가장인상적인 장면이 탄생한다.
나는 언제나 나만의 부분적 시각이 독창적 글쓰기가 될 수있는 가능성을 모색한다. 부분적 시각은 당파성을 전제한다. 당파성은 글의 필수 요건이다. 아니, 당파성이 없는 글은 없다. 흔히 말하는 무당파도 당파니까. 주장이 없다면 글을 쓸 이유가없다. 하지만 그 주장은 선언될 것이 아니라 설명되어야 한다. - P14

시피물론 이 책이 그 임무를 제대로 수행했는지는 독자의 가치관과 ‘좋은 글‘에 대한 취향에 달려 있다. 과정이 곧 결과의 일부)다. 과정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 수단이 중요한가 목적이 중요한가라는 식의 질문은 의미가 없다. 글쓰기 과정이 ‘공개되는‘
글, 필자의 사고방식을 독자가 파악할 수 있도록 쓰인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좋은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의 판단 기준이 명확한 편이다. 글의 완성도와 무관하게 글을 읽고 글쓴이의 성격, 인격심지어 그의 팔자, 글쓴이로서 롱런할지 아닐지까지 파악할 수있다면, 일단 무언가를 보여준 것이다. 글을 읽었는데 글쓴이에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글, 즉 글 제목 아래 어떤 이름을 붙여도 무관한 글은 생산자 표시가 없는 상품이다. 사기요, 불량품이다. 자기도취적인 글, 현학적인 글, 진부한 글은 좋은 글은아니지만, 일단 그런 글들은 읽고 작자를 파악할 수 있으므로어쨌든 판단 가능한 영역에 들어오는 글이다. - P15

사회는 ‘우리‘의 ‘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밀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절실한 이야기, 당연한 정의, 상식적인 권리는 말할 것도 없고 군 위안부에 대한 다른 목소리도 논란이 된다. 똑같은 목소리, 부담스럽지 않은 이야기 말고는 위험하다. ‘다른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회가 문제인 이유는 전체주의 차원의 이슈가 아니다. 이야기가 없는 사회에서는 돈과건강만 중요하다. 돈과 건강을 극소수가 독점한 시대에 이 자원을 확보하지 못하는 이들은 살아남을 수 없다. 지금 인류에게 절실한 것은 그야말로 나눔이다. 돈과 건강 외에 언어, 보살핌, 존중의 가치가 중요한 자원으로 인식되고 평범한 이들이 이런 것들을 ‘보유해야 한다. - P20

어떻게 살 것인가. 엣지(edge, 벼랑 끝에서 말해야 한다. 말장난 같지만, 그러면 조금은 ‘엣지 있게 들릴 것이다. 엣지는 말하는 장소, 글자 그대로 절박하게 확보한 부분적인 공간이다.
그곳엔 여러 사람이 설 수 없다. 벼랑 끝은 선택의 여지가많지 않기에 ‘가장 객관적인‘ 이야기를 하게 될 가능성이 많은장소다. 독창성은 글의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이다. 독창성은벼랑 끝이라는 맥락, 부분적 관점에서만 가능하다. 부분적 관점은 사회에서 통용되는 지배적인 객관성 개념에 나의 목소리를보내고 조율하고 틈새를 내는, 공동체의 생존을 위한 중요한실천이다. 지배 세력이 그들만의 가치를 말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오히려 그것을 선망한다면? 동일시한다면? 나를 억압하는이들을 내가 지지한다면? 당대의 한계 없는 발전주의가 그 위험한 스토리 중 하나다. 예전에는 역지사지가 어려운 일이었지만, 지금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되었다. 내 몸에서 타인을 생각할 공간은 좁아져만 간다. - P21

말하는 사람의 위치가 없는 곳은 없다. 장소 없음은 곧 말의의미 없음이다. 우리는 자기 위치를 말하지 않고 신이나 자연의 권위를 빌려서 말하는 방식에 익숙하다. 이런 말하기가 없다면 권력은 작동하지 않는다. 흔히 듣는 "국민이 원한다" "이것이 대의다" "주님이 말씀하셨다" "자연의 이치다" "과학적 사 - P23

실" 따위는 실상 개인의 이해관계에 따른 의견일 뿐이다. 요즘은 "돈이 전부다" "유명해야 한다"라는 권위도 추가되었다. 자기 말에 특권을 부여하는 전형적인 말하기 방법이다.
이런 말하기 방식에 대한 저항이 예술이요, 사회 정의다. 탈식민주의, 생태주의, 페미니즘은 이러한 저항에서 탄생한 사상이다. 이 사유들은 말하는 사람(주체)과 규정되는 대상(텍스트,
영화·………) 간의 관계에서, 주체의 일방성을 성찰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체의 말이 상대화되고 부분화될 때 대상도 여러 모습으로 달리 보일 것이다. 이렇게 부분적관점은 대상에 관한 이야기를 더 개방할 수 있고 더 다양하게말할 수 있다. 물론 이건 상대주의가 아니다. 상대주의와 반대다. 상대주의는 인식자의 위치, 부분에 관한 인식이 전혀 없다. 부분적 관점은 모두를 똑같이 ‘여럿 중의 하나‘라고 보는 탈정치가 아니다. 자기 입장의 사회성과 정치학을 분명히 하면서,
인식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는 실천이다. 인식 대상에 대해말하기 전에, 말하는 자신에 대한 사회적 신원(元), 위치, 체현(embodiment)을 밝혀야 한다. 다시 강조하면, 본디말하기, 글쓰기는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고 쓰는 것이다. - P24

반복하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특히 영화를 볼 때 특정부분에 깊게 ‘꽂힌다‘. 그리고 그 이유와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그 ‘꽂힌‘ 부분을 통해 나 자신을 알 수 있고, 그 부분에 나의 세계관이 압축되어 있다고 믿는다. 그 ‘꽂힌‘ 부분에서 감독이 말하고 싶은 바가 무엇일까도 생각하지만, 그걸 감독 자신도 확신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두어시간짜리 영화에서 모든것을 압축하는 어떤 장면 하나, 대사 한마디는 관객의 경험과기억의 선택에서 나온다. 그래서 나는 ‘킬링 타임 영화‘는 없다고 생각한다. 선택부터가 일종의 입장이다. 어떤 영화도 다음과같은 물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어떻게 볼 것인가? 어디로부터 볼 것인가? 무엇이 나의 관찰력을 제한하는가?  - P27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인의 현지인 학살을 다룬 <기억의 전쟁>(2018년)에서 피해를 증언하는 베트남 여성은 ‘약간은 수치스럽고 뭔가 찝찝하고 머뭇거리고 불편한‘ 표정과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한국 단체들에서 증언의 대가로 돈을 받은 적은절대 없어…………. 선물 정도 받을 뿐이지." 이 장면에 꽂힌 나는한국의 군 위안부 운동에 대해 백 매짜리 원고를 썼다. 한 장면,
이것이 내가 영화를 보는 방식이다. 대개 부분적 진실이 ‘큰 이야기‘를 배경에 두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내게 <기억의 전쟁>은 그 장면에서 ‘소임‘을 다했다. 역사와 일상, 큰 이야기와 작은 이야기, 보편성과 특수성·····… 이것들은 따로 있는것이 아니다.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의 경험, 위치, 동일시한 부분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하면 영화보다 더한 나의 영화가만들어질 것이다. - P30

<우리는 매일매일>(2019년), 이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흥미롭다. 마치 글쓰기 대회의 시제(題) 같다. 우리는 매일매일 무엇을 하는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사는가? 나는 무엇을 하는가. 나는 매일매일 글을 쓴다, 약을 먹는다, 우엉차를 마신다,
영화를 본다, 물건을 찾는다, 잔다………. 써놓고 보니, 나는 상당히 단순하게 사는 사람인데도 매일매일 하는 일이 제법 많다. - P39

이번에도 강유가람 감독에게 내 글을 보내고 <우리는 매일매일>을 만들게 된 계기와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묻고 답하는메일이 오갔다. 모든 내용이 좋았지만, 내가 생각지 못한 이야기가 있었다. 감독은 말한다. "요즘 페미니스트가 공부를 안 한다는 말은 1020세대뿐만 아니라, 저에게도(감독) 해당되는 말인거 같습니다. 저도 공부가 필요한데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를모르겠습니다. 다만, 지금 세대가 공부를 안 한다기보다는 여성은 여성의 역사를 배울 기회가 없기 때문에, 제도권 교육이든어디서든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P41

남자들의 지식은 전수되는데, 왜 여성은 처음부터 똑같은 질문을 반복할까. 나를 비롯해 여성도, 여성주의자도 젠더에 대해 알기 어렵다. 여성주의는 과정의 사유다. 왜냐하면 여성주의는 그 자체로 모순인 사유이기 때문에 매 순간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대체 누가 여성이며, 그것은 누가 정하는가. 현실이 계급 문제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듯, 젠더만으로는 설명할 수없다. "여성은 구조적 피해자"는 상식이지 논쟁거리(?)가 아니다. 젠더는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남녀 간 권력관계로 ‘보이는‘ 젠더는 여성들 간의 차이와 남성들 간의 차이를 매개로 하여 작동한다.
이러한 여성주의의 모순과 복잡함은 사상의 한계가 아니라자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주의적 사고방식은 가성비가 높은 공부이며 빼어난 인식론일 수밖에 없다. 여성주의는 다른사유처럼 공부해야만 획득할 수 있는 어려운 인식이다.  - P43

이러한 여성주의의 모순과 복잡함은 사상의 한계가 아니라자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주의적 사고방식은 가성비가 높은 공부이며 빼어난 인식론일 수밖에 없다. 여성주의는 다른사유처럼 공부해야만 획득할 수 있는 어려운 인식이다. ‘여성 - P43

(female)‘이 ‘여성(women)‘이 되는 과정 그리고 ‘우먼‘이 ‘페미니스트‘가 되는 과정 모두 엄청난 정치적 노정(路程)이다. 그 길에서 우리는 세상의 모든 현실과 지식을 만나게 된다. 문제는 사상과 현실의 거리가 너무 멀고 동시에 너무 가까운 듯 보여서,
누구도 이정표를 제시할 수 없다는 점이다.
나는 한국의 현실 정치에서 젠더에 관심 있는 사람도, 젠더가무엇인지 아는 이들도 없다고 본다. 여성운동단체 출신 의원도 마찬가지다. 표싸움일뿐이다. 2022년 윤석열 정권이 무슨심각한 가치관이 있어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한 것이 아니다(당선 후 여가부 장관을 비롯해 몇몇 여성 장관을 임명했다). ‘여성계‘를 포함해 한국 사회는 정치권, 시민사회, 학계 등 모든 분야에서 인식론으로서 젠더의 지위가 매우 낮다. 젠더가 문제가될 때는 정치인의 성범죄로 상대방을 공격할 명분이 생겼을 때뿐이다. 그들은 성차별주의자가 아니다. 무엇이 성차별인지 ‘여성 우대‘인지 분별력이 없다. 그냥 젠더에 무지해도 되는 권력을 가졌을 뿐이다. - P44

나는 당대 여성주의의 곤란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말을 공식적으로 할 수 있는 집단의 등장 때문이 아니라‘ 지적인 측면에서 독특한 재앙이긴 하다-여성주의 대중화에 대한여성주의적 해석이 빈곤한 데 있다고 본다. "사회적 모순으로서성차별은 없다"는 인식은 진보 진영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한국 사회 특유의 발전주의 때문이다. 발전주의 세계관에서는그 어떤 사회적 약자도 사회 정의도 "나중에" 다.
언어는 언제나 현실보다 늦게 당도한다. 언어는 현실을 가시화하지 못한다. 우리의 현재가 바로 인식된다면, 이미 가부장제사회가 아니다. 역사상 그 어느 사회에서도 지배적 언어(인식)는 단 한 번도 약자의 편이었던 적이 없다. 가부장제는 인류 문명의 기반이었지만, 현대 페미니즘은 1949년에 출간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을 기준으로 해서 백 년이 안 되었고 한국 사회에서는 30~40여년되었다. 그 시간도 법 제정과 젠더 주류화라는 공적 영역을 지배하고 있는 ‘남성의 철학‘ 자유주의의 자장 안에서였다. - P45

공부가 부족하니 매일 발생하는 현안에 대처하지 못한다. ‘이준석‘ 같은 이들과 ‘덤앤더머‘ 경쟁(?)으로 소진하기에는 여성의 삶은 소중하다. 게다가 한국 사회는 이미 오래전 공부를 적대시하고 스펙이 공부를 대신하는 사회가 되었다. 취업으로 연결되지 않는 공교육 붕괴, ‘부모 찬스‘, 문해력 부재, 온라인글쓰기, 상업화된 출판 시장, 온라인 서점이라는 폐가식 도서관………. 여성주의자가 아니라도 공부를 안 해도 되는 이유는너무 많다.
비극적이게도 이러한 상황이 여성주의와 결합했다. 여성주의 관련 책은 전체 출판시장의 0.00001 퍼센트? 가늠하지 못할만큼 작다. 일단 인문사회과학 분야 자체가 취약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주의 책을 구입하는 이들은 40~50대 여성들이 주를 이룬다. 온라인 서점에서는 도서별로 구입자의 남녀노소 분포도가 나오는데, 20대 남녀는 모두 여성학 책을 읽지 않는다. - P47

가부장제 사회, 한국 사회는 여전히 여성의 언어를 부정하고 편협하다, 특수하다, 자의적이다 운운한다. 여성주의를체계적으로 가르치기는커녕,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공공 도서관에서 여성학 책을 구입하는 사서를 고발한 남자 고등학생도 있다. 세금 낭비에다 남성학 책이 없으므로 남녀평등에 어긋난다는 이유였다. 나는 대학에서 융합 글쓰기를 강의한 적이 있는데, 여성(학자)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말한 학생이 있었다. "선생님이 글쓰기를 가르치는 것은 괜찮지만, 여성주의를 강요하지는 마세요."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글쓰기는 어느 사상과도대립하지 않으며, 제 강의가 어떤 내용이든 수업 시간에 중요한내용을 강조할 수는 있어도 강요는 있을 수 없습니다." - P48

가부장제 사회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여성이 언어를 갖는것이다. 여성이 자신의 위치에서 말하는 것을 ‘질색한다. 여성의 언어가 남성의 기득권을 빼앗고 그들의 특권을 위협한다고생각하는 경우도 있지만, 내 경험으로는 대개 못 알아듣는 경우다. 마치 미국인이 한국어를 못 알아듣는 것처럼. 그러니 혐오발화나 횡설수설밖에는 할 말이 없고, 젠더를 주제로 한 논의는거의 불가능하다. - P48

여성에게 유일한 무기는 언어밖에 없다. 우리가 총칼로 싸우겠는가. ‘미러링‘이라는 이름의 욕설로 싸우겠는가. 우리는 공부해야 한다. 공부하지 않는 한 해방은 없다. 여기서 공부의 첫단계는 이론을 적용하지 말고 ‘지금 여기 자신의 위치에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훈련이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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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정리해보자. 우리 사회에서 강간은 오랫동안 정조의 문제로 여겨져 오다가 1990년대 이후에야 개인의 성적 자기 결정11)권 침해 문제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미성년자의제강간법의 경우, 역사적으로 두 번의 쟁점 전환이 일어났다. 처음에 이 법은
‘아버지의 자산인 딸의 순결‘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는 ‘결혼‘을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린 여자아이의 순결을 빼앗은 남성은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거나 결혼을 약속하도록 종용받았다. 따라서 19세기까지 의제강간법의 관심은 오직 딸에게만 국한되었다. 이 법으로 인해 ‘순진무구한 딸들을 꾀어낸 위험한성인 남성들에게 책임지라고 말할 수 있었고, 혼전 임신이라는위험성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 P97

 그중에서도 ‘나이‘에만 맞춰진다. 법무부에서는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 상향에 대한 논의가 불거질 때마다 13세에서 16세 사이의 청소년이 과연 어떤 성적 능력을 가지는지, 2차성징을 비롯한 육체적 변화는 어느 정도로 진행되는지를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는 내용의 조심스러운 논평을 10년째 계속 반복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 나이가 문제인가? 오히려 나이가문제를 감추고 있는 건 아닐까? - P104

발육으로 따지면 성인과 동일하므로 의제강간의 보호 법익에 맞지 않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단지 기자의 선정적인 보도 태도가문제인 것만은 아니다. 후술하겠지만, 법원에서 12세 초등학생이 나이를 17세라고 했으며 외모도 그만큼 성숙했다는 가해자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무죄 판결이 난 사건도 있다. 이처럼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을 재조정하자는 주장은 나이에 따른 발달단계별 표준에 대한 강박과 함께 놓여 있다. ‘육체적으로 지나치게 빨리 성숙한 성조숙증 아이‘와 성년이 되어도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않는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캥거루족 어른‘ 사이 어디쯤에 말이다. - P109

문제는 욕구가 아니라 욕구의 실행을 가능하게 하는 권력이다. 폭행, 협박, 위력, 위계는 우리 사회가 권력의 불법적 사용목록으로 합의해 온 것들이다. 개인 사이의 동등한 관계를 방해하는 각종 사회적 위계를 제거할 때, 우리는 ‘자유로운 관계를맺을 수 있다. 욕구의 완전한 충족을 행복이라고 믿는 유아론적 세계에서 타인의 타자성을 수용하는 문명적 ‘자유‘의 세계로의 이동 말이다. 여기에서 욕구에 대한 금지는 가해자의 자유만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자유를 제한한다. ‘보호‘는 가해자의 권력을 제한하고 피해 당사자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 하지만 법 실무에서 ‘위력‘ 행위에 대한 해석은 재판부의 의지와 상식에 따라 달라지곤 한다. 만약 국가가이러한 재판부의 임의적 해석에 의지하지 않고 미성년자의 자유권을 후견적 지위에서 강력하게 보장하고자 한다면, 미성년자의제강간법은 여전히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 P118

하지만 미성년자들이 스스로 자신이 알고 있는 성에 대한 지식을 드러내고 토론하게 하지 못하는 문화 속에서 미성년자의 섹슈얼리티는 불가해하고 순수한 것으로, 오염되지 않은 어떤 순백의 것으로 상상된다. 그리고 어떤 성인들은 이러한 이미지 안에 정박된 미성년자에 대한 성적 매혹과 긴장을 꾹꾹 눌러 담을것이다. 누가 뭐래도, 한국의 미성년자 아이돌들은 자신의 성적매력을 가장 잘 어필하면서도 연애를 금지당한 존재로 성인들의눈앞에 등장한다. 이들에 대한 성적 욕망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것이 그들의 또래 팬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들은 어디에서도 공적으로 말해지지 않는다. - P120

아무런 권리가 주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오직 성에 대해서만동의 여부를 만 13세 이상부터 결정할 수 있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수있는 자격이 주어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과연 성관계를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까? 부모 혹은 성인에 대한 경제적 의존이야말로 성적 자기 결정에 유해한 조건이다. 그러므로 미성년자의 자유권을 제한하는 방식이 아니라 보장할 수 있게 하려면 이 문제를 청소년의 신체적·정신적 ‘건전한‘ 발달 과정의 문제라는 발상부터 버려야 한다. 오히려 더 효과적이고 현실적인 성교육을 받을 권리, 미성년자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 더좋은 교육 환경과 정치 제도를 요구할 권리, 생활 임금이 가능한최저 임금을 받을 권리 등이 미성년자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이다. 의제강간 연령 상향 여부에 대한 토론이 종종 ‘요즘 애들‘의 성적 발육에 대한 굉장히 소아성애적인 욕망처럼 들리는 사례들로 빠지거나, 과거의 뿌리 깊은 악습인 조혼을 미성년자의 성을 존중한 사례로 잘못 이해하는 곤경에 빠지는 이유는 성을 다른 사회적 관계로부터 독립적이고 자율적인변수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 P123

청소년들에게 성적 자기결정권, 투표권, 혼인 가능 연령, 직업 선택의 자유 등이 주어진다면 게일 루빈의 말처럼 더는 섹스는 그렇게 대단한 것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의제강간 문제는 이제 섹스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권력에 대한 문제로 비로소 방향을 잡아 갈 수 있다. 선거 연령을 낮추고 최저 임금을 시행하고 의제강간 연령을 상향하는 식의 조정을 상상해보자. 나는 이것을 세 번째 쟁점 전환이라고 부르고 싶다. 미성년자 의제강간법을 젠더와 나이 변수가 교차적으로 고려되고 권력의 재배치를 통해 더 나은 삶을 가능하게 만드는 공적 개입의 계기로 사유하는 것 말이다. - P124

이제 메갈리아(Megalia)를 모르는 이가 있을까. 이 말은 2015년 메르스 감염 사태에서 처음 생겨나 그해 연말 온라인 10대신조어로 꼽혔다. 그리고 2016년 여름, 넥슨 성우 교체 사건을 지나며 전 사회적으로 뜨거운 감자가 됐다. 이 현상의 주체인 메갈리안(Megalian)은 여성 혐오 발화의 주체가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여성 혐오(misogyny)를 혐오하는 ‘여혐혐‘을 수행한다고 했다. 여성 대상 혐오발화를 그대로 되비추는 ‘미러링(mirroring)‘이 무엇인지, 과연 폭력에 폭력으로 맞설 수 있는지도 질문됐다. "우리가 폭력을 쓰는 이유는, 그것이 그들이 유일하게 이해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마침 개봉했던 영화 <서프러제트>에서 한 세기 전 영국 여성참정권론자가 했던 대사가 오늘의 한국 메갈리아를 변호하듯 회자됐다.  - P126

먼저 2015년과 2016년, 메갈리아가 탄생했던 몇몇 지형을 훑으면서 시작해보자. 메갈리아라는 단어는 2015년 5월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메르스(MERS-CoV) 정국에서 성별 역전 콘셉트소설 《이갈리아의 딸들》(1975년)에 빗대어 만들어졌다. 홍콩을방문한 한국 여성 두 명이 메르스 격리 검진을 거부했다는 낭설이 일었고, 곧 "한국 여자 개념 없다"고 조롱하는 혐오 발화가흘러넘쳤다. 이에 대항해 한국 여성의 ‘종특(特)‘이라는, 그야말로 인종화된 혐오 표현인 ‘김치녀‘를 성별만 그대로 바꾼 ‘김치남‘이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메르스 관련 정보를 나누기 위해만들어졌던 메르스 갤러리에서 삭제된 것은 원본(김치녀)이 아니라 그 패러디인 김치남이었다. 여기에 전례 없는 인증, 즉 댓글을 쓰려면 로그인까지 하라는 제한까지 더해져 여성 유저들의불만이 폭발했다. 한국 온라인 게시판 문화가 시작됐다던, 익명을 기반으로 하며 어떤 표현이든 자유롭다는 ‘디시인사이드‘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 결과, 김치남이라는 금칙어 검열을 피하기 위해 비하의 접두사를 더한 ‘씹치남‘이 생겼다. 그리고 자기자식밖에 모르는 여성이라는 ‘맘충(Mom蟲)‘에 맞먹는 벌레 같은 한국 남성이라는 ‘한남충(蟲)‘까지 연결됐던 것이다. - P127

이때부터 동족 남성을 비하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메갈리안이 벌였던 난장은 그저 억눌린 여성들의 ‘한풀이‘,
며칠간 벌어지는 축제일 수도 있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머리 풀고 달리는‘ 전투적 여성은 어떤 발화는 유희가 되고, 어떤발화는 금지되는 비대칭적 상황 때문에 나왔다. 그래서 ‘페미니즘 영화‘로 지목된 <매드 맥스-분노의 도로>(2015년)에서 여전사 ‘퓨리오사‘ 일행이 ‘어머니의 녹색 땅‘을 찾듯, 곧 그들만이모이는 ‘메갈리아(www.megalian.com)‘ 사이트가 열렸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영화 속 여성들이 유토피아를 찾아 헤매기를 단념하고 자신을 착취했던 바로 그 땅을 해방하기로 결심했듯, 이들역시 거울 속에서 벗어나 문화와 매체, 그리고 정치와 운동 속에서 숨 가쁘게 터져 나오는 젠더 이슈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메갈리아라는 현상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에 촉발된 여성들이 최근 1, 2년 동안 해 왔던 직접 행동일 것이다. 돌이켜 보면 메갈리아가 태동한 시기는, ‘세월호 사건‘(2014년 4월 16일) 이후로 국가가 책임져야 할 기본적 안전을 기대할 수 없던때이기도 했다. 한편으로 여성들은 심각해져 가는 젠더 폭력의징후가 애써 부정되고 그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도 미흡한현실에 거듭 분노해야 했다.  - P128

현재 전 지구적으로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우익 포퓰리즘이 확산되고 있다. 자신을 실패한 다수라 여기며 배타적인 가치을 제도에 반영하라는 보통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한국 역시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결국 신자유주의가강화되는 방향으로 귀결되면서, 양극화가 심화되고 청년 실업률은 10%를 훌쩍 넘겨버렸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젊은 남성들의 불만이 그 시기 가장 가시적으로 제도화됐던 여성계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의미심장하게 양성평등연대(구 남성연대)는 노무현 정부가 마감되는 2008년에, 2001년 김대중 정부 때 신설된 여성부(현 여성가족부) 폐지를 내세우며 발족했다.
여성이 무한 경쟁 시대에 경쟁 상대로 눈에 들어오니, 그들을 향한 배려가 아니라 적대가 불러일으켜졌다.  - P131

소녀부터 여대생, 그리고 직장 여성과 젊은 엄마까지, 2000년대 이후 젊은 여성 대중이 도드라지게 보이기 시작했다. 2002년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미선·효순 압살 사건과 2004년 노무현 탄핵 소추 정국을 거치며 촛불 집회가 유력한 대중 저항의 유형이 됐다. 그리고 2008년 이명박 정권 출범 직후에 벌어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반대 시위에서 드디어 ‘촛불소녀‘가나타났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촛불을 든 소녀들의 집단적 출현 배경에는 대중문화의 폭발적 성장이 있었다. 이 여중고생들은 팬 문화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빠순이‘들이기 - P132

도 했던 것이다. 또한 촛불소녀와 함께 일군의 여대생들 역시 스
‘스로를 ‘배운녀자라고 일컬으며 나란히 등장했다. ‘배운녀자는 대학 진학률 70% 이상 시대의 존재들로서, 식민지기 신여성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는 지식인으로서 여성을 강조하는 뜻이었다. 2009년 이후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이 남학생보다 더 높아졌고, 이 성별 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 여기에 정치와 상관없다고 여겨지던 ‘유모차 부대‘도 거리로 나섰다. 이 여성들은지역 연고나 정치단체와 상관없이 온라인 여성 커뮤니티를 정치적 인큐베이터 삼아 모여들었다. 집단적이고도 산발적인, 또익명적이면서도 주체적인 여성 청년들의 행위성은 민주화 이후
‘탈정치‘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세대의 성격을 짐작케 했다. - P133

 정의당 내 메갈리아 논란이 심화될 무렵, 당원 한 명이 ‘프린스‘를뒤집은 ‘프린세스‘ 문구를 넣은 티셔츠 제작을 제안했던 것이다.
이 기획은 양성 의존과 환상을 버리고 평등하자는 의도라고 했다. 그러나 이제 메갈리안들이 말하는 최종 목표는 ‘양성평등‘이아니다. 차라리 비혼을 선택하겠다는 ‘소녀‘가 보이는 결기와 단지 ‘공주‘만을 원하지 않는다는 ‘남자‘의 불만은 같지 않다. 결국핍박받는 남성의 대척에서 가장 나빠 보이는 것은 단지 메갈리아의 위악, 즉 미러링이다. - P137

미러링이 왜 문제인가. 특히 미러링은 피해자로서 여성에게 허.
락됐던 목소리, 즉 비탄 · 절규 · 울음이 아닌 조롱 ·호통 · 웃음을.
자신의 전략으로 내세운다. 애초에 미러링은 낙인에 겁먹지 않기 위해 고안됐고, 혐오에 대항하기 위한 퍼포먼스로 출발했다.
유민석은 지금까지 끈질긴 조리돌림에 우아한 ‘무시‘나 착한 ‘항의‘로 일관해봤지만, 결국 침묵하게 된 쪽은 여성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폭력에 대해 국가와 사회가 공적 공간에서 책임 - P137

그리고 메갈리안들이 집단적으로 하는도전은 여성 혐오에 대항하는 혐오 발화 수행에 머물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 미러링 논쟁이 여혐과 남혐이라는 허위 구도를 드러내고, 대항 발화로서 패러디의 유효성을 드러낸 것이다. 이제젊은 여성들은 더 좋은 남자를 만날 거라며 "똥차가고 벤츠 온다"고 위로하지 않고, 차라리 "똥차는 벤츠든 필요 없다"고 서로 힘을 북돋운다. 이들은 명백히 ‘포스트 87체제‘를 열어 갈 새로운 세대들이다. 성취됐다고 했던 민주주의는 어떤 민주주의였던가. 여성은 스스로를 대리할 수 있는가. 어떠한 여성이 여성을대표할 수 있는가. 메갈리아 이후의 여성들은 이러한 질문을 훌쩍 뛰어넘어, 직접 행동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과연 이러한 포스트 여성 주체는 누구인가. - P143

<서프러제트>에서 주인공은 여성 운동 때문에 가정을 돌보지 못했다며 이혼당해야 했다. 이때 그는 아들과 헤어지면서 엄마의이름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메갈리안을 비롯해서 포스트 여성 주체들, 이들 익명의 여성들은 과연 어떻게 기억될 수있을까. 미러링이 아니라도 이미 이들은 차별적 현실에 대항하는 집단적 직접 행동으로 역사에 새겨지고 있다. 물론 메갈리안이 페미니즘의 모든 주제를 떠맡을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메갈리안이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는 거부는 해방의 언어로서 페미니즘을 왜소화한다. 그렇기 때문에 ‘진짜 페미니즘과 가짜 메갈리아‘가 아니라, ‘빛의 페미니즘과 어둠의 메갈리아‘가 낫겠다. 마치 인간의 성(sex)이 남녀 양성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뉘어 있다고 믿어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이둘은 연결되어 있다. 물론 이 사이에는 드넓은 스펙트럼이 있겠지만 빛은 반드시 어둠이 되고 어둠은 빛이 될 수 있다. - P151

왜 개신교는한국 개신교가 반동성애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친 최초의 시점은 2007년이다. 그 이전에 반대의 목소리를 낸 적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다소 형식적이었다고 할 만하다. 보수 개신교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에서 성적 소수자에 관련된 성명서가 나온 것은 2002년이 처음이었다.
당시 한나라당의 김홍신 의원이 낸 ‘성전환자 성별 변경에 관한특례 법안‘을 반대한다는 내용이었다. 두 번째는 2003년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청소년보호법 시행령‘의 동성애자 차별적 조항을 삭제하라고 권고한 것을 비판하는 성명서였다. 이 성명서가 발표되고 나서 며칠 뒤 성적 소수자 청소년이 기독교의 편협함을 비판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이에 동성애자단체와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 등이 한기총을 찾아가 항의했으나 한기총은 "기독교인이라면 인권 문제에 앞서 먼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며 사과하길 거부했다. - P158

그리고 한 가지 더 눈여겨볼 지점은 원래 차별 금지법을 가12)장 반대했던 곳은 이 법에 의해 노동자의 채용과 해고에 제약을받게 될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와 같은 재계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차별 금지법이 개신교계의 반대에 부딪친 것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차별 금지 사유에 포함된
‘성적 지향‘이 종교 탄압으로 확대 해석되었고, 개신교계는 필사적으로 법 제정을 막았고, 2007년부터 지금까지 수차례의 법안발의가 모두 무산되었다. 그 결과가 지금까지 재계의 이익으로남아 있는 것은 과연 우연일까. - P165

2010년 3월부터 11월까지 SBS 주말 드라마로 김수현 작가의<인생은 아름다워>가 방송되었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하여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의 갈등과 화해를 다루었는데 한국 드라마사상 최초로 남성 동성애자가 주인공으로, 그리고 커플로, 또한극중에서 사랑을 나누고, 부모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가족이 그들을 받아들이는 설정으로 등장해 화제가 되었다. 특히 여타의게이 캐릭터가 여성스러운 몸짓과 목소리로 웃음을 유도하는 감초 역할이었거나 자살로 비극을 맞았던 것과 달리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의사와 사진 작가의 사랑을 애틋하게 그려냈다. 하지만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드라마 작가가 공중파 방송에서 동성애를 너무나도 ‘이성애와 다를 바 없이‘ 감동적으로 그려낸 것에 ‘위기감을 느낀 이들도 있었다. 그리하여 2010년 9월 29일,
역사상 유례가 없는 기상천외한 광고가 신문에 실리게 된다. 이제 막 설립된 ‘바른성문화를위한국민연합‘이 주도하고 수십 개 - P170

의 유사 단체가 연명한 "인생은 아름다워> 보고 ‘게이‘된 내 아들 AIDS로 죽으면 SBS 책임져라"라는 제목의 성명서였다.
이어 10월 27일에 또 한 번 큰 계기가 생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남성 간 성행위를 계간)이라고 지칭하고 상호 동의하에이루어진 성행위를 성폭력과 동일하게 다루는 군형법 제92조에대해 위헌 소지가 있으니 개정하라는 권고안을 헌법재판소에 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하위 법의 조문이 헌법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는지가 핵심인 사안이었지만, 반동성애 운동 측은 초점을바꾸어 군대에 동성애를 허용하면 군대 기강이 무너지고 전투력이 약해져 북한에만 유리해지고 결국 적화 통일이 될 것이라며안보 문제와 결합시켰다.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도 반동성애 대열에 본격 합류하게 되었다. - P171

여기서, 한 가지 더 살펴볼 것이 있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이슈겠지만 기득권에 집착하는 보수 개신교계를 긴장시키는 내부의 움직임 중의 하나로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 일치 운동‘이 있다. 이 운동의 핵심은 오랫동안 분열만 거듭해 온 기독교의 지난 역사를 반성하고 내부적인 친화성을 높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기총 등의 보수 개신교계는 ‘신앙과 직제 일치‘라는 단어를 천주교가 개신교를 인수 합병한다는 의미인 양 왜곡 선전하여 신도들에게 위기감을 자아냈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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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에서 성별이 화제가 되면 남성들이 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매 맞는 남편도 있다", "여학생(여직원) 휴게실은 있는데, 남학생(남직원) 휴게실은 없다", "조선 시대에 비하면 여성의 지위가 나아졌다", "평등을 원하면 여자도 군대 가고 숙직해라", "돈은 내가 내고 포인트는 그녀가 쌓는다(데이트 비용)", "여자들은 불만만 많고 노력은 하지 않는다"…………. 이들은 성차별은 일부 여성들이 겪는 특수한 사례에 불과하며, 한국은 남녀가평등한 사회일 뿐 아니라 점차 여성 상위 시대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음양의 이치처럼 원래 대칭적이며 성역할 내용은 자연의 이치에 맞는 합리적인 분업이다. 이런 조화와 균형을 깨뜨리고 분란을 일으키며, 모든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이들이 페미니스트"라는 것이다. 혹은 여성을 ‘보호‘하는 법이 그렇게 많이 만들어졌는데, 성차별? 이제는 없는 거 아닌가?
그리고 만일 법을 어기는 사람이 있다면, ‘페널티‘로 제재하면되지 ‘성차별 주장‘은 과도하다는 것이다. - P23

사회 문제를 자연 현상으로 유비하는 것은 지배층의 오래된통치 전략 중 하나이다. 이를 본질화(naturalization)라고 하는데,
인간이 만든 것을 ‘신의 뜻‘이라고 하는 이들이 있듯이, ‘자연의법칙‘이나 ‘과학‘으로 규정하면 영원한 진리처럼 여겨지는 효과가 생겨난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언어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언어와 현실의 관계는 즉자적이거나 자명한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언어가 있어야 현실도 인식할 수 있다는얘기다. 실재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현실(present)은 특정한위치(position)에서 언어를 만드는 권력에 의해 구성된 재현 (re/present)이다. 여성주의나 후기 구조주의는 ‘삶을 아는‘ 과정을중요시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도전한다. - P26

오늘날 이러한 인식은 상식에 속한다. 그런데도 인간은 여전히 만물의 영장이고, 인간은 여성과 남성으로 뚜렷이 구별되며,
종의 재생산을 위한 출산은 여성의 생물학적 본질이라는 통념은여전하다. 그리고 이를 거스르는 동성애는 비정상이라는 통념까지. 이러한 통념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들은 사람이 아니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우리의 통념을 재고해야 할까. 예를 들어, 여성의 출산은 자연의 질서일까, 사회적 선택일까. 여성주의는 출산이 여성의 의무가 아니라 선택 사항이며, 성별 분업의 하나라고 주장해 왔다. 그리고 당대 한국 사회의 저출산 - P27

더 근본적으로는 자연의 개념 자체, 어디까지가 자연의 영역인가라는 질문 역시 사회적으로 구성된다. 자연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발명되는 것이다. 인간은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하는것(Cogito ergo sum)이 아니다. 오히려 살아 있기 때문에 생각할수 있다는 것이다. 죽은 몸은 생각할 수 없다.
신분을 하늘의 질서로 생각했던 (봉건사회가 사라진 것 같지만 여전히 다른 다양한 형태의 격차가 맹위를 떨치는 시대다. 우리는 계급의 양극화가 신이 정해준 질서, 절대로 변화시킬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몸의 차이들 - 성별, 인종, 나이,
장애 등은 그렇게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강하다. 특히 암수(sex)의 구별과 그 ‘귀결‘인 성별은 자연의 질서라고 생각한다. - P28

니라 주체 일방의 논리다.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지만, 그 약속을 정하는 데 모든 사회구성원이 참여하지도 않으며, 약속은 계속 변화한다. 세상의 모든 지식은 오해, 오식(誤), 편견,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객관적, 중립적, 보편적 지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어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해에 따라 진리가 폭력이 될 수도 있고, 백해무익한 정보가 절실한 신앙이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언어는 신이 만든 공정한 말씀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사회적 산물이다. 누군가 먼저 말한 사람(주체)이 있는 것이다. 당연히, 언어는 필연적으로 당파적이다. 이분법은 언어가 만들어지는 가장 일차적인 - P29

이분법적 사고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제3의 성‘이든 모든 인간의 해방과 상상력을 제한한다. 앞서 말했듯이 이 글에서 이분법을 문제 삼는 것은 이분법이 대칭적이지 않음을 밝히려는 것이지, 이분법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실제로는 처음부터 이분법적‘ 논리가 없었다면, 어떤의미도 형태를 갖추기 힘들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국어 시간에가장 많이 하는 연습은 반대말, 비슷한 말 공부다. 모든 언어가마찬가지인데 어떤 개념도 홀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의개념을 이해하려면 반대말이나 유사어에 대한 이해가 동반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전조차 이용할 수 없다. 사전은 "무엇은 무엇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후자의 ‘무엇‘을 모르면 단어를 찾아도 이해할 수 없다. - P30

이처럼 언어의 지위는 언어가 만들어진 역사적 맥락에 따라달라진다. 언어가 정해지면, 자신과 외부의 차이는 자연스러운것이 된다. 다시 말해, 이분법은 무엇인가를 자연스러운 것으로인식하게 만드는 인식의 절차이자 과정이다. - P32

 이처럼 이분법은 두 개가 아니라 하나를위한 사고다. A가 아닌 것을 사용하고 배치하고 규정할 수 있는A의 권력을 말한다.
젠더(gender, 性別)는 남성의 여성 지배를 의미한다. 양성은 두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성성 하나만 존재한다. 남성성은젠더가 아니다. 남성적인 것은 남성적인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 P33

사실,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실제‘로 순수하게 존재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젠더는 나이, 인종, 계급 같은 다른 사회적 모순과 갈등하고 교차하고 조우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젠더는 원래 복합적으로 작동한다. 그러므로 양성 개념은 여성과 남성을 대립 구도처럼 보이게 할 뿐 남성과 여성 내부의 차이를 말하지 못한다. 우리는 흔히 여성다움이나 남성다움과 관련하여, "남성과 여성의 차이보다 개인별 차이가 더 크다."라고 말하지만, 성별화된 사회에서 인간은 개인보다 특정한 성정체성집단의 구성원으로서 강력한 영향과 제재를 받는다. 강력한 성별 규범은 내부의 차이가 드러나지 못하게 한다. - P34

을 받는다시 말해, 모든 것이 성별화된 사회라 해도 우리가 실제로남성과 여성으로 인식하는 ‘진짜‘ 남성과 여성의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은 대단히 적다. 그래서 ‘부자 남성‘과 ‘예쁜 여성‘이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성별 사회에서 여성은 외모와 나이,
남성은 사회적 자원 여부가 남성과 여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 - P36

 모든 인간은 인간이기 전에, 남성과 여성이어야 하는 젠더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은 진정한 남녀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상대방의 기존 자원까지 갖추어야하는 압력이 추가되었다. 요즘 여성은 젊고 예쁜 데다 ‘능력 있는 개념녀‘여야 한다. ‘아줌마‘는 여성이 아니고(아저씨‘는 비칭이 아니기 때문에 남성으로 간주된다), ‘노숙자 남성‘은 남성이 아니다.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이나 여성이,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회가 싫어하는‘, ‘저렇게 되고 싶지 않은‘, ‘바람직하지 않은‘, ‘매력적이지 않은‘,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은 남성과 여성이 아니다. 한편, 갓난아이나 노인은 성별 범주 이전에 나이가더 먼저 적용되는 구성원들이다. 이는 간혹 인종이나 특수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무속인, 종교인・・・・・・ )에게도 적용된다. 이처럼남성과 여성은 문화적 구성물이며 규범의 산물이지 생물학적 분류가 아니다. - P37

인터섹스는 통념처럼 특별한 현상이 아니다. 과도한 사회적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문젯거리가 된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섹스 스펙트럼도 컬러 스펙트럼처럼 생각할 수 있다. 자연 세계에는 저마다 다른 파장, 주파수(wavelengths)가 있고 이는 빨강, 파랑, 오렌지, 노란색 따위로 변색된다(translate). 그러나 우리는 인위적 필요에 의해 그리고 다른 색깔과의 차이를 통 - P41

해, 오렌지와 레드 오렌지를 구별한다. 이 두 가지 색이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구별될 필요가 있을 때 구별된다는 것이다. 마치 평소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가 흑백이라는 구분이 필요할 때, 그 색깔을 호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섹스 스펙트럼이바로 이것이다. 자연은 섹스 해부학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인간의 생식 기관은 크기, 모양, 형태가 다 다르다. - P42

이러한 현상은 분명히 젠더 계급 동맹을 주도하는 여성 주체의 문제이다. 노동 시장의 남성 중심적 제도와 문화는 단시일에변화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여성들은 지난 30여 년간 최선을다했고 그만큼 깨달아 가고 있다.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에서 이제는 "엄마, 다시 태어나면 그남자(아버지랑 결혼하지마. 나 낳지 말고 엄마 인생 살아."라고 외친다. "엄마처럼 살 - P52

지 않을 거야."라고 외친 딸들의 반면교사가 된 여성들이나 그이후의 여성들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는 얘기다.
평등의 기준이 경쟁, 승부, 부패, 우열이 작동 원리인 남성 중심의 ‘사회‘인 한, 진정한 양성평등은 없다. 평등한 세계에 대한대안적 사고가 가능해지고,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중 하나가 돌봄 노동이든, 자연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든, 평등보다 책임감으로의 여성주의 윤리의 전환이든 다른 세계가 기준이되어야 한다. - P53

남성들은 자신의 삶에 아무런 변화 없이, ‘양성평등‘에 두려움을 느낄 것이 아니라 여성주의를 보편적인 사회 정의로 인식해야 한다. 동참까지 바라진 않지만, 한국 남성들은 자기 계발과시간 기획처럼, 인간으로서, 가족 구성원으로서 자기 관리부터선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15년 여성가족부의 조사에 따르면 매출액 상위 100개 대기업 여성 임원 비율은 2.3%이다. 한국의 남녀 평균 임금 격차는 100:52~62 사이를 몇 년째 맴돌고 있 - P55

다. 남성은 여성의 두 배 정도의 임금을 받으면서 집안일은 하지않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맞벌이부부의 경우에도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여성의 6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 상위‘는 어불성설이다. 늦은 귀가 시간,
세계 최고의 술 소비량, 매일 매일의 회식・・・・・… 이러한 일상 문화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가사와 육아 노동에서 면제된 남성이 스스로 그 노동에 참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만 현재 한국 사회가 여성의 노동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인정하고 성차별이극심한 사회에서 남성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역할에 대한 개인적, 사회적 모색을 제안해야 한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사회 정의의 문제이자, 남성 개인의 양심의 문제이다. 젠더 문제에 관한 한 남성에게는 ‘양심의 자유‘
보다 ‘양심의 의무‘가 더 중요하다. 나는 수천 년 동안 이어진 여성 문제에 대한 ‘외면의 정치‘가 인간 본성으로 굳어질까 두렵다. 사회는 ‘여성 문제‘를 부담이나 갈등으로만 여기지 말고, 여성주의에서 대안적 삶의 지혜를 찾아야 한다. - P56

이런 정치학을 채택한 이유는 퀴어란 용어의 등장 배경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레즈비언과 게이란 용어가 끊임없이 백인 중심의 경험으로 설명되었고, 1980년대 미국 사회에서 주류 혹은일군의 레즈비언 게이 운동이 ‘동성애란 성적 지향만 빼면 이성애와 다를 것 없다‘며 지배 규범적 문화 시민 되기 기획을 진행했다. 규범적 시민 되기는 일평생 남성 아니면 여성(이성애자라면일평생 ‘이성‘만, 동성애자라면 일평생 동성‘만)이라는 한 가지 젠더만 사랑하는 것을 새로운 규범으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바이섹슈얼을 비롯해 다양한 성적 선호/지향이 배제되었고 트랜스젠더퀴어 역시 부적절함으로 추방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젠더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 비이성애-비동성애를 실천하는 다양한 존재와 역사가 삭제되었다.  - P65

퀴어 정치학의 두 번째 의미는 정체성은 타고나며 동일한 정체성은 단일한 이해를 표방하는 집단이라고 주장하는 정체성 정치라기보다 정체성을 규정하고 그에 따르는 역할을 부여하는 권력 작동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다. 이것이 레즈비언 게이 정치학과 가장 큰 차이다. 레즈비언 게이 정치학은 레즈비언과 게이라는 정체성을 초역사적 성격으로 가정하고 각 범주가 안정적 섹슈얼리티/정체성이라고 확정하면서 논의를 전개하는 경향이 있다. 비록 퀴어 정치학이 레즈비언 게이 정치학의 어떤 성과를공유한다고 해도, 퀴어 정치학은 정체성을 안정되고 초역사적사건으로 가정하기보다 젠더와 섹슈얼리티라고 여기는 것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배치되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권력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를 탐문한다. - P66

퀴어 범죄학의 또 다른 경향, 그리고 이 글에서 채택할 방법은미셸 푸코(Michel Foucault)와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가 사용한 비평(critique) 개념을 채택하는 데서 출발한다. 여기서 ‘비평‘은 ‘이것은 이래서 잘못되었고 저것은 저래서 잘못되었다‘며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과 권력 작동을 통해 발생하는 배제에 도전하고 이를 폭로하는 작업이다." 즉 옳고 그름을 말하는 방식이 아니라 어떤 사건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은폐되는 것. 당연시되는 것, 은폐와 당연시 여기는 태도로발생하는 폭력과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권력 구조를 드러내는 작업이다. 이때 비평은 앞서 설명한 퀴어의 개념과 정확하게 연결된다. 이러한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매튜 볼(MatthewBall)은 퀴어를 젠더와 섹슈얼리티에서 분리하고, 퀴어가 어떤구체적 현상을 지칭한다는 가정을 피하고자 한다. - P73

람의 장발이 경찰의 단속 대상이다. 혹은 전직 국회의장의 명백한 성추행/성폭력 사건은 실제판결 내용과 무관하게 단순 해프닝처럼 취급되면서 ㅇㅇㅇ 전지검장의 행위는 사회적으로 심각한 폭력이자 검찰 집단 자체의도덕적 문제로 다뤄지는 것처럼 음란 행위가 심각한 폭력이자범죄가 되고, 성폭력이 단순 해프닝이나 음란 행위로 해석되는것은 폭력에는 관대하고 음란에는 엄격한 한국 사회의 태도를반영한다. 이것은 한국에서 작동하는 지배 규범의 한 모습이다.
그리고 이것은 어떤 존재를 인지 가능한 범주로 보고 어떤 존재를 인지 불가능한 존재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 P82

누가 괴물이고 무엇을 보호하는가? 지배 규범의 도덕 윤리를 밑절미 삼아 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규정된/추방된 존재가괴물인가, 많은 괴물을 재/생산하며 사회구성원에게 가해지는성/폭력을 방치하고 방조하는 지배 규범 혹은 한국 사회가 괴물인가? 쾌락을 생산하는 음란 행위와 성행위를 범죄로 판결하는 현행법, 혹은 사회 규범이 정말로 보호하는 것은 성/폭력을재생산하는 바로 그 자신 아닌가? 지배 규범의 윤리에 따라 괴물로 추방된 존재인 나는 나와 같은 괴물을 ‘보호‘하기 위해 ‘괴물‘을 보호하는 사회에 질문하고 싶다. 괴물을 보호하라. 그런데누가 괴물이고 무엇을 보호하는가.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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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여성주의는 양성평등일까?

이 책의 제목 ‘양성평등에 반대한다‘는 내용에 충실한 표제다.
책의 요지는 간결하다. 인간은 애초부터 양성(兩性)으로 존재하지 않았으며, 평등의 기준이 남성일 때 여성에게 ‘양성평등‘은 평등(等)이 아니라 이중 노동이 되는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다.
따라서 이 책은 ‘여성주의(feminism)=양성평등(gender equality)‘
이라는 오해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목표로 삼는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주의가 본격적인 사회 운동으로 등장한 시기는 1980년대 초반이다. 이후 여성 운동의 이념으로서 주도적역할을 해 온 양성평등 담론은, 최근 몇 년간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유례 없는 미소지니(misogyny, 여성에 대한 혐오) 현상을 통과하면서 ‘엉뚱한 길을 가게 되었다. 양성평등은 일종의 ‘지향‘
인데 그것이 마치 ‘현실‘에서 이미 실현된 것처럼 남녀가 모든 - P7

면에서 대등하기 때문에, "남성도 여성을 혐오하고, 여성도 남성을 혐오한다"는 대칭적 논리로 오독된 것이다.
본래 언어는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이데올로기‘지만, 최근 ‘양성평등‘이라는 말처럼 반대 진영에 의해 완벽히 전유된 경우는 드물다. 그 효과도 엄청났다. 지난 30여 년간의 여성 운동의 경험과 역사는 재검토가 불가피해졌고, 많은 여성 운동 단체들이 전망을 모색하느라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여성주의는 성차별이 있는 현실을 다시 증명해야 할처지가 되었다. 여성 운동은 "여자 일베, 미러링이라는 또 다른혐오………"로 폄하되었다. 양성평등이라는 ‘무기‘는 여성이 쥐었을 때는 칼날이었지만, 남성이 쥐었을 때는 무소불위의 칼자루가 된 것이다. - P8

정희진이 양성평등을 질문하고 루인이 양성 개념을 문제화했다면, 권김현영의 글은 양성평등 프레임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현실을 다룬다.
미성년자의제강간(擬制强姦)은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하면, 동의 여부에 관계없이 강간으로 처벌하는 것이다. 권김현영의 글은 미성년자의제강간이라는 문제를 통해 청소년의 사회적 성원권과 성적 권리에 관한 여성주의 시각의 한 모델을 보여준다. - P14

이 책은 2년여의 준비 기간 동안 수십 차례에 걸친 필자들의사전 세미나와 상호 토론, 합평회, 아이디어 교환과 제안을 통한집단 창작물이다. 특히 이 ‘들어가는 글‘은 모든 필자가 수십 번의 첨삭을 교환한 합작품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연구 커뮤니티의 필요성을 절박하게 깨달았고 각자의 사유를 교환하고 확장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더불어 커뮤니티가 지속되려면 상호믿음과 비판, 윤리적 태도가 필수적임을 깨닫게 된 성장의 시간이기도 했다.
"우리가 비판받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역사를 채우겠는가."라는 나혜석의 말을 기억하며 독자들의 비판을 기대한다.
2016년 겨울,
필자들을 대신하여 정희진 씀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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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11일 원고의 최종진술


법은 법이 필요 없는 가지고 쥔 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보호 장치입니다.
권력은 끊임없이 관행이라는 미명으로 법조문을 잠재우고,
사문화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법원과 검찰은 잠든법조문을 흔들어 깨워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우고,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을 옹호할 숭고한 의무를 부여받았습니다.
사법은 소리입니다. 법정에서 당사자의 잘못을 충고하고, 아픔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소리입니다. 그리하여 사법은개개인의 양심을 일깨우고, 이 시대와 우리 사회에 따뜻한 정의를 일깨워 사회적 약자들의 의지처가 되고, 희망이 되어야합니다. 그러한 막중한 사명을 법원과 나눠가진 검사에게 법률과 국민이 어떠한 자세를 요구하는지, 법원은 아름다운 합창을 위하여 검사에게 어떠한 하모니를 원하는지에 대한 현명한 판단을 바랍니다.


각자 자신의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이고, 누구도 역사의 냉정한 평가를 피할 수 없습니다. 김웅 선배가 타박할 때 저는 ‘역사의 시간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
이육사 선생님은 천고의 뒤를 바라보았다. 100년, 200년, 길게보면 결국 나아간다.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칼럼에서 언급한 김대중, 노무현, 노태우 전 대통령이 모두돌아가셨고, 역사의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김웅과 저를비롯한 공직자들 역시 역사 앞에 평가받는 날이 곧 오겠지요.
삶의 기로에서 각자의 선택이 달랐고, 각자의 후회 역시 달랐으니 그 후의 삶과 평가도 달라집니다. 하여 역사의 평가는 오롯이 자신의 책임입니다.
불의에 침묵하고 방관하고 어울린 부끄러운 제 잘못과 앞으 - P214

로 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약속을 기억합니다. 갈림길에서 주저될 때마다 하늘을 우러러 더는 부끄럽지 않겠다던 다짐을 되새기고 용기 내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면 이육사, 윤동주시인, 문익환, 박형규 목사 등 참혹한 시대를 이겨낸 거인들의뒷모습을 아주 조금은 닮아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살아가기를,
살아내기를 소망합니다. - P215

역사에 헛됨은 없습니다. 문이 열릴 때까지, 벽이 부서질 때까지 저는 두드릴 것이고, 결국 검찰은 바뀔 것입니다. 그 벽이아니라 벽을 부수는 귀한 역할이 제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계속 두드려 보겠습니다. - P227

생각해 보면, 국정원 파견 검사로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수사를 방해했다가 2019년 징역 1년, 1년 6월의 실형 판결이 확정된 장 모 전 검사장, 이 모 전 부장검사 등이 국정원에서 한 일도 다를 바 없습니다. 어떤 일이든 주어진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유능한 검사들과 침묵의 카르텔, 그 카르텔에서 빠져나오고 보니 저는 이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었습니다.
권력은 상하기 쉬운 음식과 같습니다. 계속 끓여주고 갈아주지 않으면 부패하기 마련입니다. 그때 그 검사들이 여전히 건재한 검찰을, 검사들의 잘못이 드러나도 조직의 결정을 따랐을뿐이라는 이유로 면책특권을 스스로 부여하는 권력기관인 검찰을 믿지 마세요.
먼 훗날 검찰이 국민에게 신뢰받는 그날이 오더라도, 검찰을맹목적으로 믿지 마세요. 견제와 균형이 흐트러지고 감시와 비판이 멈출 때, 검찰은 다시 상하기 시작할 테니까요. - P244

검찰에서 가장 분주한 월말에 글을 올리면 ‘일 안 하고 글이나 쓴다‘고 트집을 잡았습니다. 이를 피해 월초 주말에 정기적으로 글을 올렸더니 이번 연휴에 뭘 쓸 거냐는 선제적인 호출이 이어졌고, 어느 월말엔 부장실 3곳과 차장실, 검사장실을순례하느라 일을 못 할 지경에 이르러 글 게시 시기를 월초와월중으로 분산해야 했습니다.
2012년 6월 제정된 법무부 비공개 예규인 ‘집중 관리 대상검사 선정 및 관리 지침‘에 따르면, 검찰국장이 소속 검찰청 장의 의견 등을 고려하여 평소 성품과 행실 등에 비추어 비위 발생 가능성이 농후한 자라고 판단하면, 또는 동료 검사나 직원 - P250

과 자주 마찰을 일으켜 근무 분위기를 저해하는 자라고 판단하면 집중 관리 대상이 됩니다. 별장 성접대 등을 받고 다니던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넥슨 공짜 주식 사건의 진경준 검사장,
김홍영 검사를 자살로 몰고간 갑질 김대현 부장 등이 집중관리되지 않고,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글을 쓰던 제가 집중 관리 대상이 된 것은 참으로 어이없는 검찰의 비극입니다.
그 시절엔 어떠한 것도 저에게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2013년황교안 법무부 장관 시절, 공인 전문 검사 인증 제도가 시행되었는데, 성폭력 전문으로 블루벨트 인증을 받으면 검사 적격심사때 안전벨트가 되겠다 싶어 공지 사항을 보자마자 신속하게 신청서를 보냈습니다. 도가니 사건 등 8년 1개월의 성폭력업무 경력과 실적을 정성껏 적어냈습니다. 경력과 실적이 부족할 리 없겠지만 만약 저를 자를 계획이라면 인증이 안 될 거라고 걱정했지요. 역시나 안 되더군요. 2014년 공인 전문 검사 신청을 하라는 공지 글이 이프로스에 다시 뜨자, 김 모 차장검사가 전화를 걸어 "작년에 왜 신청 안 했느냐. 빨리 신청하라"고채근했습니다. "작년에 신청했는데, 떨어졌습니다. 저라서 안되나 봐요"라고 답했더니 차장검사는 할 말이 없어 우물쭈물전화를 끊었습니다. - P251

 법무부가 자료 제출을거부하는 동안 관련자들의 직권남용 공소시효가 거의다 지나버려 고발하기조차 어렵게 되었지만, 기록으로라도 남기기 위해 법무부와 대검이 비공개 예규를 만들어 집중 관리 대상 검사 제도를 운용하던 기간, 해당 업무를 담당한 법무부 검찰국장, 검찰과장과 인사 담당 실무자, 대검 기획조정부장과 정책기획과장의 이름을 여기에 남깁니다.

법무부 검찰국장: 국민수, 김주현, 안태근, 박균택, 윤대진.

검찰과장: 조상철, 권정훈, 정수봉, 심우정, 이선욱, 권순정, 신자용.

검찰과 인사 담당 검사: 김태훈, 고필형, 박주성, 신동원, 임세진, 나하나, 나희석, 김수홍.

대검 기획조정부장: 정인창, 오세인, 이창재, 김진모, 이금로, 윤웅걸, 차경환, 문찬석.

대검 정책기획과장: 강남일, 권순범, 한동훈, 신자용, 손준성, 김태훈, - P254

2019년 9월의 인사 거래 제안을 누가 주동했는지 전언으로듣기는 했으나 정확히는 모릅니다. 이용구 법무실장은 당시에
‘검찰이 내건 조건‘이라고 했을뿐더러, 그는 검사가 아니므로이해관계도 없어 그런 제안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2018년 2월의 정모 부장처럼 저와의 친분 때문에 연락책으로 선정된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을 전화 통화 때부터 알았습니다.
칼럼 출고 직후 인터넷 언론사인 《위키리크스한국》에서 ‘인사 거래 제안자는 김후곤 기조실장‘이라고 보도했을 뿐, 다른언론사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고발한다> 칼럼못지않게 떨면서 쓴 칼럼인데 허탈했지요. 저로서는 ‘세상에이런 일이!‘ 싶은 황당한 사안인데, 언론이 보기에는 평범하고일상적인 에피소드인가 싶었습니다. - P261

 어떤 것을 어느 정도 알아야 비로소 말할지 더욱 신중하게 결정하자고 결심했지요. ‘확실하다고 판단한것만 말하고, 전선은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다‘는 생존원칙을 세워 지켜오고 있기에 지금껏 살아남았습니다. 징계나적격 심사를 대비하여 매일매일을 기록한지 오래입니다. 내부고발자의 삶은 그렇게 고단하고 팍팍합니다.
내부 고발자의 역할은 세례요한처럼 ‘외치는 자의 소리‘가되어 잠든 동료들을 깨우고, 세상에 알려 잠든 척하는 사람들마저 억지로 눈을 뜨게 만드는 것입니다. 외부에서 검찰 내부를 들여다보려 해도, 검찰은 수사 기밀 등 각종 핑계를 대며 자료를 숨기며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검찰이 보여주는 자료만으로는 법과 원칙을 실제로 지켰는지를 확인하기 어렵지요. 제 능력이 부족하여 이런 검찰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검찰의 곪은 부위를 세상에 드러내는, 검찰을 비추는 CCTV가 될 각오로 공익 신고와 고발을 하고 있습니다. 법과 제도를 바꾸고 고치는 것은 검찰권을 검찰에 위임한 시민과 사회, 국회와 정부의 몫입니다. 어떻게 고치시겠습니까? - P264

이 법을 지키지 않는 것처럼 언론도 마찬가지라는 걸 알았으니까요. 공익의 대표자여야 할 검찰이나 사회의 공기인 언론이 부조리의 데칼코마니 같다는 건 비극입니다.
권력자에 대한 질문은 언론의 권리이자 의무지요. 또한, 언론은 시민인 독자에게 답하고 오보 피해자에게 사과할 의무 역시 있습니다. 이에 묻습니다. 왜곡하거나 부풀리는 등 편파적이거나 불공정하게 취재하고 있지 않습니까. 권력의 감시자인양하다가 권력화하지 않았습니까.
언론에게 언론다움을 요구합니다. - P268

십 원짜리 사건과 천 원짜리 사건, 멋지게 수사할 거악과 덮어도 되는소소한 악, 양질의 사법 서비스를 받을 시민과 문제 검사에게수사받아도 되는 시민. 그런 구별이 정당하고, 검찰의 잣대는과연 공정할까요.
정의의 여신은 눈을 가린 채 저울을 들고 있습니다. 권력과재력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죄의 무게에 합당한 처벌을 하는것이 정의니까요. 검찰의 저울이 고장나 손가락질 대상이 된지 오래지요. 눈금을 속여 온 검찰 등 권력자들이 수리공이 되어서야 고쳐질 리 있겠습니까. 검찰개혁의 동력은 오로지 주권자의 관심과 비판뿐입니다. 개혁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른 이때,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고쳐 공정한 저울로 거듭날 수 있도록 주권자의 관심과 비판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 P276

감찰직을 지망했었습니다. 읍참마속을 해야 하는 고단한 자리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다른 어떤 누구보다 제대로할 의지가 있다고 자부하니까요. 그런 저이기에 결코 쓰일 리없다고 체념하고 있던 차, 뜻밖의 인사 발령으로 향후 감찰 정책 연구, 감찰부장이 지시하는 사안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게되었습니다. 이제 고발인이 아니라 감찰정책연구관으로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라, 법규에 따른 각종 제약과 한계가 예상됩니다. 그럼에도 해야 할 일을 감당해 볼 각오입니다.
작년 11월 저는 〈감찰 유감> 칼럼을 통해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관행을 비판하며 감찰의무 이행을 검찰에 요구한 바 있습니다. 이제 의무 이행을 요구하던 민원인에서 의무 이행을 관철해야 하는 담당자가 되어, 상급자들과 지난한 씨름을 해야하고 난관들을 마주할 텐데요. "걷다 보니 길모퉁이에 이르렀어요. 모퉁이를 돌면 뭐가 있을지 모르지만, 전 가장 좋은 게있다고 믿을래요." 제가 좋아하는 《빨강 머리 앤》의 한 구절입니다. 모퉁이를 돌면 바위와 비탈도 있겠지만, 여전히 꽃들이피어있고, 늘 그러했듯 지저귀는 새소리는 청아할 겁니다. 씩씩하게 가보겠습니다. - P283

윤석열은 5월 28일 감찰3과장에게서 민원 내용을 보고 받고서울중앙지검으로 송부할 것을 지시한 후 감찰부장에게 "다음 날까지 인권부로 재배당하여 서울중앙지검으로 보내라"
는 지시를 거듭했습니다. 감찰부장이 "징계 시효가 도과되어도 주의, 경고 등 신분 조치 가능하고, 모해위증 교사 공소시효 남은 중대 사안으로 감찰부에서 직접 해야 할 사건"이라며 반대하자, 당시 차장검사인 구○○은 같은 날 오후 "인권부에 사본이라도 전달해 줄 것"을 요청한 후 기획조정부장을통해 "재배당이 아니라 관련 부서인 인권부에 참고 자료로보내겠다는 취지일 뿐"이라며 재차 요구했고, 이에 감찰부에서 민원서류를 사본해 주자, 인권부 인권감독과장은 같은날 저녁 공문을 첨부하여 사본을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첩시켰습니다. 서울중앙지검은 같은 날 서울중앙지검 2020 진정1801호로 접수한 후, 속칭 특수통이자 윤석열과 대검 중수부근무연이 있는 이○○ 인권감독관에게 배당했는데, 민원인들ㅇ - P292

은 서울중앙지검 인권부의 조사를 거부했습니다. 이러한 행위가 윤석열 징계 사유로 인정된 위 채널A 감찰 방해 사건무엇이 다른지 묻고 싶습니다.

*해당 사건은 대검 감찰부장의 감찰 개시 보고만으로 적법하게개시됩니다. 검찰총장의 감찰 개시에 대한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대검찰청 감찰부 설치 및 운영 규정 제4조(직무의 독립) ①감찰부장은 다음 각 호의 감찰 사건에 관하여 감찰 개시 사실과그 결과만을 검찰총장에게 보고한다.
- P293

○ 이어 신청인은 14시 45분 윤석열을 결재자, 조남관을 열람자로 하여 "직무 이전권의 주체는 검찰총장이므로 신청인의 수사권을 해당 사건에서 배제하는 취지라면 검찰총장의 구체적 직무 이전 지시서, 최소한 검찰총장의 구체적인 위임이 있음을 증명할 자료를 첨부한 차장검사의 직무 이전 지시서가기록 편철되도록 조치해 줄 것"을 요청하는 전자 공문과 범죄 인지서 등 서면 보고서를 또다시 상신했습니다.
이날 오후 윤석열이 검찰청법 제7조의2 등을 근거 조항으로명시한 ‘사건 주임검사를 감찰과장으로 지정한다‘는 취지의정책기획과장 기안 전자 공문을 최종 결재하고, 부속실 실무 - P295

관 편으로 관련 서류 또다시 반려하여 신청인은 해당 사건에서 결국 배제되었습니다. - P296

이에 대해 공수처는 "대검 검찰연구관인 신청인이 서울중앙0지검 검사로 겸임 발령을 받음으로써 바로 수사권을 부여받는지 여부, 인지 사건의 경우 검찰총장의 배당이나 승인이 없더라도 검사가 모해위증죄를 인지하겠다는 의사와 행위를외부에 표명할 경우 그 사건의 주임검사로 볼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는 별론으로 한다"며 판단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재차 유감을 표합니다.
결국,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성립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위와 같은 내용에 대한 논증과 검토 없이 피의자들의 일방적인 변소만을 반영한 결론을 내린 공수처의 무혐의 처분은 판단 유탈에 해당된다 할 것입니다. 끝.
- P299

‘검찰총장 등 검찰 수뇌부는 각오를 다지며 울산에서 상경하는 제가 몹시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보수 언론에서 "검찰 조직을 개혁 대상으로 비판해 온 부장검사가 공평한 감찰 업무를볼 수 있겠느냐?"는 내부 우려를 보도했는데, 이는 검찰총장을비롯한 검찰 주류의 시선이었습니다. 서울중앙지검 검사 직무대리 발령 보류 이유가 ‘불공정 우려‘였으니까요. 서울남부지검 김형렬 부장과 진동균 검사의 성폭력이나, 부산지검 윤 모검사의 고소장 등 사건 기록 위조 정도는 별 게 아니라서 징계와 형사처벌을 하지 않았던 장영수, 조기룡 검사 등이 맡았던감찰 업무를 제가 담당하게 되니 불안하고 불편했겠지요. 검찰수뇌부가 말하는 공정과 공평의 진짜 의미는 제 식구 감싸기가아닐까요? 이런 현실에서 2012년 서울중앙지검에서 그러했듯수뇌부와의 충돌과 저의 전사는 시기의 문제일 뿐 확정된미래입니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과 각오를 마지막 칼럼에 녹여담았습니다. - P303

 감찰부장은 수사권이 있는 허 모 감찰과장에게 서면 문답서 발송을 여러 차례 지시했으나, 허 모 감찰과장이 요지부동이라 검사들에 대한 조사는 진척이 없었습니다. 조남관 차장은 수사권 보류 사유를 따져 묻는 제게 ‘조직의 신망을 얻으라‘고 충고하고, 불공정 우려를 표시하며 장관과 검찰총장이 조율할 문제라고 답했습니다. 검찰총장이 감찰3과장 등에게 서울중앙지검검사 직무대리 발령을 내면서도 저만 외면하니, 결국 법무부가2021년 2월 22일 검찰 간부 인사안을 발표하며 2월 26일 자로서울중앙지검 검사 겸직 발령을 냈지요. 드디어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받았습니다. - P313

며칠 끙끙 앓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서울중앙지검과 대검은 서초동 횡단보도를 마주 보고 서 있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 대검으로 오는데 9년이 걸렸네요. 전투에서 매번 지고 있는듯하지만, 그럼에도 전선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2013년 행정소송을 통해 검찰 공안을 법정에 세웠고, 2022년 공익신고와고발, 재정신청과 즉시항고를 통해 검찰 특수를 법정에 세웁니다. 2016년 1월 검사게시판에 올린 <복귀 인사>에서 다짐했던대로 저에게 십자가가 허락되었음을 감사하며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이 어두워지는 검찰 하늘 아래에서 조용히 흘려야겠 - P316

저는 모해위증 교사 의혹 사건을 조사했을 뿐, 한명숙 전 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을 재조사한 것은 아니어서, 정치자금을 실제 받았는지는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2010년~2011년
‘검찰이 한만호를 비롯해 재소자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검찰 수사가 얼마나 반인권적이며 위법한지를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2018년 윤석열 검사장의 중앙지검과 2021년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검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똑똑히 보았습니다.
이제 그 검찰총장은 사퇴 후 정치권으로 바로 투신하여 대권을 거머쥐어 그동안 그가 지휘해 온 검찰 수사의 공정성에 대한 불신을 자초했습니다. 검찰 수사를 통한 철권 통치 시도가우려되는 현실이 참으로 참담하네요. 공익신고자인 검찰 구성원으로서 주권자 시민에게 검찰의 과거와 현재를 고발합니다.
이런 검찰이 과연 검찰권을 감당할 자격이 있는지를 판단해 주십시오. - P317

<검사 선서>나는 이 순간 국가와 국민의 부름을 받고 영광스러운 대한민국 검사의 직에 나섭니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처음부터끝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 P318

<검사1986년 부천경찰서 문귀동 경장이 대학생 권인숙을 성고문한 사건을 수사한 인천지검 특수부 팀원이었던 분이 제 초임검사 시절, 직속 부장이었습니다. 당시 인천지검 특수부는 문귀동을 구속해야 한다는 의견이었으나, 대검 지시로 결국 기소유예 결정을 했다고 하더군요. 부장은 울분에 차 1986년의 비사를 종종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부장의 회고에는 대검의 압력을 막아주지 못한 김경회 인천지검장에 대한 울분이 생생히묻어났지요. 15년이란 세월에도 삭혀지지 않는 울분이었습니다. 무죄 구형 강행으로 정직 4개월을 받고 쉬고 있을 때, 우연히 김경희 전 검사장의 회고록 (나 이제 자유인 되어》를 구해읽게 되었습니다. 김경회 전 검사장은 스스로를 ‘그러면 안 된다‘고 검찰총장에게 직언한 강직한 검사라고 자평하며, 기소유예 책임을 장관과 검찰총장 탓으로 돌렸더군요.  - P319

김대중 정부 시절, 신승남 전 검찰총장은 울산지검 특수부의울산시장 관련 뇌물 수사를 무마시켰다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로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2021년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조남관 전 대검 차장검사를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 신고하기위해, 신고서에 인용할 판결문이어서 꼼꼼하게 다시 읽어보았지요. 워낙 유명한 판례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내부 고발자가 되어 읽어보니 새삼 보이는 게 다릅니다. 2004년 8월 서울고등법원은 신승남의 범행 부인에도 불구하고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판결문의 일부 내용은다음과 같습니다. - P320

1심인 서울중앙지법은 증인 김원윤(전 울산지검 특수부장)의일부 법정 증언 및 검찰 진술 조서의 일부 진술을 신빙성이없다는 이유로 배척했는데 이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수긍하기 어렵다.
먼저, 김원윤의 진술은 자신이 몸담았던 검찰 조직의 수장 - P320

으로 재직했던 피고인 신승남에게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는결정적으로 불리한 진술로서, 검찰 조직 전체는 물론 자신과함께 근무했고 지금도 검사로 재직하고 있는 정 모(전 울산지검 검사장), 김 모(전 울산지검 차장검사), 최 모(울산지검 검사)에게도 치명적으로 불명예스러운 사실을 폭로하는 것이며, 심지어 위 내사 사건 처리에 관여했던 자신도 위 진술에의하여 밝혀진 사실관계로 인하여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사실과 달리 진술할 이유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정 모, 김모, 최 모로서는 검찰 조직의 현직 선후배 사이의 도리 등을 이유로 자유로운 진술을 할 수 없는 상황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고………… 김원윤의 진술은 충분히 신빙성이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김원윤의 진술은 당시 상황을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위 내사 사건이 부적절하게 종결된 당시의 상황과 자연스럽게 일치한다.………… 이러한 사정도 김원윤의 진술 신빙성을 충분히 뒷받침하고 있으므로 이 사건 사실인정의 유력한 증거가 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 오히려 위 진술에 배치되는 정모, 김 모, 최모의 진술 부분이 모두 믿기 어려운 것으로 보아야 한다. - P321

2014년 8월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제언 - 단성소를 그리며>를 검사게시판에 올렸다가 대검 정책기획과에서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하는 소동을 비롯해, 제가 보고 듣고 겪은 일임에도 관련 검사들의 진술이 저와 달라 공식적으로 부인되는 일이종종 있었습니다. 관련 검사들이 ‘그런 일 없다‘고 목놓아 외치는 상황에서 일기와 비망록을 남기는 것만으로는 증명이 여의치 않습니다. 조직 문화에 대한 안이한 현실 인식과 저와 동료들에 대한 낙관으로 검사게시판에 글을 올리면 언로가 활성화되고 결국 검찰이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다가, 실망스럽고 맥이풀려 주저앉고 싶은 때가 더러 있었습니다. - P322

대검에는 대한제국 시절 최초의 검사인 이준 열사 흉상이 있고, 대법원에는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 선생의 흉상이있습니다. 마땅히 본을 삼을 만한 사회적 모델을 사법부와 검찰은 그렇게 기리는 것이겠지요. <검사 선서>는 제가 검사 임관한 이후인 2008년 제정된 것이라 저는 선서하지 않고 임관했지만, 힘겨울 때마다 읊조리며 각오를 다지곤 했습니다. <검사 선서>는 그 문구를 확정했던 수뇌부를 비롯한 어두운 검찰사를 밤하늘로 삼아 반짝반짝 빛나지요. 부끄러운 선배들과 검찰사를 성찰하고 <검사 선서〉대로 살기 위해 종종거리다 보면,
비록 보잘것없지만 어둠을 조금이나마 내모는 반딧불이가 될수 있지 않을까, 양심을 지키기 위해 저항한 사회적 모델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검사 선서>를 읊조리며 씩씩하게 계속 가보겠습니다. - P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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