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쓰는가"와 "왜 사는가"는 같은 표현이다. 사실, 이 물음은-누구나 작가인 시대지만 작가에게만 해당하는 질문이아니다. "왜 사는가"를 고민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특히 어려운 시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들일수록 그렇다. 삶은 행위의연속이다. 모든 행위는 침묵이든 폭력이든 놀이든 노동이든 인간관계든, 그리고 죽음의 방식까지 자신을 표현하는 퍼포먼스다. 이러한 표현은 기호(signs), 즉 말과 글로 이루어진다. 오늘날 널리 쓰이는 ‘프레젠테이션(presentation)‘이 그것이다. 좀 더정확히 말하면, 모든 표현은 자기만의 사유(특정한 렌즈)를 거치므로 각자의 몸을 통과해 걸러진‘ 재현(再現, re-presentation)이다. 표현이 아니라 재현이 맞는 말이다. - P10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쓰려면, 나부터 ‘나쁜‘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글을 쓰는 과정은 나의 세계관, 인간관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나를 검열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이문제를 감당하지 못하면 글쓰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글쓰기의 정치학과 미학은 이 몸부림 과정의 ‘자연스러운‘ 산물이다. 사람마다 행로가 다르기 때문에, 이른바 독특한 글(콘텐츠)이나올 수밖에 없다. 흔히, 결과보다 과정이라는 말의 의미는 결과에 연연하지 말라는 군자의 비현실적인 말이 아니라, 과정에서 결과가 나온다는 뜻이다. 괴로운 과정에서 ‘최선의 올바름‘, 아름다운 문장이 나온다. - P16
생각해본다. 나는 타인에게삶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인가. 인간에 대한 혐오로 죽고 싶은 마음을 부채질하는 사람인가. 우리 사회는 구성원들이 ‘어쨌든 살아보자‘는 의욕을 일으키는 매력적인 곳인가. 고통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가능성뿐이다. 생사의 갈등으로사투를 벌이고 있는 이들에게 제시되어야 할 것은 미지라는 기대가 있는 사회다. - P24
마음이 없는 리더. 그런 리더를 선택하는 사회, 두렵고 심각한 현상이다. 새로운 시대의 징조일지도 모른다. 이미 극소수는양극화를 넘어 다른 공간에 산다. 그들의 대통령에겐 심서가 필요없다. 대개 관료나 정치인들에게 《목민심서>를 권하는데 그 의미가바뀌었으면 한다. 마음을 갖추라는 것이다. 마음이 없다? 문자그대로 말하면 물리적으로는 심장이 없는 죽은 사람이요, 기능상으로 뇌(생각)가 없는 사람이다. 마음이 없으면 죽은 것이다.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불필요한 사람이다. - P31
마음이 강하고 큰 사람은 울림이 있다. 심장박동이 자기 몸을 넘어 세상에 들린다. 마음이 크기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마음이 있다면 보여주었으면 한다. 마음은 실천을 통해서만 감각할 수 있는 물질이다. 마음이 없는 사람과 마주할 남은 시간, 심란하다. - P32
삶은 본질적으로 비극이다. 이 사실처럼 우리가 자주 잊는현실도 없다. 기억하기엔 너무 벅찬 숨소리인가. 슬픔과 우울은소비의 적이다. 삶의 비극성에 대한 망각과 무관심이 우리를 자본주의를 향한 환호로 이끈다. - P43
‘저 사람은 지금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까‘가 궁금한 이들이 있다. 자기는 잘났거나 억울한데 남이 보기엔 ‘사회악‘. ‘걸어 다니는 재앙‘인 사람들을 자주 본다. 자신이 무슨 일을 왜하는지 매 순간 생각을 놓치지 않는 것. 쉽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자세가 직업 자체여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인, 종교인, 지식인은 성찰이 업무이다. 따라서 이들의 생각하지 않음은 죄악이다. - P55
‘개인 노무현‘이 불가능한 언설임을 안다. 그에 대한 모든 기억과 판단은 사회적일 수밖에 없다. 이 분명한 사실이 가장 안타깝다. 이 움직일 수 없는 자명한 역사가 나를 좌절케 한다. 어느 세월에나 ‘그 사건‘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가능할까. 자살과 다른 죽음의 차이는, 자살이 개인적이고 생물학적이며 동시에 사회적이라는 사실이다. 유언과 유서는 어떻게 다를까. 다르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살은 특별해진다. 자살은 교통사고, 사고사로 숨겨진 사망 신고가 많아 정확한 통계가 어렵지만 4명 중 1명꼴로 유서를 남긴다고 알려져 있다(《자살의 이해》), 10퍼센트라는 이론도 있다. 유서가 자살의 증거처럼 여겨지는 통념에 비하면 낮은 비율 같지만 자연스러운 일이다. - P61
일천한 독서 경험이지만 노무현의 유서는 상당한 명문에 속한다. 담백하다. 완벽하게 지쳐서 미련이 남지 않는 사람만이쓸 수 있는 글이다. 전체적인 균형, 깔끔한 표현력, 심정과 사유가 잘 조화되어 있다. 증상의 전형성("글을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다."), 호소("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구체적 이유("너무 많은 사람에게 신세를 졌다."), 성숙한 자세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타인에 대한 배려 "너무 슬퍼하지마라. 미안해하지 마라."), 소박한 요구("화장", "작은 비석"). 그가겪었을 고통을 감안하면 놀라운 정신력이 아닐 수 없다. - P62
운명은 우주 혹은 세속의 힘이고, 개인의 삶은 그 힘에 종속되는가? 그렇지 않다. 운명은 권력을 탈정치화한 표현에 불과하다. 운명은 구조의 힘에 대한 나의 대응(re/action)이다. 그것이 균형을 이루는 경우는 드물다. 극단으로 기울어질 때 개인은 생사의기로에 선다. 자살, 타살 여부는 부차적이다. 즉 모든 자살은 사회적(타살)이다. 대개 구조가 개인을 압도하기 때문에 우리는 팔자를 타령한다. ‘운명을 극복한 경우는 복잡한 세상의 우연 덕분이다. 이 과정에서 ‘승패‘와 무관하게 악의 그물에 걸려 몸이헌신(獻身)될 수 있는데, 이른바 ‘역사의 밀알‘이 되는 것이다. "운명이다"는 구조, 즉 당시 정권에 대한 노무현의 답이었다. 그는 구조주의자(운명론)도 개인주의자(의지론)도 아닌 구조를넘어서고자 했다. 아무리 그래도 죽지 말아야 했다? 우리는 인간의 생사를 대단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삶과 죽음 모두자연의 한 부분일 뿐이다. - P63
시인을 최고의 지식인으로 생각하거나 자부하는 이들이 있다. 나도 그런 축이다. 시는 언어들의 언어, 메타포이기 때문이다. 은유는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한다. 시 한 줄이 사전 한 권이 될 수도 있다. 시인이 왜 잘났겠는가? 언어를 창조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시도 정치적 분노(유시민의 해석)와 공동체에피해를 주는 행위, 먼지에 대한 공포(나)로 다양하게 읽을 수 있다. - P66
"소수의 사악함보다 다수의 어리석음이 사회악을 부르는 때가 더 많습니다. 정치적 글쓰기는 사악함과 투쟁하는 일이 아니라 어리석음을 극복하려고 하는 일입니다."(102) 저자는 낙관적이다. 내가 보기에 지금 한국 사회는 ‘사악한 다수‘가 점령했는데…………. 조지 오웰의 저자 버전인 글을 쓰는 네 가지 이유. 자신을돋보이게 하려는 욕망, ‘미학적 열정‘, 역사에 무엇인가 남기려는 의지, 좋은 정치적 목적. 나는 모두 아니다. 나는 승부욕이다. "말로든 글로든, 싸워서 이기려고 하지는 맙시다." (97쪽)아,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는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글을 쓰는데. - P66
거리에서 하는 노동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전단지 아르바이트와 피시방 밤샘 일은 저임금 알바 중 하나다. 가출한 이후 ‘원조 교제‘와 성 산업에서(도) 외면당한 10대 소녀를 상담한 적이 있다. 그는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알바가 꿈이다. 나더러길거리에서 전단지 돌리는 사람이 있으면 꼭 받아 달라고 당부했다. 수십 장을 그냥 버리고 싶은 유혹 받지 않는 사람에 대한 분노, 춥고 더운 날씨의 어려움,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을 귀찮아한다는 비참함이 일이 끝난 후에도 이어진다. 상상력은 지구 밖에서 갑자기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보이지 않았던 곳을 생각하려는 마음이다. 전단지를 기꺼이 받아주는 작은 선행은, 그들의 노동 상황에 대한 큰 상상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 세상에 부족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상상력이다."(37) - P72
매일매일이 괴로운 뉴스다. 타락이 공기와 같고 언어도단이일상이다. 욕망에 한계가 없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부럽기까지 한‘ 이들.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사회가 그들 편이기 때문이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에게 ‘그만하라‘고 한다. 천지가 그런 사람이니 ‘너만 다친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가 다치고 공동체는 붕괴된다. 누가 멈춰야 할까. - P75
그나마 나는 그의 물신성이 ‘국가‘라고 생각했다. 한국 사회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고, 지금도 파악 불가능한 상태다. 오로지 박정희의 말이라는 이유로 대통령이 되었고, 전 국민과 ‘국가 브랜드‘는 회복할 수 없는 대가를 치렀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지금처럼 됐겠는가 아닌가‘라는 환경과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의 지지자들은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이라는 가정 아래, 그를 대통령이 아니라 "부모를 흉탄에 잃은 애처로운 큰딸로 생각했다. 여기서, 역사의 반전. 그는 ‘근대화의 역군‘ 박정희의 딸이 아니라 정말 ‘평범한‘ 최씨네 가족이었다. - P78
연대(네트워킹)와 연줄의 차이는 무엇인가. 좋은 취지의 사회적 약자 모임은 연대이고 그렇지 않은 관계는 연인가? 아니다. 연대와 연출의 차이는 새로움에 있다. 기존의 관계를 활용하는가, 의식적으로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가. 이것이 차이다. 하지만 무연 사회에서 연대와 연줄의 다름을 논하는 것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독사의 순간은 그렇다고 치자. 사후를 정리할 인간관계가 없는 죽음. 이것이 이제까지 인류가 달려온 문명 사회의 최종 모습인가. 서로 돕고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들은 노인, 장애인, 환자를 비롯한 건강 약자들이다. 이들은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연‘과 ‘무연‘은 인간의 조건을 둘러싼 중요한 논쟁거리다. 불성실과 무능력을 연줄로 해결하려는 사람, 나 홀로 간편하게 살려는 사람, 처지가 어려운 타인과 엮이지 않으려는 사람, 타인을 집요하게 괴롭힘으로써 낙오된 자기를 잊으려는 사람. 이들은 모두 달라 보이지만 사고방식이 같은 이들이다. 혼자 살만한 상태가 영원하리라 믿는 오만, 노년은 이토록 멀리 있다. - P84
감옥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다. 접견 횟수와 영치금의 액수가...... 같을 리 없다. 사정이 나았던 신영복은 동료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지만 거부하는 이들을 보고 이렇게 썼다. "사람은 스스로를 도울 수 있을 뿐이며, 남을 돕는다는 것은 그 ‘스스로 도우는 일‘을 도울 수 있음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 돕는다는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의 확인이라 생각됩니다."(244쪽) 그래서 "입장의 동일함은 관계의 최고 형태가 된다. (313쪽) 연대의 의미에대해 이보다 더한 명문이 있을까. 이 당파성과 위치성! 당연한 이야기지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처음 출간된1988년과 30여 년이 지난 지금 나의 독후감은 다르다. 1976년, 신영복은 그의 계수에게 이렇게 썼다. "얼마 전에 읽어본 《여성해방의 이론과 현실>(이효재)을 추천합니다. 매우 신선한 책입니다." (95쪽) ‘염려보다 이해를‘ (73쪽)이 이토록 감사한 말임을그때는 몰랐다. - P87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감옥의 사상이다. 1968년부터 20년 20일 동안 ‘엘리트 사상범‘은 ‘밑바닥 인생들‘과 살면서, 그들과 자신의 같음과 다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렇게 그는 생각 없이 살아도 되는 남성의 ‘특권‘은 누릴 수 없었지만, 타인을 타자로 만들지 않고도 남성이 된 드문 인간이 되었다. 천만 번의 외로움 끝에 다다를 수 있는 경지다. - P87
기형도가 살았던 1980년대에 비해 지금 사람들의 욕망은 하늘을 두 쪽 낼 만큼 강렬하다. 실현가능성은 그 반대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죽을 만큼 노력하거나 노력해봤자 불가능한 일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시대의 희망은 통치 이데올로기에 가깝다. 대중은 ‘착해 보이는 말‘, 희망으로 대응한다. 현실은 물질이고 희망은 생각이다. 현실을 변화시키는것보다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희망과 현실의 간극이 클 때 우리는 절망한다. 절망에 대처하는 가장 위험한 방법은 희망이 인식이 되어 그 인식을 행동으로 옮길 때다. 나는 희망을 버리는 것이 치유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명절 인사처럼 ‘모든 이들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곳이아니다. - P94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인 동시에 두려울 것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 ‘희망찬 인생‘은 바라는 것이 없는 사람이다.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인간은 무엇인가의 볼모가 된다. 희망은 욕망의 포로를 부드럽고 아름답게 조종하는 벗어나기 어려운 권력이다. - P95
"우리는 운동이 없는 배움, 배움이 없는 운동에 대해 ‘운동‘의이름으로 맞선다."(127쪽) 장애인에게 공부의 의미는 이동, 관계 투쟁・・・・・ 그리고 내가 알 수 없는 그 이상일 것이다. "장애인은 공부해도 어디 가서 써먹을 데가 없다."는 생각은 현실과정반대다. 공부야말로 사회적 약자가 해야 가장 효과적이다. 언어는 그들의/우리의 유일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서른 살 이후, 나는 이 이슈를 기준으로 억압하거나 비웃거나 불편해하는지여부에 따라 상대방의 인간성을 판단하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 사회는 학습과 사회운동을 분리하는 경향이 강하다. 사람들은 장애인이나 단체상근자들은 공부할 필요, 조건, 시간이 없다고 생각한다. 공부는 ‘전문가‘ 의견으로 대체된다. 그러나 실무자와 전문가는 별도로 성립할 수 없다. 사회운동, 회사, 관료 조직을 막론하고 전문성 없는 실무자와 현장 능력이 없는전문가는 걸어 다니는 재앙이다. 이들의 결과가 ‘세월호‘다. - P105
장애인이나 여성이 자기 언어를 지니는 것은 지식의 개념을재정의하는 전복적인 행위다. 사회적 약자에게 공부는 취업, 성장 같은 당연한 의미 외에 자신의 삶과 불일치하는 기존의 인식체계에 도전하는 무기가 된다. - P105
명심하길. 아메리카 원주민 지도자의 연설 중 가장 널리 인용되는 1853년 스쿼미시족의 추장 시애틀은 이렇게 말했다. "죽음이란 없다. 단지 살아가는 세계가 바뀔 뿐이다."(228) 우리는 언제 어디서 어떤 관계로 다시 만날지 모른다. 그러니 거짓말을 하더라도 빈 머리 (익숙함)에 의존하지 말고 생각하고 발언하라. - P109
정혜윤의 글쓰기는 유독 이 책에서 빛을 발하는데, 유려하면서도 단단하다. 구성이 탄탄한 흥미진진한 소설을 읽는 듯하다. 그는 듣는 자의 위치성을 잘 알고 있다. 상황에 깊이 개입하면서도 대상화하거나 감상적이지 않다. 저자의 주된 질문은 "무엇 때문에 5년간의 길거리 생활을 버틸 수 있었는가?"이다. 생계와 복직, 공권력에 대한 분노, 3년간 동료 22명의 사망… - P111
이것만이 이유였을까. 협업이 중요한 자동차 공장에서 각자가 서로의 몸이 되어 일하던 동료들끼리, 하루아침에 "함께 살자.","같이 죽자는 말이냐", "다 죽일 셈이냐.", "다 죽자는 말이냐.", "너 살자고 날 죽이냐.", "차라리 함께 죽자."는 말이 오가는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살았을까. 사람은 어떻게 살아지는가. "살면서 두 번 다시 그런 고통을받지 않기를 바랄 정도로 무시무시한 것은 바로 배신감이었어요.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 마음의 밑바닥을 보는 것이었어요" (35) 배신, 사람의 바닥. 여기서 나는 오래 서 있었다. 사람이싫어지면 삶은 끝이다. - P112
몇 년 동안 매일, 인간의 바닥을 보게 된다면? 병에 걸리거나죽을 것이다. 사람은 사람 때문에 산다. ‘나와 사람‘이라는 화두 - P112
를 이렇게 구체적으로 기록할 수 있다니. 드라마 <미생>의 영업3팀이 부러운 이들에게 권한다. 인세 수익은 전액 기부된다. 이책의 노동자들은 진정한 치유자다. 상처받은 치유자(woundedhealer), 위로받을 것이다. - P113
글과 글쓴이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그 거리는 다정하지 않다. 가까울수록 적대적이다. 외면, 길항, 동일시∙∙∙∙∙∙. 당사자가자기 현실을 쓰려면 공감받기 어려운, 헤쳐도 헤쳐도 계속 달려드는 칡넝쿨을 쳐내야 한다. 타인의 경험은 보이지만 내 경험은나조차 믿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글은 자기 시각은 없으나, 자기 뜻대로 쓰는 이른바 ‘객관적인‘ 것들이다. 세상사를 전(專有)하면서 스스로를 인간의 기준이라고 선포하는 글. 기회주의와 보신주의를 중립과 보편, 심지어 정론으로 포장한 것들이다. 거리를 잡는 것‘(포지셔닝 혹은 주제 파악)은 극도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거리 두기와 동일시는 자신을 이동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에서 동일하다. 반면, 자신을 변화시켜야만 가능한 공감과 연대는 어렵다. - P116
"우리는 임금 삭감을 크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것이 평양 전체 고무 직공의 임금을 깎는 원인이 될 것이므로 죽기로서 반대하는 것입니다. 평양의 2,300명 동무의 살이 깎이지 않기 위해내 한 몸뚱이가 죽는 것은 아깝지 않습니다. 내가 배운 지식 중에 가장 귀한 것은 대중을 위해 죽는 것이 가장 명예롭다는 것입니다. 사장이 이 앞에 와서 임금 삭감을 취소하지 않는 한 결코 내려가지 않을 것입니다.. 이기지 못하면 죽은 거나 다름없으니 죽을 각오로 싸울 뿐입니다." 내가 배운 지식 중에 가장 귀한 것은 대중을 위해 죽는 것. 나는 울컥한다. 중요한 것은 타인을 위해 죽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배운 지식 중 ‘가장 귀하다‘는 그의 마음이다. 을밀대 농성과 지금 투쟁을 비교하는 것은 난센스다. 그러나공통점은 ‘이기려고 올라갔다‘는 점이다. - P119
세상은 그렇게 굴러간다. 삶은 옳고 그름이나 일의 가치를기준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그냥 사는 것.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인생의 목적? 의미를 추구하는 삶? 신성한 노동? 이런 가치들은 소통하기 어렵다. 전쟁은 이런 것이 있다는 가정, 즉 정치경제적 이유와 ‘진리는 하나‘라는 확신 때문에 발생한다. 살아 있는 인간에겐 해야 할 일이 필요할 뿐이다. "삶은 지속된다(lasting)"라는 제목의 책,영화가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삶에 목적은 없다. 의미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먹기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라는 반성은 필요 없다. - P124
당연히 먹기 위해 산다.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는 우울한인간만의 고민이 아니다. 이 질문만이 유일하게 쓸모 있다. 삶자체가 의미라면 그걸로 만족스러운 것이며, 일상의 괴로움과외로움으로부터 조금 자유로울 수 있을지 모른다. "당신이라면어떡하겠습니까?" 한나의 질문은 삶이란 최악이자 최선이라는본질을 폭로한다. - P125
이처럼 인생=길이라는 통념은 다양한 경험을 이해하는 데방해가 된다. 상투성의 원단,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은단지 선택하지 않은 삶일 뿐이다. 선택할 수 없는 이들에게는 갈 수 없는 길이고 이미 삶이 아니다. 외출 준비에 한나절 이상 걸리는 장애인, 여성이 피하는 밤거리, 치매와 광장공포증환자에게 길은 도전이자 치열한 정치다. 비장애인의 걷기, 걷기투쟁이 많지만 이진섭, 이균도 부자에게 길은 그들과 같지 않다. 이 책은 길의 의미가 사람마다 얼마나 다른지를 생각하게한다. 장애인이나 아픈 사람, 화상 환자, 우울증 환자가 집 밖으로나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리나라처럼 거리에서 장애인을 보기 힘든 사회도 드물 것이다. 구조적, 심리적으로 ‘총을 든 간수‘가 곳곳에 완강하다. 성형 시술이 성별 이슈로 한정되는 것은 부정의하다. 몸의 외형과 기능문제로 고통받는 장애인은 외모주의의 가장 큰 이해 집단이다. - P128
박래군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뭔가 억울한 일을 당한 이들이다. 감히 병렬적으로 쓰자면,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비판이불가능한 사회운동 내부의 문제를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내가서른 살에 단체 활동을 그만둔 이유는 사람이 하는 일과 사람의 질은 반비례할 수도 있다는 현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원래문제가 많은 사람이 사회운동으로 도피하거나 삶의 진지로 작정한 경우도 있고, 활동 과정에서 망가지고 타락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어느 집단에서나 있을 수 있는 자연스런 인간사다. 다만, 이 바닥은 아주 뛰어난 은폐 논리를 지니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어리석은 줄 알지만, ‘깨끗한 영웅‘을 찾아서 혐인증(人)을 치유하고 싶은 것이다. - P132
사회 조직은 몸에 비유될 때(政體), 즉 물리적 실재라는 가정에서만 통치가 가능하다. 유기체는 한 생물, 한 단위이다. 생물하나가 단독자로서 전체다. 그래서 전체주의와 개인주의는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실은 같은 사고다. 전자는 전체가 한몸이고, 후자는 개인이 한몸이다. 당연히 (개인의 인권 사상으로는 국가주의를 이길 수 없다. 작은 개인과 큰 개인 중 누가 희생해야. 하겠는가. 국가가 한목숨인데 어떻게 타인 · 이견 차이가 인정되겠는가. ‘국가안보, 적, 간첩, 국론분열‘이 언제나 통하는 이유다. - P136
전쟁은 없지만 굶주림과 폭력이 만연한 상태, 가진 자의 마음이 평화로운 사회, 여성의 목소리는 불편하다는 진보 남성이 많은 사회를 평화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모임엔 있었다.) 평화는 상태가 아니라 관계다. 아프고 슬프고, 외롭고, ‘버림받은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의 위로. 나는 그런 평화를 기원하고 믿는다. 이것이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평화다. - P139
‘이야기‘는 곧 읽기와 쓰기다. 반응하지 않는, 감정 이입 없는 글쓰기는 불가능하다. 그러지 않아야 더 잘 쓸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의 뇌는 진공 상태다. 글이란 자기 생각을 외부로 물질화하는 일인데, 생각이 없다면? 생각 없는 글쓰기가 가능하고 심지어 널리 읽히는 세상이다. 나도 이 글을 쓰면서 책의 핵심적인 내용은 피했다. 생각하기 힘겨웠기 때문이다. 엄마와 딸, 죽어 가는 엄마의 이야기. 이 책의 지은이는 미국의 유명 작가이자 역사가이자 사회운동가인 리베카 솔닛이다. 남성을 ‘꼰대‘로 규정했지만 여성의구매력을 보여준 베스트셀러,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든다》의 저자이다. "가르치려 든다"는 너무 점잖은 번역이다. 인간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남자들의 진짜 문제는 가르칠 것이 없다는 사실 아닐까. - P149
삶이 생사로만 끝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생로병사다. 시간은 나이듦과 병듦으로 채워진다. 이 책을 읽은암환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작가에게 말했다고 한다. "삶이 소중하다는 것을 전해 달라." 누구나 아프고 죽는다. 슬프고 두려운 것은 ‘인간‘이어서 그렇다. 인간은 의미 중독자다. ‘자연‘이라면 순리다. 유일하게 필요한 것은 동정이나 안도감이 아니라 의료 보험 개혁뿐이다. 아프지 않기를 바라지 말고 아픈 사람을 루저로 대하지 말자. 어차피 우리는 자연에서 다시 만난다. - P162
아서 프랭크는 차이가 인식되어야 돌봄이 가능하다고 본다. 암환자에게 해주기 적당한 말‘은 없다. ‘암환자‘는 포괄적인 실체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느낌표는 필자) 의학이 환자를분류하는 데 사용하는 일반적인 진단 범주는 질환(disease)에쓰이는 것이지, 질병(illness)에는 들어맞지 않는다. 하지만 아픈 사람을 상대하는 사람들은 차이와 독특성을인식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차이를 파악하려면 아픈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 (75) 치료와 돌봄은 다르다. 돌봄…. 내가 엄마를 간병할 때 가장 많이 한 말(짜증)은 "엄마,정말 원하는 게 뭐야?"였다. 그가 원하는 거즈의 촉감을 찾기위해 몇 종류의 거즈를 샀는지 모른다. 이 책은 번역서 같지 않다. 번역(메이), 표지 디자인(김효은), 추천사(김영옥, 전희경)가 본문보다 심오하다. 특히 번역은 원래능숙한 한국어 사용자가 쓴 문장 같다. 《아픈 몸을 살다》는 아서 프랭크의 첫 저서이며, <몸의 증언>(갈무리, 2013년)도 권하고싶다. 위에 언급한 이들은 모두 페미니스트다. 우연만은 아닐 - P165
소설가 정찬의 문장을 부러워하는 것은 윤리적이지 않다. 언어의 결정 극한 노동의 산물이다. 게다가 그의 사유는은결정(潔淨)을 향하면서 동시에 그것과 대결하려 한다. 그런 점에서 일부 평자들의 견해와 달리 그의 작품은 시류와 어울린다. 누구나 작가인 시대, 글쓰기의 민주화가 언어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타인에 대한 폭력으로 전화된 지금, 그는 우리 사회에 절실한 예술가다. 데뷔 37년차에 이르러서도 "쉼 없이 언어와 싸우며, 번번이 무릎을 꿇으면서도 다시 일어서야 하는 가혹한 싸움"을 멈추지 않은 소설가. ‘연륜에 맞는‘ 태작이 없는 작가. - P166
어 미칠 것 같은데) 잊어라.", "(이미 너무 참고 있는데) 참아라.", 심지어 착취 구조에 갇힌 사회적 약자에게 "왜 그렇게 분노가많냐."고 분노하지 않기를 바란다. 돕고 싶다면 그들의 분노를있는 그대로 수용하라. 가장 비윤리적인 분노, 그래서 참아야할 분노는 딱 하나, 분노하는 이들에 대한 분노다. - P194
누구나 보호받기를 원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보호의 현실 또한 간단하지 않다. 세월호를 둘러싼 가장 비등한 여론은 "누가 우리를 보호해주냐?"라는 국가에 대한 불신과불안감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보호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위험하다. 국가가 강력한 보호자이기를 희망하는 것은 세월호의 대책이 아니라 원인에 가깝다. 기존의 보호는 보호자(주체)와 피보호자(대상)를 전제한다. 피보호자는 보호자에게 세금, 충성, 자유의 부분적 포기 같은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기존 보호 개념의 가장 큰 문제는 보험자가 보호할 대상과 그렇지 않을 대상을 결정하는 권력을 지닌다는 점이다. 보호자 남성은 여성을 성(性)과 외모 혹은 아버지가 누구냐를 기준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여성과 그렇지 않은여성으로 구분한다. 보호자에게는 차별할 권리가 주어진다. 국가가 보호자일 때 국민이 어느 지역과 계급에 속했는가에 따라보호 의지가 다르다. 지역 차별이 대표적이다. 박근혜 정권은이마저도 아니고 "왜 그런 걸 요구하세요?"라고 반문한다. - P204
노동으로서 모성이 개념으로서 모성적 사유의 기반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관념이다. 생각한 다음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가 사유를 만든다.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이 말처럼 ‘틀린‘ 말이 ‘좋은‘ 말로 회자되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몸과 정신의 이분법에 근대의 쌍생아인 생산주의와 ‘상록수 정신‘으로 우리를 들볶는 논리다. 삶은 사유의 실현이 아니라 근거다. 안전은 보호자에게 요구하고 개인의 자유를 보류할 때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보호는 상호 보살핌이다. 우리 삶에는 이미보호의 철학적 기반이 있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5천 년간이어 온 가부장제 사회의 ‘어머니‘ 노동이다. - P205
세월호를 기억하자고 다짐할 필요도 없다. 비처럼 세월호도 삶의 일부다. 어두운 이야기도 남의 일도 아니다. 누구나 밤마다 잠들지 못하고 베갯잇을 적시게 되는, 보고 싶은 이들이 있지 않은가. 슬픔과 분노를 감추지 않고 눈물과 함께 흐느끼는소리가 들리게 하라. 바다에 내리는 빗소리는 모호하다. 그러나 진도 바다의 영혼들은 듣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같은 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역사에 새길 빗소리를 만들어낼 수는 있다. 생각을 멈추지 않도록하는, 타닥타닥 존재감 있는 소리. - P208
혀가 면도날일 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주를 너무 받아서혀를 많이 베인 것인가. 그래서 막말이 막 나오는 것일까. 이들입안의 피비린내가 세상에 진동한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모르는 이에게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다 버릴 것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제발 자기 악취는 스스로 삼키기를 밖으로 뱉지않기를 바란다. 세상도 진실도 혹독하다. 이런 이야기를 얼마나더 들어야 하는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고통과 상처를 딛고서야 세월호의 진실이 드러날 것인가. - P212
보편적인 말은 없다. 어떤 이에게 착한 말이 어떤 이들에겐비현실적이다. "잊지 않겠다."는 고통 외부의 시각이다. 기억해 ‘주다‘가 아니라 당사자의 언어를 찾아야 한다. 예컨대, 슬픔이일상의 일부라면 기억 투쟁은 필요하지 않다. 상실과 상실감은인간성이다. - P240
세월호가 인양될 때 아무 말 없이 며칠을 보냈다. 어떤 상호비교도 적절하지 않지만, <4·3은 말한다》를 다시 읽을 수 없는심정과 비슷했다. 이 책을 읽은 이들의 공통적인 독후감은 "자기 인식의 한계에 대해 생각함", "세월호에 관해 말하는 방식을다시 생각함"이 아닐까. 세월호의 ‘미수습자‘와 4·3의 ‘행방불명자‘. 세월호는 떠올랐고 4·3은 법의 영역에 들어왔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인가. 유족들의 경험과 역사 쓰기는 어떤 차원에서 만날 수 있을까. 어쩌면 이 질문만이 유일한 사실일지도 모른다.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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