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이 말하기를 좋아하고 말하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좋은 말하기가 말수에 달려 있다고는생각하지 않는다. 말수 적은 나의 ‘어른‘ 친구들이 그 증거다. 나는 그들이 내 말을 들어주는 것만큼이나 그 ‘적은말‘을 내게 들려주는 것이 늘 고맙다. 솔직히 말수 적은 게 멋있어 보여서 따라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늘 실패한다. 그런 것은 타고나는 모양이다. 대신 이따금 그 친구들의 어린 시절을 상상해본다. 아마도 조용한 어린이였겠지. 오해를 받아 속상하고 답답할 때도 있었겠지만 대체로는 괜찮았을 것이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익숙한 고요함 속에서 자기를 키웠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멋있는 사람들이 되었겠지. 그러니까 말수가 적은 어린이도 괜찮을 것이다. - P42

어린이에게 친구는 더욱 절실하다. 그런데 어떤 어른들은 이 문제를 가벼이 여기는 것 같다. 어린이에게 있어 친구란 ‘만나서 노는 존재‘라고 단순하게 생각해서일지 모르겠다. 그러니 학습에 차질이 생기거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길어지는 문제에 비해 급한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친구 대신 가족과 놀 수도 있고, TV를 보거나 게임을하면서 놀 수도 있으니 친구를 못 만나는 것쯤은 덜 걱정해도 되는 것일까? 어른들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어린 시절의 친구가 꼭 평생 친구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어린이의 친구 관계를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일까?
어린이에게 친구란 단순한 ‘놀이 대상‘이 아니다. 경험과 지식수준이 비슷한 사람, 학교생활 같은 중대한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 사회적인 위치가 비슷한 사람이다. 친구들끼리는 비슷한 것을 알고 비슷한 것을 모른다. 자기들만 아는 순간과 농담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님은 물론이고 자매 형제와도 온전히 나눌 수 없는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친구와는 나눌 수 있다. 어린이가 ‘친구‘와 놀고 싶은 건 그래서다. - P48

"녹색 어머니 하시는 분들이 힘드실 것 같다. 그런데도 아침에 인사를 해주시면 기분이 좋다."
"나는 오늘 꿈이 하나 더 생겼다. 녹색 어머니를 하는 것이다. 가만히 보니까 남자도 할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때가 되면 나도 아이들한테 인사를 잘 해줘야겠다."
로운이가 본 녹색 어머니들도 나의 지인처럼 반갑게 아이들을 맞이해주었나 보다. 어른들의 격려가 좋은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만들었나 보다. 어른들이 어린이를 보듯이, 어린이도 어른을 본다. 이웃과 이웃으로서.
이따금 어린이한테 잘 해주고 싶어도 주변에 어린이가 없어서 그럴 기회가 없다고 아쉬워하는 분들을 만난다. 우리가 실제로 이웃을 못 만나서 ‘이웃 어른‘이 될 기회가 적어진다면 동네의 범위를 점점 더 넓게 잡자. 길에서 카페에서 식당에서 만나는 어린이 이웃을 환대하면 좋겠다. 그냥 어른끼리도 되도록 친절하게 대하면 좋겠다. 어딘가에 ‘세상이 이런 곳이구나‘ 하고 가만히 지켜보는 어린이가 있다는 걸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린이가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가올 세상이 달라질 거라는 당연한 사실을 사람들이 많이 생각해보면 좋겠다. - P64

국립중앙박물관의 좋은 점을 세 가지 말해보겠다. 첫째, 로고가 아름답다. 이 로고는 직선으로만 표현되었는데, 박물관의 외관을 담백하고 기품 있게 표현한 선들이 멋있다. 둘째, 앞마당 전경이 시원스럽다. 이렇게 탁 트인 곳에서는마음도 얼마간 넓어지게 마련이다. 움직임도 커진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린이들은 반드시 뛰게 된다. 셋째, 어린이가 많다. 정책이나 실제 상황은 어떤지 몰라도 이 공간이 어린이를 환영한다는 건 확실하다. 어린이만큼 이 문제에 민감한 사람은 없는데, 어린이가 이렇게 많은 걸 보면.
‘영원한 여정, 특별한 동행: 상형토기와 토우장식토기‘ 전이 열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다가 모처럼 모르는 어린이를 많이 보았다.  - P74

나는 그림일기 숙제를 싫어하는 어린이였다. 그림 부분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림 칸은 글 칸보다 훨씬 넓은데 어떻게 채워야 할지 늘 막막했다.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도 마음대로 그려지지 않았다. 소풍을 가서 돗자리를 펴고 친구들과 배를 깔고 누워 놀던 순간이 너무 재미있었는데 일기에 그린 그림은 내가 봐도 영 어색했다. 엎드린 사람을 어떻게 그린담? 어쩔 수 없이 그림을 지우고 단체 사진 찍는 장면으로 바꾸었다. 글도 그에 맞추어 써야 했다. 내가 실제로 말하고 싶은 것을 담을 수 없어서 속이 상했다. 글로 쓰면 되는데 왜 그림을 그려야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않았다. - P81

글과 그림에 대해, 언어와 비언어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물론 독서교실 수업은 언어를 중심으로 진행되게 마련이고, 글쓰기와 말하기가 우리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데 유용한 도구인 것도 사실이다. 내 역할은 어린이가 그 일을 자기 힘으로 해낼 수 있게 돕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언어로 정리된 내용만을 중요하게 여기거나 유일한 목표로 삼은 것은 아닐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림일기의 ‘글‘ 부분을 난감해하는 어린이가 있다는 사실을 가볍게 여기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림을 글쓰기의 전 단계 정도로만 생각해온 것이다. - P82

어린이는 창작자이기도 하고 감상자이기도 하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독서 수업이 결국 문화 예술 교육의하나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책 자체가 언어를 매개로한, 문화 예술의 산물이다. 그리고 어린이에게 문화 예술은 세상을 배우는 길인 동시에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작품을 이해하고, 작가의 의도를 알고, 맥락을 이해하고, 다른 감상자를 만나는 것. 어린이 자신이 창작자가 될 때도 그렇게 전달되는 작품을 추구하게 해야 한다. 문화 예술은 사회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육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창의성‘을 중심으로 생각해보면 분명해진다. 창의적인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 P83

서는, 무엇이 창의적인 것인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이전의 것들을 배워야 한다. 비윤리적이거나 사회적 합의에 어긋나는 것을 창의성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표현의 기술을익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다시 한번, 창작은 사회와 무관하지 않다.
그런가 하면 창의성이 어떻게 우리의 세계를 확장시키는지 실감할 필요도 있다. 예를 들어 평범한 낱말이 ‘시‘ 안에서 새롭게 쓰인 것을 볼 때 어린이는 은유와 함축성 등을 이해하게 되는데, 그러고 나면 어린이가 세계를 이해하는데 새 지평이 열린다. 언어만의 강력한 힘을 알게 되는것이다. 마찬가지로 음악만이 보여주는 세계가 있고, 춤만이 자극하는 감각이 있고, 그림만이 전달하는 감정이 있다. 그렇게 어린이들이 각자의 무한한 세계를 만든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 P84

학교 바깥에서 도서관이 책을 공공의 자산으로 관리하듯이, 문화 예술의 다른 영역에서도 모든 어린이에게 열려있고 다가가기 쉬운 길이 많아지면 좋겠다. 어린이에게는 공연과 전시, 일상적인 교육을 아우르는 공간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 그곳에서 어린이가 스스로 진지한 창작자가 되어보고 감상자, 비평가도 되었으면 좋겠다. 평생 예술 안에 머무는 시민이 되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문화 예술의 공공 교육을 생각할 때 내가 기대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어린이 세대와 다른 세대의 교류다. 우리는 가르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의 감각과 표현을 배우기도 할 것이다. 신선함에 즐거울 때도 있고 낯설어 놀랄 때도, 심지어 걱정스러울 때도 있겠지만, 동료 시민인 어린이의 세계를 만나고 싶다. 언어뿐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하면서 우리의 세계는 더 다채로워질 것이다. 어린이를 위한 문화 예술 교육은 결국 모두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 P85

아동은 표현할 권리가 있다. 이 권리는 말이나 글, 예술 형태 또는 아동이 선택하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국경과 관계없이 모든 정보와 사상을 요청하며 주고받을 수 있는 자유를 포함한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13조 제1항


어린이가 쓰고 그리고 노래하고 춤추는 일을 먹고 입고자는 것만큼 시급한 문제로 고민하면 좋겠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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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가까이에서 지내면서 나는 ‘미래‘가 금방 온다는것도, 그 모습이 결코 모호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린이를 따라서 나도 성큼성큼 미래로 간다. 어린이가 사는 세상이 곧 나의 구체적인 현실이다. 나는 미래를 예측할수 없지만 두 가지 사실만은 알고 있다. 하나는 지금 우리가 어린이를 대하는 방식이 앞으로 우리가 대접받는 방식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또 하나는 미래가 어떤 모습이 될지라도 나아가는 사람은 계속 나아가리라는 것이다. 나는그중 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이 세상이, 내 미래가 어떻게 되든 나도 끝까지 나아지는 어른이 되고 싶다. 이 책을 읽는분들도 같은 마음이면 좋겠다. - P8

그렇다. 다음 칸은 ‘김소영(58세)‘다. 시간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속도로 흘러간다. 나는 똑같은 속도로 나이를먹어간다. 특별히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나름대로 발전적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냥 계속 자라는 것으로 쳐도 되지 않나? 앞 문장에 부사를 너무 많이 썼다. 이렇게까지 부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진술은 믿을 수없다. 책임을 다해야 할 어른이 나도 아직 자라고 있다고주장하는 것은 너무 뻔뻔하다.
그럼 몇 살부터 ‘자란다‘가 아니라 ‘늙는다‘가 되는 걸까? 사전적으로는 중년이라 할 수 있는 마흔 살 안팎부터라고 한다. ‘중년‘에 대한 표준국어대사전의 설명은 이렇다. - P20

"때로"라는 말이 신경 쓰였다. 원래는 40대까지인데 넉넉하게 50대도 중년으로 친다는 걸까? 사실 나 자신은 아직도 ‘중년‘이라는 정체성을 외면하고 있는데, 만일 중년이l
ㅂ50대까지 포함하지 않는 경우라면 나는 이미 중년도 끝나가는 것이 된다. 나는 꽤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언제나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있으니까 어디가서 나이 타령 하지 말아야지, 하고 늘 생각해왔다. 스스로 ‘나이‘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어린이와 나란히 놓고 보니 내 연령대가 어디에 놓이는 건지, 다시 말해 내가 얼마나 나이가 많은지 깨달은 것이다. 달리표현할 길이 있다면 좋겠지만 없기 때문에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다. 나도 나름대로 오래 산 것이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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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목

1981년 서울 동대문에서 태어났다. 2015년까지 영화현장에 있으면서 장편 극영화와 다큐멘터리 일곱 작품에 참여하였고, ‘목사‘에서 단편 극영화와 뮤직비디오를 연출하고 있다. 시집 『연애의 책』 『식물원』 『작가의 탄생』이 있고 산문집 『디스옥타비아』 「산책과연애」 「거짓의 조금』을 썼다. 난설헌시문학상을 수상했다.

사람은 한평생을 살아가며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한다.
-로르 아들레르

어제는 장 아메리의 「자유음」 조판 원고를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짧은 글을 써서 출판사에 송고했다. 사람은 언제든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죽을 수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자유죽음』은 참으로적절하고 또 가혹한 책이 아닐 수 없다. "살아야 한다고 일단 태어난 이상 살아야만 한다고?" 장 아메리의 물음은 삶과 죽음에 대한 나의 의문과 일치한다. 어째서 계속해서 살아가야 하지? 나는 여지껏 대답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살아왔다. 아무 이유 없이 살아야 한다니. 그리하여 결국에는 태어난 것을 원망하면서. - P12

어쨌든 매일 죽지 않고 살아 있으려고 노력한다. 살아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지 않기 위해서. 그런데 요즘은 질문의 국면이 바뀌었다. 매일 쓸 수 있을까? 혼자서 멍하니있다가 불쑥 나에게 질문한다. 일단 쓰는 것을 시작하고나면 매일 쓸 수 있을까? 대답은 없다. 매일 쓰는 일은 두렵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두려운 것에 나는 반응하지않는 사람이다. 그러면 나를 똑바로 응시하는 두려움과 눈 마주치지 않을 수 있다. - P13

나는 시를 쓴다. 다른 세계를 만들어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하지 못하는 경험을 하기 위해 시를 쓴다. 그러므로 시는 내게 인공적인 행위이다. 다른 세계는 어쩌다갑자기 생겨나지 않고 내가 애써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면 좋을 텐데, 힘들어서하는 말이다. 여기에 없는 다른 세계를 만드는 건 여기에 있는 나를 전부 소진해버리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만든 세계에서 여기서는 절대로 하지 못할 경험을 한다. 그래서 그만두지 못한다. 마치 중독된 것처럼 계속해서다른 세계를 찾는다. 나는 여기서의 삶만으로는 도무지 살아갈 수 없다. - P25

살아 있는 사람에게 행운처럼 주어지는 여행. 나는 살아있어서 여행할 수 있다. 죽어서도 여행할 수 있다면 나는그렇게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죽으면 모든 것이 다 끝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나에게 죽음은 태어나기 전과 같은 상태를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어서도 여행할 수 있다면 나는 죽은 자로서 기꺼이 여행할 것이다. - P76

나는 왜 하노이에 왔을까. 왜 하노이일까. 어째서 자꾸만하노이의 골목길을 걷는 것일까.


지금은 대답할 수 있다. 내가 있고 싶은 곳과 있고 싶지않은 곳을 알기 위해서 온 것이다. 나는 밝은 곳에 있으면서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싶어 온 것이다. 무엇도 나를 압도하지 않는 곳에서 아무것에도 압도당하지 않고 단지 계속해서 살아보자는 마음 하나에만 순순히 이끌리고 싶어 온 것이다. 아름다운 것도 싫고 추한 것도 싫고 끝없이 펼쳐지는 자연이나 고도로 발달한 인간의 산물들에 감탄하는 것도 싫어서 온 것이다. 나는 그저 그늘이 아닌 밝은 곳에서 더이상 화내지 말고 분노에 차 있지 말자고 사십 도의 햇빛 아래 서서 다짐했다. - P82

삶이 기다리는 일로 이루어져 있다면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삶이 경험하는 일로 이루어져 있다면 경험하는 수밖에 없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무언가를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일을 살아 있는 동안에 하는 수밖에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인간은 나이가 들고 육체가 쇠락하고 병들다가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 P90

슬픔은 사랑을 먹고 자란다. 슬픔은 충만한 사랑을 알아본다. 사랑을 먹고 자란 슬픔은 이내 충만해진다.


나는 슬픔이 없는 사람을 경멸한다. 아니, 슬픔을 모르는사람을 경멸한다. 슬픔을 모르는 사람은 매사에 무례하다. 슬픔을 모르기 때문이다. 슬픔을 모르는 사람은 매사에 자신이 옳다. 슬픔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슬픔은 중요하다. 슬픔이 있는 사람은 무례하지않다. 슬픔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틀림을 가늠해본다.  - P91

픔이 있는 사람은 모든 말을 내뱉지 않는다. 슬픔이 있는 사람은 적절히 타인과 거리를 둔다. 슬픔이 있는 사람은 타인을 해하지 않는다. 슬픔이 있는 사람은 매사에 조심한다. 슬픔이 있는 사람은 공감할 줄 안다. 그래서 슬픔이 있는 사람은 조용히 타인을 위로한다.


사람들은 각자의 슬픔을 품고 살아간다. 슬픔은 없애버려야 할 것이 아니다. 상처는 낫고 슬픔은 머문다. 우리는 우리에게 머물기로 한 슬픔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슬픔은 삶을 신중하게 한다. 그것이 슬픔의 미덕이다.


여기서 슬픔은 고통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고통은 비탄이며 비탄은 많은 것을 파괴한다. 자기 자신을 파괴하고 타인을 파괴하고 세상을 파괴한다. 그러므로 고통에서 벗어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자기 자신을 위해. 타인을위해, 그리고 세상을 위해. - P92

고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마음의 고통을 여전히 품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은신처로 몸을 피하는 것만으로 절망을 치유하는 사람은 없다. 방안에서는 아무것도 잊히지 않는다.
-올리비에 르모

나는 내가 또다시 나를 죽이고 싶어할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많고 시끄럽고 맛있는 것이 잔뜩 있고 날씨가 따뜻한 곳으로, 하지만 여행답게 그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곳으로 가고 싶었다. 나를 압도하는 아름다움은 지금의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있었다.


나는 자연에 완벽히 압도되어 다시 자신이 사는 세상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들의 삶을 읽는 것은 전율 그 자체였다. 나는 여러 번 반복해 - P100

책을 읽으면서 완전히 자연 속으로 들어가 사라져버리는상상을 수없이 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처럼 용기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낯선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 내가 나를 죽이고 싶어하는 마음과 끝을 보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그럴 수있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여행이라는 것을 하면서 내가 가진 나에 대한 살의를 끝장내고 싶었다. - P101

그것은 그저 살아 있고 싶은 마음이었다. 잠에서 깨어나면 죽고 싶다 생각하지 않고 살고 싶은 마음이었다. 살아있다는 생각도 그만 하고 싶었다. 그냥 살고 싶었다. 삶과 죽음에 대해 잠시만이라도 생각을 멈추고 그냥 살아있고 싶었다.


살아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일이 얼마나 피로한 일인지 공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말없이 그를 안아주고 싶다. - P101

닌빈의 도로는 산을 따라 굽이지고, 가로수가 많고, 여느 도시의 도로처럼 차나 오토바이가 넘치지 않는다. 달리다보면 가끔씩 차 한 대 오토바이 한 대가 옆을 스쳐갈뿐이다. 넓은 평원에는 농을 쓴 사람들이 허리를 숙이고농사를 짓고 있다. 가끔 무리를 진 소들이 꼬리를 흔들며평원을 거닐고 있기도 하다. 어느 곳은 사람이 갈 수 있어 보이고 어느 곳은 사람이 갈 수 없어 보인다. 나는 그 모든 땅의 넓고 광활함이 복받쳐왔다. 아름다운 산들과 평원이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트레킹하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 나는 그들이 몹시 멋져 보였다. - P124

기차에 앉아 바깥 풍경을 보고 있자니 "기억의 끈이 끊어진 것 같았다. 전에 없이 맑고 개운한 기분이었다. 몸이 너무 피곤한 나머지 금방이라도 곯아떨어질 것 같았는데 잠 같은 건 전혀 오지 않았다. 기차에서도 나는 계속해서 폭우가 쏟아지는 닌빈의 도로를 오토바이로 달리고 있었다. 고통은 어째서 저절로 물러나지 않을까. 이렇게 애를 써야만 저만치 물러서서 나로부터 작별을 고하는 걸까. 힘든 일들이 끝나면 그걸로 끝이면 안 되는 거야? 꼭 그것과 내가 분리될 수 있도록 어떤 수고로움이든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인간은 참 이상하기도 하다. 이렇게 복잡하게 지어진 생물이라니. 나는 불평을 하면서도 닌빈에 두고 온 나의 과거에 또 찔끔 눈물이 났다.


닌빈은 아름다웠고, 아름다운 닌빈은 나의 고통을 흔쾌히 받아주었다.


여기에 두고 가면 돼.


넓은 땅이 내게 말해주었다. - P127

불행이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는 불행이대단히 악질적이라 생각한다. 하나의 사건에서 파생된 불행이 사건의 종결과 함께 끝이 난다면 인간은 좀더 단순하고 가뿐하게 이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은 반드시 남는다. 불행을 낳은 사건이 끝난 뒤에도 불행은 남아서 마음을 갉아먹으며 자라난다. 불행은 마음속에 담겨 있는 언어를 배우고 감정을 배우고 바깥 세상을 익힌다. 성숙한 불행은 인간에게 말을 걸고 감정을 조종하고 바깥 세상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속삭인다. 성숙한 불행은 환청이자 환각이 되어 나와 함께 살아간다. - P135

불행은 내게 말한다. 저기엔 아무것도 없어. 불행은 눈앞의 것을 지워버린다. 불행은 하늘을 지우고 구름을 지우고 산을 지우고 나무를 지우고 강을 지우고 철 따라 피어나는 꽃들을 지운다. 인생이 아무 대가 없이 인간에게 주는 행복을 보지 못하게 한다. 그런 뒤 자신만을 보라고불행은 속삭인다.


불행은 어두운 밤길과 같다. 가로등도 없고 앞을 보아도 뒤를 보아도 어둠뿐인 밤길과 같다. 어디선가 풀섶을 뒤척이는 소리가 나고 금방이라도 뛰쳐나와 나를 덮칠 것만 같아도 보이는 것은 없다. 누군가 쫓아오는 것만 같아뒤를 돌아보며 속도를 내 걷다가 넘어지길 반복한다. 그래도 계속해서 가야 한다. 아주 작은 희망이라는 것이 계속해서 어두운 밤길을 걸어가라고 다그친다. 언제 날이 밝을지도 알려주지 않고 언제 두려움에서 벗어날지도 알려주지 않고 희망은 일단 계속해서 가라고만 한다.


불행한 사람에게 희망은 없는 것만 못하다. 그러나 불행이 그저 있는 것처럼 희망도 그저 있다. 그저 있으면서 사람에게 이래라저래라 한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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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철학 강의를 몇년간 들었고 선생님이 쓰는 지성과 슬픔의 언어를 동경하는 독자입니다. 2018년도에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고서야 출간된 선생님의 아도르노 Theodor W. Adorno 강의록 『상처로 숨 쉬는 법을한번씩 꺼내봅니다. 가슴이 답답할 땐 표지만 봐도 숨이 쉬어지는 것 같거든요. 755면에 달하는 본문을 상처가 허파가되리란 기대로 뒤적이곤 합니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에서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핼러윈 축제를 즐기러 갔던 젊은이들이 골목길에 갇혔고 158명 - P174

이 길에서 선 채로 압사를 당했습니다. 10만명 넘는 인파가몰리는데도 사전대책이 없었고 위험을 알리는 최초 신고로부터 네시간이 지나서야 경찰이 출동했습니다. 살릴 수 있었는데, 이번에도 살리지 못했습니다. 정부는 재빠르게 ‘참사‘를 ‘사고‘로 ‘희생자‘를 ‘사망자‘로 쓰도록 지시했고 국가에도기간을 지정했습니다. 지역축제와공연이 취소되었죠.
이 엄청난 참사 앞에 책임지고 물러나는 행정관료 하나없이 예술가의 노동만 간단히 중단시켜버리는 저들의 뻔뻔함과 비겁함에 분통이 터졌습니다. 선생님이 살아 계셨다면 뭐라고 말했을까요. 『상처로 숨 쉬는 법을 보는데 아도르노의 말이 다가왔죠. "문명이 지닌 상처이며 비사회적인감성인 슬픔은 인간을 목적의 왕국에 종속시키는 일이 온전하게 성공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때문에 세상은 다른 어떤 것보다 슬픔이나 애도를 온갖 방식으로 치장하고 변질시켜 사회적인 형식으로 만든다."(650~51면)
‘애도의 계엄령‘이 내려진 여기의 현실을 훤히 보는 듯, 선생님은 아도르노의 철학을 가져와서 슬픔에 대한 관리 - P175

통제에 대해 설명해주셨습니다. 사회는 무슨 방식을 쓰든지 슬픔을 관리하려 한다, 사람들이 마음껏 슬퍼하도록 허용하면 대단히 위험할 수 있기에 일정한 처리방식을 따라가도록 한다고요. "사람들이 깊은 슬픔에 빠지게 되면 하나의 인식에 도달하는데, 그 대상은 결코 슬픔의 감상이아니라 바로 사회적 삶의 조건들에 눈뜨기 쉽다는 것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밑줄을 그었습니다. 슬픔은 위험한 감정입니다. 가족을 뺏긴 유가족들, 일자리를 뺏긴 노동자들, 온갖 사회적 참사 피해자의 글을 통해 세상을 공부한 저도슬픔이 얼마나 급진적인 감정인지 목격했습니다. 사람이 소중한 것을 잃고 나면 세상이 보이는 사람이 되죠. 슬픔의 렌즈로만 보이는 은폐된 진실을 보았기에 권력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로 거듭나죠. - P176

코로나19로 중단되었던 야외 록페스티벌에 갔습니다. 그곳에는 몸을 부딪치며 슬램을 즐기고 음악에 몸을 흔드는 젊은이들이 다수를 차지하는데, 저 같은 중년의 록마니아도 있고 목발을 짚거나 휠체어를 탄 장애인도 옵니다. 스탠딩석 가장자리에서 젊은 부부가 아이와 손잡고 신나게 몸을 흔들기도 했습니다. 만에 하나 예기치 못한 참사가 일어났다면 어땠을까요. 왜 몸도 성치 않은데 저길 가서, 왜 아줌마가 저길 가서, 왜 애를 데리고 저길 가서, 같은 비난이 쏟아지고도 남았겠지요.
선생님이 누차 강조하던 객관적 권력, 즉 ‘우리를 지배하는 모든 것, 생의 기쁨을 빼앗아가려는 모든 것, 우리의 자유를 박탈하려는 모든 것‘의 정체가 이번 참사로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슬픔이 통제되고 놀이가 비난받는 이 일그러진 세상에서 시험과 노동에만 복속된 삶을, 우린 왜 누구를 위하여 평생 살아가야 하는 걸까요.
선생님이 강의 때 자주 던진 물음이고, 책에도 남긴 질문을 붙들어봅니다. 도대체 상처 없는 삶이란 무엇일까, 그리 - P178

고 사람답게 사는 사회란 무엇일까. 그건 이렇게 억울하게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고 선생님은 세월호참사 때 말씀하셨어요. 결국 내가 사람답게 사는 사회에서 살고자 한다면, 억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당한 고통을 외면하지 말라는 뜻으로 저는 이해했어요. 사람들은여전히 묻습니다. 왜 타인의 아픔에 관심을 가져야 하느냐고요. 그럴 때 선생님에게 배운 아도르노의 말을 전합니다.
"나의 상처로부터 해방이 되려면 이 사회적인 상처를 볼줄 알아야 된다." - P179

김진영 선생님 식으로 말하자면, "나의 삶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타자들의 것이기도 하다. 나의 몸은 타자들의 그것과 분리될 수도 격리될 수도 없는 것이다. 나의 몸은 관계들 속에서 비로소 내 것이기도 하다." 이문장을 아픔은 너무도 혼자의 일인데 투병은 다행히 모두의 일이다, 나는 이렇게 이해했어.
저번에 봤을 때 그대가 그랬지. 읽었던 책들이 발병 이후 새롭게 보인다고. 형광펜 파티 하고 있다고. 나도 그러네.「아침의 피아노에서 좋았던 부분은 여전히 좋은데, 아픈 몸들을 떠올리면 구체적으로 좋아. J에겐 활자의 약효가 가장 빠르다는 것을 아니까 특히 그래. 이 책이 주는 온화함, 다정함, 부드러움 같은 조용한 감정들이 그대의 등을 어루만져줄 거야. 그리고J를 쓰게 하겠지. 아마도 형광펜이 두툼하게 입혀질 이 문장 때문에,
"글쓰기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그건 타자를 위한것이라고 나는 말했다. 병중의 기록들도 마찬가지다. 이기 - P183

록들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떠나도 남겨질 이들을 위한 것이다. 나만을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약해진다. 타자를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확실해진다." 
글쓰기의 본질은 나눔이라는 것을 이보다 더 아름답게표현할 수 있을까. 몸이 신음하고 마음 어딘가 작게 부서지는 느낌을 기록하면서 그대는 나날이 확실해지겠지. - P184

한사람에 대한 기록, 그 엄중한 과제 앞에서 도움받은 책이 있어요. 아니 에르노Annie Ernaux의 『한 여자』인데요, 딸이엄마의 삶과 죽음을 기록한 자전적 소설이죠. "어머니는 농번기인지 아닌지, 병이 난 형제자매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서 들쭉날쭉 학교를 다녔다"는 문장은 익숙해서 놀라웠죠. ‘프랑스 사람인 아니 에르노의 엄마도?‘ 배움의 의자를 빼앗기고 희생의 자리에 배정되는 여자의 삶은 시대나 국경과 무관했습니다. - P187

딸은 어머니를 이렇게 기억해요. 정신적으로 고양되려는 의지, 권위, 낭만, 야심, 분노, 의심, 딸에 대한 지지와 질투등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의 활화산을 품고 있는 사람으로. 때로는 ‘좋은‘ 어머니를 때로는 ‘나쁜‘ 어머니를 봅니다. "나는 어머니의 폭력, 애정 과잉, 꾸지람을 성격의 개인적인 특색으로 보지 않고 어머니의 개인사, 사회적 신분과 연결해 보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이 좋았어요. 엄마를 ‘내가 태어난 세계와의 마지막 연결고리‘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손쉬운 선악 이분법으로 갈라서 보지 않고, 그가 처한 사회구조, 모순과 욕망의 지도를 읽어내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감정의실핏줄까지 포착한 글들은 사모곡을 넘어선 인간 탐구서가 되거든요. - P188

고양이에게 면목 없는 인간 세상입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날개도 없이 허공에 매달려 일하겠지요. 그들은 존버거John Berger가 이주노동자를 빗댄 표현을 빌리자면 불사의 존재, "끊임없이 대체 가능하므로 죽음이란 없는 존재들"입니다. 죽어도 죽지 않는 이들이 흘린 ‘페인트 눈물‘로 우린 깨끗한 아파트, 쾌적한 도시에 삽니다. 노동자의 죽음과 인간 불평등을 자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새가 있을 자리에 사람이 있어도 어쩔 수 없다고 여기면서. - P205

남들 앞에서 자기 서사를 낭독하기까지 오랜 시간, 생각의 뒤척임, 단어 선택의 어려움, 자기 부정과 인정의 반복을 견뎌냈다. 나란 존재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랑을 하는가. 얼마나 썼다 지우고 또 써 내려갔을까. 자기를 알아가는노력은 답도 없고 돈도 안 되고 힘에 부친다. 그러니까 사림들이 종교인이나 전문가에게 사는 법을 문의하겠지. 그런데 소라도 다른 학인도 글쓰기를 통해 자기 힘으로 그 어려운작업을 해냈다. 어마어마한 능력이라고 생각해. - P215

누대로 억압된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에 대해 영감과용기를 준 책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입니다. 저자 리베카 솔닛은 국내에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창비 2015)로 유명하죠. 페미니스트로 알려졌습니다만 그는 일찍이 환경과 인권운동에 투신한 활동가이기도 해요.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는 미투운동, 기후변화, 국가폭력 등 시대의 위기를 폭넓게 다루고 있는데요, 이들 주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를 바꾸는 일, 이름을 바꾸는 일, 새 이름이나 용어나 표현을 지어내고 퍼뜨리는 일은 세상을 바꾸려 할때 핵심적인 작업이다. (...) 백인 아이들은 그냥 ‘어울려 노 - P236

는 것이지만 흑인 아이들은 ‘어슬렁거리고‘ ‘슬금슬금 돌아다니는‘ 것이 된다. 언어는 지우고, 왜곡하고, 잘못된 방향을 가리키고, 거짓 미끼를 던지거나 주의를 흘뜨릴 수 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이 이야기를 바꾸는 것이라니. 해볼 만하지 않나요 우린 이야기를 공기처럼 마시며 삽니다. 그중엔질 나쁜 공기처럼 몸에 해로운 이야기가 있지요.]가 성장기 내내 남성적이라고 일컬어지는 덕목들, 가령 자신감 있어라, 활동적이어야 한다, 같은 것들의 강요에 거부감이 있었지만 또 아빠가 없어서 남자답지 못하다는 말은 듣기 싫었기에 혼란스러웠다고 했던 것처럼요.
솔닛은 세상의 이야기를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말하는사람‘이 되라고 조언합니다. "여러분의 이야기는 세상을 둘러싼 그 물의 일부가 되어, 기존의 이야기들을 훼손하거나 강화할" 거라고요. 그러니까 부당함에 침묵하지 말자, 반박하고 저항하는 말들이 물처럼 넘치도록 하자는 뜻이겠죠. - P237

불행의 스펙트럼은 넓습니다. 허기, 권태, 불안 같은 일시적 상태부터 가난, 불화, 폭력, 질병, 낙인 같은 구조적 고통까지. 우리가 이를 드러냈을 때 사람이 다가오기도 달아나기도 하죠. 그럼에도 저는 불행은 말하는 것이 좋다는 입장입니다. 내 불행을 나부터 숨기고 부정한다면 상황을 남에게 이해받기도 그리고 바꾸어내기도 어려워요. 또 불행을털어놓아보아야 ‘불행을 말해도 되는 안전한 관계‘로 자기주변의 인간관계를 구축할 수 있겠죠.
약한 존재들이 기대어 사는 작품을 만드는 일본의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를 악무는 것이 아니라 금방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서는 나약함이 필요하다." 찾아 나서는 행위 자체가 나약함이 아니라 강인함에서 나온다는 말입니다. 동의합니다. 사는 동안 불행 - P284

상태가 해소되는 순간은 짧고, 지치고 불행한 채로 사는 시기가 더 길죠.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불행의 해결사가 아니라 불행을 말해도 좋을 관계, 일단 밥이나 먹자고할 사람이 아닐까요. - P285

글쓰기는 문장 쓰기가 아니라 관점 만들기를 배우는 일입니다. 비문 없이 정확한 문장들, 문학적인 수사를 곁들인서사가 아무리 매끄럽게 전개되어도, 혐오와 차별 표현이있는 글이라면 공적인 글로서 가치를 잃죠. 저는 이 부분을분명히 짚었습니다. 교재로 읽은 책에도 나왔듯이 장애인, 여성, 이주민 같은 소수자의 경우 개인이 잘못해도 집단이 매도당한다, 그래서 사회적 약자다, 글 쓸 땐 혹시 편견과 통념을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기 생각을 의심하고 책 내용을 내 일상으로 가져와 검토하자고요. - P289

‘덜‘ 다치게 하는 방도로 예방주사 같은 이야기를 고민하시다니요. 몇줄 문장으로는 아이들이 겪을 별의별 문제에 대비하기 어려울 거예요 잘게 쪼개서 삶의 면면을 지켜야죠. 『말을 부수는 말목차에 나오는 대로 시간, 퀴어, 나이 듦, 동물, 몸, 지방, 아름다움 등 19가지 화두를 가지고 아이들과 하나씩 이야기를풀어가면 어떨까요.
자신을 해치는 말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자신을 지키는 말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면 흥미롭지 않을까요. 아이들과함께 ‘부수고 싶은 말들의 목록‘을 만들어봐도 재밌겠고요. 티끌같이 흩뿌려져 있지만 태산 같은 힘을 행사하는 권력의 언어를 저항의 언어로 바꾸어낼 아이들과, 아이들 곁에선 선생님이 있는 교실, 다정하고 살벌한 말들의 풍경을 그려봅니다.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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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없는 세상, 기적 같은 생존의 서사 틈에 예원은 지나가듯 털어놓았습니다. 작가가 되고 싶은 꿈도 있었다고요. 자신이 겪은 일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가족과 다른 생존자들에게 글로 알리고 싶은데, 그러기에는 물질적 토대나 재능이 부족했다고 썼어요. 아, 그 대목을 읽으면서 저는 혼잣말로 중얼거렸어요. 재능 없지 않은데... 많은데... 자신의상처와 취약함을 직시하는 글은 아무나 쓰지 못하거든요. 그 힘과 용기가 예원은 뛰어났습니다. 그래서 예원의 글은가부장제의 권력구조를 고발하는 생존자의 탄원서이자 청년노동 잔혹사가 담긴 르포로 읽혔습니다. - P154

나약하고 구멍 많은 인간이라서 잠시라도 성찰을 멈추고 휩쓸려 살다보면 짓는지도 모르고 죄를 짓습니다.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게 그만큼 힘든 일이기에 영화에서도 시를 쓴 사람이 미자밖에 없는 것이겠죠.『시 각본집』을 동준이의 죽음과 이선호씨의 죽음을 포개가며 읽고 났더니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시처럼 다가옵니다.
"우리는 남의 비극이나 고통이 아주 멀리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토록 가까이 있다!"고 이창동 감독은 말합니다. 이 통렬한 진실을 이미 삶으로 받아내고 살 저미는 고통을 겪어낸 선생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 옆의 동료나 친구에게 같이 마음 나누어줄 수 있는사람으로 늙어가길 기원해요."
덕분에 시심 부푸는 봄밤이 깊어갑니다. - P163

세월호가 일어난 그해 2014년 1월 20일에 현장실습생 동준이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곧 기일이 돌아옵니다. 유가족의 달력은 눈물이 마를 새가 없네요. 생일이 지나면 생일만큼 힘든 기일이 오고 기일이 지나면 기일만큼 괴로운 명절이오고... 내 이웃이 슬픔의 둑이 터지고 무너져내리는데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일상을 나누는 일상을 고민합니다. - P168

"애들은 좋은 곳에 갔으니까 이제 마음에 묻어라." "교통사고다 생각해라." "시간도 흘렀는데, 옛날처럼 같이 산에도 다니고 만나서 술도 한잔 하자." "아이를 잃은 건 슬프지만 너는 그만큼 보상을 받지 않았느냐?" 세월호 유가족이들었던 말들입니다. 위로하고 싶은 상대의 선의는 의심하지 않으나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유가족을 배려하는 행동도 배려가 되진 않았죠. "유가족입니다" 하는 순간에 모든 사람들이 아무것도 안 시킨답니다. 커피 한잔, 물 한잔 마시려고 해도 다들 "앉아 계세요, 제 - P169

가 타드릴게요" 하고 어딜 가도 유가족 자리는 따로 마련되고요. 지나친 배려는 때론 배제가 되죠. 유가족이 술을 시켜도 되나, 화장은 해도 되나, 여행 간다고 손가락질하면 어쩌나 지레 주눅이 듭니다.
세월호 5주기에 맞춰 발간된 유가족 육성 기록집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에 나온 몇가지 에피소드입니다. 유가족은 자식 잃은 비통함에다가 거친 말들과 고정된 시선까지 감내해야 했죠. 슬픔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을 용서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슬픔의 일부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유가족들은 그래서 모임을 꺼립니다. 광화문 농성장에 모여 있어도 말은 돌죠. 자신들이 울기만 한다고 사람들이 뭐라고 하길래 웃었더니 다시 웃었다고 뭐라고들 하니까, 유가족들은 서로 이렇게 충고합니다. "간간이 울어"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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