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물론이지. 내일 날이 맑으면 말이야." 램지 부인이말했다. "하지만 종달새가 지저귈 때 일어나야 할걸." 그녀가덧붙였다.
원정을 가는 것이 확정되기라도 한 듯, 어머니의 말은 아들에게 특별한 기쁨을 안겨 주었다. 어두운 밤을 보내고 한나절배를 타고 가기만 하면, 몇 년이나 지난 듯 오랜 시간 바라 마지않았던 그 놀라운 곳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섯 살 나이에도 그 아이에겐 이런저런 감정들을 서로 떼어 놓지 않고가까이 있는 현실에, 기쁘거나 슬픈 미래에 대한 예감을 덧씌우는 대단한 인간들의 속성이 있었고, 그런 사람들에겐 매우어린 시절에도 감정 변화가 일어날 때마다 어둠이나 광휘가발산되는 순간을 응결시켜 마음에 새겨 두는 능력이 있으므로, 마룻바닥에 앉아 아미 앤드 네이비 잡화점 상품 목록에 - P9

서 냉장고 사진을 오려 내고 있던 제임스 램지는 어머니의 말을 들은 순간 더없는 기쁨을 그 사진에 쏟아부었다. 그 사진에환희의 테두리가 둘러졌다. 손수레며 잔디 깎는 기계, 포플러가 바스락거리는 소리, 비 내리기 전에 하얗게 변하는 이파리들, 까악까악 울어 대는 떼까마귀, 부딪히는 빗자루, 사각거리는 드레스, 이 모든 것들이 마음속에 또렷이 채색되고 각인되어 그 아이는 이미 내밀한 암호와 은밀한 언어를 만들어 냈다.
그렇지만 인간의 나약함이 드러난 광경에 절로 찌푸려지는넓은 이마와 한없이 정직하고 티 없이 맑은 푸른 눈 때문에 그아이는 타협할 줄 모르는 엄격함의 화신처럼 보였다. 그래서그의 어머니는 냉장고 사진을 가위로 말끔하게 오려 내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붉은 옷에 담비 가운을 두르고 판사석에 앉아 재판하거나 국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 엄중하고 중대한 기획을 지휘하는 그의 모습을 상상했다. - P10

어느 모로 보아도 자신보다 만 배나 더 나은(제임스의 생각에는) 아내를 조롱하면서 즐거워하고, 또 자신의 정확한 판단력에 은밀히 자부심을 느끼면서 신랄하게 웃을 때 말이다. 램지 씨의 말은 옳았다. 그의 말은 언제나 옳았다. 그는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어느 누구(특히 자기 자식들)의 기쁨이나 편의를 봐주려고 사실을 임의대로 고치지도 않았고 불쾌한 말을 바꾸지도 않았다. 자기갈빗대에서 생겨난 자식들은 모름지기 삶이란 힘겨운 것이고, 사실이란 타협할 수 없는 것이며, 가장 빛나던 우리의 희망이 꺼지고, 부서지기 쉬운 우리의 배가 어둠 속에서 버둥거리며 전설적인 땅으로 나아가는 여정에는 (이 부분에서 램지 씨는 등을 똑바로 펴고, 작고 푸른 눈을 가늘게 뜨며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무엇보다도 용기와 진실, 인내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알아야 한다. - P11

존재의 결, 그 속으로 뒤얽혀 들어가는 분쟁과 분열, 이견,
편견 들. 아, 그런 것들이 이렇게나 일찍부터 싹트다니. 램지부인은 탄식했다. 그녀의 아이들은 너무나 비판적이었다. 그들은 너무나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형제자매들과 함께 가지 않으려 했던 제임스의 손을 잡고 식당에서 나왔다. 맹세코, 그러지 않아도 사람들은 이미 서로 다른데, 그런데도 차이를 더 만들어내려는 것은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같았다. 지금 존재하는 차이들만으로도 차고 넘칠 지경이라고 그녀는 응접실 창가에 서서 생각했다. 이 순간 그녀가 떠올린 것은 부자들과 빈자들, 지체가 높은 자들과 낮은 자들의 차이였다. 혈통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그녀는 내키지는 않더라도 혈통이 좋은 사람들을 존중하기는 했다. 자신의 핏줄에도약간 전설적이기는 하지만 대단히 고귀한 이탈리아 가문의피가 흐르고 있지 않았던가. 그 가문의 딸들은 19세기 영국의여러 응접실들에 흩어져서 매력적인 혀짤배기 소리를 냈고매우 자유분방하게 행동했다. 그녀의 재치와 몸가짐,  - P17

별안간 그는 깨달았다. 바로 이것이었다. 그녀는 자기가 지금까지 본사람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것이다.
별빛이 빛나는 눈, 베일을 두른 머리칼에 꽂힌 시클라멘과야생 제비꽃…………. 이 무슨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부인은 적어도 쉰 살은 되었다. 자식이 여덟 명이나 있었다. 꽃들이 만발한 들판을 걸으면서 움튼 봉오리들과 갓 태어난 새끼 양들을 가슴에 품고, 별빛이 총총한 눈, 머리카락 사이로 지나는 바람………. 그는 그녀의 가방을 들었다.
"잘 있어요, 엘시." 그녀가 말했다. 그들은 거리를 따라 올라갔다. 그녀가 양산을 똑바로 들고 마치 모퉁이를 돌면 누군가를 만나리라고 기대하는 듯 걷는 동안, 찰스 탠슬리는 난생처음으로 유난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하수구에서 땅을 파던 남자가 일을 멈추고 부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팔을 늘어뜨린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찰스탠슬리는 특별한 자부심을 느꼈다. 바람과 시클라멘과 제비꽃이 느껴졌다. 난생처음 아름다운 여자와 걷고 있었으니까. 그는 그녀의 가방을 꼭 잡았다. - P25

그러고 보면 9월이었고, 그것도 중순이었으며, 저녁 6시가 지난 시각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평소에 다니던 대로 천천히 정원을지났고 테니스 코트를 지나 억새밭을 지나서는 울창한 산울타리가 갈라진 틈새로 갔다. 활활 타오르는 석탄 화로처럼 붉은 트리토마가 호위하고 서 있는 산울타리 틈새로 만의 푸른 물결은 전보다 더 파랗게 보였다.
그들은 어떤 필요에 이끌려 저녁마다 늘 그곳으로 산책을나갔다. 마치만의 물결이 마른 땅 위에서는 정체되어 있던 생각들을 띄워서 출항시키고, 그들의 몸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같았다. 처음에는 고동치는 푸른색이 만에 넘쳐흘렀고 그와더불어 마음이 확장되고 몸이유영했지만, 다음 순간에는 주름진 파도 위에 내려앉은 가시처럼 뾰족한 어둠으로 억제되고 냉각되었다. 그러고 나면 거대한 검은 바위 뒤에서 거의 저녁마다 하얀 물이 분수처럼 간헐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 P35

 배나무 옆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는지금, 이 두 남자에 대한 인상들이 강렬하게 밀려왔고, 그녀의생각은 너무 빨라서 연필로 받아 적기 힘든 목소리를 따르듯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자신의 목소리였다. 그것은부정할 수 없고, 지속적이며, 상반되는 것들을 누가 일러 주지 않아도 줄줄이 늘어놓았으며, 그래서 배나무 껍질의 갈라진 틈과 옹이들마저 그 자리에서 돌이킬 수 없이 영원히 마음에 새겨졌다. 당신은 위대해요. 그녀는 속으로 그에게 말했다.
하지만 램지 씨는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는 마음이 좁고, 이기적이고, 허영심이 강하고, 자기중심적이에요. 그는 응석받이고, 폭군이에요. 그는 램지 부인을 죽도록 지치게 해요. 하지만 그에게는 당신에게 없는 것이 있어요 - P42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면서, 살아 있다는 것에 대체로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공감과 위스키, 자신의 고통스러운 모험담을 들어 줄 사람을 원한다 한들, 누가 그를 비난할 것인가? 누가 그를 탓할 것인가?
그 영웅이 갑옷을 벗고 창가에 멈춰 서서 자기 아내와 아들을쳐다본다면, 어느 누가 속으로 기뻐하지 않을 것인가? 처음에는 아득히 멀리 있지만 조금씩 가까워지고 마침내 입술과 책,
머리가 눈앞에 선명히 드러날 때까지, 자신의 치열한 고독과세월의 폐허와 별들의 소멸과 동떨어져 있지만 여전히 사랑스러운 그 모습을 바라본다면. 그리고 마침내 파이프를 주머니에 넣고 자신의 당당한 머리를 그녀 앞에 숙이면서 세계의 아름다움에 경의를 표한다면, 누가 그를 비난할 것인가? - P61

다가하지만 그의 아들은 그를 미워했다. 아버지가 가까이왔기에, 걸음을 멈추고 내려다보았기에, 그를 미워했다. 자신과 어머니를 방해했기에 그를 미워했다. 그의 의기양양하고숭고한 몸짓 때문에, 그의 당당한 머리 때문에, 그의 가혹함과 자기중심적인 면모 때문에 (그가 서서 자기에게 관심을 기울이도록 명령했기에) 그를 미워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버지가자신의 들떠 있는 감정을 울리는 소리를 미워했다. 그 소리는그들 주위에서 진동하면서 그와 어머니의 더없이 소박하고평온한 관계를 어지럽혔다. 제임스는 책을 뚫어지게 바라봄으로써 아버지를 다른 곳으로 걸어가게 하고 싶었다. 손가락으로 글자를 가리키면서 어머니의 관심을 되돌리고 싶었다.
아버지가 걸음을 멈춘 순간 어머니의 관심이 흩어지는 것을느끼고 화가 났던 것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어떻게 해도 램지 - P62

씨는 꼼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거기에 서서 공감을 요구하고 있었다.
아들을 팔로 감싸고 느긋하게 앉아 있던 램지 부인은 마음을 다잡고 반쯤 몸을 돌려 애써 일어나며, 빗발치는 에너지를,
한 줄기 물보라를 공중에 곧바로 쏟아 내는 것 같았다. 동시에 자신의 온 에너지가 응집되어 환히 타오르는 힘이 솟아난듯(그녀는 다시 양말을 집어 들고 조용히 앉아 있었지만) 생기 있고 활기차게 보였다. 그리고 이 감미로운 풍요로움에, 이 생명의 샘과 물보라에, 남성의 치명적인 불모성이 메마르고 적나라한 놋쇠 부리처럼 파고들었다. 그는 공감을 원했다. 그는 실패작이라고 말했다. 램지 부인은 바늘을 반짝이며 뜨개질을계속했다. 램지 씨는 그녀의 얼굴에서 조금도 눈을 떼지 않고자신이 실패작이라고 거듭 말했다. 그녀는 상대하지 않았다. - P63

그 즉시 램지 부인은 꽃잎 하나가 다른 꽃잎 속에 포개지듯온몸이 접히는 것 같았다. 기진맥진하여 무너져 내리면서 그녀는 극도의 피로감에 절묘하게 몸을 내맡겼고, 그림 형제의동화책28)을 따라 손가락을 움직일 힘밖에 남지 않았다. 그동안 창조를 이루어냈다는 황홀감이, 완전히 늘어났다가 이내부드럽게 멈춘 스프링의 진동처럼 그녀의 몸속에서 고동치며지나갔다.
그가 걸어가는 동안, 이진동이 울릴 때마다 그녀와 남편을 감싸고 그 두 사람에게 위안을 주는 것 같았다. 함께 울리는 높고 낮은 서로 다른 두 음조가 결합하면서 서로에게 주는 위안. - P65

자기들의 기호에 대해 품는 사랑이나 시인들이 자신들의 시구에 품는 사랑처럼 온세상에 퍼져 나가 인간을 향상하는 한부분이 될 수 있는 사랑이었다. 진정 그러했다. 그 부인이 왜그렇게 기쁨을 주었는지, 그녀가 아들에게 동화를 읽어 주는광경이 왜 과학 문제를 풀었을 때와 똑같은 희열을 자신에게주었는지를 뱅크스 씨가 말할 수 있었더라면, 그래서 그가 차분히 숙고해 보고 자신이 식물 소화기관에 관해서 확고한 사실을 입증해 보였을 때처럼 야만성을 순화하고 혼돈의 지배를 억제한 듯이 느꼈다고 말할 수 있었더라면, 세계는 틀림없이 그 기쁨을 공유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환희(달리 어떤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인가?) 때문에릴리 브리스코는 자기가 말하려던 것을 송두리째 잊어버렸다. 램지 부인에 대한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는 이 환희, 이 말 없는 응시 옆에서 무색해졌고, 그 응시에 대해 그녀는 깊이 고마워했다. 그녀에게 이 숭고한 힘.
이 절묘한 선물은 그 무엇보다도 큰 위안을 주었고, 삶의 당혹스러움을 덜어 주었으며, 기적처럼 삶의 무거운 짐을 들어 주었다. 그 응시가 지속되는 한 그것을 방해하지 않으리라. 바닥을 가로질러 수평으로 내려앉은 한 줄기 햇살을 끊고 싶지 않듯이,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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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그 누구의 사유지도 아닙니다.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거기에는 국경도 전쟁도 없습니다. 우리는 두려움없이 자유롭게 걸어 들어가, 자기 길을 스스로 발견합시다. 그럴 때에, 영국 문학은 이번 전쟁에서 살아남아 구렁을 건널 것입니다. 우리 같은 평민이요 아웃사이더들이그 나라를 우리 자신의 나라로 만든다면, 책을 읽고 쓰는법을, 어떻게 보존하고 어떻게 창조할지를 스스로 배울때 말입니다.

버지니아 울프


<전기라는 예술이라고 우리는 말하지만, 대번에 되묻게된다. <전기가 예술이야?> 이런 질문은 아마도 어리석고, 전기 작가들이 우리에게 제공했던 강렬한 즐거움에 비추어 보면 분명 편협한 것일 터이다. 하지만 그런 질문이 그렇게 자주 나오는 것을 보면 그 뒤에 무엇인가 있음이 틀림없다. 새로운 전기가 펼쳐질 때마다 그것이 페이지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는데, 그 그림자 안에는 무엇인가 치명적인 것이 들어있는 듯하다. 수많은 전기가 쓰이지만, 살아남는 것은 그토록 적으니 말이다! - P165

여기서 우리는 해결하기 힘든 또 다른 문제에 접근하게된다. 즉, 어떤 책을 가리켜 예술 작품이라 하는 것은 무슨뜻인가? 아무튼 전기와 소설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으니, 양자는 재료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전기는친지들과 사실들의 도움을 빌려 만들어지고, 소설은 예술가가 스스로 좋게 여겨 따르는 제약 말고는 아무런 제약 없이만들어진다. 그것은 중요한 차이이며, 지난날의 전기 작가들은 그것을 아주 잔혹한 차이로 여겼다고 생각할 만한 충분한근거가 있다. - P167

리턴 스트레이치는 운이 좋은 시기에 작가로 출발했다.
1918년 그가 첫 작품을 내놓았을 때, 전기는 여러 가지 새로운 자유가 허용되는 매력적인 장르가 되어 있었다. 그와 같은 작가, 즉 처음에는 시나 희곡을 쓰고 싶었지만 자신의 창조력에 회의하던 작가에게 전기는 유망한 대안으로 보였다.
왜냐하면 고인에 대해 진실을 말하는 것이 마침내 가능해졌으며, 빅토리아 시대의 고명한 인물들 중에는 덧씌워진 밀랍가면으로 심하게 변형된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들을 재창조하여 실제의 모습대로 보여 주는 것은 시인이나 소설가에 맞먹는 재능을 필요로 하되, 그에게 부족하다고 생각되던창의적 재능은 요구하지 않는 소임이었다. - P169

그렇지만 그런 결합은 실제로 불가능함이 드러났다. 사실과 허구는 뒤섞이기를 거부했다. 엘리자베스는 빅토리아 여왕이 리얼했다는 의미로는 결코 리얼해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클레오파트라나 폴스타프‘가 허구라는 의미로 허구가되지도 않았다. 그 이유는 알려진 사실이 너무 적어서 창작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알려진 사실들이 있었으므로창작에 제동이 걸린다는 데 있었다. 여왕은 그리하여 사실과허구 사이의 애매한 세계로 들어가, 육체가 있는 것도 없는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어딘가 빈틈이 있고 꾸며 내려 애쓴 티가 나며, 비극이지만 갈등이 없고 인물들은 서로 스쳐 가지만 정말로 만나지는 않는 것 같다. - P173

그리고이 모든 다양성으로부터, 혼란이 아니라 더욱 풍부한 통일성을 이끌어 낼 것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전에 알려지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알려졌으므로, 이제 피할 수 없이 다가오는질문은 이런 것이다. 위인들의 생애만이 기록되어야 하는가?
하나의 삶을 살고 그 삶의 기록을 남긴 누구라도 전기의 주인공이 될 만하지 않은가? 성공뿐 아니라 실패도 유명한 사람들뿐 아니라 이름 없는 사람들도?" 위대함이란 무엇인가?
사소함이란 무엇인가? 전기 작가는 공덕에 대한 표준 자체를바꾸고, 우리가 찬미할 만한 새로운 영웅들을 제시해야 한다. - P177

예술가의 상상력은 최고조에 이르면 사실에서 소멸할 수 있는 것을 불살라 버리고, 영속적인 것을재료로 삼는다. 하지만 전기 작가는 소멸할 수 있는 것을 받아들여 그것을 재료 삼아 자기 작품을 짜나가야 한다. 많은것이 소멸하고, 살아남는 것은 얼마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기술자이지 예술가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의 작품은 예술 작품이 아니라 그 중간에 끼인 무엇이다.
하지만 그 낮은 수준에서도, 전기 작가의 작품은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 우리는 그가 우리를 위해 해주는일에 대해 아무리 감사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는 전적으로상상력의 강렬한 세계에만 살 수는 없으니 말이다. 상상력이란 금방 지쳐 버리므로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한 기능이다. - P178

우리에게 참된 사실들을 말해 줌으로써, 자질구레한 것들을 큰 것들로부터 걸러냄으로써, 전체적인 윤곽을 알아볼수 있도록 전체의 형태를 잡아줌으로써, 전기 작가는 어떤시인이나 소설가보다 더 상상력을 자극한다. 물론 최고의 시인이나 소설가는 제외하고 말이지만, 우리에게 리얼리티를느끼게 하는 고도의 긴장을 제공할 수 있는 시인이나 소설가는 얼마 되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거의 어떤 전기 작가라도 사실들을 존중하기만 한다면 그저 잡학 지식 이상의 것을 우리에게 줄 수 있다. 그는 우리에게 창조적인 사실, 풍요로운 사실, 암시하고 배태하는 사실을 제공할 수 있다. 이 점에 대해서도 증거가 있다. 전기를 읽고 나면 얼마나 자주 어떤 장면이나 인물이 마음속 깊이 살아남아, 우리로 하여금시나 소설을 읽을 때 마치 전에 알았던 무엇을 기억하기나하는 듯 소스라치며 알아보게 하는가 말이다. - P179

또 다른 예를 들어 봅시다. 기차간의 맞은편 벽면에 이런말이 쓰여 있습니다. 창밖으로 몸을 내밀지 마시오.> 처음읽으면 유용한 의미, 표면적 의미가 전달되지만, 그 말을 바라보며 앉아 있다 보면 얼마 안 가서 말들이 뒤섞이고 달라져서 이렇게 중얼거리게 되지요. <창문이라, 그래, 창문, 쓸쓸한 요정 나라에서, 위험한 바다의 거품을 향해 열린 마법의 창문………. 그러고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미처 깨닫기도 전에, 우리는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맙니다. 이국의밀밭에서 눈물 흘리며 서 있는 룻을 보려고요. 그 대가는20파운드 벌금이거나 아니면 부러진 목이겠지요. - P183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유용성을 거부하는지 보아 왔습니다. 말의 본질은 어느 한 가지 진술이아니라 천 가지 가능성을 표현하는 데 있습니다. 말은 그 점을 너무나 자주 보여 왔으므로, 우리도 그 사실을 직시하기시작했지요. 즉 또 다른 언어를 발명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유용한 진술을 표현하는 데 최적화된 언어, 기호 언어 말입니다. 우리 모두가 빚지고 있는 이 언어의 살아 있는 대가,
그 이름 모를 작가 - 남자인지 여자인지 육신을 떠난 영혼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 P184

말들은 서로서로 속해 있습니다. 물론, 위대한 작가만이 <담홍색>이라는말이 <무량무변의 바다>에 속한다는 것을 알겠지만요. 새로운 말을 오래된 말과 결합시키는 것은 문장의 구성에 치명적입니다. 새로운 말을 제대로 사용하려면 새로운 언어를 발명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물론 새로운 언어의 발명도 가능하기는 하겠지만, 지금 우리 관심사는 그게 아닙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현재 있는 그대로의 영어를 가지고 할 수 있는일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오래된 말들이 살아남아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고 진실을 말하게 하려면, 어떻게 그것들을새로운 질서에 결합시킬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요 하지만다. 말이란 별개의 독립체가 아니라 다른 말들의 일부라는명백하고도 신비로운 사실 때문입니다.  - P189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세상이 줄 수 있는어떤 영광의 관(冠)이라도 받을 만합니다. 만일 글쓰기의 기술을 가르칠 수 있고 배울 수 있다면 어떨지 생각해 보세요모든 책, 모든 신문이 진실을 말하고 아름다움을 창조하지않겠습니까. 하지만 말 다루기를 가르치는 데는 방해가 장애물이 나타날 것입니다. 지금 이순간에도 적어도 백 명의교수들이 과거의 문학에 관해 강의를 하고, 천 명의 비평가들이 현재의 문학에 대한 서평을 쓰고, 수백 명의 젊은 남녀가 영문학 시험에서 최고 점수를 얻고 있겠지만, 그렇다고해서 우리가 강의도 비평도 시험도 없던 4백 년 전보다 더잘 쓰거나 더 잘 읽습니까?  - P190

 말들은 사전이 아니라 마음속에 살기 때문입니다. 사전을 다시 보십시오. 그 안에는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보다 더 장려한 희곡이 나이팅게일에게 바치는 송가보다 더 아름다운 시가, 『오만과 편견이나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아마추어의 습작으로나 보이게 만들 만한 소설이담겨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옳은 단어를 골라내어 옳은 순서로 늘어놓기만 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은 말들이 사전이 아니라 마음속에 살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에서어떻게 사느냐고요? 다양하게, 기발하게 살지요. 사람들이살듯이 꼭 그렇게요. 이리저리 쏘다니고, 사랑에 빠지고, 짝짓기를 하면서요. 사실 우리보다는 예식과 관습에 훨씬 덜얽매이지요. 왕실에나 어울릴 말들이 평민의 말들과 짝이 되니까요. 영어 단어가 프랑스어나 독일어 단어와 결혼하기도합니다. 그럴 마음만 있다면 인도 말, 흑인의 말과도요. 실로우리의 친애하는 모국어인 영어는 과거를 모르면 모를수록그 평판이 한층 더 높아지겠지요. 그녀는 정말이지 종잡을수 없는 떠돌이 아가씨였으니까요. - P191

보이고 그들리그것을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어떤 사람에게 어떤 것을,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한 세대에는 알 수 없는 것이다가, 다음 세대에는 명약관화한 것이 됩니다. 그들이 살아남는 것은 이 복잡성 덕분입니다. 아마도 오늘날 우리에게 위대한 시인이나 소설가,
비평가가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가 말에게 자유를 주려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말들을 한 가지 의미, 유용한 의미, 기차를 제시간에 탈 수 있게 해주는 의미, 시험에합격하게 해주는 의미로만 못박습니다. 그런데 말은 그렇게못 박히면 날개를 접고 죽어 버립니다. 끝으로, 이것이 가장중요한데, 말이 마음 편히 살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 프라이버시가 필요합니다. 의심할 바 없이 그들은 우리가 그들을 사용하기 전에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의 무의식이 그들의 프라이버시이고, 우리의어둠이 그들의 빛이지요.  - P193

글을 쓰기 시작하는 젊은 남녀가 일반적으로 듣게 되는그럴싸하지만 전혀 실천할 수 없는 조언은 자신이 쓰고자 하는 것을 가능한 한 짧고 분명하게, 그리고 마음속에 있는 것을 정확히 말하려는 것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하지 말고 쓰라는 것이다. 아무도 그런 경우에 정말로 필요한 한 가지, 즉<반드시 네 후원자를 현명하게 고르라>는 말은 해주지 않는다. 그것이야말로 문제의 핵심인데 말이다. 왜냐하면 책이란항상 누군가 읽을 사람을 위해 쓰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후원자는 단순히 돈을 대는 사람일 뿐 아니라 아주 미묘하고 음험한 방식으로 어떤 글이 쓰이도록 선동하고 고취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가 바람직한 인간이라야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 P195

그러니 모든 작가는 글을 쓰면서 어떤 대중이든 의식하지않을 수 없다고 할 때, 눈 높은 작가라면 대중은 그가 쓰고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양순한 무리라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이런 이론은 그럴싸하게 들릴지도「모르지만, 커다란 위험을 안고 있다. 왜냐하면 그런 경우 작가는 자기 대중을 의식하되 대중보다 우월한 위치에 서게 되는데, 이는 불편하고 불운한 조합이니, 새뮤얼 버틀러, 조지메러디스 헨리 제임스 등이 입증하는 바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대중을 경멸했고, 대중을 원했고, 대중을 얻는 데 실패했고, 자신의 실패를 대중의 탓으로 돌렸으며, 갈수록 더해가는 까다로움과 모호함과 허세로 대중과 담을 쌓았다. 후원자를 자신과 대등한 벗으로 여기는 작가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 P197

 그는 단 한 송이일지라도 진짜 크로커스이기만 하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우리에게 느끼게 해야 한다.
그는 가르침을 받아 더 고상해지거나 더 나은 인간이 되기를바라는 것이 아니라고, 칼라일을 괴롭혀 악을 쓰게 하고 테니슨에게는 목가나 쓰게 하고 러스킨의 정신이 이상해지게만들어 미안하다고, 이제 자기주장을 그치고 작가들이 요구하는 대로 할 준비가 되었다고, 자신은 모성애보다 더한 끈으로 작가들과 결부되어 있다고, 작가와 자신은 한쪽이 흥하면 다른 쪽도 흥하고 한쪽이 죽으면 다른 쪽도 죽을 수밖에없는 쌍둥이와 같다고, 문학의 운명은 양자의 행복한 동맹에달려 있다고 -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입증하는바, 처음에 말했던 대로, 후원자의 선택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느끼게 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옳은 선택을 하나? 어떻게 글을 잘 쓰나? 그것이 문제이다. - P201

작가란 책상 앞에 앉아 무엇인가를 골똘히 응시하는 자입니다. 이 비유를 잠시 들여다보면 우리 길을 곧장 나아가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는 종이 한 장을 앞에 놓고 앉아자신에게 보이는 것을 모사하려고 애쓰는 예술가입니다. 그의 대상, 즉 모델은 무엇일까요? 화가의 모델처럼 ㅡ 꽃이담긴 화병이라든가, 나체라든가, 한 접시의 사과와 양파라든가 - 단순하지는 않지요. 아주 간단한 이야기라 해도 한인물, 한 시대를 넘어서기 마련입니다. 인물들은 젊었을 때시작하여 늙어 가며, 장면에서 장면으로, 장소에서 장소로돌아다닙니다. 작가는 움직이며 변화하는 모델, 단일한 대상이 아니라 무수한 대상을 지켜보아야 합니다. 작가가 바라보는 그 모든 것을 단 두 마디로 요약하자면, <인간의 삶> - P203

아마도 그 때문에 19세기가작가들은 유형이 아니라 개인인 인물들을 그렇게 많이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계층들 사이를 나누는 울타리를 보지 못하고 울타리 안에 사는 인간 존재들만을 보았기 때문일까요? 그래서 그는 표면을 뚫고 들어가 다면적인 인물들-페크스니프 베키 샤프 우드하우스 씨처럼‘ - 세월이 가고삶이 달라지면서 변화하는 인물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일까요? 이제 우리에게는 그 울타리들이 보입니다. 우리는 그작가들 각자가 인간의 삶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다룰 수 있었다는 것을 압니다. 새커리의 모든 인물은 중상류층 사람들이고 디킨스의 모든 인물은 하층 또는 중류층 출신입니다. 이제는 그것이 보입니다. 하지만 작가 자신은 자기가 한 유형, 작가자신이 태어난 계층에 의해 형성된 유형, 자신에게 가장 친숙한 유형만 다루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 무의식은 그에게 크나큰 이점입니다. - P211

작가도 그렇습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볼 수 있는한 보고, 느낄 수 있는 한 느끼고, 마음의 책 속에 무수한 메모를 해가며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면, 작가는 - 가능하다면 - 무의식 상태가 됩니다. 실상 그의 정신의 위쪽이조는 동안 정신의 아래쪽은 전속력으로 일하는 것이지요. 그러다 잠시 후 베일이 걷히면, 거기 그것이 그가 글로 쓰고싶은 것이 단순해지고 틀이 잡힌 상태로 나타납니다. <고요함 가운데 회상되는 감정>에 관해서는 워즈워스의 유명한말이 있습니다만, 이 고요함이라는 말을 작가가 창작에 들어가기 전에 무의식 상태가 될 필요가 있다는 의미라고 해석한다면 시인의 말을 곡해하는 것이 될까요. - P212

이 작가들이 저마다 다 다르기는 하지만, 그리고 영향이라는 문제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얕기는 하지만, 그들의 교육과업적 사이에는 분명 연관이 있다고 결론지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 교육받은 소수의 계층이 그렇게 훌륭한 문학을 많이생산한 반면, 교육받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이 훌륭한 문학을거의 생산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저 우연일 수는 없습니다 - P216

노동자 계급이 영국 문학에 기여한 모든 것을 덜어 낸다 해도 문학은 거의 타격을 입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교육받은 계층이 기여한 모든 것을 덜어낸다면, 영국문학은 거의 남아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교육은 작가의일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정황이 이처럼 명백하고 보면, 지금껏 작가의 교육이 별로강조되지 않았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입니다. 아마도 그것은작가가 되기 위한 교육이 다른 교육보다 훨씬 덜 구체적이기때문일 것입니다. 읽기, 듣기, 대화하기, 여행, 여가 등 여러가지가 뒤섞여 있습니다. 삶과 책이 적당한 비율로 뒤섞여 흡수되어야 합니다. 서재에서 홀로 자란 소년은 책벌레가 되고,
들판에서 홀로 자란 소년은 흙벌레가 됩니다.  - P217

작가라는 나비를 키우기 위해서는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에서 3~4년 동안 일광욕을 하게 해야 한다고나 할까요. 어떤 식으로든 거기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거기서 그는 작가가 되기 위한 기술을 배웁니다. 그것도 분명 배워야 하는 기술이니까요. 아무래도 이상하게 들리나요? 아무도 화가가 그림 그리기를 배워야한다거나, 음악가, 건축가가 각기 자기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말은 이상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작가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글쓰기라는 기술도 적어도 다른 기술만큼은 어려우니까요. 아마 그 교육이 별로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에 무시하는 모양이지만,  - P217

우리가 실제로 기우는탑 위에 있다고 상상하고 우리 느낌을 기록해 봅시다. 우리의 느낌이 그 작가들의 시와 희곡과 소설에서 관찰되는 경향들과 일치하는지 보기로 합시다. 탑이 기운다고 느끼자마자우리는 우리가 탑 위에 있음을 날카롭게 의식하게 됩니다.
그 작가들도 날카롭게 탑을 의식했고, 자신이 중류층 출신임을, 그리고 값비싼 교육을 받았음을 의식했지요. 탑꼭대기로 올라가보면, 얼마나 기이한 조망인지요. 보이는 풍경이완전히 뒤집히지는 않았지만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습니다.
그것도 사탑 작가들의 특징입니다. 즉 그들은 어떤 계층도똑바로 마주 보지 못하고, 아래서 쳐다보거나 위에서 내려다보거나 옆에서 비껴 봅니다.  - P221

물론우리는 - 우리는 평민이요 아웃사이더가 아닙니까? - 숱한 꽃을 짓밟고 유서 깊은 잔디밭을 망가뜨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한때 도보 여행가로 유명했던 빅토리아 시대의 한 고명한 인사가 보행자들에게 준 조언을 명심하기로 합시다.
<침입 금지라고 쓰인 팻말을 보거든 즉시 침입하라>고 말입니다.
즉시 침입합시다. 문학은 그 누구의 사유지도 아닙니다.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거기에는 국경도 전쟁도 없습니다.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걸어 들어가, 자기 길을 스스로 발견합시다. 그럴 때 비로소 영국 문학은 이번 전쟁에서 살아남아구렁을 건널 것입니다. 우리 같은 평민이요 아웃사이더들이그 나라를 우리 자신의 나라로 만들 때, 책을 읽고 쓰는 법을,
어떻게 보존하고 어떻게 창조할지를 스스로 배울 때 말입니다. - P242

누구나 글을 쓰고 책을 낼 수 있다는 생각은 이 선집의 제1권에 소개한 여성 노동자 조합의 추억Memories of aWorking Women‘s Guild」(1930) 말미에서도 시사된 바 있지만, BBC 방송에서 진행한 남편 레너드 울프와의 대담 너무 많은 책이 쓰이고 또 나오는 게 아닐까?Are Too ManyBooks Written and Published?」(1927)에서도 확인된다. <교육받은 남자>인 레너드는 아무나 책을 쓴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반면,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는 울프는 왜 그러면 안 되는가? 하고 반문하며 문학은 공유지임을 강변하는 것이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그래서 오히려 제도권으로부터자유로운 시각을 누리는 당당함이 있다. 이쯤 되고 보면 그녀는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녀는 자신이 열어 갈 길에 대해 이렇게 말한바 있다. - P271

나는 <유명해지거나 <위대>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계속 탐험하고, 변화하고, 마음과 눈을 열고, 규정당하거나 정형화되기를 거부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풀어 주는 것, 아무것에도 방해받지 않고자기 세계의 크기를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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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882년 영국 런던에서 당대 저명한 학자이자 문필가였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과 어머니 줄리아 프린셉 덕워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남자형제들처럼 공식 대학 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서재에서 많은 책을 탐독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화가인 언니 버네사와 함께 블룸즈버리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케임브리지 대학교출신의 지식인, 예술가들과 교류하기 시작했다.
버지니아가 주축이 되어 활동한 이 모임은 훗날<블룸즈버리 그룹>으로 알려진다. 
1912년 그룹의 일원이던 레너드 울프와 결혼했다. 
1915년에 첫 소설 「출항」을 발표했고, 이후 모더니즘문학의 대표 걸작으로 평가받는 댈러웨이 부인(1925), 등대로(1927) 등의 소설들과 훗날 페미니즘의 필독서가 되다시피 한 자기만의방(1929) 등을 발표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시골집으로 피신하지만, 심해지는 정신 질환으로 고통받던 버지니아는 이른 아침 강가로 나가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서재에서 보낸 시간

먼저 한 가지 선입견부터 없애기로 하자.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곧 지식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낡은 등식 말이다. 그 둘 사이에는 아무 연관도 없다. 박학자란 죽치고 앉아책에 몰두해 있는 외로운 열정가로, 그는 책들을 뒤져 가며자신이 추구하는 특정한 진리의 알갱이를 찾아 헤맨다. 만일그가 독서의 열정에 사로잡힌다면, 그의 이득은 줄어들고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갈 것이다. 반면 독서가는 처음부터 지식에 대한 욕망을 자제한다. 만일 지식이 남는다면 잘된 일이지만, 지식을 추구하여 체계적인 독서를 하고 전문가나 권위자가 되려 하는 것은 순수하고 사심 없는 독서에 대한 좀 - P11

커튼 사이로 내다볼 때 낯설게 다가오던 안개 속의 나무들을 우리는 평생 기억할 것이다. 아이들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해 이상한 예감을 갖는 법이니까. 하지만 위의 목록에서 보는 바와 같은, 좀 더 나중의독서는 전혀 다르다. 아마도 처음으로 모든 제약이 풀어져읽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읽을 수 있고, 아무 도서관이나 드나들 수 있으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와 같은 처지인 친구들이 있다. 며칠이고 연이어 우리는 책만 읽는다. 극도의흥분과 고양의 시기이다. 도처에서 새로운 영웅들이 나타나는 것만 같다. 우리 마음속에는 자신이 정말로 이 일을 하고있다는 일종의 경이감이 드는 한편, 일찍이 세상에 살았던가장 위대한 인간들과 이렇게 친숙해졌다는 것을 으스대고싶다는 우스꽝스러운 자만심이 일기도 한다. 이 시기는 지식욕이 가장 열렬하고 또 가장 자신만만할 때이며, 위대한 작가들이 인생의 가치에 대해 우리와 견해를 같이하는 것만 같다는 뿌듯함에 한층 더 열렬히 매진하게 된다.  - P15

 우리의 의식에서 이 모든 것을 걸러 낸다면 우리는 정말이지 가난해질 것이다. 그리고 자연이나 역사에 관한 책들이 있다. 꿀벌이나 말벌에 관한 책, 산업과 금광과 여제(女帝)와 외교책략에 관한 책, 강과 야만인,
노동조합과 의회 제정법에 관한 책을, 우리는 노상 읽고 -아쉽게도! - 노상 잊어버린다. 이렇듯 서점이 문학과는 아무 관련 없어 보이는 온갖 욕망을 만족시킨다고 말하는 것이서점에는 별 칭찬이 못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에는진행 중인 문학이 있음을 기억해 두자. 이 새로운 책들에서우리 아이들은 우리를 영원히 기억되게 해줄 만한 한두 작품을 골라낼 것이다. 여기에 우리가 알아볼 수만 있다면 -우리 시대에 대해 다른 시대들에게 말해 줄 시나 소설, 역사책이 있으니, 우리에게 셰익스피어 시대의 군중이 그의 작품속에서만 살아 움직이듯이 우리 또한 다음 세대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진정 그러하리라고 우리는 믿는다.  - P19

요즘은 누구나 책을 쓸 수 있다는 말도 자주들려온다. 아마도 사실이겠지만, 그래도 그처럼 쏟아져 나오는말의 홍수와 거품, 이 무절제하고 속되고 하찮은 수다의 한복판에는, 그중 소질 있는 저자만 만나면 장구히 이어질 형태로 표현될 수 있을 어떤 위대한 정념의 열기가 있으리라는것을 의심할 수 없다. 이 격랑을 지켜보는 것, 우리 시대의사상 및 비전과 드잡이하는 것, 그중 우리에게 소용될 것을포착하는 것, 무가치하게 생각되는 것을 없애 버리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눌할망정 최선을 다해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는 이들에게 관대해야 함을 깨닫는 것이 우리의 기쁨이되어야 한다. 어떤 시대의 문학도 우리 시대 문학처럼 그렇게 비권위적이고, 고전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우며, 제멋대로경의를 표하고 변덕스러운 실험을 하지 않았다. 예의 주시하는 이들에게도 우리 시대의 시인들과 소설가들의 작품에는이렇다 할 유파의 흔적이나 목표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비관론은 피할 수 없다.  - P20

예술의 본질에 관한 이론을 제시할 생각은 전혀 없다.
예술에 대해 우리는 원래 아는 이상으로는 결코 더 알지 못할 수도 있고, 경험이 쌓여 가며 알게 되는 것이라고는 단지우리의 모든 즐거움 중에 위대한 예술가들로부터 얻는 즐거움이 단연 최상의 것이라는 사실뿐이다. 그 이상은 알수없다. 하지만 아무 이론도 제시하지 않더라도, 그런 작품들에서는 우리와 동시대에 만들어진 책들에서 발견하기를 기대할 수 없는 특질들을 발견할 수 있다. 세월 그 자체에는 나름대로의 연금술이 있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이것만은 사실이다. 고전들은 아무리 자주 읽어도 그 장점이 전혀 줄어들지않으며 무의미한 말잔치가 되지도 않는다. 그것들은 완벽하게 완성되어 있다. 그 주위에는 어떤 연상의 구름도 무관한 - P22

생각들을 쑤석이지 않는다. 우리 자신의 가장 중요한 경험의순간에 그렇듯이 우리의 모든 기능이 그 순간에 집중되며,
그들의 손으로부터 우리 위에 일종의 축성과도 같은 것이 내려온다. 우리는 그것을 더욱 선명히 느끼고 더욱 깊이 이해하며 삶에 돌린다. - P23

책은 어떻게 읽을 것인가?

우선 나는 이 제목 끝에 붙은 물음표를 강조하고 싶다. 설령 내가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대답은 나에게만 적용될 뿐 당신에게는 아닐 것이다. 정말이지 독서에관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조언은 아무 조언도 따르지 말고 자신의 본능에 따라, 자신의 이성을사용하여, 자신의 결론에 이르라는 것뿐이다. 만일 우리 사이에 이 점이 양해된다면, 나는 좀 더 자유롭게 몇 가지 생각과 제안을 여러분과 나눠 보겠다. 다시 말해, 그런 생각이나제안이 당신의 독립성을 구속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립성이야말로 독자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질이니 말이다.  - P25

책에는 분류가 있으니 - 소설, 전기, 시, 하는 식으로 -그 분류에 따라 각각의 책이 우리에게 마땅히 주어야 할 바를 얻으면 된다고 말하기는 간단하다. 하지만 책에서 그것이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을 구하는 사람은 드물다. 흔히 우리는 막연하고 산만한 마음가짐으로 책을 접하며, 소설이 진짜이기를, 시가 거짓이기를, 전기가 아부하기를, 역사가 자신의 편견을 강화해 주기를 요구한다. 책을 읽을 때 그 모든 선입견을 추방해 버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시작이될 것이다. 읽고 있는 책의 저자에게 그가 해야 할 말을 불러주지 말고, 그가 되려고 해보라. 그의 공저자, 공범이 되는것이다. 처음부터 물러앉아 뒷짐을 지고 비판부터 한다면,
읽고 있는 책으로부터 가능한 최대의 가치를 얻어 낼 수 없다. 하지만 가능한 한 넓게 마음을 연다면, 첫 대목부터 문장들이 미묘하게 꼬이고 휘어지는 데서 거의 알아채지 못할 만큼 세미한 신호와 기미 들이 당신을 다른 어떤 사람과도 다른 한 인간의 면전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이 일에 숙달되면저자가 독자에게 주는, 또는 주고자 하는 훨씬 더 확실한 것을 곧 발견하게 될 것이다. - P27

우선 소설을 읽는 법부터 살펴보자. 어떤 소설이 서른두챕터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 모든 챕터는 무엇인가를 건물처럼 지어 올리고 다스리려는 시도이다. 하지만 말[言]은 벽돌 - P27

처럼 손에 잡히지 않으므로 책을 읽는 것은 건물을 보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리고 복잡한 과정이 된다. 아마도 소설가가하고 있는 일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읽는 것이 아니라 직접 써보는 것이다. 말의 위험과 어려움을 가지고 직접실험을 해보는 것이다. 당신에게 뚜렷한 인상을 남긴 어떤사건을 되새겨 보라. 길모퉁이에서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장면을 지나쳤다면, 그때 나무가 흔들렸다든가, 전깃불이 춤추었다든가, 대화의 어조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어딘가 비극적이었다든가 하는 식으로 전체적인 장면을 그 순간에 담긴인상 전체를 말이다.
하지만 사건을 말로 재구성하려 해보면, 그것이 수천 가지 모순된 인상들로 부서지고 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떤 것은 억제해야 하고 어떤 것은 강조해야 하며, 그과정에서 당신은 아마도 그때의 감정 전체를 그려 낼 수는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P28

하지만 디포에게는 대자연과 모험이 전부였던 반면, 제인 오스틴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녀의 세계는 응접실과, 사람들의 이야기와 이야기가 거울처럼 세세히 비추어 주는 그들의 성격으로이루어진다. 그렇듯 응접실과 그 거울상에 익숙해진 다음 하디에게로 돌아서면, 또 판이 바뀐다. 우리 주위에는 황무지가 펼쳐져 있고, 머리 위에서는 별들이 반짝인다. 마음의 이면이 드러난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의 밝은 면이 아니라고독 속에서 고개를 쳐드는 어두운 면 말이다. 우리의 관계는 사람들이 아니라 대자연과 운명을 향한 것이 된다. 하지만 이 모든 세계는 서로 다를지라도 제각기 일관성을 지니고있다. 각 세계를 만든 사람은 자기 관점의 법칙을 면밀히 준수하므로, 아무리 큰 긴장을 조성하더라도 동일한 작품 안에상이한 두 종류의 리얼리티를 도입함으로써 ㅡ 이것은 이류소설가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인데 독자를 혼란케 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한 대가(大家)에서 다른 대가로, 말하자면 제인 오스틴에서 하디로, 피콕에서 트롤랩‘으로 ‘
서 메러디스로 넘어가는 것은 전혀 다른 세계로의 이동이며뿌리 뽑혀 내동댕이쳐지는 일이다.  - P29

 그러니 그저 친구 집에서 친구 집으로, 정원에서 정원으로 이 집에서 저 집으로 다니다 보면 우리는 영국 문학의한 끝에서 다른 끝으로 넘어가게 되며, 그러다 다시 여기 현재로 돌아오게 된다. 그렇게 지나간 모든 순간들과 지금 이순간을 구별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이런 것이 우리가 전기와 서한집을 읽는 방식 중 하나이다. 우리는 그런 책들을 통해 과거의 많은 창문들을 밝힐 수도 있고, 고인이 된 유명인사들의 익히 알려진 버릇을 지켜볼 수도 있고, 때로는 아주가까이서 그들의 비밀을 상상으로나마 폭로해 볼 수도 있으며, 그들이 쓴 희곡이나 시 한 편을 꺼내 와 그것이 저자의면전에서는 어떻게 읽히는지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또 다른 문제들을 야기한다. 한 권의 책은 저자의 생애에서얼마나 영향을 받는가 하는 것이 그 질문이다. - P33

하지만 우리는 그런 책들을 또 다른 목표를 가지고 읽을수도 있다. 문학을 조명하기 위해서라거나 유명 인사들과 친숙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창조력을 새롭게 연마하기 위해서 말이다. 서가 오른쪽에 열린 창문이 있지 않은가? 책을 읽다 말고 창밖을 내다보는 것은 얼마나 상쾌한가! 그럴 때 눈에 들어오는 광경 - 망아지들이 들판을 뛰어돌아다니고, 여자는 우물가에서 물동이를 채우고, 당나귀는고개를 뒤로 빼고 구슬피 울어 젖히는 - 은 독서와는 무관한 그 무의식적이고 끊임없는 움직임이 얼마나 자극적인가.
어떤 서재에서든 거기 꽂혀 있는 대부분의 책들은 남자들,
여자들, 당나귀들의 삶에서 이처럼 스쳐 가는 순간들의 기록일 뿐이다. 모든 문학은 세월이 가면 폐지 더미가 되어 버리며, 그 사라진 순간들과 잊힌 삶의 기록들은 더듬거리는 힘없는 말투 속에 스러진다. 하지만 이 폐지를 읽는 데 맛들이게 되면 놀라지 않을 수 없고, 정말이지 내버려져 썩어 가는 인간 삶의 유물에 압도될 것이다. - P34

그들은 완전히 숙련되어 뜻대로
재단하는 예술가의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삶에 대해서조차 온전한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 그들은 아주근사할 수도 있었을 이야기를 망쳐 놓았다. 그들은 기껏해야사실들을 제공하는 데 그치거니와, 사실이란 허구의 아주 열등한 형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쪽짜리 진술과 추정을 끝장내고픈 마음이 든다. 인간 성격의 미세한 음영을 찾기를그치고, 더 추상적인 것을, 허구라는 더 순수한 진실을 즐기고 싶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세부를 제쳐 놓고 분위기를, 일반적이고 강렬한 분위기를 창조하며, 규칙적이고 일정한 박자를 찾는다. 그 자연스러운 표현이 시이다. 시를 읽을 때가된 것이다. 우리 자신이 거의 시를 쓸 수 있을 때야말로 시를읽을 때이다.

서풍이여, 그대 언제 불어오려는가?
가는 비 내려도 좋으리,
오 내 사랑 내 품에 있다면내 다시 침상에 있다면!

16세기 작자 미상의 시 - P36

 그럴 때 우리는 얼마나 심오한 깊이를 체험하는지! 얼마나 갑작스레 완전히 몰두하는지! 여기서는 잡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비상 속에는머물 데가 전혀 없다. 허구가 불러일으키는 환상은 차츰 퍼져 나간다. 그 효과는 준비된 것이다. 하지만 누가 이 넉 줄을 읽을 때 이것을 쓴 이가 누구냐고 묻거나, 존 던의 집이나시드니의 비서를 떠올리거나, 과거 여러 세대에 걸친 복잡한일과 연관시키려 하겠는가? 시인은 항상 우리와 동시대인이다. 우리 존재는 개인적 감정의 격렬한 충격 속에서 으레 그렇듯 잠시 집중되고 수축된다. 그러고 나서 감각은 우리의정신을 통해 좀 더 넓은 원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하며, 더 먼감각들에도 기별이 간다. 이 감각들이 소리 내어 토를 달기시작하고 우리는 반향과 반영 들을 깨닫는다. 시의 강렬함은광범한 감정을 포괄한다. 시인의 다양한 기술을 알아차리기위해, 우리는 몇 편의 시를 비교해 보기만 하면 된다. 다음과같은 시행들의 힘과 직접성을

나는 나무처럼 쓰러져 내 무덤을 찾으리
오직 내 슬퍼하는 것을 기억하며

프랜시스 보몬트, 존 플래처 <하녀의 비극> - P37

다음 시행들의 떨리는 요동이나

떨어지는 모래알이 분초를 헤아리는
모래시계에서처럼
세월이 우리를 닳아뜨려 무덤에 이르게 하는 것을
우리는 지켜본다.
쾌락의 시절은 흥청망청 탕진된 후 마침내
고향에 돌아와 슬픔으로 끝난다.
하지만 인생은 법석에 지쳐 모래알을 헤아린다.
한숨지으며 마침내 마지막 한 알을 떨구고
하여 안식 속에 비운을 마무리 짓는다. 

존 포드 <연인의 우수> - P38

다음 시행들의 명상적인 고요함과

젊었거나 늙었거나
우리 운명, 우리 존재의 심장이자 집은
무한과 함께 있다. 오직 거기에
희망, 죽지 않는 희망과 함께 있다.
노력, 그리고 기대, 그리고 욕망
그리고 아직도 되고자 하는 무엇

윌리엄 워즈워스 <서곡> - P38

그리고 다음 시행의 완전하고 소진될 수 없는 사랑스러움이나

움직이는 달이 하늘에 올라가
어디에도 머물지 않았네.
달은 부드럽게 올라가고
그 곁에는 별이 한두 개 

S. T 콜리지 <노수부의 노래> - P39

다음 시행들의 눈부신 환상과 비교해 보라.

그리하여 저 숲속을 쏘다니는 자는
걸음을 멈추지 않으리.
그럴 때 어느 언덕 아래 멀리
온 세상이 타오르는 가운데
솟아나는 여린 불길 하나가
그에게는 그늘 속
크로커스로 보이리.

에버니저 존스 <세계가 불탈 때> - P39

시인에게는 우리를 배우이자 관중으로 만드는 능력이, 마치 장갑에 손을 넣기라도 하듯 등장인물 속에 들어가 폴스타프가 되었다 리어왕이 되었다 하는 재주가, 단번에 압축하고확장하고 진술하는 재능이 있는 것이다.
그저 비교하기만 하면 된다고? - 이 말로 들통이 나버렸다. 독서란 실로 복잡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첫번째과정은 작품이 주는 인상들을 고도의 이해력으로 받아들이는 것인데, 이는 독서의 전반부일 뿐이다. 만일 우리가 책에서 온전한 즐거움을 얻고자 한다면, 이 절반은 다른 절반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 다양한 인상들에 대해 판단을 내리고 그 스쳐 가는 형태들로 단단하고 영속적인 것을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바로는 아니다. 독서의 먼지가 내려앉기를 기다리자. 갈등과 질문이 죽어 없어지기를 기다리자.
걷고, 말하고, 장미에서 죽은 꽃잎을 떼어 내고, 잠드는 거다.
그러면 갑자기 우리가 의도하지 않고도 - 자연은 그런 식으로 이행을 일으킨다  - P40

우리는 더 이상 작가의 친구가 아니라 그를 판단하는 자이다.
우리는 친구로서 아무리 다정해도 지나치지 않듯이, 판관으로서 아무리 엄격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들은 우리의 시간과공감을 낭비하게 했으니, 심판을 받아 마땅하지 않은가? 거짓 책, 날조된 책, 공기를 부패시키고 병들게 하는 책을 쓰는자들은 사회를 타락시키고 더럽히는 가장 불온한 적들이 아닌가? 그러니 우리의 판결에 엄격해지기로 하자. 모든 책을그 분야의 최고와 비교하기로 하자. 우리 마음속에는 우리가읽은 책의 형태들이 우리가 내린 판단에 의해 굳어진 채 매달려 있다. - P41

위해 책을 읽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저 그 자체로 좋아서 하는 일들, 그 자체가 목적인 즐거움들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독서야말로 그중 하나가 아닌가? 나는 때로 꿈꾸었다.
심판의 날이 밝아 와 위대한 정복자들과 법률가들과 정치가들이 보상을 받을 때, 그들이 왕관과 월계관과 영원히 썩지않을 대리석에 각인된 이름을 얻게 될 때, 하느님께서 우리가 책을 끼고 들어서는 것을 보시고는 베드로를 향해 부러움이 섞인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말이다. <저들에게는 상이 필요 없어. 여기서 그들에게 더 줄게없어. 저들은책 읽기를 사랑해 왔으니 말이야.> - P46

자신의 작품을 관습이 아니라 자신의 느낌에기초할 수 있다면, 플롯도 없어지고 희극도 비극도 전형적인스타일의 사랑 이야기도 파국도 없어져서, 단추 한 개도 본드가(街)의 양복쟁이들이 다는 방식으로는 달려 있지 않을것이다. 삶은 규칙적으로 배열된 일련의 마차 등이 아니라빛무리이며, 의식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우리를 둘러싸고있는 반투명한 외피外皮)이다. 이 다양한, 알려지지 않고 한정 지어지지 않은 정신을 설령 그것이 어떤 탈선이나 복잡성을 보인다 하더라도 가능한 한 외적이고 이질적인것이 섞이지 않게끔 전달하는 것이 소설가의 직무가 아니겠는가? 우리는 그저 용기와 성실성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의 고유한 재료는 우리가 관습적으로 믿어 온 것과 다소다르다는 점을 제시하는 바이다.
- P54

분명 그들은 우리보다 멀리, 우리가 가진 중대한 시각 장애없이 바라볼 것이다. 하지만 우리도 그들이 보지 못하는 원가를 보는 게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왜 이 암울함에 저항의목소리가 섞여 들겠는가? 이 저항의 목소리는 또 다른 오래된 문명의 목소리이니, 그것은 우리 안에 고통을 감내하며이해하기보다 즐기고 싸우는 본능을 함양해 온 듯하다. 스턴에서 메러디스에 이르기까지 영국 소설은 유머와 희극에서지상의 아름다움에서, 지성의 활동과 육체의 발랄함에서 우리가 누리는 천성적 기쁨을 증언해 준다. 하지만 영국 소설과 러시아 소설처럼 동떨어진 것들의 비교에서 얻어지는 어떤 추론도 그것이 우리에게 소설이라는 예술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 주고 그 지평선에는 한계가 없으며 허위와 가식외에는 아무것도 - 어떤 <방법>이나 제아무리 자유분방한실험도 금지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는 점을제외하면 다 부질없는 것이다. <소설에 걸맞은 재료 같은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소설에 적합한 재료이다.
모든 느낌이, 모든 생각이, 두뇌와 정신의 모든 특질이 동원될 수 있다. 어떤 지각도 그릇된 것이 아니다. - P60

시, 소설, 그리고 미래

대다수의 비평가들은 현재에 등을 돌리고 과거를 응시한다. 분명 현명한 일이겠지만, 요즘 글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하지 않는다. 그런 임무는 서평가라는 부류에게 - 서평가라는 직함 자체가 이들 자신이나 이들이 탐사하는 대상의덧없음을 시사하는 듯하다 ㅡ 넘겨 버린다. 하지만 때로는자문하게 된다. 비평가의 의무란 항상 과거라야만 할까? 그의 시선은 항상 등 뒤를 향해 고정되어야만 할까? 그도 때로는 돌아서서 앞을 보고, 무인도의 로빈슨 크루소처럼 눈 위에 손 그늘을 만들어 미래를 내다보며, 그 희미한 시야 가운데서 언젠가 우리가 도달할지도 모를 땅의 희미한 윤곽을 그려볼 수는 없는 걸까? - P101

지금껏 소설가를 피해 온 영향들, 즉 음악의힘, 시각적인 자극, 나무의 형태나 색채의 유희가 우리에게미치는 효과, 군중이 우리 안에 불러일으키는 감정, 어떤 장소 어떤 사람들로부터 불합리하게 오는 모호한 두려움과 증오 움직임의 환희, 포도주의 도취 같은 것들을 극으로 만들기에 이를 것이다. 모든 순간이 중심이며, 지금껏 표현되지않은 막대한 지각들이 마주치는 장소이다. 삶은 항상, 그리고 불가피하게,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보다 더 풍부하다.
지금까지 개략적으로 제시한 것을 하려고 시도하는 이에게 크나큰 용기가 필요하리라는 것을 확신하기 위해서는 그리 큰 예언의 재능이 필요치 않다. 산문은 아무나 시키는 대로 새로운 스텝을 배우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의 징조들을 아주 무시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발전에 대한 필요를감지할 수 있다. 오늘날 영국, 프랑스, 미국 등지에는 거추장스러운 예속에서 풀려나 작업하려는 작가들, 다시금 자신의힘을 중요한 것들 위에 온전히 풀어놓을 위치에 서기 위해태도를 재조정하려는 작가들이 있음이 확실하다.  - P121

서평 쓰기

런던에는 항상 사람들이 모여드는 쇼윈도가 몇 개 있다.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완성품이 아니라 헝겊을 대고 깁는낡아빠진 옷들이다. 사람들은 여자들이 작업하는 것을 구경한다. 거기 쇼윈도 안에 앉아서 그녀들은 좀먹은 바지 같은것에 보이지 않는 바늘땀을 심고 있다. 이 친숙한 광경은 이글의 삽화가 될 만하다. 우리 시인들, 극작가들, 소설가들은말하자면 그렇게 쇼윈도 안에 앉아서 서평가들의 호기심 어린 눈길을 받으며 일하는 것이다. 하지만 서평가들은 길거리의 무리처럼 말없이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 P123

이처럼 19세기의 위대한 시인과 위대한 소설가는 방식은다를지언정 모두가 서평가의 힘을 인정했으며, 그들 뒤에는민감하는 강인하든 다 같은 방식으로 ㅡ 물론 그 방식은 복잡하고 분석하기 어렵지만ㅡ 영향받았을 무수한 군소 시인과 소설가들이 있었으리라고 추정하는 것이 안전할 터이다.
테니슨과 디킨스는 둘 다 상처 입고 분노했으며,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데 대해 스스로 부끄럽게 여겼다. 서평가는 빈대요 그가 무는 것은 무시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물리면 역시 고통스럽다. 서평가의 독설은 허영심에도 명성에도 상처를 냈으며, 매출에도 물론 그랬다. 19세기 서평가는 무시무시한 곤충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는 저자의 감수성은 물론이고 대중의 취향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는 작가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었고, 대중을 설득하여 책을 사거나 안사게 만들 수도 있었다. - P127

적당히 빠져나가는 수밖에 없다. <나는 두 극단사이를 빠져나간다. 나는 서평의 대상이 된 책의 저자들에게말을 걸어 왜 내가 그들의 책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지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런 대화로부터 일반 독자도 약간의 정보를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는 정직한 고백이며, 그 정직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서평이 개인적 의견의 표현이 되었음을 보여 준다.
마감에 쫓기는 필자, 지면의 압박을 받는 필자, 그 옹색함가운데서 다양한 이해관계에 부응해야 하는 필자,  - P131

끝으로, 이 모든 문제중에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문제가 남는다. 즉, 서평가를 없애는 것이 문학에는 어떤 영향을미칠까 하는 것이다. 쇼윈도를 부숴 버리는 것이 저 손닿지않는 곳에 있는 여신의 건강에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는 이유들은 이미 시사된 바 있다. 작가는 공방의 어둠 속으로 물러날 것이고, 더 이상 수많은 평자들이 유리창에 코를 박고들여다보면서 한 땀 한땀마다 호기심 많은 군중에게 논평을하는 가운데 옥스퍼드가에서 바지를 깁는 어렵고 미묘한 임무를 계속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자의식은 줄어들고 평판은쪼그라들 것이다. 더는 바람이 들었다 빠졌다 하지 않으면서자기 일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더 좋은 글을 쓸수 있을 것이다.  - P140

서평은 자의식을 고조시키고 힘을 약화시키며, 쇼윈도와 거울은 사람을 가두고 주눅 들게 한다. 그대신 토론을 두려움 없고 사심 없는 토론을 도입함으로써작가는 폭과 깊이와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궁극적으로 대중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들이 좋아하는 작가라는 인물, 공작새와 원숭이의 잡종은 더이상 조롱 대상이 아니라 공방의 어둠 속에서 자기 일을 하는 이름 없는 장인, 존경받아 마땅한 장인이 될 것이다. 이전보다 덜 치졸하고 덜 개인적인 새로운 관계가 생겨나고 있다. 문학에 대한 새로운 관심, 새로운 경의가 따라올 수도 있다. 재정적 이익을 별도로 한다면, 그것은 어떤 빛을 가져올것인가, 비평적 안목을 갖춘 배고픈 대중은 공방의 어둠 속으로 어떤 순수한 햇빛을 가져올 것인가. - P142

현대 에세이

리스 씨의 지당하신 말씀대로, 에세이의 역사와 기원을- 그것이 소크라테스에게서 비롯되었는지, 아니면 페르시아 사람 시란네이에게서 비롯되었는지 - 깊이 파고드는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모든 살아 있는 것이 그렇듯이, 에세이도 과거보다는 현재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가계는 아주 넓게 퍼져 있어서, 그중 대표적인 몇사람은 세상에서 성공하여 위세를 떨치는 반면, 어떤 이들은플리트가 근처의 빈민가에서 불안정한 삶을 살기도 한다.
에세이는 형태도 다양하다. 길 수도 짧을 수도 있고, 진지할 - P143

수도 시시껄렁할 수도 있으며, 신이나 스피노자‘를 다룰 수도 있고 거북이와 치프사이드를 다룰 수도 있다. 하지만1870년부터 1920년 사이에 쓰인 에세이들이 실린 이 다섯권의 작은 책을 뒤적이다 보면, 그 혼돈 가운데서 몇 가지 원리가 눈에 뜨이며, 그 길지 않은 기간 동안에도 역사의 진보라고나 할 만한 것을 감지하게 된다.
문학의 모든 형식 가운데 에세이는 긴 단어의 사용을 가장 덜 요구하는 형식이다. 에세이를 지배하는 원리는 요컨대즐거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가에서 에세이집을 꺼낼때 우리는 단지 즐거움을 얻으려 할 뿐이다. 에세이에서는모든 것이 이 목적에 따라야 한다.  - P144

에세이는 그 첫마디로 우리에게 주문을 걸어야 하며, 우리는 그 마지막 한마디에 상쾌한 기분으로 깨어나야 한다. 그 중간에 우리는 재미와 놀람, 흥미, 분노 등 아주 다양한 경험을 거치게 될 것이다. 램‘
가 더불어 판타지의 정상으로 솟구치기도 하고, 베이컨과더불어 지혜의 심연에 뛰어들기도 하겠지만, 결코 흥분해서는 안 된다. 에세이는 우리를 넉넉히 감싸고 세계를 가로질 - P144

러 장막을 드리워야 한다.
그런 위업은 좀처럼 달성되지 않는다. 물론 그 잘못은 작가뿐 아니라 독자에게도 있겠지만 말이다. 습관과 무기력이
독자의 입맛을 둔하게 한 것이다. 소설에는 이야기가 있고 시에는 리듬이 있는 데 비해, 에세이스트는 그렇게 짧은 산문에서 대체 어떤 기술을 동원해야 우리로 하여금 정신이 번쩍 들게 하고, 황홀경 - 잠이라기보다는 더 강렬한 삶이라고나 할 상태, 모든 기능이 깨어 있는 가운데 감미로운 일광욕을 즐기는 듯한 상태에 빠지게 할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도 먼저, 그는 제대로 글 쓰는 법을 알아야 한다.  - P145

이 승리는 문체의 승리이다. 왜냐하면 문학에서 자아를활용하는 것은 글 쓰는 법을 터득함으로써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아란 문학에서 본질적이면서도 가장 위험한 적이다. 결코 자기 자신이 되지 않되 항상 자기 자신이라야 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리스씨의 선집에서 몇몇 에세이스트들은솔직히 말해 이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했다. 우리는 인쇄된 글의 영원성 가운데 분해되는 시시한 개성들을 보며 욕지기를 느낀다. 물론 잡담으로서는 매력적이었을 터이고, 그것을 쓴 사람도 맥주 한잔을 사이에 놓고 만나기에는 기분 좋은 사람이었을 터이다. 하지만 문학은 엄격하다. 매력적이거나 덕이 높거나 심지어 학식이 많고 총명하다 해도, 글 쓰는법을 알아야 한다는 문학의 첫째가는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문학은 거듭 말하는 듯하다. - P155

 삶은 솟아나고 변화하고 더해진다. 책장에 꽂힌 책들도 살아 있는 한 변화한다. 우리는 여전히 그들과 만나기를 원하며, 만날 때마다 그들은 달라져 있다. 우리는 비어봄 씨의 에세이들을 한 편 한 편 반추해 보며, 9월이 오든 5월이 오든 그 글들과 함께 앉아 이야기하게 되리라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에세이스트가 모든 작가중에서 여론에 가장 민감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응접실은 오늘날 많은 독서가 이루어지는 곳이며, 비어봄 씨의 에세이들도 응접실 탁자 위에 놓인 덕분에 절묘하게 돋보인다. 주위에는 술잔도, 독한 담배도, 말장난도, 술주정이나 미친 짓도 없다. 신사 숙녀는 함께 이야기하며, 물론 이야기되지 않는 것들도 더러 있다. - P156

어떤 이들은 힘들게 간신히 통과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순풍을 타고 날아간다. 하지만 벨록 씨와 루커스 씨와 스콰이어 씨는 어떤 것에도 그 자체에 강한 애착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이 공유하는 것은 오늘날의 딜레마, 즉 집요한 확신의 결여이다. 그런 확신만이누군가의 언어라는 희미한 영역을 통해 덧없는 말소리를 영속적인 결혼, 영속적인 화합이 있는 땅으로 들어 올리는 것인데 말이다. 모든 정의(定義)가 막연하다고는 하나, 좋은 에세이란 이런 영속성을 지녀야만 한다. 그것은 우리 주위에장막을 치되, 우리를 밖에 두지 않고 안에 들이는 장막이라야 한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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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의 선택이 다른 선택을 배제한다는 자각, 그 어떤 순간도 다른 순간을 대체할 수 없다는 자각, 한순간의 의미는 그로 인해 포기하는 모든 것이라는 자각만큼 중대한 깨달음의 순간도 없다. 그것이 향상의 순간이다. 아름다움과 중요성은, 젊은 시절은 예외지만, 상실에서 탄생한다. 마지막 자각은 그런 상실에 대한 자각 또한 사라질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 세상이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관념은 청소년기의 고통이자 위안의 출처다. 어른이 되어서 얻는 유일한 이득은, 그런 가능성의 세계를 포기함으로써 얻은 유일한 정의는 실재, 현실을 인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유일한세계의 진실, 그 세계가 존재하며, 내가 그 안에 존재한다는 것이 주는 고통과 위안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스탠리 카벨 Stanley Cavell, 『눈에 비치는 세계 The World Viewed』


가지 않은 길과 간 길, 갈림길의 순간, 우리가 여행과 교육과일과 육아에 대해 하는 이야기들, 무엇이 진실이었는가를 둘러싼불확실성, 무능한 천사,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제 다 만들어진점심을 앞에 두고 앉은 나는 이런 이야기들이 없는 곳이 없다는생각이 든다. 탈출은 불가능했다. - P125

 그런 이야기는 나를 위해.
나와 함께 의미를 만든다. 의미를 만드는 과정은 각기 다른 속도,
다른 리듬에 맞춰 진행된다. 나는 떠나지 못하고 다시 돌아온다.
의미와 같은 시공간에 머물지만 그것을 소유하지는 못하는 그런마음 상태를 찾아 또다시 길을 나선다. 무엇이 중요하고 왜 중요한지를 알아낼 수 있는 곳, 그것을 한 번 또는 다시 알아낼 수 있는 그런 곳을 찾아서. - P130

여기 괴로워할 새로운 기회들이 등장했다. 데이비드가 다른길을 갔다고 해도 그의 삶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을 수 있다. 그가 다른 사람과 결혼했더라도 여전히 밤마다 구슬픈 음악 소리를 들었을 수 있다. "만약 ~했더라면"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철학자 넬슨 굿맨Nelson Goodman이 반사실적 문장이라고 부르는것을 만들어낸다. 당신은 다른 길을 갔을 수도 있다. 그리고 물론 당신은 그 선택이 매우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그 선택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가끔은 이런 생각에 안도하게 된다.  - P132

플롯에서 시간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각각 분리된 별도의단위가 된다. 살지 않은 삶은 사건이라는 개념의 토대가 되고, 더나아가 극적 요소가 된다. 흐르는 시간에서 한 지점이 선택된다.
마치 그 순간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듯이. 우리의 문화적 관습도 이를 돕는다. 문화적 관습은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특정 순간들에 중요성을 부여한다. 이를테면 데이비드처럼 우리는 결혼으로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필립라킨은 이런 믿음은 조롱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 P136

살지 않은 삶을 상상하는 것이 내가 여러 길 중 하나를 따라내려가면서 느끼는 단독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살지 않은 삶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그런 단독성과 여러 길이 존재하는 상황에 맞닥뜨릴 때일 것이다. 그럴 때면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다른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이 삶을 되돌릴 수 없고 나라는 사람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고 느끼는 것은 언제인가? 이 질문에 대한답은 개인적이지만, 또한 역사적이고 사회적이다. 프로스트의 시에서 나그네가 선택한 길은 앞서 그 길을 지나간 이들의 발자국으로 뒤덮인, 누군가가 이미 지나간 길이었다. - P159

근대의 시장 자본주의가 우리가 살지 않은 삶을 먹이고 키웠다면 그런 살지 않은 삶이 휘두르는 힘이 10년 주기로 바뀌는 이유는 특정 역사적·사회적 조건 때문이다. 더 적확히 말하자면,
변화하는 역사적·사회적 조건과 내가 연구하는 살지 않은 삶의이야기 형식의 끊임없는 변주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그 힘도 달라진다. 깊은 내면을 소유한 자아는 자신의 특별함과 평범함을 동시에 자각하고 있으므로 성찰과 비교를 통해 좁은 일방통행로를 걸어내려 가면서 실현되지 않은 것들과 대면할 준비가되어 있다. 그런데 그런 자아는 왜 특정 순간에 스스로를 이런식으로 바라보게 되는 걸까? - P162

역사가들은 근대적인 전문직 사회가 19세기에 출현했다고 말한다. 이전의 농업사회와 산업사회와 달리 전문직 사회는 전문화된 직업들로 구성된다. 개인의 성공 사다리는 물려받은 재산이나 축적된 자본이 아니라 개인의 역량과 교육으로 좌우된다. 특히 영국에서는 전문직 종사자가 사회의 주류 계층이 되었다. 스스로를 직업인 또는 잠재적 직업인으로 여기는 사람이 점점 더늘어났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이런 전문직들에는 엄격한 경계가생겼다. 역사가 해럴드 퍼킨Harold Perkin 이 "울타리 전략"이라는심심한 명칭을 붙인 이 현상은 대개 지원자들을 탈락시키기 위한 시험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상적으로는 모두에게 개방되어야하지만 현실에서 전문직은 배타적이다.  - P162

살지 않은 삶의 탄생 조건이 모두 갖추어졌다. 다만 길 대신사다리가 주어지고 길을 걷는 대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사다리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사다리는 포기해야 한다. 변호사를 선택하면 의사나 은행원은 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과 분리하고 자신의 미래를 향해 올라간다. 물론 지금 사다리를 다른 사다리로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아주 고된 노력이 필요하다. 또다시 밑바닥에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고정한 채 한발 한 발 사다리를 오르고, 우리 주위의 모든 이들도 똑같이 그렇게 한다. - P163

살지 않은 삶에 대한 상상력을 유독 자극하는 직업이 있다. 앞서 작가와 영화감독이 그런 직업이라고 말했는데, 법조인도 그중하나다. 용의자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는 여러 대안을 제시해 의뢰인에 대한 기소 주장에 의심의 여지를 부여한다. 내 의뢰인이이런 행동을 했고, 이런 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런 가능성들도 있다는 식이다. 예컨대 내 의뢰인은 그 시각 다른곳에 있었다거나 범죄에 사용된 무기가 다른 것이었다거나 더 그럴듯한 범행동기를 지닌 다른 용의자가 있다거나…. 찰스 디킨스가 살지 않은 삶에 집착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가 자신의 소설에 변호사를 그토록 자주 등장시킨 것도 이해가 된다. 『위대한유산』에서 재거스 씨는 소설이 한창일때법정에 등장해 자신의의뢰인들을 위해 다른 과거들을 상상해내는 마법과도 같은 힘을발휘한다. 그는 이야기꾼이다. - P164

그런 선택지들은 하나같이 좋은 미래를 약속한다. 당신은 각 선택지가 어떤 미래를 약속하는지 상상해본다. 그리고 그렇게 상상하는 동안 덫이 모습을 드러낸다. 현재의 상상 속 대안들은 당신이 살지 않은 과거가 될 것이고 결국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미래의 당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갈림길 앞에 선 당신이 각길이 당신을 어디로 데려갈지 머릿속으로 그리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후회로 이어지는 길이 생겨난다. 이런 의미에서 직업은 천직과 다르다. 천직은 사명이다. 당신이 누구인지, 당신의 본질을보여준다. 다른 천직을 원하는 것은 단순히 당신의 삶을 바꾸고싶은 것이 아니라 아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직업은 사명이 아니다. 일의 근대적인 분류에 따른 하나의 유형일 뿐이다. - P165

결혼은 어떤 면에서는 직업이다. 직업처럼 왼쪽 길과 오른쪽길이 확실하게 구분된다. 그러나 결혼은 직업보다 살지 않은 삶에 대한 더 절박한 고민을 낳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개 우리가누구인지에 결혼이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살지 않은 삶의 이야기들이 취하는 양식에 결혼이 훨씬 더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직업과 마찬가지로, 그러나 더 극적인 형태로 결혼은 배타적이다. 한 사람과 결혼하면 다른 많은 사람과결혼할 수 없게 된다. 직업을 끝낼 때와 마찬가지로, 그러나 더 극적인 형태로 결혼을 끝내려면 아주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예전에도 법적으로 이혼이 허용되었다. 다만 실제로 이혼하기는 불가능했다.) 직업처럼 결혼도 아주 먼 미래까지 이어진다. 게다가단순히 은퇴할 때까지가 아니라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이어진다. 만약 이혼하거나 별거하거나 서서히 사랑이 식는 등우리가 갈라서게 되면, 단독성이 더욱 강하게 휘몰아치면서 되돌아오기도 한다. - P171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당연한 얘기지만, 이따금씩 아주 비참해지는 순간이 없다는 건 아니에요. "내가 내 인생을 망쳤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순간이요. 누구나 그럴 때면 다른 삶에 대해, 내 것일 수도 있었을 더 나은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죠. 저 같은 경우에는 스티븐스 씨 당신과함께였다면 살았을 삶에 대해 생각합니다.
가즈오 이시구로 Kazuo Ishiguro, 남아 있는 나날 The Remains of the Day』 - P178

결혼의 불가역성과 배타성이 살지 않은 삶에 대한 상상을 자극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에 결혼이 특히 자주 등장하는 데는 더 흥미롭고, 더 아픈 이유가 있다. 성경과 기독교 문화는 누군가와 결혼한다는 것은 당신이 더는 다른 사람과 분리된 한 사람이 아니라 배우자와 하나가 된 사람, ‘일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가르친다. 살지 않은 삶에 대한 이야기는 부부의 삶을 두 사람의 삶이 아니라,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할 때나 아플 때나, 두 사람이 합쳐져 하나가 된 사람의 삶으로 취급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결혼생활의 실패(그리고 결혼하는 데 실패하는 것도 실패라고 믿는다면 미혼)는 독신의 삶을 더 볼품없는 것, 더 불행한 구속으로 만든다. "그 누구도 다른누군가가 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지적하면서 애덤 필립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결혼은 다른 누군가가 되는 것에 최대한가까이 다가가는 셈이다." 당신이 결혼하기를 원하고, 결혼할 수있고,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면 말이다. - P179

살지 않은 삶을 만들어내는 다양한 요소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다른 속도로, 다른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면서 변했다. 눈에 띄는 변화도 있고, 확실하지 않은 변화도 있다. 그래서 살지 않은 삶의 진화 과정을 정확하게 기록하기는 어렵다. 동성애자들을 둘러싼 조건도 지난 50년간, 때로는 그 변화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릴 만큼 빠르게 변했다. 우리는 역사가 과거로 우리에게 멀어지면서 보내는 음파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1963년과 이 소설이 발표된 1997년 사이에 조건들이 급격히 변했다. 1997년부터 현재까지도 계속 변했다. 그리고 아마도 내가 이 책을 쓰는 지금부터 당신이 이 책을읽는 순간까지도 계속 변할 것이다. 그런데도 프루가 들려준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의 이야기로 이해된다. - P182

결혼, 직업, 자녀 양육을 둘러싼 조건의 변화가 지난 몇십년 동안 집중되면서 이런경험들이 훨씬 더 치열해졌다. 그것도특히 여성에게 직업적으로 성공하기를 원하는 엄마들은 아이가없는 직장 여성, 경력을 포기한 엄마들, 아이 양육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 남자 동료들을 곁눈질한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스스로일을 그만두었거나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엄마들은 여전히 일을하는 주변의 여성들을 곁눈질한다. 그리고 자의든 타의든 아이가없는 여자들은 아이가 있는 여자들을 곁눈질한다. 정답인 길은없는 듯하다. 모든 좋은 길은 나머지 길을 배제한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매기 넬슨 Maggie Nelson 이 말한다. "나는 글을 쓰면서동시에 아이를 안아줄 수 없다." 그녀가 쓴 모든 문장은, 내가 읽는 그녀의 모든 문장은 그녀가 아이를 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암묵적으로 전달한다. 결과물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가바로 내려놓기인 듯하다. (넬슨의 저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내 책을 한 줄로 요약했다고 느꼈다.) - P186

글쓰기(화자의 글쓰기와 존슨의 글쓰기)는 운 좋은 소수만이경험할 수 있는 그런 양가감정을 담기에 안성맞춤인 그릇이다.
그가 만난 대다수 흑인은 여자건 남자건 그런 장자의 권리를 애초에 부여받지 못했다. - P188

우리의 가족, 그중에서도 부모, 자녀, 형제자매로 인해 살지 않은 삶에 대한 생각이 특별한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우리의 몸이우리가 단지 우리 자신일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인 동시에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족이 되면 우리는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떤 식으로든 단독성에서 벗어나 둘이 된다. 이런 점에서 가족은 결혼보다 더 강력한 힘을 지닌다. 성경이펼치는 고집스러운 주장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들은 모든 사랑노래에도 불구하고, 결혼은 진정한 의미에서 두 사람을 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다. 그것은 은유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의 자녀는, 우리가 낳은 자녀, 우리가 낳지 않은 자녀, 우리가 낳았지만 지금은 곁에 없는 자녀는 은유와 직설의 경계가 늘 명확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 P190

지금 나는 진부하거나 기발한 일을 벌이려는 게 아니다. 내 분야가 아닌 주제에 대해 전문가를 자처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흔히 시인들이 고통스러운 압박감을 느낄 때면 우리가 겪는 혼란을기록한다는 점을 설명하고 싶은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체화된 정체성에 대한 사실들, 우리의 삶. 임신 · 무덤의 시작과 끝, 그리고그 사이를 채우는 모든 복잡한 순간들에 우리가 겪는 당혹스러움을 기록한다. 나는 언어가 이런 혼란의 경험을 전달하기에 적합한매개체라는 그들의 믿음을 충실히 전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 P211

초반에 나는 우리의 단독성이 우리의 필멸성과 별개의 관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단독성은 그 자체의 차별화된 사유, 차별화된 정서를 지닌다. 물론 단독성과 필멸성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단독성에 대한 생각을 더 또렷하게 만든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삶이 끝난다는 사실이 더 구체적으로 다가올수록 현재의 당신은 과거의 살지 않은 삶들에 대해 더 자주,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살지 않은 삶의 이야기들은 당신자신의 죽음보다는 다른 이들의 죽음을 곱씹게 만든다. 다른 이들의 죽음 이후에도 살아남는 것, 요컨대 죽음이 아닌 계속 살아가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 P213

내가 누구인지 발견해줄 사람을 찾고 있다면 어디서 그를 찾을수 있을까? 친구? 동료? 부모, 배우자, 자녀? 친척? 죽은 자? 나의거리를 재기 위해 나는 얼마나 멀리까지 갈 각오가 되어 있는가?
「나방의 죽음 The Death of a Moth」은 버지니아울프의 대표적인 에세이 중 하나다. 이 에세이는 다섯 단락으로 구성된 엘레지다. 울프는 9월 어느 아침 나방과 죽음에 대해 노래하면서 부서지기 쉬운 구체성과 묵직한 추상성 두 가지를 아주 부드러운 손길로 조심스럽게 다룬다. 울프는 서재 창문틀에서 나방을 발견한다. 창문 너머로는 서식스의 들판이 펼쳐져 있다. 울프의 눈길을 끈 것은 나방이 내뿜는 에너지였다. "그 에너지가 떼까마귀와밭 가는 농부, 말, 그리고 심지어 메마른 구릉까지 깨우는 것 같았다." 나방은 창문 너머로 보이는 모든 것과 하나다. "나방을 보고 있자니, 이 세상의 거대한 에너지로 만들어진, 아주 가늘지만정제된 섬유 하나가 나방의 여리고 자그마한 몸에 꿰인 것 같았다. 나방은 자주 유리창을 가로질렀고, 그때마다 나는 생명의 빛줄기 한 가닥이 내 눈에 보이는 거라고 상상할 수 있었다. 나방은거의 온전한 생명이었다."
나방은 날개를 퍼덕이다 추락한다. 다시 날아오르지만 또 추락해 창틀에 떨어진다. - P218

나방이 어려움에 처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방은 더는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다리를 버둥댔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는 나방이 몸을 일으킬 수 있도록 돕고자 연 - P218

필을 내밀었지만, 그때 문득 그런 헛된 몸짓과 서툰 동작은죽음이 가까워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연필을 도로 내려놓았다. 

울프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들판은 이제 고요하다. 오후가 되자 일손들이 멈췄다. 새들은 먹이를 찾아 개울로 떠났다.


말들이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나 그 힘은 여전히 그대로거기에 있었다. 무심하게, 무정하게, 그 무엇도 딱히 보살피지 않은 채 바깥에서 한 덩어리로 모여 있었다. 어쩌면 그힘은 자그마한 누런 나방과 대치하고 있었다.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저 다가오는 최후에 맞서는 그 작디작은 다리들의 놀라운 투쟁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 최후는마음만 먹는다면 도시 하나를 통째로, 아니 도시 하나뿐아니라 인류 전체를 집어삼킬 수도 있었다. 나는 알았다.
그 무엇도 죽음 앞에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 P219

울프는 이 세상의 거대한 에너지가 짓누르는 연약한 몸을, 가느다란 실과도 같은 한 생명의 투쟁을 무기력하게 지켜본다. 그녀는 무능한 수호천사다. 능숙하게 기록을 남기는 수호천사다. "나방이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태어났더라면 살 수 있었을 모든 가능한 삶에 생각이 미치면 나방의 소박한 행위를 연민의 눈으로바라보게 된다." 그런데 울프의, 당신의, 우리의 운명도 나방의 운명과 다를 것이 없다. - P219

나는 말과 글이 드러내는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말과 글이 감추는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요컨대 나는 내가 말과 글로 인해 어떤 책임을 얼마나 지게 될지 완벽하게 알 수 없다. - P221

아예 시작하지 않거나 끝을 맺지 않으면 자신의 선택을 되돌아보지 않아도 된다. 시작하지 않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불가능해졌고, 끝을 맺지 않음으로써 얻는 위안은 그새 시들해졌다. 이제 이책의 결함을 받아들일 때가 왔다. - P247

잠시 내 생각을 정리해보겠다. 때로는 한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한계로 느껴진다. 나는 단 한 사람으로, 단 하나의 인생을 살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 또는 다른 사람이나 다른인생에 대해 생각할 때는 이런 단독성이 분리됨으로 다가온다.
나는 다른 사람, 다른인생과 분리된 한 사람이다.  - P247

 나는 내가 왔던 길을 되짚어갈 수 없다. 하지만 이는 누구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두 수많은 경로 중에서 하나의 길을 따라왔고, 되돌아갈 수 없다. 우리 모두 특별하고 평범하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런 것들을 늘 곱씹고 있는 것은아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때만 그렇게 한다. 그런데 유독 이런 생각에 빠지게 하는 경험들이 있다. 진로, 결혼, 임신, 육아, 죽음, 형제자매, 생존 등. 이런 경험은 사회적·역사적 맥락 속에서형성되기 때문에 살지 않은 삶에 대한 생각을 더 강하게 이끌어내는 시대와 문화가 존재한다. 평생직장의 쇠퇴, 여성의 사회 진출 증가, 피임의 보편화, 낙태의 합법화, 대리모와 입양 증가, "성인 진입기emerging adulthood"에 대한 지식 확장, 동성 결혼의 합법화, 트랜스젠더의 음지탈출, 나이 든 부모를 돌보는 성인 인구증가, 소셜 미디어의 발달과 그로 인한 타인과의 비교 심화. 이런모든 조건들은 각기 다른 속도로, 다른 역사적 논리에 따라 변했지만 이런 맥락들이 한데 모여 현재 우리 주변에 가득한, 살지 않은 삶들을 만들어냈다.  - P248

일찍이 나는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과장된 시, 체념의철학을 노래한 시라고 말했다. 속죄』는 허구적 진실을 충실하게이행하면서 모든 것을 극한으로 몰고 간다. 세계대전 이전의 영국이라는 먼 세계, 강간이라는 충격적인 사건, 됭케르크 철수 작전, 정교한 자기기만에 빠진 아이, 그 아이의 반짝반짝 빛나는 끝없는 죄책감, 기발한 속임수임이 드러난 소설 자체 브리오니가가지 않은 길에 대한 생각들로 고립되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상적인 갈망으로 말라 죽는 것 또한 가능하다. 「가지 않은 길」은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극단적인 시이면서도 가벼운 시인 것이다. 그런 가벼운 극한을 사는 것은 어떤느낌일까? - P249

 그러나 오늘 비가 내리는 것을 바라보면서, 잿빛 하늘을 바라보면서, 싸늘한 냉기를 느끼면서, 나는 생각한다. 어제 날씨가 훨씬 더 좋았는데.
경이, 즐거움, 슬픔, 화, 두려움, 기쁨, 짜증, 절망, 비애, 분노, 사랑.…. 이런 감정은 즉각적이고 순수하다. 그런 감정은 그 자체로곧장 내 안을 파고든다. 그러나 후회와 안도는 그렇지 않다. 후회와 안도의 사촌인미련, 아쉬움, 애도, 남의 불행함에 대한 고소함이나 쾌감, 연민, 질투, 억울함, 그리고 먼 친척인 자만과 예찬은 그렇지 않다. 이런 감정도 즉각적으로 내 안으로 들어와 퍼진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비교하는 과정을 통해 내가 만들어낸 감정이다. - P250

우리는 이를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아무도 이것이 특별하다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각자 자신의 삶을 산다. 하루 24시간을 자기 자신으로 살아간다. 그렇지 않으면 달리 무엇을 하겠는가, 다른 사람의 삶을 살겠는가? 그러나 우리 인간은 한 발 물러서서 자신과 자신이 저지른 삶을 탐구하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있다. 그것도 모래 더미를 오르느라 사투를 벌이는 개미를바라보는 구경꾼처럼 무심한 경이로움으로 자신이 자신의 개별적이고 특수한 입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환상 없이도 말이다. 인간은 이 모든 것을 ‘영원의 관점‘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관점에서 본 광경은 엄숙하면서도익살맞다‘ - P253

그때 (어젯밤 러셀 광장을 가로질러 가는데) 하늘의 산을 본다. 거대한 구름들을, 그리고 페르시아 위에 뜬 달을.
나는 거기에 무언가가 있다는 압도적이고 놀라운 감각에휩싸인다.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엄밀히 말해 아름다움은 아니다. 그 자체로 충분한 그런 것이다. 충만한 것. 완성된 것 - P271

그리고 그렇게 자신과 분리된, 완성되고 충만한 무언가에 대한 감각과 함께 스스로에 대한 경험도 바뀐다. "지구 위를 걷는내 자신의 기묘함에 대한 감각도 거기 있다. 저기 위에 뜬 달과,
저 산 구름들과 함께 러셀 광장을 종종 걸어가는 기이한 인간의위치에 대한 감각도" 이것은,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에 대한 인식을 내 기대를 뛰어넘을 정도로 아주 강렬하게 묘사한 글이다.
울프는 단순한 사실이 불러일으키는 경이와 기묘함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그 자체로 충분한 그런 것이다." 다른 세계는 멀어지고 이 세계만 남는다. 울프의 머리 위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달만 남는다. 높은 곳에서 무심하게 내려다보는 풍경이 아니다. 영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니다. 그저 이 이상한 지구에서서 올려다본 풍경이다.
그런데도 그 자체로 충분한, 충만한, 완성된 이런 순간들에도무엇이 아닌지에 대한 생각을 완벽하게 떨쳐낼 수는 없다. 울프는 인간의 변덕스러움으로 만족과 갈망을 함께 붙들고 있다. 때로는 만족을 느끼다가, 때로는 갈망을 느끼고, 때로는 (이것이울프의 천재적인 면인데) 만족과 갈망 모두를 느낀다.  - P271

하늘에서 거기에 있는 구름과 거기에 없는 산을 본다. 그리고달은? 울프가 단순히 달을 가리키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달이 여기 런던의 러셀 광장을 비추듯이 페르시아도 비추고 있다고, 페르시아는 그녀의 연인인비타 색빌웨스트Vita Sackville-West가 두 달 전 배를 타고 향한곳이다. 달은 여기에도 있고, 거기에도 있다. 울프를 비추고, 울프가 사랑하는 여자를 비춘다. 두 갈래 길을 모두 걷는 한 명의여행자가 된다.
이것이 아름다움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것은 아름다움 이상이다. 아름다움이자 상심이다. 살지 않은 삶에서 가장 익숙한감정은 후회와 안도인지 모르나 나로서는 이런 가슴 저리는 아름다움이 가장 마음에 와닿는다. 이것이야말로 중년이 느끼는 자유와 고독이기 때문이다. - P272

나는 블랑쇼가 헨리 제임스의 단편소설이 내뿜는 찬란한 빛에 대해 한 말을 생각해본다. 그는 헨리 제임스의 단편들이 완전한 작품이면서 또한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들을 담고 있다고, "모든 시작 전에 늘 그렇듯이, 다른 형태들을 보여주고, 다른 가능했던 서사들의 무한하고 가벼운 공간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나는제임스의 소설을 통해 이런 뒤섞인 아름다움을 처음 접했다. 마찬가지로 울프의 글이 이제 내가 이 책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울프는 자신의 언어로 세상을 인식하고, 그 과정에서세상에 대해 증언한다. 울프는 현실에 대한 인식을 움직이는 것 - P272

으로 만들고, 그러면서도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들을 알아보고확인한다. 울프만큼 그런 아름다움을 우아하게 전달하는 이도없기 때문에 나 또한 여기서 멈추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그러나울프가 백 년 전에 낸 음은 지금도 들을 수 있다. 성급하게 달려들다가도 갑자기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는 울프의 리듬은 사회성과 이미지의 흐름이 위태롭게 질주하는 오늘날에는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리듬이다. - P273

한순간의 선택이 다른 선택을 배제한다는 자각, 그 어떤 순간도다른 순간을 대체할 수 없다는 자각, 한순간의 의미는 그로 인해 포기하는 모든 것이라는 자각만큼 중대한 깨달음의 순간도없다. 그것이 향상의 순간이다. 아름다움과 중요성은, 젊은 시절은 예외지만, 상실에서 탄생한다. 마지막 자각은 그런 상실에 대한 자각 또한 사라질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 세상이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올 수 있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관념은 청소년기의 고통이자 위안의 출처다. 어른이 되어서 얻는 유일한 이득은, 그런 가능성의 세계를 포기함으로써 얻은 유일한 정의는 실재, 현실을 인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유일한세계의 진실, 그 세계가 존재하며, 내가 그 안에 존재한다는 것이 주는 고통과 위안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스탠리 카벨 Stanley Cavell, 『눈에 비치는 세계 The World View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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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순간 우리가 되는 데 실패했지만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온전한 인간이 우리들 사이에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가 될수도 있었을 모든 것, 우리가 놓친 모든 것을 보았다. 그래서 한순간 다른 사람의 몫을 아까워했다. 마치 케이크를 자를 때처럼,
단 하나뿐인 케이크를 자를 때 자신의 몫이 작아지는 것을 지켜보는 아이들처럼.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파도The Waves』

부자가 되어서 행복해졌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미국 가수닐 다이아몬드 Neil Diamond는 돈 때문에 자신의 삶에 달라진 점은 별로 없다고 답했다. "돈을 쓰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뭘더 하겠어요? 점심을 두 번 먹을까요?"

남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선생 또는 작가라거나, 습관이나 외모를 설명하거나, 가족이나 내가 사는동네, 고향에 관해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을 선택하건 그런 것들은 내가 누군지를 알려준다. 그러나 나는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나 자신을 보기도 한다. 그럴 때나는 내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내가 누가 아닌지로 시선을 돌린다. 만약 과거에 뭔가가 달랐더라면 내가 살았을 삶들에 대해, 내가 될 수도 있었을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그런 과거의 순간들이 있다.  - P6

내가 현재 살고 있지 않은 삶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런데 나는 왜 내가 살지 않은 이 삶 또는 저 삶에 유독 집착하는 걸까? 또 왜 이 삶이 내 삶이 아니라는 사실은 전혀 개의치않는 걸까? 나는 발치료 전문의도 아니고, 조경사도 아니고, 플루트를 연주할 줄 모르고, 캐나다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다. 나는캔자스주에 살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내 영혼을 갉아먹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내가 아내만큼 너그럽지 않다는 것, 친구만큼 영리하지 않다는 것, 동생만큼 유머 감각이 없다는 것, 그리고 내가 젊지 않다는 것・・・. 이런생각들은 나와 함께 살아가고, 내가 집을 나설 때마다 따라나선다. 내가 어떤 사람이 아닌지 말할 때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함께 말하고 있는 것이다. - P8

철학자 버나드 윌리엄스Bernard Williams는 내가 다른 사람이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매우 원초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기본적이고 지극히 본질적인 차원의 생각, 애초에 한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관한 생각이라는 뜻이다. 그런데그런 생각이 워낙 기본적이다 보니 우리는 여기에 주목하지 않는다. 그 위에 다른 것들이 쌓이고 그 생각은 감춰진다. 윌리엄스가 그런 생각이 막연한 것이 아니라 "매우 현실적"이라고 말할 때지나치게 강조하는 듯한 느낌이다. 오히려 그것이 윌리엄스가 스스로에게 애써 일깨워 줘야 하는 사실인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렇듯 살지 않은 삶이 자연적이면서도 애매한 관념이다 보니 글로쓰기가 쉽지 않다. 때로는 내 생각들이 말로 담아낼 수 없을 정도로 멀리 그리고 깊이 나아간다. 때로는 너무나 진부해서 차마글로 옮길 수가 없다. 이런 어려움을 감안하면 내가 문학으로 눈을 돌린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심리학자와 철학자도 살지 않은 삶을 연구하지만, 작가들이야말로 살지 않은 삶의전문가다. 살지 않은 삶은 언어의 일반적인 관행을 혼란에 빠뜨린다.  - P9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L‘insoutenable légèreté de l‘étre』에서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는 이렇게 말한다. "내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나의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들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인물을 똑같이 사랑하고, 또 모든 인물을 똑같이 두려워한다. 모든 인물은 각각 내가넘지 않고 돌아섰던 경계 너머로 나아간다. 내가 가장 끌리는 것은 그들이 그렇게 넘어선 경계다(그 경계에서 ‘나‘는 끝난다). 왜나면 소설이 파헤치는 비밀은 그 경계 너머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소설의 실제 이야기가 펼쳐지면, 그 이야기가 펼쳐지는 페이지마다 실제 이야기와는 다른,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만 될 수도있었을 이야기를 전하는 여백도 함께 생겨난다. 그것은 희곡, 영화, 시도 마찬가지다. 허구는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현실을 담고있으면서도 우리의 것과는 조금씩 다른 현실을 보여준다. - P10

살지 않은 삶에 대한 이야기에는 여행이 많이 나온다. 등장인물이 집을 떠나거나, 하천을 따라 내려가거나, 기차를 타거나, 택시에 합승하거나, 낯선 대륙으로 날아간다. 이렇게 여행을 하는것이 놀랍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길에 관한 이야기들이지 않은가.
그러나 의아한 모티프들도 있었다. 처음 살지 않은 삶에 관한 이야기들을 살펴볼 때는 다양한 신들이 자꾸 등장하는 것이 눈에띄었다. 무대에 직접 나서지는 않더라도 날개를 펄럭이며 계속 맴돌았다. 도대체 왜일까?  - P11

살지 않은 삶에 대한 책을 쓰다 보면 당연히 쓰지 않은 책에관해 생각하게 된다. 다룰 수 있었던 모든 주장들, 갈 수 있었던모든 방향들, 다시는 열어보지 않을 게 뻔한 컴퓨터 폴더에 남겨진 모든 자료들. 나는 다른 나라 문학에서는 이 주제를 어떻게다루는지 살펴보지 않았다. 미국이나 유럽 문학에 비해 영국 문학에서 더 흔히 접할 수 있는 주제라고 생각하지만 확실하지는않다. 내가 계획했던것만큼 영화를 많이 살펴보지는 않았다.  - P15

내 삶에 시작과 끝이 있다는 생각에 나는 기꺼이는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익숙해졌다. 나는 길을 따라 걷는 중이다. 어느 날길을 걷기 시작했고, 어느 날 멈출 것이다. 그러나 책의 페이지처럼 길에도 여백이 있고, 페이지의 여백처럼 길의 여백도 한계를 표시하는 역할을 한다. 내 삶에 끝이 있고 언젠가는 끝난다는 미래의 한계만이 아니라 지금 이순간에도 내 삶에 한계가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나는 하나의 삶, 이 삶을 산다. 이 삶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삶 이외의 다른 삶도 없다. 나는 나 자신일 수밖에 없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왜 내게는 이것이 아주 큰 깨달음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내가 갈 수 있었던 길이 너무나 많았고,  - P17

내가 살 수 있었던 삶이 너무도 많았다. 그런데도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6월의 어느 화창한 날,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거주하는 중년 남자로, 폭이 좁은 이 책상 앞에 앉아 산딸나무가보도에 드리운 그늘에서 노는 두 아이를 내다보면서 미지의 독자에게 이 글을 쓰고 있다. 확률적으로 따져본다면 정말 기막힌우연 아닌가?
나는 나 자신과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친밀하고, 그 친밀함 안에서 나는 혼자다. 내 기억은 나만의 것이다. 그해 초봄 어느 저녁에 리치먼드가의 들판을 가로질러 막 꽃망울을 터뜨린개나리들을 헤치고 달렸고, 친구가 바로 등 뒤까지 바짝 따라붙었고, 종아리가 터질 것 같았고, 휘어진 가지가 날아들어 온몸을 때렸고, 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굴렀고・・・ 나 이외에는 그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은 기억들이다. 그런 경험들이 곧 나다. 그렇게말하고 싶다.  - P18

 그리고 시 전체의 마지막 행의 첫 단어로 돌아온다. 매번 새로운 "그리고"가 나올 때마다 나는 시가 이끄는 길을 따라 또 한 걸음을 내딛는다. 그런데그 단어를 들을 때마다 내 귀는 앞서 나왔던 모든 "그리고"를 떠올린다. 나는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이미 읽은 것들을 품고 간다.
나는 화자와 마찬가지로 미래로 발걸음을 내디디면서도 과거를완벽하게 떨치지는 못한다.
그런 반전이 운문의 일이다. 시는 반복적으로 회귀하면서 완성된다. 그런데 갈림길에서 두 길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으로 시작한 시가 왜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걸까?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들과 우리가 하는 이야기들은 어떻게 연결되는 걸까? 이런 것들이 프로스트의 시구 사이에서 내가 찾은 질문들이다. - P24

 하루를 보내는 동안 어떤 식으로든 잠시멈추고 성찰할 시간을 낼수있다. 우리는 잠시 멈추고, 그 자리에서 시선을 밖으로 돌려 우리가 없는 곳을 본다. 물론 책을 읽는다는 것도 이와 같다. 우리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확실하게 가늠할 수 없는 곳에서 허구의 인물들은 조용히 우리 자신을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살지 않은 삶에 대한 이야기들은 특정 유형의 사고와 감정을부추기고, 특정 유형의 사고와 감정을 차단한다. 어떤 질문들은제기하고, 어떤 질문들은 감춘다. 어떤 경험들은 증폭하고, 어떤경험들은 덮어버린다. 우리가 굳이 이런 식으로 삶에 대해 생각할 이유는 없으며, 대개는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잠시 당신의 삶이 갈림길이 아닌 포커게임이라고 생각해보자. 다른 플레이어들이 어떻게 했는가에 따라 당신에게 이런저런 기회가 생겼을 것이고 게임이 잘 풀렸을 수도, 잘 풀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 P29

이런 말을 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살지 않은 삶은 중년의 관심사다. 살지 않은 삶이 있으려면 먼저 삶을 어느 정도 살아야만한다. 미래에 다른 삶을 살 가능성들이 거의 사라졌다고 느낄 때면 어김없이 과거에 선택하지 않은 길들을 떠올리게 된다. 존 치버John Cheever가 어두운 숲 속에서,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몰라 잠시 멈춰 선 것은 그가 인생의 중반에 다다랐을 때였다. - P47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여기 당신이 있다.
누구나 알듯이 현대 문화는 흥미롭게도, 그리고 진부하게도젊음에 열광한다. 지난 수십 년간 로맨틱 코미디, 청소년 소설, 성장소설 등이 성행했다. 그래서 청년기가 이야기가 되기에 최적인 시기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현대인이 푹 빠진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는 대개 노인이다. 젊음에 관한 노래를 작곡하는 것은 중년들이고, 그들은 그 노래를 부르면서 젊은이들을 바라본다. 우리는 삶의 경로가 확정되기 전 주어진 선택지들을 비교하고 위험을 가늠하던 그 시절을 어떤 식으로든 되돌아본다. 청년기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아서 선택이 의미가 없는 유년 시절도 아니면서 모든 것이 확정되어서 선택지가 사라진중년도 아닌, 다양하고 새로운 가능성들로 넘치는 세계다. 버지니아 울프의 『파도』에서는 한 등장인물이 이렇게 논평한다. 젊은시절에는 "모든 것이 부글부글 끓고 요동쳤다. 우리는 무엇이든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변화가 더 이상 불가능하다. 우리는 묶였다…. 우리는 지금을 선택했다. 때로는 누군가 우리를 대신해서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떤 집게 같은 게 목 아래쪽을 꽉 잡고 있는 게 느껴진다." - P49

우리는 이미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살펴보았다. 우리가 다룬 이야기들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우리가 내다볼 수 있는 길, 선로, 경로, 물길로 연결된다. 그래서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처럼 우리가 과거를 확실하게, 즉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처럼느껴지게 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우리는 과거를 실제로 볼 수없고, 내가 아는 과거가 진짜 과거인지 확신할 수 없을 때가 더많다. 과거는 때로는 색과 모양이 제각각으로 비치는 어지러운만화경으로, 때로는 흑백사진으로, 때로는 냄새로, 때로는 피부를 따라 흐르다 마음을 옥죄는, 어디서 밀려왔는지 모를 감정의파도로, 때로는 얼굴에 번지는 작은 미소로 다가온다. 역광을 받은 텅 빈 도로처럼 아주 선명하게 다가오는 경우는 드물다. 이것이 신이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신을 등장시킨 덕에 당신은자신이 살아온 삶에 비현실적인 확신을 갖고, 당신이 살지 않은삶에 그보다 더 비현실적인 확신을 가질 수 있다. - P56

 모두 격식을 차리지 않은, 꾸밈없는 일상의 목소리를 만들어낸다. 어찌 보면 아예 시 같지 않기도 하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때로는 데니스가 질 좋은스카치 위스키 한 잔을 손에 들고 의자에 편안히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자신이 쓴 시를 되돌아보면서도 그 시의 모든 구석구석이 의미로 충만한지, 그렇지 않은지를걱정하지 않는다. 그는 만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끔은 그런 예술성의 부재가 이 시가 올린 진정한 성과라는 생각이 든다.
순응함으로써 권위를 얻는 경우도 있다. 아마도 이 시는 그런 무심한 가벼움을 통해 순응의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이 시의 미덕일 것이다. 그것이 이 시의 의도라고치자. 이 시에 얼마나 만족하는가? 지금 이대로가 아닌 다른 시를 원하는가? - P64

그러나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물론 우리는 서로서로 분리되어 있다. 여기에 한 사람이 있고, 여기에 또 한 사람이 있다. 여기에 내가 있고, 거기에 당신이 있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면 이 당혹감에 휩싸인 화가에게 주어진 과제하나는 그런 당혹감을 우리도 똑같이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리도 화가처럼 그 수수께끼를 탐구하게 하려면 우리 안에 그런 분리되었다는 감정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그것은 시인과 소설가의 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인과 소설가의 매체는 공간적인것이 아니어서 화가처럼 물리적인 거리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그런 거리에 대한 우리의 무지를 쉽게 묘사할 수도 없다. 이는 한계로 작용하지만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글 쓰는 작가에게도 나름의 자원이, 도구와 재료가 있고 작가는 그 자원을 활용해 비공간적인 거리를 잰다. 공간이 빠지면 거리는 비교의 문제가 된다.
유사성과 차이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 P73

나는 지금까지 화가와 시인이 인간의 보편적 특성인 단독성,
즉 우리가 서로서로 분리된 존재라는 사실에서, 그리고 그런 단독성을 이해하고 때로는 탈출하려는 인간의 시도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단독성에 매료되는 건 화가와 시인만은 아니다. 소설가와 영화감독도 단독성에서 영감을 얻는다. 앞으로 더 살펴보겠지만 심리학자도 다른 삶을 테마로 하나의 산업을 일궈냈고, 철학자도 처음부터 다른 삶에 집착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모든 좋은 것을 다 갖춘 삶(마치 신처럼 좋은 것을 완벽하게 갖춘 삶)이라 할지라도 다른사람이 되어야만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면 그 삶을 선택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직 여전히 자신으로서 그 삶을 누릴 수 있어야만 그런 삶을 선택할 것이다." 아리스텔레스가 이런 주장을 한근거는 심리적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기를 포기하고 싶어 하지않는다. 그로부터 훨씬 뒤에 라이프니츠 Leibniz 는 같은 주장을 논리적으로 도출한다. "당신이 누구였는지를 모두 잊어야만 한다는조건이 붙는다면 중국의 왕이 되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것은 마치 신이 중국의 왕을 창조하면서 당신이라는 사람을 제거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 P78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할 때 나는 진정 무엇을 원하는걸까? 내가 완벽하게 다른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것일 리는 없다. 그것은 교체이지 변화가 아니다. 마침내 내가 망토를 펼력이며 왕좌에 앉고 왕관이 내 눈썹에 닿을 때, 그런 왕위 수여식을즐기는 나도 나의 일부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어느 부분인가? 나 자신에게 애착을 느낄 때 나는 나의 어느 부분에 애착을 느끼는 것일까? - P80

 엠프슨의 시선은 마르셀 프루스트『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의 한 구절에 닿는다. 소설의 화자가 우리 인간은 현재 다른 장소에 살면서도 특정 장소에서 우리가 살았던 삶을 기억하는 능력이 있다고지적하는 부분이다. 엠프슨은 프루스트가 매듭짓지 않은 질문을계속 이어간다. "한 장소(환경, 정신상태)에서의 삶은 언제나 견딜 수 없는 것이 된다. 두 장소에서의 삶은 환희가 된다. 그렇다면 이런 바람직한 전환은 둘이라는 숫자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믿어야 할까? n+1개의 장소에서 사는 것은 n개의 장소에서 사는것보다 무조건 더 가치가 있을까?" 엠프슨의 글은 우리가 어디에서 사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그는 우리가 말하고 쓰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왜 의미로 흘러넘치는 단어들을좋아하는 걸까? 왜 어떤 사람들은 평생 그런 단어들을 발굴하는가? 엠프슨은 이렇게 결론 내린다. "프루스트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그는 스타일에서 얻는 즐거움을 바로 그렇게 풀면서묶는 이중성으로 계속해서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논리적으로 통합된 것들은 구문에서 하나로 묶인다.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가치 이론을 제외하면 n+1 이 n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믿어야만 한다." - P83

 그는 은유를 설명하기 위해 은유를 만들어낸다. 그의 구문은 그가 논리적으로 통합한 것들을 하나로 묶는다. 나는 그가 이런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논리적 주장의결혼식에 은유의 밀월이 축복을 내리면 그 결과로 태어난 후손은 우리를 묶는 동시에 풀어준다. 구속하는 동시에 해방한다. 단어가 그러하듯이, 자녀가 그러하듯이. - P84

집에 있으면서 학교에도 있다. 두 장소, 환희. 아이는 자신의말 속에서 자신에게 없는 모든 것을 가진다. 모든 것을 다 한다! 아이의 말을 들은 필립스는 아이가 하지 않은 모든 말에도 귀를 기울이지만 전부 따라갈 수가 없다. 필립스는 의미와공존하고 있지만 이를 소유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래서 아주짜릿하다.

내가 갈 수도 있었던 다른 길들을 상상하는 것은 나를 위한더 많은 삶들을 상상하는 것이다. 이것 저것, n+1. 나는 이 세계 안에서 또 다른 세계, 내가 거의 만질 수 있고 거의 맛볼 수있는 세계를 본다. 그 다른 세계는 이 세계의 일부다. 그림자가 사물의 일부이듯, 기억이 인식의 일부이듯, 꿈이 일상의 일부이듯. - P85

나는 아무도 아니면서 특별하다. 흔하지만 고립되어 있다. 나는 내가 유일하고 분리된 존재라고, 그리고 아마도 구속되고 갇혀 있는 존재라고 느낄지 몰라도, 나는 또한 여러 집단에 속한구성원이기도 하다. 나와 유사한 사람들, 그리고 내 삶과 유사한 삶, 나의 삶일 수도 있었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집단을 이룬다. 아마도 그 집단은 재럴과 재럴의 단짝 친구만으로이루어진 작은 집단일 수도, 모든 사람으로 이루어진 큰 집단일수도, 모든 살아 있는 생명으로 이루어진 엄청나게 큰 집단일수도 있다. 대개 우리가 속한 집단들은 그 중간 어디쯤에 해당하는 집단일 것이다. 우리는 형제자매 또는 이복형제자매, 급우또는 동료, 한 여자의 연인, 같은 도시의 거주민일 수 있다.  - P88

초반에 나는 시가 의미의 직전까지 가는 한껏 고조된 경험을제공한다고 말했다. 이제 나는 시가 흔하면서도 고립된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절정의 경험도 제공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시를 이해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한 가지(유일한 한 가지는 아니다)는 고립으로부터의 탈출이다. 난해한 시를 읽으면서 정신적폐소공포증에 빠진다. 조각난 생각들이 머릿속을 꽉 채운다. 그러나 시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공간이 열리고, 빛이 들어오고, 빛과 함께 다른 사람들이 들어온다. - P89

소설을 읽는 행위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느끼는 애착을 탐색하는 방식 중 하나이다. 앤절라는 처음에는 스스로에게 만족했고, 다음에는 동네사람들을 내려다보면서 절망한다. 물론 사람이 스스로를 대하는 태도는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스스로를 웃기다고 생각할 수도, 진지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무모하다, 실험적이다, 거만하다, 호기심이 많다, 편견이 많다. 가끔은지루하다 등 그 목록은 길다. 소설은 그런 태도에 대한 비전형적인 분류체계를 제공한다. 더 나아가 소설은 자신에게 충실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탐구한다. 소설 읽기에 충실하다는것은 우리 자신으로 있기에 충실하게 임하는 것의 알레고리가된다. - P93

참여한다는 것은 일부가 된다는 것이다. 다만 오직 일부만을경험한다. 나는 온전히 아우스터리츠에 있지 않고, 이각모를 쓰고 있지도 않으며, 결코 키가 작지도 않다. 나폴레옹의 입장이되어도 여전히 나인 채로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마치 참여가 의도적으로, 의식적으로 일어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가 소설을 읽는 동안 참여는 무의식중에 순간적으로 일어난다. 에마가 베이츠 양에게 무례하게 굴 때 나는 부끄러움을 느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내가 그런 감정을 인식하기 이전에 그런 감정을느낀다. 이런 참여를 나타내는 또 다른 단어는 공감이다. 공감은 이미 오래전부터 소설의 윤리적·미학적 덕목의 본질로 꼽혔다. 조지 엘리엇은 "예술은 삶에 가장 가까운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삶 자체가 아니라 삶에 가장 가까운 것이다. "경험을 증폭하는 방법이자 개인의 운명이라는 한계를 넘어 동지인 인간과의 접점을 늘리는 방법이다."  - P96

당신이 가장 외롭고도 외로운 때 악마가 그 틈을 파고들어 이렇게 말한다.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삶과 살았던삶, 이 삶을 당신은 한 번 더, 그리고 수도 없이 반복해서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삶에 새로운 건 아무것도 없다.
오로지 당신이 이 삶에서 경험한 모든 고통과 모든 즐거움과 모든 생각과 한숨, 모든 형언할 수 없는 삶의 크고작은 것들이 당신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온다. 그것도 같은순서와 속도로-이 거미와 나무들 사이로 비치는 이 달빛조차도. 그리고 이 순간과 나조차도 존재의 영원한 모래시계를 반복해서 뒤집고 또 뒤집는다. 그리고 그렇게 당신도, 그저 하나의 모래알이 될 것이다!" - P113

이런 말을 들으면 이렇게 말한 악마에게 달려들어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저주하지 않겠는가? 과연 한 번이라도 이런끔찍한 순간에 그에게 이렇게 답할 수 있을까? "당신은 신이요, 나는 이보다 더 성스럽고 황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하고.

이 삶 이후의 새로운 삶도, 이 삶 이후의 다른 삶도 아니다. 오직 이 삶을 늘 똑같이 거듭해서 산다. 이 거미와 나무들 사이로 - P113

비치는 달빛까지, 모든 점에서 동일한 삶을.
아무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것이 위협이라면, 오직 한 사람이 되는 것이 성과라면, 두 사람이 되는 것은 (심지어 그중 한 사람은캐리 그랜트) 꿈만 같은 일일 수 있다. 우리가 영화배우들을 보면서 환희를 느끼는 것은 그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쉽고자연스럽게 우리 인간의 능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의 능력을 발견했고, 그것은 바로 우리를 발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카벨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우리가 여전히 발견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허세와 비겁함의 가면 뒤에 숨은 우리를 누군가,
아마도 우리의 자기파괴를 파괴할 수 있는 신이 발견해줄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영화배우들을 보면서 환희를 느끼는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이 우리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된다는 것은 단독성에서 벗어나는 것을의미한다.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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