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은 물가로 가서 연주하는 것을 점점 더 좋아하게 되었다. 코펜하겐 시절, 클럽이 영업을 마치면 그는 항구로 걸어가하얀 태양이 회색 바다 위로 솟아오를 때까지 그곳에서 연주했다. 바다는 완벽한 청중이었다. 그의 연주를 들어 주는 완벽한 귀 모든 음을 조금 더 깊게 만들어 주고 그 음을 좀 더길게 끌도록 만들어 줬다. 대양의 아침 햇살 속에서 혹은 초저녁에 흐르는 안개 속에서 뱃사람들은 정박한 배의 난간에기댄 채, 부둣가 사람들은 하역 일손을 멈춘 채 색소폰을 통해 항구의 분위기를 달래는 그의 연주를 들었다. - P147
그의 연주는 파도처럼 강하고 평화로웠다. 마치 육지라는 물결을 따라 떠돌다가집으로 향하는 커다란 배에 지나지 않는다는 듯 외치고 있었다. 바닷물은 부두를 찰싹였고 그는 필요한 만큼 느린 박자를 유지했으며 굵은 밧줄은 긴장감을 더하며 점점 더 팽팽해지고 있었다. 연주 소리를 듣고 온 갈매기 떼는 원을 그리다가느린 박자에 맞춰 그네를 타듯 날아다녔다. 어느 날 고래 두마리는 수면 위로 모습을 보여 주기 바로 전까지 올라와 물결과도 같은 블루스의 울음소리를 듣더니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꼬리를 내보이며 물결 밑으로 사라졌다. 벤의 연주를 대양의 깊은 곳으로 옮겨간 것이다. 누군가가 벤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했을 때 벤은 다른 종족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또 다른 - P147
종족에 대한 알 수 없는 일체감을 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암스테르담에서 그는 녹음으로 우거진 어두운 운하에서도 연주했다. 영국에서는 첼시 다리를 도보로 건너 템스강 둑길을 따라 걸어갔는데 다리의 불빛은 맞은편에서 걸어가는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호의 가진 표정을 전달해 주었다. 가는세로줄 무늬 양복에 우산을 쓴 비즈니스맨, 스카프를 매고 하이힐을 신은 여자들. 그는 템스강을 내려다보았다. 이제는 너무 늙어 천천히 흐르고 있는 강물, 다리들은 강물의 방향이구부러져 시야에서 사라질때까지 계속 뻗어 있었다. 그때는저녁 퇴근 시간이었고, 모두가 펍에 모이거나 이파리가 떨어저 가지 사이로 노란색 불빛이 보이는 각자의 집으로 서둘러가는 시간이었다. 저녁은 푸른 밤안개 속에서 헤엄쳤고 가로등 빛은 강물을 따라 흘러 바다로 향했다. 우습게도 이 풍경은 그의 향수를 자극했다. 하지만 그가 그리워하게 된 장소는바로 런던이었다. 잉크처럼 푸른 하늘,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불빛, 이 모든 것 밑에서 흐르는 템스강의 길고 느린 하품. 이들을 바라보기만 했음에도 그것은 하나의 추억처럼, 마치 과거에 이 풍경에 대해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던 것 같은 느낌이든다. - P148
그는 외로움과 함께 다녔지만 일종의 위로로서 자신의 사운드도 함께 지니고 다녔다. 색소폰은 그의 집이었다. 색소폰과 모자는 착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사는 곳이었다. 포크파이 해트와 트릴비는 늘 그의 뒤통수에 젖혀져 있었지만, 그것들은 마치 스컬캡 skullcaps 처럼 늘 그 자리에 붙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이 불굴의 모자가 여전히 머리 위에 있을때 그는 기분이 좋았다. 그것은 이제 그가 가장 밀착하고 있는 물건이고 오랫동안 멀리 떠난 자에게 주는 온기이며 자신의 침대에 누워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모자와 색소폰 하나의 전통. 결코 떠날 필요가 없는 그의 집. - P156
우리는 오솔길을 따라가다가 우리의 발자국을 다시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숲의 끝으로 향했다가 그를 본 거예요. 큰 몸집의 그는 외투로 몸을 감싸고있었고 머리 위에 얹힌 포크파이 해트는 너무도 어색해 보이더군요. 난 그의 이름을 부르려고 했어요. 하지만 그 찰나에방해하고 싶지 않은 행복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평선 너머 구름 사이로 태양이 모습을 보이고 있었고 몇몇 나무들은 검은 실루엣이 되었지만 다른 나무들은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었어요. 잎을 통해 떨어지는 옛 빗방울로 젖은 고요함이 숲을 가득 채우고 있었죠. 새들은 높은 나무 위에서 날아올라 들판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고요. 벤은 그 숲의 끝에 있었어요. 산 입구 문기둥에 기대어 멀리 농가에서 피어오르는연기가 들판 위를 지나고, 구름이 천천히 언덕 위를 넘는 것을 바라보면서 말이죠. 우리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그곳에 있었어요. 마치 이런 장소에서는 처음 보는 아름다운 새 한 마리와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말이죠. 사람들은 그의 음악이 제게 어떤의미인지를 물어요. 전그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날 오후가 떠올라요. 그날은 제게그의 음악과 같았어요.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게 전부예요. - P158
미국은 그의 얼굴에 계속해서 불어닥치는 폭풍이었다. 그가말하는 미국이란 백인들의 미국이었으며 백인들의 미국이란 그가 혐오하는 미국의 모든 것을 의미했다. 바람은 보통사람들보다 그를 더욱 강하게 때렸다. 사람들은 미국을 미풍微風이라고 여겼지만 그는 그 속에서 분노의 소리를 들었다. 심지어 나뭇가지도 조용하고 미국 국기가 별무늬의 스카프처럼 건물 한쪽에 드리워져 있을 때도 그에게는 분노의 소리가 들렸다. 그는 그 분노가 자신에게 돌진해 오는 강도로 고함을 쳤으며 그 분노를 향해 돌진했다. 두 개의 거대한 힘이대륙 크기의 길 위에서 서로 충돌했다. - P161
분노는 그를 떠난 적이 없었다. 심지어 그가 조용할 때도 분노의 불씨는 한순간에 폭발할 듯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가침묵하고 있을 때도 그의 머리는 소리치고 있었다. 그조차도자신이 왜 이러는지, 왜 이런 방식을 택하는지를 몰랐지만, 다른 방식이 아니라 이렇게 해야 하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분노는 에너지의 한 형태였고 그를 쓸고 지나가는 불길의 일부였다. 그것이 바로 그의 몸이 점점 더 커지는 이유였고 그는 자기 내부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담으려고 했다 물론자신을 전부 담으려면 그는 빌딩만 한 몸을 가져야 했겠지만 그는 매 순간마다 온도가 급격하게 변하는 어떤 나라와 같았다 물론 온도가 어떻든 그것은 끓고 있었지만 끓는 추위, 끓는 더위, 끓는 비, 끓는 얼음. - P162
그의 몸에는 고유의 날씨가 있었다. 몇 달을 주기로 형태가바뀌었고 갑자기 50파운드(약 23킬로그램)가 쪘다가 다시 빠르게 몸무게가 줄었다. 가끔 뚱뚱했고 간혹 건장한 체격을갖고 있을 때도 있었지만, 어쨌든 늘 몸이 점점 커졌고 그의몸은 오래된 스웨터 같은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그는 다이어트를 시도하고 치료약도 먹었지만 일상적으로 서너 끼의 식사를 하룻저녁에 해치웠다. 한 끼 식사는 사이드 메뉴, 추가 메뉴로 접시가 탑처럼 쌓였고 식사는 아이스크림 서너 그릇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는 아이스크림을 충분히 먹었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무슨 맛이든, 어떤 제조법이든 상관이 없었다. 그는 다이어트로 40파운드(약 18킬로그램)를 한 번에 뺐지만 그 누구도 그의 몸이 변했다는 사실을알아차리지 못했다. 마치 집 한 채만 한 도서관에서 얇은 책몇 권을 뺀 것과 같았다. 각자 고유의 사운드를 찾아야 하며그래서 각자 고유의 크기를 가져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전통은 ‘크면 클수록 좋다‘고 명했다. 몸무게는 그를 결코 느림보로 만드는 법이 없었다. 그는 뚱뚱해질수록 더욱 치열해졌고터질 만큼 꽉 찬 여행 가방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의 삶에 비해 그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그에비해 삶은 미미하고 하찮았으며 그보다 몇 사이즈 작은 재킷처럼 움직일 때마다 찢어져 버릴 듯했다. - P163
밍거스 밍거스 밍거스, 그것은 명사가 아니라 하나의 동사였다. 심지어 생각마저도 행동의 한 형식, 내면화된 운동의한 형식이었다. 그는 점차 자신의 악기가 갖고 있는 무게와 차원을 떠안았다. 그의 몸은 너무 거대해져 베이스가 마치 침낭처럼 무게를 가늠할 수 없이 어깨에 간단히 매달린 물건처럼 보였다. 그가 커질수록 베이스는 점점 더 작아졌다. 그는 베이스를 자기가 원하는 대로 가지고 놀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조각하듯이 베이스를 연주한다. 다루기 힘든 돌을 깎아서 음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밍거스는 마치 레슬링을 하듯 연주한다. 베이스를 가까이에 놓고 그 안으로 파고들어, 베이스의 목을 잡고 내장을 거둬 내듯 현을 뜯는다. 그의 손가락은 펜치처럼강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엄지와 검지로 벽돌을 쥐고서 힘을 주자 벽돌에 움푹 파인 자국이 생기는 것을 봤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누구도 소유한 적이 없는 땅에서 자란어느 아프리카 꽃의 분홍색 잎사귀에 벌이 날아와 앉듯이 부드럽게 현을 다뤘다. 그가 베이스를 활로 켜면 교회 예배에서수천 명의 사람이 들려주는 콧노래와 같은 소리가 났다. 밍거스 핑거스. - P164
사진 속의 밍거스는 앉아 있었다. 그가 의자에 앉아 있는모습은 지나친 힘에 눌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하지만 밍거스에 관한 모든 것은 과잉이었다. 그는 『뉴욕타임스The NewYork Times 를 들고 아무 데나 펼친 뒤 쭉 펼쳐 놓고는, 자신이신문을 바라보는 것이 늘 그렇듯 ‘이건 무슨 개똥 같은 소리야‘라는 눈빛으로 보고 있다. 그는 신문을 참을성 있게 읽지않았다. 마치 상대의 옷깃을 잡듯 두 손으로 신문을 움켜쥐고여기저기서 몇 줄을 골라 읽다가 앞뒤 건너뛰고, 한 부분에서잠시 멈췄다가 한 단락 천체를 훑어보고 다시 앞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그는 한 기사를 네댓 번 읽었음에도 제대로 읽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난독증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이마는주름이 잔뜩 잡혀 있었고 입술은 노인이 어떤 말을 들었을 때처럼 그 단어를 발음하기 위해 입 모양을 만들려는 모습이었다. 의자는 그가 움직일 때마다 삐거덕거렸다. 신문을 보면서는 계속해서 도넛을 먹었는데 두 쪽으로 쪼갠 것을 한 손에쥐고 마치 뱀이 새를 잡아먹듯 한 조각씩 입으로 던져 넣고는씹어 삼켰다. 그러고는 커피로 입안을 가신 뒤 신문에 떨어진부스러기를 쓸어내렸다. 다 읽은 뒤에는 역겹다는 듯, 마치 더이상 읽는 것을 단 한 순간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 P165
누구도 밍거스를 참고 견딜 수 없었고 밍거스 역시 누군가에게 혹은 그 무엇에게도 참고 견디기를 거부했다. 그는 자기 방식에 무엇도 개입할 수 없다고 마음먹었다. 그 무엇도. 그렇게 진행된 그의 삶은 일종의 장애물 코스였다. 만약 그가배를 타고 있었다면 그 배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것과 같았다. 그 무렵 자신의 행동이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을 스스로 깨달았을 때, 이미 그의 행동들은 기이한 방식으로 그 값을 전부 치르고 있었다. - P167
밍거스에게 모순은 존재하지 않았다. 벌어진 일 혹은 그가말한 것은 자동적으로 진실함을 부여했다. 아울러 그의 음악은 모든 구분을 폐지하기로 서약했다. 작곡된 것과 즉흥적인것, 원시적인 것과 세련된 것, 거친 것과 부드러운 것, 공격적인 것과 서정적인 것. 사전에 편곡된 것은 반사적인 즉흥성을 반드시 갖고 있어야 했다. 그는 음악의 뿌리로 돌아가서음악의 진보를 만들고 싶었다. 가장 미래 지향적인 음악은전통을 가장 깊이 파 들어간 음악이었다. 그것이 그의 음악이었다. - P167
그래서 사람들은 버드, 호크, 레스터 영을 어디서든 들을 수 있다. 에릭은그들만큼 광범위하게 들을 수는 없겠지만 어디선가 누군가는 늘 그를 부를 것이고, 그 부름이 간절하다면 에릭은 대답하고 그것이 들리도록 할 것이다. 에릭 에릭 에릭. 밍거스가 죽었을 때 우리는 그를 듣기 위해 그토록 간절히 그를 부를 필요가 없을 테다. 모두가 해야 할 일은 베이스를 집어 드는 것. 그곳에 밍거스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디아니 Johnny Dyani, 홉킨스 Fred Hopkins, 헤이든Charlie Haden의 연주 속에서 밍거스를 들었다. 그를 통해 페티퍼드OscarPettiford, 블랜턴Jimmy Blanton 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던 것처럼. 그래서 밍거스는 그의 아들에게 에릭 돌피 밍거스라는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것은 추모가 아니라 기대였다. - P186
그래서 점점 더 피아노에 의존했다. 하지만 이내 그의 손가락은 건반을 치기에도 너무 경직되어 버렸다. 연주가불가능하자 그는 작곡에 더욱 몰두했다. 그는 마일즈와 달랐다. 마일즈는 음악을 들으면 자기 머리에 있는 것을 악기로 간단하게 옮겼다. 밍거스는 음악을 완성하기까지는 그 음악이들리지 않았다. 작곡은 소리 없는, 관중 없는 연주였으며 그래서 작곡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연주를 해야 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연주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중이었다. 밍거스의 음악은 바로 밍거스였다. 그 음악의 움직임은 단순히 그의 움직이었고 그가 움직임을 잃기 시작하자 음악도 운동량을 잃기 시작했다. 그의 음악은 거대하고 움직이지 않는, 하나의 명사가 되었다. - P191
태양이 그를 녹여 주기를, 그의 피 흐름을 막고 있는 얼음 덩어리를 풀어 주길 바라면서 그는 멕시코로 여행을 갔다. 그는 사막의 고요한 열기로 둘러싸여 태양 아래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엔 커다란 솜브레로sombrero‘의 책으로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육체는 너무도 고요해 그는 자신이 숨을 쉬고있다는 것마저도 거의 느낄 수 없었다. 무엇도 움직일 수 없었다. 태양은 움직이지 않는 구리 심벌즈였다. 태양은 바람한 점 없고, 모래 한 알 꿈쩍하지 않는, 변하지 않는 하늘에3일 동안 같은 자리에 매달려 있었다. - P195
이것이 그가 늘 연주해 온 방식이며 그는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는 한 음을 연주할 때마다 그 음에 작별을 고했으며 때때로 그 작별 인사마저도 하지 않았다. 늘 사랑받아온, 사람들이 연주되길 바라는 오래된 노래들이 있다. 연주자들은 그 곡들을 끌어안고 새로운 느낌, 신선함을 부여한다. 하지만 쳇은 그 노래에 상실감을 안긴 채 내버려둔다. 쳇이 연주할 때 그 곡은 위안이 필요했다. 감정으로 둘러싸여 있는것은 그의 연주가 아니었다. 그 곡 자체가 상처의 느낌을 갖고있었다. 음 하나하나는 그와 함께 좀 더 머물도록 애를 쓰며그에게 애원했다. 노래 자체가 그 연주를 듣고 있는 누군가에게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제발, 제발, 제발. - P201
그래서 그의 연주를 들으며 이 노래에 담긴 아름다움이아닌 지혜를 깨닫는다. 그 곡들을 한데 모으면 한 권의 책처럼 마음에 대한 꿈의 안내자가 된다. <안녕이라고 말할 때마다Every Time We Say Goodbye>, <당신과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믿을 수 없어요! Can‘t Believe You‘re In Love With Me〉, 〈오늘 밤 당신의 모습 The Way You Look Tonight>, <내 마음속에 왔어요 YouGo To My Head〉, 〈난 너무 사랑에 쉽게 빠져요! Fall In Love TooEasily>, <당신 같은 사람은 없을 거야There Will Never Be AnotherYou〉, 이것으로 완벽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소설을 합쳐도 남녀에 관해, 그들 사이에 떠 있는 별 같은 섬광의 순간에 대해이 노래들보다 더욱 잘 이야기해 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른 연주자들은 정교화하거나 변형시킬 수 있는 악절과선율을 위해 옛 노래들을 탐색한다. - P201
자신이 아니라 가죽 코트를 입은 한 노인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거울로 가까이 다가가자 그를 향해 발을끌면서 걸어오는 그 남자의 보다 자세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얼굴에 그어진 나무껍질 같은 주름, 수염, 길고 가느다란 머리카락, 먼발치의 지평선을 바라보는 듯한 멍한 눈동자 그가 인도 끝으로 다가가자 노인 역시 그렇게 했다. 지나가는 차들을 가만히 쳐다보았고 이전에 유럽에서 본 나이 든여인들의 모습처럼 그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고난과 아픔에 있는 그 여인들도 표정은 그들을 편안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입술을 다물면 고통은 그 안에 있었고 그것이 울음으로 터져 나오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왜냐하면 울음이 나왔을 때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상처받았는가를 인정해야 했고그건 참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인지 판단한 그는 노인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동시에 벌어지는 그의 움직임, 거울 속 몸짓을 지켜보았다. 지나간 일들이얼마나 중요했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했기 때문에, 그는 심지어 생각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그는 매섭게 부는 바람을 향해서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 P205
노래들은 그들의 복수를 담고 있었다. 쳇은 때가 되면 계속해서 그 곡들을 버렸지만 늘 다시 그 곡으로 돌아가곤 했다. 자신이 원할 때 그는 그 곡을 골라 단 몇 마디의 속삭임만으로도 그 곡을 울게 만들었지만 이제 그 곡들은 아무런 느낌이 없었고 그의 연주를 통해 아무런 감동도 남기지 않았다. 그는 트럼펫을 들었지만 단 한 숨도 불어넣을 수 없었으며, 갈수록 가사가 있는 노래를 불렀지만 그의 목소리는 아기의머리칼처럼 성기고 연약했다. 때때로 그는 자신의 옛 노래들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려 했고 그 곡들은 그전에 느꼈던 감정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과 호흡은 곡을 얼마나쉽게 장식해 주었던가. 하지만 이제 그 곡들은 쳇에게 애처로움만을 느꼈다 - P216
고통은 그곳에 없었다. 어떻게 하다가그러한 소리가 났던 것뿐이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그는 그러한 소리를 냈던 것이다. 조금 빠르고, 조금 느리게, 하지만 늘 같은 그루브로 한 가지의 정서, 한 가지의 스타일, 한 가지의 소리. 단 한 가지 변화가 있었다면 그의 쇠락, 기교의 퇴화에서 발생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운드의 퇴화도 그의 음악을 고양시켰다. 만약 그의 기교가 그에게 가해진 손상을 견뎌 냈더라면 그가 불어넣은 정서의 환영은 없을 것이기때문이다. 그의 삶에서 파기된 약속, 허비된 재능, 소모된 능력이 몰고 온 비극에 주목했던 사람들도 역시 틀리기는 마찬가지다. 그에게는 재능이 있었으며 진짜 재능은 허비되지 않고 완전히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는자만이 재능을 낭비한다. 하지만 자신이 수행할 수 있는 것그 이상을 약속하는 특별한 종류의 재능도 있다. 여기에는 비용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것이 쳇이 했던 방식이고 그래서 우리는 그의 언주 속에서 조용한 긴장을 듣게 된다. 약속. 그것은 늘 영원히 계속됐을 것이다. 설사 그가 그토록 많은 주삿바늘을 꽂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 P218
자신이 태어난 오클라호마 어디에든간다면, 사막에 있는 바위가 되면 어떨까 그는 상상해 봤다. 바위는 죽은 게 아니었다. 그것들은 다른 무엇인 양 행세하면서 대양의 바닥에 누워 있는 물고기의 육지 버전이다. 바위는행위로부터 사물이 되고자 열망하며 명상하는 구루guru이자불자였다. 열기의 물결은 사막이 숨을 쉬고 있다는 징표였다. 타일이 반짝이는 욕실에서 그는 거울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그 무엇도 반사되지 않았다. 그는 거울 바로 앞까지 다가가 정면을 응시했지만 자신의 모습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고 그의 뒤에 걸려 있는 두텁고 하얀 수건만 보였다. 그는 미소를 지었지만 거울은 응답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두려움 같은 것은 없었다. 그는 흡혈귀나 좀비를 떠올렸지만 생명이 없는 영역 안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거울을 응시했고 전 세계의 음반과 잡지에 실린 수백 장의 그의 사진들을 떠올렸다. 그는 거실 테이블로 가서 몇 해 전 LA에서 클랙스턴이 찍은 사진을 표지로 담은 음반을 찾아냈다. - P220
겠다고 여러 차례 내동자유로로 들어설 즈음에 핏속으로 빠르게 도는 헤로인에 의해 그의 정맥은 밝은 빛을 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위장안에서도 빛이 나는 것 같았으며 시야는 밝아졌다. 맨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차를 몰다가 속력을 내면서 느린 차들을 앞서가기 시작했다. 몸이 타오르는 느낌이 들자 창문을 내리고 머리카락을 스쳐 지나가는 뜨거운 바람을 맞자 젖어 있던 그의얼굴은 금세 말랐다. 코끝에서 무릎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을즐기면서, 달려오는 푸른 공기를 느끼면서 그는 자유로를 따라 빠르게 차를 몰았다. 타이어는 잿빛 함성을 질러 댔고 차의 흰색 천장은 춤을 추었다. - P229
색소폰의 음색은 긴 햇살처럼 맑았으며 그림자처럼 선명했다. 그는 자동차의 배기 소리보다 더 커지도록 라디오 볼륨을 높였고 자동차 서랍을 뒤져 먼지 낀 선글라스를 꺼내어 쓰고 깊은 녹색광선을 즐겼다. 그 속에서 색소폰 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밝고 아름다운 은빛 질주를 들려줬다 마치 쾌청하면서도 더운 날, 새들이 아무런 소리도 없이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구불구불한 해안도로를 따라 그는 차를 꺾었다. 느리게 커브를 돌면서 곁눈질로 태평양을 바라보았다. 곡선 차로가 끝나자 곧게 뻗은 푸른 대양의 거대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다리는 그 위로 저물고 있는 태양을 떠받치고 있었고 파도는 마치 갈매기 떼를 덮치려는 듯 바위와 모래사장 위에서 부서지고 있었다. - P230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운동장에서 그의 음악을 듣고 있다는사실이 느껴진다. 운동장에 수감자들이 흩어져 있는 방식에서 공간의 완벽함이 엿보인다. 비록 그는 여전히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지만 그것은 마치 점점 더 장벽 안에 갇히게 되는, 움직일 공간마저 줄어드는 무엇처럼 느껴진다. 결국에 그 선율이 할 수 있는 것은 통곡하는 것, 작은 감옥 벽에 머리를 부딪고 흐느끼는 누군가가 되는 것뿐이다. - P258
뒤틀린 음들의 일진광풍이 불었지만 솔로로 나갈 것 같은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누구도 움직이지 않는다. 죄수들은있던 그 자리에, 아트의 주위에 그냥 서 있다. 그는 캔버스에쓰러졌다가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는 권투 선수처럼 보인다. 마치 부러진 이처럼 불분명한 음들을 뱉어 내더니 심판의 카운트를 사다리로 삼아 자신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다. 죄수들은 듣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의 음악이 고귀한 것은 아니지만 위엄, 자기 존중, 자부심 혹은 사랑보다 더 깊은, 영혼보다 더 깊은 무엇에 관한 것임을 알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육체의 복원이다. 지금으로부터 세월이 흐른 후 그의 육체가 계속되는 고통의 저장고가 되어 갈 때 아트는 이날의 교훈을 떠올릴 것이다. 일어설 수 있다면 연주할 수 있고, 연주할 수 있다면 아름답게 연주할 수 있다. - P258
그런데 순간적으로 그는 비틀거린다. 무엇을 연주하고 있는지 잊은 채, 카운트의 여덟, 아홉 번째 난간을 붙잡는다. 그러더니 모든 것을 불러 모아 가장 높은 음을 향해 오른다. 결국 그 음에, 아주 정확하게, 도달한다. 깨끗하게 날아오른다. 도약의 가장 높은 곳에서, 중력이 다시 작동하기 전에, 완벽한무중력의 순간, 찬란하고 명징하고 고요한 순간이 온 것이다. 그러고는 다시 떨어진다.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면서 블루스의 깊은 탄식 속으로 잦아들면서 수감자들은 지금까지의 연주가 내내 무엇이었는지를 깨닫는다. 추락하는 꿈. - P259
부서질 수 있는지를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 동시에 침묵은 가시적인 것이다. 시간에 포착되어 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장소에 침묵이 존재하도록, 시간이 멈추도록 하기 위해서다. 뭔가는 반드시 침묵을 깨뜨린다. 그러면 시간은 다시 흘러간다. 교도관들은 갑자기 생성된 바리케이드와 같은 순간이 쌓여 가면서 긴장이 고조되어 감을 느낀다. 바리케이드를 통과하려고 하면 폭동을 유발할지도 모른다. 침묵은 군불을 땐다. 그 시간이 길수록 열기는 높아간다. 그보다 과격한 폭력은 결국 소음으로 폭발해서 터져 나올 것이다. 침묵은 금속과 고함과 불꽃의 굉음이 된다. 소총 안전핀을 제거하는 소리만으로도 폭동을 촉발하기에 충분하다. 그것은 마치 시계 초침의첫움직임처럼 작동해 현실을 일깨우고 시간을 흐르게 한다. 침묵은 천천히 넓어져 가는 지평선, 멀리 보이는 풍경과도 같으며 교도소의 벽을 무의미하고 사소한 것으로 만든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상관없는 존재처럼되어 버린 교도소장이 사무실에서 나와 그늘 속에 조용히 서있다. - P260
그러니까 그가 하고 있는 행위에 대해 최소한으로 의식할 때 최고의 연주가 나온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지점에 이르자 연주는 테크닉에 대한 자연스러운 망각 상태가 되었다. 이제, 자신의 만년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그는 음악에 완전히 몰두하는 단계에 이르렀고 자신에 대한 의식을 일상적으로 벗어나 거의 자동적으로 스스로를 넘어서서 연주한다. 모든 음이 블루스의 위안을 담고 있으며 심지어 단순한 악절도 마치 위대한 진혼곡처럼 듣는 이의마음을 찢어 놓는다. 이 점을 인식하자 그는 오랫동안 의아해하고, 의심하고 갈망해 온 점에 대해 확신에 가까운 것을 느낀다 인생을 조졌던 행위에도 불구하고 그의 재능은 탕진되지 않았다는 것.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유약함은 그에게 핵심적인 면이었다. 연주에서 그것은 힘의 원천이었다. - P261
모던 재즈의 역사는 이처럼 병실에서 생을·과장과 면마감하는 연주자들의 역사다. 흰색 벽과 의료진의 가운은 어둠과 음악으로 채워진 밤의 세계를 부정하는 듯하다. 심지어의사가 이야기하는 중에도 아트는 그가 말하는 내용을 잊어버린다. 일분마다 몇 초씩 잠이 드는 것 혹은 그렇게 해서 시간 속에서 몇 장면씩을 도려내는 것과도 같다. 그는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해 왔다. 그래서 마치 하루의 시간 리듬이 빨라져서 의식이 있는 몇 분과 30초 동안의 잠이 수시로 반복된다. 깜빡거림. 코카인, 헤로인, 메타톤 그리고 싸구려 와인 하루 4리터. 결국 그의 몸은 남용으로 금이 가고 그들에게 지배된다. 병과 수술은 그에게 손상과 공포를 남겼다. 비장脾臟은파열되어 들어냈고 그 후에도 폐렴, 탈장, 간 질환, 위 손상이이어졌다. 배는 부풀어 올랐다. - P262
의사는 화가 난 듯이 그를 쳐다보다가 한숨을 뱉고서는지금 자기 입장에서 더 이상 노력해 봤자 결국 쓸모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의사는 이 사람이 실질적으로 사고 정지의 가수면 상태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면담은 의사의 의자가 리놀륨 바닥 위에서 소리 없이 뒤로 미끄러지면서 끝났다. 진료기록을 뒤적이는 것은 회의장악수처럼 형식적인 행동이다. 그는 조용히 앉아 있던 부인에게 몇 가지를 설명한다. 부인은 남편이 지금이 몇 월인지를 모르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라도 된다는 듯 매번 미소만을 짓고 또 지었다. 반면에 환자 자신은 다시 좀비가되어 방 안을 훑어보고 있다. 의사는 평소보다도 더욱 알아보기 힘든 글씨로 공책에몇 가지를 휘갈겨 적는다. 그 가운데는 이 환자가 녹음했다는음반 몇 장을 잊지 말고 들어 봐야 한다는 메모도 포함되어있었다. - P26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