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부아르, 여성의 탄생 문제적 인간 15
케이트 커크패트릭 지음, 이세진 옮김 / 교양인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읽기를 마친 후, 오래 오래 표지의 사진을 보고있게 된다. 읽기 전에 매료된 사진이지만 읽고 난 후엔 그가 보고 있는 저 너머의 시선에 벅차오르는 감동이 담긴다. 이제서야 제대로 시몬느를 만나게 되었다는 자책과 반성도 함께. 미친듯이 공부하고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여정의 삶을 닮고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동기가 이기적인 부분도 있다고 인정하겠습니다. 대부분의 교육받지 못한 영국 여성들처럼 나도 독서를 좋아합니다. 다독하는 게 좋습니다. 최근의 책들은 단조로워졌습니다. 역사서는 너무 전쟁 편향이고, 전기문은 훌륭한 남성들에 치우치고, 시는 빈약한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은, 내가 현대 소설 비평가로서 무능력을 충분히 드러냈으니 그 이야기는 그만하겠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에게, 주제가 아무리사소하거나 광범위해도 망설이지 말고 모든 종류의 책을쓰라고 요구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여러분이 여행하고 느긋하게 지낼 비용을 확보하면 좋겠습니다. 세상의미래나 과거를 사유하고, 책을 보면서 꿈꾸고 길모퉁이를배회하고 생각의 낚싯줄을 강물 깊이 드리울 수 있는 돈을갖기 바랍니다. 비단 소설에 한정 지으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나를, 또 나 같은 사람 수천 명을 기쁘게 하려면 여행, 모험, 조사, 연구, 역사, 전기, 비평, 철학, 과학을 다루는 책을 쓰기 바랍니다. 그러면 틀림없이 소설이라는 예술에 득이 될 겁니다. 책들은 서로 영향을 미치는 일면이 있으니까요. 소설이 시와 철학 옆에 꼭 붙어 있으면 훨씬 좋을 겁니다. 더욱이 사포, 무라사키, 2 에밀리 브론테 같은과거의 걸출한 인재들을 생각하면, 이 여성 작가가 창시자이면서 계승자임을 알게 될 겁니다. 여성들이 자연스럽게글 쓰는 습관을 갖게 된 덕분에 그녀가 존재하게 된 것이므로 시의 서곡 삼아서라도 그런 작업은 소중할 겁니다. p151. 152


1928년 10월 46세, 캠브리지 대학에서 두 차례의 강연을 함. 그중 하나가 <자기만의 방> 기초가 됨.

그건 공과금을 내거나 긴급한 상황에서 도리를지키는 것과 무관합니다. 소설가의 경우 진면목은 독사에게 이게 진실이라고 믿게 하는 일면입니다. 독사가 이렇게느낍니다. 그래, 이렇게 될 수 있었다는 걸 미리 알았어야했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처신한다는 걸 까맣게 몰랐네.
그런데 당신은 그렇다고,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내게 확신을 줬네. 독자는 책을 읽으면서 모든 구절을, 모든 장면을빛에 비추어 봅니다. 이상하게도 자연은 우리에게 소설가의 진면목이나 허위를 판단할 내적인 빛을 주는 듯합니다.
아니면 자연은 가장 비이성적인 기분일 때 보이지 않는 잉크로 마음의 벽에 위대한 예술가들만 확인할 수 있는 예언을 적어 놓은 것 같습니다. 혹은 천재의 불에 비춰야만 보이는 밑그림을 그려 놨거나. 그런 작품이 드러나서 살아나는 것을 본 사람은 황홀해서 감탄합니다. 이거야말로 내가늘 느끼고 알았고 원했던 거야! 그러면 그는 흥분해서 달아올라 찬양하면서 책을 덮고 귀중품인 양, 사는 동안 의지할 지지자라도 되는 양 서가에 꽂지요. 나는 『전쟁과 평화를 집어서 제자리에 꽂으면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한편 독자가 시험해 보는 형편없는 문장들은 처음에는 화사한 색감과 현란한 몸짓으로 신속하고 뜨거운 반응을 일으키지만 중단됩니다. 또는 빛에 갖다 대면 저쪽 구석의 회미하게 적인 자국과 저쪽에 얼룩만 보일 뿐 온전하고 완전한 것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 P102

 소설은 현실과 상응하므로 그 가치는 어느 정도 현실의가치입니다. 하지만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가치와 여성들이 보는 가치는 다른 경우가 비일비재할 게 분명합니다.
당연히 그렇지요. 하지만 통용되는 것은 남성적인 가치입니다. 대충 말하자면 축구와 스포츠는 중요 하지만, 패션추종과 의상 구입은 시시하지요. 그리고 이런 가치관이삶에서 문학으로 전이될 수밖에 없습니다. 비평가는 이 책은 전쟁을 다루므로 중요한 작품이라고 봅니다. 이 책은응접실에 있는 여자들의 감정을 다루므로 별 볼일 없다고평합니다. 전투 장면이 상점 장면보다 중요하지요. 어디서나, 또 더욱 교묘하게 가치의 차별이 난무합니다. 따라서19세기 초 여성들이 쓴 소설의 전반적인 구조는, 슬쩍 눙치고 외부의 권위를 고려해 명료한 시각을 변조하는 방식으로 조성되었습니다. 오래전에 잊힌 소설들을 훑어보고문투를 잘 살피면 작가가 비난을 타개하는 중임이 금방 짐작됩니다. 그녀는 공격적으로 이런 말을 하거나 회유하면서 저런 말을 했습니다. 자신이 여성에 불과하다고 인정하거나 남성 못지않게 훌륭하다고 항의했습니다. 여성작가는 기질대로 온순하고 수줍게, 또는 분노하면서 강력하게 비난을 타개했습니다.  - P104

더 밀도 있고, 장시간 방해 없이 작업할 필요가 없게 형태를 갖춰야 한다고 말할 겁니다. 언제나 방해를 받을 테니까요. 또 뇌에 든 신경은 남녀가 다른 것 같으니 신경이가장 잘, 가장 열심히 일하게 하려면 어떻게 다룰지 방법을 알아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수백 년 전쯤 수도사들이고안한 이런 장시간의 강의가 신경에 적합한지. 일과 휴식을 어떻게 교대해야 할지. 휴식을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닌 다른 뭔가를 하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그 차이가 무엇인지. 이 모든 걸 토론하고 찾아내야겠지요. 이 모든 게《여성과 소설이라는 문제의 일부분입니다. 하지만 다시서가로 가면서 생각했습니다. 여성이 쓴 상세한 여성 심리연구서를 어디 가야 찾을 수 있을까? 여성들이 축구 경기를 하지 못한다고 해서 의사가 되는 게 허용되지 않는다면...
다행스럽게도 이제 내 생각은 다른 방향으로 전환했습니다.
- P110

문장에서 문장으로 매끄럽게 넘어가는 게 방해받았습니다 뭔가 찢기고 뭔가 했고, 여기저기서 한 단어가 눈앞에 횃불을 번뜩였습니다. 작가는 옛 희곡에서 말하듯 자신을 놓아 버렸 습니다. 그녀가 켜지지 않을 성냥을 그어 대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난 그녀가 옆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물었습니다. 제인 오스틴의 문장들은 당신에게 적당한 형태가 아니던가요? 엠마와 우드하우스 씨가죽었다고 문장 모두를 폐기 처분해야 되는 건가요? 한숨이 나왔습니다. 아쉬워라, 그래야 했는데, 모차르트가 노래에서 노래로 넘어갈 때 그러듯 제인 오스틴은 멜로디에서 멜로디로 넘어가면서 숨을 돌리는 반면, 이 글을 읽는것은 돛단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파도를타고 솟구치다가 쑥 가라앉았습니다. 이 간결함, 이 짧음은 메리 카마이클이 뭔가를 두려워한다는 뜻이었겠지요.
아마 감상적 이라는 말을 들을까 겁났을 겁니다. 혹은 여성들의 글이 꽃처럼 너무 화려하다는 게 기억나서 가시를과하게 주입한 거지요.  - P113

말총처럼 뻣뻣하거나 깃털 처럼 보드랍습니다. 어느 거리의 어느 방이든 들어가면,
극도로 복잡다단한 여성다움의 힘이 얼굴로 날아듭니다.
어떻게 그러지 않겠습니까? 여성들은 수백만 년 동안 방에 박혀 살았으니 이즈음 벽마다 그들의 창의력이 스며들었고, 그 힘을 벽돌과 모르타르가 감당하지 못하기에, 그것 스스로 펜, 붓, 붓, 사업, 정치에 붙들어 매야 합니다. 하지만 이 창의력은 남성들의 창의력과 아주 다릅니다. 그래서 그것이 방해받거나 낭비되면 천만번 통탄할 일이 된다.
고 결론지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능력은 수 세기에 걸친 맹렬한 단련으로 얻었고, 그 자리를 대신할 게 없기 때문입니다. 여성들이 남성들처럼 글을 쓰거나 산다면, 남성들 같아 보인다면 천만번 통탄할 일이 될 겁니다. 세상이넓고 다양한 것을 고려하면 양성으로도 몹시 부족한 마당에 하나의 성으로만 어떻게 꾸려가겠습니까 - P123

여가라는 바람직한 것들이 충분치 않은 침실 겸 거실에서첫 소설을 쓰는 무명의 여성인 점을 고려하면, 그리 나쁘지 않게 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사람들의 코와 맨 어깨가 별이총총한 하늘을 배경으로 드러났습니다. 누군가 거실의 커튼을 당겨 놓았거든요 ㅡ 그녀에게 백 년 더 주자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녀에게 자기만의 방과 연간 5백 파운드를주자고, 그녀에게 마음을 말하고 지금 넣은 것의 절반을덜어 내게 하면 그녀는 곧 더 좋은 작품을 쓸 겁니다. 나는메리 카마이클 작 『인생 모험을 서가 끝에 넣으면서 말했습니다. 백 년 뒤 그녀는 시인이 될 거야.
- P132

우리도 그 경건한 소망에 가담해도 좋겠지만 시가가 배양기에서 나올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시는 아버지만이아니라 어머니도 있어야 하니까요. 파시스트 시가 어느 읍박물관에 있는 유리 단지에 담긴 것처럼 끔찍하게 발육 부전이 될까 염려스럽습니다. 그런 괴물들은 오래 못 산다고하고, 그런 부류가 들판에서 풀을 뜯는 기이한 일은 본 적이 없습니다. 몸 하나에 머리가 둘인 것은 수명이 길지 않습니다.
하지만 굳이 비난해야 한다면, 모든 책임은 남녀, 한쪽에 있지 않습니다. 모든 선동가와 개혁가들의 책임입니다.
그랜빌 경에게 거짓말할 때의 레이디 베스버러, 그레그에게 진실을 말할 때의 미스 데이비스, 성별을 의식하는 상태를 자초한 모두가 비난받아야 하고, 그들은 내가 책에능력을 쏟고 싶을 때 그 행복한 시대에서 모색하게 만듭니다.  - P144

좀 혼재되지 않으면 지성이 우세해서마음의 다른 특징들이 굳어져 메마를 테니까요. 하지만 이것이 과도기일 거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달랬습니다. 생각의 추이를 밝히겠다는 약속에 따라서 한 말은 대개 철 지난얘기일 겁니다. 내 눈에서 타는 불꽃 대부분은 아직 성년이 안 된 여러분에게 의심스러워 보일 거고요.
나는 책상으로 걸어가서 <여성과 소설이라고 적힌 종이를 집으면서 말했습니다. 그래도 여기 쓰고 싶은 첫 문장은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의 성별을 생각하는 것은 치명적입니다지요. 순전히 단순하게 남자거나 여자인 것은치명적입니다. 남성스러운 여성이나 여성스러운 남성이되어야 합니다. 여성이 불만을 조금이라도 강조하면 치명적이지요. 대의명분이 있어도 안 됩니다.  - P145

지난 백 년쯤 되는 사이 위대한 시인들의 이름이라면?
콜리지, 워즈워스, 바이런, 셀리, 랜도, 키츠, 테니슨, 브라우닝, 아널드, 모리스, 로제티, 스윈번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이들 중 키츠, 브라우닝, 로제티를 뺀 전원이 대학 출신이었고, 세 명 가운데 한창때 꺾여 요절한 키츠만 유일하게 유복하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면 매몰차고 슬프기도 하지만, 시적인 천재성이 내키는 곳으로 빈부 차별 없이 불어 간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게 확고한 사실이다. 확고한 사실을 보자면, 그 열두 명 중 아홉 사람이 대학 출신이라는 것은 영국이 주는 최고의 교육을 받을 재원을 조달했다는 뜻이다. 확고한 사실을 보자면 남은 세 사람 중 브라우닝은 유복했고, 장담하거니와 그가 부유하지 않았다 - P149

그리고 여성들은 비단 2백 년 동안이 아나라 태초부터 늘 가난했습니다. 여성들은 아테네의 노예아들보다도 지적인 자유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여성들은 시를 쓸 기회가 아주 적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내가 돈과 자기만의 방을 그렇게 강조한 이유입니다. 하지만우리가 더 알고 싶은 과거의 무명 여성들의 수고 덕에, 또이상스럽게도 두 번의 전쟁, 즉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을 거실에서 끌어낸 크림 전쟁과 60년 뒤쯤 발발해서 보통여성에게 문을 열어 준 유럽 전쟁 덕에 이런 악조건은 향상되는중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오늘 밤 여러분은 이 자리에 있지도 않을 테고, 여전히 위태롭고 염려되지만 여러분이 연간 5백 파운드를 벌 확률은 극히 미미할 것입니다.
여전히 여러분은 항의할 겁니다. 왜 당신은 여성들의 책집필을 그렇게 중시하지요? 당신 말로는 무척 큰 노력이요구되는 일이고, 어쩌면 숙모들의 죽음을 초래하고, 오찬에 늦는 건 확실하고, 대단히 훌륭한 사람들과 아주 심각한 언쟁을 벌이기 십상인 일이라면서요? 내 동기가 이기적인 부분도 있다고 인정하겠습니다. 대부분의 교육받지 못한 영국 여성들처럼 나도 독서를 좋아합니다. 다독하는 게 좋습니다. 최근의 책들은 단조로워졌습니다. 역사서는 너무 전쟁 편향이고, 전기문은 훌륭한 남성들에 치우치고, 시는 빈약한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은, 내가 현대 소설 비평가로서 무능력을 충분히 드러냈으니 그 이야기는 그만하겠습니다. - P151

이후에 더 골똘히 보게되고, 세상이 덮개를 벗기고 더 강렬한 삶을 주는 것 같습니다. 리얼리티가 아닌 것과 적대적으로 사는 이들은 부러운 사람들입니다. 또 모르거나 신경 쓰지 않고 한 일에 뒤통수를 맞는 이들은 딱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돈을 벌고 자기만의 방을 가지라고 권하는 것은, 리얼리티와 직면해서 살라는 뜻입니다. 알려 줄 수 있는 아니는 활기찬 삶이 나타날 겁니다.
여기서 그만두고 싶지만, 모든 강연은 맺는말로 마무리해야 한다는 관습의 압박이 있군요. 또 여성들에게 주는맺는말은 특별히 강화하고 고양시키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는 데 여러분도 동의할 겁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책임을기억하라, 더 숭고해지라, 더 영적이 되라고 당부해야 할겁니다. 얼마나 많은 게 여러분에게 달려 있는지, 여러분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상기시켜야 마땅하겠지요. 하지만 그런 권고들은 안전하게 남성들에게 맡겨도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내가 구사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달변으로 조언할 테고 사실 그래 왔습니다.
내 마음을 뒤져 봐도, 동반자가 되고 평등해지고 세상이더 고양된 목적을 갖도록 영향을 미치는 데 대한 고귀한 정서가 없네요. 나도 모르게 간단하고 지루하게 말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자기다워지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말이지요.
- P154

이 원고에서 세익스피어에게 누이가 있었다고 말했지만, 시드니 리 경‘의 시인 일대기에서 찾아보지는 마십시오. 그 누이는 젊어서 죽었습니다. 안타깝게도 한 줄도 씨지 못했지요. 그녀는 <앨리핀트 앤드 캐슬 맞은편의 승합차 정류장이 있는 곳에 묻혀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한 줄도 못 쓰고 교차로에 묻힌 이 시인이 아직 살아 있다고 믿습니다. 그녀는 여러분 안에, 내 안에, 설거지하고 아이들을 재우느라 오늘밤 여기 오지 못한 많은 여성들 안에 있습니다. 그녀는 살아 있습니다. 위대한 시인은 죽지 않으니까요. 그들은 계속 존재합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속에서 실제로 거닐 기회뿐입니다. 내 생각에 지금 그녀에게 줄 기회는 여러분의 능력 안에서 나옵니다. 왜냐면우리가 백 년쯤 더 살고 - 이것은 개인으로 사는 분리된각각의 삶이 아니라 실질적인 삶인 공동의 삶을 말합니다.
- 각자 연간 5백 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을 갖는다면, 생각을 고스란히 쓰는 자유와 용기를 습관화한다면, 공동 거실에서 조금 빠져나와 인간들을 서로의 관계만이 아니라 리얼리티와의 관계로 바라본다면, 또한 하늘이든 나무든 무이라도 그 자체를 본다면, 어떤 인간도 시야가 가려지면되므로 밀턴의 악령을 지나서 본다면, 매달릴 팔 없이 - P158

혼자 가야 하며 우리의 관계가 남녀 세계에 국한되지 않고리얼리티 세계와 관련된다는 사실을 - 그게 사실이므로- 직시한다면, 그러면 기회가 오고 셰익스피어의 누이 같은 죽은 시인이 그리도 자주 내려놓았던 몸을 입을 겁니다.
앞서 오빠인 셰익스피어가 그랬듯, 앞서간 무명 시인들의삶에서 자신의 삶을 끌어내면서 그녀는 태어날 겁니다. 그런 준비 없이는, 우리의 노력 없이는, 그녀가 환생하면 시를 쓰며 살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주겠다는 각오 없이는 그녀가 오리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건 불가능할 테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그녀를 위해 노력하면 그녀가 올 거라고,
그러니 가난하고 불확실한 처지더라도 노력하는 게 가치있다고 분명히 말하겠습니다.
- P15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소설이나 시를 쓰려면1년에 5백 파운드와문을 잠글 수 있는방 한 칸이 필요하다.

한데 우린 여성과 소설에 대한 강연을 요청했는데, 그것과 자기만의 방이 무슨 관련이 있나요?)라고 물을지 모르겠네요. 설명해 보지요. 나는 여성과 소설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는 청탁을 받자 강둑에 앉아 그 말의 의미를 궁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저 패니 버니‘와 관련해 몇 마디 언급하고 제인 오스틴에 대해 몇 마디 더 말하라는 뜻일 수도있었습니다. 브론테 자매들을 격찬하고 눈 내린 하워스사제관 이야기를 간단히 하는 것. 가능하면 미트퍼드에 대해 재담을 던지고, 조지 엘리엇에 대한 존경심을 밝히고,
개스켈‘을 언급하는 정도면 됐을 겁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하니 이 제목이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더군요. 여성과 소 - P7

설이라는 제목은 여성과 그들이 이민 주제인 MIN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의도있을지 모다. 혹은 여성과 여성이 쓰는 소설을 뜻하거나, 여성성에 대해 집필되는 소설을 뜻할 수도 있있지요.. 아니면 그세 가지가 밀접하게 얽혀 있고, 여러분은 내가 그런 건지서 고민하기를 바랄 수도 있을 테죠. 가장 흥미로워 보이는마지막 관점에서 주제를 고심하기 시작하니 곧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는 걸 알았습니다. 내가 결론을 내리지 못하리란 점이지요. 한 시간의 토론이 끝나면, 강연자가 알려준 순수한 진실 덩어리가 여러분의 공책 갈피에 담겨 영원히 벽난로 선반에 꽂혀야 합니다. 그게 강연자의 첫 번째의무지만 난 그러지 못할 터였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해봐야 사소한 부분에 대해 견해를 밝히는 정도였습니다. 여성이 소설을 쓰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된다는 점 말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알게 되겠지만,
그것은 여성의 본질과 소설의 본질이라는 중대한 문제를미제로 남깁니다. 나는 이 두 문제에 대해 격로 1기 1In - P8

그저 어떤 의견을 어떻게 갖게 되었는지 밝힐 수 있을 따름이지요. 청중에게 강연자의 한계, 편견, 특성을 지켜보면서나름의 결론을 도출할 기회를 줄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진실은 사실보다 소설에 더 많이 담겼을 겁니다. 따라서 나는 소설가가 누리는 자유와 권리를 총동원해서 여기 오기이틀 전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내 어깨에 지워준 무거운 주제에 얼마나 짓눌리고 고심하면서 일상의안팎에서 모색했는지 말해 보지요. 이야기에 등장하는 요소들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옥스브리지는 가상의 공간이고 퍼넘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실존하지 않는 누군가를 편리하게 지칭하는 대명사일 뿐입니다. 내 입에서 거짓말이 술술 나올 테지만 간간이 진실도 섞일 겁니다. 이 진실을 찾는 것도, 어느 대목이간직할 만한지 결정하는 것도 여러분입니다. 그럴 만한 게없다면 이야기를 통째로 쓰레기통에 던지고 싹 잊으면 그뿐입니다.
- P9

주디스는 이 신사의 아이를 임신했음을 알았.
고 그래서 시인의 심장이 여성의 몸속에 붙들려 뒤엉칠때의 그 열기와 격렬함을 누가 가늠할까요? --- 어느 겨울밤 목숨을 끊었고, 지금 〈엘리펀트 앤드 캐슬‘ 외곽의 승합차 정류장이 있는 교차로에 묻혀 있습니다.
셰익스피어 시대에 어떤 여성이 대문호 같은 천재성을지녔다면 이 비슷하게 이야기가 흘러갈 것입니다. 하지만내 경우 그 죽은 주교에게, 그가 주교라면요, 동의합니다.
셰익스피어 시대에 어떤 여자가 대문호 같은 천재성을 가졌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습니다. 셰익스피어 같은 천재는 노동하고 교육받지 못한 하인 계층에서 태어나지 않으니까요. 영국에서는 색슨족과 브리턴족 중에 그런 인물이태어나지 않았습니다.  - P47

면, 여성들은 아이 방에서 나오기 무섭게 노동을 시작했고, 부모가 억지로 일을 시켰고, 모든 법과 관습의 권력이일하게 만들었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어떤 부류의 천재는노동자 계층뿐 아니라 여성들 속에도 존재했을 게 분명합니다. 이따금 에밀리 브론테나 로버트 번스가 타올라서그 존재를 입증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그게 저절로 종이에옮겨지지는 않았겠지요. 그러나 따돌림 당한 마녀, 귀신들린 여자, 약초를 파는 여성 현자에 대한 글을 읽을 때, 혹은 어머니를 둔 대단히 뛰어난 남성에 대한 글을 읽을 때면 어느 자취 없는 소설가나 억압받은 시인의 흔적과 만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말 없는 무명의 제인 오스틴을.
재능이 안겨 준 괴로움에 미쳐서 머리를 싸안고 황무지를헤매거나 큰 도로 주변에서 찡그리는 에밀리 브론테를 사실 수많은 시를 쓰고도 노래하지 않은 무명씨는 여성인 경우가 대다수이리라 추측하고 싶습니다. 에드워드 피츠제럴드가 자녀에게 읊조리거나 물레질을 하며 기나긴 겨울밤에 발라드와 민요를 지은 존재라고 말할 때 여성을 암시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 P48

 16세기에 그런 마음 상태를 가진 여성을 찾기란 확실히불가능했습니다. 엘리자베스 시대에 묘비를 에워싼 어린자녀들이 무릎을 꿇고 손을 모은 것만 생각해도 알 수 있지요. 그들의 요절, 어둡고 비좁은 방들이 들어찬 집을 보면당시 어떤 여성도 시를 쓸 수 없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상당히 나중에 어느 지체 높은 귀부인이 비교적 자유롭고안락한 삶 덕에 본인 이름으로 출판하면서 괴물로 취급될위험을 감수하리라 기대할 따름이지요. 난 리베카 웨스트의 얼토당토않은 여성 해방론>을 신중하게 피하면서, 물론 남성들이 속물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어느 백작 부인이 시를 쓰는 노력을 공감하며 인정합니다. 지체 있는 귀부인은 당시 무명의 오스틴이나 브론테가받았을 격려보다 더 큰 격려를 받았으리라 짐작됐습니다.
- P81

잠시 이런 궁리를 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살럿 브론테가 말하자면 연간 3백 파운드를 소유했다면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이 어리석은 여성은 소설들의판권을 1천5백 파운드에 팔았습니다. 바쁜 세상, 도시들,
들어 보긴 했어도 보지는 못한 활기가 넘치는 지역들에 대해 더 많이 알았다면, 더 많은 실질적인 경험을 하고 같은부류와 더 많이 교제하고, 더 다양하게 사귀었다면 어떻게됐을까요. 이 말에서 그녀는 소설가로서 자신의 결핍뿐만아니라 당시 여성들의 결핍을 지적합니다. 천재성을 먼 들판을 홀로 내다보는 데 쏟지 않았다면 천재성이 얼마나 꽃을 피웠을지 그녀는 알고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잘 알았지요. 경험, 교제, 사귐, 여행이 허용되었다면 어땠을까요. 하지만 그런 것은 허용되지 않고 제한되었습니다. 빌레트』,
『엠마』, 『폭풍의 언덕』, 『미들마치 같은 훌륭한 소설들이고상한 사제관 생활 이상의 인생 경험이 없는 여성들의 손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인정해야겠지요. 그들 중 한 명인조지 엘리엇은 큰 시련을 겪은 뒤 달아났지만, 고작 세인트 존스 우드의 외진 저택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녀는 손가락질하는 세상의 그늘에 자리 잡았습니다.  - P9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자신을 움츠리라고, 자신을위축시키라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야망을 품는 것은 괜찮지만 너무 크게 품으면 안 돼, 성공을 목표로 삼아도 괜찮지만 너무 성공해서는 안 돼.‘ (…) 페미니스트: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
학자이자 작가인 자넬 홉슨 Janell Hohson 이 아디치에를만났다. 두 사람은 페미니즘에 대해서, 그녀의 소설에 대해서, 영화화에 대해서, 종교적 극단주의에 대해서, 흑인의 경험을 더욱 복잡한 것으로 묘사하는 것에 대해서, 인터넷 문화에 대해서, 그리고 글쓰기로 다리를 놓는 것에대해서 이야기했다. p77



오콜로마는 내 어린 시절 가장 좋은 친구 중 하나였습니다. 오콜로마는 우리 집과 같은 골목에 살았고, 나를 친오빠처럼 돌봐주었습니다. 나는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생기면 오콜로마에게 의견을 묻곤 했지요. 오콜로마는 재미있었고, 지적이었고, 끝이 뾰족한카우보이 부츠를 신었습니다. 그리고 2005년 12월, 나이지리아 남부에서 발생한 비행기 추락 사고로 죽었습니다. 내 기분을 표현하기란 여전히 어렵습니다. 오콜로마는 내가 함께 논쟁할 수 있는 사람,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 함께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처음으로 나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른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열네살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우리는 오콜로마의 집에서 무언가에 대해 언쟁하고 있었습니다. 둘 다 책에서 배운 설익은 지식으로 가득 차 있던 때였지요. 논쟁의 주제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한참 주장하고 또 주장했더니 오콜로마가 내게 이렇게 말했던 것은 똑똑히 기억납니다. "있잖아, 너 꼭 페미니스트 같아."
- P11

그는 내게 사람들이 내 소설을 두고 페미니즘적이라고수군거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충고하기를, 이 말을하면서 그는 슬픈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는데요, 나더러 절대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페미니스트란 남편을 얻지 못해서불행한 여자를 말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행복한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이지리아 여성인 웬 학자가 나더러페미니즘은 나이지리아 문화가 아닌 비아프리카적인것이며 내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일컫는 것은 서구의책에 영향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지적은 꼭흥미로웠는데, 왜냐하면 내가 어릴 때 읽었던 책 대부분이 분명 반反페미니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열여섯살까지 나는 당시 출간되었던 밀스앤분 Mills & Boson‘의 로맨스소설을 아마 한권도 안 빼고 다 읽었을 걸요. 그리고 "페미니즘 고전" 이라고 불리는 책들은 시도할 때마다 따분해져서 끝까지 읽으려면 안간힘을 써야만 했습니다.) - P13

아무튼 페미니즘이 비아프리카적이라고 하니까, 나는이제 스스로를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친한 친구 하나가 나더러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일컫는 것은 남자를 미워한다는 뜻이라고 말해주더군요. 그래서 나는 이제 스스로를 ‘남자를 미워하지 않는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했습니다. 그러다 더 나중에는 ‘남자를 미워하지 않으며남자가 아니라 자기자신을 위해서 립글로스를 바르고 하이힐을 즐겨 신는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대체로 농담이었지만, 이것만 보아도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에 얼마나 많은 함의가 깔려있는가, 그것도 부정적인 함의가 깔려 있는가를 잘 알 수있습니다.
페미니스트는 남자를 싫어하고, 브래지어도 싫어하고,
아프리카 문화를 싫어하고, 늘 여자가 우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화장을 하지 않고, 면도도 하지 않고, 늘화가 나 있고, 유머감각이 없고, 심지어 데오도란트도 안쓴다는 거지요..
- P14

시험에서 이등을 한 아이는 남자아이였습니다. 그러니 그 남자아이가 반장이 될것이라고 했습니다.
더욱더 재미있었던 점은, 그 남자아이는 회초리를 들고 교실을 순찰하는 데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는 상냥하고 온화한 아이였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나는 너무너무 그러고 싶었지요..
하지만 나는 여자였고, 그 아이는 남자였으므로, 그 아이가 반장이 되었습니다.
나는 이 사건을 내내 잊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거듭 반복하면, 결국 그 일이 정상이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거듭 목격하면, 결국 그 일이정상이 됩니다. 만일 남자아이만 계속해서 반장이 되면,
결국 우리는 무의식적으로라도 반장은 남자여야 한다고생각하게 됩니다. 만일 남자들만 계속해서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을 목격하면, 차츰 우리는 남자만 사장이 되는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기게 됩니다.
- P16

더 많이 받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남자이기 때문에,
그러니 남자들은 말 그대로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합리적인 현상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천년 전에는요. 당시에는 육체적 힘이 생존에 가장 중요한자질이었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강한 사람이 지도자가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남자가육체적으로 더 강합니다. (물론 예외도 많지만요.)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전혀 다릅니다. 오늘날 지도자가 되기에 알맞은 사람은 육체적으로 더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더 지적이고, 더 많이 알고, 더 창의적이고,
더 혁신적인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런 자질들을 좌우하는 호르몬은 없습니다. 남자 못지않게 여자도 지적일 수있고, 혁신적일 수 있고, 창의적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진화했습니다. 그러나 젠더에 대한 우리의 생각들은 아직 충분히 진화하지 못했습니다.
- P21

얼마 전에 나는 라고스에서 젊은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관한 글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는 사람 하나가 그 글을 읽고는 성난 글이었다며, 그렇게 성난 투로이야기해서는 안 되었다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나는 반성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로 성이 나니까요. 오늘날 젠더가 기능하는 방식은 대단히 불공평합니다. 나는 화가 납니다. 우리는 모두 화내야 합니다. 분노는 예로부터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었습니다.
그리고 분노에 더해 내게는 희망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더 나은 자신으로 변하는 능력이 있다고 굳게 믿기 - P23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남자아이들이 그들을 어떻게생각하는지 걱정하도록 가르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쏟습니다. 하지만 거꾸로는 하지 않습니다. 남자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호감 가는 사람이 될지 걱정하도록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화내선 안되고 공격적이어선 안 되고 터프해서도 안 된다고 가르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쏟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나쁘지만 더구나 돌아서서는 똑같은 행동을 한 남자들을칭찬하거나 면책해줍니다. 전세계 어디에나 여자들에게남자의 마음을 끌거나 남자를 기쁘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잡지며 책이 넘쳐납니다. 그에 비해 남자들에게 여자를 기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치는 글은 훨씬 적습니다.
- P27

이것은 협박입니다. 결혼을 망칠 거라는 말, 아예 결혼하지도 못할 거라는 말은 우리 사회가 남자보다 여자에게 훨씬 더 많이가하는 협박입니다.
젠더는 세계 어디에서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리고지금 나는 여러분에게 현재와는 다른 세상을 꿈꾸고 계획하는 일에 함께 나서자고 요청합니다. 지금보다 좀더공정한 세상을, 스스로에게 좀더 진실함으로써 좀더 행복해진 남자들과 좀더 행복해진 여자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 딸들을 지금과는 다르게 키우는 것입니다. 우리아들들도 지금과는 다르게 키워야 합니다.
- P28

그런데, 우리가 남자들에게 저지르는 몹쓸 짓 중에서도 가장 몹쓸 짓은, 남자는 모름지기 강인해야 한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그들의 자아를 아주 취약하게 만든다는것입니다. 남자들이 스스로 더 강해져야 한다고 느낄수록 사실 그 자아는 더 취약해집니다.
또한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도 대단히 몹쓸 짓을 하고있습니다. 여자아이들에게는 남자의 그 취약한 자아에요령껏 맞춰주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자신을 움츠리라고, 자신을 위축시키라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야망을 품는것은 괜찮지만 너무 크게 품으면 안 돼. 성공을 목표로 삼아도 괜찮지만 너무 성공해서는 안 돼. 그러면 남자들이위협을 느낄 테니까.  - P31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남자아이들이 그들을 어떻게생각하는지 걱정하도록 가르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쏟습니다. 하지만 거꾸로는 하지 않습니다. 남자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호감 가는 사람이 될지 걱정하도록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화내선 안되고 공격적이어선 안 되고 터프해서도 안 된다고 가르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쏟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나쁘지만 더구나 돌아서서는 똑같은 행동을 한 남자들을칭찬하거나 면책해줍니다. 전세계 어디에나 여자들에게남자의 마음을 끌거나 남자를 기쁘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잡지며 책이 넘쳐납니다. 그에 비해 남자들에게 여자를 기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치는 글은 훨씬 적습니다.
- P37

어떤 사람들은 묻습니다. "왜 페미니스트라는 말을죠? 그냥 인권옹호자 같은 말로 표현하면 안되나요?" 왜안 되느냐 하면, 그것은 솔직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페미니즘은 전체적인 인권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인권이라는 막연한 표현을 쓰는 것은 젠더에 얽힌 구체적이고 특수한 문제를 부정하는 꼴입니다. 지난 수백년 동안 여성들이 배제되어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하는꼴입니다. 젠더 문제의 표적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꼴입니다. 이 문제가 그냥 인간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콕 집어서 여성에 관한 문제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꼴입니다. 세상은 지난 수백년 동안 인간을 두 집단으로 나눈 뒤 그중 한 집단을 배제하고 억압해왔습니다. 그 문제에 관한 해법을 이야기하려면, 당연히 그 사실부터 인정해야 합니다.
어떤 남자들은 페미니즘이란 개념에 위협을 느낍니다.
내 생각에 그런 반응은 남자아이들이 자라면서 받았던교육, 즉 그들은 남자니까 "당연히 우위를 차지해야 하며 만일 그러지 않는다면 그들의 자존감이 훼손될 거라는 가르침이 야기한 불안감 탓입니다.
- P44

문화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문화는 결국 사람들을 보존하고 영속시키기 위해서 기능합니다. 우리 집안에서우리 가문의 사연, 선조들이 살았던 땅 그리고 가문의 전통에 관심이 제일 많은 사람은 나입니다. 남자 형제들은나보다 관심이 적습니다. 그러나 나는 가문의 중요한 결정들이 내려지는 모임에 참석할 수 없습니다. 이보 문화는 남성 위주 문화이고, 그런 자리에는 남자만 참석할 수있지요. 그래서 나는 그런 일에 가장 관심이 많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참석할 수 없습니다. 내게는 공식적인 발언권이 없습니다.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문화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문화를만듭니다. 만일 여자도 온전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정말 우리 문화에 없던 일이라면, 우리는 그것이 우리 문화가 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그렇게 만들 수 있습니다.
- P49

그리고 오콜로마가 오래전 했던 말은 옳았습니다. 그가 그날나를 페미니스트라고 불렀던 것은 옳았습니다.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그리고 오래전 그날 내가 사전을 찾아보았을 때,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페미니스트: 모든 성별이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
내가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우리 증조할머니는 페미니스트였습니다. 할머니는 결혼하기 싫은 남자의 집에서달아나 자신이 선택한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할머니는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에 토지에 대한 소유권과 접근권을박탈당한다고 느끼자 그에 대해 거부했고, 항의했고, 나서서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할머니는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페미니스트가아니었던 것은 아닙니다. 좀더 많은 사람들이 이 단어를되찾아야 합니다. 내가 아는 가장 훌륭한 페미니스트는내 남동생 케네입니다. 케네는 다정하고, 잘생기고, 대단히 남자다운 청년입니다.  - P51

그것은 여성의 미덕과 여성의 수치에 관한 의식이었다. 따져 묻지 않고 제대로 수행하면 주류사회로부터 인정받도록 해주는 많은 의식 중하나였다. 여자답게 앉으라는 것은 더 큰 의식의 작은 예시일 뿐이었다. 여자답게 늘 조용하고 온화해야 한다. 큰소리 내지 말고, 화내지 말고, 터프하게 굴지 말고, 지나친 야심을 품지 말아라.
나는 그런 의식들을 수행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편한자세로 앉고 싶었다. 나중에 나는 친웨 아줌마의 온 인생이 그런 여성성의 의식들을 수행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는 생각이 들었다. 아줌마는 세상의 인정을 받았고, 그것을 제일 좋아하는 아리따운 드레스처럼 걸치고 있었다.
- P69

나는 열다섯살이었고, 순진했으며, 젊음 특유의 타협을 모르는 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중에 나는 아줌마를 다시 존경하게 되었고, 인생의 굽이마다 아줌마의지혜를 구하게 되었다. 친웨 아줌마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여자들이 자신을 움츠리는 것은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에 작용하는 힘 때문이었다. 친위 아줌마는 부유함도 여자를 그런 힘으로부터 막아주진 못한다는 사실을 내게 일깨워주었다. 교육도 아름다움도 그 힘을 막아주지 못한다는 것을 아줌마의 영향 덕분에 나는 자랑스럽고 복잡한 내 여성성을 원래 모습 그대로 살아내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너는 여자니까"라는 말은 무엇에 대해서는 유효한이유가 아니라고 거부하겠다고, 나의 가장 진실되고 가장 인간적인 자아로 살고자 애쓰겠다고, 하지만 세상의인정을 구하기 위해서 나 자신을 억지로 변형시키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 P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만, 팔순을 넘긴 엄마의 어떤 표정과 자태가 문득 아름답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남들에겐 평범한 노인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엄마가 살아온 삶의 내력과 고통의 속내를 아는 나로서는 엄마의 표정 하나에도 무감하기가 어렵다. 오랜 시간의 빛과 그림자를 견뎌내면서 생겨난 그 무늬와 질감을 가만히 쓰다듬어본다.
다행히도 나에게는 아직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시간이 꽤 남아 있다. ‘엄마‘라고 발음할 때마다 그 말은 내가 아직 고아가 아니라는 것을,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어떤 존재가 늙고 쇠약해진 모습으로나마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해준다.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엄마의 손이있다는 것이, 그리고 엄마의 기침 소리가 들리고 웃음소리와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에 내가 있다는 것이 마음 놓인다. p127



롤랑 바르트는 어머니가돌아가신 다음 날인 1977년 10월 25일부터 「애도 일기』를 써내려갔다. 노트를 사등분한 쪽지에 2년 동안 남긴 메모들에는 ‘어머니Metre 보다 ‘엄마 Maman" 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마망‘ 이라고 부를 때마다 그 말을 둘러싼 온기와 슬픔에 바르트는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터뜨렸다. "나의 롤랑, 나의 롤랑" 이라고 부르던 엄마의 목소리를 떠올리면서, 스물두 살의 나이에 바르트를 낳고 이듬해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어머니, 그래서 롤랑 바르트의 애도는 더욱 간절했을 것이다.
그는 이 기간 동안 엄마의 다섯 살 때 사진을 책상 위에올려두고 그 순결한 소녀를 향해 한없이 빠져들었다. 애도일기』의 번역자인 김진영의 설명처럼 "사진은 말하자면 부재 속의 실재라는, 있을 수 없는 존재의 실존이 기술적으로그러나 마술적으로 구현된 이미지"다. 또한 죽었으면서도살아 있는 존재처럼 산 자에게로 귀환하는 유령 이미지다.
- P120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엄마,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담고 있는 단어가 또 있던가. 이렇게 오래도록 울림을 간직한 언어가 또 있던가" 라고 썼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엄마‘는 가장 친밀한 호칭이고, 가장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르게 되는 단어일 것이다. 딸은 렌즈를 통해 엄마를 바라보면서 언제까지고 엄마 속의 엄마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엄마의 주름진 얼굴을 보며 김혜순의 시 「얼굴의 한 구절대로 자신을 부재자의 인질이라고 되뇌기도 한다. 엄마가 사라진 후의 시간을 자주 떠올리는 그녀에게 사진 찍기는 부재자의 현존을 앞당겨 불러올수 있는 제의적 행위에 가까워 보인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사진 찍기란 숙련된 기술로 피사체를 다루는 일이 아니라, 그 대상을 혼신의 힘으로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을 배워나간다.
- P126

사진의 제의적 가치가 남아 있던 마지막 보루가 바로인간의 얼굴이라는 것. 기술복제시대에 사진의 아우라가사라진 것은 사람의 모습이 뒤로 물러나고 전시적 가치가강해지면서부터라는 것. 벤야민의 이 예리한 통찰이 새삼놀랍다. 우리는 과연 그 잃어버린 인간의 얼굴을 되찾을 수있을까. 롤랑 바르트가 엄마의 빛바랜 사진을 보며 애도에몰입했던 것도, 한설희 작가가 엄마의 말년 모습을 찍으며이별 연습을 했던 것도 그 사라짐에 대한 저항이자 인간의아우라를 잡으려는 안간힘이 아니었을까. 지금도, 아주 드물게, 누군가는 어디선가 셔터를 누르고 있을 것이다. 사람의 얼굴, 멜랑콜리하고 그 어느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아름다움을 향해,
- P132

〈로스 카프리초스) 연작의 마지막 작품인 80번의 제목은 때가 되었다‘이다. 여기에는 "동이 트면 마녀와 요정, 그리고 유령과 허깨비들은 각자 자신의 거처로 숨어든다. 이들이 밤과 어두운 때를 제외하고 우리 눈에 띄지 않는 것은참 다행스러운 일이다!"는 설명이 적혀 있다. 이 반인반수의 괴물들은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서둘러 떠날차비를 하고 있다. 이렇게 고야의 동판화에 넘쳐나는 악마의 얼굴들은 고야의 핏속에, 본능 속에 깊이 잠들어 있던 어떤 절규를 들려준다.
말년에 귀머거리가 된 고야는 생을 마칠 때까지 칩거하며 집의 벽면을 온통 검은 그림Black Painling) 연작들로 채워나갔다. 자식의 몸을 움켜쥐고 뜯어 먹는 사투르누스를비롯해 고야의 말년작들은 한층 어두운 심연에 잠겨 있다.
그 그림들을 보면서 예술의 힘이란 쾌락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 P143

마지막 전시실 밖에는 자코메티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 "거리의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무게가 없다. 어떤 경우든 죽은 사람보다도, 의식이 없는 사람보다도 가볍다. 내가보여주려는 건 바로 그것, 그 가벼움이다." 또 다른 벽에는이런 문장도 있다. 마침내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한 발을내디뎌 걷는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 끝이 어딘지알 수는 없지만, 그러나 나는 걷는다. 그렇다. 나는 걸어야만 한다." 이처럼 걷는 행위를 통해서만이 중력으로부터 잠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다. 처음에 본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사진과 걸어가는 사람의 형상이 자꾸겹쳐진다. 자코메티가 수많은 모델들 속에서 매번 발견하려고 한 것은 어쩌면 자기 자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P152

이따금 그림이 말을 하는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또는 그림 속에서 어떤 선율이 총러나오는 것 같을 때가 있다. 회화는 시각예술임이 분명하지만, 시나 음악에 한결 가까운 그림들도 있는 것이다. 예를들어 칸딘스키, 미로, 로스코 같은 화가들이 그러하다. 이들의 그림에서 말과 선율은 주어진 형상을 넘어 무한을 향해있다. 칸딘스키의 표현처럼 직선들의 차가운 긴장, 곡선들의 따뜻한 긴장, 엄격함에서 느슨함으로, 다수로부터 압축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추상적 형태에서도 아주 드라마틱하고 직접적인 느낌을 읽어낼 수 있다.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 ~ 1970 의 작품을 보았던 기억역시 내게는 강력한 청각적 체험으로 남아 있다. 화집에서만 보던 로스코의 그림을 처음 대면하게 된 것은 런던 테이트모던 갤러리에서였다. 미술관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지만, 이상하게도 ‘로스코의 방‘에서는 오직 나 혼자만이 그의 그림 앞에 서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이 - P164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인 2004년, 그의 일기에는 한 편의 시처럼 이런 탄식이 적혀 있다. "다들 죽었다. 이일도 죽고, 한창기도 죽고, 죠셉 러브 Joseph Love 도 죽고, 도널드 저드도 죽고, 황현욱이도 죽고, 나만 지금껏 살아 있고나. 내가좋아하는 친구들은 다 죽었구나." 홀로 남은 그에게 그림을그린다는 것은 살아 있는 한 생명을 불태운 흔적으로서, 살아 있다는 근거로서, 그날그날을 기록 하는 행위와도 같았다.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더 깊고 고요해진 검은 빛을 보며떠오른 시 한 편, 김현승의 「검은 빛을 윤형근의 그림 앞에서 천천히 읊조려본다.
- P178

근원 김용준1914 ~~1907 과 존 버거1926 ~ 2017. 얼핏 뜬금없는 조합인 것같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면 두 사람에게서 적지 않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미술 이론 전공자로서 비평적인 작업과 함께 뛰어난 에세이와 그림을 남겼다는 점, 마르크스주의자로서 미술뿐 아니라 인문, 사회 전반에 대한 통찰력과비판적 태도를 보였다는 점, 그러면서도 특정한 이념에 매몰되기보다 뛰어난 심미안과 균형 감각을 지녔다는 점 등이그러하다.
삶의 이력 또한 이채롭기는 마찬가지다. 김용준은 경북선산 출신의 동양화가로서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미술학부 교수를 지내다가 1950년 월북했다. 존 버거는 영국 런던 출신이지만 중년 이후에는 프랑스 시골 마을로 이주해 농사와 글쓰기를 병행해 왔다. 이러한 월경이나 은거로 인해 두 사람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본주의적 세계와 거리를 둘 수 있었다.
- P214

다른 이에게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계산할 수 없는 어떤 지점에 이를 때까지 그것과 동행하는 것, 이를 위해 사물을 바라보고 또 바라봄으로써 대상 자체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는 것, 사물과 사물, 또는 주체와 대상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는 것. 오로지 선생에집중하면서 밀고 당기는 힘 사이의 역동성을 잃지 않는 것.
눈에 보이는 대상뿐 아니라 계속 움직이는 어떤 외곽선을따라 조금씩 연장되는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것. 드로잉을이런 발견적 행위로 정의한다면, 근원과 존 버거가 말년까지 드로잉을 멈추지 않았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김용준과 존 버거가 그리고자 했던 것은 단순히 매화와 붓꽃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린 꽃은 동양적 미의 표상인 매화와 서양적 미의 표상인 붓꽃이라는기호적 차원에만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의 대상 앞에서 그 불가해한 어둠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맨몸의 궤적이야말로 그들이 작은 스케치북에 담고 싶었던것이 아니었을까.
- P219

그런데 영화를 자세히 보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무언가 조금씩 달라지는 걸 발견할 수 있다. 매일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이 조금씩 다르고, 침대 위에 누운 두 사람의 자제도 조금씩 다르다. 출퇴근하며 눈여겨보는 사물이나 풍경도 조금씩 다르고, 정해진 구간을 도는 23번 버스에 탄 승객들도 조금씩 다르다. 이란 여성인 아내가 매일 그려내는이국적 패턴도, 동네 바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도 조금씩 다르다.
무엇보다도 패터슨의 내면과 비밀 노트 속에 펼쳐지는시의 발걸음이 조금씩 다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시는완성을 향해 한 줄 한 줄 나아간다. 이러한 미세한 차이야말로 짐 자무시가 영화를 통해 그리고 싶었던 것인지 모른다.
"삶의 아름다움이란, 대단한 사건이 아닌 소소한 것들에 있 - P231

시작 노트를 잃고 폭포 앞에서 망연자실 앉아 있는 패더슨에게 월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고장 패터슨을 찾아온 일본인 시인이 말을 건넨다. 그 일본인의 손에는 『패터슨이라는 시집이 들려 있었다.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는 고향인 러더퍼드에서 평생 소아과 의사를 하면서 시를썼다. 특히 그가 뉴저지 지방의 ‘패터슨‘을 주제로 쓴 다섯권의 연작 『패터슨은 미국 시문학사의 대표적인 서사시중 하나다. 영화에서도 패터슨은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시집을 자주 읽거나 그에 관해 대화를 나눈다.
"때론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
일본인 시인의 이 말을 곱씹으며 패터슨이 터뜨린 감탄사는 ‘아하! 였다. 약간 진부한 결말이라는 인상을 지울 순 없지만, 이 감탄사 덕분에 패터슨은 다시 새로운 월요일을 담담하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잃어버린 시들을, 또는 아직 오지 않은 시들을 새로운 노트에 적어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 P234

비즐러가 드라이만의 집에서 훔쳐 온 시집을 읽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그때 등장하는 시는 브레히트가 쓴 「마리A의 추억이다. 브레히트는 현실 비판적인 참여시를 주로쓴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시는 드물게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연애시다. 여기서 브레히트가 추억하는 ‘마리 A‘는 고향 아우크스부르크에 살던 시절의 애인 로자 마리 아만을가리킨다. 9월 어느 날 어린 자두나무 아래서 사랑을 나누었던 두 사람. 그러나 사랑의 아름다움은 덧없고, 그 덧없음으로 인해 오히려 더 아름답다. 영원한 사랑이란 없으며 그덧없음만이 영원하다는 사실 또한 이 시는 말해준다.
세월이 흘러 이제 두 사람은 서로의 안부조차 알 수가없다. "사랑은 어떻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시적 화자인 ‘나‘
는 "생각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그녀의 얼굴은 기억나지않고, 키스를 했다는 사실만이 어렴풋이 떠오를 뿐이다.  - P243

조동진의 노래는 아주 멀리서 온다. 바람이 멀리서 불어오는 것처럼, 일몰과 여명,
비와 안개, 눈과 진눈깨비 등 대기가 가장 아름다운 때의 빛깔과 냄새와 물기를 머금고 그의 노래는 불어온다. 그의 노래는 들려온다 기보다는 ‘불어온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조동진의 노래가 일으키는 소리와 진동은 귀뿐 아니라몸 전체로 스며들어와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노래가 끝난 뒤에도 길게 이어지는 연주나 허밍은듣는 이를 암전의 여운 속에 오래 남아 있게 한다.
바슐라르는 예술가의 기질이 물, 불, 공기, 흙, 이 네 원소 중 어느 하나의 원소와 특별한 친연성을 지닌다고 했다.
이 네 가지 원소 중에서 조동진은 단연 ‘공기의 시인‘ 이다.
호프만슈탈의 말을 빌리자면 "공기처럼 투명하여 공기 속으로 경이의 말을 부지런히 전달하는 전령" 이다.  - P250

일찍이 "집을 읽는다"는 표현을 쓴 것은 가스통 바슐라르였다. 그는 『공간의 시학』에서 집이란 한 영혼의 상태를잘 보여주며 집은 인간의 사상과 추억과 꿈을 한데 통합하는 가장 큰 힘의 하나라고 말했다. 그 통합에 있어서 연결의원리는 ‘몽상‘ 이다. "더할 수 없이 깊은 몽상 속에서 우리들이 태어난 집을 꿈꿀 때, 우리들은 물질적 낙원의 그 원초적인 따뜻함, 그 잘 중화된 물질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장민숙의 회화에서도 집에 대한 원초적 충족감은 과거와현재와 미래를 넘나드는 몽상을 통해 잘 구현되고 있다.
- P261

그의 그림에 사람이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집은 각사람의 삶을 대변하는 공간이자 오브제로서 역할을 충분히해낸다. 조금 낡고 오래된 집들은 녹록지 않은 내력과 기억을 들려준다. "나는 살아가고 있고, 삶과 함께 흘러가는 시간을 색면으로 기록한다"는 작가에게 집과 거리는 도시의공간성과 시간성, 수직성과 수평성, 기억과 풍경을 동시에아우르는 상징이자 매개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집을 읽어내고 기록하고 표현하는 행위가 바로
‘산책‘이다. 그에게 산책은 자기만의 집, 또는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이 과정은 단독자의 내면 탐구가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을 필요로 한다.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타자의 내면을 열고 들어가는 것처럼 집의 표정을 살피고 집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침착하게 귀를 기울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