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열심히 일해야지....라고 생각하다가 여태도 열심히 일하면서 살아왔는데 겨우 여기왔을 뿐이라는 현타!
아, 생각만으로 살 떨리네ㅠ

책 표지에 낚였다. ㅋㅋ
저런 서재, 믓찌다.
하루끼 전문인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유쾌한 번역자여서 기분 좋았다.

아침에 눈을 뜨기도 전에 생각한다. 오늘은 열심히 일해야지. 굳게 다짐하고 떨어지지 않는 눈을 뜬다. 시간을보려고 스마트폰을 켠다. 켠 김에 어제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몇 명이었는지 본다. 보는 김에 뉴스 한번 훑는다. 잠이 깬다. 메일이 있으면 답장도 하고, 블로그 들어가서 안부게시판에 답글도 단다. 스마트폰은 한 손가락으로 치기때문에 지렁이보다 더디고 거북이보다 느려서, 본의 아니게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치게 된다. 상대방이 이 정성알아주려나. 일어난 지 한 시간이 가뿐히 지났는데 몸은아직 침대 위다. 스마트폰 때문에 세월이 더 빨리 간다. 시간이 주먹 속의 모래처럼 술술 샌다. 얼른 일어나서 오늘은 열심히 일해야지…….
- P17

예전에는 ‘오늘은 열심히 일해야지‘ 하는 다짐 같은 것하지 않았다. 그런 다짐 하지 않아도 과로사할 정도로 열심히 했다. 그러나 그때보다 이렇게 농땡이 부리며 설렁설령 사는 지금의 내가 좋다. 죽기 전까지 일을 하고 싶지만, 일만 하다 죽고 싶진 않다. 그렇게 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본 뒤로, 적게 벌고 적게 쓰더라도 숨 좀 돌리고 여유 좀 갖고 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오늘은 열심히 일하려고 했는데 또 열심히 하지못하고 말았다. 내일은 열심히 해야지…….
- P19

꽃은 누군가가 이름을 불러주어야 꽃이 된다면, 오역은누군가가 까발려주어야 오역이 된다. 알고 오역을 하는사람은 없으니 지적받기 전까지는 바른 번역의 탈을 쓰고있다. 오욕의 오역은 번역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두려운것.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어디선가 좀비처럼 튀어나온다. 생각만 해도 살 떨리네.
- P89

역주는 어디까지 달아야 할까. 번역하면서 늘 갈등하는문제다. 내가 모르는 건 독자도 모른다는 기준으로 달아야할까. 나는 알지만 독자는 모를 것 같을 때? 나도 알고 대부분 독자도 알겠지만 모를 수도 있는 일부 독자를 위해?
갈등하다 역주를 달기도 하고 어물쩍 넘어가기도 한다. 역주를 다는 게 귀찮아서가 절대 아니다. 너무 친절한 역주는 가독성을 떨어뜨릴 수 있어서 때로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미주(본문 끝에 다는 역주)로 달린다 해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는 역주가 많은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절반 이상의 독자가 모를 것 같은 고유명사에만 역주를=달고 싶지만, 실제로는 기모노, 유카타, 다다미같은단어까지 역주를 달고 있다.  - P95

후배들이 조언을 구할 때면 늘 하는 말이다. 출판사에꾸준히 존재를 어필하라고, 책은 아마존에서 주문해도 되고 대형서점 외서 코너에서 사도 된다. 검토서를 작성해서 관련 도서를 내는 출판사에 메일을 보내는 것이 가장넘게 어필하는 방법이다. 무조건 보내는 게 능사가 아니고, 발췌번역을 닳도록 다듬고 다듬어서 최고의 상태일때 보내야 한다. ‘번역을 잘하는 나의 존재를 알려야지,
무조건 "나 번역하는 사람이에요"만 어필해봐야 귀찮아할뿐이다. 견본품 들고 일일이 매장 돌아다니며 영업하는분들에 비하면, 번역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편한가. 컴퓨터 앞에서 손가락만 움직이면 되니까. 문전 박대를 당할일도 없고, 무시당해도 보이지 않고, 답장을 주면 감사하고 안 줘도 그만이고, 보내는 것은 나의 의지, 거절하는 것은 그들의 의지, 메일 한 통 보내고 너무 많은 기대도 하지 말고, 좌절도 하지 말고, 바위를 뚫는 낙숫물처럼 천천히 조금씩 도전하고 싶은 곳의 벽을 뚫어봅시다.
- P99

작가 그늘에서만 살던 번역가가 작가가 되어 세상에 나오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백댄서를 하던 김종민이 앞으로 나와서 코요태가 되고 예능인이 된 것처럼, 그러나 김종민이 다시백댄서를 하는 일은 없겠지만, 우리는 여전히 번역가란직업을 사랑하며 원서와 사전과 고군분투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P145

어느 때부터인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은 하지 않게 되었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만나지 않고, 번역하고 싶지않은 책은 정중히 거절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 더불어 사는 세상이니 하는 말에서 자유로워지자, 지구의무게가 훨씬 가벼워졌다. 나이를 먹어서 뻔뻔해진 것인지해탈한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최소한 사람의 도리를하고 최대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세상을 왕따시키며 살고 있다. 물론 외롭다. 외롭지만, 편하다. 편하지만, 찜찜하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잠자리에 들며 혼자 반문하지만, 다음 날 해가 뜨면 또 찜찜하지만 편한 외로움을 선택하고 있다. 아, 이렇게 고집스러운 독거노인이 돼가는 건가.
- P169

나는 주류보다 비주류가, 인싸보다 아싸가, 메이저 보다 마이너가, 강남보다 강북이 편하다. 사람은 편한 게 장명이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 어쩌고 하는 속담도 있지만, 애초에 나는 나보다 잘난 사람을 따라가려고 애를써본 적이 없다. 굳이 왜? 의식의 흐름이 뜬금없지만, 이글을 쓰다 문득 ‘근데 뱁새는 어떻게 생겨먹은 새지?‘ 싶어서 검색을 해보았다. 길이 13 센티미터의 아주 작은 새다. 이렇게 작은 새인지 몰랐네. 황새의 키도 찾아보았더니 100 ~115 센티미터다. 음, 열 배는 차이가 난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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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걸을 수 있는 부상병은 부축하고, 그럴 수 없는부상병은 어린아이 안 품에 안거나 자기 목에 팔을 두르게 하고 업어서 옮겼다. 또는 부상 정도에 따라 둘이나 셋, 혹은 넷이서 들것을 대신해 부상병의 어깨와 다리를 나눠 들고 옮겼다. 또한 구급 들것이 모자랐기 때문에 소총 몇 자루를 배낭끈으로 연결해 들것을 급조하는 등온갖 기발한 창의력을 발휘해야 했다. 포탄이 파헤쳐놓은 들판 곳곳에서, 집과 함께 머리를 숙인 채 신중하게 무릎으로 기어가는 들것병들의가슴 뭉클한 영웅적인 모습이 보였다.
모리스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엄청나게 큰 밀알을 옮기는근면한 개미처럼 다리가 부러진 육중한 중사를 업은 깡마르고 허약한소년 들것병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그 순간, 포탄 하나가 폭발해서 두병사를 모두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연기가 걷히고 보니, 땅바닥에 등을대고 누워 있는 중사는 새로운 부상 없이 멀쩡했지만, 소년 들것병은옆구리가 터진 채 쓰러져 있었다. 다른 들것병, 다른 개미가 달려와서동료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중사를 자기 등에 업고 구급마차로옮겨갔다.

- P345

그가 무슨 말인가 하고 있을 때, 포탄이 터져 그의 오른팔이 날아가고 왼쪽옆구리가 갈라졌다. 그는 대포 위로 쓰러졌고, 행복의 침대인 양 거기서 머리를 적에게로 돌린 채, 분노에 찼으나 깨끗하고 아름다운 얼굴로 죽었다. 찢어진 제복 틈으로 빠져나온 편지 한 장이 그의 손가락에 꼭쥐여 있었는데, 그 위로 피가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아직 목숨을 잃지 않은 유일한 중위가 명령을 내렸다.
견인차 이동!"
그때 탄약 마차 하나가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하늘로 솟구쳤다. 연결고리가 땅에 떨어진 대포 한 문을 가져가기 위해서는 다른 탄약 마차의 말들을 데려와야 했다. 마침내 기마 운반병들이 유턴을 해서 네문의 대포에 연결고리를 걸었다. 그들은 즉시 전속력으로 달렸고, 1킬로미터 떨어진 가렌숲의 나무 뒤에 이르러서야 발을 멈췄다.
모리스는 그 모든 것을 목격했다. 그는 공포로 몸을 떨면서 기계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 불쌍한 오노레! 불쌍한 오노레!"
슬픔이 굶주림으로 위가 뒤틀리는 고통을 배가시키는 듯했다.  - P361

모리스의 눈에 들어왔는데, 그녀는 다름 아닌 앙리에트였다. 모리스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앙리에트였는데, 그녀는 놀라는 기색조차 없었다.
"바제유에서 저들이 그이를 총살했어.…… 나도 그 자리에 시신이라도 찾고 싶은데,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긴 해……….
그녀는 프로이센군도, 바이스라는 이름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분명히 모두가 상황을 이해했다. 모리스가 눈물을 흘리며 그녀를위로했다.
"아, 불쌍한 누나!"
두시경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앙리에트는 발랑의 어느 집 부엌에서식탁에 머리를 떨군 채 울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바로 울음을 그쳤다. 연약하고 조용한 여인의 내면에서 영웅적인 용기가 솟구쳐올랐다.
그녀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불굴의 정신으로 자신을 무장했다. 극도의 고통 속에서도 그녀는 오직 남편의 시신을 수습해 묻어주는일만 생각했다. 애초의 계획은 바제유로 다시 가는 것이었다. 모두가절대 불가능하다고 만류했다. 그래서 그녀는 함께 가서 시신을 수습해줄 누군가를 찾으려 했다. 그녀의 뇌리에 르센 정련공장 부공장장이었던 사촌오빠가 떠올랐다. 당시 정련공장 사무원으로 일했던 남편을 무척 좋아했던 사촌오빠는 요청을 외면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이 년전 아내가 유산을 상속받은 덕분에 은퇴하고 풍 드 지본 맞은편에 있는 아름다운 저택 ‘에르미타주‘로 이사했는데, 스당에서 가까운 그 저택은 노대가 층을 이루고 있었다. 군중의 발에 밟혀 죽을 수도 있는위험 속에서 온갖 장애물을 뚫고 그녀가 가려 하는 곳이 바로 그 에르미타주였다 - P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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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1
아니 에르노 지음, 김선희 옮김 / 열림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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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에 다닐 때, 엄마는 일 년간 코피를 흘리셨고 일 년은 머리가 깨질 듯 아파하셔서 이마에 흰 수건을 동여매고 지내셨다. 막막하고 참혹했던 어린 관찰자이자 보호자였던 내가 떠올랐다. 아픈 엄마를 지켜보는 일은 곧 나의 미래를 만나는 일이기도 했다. 엄마의 부재는 누구에게나 슬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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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나는, 내가 어머니와 함께 있지 않은 시간 동안 어머니가 이곳 병원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실제적으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기껏해야 어머니가 하는 일은 식당에서 식사나 하고 하염없이 나를 기다리는 일이 고작일 것이다. 나는 장차 엄청난 죄책감을 느끼게 될 것 같다. 하여간죄책감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는 건 생명이 멈추어버린 것과다를 바가 없었다. 나의 삶이 고통과 죄책감으로 소멸되는이치와 같은 것이다. ‘어머니는 곧 ‘나‘임을 실감한다. 

- P57

나는 어머니의 노쇠한 모습, 전과는아주 달라져버린 참혹한 얼굴을 무심코 쳐다볼 수 있을 정도로 어머니의 변화된 모습에 대해서 이미 타성에 젖어 있음을 문득 깨달았다. 어머니가 처음으로 집을 떠나가던 그 끔찍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어머니는 뭔가 잃어버린 것을 찾는사람처럼 자꾸만 집을 되돌아보았다. (가을이면 사방으로 가로수가 즐비했던 안시에 살았을 당시 그 집 정원에는 거북 한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그 거북은 쇠창살 문에 달라붙어 여기저기 기어다니고 있었다. 나중에야 생각난 것은 어머니가 떠날때 찾았던 것이 바로 이 거북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러고 나서어머니가 쓴 글이 이것이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 P90

어머니는 받기보다는 주는 것을 좋아했다. 자신의 품위를 높이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인정받기 위해서 그랬던 것일까? 나 역시 어릴 적에는 사랑받고 인기를 누리고 싶어서그림책과 사탕들을 나누어주길 좋아했다. 그 후론 주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 게다가내가 지금 무언가를 쓰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주는 방법이 아닐까??
- P112

1986년

2월 2일 

일요일어머니의 현재 생활을 이야기하고픈 소망을 가지게 된후로는, 어머니를 문병하고 난 후 지금까지 항상 써오던 일기를 계속해서 쓸 수가 없었다. 아마도 더 이상 글을 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어머니의 수많은 사연들, 즉 어머니의 과거 속에 내가 존재해 있었고 그때문에 더욱 이 글쓰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 P135

4월 7일 월요일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다. 오늘 아침부터 내내 울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나는 모르겠다. 모든 것이 고스란히 거기 제자리에 있건만생각은 멈추어버렸다. 그렇다. 정지해버린 것이다 - P145

어머니를 다시 보고 싶은 욕망을 주체할 수가 없다. 이 순간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고예측조차도 못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느니 차라리 미쳐서라도 살아 있기를 바랐다.
머리가 아프고 토할 것만 같다. 나는 어머니와 화해하려고 이 모든 시간을 보냈지만 충분히 화해하지 못했다. 어제가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날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어제 어머니에게 가져다드린 개나리는 아직도 잼을 담았던 병 속에 꽂힌 채 탁자 위에 있었다. ‘숲속의 과일 이라는 네모난 판자 모양의 초콜릿을 가져다드렸더니 어머니는판 한 줄을 모두 먹었다. 어머니를 씻겨드리고 오데코롱 화장수를 뿌려드렸다. 그게 끝이었다. 어머니는 오직 생명력일뿐 그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머니는 움켜잡고 일어서기위해서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곤 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가엾은 작은 인형 같았다.  - P146

이젠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어제 어머니가 한 말들을 아무것도 기억해낼 수가 없다.
아니 기억나는 말이 있다. 어머니는 사람들에게 "자, 모두들자리 잡고 앉으세요."라고 말했다. 대략 이런 말을 했던 것같다.
- P147

내가 이 고통에서 곧 벗어날 수 있게 될까?
일거수일투족을 옮길 때마다 어머니와 관련된 추억들이 오른다. 어쩌면 난 이렇게 나의 고통을 이야기 하고 기록하여 진술함으로써 내부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고통의 뿌리를 끌어내어 고갈시켜버리고 지쳐버린 고통이 더 이상 작용하지 못하게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글쓰기와 함께 고통을 상쇄시켜가고자 했던 것 같다. 이전에 적어놓았던 메모들을 다시 읽어내려갈 수가 없다. 너무도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가장 끔찍한 것은 어머니가 피폐하기 시작한 때부터 최근 이 년 반 동안의 기록이다. 이 기간 동안 어머니는 나와가까워졌고 그러고 나서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다시 어린애가 되었지만 성장하지는 않았다. 자꾸만 어머니에게 음식을먹여드리고 손톱을 잘라드리고 머리 손질을 해드려야 할 것만 같은데 어머니는 계시지 않는다. 지난 부활절 일요일, 깨끗하고 부드럽던 어머니의 머릿결, 그 모든 것이 멈추어버렸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 P148

4월 28일 월요일

오늘 아침, 계산서에 적힌 막힌 물이라는 말을 읽으면서내가 예닐곱 살 적에 이 말을 꽉 막힌 놈이라고 부르곤 했던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부르던 어머니의 별명이었다. 눈물이흘러내린다. 유수 같은 세월의 흐름 때문이다.
- P164

오로지 ‘이분은 내 어머니이시다‘ 라는 생각 외에는 다른 모든 것을 망각하며 지냈던 순간들이었다. 어머니는 더이상 오래전 내 삶의 저편에서부터 이제까지 내가 알아왔던 여자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참담한모습에서 언뜻언뜻 비치는 당신 본래의 목소리와 몸짓, 웃음을 발견할 때면 그 어느 때보다도 나의 어머니임을 실감했다.
어떤 경우에도 이 일기를 양로원에서의 장기체류에 관한 객관적 증언으로 읽지 말 것이며 하물며 어떤 고발로도읽지 말고 (간병인 대부분이 정성스런 헌신을 보여주었다)오로지 고통의 잔재로서 읽어주길 바란다.
- P170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라는 말은 어머니가 글로 마지막 문장이다.
치매에 걸리기 전 본래 모습의 어머니를 꿈에서 자주다. 어머니는 마음속에 살아 있지만 실제론 죽었다. 나는잠에서 깰 때마다 잠시 동안 어머니가 죽었으면서도 동시에 이중 형상으로 실제로 살아 있음을 확신한다. 마치 죽올의 강을 두 번 건넌 그리스 신화의 인물들처럼,

1996년 3월 아니 에르노 - P171

어머니의 머리를 빗겨주고 단장해주는이 기쁨이여! 내가 병실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와 한 병실에서 생활하고 있는 옆 사람이 어머니의 목과 다리를 쓰다듬고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살아 있다는 건 어루만지는 손길을받는다는 것, 즉 접촉을 한다는 것이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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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12월

어머니는 극도로 쇠약해져서 무기력하고 굳은 표정을 지은 채 거실 의자에 앉아 있다. 입은 벌리지 않았지만 멀리서보면 마치 벌어진 것 같다.
어머니는 ‘도대체 찾을 수가 없구나"라고 말한다. (자신의 화장도구 세트와 조끼, 그 밖의 모든 것을 찾고 있다.) 그녀는 물건들을 어디다 두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 P9

1984년

1월

어머니는 항상 자신의 방과 내 작업실을 혼동한다. 작업실 문을 열었다가 자신이 실수한 것을 알아차리고는 슬며시도로 닫는다. 이내 걸쇠가 올라가고 문 잠기는 것이 보인다.
마치 방안에 아무도 없었다는 듯이.  - P13

고속도로 위에는 자동차들이줄지어 지나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일요일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어머니의 옆 사람은 한 손을 팬티 속에 집어넣은 채 누워 자고 있다. 그것은 슬픔을 넘어선 참혹한 모습이었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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