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에서는 절대 웃을 일이 없었다. 학교와 아무런 관련도없는 조그만 개인 소지품을 잃어버려도 교칙 위반이 될 수 있고, 모든 교칙 위반에 체벌이 따랐다. 체벌에도 등급이 있었다. 죄의 심각함에 따라 혹은 그때그때 교사의 기분에 따라등급이 매겨졌다. 교사가 손바닥으로 아무 데나 때리는 것이첫 번째였다. 그다음은 자, 회초리, 그다음은 무시무시한 카라즈네나무 지팡이 순이었다. 똑같은 등급이라도 조금씩 달라서 종류가 다양했다. 자의 평평한 끝부분으로 맞거나 금속부분으로 맞거나, 평평한 손바닥을 맞거나 손가락을 맞거나,
팔을 맞거나 허벅지를 맞거나, 울퉁불퉁한 지팡이로 맞거나평평한 지팡이로 맞거나 젖은 지팡이로 맞거나 젖지 않은 지팡이로 맞거나….
나는 첫날부터 맞았다. 산수 시간에 6 곱하기 8을 틀렸다.
고 손바닥으로 맞았다. 아랍어 시간에는 다섯 개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에서 단어 다섯 개를 잘못 읽었다고 자로 다섯 대를 맞았다.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그다음에는 밥을 다 먹지않았다고, 나이프와 포크로 생 대추야자를 깔 줄 모른다고 벌을 받았다. p300
이런 학교를 다닌다고...? 무섭다. 누구나 그럴테지만 유별나게도 나는 체벌의 이름을 가장한 기합이나 자로 손바닥을 맞는 일이 아프고 싫기도 하지만 무섭다. 맞기 싫어서 숙제를 빠트린 적도 없고, 지각도 안하는 범생이에다가 공부도 잘해버리는 편을 택했더랬다. 결정적으로 반항하는 선생이 생기기 전까지는, 인생 선생님들이 계셔 그나마 사람꼴을 갖추게 되었다.
그런데 저런 학교라면 나는 때려치웠을 것이다. 무서워서

그날 밤 8시 55분, 다들 작은 거실로 자리를 옮기고 라디오.. 주변에 모여서 뉴스에 귀 기울였다. 누군가 작은 석유 램프를라디오에 올려놓았다. 프랑스어로 전하는 이집트 뉴스 속보에서 결정적인 승리소식을 전했다. 나세르 대령의 지휘로 용감무쌍한 이집트군이 영국과 프랑스, 이스라엘을 격파했다. 이미 하이파와 텔아비브로 진군이 이루어졌으며 1956년 12월 31일 자정에는아랍연합군이 갈릴리 해안에서 거둔 승리를 축하할 거라고, "헛소리하고 있네!" 아이작 할아버지가 중얼거렸다. 나는 거실 창밖으로 침울하고 적막한 어둠 속에 서 있는 건물들을 내다보았다. 가로등은 전부 꺼져 있었다. 거리를 오가는 얼마 되지 않는 차들도 전조등을 껐다. 벌써 적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암청색으로 칠한 차도 있었다. - P220
결국은 페타 치즈로 돌아가지. 아이작 할아버지는 이게 말하곤 했다. 결국은 항상 아내 로테에게 돌아간다는 말처럼 그것은 우리를 시대에 뒤떨어지고 열등한 존재로 느끼게 하는 프랑스어였다. 컴컴한 지중해 건너 저 멀리에서 말하는 그 목소리는 몇 광년이나 떨어진 것처럼 고결하고 세련되고 흔들림 없이 프랑 스가 언제나 어둠의 세력에 저항하리라는 오랜 약속을 힘차지 음었다. 통합군이 이집트에 대항하여 항공 작전을 개시했다. 포트사이드가 함락되고 연합군 공수부대가 수에즈를 장악했다. 끝난 거야!" 네심 할아버지가 결론지었다. 며칠 만에 여기까지 올 거야." - P223
증조할머니는 생강 비스킷을 좋아했다. 차도 좋아했다. 항상 춥다고 했다. 옆방에서 증조할머니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가정부가 오래된 스토브에 잉걸불을 넣었다. 하인들은 남은 음식을 먹고 있었다. 유리문을 닫자 벽에 클라라 할머니가 그린 정물화를 걸어놓은 주방이 너무도 고요하고 평화로워졌다. 자고새 고기, 반으로 가른 앙주멜론, 와인병에 꽂은 들꽃, 마른 과일을 미끼로 쳐 놓은 올가미에 걸린 꿩, 가을에 쓰는 사냥 도구가 있는작은 영국식 시골집. 사방이 갈색이었다. 베이지색 커튼, 다비치는 빛바랜 원단, 색이 연한 참나무 가구, 누렇게 얼룩진력 등 슬프고 습하고 삭막한 갈색투성이 다이닝룸은 햇살이희미하게 비춰서 가을도 아니지만 아직 겨울도 아닌 나날의정오와 저녁 사이 나른한 오후 같은 느낌이 났다. - P229
할머니들이 petit salon(작은 응접실)이라고 이를 붙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래 봤자 같은 공간을 나무칸막이로 나눠 놓은 거였다. 엘사 할머니가 초록색 양철 상자어든 영국산 담배에 이어 터키 커피를 권했다. 우리는 다리를 꼬고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대부분은 미국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람은 새와 같아서 오늘은 여기에, 내일은 저기에있구나." 할머니가 말했다. 오랫동안 소파 한쪽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반대쪽으로 옮겨 앉기로 했다는 게으른 술탄에 관터키 우화가 떠올랐다. 겉보기와 달리 사람들은 아주 멀리 이주하는 경우가 드물어서 바뀌는 게 별로 없고 삶도 똑같이돌아간다는 뜻이었다. - P275
일어나 보니 저녁이 다 된 시간이었다. 우리는 산책하러 앙리마르탱대로로 나갔다. 라마르틴분수를 지나 불로뉴의 숲끄트머리에 가까워졌다. 엘사 할머니는 잿빛으로 흠뻑 젖은풍경을 살피며 해 질 무렵이면 아름다운데 길 건너 숲으로 들어가 보겠느냐고 물었다. 헐벗은 나무들을 보니 코로가 그린발다브레의 추운 겨울이 떠올랐다. 다음에 산책할 때 가자고대답했다. 이렇게 한적한 파리는 처음이었다. 할머니들은 크리스마스여서 그렇다고 했다.
- P276
하지만 아파트를 그렇게 오랫동안 비워들리 없는 터, 분명히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었을 것이다. 발리 할아버지가 아파트를 판 기억이 나는 듯도 했다. 하지만 그동안 주인이 바뀌지 않았다면, 엘사 할머니가 돌아가신날 병원으로 실려 가기 전에 떨어뜨린 포크와 카디건도 그대로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면? 엘사 할머니가 자아 준 생명력으로 영원히 할머니 것일 수밖에 없는 평생 모은 가구와 그릇, 옷가지가 제자리에서 할머니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면? 문득 이집트 테베거리의 아파트도 그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족과 60년을 함께 한 그 아파트는 다른 두구의 것이 될 수 없으며 영원히 우리의 것이라고, 우리가 떠나온 그대로 남아 있다고, 우리가 떠난 뒤 그곳에서 울거나싸운 사람도 없고 구석에는 먼지가 쌓였으며 플로라가 살았고 빌리가 울었고 라티파가 죽은 창고방을 뛰어나가며 소리지른 아이들도 없을 거라고. 다시 올려다보았다. 엘사 할머니의 캄캄한 아파트 옆집은환했다. 주방에서 다이닝룸이 분명한 곳으로 걸어가는 그림자가 보였다. 그림자는 창가로 돌아서 잠깐 내다보더니 다시뒤돌았다. 내가 목욕할 때 물을 너무 많이 쓴다고 불평했던이웃이 아직 사는 모양이었다. - P281
입학 첫 주에 감기에 걸렸다고 말했다가 맞았다. 수영 시전에 남들 앞에서 옷 벗는 게 싫었다. 유럽인 중에서 할레를 받은 아이는 나뿐이었다. 아버지가 말해 주지 않아도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멍하게 딴생각을 했다고, 수업 시간에 말했다고, 펠리컨 펜으로 공책에 잉크 자국을 남겼다고 맞았다. 그 잉크 자국을지우려고 했다가 또 맞았다. 지우지 못했다고도 맞았다. 나는 문장을 제대로 쓰는 것보다 틀린 철자를 지우는 시간이더 많았다. 끝부분에 침을 살짝 묻힌 지우개로 조심스럽지만끈질기게 문질러 대면 공책에 구멍이 생기거나 잉크가 흐려지면서 얼룩이 더 크게 번졌다. - P301
"로렌스역이야." 어머니가 다음 역을 가리켰다. 그 시간의플랫폼은 사람 하나 없이 적막했다. 어느새 어머니는 빅토리아 노선의 역 이름을 줄줄이 읊었다. 프랑스어, 그리스어, 독일어, 아랍어, 영어로 지은 그 이름들은 그때 어머니의 모습과 함께 내 가슴에 영원히 새겨졌다. 선글라스를 끼고 바다를배경으로 달리는 제국의 전차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알록달록한 스카프와 까만 머리카락을 나부끼며 아들이 학교 일을잊어버리도록 최선을 다하던 모습. 그 역 이름들은 절대로 잊을 수가 없다. 사와트, 산스테파노, 지지니아, 마즐룸, 글리메노풀로, 사바파샤, 루치디, 무스타파파샤, 시디가버, 클레오파트라, 스포팅, 이브라히미에, 캄프드세자르, 채트비, 마자리타, 람레. - P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