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았다.
오래 전에 읽은 책을 다시 꺼내서 읽는다.
여러 의미로 ‘엄마‘를 생각한다.
여러 버전의 ‘프랑스‘ 또한 생각한다.


끝났다. 빅서 해안은 텅 비어 있고, 나는 넘어신 바로 그 자리에누운 채로이다. 바다 안개가 사물들을 부드럽게 만들고 있다. 수평선에는 돛대 하나 보이지 않고, 내 앞 바위 위에 수천 마리 새들이있다. 다른 바위에 물개 일가가 있다. 아비 물개는 지치지도 않고 파도 위로 솟아오른다. 고기를 입에 물고, 번들거리며, 헌신적으로,
이따금 제비갈매기들이 너무도 가까이 내리앉아 나는 숨을 죽이지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내 오랜 욕망이 깨어 일어나 내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조금만 더, 그러면 새들이 내 얼굴 위에 내려앉고, 내독과 품속으로 파고들어, 나를 온통 뒤덮을 텐데 하고... 마흔네살에, 나는 아직도 어떤 본질적인 애정을 꿈꾸는 것이다. 하도 오랫동안 꼼짝않고 해변에 누워 있었더니 마침내 펠리컨과 가마우지 들이 나를 빵 둘러 원을 만들고 말았다. 조금 전에는 물개 한 마리가 파도에 실려 내 발치까지 왔었다.  - P9

"엄마한텐 말하지 마, 어쩔 수가 없었어. 엄마이기 때문이라는 건알지만, 그것도 역시 아름다운 하나의 사랑이라는 건 마찬가지거든.
그래서 결국 너를 갖고 싶어 하게 만들었단 말이야…… 널 그처럼사랑해주는 여자는 평생 또 없을걸, 그건 분명해."
그건 분명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다. 사십 줄에 들어서야 나는 겨우 그것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그토록 어려서, 그토록 일찍, 그토록 사랑 받는다는 것은 좋지 못한 일이다. 나쁜 버릇을들여주기 때문이다.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어디에나 다 있는 일인 줄 알고, 또다시 그런 일이 일어날 수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지나치게 요구하게 된다. 바라보고 갈망하고 기다린다.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인생은 그 여명기에, 결코지키지 않을 약속을 당신에게 주는 것이다. 그다음부터는,죽는 날 - P36

까지 찬밥을 먹어야 한다. 그다음부터는 어떤 여자가 당신을 안아서가슴에 품어준다 해도 조사에 불과할 뿐, 우리는 버림받은 개처럼 언제까지나 어머니의 무덤으로 돌아와 짖어대는 것이다. 이제다시는, 이제 다시는, 이제 다시는 사랑스런 팔들이 당신의 목을두르고, 아무리 달콤한 입술이 사랑의 말을 속삭여도, 당신은 계속달려야만 한다. 당신은 너무도 빨리 샘을 지나쳤고, 그리고 바닥나도록 다 마셔버렸다. 다시 갈증에 사로잡힐 때, 사방으로 몸을 던져보아야 샘물은 없고, 신기루뿐이다. 여명의 첫 빛 속에서 당신은 사랑에 대해 매우 압축된 공부를 하였기 때문에, 세세한 자료들을 잔뜩 머릿속에 넣고 있다. 그리하여 어디를 가도 비교라는 독을 품고다니면서, 전에 한 번 받았던 것을 기다리며 시간을 낭비한다.
나는 어머니들로 하여금 자기 자식들을 사랑하지 못하게 해야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 말은 단지 어머니들에게 누군가 달리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내 어머니에게 애인이있었다면, 나는 샘물들 주변에서 매번 갈증으로 죽어가며 인생을 보내지는 않았으리라. 진짜 금강석에 정통하다는 것, 그것이 내겐 불행이었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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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에서는 절대 웃을 일이 없었다. 학교와 아무런 관련도없는 조그만 개인 소지품을 잃어버려도 교칙 위반이 될 수 있고, 모든 교칙 위반에 체벌이 따랐다. 체벌에도 등급이 있었다. 죄의 심각함에 따라 혹은 그때그때 교사의 기분에 따라등급이 매겨졌다. 교사가 손바닥으로 아무 데나 때리는 것이첫 번째였다. 그다음은 자, 회초리, 그다음은 무시무시한 카라즈네나무 지팡이 순이었다. 똑같은 등급이라도 조금씩 달라서 종류가 다양했다. 자의 평평한 끝부분으로 맞거나 금속부분으로 맞거나, 평평한 손바닥을 맞거나 손가락을 맞거나,
팔을 맞거나 허벅지를 맞거나, 울퉁불퉁한 지팡이로 맞거나평평한 지팡이로 맞거나 젖은 지팡이로 맞거나 젖지 않은 지팡이로 맞거나….
나는 첫날부터 맞았다. 산수 시간에 6 곱하기 8을 틀렸다.
고 손바닥으로 맞았다. 아랍어 시간에는 다섯 개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에서 단어 다섯 개를 잘못 읽었다고 자로 다섯 대를 맞았다.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그다음에는 밥을 다 먹지않았다고, 나이프와 포크로 생 대추야자를 깔 줄 모른다고 벌을 받았다. p300


이런 학교를 다닌다고...? 무섭다. 누구나 그럴테지만 유별나게도 나는 체벌의 이름을 가장한 기합이나 자로 손바닥을 맞는 일이 아프고 싫기도 하지만 무섭다. 맞기 싫어서 숙제를 빠트린 적도 없고, 지각도 안하는 범생이에다가 공부도 잘해버리는 편을 택했더랬다. 결정적으로 반항하는 선생이 생기기 전까지는, 인생 선생님들이 계셔 그나마 사람꼴을 갖추게 되었다.
그런데 저런 학교라면 나는 때려치웠을 것이다. 무서워서




그날 밤 8시 55분, 다들 작은 거실로 자리를 옮기고 라디오..
주변에 모여서 뉴스에 귀 기울였다. 누군가 작은 석유 램프를라디오에 올려놓았다.
프랑스어로 전하는 이집트 뉴스 속보에서 결정적인 승리소식을 전했다. 나세르 대령의 지휘로 용감무쌍한 이집트군이 영국과 프랑스, 이스라엘을 격파했다. 이미 하이파와 텔아비브로 진군이 이루어졌으며 1956년 12월 31일 자정에는아랍연합군이 갈릴리 해안에서 거둔 승리를 축하할 거라고,
"헛소리하고 있네!" 아이작 할아버지가 중얼거렸다.
나는 거실 창밖으로 침울하고 적막한 어둠 속에 서 있는 건물들을 내다보았다. 가로등은 전부 꺼져 있었다. 거리를 오가는 얼마 되지 않는 차들도 전조등을 껐다. 벌써 적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암청색으로 칠한 차도 있었다.
- P220

결국은 페타 치즈로 돌아가지. 아이작 할아버지는 이게 말하곤 했다. 결국은 항상 아내 로테에게 돌아간다는 말처럼 그것은 우리를 시대에 뒤떨어지고 열등한 존재로 느끼게 하는 프랑스어였다.
컴컴한 지중해 건너 저 멀리에서 말하는 그 목소리는 몇 광년이나 떨어진 것처럼 고결하고 세련되고 흔들림 없이 프랑 스가 언제나 어둠의 세력에 저항하리라는 오랜 약속을 힘차지 음었다. 통합군이 이집트에 대항하여 항공 작전을 개시했다. 포트사이드가 함락되고 연합군 공수부대가 수에즈를 장악했다.
끝난 거야!" 네심 할아버지가 결론지었다.
며칠 만에 여기까지 올 거야."
- P223

증조할머니는 생강 비스킷을 좋아했다. 차도 좋아했다. 항상 춥다고 했다. 옆방에서 증조할머니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가정부가 오래된 스토브에 잉걸불을 넣었다. 하인들은 남은 음식을 먹고 있었다.
유리문을 닫자 벽에 클라라 할머니가 그린 정물화를 걸어놓은 주방이 너무도 고요하고 평화로워졌다. 자고새 고기, 반으로 가른 앙주멜론, 와인병에 꽂은 들꽃, 마른 과일을 미끼로 쳐 놓은 올가미에 걸린 꿩, 가을에 쓰는 사냥 도구가 있는작은 영국식 시골집. 사방이 갈색이었다. 베이지색 커튼, 다비치는 빛바랜 원단, 색이 연한 참나무 가구, 누렇게 얼룩진력 등 슬프고 습하고 삭막한 갈색투성이 다이닝룸은 햇살이희미하게 비춰서 가을도 아니지만 아직 겨울도 아닌 나날의정오와 저녁 사이 나른한 오후 같은 느낌이 났다.
- P229

할머니들이 petit salon(작은 응접실)이라고 이를 붙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래 봤자 같은 공간을 나무칸막이로 나눠 놓은 거였다. 엘사 할머니가 초록색 양철 상자어든 영국산 담배에 이어 터키 커피를 권했다. 우리는 다리를 꼬고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대부분은 미국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람은 새와 같아서 오늘은 여기에, 내일은 저기에있구나." 할머니가 말했다. 오랫동안 소파 한쪽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반대쪽으로 옮겨 앉기로 했다는 게으른 술탄에 관터키 우화가 떠올랐다. 겉보기와 달리 사람들은 아주 멀리 이주하는 경우가 드물어서 바뀌는 게 별로 없고 삶도 똑같이돌아간다는 뜻이었다.
- P275


일어나 보니 저녁이 다 된 시간이었다. 우리는 산책하러 앙리마르탱대로로 나갔다. 라마르틴분수를 지나 불로뉴의 숲끄트머리에 가까워졌다. 엘사 할머니는 잿빛으로 흠뻑 젖은풍경을 살피며 해 질 무렵이면 아름다운데 길 건너 숲으로 들어가 보겠느냐고 물었다. 헐벗은 나무들을 보니 코로가 그린발다브레의 추운 겨울이 떠올랐다. 다음에 산책할 때 가자고대답했다. 이렇게 한적한 파리는 처음이었다. 할머니들은 크리스마스여서 그렇다고 했다.

- P276

하지만 아파트를 그렇게 오랫동안 비워들리 없는 터, 분명히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었을 것이다.
발리 할아버지가 아파트를 판 기억이 나는 듯도 했다. 하지만 그동안 주인이 바뀌지 않았다면, 엘사 할머니가 돌아가신날 병원으로 실려 가기 전에 떨어뜨린 포크와 카디건도 그대로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면? 엘사 할머니가 자아 준 생명력으로 영원히 할머니 것일 수밖에 없는 평생 모은 가구와 그릇, 옷가지가 제자리에서 할머니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면?
문득 이집트 테베거리의 아파트도 그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족과 60년을 함께 한 그 아파트는 다른 두구의 것이 될 수 없으며 영원히 우리의 것이라고, 우리가 떠나온 그대로 남아 있다고, 우리가 떠난 뒤 그곳에서 울거나싸운 사람도 없고 구석에는 먼지가 쌓였으며 플로라가 살았고 빌리가 울었고 라티파가 죽은 창고방을 뛰어나가며 소리지른 아이들도 없을 거라고.
다시 올려다보았다. 엘사 할머니의 캄캄한 아파트 옆집은환했다. 주방에서 다이닝룸이 분명한 곳으로 걸어가는 그림자가 보였다. 그림자는 창가로 돌아서 잠깐 내다보더니 다시뒤돌았다. 내가 목욕할 때 물을 너무 많이 쓴다고 불평했던이웃이 아직 사는 모양이었다.
- P281

입학 첫 주에 감기에 걸렸다고 말했다가 맞았다. 수영 시전에 남들 앞에서 옷 벗는 게 싫었다. 유럽인 중에서 할레를 받은 아이는 나뿐이었다. 아버지가 말해 주지 않아도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멍하게 딴생각을 했다고, 수업 시간에 말했다고, 펠리컨 펜으로 공책에 잉크 자국을 남겼다고 맞았다. 그 잉크 자국을지우려고 했다가 또 맞았다. 지우지 못했다고도 맞았다. 나는 문장을 제대로 쓰는 것보다 틀린 철자를 지우는 시간이더 많았다. 끝부분에 침을 살짝 묻힌 지우개로 조심스럽지만끈질기게 문질러 대면 공책에 구멍이 생기거나 잉크가 흐려지면서 얼룩이 더 크게 번졌다.  - P301


"로렌스역이야." 어머니가 다음 역을 가리켰다. 그 시간의플랫폼은 사람 하나 없이 적막했다. 어느새 어머니는 빅토리아 노선의 역 이름을 줄줄이 읊었다. 프랑스어, 그리스어, 독일어, 아랍어, 영어로 지은 그 이름들은 그때 어머니의 모습과 함께 내 가슴에 영원히 새겨졌다. 선글라스를 끼고 바다를배경으로 달리는 제국의 전차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알록달록한 스카프와 까만 머리카락을 나부끼며 아들이 학교 일을잊어버리도록 최선을 다하던 모습. 그 역 이름들은 절대로 잊을 수가 없다. 사와트, 산스테파노, 지지니아, 마즐룸, 글리메노풀로, 사바파샤, 루치디, 무스타파파샤, 시디가버, 클레오파트라, 스포팅, 이브라히미에, 캄프드세자르, 채트비, 마자리타, 람레.
- P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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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바쁘고 버거워서 오늘 겨우 100페이지 읽었다. 동료들의 오미크론 감염확산으로 일손이 부족했다. 바이러스가 옮은 건지 지쳐서 몸살이 오는 건지 몸상태가 불길하다. 하여 이집트로 월경하는 것은 번번히 금지다. 일찍 자야겠다. 내일 새벽에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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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각자 돌아갈 사람이 있어야만잘 어울렸어. 둘만 있으면 서로를 피했지. 너무 어색하고 불편해서 같은 공간에 둘만 있는 게 힘들었거든. 지금 내 인생도 다르지 않아. 길을 건널 때도 비스듬히 건너고, 콘서트장에서도 구석 자리에 앉고, 국적이 두 개나 있는데도 제3국에살고, 사람들의 눈을 보지 않아." 나는 그녀가 내 눈을 보려고 애쓰는 걸 의식하면서 시선을 피해 버렸다. "난 누구에게도 솔직하지 못해, 거짓말을 하진 않지만, 주는 것보다 받는게 훨씬 많은데도 항상 남는 게 없어. 내가 누군지도 잘 모르겠구나. 나 자신이 건너편 이웃처럼 느껴져, 여기 있으면 거기 있고 싶고 거기 있으면 여기 있고 싶었지." 알렉산드리아에서 지낸 시간을 말하는 거였다. "성녀가 나한테 항상 그랬지, ‘플로라, 넌 생각이 너무 많고 질문도 너무 많아. 인생은눈가리개를 하고 살아야 해. 앞만 보고 잊어버리는 법을 배워. Debarrasser. 전당포 주인처럼 살지 마. 보다시피 난 커틀러리를 없애는 방법밖에 배우지 못했단다. 그것밖에. 나머지는 전부 책에 넣어서 여기에 몰래 넣고 다니지."  - P117

나는 광장에서 바포레토 승강장으로 돌아갔다. 그날 처음으로 찰싹거리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거의 텅 빈 바포레토가 도착했다. 배에 올라 선미의 갑판으로 가서 계산대형 고물을 따라 놓인 동그란 나무 벤치에 앉았다. 엔진이 휘돌고 사공이 매듭을 풀었다. 알렉산드리아의 남학생들이 전차의 창문 없는 칸에서 그러는 것처럼 두 다리를 벤치에 올리고 광활한 밤을 바라보았다. 대운하 한가운데에서 깊은 밤 속으로 향하는 배가 빗질하듯 반짝이는 은빛 초록색 흔적을 남겼다. 엔진을 끄거나 노를 집어넣은 간첩선처럼 고대 무기고의 벽을 따라 조용히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저 앞쪽에는 석호에 여기저기 흩어진 가로등이 해수면 위로 고개를 기울였다.
뒤쪽에서 달빛 없는 도시가 멀어졌고 늦은 밤 실안개 속에서푼타델라도가니와 저 멀리 산마르코성당의 까만 탑이 어렴풋이 보였다. 바포레토의 조명을 받은 베네치아의 화려한 궁전들이 하나씩 잠에서 깨어나 산 자와 이야기 나누고 싶은 단테의 지옥 유령처럼 밤을 빗고 제 모습을 드러냈다.  - P124

바포레토는 산자카리아를 지난 후 급강하하듯 널찍하게돌아 석호를 거쳐 리도로 향했다. 속도가 두 배로 빨라진 배가 시끄럽게 통통거리며 나아갔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안개 자욱한 시로코 날씨가 수그러들었다. 나는 비스듬히 누워 머리를 뒤로 젖혔다. 외할아버지의 농담을 흉내 내이제 베네치아는 다 본 거네, 라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돌려끝없는 밤으로 가라앉는 베네치아를 바라보며 플로라 숙모,
를 떠올렸다. 내가 아는 모든 도시와 해변과 여름,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여름을 사랑한 이들, 한때 사랑했고 이제는 사랑하지도 추모하지도 않지만 지금 이 순간 같은 집, 같은 거리,
같은 도시, 같은 세상에 있었으면 하는 사람들을 전부 떠올렸다. 내일은 가장 먼저 해변에 갈 것이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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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70페이지를 읽었는데 벌써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전쟁은 지략이 더 뛰어나서가 아니라 상대가 더 무능해서 이긴다. 이탈리아인들은 빌리가 영국과 운명을 같이하기로 한 사실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이집트는 물론 다른 곳에서도 계속 그와 일했다. 빌리는 알렉산드리아에 없을 때가많았다. 이탈리아 군대와 함께 에티오피아나 이탈리아에 머물거나 이탈리아 대표단으로 독일에 파견되거나 했다. 그는이탈리아의 이해관계에 더욱 필수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 운송 전문가와 사막 수송대 연료 공급 전문가로 명성을 쌓았다. 어설프나마 그런 분야의 지식을 언제 어떻게 얻었는지 추측할 길이 없지만 어쨌든 이탈리아는 누구든 필요했다.  - P34

성녀는 가끔 혼잣말을 하고 자주 뭔가를 잃어버리거나 있어버리는 온화하고 울적한 할머니였다. 물건을 어디에 숨겼.
는지, 누구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숨겼는지 잊어버렸다. 열쇠와 장갑을 잃어버리고 이름과 날짜, 빚지거나 싸운 일을 잊어버렸다. 말하는 도중에도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잊어버리고 더듬거리다 아무 말이나 끼워 맞췄다. 메르게 말하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기를 바라면서, 그녀는 결론도 없이 빠른 속도로 말하는 게 하던 말을 까먹었다는 확실한증거임을 깨닫지 못했다. 가끔은 완전히 방향을 잃어버려서그냥 실수를 인정할 때도 있었다. 별거 아니야. 흔한 일이잖아." 그녀는 심호흡하면서 밀려오는 불안감을 억누르려고 애썼다. 나중에 기억날 거야." 자신이 사는 이탈리아화된 비잔틴 세계에서는 말하는 도중에 재채기하면 거짓말이라는 뜻이고 잊어버렸다고 하면 속임수를 뜻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렇게 말했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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