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을 어색하지 않게 이용하는 한 가지 방법은 무엇도 우연에 기대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우연이 문제를 해결하면 규칙을 어기는 느낌이 든다. 이야기가 우연에서 아무 이득도 얻지 못하면 산뜻한 느낌을 주며 무언가를 암시한 뿐이다. 또 다른 방법은 우연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애초에 우연 때문에 이야기가 시작되게 하자. 세 번째 방법은 소설의 배경에서 우연이 풍경의 일부를 차지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내가 사는 코네티컷 뉴헤이븐 사람들은 우연을 무척 좋아하고, 우연이 항상 일어난다고, 어떤 사람과 한 가지 이상의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어쩌면 특정 크기의 모든 도시가 그럴지도 모른다. 알고 보니 당신에게 커피를 파는 바리스타가 같은 사무실 동료의 딸일 정도로 작지만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깜짝 놀랄 만큼 큰 도시 말이다.
- P124

이 모든 것이, 이런 기이함과 예측 불가능성이 소설에서는 중요하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우리는 안다, 애석하게도 소설의 우연은 다르다. 문학은 우연으로 가득하다. 어떤 위기와 관계된 모든 사람이 동시에 같은 장소에 나타나고, 주목받지 못한 낯선 이들이 알고 보면 오래전에 잃어버린 친척들이며, 중요하지 않은 손님들이 비밀을 알게 된다.
소설에 우연이 등장하면 우리는 그 이야기의 우주가 흥미로울 정도로 예측 불가능하다는 느낌을 받는 게 아니라 무척 통제되고, 어색하고, 뻔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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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 후에 치우지 않은 식탁, 옮겨진 의자, 전날 밤섹스를 하다가 아무 데나 벗어던져 엉켜 버린 옷들, 나는 줄곧 우리 관계의 시작부터 잠에서 깨어나 그것들을 발견하며매료되고는 했다. 매번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각자가 물건을 줍고 분리하며 그 풍경을 허물어뜨려야만 하는 일은 내심장을 옥죄였다. 단 하나뿐인, 우리들의 명백한 쾌락의 흔적을 지우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 P9

인터넷에서 유방암에 관한 수많은 웹사이트를 보았다.
예전에 질투의 징표를 봤던 것처럼, 사방에 적힌 죽음의징표를 보았다. 르루아메를랑을 나오면 보이는 영안실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 선물로 받은, 작은 추가 들어 있는 잡동사니 등등.
정리에 대한 반감은 극단적이 됐다. 무언가를 정리하고보관한다는 것이 예전보다 훨씬 더 터무니없게 느껴졌다.
죽음에 죽음을 더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신발 두 켤레와 캐시미어 니트 두 장을 사면서 지금의 내 상태에는 불필요한 과소비 - 그러나 돈 역시 불필요한것은 마찬가지다 라고 생각했다.
한 번은 오베르 역 계단 아래에서 아이를 안고 손을 내미는 집시 여인 앞을 지나가다가 그녀가 젖을 물리는 것을 언뜻 보았다. 가슴이 보라색이었다. 나는 걸음을 돌려 그녀에게 동전을 주었다. 내 가슴 때문이었다.
나는 비올레뜨 르드윅‘을 기억해냈고 그녀의 일대기에서그녀가 유방암을 앓으면서 얼마 동안 생존했는지를 찾아냈다. 7년, 글을 쓰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 P27

처음 퀴리의 문턱을 넘으면서 단테의 문장이 떠올랐다.
"이곳에 들어온 당신, 모든 희망을 잃을 것이다." 그러나 안에 들어가자 오히려 이상적인 장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늘날에는 그 실례를 찾아볼 수 없는, 미소를 띤 세심한 인간들이 약한 이들을 따뜻하게 돌봐 주는 곳. 나는 금세, 아무생각 없이 뤽상부르 역에서부터 표시된 경로를 따라 걷게되었다. 라탕 지구 중심에서 학생, 구매자, 연인들의 만남, 관광객들이 교차하는 모든 길 중에, 암 환자들을 위해 표시한 길이었다. 내일 항암치료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작년의
‘미용실에 간다‘는 말만큼 자연스러워졌다.
- P28

일기장으로 사진의 날짜를 추정할 수 있었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기 전 마지막 일요일이다. 몇 개월 전부터 계획된 이 전쟁을 모두 예상하고 있었다. 전 세계 수백만의 사람들이 전쟁을 반대하며 행진을 했지만, 그것은 태양이 불태운 땅 위에 드리워진 커다란 그림자처럼 계속해서 전진했다. 나는 1991년만큼 전쟁을 반대하는 운동에 격렬하게 참여하지 않은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그저 발코니에 평화주의적인 반대 운동의 표시로 하얀 천을 걸었을 뿐이다. 프랑스에서는 매우 드물게 이행됐던 행위로, 틀림없이 이웃들의눈에 미친년으로 보이는 효과만 자아냈을 것이다.
어느 날 아침, 라디오를 켜자 전쟁이 거기 있었다. 그것은 너무 먼 공포였기에 M과 함께 한 이야기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었다. 날씨는 더웠고, 태양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이렇게 아름다운 봄‘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모든의무, 글에서까지도 해방되어 오로지 M과 이 이야기를 살았다. 시간을 낭비하며, 인생의 긴 휴가, 암으로 얻은 긴 휴가를,
- P59


또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그는 틀렸다. 나는 삶이 글의
‘소재‘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글을 위한 ‘미지의 기획‘을 원한다.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라는 이 생각은 형식조차도 실제 내 삶에 의해 부여된 텍스트를 의미한다. 나는 우리가 쓰고 있는 이 글을 절대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삶으로부터 나왔다. 다수의 조각들로 이뤄진 그것 자체도 아직은 알 수 없는 M의 글의조각들에 의해 부서지게 되겠지만 사진으로 쓴 글 역시 마찬가지로 다른 무엇보다 이 현실을 담은 ‘최소한의 이야기를만드는 기회를 내게 준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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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이, 이런 기이함과 예측 불가능성이 소설에서는 중요하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우리는 안다, 애석히게도 소설의 우연은 다르다. 문학은 우연으로 가득하다. 어떤 위기와 관계된 모든 사람이 동시에 같은 장소에 나타나고, 주목받지 못한 낯선 이들이 알고 보면 오래전에 잃어버린 친척들이며, 중요하지 않은 손님들이 비밀을 알게 된다소설에 우연이 등장하면 우리는 그 이야기의 우주가 흥미로울 정도로 예측 불가능하다는 느낌을 받는 게 아니라 무척 통제되고, 어색하고, 뻔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 P121

우연을 어색하지 않게 이용하는 한 가지 방법은 무엇도
우연에 기대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우연이 문제를 해결하면 규칙을 어기는 느낌이 든다. 이야기가 우연에서 아무 이득도 얻지 못하면 산뜻한 느낌을 주며 무언가를 암시할 뿐이다. 또 다른 방법은 우연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애초에 우연 때문에 이야기가 시작되게 하자. 세 번째 방법은 소설의 배경에서 우연이 풍경의 일부를 차지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내가 사는 코네티컷 뉴헤이븐 사람들은 우연을무척 좋아하고, 우연이 항상 일어난다고, 어떤 사람과 한가지 이상의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어째면 특정 크기의 모든 도시가 그럴지도 모른다. 알고 보니 당신의게 커피를 파는 바리스타가 같은 사무실 동료의 딸일 정도로 작지만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깜짝 놀랄 만큼 큰 도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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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 기형도 30주기 시전집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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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일월 삼일, 새해를 맞아 봉녕사에 갔어요. 마침 음력으로 섣달 초하루더군요.

   대웅전 앞 배롱나무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어요.

 

 

 

 

 

  여우길을 걸어서 (월드컵 경기장을 만들기 전에 산이 있었는데 그곳이 '여우골'이었단 생각이 나더군요. 거기 물이 맛있어서 약수터로 물 뜨러 다녔던 기억까지도. 그래서 아마도 여우길이 아닐까 추측해 보았답니다.)

  광교 호수공원까지 3킬로쯤 되는 것 같았어요.

  호호 깔깔거리며 모터보트를 타던 원천유원지는 반쯤은 사라지고 부자동네의 핫플로 남았네요. 무섭다 무섭다고 죽을 듯 비명을 지르며 바이킹을 타던 자리는 어디쯤일지 감도 오지 않았어요. 익숙한 곳인데도 낯선 곳이 자꾸 늘어나고 있어요.

 

 

 

 

 

 

 

 

 

 

 

 호수를 한 바퀴 돌면 저렇게 잘 만들어 논 인공암장도 만날 수 있지요. 오후 햇살에 더욱 근사해 보였어요. 그런데 어쩐 일인지 암벽 타는 이들을 한 번도 보지 못했네요. 아, 코로나19 시절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익숙해지지 않은 외관을 가진 유명 백화점 앞 나무들의 비현실적인 색감이 마음을 따스하게 만들어주었어요.

 

 

 

  

 

    올해 쓰기로 한 다이어리는 몇 해 동안 가지고 있던 '기형도 30주기 기념 필사 노트'입니다. "입속의 검은 잎' 시집의 캐리커처가 그려진 짙은 회색의 양장 노트가 좋아서 뭘 쓸까 고민하다가 2022년 육십인 올해의 다이어리로 정했다지요. 첫 장의 시는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인데 지금은 사라져버리고 없는 한미르 문학마당에 '길 위에서'를 만든지도 20년이 되었네요. 저도 '길 위에서 꽤 중얼거리며 살아왔구나' 싶습니다. '길 위에서'와 함께 20년,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많이 성장했다고 자평합니다. 어느 때는 중얼거림, 어느 때는 주절거림, 어느 때는 웅얼거림의 쓰기였지만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 위였고 제 안으로 들어오는 길 위이기도 했지요. 또박또박, 기형도를 필사하면서 2022년의 몇 날을 지내보았습니다. 머리 더부룩한 청년 기형도가 말 걸어오기를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답니다. 별 것도 없지만 그냥 이렇게 기록을 남겨봅니다.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너희 흘러가버린 기쁨이여

  한때 내 육체를 사용했던 이별들이여

  찾지 말라,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

  이제 해가 지고 길 위의 기억은 흐려졌으니

  공중엔 희고 둥그런 자국만 뚜렷하다

  물들은 소리 없이 흐르다 굳고

  어디선가 굶주린 구름들은 몰려왔다

  나무들은 그리고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가득 피워냈다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돌아갈 수조차 없어

  이제는 너무 멀리 떠내려온 이 길

  구름들은 길을 터주지 않으면 곧 사라진다

  눈을 감아도 보인다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나를 찾지 말라 …… 무책임한 탄식들이여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기형도 시 전집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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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전하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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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웬만하면 젊은 작가 상 수상작품집을 챙겨읽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한 해 동안 주목받은 작가 군도 궁금하고 어떤 작가들이 어떤 글들을 쓰는지 알고 싶기도 하다. 또한 문학동네에서 특별 보급 가란 이름으로 저렴하게 펴내기에 그 뜻에 발맞추고 싶은 생각도 있다. 나는 언제나 우리 소설, 우리 시에 진심이다. 누가 뭐래도 (뭐라 하지 않아도) 우리 문학에 관한한 순정파다.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건 한 편이라도 부지런히 읽고 한 권이라도 사는 것이 우리 문학을 지키는 이들에게 보탬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여 딴에는 꽤 부지런히 읽고 수입에 비해 과하게 사는 편이기도 하다. (그렇지. 올해 오른 최저 시급은 이제 시집 한 권을 살 수 있다. 어느 달의 도서 지출 비용은 이틀 치의 일당을 훌쩍 넘긴다. 그렇게 하루하루 일당을 제하고 나면 이게 뭐 하는 짓인지 헛웃음이 나올 때도 있다.)

   올해, 올해의 작품집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몇 해 전 박상영, 김봉곤 등에 놀랐다면 같은 맥락으로 김멜라, 김지연 등에 놀랍다는 것이다. 늙은, 혹은 낡은 내 정서로는 파격에 가까운 일이 주변부에서 중심으로 이동하는 느낌이다. 소수라는 이유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 애정 하는 우리 문학에서 그 걸음을 걷는 것이 뿌듯하다. 다 옳은 것만은 아니고 다 높은 수준인 것은 아니지만 다양성은 중요하다. 나머지 선택은 독자의 몫이니까.

   일하면서 읽느라고 집중력이 떨어지기도 했고 작고 촘촘한 활자는 가독성을 떨어뜨렸다. 어쩔 수 없이 늙은, 아니 낡은 나를 발견하기도 하는 독서의 시간이다. 그런 나를 지켜보는 동료들 한 마디씩 한다. "눈 좋아서 좋겠다." 그래도 여튼 읽기를 마쳤다. 이제 눈 밝은 이들이 찾아 줄 2022년의 젊은 작가들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엉뚱한 방향으로 드는 생각, 젊은 작가 군도 요즘 핫한 작가 군도 대부분 여성작가들이다.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이것은 편가르기라고 요즘 정치가 양반들이 말씀하시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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