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베유처럼 관심을 기울이는 법, 이 챕터는 매력적이었다. 잠깐잠깐씩 푹 빠져서 현실로 돌아오는데 애 먹었다.

기차가 내 목적지인 홀랜드파크역에 도착하자 나는 열치화랫폼 사이 간격을 조심하며 출구 쪽으로 향한다. 나는 걷고 있다. 기보다는 인파에 밀려 서핑을 하고 있다. 주의를 기울이려 하지만 속도 때문에 불가능하다. 속도는 주의의 적이다. 역 바깥으로... 나온 뒤 갑작스레 쏟아지는 햇빛에 눈을 깜박거리며 방향 감각을되찾으려고 고군분투한다. 지하에서 지상의 삶으로 이행하는 것은 언제나 까다롭다. 방향감각을 잃고 내가 어디 있는지를 알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며, 기이하게도 내가 누구인지도 함께 헷갈린다. 나는 어엿한 지상의존재인가, 아니면 수상쩍은 지하세계의 거주자인가? 낯선 이들이 우리를 쳐다본다. 또는 우리 자신이 그렇게 상상한다. 사람들은 우리가 빛이 쏟아지는 이곳 지상에 속한 사람인지 아닌지 의심스러워한다. 나는 지상에서 존재할 자격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에 걷기 시작한다.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앞으로 게속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노팅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 동네는매우 아늑하다. 커피 한 잔을 끌어안고 하루 종일도 보낼 수 있을듯한 카페들과, 계속 존재함으로써 꿋꿋이 경제학 법칙에 저항하는, 성실하게 책을 골라 진열해놓은 책방들을 지난다. 한 파키스탄계 남자가 꽃을 팔고 있다. - P242
우리는 물건을 급작스레 잃어버리지만 그 상실은 점차로 서서히 경험한다. 우리의 자동차 키가, 지갑이, 마음이 그저 잘못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소유한 물건과 한때 소유했던 물건사이를 나누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결코 가파르지 않은 것은아닌 선을 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비존재는 우리를 겁먹게 한다. 인지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상실‘은 짧지만 위협적인 단어다. 명사계의 나폴레옹이다. 그안에 몸무게‘라는 단어가 붙지 않는 이상 거의 언제나 부정적인뜻을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상실을 그저 경험하지 않는다. 우리는 상실로 고통받는다. 사람들은 일이나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을 길을 잃었다‘라고 표현한다. 어떤 국가나 사람의 인생을 따라갈 때 역사가들은 모든 것을 잃게 된 구체적인 시점을 정한다. 상실은 크기가 다양하지만 크기가 작은 경우는 없다. 상실은중간에서 시작해 점점 커진다. 상실의 느낌 또한 다양하다. 상실은 어떤 이에게는 고통스러운 것, 어떤 이에게는 충격적인 것, - P249
어쩔 줄 몰라 다시 시몬에게 기댄다. 나는 절망적인 순간마다스스로에게 베유의 책 중 한 권을 펼치라고 말한다. 베유는 내가겪는 고충을 보고 단순한 진단을 내린다. 나는 그 공책을 정말 찾고 싶은 게 아니다. 그 공책을 소유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욕망에사로잡혔고, 욕망은 관심과 양립할 수 없다. 무언가를 욕망하는것은 곧 거기에서 얻고자 하는 바가 있다는 뜻인데, 바로 그 상태가 우리의 시야를 가린다. 우리는 우리의 욕망이 향하는 대상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문제인 것은 그 주체, 즉 ‘나‘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랄 때그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건 환상이다. 헤로인 중독자는 헤로인을 갈망하지 않는다. 헤로인을하는 경험,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헤로인을 못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안도감을 갈망하는 것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정신적 괴로움으로부터의 자유, 즉 아타락시아다. 다시 시몬에게로 돌아간다. "미덕이나 시, 또는 문제의 해결책을 구하기 위해 온몸에 힘을 주고 이를 악무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을까? 관심은 이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온몸에 힘을 풀고 책장을 넘긴다. "문제는 늘 우리가 너무 적극적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수색에 나서고 싶어 한다." 이 문장이 나를 당황스럽게 한다. 짜증나게도 한다. 당연히 수색에 나서고 싶죠. 시몬 ! 수색에 나서는 것 말고 내가 내 공책을찾을 수 있는 방법이 또 있나요? - P252
깊게 심호흡을 하고 계속 책을 읽어나간다. 베유가 말을 이어나간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대상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는 것이다. 오로지 간접적인 방법만이 효과가 있다. 우선 한발짝 물러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는 물러서서, 지하실에서 한 트럭 분량의 아편처럼 내게 손짓하는 거대한 텔레비전으로 후퇴한다. 좋지 않다. 너무 멀리 물러졌다. 나는 체념 앞에 굴복했다. 체념은 변장한 절망이다. 베유는 행동과 결과를 하나로 묶어버린 것이 나의 문제라고 말한다. 삶은 늘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으며, 관심도 마찬가지다. 주의를 기울이는 삶은 위험하다. 결과가 늘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관심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 아니 어디로 이끌기나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베유가 주창한 것과 같은 순수한 관심에는 친구에게 좋은 인상을 주거나 출세하고 싶은 것과 같은 외부적 동기가 묻어 있지 않다. 무언가에 온전한 관심을 기울이는사람은 그의 노력이 눈에 보이는 결실을 맺지 못한다 할지라도" 진전을 이룬 것이라고, 베유는 말한다. 베유의 말이 옳다는 것을 나도 알지만,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결실을 찬미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결실이 눈에 더 잘 보이고 더 화려할수록 좋다. 시몬 베유처럼 지금 이 순간에만 마음을 쏟고 미래의 보상에는 무관심하게 사는 것이 가능할까? 애정을 담아 주의 깊게 딸아이를 키우면서, 아이가 신경외과 의사가 될지 바리스타가 될지에는 관심을 끌 수 있을까? 공모전에 글을 내면서 상을 달지 못 탈지에 관심이 없을 수 있을까? - P253
잃어버린 원고에 관한 이야기들을 읽으며 시몬 베유의 말을 다시 떠올린다. "우리가 가장 귀중한 선물을 얻는 것은 그것을 찾아나설 때가 아니라 그것을 기다릴 때다." 베유의 말이 옳다. 나는기다려야 한다. 만약 이 책이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라면 지금쯤 기적처럼 공정을 발견하고 여태껏 공책이 내 목전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것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 책은 스필버그 영화가 아니다. 이 책이 충성을 바치는 대상은 박스오피스가 아니라 진실이며, 진실은내가 내 공책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공책이 어떤 지혜를 담고있었을지, 또는 아무 지혜도 담지 않았을지 나는 평생 알지 못할것이다. 그래서 그냥 내버려둔다. 공책을 보내주기로 한다. 이것도 진전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럴지도. 하지만 이건 시몬 베유가 즐겨 쓰던 단어가 아니다. 진전이랄 것도, 승리랄 것도 없다. 오직 기다림만이 있을 뿐. 그래서 나는 기다린다. 내가 상상한 것보다 더욱 기꺼이, 더욱끈기 있게 기다림은 그 자체가 보상이므로,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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