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시선 408
안미옥 지음 / 창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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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안미옥

    내가 맛보는 물은 바닷물처럼 따스하고 짜며,

건강처럼 머나먼 나라에서 오는군요.

-실비아 플라스 『튤립』

 

 

  굴레도 감옥도 아니다

  구원도 아니다

 

  목수가 나무를 알아볼 때의 눈빛으로

  재단할 수 없는 날씨처럼

 

  앉아서

 

  튤립, 튤립

  하고 말하고 나면

 

  다 말한 것 같다

 

  뾰족하고 뾰족하다

 

  편하게 쓰는 법을 몰랐다

  편하게 사는 법을 모르는 것처럼

 

  기대하는 모든 것을

  배반해버리는 곳으로 가려고

 

  멀고 추운

  나라에서 입김을 불고 있는 너는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건 정말일까

  한겨울을 날아가는 벌을 보게 될 때

 

  투명한 날갯짓일까

  그렇다면

 

  끔찍하구나

  이게 전부 마음의 일이라니

 

         시집[온]중에서

 

 

  "그럼에도 계속 쓰는 사람이었던 것은, 내가 매 순간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하니 선택의 순간이 많았다. 그때마다 나를 붙들어준 문장과 사람들의 말이 있었다. 결국엔 함께하는 일. 나는 함께 살고 싶다"

     ---시인의 말 중에서

 

 

   쓰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그 꿈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 없다. 그러나 누구나 시인처럼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정도의 쓰는 사람으로 남는 것 또한 후회하지 않는다. 내게도 항상 '문장과 사람들의 말'이 있었지만 스스로 받아 적기는 버거운 일이었다. 하여 '쓰는 사람'이 받아 적은 것들을 되새김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런 사람도 있는 것이다. "목수가 나무를 알아볼 때의 눈빛"을 갖지 못했기에 '쓰는 사람'이 되지 못한 것 같다. 어쩌면 "편하게 쓰는 법을 몰랐다/ 편하게 사는 법을 모르는 것처럼"그래서인지도 모르겠고. 쓰는 사람만큼이나 읽는 사람도 필요한데 그것이 "쓰는 사람"들의 동력일 텐데, 많은 이들이 쓰고자 하지 읽는 이로 남으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중에 포함되는 1인임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소망한다고 누구나 그리될 수는 없다. 과한 욕심들이 무구한 나무의 목숨만 앗을 뿐이다.) 시인은 전부를 다해(온) 쓰는 사람, 즉 시인이 되었는데, 시는, 시집은, 시인에게 "굴레도 감옥도 아니다/ 구원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러나 "마음에서 시작된" 다시는 놓아버릴 수 없는 쓰는 사람의 고통은 "끔찍하구나/ 이게 전부 마음의 일이라니" 다른 마음을 가질 수 없는 거구나.

  그러나 이런 시를 만나고 새로운 시인을 알아가는 하루는, 온전하게 새로운 하루다. 근무가 off인 오늘을 충만함으로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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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21-05-26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는 사람.˝ 아래로 쓰신 첫 세 문장에 완전히 빗장이 열려서 목 아플 때까지 고개 끄덕끄덕하면서 읽었습니다.
그 세 문장에 녹은 마음이 어떤 것인지 감히 조금쯤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2021-05-27 15:37   좋아요 0 | URL
목은 괜찮으신거지요^^
그 짐작이 아마도 맞지 싶네요~ ㅎ
syo님 흔적,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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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하게 참 철없이 - 2009 제11회 백석문학상 수상작 창비시선 283
안도현 지음 / 창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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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제비

            안도현

 

 

   비 온다

   찬 없다

 

   온다간다 말없다

 

   처마 끝엔 낙숫물

   헛발 짚는 낙숫물

 

   개구리들 밥상가에

   왁자하게 울건 말건

   밀가루반죽 치대는

   조강지처 손바닥

   하얗게 쇠든 말든

 

   섰다 패를 돌리는

   저녁 빗소리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 중에서

 

 

  "비가 쏟아지는 아침이다.

  오월의 잦은 비, 천수답엔 논물 대기 좋겠지만. 다른 작물들은 어떨까? 갑자기 농사꾼의 마음이 헤아려지는 싱숭생숭한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다."라고 쓴 것이 무색하게 햇살 환해진 시간. 마음도 날씨 따라 환해지는 건가, 화~ 안 하다.

  울 집 장남이 '섰다 패를 돌리는'데 정신이 팔렸던 방위 시절.

  지어놓고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장터의 우리 집이 날아가고,

  씨감자를 넣고 재 뿌리고 북해 주느라 허리 휘던 감자 한 차가 사라지고,

  자갈 논에 모심느라 손톱이 꺾어지며 수매한 나락 값이 한입에 없어지던 그해.

  우리는

   오늘은 수제비, 어제는 국수, 내일도 국수, 모레는 수제비를 물수제비뜨듯 뜨던 날들 사이에서도 엄마는

  '조리장사 치겟돈을 내서라도' 시루떡을 앉히던 날이 있다.

  객지 나가있는 언니 오빠들의 생일이었다.

  오늘도 그런 날.

  나를 업어키우고 재우고 보호자 노릇을 하던 여덟 살 위인 둘째 언니의 생일이다.

   "온다 간다 말 없"이 사는 여전한 내 보호자 울 언니,

  축하해 언니, 이제부터라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갑시다.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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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 창비시선 455
신미나(싱고)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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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과(破瓜) 1

                      신미나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목사님이 말했는데

   손가락이 하나 없는

   언니의 머리는

   쓰다듬어주지 않았다

   헌금함이 돌아오면

   우리는 헌금하는 시늉을 했다

   무슨 잘못을 했는지

   말해보라고 했다

   콧등을 내려다봤을 뿐인데

   너희는 착하구나

   부끄러움이 뭔지 아는구나

   해바라기가 해를 원망하며

   비를 기다릴 때

   고사리처럼 몸을 비틀며

   지렁이가 죽어갔다

        시집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중에서

   벌써 네 번째 시집을 펴낸 신미나 시인의 시를 처음 만났다. 시집의 첫 시 『지켜보는 사람』을 읽는데 왜 이제 만났을까 싶다.

   파과, 破瓜.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말하면서 "부끄러움이 뭔지" 알기에 착한 자매에게 친절한 어른은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안겼다. 그러나 그 어른은 모두의 존경을 받으며 여전할 것이고 그런 날들을 보낸 부끄러운 자매에게 세상은 "고사리처럼 몸을 비틀"린 세월을 안겼을 것이다. 치민다. 울컥한다. 이것은 폭력의 서사다. 이 현재진행형의 폭력 앞에서 대책 없이 슬프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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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 없는 집 문학과지성 시인선 379
곽효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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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곽효환

   모래언덕아래

   '바람아래'

   그보다 더 깊은 곳으로부터

   해무는 점점 짙어가고

   방포항 지나 꽃지다리 너머로

   시커멓게 아랫도리를 드러낸

   작은 섬, 둘

   물결 따라 바람결 따라

   점점 뿌옇게 얼굴 흐리는

   여름 같은 봄날 혹은 봄 닮은 여름날

   해마다 느는 건 주름과 약력뿐이라는

   늘 당당하기만 한 그들을 뒤로하고

   내내 말없이 걷는

   이 길 끝에 성돌 두른 담집이 있을 것 같다

   그 집 돌담에 기대어

   성긴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나를 떠받쳐온 아랫도리 같은 이력을 멈춰 세우고

   생략 없이 살아온 날들의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다

   모래 더미로 바다 안개로 다 덮어버리고 싶다

   꽃지섬 밑동에 물이 차고

   곧게 뻗은 해송 숲 아래로부터 초록이 오른다

   시집[지도에 없는 집] 중에서

   역마에 발을 맡기던 시절, '바람아래'에 간 적이 있었다.

   안면도 영목항을 향해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도 늙었고 자리를 차지한 승객들도 비슷한,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은 추석을 앞둔 조금은 붐비는 그런 초가을 오후였다. 구불구불한 비포장길을 버스는 바쁠 것 없는 나그네의 심사를 알았는지 느릿느릿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풍경을 달려갔다. '꽃지'를 지난 어느 모퉁이, '바람아래해수욕장'나무 팻말이 바람 속에서 칠을 벗겨가며 서 있었다. '바람아래'가 마음을 붙잡았다. 급하게 내리겠다고 소리치자 모든 승객의 시선이 일제히 꽂혔다. 내렸다.

   텅 빈 '바람아래 '.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모래언덕과 모래를 흔드는 바람, 그리고 멀리 바다가 비현실적으로 놓여있었다. 황량했다. 붐비던 사람들이 빠져나간 철 지난 해수욕장 같은 쓸쓸함조차 없었다.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바람이 모래를 희롱하여 만들었음직한 풍경만이 존재했다. 바다가 보이지 않았다면 사막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기억에 각인된 '바람아래'를 시에서 만난다. 많이 다르고, 많이 비슷한 바람의 '아랫도리' 그 쓸쓸한 서정이 '내내 말없이 걷는' 걸음을 붙잡는다. 마지막 연의 '밑동에 물이 차고' '아래로부터 초록이 오른다'에도 불구하고 쓸쓸하다. 이 시는 쓸쓸하다. '바람아래'만큼이나 쓸쓸하다.

   그 후로 다시는 가보지 못한, 갔다 해도 다시는 그때를 만나지 못할 내 안의 풍경, 세상 어디에도 없는 '바람아래'. 나는 그런 '바람아래'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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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 개정판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57
허수경 지음 / 실천문학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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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수경

  강은 꿈이었다

  너무 먼 저편

  탯줄은 강에 띄워 보내고

  간간이 강풍에 진저리치며

  나는 자랐다

  내가 자라 강을 건너게 되었을 때

  강 저편보다 더 먼 나를

  건너온 쪽에 남겨두었다

  어느 하구 모래톱에 묻힌 나의

  배냇기억처럼

            시집[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중에서

   나에게도 강이 있다. 성으로 쓰는 姜과, 내 안의 江이기도 한 드들강을 가졌다.

   네이버 위키백과에서는 드들강에 대한 설명이 이렇게 나온다.

   "지석천(砥石川)은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증리에서 발원하여 나주시 금천면 인근에서 영산강과 합류하는 하천이다. 화순군 이양면 지역은 지방2급하천(길이 약 20Km)으로 관리되며, 청풍면 경계인 송석천 합류점에서 국가하천(길이는 약 34 km)으로 바뀌어 관리된다. 다른 이칭으로는 드들강(--江)이라고 한다."

   이런 설명문을 읽으면 반드시 드는 생각, '뭐라는 거야?' 곧, 무슨 말인지 얼른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모든 사적이나 유물이나 설명문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하는 일, 꼭 나만 느끼는 막막함은 아닐 것이다. 모르긴 해도 한 번쯤은 다 느끼는 무식한 자신을 대면하게 되는 좌절을 맛보았을 것이다. 전문가만이 알 수 있는 불친절한 설명문을 굳이 왜, 표지판을 세워서 써놓을까? 이왕이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써 놓으면 얼마나 좋을까.

   또 다른 네이버 검색에서는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의 예치(禮峙)와 청풍면의 화학산(華鶴山, 614m)에서 발원하여 능주면을 지나 영산강으로 흘러드는 강. 길이 53.5㎞. 이 강은 화학산에서 흘러내려 능주면을 지나면서 충신천(忠臣川)이라 불리고, 서쪽으로 방향을 전환하면서 화순천(和順川)과 합류하며, 남평에 이르러 대초천과 다시 합류하여 영산강에 흘러든다. 남평읍 소재지에서 화순군 능주면 사이의 부분을 드들강이라고 부른다. 이 부분은 길이가 4㎞이며, 유역에 발달된 남평평야와 화순평야 등의 주요 미곡산지를 관개한다. 드들강이라는 명칭은 숫처녀인 디들을 제물로 묻고 나서 무사히 제방을 쌓을 수 있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는데, 그 뒤 드들로 음이 변한 것이라 한다. 남평을 흐르는 지석강부분은 광주 일원의 유원지로 개발되어 여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목욕도 하고 잉어찜·용봉탕 등을 먹으며 더위를 식히는 좋은 휴식처이다."

   이 설명문은 조금 더 마음에 든다. 이렇게 상상력을 자극하는 설명문이라면 우리 문화재나 역사에 대해 더욱 쉬운 접근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곁길로 새버린 강, 나의 江. 드들강 곁에서 유년과 사춘기를 포함한 성장기 16년을 살았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드들강이었다.'디들'의 전설은 오래전 '전설 따라 삼천리'에서도 소개된 내용이어서 상상력이 스토리텔링으로 발전시켜준 부분도 있다. 드들, 드들,을 읊조리면서 보를 걸을라치면 한편에서는 넘실넘실한 검푸른 물과 반대편에서는 쏟아지는 하얀 포말 사이의 경계에서 빨려 들어갈 듯한 현기증에 아슬아슬해져서 다리가 쪼그라들고는 했었다.

   국민학교 1학년 봄 소풍, 내 생애의 첫 소풍이었을 그 소중한 기억을 엄마는 도시락 싸줄 돈도 없고, 맨날 보는 드들강에 뭐 하러 가느냐고 당신이 일하는 고추밭에 나를 앉혀 두었다. 아니오를 몰랐던 여덟 살의 나는, 고추밭 도랑에 앉아서 둑으로 걸어가는 소풍 행렬의 긴 줄에 피어오르던, 먼지 같기도 하고 아지랑이 같기도 한 그 뿌연 아스라함을 어제처럼 선명하게 기억한다. 여름이면 무수한 사람들이 솔밭을 향해 긴 행렬을 이뤘고, 둑 넘어 사래 긴 땅콩밭에 북을 해주다가가 허리를 펴고 그 풍경을 한 번씩 쳐다보고는 했다. 지열로 뜨끈해진 모래흙은 땅콩 농사에 좋았다. 호미 쥔 손이 뜨끈뜨끈했다. 그런 나에게 " 모다 정신 빠진 것들 이제. 뭣땜시 쩌 무거운 가방을 메고 지고 이 땡볕에 헐일없이 믄지 풀풀 나게 걸어댕기고 있다냐."라고 혼잣말처럼 하셨지만 그들이 메고 진 가방 안에 뭣이 들어있을지는 엄마도 나도 몰랐다.

   엄마와 내가 솔밭을 찾아간 것은 중 1 때 여름, 우리 집 장남께서 동료들과 야유회를 하게 되어 리어카에 음식을 바리바리 싣고 둘이서 끌고 밀며 팥죽 땀으로 범벅이 되어서다. 솔밭 그늘 평상에서 술 마시며 노래하던 잘난 장남이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퉁바리를 칠 때, 죄인처럼 오그라들던 엄마의 두 손을 보고 등에 차던 땀이 식었다. 솔밭에 삼삼오오 앉아있는 사람들은 모두 무언가를 먹고 마시고 있었다. 엄마와 나는 그들의 벌어진 가방을 보고 그제야 알았다. 그 무겁고 메고 진 가방 안에 뭣들이 들어있었는지.

   등. 하교 때마다 지름길을 놔두고 둑길로 혼자 걸어 다녔다. '강은 꿈이었다/ 너무 먼 저편' 이었다. ' 탯줄은 강에 띄워 보내고/ 간간이 강풍에 진저리치며/ 나는 자랐다' 그 길에서 궁상을 떨면서 강 건너편을 그리워했다. 풀밭에 앉아 하염없이 강으로 지는 노을을 보고 있노라면 이유 모를 슬픔이 몽글몽글 차올랐다. 아마도 사춘기였으리라. '내가 자라 강을 건너게 되었을 때/ 강 저편보다 더 먼 나를/ 건너온 쪽에 남겨두었다' 그렇게 엄마와 동생, 그리고 드들강을 두고 떠나왔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했다. 드들강은 '배냇기억처럼' 아스라해졌다.

   그러다가 만나게 된 시, 김태정 시인의 '가을 드들강'. 시인도, 시도, 그리움 몽실몽실하게 만든다. 그런데 시인은 어찌 알았을까. 울 어매 소원이 흰 새가 되는 것이었는데. ㅎ~ 그 시절 모든 어매들의 소원은 훠이훠이 날아다니는 새처럼 자유를 갈망했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들이 짊어진 삶이 너무 무거웠던 것이다.

   가을 드들강

              김태정

   울어매 생전의 소원처럼 새가 되었을까

   새라도 깨끗한 물가에 사는 물새가

   물새가 울음을 떨어뜨리며 날아가자

   바람 불고 강물에 잔주름 진다

   슬픔은 한 빛으로 날아오르는 거

   그래, 가끔은 강물도 흔들리는 어깨를

   보일 때가 있지

   오늘같이 춥고 떨리는 저녁이면

   딸꾹질을 하듯 꾹꾹 슬픔을 씹어 삼키는,

   울음은 속울음이어야 하지 울어매처럼

   저 홀로 듣는 저의 울음소린

   바흐의 무반주첼로곡만큼 낮고 고독한 거

   아니아니 뒤란에서 저 홀로 익어가는

   간장맨치로 된장맨치로 톱톱하니

   은근하니 맛깔스러운 거

   강 건너 들판에서 매포한 연기 건너온다

   이맘때쯤 눈물은

   뜨락에 널어놓은 태양초처럼

   매움하니 알큰하니 빠알가니

   한세상 슬픔의 속내, 도란도란 익어가는데

   강은 얼마나 많은 울음소릴 감추고 있는지

   저 춥고 떨리는 물무늬 다 헤아릴 길 없는데

   출렁이는 어깨 다독여주듯

   두터워지는 산그늘이나 한자락

   기일게 끌어당겨 덮어주고는

   나도 그만 강 건너 불빛 속으로 돌아가야 할까부다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창비 2004)]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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