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첫눈입니까 문학동네 시인선 151
이규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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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첫눈입니까

                   이규리

   누구인가 스쳐지날 때 닿는 희미한 눈빛, 더듬어보지만 멈칫하는 사이 이내 사라지는 마음이란 것도 부질없는 것 우린 부질없는 것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친 일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낱낱이 드러나는 민낯을 어쩌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날 듯 말 듯 생각나지 않아 지날 수 있었다 아니라면 모르는 사람을 붙들고 더욱 부질없어질 뻔하였다 흩날리는 부질없음을 두고 누구는 첫눈이라 하고 누구는 첫눈 아니라며 다시 더듬어보는 허공, 당신은 첫눈입니까

   오래 참아서 뼈가 다 부서진 말

   누군가 어렵게 꺼낸다

   끝까지 간 것의 모습은 희고 또 희다

   종내 글썽이는 마음아 너는,

   슬픔을 슬픔이라 할 수 없어

   어제를 먼 곳이라 할 수 없어

   더구나 허무를 허무라 할 수 없어

   첫눈이었고

   햇살을 우울이라 할 때도

   구름을 오해라 해야 할 때도

   그리고 어둠을 어둡지 않다 말할 때도

   첫눈이었다

   그걸 뭉쳐 고이 방안에 두었던 적이 있다

   우리는 허공이라는 걸 가지고 싶었으니까

   유일하게 허락된 의미였으니까

   저기 풀풀 날리는 공중은 형식을 갖지 않았으니

   당신은 첫눈입니까

            시집[당신은 첫눈입니까]중에서

 

   

 

​   우리가 통화하는 동안 눈은 조용히 쌓이고 있었다.

   '우린 부질없는 것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는 동안 눈은 조용조용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뭉쳐 고이 방안에 두었던 적'이 있는 그 마음에 대해

   '슬픔을 슬픔이라 할 수 없어' '풀풀 날리는 공중'조차 가진 적 없는 우리의 지난한 날들을 "흩날리는 부질없음'의 소멸들을 나누는 중에도 눈은 내리고 있었다. 봄의 시작이라 믿고 싶은 순간에도 내리는 눈은 아름답다. 어제는 나뭇가지에 눈을 띄운 아가들을 보고 경이로워했는데 '허무를 허무라 할 수 없어'지는 마음 기울기를 찬찬한 눈으로 보고 있다.

   이 겨울 제대로 된 눈을 본 적이 없다는, 당신은 첫눈입니까

 

   

 

 

 

   해 질 무렵이면 끌리듯 나서는 산책길은 춥고 조심스럽게 미끄러웠어.

   그래도 뽀득뽀득한 눈길 밟는 소리는 느낌이 좋았어.

   라디오에서는 경주에 첫눈이 온다던데, 당신은 첫눈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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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문학동네 시인선 135
이원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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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슬픈 날이야, 오죽하면 신발에 달팽이가 붙을까

​                              이원하

​ 

  하도리 하늘에

  이불이 덮이기 시작하면 슬슬 나가자

  울기 좋은 때다

  하늘에 이불이 덮이기 시작하면

  밭일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

  혼자 울기 좋은 때다

  위로의 말은 없고 이해만 해주는

  바람의 목소리

  고인 눈물 부지런하라고 떠미는

  이 바람과 진동으로 나는 울 수 있다

  기분과의 타협 끝에 오 분이면 걸어갈 거리를

  좁은 보폭으로 아껴가며 걷는다

  세상이 내 기분대로 흘러간다면 내일쯤

  이런 거, 저런 거 모두 데리고 비를 떠밀 것이다

  걷다가

  밭을 지키는 하얀 흔적과 같은 개에게

  엄살만 담긴 지갑을 줘버린다

  엄살로 한 끼 정도는 사먹을 수 있으니까

  한 끼쯤 남에게 양보해도 내 허기는 괜찮으니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

  검은 돌들이 듬성한 골목

  골목이 기우는 대로 나는 흐른다

  골목 끝에 다다르면 대문이 있어야 할 자리에

  거미가 해놓은 첫 줄을 검사하다가

  바쁘게 빠져나가듯 집 안으로 들어간다

               시집[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중에서

 

 

 

 

 

  "하늘에 이불이 덮이기 시작하면"은 노을이 지는 시간일 것이다. 그 시간은 "울기 좋은 때" 맞다.

  약간은 센치해지는 설날 오후,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을 읽는다.

  제주 올레 초기가 주로 서귀포 쪽 바다였다면 함덕 쪽 바다들은 2015년 이후에 만나기 시작했다. 특히 상대적으로 조용한 하도리 바다와 길, "위로의 말은 없고 이해만 해주는 바다의 목소리"에 빠져 "하늘에 이불이 덮이"는 길 위를 서성였다. 허기와 쓸쓸함과 종일 끌고 다닌 발이 무거울 때쯤이면 어김없이 전화는 울린다. '어디야? 얼릉 와. 저녁 먹어야지' 내 제주의 거점은 매번 성산포다. "세상이 내 기분대로 흘러간다면 내일쯤" 찾아가고 싶은 다정한 주인이 기다리고 있는 성산포 성산리의 민박집. "한 끼쯤 남에게 양보해도 내 허기는 괜찮으니까 집으로 돌아가" 듯 반짝거리는 마당을 지나 이층 데크에서 매번 "혼자 울기 좋은 때"임을 알려주는 식산봉 위로 저녁이 가볍게 내려앉는다. 내가 오늘 찾아간 길들과 풍경과 말들을 조잘조잘 대면서 또 한 명의 산 언니네 부부와 '냉장고 안 들어간 오리지널 한라산 한 잔'을 콜콜콜 따른다. 식탁에는 숨비소리 거칠게 공수해온 '참소라'와 함께 걷던 친구들의 이름이 그득할 것이다. 그립다. 안녕하신지 전화만으로 안부를 묻기에는 허허롭다. 하여 여기에 숨겨둔다. 무탈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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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첼 카슨은 어려서부터 글을 쓰고 싶어 했다. 그녀에게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생명이었다. 레이첼은 열아홉 살 때 실험실 동료에게 이런 말을 했다. "생물학을 공부하면서 쓸 거리가 생겼어." 생명은 그녀에게 단어를 줬다. 그녀만의 목소리를 줬다. 그녀는 과학을 시처럼 쓸 줄 알았고 그녀의 글을 읽은 많은 사람들은 어떤 부분에서인가는 숨을 죽였다. 글을 읽는 동안 아름다움의 세례를 받은 것이다. 그녀의 글에는 마치 죽은 뒤 하늘로 높이높이 떠오르는 인어공주의 영혼을 닮은 수정 같은 아름다움이 있다.

  레이첼 카슨의 사적인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1953년에 일어났다. 레이첼은 오랫동안 비슷한 정신세계를 가진, 자신의 세계를 공유할 수 있는 진정한 친구를 만나길 고대했다. 1953년에 7월에 그 일이 일어났다. 『우리를 둘러싼 바다』로 성공을 거둔 카슨은 어머니와 함께 살 별장을 마련하게 된다. 그 별장에선 해변에 물개와 바다표범이 출몰하고 강어귀에서 고래가 뒹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창은 거대한 세계로 향하는 열린 문이었다. 레이첼은 별장으로 이사 오면서 도로시 프리먼과 스탠리 프리먼 부부를 만나게 된다. 프리먼 부부는 『우리를 둘러싼 바다』를 번갈아가면서 큰 목소리로 낭독할 정도로 좋아했고 레이첼이 이웃으로 온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레이첼과 프리먼 부부가 처음 만난 날, 초저녁의 햇살은 늦게까지 빛나고 달은 부지런히 썰물을 당겨 올렸다. 그날 그들은 여섯 시간을 함께 보냈을 뿐인데 헤어지자마자 두 번째 만남을 고대하게 되었다.

  레이첼과 도로시는 같은 것을 사랑했다. 자연, 바다, 고양이, 레이첼은 다시 만나면 도로시를 조수 웅덩이, 즉 썰물의 세계에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했다. 썰물 때 드러난 조수 웅덩이를 지켜보는 것은 레이첼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고, 무엇보다 그녀가 우정을 나누는 방식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세계로 사람들을 초대하곤 했다.

 

   ……(중략)

 

 

  수술 후 그녀는 방사선 치료로 인한 고열, 통증, 메스꺼움 때문에 누워 지내야만 했다. 생태계를 교란할 수 있는 살충제의 위험성을 강력하게 경고하는 글을 쓰는 동안 그녀는 자신의 "신체 세포의 생태를 교란할지도 모를 처치를 무리하게 시도하지 않으려는 신중함을 가진 의사"를 찾아야 했다. 방사선 치료는 종양은 작아지게 했지만 궤양은 악화시켰다. 이제 도로시와 레이첼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그전에 도로시는 레이첼의 베개 밑에 레이첼에게 늘 위안을 주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적은 쪽지를 넣어두었다.

 

    모래 가루에서 세상을 보고

    야생화에서 하늘을 보네

    우리의 손바닥에서 영원을 보고

    한 시간 속에서 영원을 보네

  썰물 때 드러나는 작은 따개비와 조개껍질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생명 전체의 위대함을 배웠던 카슨을 이만큼 잘 설명할 수 있는 시도 드물 것이다.

  레이첼은 자신에게 죽음을 포함한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덜 집착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제부터 그녀의 삶은 죽음 일보 직전의 초연함과 지혜가 될 터였다. 그녀는 하기로 계획했던 일을 계속했다.

그녀는 매일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도 "아주 가끔씩 아픔을 모두 이기고 정신이 살아나 생각이라도 할 수 있게 되면" 책 생각을 했다. 이제 그 좋아하던 조수 웅덩이에 내려가는 일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 되었다. 책의 마지막 단계에서 그녀를 공격한 것은 홍채염이었다. 홍채염은 그녀에게 책을 읽을 수도 빛을 견딜 수도 없는 끔찍한 통증을 안겨줬다. 대략 2주간은 실명 상태에 있었다.

  이 시련 끝에 1962년 1월, 마침내 레이첼은 『침묵의 봄』을 출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고양이 제피를 끌어안고 웅크리고 앉아 눈물을 터뜨렸다. 제피는 작지만 따뜻한 몸과 혀로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

    지난여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지 않고는 지빠귀의 노랫소리를 다시는 행복한 기분으로 들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어젯밤 모든 새와 모든 생물과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사랑스러운 것들에 대한 생각이 깊은 행복감과 함께 물밀듯이 찾아왔어요. 지금 나는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으니까요. 나는 그 책을 완성할 수 있었어요. 그 책은 이제 자신만의 생명을 갖게 되었어요.

  그녀는 거의 불가능해 보였던 일을 해냈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만족감을 표현하는 서사가 극히 드물다는 점에서, 무엇이 그녀에게 만족감을 줬나 찬찬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레이첼 카슨은 암의 위험을 경고하는 글을 쓰는 동안 정작 자신은 암을 앓게 되었다. 그런데도 "지금껏 어떤 것도 제가 포기하도록 심지어 포기할까 하고 한 번쯤 생각해 보도록 만들지는 못했습니다"라고 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백 번쯤 포기할까 생각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고 해도 인간적으로 감동할 마당에 말이다.

  첫 번째 이유는 양심일 것이다("해야 할 일이 뭔지 알면서도 손을 놓고 있다면 제게 미래의 평화는 없을 겁니다"). 그녀는 자신(자신의 양심)을 저버리는 일을 결코 하지 않았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가 있다. 1957년 최초의 살충제 소송을 제기한 사람들은 워싱턴에 살면서 도움을 줄 누군가를 찾아달라고 청했다. 카슨은 그들에게 도움이 될 누군가를 찾는 과정에서 그 '누군가'가 바로 자신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누군가가 되어가는 과정이 『침묵의 봄』을 쓰는 과정이다. 『침묵의 봄』을 쓰는 일은 그녀의 거의 모든 시간과 전적인 헌신을 요구했다. 그녀는 '어떤 사람이다' 혹은 '어떤 사람으로 보인다'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어간다'의 삶을 살았다.

    정혜윤의 [앞으로 올 사랑] 중에서 『그녀는 그녀 삶의 예언자가 되었다』 p85~96

 

    이 책을 읽다가 지난해 봄에 쓰다 말고 팽겨쳐둔 글이 생각났다.

 

    코로나의 시절에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읽고

  봄이다.

  봄이면 당연하다는 듯

    봄 편지

                    박남준

    밤새 더듬더듬 엎드려

    어쩌면 그렇게도 곱게 썼을까

    아장아장 걸어 나온

    아침 아기 이파리

    우표도 붙이지 않고

    나무들이 띄운

    연둣빛 봄 편지

​         시집[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중에서​

 

 

  나무들이 물이 오르는 것이 보이고 꽃봉오리들이 맺히는 것을 감탄하면서 들여다보는 시절인데 설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우리 곁에 실체를 드러낸 코로나 바이러스는 봄처럼 슬금슬금 다가오는가 싶더니 봄꽃처럼 폭발적으로 피어나 우리를 겨울 속으로 이끌었다. 이제쯤은 사라지겠지, 이젠 괜찮을 거야, 하는 조바심과 간절함들이 교차하는 동안 삼월이 와버렸고 마음도 몸도 여전히 추웠다. 그쯤에 펴든 책, 오랜 기간 책꽂이에 장식처럼 자리한 [침묵의 봄]이다. 언젠가 읽기는 해야 할 텐데 어렵지 싶어 미뤄두고 미뤄두었는데 얼마 전에 읽기를 마친 호프 자런의 [랩걸]의 재미가 그런 선입견을 버리게 했고 '이런 시절엔 이런 책이지' 했다.

이미 어떤 내용인지는 익히 알고 있었고 그동안의 독서 편력을 감안할 때 쉬운 접근은 아닐 거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으나 결과는 이렇다.

 

 

 

 

  읽는 동안 점점 몰입했고 무심한 행동, 무심한 일상들이 결국 우리의 일상을 얼마나 망치는 결과를 가져오는지 뼈아픈 자각이 왔다. 결국은 이 코로나의 시절, 즉 바이러스의 계절도 이미 예견된 [침묵의 봄]은 아닐까 하는 결론을 얻었다.

  나는 모기가 싫다. 아니 무섭다. 어려서부터 물것을 심하게 타는 내 종아리와 팔뚝은 여름 내내 성한 곳이 없었다. 모기가 물리면 성이 나서 부어오르고 가렵다가 급기야 상처를 남기고 그 흉터는 다음 해까지 이어지다가 사라질 즈음이면 다시 여름을 맞는 반복이니 이쯤 되면 모기와의 관계는 천적이다. 여름 필수품으로 벌레 물린 데니, 기피제 등은 가방 안에 항상 준비되어 있다. 혹여 들이나 산에 나서려면 큼직한 에어로졸 흔히 모기약이라고 불리는 스프레이는 필수다. 그렇게 살충제를 가까이하고 사는 내게 DDT로 시작하는 책의 내용은 반성과 충격의 연속이었다. 이 상황이 5~60년대라지만 지금, 바로 지금이라고 읽혀서 더욱 충격이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쓰고 멈춰있다.

   [앞으로 올 사랑]도, [침묵의 봄]도 마무리는 아니다. [침묵의 봄]을 이렇게 마무리 짓는 건 정혜윤의 글에서처럼 '어떤 사람이 되어간다'의 삶을 살아 간 레이첼 카슨에 대한 예우가 아니다. 어떻게 그 끔찍한 고통 속에서 책의 완결을 마칠 수 있었는지 절로 경외감과 존경심이 우러러 나오는 그녀가 보내 준 경고를 무시하면 나는 대표로 벌받을 것이다.

  그리고 '정혜윤'. 책으로 만날 때마다 거듭 찬탄한다. 내 전작 읽기의 도전은 그녀의 열정적인 독서와 쓰기 앞에서 읽는 것만도 따라잡기가 벅차다. 오죽하면 정혜윤 [퇴사는 여행]이라는 책도 저자의 이름만으로 사들였을까? '정혜윤 피디'가 기어이 cbs 라디오를 그만두고 여행자의 삶을 시작했나 보다고, 더 이상 살펴보지도 않고 덜컥 사들였으나 동명이인의 책이었다는 웃픈 일도 내게 일어나게 만든 그녀다. [앞으로 올 사랑]을 아직 다 읽지 않았지만 책 속에 담긴 자신의 작업의 긍지로 보아 그녀가 라디오를 그만 둘 일은 거의 없을 듯하다. '마술적 저널리즘'을 꿈꾸는 라디오 피디, 정혜윤의 [앞으로 올 사랑]은 지금이라는 시대에 보내는 희망적인 사랑 이야기가 가득하다.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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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첫눈입니까 문학동네 시인선 151
이규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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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그래서

                                  이규리

   산책은 나무에서 나와 나무 아닌 곳으로 들어간다

   해 질 무렵이면

   마음은 곧잘 다른 마음이 되어

   노을을 낭비하였는데

   이어지는 저녁의 이야기는

   흐린 은유는

   아무때나 친절하면 안 된다는 듯

   우리는 지나가는 그늘

   공기조차 알아채지 않도록

   그건 나무에게 이름을 걸어주지 않는 이유와 같을 것

   없는 슬픔이 도와

   그러므로 그래서

   안녕히 가세요

   나의 시간

                   시집 [당신은 첫눈입니까]중에서

 

 

     

 

  

 

  [당신은 첫눈입니까]를 아껴 읽는 중이다. 시어들이 콕콕박혀서 부리로 쪼는 물까치 가족 같다. 어느 때는 홀로 와서 쪼면서 노래하다가 가족을 불러와서 단체 회의를 하듯이 쪼기도 한다. 홀로 왔을 때는 버스 안에서 한 편을, 5인이상 집합금지 적용을 받지 않은 총동원령이 내려진 날에는 옮겨 적으면서 몇 편을 읽는다. 여기, 시 맛집이라고 물까치가 떼로 쪼아대면서 저들끼리 왁자하다. 잔칫집이다. 니들은 좋겠다.

   '해 질 무렵'을 좋아한다. 가만히 있다가도 그 시간이 되면 '마음은 곧잘 다른 마음이 되어' '나무에서 나와 나무 아닌 곳으로' 산책을 간다. 열 서너살 무렵부터 노을에 마음이 뺐겼다. 학교를 파하면 훨씬 많이 걷게 되는 둑방길로 패랭이꽃과 노을을 보러 갔다. 그 풀밭에 앉아 유장한 드들강물과 노을을 보는 것으로 애늙은이의 노곤한 하루가 저물어갔다. 집에서는 도통 말없는 아이가 학교에서는 주변이 늘 소란했다. 어느 쪽이 더 좋았는지는 매번 양가의 감정이다. 두 가지 성향을 다 가진 듯하다. 여전하다. 사람, 안 변한다. ' 없는 슬픔이 도와' 마음 깊은 곳에는 울분과 설움이 자리했다. 나이가 드니 그런데서 자유롭다는 사실이 좋다. '안녕히 가세요 나의' 시간, 나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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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마이카상

 

 

                    김태정

 

 

이젠 너를 갈아치울 때가 되었나보다

네가 낡아서가 아니야

싫증 나서는 더더욱 아니야

이십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해온

네가 이젠 무서워졌다

무서워졌다 나의 무표정까지도 거뜬히

읽어낼 줄 아는 네가,

반질반질 닮아버린 귀퉁이만큼 노련해진 네가.

너를 펼쳐놓는 순간부터

시를 쓸지 책을 읽을지

아니면 밥을 차려 먹을지

내 행동을 점칠 줄 아는 네가 무서워졌다

네 앞에서 시를 쓴다는 것이,

네 앞에선 거짓말을 못한다는 것이 무서워졌다

이십년 전이나 이십년 후나

변함없이 궁핍한 끼니를 네게 보여야 한다는 것이

불편해졌다

책상도 되고 밥상도 되는 네 앞에서

시도 되지 못하고 밥도 되지 못하는

나의 현재가 문득 초라해졌다

시가 밥을 속이는지

밥이 시를 속이는지

죽도 밥도 아닌 세월이 문득 쓸쓸해졌다

이 초라함이,

이 쓸쓸함이 무서워졌다

네 앞에서 발바닥이 되어버린 자존심

아무래도 이 시시한 자존심 때문에

너를 버려야 할까보다

그래 이젠 너를 갈아치울 때가 되었나보다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중에서

 

 

 

 

  

 

 

   

 

 

 

 

 

 

 

 

 

 

 

 

  호마이카상과 트렁크 하나를 들고 방에서 방으로 전전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재영 작가의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를 읽는 데, 결코 친애할 수 없었던 그 시절들이 생각난다. 집에서 올라올 때 옷가지 등을 담은 은색 트렁크를 가져왔다. 지금의 수하물용 캐리어보다 크고 바퀴도 없던 트렁크를 어떻게 끌고 다녔는지 기억이 없다. 비키니 옷장을 장만하기 전까지는 내 소유물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트렁크다. 그리고 맨 먼저 장만한 다리가 접히는 작은 호마이카상 한 개. 시인처럼 밥상도 되고 책상도 되어주었다. 손바닥만 한 트랜지스터라디오와 함께 호마이카상은 그 시절의 나를 지탱해 준 친구였다. 저 시를 처음 만났을 때, 김태정 시인이 오래된 친구처럼 느껴졌다. 그의 다른 시들에서도 나는 동질감과 소속감으로 결속되었다. 시인의 지난한 생애와 살아온 시간들이 같다. 시인은 겸손하게 가난해서 맑은 이마를 가진 시인으로 남았고, 욕심의 곳간을 가진 나는 지금의 내가 된 것이다.

 

 

  지금의 원룸이나 독립된 공간인 방 하나가 아닌 한 가족의 오롯한 공간을 지나야 들어갈 수 있는 방들의 시절이다. 그것도 꽤 오래 전전했다. 아무리 조심을 해도 끼익 소리가 나는 현관문을 열고 자연스럽게 발뒤꿈치를 들고 거실을 통과하면 호마이카상과 트렁크, 이불한 채가 전부인 내 방에 비로소 들어설 수 있었다. 운이 좋으면 차단 효과가 되는 나무 문이 나를 가려주기도 했지만 소위 식모방으로 불리던 주방 뒤쪽의 방일 때는 창호지 문의 미닫이 일 때가 많았다. 가족이 적은 집이거나 생활이 넉넉지 않은 가정은 방 한 칸을 포기하고 세입자를 들여 생활비를 충당하던 세입자나 주인이나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타인이 드나드는 불편함을 서로 감수해야 했으니 집주인이라고 마냥 당당하지만은 않았단 생각이 든다. 그 시절에는 미루어 짐작하지 못했던 상대방의 불편함도 이제서야 생각하게 된다. 집은 누구에게나 하루의 노곤함을 편안한 쉼으로 충전하는 공간이었으니. 그러나 자발적인 눈치 보기는 늦은 튀근 후 욕실을 사용하는 일은 최소한의 시간을 원했으며, 주방을 같이 사용하지 않으려면 끼니는 회사에서 먹는 한 끼나 두 끼가 전부였지만 휴일에는 이도 저도 불가능해서 종일토록 책을 읽거나 뒹굴뒹굴하다 집에 빈 기척을 살피며 삼양라면으로 대신하던 시절이었다. 도서관이나 공원조차도 흔하지 않던 시절, 아마 11개나 12개의 방을 거쳤으리라. 방마다, 저마다의 사연으로 기억의 퇴적층을 이루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중에 단연 최고는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그 동네일 것이다. 집장사가 지은 ​비슷한 집들이 가득한 신흥 주택가의 이층, 타원형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오던 예쁜 창을 가진 집에서 삼 개월인가 살았다. 그것도 동생이랑 둘이서. 부부만 거주한다기에 단출함이 서로 부담 없을 줄 알았던 생각은 이사 하루를 넘기기 전에 깨지고 말았다. 이사 기념으로 저녁에 새집의 환한 방에서 대패삼겹살을 구워 먹고 있는데 소란스러운 소리는 우리를 단번에 주눅 들게 만들었다. 집에서 둘이 같이 살던 시절, 우리는 저녁마다 술을 먹고 들어오는 장남의 패악질에 무방비로 놓였던 주눅의 세월이 있었다. 울면서 매달리고 잘못했다고 비는 엄마 때문에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던 무기력과 고난, 홧증과 속수무책의 절망을 우리는 서로 절대로 내색하지 않았는데. 어쩌다 잘못된 하루일 거라는 외면은 거기 사는 동안 날마다 이어지는 하루들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데려온 동생은 같은 직장에 입사했다. 둘 다 3교대 근무에다 다른 부서였기에 우리는 어쩌다 만났지만 만나도 말이 없는 하루들이 늘어만 갔다. 자매였지만 많이 다른 성향은 무언의 거리로 간극이 넓어졌고, 그 집 가까이 사는 부부의 어머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 현관문을 열어 제켰고 문이 열리는 횟수만큼 부부의 싸움도 점점 극을 향해 달려갔다. 세간들은 붕붕 날아다녔고 그런 순간은 우리는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참아야 했고 최대한 방에 없는 것처럼 노력을 해야 했다. 결국 그 부부가 이혼을 결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깊은 부엌이 따로 있는 방을 구해 지옥을 벗어 날 수 있었다. 생의 구비에서 길지도 않을 시절을 지냈던 그 방, 지금도 가끔 얼굴 없는 그 부부가 소리만으로 싸우는 꿈을 꾼다. 그 꿈에는 어김없이 얼굴이 선명한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머리채를 잡고 있는 부분에서 가위에 눌려 숨을 죽이는 내가 있고 햇살이 찬란하게 쏟어져 들어오는 타원형 창문이 있다. 그때 우리는 그 창에 반해서 그 방을 계약했었다. 그 뽀얀 햇살이 가여운 엄마를 공동묘지에 묻고 온 우리의 설움을 뽀송뽀송하게 말려 줄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그 후론 단 한 번도 그때에 대해 우리 자매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그때 우리의 주식은 나온 지 얼마 안 된 통통한 너구리 라면이었는데, 문밖에 귀를 기울이고 조용한지 확인한 뒤 재빨리 끓여오던 너구리 라면과 호마이카상. 오늘 점심은 짜파구리로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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