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창비시선 219
박성우 지음 / 창비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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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박성우

 

 

거미가 허공을 짚고 내려온다

걸으면 걷는 대로 길이 된다

허나 헛발질 다음에야 길을 열어주는

공중의 길, 아슬아슬하게 늘려간다

 

한 사내가 가느다란 줄을 타고 내려간 뒤

그 사내는 다른 사람에 의해 끌려 올라와야 했다

목격자에 의하면 사내는

거미줄에 걸린 끼니처럼 옥탑 밑에 떠 있었다

곤충의 마지막 날갯짓이 그물에 걸려 멈춰 있듯

사내의 맨 나중 생이 공중에 늘어져 있었다

 

그 사내의 눈은 양조장 사택을 겨누고 있었는데

금방이라도 당겨질 기세였다

유서의 첫 문장을 차지했던 주인공은

사흘 만에 유령거미같이 모습을 드러냈다

양조장 뜰에 남편을 묻겠다던 그 사내의 아내는

일주일이 넘어서야 장례를 치렀고

어디론가 떠났다 하는데 소문만 무성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들은

그 사내의 집을 거미집이라 불렀다

 

거미는 스스로 제 목에 줄을 감지 않는다

 

 

새 

 

 

공중에 발자국을 찍으며 나는 새가 있다

제 존재를 끊임없이 확인하기 위해

지나온 흔적들을 뒤돌아보며 나는 새가 있다

 

그 새는 하늘에 발자국이 찍혀지지 않을 땐

부리로 깃털을 하나씩 뽑아 던지며 난다

마지막 솜털까지 뽑아낸 뒤엔

사람의 눈으로 추락하여 생을 마감한다

 

오늘은 내가 그 새의 장례식을 치른다

저 하늘의 새털구름,

그 새의 흔적이다

 

 

 

찜통

 

 

내가 조교로 있는 대학의 청소부인 어머니는

청소를 하시다가 사고로

오른발 아킬레스건이 끊어지셨다

 

넘실대는 요강 들고 옆집 할머니 오신다

화기 뺄 땐 오줌을 끓여

사나흘 푹 담그는 것이 제일이란다

이틀 전에 깁스를 푸신 어머니,

할머니께 보리차 한통 내미신다

 

호박넝쿨 밑으로 절뚝절뚝 걸어가신다

요강이 없는 어머니

주름치마 걷어올리고 양은 찜통에 오줌 누신다

찜통목 짚고 있는 양팔을 배려하기라도 하듯

한숨 같은 오줌발이 금시 그친다

 

야외용 가스렌지로 오줌을 끓인다

찜통에서 나온 훈기가 말복 더위와 엉킨다

마당 가득 고인 지린내

집밖으로 나가면 욕먹으므로

바람은 애써 불지 않는다

오줌이 미지근해지기를 기다린 어머니

발을 찜통에 담그신다 지린내가 싫은 별들

저만치 비켜 뜬다

 

찜통더위는 언제쯤이나 꺾일런지

찜통에 오줌 싸는 나를 흘깃흘깃 쳐다보는 홀어머니

소일거리 삼아 물을 들이키신다

 

막둥아, 맥주 한 잔 헐텨?

다음주까정 핵교 청소일 못 나가먼 모가지라는디

 

 

 

친전

    아버지께

 

 

아버지 안녕히 가세요

인공호흡기를 뽑는 일에 동의했어요

 

병에 걸린 오골계의 맥풀린 똥구녕 같은

보름달이 떴어요

회백색 분비물이 제 얼굴로 쏟아지고 있어요

아버지 그거 아세요 오늘이 성탄전야라는 거

 

탄일종이 울리고 있어요

 

끝으로, 제 남은 생의 모든 성탄절을 동봉하네요

아버지 안녕히 가세요

 

                                        시집[거미(창비2002)] 중에서

 

 

   젊은 시인들의 작품에서 직접적인 현실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시편들은 대체로 아프다. 그 이유는 물론 크게 보면 우리 삶 자체가 아프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좀 더 직접적으로는 시인들의 내면에서 아픔이 깊이 가라앉아 있는 게 아니라 아직 생생하게 들끓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내면에 어찌 아픔의 정서만이 들끓고 있겠는가. 거기에는 아픔만이 아니라 외로움이나 슬픔, 분노, 고뇌 들 여러 감정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을 것이다. 젊은 시인들은 그들의 내면에 들끓는 이런 감정들을, 좋은 의미에서 제어하지 않는다. 제어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들은 거칠지만 생생한 감각으로 재현된다. 그중에서도 아픔은 살아있다는 것을 가장 실감 나게 환기시켜주는 감각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박성우의 시편들은 대부분 아픔을 그리면서도 그 아픔을 표나게 내세우지 않는다. 그것을 내면 깊숙이 받아들여 묵묵히 견디는 자세를 보여줄 뿐이다. 좋게 말해서 의젓하고, 어찌 보면 애늙은이 같은 이러한 태도는 오히려 낯설기조차 하다. 그는 벌써 세상의 지리멸렬함을 다 알아버린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세상의 지리멸렬함을 다 알아버린 사람이 취할 태도는 아예 유희나 혹은 초월을 택하는 것이 차라리 쉽지 않을까 그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는 세상의 지리멸렬함을 다 알아버린 자이면서도 또한 그것을 견디는 자이기 때문이다.

      해설 [세상의 상처에는 옹이가 있다 --- 강연호 시인] 중에서

 

 

   시인의 말

 

  쓸쓸하고 지루한 날들이었지만

  고만고만하게 견딜 만했다

  애벌레의 상태로 첫 시집을 묶는다.

  이제 내 손을 떠나는 시들이므로

  나비가 되든 나방이 되든 어쩔 수 없으리.

 

  흙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와

  여전히 나에게 몸으로 책을 읽히시는 어머니께

  이 시집을 바친다.

                       2002년 8월

           석상마을에서 박성우

 

 

   중대재해법에 관한 뉴스를 챙겨 보던 며칠, [거미]를 읽고 싶었다. 중대재해법과 거미에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 결코 알 수 없지만 뇌의 회로는 가끔 그렇게 작동 된다. 그렇게 잡은 [박성우] 시인에게 며칠을 갇혀지냈다.

  우선 먼저 거미를 보낸다. [거미]는 시인이 2000년에 신춘문예 당선 시인데 이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거미줄에 갇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시집에 실린 시인의 앳되고 맑은 표정에 슬그머니 웃어본다. 젊은 시인이 중년이 되고 여전히 가난한 가장으로 고군분투하는 시편들을 만나고 난 다음이어서일까, 새 시집이 묶여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기대해본다. 시를 써서 밥 먹고살기는 영 그른 일이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시 속에 가득 담긴 가난함에는 구질구질함이 없다. 가난이야 지긋지긋한 환멸이지만 오래 된 일기를 다시 읽은 것처럼 아릿하다. 가난하지만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애틋한 과거를 만난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게 문제지만.

  이걸 쓰는 동안 라디오에서는 좋아하는 노래가 나온다. 리처드 막스의 One More Time 내가 해야 할 일도/ 내가 가야 할 곳도 없어요/ 내 삶 속엔 나를 제외하고…… 애절하다. 이미 지나간 것들에 '한번만 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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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쓸모 -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2가지 통찰
최태성 지음 / 다산초당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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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2가지 통찰

  역사의 쓸모

              최태성 지음 [다산초당(2019)]

 

  

   『이름 없는 의병들을 다룬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도 있었죠.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은 참 많아요. 하지만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역사의 흐름에 몸을 던진 사람은 그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미스터 션샤인>은 그 아무개들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였어요. 이 드라마의 메인 포스터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습니다.

  저물어가는 조선에 그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저 아무개다.

  그 아무개들 모두의 이름이,

  의병이다.

  원컨대 조선이 훗날까지 살아남아 유구히 흐른다면,

  역사에 그 이름 한 줄이면 된다.

  위인 중심으로 돌아가는 역사에서 아무개들의 역사는 놓치기 쉬워요. <미스터 션샤인>에 등장하는 의병을 볼 때마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해요. '나도 저 시대에 태어났다면 저 위치에 있을 수도 있겠구나.' 솔직히 광개토대왕, 이순신, 김구 같은 위인에게 나를 빗대기는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그 주변 인물, 열심히 살아가지만 이름은 남기지 못한 사람들의 일생을 볼 때면 가슴이 더 찡합니다. <미스터 션샤인>을 보면서 감동이 물밀듯 밀려온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이 시대의 아무개일 테니까요.[p37. 38]』

 

  <미스터 션샤인>을 좋아했다. 일 끝나는 시간이 불규칙해 제대로 보지 못해서 주말마다 마치는 시간이 되면 공연히 조바심을 치게 만든 드라마였다. 기회가 닿으면 띄엄띄엄 보는 감질나는 시청 후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러다 어느 휴일 이틀인가를 몰아서 꼼짝도 안 하고 16부작을 몽땅 보았다. 벌써 오래 전인데도 ost를 가끔 들으며 그 장면들을 떠올린다. 주조연 배우 각각의 연기도 좋았고 특히 누구랄 것 없이 그들의 대사가 좋았다. 그 시대적 상황과 캐릭터에 걸맞은 대사는 작가 '김은숙'의 걸출함 때문이었겠지만 발음이나 전달력은 말 그대로 쉽게 심금을 울렸다. 늘 세상의 변방에서 아웃사이더로 산다고 적지만 그것은 포장지로 곱게 싼 이미지이고 실체는 여기에 등장하는 모두들보다 더 허접하고 구질구질하다.

  국민학교 4학년 때 키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학교 여자배구부에 차출되었다. 새로운 규칙과 코트 안에서 공을 받으며 뛰는 시간들은 좋았다. 그런데 이유 없는, 아니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드려맞기는 억울하고 아팠다. 무조건 팬다, 그래야만 권위가 선다. 이게 그 당시의 교육 방식이었는지 무조건 패는 선생들이 많았다. 선생은 선생님이니까 포기하고 습관처럼 맞을 수 있었지만 그 뒤를 이은 선배들의 탱자나무 몽둥이는 진저리가 났다. 한 학기를 채우지 못하고 배구를 그만두었다. (지금도 스포츠계의 폭력은 여전하다는 것을 뉴스를 통해 만난다. 시골 변방의 신생 배구부에도 저랬으니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들은 어땠을지는 불 보듯 뻔하다.)

  5학년 때 담임은 '고전읽기부'로 나를 보냈다. 방과 후에 학교 대표 선수로 차출된 친구 몇이 남아서 김유신 장군' (그 유신의 시대에 걸맞은 위인이라 필독서였을 것이다) 과 '우리 겨레의 발자취'를 달달 외우다시피 읽고 선생님의 부연 설명을 듣는 과정이었다. 다음 학기에 군에서 열리는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시험 결과가 어땠는지를 잊은 걸 보면 뻔한 결과였을 것이다. 학교 파하면 바로 집에 와서 밭에 돌을 골라야 한다고 신신당부하는 엄마한테 맞춤한 핑곗거리로 집에 늦게 들어갈 구실이 생겼다. 그놈의 밭의 돌들은 밭 가운데 산을 만들도록 골라도 끝도 없이 나왔다. 논은 또 어떤가, 모를 심을라치면 돌에 손가락이 박혀서 모두 품앗이를 피하던 논을 몇 년 만에 작은 돌 하나도 없게 만들었다. 돌을 골라내는 일은 평생 땅에서 허리 펼 날 없었으나 한 뙈기의 땅도 갖지 못한 엄마의 억척과 한이 만들어 낸 결과다. 다음 목표는 밭이어서 엄마는 아침마다 학교 파하면 바로 들어오라고 노래를 하신 것이다. 끝내 돌밭은 옥토로 바꾸지 못하고 주인들에게 돌려줘야 했지만 그 시절엔 그것도 모르고 어스름 무렵까지 학교에 남아있었다. 그래서인지 더 열심히 책을 읽었고 덕분에 역사를 좋아하게 되었다. 국사 시험을 잘 보게 된 탓인지도 모른다. 자신감은 잘 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된다. 엄마한테는 못된 딸이었는데 '매'가 '역사'로 이끈 것이다. '역사'에 등장하는 무수한 사람들의 생각과 그 생각을 행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았다. 그래서 나는 안다. 저 시절에 살았더라면 나는 맞는 게 두렵고 싫어서 아무 짓도 못했을 거라는걸. 설사 그런 일에 참여했더라도 몇 대 두들겨 맞으면 전부 불고 말았을 거라고 가끔 후배한테 지나는 말로 그런다. 나는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아무개다.

  누구나 아픔에 초연할 수 없을 것인데, 누구에게나 하나뿐인 목숨은 소중할 것인데, 고문 장면을 보는 것은 보는 것으로도 고통을 기억하게 하는 괴로움이다. '그 아무개들 모두의 이름이, 의병이다' 아무개들이 온갖 고문들과 역경을 헤쳤을 게 뻔한데도 저 한 줄의 문장으로 남았다. 거기에 담긴 커다란 울림이, 드라마 한 편이 주었던 온갖 희로애락의 위안이 책 속에 적혀있었다. 단박에 처음 알게 된 큰별쌤의 '역사의 쓸모'가 좋아졌다. 물론 처음에는 역사를 '쓸모'로 칭한 제목에는 거부감이 들었다. 갖고 있는 보리 국어사전에는 '쓸모'는 '쓸만한 데'라고 나와있다. 나 같은 사람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는지 『역사의 실용적인 측면만 강조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기도 합니다만 역사연구를 업으로 삼지 않은 일반인에게 역사를 학문적인 관점으로 대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역사의 '쓸모' 보다 역사의 '실체'를 강조하는 접근은 역사로부터 대중을 멀어지게 할 뿐입니다.[p8]』라고 부연 설명을 해두었기에 '역사'를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통찰'을 위한 쓸모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쓸데없어 보이는 것의 쓸모' 책 속 1장의 제목이기도 한데 저 제목이 좋았다. 별 거 아닌 것이 아닌 별 것들에 담긴 감동과 기쁨을 알기에 그 제목을 사용하기로 한다.

  책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많았고, 처음 읽는 내용도 있었지만 한 명 한 명 그들의 행보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저자가 존경하는 두 인물은 이육사 선생과 이순신 장군, 『이육사는 시인이지만, 일제 강점기에 무려 17번이나 감옥에 갇힌 열혈 독립운동가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수인번호 264를 필명으로 삼았죠. 무장 독립 단체인 의열단의 단원으로 조국 해방을 위해 자신의 청춘을 온전히 바친 분입니다.[p9]』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사용한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오히려'입니다. 이육사는 일제 강점기라는 극한의 환경에서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어나지 않느냐고 되물었습니다. 이순신은 누구나 싸움을 포기했을 상황에서 '오히려' 해볼 만하다며 의지를 다졌습니다[p10]』를 통해 '오히려'의 위력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신라 문무왕 때, 쇠뇌를 만드는 장인 구진천과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김육입니다. '대동법의 아버지'[p181] 』의 전 생애를 건 일화는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삶을 던져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했다. 또한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는 좋았다. 책 한 권을 통틀어 가장 큰 울림을 준 문장을 꼽으라면 바로 이 문장이겠다. 명심해야 한다.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한다'

  『을사오적 모두 집안도 좋고 머리도 좋은 그 시대 최고의 엘리트들이었습니다. 그렇게 뛰어난 사람들이었는데, 나라를 팔아먹는 데 앞장섰어요. 어떻게 될지 뻔히 알았으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들이 을사늑약에 찬성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나라 역사는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법관 중에도 그들과 다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독립운동가 박상진입니다. 우리나라는 2차 갑오개혁 때 재판소가 만들어졌어요. 그러면서 법관들도 양성했는데 박상진도 법학을 공부하던 학생이었습니다. 머리가 좋았을 뿐만 아니라 부와 권력을 모두 지닌 이름난 가문 출신이었지요. 1910년에는 판사 시험에 합격합니다. 평양 법원으로 발령까지 받았는데, 사표를 던집니다. 우리나라가 국권을 상실했거든요. …(중략 ) 일본 입장에서는 죄인이지만, 조선 사람에게는 영웅인 사람들입니다. 판사가 되면 이런 사람들에게 징역과 사형을 선고해야 하는 거예요. 박상진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결심합니다. 이제 내가 앉을 자리는 판사의 자리가 아니라 판사의 맞은편, 바로 피고인석이라고 말이지요.

  박상진이 판사를 꿈꾼 사람이라면 그런 판단을 내리지 못했을 거예요. 판사라는 꿈을 드디어 이룬 셈인데 그걸 내던지기가 얼마나 어려웠겠어요. 하지만 박상진의 꿈은 판사가 아니었어요. 그의 꿈은 명사가 아니었습니다. 법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늘 당하고만 사는 평범한 이에게 도움을 주고, 정의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사람이 되려고 판사가 된 것입니다. 이게 그의 꿈이었지요. 명사가 아닌 동사의 꿈이었지요.[p208]』

  무수한 뉴스의 인물들 속에서 누가 명사를 지향하는지는 알겠는데 동사를 꿈꾸는 이를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이 혼돈의 무질서가 계속되는 정치권인가. '동사의 꿈'을 가진 그 누구를 지도자로 만나고 싶다.

 

  『역사는 흔한 오해와 달리 고리타분하거나 미련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시대의 맥을 짚는 데 가장 유용한 무기이자 세상의 희망을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되는 도구죠.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우리는 늘 불안해합니다. 이 시대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그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역사를 공부한 사람은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할 것입니다. 과거보다 현재가 나아졌듯이 미래는 더 밝을 거라고, '나' 보다 '우리'의 힘을 믿으며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면 된다고. 역사를 통해 혼란 속에서도 세상과 사람을 믿고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건 역사지만 결국은 사람을, 인생을 공부하는 것이라고.[p292]』

  책은 이와 같이 맺는다. 역사를 통해 사람을 알아가는 게 재미있다는 걸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 책이다. 폼 잡지 않아서, 무겁지 않아서 쉽게 권할 수 있는 역사를 향한 도움닫기용 책을 갖게 되어 기쁘다. 큰별쌤 (어쩌다 저런 어마 무시한 닉을 가졌을까 생각해 보니 그저 이름이다. 클 太, 별 星, 큰 별. 한동안 내가 갖고 있던 닉이 이름이었던 것처럼.)은 우리에게 현재를 살고 있는 많은 옛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품위 있는 선택에 역사적 사고가 큰 도움이 된다고 믿습니다. 많은 사람이 현재만을 생각해요. 그러다 보면 부정을 저질러서라도 더 높이 올라가고, 다른 사람을 괴롭히면서까지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근시안적인 선택을 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건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아요. 역사적 사고란 역사 속에서 나의 선택이 어떻게 해석될지 가늠해보고, 다른 사람에게 미칠 영향력을 고려해 판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지식인이나 오피니언 리더에게 역사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본인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자신의 생각이나 말, 의견이 누군가의 나쁜 선택에 힘을 실어줄 수 있기 때문이죠.[p60]』

 

   『그런데 만약 일제 강점기에 외울 게 없다면 그 역사는 어떤 역사입니까? 고작 몇 개의 단체와 몇몇 사람의 이름만 존재한다면 말이죠. 그런 역사는 비겁의 역사입니다. 우리 후손에게 보여주기도 민망한 굴욕의 역사인 것이죠. 외우기 힘들 만큼 수많은 단체와 수많은 독립투사가 있기에 우리 근현대사는 살아 있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면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독립투쟁 단체들의 이동 경로를 외우려고 하지 말고 한번 머릿속에 그려봅시다. 그들은 수천 킬로미터를 움직였습니다. 낮에 다녔을까요? 아닙니다. 일본군을 피하기 위해서 밤에 다녔을 거예요. 평지로 편하게 다녔을까요? 아닐 겁니다. 역시 일본군을 피하기 위해 험한 산을 행군했을 겁니다. 만주가 얼마나 추운 곳입니까? 그 추운 땅에서 칼바람을 맞으면서 다닌 그 길이 화살표로 그려져 있는 거예요. 우리는 그 화살표를 그냥 화살표로만 봐서는 안 됩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그들의 발자국을 봐야 합니다. 그 속에 숨겨져 있는 건 그들의 꿈입니다. 그 시대 사람들의 꿈이에요. 다음 세대에게는 식민지 조국을 남겨주지 않겠노라는 결심을 품고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앞으로, 또 앞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이회영은 1932년 예순여섯의 나이에 상하이에서 붙잡혔습니다. 일흔이 다 된 적지 않은 나이에 모진 고문을 받다가 숨을 거두었지요. 마지막 순간까지 쉬지 않고 전 생애를 바쳐서 독립운동을 한 분입니다. 목적을 이루든 이루지 못하든 사명과 의무를 다하다가 죽는 것이 가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죠. [p221.222]』

  춥다. 며칠째 폭설과 한파가 이어지고 있다. 롱패딩 코트에 미끄러지지 않을 신발로 중무장을 하고 거리를 종종 걷는데도 길은 조심스럽다. 이 칼바람 속의 만주 벌판의 독립군을 생각해 본다. 조선희의 장편 소설 <세 여자>에도 이회영 선생을 비롯한 많은 독립운동가들과 무장 투쟁한 불굴의 조선의용군이 나온다. 역사를 걸어 나온 사람들은 거대한 중국과 소비에트 연방, 남의 나라에서 굶주림과 체포의 위험을 뚫고 저 엄청난 한파와 불투명한 오늘을 걷고 걸어서 여기로 오고 있구나.

 

  『기록에 따르면 정약용은 복숭아뼈에 세 번 구멍이 났다고 해요. 양반다리를 하면 복숭아뼈가 눌리잖아요. 책상 앞에서 그 자세로 움직이지도 않고 밤낮으로 글만 쓴 겁니다. 나중에는 복숭아뼈가 너무 아프니까 일어서서 선반 위에 책을 올려두고 공부하며 글을 썼대요.

  대체 왜 그랬을까요? 정약용이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궁금했습니다. 마치 기록에 미쳐있는 사람처럼 글을 썼으니까요. 이 질문에 대한 정약용의 답변이 있습니다.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에 적혀 있어요.

마치 기계로 찍어내듯 책을 쓰는 와중에도 정약용은 두 아들들에게 틈틈이 편지를 썼습니다. 귀양살이 중이니 자식과 함께 생활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편지로 자녀를 교육하고 애정을 전했지요. 공부의 중요성부터 사대부 예법, 일상의 지혜 등 세세한 내용이 담겨있어요. 독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친구를 사귈 때나 시를 쓸 때, 벼슬살이를 할 때, 심지어 술을 마실 때의 법도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식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둘째 형인 정약전과의 일을 추억하거나 막내아들의 죽음을 슬퍼하고, 물려줄 재산이 없어 미안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중에는 폐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편지도 있습니다. 조상이 큰 죄를 지어서 그 자손들이 벼슬을 할 수 없게 된 집안을 폐족이라고 해요. 정약용은 자식들에게 가문이 몰락한 상황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금방ㄹ 나아질 거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관직에 나갈 수 없는 폐족일지라도 선비의 기상을 유지하는 길을 끊임없이 알려주고 있습니다.

폐족끼리 무리를 짓지 말 것, 과일과 채소를 키우고 뽕나무를 심어 가난에서 벗어날 것, 벼슬을 하지 못하더라도 벼슬하는 사람처럼 나라와 세상을 위해 살 것……. 그중에서도 핵심은 책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벼슬길에 오르지는 못해도 책은 읽을 수 있으니까요. "폐족에서 벗어나 청족이 되려면 오직 독서 한 가지 일뿐이다"라고 했지요. 청족은 대대로 절개와 의리를 숭상해온 집안을 뜻하는 말입니다.

  또한 정약용 자신이 계속해서 읽고 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이유도 밝히고 있습니다. 만일 자신이 지금의 생각을 남기지 않는다면 후세 사람들은 사헌부의 재판 기록만 보고 자신을 죄인 정약용으로 기억할 것이라는 거죠. 그래서 끊임없이 기록하겠다는 것입니다.

  출세의 길이 막혔다고, 죄인이 되었다고, 폐족이 되었다고 자포자기하여 손 놓고 있지 않았습니다. 정약용은 형조에 기록된 몇 줄짜리 글로 평가받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글을 남겨 후세의 평가를 받으려 했습니다.[p74.75]』

 

   『최초의 기술이나 최고의 기술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영향력입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아이폰, 한글의 공통점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대중의 욕구를 발견해 충족시켰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보다 쉽게 소통할 수 있게 해주었죠.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처럼 인간의 자유를 확대하는 데 도움을 주는 행위는 결국 역사에 큰 자취를 남길 수밖에 없어요. 아이폰 또한 인간의 삶을 변화시킨 기술로 후대에도 오랫동안 회자될 것입니다.

  한글은 민본의 글에서 민주의 글로 바뀌었습니다.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광화문에 정말 많은 사람이 촛불처럼 밝은 희망을 들고 모였습니다. 광장에 나온 시민들이 들고 있는 팻말에는 모두 한글이 쓰여 있었어요. 세종대왕이 만약 그 장면을 보았다면 깜짝 놀라셨을 겁니다. 한글 덕분에 한결 쉽고 자유롭게 내 생각과 감정을 주고받으면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창조나 창의력을 말하면 사람들은 자꾸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고 해요. 그러나 아무리 새로워도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으면, 열광하지 않으면 널리 쓰이지 않습니다. 저는 소수를 위한, 소수의 권익을 대변하는 기술은 역사의 흐름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자유의 확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어요. 폭발력을 지닌 창조적 발명은 소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수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진정한 창조인가 생각해 봐야 할 때입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려고 하기 전에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자유로워지고 편안해질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 고민을 바탕으로 한 창조만이 오랜 시간 생명력을 가지고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세상을 바꿔나갈 테니까요.[p116.117]』

 

   『저는 가끔 항복을 앞둔 원종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해 보곤 합니다. 자기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위기의 연속이었어요. '이제 고려는 끝났구나'라는 자포자기의 심정이었다면 정말 고려는 끝났을지도 몰라요. 몽골제국에 편입되어 마치 섬과 같은 끄트머리 변방 땅으로 남았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원종은 그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 포기하고 될 대로 되라지 하고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자신이 지켜야 하는 것, 얻어야 할 것을 빠르게 계산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패를 이용해 그처럼 대담한 제안을 던졌지요. 그가 기지를 발휘한 덕분에 고려는 계속해서 자치 국가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분명 원종의 외교적 성과였습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협상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거래를 할 때, 업무를 정할 때, 연봉을 높일 때 등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협상을 합니다. 심지어 연애를 하고 친구를 사귀면서도 협상이 필요해요. 협상이란 상대방도 만족시키고 나도 만족하는 결과를 내기 위한 과정입니다. 내 것만 생각해서도, 상대의 것만 생각해서도 안 되죠.

  어떤 종류의 협상 테이블이든 그 앞에 나서기 전에 서희와 원종의 외교술을 떠올려봤으면 좋겠습니다. 배짱을 가지고 섬세하게 상대를 관찰하면서 본인의 패를 놓지 않는다면 결국 원하는 것을 얻게 되기라고 역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p132.133]』

 

   『정도전의 사상은 굉장히 급진적이었습니다. 모든 토지를 몰수해서 백성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주고, 노비들도 해방시키자고 주장했어요. 기득권 계층의 반발로 그 뜻을 다 이루지는 못했지만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시대를 앞서 있었어요. 정도전은 왕과 귀족만이 사람 취급을 받던 시대에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민본주의를 실현하려 했습니다. 왕 한 사람이 나라를 좌우하는 전제 왕권을 경계하고 재상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를 지향하기도 했지요. 왕은 있지만, 실질적인 정치는 유능한 재상에게 맡기자는 거예요. 왕은 실력으로 뽑히는 게 아니니까요. 그 시대에 보기 드문 대단히 급진적이고 선진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사실은 그가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유배당하고 유랑하면서 만난 비뚤어진 세상에 문제의식을 느낀 정도전은 그런 세상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결 방법을 하나하나 치밀하게 고민했어요. 길고 막막한 인생의 터널에서 주저앉는 대신 자신이 바라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나 같은 사람을 이렇게 대접하다니, 고려 망해라!' 하면서 괴로워하고 술이나 퍼마셨다면 정도전이라는 이름은 역사에서 잊히고 말았을 것입니다.

  정도전에게 고려가 그러했듯이 지금 우리 사회도 행복하게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부조리와 불합리를 목도합니다. 이럴 때 '내가 못나서', '내가 부족해서', '내가 졸업한 학교가 별로라', '우리 집이 가난해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정도전처럼 시대와의 불화로 나락에 떨어졌을 때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 거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사회와 자신에 대한 인식과 비판의 불을 항상 환하게 밝혀놓았으면 합니다. 그러면 쉽게 좌절하거나 비현실적인 꿈을 꾸는 대신 지금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이 눈에 보일 겁니다. 어쩌면 '나'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어려움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지도 모르고요. [p177~179]』

 

   『한 사람의 성공 스토리만으로 다른 사람에게 똑같은 사고와 행동을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장보고처럼 산다고 해도 장보고만큼 성공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장보고의 성공 신화보다 그가 본 삶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자신의 신분을 운명으로 받아들였어요. 노비에게서 태어나면 노비로 살고 육두품이면 끝까지 육두품인 거예요. 그런데 장보고는 달랐어요. 어려서는 타고난 한계를 뛰어넘고자 바다를 건넜고, 나이가 들어서는 단단한 신분제 사회의 벽을 두드렸어요.

  장보고는 자신의 굴레를 탈피하길 원했던 겁니다. 비록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그러한 시도를 했기 때문에 한중일 삼국에 이름을 남길 만큼 큰 인물이 될 수 있었죠. 저는 장보고가 스스로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장보고는 다른 사람보다 부족한 단점을 메꾸려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장점을 효과적으로 발휘하는 방법을 찾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최대 무기가 활쏘기라고 생각했고, 이를 내세워 한계를 돌파하는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삶의 가능성이라고 하면 굉장히 거대한 말 같지만 사실은 몹시 연약한 말이기도 해요. 다른 사람의 가능성과 비교하면 상처 입기 쉽거든요. '저 사람에게는 있는데 나는 없네'라는 시각으로 보면 삶은 쉽게 초라해지고 가능성은 희박해집니다. 그래서 비교는 오로지 나 자신과만 해야 합니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더 낫기를, 또 오늘의 나보다 내일의 내가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거죠.

  우리 모두의 앞에는 푸른 바다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누군가는 그저 바라만 보고 누군가는 기꺼이 그 바다를 건널 것입니다. 삶의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우리의 삶은 어떤 계기로든 변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꼭 말하고 싶습니다. 삶의 모든 것이 이미 결정 나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들어도 가능성을 불신하지 말라고. 그러니 우리 쫄지 맙시다. 이미 엉망이라면 바다에 발 한 번 담근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요. 그저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한 걸음 내딛어보자고요. [p201.202]』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살아낸 인물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세부적으로는 다를지 몰라도 그 궤적은 같아요. 자기만의 중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 나갔던 사람들이거든요.

  저는 현대사회에도 여전히 이런 분위기가 남아 있다고 생각해요. 물질만능주의가 판을 치고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돈이 많다고 해서 훌륭한 사람일 수는 없어요. 아무리 가진 게 많은 사람이라도 인격이 부족하고 그 사람만의 무언가가 없으면 진정한 인싸가 되지 못합니다. 손에 쥔 것이 없어지면 전부 사라질 인기고 인영인 것이죠.

  오랜 시간 동안 존경받아 온 역사 속 인물들을 만나다 보면 자긍심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나 만나지 않잖아요. 역사가 증명한 사람들을 만나는 겁니다. 그 사람들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쫓아가다 보면 그들이 굉장히 단단한 중심을 갖고 삶을 살아 냈다는 걸 느낄 겁니다.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떳떳한 삶을 살기 위해 자신만의 길을 걸어갔기 때문이죠. 과거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이 보낸 시감을 들여다보는 것이야말로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는 방법입니다. 그 시간을 들여다보면서 내 앞에 놓인 시간을 어떻게 쓸지 생각하게 되니까요.

  자아정체성이 확립되면 다른 사람으로 인해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내 존재를 긍정하고 내가 하는 일에 자긍심이 생겨요. 그렇게 생겨난 자긍심은 물질을 바탕으로 생겨난 자긍심과 달리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상처받지 않을 힘이자 요즘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p24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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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빙판길

                       박성우

   한 여자가 빙판에 미끄러져

   뒤로 떨어졌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어쩌면 좋겠냐는 것이다

   얼음 위에서 버둥거리던 발은

   신발을 치켜들어 허공에

   가위걸음을 떼었을 것이고

   땅을 짚으려던 팔은 채 내려가기도 전에

   겨울하늘을 들어올리며 떨어졌을 것이다

   땅바닥에 바싹 붙어 있었을 미끈미끈한 빙판길은

   일자로 떨어지는 등허리를 우지직 받았을 것이다

   우지직, 금이 갔을 등허리뼈 사이로는

   차가운 공기가 집요하게 파고들었을 것이다

   정신을 놓친 머리는 얼음에 머리를 식히며

   가장 편안한 상태로 한참이나 쉬고 있었을 것이다

   찰나의 순간, 질끈 놀란 눈을 가려주었을 눈꺼풀은

   놀란 눈동자를 깜박깜박 닦아보았을 것이다

   소름끼치는 몸을 일으켜야겠다고

   가까스로 들어온 생각이 생각했을 때

   몸은 어거지를 피우며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소리를 질러도 소리가 나지 않았을 입은

   떨리는 입술을 벌려보았을 것이다

   아앗 하고 소리질러야 할 입 대신

   쿵 하고 소리를 질렀을 뒷머리,

   새소망병원 413호 침대 위에 뉘이고 있다

   일 안하면 안달날 수밖에 없는 늙은 여자

   금가고 벌어진 등허리뼈를 일으키려고

   칠순에 닿은 어머니가 까친 손을 내미신다

                               시집 [가뜬한 잠(창비2007)] 중에서

   쓸쓸한 접촉

     일 갔다가 편도 일차선 도로에서 사고가 났다 상대편 트럭 네 바퀴 모두 중앙선을 넘어와 내 차를 치고는 다시 중앙선을 넘어갔다 번뜩했다

     경찰차가 줄줄이 왔다 상대편 트럭 운전수는 내가 트럭을 치고는 다시 중앙선을 넘어갔다고 우겨댔다 아까부터 보고있던 옆자리 노스님이 운전수 얼굴에 침을 뱉으며 한마디 하신다 야 씨발 개새끼야

    상대편 보험회사에서 입원비도 내주고 차도 고쳐주고는 기십만원을 통장에 넣어주었다 마침, 뒷목과 어깨와 엉치뼈는 결린 안부를 전해오고 월급은 석 달째 깜깜무소식인 터이다 몸 푼 아내와 같이 맡겼던 갓난아이 찾으러 처갓집에 가야 할 터이다

     장모님 이거 안 받으시면 딸도 외손주딸도 안 데려가요, 암것도 알 리 없는 아내와 세이레 된 어린 것을 받아안고 처갓집 나선다 셋이서 살 비비면서 집으로 간다

                                   시집 [자두나무 정류장(창비2011) 중에서

     박성우시인을 읽고 있었다. 함께 있는 라디오가 온통 눈 소식이다. 제시간이면 당연하게 나올 목소리가 바뀌었다. 신년 휴가인가 생각할 찰나, 도로에 묶여서 꼼짝 못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함박눈은 펑펑 내리고 한파경보가 내렸다. 지금 길에 있을 이들 생각에 걱정들이 몽실몽실 피어오른다. 모두, 무탈했으면. 속 없이 눈 오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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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문학과지성 시인선 492
황인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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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황인숙 시집 [문학과 지성사(2016)]

 

우울

나는 지금

알 수 없는 영역에 있다

깍지 낀 두 손을 턱 밑에 괴고

짐짓 눈을 치켜떠보고

가늘게도 떠보고

끔벅끔벅, 골똘해보지만

도무지

부팅이 되지 않는다

풍경이 없다

소리도 없다

전혀 틈이 없는

알 수 없는 영역을

내 몸이 부풀며 채운다

알 수 없는 영역에

하염없이 뚱뚱한 나

덩그러니 붙박여 있다

    나는 지금/ 알 수 없는 영역에 있다/ 깍지 낀 두 손을 턱 밑에 괴고// 짐짓 눈을 치켜떠보고 / 가늘게도 떠보고/ 끔벅끔벅, 골똘해보지만/ 도무지/ 부팅이 되지 않는다// 풍경이 없다/ 소리도 없다// 전혀 틈이 없는/ 알 수 없는 영역을/ 내 몸이 부풀며 채운다// 알 수 없는 영역에/ 하염없이 뚱뚱한 나/ 덩그러니 붙박여 있다

    이런 증상이 우울이었다니, 아마도 시인이란 말씀의 사원[ 言+寺=詩]에서 수행하는 구도자임이 분명하다.

  

 

마음의 황지

아침신문에서

느닷없이 마주친

얼굴,

영원히 젊은 그 얼굴을 보며

끄덕끄덕끄덕끄덕 끄덕끄덕

칼로 베인 듯 쓰라린 마음

오래전 죽은 친구를 본 순간

기껏

졌다, 내가 졌다,

졌다는 생각 벼락처럼

그에겐 주어지지 않고 내게는 주어진 시간

졌다, 이토록 내가 비루해졌다

졌다, 시간에

나는 졌다

묽어지는 나

이상하다

거품이 일지 않는다

어제는 팔팔했는데

괜히 기진맥진한 오늘의 나

거품이, 거품이 일지 않는다

쓰지 않아도 저절로

소진돼버리는

생의 비누의 거품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하얗게

하얗게

눈이 시리게

심장이 시리게

하얗게

네 밥그릇처럼 내 머릿속

아, 잔인한, 돌이킬 수 없는 하양!

외로운 하양, 고통스런 하양,

불가항력의 하양을 들여다보며

미안하고, 미안하고,

그립고 또 그립고

            시인의 말

    매사 내가 고마운 줄 모르고 미안한 줄 모르며

    살아왔나 보다. 언제부턴가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렇게 됐다.

    인생 총량의 법칙?

    그렇다면 앞으로는 시를 끝내주게 쓰는 날이 남은 거지!

                                         2016년 가을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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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입니다 - 안희정 성폭력 고발 554일간의 기록
김지은 지음 / 봄알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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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은입니다

            안희정 성폭력 고발 554일간의 기록 [봄알람 (2020)]

   오후 4시인데 한밤중처럼 어둡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고 있다. 이렇게 30분만 쏟아진다면 어디선가 산사태가 날 것이고 하수가 역류할 것이란 생각을 잠시 한다. 이렇게 아는 게 많다는 것은 걱정이 많다는 것이고 쓸데없는 걱정이 많다는 것은 모든 일에 신랄해지고 조금만 아는 척을 해도 곧 잘난 체가되어버리기 때문에 나는 줄곧 어떤 이슈가 될 문제들에 내 생각을 드러내지 않으려 조심한다. 스물 중반이 넘어가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잘난체한다는 거였다. 그 말속에 담긴 비난과 시샘, 힐난과 깔아뭉개는 그 태도들에 너무나도 익숙해서 피하고 싶다. 말을 안 하면 안 해서, 말을 하면 저것 봐 저럴 줄 알았지로 피하려 할수록 내가 입은 잘난체한다는 손가락질의 외투는 물을 먹은 이불처럼 무거워질 뿐이다. 그래서 대부분 모른 척, 못 본 척 침묵을 택한다. 어느 정도 친하지 않으면 말을 섞지 않으려 조심한다. 그래서 또 잘난 체한다는 비난을 듣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오늘은 작정하고 해야겠다.

   왜냐하면 오늘은 5.18 민주화운동 40주기이고······, 종일 '김지은입니다'를 읽었기 때문이다. 먹먹하기도, 불편하기도, 화가 나기도 했다. 평소 책을 얌전히 읽는 편이다. 그러나 오늘은 책 내용 때문인지 죄책감 때문인지 온갖 포즈로 바꿔봐도 자세도, 머릿속도, 뱃 속도, 기타 등등 모든 신체 조직이 불편했다. 뉴스룸에서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경악했던 그 순간이 되살아났다. 모든 사실들이 놀라웠지만 특히 저 말, "미안하다. 미안하다. 괘념치 마라. 잊어라. 부디 잊어라." 어떻게 저런 말을 하지 싶어서 놀라웠다. 내가 아는 상식으로 '괘념치 마라' 저런 언어와 말투는 일반인이 쓰는 게 아니다. 보편적인 사람들은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권위를 가진 부류의 언어다. 조선 왕조의 언어다. 그런데 그 일로 뒤숭숭한 세상에서 많은 말들이 있었지만 저 말투를 문제 삼는 이는 없었다, 그래서 더 충격이었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의 균형이 기우뚱 흔들릴 만큼. 안희정이라는 권력은 부하직원한테 잘못을 저지르고도 그런 언어의 수혜를 내릴 만큼의 도덕성을 가진, 선택받은 너는 성은을 입은 것인데 너의 맘을 다독거리고 사과까지 한 나란 인간, 좀 멋지지 않니라고 자랑하듯 괘념치 마라~부디 잊어라를 반복하는, 너만 그냥 입다물고 있었으면 승승장구 대통령이 되실 몸이셨던 것이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내 작은 몸을 가려주는 큰 우산을 쓰고 거리를 걸었다. 우산 위로 거침없이 비가 막 내려오는 걸 보고 있자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우산이 날 지켜주는구나. 나를 이렇게 지켜주시는 분들도 곳곳에 계시겠구나' 머리 위에서 듬직하니 커다랗게 서 있는 우산이 마치 키다리 아저씨 같았다. 든든했다』 [p245]

   저 빗속에 우산을 쓴 김지은이 지나간다. 키다리 아저씨 로망을 가진 많은 우리들은 '설마! 안희정이, 그 안희정이 그럴 리가.' 반신반의하면서 그 사건을 알았고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다. 그 2년 동안 김지은은 빨가벗겨진 채로 길거리에서 짓이겨지고 끌려다니면서 생이 나달나달 해지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어떤 폭우에도 맞설 수 있는 우산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뉴스룸'에 나올 만큼 강단이 있고, 도와주는 이들이 있고, 많이 배운 사람이니까 잘 건너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익명 속에 섞인 우리들 중의 하나인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결국 그것이 불편했던 것이다. 모르는 것이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겨우 핑계나 변명에 불과한 것이라고 누누이 생각해오지 않았던가. 모른 척했다는 사실이 쳇증처럼 얹힌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 했던가. 그런 식으로 몇몇이 모여 거짓을 말하니 순식간에 나는 세간에서 '그런 여자'가 되었다. 사심으로 일을 한, 지사의 사생팬인, 신뢰할 수 없는 이상한 여자. 그리고 나를 향한 그런 프레임화는 이후 이어진 지난한 재판 과정 내내 그들의 집요한, 거의 유일한 전략이었다.』 [p 21]

   어쩌면 저 三人成虎의 시선 속에는 익명을 가장한 내 속내도 얹혀있는지 모른다. 우리는 성에 관한 한 피해자가 문제를 일으켰을 것이라는 편견 속에 살고 있지 않은가. '여자가 꼬리를 쳤을 거라는 둥, 어떻게 처신했으면 그 점잖은 사람이 그랬겠냐는 둥.' 나도 자유롭지 않은데 가해자 쪽에서 그런 전략으로 갔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런 여자', 프레임은 성공한 듯 보인다.

   『2018년 3월 5일, 살아 있는 권력 앞에서 '진실'을 말하기까지 나는 오랜 시간 두려움에 떨었다. 안희정은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였고 미래 권력이었다. 미래 권력은 현재 진행형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힘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었다. 청와대부터 정재계에 이르기까지 안희정과 관계를 맺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은 그를 차기 대통령이라 여겼다. 차기 1위라는 여론 조사 결과가 뒷받침해 주고 있었고 실제로 사람들은 안희정을 그렇게 대했다. 학생운동과 386이라는 끈끈한 연대도 있었다. 안희정은 그에 상응하는 의전과 예우를 받았다. 안희정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그 유명세를 함께 누렸고, 외부의 많은 사람이 그와 알고 지내고 싶어 했다. 사회 곳곳과 관계 맺어 생물처럼 다각도로 뻗어나가는 거대 조직, 그 자체가 안희정이었다.

   그런 대상을 향해 미투를 한다는 것, "지금 당신이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안희정 개인만을 향한 한정된 외침이 아니었다. 그가 가진 정치적 지위와 그가 관계 맺은 수많은 이에게 맞서는 일이었다. 나에게 미투는 가늠할 수 없는 크기의 힘과 싸움을 시작하는 일이었다. 말하고 나서 바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지 모를, 설령 산다 해도 남은 날이 죽은 것과도 같은 자살행위였다.

  하지만 죽게 되더라도 다시 그 소굴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첫 번째 성폭행 이후 안희정의 사과를 들었을 때 그 한 번으로 끝나리라 믿었던 피해는 반복되었다. 2018년 2월에 또다시 범죄를 겪고 나서야 여기서 영원히 도망칠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반복되는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신에게 제물로 바쳐지듯 성폭력을 당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주변의 사람들은 리더의 폭력을 묵인하는 그런 조직 안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p22, 23]

   "신에게 제물로 바쳐지듯 성폭력을 당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주변의 사람들은 리더의 폭력을 묵인하는 그런 조직 안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이 부분을 읽을 때부터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무리 중에는 리더의 폭력을 묵인하는 분위기에서 질투하고 선망하면서 닮아가려는 이도 있을 것이고, 뒷짐 지고 큼큼 헛기침하면서 점잔 빼는 이도 있을 것이고, 매번 뒷정리랍시고 어르고 달래고 협박하고 관리하는 실무자도 있을 것이다. 의리라는 이름으로, 대의를 위해서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양아치들. 이따위밖에 안 되는 것들을 이 땅을 이끌어 갈 미래 주자라고 믿었던 순간이 있었다는데 화가 난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어 안희정의 볼에 뽀뽀를 할 때 가슴 벅차오르던 환희가 이제는 구토 나올 거 같다. 또 노무현 대통령, 그분의 얼굴이 떠올라서 화가 나서 미칠 것 같다. 그분을 생각해서라도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거잖아, 싶어서 울화가 치밀었다. 김지은은 안희정만 미투 한 것이 아니다. 삐뚤어진 권력의 실체를 고발한 것이다.

   -- 여기까지 쓰고 비가 주춤하길래 산책을 다녀왔다. 비는 굵어졌다 가늘어지기를 반복하고 마침 걸려온 후배와 통화를 하면서 이 불편함과 울분을 얘기하고 나니 속이 좀 후련하다. 그 어떤 해결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부당한 걸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와 의무를 생각해 본다. 세 시간의 우중 산책에 신체적 불편함들이 많이 나아졌다.

   ······

  그래놓고 며칠.

  말이 되어 튀어나간 감정들은 다시 돌아오기가 힘들다. 한 번이라도 저렇게 격한 문장들을 토해낸 적이 있던가, 의기소침해지다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렇게 솔직하게 써보겠나 싶어 그대로 두기로 했다가 갈팡질팡이다.

pc 옆에 덩그러니 놓인 책을 아침저녁으로 쳐다보면서 마쳐야지, 마쳐야지, 하고 다시 며칠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채무변제 방법은 이 리뷰를 마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마음 다잡고 또 며칠.

   5.18을 관련해 올해 새롭게 알게 되거나 깨우친 건, 현장에 있던 그 많은 여성들이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인가였다. 가두방송을 하던 그 가슴 떨리는 목소리의 주인공들, 시위대에 주먹밥을 건네주던 많은 아주머니들, 도망치는 시위대를 숨겨주고 선두에 섰던 황금동 아가씨들, 마지막 도청 사수 때 묶인 채로 엎어져있던 사진 속의 여학생들, 윤상원과 영혼결혼식을 올려 세상에 드러난 들불야학 박기순의 죽음들을 통해 민주화에서조차 배제된 여성들의 삶과 희생이었다. 그런 사실들과 책의 내용이 맞물려서 혼란스러웠다. 이 땅에서 여성으로 사는 일은 인내와 희생의 연속인지도 모르겠다.

   열여덟 살 때 나는 '깽깽이'라는 별명을 공장의 최고참 선배한테 하사받았다. 그녀에게 내 이름은 '야~ 깽깽이'이에 불과했지만 그녀에게 기술을 습득해야 하는 나는 웃으면서 '자네는 나만 보면 왜 그렇게 부르는가'라고 물었다가 '자네'라는 호칭의 위력을, 내가 왜 깽깽이에 불과한지를 따귀 몇 대로 배웠다. 그때까지 언니들을 그렇게 불렀는데 손아랫사람에게 하는 하대였다는 '자네'때문에 세상의 자네들을 알게 되었다. 선배는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말이 거칠고 행동이 거친 센 언니였을 뿐, 몇 달 후 결혼으로 퇴직하면서 호탕한 웃음과 함께 잘해보라며 등짝 스매싱을 남겨 두고 떠났다. 40년 전이다. 그 선배는 기억에도 없을 어느 봄날의 일이다. 볼에 남겨진 손자국은 심장에 새겨졌다.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누가 뭐라 부르든, 잘한다고 등짝 스매싱을 하든 별말 없이 사는, 아프고 약하면 무시당하니까 철저하게 참고 참는 사람이 되었다. 흔적은 그렇게 흉터가 된다. 그런 작은 흔적도 흉터가 되는데, 죽는 것이 차라리 축복이었을 고통에 나달나달해진 사람으로 사는 것은 그 삶이 과연 사는 것일까?

  ​여기까지가 지난봄에 쓴 것이다.

  알라딘 메인 화면에 김지은입니다 가 올해의 주목받은 책으로 떠서는 계속 나를 따라다닌다. 떼먹고 달아난 돈 갚으라는 듯이.

  다시 모른 척한 불편함이 장을 꼬이게 한다. 마무리해야겠다고 결심한다. 이천이십년을 넘기기 전에(결국은 해를 넘기고 말았다).

​  지난봄 이후 세상에는 김지은을 소환하는 여러 일들이 있었다. 특히 '안희정 모친상'을 뉴스에서 접할 때는 생각이 많아졌다. 어머니를 잃은 슬픈 아들에게 조문을 건네는 정치권 인사들을 보는 것은 내내 불편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위로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렇게 대놓고 인산인해를 이룬다는 것은 그의 영향력이 아직도 펄펄 살아있다는 반증이다. 두려웠다. 그녀에게도 부모님이 계시고 아프시기도 한데 그녀가 딛고 선 세상은 이미 한쪽으로만 기운 천칭 저울이다. 이렇게 먼 곳에 있는 내가 무서운데 그녀의 두려움은 눈 감아 버리고 싶을 것이다. 간절하게 눈 감고, 귀 막고, 도망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간절한 것들은 언제나 너무 멀다.

   『나는 건강해야만 한다

   목이 아프면 엄마가 해주시던 밥이 생각난다. 하지만 가족이 있는 집에 갈 수가 없다. 수술 이후 계속 통원 치료를 받고 계시는 아빠가 내게서 감기라도 옮으면 안 된다. 내가 건강할 때만 뵈러 갈 수 있다. 집에는 가고 싶은데 감기가 도무지 낫지 않아 집 근처 가게에서 콩나물을 천 원어치 사 와 짬뽕라면에 청양고추를 함께 넣고 끓여 먹었다. 약보다 칼칼하게 매운 이 음식이 감기를 더 빨리 낫게 해줄 것만 같았다. 흔한 동네 병원도 내게는 방문하기 어려운 곳 중 하나다. 이름을 수없이 부르는 친절한 병원 시스템이 지금 내게는 힘들다.

지금 하고 있는 이 싸움의 전제 조건은 내가 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건강해야만 한다. 나는 무사해야만 한다. 나는 반드시 살아야만 한다. 나는 견뎌내야만 한다. 이기든 지든 싸움의 끝에 나는 있어야 한다. 나는 진실을 알고 있는 단 한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없어진다면 모든 것이 흐지부지될 것이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 그 범죄를 암묵적으로 방치했던 사람들, 그 범죄를 수면 아래로 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사람들 틈에서 꼭 증명해내고 싶다. 죽어서 인정받는 것이 아닌, 살아서 인정받을 수 있는 사례를 만들고 싶다.』 [p254]

   이 페이지는 가슴이 먹먹하다. 저 다짐들이 너무나 소소한 것이어서 눈물이 난다. 명치끝에서 올라오는 서러움과 외로움을 꾹꾹 누르고 다짐하고 다짐하는 나는 건강해야만 한다. 나는 무사해야만 한다. 나는 반드시 살아야만 한다. 나는 견뎌내야만 한다. 이기든 지든 싸움의 끝에 나는 있어야 한다. 살아야만 한다, 살아야만 한다고 자신에게 주문을 외웠을 긴 시간들의 흉통이 저 다짐 속에 있다. 읽는 것으로도 가슴 시린 이 문장들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었을, 아니 지금도 그러고 있을 김지은 생각에 다시 읽어도 눈물이 난다. 운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반.드.시.살.아.야.만.한.다.

   영화 [밤셀;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을 봤다. 실화를 바탕한 이 영화를 통해서 언론이 어떻게 거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알았다. 그 거대 권력을 쥐락펴락하는 폭스 뉴스 회장을 고소하는 세 명의 앵커, 미투 운동의 시작이 되었다 한다. 복선과 암투가 정교하게 얽힌 권력의 측근에서 용기를 내거나 도망가는 사람들의 관계나 심리가 복잡해서 집중해야만 줄거리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픽션이 아니기에 더 복잡했으리라. 영화는 아름답고 지혜로운 세 명의 여성 앵커들이 내린 힘겨운 결단이, 그 어려운 한 걸음을 내딛는 용기가 세상을 바꾼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보는 내내 [김지은입니다]가 읽혔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얼마나 고단하고 긴 싸움의 서막인지도. 이어서 일어난 '박원순 서울시장' 사건의 파장은 현재 진행형이다.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는 기상천외한 호칭으로 정리한 정치권의 민낯을 보는 데에도 어느덧 익숙해지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욱더 [김지은입니다]를 사고, 읽고, 주변에 알리는 일을 해야 한다. 김지은과, 세상의 많은 김지은들과, 김지은을 연대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보태는 일, 이렇게 리뷰라도 쓸 수 있어서 다행이다. 늘 잘난 체만 하는 비겁한 나도 오늘은 용기를 내어 김지은과, 세상의 많은 김지은들에게 토닥이고 싶다.

   괜찮아요.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당신이 잘못한 거 아니에요.

  '박원순 사건'에서 가장 공감한 시사인의 기사를 캡처해 둔다. 이런 용기 있는 한 걸음들이 조금씩 세상을 바꾸어가리라 믿는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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