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판길

                       박성우

   한 여자가 빙판에 미끄러져

   뒤로 떨어졌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어쩌면 좋겠냐는 것이다

   얼음 위에서 버둥거리던 발은

   신발을 치켜들어 허공에

   가위걸음을 떼었을 것이고

   땅을 짚으려던 팔은 채 내려가기도 전에

   겨울하늘을 들어올리며 떨어졌을 것이다

   땅바닥에 바싹 붙어 있었을 미끈미끈한 빙판길은

   일자로 떨어지는 등허리를 우지직 받았을 것이다

   우지직, 금이 갔을 등허리뼈 사이로는

   차가운 공기가 집요하게 파고들었을 것이다

   정신을 놓친 머리는 얼음에 머리를 식히며

   가장 편안한 상태로 한참이나 쉬고 있었을 것이다

   찰나의 순간, 질끈 놀란 눈을 가려주었을 눈꺼풀은

   놀란 눈동자를 깜박깜박 닦아보았을 것이다

   소름끼치는 몸을 일으켜야겠다고

   가까스로 들어온 생각이 생각했을 때

   몸은 어거지를 피우며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소리를 질러도 소리가 나지 않았을 입은

   떨리는 입술을 벌려보았을 것이다

   아앗 하고 소리질러야 할 입 대신

   쿵 하고 소리를 질렀을 뒷머리,

   새소망병원 413호 침대 위에 뉘이고 있다

   일 안하면 안달날 수밖에 없는 늙은 여자

   금가고 벌어진 등허리뼈를 일으키려고

   칠순에 닿은 어머니가 까친 손을 내미신다

                               시집 [가뜬한 잠(창비2007)] 중에서

   쓸쓸한 접촉

     일 갔다가 편도 일차선 도로에서 사고가 났다 상대편 트럭 네 바퀴 모두 중앙선을 넘어와 내 차를 치고는 다시 중앙선을 넘어갔다 번뜩했다

     경찰차가 줄줄이 왔다 상대편 트럭 운전수는 내가 트럭을 치고는 다시 중앙선을 넘어갔다고 우겨댔다 아까부터 보고있던 옆자리 노스님이 운전수 얼굴에 침을 뱉으며 한마디 하신다 야 씨발 개새끼야

    상대편 보험회사에서 입원비도 내주고 차도 고쳐주고는 기십만원을 통장에 넣어주었다 마침, 뒷목과 어깨와 엉치뼈는 결린 안부를 전해오고 월급은 석 달째 깜깜무소식인 터이다 몸 푼 아내와 같이 맡겼던 갓난아이 찾으러 처갓집에 가야 할 터이다

     장모님 이거 안 받으시면 딸도 외손주딸도 안 데려가요, 암것도 알 리 없는 아내와 세이레 된 어린 것을 받아안고 처갓집 나선다 셋이서 살 비비면서 집으로 간다

                                   시집 [자두나무 정류장(창비2011) 중에서

     박성우시인을 읽고 있었다. 함께 있는 라디오가 온통 눈 소식이다. 제시간이면 당연하게 나올 목소리가 바뀌었다. 신년 휴가인가 생각할 찰나, 도로에 묶여서 꼼짝 못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함박눈은 펑펑 내리고 한파경보가 내렸다. 지금 길에 있을 이들 생각에 걱정들이 몽실몽실 피어오른다. 모두, 무탈했으면. 속 없이 눈 오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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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문학과지성 시인선 492
황인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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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황인숙 시집 [문학과 지성사(2016)]

 

우울

나는 지금

알 수 없는 영역에 있다

깍지 낀 두 손을 턱 밑에 괴고

짐짓 눈을 치켜떠보고

가늘게도 떠보고

끔벅끔벅, 골똘해보지만

도무지

부팅이 되지 않는다

풍경이 없다

소리도 없다

전혀 틈이 없는

알 수 없는 영역을

내 몸이 부풀며 채운다

알 수 없는 영역에

하염없이 뚱뚱한 나

덩그러니 붙박여 있다

    나는 지금/ 알 수 없는 영역에 있다/ 깍지 낀 두 손을 턱 밑에 괴고// 짐짓 눈을 치켜떠보고 / 가늘게도 떠보고/ 끔벅끔벅, 골똘해보지만/ 도무지/ 부팅이 되지 않는다// 풍경이 없다/ 소리도 없다// 전혀 틈이 없는/ 알 수 없는 영역을/ 내 몸이 부풀며 채운다// 알 수 없는 영역에/ 하염없이 뚱뚱한 나/ 덩그러니 붙박여 있다

    이런 증상이 우울이었다니, 아마도 시인이란 말씀의 사원[ 言+寺=詩]에서 수행하는 구도자임이 분명하다.

  

 

마음의 황지

아침신문에서

느닷없이 마주친

얼굴,

영원히 젊은 그 얼굴을 보며

끄덕끄덕끄덕끄덕 끄덕끄덕

칼로 베인 듯 쓰라린 마음

오래전 죽은 친구를 본 순간

기껏

졌다, 내가 졌다,

졌다는 생각 벼락처럼

그에겐 주어지지 않고 내게는 주어진 시간

졌다, 이토록 내가 비루해졌다

졌다, 시간에

나는 졌다

묽어지는 나

이상하다

거품이 일지 않는다

어제는 팔팔했는데

괜히 기진맥진한 오늘의 나

거품이, 거품이 일지 않는다

쓰지 않아도 저절로

소진돼버리는

생의 비누의 거품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하얗게

하얗게

눈이 시리게

심장이 시리게

하얗게

네 밥그릇처럼 내 머릿속

아, 잔인한, 돌이킬 수 없는 하양!

외로운 하양, 고통스런 하양,

불가항력의 하양을 들여다보며

미안하고, 미안하고,

그립고 또 그립고

            시인의 말

    매사 내가 고마운 줄 모르고 미안한 줄 모르며

    살아왔나 보다. 언제부턴가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렇게 됐다.

    인생 총량의 법칙?

    그렇다면 앞으로는 시를 끝내주게 쓰는 날이 남은 거지!

                                         2016년 가을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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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입니다 - 안희정 성폭력 고발 554일간의 기록
김지은 지음 / 봄알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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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은입니다

            안희정 성폭력 고발 554일간의 기록 [봄알람 (2020)]

   오후 4시인데 한밤중처럼 어둡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고 있다. 이렇게 30분만 쏟아진다면 어디선가 산사태가 날 것이고 하수가 역류할 것이란 생각을 잠시 한다. 이렇게 아는 게 많다는 것은 걱정이 많다는 것이고 쓸데없는 걱정이 많다는 것은 모든 일에 신랄해지고 조금만 아는 척을 해도 곧 잘난 체가되어버리기 때문에 나는 줄곧 어떤 이슈가 될 문제들에 내 생각을 드러내지 않으려 조심한다. 스물 중반이 넘어가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잘난체한다는 거였다. 그 말속에 담긴 비난과 시샘, 힐난과 깔아뭉개는 그 태도들에 너무나도 익숙해서 피하고 싶다. 말을 안 하면 안 해서, 말을 하면 저것 봐 저럴 줄 알았지로 피하려 할수록 내가 입은 잘난체한다는 손가락질의 외투는 물을 먹은 이불처럼 무거워질 뿐이다. 그래서 대부분 모른 척, 못 본 척 침묵을 택한다. 어느 정도 친하지 않으면 말을 섞지 않으려 조심한다. 그래서 또 잘난 체한다는 비난을 듣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오늘은 작정하고 해야겠다.

   왜냐하면 오늘은 5.18 민주화운동 40주기이고······, 종일 '김지은입니다'를 읽었기 때문이다. 먹먹하기도, 불편하기도, 화가 나기도 했다. 평소 책을 얌전히 읽는 편이다. 그러나 오늘은 책 내용 때문인지 죄책감 때문인지 온갖 포즈로 바꿔봐도 자세도, 머릿속도, 뱃 속도, 기타 등등 모든 신체 조직이 불편했다. 뉴스룸에서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경악했던 그 순간이 되살아났다. 모든 사실들이 놀라웠지만 특히 저 말, "미안하다. 미안하다. 괘념치 마라. 잊어라. 부디 잊어라." 어떻게 저런 말을 하지 싶어서 놀라웠다. 내가 아는 상식으로 '괘념치 마라' 저런 언어와 말투는 일반인이 쓰는 게 아니다. 보편적인 사람들은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권위를 가진 부류의 언어다. 조선 왕조의 언어다. 그런데 그 일로 뒤숭숭한 세상에서 많은 말들이 있었지만 저 말투를 문제 삼는 이는 없었다, 그래서 더 충격이었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의 균형이 기우뚱 흔들릴 만큼. 안희정이라는 권력은 부하직원한테 잘못을 저지르고도 그런 언어의 수혜를 내릴 만큼의 도덕성을 가진, 선택받은 너는 성은을 입은 것인데 너의 맘을 다독거리고 사과까지 한 나란 인간, 좀 멋지지 않니라고 자랑하듯 괘념치 마라~부디 잊어라를 반복하는, 너만 그냥 입다물고 있었으면 승승장구 대통령이 되실 몸이셨던 것이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내 작은 몸을 가려주는 큰 우산을 쓰고 거리를 걸었다. 우산 위로 거침없이 비가 막 내려오는 걸 보고 있자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우산이 날 지켜주는구나. 나를 이렇게 지켜주시는 분들도 곳곳에 계시겠구나' 머리 위에서 듬직하니 커다랗게 서 있는 우산이 마치 키다리 아저씨 같았다. 든든했다』 [p245]

   저 빗속에 우산을 쓴 김지은이 지나간다. 키다리 아저씨 로망을 가진 많은 우리들은 '설마! 안희정이, 그 안희정이 그럴 리가.' 반신반의하면서 그 사건을 알았고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다. 그 2년 동안 김지은은 빨가벗겨진 채로 길거리에서 짓이겨지고 끌려다니면서 생이 나달나달 해지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어떤 폭우에도 맞설 수 있는 우산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뉴스룸'에 나올 만큼 강단이 있고, 도와주는 이들이 있고, 많이 배운 사람이니까 잘 건너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익명 속에 섞인 우리들 중의 하나인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결국 그것이 불편했던 것이다. 모르는 것이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겨우 핑계나 변명에 불과한 것이라고 누누이 생각해오지 않았던가. 모른 척했다는 사실이 쳇증처럼 얹힌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 했던가. 그런 식으로 몇몇이 모여 거짓을 말하니 순식간에 나는 세간에서 '그런 여자'가 되었다. 사심으로 일을 한, 지사의 사생팬인, 신뢰할 수 없는 이상한 여자. 그리고 나를 향한 그런 프레임화는 이후 이어진 지난한 재판 과정 내내 그들의 집요한, 거의 유일한 전략이었다.』 [p 21]

   어쩌면 저 三人成虎의 시선 속에는 익명을 가장한 내 속내도 얹혀있는지 모른다. 우리는 성에 관한 한 피해자가 문제를 일으켰을 것이라는 편견 속에 살고 있지 않은가. '여자가 꼬리를 쳤을 거라는 둥, 어떻게 처신했으면 그 점잖은 사람이 그랬겠냐는 둥.' 나도 자유롭지 않은데 가해자 쪽에서 그런 전략으로 갔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런 여자', 프레임은 성공한 듯 보인다.

   『2018년 3월 5일, 살아 있는 권력 앞에서 '진실'을 말하기까지 나는 오랜 시간 두려움에 떨었다. 안희정은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였고 미래 권력이었다. 미래 권력은 현재 진행형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힘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었다. 청와대부터 정재계에 이르기까지 안희정과 관계를 맺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은 그를 차기 대통령이라 여겼다. 차기 1위라는 여론 조사 결과가 뒷받침해 주고 있었고 실제로 사람들은 안희정을 그렇게 대했다. 학생운동과 386이라는 끈끈한 연대도 있었다. 안희정은 그에 상응하는 의전과 예우를 받았다. 안희정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그 유명세를 함께 누렸고, 외부의 많은 사람이 그와 알고 지내고 싶어 했다. 사회 곳곳과 관계 맺어 생물처럼 다각도로 뻗어나가는 거대 조직, 그 자체가 안희정이었다.

   그런 대상을 향해 미투를 한다는 것, "지금 당신이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안희정 개인만을 향한 한정된 외침이 아니었다. 그가 가진 정치적 지위와 그가 관계 맺은 수많은 이에게 맞서는 일이었다. 나에게 미투는 가늠할 수 없는 크기의 힘과 싸움을 시작하는 일이었다. 말하고 나서 바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지 모를, 설령 산다 해도 남은 날이 죽은 것과도 같은 자살행위였다.

  하지만 죽게 되더라도 다시 그 소굴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첫 번째 성폭행 이후 안희정의 사과를 들었을 때 그 한 번으로 끝나리라 믿었던 피해는 반복되었다. 2018년 2월에 또다시 범죄를 겪고 나서야 여기서 영원히 도망칠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반복되는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신에게 제물로 바쳐지듯 성폭력을 당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주변의 사람들은 리더의 폭력을 묵인하는 그런 조직 안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p22, 23]

   "신에게 제물로 바쳐지듯 성폭력을 당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주변의 사람들은 리더의 폭력을 묵인하는 그런 조직 안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이 부분을 읽을 때부터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무리 중에는 리더의 폭력을 묵인하는 분위기에서 질투하고 선망하면서 닮아가려는 이도 있을 것이고, 뒷짐 지고 큼큼 헛기침하면서 점잔 빼는 이도 있을 것이고, 매번 뒷정리랍시고 어르고 달래고 협박하고 관리하는 실무자도 있을 것이다. 의리라는 이름으로, 대의를 위해서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양아치들. 이따위밖에 안 되는 것들을 이 땅을 이끌어 갈 미래 주자라고 믿었던 순간이 있었다는데 화가 난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어 안희정의 볼에 뽀뽀를 할 때 가슴 벅차오르던 환희가 이제는 구토 나올 거 같다. 또 노무현 대통령, 그분의 얼굴이 떠올라서 화가 나서 미칠 것 같다. 그분을 생각해서라도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거잖아, 싶어서 울화가 치밀었다. 김지은은 안희정만 미투 한 것이 아니다. 삐뚤어진 권력의 실체를 고발한 것이다.

   -- 여기까지 쓰고 비가 주춤하길래 산책을 다녀왔다. 비는 굵어졌다 가늘어지기를 반복하고 마침 걸려온 후배와 통화를 하면서 이 불편함과 울분을 얘기하고 나니 속이 좀 후련하다. 그 어떤 해결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부당한 걸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와 의무를 생각해 본다. 세 시간의 우중 산책에 신체적 불편함들이 많이 나아졌다.

   ······

  그래놓고 며칠.

  말이 되어 튀어나간 감정들은 다시 돌아오기가 힘들다. 한 번이라도 저렇게 격한 문장들을 토해낸 적이 있던가, 의기소침해지다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렇게 솔직하게 써보겠나 싶어 그대로 두기로 했다가 갈팡질팡이다.

pc 옆에 덩그러니 놓인 책을 아침저녁으로 쳐다보면서 마쳐야지, 마쳐야지, 하고 다시 며칠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채무변제 방법은 이 리뷰를 마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마음 다잡고 또 며칠.

   5.18을 관련해 올해 새롭게 알게 되거나 깨우친 건, 현장에 있던 그 많은 여성들이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인가였다. 가두방송을 하던 그 가슴 떨리는 목소리의 주인공들, 시위대에 주먹밥을 건네주던 많은 아주머니들, 도망치는 시위대를 숨겨주고 선두에 섰던 황금동 아가씨들, 마지막 도청 사수 때 묶인 채로 엎어져있던 사진 속의 여학생들, 윤상원과 영혼결혼식을 올려 세상에 드러난 들불야학 박기순의 죽음들을 통해 민주화에서조차 배제된 여성들의 삶과 희생이었다. 그런 사실들과 책의 내용이 맞물려서 혼란스러웠다. 이 땅에서 여성으로 사는 일은 인내와 희생의 연속인지도 모르겠다.

   열여덟 살 때 나는 '깽깽이'라는 별명을 공장의 최고참 선배한테 하사받았다. 그녀에게 내 이름은 '야~ 깽깽이'이에 불과했지만 그녀에게 기술을 습득해야 하는 나는 웃으면서 '자네는 나만 보면 왜 그렇게 부르는가'라고 물었다가 '자네'라는 호칭의 위력을, 내가 왜 깽깽이에 불과한지를 따귀 몇 대로 배웠다. 그때까지 언니들을 그렇게 불렀는데 손아랫사람에게 하는 하대였다는 '자네'때문에 세상의 자네들을 알게 되었다. 선배는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말이 거칠고 행동이 거친 센 언니였을 뿐, 몇 달 후 결혼으로 퇴직하면서 호탕한 웃음과 함께 잘해보라며 등짝 스매싱을 남겨 두고 떠났다. 40년 전이다. 그 선배는 기억에도 없을 어느 봄날의 일이다. 볼에 남겨진 손자국은 심장에 새겨졌다.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누가 뭐라 부르든, 잘한다고 등짝 스매싱을 하든 별말 없이 사는, 아프고 약하면 무시당하니까 철저하게 참고 참는 사람이 되었다. 흔적은 그렇게 흉터가 된다. 그런 작은 흔적도 흉터가 되는데, 죽는 것이 차라리 축복이었을 고통에 나달나달해진 사람으로 사는 것은 그 삶이 과연 사는 것일까?

  ​여기까지가 지난봄에 쓴 것이다.

  알라딘 메인 화면에 김지은입니다 가 올해의 주목받은 책으로 떠서는 계속 나를 따라다닌다. 떼먹고 달아난 돈 갚으라는 듯이.

  다시 모른 척한 불편함이 장을 꼬이게 한다. 마무리해야겠다고 결심한다. 이천이십년을 넘기기 전에(결국은 해를 넘기고 말았다).

​  지난봄 이후 세상에는 김지은을 소환하는 여러 일들이 있었다. 특히 '안희정 모친상'을 뉴스에서 접할 때는 생각이 많아졌다. 어머니를 잃은 슬픈 아들에게 조문을 건네는 정치권 인사들을 보는 것은 내내 불편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위로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렇게 대놓고 인산인해를 이룬다는 것은 그의 영향력이 아직도 펄펄 살아있다는 반증이다. 두려웠다. 그녀에게도 부모님이 계시고 아프시기도 한데 그녀가 딛고 선 세상은 이미 한쪽으로만 기운 천칭 저울이다. 이렇게 먼 곳에 있는 내가 무서운데 그녀의 두려움은 눈 감아 버리고 싶을 것이다. 간절하게 눈 감고, 귀 막고, 도망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간절한 것들은 언제나 너무 멀다.

   『나는 건강해야만 한다

   목이 아프면 엄마가 해주시던 밥이 생각난다. 하지만 가족이 있는 집에 갈 수가 없다. 수술 이후 계속 통원 치료를 받고 계시는 아빠가 내게서 감기라도 옮으면 안 된다. 내가 건강할 때만 뵈러 갈 수 있다. 집에는 가고 싶은데 감기가 도무지 낫지 않아 집 근처 가게에서 콩나물을 천 원어치 사 와 짬뽕라면에 청양고추를 함께 넣고 끓여 먹었다. 약보다 칼칼하게 매운 이 음식이 감기를 더 빨리 낫게 해줄 것만 같았다. 흔한 동네 병원도 내게는 방문하기 어려운 곳 중 하나다. 이름을 수없이 부르는 친절한 병원 시스템이 지금 내게는 힘들다.

지금 하고 있는 이 싸움의 전제 조건은 내가 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건강해야만 한다. 나는 무사해야만 한다. 나는 반드시 살아야만 한다. 나는 견뎌내야만 한다. 이기든 지든 싸움의 끝에 나는 있어야 한다. 나는 진실을 알고 있는 단 한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없어진다면 모든 것이 흐지부지될 것이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 그 범죄를 암묵적으로 방치했던 사람들, 그 범죄를 수면 아래로 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사람들 틈에서 꼭 증명해내고 싶다. 죽어서 인정받는 것이 아닌, 살아서 인정받을 수 있는 사례를 만들고 싶다.』 [p254]

   이 페이지는 가슴이 먹먹하다. 저 다짐들이 너무나 소소한 것이어서 눈물이 난다. 명치끝에서 올라오는 서러움과 외로움을 꾹꾹 누르고 다짐하고 다짐하는 나는 건강해야만 한다. 나는 무사해야만 한다. 나는 반드시 살아야만 한다. 나는 견뎌내야만 한다. 이기든 지든 싸움의 끝에 나는 있어야 한다. 살아야만 한다, 살아야만 한다고 자신에게 주문을 외웠을 긴 시간들의 흉통이 저 다짐 속에 있다. 읽는 것으로도 가슴 시린 이 문장들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었을, 아니 지금도 그러고 있을 김지은 생각에 다시 읽어도 눈물이 난다. 운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반.드.시.살.아.야.만.한.다.

   영화 [밤셀;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을 봤다. 실화를 바탕한 이 영화를 통해서 언론이 어떻게 거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알았다. 그 거대 권력을 쥐락펴락하는 폭스 뉴스 회장을 고소하는 세 명의 앵커, 미투 운동의 시작이 되었다 한다. 복선과 암투가 정교하게 얽힌 권력의 측근에서 용기를 내거나 도망가는 사람들의 관계나 심리가 복잡해서 집중해야만 줄거리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픽션이 아니기에 더 복잡했으리라. 영화는 아름답고 지혜로운 세 명의 여성 앵커들이 내린 힘겨운 결단이, 그 어려운 한 걸음을 내딛는 용기가 세상을 바꾼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보는 내내 [김지은입니다]가 읽혔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얼마나 고단하고 긴 싸움의 서막인지도. 이어서 일어난 '박원순 서울시장' 사건의 파장은 현재 진행형이다.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는 기상천외한 호칭으로 정리한 정치권의 민낯을 보는 데에도 어느덧 익숙해지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욱더 [김지은입니다]를 사고, 읽고, 주변에 알리는 일을 해야 한다. 김지은과, 세상의 많은 김지은들과, 김지은을 연대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보태는 일, 이렇게 리뷰라도 쓸 수 있어서 다행이다. 늘 잘난 체만 하는 비겁한 나도 오늘은 용기를 내어 김지은과, 세상의 많은 김지은들에게 토닥이고 싶다.

   괜찮아요.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당신이 잘못한 거 아니에요.

  '박원순 사건'에서 가장 공감한 시사인의 기사를 캡처해 둔다. 이런 용기 있는 한 걸음들이 조금씩 세상을 바꾸어가리라 믿는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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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차
                        도종환

오늘도 막차처럼 돌아온다
희미한 불빛으로 발등을 밝히며 돌아온다
내 안에도 기울어진 등받이에 몸 기댄 채
지친 속도에 몸 맡긴 이와
달아올랐던 얼굴 차창에 식히며
가만히 호흡을 가다듬는 이 하나
내 안에도 눈꺼풀은 한없이 허물어지는데
가끔씩 눈 들어 어두운 창밖을 응시하는
승객 몇이 함께 실려 돌아온다
오늘도 많이 덜컹거렸다
급제동을 걸어 충돌을 피한 골목도 있었고
아슬아슬하게 넘어온 시간도 있었다
그 하루치의 아슬아슬함 위로
초가을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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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가 이제 이틀도 남지 않았다.

   어제 오후에 알라딘에서 보낸 메일이다.

당신은 알라딘을 통해,

한 해 동안 이만큼의 책을 만났습니다.

작년보다는 72권 덜,

재작년보다는 7권 덜,

구매하셨습니다.

2019년

107권

2020년

35권

   내가 작성한 댓글

   와, 이렇게 알라딘과 거리를 두고 산 일 년이었군요. 쌓여있는 책 더미를 해결하고자 한 일 년이었습니다. 당연히 사기보다는 읽기를 많이 했지요. 35권을 사다니.... 돈이 없어서 서점을 돌던 20대 이후 처음일 듯싶네요. 그래도 아직 많은 책들은 쌓여있고, 리뷰를 쓰려고 쌓아둔 책들 사이에서 잠이 깨고는 합니다. 알라딘은 서운했을지라도 스스로에게는 알뜰했던 2020년이 되겠네요. 고맙습니다. 이렇게 제 일 년을 돌아봅니다. 산 책은 그러하니 읽은 책들의 목록을 정리해볼 작정입니다.

 

   그래서 올해의 마무리로 2020년의 독서 결산이라는 걸 해보기로 한다.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허블]

거짓말 1, 2; 노희경 [북로그컴퍼니]

벌새; 김보라 [아르테]

괜찮은 사람; 강화길 [문학동네]

다른 사람; 강화길 [한겨레출판]

쇼코의 미소; 최은영 [문학동네]

이만큼 가까이; 정세랑 [문학동네]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문학동네]

2020 제11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강화길 외 [문학동네]

디디의 우산; 황정은 [창비]

연년세세; 황정은 [창비]

작별; 한강 외 [은행나무]

진이, 지니; 정유정 [은행나무]

당신 옆을 스쳐 간 그 소녀의 이름은; 최진영 [한겨레출판]

네 이웃의 식탁; 구병모 [민음사]

오직 한 사람의 차지; 김금희 [문학동네]

경애의 마음; 김금희 [창비]

세 여자; 조선희 [한겨레출판]

기사단장 죽이기 1, 2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동네]

L의 운동화; 김숨 [민음사]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 10권; 김훈 외 [창비]

소설 보다 가을 2019; 강화길 외 [문학과지성사]

느림의 중요성을 깨달은 달팽이; 루이스 세풀베다 [열린책들]

 

 

   에세이

소설가의 일; 김연수 [문학동네]

여행의 이유; 김영하 [문학동네]

매우 초록; 노석미 [난다]

혼자가 혼자에게; 이병률 [달]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김하나, 황선우 [위즈덤하우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백세희 [흔]

런던을 속삭여줄게; 정혜윤 [푸른숲]

인생의 일요일들; 정혜윤 [로고플러스]

아무튼 메모; 정혜윤[위고]

작은 여행 다녀오겠습니다; 최재원 [휴머니스트]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현대문학]

가기 전에 쓰는 글들; 허수경 [난다]

오늘의 착각; 허수경 [난다]

참 괜찮은 눈이 온다; 한지혜 [교유서가]

아무튼 스웨터; 김현[제철소]

구본형의 마지막 편지; 구본형[휴머니스트]

익숙한 것과의 결별; 구본형[을유문화사]

일간 이슬아 수필집; 이슬아[헤엄]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이슬아[문학동네]

나는 지구에 돈 벌러 오지 않았다; 이영광[이불]

퇴사는 여행; 정혜윤[북노마드]

사라짐, 맺힘; 김현 [문학과지성사]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김소연 [문학과지성사]

그 좋았던 시간에; 김소연 [달]

 

   인문, 사회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에코리브로]

랩걸; 호프 자런 [알마]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정희진 [교양인]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정희진 [교양인]

혼자서 본 영화; 정희진 [교양인]

신영복 평전; 최영묵, 김창남 [돌베개]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 정희진 외 [교유서가]

바보야 돈이 문제가 아니라니까; 고미숙 [북드라망]

가만한 당신; 최윤필 [마음산책]

함께 가만한 당신; 최윤필 [마음산책]

김지은입니다; 김지은 [봄알람]

역사의 쓸모; 최태성 [다산초당]

유럽 도시 기행 1; 유시민 [생각의길]

 

   시집

꽃의 고요; 황동규 [문지 시선]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허수경 [문지 시선]

시인의 모자; 임영조 [창비 시선]

극에 달하다; 김소연 [문지 시선]

뿔을 저시며; 이상국 [창비 시선]

입술을 열면; 김현 [창비 시선]

도선장 불빛 아래 서 있다; 강형철 [창비 시선]

붉은빛은 여전합니까; 손택수 [창비 시선]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안희연 [창비 시선]

삶이라는 직업; 박정대 [[문지 시선]

그녀에서 영원까지; 박정대 [문학동네]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는 헤어지는 중입니다; 김민정 [문지 시선]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김민정 [문학동네]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 정끝별 [문학동네]

당신은 첫눈입니까; 이규리 [문학동네]

 

 

 

  지금 읽고 있는 루이스 세풀베다의 마지막 소설 [역사의 끝까지 (열린 책들)]이다. 아마 오늘이면 마칠 테니까.

  쓰다 말고 비공개로 넣어 둔 리뷰들이 몇 편 있는데 틈나는 대로 정리해서 올릴 작정이다. 그 정리가 끝나야 책들도 정리가 될 것 같다. 적어도 내가 가진 책은 대충 어디 꽂혀있는지 기억하고 있다 생각해왔다. 그래서 엉망진창인 채로 쌓아두었다가 정리한다. 읽었는데 뭔가 써보고 싶은 책, 산 게 후회되는 책, 나쁘지는 않았지만 적어둘 게 없는 책, 무조건 소장각, 너무 애정 하는 작가라 무조건 샀지만 나중으로 미뤄둔 책, 긴가민가 하는 마음으로 쌓아두고 있다가 읽으면서 감탄하는 책등으로 쌓여있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책장에 꽂힌다. 책장은 종류, 출판사, 작가로 나뉘어 나름 질서 정연하게 정리해둔다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해 갑자기,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찾아 읽고 싶은 부분이 있는데 책을 찾을 수 없었다. (이유 없는 갑자기는 아니고 선생의 평론을 읽다가, 였을 것이다. 그런 식의 연관성으로 책을 계속 찾아보고 다시 읽는 편이다. 갖고 있는 지식도 딸리고 기억도 딸리니 물량이 많을 수밖에) 오래된, 햇볕에 바래고 낡은 책을 누구를 주었을 리도, 더더군다나 버릴 리도 없는 그 책을 찾느라 책꽂이를 샅샅이 뒤졌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다시 구입하나 망설이는 중이다. 그 이후로 계속 생각한다. 책을 좀 정리해야겠다고. 이런 식의 꽂아두기는 욕심에 불과하다고.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고 속이 쫌 쓰리기도 하겠지만 2021년에는 반으로 줄이리라 결심했다. 1순위는 다시 손 가는 적이 거의 없는 많은 소설들이나 여행서를 포함한 에세이집들이 목표다. 대신에 그 책들이 주었던 몰입이나 위로들은 메모로 남겨놓으려 한다. 생각대로 될지는 장담할 수는 없어도, 책을 살 때의 기대감이나 그 책이 내게 준 여러 감정들을 되살려서 몇 자 적어두는 게 그 책에 대한 예의일 것 같다.

   올해의 독서 목록을 보니 누구라도 알아볼 뻔한 독서 경향을 가지고 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라고나 할까. 이런 결산을 통해 그동안 감感으로 알고 있던 것을 데이터로 알게 되는구나, 싶다. 단순하지만 명쾌한 결론, 이게 바로 나구나. 한계구나. 끄덕끄덕~

 

 

   내년에도 허영으로 쌓아둔 책, 파먹기는 계속된다.

   그리고 혹독한 허영의 다이어트에 따른 부작용으로 블로그에 글 올리기 남발도. (염불보다 젯밥인 콩 모으기의 재미를 알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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