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처럼 읽기 -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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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처럼’ 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처음'의 순수성과 설렘은 '첫'의 특별함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특히 신영복선생의 붓글씨, '처음처럼'을 처음 보았을 때 목소리가 멋진 사내를 만난 것처럼 한 눈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쐬주도 '처음처럼'만 마시고. 아, 아니다. 제주에 가면 '한라산' 하얀 거 마신다. 윽~ '한라산' 그립다.

  어쩌면 무엇 무엇처럼 이라는 말 자체를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 자신보다 뛰어난 그 무엇을 향한 갈망이 그런 자연스런 현상으로 나타난 것인지도.

 

  '~처럼' 이라는 직유법은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가 모두 있다. 교사이자 반면교사인 것이다. '누구처럼 되어라.' '누구처럼 되면 안 된다.' 그러나 나는 반면교사도 교사라고 생각한다. ‘정희진처럼 읽기’라는 제목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책을 읽는 방식이 있다. 다만, 나는 이렇게 읽는다는 뜻이다. 물론, 그 ‘이렇게’가 사회적 의미와 내용이 없다면 곤란하다. 그리고 그것은 독자의 판단에 달려 있다. 나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읽는 편인데, 나의 독서 방법을 일반화하려는 의도는 당연히 없다. 많은 방식 중의 하나라는 의미에서 정희진처럼 읽을 수 있는 뜻이다. 나는 나 자신 목소리를 대변할 뿐이다.

  '~처럼' 이라는 비유에 담긴 속내를 이렇게 풀어놓았다. ‘~처럼’에 담긴 복잡한 내 속내를 그대로 듣고서 쓴 글이네, 싶을 만큼 적확하다. 무서우리만큼 똑똑할 법한 저자는 내게, '정희진'하면 페미니즘이고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의 도전'으로 연결 된다.

 

  '페미니즘의 도전'을 너무 어렵게 읽었다. 내용이 난해했다기보다는 소재들의 발상이 신선하면서 충격이었고 나의 무지들이 어마무시하게 다가왔다. 저자는 페미니즘을 ‘다른 목소리’라고 말한다.

  다른 목소리’는 우리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고 풍요롭게 해주며 자기중심주의를 돌아보게 한다. 또한 모든 사람은 ‘다른 목소리’의 잠재적 주인공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여성주의다. 여성주의는 양성 평등에 관한 주장이 아니라 사회 정의와 성찰적 지성을 위한 방법론이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여성주의를 공부해서 ‘손해’ 볼 일은 없다. 특히, 논쟁이나 글쓰기, 말하기에 관심 있는 이라면 페미니즘을 공부하길 권한다. 논쟁은 승부가 아니라 참여하는 사람의 입장(지식)과 그러한 입장이 형성된 과정을 교환하는 것이다.

                                                     -페미니즘의 도전 p11-

​  페미니즘이 “사회 정의와 성찰적 지성을 위한 방법론”인 이유는 젠더가 “개별 학문이 아니라 일종의 관점이자 세계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페미니즘'은 껍데기에 불과했고 진짜 페미니즘이 뭔지 살짝 알 듯도 알 듯도 했다. '논쟁이나 글쓰기, 말하기에 관심 있는 이'에 속하면서도 이런 권유를 받고도 페미니즘을 공부하지 않았다. 그래서 실력이 이쯤에 머물러 있구나 생각한다. 저자는 이 살벌한 세상에서 아직까지도 현역 활동가(이런 표현이 맞는다면?)다. 내가 이쪽 끝 변방의 세계에 속해 있다면 저 쪽 끝 변방에 속해 있어서 우리가 마주할 확률은 로또 당첨만큼이나 낮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9년만의 신작이 덜컥 반가운 것이다.

 

  나는 순수한 활동가를 만난 적이 없다. 노조 일을 할 때 순수한 운동가라고 생각한 이들도 지내고 보면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인물들이었다. 또 순수를 유지하고 있다 해도 주변에서 그대로 놔두지 않는다. 유능할수록 회유와 협박을 많이 당하고 결국은 변절자로 몰리거나 그들과 합류해 정치적인 인물로 둔갑한다. 시작은 그렇지 않았을지라도 힘이 실리면 권력이 된다. 단체는 곧 권력이 되는 것이고 단체를 움직일 힘은 정치성에서 나와 더 큰 권력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그런 대표주자가 '김문수', '이재오'등이 아니던가. 그러나 세상의 변방에서 묵묵한 활동가들이 건재하기에 세상이 이만큼이라도 살만한 것이라고 또한 믿는다. 책을 펼치면서 또 나의 무지를 확인 사살할 일만 만들었구나, 했다. 저자가 읽고 논한 79편의 제목 중 내가 읽은 건 고작 십여 편, 그것도 정독을 한 것은 없어보였다. 그래도 샀으니 어쩌랴, 읽어버려야지. 길게 읽기엔 무리가 따를 테니 가게에서 짬짬이 읽기로 했다. 한 꼭지씩 읽다보면 언젠가는 다 읽겠지 싶었다.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 책은 나를 이룬다. 독서는 내 몸 전체가 책을 통과하는 것이다. 몸이 슬픔에 '잠긴다'. 기쁨에 '넘친다'. 감동에 넋을 '잃는다'. 텍스트 이전의 내가 있고, 이후의 내가 있다. 그래서 독후의 감(感)이다.

  책 표지부터 암시하는 저자의 이번 책은 그렇게 읽은 ‘책들에 대한 책’이다. 그런데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 라니. 책을 읽을 때 책이 내 몸을 통과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 정신이나 영혼이 투영된다고 생각했지, 몸으로는 아니었다. ‘몸’을 무시하고 살아온 습성 때문이고, 오래 몸을 부려 밥을 얻고, 술을 얻고, 생활을 얻고, 책을 얻으면서도 몸보다는 고상한 척, 영민한 척, 머리로만 살아오고, 머리로만 느끼고, 머리로만 책을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머리는 결국 몸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다. 우리는 몸 중에 부분에 속하는 머리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았다. 또한 몸으로 먹고 사는 삶을 부끄러워했구나, 싶다. 고개를 크게 끄덕거려 본다. 맞다. 격하게 공감한다. 生의 어떤 한 권의 책은 뢴트겐 광선처럼 내 몸에 빛을 새기면 지나가기도 하는 것이다.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다른 목소리‘를 알았다면 이번 책에서는 ‘다르게 읽기’와 ’다르게 만나기‘를 알게 되었다. 거침없이 솔직한 저자의 문장들에 이끌려 읽지도 않은 책들에 빠져든다. 흡사 같이 읽고 토론이라도 나눈 것처럼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런데 책의 모양새는 이렇게 되어버렸다. 애지중지, 책에 관한 한 침도 안 바르고 구기지도 않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밑줄도 긋지 않도록 주의하는 내가,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으면 필사를 하는 내가, 가게에서 읽느라 필사는커녕 포스트잇으로 정리도 못하고 접기 시작한 부분이 책을 저렇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즐거움(樂)에 풀잎을 얹으면, 약(藥)이 된다. 책은 즐거움이자 풀잎이자 약물이다. 나의 일상은 외롭고 지루한 노동의 연속이다. 자극이라고 해봤자, 우리 사회 대부분의 서민들처럼 분노와 스트레스가 고작이다. 내가 옴싹달싹 못하고 '을'이라는 현실에서 비참함을 느낄 때, 푸코를 읽으면 내 상황이 상대화 된다. p12

  이런 문장을 만날 때 어찌 페이지를 접지 않을 수 있으랴. '나의 일상은 외롭고 지루한 노동의 연속'이고 뉴스는 온통 분노 유발 스트레스만 가중 시킬 뿐인데. 나와는분명 다를 지식인인 저자가 젠체하지않고 써나가는 책을 통한 일상은 말 그대로 일상처럼다가온다. 보여주기 위한 제스츄어가 아니라 삶으로서의 일상.

 

  성장 동력, 이번 정부가 쏟아낸 말이다. 성장도, 동력도 무섭다. 날선 기계가 굉음을 내며 맹렬히 돌아가는 느낌이다. 꺼지지 않는 엔진, 철야, 24시간 영업, 과로사, 강철 체력…….흔히 "압축적 성장"으로 불리는 우리 근대화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돌진'이다. 목표가 너무 간절해서 신앙으로 승화된, 생각이라면 질색하는, 어떤 힘센 사람이 앞에 걸리적거리는 것은 모두 밀어내며 전진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슬픔이나, 아픈 사람은 짜증 차원을 넘어 '방해', '억압'으로 느껴질 것이다. 국가보안법 같은 것이 그들의 심정을 제도한 것 아닌가.

  선거나 청문회 때 후보의 이력에 대한 이 사회의 태도는 불감증이 아니다. "그 정도면 양호"로 합의한 지 오래다. 부동산 투기, 병역 비리, 표절, 위장 전입, 탈세…….모두 구비한 인물이 워낙 많기에 한두 가지 정도면 청렴 반열이고, 이를 비판하면 "넌 깨끗하냐?"라는 분노가 되돌아온다. 여당이 과반을 넘긴 선거 결과에 우울하다는 지인이 많다. 조금 냉소적으로 말해 이 땅에서 진보와 보수는 국가 선진화 속도에 대한 견해차일 뿐이다. 때문에 과반의 경계는 허물어질 수도 있고 '덜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다.

  실제로 나를 좌절시킨 것은 몇몇 후보의 당선이다. 문학평론가 황현산의 표현대로 "우리의 삶이 아무리 비천해도 그 고통까지 마비시키지는 못한다." 고통이 아픈 것이 아니라 마비된 고통이 불러올 고통이 끔찍한 것이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아프기는커녕 '더욱 열심히 뛰겠다.'고 한다. 썩지 않은 시체에 항생제를 붓는다. 인간이 인격체가 아니라 방부제인 사회, 절망할 기력조차 없다. p48

  속이 시원해지는 페이지다. 격주로 한겨레신문에 실린 글들이라니, 이런 글들에 달렸을 덧 글들이 궁금하다. 덧 글 알바들이 가만히 두었을 리 없는……. 거품 물었을 것 같은데. 책이 점점 재미있어진다. (p234에 나온다. '걸레', '술집*' 따위의 비난과  심지어 진보적 지식인이라는 이는 공개적으로 비난의 글을 올렸다한다. "모르는데 아는 척 하지 않았으면"하고. 저자의 반박이 유쾌하다. 통섭의 시대에  공부의 '유목인'에게 비전공자 운운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사람이 지식인인가​? 그런 판관 노릇을 하고 싶으면 이 정권에서 장관을 하는 게 맞다.는 이 부분에서 혼자 깔깔거리고 웃었다.) 

 

  차별 경험을 말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을 배려한다. 그래서 경험한 자아와 말하는 자아는 분열된다. 또 분열되어야만 한다. 모든 말하기, 글쓰기가 협상인 이유다. 원래 이 자아 분열 개념은 나치 학살의 생존자들이 자기 경험을 믿어주지 않을 것을 걱정하여 자아를 조정하는 고통에서 발전했다. 지금은 모든 담론 행위에 공통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듣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말의 수위와 표현은 달라진다. 조절하지 못하는/않는 경우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정신이 너무 순수해서 아픈 이들이요, 다른 하나는 전현직 대통령처럼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권력자다. 두 경우가 아니라면, 협상의 고통을 정치적 에너지로 삼아야 한다.

  나는 증언 형태의 책을 읽을 때, 말하는 사람의 갈등을 가장 주의 깊게 살핀다. 이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실천이 민주주의다. 이 책 "이야기를 기다리는 이야기"는 정치적, 문화적, 윤리적으로 말하기와 듣기의 모범이다. 말하는 사람은 차별 경험을 본질적 자아로 환원하지 않으며, 듣고 쓰는 12명의 저자들의 지성과 성찰은 안쓰러울 정도로 치열하다. 내용은 '슬프지만' 방식은 독자를 위로한다. 앎과 삶을 위해 필독을 권한다. p54

  '앎과 삶'을 위해 바로 장바구니에 들어가지는 않겠지만 언제 도서관에 가면 찾아보려고 제목을 메모해두었다. [수신 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인권운동사랑방 엮음] 내게는 생기지 않았으면 싶은, 일어날리 없다고 믿던 어떤 일들도 쉽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안 그랬으면 좋겠지만 방관이 피해자를 더 아프게 만들 수도 있다. 어떤 순간에 침묵한다는 것은 방관이다. 아무 짓도 안했다고 피해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방관자는 가해자에 가깝다. 무의식의 습(濕)으로 한 행동의 어떤 면이 약자인 누군가에게 차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나 또한 가해자가 될 수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밑으로 쭈욱 밑줄 긋고 싶은 부분들을 옮겨 둔다.​

 

  나는 이 책의 수치를 믿지만, 믿지 않는다. '모든 통계는 거짓말'이지만 성(性)과 성별 사안은 계량화가 불가능하다. '여성 문제'는 인식 부재에다 주로 비공식 영역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피해 실태는 일단 축소보고(under report)된다고 보면 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은 나를 소수자라고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소수자 개념의 문맥을 설명하고 이렇게 되묻는다. "저를 소수자라고 생각하는 당신은 누구인가요? 제가 당신과 다르다면 그 차이는 누가 정한 건가요?"

  '객관적', 이론적, 정치적으로 어떤 개념이 맞지만 경험자가 그 명명을 거부할 때 바람직한 '해결'방식은 무엇일까? 특히 그 개념이 사회적 낙인일 때. '일본군 위안부'는 흔히 정신대라고 부르는 역사에 대한 임시 용어다. 정확히 말해, 일본 제국주의가 저지른 전쟁 범죄는 성 노예(sexual slavery)지만 이 단어를 반길 '할머니'는 없다.

  누구의 인생도 피해 경험이 없는 인생은 없으며 동시에 평생 피해자인 사람도 없다. 피해는 상황이지 정체성이나 지칭이 될 수 없다. 타자화는 나를 기준으로 타인을 정의하는 것, 그 자체가 폭력이다. 내용의 호오가 본질이 아니다. 어머니 숭배와 '창녀' 혐오는 모두 남성 사회의 판타지다. 섹슈얼리티를 기준으로 여성을 이분하여 시민권 박탈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남성은 '아버지와 남창', '곰과 여우'로 구분되지 않는다. p70

 

  두 가지 현실은 인식론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생각대로 사는 삶과 몸에 근거한 삶이 그것이다. 사는 대로 생각하지 말고 생각하는 대로 살라? 내가 몹시 경계하는 말이다. 턱뼈 탑은 한국 사회에서 생각한 대로 사는 삶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종착이고, <손무덤>은 삶을 재현하고 생각한 예술이다.

  '불필요한' 성형 시술은 사회적 요구를 몸에 실현하여 체제가 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생각한 대로 사는 것은 '지금 자기'를 부종하고 욕망을 따르는 가치 지향적 삶이다. 그 가치가 바람직한 경우도 있지만 대개 이 말은 경쟁 사회의 자기 다짐이고, 다이어리의 첫 장에 등장하는 문구이다. 경제적 성취든 인격과 실력 배양이든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몸은 객관적이지도 중립적이지도 않다. 몸은 사회적 위치성과 당파성의 행위자다. 예를 들어 '산업 재해를 당한 몸', '노동하는 몸', '성 폭력 겪은 몸'에서 시작하는 삶. 이것이 사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다. 몸과 의식은 하나다. '좋은' 생각이든 '나쁜' 생각이든 그것은 모두 몸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공상('空'想)이다. 생각은 몸의 형식으로만 존재한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몸이 안 따른다는 말은 이상하다. 머리(의식)도 몸이다. 의식은 몸의 어느 부위인가? 그런 부위는 없다. p74

 

  혼자가 곧 외로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외로움과 타인의 존재는 관련성이 없지 않다. 관계가 형성되면 나는 타인과 섞이고 동시에 확장된다. 외로움은 무균, 증류수 같은 결정(潔淨)적이고 결정(結晶)적인 배타성을 지니고 있다. 관계는 그 단단함과 순결성을 서서히 무너뜨린다.

  사랑한다는 것은 약점이다. 사랑이 내 몸에 거주하는 것은 축복이지만 연결되고 싶은 욕망은 지옥이다. 이 마음 자체가 '을'인데 만일 성별, 나이, 계급, 외모 같은 자원에서도 차이가 난다면……. p80

 

  재활용 운동을 하는 시민 단체의 포스터가 있는데 그 단체를 지지하지만, 볼 때마다 불편하다. "두면 고물, 주면 보물." 매우 잘못된 말이다. 노동, 특히 여성들이 하는 노동을 무시하고, 비 가시화하는 말이다. 남에게 줄 선물 고르는 일도 상당한 노동인데 중고품을 나누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대로 기증하는 게 아니다. 정리, 청소, 수선은 필수. 드라이클리닝, 다림질까지. 남은 음식은 그냥 주기 미안해서 새로 음식을 더하기도 한다.

  고물이 보물이 되려면 사람의 마음과 일이 필수적이다. 내게 별로 득이 되지 않으면서 '주고 욕먹을' 가능성이 많은 일이다. 그게 귀찮아서 다들 그냥 버리는 것이다. 웬만한 사람들에겐 물건을 새로 사는 게 재활용보다 편하다. 자원을 아끼고 나누는데는, 노동이 요구된다. 나는 이 노동이 자본주의를 구제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몸이 이미 체제다. 변화는 다른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망가진 세상을 수선하는 일이다. p137

 

  '위어조자 언재호야(謂語助者 焉哉乎也)'. 996자를 알아도 마지막 네 글자 조사를 모르면 글을 쓸 수 없다. 문장의 성립은조사로만 가능하니, 문장은 결국 조사의 기술(art)이다. 글자와 조사의 관계를 실과 바늘,  나사와 볼트처럼 짝 개념으로 볼 수도 있다. 둘의 위치는 동등하고 불가분이다. 하나가 없으면 나머지도 소용없다.

  그러나 이들은 동등하지 않다. 사실은 조사가 더 '우월'하다. 글자들의 관계, 즉 문장의 내용을 결정하는 것은 뜻이 있는 글자가 아니라, 뜻이 없는 글자, 조사다. 무의미는 모든 의미다.  뜻의 무게를 진 자(字)는 사용이 한정되지만, 조사는 자유로운 영혼이면서 문자를 배치하고 지배한다. 의미(권력) 없음이 의미를 통제하는 것이다. p157

  지식의 수준은 헌신한 노동의 시간과 질에 의해 결정된다. 사유자체가 중노동이다. 획기적인 문제의식은 노동의 산물이다. 여기에 선한 마음이 더해진다면 인간의 기적이요, 공동체의 축복이다. 공부를 잘하는 방법? 지적으로, 정치적으로 빼어난 글을 쓰는 방법? 책상에 여덟 시간 이상 앉아 있을 수 있는 몸이 첫째다.

  경쟁 사회에 국한하면 인간이 행복해지는 방법은 두 가지다. 욕망을 다루는 도인이 되거나 욕망을 달성하거나. ​평생 욕망을 관리하느라 몸부림치는 것보다 (구조의 제약이 따르긴 하지만)달성하는 편이 더 쉬울지 모른다. 욕망을 이루려면 노력해야 한다. 특히 지식인, 운동선수, 예술가는 부자나 권력자와는 달리 혼자만의 노동, 자신과의 결투가 성공에 절대적이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 이르는 노고와 박사가 되기 위한 노동은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전자는 잘하는데 후자는 어렵다? 전자는 운동선수고 후자는 지식인이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같은 공부다.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운동선수도 지식인도 아닐 가능성이 크다. p209

  사회적 약자는 약한 사람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부당한 질문을 ​받는 사람이다. "너 빨갱이지?" "폭력적이지?" "게으르지?" "더럽지?"

…….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신으로부터 면허라도 받았는가? p215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계속 옮기면 "너 빨갱이지?" 할 것만 같다. ㅎ~ 더 옮기고 싶은 부분은 많은데 몇 꼭지는 전문을, 나머지 문장들을 더하면 너무 길어지겠다. 꼭꼭 씹어 먹을 것처럼 옮겨 적는 필사를 해보고 싶은 부분은 따로 만들어보아야겠다. 그냥 덮기에 이 책은 아쉬운 마음이 크다. 그리고 이런 책의 특성은 한번 놓으면 다시 잡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충동처럼 다시 읽고 싶은 어느 순간이 아닌 다음에야 책꽂이에서 나올 일이 거의 없다.

  '교양인'에서 나올 다음 '정희진'의 책들이 벌써 기다려진다. '정희진처럼 쓰기'를 비롯해서 '교양인'출판사는 그의 출판 목록 표를 책의 뒷날개에 올려놓았다. 그래도 아직 정신이 총총할 때 읽는 행운을 누리고 싶다. ​

  참 좋은데……. 참 좋은데 ……. 산수유 광고처럼, 좋은 책인데 내 주변의 현역들에겐 선물할 수 있는 책은 아니라는 사실이 못내 아쉽다. 이런 책들이 많이 읽혔으면 좋겠는데 인테리어용으로 전환하기도 쉬울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정희진'이라는 여성학‧평화학 연구자이면서 글쓰기와 강의를 병행하는 현역활동가를 내주변의 현역 노동자들이 모르는 이유는 그들과 다른 사람이라는 잠정적 규정에 있다. 읽기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관도 한 몫 할 테고. 바깥의 노동과 가사를 병행하는 바쁜 그들의 일상을 알면서 책 안 읽는다고 질책할 수는 없다. 쓰잘데 없는 책 목록이 넘쳐나는 시절에 그들의 삶이 곧 책이라면 나무의 목숨을 지키면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녀들이 박수를 받아 마땅한데 좀 끄적거릴 줄 안다고 그녀들에게 특별한 취급을 받는 내가 부끄러워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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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石詩全集
백석 지음, 이동순 엮음 / 창비 / 198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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修 羅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모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 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니젠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적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

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

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히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섰다가 쉬

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三 千 浦

  

졸레졸레 도야지새끼들이 간다

귀밑이 재릿재릿하니 볕이 담복 따사로운 거리다

  

잿더미에 까치 오르고 아이 오르고 아지랑이 오르고

  

해바라기 하기 좋을 볏곡간 마당에

볏짚같이 누우란 사람들이 물러서서

어늬 눈오신 날 눈을 츠고 생긴 듯한 말다툼소리도 누우라니

  

소는 기르메 지고 조은다

 

아 모도들 따사로히 가난하니 

 

 

 

바 다

  

바닷가에 왔드니

바다와 같이 당신이 생각만 나는구려

바다와 같이 당신을 사랑하고만 싶구려

 

구붓하고 모래톱을 오르면

당신이 앞선 것만 같구려

당신이 뒤선 것만 같구려

  

그리고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

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

당신이 이야기를 끊는 것만 같구려

  

바닷가는

개지꽃에 개지 아니 나오고

고기비눌에 하이얀 햇볕만 쇠리쇠리하야

어쩐지 쓸쓸만 하구려 섧기만 하구려 

 

 

 

故 鄕

  

나는 北關에 혼자 앓어 누어서

어늬 아침 醫員을 뵈이었다

醫員은 如來 같은 상을 하고 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넷적 어늬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드니

문득 물어 故鄕이 어데냐한다

平安道 定州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氏  故鄕이란다

그러면 아무개氏ㄹ 아느냐 한즉 

醫員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쓴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醫員은 또 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어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故鄕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잠풍 날씨가 너무나

좋은 탓이고

가난한 동무가 새 구두를 신고 지나간 탓이고 언제나 꼭같은 넥타

이를 매고 고흔 사람을 사랑하는 탓이다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또 내 많지 못한 월

급이 얼마나 고마운 탓이고

이렇게 젊은 나이로 코밑수염도 길러보는 탓이고 그리고 어늬 가

난한 집 부엌으로 달재 생선을 진장에 꼿꼿이 지진 것은 맛도 

있다는 말이 자꼬 들려오는 탓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탸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燒酒를 마신다

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당나귀도 오늘밤아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흰 바람벽이 있어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

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 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

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

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陶淵明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리하듯이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白石詩全集( 창비, 이동순編) 중에서  

 

 

종일 비는 나리고 기분은 빗물을 타고 흐르다 어느쯤에선 가라앉는다.

명절을 앞둔 탓일까?

일찍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다 白石을 읽는다.

白石은 그럴 때면 읽게된다.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바라다보듯 마음이 반듯해진다.

그러고 말거였는데

한참동안 '눈이 푹푹 나려서' 다시 白石을 만난다.

오늘은 '아름다운 나타샤'를 만날지도

'어데서 흰당나귀가 응앙응앙' 울지도 모르겠다.

자~ 점심이 시작됐다. 하루를 시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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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17 1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18 01:44   좋아요 0 | URL
오후부터는 바람이 차졌어요.
겨울 다운 맵짜한 추위는 없는 겨울이지만 명절을 앞둔 추위는
쓸쓸한 사람들의 기분을 더 심란하게 만들 거예요.
딱히 그리움이 있는 건 아니지만
좀 쓸쓸해져요. 명절은...그죠.ㅎ
그러시구나!
`따뜻한 밥`
참 좋은 말이고 훈훈해지는 단어예요.
그분도 따뜻하실 거예요.
그 마음이 짚어져서 깊게 숨 한 번 쉬어봅니다.
내내 무탈하셔요.
고맙습니다^^
 
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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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 목말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전통 있는 학교답게 도서관이 꽤 잘 되어 있었고 읽을 책도 많았다. 그마저도 육학년에 올라갈 무렵엔 다 읽고 말았지만, 중학교에서는 빈곤했다. 1학년 봄, 따끔따끔 보리가시에 찔리면서 보리 베기 동원을 나갔다. 우리 반에 배정된 수입으로 담임은 삼중당 문고판 씨리즈를 사자고 제안했고 서른 권짜리던가 이광수의 대표작품등이 있는 글씨가 깨알 같던 세로쓰기 그 책들을 기억한다. 그렇게 문학전집을 접하고 좀 살던 친구들 집이면 으레 한질 씩 놓여있던 세계문학전집등 갖가지 장식용 양장 판형의 전집들을 접수해서 읽어 치웠다. 내용도 모르고 뜻도 모르면서 화장실에 앞 뒷장이 다 찢겨 나간 책들까지....... 아마도 활자중독증 이었던 듯싶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렇게 읽은 책 중에는 '데미안', '25시',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등이 있었다. 처음엔 처음인 듯 몰입하다가 어느 부분부터 익숙해지는 책들은 대개 그렇게 첫 만남을 했던 것이다.

 

 

  열일곱, 고등학교 입학식을 앞두고 상경해서 처음 들어간 곳이 지금은 아파트 단지로 바꿈 한 방직공장이었다. 고작 6개월인가를 채우고 그만 두었지만 첫 월급을 타서 내 자신을 위해 한 첫 번째 일이 월부로 들여 놓은 근현대사 한국문학전집 20권짜리 한 질이었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황홀한 기쁨은 두툼한 양장본 표지의 책을 한 권 한 권 다 꺼내 읽을 때까지 새롭게 차오르고는 했다. 20여 년 전 까지 가지고 있다가 책 좋아하는 큰 언니가 가져갔는데 이제 그 집에서도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때 만났다. 선우 휘, 홍성원, 박경리, 이청준, 김승옥, 윤흥길, 김원일. 서정인, 박범신, 한승원, 송기원등의 쟁쟁한 작가들의 작품을. 그렇게 몇 년을 소설 속에 빠져 있다가 같이 공부하던 선배 언니한테 푸념한 한 대목은 어제 나눈 대화처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한국전쟁과 분단 상황이 없었다면 우리나라 작가들은 대체 뭘 썼을까'였다. 그랬다. 그때의 내가 만난 책들은 대다수 전쟁 상황이었고 분단으로 인해 파탄과 결핍의 위기에 놓인 주인공들이었다. 아류들에 좀 질렸을 것이다. 내 자신의 하루하루의 삶도 어둡고 무거운데 대체로 소설 속 주인공들도 그러했으니.

 

 

  그런 시절을 지나가고 있었다. 포스가 장난이 아닌 왕고참 언니의 '야 깽깽아' 소리만 빼면 제법 직장에도 익숙해져서 충실했고 나름 미래의 꿈에 발을 내밀기 시작한 1980년이 되었다. 친구들은 고2가 되었고 그 해 봄, 산업체 고등학교에 진학하라는 상사의 말에 잠깐 고민도 했지만 그랬으면 작년에 고향에서 상고를 장학생으로 갔을 거라고 오만은 하늘을 찌르면서 이제 막 시작한 스무 권짜리 '대망'에 코를 박았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보다 '오다 노부나가'가 내겐 더 매력적인 인물로 읽히더라는 편지에 친구는 재미있는 역사 소설인데 번역이 너무 형편없더라는 답장을 보내왔다. 그녀의 대학생 언니, 오빠들의 영향이었을 테지만 유일하게 편지로나마 소통하던 친구였기에 그 파장은 쳐들고 다니던 고개를 땅으로 처박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해 4월, 꽤 열심히 준비한 고졸검정고시를 치루지 못하고 말았다. 졸업증명서가 필요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진학으로 표기 되어 서류를 안 해 준 것이다. 절차는 절차여서 이유나 사정은 설득되지 않았다. 많은 길들을 발끝만 내려다보고 걷게 되었다. 쉬는 날이면 주머니에 돌아 올 차비만 남겨두고 갈 수 있는 곳까지 차를 타고 떠나서 낯선 동네, 비슷비슷한 골목들을 헤매다 돌아오는 것이 유일한 낙이 되었다. 그래보았자 전철의 끝, 인천의 어느 동네이거나 근교 시외버스가 다니는 곳들에 한정되었지만 익명이 보장되는 길에서 만나는 바람이 좋았다. 낮선 들판 미루나무 아래 볕 바라기가 자울자울 좋았다. 이렇게 한 세상을 살아도 괜찮겠네였다.

 

 

  [1980년 5월, 광주]는 그렇게 내게 왔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 따위는 없던 내게 고참 언니는 언제나처럼 '니네 깽깽이들이 기어이 일을 내 버렸다'고 내가 가해자고 당신이 피해자이기라도 한 것처럼 다구 칠 때에서야. 내가 좋아하는 '밤을 잊은 그대에게' 소수옥dj가 있는 광주mbc 사옥이 불타고 있는 뉴스를 보았다. '폭도'가 점령한 무법의 도시가 되어버렸다는 보도들만 무성한, 고향으로의 소식은 두절된 상태로 애간장을 끓였다. 고립 되어버린 도시에 누가 폭도이고 누가 간첩들이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안위를 알지 못하는 가족들의 생사여부가 전부였다. 전화국 시외전화박스를 날마다 들락거린 끝에 모두 무사하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무사하고 다행히 내가 아는 사람중 다친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해 추석, 고향에 가서야 알았다. 언론과 정권이 지목하는 폭도들이 바로 그 도시에 속해있는 우리 가족, 내 친구들, 선배들, 이웃들이었다는 사실을. 그 도시에 연관이 있는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그 '폭도'들의 배후 세력이기도 하다는 것을. '깽깽이'가 왜 생겼는지도 모르는 내게 그렇게 부르는 고참 언니의 호칭도 왜 가해자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도 그때서야 비로소 짐작되었다.

  미안했다. 내가 사랑한 도시, '광주'에게 미안하다. 내가 많이 걸어 다녔던 '충장로'에 '금남로'에 '무등산'에 심지어 호기심을 자극하던 유흥가 골목 '황금동'에 까지 미안하고 미안했다. 하물며 죽어 간 사람들한테 부채감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특히 부러워하던 교복을 입은 또래의 소녀들에게, 그 선택할 길 없는 공포의 상황에 놓인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아직도 같은 무게로 남아있다. 모른다는 것, 몰랐다는 것은 이유가 되지 못한다. 피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 '광주'는 단지 지명만이 아니고 '80년 5월'은 시간의 단위만이 아니다. 많은 누군가에게 피 맺힌 고유명사다.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창비)]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이런 통과의례를 거친다. [소년이 온다]는 그런 '광주' 다. 소설이면서 소설이 아닌, 소년이면서 소년이 아닌, 우리들의 사과문이고 기록문이고 픽션이고 논픽션의 경계에 서있다는 느낌이 강렬했다. 더불어 작가가 이 글을 쓸 수 있을 때까지 오래 힘들었겠구나, 이제 홀가분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에 사설이 길었다.

  마르시아 심, 지금은 심상대의 [망월]도 그렇고, 박상률의 [너는 스무 살, 아니 만 열아홉 살]도 한창훈의 [꽃의 나라]를 읽을 때도 그랬다. 한명 한명이 나였다가, 너였다가 우리들 모습으로 읽힌다. 시체들 더미 속에서 썩어가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고 있는'정대'이기도 하고 검열관에게 일곱 대의 뺨을 맞는 '은숙'이 되어 뺨을 부풀린 채 버스를 기다리고 서 있기도 한다. '동호'를 찾아, 당시의 '동호'의 행적을 찾아. '동호'를 찾는'동호 가족'을 따라가는 여정은 육십갑자를 넘고도 넘는 먼 여정이면서 동시에 단숨에 우리를 세월, 팔십년 오월 광주의 세월로 끌고 갔다가, 진도 앞바다 '세월'로 데려 갔다가 용산의 망루로 대추리로 우리를 내다 꽂는다. 어쩌면 '정미'일 수도 있는 내 그림자는 공포로 일그러진다.

 

 

 

  "너무 험하지 않게만 대강 수습해놓은 시신을, 유족들은 목화솜으로 코와 귀를 막아주고 깨끗하고 좋은 옷으로 갈아 입혔다. 그렇게 간단한 염과 입관을 마친 사람들이 상무관으로 옮겨지는 걸 장부에 기록하는 까지가 너의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애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조심스럽게 네가 물었을 때, 은숙 누나는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며 대답했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p17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랏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p114

 

  "그사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가전에서 희생되었는지 난 알지 못합니다. 기억하는 건 다음 날 아침 헌혈하려는 사람들이 끝없이 줄을 서 있던 병원들의 입구, 피 묻은 흰 가운에 들것을 들고 폐허 같은 거리를 빠르게 걷던 의사와 간호사들, 내가 탄 트럭 위로 김에 싼 주먹밥과 물과 딸기를 올려주던 여자들, 함께 목청껏 부르던 애국가와 아리랑뿐입니다. 모든 사람이 기적처럼 자신의 껍데게 밖으로 걸어나와 연한 맨살을 맞댄 것 같던 그 순간들 사이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부서져 피 흘렸던 그 심장이 다시 온전해져 맥박 치는 걸 느꼈습니다. 나를 사로잡은 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P116

 

  "다음의 일은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더 기억하라고 나에게 말할 권한은 이제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선생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니요, 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계단을 올라온 군인들이 어둠속에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조의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이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린 쏠 수 없는 총을 나눠 가진 아이들이었건 겁니다." p117

  

   "군인들의 명령대로 이층 복도에 머리를 박고 있던 우리들이 도청 마당으로 끌려 내려간 건 동틀 무렵이었습니다. 뒤로 손이 묶인 채 마당 가장자리에 일렬로 무릎 끓고 앉은 우리들에게 한 장교가 다가왔습니다. 그는 흥분해 있었습니다. 한사람씩 군화로 등을 밟아 흙바닥에 머리를 박게 하며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씨팔, 내가 월남 갔다 온 사람이야. 내 손으로 죽인 베트콩 새끼들이 서른 명도 넘는다. 더러운 빨갱이 새끼들. 그때 김진수는 내 옆에 있었습니다. 장교가 김진수의 등을 밟자, 하필 자갈에 찧은 이마에서 피가 흘렀습니다.

  다섯 명의 어린 학생들이 이층에서 두 손을 들고 내려온 것은 그때였습니다. 계엄군이 대낮같이 조명탄을 밝히며 기관총을 난사하기 시작했을 때 내가 소회의실 캐비닛에 숨으라고 명령했던 네 명의 고등학생과, 소파에서 김진수와 짧은 실랑이를 벌였던 중학생이었습니다. 더 이상 총소리가 들리지 않자 김진수의 말대로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러 내려온 것이었습니다.

  저 새끼들 봐라, 김진수의 등을 밟고 있던 장교가 여전히 흥분한 채 소리쳤습니다. 씨팔 빨갱이들, 항복이다 이거냐? 목숨은 아깝다 이거냐? 한 발을 여전히 김진수의 등에 올린 채 그는 M16을 들어 조준했습니다. 망설이지 않고 학생들에게 총을 갈겼습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봤습니다. 씨팔, 존나 영화 같지 않냐. 치열이 고른 이를 드러내며 그가 부하를 향해 말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사진에서 이 아이들이 나란히 누워 있는 건, 이렇게 가지런히 옮겨놓은 게 아닙니다. 한 줄로 아이들이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가 시킨 대로 두 팔을 들고, 줄을 맞춰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p133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부마항쟁에 공수부대로 투입됐던 사람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습니다. 내 이력을 듣고 자신의 이력을 고백하더군요. 가능한 한 과격하게 진압하라는 명령이 있었다고 그가 말했습니다. 특별히 잔인하게 행동한 군인들에게는 상부에서 몇십만원씩 포상금이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중략)

  제주도에서, 관동과 난징에서, 보스니아에서, ​모든 신대륙에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유전자에 새겨진 듯 동일한 잔인성으로.

  ......

  날마다 이 손의 흉터를 들여다봅니다. 뼈가 드러났던 이 자리, 날마다 희끗한 ​진물을 뱉으며 썩어들어갔던 자리를 쓸어봅니다. 평범한 모나미 검정 볼펜을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숨을 죽이고 기다립니다. 흙탕물처럼 시간이 나를 쓸어가길 기다립니다. 내가 밤낮없이 짊어지고 있는 더러운 죽음의 기억이, 진짜 죽음을 만나 깨끗이 나를 놓아주기를 기다립니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p135

 

  “너는 도청 안마당에 모로 누워 있었어. 총격의 반동으로 팔다리가 엇갈려 길게 뻗어가 있었어. 얼굴과 가슴은 하늘을, 두 다리는 벌어진 채 땅을 향하고 있었어. 옆구리가 뒤틀린 그 자세가 마지막 순간의 고통을 증거하고 있었어.

  숨을 쉴 수 없었어.

  어떤 소리도 낼 수 없었어.

  그러니까 그 여름에 넌 죽어 있었어. 내 몸이 끝없이 피를 쏟아낼 때, 네 몸은 땅속에서 맹렬하게 썩어가고 있었어.

  그 순간 네가 날 살렸어. 삽시간에 내 피를 끓게 해 펄펄 되살게 했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의 힘, 분노의 힘으로.” p173

 

 

  열다섯 살 ‘동호’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소년에게 총을 쏘라 명령한 자들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는데, 인구 40만의 도시에 군인들에게 지급된 실탄은 80만발이었다는 나라. 이것이 우리의 나라일 수는 없다. 그들의 그들만을 위한 나라에 우리는 산다. 전쟁의 여파를 그린 작품들처럼 ‘광주’도 좀 지겹게 느껴지도록 글로 만나질까. 여전히 빈곤한 문학, 4.3처럼 그렇게 ‘세월’과 함께 특정지역의 특정인들의 한풀이로 매도되어 버릴까봐 두려운 마음이다. 내게도 내재된 성향이 다분히 ‘폭도의 배후세력’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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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사지 못했지만 욕심은 나는, 그런데도 선뜻 지를 수 없는 한국 명단편집.

 이미 단행본으로 가지고 있는 책들과 거의 중복이라는 것이다.

 작가로서 황석영을 좋아하고 그의 안목을 존중하기에 그가 선한 101편의 묶음 집에는 끌리지만 포화상태인 책장에 모양이 그럴싸하고 진열하기 좋은 이 전집을 구입하기엔 뭔가 걸림이 있다.

 그래도 내가 선택하는 102번째의 단편이라, 고민했다.

 [젤리 피쉬]의 헤이수 단편들도 좋았고, [폭식]의 김재영의 단편들도 아쉽다.

 그런 고민을 그도 했겠지.

 그렇지만 한국 명단편에 이름 할, 그런 단편이라면 정지아 소설집[숲의 대화]속의 ˝목욕 가는 날˝ 정도여야 하지 않을까. [봄빛]의 단편들도 잔잔하게 따뜻했지만 [숲의 대화]속의 정지아는 담담해졌다. 상처를 딛고, 상처속으로 걸어 본 사람만이 가질 포용성이 여유롭게 읽혔다. 60대 무렵의 박완서 작가의 글을 40대의 시선으로 쓴 듯한 단단한 필력이, 관찰자의 시선이 정지아답게 그려져 있다.

  독자인 나를 소설속으로 끌어당기는 글을 좋아한다. 흡입력과 공감이 가독성을 높혀주는 유형에 속하는 것이다. 그 어떤 사랑에도 누추함은 없다. 당사자들에겐 고귀하고 가슴 저릿하다. 일회적인 것들이 판치는 현대 사회에서 고집스럽게 낡고 누추하고 가난하고 못 생긴 것들에 생명을 넣어 주는 작가의 일관됨이 자랑스럽다. 그것은 외면하고 싶어도 외면 할 수 없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니까.

  전작을 가지고 있고 전작을 완독한 작가 중에 유일하게 101편에 속하지 못한 그녀의 작품, `목욕 가는 날`을 감히 102번째 한국의 명단편으로 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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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경의 경주산책
강석경 지음, 김호연 그림 / 열림원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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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의 입구인 입춘의 아침이다.

  먹먹하고 화도 나고 답답하고, 이렇게 잊어가면서 일상을 살아가는 자신이 한없이 미안하기도 한 [눈 먼 자들의 국가]를 내려놓았으니 오늘은 뭘 챙겨 가 볼까? 책상 위 아직 읽지 않은 책을 들여다보다가 오후에 제주로 떠나는 현주 생각이 나서 잡은 책이 [강석경의 경주 산책] 이다. 제주를 다녀온 지가 일 년이 훌쩍 지나 그리움은 오름처럼 부풀어 오르는데 능이라도 만나볼까 싶다. 제주든 경주든 나를 끌어당기는 힘을 가진 곳이기도 하고.

  책이 출간되었을 때가 2004년, 그 당시라면 이년 여, 꽤 경주를 들락거렸던 시절이다. 폐허의 황룡사지에서 해가 저물고 저녁이 내리는 모습을 만난 이후 몸살을 앓듯 그리워하다가 다녀오면 다시 살아갈 힘이 생기고는 했다. 남산을 비롯해서 능원 사이를 한없이 걷고 또 걷고 자전거를 타고 신라 속을 다니던 그 시절의 내가 산문집 안에 있었다. 감실부처를 만나러 가던 길, 신선마애불을 만나던 그 순간의 느낌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특히 잊을 수 없는 풍경이 하나 있다. 사천왕사지에서 호젓한 오솔길을 누군가 공들여 비질한 흔적을 따라 가다가 만난 선덕여왕의 능, 상석에 놓여있던 꽃다발. 소나무들이 호위하는 소박한 왕릉에서 만나는 꽃다발은 1500년의 세월을 건너 뛰어 지귀처럼, 처용처럼 경이롭고 뭉클했다. 그런 뭉클함이 책 곳곳에서 살아난다. 거기다 더해서 이런 횡재를 하다니. 흠집 하나 없는 새 책 그대로의 모습에다가 김호연 화백의 정겨운 그림이 덤으로 담긴 이 책을 이렇게 싸게 결국은 만나버리다니 감동이 두 배다.

 

 

 

 

 

 

 

 

 

 

  '천년이 지난 고분은 내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일으키는 스산한 유택이 아니라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류의 흔적이다.

​  근원적인 것을 보여주기에 능이 있는 고도의 풍경은 아름답다. 산 자와 죽은 자,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경주는 늘 나를 매료시키고, 내게 영감을 준다. 환상과 영감의 샘물인 경주와의 조우는 작가로서 행운이지만 정신의 ​고향을 갖게 되었으므로 한 자연인으로서도 행복한 일이다. 누구와의 만남이 내 인생에서 필연이었는지는 말하기 힘들지만 경주와의 만남은 그래서 필연이라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p21 (황룡사지에서)

 

 

  경주와의 만남이 필연이라고 말하고 경주에서 살아가는 작가가 진정으로 부럽다. 필연으로 받아들이고 선택을 해서 살아갈 수 있는 결정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주변의 여건도 삶의 무게도 무시할 수는 없는 우리는 지극히 소심한 시민으로 살아가니까. 경주를 고향으로 두고 서라벌 여고를 다니고 여전히 신라가시내로 살고 있는 친구를 부러워했다. 능들 사이를 산책하고 분황사에서 지극 정성을 모아 절을 올리고 황룡사지를 걷는 그 친구의 걸음, 걸음에서 역사를 보았던 것이다. 동류의 부러움을 작가에게서도 느낀다.

 

   '신라의 북방문화로도 알 수 있듯이 경주는 지금의 한국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개방적이었던 것 같다. 중세 아라비아 사학가이며 지리학자인 알 마크디시는 966년에 펴낸 [창세와 역사서]에서 신라에 들어간 사람은 그곳의 공기가 맑고 부가 많으며 주민의 성격이 양순하기 때문에 그곳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고 기록했다. 신라인들은 실크로드의 당사자답게 이국 정취에 남다른 감각이 있었다고 말하는 미술 사학자도 있지만 이러한 개방성이 경주를 국제도시로 만들었고 오늘날에도 관광도시로 만든 것이 아닌가.

  언젠가부터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것을 내세우지만 단일이라는 것은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냄새를 풍긴다. 몇 년 전 46개 국가를 대상으로 다른 문화에 대한 적응력을 조사한 결과 한국이 최하위였다는 놀라운(?) 보고가 있었다.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력과 포용력의 결여이다. 가족 이기주의, 집단이기주의 등 한국사회의 부정적 단면도 여기서 자생하는 것이 아닌가. 문화는 섞이면서 진보하고 다양성과 포용성을 갖게 된다. 인도가 자랑하는 타지마할은 무슬림 통치자가 세운 것이고 음악으로도 잘 알려진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은 스페인을 보다 신비스럽게, 이국적으로 다가서게 한다. 19세기의 천재 안토니오 가우디의 환상적인 건축도 아랍문화가 섞인 그들 역사의 바탕에서 창조된 것이 아닌가.' p 25 (괘릉에서)

 

 

  괘릉의 무인상을 보고 느낀 소회인데 생소하다. 괘릉을 가보지 못한 것이다. ​작가의 의견에 공감한다. 지금의 경주도 배타적인 대표도시가 되어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언제고 괘릉을 간다면 작가의 시선이 얹혀 질 것이다. 그때 보는 풍경은 풍경으로만 그치지 않을 테고. 아는 것은 그런 것이다.

  괘릉, 사변이지만 블로그 이웃인 '밥'이 아주 오래 전에 올린 글로 인상적인 지명이기도 하다. 어릴 때 그 곳 소나무 숲을 무서워하던 생생하게 살아있던 글, 그 친구의 글빨은 블로그에서 만날 수 없는데도 이렇듯 살아있는데 아이 키우느라 기진맥진인지 토옹 타전이 없다. 언젠가 그 친구의 글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체홉을 좋아하는, 신랑을 따라 영덕에 살고 있는 개구리밥의 괘릉.

 

 

  '이제는 훌훌 털어버릴 준비를 해야 하건만 나는 왜 들 수도 없는 돌짐을 들여온​ 것일까.

  비어 있음은 빈곤이 아니라 풍요이며 근원에 다가가는 계단이다. 가득 찬 것은 혼란스럽다. 영혼을 탁하게 한다. 집에 가득 찬 물질에서는 부패의 냄새가 나고. 가슴에 가득 찬 욕망에선 ​폐수의 냄새가 난다. 그릇을 보면서 그릇처럼 비우라. 집착도 분노도 비우고 새로 태어나 듯 공으로 돌아가라. 인연도 비우고 겸허하게 기다리라. 잎을 떨구고 늦가을 숲처럼 나의 한가운데로 들어가기 위해.

  넉넉한 모양새가 자유로운 분청 그릇을 바라보며 언제 저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꿈꾸어본다. 맑고 고결한 백자 잔을 바라보며 백자 잔 같은 친구를 그리워한다.'  p53​(박물관에서- 그릇에 대하여)

 

 

  찔끔했다. 무엇이든 잘 ​버리지 못하는 성정이 스스로 딱하기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번 이사를 앞두고도 어찌나 한심하던지. 이십여 년 전의 낡은 노트들과 별 소소한 것들을 끄적거려둔 매해의 다이어리들, 등산화사이에 끼어 온 첫 한라산 산행의 화산석 조각들, 이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각가지 기념품들, 하나하나 사연이 있다고 버리지 못한 필기구들, 고르고 골라 버리면서도 다시 남겨지는 것들, 읽지도 않고 계속 사들이는 이 책들을 생각하면 중증이다. 언제나 이런 집착에서 벗어날 것인가 싶다. 한심하다. 비워야 할, 버릴 줄 아는 나이임에도 채우려고만 하고 있으니. ‘인연도 비우고 겸허하게 기다리라’는 구절을 오래 만져본다. 온기가 느껴지도록.

  박물관을 좋아하는데 특히 국립 경주 박물관은 볼거리로도 규모로도 상징성으로도 압도하면서 유혹하는 곳이기도 하다. 어느 비 오는 오후 내내 거기 머물던 시간이 에밀레 종소리처럼 아슴아슴하다. 뒤뜰에 고선사지 탑이 장대비에 젖고 있던.

 

 

  '천오백 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이 된 고분이 예술과는 또 다른 감동을 준다. 예술은 사물의 본질을 모방하지만 자연은 모든 본성을 포괄하기에 완벽하다고 하지 않는가. 예술을 모르고 살기는 해도 자연 없이는 살 수 ​없다. 인간이 무의식중 자연을 갈구하는 것은 그것이 생명의 본성이기 때문이리라. 생명의 모태인 자연.

  부드러운 능선이 가슴을 열게​ 하니 여름의 대지에 엎드리고 싶다. 능역을 산책하고 한 친구는 "여기서 죽고 싶다"고 취한 듯 말했지. 자연만이 주는 절대 평화가 죽음까지도 포용하게 하나보다. 인생의 유연함을 생각하면 권력도 명성도 덧없는 것. 이곳에 묻혔다고 추정되는 법흥, 진흥 두 왕은 불교를 일으키고 비약적인 국가발전을 이루었지만 말년엔 승려가 되었다. 영화의 헛됨을 알았기에 역사에 좋은 통치자로 기록될 수 있었으리라. 삶의 신고처럼 열기가 후끈 끼쳐오지만 형제처럼 정답게 솟아 있는 고분의 그늘 아래 걸어가니 몸도 마음도 허허롭다.' p78 ( 무열왕릉에서)

 

 

  스스로 잘 했다고​ '대통령의 시간' 운운하는 통치자를 가졌고, 스스로 잘하고 있으니 징징대지 좀 말라고 질책하는 통치자 아래에서 '눈 먼 자' 인 채로 살고 있어 부끄럽다. '가만히 있으라' 하니 가만히 살아가고 '귀 막으라' 하니 못 들은 척 살아가는 이런 어른이 되어 버린 무능이 부끄럽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처럼 보이던 구조를 간절함으로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다가 그렇게 잠겨버린 배 안에서 죽음이 다가오는 걸 기다린 그들에게 단 하나의 기적이라도 있을 거라고 기대하면서 숨죽이며 ‘세월’을 바라 본 눈 뜬 장님의 시간들이 부끄럽고 통치자인 그들을 기록할 역사에서 지나가는 행인1도 못되는 역할이겠지만 역사 속에 남을 그 상황들의 증인으로서 부끄러운 날들이다. 선거로도 이론으로도 엄중히 대처하지 못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1인으로 부끄럽다. 존경할 어른을 갖지 못한 불행한 시절, 어쩌면 그 책임은 우리들에게 있을 것이다. 청산해야 할 역사를 청산하지 못하고 살아온 그 나날들이 결국은 이런 풍토를 만들어 버렸을 테니까. 이제 골프나 배우고 골프 치러 파르라니 다듬어진 잔디밭으로 나가는 것이 이 나라를 위하는 길일지 모르겠다.

 

 

  '목책엔 갖가지 색깔의 깃발이 꽂혀 있고 조련사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말을 타고 있는데, 몽고의 겔 같은 둥근 비치 양산 아래 빨간 모자와 조끼를 입은 조련사들이 앉아 있었다. 폐허의 미를 느껴야 할 신라 궁터에 깃발이 꽂힌 목책이라니​. 몽고에 온 것 같았다. 역사의 유적지를 관광이라는 경제논리로 유료 말 체험장을 만들고 유원지화 하다니. 이런 의욕과잉이 지방자치제의 살아남기 행정일까.

  경주는 짓고 세울 ​것이 아니라 수도승처럼 비우고 비워야 할 도시가 아닐까. 고도의 환상을 깨트리는 고층 아파트는 하나 둘, 외곽으로 나가고 전선주조차 땅 밑으로 묻고 능원의 담도 허물어 방문객들이 천오백 년 전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폐허의 황룡사지와 계림 숲을 거닐며 자신의 원형을 발견하고, 달팽이집 같은 일상에서 비켜나 근원으로 돌아가는 순간을 맞도록. 그것이 민족의 고향으로서 경주가 존재하는 이유가 아닐까.' p97 (서천에서)

 

 

  첨성대 앞에서 계림으로, 반월성으로 오가는 마차를 본 것 같다. 그 이후 그쪽으로 걸음하지 않았지만.

  문화의 보존과 개발은 양날의 검처럼 예민한 사항이지만 세계문화유산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나로서도 안타까운 일이 많다.지난 가을, 감은사지에서도 그런 징후를 보았다. 구불구불 추령재를 지나며 토함산을 일별하고 나면 가슴이 뚫리는 너른 들판과 대종천이 나오고 그 길 끝에 훤훤장부 같이 잘생긴 감은사탑을 만나는 설렘을 누릴 수 없었다. 도로는 이쪽저쪽으로 생기고 온통 공사현장만 있을 뿐이었다. 거기다 외길의 끝에 가서야 탑을 볼 수 있게 도로는 바뀌는중이었다. 봉길리 앞바다의 집채만한 파도가 아니었다면 점심으로 먹은 전복순두부는 쳇증으로 얹힐 뻔 했다. 고유섭선생의 ‘나의 잊히지 못하는 바다’ 봉길리 앞바다의 파도와 갈매기들만이 여전히 반갑게 맞아주었다. 위대한 자연에 무릎 꿇는 순간이 바로 그런 때일 것이다. 오래오래 거친 바람을 맞았다. 다음 번에 찾을 때에도 그 바다가 여전했으면 싶은 간절함을 지극정성으로 손을 모으고 있는 사람들의 등에 얹어두고 돌아오는 추령재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친구며 연인을 추구하는 것도 닮은​꼴인 영혼의 유전인자를 찾기 위해서이고, 위대한 작가의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것도 예술을 통해 내 영혼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서이다. 어느 때는 길을 잘못 들어 고통을 받기도 하지만 경험은 어리석은 자도 깨우쳐주어 결국은 제 길을 찾아가도록 해준다. 정신만 치열하다면 말이다.

  사람도 거리도 복잡한 서울에서 보름 만에 돌아와 금빛 능을 바라보니 경주와의 만남에 새삼​ 감사하게 된다. 경주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나는 아직도 무국적자로 세상을 떠돌아다닐 것만 같다. 내면의 부름이 있었는지 필연같이 경주를 찾아오면서 나의 긴 방황도 매듭지어졌는데 이 땅의 무엇이 내 영혼을 강하게 붙드는 것일까.

  천오백 년 전 거대고분의 주인공들인 신라인의 기상, 자유로움과 미에 대한 찬사​, 대의를 위해 몸을 던지는 올곧은 충정과 바위마다 부처를 새긴 종교심은 늘 나를 고양시킨다. 내가 경주에 이토록 친화력을 느끼는 것은 내 영혼의 유전인자가 신라혼의 DNA와 같기 때문이고, 내가 경주로 돌아온 것도 자신의 근원으로 돌아온 회귀인 것만 같다.

  또 한해가 강물처럼 흘러간다. 숫자란 그저 하나의 매듭일 뿐이지만 우리는 자신의 근원을 찾아 오늘도 흘러간다. p107 (세모의 거리에서)

 

  오르한 파묵의 '이스탄불'을 읽고 이스탄불은 그런 작가를 가져서 얼마나 행운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작가가 근원 회귀의 고향으로 경주를 가졌으니 이제 경주도 행운을 가진 셈이다. 아니 이미 가졌는데 이제야 내가 알게 된 것인가. 언젠가 다시 경주를 산책한다면 이전에 만났던 경주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천오백 년 전의 신라인들은 이제 그들의 본향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주는 여전히 慶州이리라. 금빛 능이 거기있고 그곳을 사랑하는 영혼들이 서로를 찾으면서 만나는 순간들이 교차하고 있는 이상 우리들의 아름다운 고도는 古都로 남아있으리라 믿는다.

 

           -경주남산-

                         정일근


마음이 길을 만드네
그리움의 마음 없다면
누가 길을 만들고
그길 지도위에 새겨 놓으리
보름달 뜨는 저녁
마음의 눈도 함께 떠
경주남산 냉골 암봉 바윗길따라
돌속에 숨은 내사랑 찾아 가노라면
산은 사람들에게 풀어놓은 실타래 같은길은
달빛 아니라도 환한길
눈을 감고서도 찾아갈 수 있는 길
사랑아 너는 어디에 숨어 나를 부르는지
마음이 앞서서 길을 만드네
그길따라 내가 가네

  그랬다.
눈을 감고서도 환한길. 이미 마음으로 다니고 보았던 길이요, 소나무였다. 
  그 속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냉골 암봉 바윗길 따라.

  경주 남산을 처음 만나고 인용했던 시와 적었던 부분이다. 그런 감동의 순간을 기억하는 한 언제까지나 경주는 경주로 남아있겠지.

  곧 봄이다. 모든 사람을 무장해제 시킬 봄.

  꽃구름 속의 불국사, 온통 꽃 물결 사람 물결이 될 경주,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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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9 23: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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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10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