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문태준

장대비 속을
멧새 한 마리가 날아간다
彈丸(탄환)처럼 빠르다
너무 빠른 것은 슬프다
갈 곳이 멀리
마음이 멀리 있기 때문이다
하얀 참깨꽃 핀 한 가지에서
도무지 틈이 없는
빗속으로
소용돌이쳐 뚫고 날아가는
멧새 한 마리
저 全速力(전속력)의 힘
그리움의 힘으로
멧새는 어디에 가 닿을까
집으로?
오동잎같이 넓고 고요한 집으로?
中心(중심)으로?
아,
다시 생각해도
나는
너무 먼
바깥까지 왔다

시집 [가재미(문학과지성2009)] 중에서


문태준시인의 시는 느릿느릿,
가만가만 읊조릴 때
눈으로 읽는 것보다 그 맛이 살아납니다.
화학조미료 없이 재료의 맛이 살아있는 담백한 요리처럼.
섣부른 기교를 모르는 시인의 품성을 닮아서겠지요.
시어들이 차곡차곡 마음의 곳간에 담깁니다.
‘너무 빠른 것은 슬프다/ 갈 곳이 멀리/ 마음이 멀리 있기 때문이다’도
‘全速力의 힘/ 그리움의 힘’도.

한편
당신의 바깥,
나의 바깥을 생각해봅니다.
당신,彈丸처럼 빠르게 어디로 가고 있는지요?

中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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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3 22: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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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탑을 줍다 창비시선 240
유안진 지음 / 창비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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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탑을 줍다

                        유안진

 

고개 떨구고 걷다가 다보탑(多寶塔)을 주웠다

국보 20호를 줍는 횡재를 했다

석존(釋尊)이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실 때

땅속에서 솟아나 찬탄했다는 다보탑을

 

두 발 닿은 여기가 영취산 어디인가

어깨 치고 지나간 행인 중에 석존이 계셨는가

고개를 떨구면 세상은 아무데나 불국정토 되는가

 

정신차려 다시 보면 빼알간 구리동전

꺾어진 목고개로 주저앉고 싶은 때는

쓸모 있는 듯 별 쓸모없는 10원짜리

그렇게 살아왔다는가 그렇게 살아가라는가.

                     시집 [다보탑을 줍다(창비 2004)]중에서

 

10원짜리 빼알간 동전에 다보탑이 들어있군요.

잊고 있었습니다.

‘쓸모 있는 듯 별 쓸모없는 10원짜리’가 되어버린 거지요.

우리 모두에게 소중했던 순간을 동전도 가졌을 터인데.

순간은 소멸되고,

기억은 동전처럼 둥글둥글 마모되어 가는 것이지요.

다보탑까지도 말이지요.

이제는 애써 허리 숙여 줍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무궁화의 1원, 거북선의 5원은 사라졌습니다.

별 게 아닌 게, 결코 별 게 아닌 것을 알면서도

속절없이 잊으며 살아갑니다.

애석하게도

다음에는 우리 차례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살아왔다는가 그렇게 살아가라는가.’

체념처럼…….

하여 우리는 지금,

바로 지금을 살아야합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당신이 바로 석존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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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당나귀 곁에서 창비시선 382
김사인 지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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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풍천장어집

                            김사인

김씨는 촘촘히 잘도 묶은 싸리비와 부삽으로

오늘도 가게 안팎을 정갈하니 쓸고

손님을 기다린다

새 남방을 입고 가게 앞 의자에 앉은 김씨가

고요하고 환하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오도마니 자리를 지킨다는 것

누가 알든 모르든

이십년 삼십년을 거기 있는다는 것

우주의 한 귀퉁이를

얼마나 잘 지키는 일인가.

부처님의 직무를 얼마나 잘 도와드리는 일인가.

풀들이 그렇듯이

달과 별들이 그렇듯이.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창비2015)]중에서

선운사에 가보셨는지요?

선연한 동백만큼이나 풍천장어집들이 즐비한 그곳의

어느 집 앞에 서 있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시입니다.

그 집의 장어도 먹는 사람을

‘고요하고 환’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음식은 만드는 이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서

먹는 이에게 전달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요.

그러나,

시의 행간과 자간사이가 이제 육 개월 남짓한 초보에겐 영 닿을 수 없이 멀고도 심오합니다.

‘우주의 한 귀퉁이를’ 지키는 일의 거룩함이

어떤 거창한 세속의 위대함에만 있는 것은 아닌

깨달음을 얻기까지

‘누가 알든 모르든’,‘누가 보거나 말거나’

얼마나 더 가야할지 아득한 것이지요.

그래도,

그.

래.

도.

‘달과 별들이 그렇듯이.’

[두부]에 온 마음을 담아 그저 가보려 합니다.

묵묵히 쭈욱.

여기 콩콩두부家에 오신 그대, 오래 지켜보아주세요.

 
 
 

  유월이 시작되기 전 [선운사 풍천장어집]을 준비할 때 만에도 [콩콩두부家]의 유월에 대한 기대치가 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기대 정도가 아니다. 지난해 구월이후부터 이 여름을 위해 달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대로 된 휴일도 없이, 열 시간에서 열다섯 시간 이상을 두부를 만들고, 쓸고, 닦고, 준비하고, 계획하고, 실행하고, 바꾸면서 여기까지 왔다. 이 여름을 제대로 넘기면 안정권이 될 거라는 희망이 있었고 오월을 지나면서부터는 전혀 터무니없어 보이는 희망은 아니었다. 그렇게 맞은 유월이고 [선운사 풍천장어집]이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복병을 만났으니 이름은 들어봤나? 증상은 또 뭐라나? 하여간에 ‘메르스’

  치명타다.

  초 긍정주의자를 자처하는 나도 이제는 슬슬 초조해진다. 이 무능한 정부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 희망을 앗아가게 하는 것이다. 2014년 4월 16일을 다시 살고 있는 느낌은 나만 그런 것은 아닐 터. 이번엔 어느 부처를 없앨 것인가.

  "너나 가라 하와이!!"에서 시작한 중동 붐이 [중동 독감 @.@] 으로 온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이 놈의 '메르스'가 지나 가고 나면 우리는 슬그머니 유신헌법의 시대를 살게 되는 건 아닐까 싶기도해서 심란하고 의기소침해진다.

  이래가지고는 "누가 보거나 말거나/ 오도마니 자리를 지킨다는 것/ 누가 알든 모르든/ 이십년 삼십년을 거기 있는다는 것// 부처님의 직무를" 도와드리기는 커녕 불목하니 노릇도 못 하겠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에 담긴 저 무수한 순수한 독자로도 국민으로도 살아가기 참 어려운 시절이다. 이렇게 작은 가게 하나 운영하는 일도 지구의 무게를 짊어진 듯 책무가 무겁고 철학이 없다면 흔들릴 일 투성이인데 한 나라를 경영하는 처신이 '아몰랑' 이어서야.

 
  '메르스'는 물러가는 모양이다.
  '유승민'도 물러갔다.
  '저 분분한 낙화'​ 태풍 '찬홈'의 빗속에서 떨어져 내리는 능소화를 눈에 담는다.
  초복인 오늘, 여름이 아직 제대로 시작되기도 전인데 지친다. '광복 70년 기념 특사'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하나! 누굴 탓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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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5-07-14 0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내셔요, 우리에겐 아직 중복과 말복이 남아 있습니닷~^^

2015-07-20 20:39   좋아요 0 | URL
중복과 말복이 남아있다니 절로 힘이 나네요^^
와~새벽에 일어나시는군요
저는 그 시간이면 거의 죽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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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재구성 - 제28회 신동엽창작상 수상작 창비시선 306
안현미 지음 / 창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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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현미​

개미도

참새도

물고기도

사무원도

세상 속

개미로

참새로

사무원으로

살아갈 뿐

일상을

올올이

견뎌낼 뿐

다만

그뿐

 

     시집 [이별의 재구성(창비2009)​] 중에서

 

  

안현미 시인의 [뿐]앞에서 부끄러운 2015년 6월입니다.

두려움의 엄살과, 조바심으로 가장한 욕심의

시간들로 채워온 것 만 같네요.

‘살아갈 뿐//

일상을/ 올올이/ 견뎌낼 뿐// 다만/ 그뿐’

개미도 참새도 사무원도 그러한데……

덜 가졌다고, 더 가지려 애쓰기만 한 것은 아닌지.

세상 속,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허세만 추구해온 건 아니었는지…….

사무원도 못 해 본 저는 이제 다짐해봅니다.

生의 나머지 시간들은 남 탓하지 않고,

스스로도 납득할 오롯한 진정으로만 빼곡 채워가기로.

“다만/ 그뿐”

여기, 콩콩두부家에 머무시는 그대도 그러실 거지요.

고맙습니다.

늘 훈훈한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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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빗방울이 흩뿌린 탓일까?

이른 시각, 단체 예약 손님을 ​치르고 나서는 종일 조용한 토요일이다.

구불구불, 좁은도로도 오늘은 휑하다.

다들 어디로 달려갔을까​?

캠핑장을 향해,

족구장을 향해,

가족들과의 저녁을 향해,

줄줄줄 달려가던 이들의 행방이 궁금하다. ​

서창으로 우거진 나뭇잎​들 사이로 기운을 잃어가는 햇살만 무성한 저녁

어쩌다 한번씩 펴들어도 흡족해지는

김사인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에 코를 박는다.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한 서민의 [집 나간 책]은 점점 흥미진진한데

아끼고 싶어 한 꼭지씩 읽는다.

여운이 강렬한 책이다. ​

<무지에서 살아남기>가 아니라

<무지에서 깨우치기>중이라 숨고르기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자고로 리​뷰는 이 정도래야 리뷰지,

혼자 끄덕끄덕.

흔적도 없이 드나드는 몇몇 서재의 알라디너들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고 있다.

무서울만큼 예리하고 소박할만큼 따스한 시선들,

아직 세상이 살만한 이유는 이런 빛나는 존재들 때문이리라.

마지막 페이지까지 실망시키지 않으리란 예감에 더욱 ​든든하다.

<선운사 풍천장어집>을 유월의 시로 찜하고

<중과부적>에서 이미 무거운 몸무게에 무게를 더하고

<무릎 꿇다>에 무릎이 꿇린다.​

이렇게

한 세상을​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는 조용한 토요일 저녁이다.

'저무는 일의 저 무욕​

고개 숙이는 능선과 풀잎들 곁에서​

별빛 총총해질​ 때까지'

 

 

무릎 꿇다

​               김사인

 

뭔가 잃은 듯 허전한 계절입니다.

나무와 흙과 바람이 잘 말라 까슬합니다.

죽기 좋은 날이구나

옛 어른들처럼 찬탄하고 싶습니다.

방천에 넌 광목처럼

못다 한 욕망들도 잘 바래겠습니다.

고요한 곳으로 가

무릎 꿇고 싶습니다.

흘러온 철부지의 삶을 뉘우치고

마른 나뭇잎 곁에서

죄 되지 않는 무엇으로 있고 싶습니다

저무는 일의 저 무욕

고개 숙이는 능선과 풀잎들 곁에서.

별빛 총총해질 때까지

 

 

중과부적​(重寡不敵)

조카 학비 몇푼 거드니 아이들 등록금이 빠듯하다.

마을금고 이자는 이쪽 카드로 빌려 내고

이쪽은 저쪽 카드로 돌려 막는다. 막자

시골 노인들 팔순 오고 며칠 지나

관절염으로 장모 입원하신다. 다시

자동차세와 통신요금 내고

은행카드 대출할부굼 막고 있는데

오래 고생하던 고모 부고 온다. 문상

마치고 막 들어서자

처남 부도나서 집 넘어갔다고

아내 운다.

'젓가락은 두자루, 펜은 한자루 ​...... 중과부적!'*

이라 적고 마치려는데,

다시 주차공간미확보 과태료 날아오고

치과 다녀온 딸아이가 이를 세개나 빼야 한다며 울상이다.

철렁하여 또 얼마냐 물으니

제가 어떻게 아느냐고 성을 낸다.

*미루야마 모보루 [루쉰(魯迅)​]에서 빌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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