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리 시편 - 심호택 유고시집
심호택 지음 / 창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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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봉선이

                         심호택

 

싸가지 없는 아무개놈

속으로 욕하며 걷는 산길

바보여뀌 널려 있고

물봉선이 피어 있네

나밖에 볼 사람도 없는걸

시월이면 지고 말걸

빨간 물봉선이는, 아니

보라색 물봉선이는 뭐하러

저리도 곱게 피어 있나

여뀌는 또 무엇이 즐거워

저리도 깨가 쏟아지나

                      시집 [원수리 시편] 중에서

                      심호택 시인은 1947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한국외국어대 불어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91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빈자의 개] 등

                      8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하늘밥도둑] [최대의 풍경] [미주리의 봄]

                      [자몽의 추억]이 있다.

                      원광대 불문과 교수를 지냈으며

                      2010년 1월 교통사고로 타계했다.

 

 

읽고 나면 피식~ 웃음이 나는 시입니다.

시는, 어렵기만 하고 모르는 얘기만 하는 것은 아닌가봅니다.

저 혼자 곱게 피어나고 저 혼자 맵씨를 뽐내는 꽃이 시인에게 지청구를 듣는 오소록한 산길이 그려집니다.

그러나 어느새 십일월,

바보여뀌도 물봉선이도 슬그머니 지고 없겠네요.

가을은

소박하게 왔던 것들이 올 때처럼

조용히 물러나는 시간.

우리도 그들처럼 언젠가 그러하겠지요.

빨간 물봉선이처럼 아니 보라색 물봉선이처럼

누가 알아봐주지 않아도 각자의 생에서 주인공인 그대.

이 아름다운 지구의 가을, 행복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여기 머문 시간이

광교산의 단풍처럼 아름다운 하루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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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色 시작시인선 42
정진규 지음 / 천년의시작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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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정진규

 

  새벽 공기를 빠듯이 뚫고 지나와야 하루가 안심이 된

다 새벽 공기의 내음을 아니? 그만한 향수를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노인인 내 몸에서 좋은 냄새가 난다고 젊은

너를 내게 쏠리게 하는 그 비방을 비로소 고백한다 오늘

도 화계사 솔숲을 지나왔다 눈이 내려서 새벽 정신 더욱

깔끔했다 하루를 너끈히 견딜만했다

 

                                                     

 

 

 

淸洌

                                정진규

 

   이 겨울 내내 내가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은 동상 걸린

내 발가락들 사이 사이 깊게 박힌 서릿발들, 날카롭게 반

짝거렸다 해동 무렵에야 그게 무에라는 걸 겨우 터득했

다 만져지는 빛, 삼십 년만의 추위가 있던 날 어둠 하늘

에서 내 몸에 避接된 별들의 눈물, 이런 降神도 있다 차

가운

 

 

 

 

봄비 

                               정진규

 

   미리 젖어 있는 몸들을 아니? 네가 이윽고 적시기 시작

하면 한 번 더 젖는 몸들을 아니? 마지막 물기까지 뽑아

올려 마중하는 것들 용쓰는 것 아니? 비 내리기 직전 가

문날 나뭇가지들 끝엔 물방울들이 맺혀 있다 지리산 고

로쇠나무들이 그걸 제일 잘 한다 미리 젖어 있어야 더 잘

젖을 수 있다 새들도  그걸 몸으로 알고 둥지에 스며들어

날개를 접는다 가지를 스치지 않는다 그 참에 알을 품는

 

   봄비 내린다

   저도 젖은 제 몸을 한 번 더 적신다 

 

 

                                         시집 [본색(천년의 시작 2004)] 중에서   

 

 시인은 1939년 경기 안성 출생,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마른 수수깡의 평화] [들판의 비인 길이로다] [매달려 있음의 세상]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몸詩] [알詩] [도둑이 다녀 가셨다] 외 다수

한국시인협회상, 월탄문학상, 현대시학작품상, 공초문학상 등 수상

현재 월간 시 전문지 [현대시학] 주간

 

 

 

 

아침 시간 짬을 내어 [본색]을 다시 읽는다 

하루를 너끈이 견딜만하다

불빛이 음표로 일렁이는 저 곳, 광교 수원지 뚝길 

일 끝나는 저녁마다 어슬렁 거린다

발바닥에 폭신하게 안기는 흙의 느낌이

촉촉하게 스며드는 안개 내음이

내 어린 날의 뚝길

먼 길임에도 꼭 그 길로 집에 가게 만들던 드들강 가는 길 닮았다

아직

내 발가락들 사이 사이 깊게 박힌 서릿발들,

 

봄비 내리신다

저도 젖은 제 몸을 한 번 더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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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 Travel Notes, 개정판
이병률 지음 / 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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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뜻한 기록

 

 "우연히 아주 우연히 여행지에서 만난 어느 친구의 수첩을 보게 되면서

  나는 한참 동안 따뜻했다.

  캐나다 기차에서 만난 앙투완

  그의 수첩 속 달력 칸칸에는 베토벤, 존 레넌, 고흐. 아인슈타인.......

  이런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태어난 건, 우연의 힘에 의해 태어나는 것이므로 기억될 가치가 적지만

  한 사람이 세상을 살았고 그렇게 떠나는 것은

  인류에게 더없이 기억되어야 할 가치가 충분하므로

  일일이 그 날짜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이라고 너는 말했다.

 

  따뜻한 건, 유난스러운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런 거라 생각한다.

  우리가 오늘을 살고 있어서 가치가 적다고 생각되는 건

  아직, 끝나지않았기 때문이다."

 

                                   이병률 산문집 -- 끌림 (랜덤하우스 중앙) 중에서--

 

                                 

  미황사에 머무는 동안 이병률 시인의 산문집 '끌림'의 구절들과 사진들이 문득문득 떠올랐어.

  단청을 칠하지 않은 대웅전 뒤로 달마산을 올려다 볼 때,

  다 기억하지는 않았지만 옮겨적은 저 내용말고도 티벳의 속담이라는

  "내일과 다음 생 중에서

  어느 것이 먼저 찾아올지

  우리는 결코 알 수가 없다." 도 그랬어.

  읽는 동안, 책이 주는 온기로 정신을 놓아버리고 이방의 어느 곳을 떠돌기까지 했지. 

  가끔 어느 사진들은, 어느 문장들은 서늘하게 기억되고는 했는데 그런 순간이 그랬어.

  돌아와서 다시 '끌림' 을 읽었어.

  '끌림' 속에는 그의 시 "사랑의 역사"가 있고 짜르의 음악이 있어.

  저마다 각각의 것들이 내게는 한꺼번에 찾아오고는 해.

  글은 참으로 따뜻한 기록이야.

    

  풍경이 걸린 창으로 바람의 성긴 손이 얼굴을 만지고 지나갔어.

  나, 이 바람 때문에 여기 온 것 맞나봐.

                        

                                   

 

  불두화, 달랑 두 송이만 남아있어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어.

  저렇게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무슨 꿍꿍이 중일까?

  설마 멀리서 달려온 나를 골탕먹일 궁리를 하는 건 아닐 테지.

  골탕은 무슨? 아마도 작별의 키스를 나누는 것이리라 믿기로했어.

  안녕, 여름아.

 

                                   

  후원에서 보는 대웅전 쪽이야.
  저녁 공양을 기다리는 시간동안 띵가띵가 방향을 바꿔가면서 달마산과 미황사를 바라봤어.
  절정을 넘어가는 푸름이 애틋해.  
  구월이야.
  어찌 구월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늦은 저녁에는 왼쪽에 보이는 요사채에서 주지스님이 차를 만들어주셨는데
  그 방안에는 장르 구분 없는 책이 가득해. 역시 '아름다운 집'도 있었어.
  오늘, 이 절집에서 머무는 사람은 넷.  
  처음 만나는 이십대에서 오십대까지 여자들의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사는 얘기,
  스님의 말씀에 시간은 훌쩍 10시가 지나갔지.
  함께하지 못하는 바람은 문짝을 확확 잡아채면서 심술을 부렸지만 
  쏜살같이 달려온 별들이 끔벅끔벅 바람을 달랬지.
  차고 맑은 밤이야.

    

  묵었던 방의 문을 열어놓고 마당에 가만가만 내리는 햇살 한 줌 훔쳐다 엽서를 썼어.

  바람 흔적 가득한 그 엽서 말이야.

  산이 부르는 소리 이끌려 나무들, 풀들, 바위들 함께 놀다 왔지. 바람이 달디 달았어.

  삐뚤빼뚤 서툰 글씨같던 바위산의 품은 넉넉하고 깊었어.

 

  점심 공양때 먹은 열무쌈의 알싸하고 달큼한 맛, 입 안에 오래 남는 향,

  혼자여서 더 익숙한 것들로 편안한 시간. 

  마루에 놓아두고 떠나왔어. 

  달이 뜨면 다시 갈까?

 

  미황사에서 토말 가는 길 어디쯤이야.

  바다처럼 보이지만 실은 저수지이고 갈대도 벼도 토실토실해.

  진작 사진을 찍어야 하는 곳이 있었는데 햇살이 너무 뜨거워서 놓쳐버리고 잠시 쉬는 중에 찍었지.

  뜨거운 시간이라 들에는 일하시는 분들도 없었어.

  다행이야.

  어쩐지 민망하고 까칠까칠한 기분, 곁을 지날 때마다 그렇거든.

  어깨 넘어 넘겨다보는 마당에는 참깨, 들깨, 고추가 자세 각각인데도 다정해 보여.

  키운 이가 다정했던 것일까.

  깻단처럼 머리 맞대고 살아가는 늙은 부부의 모습을 본 듯해. 토방 위 신발 두 켤레.  

 

  바다야.

  땅 끝이야.

  상징성만으로도 숨막히는 그리움을 간직한 곳.

  땅. 끝.

  모든 것의 출발일 수도 있는 끝.

  그래, 여기 다시 왔어.

  바닷물이 투명해.

 

  저기 저 배는 노화도 행이야.

  오래 잊을 수 없는 할머니 한 분, 배에 타고 계셔.

  버스에서 앞 자리에 지갑을 떨어뜨리고 내리셨어. 챙겨야 할 짐이 많아서 지갑은 놓친거지. 

  지갑도 짐도 들어다 드렸어.

  얼마나 고마워하시는지 당연한 일이 큰일이라도 한 것처럼 장하게 느껴질 지경이었어.

  결국 배에서 다시 내려 귤을 주고 총총 가시네.

  '하는 일 다 잘될 거'라는 덕담을 몇 번 하셨는지 몰라.

  오래 전, 보길도 행 배를 기다리면서 노화도에서 사먹던 튀김 집 아주머니셨을까?

  맞잡은 거친 손이 아주 따뜻해서 잠깐, 엄마 손을 잡고 있는 것 같았어.

  모든 일상이 특별하게 다가 오는 곳, 여기는 이 땅의 끝이야.

  한 발짝도 더 이상 내디딜 수 없는 곳.

  그러나 마음 먼저 내달려 어디까지나 갈 수 있는 곳이지. 

 

 

  이 친구 스물 넷.

  이번 여름 학기에 졸업을 하고 한달 간 계속 된 sbs, pd 시험에 실패했대.

  다음 mbc 시험까지 일주일의 시간, 무작정 떠나온 여행의 막바지에서 지쳐있었어.

  같은 방에서 하루를 묵은 인연으로 땅 끝으로 따라 나섰어.

  떠나올 때의 의기소침, 울분, 여자여서 무조건 손해본다는 피해의식, 연줄이 없다는 먹먹한 불안이 많이 가라 앉았다고, 미황사에 와서 나를 만나게 되어 고맙다는 어린 친구.

  mbc에서 떨어지면 또 kbs, 기다리고 있다는 첩첩의 관문을 그녀, 무사히 넘을 수 있을 것이야.

  넘지 못한다해도 다른 곳에서 pd인 그녀의 이름을 만나리라 믿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향해 묵묵히 오래 달릴 준비가 되어있으니까. 

  많은 길들을 잃고 많은 길 앞에서 좌절하겠지만 길이 있다는 소중함, 땅 끝의 시간을 기억하겠지.

  권도연 화이팅!!!

 

  파도는 바다가 전해주는 따뜻한 기록이야.
  바다는 하루에 파도를 칠십만 번 친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어. 
  들리지.
  살아있다고 살아있다고 사소함으로도 살아있다고 전해 주는 소리.
  보이지.
  살아가는 거라고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거라고, 포말로 보여지는 글자들.
 
  그래, 여기는 땅 끝이야.
  아니, 여기서부터 바다의 시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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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3-18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정말 잘 쓰세요..ㅠ

2014-03-21 00:34   좋아요 0 | URL
꾸벅~~^^

oren 2014-03-19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첨부해서 올리신 사진들이 전부 X표시로 나타나서 많이 아쉽네요. 혹 수정해서 올려주시면 꼭 다시 와서 구경해 보고 싶습니다. 저도 보길도에는 두 번 가봤고, 미황사엔 작년 초여름에 처음 가봤는데 정말 거기서 며칠 묵었다 왔으면 싶은 생각이 간절할 만큼 인상이 깊었답니다.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꼭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에요.(제가 봤던 미황사와 보길도 모습은 이랬답니다. ☞ http://blog.aladin.co.kr/oren/6414874)

2014-03-21 00:37   좋아요 0 | URL
훗~! 다른 곳에서 옮겨온 글이었지요. 사진 없이도 걍~괘안길래 그대로 두웠던 건데... 수정했습니다.
사진이 특별히 느낌을 더 할 만큼은 아니어서...얼마전 다시 그곳엘 갔다왔는데... 느낌은 쩝~! 그랬어요.
언제나 같을 수는 없겠지요. 세상이 변하는데...고맙습니다^^

oren 2014-03-21 01:05   좋아요 0 | URL
사진을 제대로 살려주셨군요. 자그마한 사진들이지만 무척이나 인상깊은 사진들입니다. 산 님의 모습도 볼 수 있어서 더욱 반갑네요. 산 님께서 수고해 주신 덕분에 고맙게 잘 봤습니다.

저도 2008년 가을에 영월 법흥사에 들어가 며칠간 템플스테이를 경험해 본 적이 있는데, 산사에서 며칠 묵으며 스님들과 함께 생활했던 그 짧은 시간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추억이 되었답니다.
(http://blog.aladin.co.kr/oren/5354416)

 
아름다운 집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0
손석춘 지음 / 들녘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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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지는 달

    1945년 5월 21일 월요일

 

  지난 열흘 동안 이현상 동지와 더불어 지리산 남쪽을 다녀왔다. 장돌뱅이로 가장한 이 동지는 해남과 강진에서 조직을 추슬렸다. 언제 이곳까지 지하활동을 조직했을까. 내심 놀라기도 했고, 희망에 가득 차오르기도 했다. 이 동지는 일본의 패망이 눈앞에 닥쳤다며 마음의 준비는 물론 결정적 순간에 봉기할 채비를 갖추라고 당부했다.

  이 동지의 열정적인 활동을 수행하면서 점점 더 동지가 한없이 존경스러웠다. 하지만 내가 이 동지에게 매혹된 것은 단지 그의 빈틈 하나 없는 조직운동 때문만은 아니었다. 해남과 강진을 둘러보는 과정에서도 이 동지는 내게 영원과도 같은 감동의 순간들을 남겨주었다. 

  해남 달마산의 미황사에 들렀을 때다. 이 동지와 이미 면식이 있는 듯, 주지스님은 몹시 반갑게 맞았다. 달마산 정상에 올라 남해와 서해로 펼쳐진 바다를 보면서 이 동지는 아무 말 없이 그렇게 밤이 깊도록 앉아있었다. 엄숙한 자태 때문일까. 한마디도 말을 붙이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나도 그 침묵을 즐겼는지 모른다.

  이곳이 백두대간의 마지막 봉우리라는 사실, 그리고 조선의 땅끝으로 이어진 바다의 넉넉한 모습, 그 바다로 해가 지며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이던 저녁노을이 마음을 아늑하게 했다.

  별들이 빛나는 밤하늘을 보면서 3년 전 낙산사에서 보던 밤하늘의 슬픈 추억에 잠겨 있을 때였다. 이 동지가 갑자기 나직한 음성으로 내게 말했다.

  "동지, 저쪽을 보시오."

  이 동지가 바다 위에 낮게 걸려있는 달을 가리켰다. 그가 말을 이었다.

  "잘 보면 달이 조금씩 내려앉을 거요. 바다로 지는 달은 고혹적이오."

  그랬다. 미처 몰랐지만 달은 시나브로 바다를 향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이윽고 바다 수면에 다다르자 저녁노을과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났다. 달빛은 햇빛과 달리 그 스스로를 잃어가고 있었다. 노란빛이 점점 주홍빛으로 변하면서 이윽고 빨개졌다. 검은 밤하늘에 붉은 달은 참으로 고혹적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붉은 달은 밤하늘로, 밤바다로 갑자기 사라졌다.

 .......(중략~)

                       

                                        손석춘의 소설 <아름다운 집(들녘 刊)> -부분 발췌

 

 

  달마산에 가고 싶었다.

  2000년 땅 끝에서 처음으로 도보 여행을 시작했을 때, 나를 내내 따라오던 산.

  그리고 시나브로 바다를 향해 뚝뚝 떨어지는 달이라니....... 바다로 지는 달  보고 싶었다.

  그리움 깊어졌다.  

 

  칠월의 지나친 비와 팔월의 지독한 더위를 견딘 들판이 한없이 펼쳐진 풍경속으로 기차는 달려간다.

  겸손하고 부드러운 색깔이다.

  가을이다. 가을들판이다. 둥싯둥싯 정겨운 남도의 들이다.

  잊었다는 듯 배롱나무도 무심히 웃어준다.

  저 꽃 지면 쌀밥먹겠지.

  꽃, 지고있다.

  꽃 지기 전에 떠나와서 다행이라고 기차 지나가는 곳마다 나무도 나도 배시시 웃는다.

 

 

  쉿~!

  블로그에 걸어놓고 왔는데 미황사에서 기다리는 쉿, 한참을 멈춰서서 쉿,

  증축을 하는 공사소리도, 장난에 여념이 없는 아이들 소리도 쉿, 고요하다.

  너무 많은 말들과 생각속을 떠나온 모양이다.

  가끔은 마음도, 생각도, 관계들도 쉿~!

 

 

                                       

 

  오래 보아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 있다.

  오래 담아두어도 눅눅해지지 않는 마음이 있다.

  저 뜰에 서있는 해묵은 사람을 처음인 양 문득 돌아보았다.

  오래 본다.


 

  대웅전 마당에는 무뎌진 햇살만 가득하다.

  즐비한 요사채들, 바로 옆에서 한창 증축공사를 하고 있는데 보이지 않는 방음벽이라도 서있나,

  말랑말랑한 고요가 각을 세운 시선을 지그시 누른다.

 


 

  그런 저녁이 온다.

  바다로 지는 해를 본다.

  달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은 윤 칠월 스무하루....... 바다로 지는 달은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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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
님 웨일즈.김산 지음, 송영인 옮김 / 동녘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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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전 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또한 우리나라의 역사도 실패의 역사였다. 나는 단 하나에 대해서만 -내 자신에 대해서만- 승리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계속 전진할 수 있다는 자신을 얻는 데는 이 하나의 작은 승리만으로도 충분하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경험했던 비극과 실패는 나를 파멸시킨 것이 아니라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에게는 환상이라는 것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렇지만 나는 사람에 대한 신뢰와 역사를 창조하는 인간의 능력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고 있다. 역사의 의지를 알 사람은 누구일까?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폭력을 뒤엎지 않으면 안 되는 피억압자뿐이다. 패배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사람, 일체의 새로운 세계를 최후의 전투에서 얻기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뿐이다. 억압은 고통이요, 고통은 의식이다. 의식은 운동을 의미한다. 인간 그 자체가 다시 태어날 수 있으려면 수백만이란 사람이 죽어야 하고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고통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이 객관적인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유혈과 죽음의 광경, 그리고 어리석음과 실패의 광경은 더 이상 미래에 대한 나의 통찰력을 가로막지 않는다.

  인류 역사의 전통은 민주주의적이요, 이 전통은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천부의 권리이다. 그러나 이 천부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람들한테서 그것을 도둑질해 가는 자도 있다. 물은 사람을 빠뜨려 죽이기도 하고 구해주기도 한다. 오늘날 인간사회는 고요한 마을 연못이 아니라 성난 홍수이다. 사람은 반드시 헤엄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14살 때부터 지금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나는 결코 물에서 떠나본 적이 없다. 나는 몇 차례나 스스로를 포기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파괴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단 하나 뿐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민중과의 계급관계를 유지하는 것. 왜냐하면 민중의 의지는 역사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민중은 깊고 어두우며 행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단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는 소곤거리는 소리와 침묵의 웅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개개인과 집단들은 큰소리로 고함을 지른다. 그리하여 그 때문에 큰 혼란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진실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되는 것이지 큰소리로 이야기되는 것이 아니다. 민중들이 이 목소리를 들을 때, 그들은 손에 총을 잡는다. 마을 노파 한 사람의 긴박한 속삭임만으로도 충분하다. 진정한 지도력은 날카로운 귀와 신중한 입을 필요로 한다. 민중의 의지에 따르는 것만이 승리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중략)

  비극은 인생의 한 부분이다. 억압을 딛고 일어서는 것은 한 인간의 영광이요, 굴복하는 것은 한 인간의 수치이다. 내게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제국주의전쟁 속에서 자신들의 생명을 맹목적으로 포기하는 모습을 본다는 것이 비극이다. 그것은 낭비인 것이다. 사람들이 서로를 억누르는 데 이용당하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은 내게는 비극이다. 그것은 어리석음이다. 자유를 위하여 그리고 자기들이 믿고 있는 것을 위하여 싸우다 의식적으로 죽는 것은 비극이 아니다. 그것은 영광이요 장렬함인 것이다. 죽음은 선도 아니요 악도 아니다. 또한 죽음은 무익한 것도 아니요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다. 스스로 믿고 있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자발적으로 싸우다 죽는 것은 행복한 죽음인 것이다. 나는 너무나 많은   인명의 낭비를 보아왔으며 결국은 실패로 끝나고 마는 쓸데없는 희생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그래서 나의 경우에는 이것을 철학적으로 시인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한 가지만은 늘 기억하고 있다. 혁명가들은 자기의 희생 속에서 행복하게 죽어가는 것이요, 그것이 무익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행복은 다른 사람의 슬픔이다. 나는 거기에 대해서는 어떠한 권리도 요구하지 않는다.

  내 청년시절의 친구나 동지들은 거의 모두가 죽었다. 민족주의자, 기독교신자, 무정부주의자, 테러리스트, 공산주의자 등등 수백 명에 이른다. 그러나 내게는 그들이 지금도 살아 있다. 그들의 무덤을 어디로 정해야 하는지 따위는 전혀 마음에 두지 않는다. 전장에서, 사형장에서, 도시와 마을의 거리거리에서, 그들의 뜨거운 혁명적 선혈은 조선, 만주, 시베리아, 일본, 중국의 대지 속으로 자랑스럽게 흘러들어갔다. 그들은 눈앞의 승리를 보는 데는 실패했지만 역사는 그들을 승리자로 만든다. 한 사람의 이름이나 짧은 꿈은 그 뼈와 함께 묻힐지도 모른다. 그러나 힘의 마지막 저울 속에서는 그가 이루었거나 실패한 것이 단 한 가지도 없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그의 불사성(不死性)이며, 그의 영광 또는 수치인 것이다. 자기 자신이라 할지라도 이 객관적 사실은 바꿀 수가 없다. 그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 무엇도 사람이 역사라고 하는 운동 속에서 점하는 자리를 빼앗을 수가 없다. 그 무엇도 사람을 빠져나가게 할 수가 없다. 유일한 그의 개인적 결정이라고는 전진할 것인가 아니면 후퇴할 것인가, 싸울 것인가 아니면 굴복할 것인가, 가치를 창조할 것인가 아니면 파괴할 것인가, 강해질 것인가 아니면 나약해질 것인가 하는 것밖에 없다.”

 

  ‘아리랑’의 결말에 해당하는 이 부분 몇 페이지를 몇 번이고 읽으면서 한 혁명가의 웅변에 숙연해진다. 읽을 때마다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사람을 향한 신뢰가 저토록 확고하게 읽히는 문장들이 뒤에서 따라오는 어떤 걸음처럼 거칠고도 뚜벅뚜벅 집요하다. 오래토록 따라올 발자국소리다. 고개를 돌리면 확신에 차있는 결연한 그 눈빛에 마음까지 읽힐 것만 같아 허둥지둥 내 걸음은 서툴고 두렵다. 이 피둥피둥한 세월이 미안하다.

  “김산(본명 장지락)”

  왜 그를 이제야 알게 된 것일까? 그에게도, 그와 그의 동지들이 온 몸으로 살아냈던 시절의 역사에게도, 내가 그동안 배워 온 역사에게도 안타깝고 죄스럽다.

  그동안 무엇을 배운 것일까? 그동안 무엇을 읽은 것일까? 우리의 역사는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친 것인가? 먹먹하게 아프다.

  역사는 결국 사람의 역사인 것을.

  실패한 역사도 역사인 것을.

  그들을 승리자로 만들지도 못하고 잃어버린 우리의 역사는 대체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 싶어 부끄럽다. 우리의 혁명가 한 사람도 제대로 바로보지 못했으면서 로마인 이야기에 코를 박고 감탄해온 내 얄팍한 앎이 두고두고 부끄러운 것이다.

  

 “그들은 눈앞의 승리를 보는 데는 실패했지만 역사는 그들을 승리자로 만든다. 한 사람의 이름이나 짧은 꿈은 그 뼈와 함께 묻힐지도 모른다. 그러나 힘의 마지막 저울 속에서는 그가 이루었거나 실패한 것이 단 한 가지도 없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그의 불사성(不死性)이며, 그의 영광 또는 수치인 것이다. 자기 자신이라 할지라도 이 객관적 사실은 바꿀 수가 없다. 그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 무엇도 사람이 역사라고 하는 운동 속에서 점하는 자리를 빼앗을 수가 없다. 그 무엇도 사람을 빠져나가게 할 수가 없다.”

 

  일제 강점기 식민지 조선의 청년이 고뇌와 투쟁을 통해 조선인 혁명가로 거듭나는 삶을 님 웨일즈의 기록으로 만나는 그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대답하는 혁명가의 모습을 지금 이 시대의 어떤 명망 있는 지도자에게서도 볼 수가 없다는 애석함에 그가 더욱 매력적으로 보인다.

  사람을 향한 뜨거운 신뢰와 애정, 끊임없는 독서와 성찰, 빠른 결단과 행동, 톨스토이를 향한 애정, 잭 런던의 평가, 업튼 싱클레어에 대한 견해, 등등....... 한 마디로 으악! 이다. 생존이 곧 투쟁일 아비규환의 전쟁터에서, 그것도 존재의미도 미미해질 이국의 땅에서, 이 혁명가의 자신만만한 태도는 한결같은 자세로 생을 꿋꿋이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리라.

  아리랑을 읽는 내내 그 후 시대를 산 위화의 산문집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내용들이 마구 떠다녔다. 열 개의 단어로 본 중국인의 초상이, 마오의 사상이, 문화 대혁명 시절의 인민들의 삶이, 또한 루쉰의 글들도. 한편으로는 그 당시의 동아시아의 역사를 한 조선인 혁명가의 시선으로 투쟁의 기록으로 읽어나가는 일은 자부심이었다가 부끄러움이었다가 안타까움이었다가 분노였다가 다시 무기력함까지....... 결국은 우리 내면의 역사를 바라보는 일이 되었다. 그는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 생각들을 행동으로 실천했는데, 우리는 거기서 한발도 더 나아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두워진다.

  그래도, 그래도 그런 혁명가를 가진 우리의 역사를, 우리에게도 이념이나 권력에 굴복하지 않은 멋진 ‘체’가 있음이 자랑스럽다.

 

 

  “내 전 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또한 우리나라의 역사도 실패의 역사였다. 나는 단 하나에 대해서만 -내 자신에 대해서만- 승리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계속 전진할 수 있다는 자신을 얻는 데는 이 하나의 작은 승리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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