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잔칫날처럼 - 고은 대표시선집
고은 지음, 백낙청 외 엮음 / 창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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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은

 

비록 우리가 몇가지 가진 것 없어도

바람 한점 없이

지는 나무 잎새의 모습 바라볼 일이다.

또한 바람 일어나서

흐득흐득 지는 잎새의 소리 들을 일이다.

우리가 기역 니은 아는 것 없어도

물이 왔다가 가는

저 오랜 고군산(古群山) 썰물 때에 남아 있을 일이다.

젊은 아내여

여기서 사는 동안

우리가 무엇을 다 가지겠는가

또 무엇을 생이지지(生而知之)로 안다 하겠는가.

잎새 나서 지고 물도 차면 기우므로

우리도 그것들이 우리 따르듯 따라서

무정(無情)한 것 아닌 몸으로 살다 갈 일이다.

        

                           고은 시선집 [마치 잔칫날처럼] 중에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슬퍼하지 말라’로 기억되는 푸쉬킨의 시를 떠올리게 되는데

아주 오래 된 고은선생의 시집에서 이 시, ‘삶’을 읽던 때를 기억합니다. 가난한 시절이어서 그랬을까요?

설움이 투두둑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지요.

생이지지(生而知之),

태어날 때부터 알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슬프게도 곤이지지(困而知之),

곤경을 겪고 나서야 깨닫는 능력은 가졌습니다.ㅠ,ㅠ

‘여기서 사는 동안 우리가 무엇을 다 가지겠는가’

여운 진한 이 구절처럼......

아픈 시절, 많은 사람들이 떠난 오월,

시 한편의 위로를 ** 농원에서 당신께 보냅니다.

부디, 부디~ 여여 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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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0 21: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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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1 0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별 하나
                        도종환

흐린 차창 밖으로 별 하나가 따라온다
참 오래되었다 저 별이 내 주위를 맴돈 지
돌아보면 문득 저 별이 있다
내가 별을 떠날 때가 있어도
별은 나를 떠나지 않는다
나도 누군가에게 저 별처럼 있고 싶다
상처받고 돌아오는 밤길
돌아보면 문득 거기 있는 별 하나
괜찮다고 나는 네 편이라고
이마를 씻어주는 별 하나
이만치의 거리에서 손 흔들어주는
따뜻한 눈빛으로 있고 싶다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중에서

 

          

 

비 오시는 밤,
엄마 기일이 지나가는 밤,
마지막으로 엄마의 이마를 쓸어 내렸던
촉감을 소스라치게 기억 하는 밤,
이 시각에도 가슴에 짜락짜락 비가 내리고 있을 이들을 생각하는 밤,
심한 목감기에 이틀째 말문을 닫아 걸고
묵언정진 하는 밤,
'나는 세상으로 돌아가 다시 내 인생을 상대할 수 있을까.
어떤 목소리가 답해왔다.
죽는 날까지.'

라고 작가 정유정은 히말라야 환상방황에서

 


내 심장을 쏴라 속 승민의 목소리로 쓰고있다.
죽는 날까지.
.......
죽는 날까지.
.......
엄마가 가신 나이에서 십년을 남겨두고 있구나.
오늘은 이 책을 다 읽어야 잠들겠구나.
히말라야를 그녀를 따라 걷는다.
고산병에 시달리면서
이 악물고 통증을 감내하면서.
잔인한 사월이
아픈 사월이
이렇게 가고 있다.
눈물이 비 되어 내리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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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놓치다 애지시선 6
손세실리아 지음 / 애지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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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 삶아 건진 수육과 탁주 한 말 마을회관에 들이던 날 필시 입막음용일 게라고 사람들은 속닥거렸다 집주인 박목수가 전기세 물세 똥세를 터무니없이 물려도 조목조목 셈하지 못했고 깔깔이 맞춤 원피스 품이 솔거나 장날 산 태양초에 희나리가 근 반쯤 섞여 있어도 첫 휴가 나왔다가 귀대 날짜를 넘겨버린 외아들을 고발할까 두려워 따지지 못했다 방범대원 호각소리 유난히 긴 밤이었던가 잔술 팔아 모은 뭉칫돈 쥐어주며 빌어먹더라도 대처로 나가라고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느냐고 순경한테 붙잡히면 끝장이니 시비 거는 놈 있거든 무조건 져주고 파출소나 검문소 근처는 행여 얼씬거리지도 말라고 하루를 살더라도 사람같이 살아보라고 등 떠밀고 돌아와 그 길로 곧장 박목수 멱살 잡아 공과금 되돌려 받고 실밥 터진 원피스 다시 재단시키고 시장통 어귀에 희나리자루 패대기쳤다 그러고도 분이 안 풀려 밤새 막걸리 독 바닥내던 어머니, 이 말을 끝으로 정신을 놓고 말았다

  오살헐 놈!

 

                                                           손 세실리아 [세상에서 가장 슬픈 욕- 전문]

 

    이 시를 읽으면, 눈물이 난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욕을, 그런 욕조차 뱉지 못했던 시절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시를 읽고서야 떠올렸기 때문이다. 기억에서조차 몰아내고 싶던 무지막지한 절망, 꺼낼 수 없었던, 결코 꺼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던 시절을 시인은 토로하고 있는 것인데 그 절절한 마음이 짚어져서 눈물이 먼저 난다. 나는 아직 단단해지지 못한 것이다. 집에서 출, 퇴근‘방위’로 국방의 의무를 이행 중이던 성실하기 짝이 없는 오빠가 탈영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을 때, 몇 달 돈 벌어 엄마 준 다음에 다시 복무할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계획으로 감행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몇 달 뒤 자수하고 교도소에 수감된 오빠를 엄마모시고 면회하러 가던 날의 참혹함을 나는 아직 풀어 놓지 못한다. 병역을 마치고 장삼이사로 사는 오빠도 애써 잊은 기억일 것이다. 또 엄마 떠난 이후, 서른에 세상을 떠난 오빠를 면회 가던 광주 교도소 가는 길, 세상에서 그렇게 먼 길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꺾이는 무릎을 곧추세우면서 기대오던 엄마가 혼잣말처럼 내뱉던 ‘이 오살헐 놈의 시상!’ 만이 귀에 쟁쟁하다. 오살헐 놈! 절대 입 밖으로 토해 내고 싶지 않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욕이다.

 

시집 [기차를 놓치다] 리뷰에서 썼던 글이다.

 

 

 

 

 

 

 

 

 

 

그의 서른의 생일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난 며칠 후, 그의 사고 소식을 듣던 날의 아침도 이렇게 차고 맑았다.

꽃들은 피었었을까.

기억이 없다.

팔십 오년의 시작과 함께 들려온 부음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인 두 달 만에 접한 참담한 소식에

정녕 꿈일 거라고,

꿈이었으면 싶었던 아득하게 먼 두 시간의 길.

그래서 그는 그렇게 섧게 울었던 것인가.

누구보다도 서럽게 고개를 꺾으며 꺽꺽 울던 그의 울음이 아직 귓전에 있는데,

그가 가다니.

도망치고 싶었지만 차마 도망치지 못하고 들어선 병원 영안실.

춥다.

 몇 년 후 느낀 죽음의 모습은 추위였다.

죽음의 기억은

기억만으로도 여전히 뼈가 시리다.

그때도 추웠다.

섬뜩한 한기에 딛는 걸음은 걸음마다 허방이어서 황망했다.

입구에서부터 들려오는 작은 언니의 애가 끓는 울음소리,

천 갈래 만 갈래 찢어 놓았다.

더 먼 길을 눈물 바람으로 들어서는 큰언니는 영정 앞에서 혼절했다.

우리는 복받치는 설움에 무너졌다.

가난에

거듭되는 광폭한 재앙에 한 뜻으로 한 맘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이십 구년.

벌써 그렇게 되어 버렸구나.

병아리 닮은 노란 스웨터를 사들고 왔고 한 타스의 연필,

보기만으로도 배부른 공책들을 처음으로 선물로 안겨 주던 그.

겨우 다섯 살이 많았을 뿐인데

어릴 때 그는 엄청 어른이었다.

그렇게 어른이고 싶어 했고,

얼른 어른이 되어서 돈을 벌고 어디로든 자유롭게 가고 싶어 하던 그가

영영 자유롭게 떠나 버린,

오늘 그의 기일이다.

그리운 오빠.

.......

언제나 서른의 젊은 작은 오빠.

불러본지 오래 된 귀안 오빠.

강. 귀. 안 (姜貴安)

내가 욕심내던 미색 재킷에 흰 바지를 입은 채

그쪽 세상에서도 부지런히 어딘가를 돌아다니고 있겠지.

어질어질하게 찬란한 봄.

그래도 우리는 살아있다.

떠나버린 사람들이 그리운 봄밤이다.

                                             2014.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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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88
박남준 지음 / 실천문학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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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봄 편지

                            박남준

 

  밤새 더듬더듬 엎드려

  어쩌면 그렇게도 곱게 썼을까

  아장아장 걸어 나온

  아침 아기 이파리

  우표도 붙이지 않고

  나무들이 띄운

  연둣빛 봄 편지

                                 시집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중에서

 

 

        

 

 

당신,

제가 보낸 봄 편지 받으셨는지요.

버드나무 머릿결을 닮은 바로 그 편지요.

안 받으셨다고,

에이~ 그럴 리가, 요.

틀림없이 보냈는데.......

아, 주먹을 꼭 쥐고 나온 아기 이파리들이

제가 당신한테 보낸 생명의 찬가요,

봄의 예찬인 편지였는데,

모르시는 당신 섭섭하네요.

무정한 당신,

행여 오며가며 지나는 길에

연둣빛 새 잎을 보거든

연두,

연두,

세상이 온통 연두인

찬란한 이 봄에 ‘당신, 사랑합니다.’ 라고 적은

제가 보낸 편지인줄 아셔요.

꼭이요~ ^_^::

꽃은 놔두고 연두만 보아도 마음까지 봄물 차오르는

환장하게 아름다워서 사무치는 봄밤,

당신이 많이 그립습니다.

라고 편지를 쓰고 싶네요.

꽃,

피어나는 이 밤

꿈도 없이 ​

잘자요.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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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과 사귀다 문예중앙시선 12
이영광 지음 / 문예중앙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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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본
                    이영광

평안하다는 서신, 받았습니다
평안했습니다

아침이 너무 오래 저 홀로 깊은
동구까지 느리게 걸어갔습니다
앞강은 겨울이 짙어 단식처럼 수척하고
가슴뼈를 단단히 여미고 있습니다

마르고 맑고 먼 빛들이 와서 한데
어룽거립니다
당신의 부재가 억새를 흔들고
당신의 부재가 억새를 일으켜 세우며
강심으로 차게 미끄러져갔습니다

이대로도 좋은데, 이대로도 좋은
나의 평안을
당신의 평안이 흔들어
한 겹 살얼음이 깔립니다

아득한 수면 위로
깨뜨릴 수 없는 금이 새로 납니다
물 밑으로 흘러왔다
물 밑으로 돌아가는 뒷모습
흰 푸른 가슴뼈에
탁본하듯

                                  시집[그늘과 사귀다]중에서

 

 

                            

 

 

 이영광시인의 신작시집 [나무는 간다]를 읽다가
옛시집을 뒤적거린다.
 '흰 푸른 가슴뼈에 탁본하듯 ' 박혀온 시......
시,
시,
 시들이 풍경처럼 댕강댕강 울려댄다.
바람이 불고 흙비가 쏟아졌다 개었다 하는 2014. 3. 20.
조퇴하고 테니스엘보에 주사맞고 물리치료 하는 긴 시간,
나는 이영광, 그와 사귀었다.
날 선 그가, 그의 시가 좋구나!
이렇게 삼월, 지나간다.
한 세상, 봄이다.
아직 매화도 산수유도 만나지 못했어도 봄이다.
화안한 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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