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들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12월
평점 :
품절


 

  오후 네시의 적막 속에 앉아 당신을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헤어지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달걀처럼 따뜻하고 매끈한 당신의 이마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당신의 이마를 볼 때마다 나는 이상한 안도감에 젖어 있곤 했습니다. 그리고 또 불가해한 당신의 그 뒷모습. 아무리 가까이 다가가도 만져지지 않던 그 완강한 존재감. 부동의 한 존재를 그처럼 뒤에서 눈여겨보며 나는 어느덧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제 내가 마음에 품고있던 영상들을 대개 다 당신에게 투영된 다음이고 이제 남은 것은 곧 꺼져버릴지도 모를 나에 대한 희미한 존재감뿐입니다. 우리는 서로 익숙해지기 위해 만나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더군다나 안심하기 위하여 만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항상 다투고 있어야만 하고 더이상 싸움을 하고 싶지 않다면 한번쯤 떠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중략)
  세상의 모든 아침이 날마다 그대 이마에 깃들이기를 바라며
  세월 총총
 
                                                                   -윤대녕 산문집 [그녀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들 (문학동네)]-중에서
 
 
윤대녕; 1962년 충남 예산 출생. 1990년 [문학사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
소설집 [은어낚시통신] [남쪽 계단을 보라] [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갔다] 와
장편소설 [옛날 영화를 보러갔다] [추억의 아주 먼 곳] [달의 지평선] [코카콜라 애인] 등이 있으며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수상

 

 

         

 

 

입춘, 보옴이 창밖까지 달려온 듯한 날씨였다.

책을 정리하다가 과감하게 (진짜 눈 딱 감았다) 책꽂이 두 칸쯤 책을 버렸다.

그렇지만 결국 한참 세월이 지난 문예지들만 세 박스다.

윤대녕의 책을 스스르 열어보았더니

저 대목에 밑줄 쫙이다.

오래 전, 저 문장들에 가슴 서늘했을까? 

기억이 없다.

시간이 지나면 담담해지는 것들..... 뭐가 또 있을까?

이별도 그런 것들 중의 하나겠지.

 

가산마을에서 하는 마지막 포스팅이다.

스스로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일^^

김장을 마친 밭에 여름 내 우리 입을 즐겁게 해주던 상추들이 오소소 돋아있었다.

연록의 여린 잎들 앞에서 무슨 말이 필요하랴.

생명이란 그런 것임을.

저절로 자란난 것들은 몸으로 보여준다.

용량이 모자란다고 사진이 더 이상 안 올라간다. -,.-

 

잘가라, 한 시절이여.

이제 마흔 다섯의 봄을 맞을 것이다.

 

2007.2.4 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적막 창비시선 256
박남준 지음 / 창비 / 200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적막

 

                                            박남준

 

 

눈 덮인 숲에 있었다

어쩔 수 없구나 겨울을 건너는 몸이 자꾸 주저앉는다

대체로 눈에 쌓인 겨울 속에서는

땅을 치고도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묵묵히 견뎌내는 것

어쩌자고 나는 쪽문의 창을 다시 내달았을까

오늘도 안으로 밖으로 잠긴 마음이 작은 창에 머문다

딱새 한 마리가 긴 무료를 뚫고 기웃거렸으며

한쪽 발목이 잘린 고양이가 눈을 마주치며 뒤돌아갔다

한쪽으로만 발자국을 찍으며 나 또한 어느 눈길 속을 떠돈다

흰빛에 갇힌 것들

언제나 길은 세상의 모든 곳으로 이어져왔으나

들끓는 길 밖에 몸을 부린 지 오래

쪽문의 창에 비틀거리듯 해가 지고 있다 

                                                                             

                                                                       -시집 [적막 (창비)] 중에서-

 

 

박남준; 전남 법성포출생. 1984년 [시인]으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세상의 길가에 나무가 되어] [풀여치의 노래]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적막]

산문집 [작고 가벼워질 때까지] [꽃이 진다 꽃이 핀다] 등이 있음.


         

 

이만 두고 가기로 한다.
조금 더, 조금 더
미뤄둔
창을 두고 가는 일
더는
욕심부리지 않기로 한다.
기름이 떨어진지 오래인 노숙의 잠깐 잠깐 머뭄도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언제나 길은 세상의 모든 곳으로 이어져 왔으나
들끓는 길에 몸을 부린 지 오래
쪽문의 창에 비틀거리듯 해가 지고 있다'
 
2007, 2, 2 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여자 이발사 창해 맑은내 소설선 11
전성태 지음 / 창해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또 하나는 내 영혼에 대한 정직함이야. 내가 그걸 잃어버렸다면 이 나라에도 오지 않았을거며, 너도 낳지 않았겠지. 넌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나약한 사람이 아니란다. 물론 나도 미워하고 원망하는 사람들이 많아. 난 그사람들을 매일 생각하고 또 생각한단다. 나를 왜 버렸을까? 나를 왜 배신했을까? 나에게 왜 그리 가혹했을까? 그래도 사랑의 순간에는 진실이 있었을 거야. 그것을 망각하니까 배신하고 상처도 줬겠지. 엄마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굽이굽이마다 망각할 만한게 별로 없었어. 그 기억을 다 담아둬야 하니 견딜수가 없지. 운명이라는 게 다 내것이 아니었어. 단 하나 내 것인 것은 내 영혼의 자율성이야. 너처럼 세상이 날부도덕하다고 말하겠지. 그러나 세상의 많은 도덕은 인간의 영혼을 지키려고 태어났어. 그런데 의외로 영혼을 상실한 게 많단다. 도덕이 영혼의 세계에 있지 않고 정치적 도구로 추락해 버렸어. 세상에 진정한 도덕이 있다면 나의 삶이 이랬을까? 누가 누구를 지배하고 누가 누구를 치고 그랬을까? 제 상처만 들여다보면 영혼이 죽게 돼. 또 남의 상처만 바라보면 역시 영혼이 죽게 돼"

 

                                                                             -전성태의 [여자 이발사] 중에서 (창해)-

 

프로필; 전남 고흥 출생. 1994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매향梅香] [국경을 넘는 일].

             장편소설 [여자 이발사]. 신동엽창작상 수상.

 

 

 겨우내 꽤 여러 편의 소설집, 장편 소설들을 읽어치웠다. (이렇게 쓰고 나니 벌써 겨울이 다 지나간 듯한 느낌이 나고, 굉장히 열심히 책을 읽은 것 같지만 겨울이 다 지난 것이 아닌 것처럼 꼭 그렇지는 않다^^)

 비교 대상들이 되지는 않지만 가을 끝 무렵에 읽은 '여자 이발사'가 준 읽은 이의 행복감을 뛰어 넘은 책은 없었다.  오랫만에 다 읽어가는 것이 아까운 책을 만났던 것이다. 아직 책을 뒤적여도 저릿저릿함이 살아나는 페이지들이 있다. 이런 책을 읽을 때 독자로서 행복하다. 그동안 단편에서 보여준 긴장감이 장편에도 파닥파닥 살아있는 것이 좋았다. 꼭 이런 책은, 이런 행복한 느낌은 반드시 나눠야 한다. ㅋㅋ

  이스마엘 카다레의 [부서진 사월]도 좋았다. 성석제의 [참말로 좋은 날]은 지금까지의 그와 다르긴했지만 실망시키지는 않았다.

  또 뭐가 있었을까? 김언수의 [캐비닛]은 황당하면서 독특했지만 나에겐 어느덧 지루했고, 정이헌의 [달콤한 나의 도시]는 그녀의 단편들에 비해 달콤하지 않았지만 나름 재미는 있었으니 대중적인 소설이 될 듯 싶다. 강기희의 [개 같은 인생들]은 나쁘지 않았고, 조정래의 [인간 연습]은 지난 번에 거론했으니 통과, 또 사서 읽은 것이 아까웠던 책도 몇 권 있지만 견해가 다를 수 있으니 그것도 통과. 아, 한창훈의 [세상의 끝으로 간 사람]은 좀 달랐다. 그의 근래의 작들에 비해 부드럽고 섬세했지만 그의 다음 작품들 [홍합] [청춘가를 불러다오]가 훨씬 좋았다는 것을 역으로 알게 되었다. 겨울에는 비릿한 [홍합] 같은 장편이 읽고 싶어지는데... 

  다시 읽은 이태준의 [까마귀]와 밀란 쿤데라의 [농담]은 위로가 되어주었다. 지금 읽고 있는 현대문학상 수상집 [전기수 이야기]도 아직까지는 좋다. 근래들어서 나름 꽤 충실하게 소설들을 읽고 있는 편이다. 스스로 대견해 하면서 뿌듯~

 

  잠이 올 것 같지 않은 밤이라면 엎드려서 읽기 좋은 책 [여자 이발사]를 읽어보시길. 소감을 듣고 싶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이 짧은 시간 동안 창비시선 235
정호승 지음 / 창비 / 200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에게



나의 눈물에는 왜 독이 들어 있는가

봄이 오면 봄비가 고여 있고

겨울이 오면 눈 녹은 맑은 물이

가득 고여 있는 줄 알았더니

왜 나의 눈물에는 푸른 독이 들어 있는가

마음에 품는 것마다

다 독이 되던 시절이 있었으나

사랑이여

나는 이제 나의 눈물에 독이 없기를 바란다

더 이상 나의 눈물이

당신의 눈물을 해치지 않기를 바란다

독극물이 든 검은 가방을 들고

가로등 불빛에 길게 그림자를 남기며

더 이상 당신 집 앞을

서성거리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살아간다는 일은 독을 버리는 일

그동안 나도 모르게 쌓여만 가던 독을 버리는 일

버리고 나서 또 버리는 일

눈물을 흘리며

해독의 시간을 맞이하는 일



                            정호승 < 시집 ‘이 짧은 시간 동안 -창비-’ 중에서>


 

 

꽉 막힌 코를 하도 풀었더니 이제 자동으로 줄줄이다.

코를 풀면 눈물이 묻어난다.

독이 묻어난다.

풀어도 풀어도 코 속이 가득하다.

毒이 가득하다.

언제쯤이면 毒을 버릴 수 있을까?

버리고 싶다.

더 이상 나의 눈물이 그 무엇도 해치지 않기를 바란다.

간절하다.

 

시월,

지는 해는 징허게 아름답다.

다시 코를 푼다.

毒을 풀어낸다.

 

다시 하루가 간다.

이천오년 시월 십육일이 가고있다.

살아간다는 일은 독을 버리는 일

.

.

.

끄덕 끄덕!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기차를 놓치다 애지시선 6
손세실리아 지음 / 애지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얼음 호수

               손세실리아          현대시학 2005년 6월호


제 몸의 구멍이란 구멍 차례로 틀어막고

생각까지도 죄다 걸어 닫더니만 결국

자신을 송두리째 염해버린 호수를 본다

일점 흔들림 없다 요지부동이다

살아온 날들 돌아보니 온통 소요다

중간중간 위태롭기도 했다

여기 이르는 동안 단 한번이라도

세상으로부터 나를

완벽히 封해 본 적 있던가

한 사나흘 죽어본 적 있던가

없다, 아무래도 엄살이 심했다



물의 침묵


                이 규리          詩評 2005년 가을호


  물에도 길이 있고 눈이 있고 구멍이 있다. 물이 몸인 까닭이다. 몸을 지닌 물은 몸짓으로 말을 대신한다. 때때로 속삭이는가하면 크게 고함치기도 하고 다정한가 하면 완고하게 말문을 닫기도 한다.

  지난 겨울, 나는 여러 차례 금호강가에 내려갔었다. 물은 몸이 아주 차가워져 있었고 내심 뭔가에 골똘해 있었다. 그렇게 몸이 차가와진 물은 어떤 사유에 닿아 있는지 좀체 기척을 내지 않더니 어느 날 급기야 말문을 닫아버렸다. 투명한 비닐 랩을 척 덮어놓은 듯한 강은 일거에 스스로의 몸을 닫아걸고 묵언정진하는 구도자의 모습으로 돌아앉아버렸다.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차라리 나는 강물의 침묵하는 소리를 듣고자 했다. 침묵이란 말없음이 아니라 고요함이다. 그리고 소리내며 흐를 때 보지 못했던 물의 또 다른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손세실리아 시인의 ‘얼음 호수’를 읽으며 지난 겨울 얼어버린 강과 그 강 앞에서 느꼈던 차디찬 단절의 의미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윽하게 아름다웠던 고용의 기운에 대한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제 몸의 구멍이란 구멍 차례로 틀어막고

             생각까지도 죄다 걸어 닫더니만 결국

             자신을 송두리째 염해버린 호수를 본다

             일점 흔들림 없다 요지부동이다



  몸과 호수, 소요와 침묵의 관계가 화자와 대상과의 거리 내에서 사유되고 있는 시이다. 즉, 물이 얼음이란 장치를 가지자 그것이 하나의 경계가 되었고 경계에서 바라보는 삶과 죽음의 거리, 혹은 소요와 침묵의 관계를 잘 나타내고 있다.

  구멍이 기능하는 몸이란 살아있는 몸이다. 구멍은 호흡하며, 공급하며, 배출하며, 바깥과의 소통으로 삶을 지속한다. 몸으로서의 구멍의 역할은 죄다 “틀어막고","생각까지 걸어 닫”고 “자신을 송두리째 염해버”렸지만 화자는 지금껏 소요뿐이었던 자신의 삶을 성찰해보는 것이다. 여기서 ‘염’하다와 뒤에 나오는‘封’하다란 말이 좋은 짝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염’하다를 한자어 [殮]로 썼더라면, 아니면 뒤에 올‘封’해를 한글로 썼다면 통일성을 줄 수도 있었겠다.)

  염이란 죽은 이의 몸을 씻은 다음 온몸의 구멍을 막고 수의를 입혀 염포로 묶는 일, 즉 염습이라고 하는 이것은 죽음의 의식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의 의미는 죽음보다는 일체의 세상일로부터 분리되어 소요한 세상을 잠시 떠나 보고자하는 의미로 작용한다. ‘殮’해 버린 정도의 고립, 단절 속에서 시인이 찾고자 한 것은 침묵에 이르는 고요가 아닐까. 시인이 스스로 ‘시인의 시화(詩話)’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자신의 안에 자신의 호수를 지니고 호숫가를 산책하는 이가 차는 것은 고요일시 분명하다.

  언어를 발견하는 것은 언어 속이 아니며 침묵을 발견하는 것은 침묵 속이 아니다. 바꾸어 말하면 언어를 발견하는 일은 침묵속이며, 침묵을 발견하는 일은 언어 속이라는 가정은 매우 타당하다. 앞서 이야기한 얼어버린 강이 물 속에서 얼마나 많은 언어를 감추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얼어버린 강은 죽음의 강이 아니라 휴면의 강이다. 강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생명체가 꿈틀거리고 있으며 작은 물고기들과 물이끼며 플랑크톤이 살아있다. 호수 역시 마찬가지다. 시인이 얼어붙은 호수에서 발견한 언어는 온통 소요 속에서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한 발견이며 그 발견이 곧 언어의 발견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여기 이르는 동안 단 한번이라도

             세상으로부터 나를

             완벽히 封해 본 적 있던가

             한 사나흘 죽어본 적 있던가

             없다, 아무래도 엄살이 심했다


  얼음이라는 장치, 얼음이라는 장애물로 인하여 시인은 하나의 경계에 눈 뜬다. 그리하여 시인은 세상과의 거리를 가지며 그 거리로서 자신과 삶을 객관화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을 ‘봉(封)’해 봄으로써 대상을 더 잘 볼 수 있으며 자신마저도 더 잘 보게 된다. 따라서 ‘封’한다는 숨은 의미는 ‘개봉(開封)’ 한다는 것이며 나아가 자신마저도 열어둘 수 있다는 변증법적 결과에 도달한다. 수도자들이 ‘동안거 하안거(冬安居, 夏安居)’에 드는 것도 일정한 거리 바깥에서 자신과 세상과 삶의 이치를 보고자 하는 수행 방법에 다름 아니다.

  “사나흘”이라는 말이 아무래도 시를 좀 상투적으로 하고 있다. 자신을 ‘봉(封)’해버리는 일이나 살아온 날들의 소요를 절감하는 성찰의 언어로 보면 그러하다. 더구나 “완벽히 봉(封)”하는 과정의 기간으로서 상정한 “한 사나흘”은 사고의 의심을 불러오게 한다. 물론 사나흘 아니라 단 서너 시간도 죽어볼 수 없는 게 사람의 일이지만 사유의 타성적인 습관이 “한 사나흘”에 이어진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행, 첫 단어 “없다”는 중복된 설명에 불과하며 화자의 의도를 너무 직접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엄살이 심했다”라는 마지막 문장이 이 시의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있으며 돌연 독자의 주의를 환기하고 있다. 애매성의 입장에서 다의적 해석을 요하기도 하는데, 지금까지의 관념적이고 사유적인 분위기를 아무것도 아니게 정말 ‘엄살’처럼 만들어버리는 것일 수도 있고, ‘염’하고 ‘봉(封)’한데 이어 죽음 운운하는 화자 스스로의 삶에 대한 쓴웃음일 수도 있겠다.

  호수나 강은 얼었다 녹는 일은 반복할 테고 침묵이나 소요도 결국 삶이 지속되는 동안 반복될 것임에 분명하다. 그 과정 속에서 진정으로 잘 얼고 잘 녹을 수 있는 삶이야말로 어떤 가치보다 우선할 것이며 그 가운데 시인의 언어 역시 적절히 얼고 녹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값진 성찰이 어디 있으랴. 시인이 그린 꽁꽁 언 얼음 호수를 한 바퀴 휘 돌아나온 듯한 느낌이다.




손세실리아 전북 정읍 출생. 2001년 [사람의 문학]으로 등단. http://blog.naver.com/soncecil

이규리 경북 문경 출생. 1995년 [현대 시학]으로 등단. 시집[앤디워홀의 생각]이 있음. 

시인들이 함께 만드는 계간지 시평 (詩評) www.sipyung.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