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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걷는다 세트 - 전3권 ㅣ 나는 걷는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고정아 옮김 / 효형출판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도반의 뒷모습.
--나는 걷는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고정아, 임수현 옮김. (효형출판)
--길을 지우며 길을 걷는다. 이원규 지음. (좋은생각)
길.
길.......
하루도 길을 걷지 않은 날이 없건만 길은 늘 그리움이고, 목마름이고, 안타까움이고, 설렘이다. 그 길에서 도반을 만났다. 그 도반들의 뒷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정갈한 뒤태를 가졌는지, 어지러운 발자국을 함부로 남기던 내 뒷모습이 부끄럽다.
‘나는 걷는다.’
이 책을 신문의 서평에서 처음 만났던가? 이스탄불에서 시안까지 느림, 비움, 침묵의 1099일이라는 부제와 실크로드를 걸어서 기록한 내용이라는 것도 마음을 끌었지만, 아직 한번도 실망을 안겨주지 않은 효형출판 이라서 안심하고 인터넷 주문을 했다. 책을 받고 보니 400페이지가 넘는 두께에다 여백이 거의 없는 빽빽한 글씨들, (여행기라서 사진이 반도 넘을 거라 예상했다.) 재생지를 이용한 편안한 제본이 역시 효형출판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거기다 만원미만의 책값도 맘에 들었고. (상업적인 출판사였다면 적어도 6권 이상의 원색 현란한 책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겉에서부터 흡족한 이 책 세권은 두 달여 동안 나에게 말 없음 속에 무수한 말들을 건네는 동행이었다. 출퇴근의 버스 안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벤치에서, 쌍계루 기둥에 기대어 앉아서, 기차에서, 친구네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서, 일하는 짬짬이 한시도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조금씩 낡아가면서 발자국을 남겼다. 내가 있는 곳에 베르나르도 있었고 그가 가는 곳에 나도 동행이 되었다.
실크로드 1만 2천키로. 실크로드....... 상상속의 그 매력적인 비단길.
저 오래 전에는 동, 서양의 교역이 길을 따라 길게 늘어선 낙타 등에 문화와 문명을 싣고 오고갔고, 그 다음에는 총칼을 앞세운 정복자의 말발굽들이 가득 채웠고, 여전히 국가간의, 민족간의, 종교 간의 분쟁이 생성됐다 소멸되면서 진행 중인 길.
참 여러 사람들이 그 길을 따라갔지만 단편적인 것들로만 아련하게 그려서 늘 조갈난 사람처럼 더 갈증이 나도록 아득한 길.
그길, 일만 이천 키로를 걸어서 간다. 낙타도 없이, 일행도 없이, 무기도 없이, 달랑 정확하지도 않은 지도 한 장을 들고 마르코 폴로를, 대상의 흔적을 찾아간다....... 그저 걸어서 간다.
그 무모한 계획의 3년 여정을 그의 뒤를 따라 세세하게 기록한 그의 글들과 함께한 두 달.
나는 어디에 있든지 그의 걸음 속 고독한 사막에 있었고 정수리를 쪼아대는 뜨거운 햇볕을 아끼는 모자 하나로 막았다. 내일의 끼니를 걱정할 만큼 가난한 쿠르드인들이 나그네를 반갑게 맞으며 내놓은 식사를 허겁지겁 먹고 세간 없는 옹색한 주인의 침상을 차지하고 잠을 잤다. 낯선 도보 여행자를 향한 궁금증에 모여든 사람들의 질문 공세를 받으며 길거리 식당의자에 앉아 짧은 언어로 대화를 나누고, 우정을 나누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그의 걸음에 끼여서 갔다. 하루에도 몇 번씩 군인들의 제지를 받고, 불의를 따지는 정년퇴임한 사회부 기자의 눈으로 세상의 변방을 본 그의 생각에 동의했고 걸음걸음에 담긴 자연과 환경, 문화와 역사의 충돌과 보전을 생각했다. 천년의 세월과 함께 사라져가는 문화, 대상들의 숙소, 환경을 보는 안타까운 지구인으로서 우리는 동의하기도 했지만 동, 서양 사고의 관점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재인식하기도 하면서 우리는 좋은 도반이었다. 같은 길을, 때로는 같은 생각으로 때로는 다른 시선으로 함께 가는 도반, 우리는 개별의 홀로이고 동시에 여럿인 동행이다.
길....... 책....... 문화....... 역사....... 세상....... 영토....... 분쟁....... 정치....... 환경....... 지도....... 언어....... 종교....... 생활....... 그리고 사람들.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을 채워가고, 바로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 땀내 나는 모든 사람들이 동행이다. 길은 바로 그 사이에 놓여있었다.
‘길을 지우며 길을 걷다.’
이 책을 책방에서 집어든 것은 제목에 끌려 눈길을 사로잡은 표지였고, 사게 만든 것은 4장에 걸쳐있는 지리산 세석의 강렬한 원색이었다. 접힌 표지를 펴면 피아에서 만났을 법한 나무숲 속 길이 열린다. 언제나 그리운 지리의 길들, 피아 계곡의 그 강렬한 이미지를 만나게 된다. 찾고 싶은 사람만이 볼 수 있는 길이요, 길을 지워 본 사람만이 마침내 찾을 수 있는 길인 것이다.
‘지리산 편지’라는 부제가 붙은 시인의 편지를 받아 든 내내 뚜벅뚜벅 발자국을 찍으며 나무사이에서 길을 잃고, 나무의 언어, 책을 들고 서있는 내게 길이 말을 걸었다.
지리와 섬진의 길들에 찍힌 그의 무수한 발자국들 하나하나는 시어로 말 걸어왔고 깨달음의 풀씨들은 산문으로 들렸다. 발바닥이 곧 날개인 시인의 비상은 거친 실크로드를 오래 따라 걸은 내게 이번의 ‘길을 지우며 걷는 길은’ 푹신한 오솔길이면서 황토 흙 매끈한 우리 산야, 바로 내 땅의 순한 길을 보여준 것이다. 굉음으로 질주하는 트럭들이 산을 관통하는 길을 걸어도, 구비구비 산꼭대기까지 이어지는 승용차물결속을 걸어도 그 모든 길들은 내 안으로, 세상 안으로 날아가는 길이라는 것을 말한다. 길은 말 걸기를 시작했다.
길.
그는 지금 길에 있다. 지난 3월1일. 삼인행(三人行) 이면 서로 스승이자 제자이며 도반이라는데 도법스님, 수경스님과 함께 “생명 평화의 탁발 순례”를 시작해서 지금, 어느 이름을 알지 못하는 마을을 지나는 먼 길을 가고 있을 것이다. 시작은 있으되 끝은 없는 만행의 고행 길, 그 길들을 따라 꽃은 피었다가 지고 단풍은 걷는 속도로 남하해 내려올 것이다. 그들의 한 걸음 한 걸음에 얹히는 생명들의 무게와 평화의 날개가 이 땅, 사람들의 마을에, 사람들의 가슴에 차곡차곡 내려앉을 것이다.
그 기원이 가슴 벅차다.
그 길의 말들이 소중하게 들려온다.
길.
나는 언제나 길 위에 있다. 그 모든 길들은 결국은 세상에게서 사람에게로 이어지는 개별의 독립적인 길이고 공유와 연대의 길이다.
길을 잃고 막막하게 서 있을 때, 그저 서 있을 때 도반은 속삭인다.
“잠시 가던 길을 잃었다고 무어 그리 조급할 게 있겠습니까.
잃은 길도 길입니다. 살다보면 눈앞이 깜깜할 때가 있겠지요.
그럴 때는 눈앞이 깜깜할 때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바로 그것이 길이 아니겠는지요.”
잠시 속삭이면서 스치는 듯 떠나는 도반의 뒷모습은 단정하다. 오래 걸어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뒤태.......
걷고 또 걷다보면 나도 언젠가는 도반의 뒷모습을 닮아있을 것인가.
나는 오늘도 실크로드 속으로, 체념을 통해 세상을 다 가진 노인들과 당산나무가 지키는 마을 속으로 길을 따라 간다.
그대는 어디쯤 가시는지.......요.
"먼 길의 그대를 위해 군불을 지핍니다.
천식의 그대여,
오늘만이라도 모든 짐을 내려놓으시기를 바랍니다."
2004. 7. 30. 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