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분간 그대로 거기 앉아서, 아버지와 나는 배스들이 깊은 물에서 위로 헤엄쳐 올라와 우리 앞에서 한가로이 노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멍청이는 그냥 서서 손가락을 잡아당기며 누군가를 기다리기라도 하듯 연못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계란 모양으로 높은 가장 큰 돌더미가 물과 맞닿은 자리. 아버지가 연못에서 가장 깊은 곳이라던 데가 그대로 들여다보였다. 나는 연못 가장자리를 훑어보았다 버드나무숲, 자작나무들, 저 끝에 있는 등심초화단, 한 블록 떨어진 곳에서 검정새들이 날아오고 날아가며 여름처럼 높은 음조로 지저귀는 것을 이제 해가 우리 등뒤에서 기분좋을 정도로 따스하게 목을 비추었다. 바람은 없었다. 연못 곳곳에서 배스들이 위로 올라와 수면을 건드리거나, 물위로 뛰어올랐다가 옆으로 떨어지거나, 아니면 수면으로 올라와 등지느러미만 검정 부채처럼 물 밖으로 내밀고 유영했다. - P302

그해 2월에 강이 범람했다.
12월 초순 내내 우리가 살던 지역 전역에 눈이 심하게 내렸고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자 날이 매우 추워지더니 땅도 얼어붙고 눈도 녹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았다. 1월 말이 다가오자 차누크바람이 불어왔다. 어느 날 아침에 깨어나보니 집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와 지붕에서 물이 졸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은 닷새간 계속 불었고 사흘째가 되자 강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15피트까지 차올랐어." 어느 날 저녁 아버지가 신문을 보다가 말했다. "홍수위보다 3피트 높아진 거야. 멍청이 녀석 물고기 잃어버리게 생겼군." - P306

습하고 바람이 거센 날이었고, 시커멓고 조각난 구름 덩어리들이 잿빛 하늘을 빠르게 오갔다. 땅은 흠뻑 젖어 있었고 우리는 빽빽한 풀숲에서 물웅덩이와 계속 마주쳤지만 피해갈 수가 없어서 그냥 해치고 갔다. 대니는 그때 막 욕을 배우기 시작한 터라 신발이 물에 잠길 때마다 거칠게 욕설을 잔뜩 내뱉었다. 목초지가 끝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물이 불어난 강을 볼 수 있었는데, 아직도 수위가 높았고 물이 물길을 벗어나 나무줄기들 주변에서 물결치며 땅을 가장자리에서부터 조금씩 침식하고 있었다. 강가운데에서는 물이 세차고 빠르게 움직였고, 때때로 수면 위로 덤불이나 가지가 튀어나온 나무가 떠갔다. - P307

버트는 이미 재떨이를 집어들고 식탁에서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그는 재털이이 가장자리를 쥐고 있었고, 양 어깨가 움츠러들어 있었다. 마치 원반처럼 재떨이를 던질 태세였다.
"제발" 베라가 말했다. "좀 가주라. 버트, 그 재떨이 우리 거잖아. 제발. 가라고."
버트는 베라에게 인사하고 테라스 문으로 나왔다.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자기가 뭔가는 증명했다고 생각했다. 버트는 그로써 자기가 아직도 그녀를 사랑한다는 걸, 그리고 자기가 질투한다는 확실히 보여줬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녀와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조만간 그녀와 진지하게 이야기해야 할 것이었다. 정리해야 할 일들이, 논의해야 할 중요한 일들이 아직 있었다. 둘은 다시 대화할 것이었다. 아마도 명절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나면. 버트는 진입로에 떨어져 있는 파이를 빙 둘러서 차에 탔다. 시동을 걸고 후진 기어를 넣었다. 그는 거리로 나왔다. 그러고는 기어를 저단에 놓고 앞으로 나아갔다. - 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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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말이다. 레스, 그때 죽은 느낌이다. 내 일부는 정말로 죽었어. 네 엄마가 날 떠난 건 잘한 거야. 아무렴 그랬어야지. 하지만 래리 웨인을 묻어서는 안 되는 거였어! 내가 죽고 싶다는 말은 아니다. 레스, 그건 아니야. 까놓고 말하자면 나도 내가 아니라 그 친구가 묻히는 쪽을 택할 거다. 선택을 해야만 한다면 말이야...... 나는 삶이니 죽음이니 하는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구나. 한번 죽으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지만 양심에 짐을 지고 살아가는 건 힘이 드는구나, 그러니까 그게 자꾸 생각나고 내가 저지른 일 때문에 그 친구가죽어야 했다는 사실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단 말이다. - P121

빌은 자기가 작아지는 게, 여위어지고 무게가 없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귀를 올려붙이는 강한 바람을 마주보는 느낌이 들었다. 빌은 뛰어 달아나고 싶었지만, 뭔가가 자기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형상이 바위의 그림자들과 만나자 그림자들이 그 형상 아래에서, 그것과 함께 움직이는 듯싶었다. 바닥이 기이한 각도로 빛을 받아 뒤틀린 듯했다. 비이성적이게도 빌은 언덕 아래의 자동차 근처에 세워진 자전거 두 대를 떠올리며, - P202

마치 둘 중 한 대를 없애버리면 이 모든 일이 바뀌어, 그가 언덕꼭대기에 올랐을 때 여자가 더이상 나타나지 않게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제리가 빌 앞에, 온몸의 뼈가 사라진 듯 축 늘어진채서 있었다. 빌은 둘의 몸,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두 몸이 끔찍할 만큼 가깝게 느껴졌다. 그때 빌의 어깨에 제리의 머리가 내려앉았다. 빌은 손을 들어, 둘 사이를 갈라놓는 거리가 적어도 이 정도 의미는 있다는 듯, 상대를 토닥이고 쓰다듬기 시작했고, 눈에서는 눈물이 솟았다. - P203

뒷문 현관 등불에서 나오는 노란 불빛이 유리창에 어렸다. 그는 두 눈을 뜨고 누워서 바람이 집을 뒤흔드는 소리에 귀기울였다. 다시 내면에서 뭔가가 일어나는 게 느껴졌지만, 이번에는 분노가 아니었다. 그는 움직이지 않고 좀더 누워 있었다. 기다리듯 누워 있었다. 그때 뭔가가 그를 떠나고 다른 뭔가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는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고, 단어들과 구절들이 급류처럼 마음에 차올랐다. 그는 천천히 기도했다. 단어를 하나하나 붙여나가며 기도했다. 이번에는 소녀와 히피 남자도 기도에 넣을 수 있었다. 그래, 하고 싶은 대로하게 두자, 밴을 몰고 오만하게 굴고 웃음을 터뜨리고 반지를 끼고, 원한다면 속임수도 쓰라지. 한편, 기도도 필요했다. 두 사람도 기도를 써먹을 수 있을 것이고, 심지어 그의 기도, 아니 특히 그의 기도를 써먹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는 모든 이를 위해, 살아 있는 이와 죽은 이 모두를 위해 다시 기도하며 말했다. "당신뜻에 부합한다면." - P240

과거는 불확실하다. 꼭 어린 시절에 얇은 막을 씌워둔 느낌이다. 나는 내게 일어났던 일이라고 기억하는 일들이 정말로 일어났었는지 확신할 수 없다. 부모와 함께 살던 한 여자애가 있었는데ㅡ아버지는 작은 카페를 운영했고 어머니는 거기서 웨이트리스와 계산원으로 일했다꿈결처럼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일이 년 후에 비서양성학교에 들어갔다. 나중에, 한참 뒤에ㅡ그사이의 시간은 어떻게 된 거지? 그 여자는 다른 도시에서 전자부품회사의 접수원으로 일하면서 자기에게 데이트를 신청한어떤 기술자와 가까워지게 된다. 결국 여자는 남자의 목적이 뭔지 알고서, 유혹에 몸을 맡긴다. 당시에는 어떤 직감이 그 유혹을 꿰뚫어보는 통찰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이 뭔지 떠올릴 수 없었다. 얼마 후 두 사람은 결혼하기로 결정했지만, 과거는, 여자의 과거는 이미 멀어지고 있었다. 미래는 여자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P259

우리 아버지는 멍청이가 죽은 후로 오랫동안 아주 예민하고 괴팍하게 굴었다. 나는 어쩐지 그 사건이 아버지 인생에서 평온한 시기가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라고 느꼈는데, 아버지 건강이나빠지기 시작한 게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기 때문이다. 첫째는 멍청이 일, 다음은 진주만 사건. 그리고 다음은 웨나치 근방에 있는 할아버지 농장으로 이사한 일이었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사과나무 여남은 그루와 소 다섯 마리를 보살피며 마지막 나날을 보냈다.
내게 멍청이의 죽음은 유달리 긴 어린 시절이 끝나고, 내가 준비되었든 그렇지 않든 어른의 세상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ㅡ패배와 죽음이 좀더 자연의 질서에 따라가는 세상으로.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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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 누워 있는데 뒷대문 걸쇠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소리는 분명 들렸다. 난 클리프를 깨우려 했지만 그는 곯아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일어나서 창문으로 다가갔다. 도시를 둘러싼 산맥 위에 커다란 달이 걸려 있었다. 하얗고 상처투성이인달, 사람 얼굴을 쉽사리 떠올릴 수 있었다-눈구멍, 코, 입술까지. 빛이 밝아서 뒤뜰이 훤히 보였다. 야외용 의자, 버드나무, 작대기에 걸어놓은 빨랫줄, 내 피튜니아들, 뜰을 감싸고 있는 울타리, 열려 있는 뒷대문.
하지만 바깥에선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검은 그림자는 없었다. 모든 것이 밝은 달빛 아래 놓여 있었고, 지극히 작은 것까 - P81

지도 내 의식에 들어왔다. 이를테면 빨랫줄에 나란히 걸린 빨래집게. 그리고 비어 있는 야외용의자 두 개. 나는 시원한 유리창에 양손을 대어 달을 가리고, 좀더 내다봤다. 귀를 기울였다. 그러고는 잠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계속 뒤척였다. 나는 초대장처럼 열려 있는 뒷대문을 생각했다. 클리프는호흡이 거칠었다. 입은 쩍 벌어지고 양팔은 벌거벗은 창백한 가슴을 끌어안고 있었다. 그는 자기 자리뿐 아니라 내 자리도 상당부분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그를 밀고 또 밀었다. 하지만 그는끙하는 소리만 낼 뿐이었다. 난 침대에 좀더 누워 있다가 마침내부질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일어나서 슬리퍼를 찾았다. 부엌으로 가서 차를 한 잔 탄 다음 식탁에 앉았다. 클리프의 필터 없는 담배를 한 대 피웠다. 늦은 시각이었다.  - P82

시계를 보고 싶지 않았다. 몇 시간 뒤면 일 때문에 일어나야 했다. 클리프도 일어나야 했지만, 몇 시간 전에 잠들었으니 알람이 울릴 때쯤이면 괜찮을 터였다. 클리프는 어쩌면 머리가 아플지도 모른다. 하지만 커피를 엄청 마실 거고 화장실에서도 느긋하게 일을 볼거다. 아스피린 네 알이면 괜찮아지겠지. 나는 차를 마시고 담배를 한 대 더 태웠다. 잠시 후 나는 밖으로 나가서 뒷대문을 잠그기로 했다. 그래서 목욕가운을 찾았다. 그러고는 뒷문으로 갔다.
내다보니 별이 보였지만, 내 주의를 끌며 주위를 집과 나무, 전 - P82

신주와 전깃줄, 동네 전체를 ㅡ 온통 비추는 것은 달이었다. 나는 뒤뜰을 살펴보다 현관을 나섰다. 산들바람이 살짝 불어와서 목욕가운을 여몄다. 나는 열린 뒷대문을 향해 움직였다.
우리집과 샘 로턴의 집을 가르는 울타리에서 무슨 소리가 났다. 난 얼른 그곳을 봤다. 샘이 울타리에 두 팔을 기댄 채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입에 주먹을 가져다 대고는 마른기침을 뱉었다. - P83

나는 그 집에서 나와 보도를 따라 걸었다. 우리집 대문에 손을얹은 채 잠시 멈춰 서서 고요한 동네를 둘러보았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불현듯 어린아이였을 때 내가 알고 사랑하던 모든 사람들에게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이 그리웠다. 나는 잠시 그대로 서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했다. 다음 순간 난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안 되지. 하지만 그 순간, 앞일을 내다보던 젊은 시절에 상상하던 삶과 지금의 내삶이 전혀 닮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그 당시에 내가어떻게 살고 싶어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내게도 계획이 있었다. 클리프에게도 계획이 있었고, 우리가 만 - P91

나서 함께 지내게 된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나는 집으로 들어가서 불을 모두 껐다. 침실에 들어가 목욕가운을 벗어서 갠 뒤, 알람이 울리면 집을 수 있도록 가운을 손닿는 데 놓았다. 나는 시간을 보지 않고 알람 단추가 나와 있는지다시 확인했다. 그러고는 잠자리에 누워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 클리프가 코를 골기 시작했다. 난 그를 쿡 찔렀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그는 계속 코를 골았다. 나는 코 고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다가 뒷대문 걸쇠를 잠그지 않았다는 게 떠올랐다. 결국 나는 눈을 뜨고 그대로 누워서, 눈을 돌리며 방에 있는 것들을 훑었다. 잠시 후 나는 옆으로 누워 클리프의 허리에 팔을 얹었다. 그리고 그를 조금 흔들었다. 그는 잠시 코 고는 걸 멈췄다. 그러더니 헛기침을 했다. 그는 침을 삼켰다. 뭔가 걸렸는지 가슴에서그르렁거렸다. 그는 무겁게 한숨을 쉬더니, 다시 코를 골기 시작했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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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볼 만큼 봤다. 며칠 묵으려고 어머니 집에 갔는데, 계단을다 올랐을 때 보니 어머니가 소파에서 웬 남자와 키스하고 있었다. 때는 여름에, 문이 열려 있고 컬러 TV가 켜져 있었다.
어머니는 예순다섯이고 외롭다. 독신자 클럽에 다닌다. 하지만 그래도, 이런 걸 다 알면서도 난 괴로웠다. 나는 난간을 잡고 계단참에 서서 남자가 어머니에게 더 진하게 키스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머니도 키스에 응하고 있었고, 거실 반대쪽에는TV가 켜져 있었다. 일요일, 오후 다섯시쯤이었다. 그곳 아파트주민들은 아래층에 있는 수영장에 있었다. 나는 계단을 도로 내려가 내 차에 탔다. - P39

"이제 좀 쉬어라." 어머니가 말했다. "넌 자야 돼."
"잘게요. 무지 졸려요."
"TV 보고 싶을 때까지 보렴."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몸을 숙여 내게 키스했다. 어머니 입술이 멍들고 부풀어 있는 느낌이었다. 어머니는 내게 담요를 덮어주었다. 그러더니 침실로 갔다. 어머니는 문을 열어두었고, 얼마 후 코 고는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곳에 누워 TV를 응시했다. 제복 차림의 남자들 영상, 낮은 웅얼거림, 그리고 탱크들, 화염방사기를 든 한 남자가 나왔다. 소리가 잘 안 들렸지만 일어나기가 싫었다. 나는 눈이 감길때까지 계속 응시했다. 하지만 깜짝 놀라서 깨보니, 파자마가 땀으로 축축했다. 눈처럼 흰 빛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굉음이 들려왔다. 방이 요란했다. 나는 누워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 P58

처음 이곳으로 이사해서 모텔 매니저가 되었을 때, 우리는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집세와 수도 전기 요금도 없고 한달 수입이 삼백 달러였으니,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홀리는 장부를 맡았는데, 계산에 밝았고 숙박 건도 거의 혼자 처리했다.
홀리는 사람들을 좋아했고 사람들도 홀리를 좋아했다. 나는 모텔 주변을 맡아서, 잔디를 깎고 잡초를 베어내고 수영장을 깨끗하게 하고 간단한 수리를 했다. 첫해에는 모든 게 순조로웠다. 나는 밤에 다른 일을 하나 더 하면서 야간 근무를 했고, 우리는 잘나가고 있었고 계획도 하나 가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잘 모르겠는데, 내가 막 어떤 객실의 화장실 타일을 깔았을때 이 자그마한 멕시코 청소부가 청소하러 들어온다. 홀리가 고용한 여자다. 내가 그전에 그 여자를 의식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보면 인사는 했지만 말이다. 그 여자는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여하간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 P63

음주라는 게 웃기다. 뒤돌아보면 우리는 중요한 일들을 언제나 술을 마시면서 결정했다. 술을 줄여야 한다는 얘기를 할 때도, 식탁이나 피크닉 테이블에 앉아 여섯 개들이 맥주나 위스키한 병을 앞에 두고 있었다. 이곳으로 이사해서 모텔 일을 맡아, 예전 동네와 친구들과 인간관계와 기타 모든 것을 떠나기로 결정했을 때도 우린 밤새 마시며 장단점을 따져보며 취했다. 하지만 예전에는 통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홀리가 우리삶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 좀 해야겠다고 말했을 때, 내가 사무실 문을 닫고 위층으로 올라오기 전에 처음으로 한 일도 주류 판매점으로 달려가 티처스를 사온 것이다.
나는 남은 술을 잔에 다 따르고 얼음과 물을 조금 더 탄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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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으로 흔들리는 삶이라고 해서 꼭 소심하고 조심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프랭클린의 삶이 보여주듯이 엄청난 자신감과 끊임없는 자기 회의를 동시에 지니는 것도 가능하다. 이런 불가능해보이는 조합은 모든 위대한 인물과 문명의 특징이다.
계속해서 프랭클린은 사람들이 모이면 그들의 편견과 분노, 결점, 이기심까지 모이는 법이라고 말한다. 제헌회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러한 회의에서 어떻게 완벽한 결과물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에 의장님, 저는 이 체제가 이렇게 완벽에 가깝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프랭클린은 미국의 어린 주들이 "서로의 목을 벨 것"이라 기대하며 침을 줄줄 흘리고 있을 미국의 적들도 이 사실에 놀랄 것이라고 덧붙였다. - P434

9월 말 대표들이 회의장에서 줄지어 빠져나오는데 그 지역 여성인 엘리자베스 파월이 프랭클린을 붙들고 이렇게 물었다고한다. "닥터, 결과는 어떻게 됐나요? 공화국인가요, 군주제인가요?" 
"공화국입니다." 프랭클린이 대답했다. "여러분이 유지할 수만있다면 말이죠." 타는 듯이 무더웠던 필라델피아의 여름에 어지럽고도 용감하게 만들어진 미국 헌법은 선물도 당연한 권리도 아니었다. 심지어 완성된 결과물도 아니었다. 이 헌법은 진행 중인작업이자 미래 세대를 향한 도전이었으며 무엇보다 하나의 수단이었다. 딱 사용하는 사람만큼만 선하고 쓸모 있는 수단. - P435

그때는 딸아이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느 따뜻한 봄날 필라델피아 체스트넛 스트리트를 걷고 있는 지금 대답할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벤이 과거에 노예 소유주였다는사실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노예제도는 지금이나 그때나 옳지않다. 그러나 벤에게서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실수다. 위대한 인물들(나는 프랭클린이 위대한 인물이라고 믿는다)은긍정적인 사례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사례로도 우리에게 가르침을 준다. 반면교사도 교사다. 때로는 그런 가르침이야말로 가장귀중한 가르침이다.
우리는 벤저민 프랭클린 같은 건국자들의 신화를 파괴하는 대신 그들의 신화를 다시 써야 한다. 우리에겐 신화가 필요하다. 거짓이라는 의미의 신화가 아니라 조지프 캠벨이 정의한 신화, 즉영감을 주고 활기를 북돋는 이야기라는 뜻의 신화 말이다. 모든 - P446

문화에는 그런 종류의 신화가 필요하다. 신화 없는 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굴하지 말고 결점을 포함한 벤저민 프랭클린의 삶 전체를 들여다보자. 그리고 그가 완벽했는지 아닌지를묻는 대신 다르게 질문하자. 좋고 또 나빴던 그의 긴 인생 이야기는 쓸모가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여기서 끝내면 된다. 그러나 그답이 ‘그렇다‘라면 나는 벤이 아닌 우리 자신을 위해 자세를 바로세우고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P447

벤은 제헌회의가 마무리되고 정확히 31개월을 더 살았다. 그의정신은 여전히 예리했으나 그의 몸은 낡은 집처럼 여기저기 삐걱대고 휘어지기 시작했다. 배관에도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 벤은 "오래 산 사람, 삶을 끝까지 들이켠 사람은 컵 바닥에 남은 찌꺼기를 마주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늘 쇠퇴와 상실로만 이해하는 과정을 상쾌할 만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동시에 벤은 현실적이다. 그는 찌꺼기의 씁쓸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찌꺼기가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 자체로, 즉 길고 쓸모 있는 삶의 자연스러운 결과물로 받아들인다.
벤은 인간 몸에 발생할 수 있는 온갖 질병을 고려하면 자신의 불치병은 통풍과 결석, 노화 세 개뿐이니 아주 운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본인이 겪는 각종 통증과 고통을 곱씹지 않았다. 그를 담당했던 의사 존 존스의 말에 따르면 그는 자기 질병을 "주어진 역할을 더 이상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그를 이 세상에서 친절하게 - P448

내보내는" 출구로 여겼다.
프랭클린은 우리가 몸의 주인이 아님을 알았다. 우리는 한동안몸을 빌릴 뿐이다. 몸은 우리에게 쾌락을 선사하고 이 세상에서좋은 일을 하도록 우리를 도울 수 있지만 "몸이 더 이상 이런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쾌락 대신 고통을 선사한다면" 자연은 우리에게 출구를 제공한다. 프랭클린은 "그 출구는 바로 죽음"이라고말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직관적으로 안다. 짓눌린 팔다리를 절단하거나 병든 치아를 뽑을 때 우리는 프랭클린이 말한 "작은 죽음"을기꺼이 선택한다. 죽음은 이런 목숨 미적분의 논리적 연장선일뿐이다. 마지막에 프랭클린은 우리는 우리 몸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는 영혼이다." - P449

벤은 남은 시간 동안 "독서와 글쓰기, 친구들과의 대화, 농담, 웃기, 즐거운 이야기 들려주기처럼 본인이 거워하는 활동에몰두했다. 프랭클린 코트에 3층짜리 건물을 증축했는데, 그 건물에는 24명이 모일 수 있는 식당과 함께 그의 자부심이었던 "책이 천장까지 꽂힌" 서재가 있었다. 평소 매우 신중했던 프랭클린에게는 좀처럼 없던 경솔한 행동이었지만 그가 여동생 제인에게 말한 것처럼 "우리는 자신이 늙었다는 사실을 쉽게 잊고, 건축은 아주 재미있는" 일이었다.
,마침내 찾아온 휴식. 벤은 자신의 발명품, 본인이 받은 수많은 훈장에 둘러싸여 자기 삶을 돌아보았다. 긴 삶이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정말 쓸모 있는 삶이었을까?  - P449

하지만 (여기가 바로 우리가 지독한 가능성주의자가 되는 지점이다)과거가 방사능처럼 유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라면? 우리장 속에 있는 좋은 박테리아나 위험한 자외선을 막아주는 오존층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유익한 힘이라면?
"과거의 무게"라는 말이 있지만 만약 과거가 전혀 무겁지 않다면? 사실 과거가 믿기 어려울 만큼 가볍다면? 그냥 가벼운 것이아니라 부력이 있어서 우리를 들어 올리고 지탱하고 물에 떠 있게 한다면?
틀림없이 모든 게 바뀔 것이다. - P457

벤에게.
당신이 먼 곳에 있는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마음 나누는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기 때문에 편지 한 통 정도 더 보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당신이 내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나는 지금 홀딱 벗고있어요. 그래요, 완전히 발가벗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거의 다 벗었어요. 지금 나는 ‘수영복‘이라는 것을 입고 있어요. 사람들 앞에서 입는 속옷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부분적 공기욕이죠. 물론 이런 발명품이 왜 필요한지 의아하겠죠. 무언가를 감춘다는 건 곧제약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얘기가 딴 길로 샜네요. 당신이 말 길어지는 걸 얼마나 싫어하는지 잘 알아요. 당신은 늘 간결함을 추구했죠. 괜찮다면, 어느 여름날 아침 어느 정도 나이 든 남자가 삶은 달걀을 찾아 미시간호에 뛰어드는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잘 따라오고 있나요, 벤? - P458

물론 잘 따라오고 있겠죠. 이건 당신 아이디어니까요. 친구 올리버 니브가 중년 남성도 수영을 배울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당신이 해준 조언, 기억하죠?
물론이라고, 당신은 주저 없이 대답했죠. 그리고 그 방법을 자세히 설명해줬어요. 달걀을 하나 구해서 물속 깊이 빠뜨리라고.
두려움을 삼키고 달걀을 찾아 물속에 뛰어들라고 말이에요. 당신은 물에 빠져 죽을 일은 절대로 없다고 올리버를 안심시켰어요. 오히려 "물은 자네의 경향과 반대로 자네를 위로 뜨게 할 것"이라고 말한 뒤 내게도 큰 인상을 남긴 문장을 덧붙였죠. "물 아래로가라앉는 건 자네 생각만큼 쉽지 않다네." 나도 당신 말을 믿고 싶어요. 벤. 진심이에요. 하지만 힘드네요. 지난 몇 년을 그 누구보다 낙천적인 가능성주의자인 당신과 함께했는데도 말이에요. - P459

벤, 이 격렬한 물살을 당신처럼 차분하고 침착하게 통과했다고말하고 싶지만 그건 거짓말일 거예요. 게다가 쓸모 있는 거짓말도 아닐 거예요. 사실 나는 물살에 맞서 싸웠어요. 섭리를 불신했어요. 그런데 가라앉지 않았어요. 수영도 하지 않았어요. 그냥 떠있었어요. 그 모든 일이 있었는데도 그 모든 일이 있었기 때문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게 무엇일지 모르겠어요. 벤. 삶이 넘쳐흐르는 컵일까요, 컵 바닥에 남은 찌꺼기일까요? 무명일까요, 명성일까요 (어쩌면 불가리아 영해 바깥에서까지 이름을 떨칠지도요)? 거친바다가 날 기다리고 있다는 건 알아요. 그게 이 세상의 이치잖아요. 하지만 그곳엔 어떤 형태로든 당신이 있을 거예요. 나를 살살밀고 물 위로 끌어올리면서, 함께 웃음을 터뜨리면서 말이에요.
왜 당신이 달걀을 추천했는지 알겠어요. 새하얀 달걀이 분명한목표물이 돼요. 등대처럼요. 한 번 더 발차기를 하고 오른팔을 쭉뻗어서 나도 놀랄 만큼 부드러운 동작으로 호수 바닥에 가라앉은 - P461

달걀을 붙잡아요. 그리고 당신이 수차례 그랬듯 방향을 틀어 다시 발차기를 해요. 위로, 위로, 위로 미끄러지듯 올라가요. 호수가 나를 끌어올리고 잡아당기고 수면 위로, 빛으로 내보내요.
눈을 비비고 목욕을 마친 개처럼 몸을 털어서 귓속의 물을 뺍니다. 공기는 부드럽고 부산한 도시의 소리로 가득합니다. 바버라를 발견해요. 바버라는 물가에 서 있어요. 내가 다친 데 없이 나타나서, 내 얼굴에 떠오른 미소와 내 손에 들린 삶은 달걀을 보고 안도한 것 같아요. 나는 달걀이 노벨상이라도 되는 양, 아니면 불가리아의 두 번째로 훌륭한 명문대학에서 받은 명예박사 학위라도 되는 양 의기양양하게 달걀을 치켜들어요.
당신 말이 맞았어요, 벤. 이 세상은 대체로 꽤 괜찮은 곳이에요. - P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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