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나 로웬하웁트 칭Anna Lowenhaupt Tsing
인류학자. 캘리포니아대학교 산타크루스캠퍼스 교수. 글로벌 자본주의를 주로 인간 사회의 정치경제적 행위로 분석하던 학계에 환경, 생태, 풍경, 다종민족지와 같은 생태인류학적이고 포스트휴머니즘적인 관점으로 이론적 지평을 넓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학자다. 첫 번째책 다이아몬드 여왕의 세계에서』로 1994년에 해리 벤다 상을, 두 번째 책 『마찰: 글로벌 연결에 관한 민족지로 2005년에 미국민족지학회가 수여하는 시니어북 상을 수상했다. 2007년부터 송이버섯 세계를 연구하는 모임 ‘마쓰타케 월드 리서치 그룹‘을 조직해 송이버섯의 다종적 결합 및 송이버섯을 둘러싼 상품사슬을 세계 여러 나라의 학자들과 공동으로 연구하고 있다. 2013년부터 5년간 덴마크국립연구재단에서 후원하는 오르후스대학교 닐스 보어 교수직을 수여받았고, 동 대학 인류세연구센터 소장으로 인문·사회 과학, 자연 과학, 예술을 포괄하는 초학제적 연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책을 비롯해 칭의 최근 연구는 인류세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함께 훼손된 지구환경에서 형성되는 다중의 관계와 이를 통한 삶의 방식을 논의한다.
넓게 번지는 버섯갓들로 가득한 다카마토 능선, 채워지고, 번창하고ㅡ. 가을 향기의 신비. -8세기 일본의 시가집 만요슈 중에서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는가? 나는 산책을 한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버섯을 발견한다. 버섯을 통해 내 감각은 되살아난다. 꽃처럼 소란스러운 색깔이나 향기를 지 - P21
니고 있어서가 아니다. 버섯은 불현듯 나타나, 다행히도 내가 그곳에 있음을 상기시켜 준다. 그러면 불확정성indeterminacy의 공포 속에서도 아직 즐거움이 있음을 알게 된다. 물론 공포는 존재하며, 나만 느끼는 것도 아니다. 세계적인 기후 위기가 들이닥치고 있고, 산업 발전은 100년 전 어느 누가 상상했던 것보다 지구 생명체에 더 치명적임이 증명되었다. 경제는 더는 성장이나 낙관적 전망을 제시하지 않는다. 어떤 일자리든 간에 앞으로 닥칠 경제 위기로 사라져 버릴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비단 새롭게 등장하는 재앙만은 아니다. 나는 우리모두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왜 그리로 가는지 설명할 방법이 없음을 깨닫는다. 불안정성 precarity은 한때 불우한 이들만의 운명으로여겨졌다. 이제는 우리 모두의 삶이 불안정한 것 같은데, 돈을 벌고 있는 순간에도 그렇다. 20세기 중반에 글로벌 북반구‘의 시인과 철학자는 자신들이 우리 cage 안에 너무나 안정된 상태로 갇혀있다고 느꼈던 반면, 오늘날 글로벌 북반구와 글로벌 남반구의 많은 사람은 곤란한 상황과 끝없이 마주치고 있다. 이 책은 불확정성과 불안정성의 상황, 즉 안정성에 대한 약속이 부재하는 삶을 탐구하기 위해 버섯과 함께 떠난 나의 여행 이야기다. 1991년에 소련이 무너지자 갑자기 정부 지원을 못 받게 된 - P22
수천 명의 시베리아인이 버섯을 따러 숲으로 달려갔다는 이야기를읽은 적이 있다. 내가 쫓는 것이 이러한 버섯은 아니지만, 이 이야기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담겨 있다. 바로 우리 것인 줄만 알았던통제된 세계가 실패했을 때, 통제받지 않는 버섯의 삶이 선물이자길잡이가 되어준다는 것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버섯을 건네줄 순 없지만, 나를 따라 이 프롤로그 서두의 시에서 예찬한 ‘가을 향기‘를 음미해보길 바란다. 이 향기는 일본에서 매우 귀히 여기는 향이 진한 야생 버섯인 송이버섯 냄새다. 송이버섯은 가을의 상징으로 사랑받고 있다. 그 냄새는 여름의 풍요를 상실한 슬픔을 환기시키지만, 가을의 날카로운 강렬함과 고조된 감수성 또한 불러일으킨다. 전 지구적 진보의 풍요로운 여름이 끝날 때, 이러한 감수성이 필요할 것이다. 가을 향기는 확실하게 보장하는 것이 부재하는 보통의 삶으로 나를 데려간다. 이 책은 20세기에 안정성이라는 전망을 제시했던 근대화와 진보의 꿈에대한 비판이 아니다. 나보다 앞서 많은 분석가가 이미 그러한 꿈을분석한 바 있기 때문이다. 한때 우리는 그런 꿈에 기대어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다 같이 알고 있다고 여겼다. 이제 내가 다루고자하는 것은 근대화와 진보의 꿈에 대한 비판 대신, 그런 발판 없이사는 삶에 상상력을 동원해 도전해보는 일이다. 만약 우리가 송이버섯 진균이 갖는 매력에 마음을 연다면, 송이버섯은 우리를 호기 - P23
심의 세계로 인도할 수 있다. 내가 보기에는 그러한 호기심이야말로불안정한 시대에 협력해 생존하기 위한 첫 번째 필요조건이다. 어느 급진적 팸플릿은 이 도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많은 사람이 외면하려 하는 망령은 세계가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는 단순한 깨달음이다. ... 만약 우리가 전 지구적 혁명의 미래를 믿지 않는다면, (항상 그래왔듯이) 현재를 살아야만 한다. - P24
송이버섯은 인간이 교란한 숲에 산다. 쥐, 너구리, 바퀴벌레처럽 송이버섯도 인간이 만든 환경 문제의 일부를 기꺼이 참아주고있다. 하지만 송이버섯은 유해 생물이 아니다. 송이버섯은 귀한 고급 식재료이며, 적어도 일본에서는 높은 가격 때문에 종종 지구상가장 귀한 버섯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송이버섯은 나무에 영양분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척박한 땅에서도 숲이 조성될 수 있도록 돕는다. 송이버섯을 따라가다 보면 환경 교란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우게 된다. 이것이 환경을 더 훼손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지만, 여하간 송이버섯은 협력적 생존의 한가지 방식을 보여준다. 송이버섯은 글로벌 정치경제의 균열도 분명히 보여준다. 지난30년간 송이버섯은 북반구 전역의 숲에서 채집되어 신선한 상태로 일본에 배송되면서 글로벌 상품이 되었다. 많은 송이버섯 채집인은 삶의 터전과 선거권을 빼앗긴 문화적 소수자다. 예컨대 미국태평양 연안 북서부에 거주하는 가장 상업적인 송이버섯 채집인들은 라오스와 캄보디아에서 이주해온 난민이다. 송이버섯은 가격이높기 때문에 어디에서 채집되든 생계에 큰 도움이 되며, 문화 회생cultural revitalization을 촉진하기도 한다. - P26
석기시대로 돌아가자고 제안하는 것이 아니다. 내 의도는 반동적이지도, 심지어 보수적이지도 않으며, 그저 전복적일 따름이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상상력은 자본주의와 산업주의처럼, 그리고 인구가 그런 것처럼 오로지성장만을 꿈꾸는 일방향 미래에 갇혀 있는 것 같다. 나는 돼지가 제 길을 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내려는 것뿐이다. -어슐러 K. 르 귄 - P45
이것이 우리가 알아야 할 이야기다. 산업적으로 탈바꿈한다는 것은 생계 터전을 잃고 풍경을 훼손하게 될 물거품 같은 약속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런 기록에 미처 담기지않은 이야기가 있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쇠락의 결말로 마친다면모든 희망을 저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약속과 붕괴가 거듭되는 다른 장소로 눈을 돌리는 것에 지나지않을 것이다. - P47
우리는 날마다 불안정성에 관한 뉴스를 접한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도 있고, 일자리를 가져본 적이 없어 분노하는 사람도 있다. 고릴라와 민물알락돌고래는 멸종 위기다.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태평양군도 전체가 물에 잠긴다. 그러나 대체로 우리는 이런 불안정성을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에서 예외적 상황이라 여긴다. 불안정성은 체계에서 ‘예외‘라고 말이다. 그런데 만약 불안정성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 시대의 조건이라면 어떨까? 아니, 달리 말해서 우리 시대가 불안정성을 인지할 단계에 이른 것이라면 어떨까? 불안정성과 불확정성, 또 우리가 사소하게 여기는 무언가야말로우리가 추구하는 체계성의 중심을 이루는 것들이라면? 불안정성은 타자들에게 취약한 상태를 말한다. 예측 불가능한 마주침은 우리를 변모시킨다. 우리는 우리 자신조차 통제할 수 없다. 공동체의 안정적인 구조에 의존할 수 없는 우리는 가변적인 배치로 내던져지고, 이로써 우리와 관계된 타자뿐 아니라 우리 자신 - P51
도 재형성된다. 우리는 현재의 상황에 의존할 수 없다. 우리의 생존 능력을 포함한 모든 것이 유동적이다. 불안정성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다른 방식의 사회 분석이 가능하다. 불안정한 세계는 목적톤이 없는 세계다. 시간 본연의 무계획성을 뜻하는 불확정성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지만, 불안정성을 놓고 생각해보면 불확정성도삶을 가능케 한다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이 모든 얘기가 이상하게 들린다면, 그건 순전히 우리 대부분이 진보와 근대화를 꿈꾸도록 길러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틀에서미래로 이어질지 모를, 진보 및 근대화와 관련된 현재의 일부가 선별되고, 나머지는 역사에서 ‘떨어져 나가는‘ 사소한 것으로 취급된다. 여러분은 내게 되물을 것이다. "진보? 그건 19세기의 관념이요." 일반적인 상태를 말할 때 ‘진보‘라는 용어를 쓰는 일은 드물어졌고, 20세기 근대화조차 구식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디서든 우리는 진보와 근대화를 향상과 연결 지어 범주화하고 가정한다. 우리는 날마다 진보와 근대화의 목적-민주화, 성장, 과학, 희망을 상상한다. 왜 우리는 경제성장과 과학의 발달을 기대하는가? 발전이라고 명시하진 않더라도 역사에 관한 우리 이론들은이런 범주들에 물들어 있다. 우리들 개개인의 꿈도 마찬가지다. 다같이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은 꺼내기조차 어렵다는 것을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구태여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필요가 있을까? - P52
그러나 생존이란 무엇인가? 미국에서 유행하는 판타지를 살펴보면, 생존이란 항상 다른 존재와 싸워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을뜻한다. 미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외계 행성 이야기에 등장하는 ‘생존‘은 정복과 팽창의 동의어다. 나는 생존을 그런 의미로 사용하지 않겠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열린 마음으로 다른 의미를생각해보기 바란다. 어떤 생물종이든 살아 있기 위해서는 살기에적합한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이 주장하는 바다. 협력이란차이를 수용하며 일한다는 의미로, 이것은 곧 오염으로 이어진다. 협력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죽는다. 대중적인 판타지만이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하나만 살아남고나머지는 다 죽는다는 식의 이야기가 학자들 사이에서도 통용된다. 학자들은 생존을 인간이든 비인간이든 (생물종, 개체군, 유기체, 유전자 등 어떤 ‘개별자individual ‘이건 간에) 개별적 이익의 증진이라고 상상해왔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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