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사는 내 몸을 돌려 거울을 마주보게 했다. 그는 내 머리 양옆에 손을 대고 마지막으로 머리의 위치를 잡았다. 그는 나와 머리를 나란히 하고서 같이 거울을 쳐다보았는데, 아직도 양손으로 내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나도 나를 바라보았고, 그도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뭔가 봤다고 해도, 이발사는 아무런 질문도 논평도 하지 않았다. 그는 손가락으로 내 머리카락을 앞뒤로 천천히, 마치 잠시 뭔가 다른 걸 생각하듯 쓸기 시작했다. 연인의 손가락처럼 아주 친근하게, 아주 부드럽게 내 머리를 쓸었다.
그것은 오리건 주 부근, 캘리포니아 주 북쪽에 있는 크레센트시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는 얼마 후 그곳을 떠났다. 하지만 오늘 난 그곳 크레센트 시를, 거기서 아내와 새 인생을 살아가려고 했던 것을, 그랬는데도 어쩌다가 그날 아침 이발소 의자에 앉아서 그곳을 떠나 뒤돌아보지 않기로 결심했는지를 생각했다. 나는 눈을 감고 손가락이 내 머리카락 사이로 움직일 때 느껴지던 평온함을, 손가락에 어려 있던 슬픔을, 벌써 다시 자라기 시작한 머리카락을 떠올렸다. - P343

내 거야


낮이 되며 해가 나오자 눈이 녹아 구정물이 됐다. 뒤뜰이 내다보이는 어깨 높이의 작은 유리창을 타고 물줄기들이 흘러내렸다. 자동차들이 바깥에서 진창을 만들며 지나갔다. 바깥도, 안도어두워지고 있었다.
남자가 침실에서 여행가방에 옷을 집어넣고 있는데 여자가 문으로 다가왔다.
당신이 떠난다니 다행이야, 당신 떠난다니 다행이라고! 내 말안 들려? 여자가 말했다.
남자는 가방에 자기 물건을 계속 집어넣을 뿐 고개를 들어 보지 않았다.
개자식아! 네가 가서 너무 기쁘다고! 여자가 울기 시작했다. - P347

내 얼굴도 똑바로 못 보는구나, 그렇지? 그러더니 여자는 침대에 놓인 아기 사진을 발견하고 집어들었다.
남자가 여자를 보자 여자는 눈가를 훔치고 남자를 노려보다가 뒤돌아 거실로 다시 나갔다.
그거 가져와
당신 물건이나 챙겨서 나가. 여자가 말했다.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방을 잠그고 코트를 걸치고 침실을 둘러보고는 불을 껐다. 그런 다음 거실로 나갔다. 여자는 좁은 부엌의 문가에 서서 아기를 안고 있었다.
애 이리 줘. 남자가 말했다. - P348

미쳤어?
아니, 하지만 애는 내가 데려갈 거야. 아기 물건 가져갈 사람은 따로 부를 거야.
헛소리 마! 아기는 건드릴 생각도 하지마.
아기가 울기 시작하자 여자가 아기의 머리에서 담요를 걷었다.
그래, 그래. 여자가 아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갔다.
왜 이래! 여자가 말했다. 그리고 뒤로 물러나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애 이리 줘. - P348

꺼져버려!
남자가 다가오자 여자가 뒤로 돌아 아기를 스토브 뒤쪽 구석에서 들어올렸다.
남자가 스토브 위로 손을 뻗어 아기를 꽉 잡았다.
애 놔줘. 남자가 말했다.
저리가 저리 가라고! 여자가 소리쳤다.
아기는 얼굴이 시뻘게져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둘은 옥신각신하다가 스토브 뒤에 걸려 있던 작은 화분을 떨어뜨렸다.
그때 남자가 여자를 벽에 몰아붙이고, 여자의 손을 풀려고 하면서 아기를 붙잡은 채 체중을 실어 여자의 팔을 밀어냈다.
애 놔주라고. 남자가 말했다. - P349

하지 마. 애 아프잖아! 여자가 말했다.
남자는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부엌 유리창으로 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그곳에서 남자는 한 손으로는 여자의 주먹 쥔 손가락을 풀려고 애쓰면서 다른 손으로는 울고 있는 아기의 겨드랑이 밑을 받쳐들었다.
여자는 손가락이 강제로 펴지고 아기가 자기에게서 떨어지는걸 느꼈다. 안 돼, 아기를 놓치는 순간 여자가 말했다. 여자는 아기를, 탁자에 놓인 사진 속에서 토실토실한 얼굴로 그들을 올려다보고 있는 아기를 자기가 데리고 있을 생각이었다. 여자는 아 - P349

기의 다른 팔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기의 손목을 잡고는 뒤로기댔다.
남자는 놓아주려고 하지 않았다. 아기가 자기 손에서 빠져나가는 걸 느끼고 세게 잡아당겼다. 아주 세게 잡아당겼다.
이런 식으로 두 사람은 이 문제를 결정지었다. - P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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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분간 그대로 거기 앉아서, 아버지와 나는 배스들이 깊은 물에서 위로 헤엄쳐 올라와 우리 앞에서 한가로이 노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멍청이는 그냥 서서 손가락을 잡아당기며 누군가를 기다리기라도 하듯 연못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계란 모양으로 높은 가장 큰 돌더미가 물과 맞닿은 자리. 아버지가 연못에서 가장 깊은 곳이라던 데가 그대로 들여다보였다. 나는 연못 가장자리를 훑어보았다 버드나무숲, 자작나무들, 저 끝에 있는 등심초화단, 한 블록 떨어진 곳에서 검정새들이 날아오고 날아가며 여름처럼 높은 음조로 지저귀는 것을 이제 해가 우리 등뒤에서 기분좋을 정도로 따스하게 목을 비추었다. 바람은 없었다. 연못 곳곳에서 배스들이 위로 올라와 수면을 건드리거나, 물위로 뛰어올랐다가 옆으로 떨어지거나, 아니면 수면으로 올라와 등지느러미만 검정 부채처럼 물 밖으로 내밀고 유영했다. - P302

그해 2월에 강이 범람했다.
12월 초순 내내 우리가 살던 지역 전역에 눈이 심하게 내렸고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자 날이 매우 추워지더니 땅도 얼어붙고 눈도 녹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았다. 1월 말이 다가오자 차누크바람이 불어왔다. 어느 날 아침에 깨어나보니 집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와 지붕에서 물이 졸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은 닷새간 계속 불었고 사흘째가 되자 강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15피트까지 차올랐어." 어느 날 저녁 아버지가 신문을 보다가 말했다. "홍수위보다 3피트 높아진 거야. 멍청이 녀석 물고기 잃어버리게 생겼군." - P306

습하고 바람이 거센 날이었고, 시커멓고 조각난 구름 덩어리들이 잿빛 하늘을 빠르게 오갔다. 땅은 흠뻑 젖어 있었고 우리는 빽빽한 풀숲에서 물웅덩이와 계속 마주쳤지만 피해갈 수가 없어서 그냥 해치고 갔다. 대니는 그때 막 욕을 배우기 시작한 터라 신발이 물에 잠길 때마다 거칠게 욕설을 잔뜩 내뱉었다. 목초지가 끝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물이 불어난 강을 볼 수 있었는데, 아직도 수위가 높았고 물이 물길을 벗어나 나무줄기들 주변에서 물결치며 땅을 가장자리에서부터 조금씩 침식하고 있었다. 강가운데에서는 물이 세차고 빠르게 움직였고, 때때로 수면 위로 덤불이나 가지가 튀어나온 나무가 떠갔다. - P307

버트는 이미 재떨이를 집어들고 식탁에서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그는 재털이이 가장자리를 쥐고 있었고, 양 어깨가 움츠러들어 있었다. 마치 원반처럼 재떨이를 던질 태세였다.
"제발" 베라가 말했다. "좀 가주라. 버트, 그 재떨이 우리 거잖아. 제발. 가라고."
버트는 베라에게 인사하고 테라스 문으로 나왔다.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자기가 뭔가는 증명했다고 생각했다. 버트는 그로써 자기가 아직도 그녀를 사랑한다는 걸, 그리고 자기가 질투한다는 확실히 보여줬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녀와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조만간 그녀와 진지하게 이야기해야 할 것이었다. 정리해야 할 일들이, 논의해야 할 중요한 일들이 아직 있었다. 둘은 다시 대화할 것이었다. 아마도 명절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나면. 버트는 진입로에 떨어져 있는 파이를 빙 둘러서 차에 탔다. 시동을 걸고 후진 기어를 넣었다. 그는 거리로 나왔다. 그러고는 기어를 저단에 놓고 앞으로 나아갔다. - 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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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말이다. 레스, 그때 죽은 느낌이다. 내 일부는 정말로 죽었어. 네 엄마가 날 떠난 건 잘한 거야. 아무렴 그랬어야지. 하지만 래리 웨인을 묻어서는 안 되는 거였어! 내가 죽고 싶다는 말은 아니다. 레스, 그건 아니야. 까놓고 말하자면 나도 내가 아니라 그 친구가 묻히는 쪽을 택할 거다. 선택을 해야만 한다면 말이야...... 나는 삶이니 죽음이니 하는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구나. 한번 죽으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지만 양심에 짐을 지고 살아가는 건 힘이 드는구나, 그러니까 그게 자꾸 생각나고 내가 저지른 일 때문에 그 친구가죽어야 했다는 사실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단 말이다. - P121

빌은 자기가 작아지는 게, 여위어지고 무게가 없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귀를 올려붙이는 강한 바람을 마주보는 느낌이 들었다. 빌은 뛰어 달아나고 싶었지만, 뭔가가 자기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형상이 바위의 그림자들과 만나자 그림자들이 그 형상 아래에서, 그것과 함께 움직이는 듯싶었다. 바닥이 기이한 각도로 빛을 받아 뒤틀린 듯했다. 비이성적이게도 빌은 언덕 아래의 자동차 근처에 세워진 자전거 두 대를 떠올리며, - P202

마치 둘 중 한 대를 없애버리면 이 모든 일이 바뀌어, 그가 언덕꼭대기에 올랐을 때 여자가 더이상 나타나지 않게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제리가 빌 앞에, 온몸의 뼈가 사라진 듯 축 늘어진채서 있었다. 빌은 둘의 몸,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두 몸이 끔찍할 만큼 가깝게 느껴졌다. 그때 빌의 어깨에 제리의 머리가 내려앉았다. 빌은 손을 들어, 둘 사이를 갈라놓는 거리가 적어도 이 정도 의미는 있다는 듯, 상대를 토닥이고 쓰다듬기 시작했고, 눈에서는 눈물이 솟았다. - P203

뒷문 현관 등불에서 나오는 노란 불빛이 유리창에 어렸다. 그는 두 눈을 뜨고 누워서 바람이 집을 뒤흔드는 소리에 귀기울였다. 다시 내면에서 뭔가가 일어나는 게 느껴졌지만, 이번에는 분노가 아니었다. 그는 움직이지 않고 좀더 누워 있었다. 기다리듯 누워 있었다. 그때 뭔가가 그를 떠나고 다른 뭔가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는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고, 단어들과 구절들이 급류처럼 마음에 차올랐다. 그는 천천히 기도했다. 단어를 하나하나 붙여나가며 기도했다. 이번에는 소녀와 히피 남자도 기도에 넣을 수 있었다. 그래, 하고 싶은 대로하게 두자, 밴을 몰고 오만하게 굴고 웃음을 터뜨리고 반지를 끼고, 원한다면 속임수도 쓰라지. 한편, 기도도 필요했다. 두 사람도 기도를 써먹을 수 있을 것이고, 심지어 그의 기도, 아니 특히 그의 기도를 써먹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는 모든 이를 위해, 살아 있는 이와 죽은 이 모두를 위해 다시 기도하며 말했다. "당신뜻에 부합한다면." - P240

과거는 불확실하다. 꼭 어린 시절에 얇은 막을 씌워둔 느낌이다. 나는 내게 일어났던 일이라고 기억하는 일들이 정말로 일어났었는지 확신할 수 없다. 부모와 함께 살던 한 여자애가 있었는데ㅡ아버지는 작은 카페를 운영했고 어머니는 거기서 웨이트리스와 계산원으로 일했다꿈결처럼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일이 년 후에 비서양성학교에 들어갔다. 나중에, 한참 뒤에ㅡ그사이의 시간은 어떻게 된 거지? 그 여자는 다른 도시에서 전자부품회사의 접수원으로 일하면서 자기에게 데이트를 신청한어떤 기술자와 가까워지게 된다. 결국 여자는 남자의 목적이 뭔지 알고서, 유혹에 몸을 맡긴다. 당시에는 어떤 직감이 그 유혹을 꿰뚫어보는 통찰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이 뭔지 떠올릴 수 없었다. 얼마 후 두 사람은 결혼하기로 결정했지만, 과거는, 여자의 과거는 이미 멀어지고 있었다. 미래는 여자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P259

우리 아버지는 멍청이가 죽은 후로 오랫동안 아주 예민하고 괴팍하게 굴었다. 나는 어쩐지 그 사건이 아버지 인생에서 평온한 시기가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라고 느꼈는데, 아버지 건강이나빠지기 시작한 게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기 때문이다. 첫째는 멍청이 일, 다음은 진주만 사건. 그리고 다음은 웨나치 근방에 있는 할아버지 농장으로 이사한 일이었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사과나무 여남은 그루와 소 다섯 마리를 보살피며 마지막 나날을 보냈다.
내게 멍청이의 죽음은 유달리 긴 어린 시절이 끝나고, 내가 준비되었든 그렇지 않든 어른의 세상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ㅡ패배와 죽음이 좀더 자연의 질서에 따라가는 세상으로.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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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 누워 있는데 뒷대문 걸쇠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소리는 분명 들렸다. 난 클리프를 깨우려 했지만 그는 곯아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일어나서 창문으로 다가갔다. 도시를 둘러싼 산맥 위에 커다란 달이 걸려 있었다. 하얗고 상처투성이인달, 사람 얼굴을 쉽사리 떠올릴 수 있었다-눈구멍, 코, 입술까지. 빛이 밝아서 뒤뜰이 훤히 보였다. 야외용 의자, 버드나무, 작대기에 걸어놓은 빨랫줄, 내 피튜니아들, 뜰을 감싸고 있는 울타리, 열려 있는 뒷대문.
하지만 바깥에선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검은 그림자는 없었다. 모든 것이 밝은 달빛 아래 놓여 있었고, 지극히 작은 것까 - P81

지도 내 의식에 들어왔다. 이를테면 빨랫줄에 나란히 걸린 빨래집게. 그리고 비어 있는 야외용의자 두 개. 나는 시원한 유리창에 양손을 대어 달을 가리고, 좀더 내다봤다. 귀를 기울였다. 그러고는 잠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계속 뒤척였다. 나는 초대장처럼 열려 있는 뒷대문을 생각했다. 클리프는호흡이 거칠었다. 입은 쩍 벌어지고 양팔은 벌거벗은 창백한 가슴을 끌어안고 있었다. 그는 자기 자리뿐 아니라 내 자리도 상당부분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그를 밀고 또 밀었다. 하지만 그는끙하는 소리만 낼 뿐이었다. 난 침대에 좀더 누워 있다가 마침내부질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일어나서 슬리퍼를 찾았다. 부엌으로 가서 차를 한 잔 탄 다음 식탁에 앉았다. 클리프의 필터 없는 담배를 한 대 피웠다. 늦은 시각이었다.  - P82

시계를 보고 싶지 않았다. 몇 시간 뒤면 일 때문에 일어나야 했다. 클리프도 일어나야 했지만, 몇 시간 전에 잠들었으니 알람이 울릴 때쯤이면 괜찮을 터였다. 클리프는 어쩌면 머리가 아플지도 모른다. 하지만 커피를 엄청 마실 거고 화장실에서도 느긋하게 일을 볼거다. 아스피린 네 알이면 괜찮아지겠지. 나는 차를 마시고 담배를 한 대 더 태웠다. 잠시 후 나는 밖으로 나가서 뒷대문을 잠그기로 했다. 그래서 목욕가운을 찾았다. 그러고는 뒷문으로 갔다.
내다보니 별이 보였지만, 내 주의를 끌며 주위를 집과 나무, 전 - P82

신주와 전깃줄, 동네 전체를 ㅡ 온통 비추는 것은 달이었다. 나는 뒤뜰을 살펴보다 현관을 나섰다. 산들바람이 살짝 불어와서 목욕가운을 여몄다. 나는 열린 뒷대문을 향해 움직였다.
우리집과 샘 로턴의 집을 가르는 울타리에서 무슨 소리가 났다. 난 얼른 그곳을 봤다. 샘이 울타리에 두 팔을 기댄 채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입에 주먹을 가져다 대고는 마른기침을 뱉었다. - P83

나는 그 집에서 나와 보도를 따라 걸었다. 우리집 대문에 손을얹은 채 잠시 멈춰 서서 고요한 동네를 둘러보았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불현듯 어린아이였을 때 내가 알고 사랑하던 모든 사람들에게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이 그리웠다. 나는 잠시 그대로 서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했다. 다음 순간 난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안 되지. 하지만 그 순간, 앞일을 내다보던 젊은 시절에 상상하던 삶과 지금의 내삶이 전혀 닮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그 당시에 내가어떻게 살고 싶어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내게도 계획이 있었다. 클리프에게도 계획이 있었고, 우리가 만 - P91

나서 함께 지내게 된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나는 집으로 들어가서 불을 모두 껐다. 침실에 들어가 목욕가운을 벗어서 갠 뒤, 알람이 울리면 집을 수 있도록 가운을 손닿는 데 놓았다. 나는 시간을 보지 않고 알람 단추가 나와 있는지다시 확인했다. 그러고는 잠자리에 누워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 클리프가 코를 골기 시작했다. 난 그를 쿡 찔렀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그는 계속 코를 골았다. 나는 코 고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다가 뒷대문 걸쇠를 잠그지 않았다는 게 떠올랐다. 결국 나는 눈을 뜨고 그대로 누워서, 눈을 돌리며 방에 있는 것들을 훑었다. 잠시 후 나는 옆으로 누워 클리프의 허리에 팔을 얹었다. 그리고 그를 조금 흔들었다. 그는 잠시 코 고는 걸 멈췄다. 그러더니 헛기침을 했다. 그는 침을 삼켰다. 뭔가 걸렸는지 가슴에서그르렁거렸다. 그는 무겁게 한숨을 쉬더니, 다시 코를 골기 시작했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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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볼 만큼 봤다. 며칠 묵으려고 어머니 집에 갔는데, 계단을다 올랐을 때 보니 어머니가 소파에서 웬 남자와 키스하고 있었다. 때는 여름에, 문이 열려 있고 컬러 TV가 켜져 있었다.
어머니는 예순다섯이고 외롭다. 독신자 클럽에 다닌다. 하지만 그래도, 이런 걸 다 알면서도 난 괴로웠다. 나는 난간을 잡고 계단참에 서서 남자가 어머니에게 더 진하게 키스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머니도 키스에 응하고 있었고, 거실 반대쪽에는TV가 켜져 있었다. 일요일, 오후 다섯시쯤이었다. 그곳 아파트주민들은 아래층에 있는 수영장에 있었다. 나는 계단을 도로 내려가 내 차에 탔다. - P39

"이제 좀 쉬어라." 어머니가 말했다. "넌 자야 돼."
"잘게요. 무지 졸려요."
"TV 보고 싶을 때까지 보렴."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몸을 숙여 내게 키스했다. 어머니 입술이 멍들고 부풀어 있는 느낌이었다. 어머니는 내게 담요를 덮어주었다. 그러더니 침실로 갔다. 어머니는 문을 열어두었고, 얼마 후 코 고는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곳에 누워 TV를 응시했다. 제복 차림의 남자들 영상, 낮은 웅얼거림, 그리고 탱크들, 화염방사기를 든 한 남자가 나왔다. 소리가 잘 안 들렸지만 일어나기가 싫었다. 나는 눈이 감길때까지 계속 응시했다. 하지만 깜짝 놀라서 깨보니, 파자마가 땀으로 축축했다. 눈처럼 흰 빛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굉음이 들려왔다. 방이 요란했다. 나는 누워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 P58

처음 이곳으로 이사해서 모텔 매니저가 되었을 때, 우리는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집세와 수도 전기 요금도 없고 한달 수입이 삼백 달러였으니,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홀리는 장부를 맡았는데, 계산에 밝았고 숙박 건도 거의 혼자 처리했다.
홀리는 사람들을 좋아했고 사람들도 홀리를 좋아했다. 나는 모텔 주변을 맡아서, 잔디를 깎고 잡초를 베어내고 수영장을 깨끗하게 하고 간단한 수리를 했다. 첫해에는 모든 게 순조로웠다. 나는 밤에 다른 일을 하나 더 하면서 야간 근무를 했고, 우리는 잘나가고 있었고 계획도 하나 가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잘 모르겠는데, 내가 막 어떤 객실의 화장실 타일을 깔았을때 이 자그마한 멕시코 청소부가 청소하러 들어온다. 홀리가 고용한 여자다. 내가 그전에 그 여자를 의식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보면 인사는 했지만 말이다. 그 여자는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여하간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 P63

음주라는 게 웃기다. 뒤돌아보면 우리는 중요한 일들을 언제나 술을 마시면서 결정했다. 술을 줄여야 한다는 얘기를 할 때도, 식탁이나 피크닉 테이블에 앉아 여섯 개들이 맥주나 위스키한 병을 앞에 두고 있었다. 이곳으로 이사해서 모텔 일을 맡아, 예전 동네와 친구들과 인간관계와 기타 모든 것을 떠나기로 결정했을 때도 우린 밤새 마시며 장단점을 따져보며 취했다. 하지만 예전에는 통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홀리가 우리삶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 좀 해야겠다고 말했을 때, 내가 사무실 문을 닫고 위층으로 올라오기 전에 처음으로 한 일도 주류 판매점으로 달려가 티처스를 사온 것이다.
나는 남은 술을 잔에 다 따르고 얼음과 물을 조금 더 탄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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