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클린은 어릴 때부터 의심이 많았다. "나는 요한계시록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또한 그는 종교 전통을 친근하게 조롱하곤했다. 하루는 그의 아버지가 여느 때처럼 식사 자리에서 감사기도를 올리자 벤이 유익한 제안을 하나 내놓았다. "아버지, 제 생각에는 음식통 앞에서 감사기도를 한 번에 끝내면 시간을 엄청나게 절약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조사이아 프랭클린은 목사가 벤처럼 꾀바른 회의주의자를 절대 받아주지 않으리란 것을 알았다. 교육의 목적은 성직자가 되는 것이었으므로 이제 벤저민의 교육은 무의미했다.
프랭클린의 교육이 도중에 중단되었다는 사실(대다수 건국의 아버지들에 비해 훨씬 부족했다)은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 이 사실은 나만큼이나 깊은 벤저민의 한을 설명해준다. 그가 라틴어와 고대그리스어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는 관습을 왜 "돌팔이 문학"이라고 비난했는지 설명해준다. 그가 속물적인 우월의식의 기미만 보여도 알레르기를 일으킨 이유를 설명해준다. 무엇보다 기민 - P45

하고 지략이 풍부한 그의 지성을 설명해준다. 벤을 학교에서 빼낸 조사이아 프랭클린의 결정은 지금 돌아보면 벤저민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다. 섭리를 의심하지 말지어다.
삶은 되돌아볼 때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지만 우리는 앞을 보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덴마크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는 말했다.
어쩌면 우리는 비디오를 되감듯 우리 삶을 거꾸로 돌아볼 때 섭리를 더욱 잘 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섭리는 언제나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동하고 있는데 우리가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섭리의 솜씨에 감탄하기 위해 꼭 필요한 거리는 오로지 시간만이 제공해준다. - P46

벤 프랭클린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길고 쓸모 있는 삶은 책과 밀접하게 얽혀 있었다. 그는 책을 읽고 쓰고 사고팔고 빌리고 빌려주고 편집하고 인쇄하고 선물하고 수집하고 사랑했다. 필라델피아에서는 스물다섯 살의 나이에 미국 최초의 관외대출 도서관을 세웠다. 그곳에서 매일 최소 한두 시간 독서했고 "그렇게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학교에 다니다 도중에 중단된 교육을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었다." 1790년에 세상을 떠날 무렵에는 집에 책이 4276권 있었다. 젊은 국가인 미국에서 가장 대규모의 개인 장서중 하나였다.
당시 출판업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구어를 제외하면 출판물이 유일한 정보 전달 매체였고 글쓰기가 유일한 의사소통 형태였다. 무언가를 배우고 싶으면 직접 가서 듣거나 관련도서를 읽어야 했다. 무엇을 읽느냐가 곧 그 사람을 정의했고 벤저민 프랭클린만큼 이 사실을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 P48

 어릴 때부터 가능성주의자였던 그는 창조적재능과 가장 밀접하게 결부되는 성격적 특성, 바로 경험에 대한 개방성을 지니고 있었다. 프랭클린에게는 독서가 곧 경험이었다.
프랭클린은 책을 사랑했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했다. 어린 시절 친구들을 설명할 때 그는 친구들의 직업은 별로 언급하지 않고 그저 그들이 "전부 독서 애호가였다고만 말한다. 책은프랭클린의 길을 터주기도 했다. 뉴욕의 왕립총독은 벤이 인상적인장서 목록을 가졌다는 말만 듣고 젊은 벤을 만났다.
벤은 책에 너그러워서 빌린 책을 잘 돌려주지 않는 친구들에게도 선뜻 책을 빌려주었다. 영국인 친구인 조너선 시플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는 어떤 책을 더 빨리 보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그 책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에게 빌려준 것 같은데, 그게 누구인지 생각이 안 난다네." 이런 일이 빈번했다. 한번은 자신이 소유한 신문인 <펜실베이니아 가제트>에 자기책을 빌려간 사람은 책을 돌려주면 고맙겠다는 내용의 광고를 싣기도 했다. 관대함에는 대가가 따른다. 벤 프랭클린은 그 대가를 기꺼이 지불했다. - P53

프랭클린의 가장 기발한 실험 중 하나는 물과 기름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기름을 약간 넣으면 격렬한 물살을 잠재울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느 날 한 연못에서 그는 의심 많은 남자를만났다.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합니까? 그러자 프랭클린은 화려한쇼맨십을 선보이며 그 ‘마술‘을 직접 실연했다. 남자는 깜짝 놀라서 말을 잃었다.
"그렇다면 선생님." 남자가 버벅대며 말했다.
"저는 여기서 무엇을 얻어야 할까요?"
"딱 하나, 직접 본 것만 얻어가세요." 프랭클린이 대답했다.
이게 바로 경험주의다. 프랭클린에게 경험은 얄팍하거나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경험은 지식의 한 형태였다. 책은 우리를 멀리데려가지 못한다. 경험은 다르다. 책의 타당성은 의심할 수 있지만경험의 타당성은 그렇지 않다. 책은 반박할 수 있다. 그러나 경험은 그럴 수 없다. - P65

벤은 인쇄소에서 다양한 책뿐만 아니라 런던의 흥미로운 잡지인 애디슨과 스틸의 <스펙테이터> 같은 정기간행물도 접할 수 있었다. 벤은 특별한 독학 방식을 개발했다. 바로 짧은 글을 읽고 문장을 마구 뒤섞은 다음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그는 모방을 통해 배우고 있었지만 여기에는 약간의 반전이 있었다. 그는 저자의 글쓰기 기법을 흉내 낸 다음 자기만의 미사여구를 추가했다. 훗날 벤은 "선인을 모방하는 것과 선인을 가장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모방은 선인을 영광스럽게 한다. 가장은 선인을 모욕한다.
비록 벤보다 늦은 나이였지만 나도 똑같은 방식으로 글쓰기를 배웠다. 먼저 내가 존경하는 작가들의 책을 읽었다. 잰 모리스, 피코 아이어, 이탈로 칼비노, 존 스타인벡, 폴 서루. 그리고 그들처럼 문장을 구성했다. 처음에는 지나치게 비슷했다. 나는 그들을 가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내가 만들어낸 문장들은 비슷하긴해도 그들의 것은 아니었다. 그 문장들은 내 것이었다. 나는 그들 - P73

을 모방하고 있었다.
내가 처음 발표한 글은 뉴저지 매디슨 적십자 지부의 뉴스레터에 실렸다. 헌혈 캠페인이나, 아니면 홍수 대비 요령에 관한 글이었을 것이다. 완성된 결과물을 처음 바라보며 느꼈던 기쁨의 전율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여기 내 글이, 나의 것이 내 이름과 함께 실려 있었다. 그때 나는 열아홉 살이었는데, 프랭클린의 기준에는 노령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린 벤은 겨우 열두 살 때 두 편의 시를 썼다. 둘 다 바다가 주제였다. 하나는 악명 높은 해적인 검은 수염의 생포와 처형을 노래했다. 다른 하나는 ‘등대의 비극"이라는 제목의 발라드로, 등대지기와 그 가족이 익사하는 음울한 이야기였다. 열두 살에게는 다소 어두운 소재였지만 그때도 벤은 무엇이 좋은 이야기인지 잘알았다. - P74

철학자이자 1960년대의 구루였던 앨런 와츠는 이 형이상학적 미로의 출구를 제시했다. 더 이상 진정한 자기라는 환상 때문에초조해하지 말고 "진실한 가짜"가 돼라." 진실한 가짜는 사기꾼도 아니고 착각에 빠진 것도 아니다. 진실한 가짜는 자기 역할, 아니 역할들에 너무 깊이 몰입해서 배역과 사람, 가면과 얼굴이 하나가 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종류의 가면을 쓰느냐가 아니라 그 가면이 우리 얼굴에 얼마나 잘 맞느냐다. 벤 프랭클린의 가면은 그의 얼굴에 잘 맞았다. 그는 진실한 가짜였다.
프랭클린은 ‘마치‘의 철학을 지지했다. 자기 삶을 마치 좋다는듯이 살아가다 보면 삶은 어느새 정말로 좋아져 있다. 동료 인간을 마치 좋은 사람처럼 대하다 보면 언젠가 그들은 정말로 좋은사람, 아니면 적어도 더 나은 사람이 된다. 프랭클린이 자기 가면중 하나인 리처드 손더스를 통해서 한 말처럼 "보이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 제대로 연기해야 한다." - P87

좁은 골목길로 꺾어 들어가니 관광객으로 붐비는 구시가지에서 노동자들이 사는 동네로 갑자기 내던져진 느낌이다. 가죽 앞치마의 지역이다. 허름한 가게가 보이고("미스터 바 스툴, 재고 수천개보유) 둥근톱과 망치 소리를 박자 삼아 살사 선율이 흐르는 건설 현장이 나타난다. 이들이 프랭클린의 사람들이다. 부자에 전세계적 유명인이 되었을 때도 프랭클린은 본인을 가죽 앞치마로여겼다. "기술을 소유한 자가 재산을 소유한다."
프랭클린과 필라델피아는 꼭 맞는 영혼의 단짝이었다. 둘 다젊고 다급했다. 둘 다 너그러운 정신과 대단한 수완을 지녔다. 둘 - P106

다 꾀죄죄하고 세련미가 없었다. 둘 다 질서를 열망했으나 얻지는 못했다.
필라델피아는 프랭클린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 바로 익명성을 제공했다. 형과의 도제 계약을 깨버린 프랭클린은 엄밀히 말하면 도망자였고 체포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필라델피아에서 그럴 가능성은 낮았다. 그 누구도 어디 출신이고 이름이 무엇인지를 묻지 않았다. 당신은 무슨 일을 할 수 있습니까? 필라델피아 주민들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곳은 교회가 삶의 방식을 결정하지 않는 곳이었다. 돈 한 푼없는 꾀죄죄한 도망자들을 환영하는 곳이었다. 선행이 필요한 곳이었다. 이곳은 새롭게 출발하기에 완벽한 장소였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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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일


맹감나무 열매가 파래지는 유월 아침이었다
개에게 아침을 먹이고 어르신을 기다렸다
안녕하세요, 아 네 좋은 아침입니다.
우리는 굴참나무 아래서 만나 산책에 나섰다

어르신이 먼저 늙은 개와 함께 앞장섰고
나는 아직 천방지축인 녀석을 데리고 
뒤따랐다
이 개는 사람 나이로 치면 아흔이 넘어요,
늙은 개는 소나무 빽빽한 숲길에서도
개옻나무가 줄지어 선 오솔길에서도
산딸기 덤불이 우거진 모퉁이에서도
연신 코를 흠흠, 느리게 걸었고
어르신은 느긋하게 걸음을 맞췄다

성우씨, 매운 고추를 뭐라 하지요?
여기서는 땡초라하지 않나요?
어르신은 땡초라는 말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았다며 싱겁고 환하게 웃었다 - P72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늙은 개의 목줄을 잡고 걷던 어르신이
문득 걸음을 멈추는가 싶더니
남의 집 고구마밭으로 들어섰다
무슨 일이지? 개를 세워두고
밭 안쪽으로 몇걸음 옮겼다 나온
어르신의 손에는 환삼덩굴이 들려 있었다
그냥 놔두면 무성한 가시 줄기를
거침없이 키워나갈 덩굴풀,

남의 집 밭고랑에 들어가
풀 한포기 뽑아 나오는 마음이
내 마음으로 들어오는 아침이었다 - P73

매우 중요한 참견


호박 줄기가 길 안쪽으로 성큼성큼 들어와 있다

느릿느릿 길을 밀고 나온 송앵순 할매가
호박 줄기 머리를 들어 길 바깥으로 놓아주고는

짱짱한 초가을볕 앞세우고 깐닥깐닥 가던 길 간다 - P104

머위


사는 게 씁쓸하니?
사는 일 허하니 속도 허하다

그래, 머위가 지천이다 몸 일으켜
밤나무 언덕에 올라 머위를 뜯는다
한걸음 오르려다 두걸음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머위를 뜯는다

두어줌 남짓 뜯어 온 머위,
물 보글보글 끓여 데친다 훅훅
올라오는 쌉싸래한 머위 냄새,
찬물에 씻어 둥글둥글 뭉친다

된장 한숟갈 풀어 조물조물
머위를 무친다 외롭다는 말이나
허망타는 푸념 따위도 조물조물
버무려 한입 먹어본다 간이 맞나?
짜지는 않고 짭조름하게 간을 잡아
버무린 머위를 두고 창을 열어본다 - P112

그래 뭐 별거 있간디, 맹숭맹숭
싱겁게 나를 달래기도 하면서
조바심 낼 일도 성화 부릴 일도 없이
사는게 마땅찮다고 혀를 잘 일도 없이

머위 빛깔 초저녁이 마당으로 든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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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는 오케스트라만의 공연이었고, 2부에 정경화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기로 되어 있었다. 1부 내내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으며 정경화가 나오길 기다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참았다. 그런데 나의 인내심도 모르고 오케스트라연주는 길어지기만 했다. 급기야 오케스트라는 원래 계획에도 없던곡까지 연주를 했다. 정경화가 나와야 하는데, 정경화는 왜 안 나올까. 나는 점점 초조해졌다.
그리고 정경화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바이올린도 없이. 맨손으로, 정경화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바이올린을 잡는 대신 마이크를잡고 무대 위로 올라왔다. 정경화가 말을 했다. 오늘 오전에 갑자기손에 마비가 왔다고. 연주를 하는 대신 말을 했다. 연주를 할 수 없다고 말을 했다. - P136

그때 2층에서 내려다본 정경화는 작았고, 머리숱도 적었다. 나의 영웅 정경화가. 내 롤모델이 나를 그토록 울렸던 그 위대한 연주가가 작았고 적었고 마비가 왔다. 2005년의 일이었다.


***

그 후로 나는 정경화의 비발디 <사계> 공연을 보러 성남에 갔고 바르톡 공연을 보러 인천에도 갔다. 나는 그녀가 무사한지 확인을 해야 했다.
- P137

그리고 2012년. 명동성당에 정경화가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소나타를 들고 나타났다. 명동성당과 정경화와 바흐의 조합이라니.
그보다 더 어울리는 조합이 어디 있을까. 길고 딱딱한 성당 나무의자에 앉았다. 이런 분위기에 어떤 드레스를 입고 나올까 궁금해 하고 있었는데, 정경화는 드레스 대신 하얀 셔츠를 입고 성당 제단 앞에 섰다. 그보다 더 어울리는 차림이 또 어디 있을까. 누구보다 기품있었고,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1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오늘이 어머니의 기일이라 했다. 관객들도 숙연해졌다. 그 시절 한국에서 정경화라는 바이올리니스트도 모자라 정명화, 정명훈까지 길러낸 그 어머니. 모를수는 있어도, 알고 난 후에는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가 없는 그 어머 - P137

니에게 그보다 더 흡족한 제사가 어디 있을까 싶었다. 
진공상태와도 같은 침묵이 성당을 가득 메웠다. 그 공기를 뚫고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그 소리가 명동성당의 높다란 천장을 돌아 뒷벽에 부딪혀 내 귀로 들어왔을 때 나는 우주의 탄생을 귀로 듣는 느낌이었다. 먼 소리가 둥글게 지금의 나에게 도착하고 나는 먼 소리를 지금의 소리라 착각하며 멍하니 입을 벌리고 소리를좋았다. 높은 소리는 신생 별이었고 낮은 소리는 오래된 별이었다. 활과 바이올린 사이에는 공기가 흘렀고 지구와 달처럼 그 공기는 아득했고 멀리서 도착한 빛과 소리는 아름다웠다. - P138

그리고 <파르티타>. 그리고 무려 <샤콘느> 연주가 시작되었다. 바흐 《파르티타 2번의 마지막 악장인 <샤콘느>. 연주가의 기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곡. 하지만 그만큼 연주가의 깊이를 들키기 쉬운곡. 그래서 브람스는 이 곡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가장 깊은 생각과 가장 강렬한 느낌의 완전한 세계"라고. 젊은 연주가의 <샤콘느>는 깊이가 없고, 늙은 연주가의 <샤콘느>에는 기교가 부족하기 십상이다. 너무 젊지도 너무 늙지도 않은 그 팽팽한 긴장감의 나이에 <샤콘느>를 위한 나이가 있지 않을까? 어쩌면 지금이 정경화의 <샤콘느>가 아닐까?
어느새 나는, 20년 전 그때처럼 울고 있었다. 눈물이 흘러 턱에고였다. 닦을 생각도 못하고 펑펑 울어버렸다. 1974년, 정경화가 아 - P138

주 어렸을 때 녹음한 바로 그 바흐 <샤콘느> CD를 수십 년 동안 성경처럼 간직하며 들어온 나였다. 그런 내 앞에서, 예순도 넘은 정경화가 그 나이만큼 단정한 셔츠를 입고, 바흐를 연주하고 있었다. 작지 않았고 적지 않았고, 유연했고, 거대했고, 전부였다.


***

한때 정경화처럼 연주하고 싶었던 적이 있다. 때때로 정경화의 CD를 틀어놓고 정경화의 선율을 따라서 연주해보곤 했다. 물론단 한 음도 성공한 적은 없었다. 늘 몇 음 따라 하다 말고 바이올린을 내리고 정경화의 연주에 집중하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그 예쁘고 작고 예민하기 짝이 없는 바이올린은 나에게 영원한 수수께끼가 되어버렸다.  - P139

안다. 타고난 기억력의 소유자인지라 나는 그 곡을 기억하지 못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곡의 제목조차 알지 못한다. 한국에 돌아와서 키스 자렛의 곡들을 다시 찾아서 들어봤지만 비슷한 곡도 찾아내지 못했다. 실은 한 소절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판단할 기준조차 없다. 아마 다시 그 곡을 들려줘도 나는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혹은 음악이 너무 좋다며 이게 무슨 곡이냐고 물을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그 곡을 결코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꼭 기억하고 싶다. 피아노와 새들의 합주를 피아노가 멈추는 순간 시작되었던 새들의 독주를 새들의 독주를 듣기 위해 멈춘 피아노를, 그제야 들리고 보이고 만져졌던 보석들을 그 보석들을 지금 우리가 오롯이 누리고 있다는 깨달음을. 행복에 정수리까지찌릿찌릿해지던 순간을, 그 순간의 나를. 우리를. - P148

카메라라는 걸 손에 쥐고 처음 나간 순간을 기억한다. 안보이던 게 보였다. 방금 있었던 것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걸 보았고, 지금의 빛은 1분 후에 다른 빛이 되는 걸 보았다. 나는 경이에 차 있었는데, 사람들은 무심한 표정으로 내 옆을 지나갔다. 노을이 지고있는데, 저렇게 노을이 지고 있는데, 노을빛 때문에 이 벽이 이렇게아름답게 빛나는데.
그때 깨달았다. 나는 카메라를 쥔 것이 아니라 다른 눈을 쥐게 되었다는 걸. 남들 눈에는 안 보이는 세상을 보는 눈을 얻었다는 걸. - P153

외국 여행을 갈 때에도 언제나 이 카메라부터 챙긴다. 무겁고, 귀찮다. 하지만 이 카메라가 없는 순간이 두렵다. 너무 찍고 싶은 순간이 왔을 때 이 카메라가 없어서 난감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다른 카메라를 탐낸 적은 없다. 다른 렌즈를 사고 싶어 한 적도없다. 비싼 라이카도 최신식 카메라도 나에겐 관심 밖의 이야기다. 다행이라 생각한다. 장비에 대한 욕심이 없어서. 다만 다른 사진에대한 욕심은 많다. 끝도 없다. 남들이 찍은 사진을 볼 때마다 내 사진과 비교하며 초라해진다. 어쩜 이렇게 찍을 수 있을까 탄복을 하면서 그 실력에 욕심을 낸다. 사진을 찍기 시작한 이래로 이 욕심은 더해가기만 할 뿐 줄어들진 않는다. 아마 평생 그렇게 살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평생 잘 찍지 못할 것이다. 평생 잘 찍는 누군가의 사진을보며 부러워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또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 평생 찍을 것이라는것을. 그렇게 찍는 순간은 어쨌거나 나만의 순간이 된다는 것을. 대단하진 않을지라도 나만의 시선은 끊임없이 버려지리라는 것을. - P156

처음부터 의도는 없었다. 의도가 있었다면 이토록 성실할수 없었을 것이다. 늘 마음이 먼저 움직였다. 멀리서도 보였고, 다가갈수록 가슴이 뛰었다. 찍고 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그랬다. 기분이 너무 좋아 ‘내가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하고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그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성실했다. 좋은 기분을 위해 성실했다. 아니, 어쩌면 성실하다는 표현은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냥 마음을 따라갔을 뿐이다. 마음의 움직임에 몸의 움직임을 맡겼을 뿐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에게는 수많은 나라들의 수많은 도시들의, 수많은 벽의 기억이 생겼다. - P159

사진을 배우고 난 후 처음으로 깨달은 사실은 사람만큼 사진에서 큰 역할을 차지하는 요소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사진 앞에서도 사람의 눈은 신기하게도 사람을 가장 먼저 찾아낸다. 아무리 구석에 있는 사람이라도, 아무리 작은 사람이라도 어김없다. 어떤 사진 앞에서도, 어떤 사람이라도 똑같다. 덕분에 사람이 없는 사진은생기가 없기 십상이다. 물론 사람 하나 없이도 눈을 사로잡는 위대한 사진도 많다. 그 경지에 오르지 못한 내 경우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나는 사람이라는 피사체가 필요했다. 그 순간, 그 표정, 그 몸짓, 그러니까 그때가 아니면 다시 오지 않을 그 사람을 찍고 싶었다. 그 - P167

래서 사람을 중심으로 찍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벽 사진만은 예외였다. 벽 사진에는 사람이 필요치 않았다. 누군가가 신경 써서 가꿔놓은 창가, 창문마다 다르게 걸려 있는레이스 커튼들, 거리낄 것 없이 다 내보이는 창문들, 해를 향해 가슴을 열어젖힌 빨래들, 해가 넘어간 뒤에도 바람에 걸려 있는 빨래들, 벽에 무심하게 기대 있는 자전거, 새 칠을 입은 벽, 한 번도 칠해지지않은 벽, 지금 막 누가 그림을 그려넣고 있는 벽, 폐허에 홀로 남은벽, 노란 벽, 파란 벽, 주황색 벽, 그 모든 색이 다 섞인 벽 등, 벽은언제나 그 자체로 완벽한 모델이 되어주었다. - P169

하지만 그런 걸 감히 꿈이라 불러도 되나. 그건 그저 욕망이라불러야 하는 것 아닐까. 혼란스러웠다. 그러다 나는 늙어버렸으면좋겠다고 생각했다. 10대엔 10대라 힘들었고, 20대엔 20대라 너무힘들었다. 왜 이렇게 시간은 무정형이지. 왜 이렇게 나는 휘청일까. 사소한 상처 따위는 신경도 안 쓰는 나이가 분명 있을 텐데. 울음이멈추는 나이가 나에게도 분명 올 텐데. 그건 또 언제인가. 60이 되면 괜찮을 것만 같았다. 고요한 시간이 드디어 내게도 찾아올 것 같았 - P180

다. 어떤 자극이 찾아와도 무심하게 고요하게.
60이 되고 싶었다. 그게 꿈이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그저 늙어가는 것이 꿈이 될 수 있는 건가. 그냥 늙고 싶은 건가. 그건 아니지 않은가. 60살이 된 내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보았다. 고요한 얼굴이고 싶었다. 세상의 어떤 풍파도 감히 박살낼 수 없는 깊고 따뜻한 얼굴이면 좋겠다 싶었다. 그렇다면 그저 늙는 것이 아니라잘 늙어야 했다. 그때면 얼굴에 모든 것이 다 새겨져 있을 텐데, 지금까지의 시간과 만남과 선택과 마음이 모두 새겨져 있을 텐데, 그얼굴에 책임을 지고 싶었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괜찮은 인생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잘 늙고 싶다는 것도 꿈으로서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모든 취업 원서에 ‘잘 늙기‘를 꿈으로 써냈다.
50군데 원서를 내고도 50군데에 다 떨어진 건 어쩌면 그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 P181

물론 이제는 안다. 내가 어릴 적 꿈꾸었던 그런 말짱한 나이는없다는 걸. 60이 되어도 내가 꿈꾸는 것처럼 무심하게 고요할 리 없다는 걸. 오늘은 여기가 아파 우울할 것이고, 내일은 저기가 골칫거리일 것이다. 내가 괜찮은 어떤 날에는 남편이 말썽일 것이다. 그때내게 일거리가 있다면 그 일이 하기 싫어 몸부림일 것이고, 그때 내가 백수라면 앞으로 남은 세월 동안의 가계가 걱정일 것이다. 전세계를 여행하고도 남을 시간이 있지만 돈이 없을 수도 있고, 돈이 있더라도 몸이 안 따라줄 수도 있다. 장기하의 노래처럼 ‘별일 없이 산다‘라는 친구의 말이 제일 부러운 말이 될 수도 있다. 별일이 없다니.
난 아직도 순간순간이 별일이라 미치겠구먼. 어쩌면 루르마랭의 그할아버지도 네덜란드에서의 생활이 지긋지긋해 혼자서 여행을 온•걸지도 모른다. 나름의 방법으로 도피 중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국은아무도 모를 일이다. 할아버지의 60은 무슨 색깔이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젊음의 형광빛보다는 늙음의 희미한 빛 - P188

에 끌린다. 느릿느릿 걸어가는 배 나온 할아버지들의 나뭇둥걸 색깔을 좋아한다. 거동이 불편한 노부부가 서로를 챙겨줄 때의 빛바랜노을색은 늘 찡하다. 골목골목 수다를 떨고 있는 할머니들의 하얀머리를 보면 경쾌해진다. 심술궂은 얼굴을 하고 있는 할머니의 회색표정도 꽤 귀엽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분홍색으로 차려입고, 할아버지에게도 분홍색 니트 티셔츠를 입힌 할머니를 봤을 때는 가던 길을 되돌아갔다. 할머니를 붙잡고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한 번도 좋아해본 적이 없는 그 색깔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나는 60살의 나를 모른다.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렇기에 그 모든 세월을 통과한 노인들을 볼 때면 늘 뛰어가서 사진을 찍는 걸지도 모른다. 그들 각각의 시간을 사진으로 찍으며 막연하게 나의 시간을 상상해보는 걸지도 모른다. 60이 되었을 때 나의 색깔. 그 상상만으로도 마음은 이미 핑크빛으로 두근거린다. - P190

나는 내가 비옥한 토양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여기에서어떤 나무가 자라날지는 모르겠지만 그 나무가 튼튼했으면,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물론 이미 카피라이터라는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그 나무를 튼튼하게 키우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그 나무가 나의 마지막 나무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않는다.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는 법이니까. 또 어떤 나무가 뿌리를내리기 시작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그 나무를 키우기로 결심을 한다면, 잘 키우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리미리 비옥한 토양을 가꿔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열심히 토양을 가꿨는데도 아무나무도 안 자란다면? 그 역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내게비옥한 토양은 남을 테니까. 그 토양을 가꾸는 과정에서 나는 충분히 행복할 테니까. 그 토양을 가지고 있다면 도대체 행복하지 않을도리가 없으니까. - P200

영어, 독일어, 라틴어, 희랍어, 일어, 불어, 사람들은 내 언어 욕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박장대소를 한다. 그리고 하나라도기억하는 언어가 있느냐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내 대답은 같다. 기역할 리가 없다. 기본적으로 단어를 외우는 뇌세포가 없다. 그런데왜 그렇게 많은 언어에 욕심을 냈느냐고? 모르겠다. 언어에 유독 욕심이 많아서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어쩌면 그냥 배우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배우고자 하는 열망, 나조차도 알 수 없는 이 열망, 어쩄거나 확실한 것은 뭔가를 배울 때의 나는 확실히 에너지로 가득차 있다. 사소한 일에도 쉽게 즐거워하고, 바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기어이 짬을 내서 배우러 달려간다. 그러니 나에게 ‘배운다‘ 라는 말은 장밋빛 미래를 위한 말이 아니라 장밋빛 현재를 위한 말이 된다. - P209

말이 지겹고, 글이 구차하다 느껴질 때 아무 생각 없이 흙을 만질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게 큰 위로였다. 흙을 만지는 시간만큼은정직해지는 느낌이었다. 흙이 정직했으니까.
무게를 실어 미는 방향으로 정직하게 흙은 나갔다. 흙이 달라지면 결도 색깔도 결과물도 달라졌다. 같은 흙이라고 해도 날씨에 따라 성질이 달라졌다. 흙끼리 붙일 땐 끝에서부터 한 땀 한 땀. 절대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해야 했다. 공기가 들어가면, 가마 속에서 흙이 터졌다. 약간이라도 갈라진 곳이 있으면, 어김없이 가마 속에서쩍 하고 갈라졌다. 흙은 정직했다. - P214

하지만 엄마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 탈춤반 공연을할 때마다 꽃다발을 들고 찾아온 걸 보면 내 성적이 떨어지는 이유를 굳이 탈춤반에서 찾지는 않은 것 같다. 떨어지는 성적에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그냥 내가 공부를 점점 못 따라가는 거지.
방목, 완전한 방목. 엄마는 나를 방목했다. 이제 와서 엄마는 그걸 엄마의 교육철학이라고 말하지만, 나도 알고 엄마도 알고 동생도알고 모두가 안다. 그걸 철학이라고까지 포장할 순 없다. 엄마는 나를 방목했지만, 동생에 대해선 전혀 그러지 못했으니까. 그러니까방목을 해놔도 나는 울타리 밖으로 안 나가는 아이였기 때문에 방목을 했던 것이고, 동생은 아무리 묶어놔도 어느새 울타리를 뛰어넘는아이였기 때문에 그냥 각자에 맞게 반응을 했을 뿐이다. - P242

어떤 부모가 안 그렇겠냐만은, 나에 대한 엄마의 믿음은 신앙에가까운 측면이 있다. 정말 어릴 때부터 그랬다. 방치에 가까운 방목아니냐면서 내가 엄마를 놀리지만, 나도 알고 엄마도 안다. 그 방목이 아니었다면, 나는 울타리 안에서 영원히 머물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울타리만 넘어가면 더 풍성한 풀밭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울타리 안에서 먹을 풀이 없다고 투덜거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믿음은 울타리 안에 가두지 않고, 멀리멀리 떠나보낸다. 그래도된다는 용기를 준다. 내 맘대로 해도 결국 엄마는 나를 믿을 거니까. 엄마는 그럴 거니까. - P245

오스카 와일드 다음은 누구를 이야기하실까 궁금해하던 찰나, 최근 팀장님은 우리가 써간 카피를 보시고는 "너무 인문학이 많은거 같아."라고 하셨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채지 못하고 멍한 나에게 "요즘 스무 살처럼 써. 걔들은 이런 말투 아니야. 이런 논리로 말안 해, 인문학을 버려."라고 첨언을 하시더니 급기야 "인문학은 개뿔."이라는 말을 하셨다. 인문학으로 광고하시는 분의 입에서 "인문학은 개뿔"이라는 말을 듣게 되다니. 물론 그 말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문학‘이 주어였으니 인문학으로 광고한 게 맞긴 맞지만,
팀장님은 ‘인문학으로 광고하신다. 그런 팀장님 밑에서 10년을일했다. 이러다가 나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방법‘이 아니라
‘읽지 않은 책으로 카피 쓰는 방법‘을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 P253

결국 잘 쓰기 위해 좋은 토양을 가꿀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잘 살수밖에 없는 것이다. 잘 살아야 잘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적어도나는 그런 인간인 것이다. ‘쓰다‘와 ‘살다‘는 내게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다. 나는 이 문장 속에서도 언제나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행이다. ‘다행이다‘라고 쓸 수 있어 진실로 다행이다.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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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기억력이 있다. 오해는 마시길. 한 번 보기만 해도 고스란히 외워버리는 능력이 아니라, 같은 구절을 수백 번 읽어도 고스란히 잊어버리는 능력이 있다. 과장이 아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쓴 카피 한 줄도 못 외우는 카피라이터가 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한 곡도 못 따라 부르는 팬이 되었고, 남편이 바로 며칠 전에 들려줬던 음악에 "좋다. 누구 음악이야?"라는 질문을 또 하는 아내가 되었다.
이건 너무하다 싶어 병원 검사도 받아보았다. ‘정상‘. 이 두 글자가 똑똑히 적힌 종이를 들고서 나는 망연자실했다. 그냥 나는 머리 - P6

가 안 좋은 것이었다. 머리가 안 좋아서 아무리 공부해도 역사 성적은 늘 그 모양이었고, 머리가 안 좋아서 그토록 외우고 싶었던 시한편을 못 외운 거였다. 머리가 안 좋아서 지난주에 본 영화의 줄거리를 못 기억하는 거였고, 머리가 안 좋아서 지금까지 그렇게 고생한거였다. 모두가 머리가 안 좋아서 일어난 일이었다. 아니, 정정하자.
머리의 다른 영역까지 다 나쁘다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유독 ‘기억‘ 과 관련된 머리는 평균 이하임이 확실했다.
그러나 기억이라는 능력을 상실한 대신 나는 ‘성실‘이라는 능력을 얻었다. 말 그대로 나는 끊임없이 읽고, 듣고, 보고, 찍고, 경험하고, 배우는 부류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러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인간 부류에 속한다. 한 선배가 농담처럼 말했다. - P7

"넌 나보다 열 배를 더 열심히 살지만 어차피 열 개 중 아홉 개는잊어버리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나와 같은 분량을 살고 있는 거야."
나는 선배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선배의 말이 틀렸다고생각한다. 나는 내가 잊어버린 아홉 개가, 그러니까 내 머리가 ‘기억‘
하지 못하는 아홉 개가 내 몸 어딘가에 기록되어 있다고 믿는다.
음악을 듣고 눈물을 흘렸던 경험에서 내 머리는 그 곡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내 몸에는 그 눈물이 ‘기록되어 있다. 나는 좋아하는음악 앞에선 기꺼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된 것이다. 책 한 권을 읽고 난 후에도 그 줄거리나 주인공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시 - P7

간이 오래 지난 후에도 그 책을 떠올리면 심장의 어떤 부분이 찌릿한 것은 내 몸에 그 책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책을 읽었던장소, 그때의 바람, 설렘 등은 도무지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이건 마치 자전거 배우기와 같아서 한번 강렬하게 몸에 기록된 경험들은어지간해서는 지워지지 않는다. 어쨌거나 누구나 뇌의 용량에는 한계가 있으니, 몸은 감정을 기록하는 일도 떠맡은 것처럼 보인다. 특히 내 몸은 유난히 나쁜 뇌 덕분에 유난히 고생이다.
‘몸에 기록한다.‘
이 문장 덕분에 나는 서른 살이 넘어 나의 기억력과 화해하였다. 더이상 나는 내 기억력을 책망하지 않는다.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꼭 무언가를 기억하기 위해서 사는 건 아니니. <죄와 벌>의 주인공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도 나는 충분히 행복하니. 나는 기억을 잘하는 나보다 눈물이나 웃음이나 심장소리로 순간순간을 몸에 기록하는 나를 더 좋아한다. 그러니 이 책은 그 기록에 관한 기록이다. 경이로울 정도의 기억력을 가진 한 인간의 몸부림에 관한 기록이 될 것이다.
2015년 7월
김민철 - P8

물리적인 환경뿐만이 아니라 인간관계적 환경에서도 나는 천혜의 환경을 누리고 있다. 남편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몸도 일으키지 않고, 안경도 끼지 않은 채로 침대 옆에 있는 책부터 펴는 사람이다. 책을 읽다 좋은 부분이 나오면 꼭 내게 읽어준다. 책을 다 읽고난 후에도 그 책을 정리한 글을 써서 내가 읽을 수 있도록 해준다.
남편과 나의 책 취향은 꽤 다른 편인데, 내가 남편의 관심 분야에 무관심한 것과는 달리, 남편은 내 관심 분야에도 관심을 놓치지않고 괜찮은 책이 나왔다는 말을 들으면 꼭 선물로 사서 준다. 간혹내가 남편 분야에 관심을 보이면, 남편은 입문서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책까지 차근차근 선물해준다. 자부한다.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없는 책 친구를 나는 가지고 있다. - P16

이 환경은 회사에서도 계속되는데, 10년 넘게 한 팀에서 일하고있는 박웅현 팀장님은 좋았던 책이 있으면 꼭 권해주시고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주신다. 그분의 독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결코우연이 아니다. 남편에 비해 팀장님과는 관심 분야도 꽤 비슷하다.
그러다 보니 같은 시기에 같은 책을 읽게 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팀장님과 나는 서로 읽고 좋았던 부분을 정리해서 교환한다. 신기하게도 같은 책을 읽고도 좋아하는 부분은 꽤나달라서 팀장님이 내게 보내주시는 요약본을 보면 새롭게 그 책을 읽는 느낌까지 든다. 그뿐만이 아니라 좋은 책이 있으면 내게 무심하게 선물해주는 선배도 있고, 책 이야기로 술자리를 꽉 채울 수 있는친구도 있고, 어쨌거나 인간관계적으로도 나는 천혜의 환경을 누리고 있다. - P17

팀장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렇다. 위에 언급한 사람들 모두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끈질기게도, 나는 이미 나를 포기했는데 말이다)그 부분을 책에서 찾아 보여주시지만, 역시나 나는 곤란하다. 내게 그 책은 ‘어떤‘ 부분이 좋았던 책이라는 것만 기억날 뿐이다. 그러니까 ‘어떤‘이 구체적으로 기억나는 것이 아니라, 막연하게, 희뿌연 구름처럼, 뭔가, 어딘가, 좋았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는 느낌만 남아있는 것이다.
하지만 수백 권의 책을 읽고 단 열 권도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가까스로 기억해내는 몇 권이 있다. 내게는 울림이 있었다. 이책들 때문에 알지 못하던 세계로 연결되었다. 이 책들 때문에 인생의계획을 바꾸기도 했다. 이 책들 때문에 회사 가는 일까지 즐거워졌던 아침이 있었다. 책의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때의 나는 기억난다. 사람은 안 변한다지만 이 책들 덕분에 잠깐 동안이라도 변했던 나는 기억난다. 그게 내가 책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의 어쩌면 전부일 것이다. - P18

"내가 신기한 책 하나 보여줄까?"
그리고 남편은 책 한 권을 꺼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책이었다. 아니 수없이 본 책이었다. 우리 집에도 있는 책이었다. <자본론>이었다. 그런데 책이 이상했다. 책이 아팠다. 두드려 맞은 것 같았다. 오랜 시간에 걸쳐, 갖은 방법을 통해 고문을 받은 사람의 모습을 책으로 재현한다면 그 모습일 것 같았다. 아니, 고문이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소중히 읽었다는 걸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소중히 한 글자한글자 쓰다듬으며 읽었다는 걸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얼마나 읽었으면, 얼마나 잘근잘근 씹으며 읽었으면, 얼마나 스스로를 다독이며, 좌절하며, 희망하며, 다시 좌절하며 읽었으면 책이 이럴까. 모든장이 손때가 덧입혀져서 부풀어 있었다. 종이 한 장보다 손때의 두 - P30

께가 두꺼웠다. 제본은 이미 오래전에 떨어졌다. 하지만 다시 가다듬고, 다시 떨어지고, 다시 가다듬은 흔적들이 보였다. 너무 놀라서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선생님은 도대체 어떤 시간을 산 것일까. 80년대에 대학교에 들어가서 경제학에서 사학으로 전공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그 청년은 어떤 시간을 견딘 것일까. 언제나 정중하게, 언제나 웃으며 우리를 맞아주고, 말하기보다는 듣는 모습이 더 익숙한 선생님은 어떤 시간을 통과한 것일까. 아득했다. 몇 번 뵌 적도 없고, 오래 말해본 적도 없는 선생님이었지만 갑자기 선생님의 모든 시간을 다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책 한 권이 그랬다. 글자 한 자도 읽어보지 않았지만 그 책은 모든 것을 제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 P31

그러니까 그날 밤 내가 ‘이해했다고 믿는 문장은 어쩌면 나의 철저한 ‘오독‘에서 비롯된 일일 수도 있다. 선생님의 설명은 안 듣고 내가 내 멋대로 해석하면서 내 세계에 빠져버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일것이다. 그러나 모든 독서는 기본적으로 오독이지 않을까? 그리고그 오독의 순간도 나에겐 소중할 수밖에 없다. 그 순간 그 책은 나와 교감했다는 이야기니까. 그 순간 그 책은 나만의 책이 되었다는 이야기니까. 그때 나를 성장시켰든, 나를 위로했든,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든, 그 책의 임무는 그때 끝난 거다.
지금 우리 집 책장에는 오독의 임무를 다한 책들이 다시 한 번 오독의 기회가 오기를, 오독의 기회조차 잡지 못한 책들은 제발 자신에게 오독의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 책이 어느새 5톤에 달한다. 그 책들의 ‘존재‘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간‘이 있을까?아마도. - P40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때론 단숨에 핵심에 도달하기도 하고,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최선의아이디어를 생각해내기도 하는 것이다. 최근엔 하나에 2만 원이나하는 사과를 사 먹는 사람들을 위한 카피를 써야만 했다. 다시 한 번스스로에게 말해주었다. 내가 이해할 수 없어도, 내가 껴안을 순 없어도, 각자에겐 각자의 삶이 있는 법이다.
소설책을 편다. 거기 다른 사람이 있다. 거기 다른 진실들이 있다. 각자에게 각자의 진실을 돌려주려면 책을 읽을 수밖에 없다. 좁고 좁은 내가 카피라이터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 P51

자신에게 맡겨진 시간 안에서, 일상적인 세계의 일상적인 업무에 불후의 생명력을 불어넣을 것 같지 않은 그런 인물에게는 진실이 어울리지 않는다.

 마이클 커닝햄, 《세월》, 비채, 2012


그렇다면 나는 일상을 살아가야만 한다. - P71

그 일상은 바람이 살랑 부는 노천카페에서의 커피가 아닌, 한낮 줄을 서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회사 앞 식당의 점심 속에 있다. 그일상은 스탠드 불 하나 켜놓고 밤새워 쓰는 글이 아니라 창백한 형광등 빛 아래에서 작성하는 문서 안에 있고, 잘 포장된 초콜릿이 아니라 입 냄새를 없애기 위해 사는 껌 속에 있다. 보고 싶은 책보다는 봐야만 하는 서류 더미에 더 많이 할애된 일상, 좋아하는 사람과의 친밀한 소통보다는 의무적으로 만나야만 하는 사람들과의 대화에 더 많이 소모되는 일상, 갓 갈아낸 자몽주스보다는 믹스커피에 더친숙함을 느끼는 것이 어쨌거나 일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상을 살아가야만 한다. - P72

그러니 나는 다른 일상을 꿈꾼다.


여행이 일상이 되는 것을 꿈꾼다. 아침 바게트가 일상이 되고, 노천카페가 일상이 되고, 밤새워 쓰는 글이, 퐁피두 센터가, 세비야의 햇살이, 라인강변을 따라 달리는 기차가 렘브란트의 그림이 고흐의그림이 일상이 되는 것을 꿈꾼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자고, 모든 하루가 내 손에 고스란히 달려 있으며 떠나고 싶을 때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생활이 일상이 되길 꿈꾼다. 파리가 일상이 되길 꿈꾼다. - P73

그러니 그건 나였다. 내 일상을 망치고 있는 것은 내가 범인이었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었다. 회사도 범인이 아니었고, 야근도범인이 아니었다. 물론 파리도 범인이 아니었다. 내가 나를 불쌍하게 만들고 있었다. 마이클 커닝햄의 이 구절이 내게 그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나를 구원할 의무는 나에게 있었다. 매일은 오롯이 내 책임이었다. 그 깨달음에 앞의 글을 써내려갔다. 그리고 무뎌질 때마다 내가 쓴 이 기이한 반성문을 다시 꺼내 읽었다. 읽고 읽고 또 읽었다. 나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아직도 회사 책상 앞에는 파리 지도가 붙어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위에 종이 한 장이 더 붙어 있다. 파리로 붕붕 떠다니는 내 마음을알고, 어느 날 박웅현 팀장님이 나에게 써주신 글귀다. 이제는 반성문 대신 이 글귀를 읽는다. 서른여섯 살에도 마음은 시도 때도 없이 붕붕 떠다니니까. - P76

봄이 어디 있는지 짚신이 닳도록 돌아다녔건만,
돌아와 보니 봄은 우리 집 매화나무 가지에 걸려 있었다.
-중국의 시 - P77

문장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다. 내게 이런 가르침을 주는 책은없었다. <행복의 충격》을 읽으며 막연하게 수상하다 느꼈던 것이 이책을 읽으면서 구체적으로 변했다. 언젠가 프랑스로 떠나기 위해 지금을 잘근잘근 씹어 견디고 있는 내게 이러는 건 반칙이었다. 그런내게 이런 가르침은 필요하지 않았다. 전혀. 그러나 이미 주사위는던져졌다. 그다음은 홀린 듯 빠져들었다. 나는 카뮈의 《안과 겉>, <이방인>, <시지프 신화>까지 달음박질쳤다. 그리고 마침내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아침이 찾아왔다.
출근이 아무렇지도 않은 아침이라니. 출근은 내게 결코 화해불가능한 어떤 것이었는데, 믿을 수 없게도 6년을 매일 회사를 가면서,
그 6년을 매일같이 나는 회사에 가기 싫었다. 막상 도착하면 또 아무렇지도 않게 일을 할 거면서, 심지어 열심히 일할 거면서, 나는 매일아침 출근이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출근이 아무렇지도 않은 아침이 찾아온 것이었다. 명백히 시지프 신화> 때문이었다. 명백히 김화영과 카뮈의 짓이었다. - P83

이것이 처음 <행복의 충격>을 읽었을 때 내 마음속의 지진이었다. 지금 행복하지 않은 나를 위한 공간은 지중해 어디에도 없다고 선언해버린 것이었다. <결혼, 여름>도, <안과 겉>도, <이방인>도, <시지프신화>에서도 같은 선언이 이어졌다. 중요한 것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능한 한 그곳에 살아남아 버티면서 멀고 구석진 고장에 서식하는 괴이한 식물들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계속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 내게 일침을 놓고 있었다.


광채 없는 삶의 하루하루에 있어서는 시간이 우리를 떠메고 간다. 그러나 언젠가는 우리가 이 시간을 떠메고 가야 할때가 오게 마련이다. ‘내일‘, ‘나중에‘, ‘네가 출세를 하게 되면,
‘나이가 들면 너도 알게 돼‘ 하며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고 살고있다. 이런 모순된 태도는 참 기가 찰 일이다. 미래란 결국 죽음에 이르는 것이니 말이다. 알베르 카뮈, 《시지프의 신화 >, 책세상, 1998 - P85

그러니 중요한 것은 이것이었다. 일상에 매몰되지 않는 것, 의식의 끈을 놓지 않는 것, 항상 깨어 있는 것, 내가 나의 주인이 되는 것,
부단한 성실성으로 순간순간에 임하는 것, 내일을 기대하지 않는 것, 오직 지금만을 살아가는 것, 오직 이곳만을 살아가는 것, 쉬이 좌절하지 않는 것, 희망을 가지지 않는 것, 피할 수 없다면 온전히 받아들아는 것, 일상에서 도피하지 않는 것, 일상을 살아나가는 것.
분명 프랑스를, 지중해를 알기 위해 책을 펼쳤었다. 그렇다. 나는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지중해를 만나고 싶었다. 태양과 구릿빛피부와 풍부한 해산물과 지금 행복한 사람들의 공간을 꿈꾸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결국 도착한 곳은 정신의 지중해였다. 내일의 태양을 기대하지 않는 것, 지금의 이 태양을 남김없이 사는 것. 영원히 굴러 떨어지는 바위를 영원히 언덕 위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았지만, "무겁지만 한결같은 걸음걸이로, 아무리 해도 끝장을 볼 수 없을고통을 향하여 다시 걸어 내려오는" 시지프처럼. 자신의 불행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깨어 있으면서 결국 ‘자신의 운명보다 우월한 시지프의 공간이 바로 지중해였던 것이다. - P86

술을 마셨고 가을이었고, 은행잎이 떨어지고 있었고, 노란 조명과 그 은행잎이 만나서 세상이 다 노랗고 예뻤고, 선선했고, 기분이좋았고, 젠장. 이곳이 지중해였다. 내가 지금, 여기를 이보다 더 오롯이 살 수는 없는데, 지구 반대편에 지중해가 무슨 상관인 건가. 여기가 지중해인데. 내가 지금 좋은데. 팀장님 말이 다 맞았다. 그런데 나는 가고 싶었다. 동시에 안 가고 싶었다. 오래도록 이야기했다. 나는 흔들렸고, 팀장님은 잡았고, 갔다 오라고 말하고, 얼마든지 갔다오라고 말하고, 술은 맛있고, 나는 흔들 흔들 계속 흔들,
그리고 나는 지중해로 가는 비행기표를 샀다. 있는 휴가를 다 끌어모으고, 토요일, 일요일을 있는 대로 갖다 붙였다. 3주 반, 그러니까 거의 한 달에 가까운 휴가가 생겼다. 모두 지중해에 쏟아부었다.
혼자서 카뮈의 무덤이 있는 남프랑스 루르마랭과, 김화영이 70년대에 유학을 했다는 엑상프로방스와 파리와 아를과 니스로 떠났다. 그러니까, 나는 결국 그만두지 않은 것이다. 결국 머물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 나는 결혼을 했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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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죽어서야 완전히 태어난다.
-벤저민 프랭클린


이 책은 당연히 끝에서 시작된다. 이 여정은 오로지 여기, 삶의종착지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아직 살아 있는 삶을 판단하는 것은 아직 보고 있는 영화나 아직 먹고 있는 음식을 평가하는 것과마찬가지다. 우리의 판단은 좋게 말하면 불완전하고 나쁘게 말하면 어리석을 수밖에 없다.
끝은 저마다 다르지만 그 어떤 끝도 행복하지 않다. 1790년 봄, 필라델피아 자택에서 펼쳐진 벤저민 프랭클린의 마지막 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마지막 장은 프랭클린의 둘째 딸이나 다름없었던 폴리 스티븐슨의 손으로 꼼꼼하게 기록되었다. 런던에서 두 사람은 수년간 같은 집에 살면서 자연 세계를 향한 맹렬한 호기심을 함께 나누었다. 벤은 폴리를 "귀여운 철학자"라고 불렀다. - P23

생애 마지막 해에 벤은 자기 침실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도르래 장치를 사용해 침대에 누운 채로 방문을 닫았다. 아편과 알코올을 섞어 만든 로더넘 복용량을 점점 늘리고 있었지만통풍과 신장결석, 늑막염으로 고통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폴리는 "그분에게서 불평과 짜증은 전혀 새어 나오지 않았"으며 눈곱만큼의 자기 연민도 드러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84세까지 긴 삶을 누렸다. 18세기 사람들이 맞이한 무수히 다채로운 죽음의 방식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프랭클린은 각종 질병과 두 차례의 전쟁, 여덟 번의 대양 횡단, 목숨을 앗아갈 만큼의 전기 부하와 칠면조를 이용한 엉망진창 실험에서 살아남았다.‘ 모두가 프랭클린의 긴 삶을 놀라워했다. 특히 프랭클린 본인이 가장 놀라워했다. 그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침대에 누워 잠들었어야 하는 사람이 후대의 앞을 가로막은 듯한 느낌이네. 하지만 내가 일흔에 죽었다면 내 인생에서 가장 활동적이고 가장 중요한 사안을 고민했던 12년이 사라졌겠지." 이 말로는 부족하다. 프랭클린 인생의 마지막 10여 년은그가 가장 분주하고 가장 행복한 때였다. - P24

그러던 4월 17일 오후 11시 "그는 84년 하고도 석 달의길고 쓸모 있는 삶을 마감하며 평온히 영면에 들었다."
의사의 단어 선택이 중요하다. 단순히 긴 삶이 아니라 길고 쓸모 있는 삶이다. 쓸모는 18세기에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모든 발상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바로 효용성이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에 이바지했는가?"
사실 우리는 쓸모 있는 삶에 양가감정을 느낀다. 그런 삶을 살고자 노력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이런저런 것들이 "그저 나를 이용한다"고 불평한다. 다른 사람에게 늘 이용당하는 친절한 성격은 결함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어쩌면 그건 최고의 칭찬일지도 모른다. 이용당하기를 피하지 말고 오히려 기꺼이 요청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네, 제발 저를 이용해주세요. - P26

쓸모는 프랭클린에게 특히 중요했다. 이 단어는 그의 자서전에거의 서른 번 등장한다. 쓸모는 그의 원동력이고 특성이었다. 그는 쓸모 있는 인쇄업자이자 쓸모 있는 정치인, 쓸모 있는 과학자, 쓸모 있는 작가, 쓸모 있는 친구였다. 또한 그는 쓸모 있는 혁명가였다. 아마 조지 워싱턴 다음으로 가장 쓸모가 많았을 것이다.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인가? 의문스럽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한참 부족하다. 우리 아버지는 의사였다. 아버지는 삶을 살렸다. 우리 어머니는 교사였다. 어머니는 삶을 빚었다. 내 친구 제임스는 명상을 지도한다. 제임스는 삶을 진정시킨다. 나? 나는 종이위에 글을 휘갈기고 어떤 날은 그마저도 많이 못 한다. 그러니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이 아니다. 벤저민 프랭클린과 비교하면 더더 - P26

욱 그렇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래전부터 내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닌 은은한 우울감이 올라온다. 벤은 이렇게 낙담한 적이 없었다. 그는낙관적 전망을 유지했고, 다른 이들이 희망을 잃을 때도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무언가를 할 수 있을지 또는 개선할 수 있을지 물으면 그는 늘 이런 식으로 답했다. "안 될 게 뭐야?"
벤저민 프랭클린은 실용주의자라기보다는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이 말하는 "가능성주의자 possibilian"에 가까웠다. 실용주의자는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가능성주의자는 아무리 있을 법하지 않은 일도 그 미래 가능성을 믿는다. 가능성주의자의 인내심은 끝이 없다. 가능성주의자는 언제나 끈기 있게 앞으로 나아가고 절대 한숨 쉬지 않는다.
어쩌면 내 안에 가능성주의자가 숨어 있을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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