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Agua Viva는 단어 그대로를 직역하면 ‘살아 있는 물‘로 번역되고, 일반적으로는 해파리를 의미한다. 이 두 가지 의미에는 공통점이 있다. 뼈대가 없다는 것이다. ‘살아 있는 물‘은 뼈대 즉 특정한 형태를 강제하는 구조가 존재하지 않는자유로운 세계이며, 그 살아 있는 물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는 해파리는 그 세계와 가장 닮은 개체다. ‘아구아 비바‘라는 제목은 이 둘을 동시에 지칭 혹은포괄한다.
형태로부터 자유로운 것, 심지어 세계인 동시에 개체인 것을 그리기, 즉모든 구조와 경계를 넘어선 그 무엇을 기록하려는 (불가능한) 시도. 이는 이 작품뿐만 아니라 리스펙토르가 늘 추구하던 목표를 집약한 표현이다. 그래서인지 뉴디렉션스판 영역본은 ‘삶의 흐름 Stream of Life‘이라 번역되었던 이전 영역본(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89)의 제목 대신에 원어 제목을 그대로 옮겼다. 본 번역본 역시 위와 같은 이유로 원어 제목을 그대로 옮겼음을 밝힌다.

형상 ㅡ 혹은 물체 ㅡ 에 대한 의존에서 완전히 벗어난 방식으로 그려진 그림이 존재할 것이며, 그것은 음악처럼아무것도 묘사하지 않고,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고, 어떤 신화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이런 그림은 표현할 수 없는 정신의 왕국들을 그저 불러내기만 할 것이다. 거기서 꿈은 생각이 되고, 거기서 선은 존재가 된다.
-미셸 쇠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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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엔 너무 많은 결함이 있고 너무도 무력합니다. 멸시당하기 꼭 알맞은 노년에 얻을 수 있는 최상의 것은 식구들의 애정과 사랑입니다. 명령과 두려움은 더 이상 무기가 되지 못합니다. 나는 젊은 시절에 아주 강압적이던 사람을 본 일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그런대로 건강하게 노년을 보내고는 있었지만, 때리고물어뜯고 욕질하며 프랑스에서 가장 요란한 가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걱정하고 감시하느라 속을 끓입니다. 그 모든 것이 온 식구가 공모하고 있는 소극(劇)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락에서 지하창고에서, 심지어 그의 지갑에서도 가장 좋은 몫은 다른 자들이 빼먹고 있습니다.  - P109

그가 허리 전대에 열쇠들을 자기 눈보다 소중하게 간수하고 있는데도 말이죠. 그가 절약하면서 검소한 식사에 만족하고 있는 동안 방탕의 도가니가 된 집안 이 구석 저 구석에선잔치판, 놀음판이 벌어지고, 돈이 흘러넘치며, 늙은이의 쓸데없는역정과 노심초사를 조롱하는 대화가 만발합니다. 모두가 그를 경계합니다. 어쩌다 마음 약한 하인이 그를 따르며 헌신할라치면 그하인은 즉각 그의 의심을 사고 맙니다. 의심이란 늙은이들이 제풀에 걸려들곤 하는 특성이지요. 그는 자기가 식구들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고, 그래서 한 치의 소홀함도 없는 복종과 존경을 받고 - P109

있다고 얼마나 자랑했는지 모릅니다. 자기 일은 너무도 훤히 꿰뚫어 보고 있다나요.


그 혼자만 아무것도 모른다.
테렌티우스


타고나야 하는 것이든 배워 익혀야 할 것이든, 통솔력을 견지하는 데 적합한 자질을 이분보다 더 많이 지닌 사람을 나는 알지못합니다. 그런데도 이분은 어린아이처럼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알기에 같은 상황에 빠져 있는 여러 사람 중에서도이분을 제일 좋은 예로 든 것입니다. - P110

내겐 내 글들을 질서 있게 정리해줄 부관(副官)이라고는 행운밖에 없다. 공상이 떠오르는 대로 쌓아 놓을 뿐이다. 때로 그것들은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고, 때로는 열을 지어 이어진다. 나는사람들이 자연스럽고 예사로운 내 행보를 있는 그대로, 흐트러진모습으로 보기를 바란다. 나는 생긴 대로의 나를 드러낸다. 게다가 여기서 다루는 제재들은 모르면 큰일 나거나, 되는대로 가볍게말하면 안 될 것들도 아니다.
물론 사물들을 보다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너무 비싼 값을 치르고 싶지는 않다. 내 계획은 남은 생애를 기분 좋게, 힘들지 않게 넘기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서도, 설령 학문을 위해서라도 머리를 쥐어짜고 싶지는 않다. 아무리 가치 있는 것이라도 말이다. 나는 책에서 소박한 재미를 느끼며 즐겁게 몰두하는 것 이상을 바라지 않는다. 또는 책을 통해 무슨 공부를 한다쳐도, 거기서 구하는 것이라고는 나 자신을 알게 해주는 지식, 내게 잘 죽고 잘 사는 방법을 가르쳐 줄 지식뿐이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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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기도


얼마나 다급히 너에게 가 닿고 싶으면
화살 같다고 못하고
기도가 화살이라고 쓰는가.

내 기도는 화살.
네가 맞을지도 모르는 화살을 쫓아가
쪼개려는
너를 꼭 껴안고 내 등을 내주어
먼저 화살을 맞으려는.

기도는 영영 좋은 말이지만
연명치료 중인 신에게 너의 안녕을 위탁하는 건 점점 위험한 일.
2천 살이나 잡수신 노쇠한 신은 이제 그만 쉬게하자.

네가 아프면 내가 가리.
기도 말고
몸으로 가리.

피자두

그러나 나는 여기서 글썽거리며

핏물 든다

응응
기쁘다

곧 네 손에 쥐여줄

피자두 몇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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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는 방식에서도 그래왔고, 생각을 하거나 글을 쓸 때에도 수사적이거나 추상적인 것에 경도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 대해 쓸 때에는, 그 사람들을 제가 그려낼 수 있는 한 제일 구체적인 환경 속에 배치하고 싶어 합니다. 이 환경에는 TV라든가 탁자,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사인펜 같은 사물들이 포함될 수 있는데, 일단 이런 것들을 장면 안에 집어넣기로 했다면, 이것들에는 반드시 어떤 힘이 주어져야 합니다. 이 사물들이 각자의 생명력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는 물론 전혀 아니고, 다만 그것들이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어떤 식으로든 느껴져야 한다는 겁니다. 숟가락이나 의자나 TV•를 묘사할 생각이라면, 그것들을 단순히 장면 안에 배치한 뒤•그대로 흘러가게 두지는 말아야 합니다. 조금 더 무게를 부여하고, 주변의 존재들과 연결되도록 해줘야 합니다. 저는 이런사물들이 소설 안에서 인물들처럼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생각하지는 않지만, 이것들이 그 자리에 존재하고, 그리고 독 - P204

자들이 그것들이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도록 해야한다는 거죠. 재떨이가 여기에 있고, TV는 저기에 있고(켜져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꺼져 있을 수도 있고), 벽난로 안에는 오래된 탄산수 캔들이 들어 있고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우선 한 가지를 꼽자면, 저는 문예지를 집어 들 때마다 제일먼저 읽는 게 시고 그다음이 단편소설이에요. 에세이나 비평같은 것들도 있을 텐데, 그것들을 읽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 걸 보면 저는 형식 자체에 이끌리는 듯합니다. 시와 단편소설 모두의 특질인 간결성에 처음부터 끌렸던 거죠. 그리고, 시와 단편소설은 웬만한 시간이면 끝낼 수 있을 것처럼 보였던 탓도 있고요. 처음 작가가 되었을 때 저는 이사도 자주 다녔고 제게는 이상한 직업, 감당해야 하는 집안일 같은 일상적인 방해 요소들이 있었어요. 제 인생이라는 게 아주 취약한 것 같았기 때문에 무언가 끝까지 가볼 수 있을 만한 걸 시작해보고 싶었어요. 서둘러서, 오래 걸리지 않고 끝낼 수 있는 일이 필요했던 거죠. 방금 말한 것처럼, 시와 단편소설은 형식과 의도 면에서 서로에게 매우 가깝고, 제가 하고자 하는 것에도 무척 가깝고 해서 글을 쓰던 초기부터 두 형식 사이를 오가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 P205

버만약 제게 반지성주의적인 경향이 있는 거냐고 물으시는 거라면, 그렇지는 않다고 대답하겠습니다. 그냥 제가 반응을 하거나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차원의 작품들이있는 거죠. 예를 들어 소위 ‘웰메이드 시‘라고 불리는 것들에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가질 않아요. 그런 시들을 보면 "오, 저건 그냥 시네"라고 반응하고 말게 되는 겁니다. 저는 그런 것말고 다른 어떤 것, 그냥 좋은 시에 그치고 마는 게 아닌 무언가를 찾는 겁니다. 사실 창작 프로그램에 다니는 성실한 대학원생 누구라도 좋은 시는 쓸 수 있어요. 저는 그 지점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찾는 겁니다. 아마도 그보다 거친 어떤 걸 원하는 것 같아요. - P207

저는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하던 때부터 초고를 쓰는 것만큼이나 수정 과정을 좋아했습니다. 문장들을 골라내서 가지고 놀고, 다시 쓰고, 단단해 보일 때까지 불필요한 요소들을 제거하는 과정을 늘 좋아했어요. 이런 건 아마 제가 존 가드너에게서 배웠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가드너는 어떤 걸 쓸 때스무 단어나 서른 단어로 쓰는 대신 열다섯 단어로 말할 수있다면 열다섯 단어로 말하라고 했는데, 저는 그걸 즉각 받아들였어요. 그 말은 계시처럼 저를 덮쳤습니다. 저는 당시 저만의 길을 찾으려고 더듬거리고 있던 차였어요. 그런데 어쩌다 보니 누군가가, 제가 이미 하고 싶어 하던 것과 똑같은 이야기를 저한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종이 위에 이미 써놓은 글로 돌아가 그걸 다듬고, 불필요한 걸 지우고, 군더더기를 제거하는 건 저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 P208

수리비 60달러 때문에 수리공을 부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보험이 없어서 의사한테 가지 못하고, 치과에 가야 할 때그럴 형편이 되지 못해서 이가 완전히 망가지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요. 이런 게 저한테는 비현실적이거나 인위적으로만들어낸 상황처럼 보이지는 않아요. 그리고 이런 그룹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둔다는 점을 두고 보자면, 제가 다른 작가들과 그리 다른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아요. 체호프는 100년 전에 바닥으로 가라앉은 사람들에 대해 썼어요. 단편소설 작가들은 늘 그런 작업을 해왔어요. 체호프가 그렇게바닥에 가라앉고 소외된 사람들을 다루는 작품만 써온 건 아니지만, 상당수의 단편을 제가 언급한 이런 사람들에 대해 썼어요. 의사며 사업가며 교사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썼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목소리를주었단 말이죠. 체호프는 그들이 스스로 말할 수 있는 방편을 찾아낸 거예요. 그러니까, 자신에 대해 말할 줄 모르고, 혼란과 두려움에 빠져 있는 사람에 대해 쓴다는 면에서 보자면 제가 그리 대단하게 색다른 작업을 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거죠.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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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에게로 돌아가봅시다. 저는 헤밍웨이의 작품들에 아주 감탄합니다. 전 요즘도 그의 작품들로 돌아가 다시 즐겁게 읽곤 합니다.
여러분도 아마 헤밍웨이가 문학작품을 빙산에 비유한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겁니다. 빙산의 90퍼센트는 물속에 잠겨 있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작가는 자기가 쓰지 않고 남겨놓은 이야기가 어떤 것들인지만 알고 있으면 됩니다. 만약 쓰는 데만 집중하고, 중요한 것들을 쓰지 않고 남겨놓았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그건 문제가 좀 있습니다. 헤밍웨이의 단편들을 읽어보면, 딱 충분한 만큼만, 넘치지 않게 얻게 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헤밍웨이의 단편소설 중에 「빗속의 고양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거나 하지 않지만, 남편과 아내 사이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아내는 호텔방 창문에서 보이던 고양이를 찾으러 나갑니다. 우기이고, 이야기의 배경은 아마도 스페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남편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장면에 대한 묘사가 제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습니다. 남편은 침대에 누워서 책을 읽고 있는데, 발치에 머리를 두고 있습니다. 발은 침대 헤드에 닿아 있고요. 아주 멋진 작품입니다. 아주 단순하게 서술된 단편이에요. 아주 근사합니다. - P45

세상과 연결된 끈을 잃어버린 것 같은 사람들이죠. 그런 사람들은 예술이 됐든 삶이 됐든, 어떤 지향, 윤리적인 지향이라는 게 없어요. 모르겠어요.
제가 아는 한, 최선의 예술은 실제의 삶에 근거해요. 도널드 바셀미조차도, 그의 최고의 작품은 현실과 연결되는 지점들을 가지고 있어요.
예술이 예술 자체를 위해 존재할 수 있다는 건 물론 어떻게 보든 전혀 새로운 생각은 아니죠. 이런 생각은 사람들이 실험적인 작품을 쓰기시작한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어요. 어쩌면 제가 쉽게 지겨워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글쓰기에 대해 쓰는 작가들이 재미가없어요. 등장인물이 "이런 식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라고 말하게 하는 작가 말이죠. 저도 궁금합니다. 이런 게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요? 정말 아무런 재미가 없단 말이죠. - P47

그러니, 신뢰하는 사람으로부터 오는 충고라면 들을 수 있을 만큼들으세요. 실제로 활용하세요. 약간 과도한 비유이긴 하지만, 이건 어떤면에서는 거대한 성당을 짓는 일과 같습니다. 중요한 건 다 함께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우리는 이 성당들을 누가 만들었는지 잘 모르지만, 그것들은 그 자리에 있습니다.
에즈라 파운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위대한 시들이 쓰이는 건 중요한 일이다. 그걸 누가 쓰는가 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
그겁니다. 정확히 그거예요. - P55

오코너는 글쓰기는 곧 발견이라고 했는데, 카버가 오로지 그것만한다면 그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발견하고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그가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오직 그가 만들어낸 인물들과 관련해서 놀랍도록선명하다. 어느 사내가 몇 년 전에 한 친구와 함께했던 아주 즐거운 저녁 식사 자리가 바로 자신의 결혼을 깨뜨린 주범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든가, 처음에는 별로 내키지 않는 가운데 아내의 시각장애인 친구를 맞이한 남편이 눈을 감은 채 그와 함께 그림을 그리면서 그를 이해하기 시작한다든가 하는 식의 이야기들.
거기에는 약간의 교훈은 있지만, 군림해서 가르치려는 자세는 보이지 않는다.
"저는 누구에게, 혹은 누군가를 위해 설교를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없어요." 카버는 말했다. "위대한 사상이라는 게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제가 쓸 수 있을 만큼 쓰는 것, 그리고 그걸 할 수 있는 한 정확하게 하는 것 말고는 아는 게 없어요." - P60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들은 우리가 더 이상 그런 식으로 살지 않는다고 말해준다. 만약에 카버의 작품에 대한 긍정적인 비평적 평가와 독자들의 관심이 증명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건 우리가 그의 비전을 신뢰한다는 사실이다. 사적인 인생들의 작은 싸움들 속에서, 카버는 거대한 인간의 문제를 건드린다. 희망이 흩어지고 견고한 무력감이 엄습할때, 다시 우리를 끌어 올려줄 동력은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 우리는이제 무얼 해야 하나? 카버가 그리는 미국에서의 삶이 이해 불가능한것은 아니다. 심지어 그다지 심하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훌륭한 작가들 누구나가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그의 영역은 특정한 성격의 지역들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카버는 대개의 재능 있는 작가들이 실패한 것을 해내고 있다." 평론가 마이클 우드Michael Wood는 <뉴욕 타임스 북 리뷰>에 이렇게 썼다. "카버는 자신만의 나라를 발명해냈다." 카버의 나라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곳이다. 그곳은 카버의 출신지인, 삶이 고달픈 나라다. - P169

카버는 말한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우린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왔어요. 저는 거기에 가 있는 동안 내내 글을 쓰지 않았고, 돌아와서는 할리우드에서 한동안 살았습니다. 결국엔 북쪽으로 다시 올라왔고, 전에하던 일을 되찾았습니다. 하지만 그때쯤 제 인생은 이미 변해 있었고,
저는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 시절 카버가 경험한 인생의 덧없음은 그의 소설들 속에 녹아 있다. 카버의 인물들은 그리 많이 돌아다니지 않는다. 대개의 경우 그들의인생은 한자리에 머물러 있다. 그들 주변으로 사건들이 휘몰아쳐서 그들은 맥없이 그 자리에 멈춰서거나 말려들거나 할 뿐이고, 그래서 대책없이 붙들려 있다고 느끼게 된다. 그들이 인생을 걸고 매달렸던 일들은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고, 미래는 잔인하게도 그 모습을 잃는다. 카버의 인물들은 자신들의 한계를 알고 있고, 막연하게 방황하는 그들의마음은 눈앞에 닥친 사소한 걱정거리들과 무엇에 대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갈망 같은 것들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 P176

카버의 사람들은 (일을 하고 있는 이들의 경우) 우체부, 청소부, 가정주부, 교사들이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무언가를 팔거나 웨이터로 일한다. 사무실에 출근하는 이들도 몇 있다. 그들은 자식들을 먹이고, 친구를만나고, 술을 마시거나 약을 하고, 낚시를 즐긴다. 그들은 언제나 고치거나 팔려고 하는 물건들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큰 풍파가 없기를 원하고, 큰 어려움 없이 시간이 흐르기를 바라고 있다. 이들에게 충만한 상태란 그때그때 욕구가 충족되는 경험이 이어지는 걸 말한다. 카버의 이야기들에는 먹는 장면도 많고, 술과 담배가 넘쳐나고, 짧게 끝나는 섹스도 많이 들어 있다. 카버를 읽은 이들은 카버의 인물들이 가난하고, 삶 - P176

에 시달리고 있다는 식으로 자주 묘사했다. 하지만 그의 인물들은 그런식으로 비극적이지는 않다. 그들의 인생은 누추하지만 공허하지는 않고, 고통스러울 정도로 평범하다.
카버는 이렇게 말한다. "제 작품에 대한 서평들은 대개 찬양 일색이었는데, 그것들을 읽기 전까지는 제가 이야기 속에서 다루는 인물들이그렇게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느껴본 적이 없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웨이트리스, 버스 운전기사, 자동차 정비공, 호텔 관리인. 이 나라는 이런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단 말이에요. 이 사람들은 멀쩡한 사람들이에요. 최선을 다해서 할 일을 하는 사람들이고요." - P177

그가 그려내는 모든 인생은 하나같이 새로운 시각을 얻는 결정적인 순간을 경험한다. 그런 순간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간에 올 수도 있고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왔을 수도 있는데, 제아무리 시시한 것이었더라도 그의 인물들이 익숙하게 살고 있던 삶의 방식을 뒤흔든다. 현실에 대한 안주가 사라지는 순간이다. 카버는 그의 인물들이 세상은 앞으로도 영원히 똑같을 거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리고 동시에 그 깨달음이 그들 자신은 앞으로 영영 과거와 같은 존재일 수 없다는 깨달음을 확고하게 만드는 순간에 초점을 맞춘다. - P177

카버의 문장은 특별히 서정적이거나 하지는 않다. 그가 사용하는전형적인 문장은 투박하고, 복잡하지 않고, 묘사적인 부사로 이뤄진 장식적인 요소들과 삽입구들을 배제한다. 그의 리듬은 마치 새롭게 느낀것, 처음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사람들이 받는 중압감 같은 걸 보여주려는 것처럼 반복을 자주 하거나 퉁명스럽다. 시간은단순하고 불안한 제스처들이 반복되면서 만들어내는 정형화된 장면들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단선적인 방식으로 흐른다.
대화들은 짧게 툭툭 끊어지고, 손에 잡히지 않는, 규정하기 어렵고 중요한 주제들보다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거나 벽에 매달려 있는, 실체가 있는 사물에 대한 일반적인 관찰로 채워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카버의 두 번째 단편집의 제목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그가 택하는 주제와 사용하는 기교, 그리고 우리가 우리 삶의 커다란 관심거리를 에둘러 표현하는 방식에 대한 그의 관심을 모두 보여준다. - P179

카버가 만든 인물들의 삶과 그가 살아온 삶 사이의 차이는 아주 선명하다. 최근에 카버는 그의 멘토였던 존 가드너가 사망한 후 나온 책「장편소설가 되기』에 서문을 썼다. 카버는 따뜻한 기억들과 사려 깊은감사의 말을 써 내려가다가, 작가가 되고 싶었던 자신의 욕망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다.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이 너무나 강했기 때문에, ‘제정신‘과 ‘차가운 현실‘내 인생의 ‘리얼리티‘-이 수차례에 걸쳐 내게 일러준 바, 이제 그만둬야 한다. 그만 꿈에서 깨어나, 조용히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한다는 음성을 듣고 난 한참 뒤에도 나는 대학에서 얻은 격려와스스로 얻게 된 내적인 성찰에 근거해서, 계속해서 썼다." - P182

오랜 기간 육체노동자로 살아온 경험과 결합된 그 욕망은 카버의내면에 예술가이자 동시에 보통 인간이 되고자 하는 이중의 충동을 만들어냈다. 그는 독자들이 선택해주는 작품에 대해 스스로 이렇게 평가한다. "제가 어떤 이야기를 썼는데 누군가가 어떤 식으로든 그 작품과자신의 삶을 연결 짓고, 감동을 느끼고, 자신의 인간성을 되돌아볼 수있게 된다면, 저로서는 행복할 따름입니다. 더 이상 뭘 바랄 수 있겠어요? 그런 작업을 하는 게 중요해요. 누군가가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우리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서로에게 상기시켜주는 건 중요한 일이에요.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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