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강 유역에 있는 작은 마을 해버퍼드에서는 여전히 루시 게이하트 이야기를 한다. 분명 많은 이야기가 오가는 것은아니다. 생은 계속되고 우리는 눈앞의 일상을 살아내야 하니까. 하지만 루시라는 이름을 언급할 때면 다들 낯빛이나 목소리가 은근히 밝아지며 허물없는 눈동자로 넌지시 말한다. ‘그래, 너도 기억하지?‘ 부단히 움직이는 자그마한 루시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춤을 추고 스케이트를 타고 앞만 바라보며발 빠르게 걸어가던 루시, 꼭 둥지로 돌아가는 새처럼.
눈이 펄펄 내리는 날이면 노인들은 창밖을 내다보며 루시가 머프로 볼을 감싸고 눈보라 사이로 부리나케 걸어가던 모습을, 추위에 떨지도 않고 그저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춤추듯 - P9

발걸음을 내딛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루시는 여름의 열기 속에서 긴 그림자가 드리운 거리를 걷고 땡볕에 끓어오르는 광장을 가로지를 때도 겨울과 마찬가지로 발걸음이 잽쌌다. 숨 막히게 뜨거운 8월의 정오, 말은 머리를 숙이고 인부는 ‘쉬엄쉬엄‘ 일하는 시간에도 결코 쉬엄쉬엄 생활하지 않았다. 추운 날에는 살아 있다는 감각이 강렬해진다고. 언젠가 루시가 말했다. 분명 더운 날에도 마찬가지였으리라. - P10

게이하트 가족은 해버퍼드 중심가에서 1킬로미터쯤 명어진 서쪽 끝자락에 살았다. 마을 사람들은 ‘저 멀리 게이하트랙‘이라고 일컬었고 한여름에 다녀오기에는 꽤 먼 거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루시는 자신을 쏙 빼닮은 걸음걸이, 자제할 수 없는 명랑한 마음이 묻어나는 잽싼 발걸음으로 하루에 열두 번씩 그 길을 오가고는 했다. 루시가 걸어갈 때면 정원에서 꽃을 가꾸던 나이 지긋한 여자들은 저 멀리 어룽어룽한 여름 나무 그늘 밑에서 빛나는 흰 형체만 보고도 특유의 움직임 덕에 누구인지 늘 알아보았다. 그렇게 루시는 산울타리와 라일락 덤불과 보드라운 초록 포도 덩굴과 줄줄이 핀노랑 수선화 옆으로 걷고 또 걸었으며, 분명 그 모든 것을, 입고 있는 여름옷과 공기와 햇볕과 활짝 피어나는 세상까지 만끽하고 있었다. 루시의 성정은 제 움직임과 닮아 직접적이고거침없고 유쾌했다. 금빛이 감도는 갈색 눈도 마찬가지였다. 루시의 갈색 눈동자는 부드러운 빛깔이 아니라 소위 ‘호랑이 - P10

눈동자‘라고 부르는 콜로라도 암석처럼 금빛이 점점이 번쩍이는 눈이었다. 피부는 까무잡잡한 편이었는데, 입술과 볼은짙은 붉은빛 작약처럼 색이 깊고 벨벳 같았다. 입매는 다정하고 즉각적이라 마음에 새로운 감정이 드리울 때마다 은근히달라지고는 했다.
오랜 친구들에게 루시의 사진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친구들이 사랑한 것은 그의 명랑과 기품이었다. 루시를 보고 있으면 살갗 아래서 펄떡이는 생이 느껴졌다. 앳되고 아름다운생명만이 누리는 독특한 광채가 있었다. 꽃이 핀 정원에 해가뜨면 처음 한두 시간쯤 목격할 수 있는 그런 광채였다. - P11

루시가 음악을 공부하러 시카고로 떠났을 때 우리는 아쉬위했다. 그때 루시는 열여덟 살이었다. 재능은 있었으나 무사태평해서 자기 앞날을 진지하게 고민하지는 않았다. ‘경력‘
같은 것은 꿈도 꾸지 않았다. 음악을 자연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라고, 기껏해야 나중에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에게 도움이 될 돈벌이 방편이라고 생각했다. 루시의 아버지 제이컵 게이하트는 동네 음악대를 이끌었고, 시계방을 운영하며 가게 뒤편에서 클라리넷과 플루트, 바이올린을 가르쳤다. 루시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초급자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다.
어린이들은 자기들을 꼬맹이 취급 하지 않아서 루시를 좋아했다. 학생들은 루시 눈에 잘 보이려고 애썼다. 특히 남자아이들이. - P11

루시는 졸리고 몽롱해 온기가 달가웠다. 끝없이 흰 평야의그림자와 침묵 속으로 질주하는 썰매는 아주 작은 점처럼 보였다. 문득 루시가 화들짝 잠기운을 떨치더니 꽁꽁 싸맨 담요밑에서 꿈틀거렸다. 어둠이 짙어지는 하늘에 떠오른 첫 별이보였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작은 은색 별이 신호처럼 반짝이며 지금 이곳에 속하지 않은 다른 생과 감정을 암시했다.
루시는 압도되었다. 단 한 가지 갈망으로 별에 손을 뻗었고별이 그의 손을 맞잡았으며, 그 사이에서 깨달음이 반짝였다.
저 미지의 황무지에 있는 무언가도 그 깨달음을 알았다. 아주오래전부터, 앞으로도 영원히! 저 먼 곳의 아득한 무언가를향해 손을 뻗는 행복은 영원한 것이었다. 루시가 무지하고 어리석어서 사소한 일에 들뜬 것이 아니었다.
순간의 깨달음은 잠시 머무르다 사라졌다. 그러자 다시 모 - P17

든 것이 혼란스러워졌다. 루시는 눈을 감고 해리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겨우 닿을 뻔했던 것으로부터 뒷걸음질했다. 너무나도 찬란하고 너무나도 날카로웠다. 손을 뻗으니 아팠고,
자신이 보잘것없고 길을 잃은 존재가 된 것 같았다. - P18

그런 루시가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해리는 눈치챘다. 크리스마스 연휴 내내 루시의 변화를 느꼈다. 어쩌면 전보다 조금 더 차분해졌다고 할 수도 있었다. 새해 전야 댄스파티에서도 해리와, 아니 모든 사람과 거리를 두는 것 같았다. 냉랭하지는 않았다.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러웠으며 그 어느 때보다 장난스럽고 다감하게 오랜 친구들을 대했다. 하지만 그날 파티장에 있던 루시는 과거의 루시와 달랐다. 저녁 내내 그에게 털어놓지 않은 미지의 감정으로 눈동자가 반짝였다. 누군가와 하던 이야기를 멈추는 순간 수수께끼 같은 표정이 되돌아왔다. 그리고 그와 왈츠를 추는 내내 어깨 너머로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무언가 굉장히 매혹적인 것을! 그러나 프리메이슨 홀의 카펫 위에서 ‘충돌‘하며 춤추는 사람들은 늘보던 이웃들이었다. 해리는 새해 전야를 좀처럼 잊을 수 없을것 같았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 루시는 마냥 행복하고 천진한 시골 여자애가 아니었다. 무언가를 지향하는 여자였다. 그는 결심해야만 했다. 오늘 밤 이곳 기차 안에서도 루시는 그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듯했으나 실은 딴생각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
- P28

남은 공연 내내 루시는 자꾸만 주의가 산만해졌다. 때로는집중해서 듣다가도 정신 차리고 보면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전에는 겪어본 적 없던 감정 때문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루시의 마음에 닿은 것은 새로운 개념의 예술일까? 그보다는 내밀했다. 한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매력? 그 이상이었다. 루시는 생의 진실을 알게 되었고, 사랑은 그저 말랑말랑한 감정이 아니라 비극의 동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새카만 물처럼 인간을 집어삼키는 열정을 발견했다. 이 남자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바깥세상이 어둡고 끔찍한 곳인 것만 같았다. 세상이 공포와 위험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이제야 제대로 깨닫게 된 것 같았다. - P36

마침내 클레멘트가 팔에 코트를 걸고 손에 모자를 든 채무대로 돌아왔다. 동료인 베이스 성악가를 향해 고개를 숙인 뒤몸을 돌려 무대 너머에 대고 이야기했다. 다리를 저는 반주자가 나타났다. 박수가 빗발치는 사이 자기들끼리 무어라 상의했다. 서배스천은 어둑어둑한 무대 앞쪽으로 나아가 바이런 의 시 <우리 둘은 작별했네>에 곡을 붙인 오래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가수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 단순하고 슬픈 곡이었으나 그날 밤 클레멘트의 노래를 들은 사람이라면 영원히 잊지 못할 만했다.
집으로 돌아온 루시는 계단을 올라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피곤하고 두려웠으며, 자신을 보호하던 방어막이 사라진 기분이었다. 창문이 부서져 밤의 찬 공기와 어둠이 밀려드는 듯했다. 외투를 입은 채로 앉아 몸을 덜덜 떨며 마지막 노래의 가사를 속삭이고 또 속삭였다. - P37

우리 둘은 작별했네
조용히 흐르는 눈물
마음이 둘로 부서졌네
오랫동안 이어질 이별

당신의 뺨은 창백하고 싸늘하네
차가운 입맞춤보다도
분명 그날이 예고해줬네
이 이별의 슬픔도 - P38

그 노래가 루시의 삶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듯했다. 잊어보려 했으나 도저히 떨쳐낼 수 없었다. 악마의 계시처럼 곁에남아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노래는 그 후로도 몇 주 동안이나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 되었다. 처음 노래를 들었던 밤의 불길한 느낌은 착각이 아니었다. 서배스천은 이미 루시의많은 것을 파괴했다. 어떤 사람들은 신변과 재산에 일어난 변화로 인생이 바뀌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운명이란 감정과 생각에 일어난 변화였다. 그뿐이었다. - P38

해리 고든은 분명 부자였다. 마차에 혈통 좋은 말, 썰매, 총까지 가진 것이 잔뜩이었고, 옷도 시카고에서 맞춰 입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소유물과 어울리지 않아서 전부 겉돌았다. 외투는 거칠고 모자는 딱딱했다. 그는 루시가 아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세속적이었다. 고향 사람들은 해리를 반듯한 젊은이라고 불렀고 실로 동네에서는 행실이 성숙하고 자연스러웠지만, 대도시에 나오면 자의식 같은 것이 발현되는지 군중에 섞여 무시당할까봐 조바심을 냈다. 루시는서배스천이 가죽 슬리퍼와 오래된 벨벳 재킷 차림으로 햇살을 등진 채 서 있던 모습을 또렷이 기억했다. 그라면 세상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똑같이 행동할 것 같았다. 분명 많은것을 겪어보고 많은 것에 능숙한 사람만 지닐 수 있는 담백함이 있었다. 그의 생에 살짝 스치기만 해도 속 깊은 종을 두드리는 듯해서 듣지 못하는 것까지 전부 느낄 수 있었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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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개 샘의 반짝이는 붉은털은 소년이었던 그와 그의 것이었던 개가 미친듯이 달리곤 하던알팔파 초원과 옥수수밭에서는 하나의 표시둥과 같았다. 그는 오늘밤 내내 운전해서 토페니시의 벽돌 깔린 오래된 중심가로 갔으면 싶었다. 거기 첫번째 신호등에서 좌회전하고, 다시 또 좌회전해서 어머니가 사는 집에 닿으면 차를 세우고 다시는, 다시는 어떤 이유로도 그곳을 떠나지 않을 텐데.
그는 길의 어두운 끝자락에 이르렀다. 곧장 가면 넓은 빈 들판이 있고, 길은 들판을 에워싸며 오른쪽으로 꺾어졌다. 들판에 더가까운 쪽으로는 거의 한 블록을 가도록 집 한 채 없었고, 반대편에 완전히 불이 꺼진 집이 딱 한 채 있을 뿐이었다. 그는 차를 세운뒤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 더이상 생각하지 않고 개 먹이를 한줌 폈다. 그리고 좌석 너머로 몸을 기울이고 들판 가까운 쪽 뒷문을 연 후, 먹이를 밖으로 던지며 "가라, 수지" 하고 말했다. 그는 개가 마지못해 뛰어내릴 때까지 개를 밀었다. 그리고 몸을 뒤로빼서 문을 당겨 닫은 후, 천천히 그곳을 떠났다. 그러고는 점점 더속도를 냈다. - P267

그는 자신의 전 생애가 여기서부터 파멸이라는 것을 알았다.
오십 년을 더 산다 해도 ㅡ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ㅡ개를 버린 사실을 극복하지 못할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개를 찾아내지 못하면 자신은 끝장이라고 느꼈다. 조그만 개도 갖다버리는 남자라면 털끝만큼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그런 남자라면 무슨 짓이든 못하겠으며, 무슨 일에 머뭇거리겠는가.
그는 언덕으로 점점 더 낮게 떨어지는 태양의 부어오른 얼굴을노려보며 자리에서 몸을 움찔했다. 그는 이제 상황이 너무나 절망적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개를 찾아와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 전날 밤에 개를 버려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미치게 생긴 건 바로 나야."
그는 중얼거리고, 그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 P278

그는 길을 따라 계속 차를 몰아갔다. 이젠 완전히 어두워져서주변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겁이 나기 시작해서 나직이욕설을 내뱉었다. 이리저리 바뀌고 이랬다 저랬다 하니, 풍향계같은 꼴이라고 자신을 욕했다.
그때 그는 개를 보았다. 그는 자기가 한참동안 그 개를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개는 어느 집 담을 따라 자라난 풀 냄새를킁킁대고 맡으면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앨은 차에서 내려잔디밭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그는 몸을 앞으로 웅크리고 걸으면서 "수지, 수지, 수지" 하고 불렀다.
그를 본 개가 멈추어 섰다. 개는 머리를 들었다. 그는 쭈그리고앉아 한 팔을 뻗고 기다렸다. 그들은 서로 바라보았다. 개는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앞발 사이에 머리를 늘이고 앉아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기다렸다. 개가 일어섰다. 개는 담을 돌아가더니 사라졌다. - P281

제발 조용히 좀 해요


1
열여덟 살이 되어 처음으로 집을 떠나게 되었을 때, 랠프 와이먼은 제퍼슨 초등학교의 교장이며 위버빌 엘크스클럽 부속 밴드의 트럼펫 독주자였던 아버지로부터 조언을 들었다. 인생은 아주심각한 것이며, 막 출발하는 젊은이에게 힘과 목표를 요구하는 사업이며, 모두 알듯 매우 힘든 것이지만, 그럼에도 보답을 주는 것이라고 랠프 와이먼의 아버지는 그렇게 믿었고,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대학에서 랠프의 목표는 뚜렷하지 않았다. 그는 의사가되고 싶다고 생각했고,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의예과 강의와 법학의 역사, 거래법 강의들을 듣다가, 자신이 - P378

의학에 필요한 감정적인 초연함도, 법률 공부에 요구되는 끈질긴독서-특히 그런 독서는 재산과 증여에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르므로 능력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계속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과학과 경영학 강의를 들었다. 철학과 문학강의도 몇 개 들었으며, 자신이 스스로에 대한 뭔가 엄청난 발견을 할 찰나에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 순간은 결코 오지 않았다. 바로 이 기간에 나중에 그가 그때를 가리켜 말했듯 그의 가장저조했던 시기에 랠프는 자신이 신경쇠약에 걸린 모양이라고믿었다. 그는 남학생 사교 클럽에 들어 있었는데 매일 밤 술에 취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소문이 자자했고, 케그 술집의 바텐더 이름을 따서 ‘잭슨‘이라고 불렸다. - P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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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灣)



동지 지난 어느 날이다
고양이 눈같이 새파란 달이
떴다

말수 적은 어느 집 새색시의
조브장한 허리를 막 빠져나온 듯
맑은 달이다

귓전에 묶어놓은 썰물 소리들이
이 시린 자갈밭들을 씻어다가
올려놓은 것인가?

썰물 뒤의
긴 모래톱 걸어간
발자국 하나
또하나
나란히
안 보일 즈음
달은 지나
달은 지나

달은 자글자글하게 금이 간 채
나뭇가지에도 걸렸다

무인도를 지나며



사랑의 최종점,
사랑의 열락, 꽃봉오리, 타오름, 에
사람이 살지 않듯
아무도 없으나
그러나 저 사랑의 아슬아슬한 자세!

이 세상 모든
그리움이
새파란
물이 되어
옹립하는

사랑의 변주

비 가득 머금은 먹구름떼 바라보는 할머니 눈매


불현듯
비 가득 머금은 먹구름떼 몰린다
일손 놓고, 넋 놓고
바라보는
할머니 눈매
위에 흰 돛배 하나 떠서
위태롭다

여기는 모두
선상이다

봄빛 근처
-옛 공원에 와서



봄은 아직 일러 나뭇가지들은 내내 적막하고 나는 왜 이 공원에 앉아서 근처를 맴도는 바람결같이 침침한 눈으로 저 먼바다 기슭을 바라보는 것이냐.
지난겨울 내내 나는 무슨 뉘우칠 일이 많아 저 바다는또한 내게 저토록 많은 빛을 모아 반짝이는 것이냐.
늑골 속에서 부- 뱃고동 소리 뽑아가는 저 물위의 신작로.
무엇이 그리 안타깝게 궁금해 저녁해는 자기 생각 깊이깊이 잠기는가.
잠겨...... 自己까지를 없애는가.

인연



어디서 봤더라
어디서 봤더라
오 그래,
네 젖은 눈속 저 멀리
언덕도 넘어서
달빛들이
조심조심 하관하듯 손아귀를 풀어
내려놓은
그 길가에서
오 그래,
거기에서

파꽃이 피듯
파꽃이 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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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꺼이 그것들을, 어떤 점에서는 건전하고 절도 있는 견해들 못지않게, 고찰하기 좋은 예시로 모아 놓는다. 그것을 통해 인간에 대해, 인간의 지각과 이성에 대해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생각해 보자. 인간의 자부심을 그토록 드높여 준 이 위대한 인물들에게서 그렇게 확연하고 그렇게 천박한 결함이 드러나니 말이다. 나로서는 그들이 학문을 마치 아무나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처럼되는대로 다루고, 이성을 허황되고 시시한 도구처럼 가지고 놀면서, 어떤 때는 좀 진지하게, 어떤 때는 좀 느슨하게 온갖 공상과 망상을 내놓았던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인간을 닭으로 정의했던그 플라톤도 다른 데서는 소크라테스를 따라 진실을 말하자면 인간이 무엇인지 모른다면서, 인간이란 가장 이해하기 힘든 우주의일부분이라고 했다. 이 다양하고 불안정한 견해로 그들은 우리를마치 손으로 잡아끌듯, 암암리에 그들이 전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는 결론으로 이끌어 간다. 언제나 자기 견해를 맨얼굴로 분명하게 제시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습성이다. 그들은 자기 생각을 때로는 시(詩)의 가공적인 그림자 아래, 때로는 또 다른 어떤 가면 아 - P359

래 숨긴다. 우리가 아직도 불완전하기 때문에 날고기는 여전히 우리 위장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기를 말리고, 삭히고, 썩혀야 한다. 철학자들이 바로 그렇게 한다. 대중이 사용하기 편하도록 그들은 때로는 본디 가진 견해와 판단을 모호하게 만들고 변조한다. 어린애들을 겁주지 않기 위해 그들은 인간 이성의 무지와 우매성을 터놓고 보여 주려 하지 않지만, 혼란스럽고 오락가락하는 학문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충분히 그것을 털어놓는다.
이탈리아에 있을 때 나는 이탈리아어를 어려워하는 어떤 이에게 충고했다. 별나게 잘 말하는 게 아니라 단지 자기 뜻을 전달하기만을 바랄 뿐이라면, 라틴어건, 프랑스어 스페인어 또는 가스코뉴어건, 입에서 처음 나오는 말에 이탈리아어 어미만 붙여 보라고. 그러면 언제나 토스카나어나 혹은 로마어 혹은 베네치아어,
혹은 피에몬테어, 나폴리어 등 이 나라 방언과 연결되어, 그 많은 어형(形) 중 어느 하나에 들어맞을 것이라고 말이다. - P360

철학에 대해서도 나는 같은 말을 한다. 철학은 하도 많은 얼굴과 다양성을 지녔고, 해 놓은 말도 많아서 우리의 온갖 망상과 ㅂ몽상이 죄다 들어 있다. 인간의 상상력은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철학에 없는 것을 생각해 낼 수 없다. "어떤 철학자의 책에서도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 안 되는 말을 할 수는 없다." (키케로) 그래서 나는 더욱 허심탄회하게 그때그때 떠오른 생각을 사람들에게 내놓는다. 그 생각들이 다른 주인 없이 내 안에서 생겨났을지라도 필시 어느 고대인의 견해와 연결될 수 있을 것이며 "바로 거기서 따왔군!"이라고 말할 사람이 반드시 있으리라는 것을 내가아니까.
내 생활 습관은 천성적인 것들이다. 나는 그 습관들을 만들 - P360

기 위해 그 어떤 철학파의 도움도 요청한 바 없다. 하지만 아무리보잘것없는 것일지언정 그것들을 열거하고 싶어지거나 좀 점잖게 여러 사람 앞에 내보여야 할 때면 내 생각과 예로 보충 설명을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것들이 우연히도 얼마나 많은 철학적인예와 성찰에 들어맞던지 나 자신에게도 놀라웠다. 내 삶이 어느파에 속하는지, 겪어 보고 살아 본 후에야 알게 된 것이다. 새로운종류의 철학자이다. 철학자가 되려니 생각지도 않았던 우연한 철학자라니! - P361

우리의 영혼 문제로 돌아와서, 플라톤이 이성은 뇌에, 분노는 가슴에, 욕심은 간에 두었던 것은 한 육체를 여러 지체로 구분하듯이 영혼을 나누고 분리하려 했다기보다 영혼의 움직임에 대한 해석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철학자들의 견해 중에서 가장 그럴싸해 보이는 것은 언제나 하나의 영혼이 제 기능으로는 추론하고 기억하고 이해하고 판단하고 욕망하고, 그 외의 다른 작업들은신체의 다양한 기관들을 통해 마치 뱃사공이 자기 경험에 따라 배를 통제하며, 때로는 닻줄을 당기거나 풀어 주고, 때로는 돛을 올리거나 노를 저어 오직 그의 힘으로 갖가지 결과를 이끌어 내듯이) 행사한다는 견해, 그리고 그 영혼이 뇌에 깃들어 있다는 견해이다.
그 부분에 부상을 당하거나 사고가 생기면 즉시 영혼의 기능이 손상을 입는 것을 보면 확실하다. 거기서 영혼이 신체의 다른 부분으로 흘러간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 P361

철학자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저 한없이 혼란스러운 견해들과 사물의 인식에서 매양 벌어지는 끊임없는 논쟁은 제쳐 두자.
애초부터 인간들은, 가장 잘 타고난, 가장 능력 있는 학자들을 두고 하는 말이지만, 그 무엇에 관해서도 일치할 수 없다는 게 충분히 예측된 사실이니 말이다. 심지어 하늘이 우리 머리 위에 있다는 것에 대해서조차 그들은 일치할 수 없다. 모든 것을 의심하는•자들은 그것조차 의심하니까. 또 우리가 무언가를 이해할 수 있다.
는 것을 부정하는 자들은 하늘이 우리 머리 위에 있다는 것을 우리가 이해한 바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두 견해는 그것을 주장하는 자들의 수효로 볼 때 비교할 바 없이 가장 강력하다. - P389

견해들의 이같이 무한한 다양성과 무궁무진한 갈래들 말고도, 우리의 판단력이 우리 자신에게 주는 혼란과 각자가 자기 안에서 느끼는 애매함으로도 우리는 판단력의 기반이 별로 확고하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얼마나 우리는 사물들을 가지각색으로 판단하는가? 얼마나 여러 번 생각을 바꾸는가? 오늘 내가지지하고 믿는 것, 그것을 나는 내 모든 신념을 다해 지지하고 믿는다. 내 모든 능력과 힘이 그 견해를 움켜쥐고 최선을 다해 내게보증한다. 어떤 진리도 그보다 더 힘 있게 품어 안고 간직할 수는없을 것이다. 나는 그것에 내 전부를 내주고, 진실로 그것을 믿는다. 그러나 똑같은 수단으로 똑같은 조건에서 다른 어떤 견해를 - P389

끌어안았다가 후에 그르다고 생각한 일이 한 번이 아니라 백번, 아니 천 번, 나아가 매일매일 일어나지 않았던가?
겪어 봤으면 철이라도 나야 한다. 빛 좋은 개살구에 자주 속아 봤으면, 내 시금석이 대개는 틀리고, 내 저울이 편파적이고 불공정하다는 게 드러났으면 이번이라고 어떻게 다른 때보다 더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도 여러 번 같은 안내자에게 속아 넘어가다니 어리석은 일 아닌가? 그런데도 우연이 우리의 입장을500번이나 바꿔 놓아도, 그것이 하는 일이란 게 마치 항아리에 담듯 우리 믿음에 이런저런 견해를 채워 넣었다 비웠다 하는 것뿐인데도, 언제나 지금, 이 마지막 견해가 확실하고 오류 없는 견해이다. 그 견해를 위해서는 재산, 명예, 생명, 구원, 그리고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 - P390

이렇게 결국 한 건축물을 지을 때,
처음부터 부정확한 자를 쓰고,
각도기가 삐뚤어 수직에서 멀어지고,
수평이 어느 쪽으로 약간만 기울어도,
건물 전체가 필히 잘못되고, 기울고,
기형이 되어 튀어나오고, 앞뒤가 기울며,
귀가 맞지 않아, 벌써 어떤 곳은 무너질 태세요,
곧 실제로 와르르 무너진다.
맨 처음 계산이 틀렸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만적인 감각에 의존하면
사물들에 대한 그대의 추론 전체가
필히 부정확하고 틀린 것이 되리라.
루크레티우스 - P452

인간의 삶에서 정녕 가장 주목할 만한 행위인 죽음에서 어떤 사람이 보인 침착한 태도를 판단할 때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대개 사람들은 자기가 그 지경에 이른 것을 잘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기에게 마지막 순간이 왔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죽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이때만큼 희망의 속임수에 잘 넘어가는 경우도 없다. 희망은 우리 귀에 끊임없이 나팔을 분다. "다른사람들은 더 아프고도 죽지 않았어. 상태가 생각만큼 절망적인 것은 아니야. 최악의 경우 하느님이 분명 다른 기적들을 준비하셨을거야." 그리고 그런 일은 우리가 스스로를 너무 대단하게 여겨서일어난다. 세상 만물이 우리가 없어지는 것을 몹시도 괴로워하며,
우리 상태를 함께 아파하는 것만 같다. 바라보는 우리 눈이 달라진 만큼, 사물들도 달리 보이는 것이다. 우리의 눈길이 그것들을못 보게 되어 아쉬워하는 만큼 그것들도 우리가 사라지는 것을 애석해한다는 생각이 든다. 항해하는 사람에게 산, 들판, 마을, 하늘, 그리고 땅이 함께 흔들리며 떠나 가는 것 같아 보이듯이. - P460

대립 논리가 없는 논리란 없다고 철학자들 중 가장 현명한 학파는 말한다. 나는 조금 전 한 고대인이 인생을 경멸하기 위해 주장한 이 훌륭한 말을 되새기고 있었다. "잃어버릴 수도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떤 보배도 우리에게 기쁨을 주지 못한다." "무엇을 잃어서 겪는 고통이나,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서 겪는고통이나 고통은 똑같다." (세네카)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생명을잃을까 봐 두려워한다면 삶을 진정으로 향유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반대로 그 보배에 안심할 수 없고 빼앗길까 두려워할수록 더욱 그것에 애착을 느끼며, 더 단단히 움켜쥐고 끌어안는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추우면 불기운이 더 잘 느껴지듯, 우리의 의지도 반대에 부딪히면 더 날카로워지는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 P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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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것이 생명을 가진 존재라면, 그 운동으로 보아 이런생각이 너무도 그럴싸하므로 플라톤이 그렇게 확언했고, 우리시대의 많은 이들도 그것을 확신하거나 또는 감히 부인하지 못한다. 그들은 하늘, 별들, 그리고 이 세상의 다른 구성 요소들도 신체와 영혼으로 구성된 피조물로 조립된 것으로 보면 멸할 것들이지만, 조물주의 결정에 의해 불멸한다는 고대의 견해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런데 만일 데모크리투스, 에피쿠로스 등 거의 모든철학자들이 생각했듯이 세상이 여럿이라면, 우리 세상의 원칙과규칙들이 다른 세상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지 우리가 어떻게알겠는가? 어쩌면 그것들은 다른 모습과 다른 제도를 가졌을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그것들이 비슷할 수도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거리만 떨어져 있어도 무한한 차이와 다양성이 있음을 바로 이 세상에서 본다. 우리 선조들이 발견한 신세계에서는밀도 포도나무도 볼 수 없고, 우리 고장에 있는 동물들도 전혀 없다. 거기서는 모든 것이 다르다. 또 옛날에는 이 세상의 얼마나많은 곳에서 바쿠스도 케레스도 알지 못했던가. - P322

자연에는 오직 의심만이 있을 뿐이라고 프로타고라스는 말한다. 모든 것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 있다면 모든 것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 있다는 바로 그것에 대해서도 의문을 품을 수 있다는것이다. 나우시파네스는 우리 눈에 존재하는 것 같아 보이는 것들 중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기보다는 존재한다고 할 수 없고, 유일한 확실성은 불확실성뿐이라고 주장한다. 파르메니데스는 우리눈에 보이는 것들 중 어느 것 하나도 보편적인 것은 없고 ‘하나‘만이 있을 뿐이라고 보았다. 제논은 ‘하나‘조차 존재하지 않고 전혀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한다. ‘하나‘가 존재한다면 그 자체에, 또는다른 것에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다른 것에 존재하면 둘이 될 것이다. 그 자체에 존재한대도 품고 있는 것과 담긴 것이 있으니 여전히 둘이다. 이런 이론을 따라가자면, 세상은 가짜이거나 공허한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 P325

스콜라 학파의 신은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의 칙령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스파르타에서 뤼쿠르고스의 명령에 토를 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대한 과실이다. 그의 학설은 우리에게는 철칙이지만 아마도 다른 이의 학설만큼 그릇된 것이다. 왜 플라톤의관념이나 에피쿠로스의 원자, 또는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의공(空)과 만(滿), 탈레스의 물, 혹은 아낙시만드로스의 자연의 무한성, 디오게네스의 공기, 퓌타고라스의 수와 균형, 파르메니데스의 무한, 무사이우스의 일자(一者), 아폴로도로스의 물과 불, 아낙사고라스의 유사 부분들, 엠페도클레스의 불화와 우정, 헤라클레이토스의 불, 또는 전혀 다른 견해, 그리도 훌륭한 인간의 이성이제가 참견하는 모든 것에서 확신과 통찰력을 가지고 만들어 내는무한 잡탕의 견해와 판단들 중 한 견해를, 사물의 원리, 질료, 형상, 결여라는 세 요소를 기점으로 구축한 원리들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 만큼 기꺼이 수긍하지 못할 이유를 나는 알 수 없다. - P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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