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자기의 몸은 자기의 것이면서 모든 시간의 것이 됩니다. 석류나무는 올해도 저 좋은 곳에 둥근 열매를 매달았을 것입니다. 너무 쓸쓸해보였던 가지 끝이거나 여기쯤 매달면 담장 밑이 환해지겠다 싶은 곳이거나 자꾸만 그리워서 여러번 들여다본 어느 꽃자리쯤에, 둥글지만 닫혀 있지 않은, 자기의 방을 가졌으나 살풋하게방문을 열어놓은, 붉은 열매의 몸 속으로 걸어들어갑니다. 세상에! 하나의 열매 속에 이렇게 여러 개의 방이 있네요. 그 각각의방 속에 또 빼곡히 들어찬 보석 같은 붉은 방들! 그것들은 나를따스한 핏물이 스며든 구체적인 인간의 육체로, 포기할 수 없는꿈으로 안내합니다. 모든 존재는 홀로이며 동시에 겹쳐져 있습니다. 무엇보다 너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아프게 나를 바라보던당신에게 나는 쓰고 싶었던 것일까요. 겹침의 틈새, 나 자신이면서 동시에 당신인 시간에 대해, 나 자신이 되기 위해 내게 겹쳐져 있는 모든 틈새를 열어보는 일에 대해. - P162

이제 막 서른을 넘어섰을 뿐인 당신이, 옛날엔반짝이는나뭇잎만 봐도 막 가슴이 두근거리곤 했었는데, 라고 말할 때, 그 옛날엔..... 이라는 말의 슬프고 아득한 질감. 꿈없는 시절을 배회하면서 한 생이 늙고 ‘꿈없음‘에 적응하기 위해 제 꿈의사지를 절단해가면서 우리는 한사람의 공인된 ‘사회인‘이 되어갑니다. 이 무모함, 이 유전되는 결핍의 궁극에서 맞닥뜨리게되는 야누스는 완전한 ‘일탈‘과 완전한 ‘적응‘의 두 얼굴을 쳐들고는 봤냐? 내 얼굴 봤냐? 냉소하며 빙글빙글 웃곤 하지요. 그럴 때면 문득문득 솟구치는 살의. 그러나 내 살의는 나조차도해치지 못하고 스러지곤 합니다. 생의 한 페이지에 견고한 갑골문자만 또 가득 새겨지지요. 갑골 속에서, ‘파각‘이라는말을 앙다물어 발음해보며 하루가 힘겹게 저물던 날들입니다.
아, 저것, 불현듯 만나진 종루 위의 만다라, 둥글고 커다란 법고 앞에서 한 비구니의 자줏빛 가사 자락이 펄럭이며 소리를 띄워올립니다. 그 소리의 주름을 따라 겹겹이 포개어진 꽃잎들이 열리며 만다라화가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 P170

내가 아는 한 지상에서 가장아름다운 것은 물과 바람입니다. 보탠다면 너무 강렬하여 빠닥빠닥하지 않은 빛살, 일테면 새벽빛이나 저녁빛 같은 것. 그리고 나무들.
이른 새벽 피어오르는 산안개는 그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진 참으로 아름다운 경전입니다. 체(體)를 입었으나 체(體)가 없는, 가붓하게 제 몸을 띄워올려 바람의 길 위에 몸을 부린 저자디잔 물방울들 사이로 내가 아는 모든 이름들이 스며들고 흘러갑니다. 새벽빛 속에 반짝거리기 시작하는 나뭇잎들이 순간, 몸을 띄워 천지사방 흩날릴 것도 같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소멸의 이름으로 산안개는 피어오르고 까마득히 흩어져 자취를 남기지 않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이처럼 지극하게 공양되는 예불을 찬찬히 지켜보며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말을 문득중얼거려보는 것입니다. ‘나‘는 본시 없고 ‘나‘가 없었던 적도 - P174

없으나.....
이 아름다운 예불의 마지막에 즈음하여 나는 참으로 순하여지고 이미 없는, 이미 흩어져 사라진 흔적을 향해 지극한 합장을 올렸습니다. 허공을 향해 드리는 합장. 아, 그러고 보니 이와비슷한 합장의 기억이 내게 두 번 더 있습니다.
한번은 저 운문산 꼭대기의 기도 도량인 사리암에서였지요. 어머니에서 누이에 이르기까지 이래저래 나는 불연이 깊은 사람이지만 내게 있어 불교의 매혹이란 그 종교적 입성 때문이 아니라 철학적 사유의 지극하고 치열한 아름다움 때문입니다. 나는 고착된 형상을 입은 절대자를 믿지 못합니다. 붓다도 예수도참으로 아름다운 구도의 인간들이었으나 그들에게 절대의 신격과 권좌가 부여되는 순간 나는 매혹을 잃습니다. 번쩍이는 금물을 입은 불상이나 북적거리는 십자가의 상징은 이 땅을 지배하는 다른 상징들, 내가 참으로 혐오해 마지않는 부와 권력과 관습의 힘 속에 천박해져가는 여타의 사회적 상징체계들과 다를것이 없습니다. - P175

최북단 마을의 자그마한 학교인 명파초등학교 운동장을 오래도록 서성거렸습니다. 수업시간인지 사위가 고즈넉합니다. 저아이들은 무엇을 꿈꾸고, 배우고, 질문하고 있을까요. 아득한북방으로부터 날아와 송지호의 갈대숲에 내려앉는 철새떼의 날갯짓 소리를 그저 말없이 듣습니다. 새들이 비상하는 순간의 날갯짓 소리는 우주를 유랑하는 집시별들의 무위를 닮아 있습니다. 아름답다.……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화진포 바닷가를 오래도록 서성입니다. 긴 세월 바다가 빚어놓은 눈부시게 희디흰모래사장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무어라고 자꾸 속삭입니다. 가만히 귀기울이니 그것은 백두에서 시작되어 금강과 설악을 거쳐 남으로 흘러내려가는 백두대간의 능선과 나누는 밀어 같습니다. 그들의 밀어에 또 가만 귀기울이니 사람아, 사람아, 안타까워하는 탄식이 간간이 섞여 들립니다. 멀리 고갯마루에 내어건 내 마음이 울적해져 동해를 굽어보고 있구요. 강원도 땅에들 때면 언제나 그러했듯이, 인간인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기도가 간절해집니다. - P206

아침 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하이네 • 브레히트 · 네루다/김남주 옮김


책은 사람에 의해 잉태되고 자라고 죽음을 맞는다. 동시에 ‘어떤‘ 책은 사람을 잉태하고 젖을 물리고 자라게 한다. 여기 한권의 책이 있다. 작가도 사라지고, 수배지의 어둠과 싸우며 이시편들을 번역한 이 땅의 시인도 사라지고, 출판사도 사라진책 한 권의 책에 관계된 모든 것이 죽음 저편으로 사라진 뒤에도 오래도록 내 서가에 이 책은 꽂혀 있다. 오월이 오면, 나는이 책을 다시 뽑아든다. 활자의 룰을 따라 ‘읽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만지기‘ 위해, 참혹한 어둠속에서 잉태된 낡은 겉장에 손을 얹고 이 책이 나를 때리던 상처의 기억을 향해 손을 내민다. 오늘을 묵상하기 위해, 꿈꾸기를 거세당하지 않고 미래로돌아가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이 시들을 읽어주기 바랍니다" 라고 시인 김남주는 쓰고 있다. 책의 초판 발행일인 1988년 8월그는 9년째 감옥에서 싸우고 있었다. 싸우는 사람들. 어떤 의미 - P209

에서 모든 인간은 자기 앞의 생과 싸우는 전사들이다. 꿈꾸기위해, 자유로워지기 위해, 행복해지기 위해. 삶에 대한 사랑이유무형의 폭력과 맞닥뜨려질 때 지독한 분노와 증오와 싸움이촉발된다. 그리하여 시대와 나라는 다르더라도 부조리와 폭압의 현실 앞에 아름다운 전사들이 있었다.
하이네는 쓴다. "거인 안테우스는 그의 발이 어머니인 대지에닿아 있는 동안에는 막강한 힘을 쓸 수 있지만 헤라클레스가 그를 들어올리자마자 힘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시인도 마찬가지다. 현실의 대지를 떠나지 않는 한 막강한 힘을 내지만 공상에빠져 푸른 하늘을 떠돌아다닌다면 그 순간 무력해지고 말 것이다." 브레히트는 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되겠기에." 네루다는 쓴다. "아픔보다 넓은 공간은 없다. 피를 흘리는아픔에 견줄 만한 우주도 없다" 라고 - P210

너무도 명백한 폭력의 시대가 이 땅을 시시로 훑고 갔다. 진실로 살아 있기를 원했던 많은 사람들이 시대의 이름 앞에 살해당했다. 시인 김남주도 그렇게 죽었다. 이제 우리는 그때를 단지 ‘그 시절‘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인식하든 그렇지 않든, 냉소의 이름이든 회한이나 야합이나 대중추수의 이름이든, 인간정신의 점진적 ‘죽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누군가는 말했 - P210

다. 살아남으라고, 살아서 세계의 무의미와 싸워야 한다고. 그러나, 불행히도, 세계는 무의미하지 않은 것이다. 인간이 저질러온 너무도 많은 죄 의미들이 들끓고, 죽을 때까지 싸워도무의미에 도달할 수 없을지 모른다. - P211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나는 조르바를 사랑한다. 그는 육체의 즐거움을 정신의 즐거움으로 도약시킬 줄 아는 놀라운 마법을 지녔다. 이성과 교육으로부터 어떤 수혜도 받지 않은 이 늙은 노동자는 일상적인 남자, 여자, 꽃핀 나무, 냉수 한컵, 빵 한조각도 처음 보는 경이로운 수수께끼처럼 열정적으로 바라보고 만지고 냄새맡는다. 조르바를 거치면 일상의 모든 것이 신성한 야만으로 돌아간다.
"당신이 바라는 만큼 일해주겠소. 거기 가면 나는 당신 사람이니까. 하지만 산투리(그리스의 현악기) 말인데, 그건 달라요. 산투리는 짐승이요. 짐승에겐 자유가 있어야 해요. 춤도 출 수있소. 그러나 분명히 말해두겠는데, 마음이 내켜야 해. 나한테 윽박지르면 그때는 끝장이오.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냐고? 단호하게.
조르바는 말한다. "자유라는 거지" - P212

뜨겁고, 치열하게 생에 밀착해 있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자유. 생의 가장 밑자리까지 질주함으로써 생을 정복하는 조르바의 자유를 나는 사랑한다. 춤추고 싸우고 일하고 산투리를 연주하는 곡괭이와 산투리를 함께 다룰 줄 아는 손을 가진 조르바는 야성의 영혼을 가진,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람‘이었다. 『영혼의 자서전에서 카잔차키스는 고백한다.
"내 영혼에 깊은 자취를 남긴 사람을 대라면 호메로스와 부처와니체와 베르그쏭과 조르바를 꼽으리라. (...) 조르바는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생명에의, 불사(不死)를 향한 힘의 흐름과 파괴에의 죽음을 향한 힘의 흐름을한 몸 속에 넣고 너무도 유쾌하게 생을 가로지르는 조르바. 긍지에 찬 모습으로 백정의 춤과 전사의 춤을 추고 있는 조르바.
카잔차키스의 영혼은 ‘춤추며 싸우는‘ 조르바를 만나면서 근육질과 뜨거운 피가 가득 찬 심연을 얻었으며, 그 육체성의 뺄속에서 빛나는 마법이 시간이 무르익는다. - P213

자기 내부에 존재하면서도 자기를 초월해 있는 것을 구하기위해 평생을 싸웠던 작가 카잔차키스는 『돌의 정원에서 이렇게쓴다. "(...) 그리고 우리 식물과 동물과 인간은, 혼례의 행렬에들어 있는 우리는, 신비스러운 침실을 향해 전율하며 돌진하는것이다. 우리 하나하나가 혼례의 성스러운 상징을 가지고 간다." 영원한 청년이며 혼례의 신랑인 조르바가 못 박히고 일그러진 손으로 꽃 한송이를 만지듯 섬세하게 산투리의 줄을 고르 - P213

는 것을 나는 바라본다. 그리고 듣는다. 날마다 죽으라. 날마다태어나라. 중요한 것은 자유가 아니고 자유를 위한 싸움이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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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어떤 특별한 경험, 이를테면 비밀의 화원을 남몰래 들어서는 두려움과 호기심과 환희를 유발했으며 그렇게 나는 당신의 첫 자취와대면하게 된 셈이지요.
돌담을 끼고 돌다 대문을 들어서 안채를 지나 또다른 작은 문을 통과해 뒤꼍에 이르기까지, 열살배기 아이에게 그 집은 출구와 입구가 분간되지 않는 이상한 정원이었습니다. 대문을 들어서 나선형으로 한바퀴 돌았다 싶은 곳에 작은 정원을 지닌 사랑채가 마치 비밀의 정원 속에 든 가장 이윽한 비밀의 화원처럼돌연 눈앞에 나타났지요. 아, 설명할 수 없는 기품이 느껴지던아담한 사랑채 마당에 찬란히 흔들리고 있던 백일홍 꽃그늘! 단단하게 다져진 흙마당에는 군데군데 푸릇한 이끼가 돋아 오래된 청동거울의 표면처럼 비밀스러웠으며, 그 비밀 위에 차마 비밀로 덮어둘 수 없어 나무 한그루로 자라나고 만 어떤 아우성이 그토록 붉게, 그토록 처연하게, 푸른 하늘을 만지며 붉디붉은 꽃자국을 내고 있었습니다. - P24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 가장 평화롭고 완벽한 느낌의 낮잠. 많은 이들은 가장 아름답거나 가장 고통스럽던 기억의 편린으로부터 자기 생의 팔할을 이미 완성합니다. 그리고 그 극단의추억은 유소년기를 거치면서 흔히 가장 왕성한 에너지로 자신의 무의식에 각인되곤 하지요. 의식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한인간의 가장 내밀한 지향, 혹은 내밀한 거부의 근원에는 이 추억의 힘이 있다고 나는 종종 생각합니다. 그것은 로고스로는 도달할 수 없는 세계이며 언어로 표현할 방도가 없는 원체험의 세계이지요. 이를테면 내가 종종 바다를 그리워하여 병을 앓게 되는 것은 내 유년의 어느날 바로 그 순간의 기억이 나를 이루는 질료들을 건네오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간질이며, 아주 오래된, 어쩌면 이미 사라진 부족의 방언을 중얼 - P25

거리며 내 존재의 근원을 찔러오는 그리움.....
저 고택 사랑마루에서의 낮잠과 백일홍과의 만남이라는 바로 ‘그 순간 그 ‘순간‘은 기우뚱거리며 걸어온 서른 해의 내삶이 어디로 흘러가야 할(혹은 어디로 흘러가게 될 것인지를가능하게 하는 낮별의 세계이며, 난파되었다고 느끼는 모든 순간들에서 나를 지탱해온 근원의 닻이 되어주곤 합니다. 空(공)으로부터 출발하여 공을 향해 가는, 내게 짐지워진 삶이 궁극적으로 공한 것이라 할지라도 공을 완성해내기 위해 가득 차 있어야 하는 삶의 역설을 견인해낼 수 있는 근원의 힘. 세상에 태어나 내가 얻을 수 있었던 최대의 축복이 어린날의 그 체험의 순간들이었다는 것을 불현듯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시간이 얼마쯤이나 흘렀을까..... 나는 낮잠에서 문득 깨어났습니다. 흙마당이 풍기는 아득한 냄새와 담장 건너 솔숲으로부터 불어오는 솔바람 냄새, 미열처럼 떠도는 희미한 꽃내음... - P26

저 요요한 고택.
사백여년 전 당신이 일찍 죽을 운명을 지니고 세상을 향해 첫울음을 던진 저 집과 내가 첫인연을 맺은 지 이십여년이 지났습니다. 강릉 초당마을. 난설헌(蘭雪軒) 허초희(楚姬)의 생가. 솔숲 언저리에 맞춤하게 자리잡은 저 단정한 미음자 고택은 당시의 양반집들이 흔히 그러했을 등등한 기세가 없습니다. 솔숲이 허락하여 내어준 자리에 숲과 하늘을 공경하기 위해 지어진사당처럼, 아담한 미음자의 담장은 하늘을 향하여는 열려 있으나 인간에 대하여는 완고하게 닫혀 있는 듯도 보입니다.
그 열살 이후, 내성적이고 소심하며 도대체 무엇인가 꼭 되어야겠다는 소년기의 열망도 내 것으로 품지 못하고 머리가 커가던 세월 동안 저 고택을 참 많이도 드나들었습니다. 내가 살던교동집에서 초당마을까지는 버스를 타고 내려서도 꽤 걸어야했던 만만치 않은 거리였지만 저 고택은 내게 쉼터가 되어주고은밀한 기도처가 되어주곤 했지요.  - P27

그런 날들의 음화 속에는 흔히 부엌에서 혼자 우는 엄마가 있있으며, 결국은 다시 풀게 될 짐을 꾸리고 있는 엄마가 있었고,
항구에서 고기를 받아 시내로 들어오는 버스를 타며 끝끝내 차장에게 내 버스값을 물지 않던 엄마가 있었고, 그 북새통 속에서 울고만 싶었던 내가 있었고, 친구들과 길을 가다 함지박을이고 지친 모습으로 돌아오는 엄마를 외면한 나에 대한 자책이있었고, 남자아이를 낳으려다 뒤늦게 나를 낳아 친구들 엄마에비해 너무 나이가 든 늙은 엄마를 창피해하던 나의 속죄가 있었고, 얼굴도 모르는 큰오빠가 돌연히 죽지 않았다면 내가 태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이상한 피에 대한 분노가 있었고, 천신만고끝에 얻은 남동생에게 돌아가는 유별난 사랑에 대한 질투가 있었고, 피해의식이 있었고... - P28

한 여자가 있었느니, 제 이름을 가지지 못한 조선의 여자들속에서 이름과 자와 호까지 가진 여자가 있었느니, 타고난 재능때문에 오히려 불행할 수밖에 없었던 여자가 있었느니, 이반의기질을 가진 가게 안에서는 평등한 지복을 누렸으나 당대의 제도와 관습 속에서 피폐해질 수밖에 없었던 여자가 있었느니, 스물일곱의 나이에 요절한 백설과 난향을 사랑한 여자가 있었느니, 사랑을 소망하였으나 인간의 세상에서 사랑을 얻지 못한 여자가 있었느니, 어머니가 되지 못하였으나 어머니였던 한 여자가 있었느니...... - P29

당신을 알아가면서 나는 더러 아프고 연민하고 분노하고 또더러는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그 여러 겹의 마음이 세월의 베틀속에서 직조해낸 옷감 한필을, 옷감 속에 촘촘히 스며 있는 어룽거리는 무늬들을 오래 바라봅니다. 그 무늬들 중 가장 아프고가장 아름다운 몇개를 눈짐작으로 골라내고 나는 속삭입니다. 걸어나와보라고. 떠올라와보라고. 시인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부터 아름다움의 의지를 발견하려는 자이며 그리하여 고통스러운 자들이지만 그리하여 또한 유쾌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노래합니다. 무늬가 떠오릅니다. 나는 그 무늬의 결들중 가장 아름다운 봉우리 하나를 눈을 감고 만집니다. - P29

구슬꽃은 하늘거리고 파랑새는 나는데
서왕모는 수레 타고 봉래섬으로 가네
흰 봉황 수레에 오색 깃발 휘날리고
붉은 난간에 기대어서 구슬풀을 뜯네
푸른 무지개 치마는 바람에 날리고
구슬 고리와 노리개는 소리를 내며 
부딪히는데
흰 옷 입은 선녀들 쌍쌍이 거문고를 뜯고
구슬나무 위에는 봄구름이 향그러워라
동틀 무렵에야 부용각 잔치는 끝나고
푸른 바다의 청동은 흰 학을 탄다네
보랏빛 퉁소 노랫소리에 무지개가 날리면
이슬 젖은 은하수에는 새벽별이 떨어지네

-「신선세계를 바라보며(望仙謠)」 - P30

자신의 죽음의 때를 알고 죽기 직전, 자신의 모든 시를 불태워버리라고 한 유언에도 불구하고 우여곡절 끝에 남겨진 당신의 시편들에서 가장 흔히 만나게 되는 판타지의 세계. 당신은마치 선계의 일상을 살다 온- 사는 사람처럼 선계를 재현해놓고 있으며 그 선계의 일상은 너무 리얼하여 오히려 그 세계가환임을 증거하는 슬픈 역설을 내비치곤 합니다. 두루뭉술하 - P30

고 낯익은 현실의 어떤 풍경을 스윽, 긋고 들어가 쭈그리고 앉아서 촘촘한 세촉으로 그려내었을 때 그 낯익은 현실세계 속에숨어 있는 너무나 낯설고 비현실적인 세계를 돌연 발견하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지독히 비현실적이어서 지독한 현실감을 띠게 되는 원더랜드, 그 원더랜드는 그러나 인간의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하는 시간 - 새벽별이 떨어지고 동이 트고 나면 사라집니다.
사람들은 흔히 당신의 선계 시편들을 일러 현실의 고통을 견인하기 위한 도피처요 위안처였다고들 합니다. 당신이 그려내는 선계는 유토피아요 이상향인 셈이지요. 그렇습니다. 이상향이되, 나는 그 유토피아가 현실로부터 출발하여 동경하게 된 한번도 가져본 적 없는 꿈의 세계가 아니라 실향민이 고향을 그리워하듯이 원형의 고향인 유토피아로부터 출발하여 하계로 유배온 자가 부르는 노래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 P31

그리하여 그것은무지개 저편을 꿈꾸는 노래라기보다 실향민의 노래, 유민의 노래라고 말이지요.
당신은 고향 - 유토피아의 기억을 간직한 자. 사회 경제 문화적인 차별의 차디찬 납골당 주인들인 인간계에 적응하기엔 당신의 기억의 뿌리가 너무 깊은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기억의뿌리-모든 생명 가진 것들의 평등화엄의 세계를 이미 알고 있는 자가 부르는 노래. 당신의 선계에는 혼백과 숨과 교감이 살 - P31

아 있는 우주만물이 등장합니다. 나는 그 세계를 ‘어머니 땅‘ 인고향이라고 부릅니다. 어머니 땅을 이루는 무수한 이름들, 꽃새 바람 무지개 구름 나무 바다 은하수 별∙∙∙∙∙∙ 타나토스를 끌어안은 지극한 에로스의 세계인 자연과 우주의 질료들은 엉기고간질이며 속삭이고 상승하며 하강하면서 환環)을 이루고 그것은 물질적 환(幻)의 세계를 이루어냅니다. 불사의 여선(仙)서왕모(母)가 기린 수레(車)를 타고 축제를 주관하러 봉래산으로 갑니다. 그녀의 수레를 끄는 기린은 생명 있는 것은밟지도 먹지도 않는다는 상서로운 동물이며 봉(鳳)은 닭의 머리, 뱀의 목, 제비의 턱, 거북의 등, 물고기의 꼬리 모양을 한, 하늘과 땅과 물속의 만물을 한몸에 표상한, 그 모든 것이 합쳐 이루어진 새지요. 그 몸에는 타자화된 질료가 없습니다. 지극한대자연의 세계, 평등화엄의 세계는 당신의 고향이자 유토피아이며 실향의 탄식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어느 순간부터이가 나는 ‘문득‘ ‘그저‘ 하게 되었습니다 - P32

인간의 최초의 시는 존재다.라고 누군가 말했듯이 이 ‘문득‘ 이루어진 교감의 세계는 존재의 ‘기억‘으로부터 연원하는 듯합니다. 여러 점의 기억을 간직한 존재들. 때로 어떤 결과 겹 사이의 벌어진 틈새로 아득한 그리움의 파동이 생겨나는 순간이 불현듯 닥칠 때가 있지요. 이미 알고 있음이 분명한데 기억할 수없는 어떤 세계에 대한 그리움, 그 틈새는 그 ‘어떤‘ 맛과 향기 - P32

와 촉감이 육체의 깊은 곳에 아로새겨진 자들이 망각한 육체의 문자를 찾아나서는 세계이며, 그리하여 아득한 그리움을 동반하는 세계인 듯합니다. 우리의 육체 속에 수백억 개의 세포들이 우주거품처럼 심연의 질서를 이루며 존재하고 있듯이, 또한 동일한 그 육체 속에 심연의 호흡을 삼키는 블랙홀들이 존재하고있듯이. 그리하여 생은, 영원한 신비지만, 그 신비는 ‘지금‘ 잊고 있는 것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발원된 형태라는 생각을 나는 또 ‘문득‘ 하곤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이미 칠팔세에 「광한문옥루전상량문」을 지었다는 뭐 그러그러한 기이는 차치하고라도, 어린날 내게 저 고택에서의 완벽한 낮잠이 무어라 설명할수 없는 근원적인 그리움을 파생시키듯이, 당신에게 있었을 어떤 ‘체험‘이 당신의 기억을 끊임없이 불러일으켰을 것이라는.
그 세계가 당신의 선계일 것이라는.
- P33

시인은 ‘이미 존재하는 세계와 불화하며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이들입니다. 이들이 창조해내는 세계에는 가장 낮은 것 속에 든 가장 높은 봉우리와, 가장 거대해 보이는 것 속의 가장 작은 속삭임들과, 가장 미천해 보이는 것 속의 위대한 전언이 공존하며, 무엇보다 인간의 세상이 추구해야 할 의롭고 아름다운것에 대한 갈망이 존재합니다. 그리하여 시인은 열망하고 두리번거리고 귀기울입니다. 아파하고 연민하며 공경하고 분노합니다. 골방과 광장이 공존하며 사랑과 투쟁이 공존하는 시인의 거처에서 당신은 가난한 처녀의 탄식을 아파하며 모순된 사회제도를 비판합니다. - P37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온 하계의 질서란 계급과 계층 간의 끝없는 쟁투와 착취의 역사였으며, 다수 민중에대한 소수 지배계급의 착취가 가장 폭압적인 형태이거나 세련된 방식으로 그 외연을 바꿔온 것에 다름아니라는 것을. 나는또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살았던 봉건적 왕조시대나 내가 살고있는 자본주의시대가 지배와 피지배 계급간의 여전한 쟁투의장이라는 것을. 더구나 이 척박한 현대의 자본주의는 내외적인식민지를 필연적으로 요구하며 이 별은 끊임없이 강자의 문법에 의해 구획되고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을. 이 살벌한 약육강식의 문법 속에서 선진제국에 의한 제3세계의 가혹한 착취가 소문 - P37

없이 진행되고 있으며 일국 내 빈익빈 부익부와 다수 민중에 대한 착취가 민주(民主)의 외피를 쓰고 여전히 진행중이라는 것을. 계급의 불평등과 인종의 불평등, 그리고 성의 불평등은 하계를 지배하는 가장 심각한 불평등체계이며 이중, 삼중으로 타자화되어 있는 연옥의 미로라는 것을.
이 연옥의 미로를 통제하는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는 가부장적 사고체계인 것 같습니다. 한 가족 안에서의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가장(家長)이데올로기는 한 국가 안에서의 가장이데올로기로, 국가와 국가간의, 민족과 민족 간의 가장이데올로기로확대되며 종국에는 이 별에 대하여 가장의 폭압적 권위를 행사하려고 합니다. 이 지독한 가부장제의 유령들. 이들이 주관하는 카니발에서 자기의지와 무관하게 제물로 바쳐지는 것은 예외없이 약자이며 특히나 여성과 아동, 그중에서도 피억압계층의 여성과 아동들입니다. - P38

당신은 당시의 명문대가 ‘규수‘들이 흔히 그러했던 안락이 보장된 여자의 길을 걷지 않은 사람. 당신의 여러 시편에서 보여지는 봉건제도의 피지배계층에 대한 연민과 불합리한 신분제도와 제도적 특혜, 그 자신 여성으로서 받아야 했던 봉건적 남존여비의 고질적 병폐에 대한 분노와 비판은 억압과 지배를 거부하는 본래적 기억 - 지극히 여성적인 힘의 평등 화엄의 세계를 꿈꾸는, 참된 시인의 근원자리일 것입니다.
나는 이제 당신이 속삭이는 사랑과 관능의 노래를 들으러 갑니다. 선계와 하계의 틈새에서, 그 틈새의 원심력을 지탱해가며 흔들리는 푸른 잎사귀들, 붉고 흰 꽃으로 벙그러지는 환한 몸의 세계로. - P39


가을의 호수는 맑고도 넓어
푸른 물은 구슬처럼 빛나는데,
연꽃으로 둘린 깊숙한 곳에다
목란배를 매어두었네
님을 만나 물 건너로
연밥 따서 던지고는,
행여나 누가 보았을까봐
한나절 혼자서 부끄러웠네

연밥을 따면서 - P39

정중동(靜中動)이라 하였습니까. 고여 있는 듯 보이는 맑은호수 속에서 물살은 끊임없이 몸을 뒤척입니다. 하늘이 흘러가고 구름이 흘러가는 호수 속으로 한 여자가 흘러듭니다. 목련으로 엮은 배를 호수 깊숙이 매어두고 그녀는 이윽히 기다립니다.
기다림은 정(靜)한 것입니까. 고요한 듯 보이나 뒤척이는 마음이 앉은 듯이 보이나 달려가는 마음이 기다림이겠지요. 건너편물가에 님이 보입니다. 연꽃향과 물내음이 어우러진 물가에서, 습윤한 향기를 온몸으로 들이마시며 님을 기다리던 그녀의 체액이 맑아집니다. 맑아져서 드디어 흐르는 체액, 흐르는 물살.
여자는 배를 저어 님에게 갑니다. 님이 오기 전에 내가 먼저 갑니다. 그리고 흐르는 사랑의 시간. 여자가 들이마신 연꽃의 향기는 꽃의 영혼 쪽입니까, 꽃의 몸 쪽입니까. 지극한 사랑을 향해 있을 때, 영혼은 몸과 함께 흐르며 몸 또한 영혼과 함께 흐릅니다. - P40

그것은 타자의 시선에 대하여 생기는 것이 아니라자기 몸의 축제에 즐거이 적극적으로 임한 이가 자신의 몸이행한 비밀스러운 즐거움 앞에서 은근히 얼굴이 달아오르는 부끄러움이며 자꾸만 미소가 떠오르는 부끄러움입니다. 나는 이러한 부끄러움을 아는 몸이야말로 자연스러운 관능에 좀더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이것은 사랑 없이 단지 육체의쾌만을 위해 다른 몸과 만날 때에는 느낄 수 없는 감정입니다.
마음이 적극적으로 발현되지 않는 육체의 행위에서 우리가 흔히 헛헛함과 결핍을 느끼게 되듯이. 삶의 본능으로서의 관능의에너지는 이렇듯 육체의 만남이 끝난 뒤에도 한나절을 그 여운속에서 나와 님의 몸과 마음과 말을 어루만집니다. 서로에게 스며든 몸의 향기를 이윽히 눈감고 듣습니다. - P41

이 솔숲에서는 모든 계절이 사라지고 하오의 시간부터 저물녘을 지나 동트기 직전의 시간만 남습니다. 하루분의 자투리 태양빛을 머금고 숲이 온통 일렁이는 이 시간은, 생명 입은 것들이 그 생명의 미약한 박동만으로도 지극히 귀하여지는 시간. 이때의 빛은, 나무의 근육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수관과 체관의 은밀한 교합을 도우며 뿌리를 타고 아래로 스며듭니다. 상승하며 폭발하는 빛이 아니라 하강하며 어루만지는 그 빛의 길을따라 나는 당신의 유배지였던 하계를 지나 더 깊은 하계로 접어듭니다. 그곳에서 부용봉을 거닐고 있는 당신의 그림자를 만납니다. 나는 징후를 기다립니다. 어스름이 깊어지고 달이 자기의말을 하기 시작하고 소금내음을 품은 밤바람이 불어옵니다.
그 어둠속에, 붉디붉은 자국을 내며 흔들리는 백일홍 꽃나무! 나는 그 아래 흩어진 나뭇가지들을 줍습니다. 흩어진 당신의 뼈를 줍습니다. - P42

태양빛이 강렬한 수직성을 갖는 빛인 데 비해 달빛은 구부리는 빛이지요. 한여름 작열하는 태양빛이 종종 내 속의 공격성을일깨운다면 달빛은 그 빛이 가장 무르익었을 때에도 보듬어 소생시키는 부드러운 힘 쪽에 있습니다. 태양은 명징하게 빛나는형태를 고수하지만 달은 자라나고 소멸하는 만물의 생멸의 주기 속에 함께 있습니다. 자라나는 달, 죽는 달, 소생하는 달은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남루한 중얼거림을 받아안습니다. 그리하여 달님을 향해서라면 인지상정의 남루한 고통과 소망들을입밖에 내어 말할 수 있게 되지요. "그대 천상의 달 안에 나의한쪽 심장이 의지하여 쉬고 있도다/내 그러함을 깨달으니/내가 자식들의 고통으로 인하여 우는 일이 없게 하여주오" (우쉬따끼 우파니샤드)라고, 내 님이 진창을 밟으실까 걱정하는 간절한마음으로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정읍사)라고.
산 것들의 남루를 끌어안으면서 달의 시간은 따스한 에로스의 시간이 됩니다. 상처로 아픈 것들이 달의 피를 마시고 안식과 생성에 듭니다. 나는 달의 꿀을, 달의 피를 받아 마시고 당신과 나의 몸의 시간으로 갑니다. - P51

우주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세계는 율동이며모든 생명체는 끊임없는 몸 바꾸기의 과정에 놓인 댄서들인 셈입니다. 개체의 아트만 속에 우주적 호흡인 브라만이 숨쉬며 동시에 그 역이 성립하는 범아일여(梵我一如)의 역동성. 세계가 비극이라면, 그것은 ‘죽음‘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인간 스스로 부여한 오만한 의미들과 부질없는 욕망들 때문일 것입니다. 운명이 허락한다면, 나의 죽음의 순간이 지극한 고요와평화 속에서 오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세계가 창밖 저 겨울 나뭇가지를 환하게흔들고 지나가네요. 섬세한 운율을 짚으며, 공기의 결들을 타고, 마른 나뭇잎 한장 떠오릅니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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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내 누이는 나에게 스물아홉을 건너기 전에는 첫시집을 묶지 말라고 했다.
스물아홉. 그녀에게, 나에게, 비탈에 선 낱낱의 나무들에게, 꽉찬열을 향해 가는 가파른 고갯길인 그 아홉은 어떤 의미였을까.
열아홉에 대관령이 아팠고 스물아홉에 침묵한 바다가 아팠다.
그 스물아홉부터 느리게, 머뭇머뭇거리면서 이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어떤 의미의 통과제의 같은 것이었을까. 시로 풀어내기엔 너무 습하거나 달뜬 것들, 혹은 너무 메마른 것들의 나신을별판 쪽으로 밀어올려야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기록하고 싶었을 것이다. 내 청춘이 내 의식에 남긴 빛과 그림자의 환한 구멍들에 대해, 그리고 나는 내 벗은 영혼을 심문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와 우리의 자유, 나와 우리의 평화는 어떤 속삭임으로 영접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누구나 스물아홉의 강을 건넌다. 건너왔다. 누구나 ‘홀로‘ 스물아홉의 강을 건넌다. 건너왔다. 홀로 건널 수밖에 없는 강이므

로 이 글쓰기가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는 위로를 서른을 훌쩍 넘긴 지금 나에게 선물한다. 내가 나 자신을 이해해가는 과정의 편린들이며 내가 당신과 만날 수 있기를 열망한 소망의 흔적들. 그리고 이제야 간신히, 나는 나의 운명을 사랑할 줄 알게 된 것이며 운명을 반역하는 운명이 모든 삶의 틈새에서 어떻게 스스로의호흡을 여닫는지 들여다볼 그림자 하나를 지니게 된 것이다.
목숨이 허락된다면, 또다른 아홉 즈음에 이르러 나는 또 느리게, 머뭇머뭇거리면서 어떤 통과제의의 기록을 남기고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가 사랑한 늙은 나무에게, 자신의 주름 속에서 날마다 젊어지는 바람에게 물에게, 이 글들이 욕된 것이 아니기를.
여리고 귀하고 눈물겨운 것들, 내가 사랑한 당신들께, 산 것들의 위대한 남루 앞에 이 책을 바친다.

2002년 3월 김선우

도동 항구에 내립니다. 훅, 전신으로 끼쳐오는 바람, 바닷길 내내 마음의 오장육부를 드나들던 숨소리가, 징글징글하고 사무치게 뼛속을 밝히던 숨소리가놀랍게도 일시에 화르륵 걷힙니다. 육지로부터 따라온 숨소리를 마술처럼 걷어내며 내 온몸에 가득 들어서는 바람, 손끝, 발끝, 머리카락 한올에 이르기까지 온몸 구석구석에서 소용돌이치며 이 섬의 바람이 내 몸을 허공에 띄웁니다. 돌연 나는 인간의 말을 배우지 않은 어린아이처럼 천진해지고, 말의 문법을 버린 야인처럼 자유로워집니다.
바람 속에서, 나는 문득 중얼거립니다. "나는 아무것도 원하 - P12

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 항구에 발을 디디는 순간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 문득 떠올라온 것은, 그것이 카잔차키스의 말이기 이전에 바람의 말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든 것을 상대로 자신을 던지며 사랑하고 괴로워하고 싸우는 바람. 그러면서 점점 투명해지고 점점 더 가벼워져서 저 단단한 섬대나무의 속살에까지 스며드는 바람. 스며들었다가 어느 순간 유쾌하게 폭발하며 나무들을 가볍게 띄워올리는 바람. 나는 그리스인이기 이전에 크레타인이다,라고 말하는카잔차키스의 마음을 이 섬에 와서 비로소 알 것 같습니다. 카잔차키스가 사랑했던 크레타 섬에도, 오로지 이 섬의 것이다.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바람이 있었을 것이라고. - P13

울릉도의 바람. 그것은 이 섬의 모든 귀퉁이로부터 자신의 길을 엽니다. 그 바람은 오각형의 단단한 별을 닮은 이 섬이 처음빚어질 때, 그러니까 한 이천오백만년 전쯤 신생대의 어느 시기에 바닷속에만 갇혀 있기가 지루해진 바람족(族)들이 한바탕 축제를 벌이듯 와글거리며 바닷속 깊은 곳으로부터 화산을 터뜨려 올렸을 그때부터 한번도 이 섬을 떠나지 않은 듯한 바람입니다. 그것은 아름답게 늙어가고 있는 바람이며 늙으면서 날마다 젊어지는 바람입니다.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으로 바닷속으로부터 솟구쳐오른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쓰다듬고 들여다보며환희에 젖는 아름다운 관능의 바람입니다. 그러니 먼 훗날, 이 - P13

섬이 당신을 불러 무연히 이곳에 발디디게 되었을 때, 지도나관광안내판 앞에서 서성거리지는 마세요. 다만 온몸의 구멍들을 활짝 열어놓고 바람에게 길을 물으세요. 마음이 갈피를 잃고부대끼는 가슴뼈 깊숙한 곳으로부터 귓불의 미세한 솜털들까지 바람 속에 나부끼게 그저 놓아두십시오. 다만 그렇게 바람이 이끄는 대로 걸어가다보면 어느 순간, 당신은 저동항에 있을 것이고 내수전 밤바다에, 천부와 황토구미에, 나리분지와 성인봉 꼭대기에 있게 될 것입니다. - P14

흔히들 섬을 일컬을 때 고립과 고독을 먼저 떠올리곤 합니다. 나는 이 섬에서 지극히 고독해진 땅의 지극한 풍요로움을 만납니다. 나는 떠돌면서 유목을 꿈꾸는 자이지만 이 섬의 사람들은 동해의 고도에 정주해 있으면서 이미 아름다운 유목민들입니다. 철따라 다른 이름의 바다생물들이 찾아들고 울릉국화 울릉양지꽃 섬노루귀 섬현호색 섬백리향 섬바디 섬말나리꽃이 철따라 피어납니다. 울릉도 말고는 다른 어느 곳에도 없는 자생식물이 마흔일곱 가지나 된다는군요. 봄이면 명이나물 취나물 참나물 등 온갖 산나물과 약초들이 지천인 산에는 향나무 솔송나무 너도밤나무 섬개야광나무 섬잣나무 동백나무 섬댕강나무들이 철따라 다른 빛깔의 수액을 뿜어올릴 터. 시시각각 변하는 산빛과 바닷빛과 하늘빛과 바람의 빛깔을 이윽히 바라만 보아도 유목의 나날은 흥성스러울 듯합니다. - P16

먹고 마시고 소비하는 일에 길들여진 육지의 인간들이 남긴 쓰레기들이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몇천톤의 배가 정박할 수 있는 부두가 만들어진다는 소문, 골프장과 스키장이 만들어진다는 소문, 이런 소문들이 두렵습니다. 벌써 이 섬의 자생식물인 섬개야광나무는 울울한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으며 섬백리향 군락지에는 자생하는 백리향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이어도‘라고 하는 이 섬의 훼손되지 않은 자연의 비경을 보고자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옵니다. 그들이 이곳에서 얻어가야 할 가장 그윽한 것은, 자연의 섭리를 섬기고 그 섬김의 힘으로 스스로 평화로움을 얻는 공경의 마음일 것입니다. 훗날 이 섬이 당신을 부르거든, 온몸으로파도에 흔들리며 뱃길이 자주 묶이는 작은 배를 타십시오. 그렇게 어렵게, 귀하고 낮은 마음으로 발디뎌야 하는 ‘섬김‘의 땅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만, 바람에게 길을 물으십시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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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은 『법률」에서 젊은이들이 의복, 거동, 춤, 운동, 노래 등을 제멋대로 이랬다저랬다 바꾸게 내버려 두는 것이야말로국가에 가장 해롭다고 보고 있다. 새로운 것을 뒤쫓고 새것을 만든 자들을 흠모하면서 자기 판단을 때로는 이 입장으로 때로는 저입장으로 바꿔 감으로써 이로부터 풍속이 타락하고 모든 옛 제도가 무시되고 경멸당한다는 것이다. 어떤 일에서든, 물론 빤히나쁜 일은 예외이지만, 변화는 우려스러운 것이다. 계절의 변화, 바람과 음식과 기분의 변화가 다 그렇다. 그리고 하느님이 어느 정도 장구한 세월을 견뎌 가게 허락해 줘 아무도 그 기원도 모르고,
바뀐 적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경우 말고는, 어떤 법도 진실로 신뢰받고 있는 것이 아니다. - P476

이성은 우리에게 늘 한결같은 길을 가라고 명하지만, 그렇다고 항상 같은 걸음으로 가라고 하지는 않는다. 현자는 인간적인정념들이 정도를 벗어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되지만, 자신의 규범을 저버리지 않고도 얼마든지 정념이 걸음을 서두르거나 늦추도록 허용할 수 있으며, 뻣뻣하고 무감각한 거인상(巨人像)처럼한자리에 붙박여 있지 않아도 된다. 아무리 덕의 화신이라 해도적을 공격하러 갈 때는 저녁 먹으러 갈 때보다 심장 박동이 빨라질 것이다. 나아가 덕은 뜨거워지기도 하고 감동받아 움직이기도해야 한다. 이런 까닭에 나는 때때로 위대한 인물들이 지극히 고귀한 계획과 그지없이 중요한 일에 임하면서 잠조차 줄이지 않을만큼 완벽하게 평상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을 보고 매우 비범한일로 새겨 두었다. - P477

 판단력은 모든 일에 사용되는 도구이며 어디서나 관여한다. 그런 연유로 여기서 하고 있는 시험 (essai)들에서 나는 어떤 종류의 기회이든 다 이용한다.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주제라도 나는그것에조차, 멀찌감치서 여울의 얕은 곳을 가늠해 가며 내 판단력을 시험해 본다. 그러고 나서 내 키에는 너무 깊은 것으로 드러나면 물가에 머무른다. 그 너머로 건너갈 수 없음을 아는 것, 그것이바로 판단력이 보여 주는 특징적 자질 중 하나요, 나아가 가장 자랑할 만한 자질이라고 할 수 있다. 때로 보잘것없고 하찮은 주제를 가지고도 나는 그것에 몸체를 부여할 수 있는 무엇, 그것을 받쳐 주고 지탱해 줄 무엇을 찾아보려 애쓴다. 때로는 그 자체로는더 찾아낼 것이 없는 고상하고도 진부한 주제로 판단력을 산보시키기도 한다. 하도 다져진 길이어서 다른 사람의 발자취를 밟으며걸을 수밖에 없어도 말이다. 그럴 때는 가장 나아 보이는 길을 선택하거나, 수많은 오솔길 중 이것 또는 저것이 가장 잘 고른 길이 - P527

었다고 말하는 것이 판단력의 활동이다.
나는 우연히 주어진 논제를 취한다. 어떤 것이든 내게는 똑같C이 좋다. 그리고 그것들을 끝까지 개진할 생각도 전혀 없다. 왜냐하면 나는 어떤 것도 그 전부는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전부를 보여 주겠노라 약속하는 이들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각각의 사물이 지닌 수많은 지체와 얼굴 중에서 나는 하나만 취해때로는 핥아 보기만 하고 때로는 스쳐 보며, 또 때로는 뼈까지 꼬집어 본다. 바늘로 찔러 본다. 가장 넓게가 아니라 할 수 있는 한가장 깊이. 그리고 내가 가장 즐겨 하는 것은 익숙지 않은 관점으로 그것들을 포착하는 것이다. 내가 나를 좀 덜 안다면 375 어떤 소재는 속속들이 다뤄 보겠다고 덤볐겠지만 말이다. 그저 여기서는이 단어, 저기서는 저 단어, 저들의 저서에서 떼어 낸 편린들을 흩뿌리면서, 계획도 약속도 없이, 그것들을 가지고 뭔가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도 없이, 거기에 집착하지도 않고, 마음에 들 때는 달리 생각해 보려 하지도 않으며, 의심과 불확실, 그리고 무지라는 나의 주된 상태로 물러나 버린다. - P528

우리가 때로 우리 자신을 고찰하는 데 마음을 쓰고, 남들을 살피거나 우리 밖에 있는 사물들을 알려고 들이는 시간을 우리 자신을 탐색하는 데 쓴다면, 우리 존재라는 이 피륙이 얼마나연약하고 결함 많은 조각들로 이루어진 것인지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 무엇으로도 만족할 줄 모른다는 것, 바로욕망 자체와 상상으로 인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선택하는 일이우리 능력 밖이라는 것은 우리의 불완전성에 대한 특별한 증거가아니겠는가? 인간의 최고선을 찾기 위해 철학자들 사이에 줄곧이어져 온 대단한 논쟁이 그 좋은 증거이다. 이 논쟁은 아무런 결론도 의견 일치도 없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또 영원히 계속될것이다.


원하는 것이 우리 것이 되지 않는 한
다른 무엇보다 절실해 보인다.
얻고 나면 또 다른 무엇을 원하게 되며
똑같은 갈증으로 우리는 다시 목이 탄다.
루크레티우스 - P541

하느님의 법보다 넉넉하고 온화하고 호의적인 것은 없다. 하느님의 법은 우리처럼 죄 많고 가증스러운 자를 당신에게로 부른다. 우리가 아무리 비열하고 더럽고 진흙투성이이며 또 앞으로도그럴 수밖에 없는 존재일지라도, 하느님의 법은 두 팔 벌려 우리를 품에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런 만큼 더욱 그 보답으로 하느님의 법을 바른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나아가 그 용서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적어도 하느님의 법에 호소하는그 순간만이라도 과오를 미워하고, 그 법을 어기게 한 정념을 미워하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플라톤은 말한다. 신들도, 선인(善人)도 악인의 선물은 받지 않는다고.


재물을 바치는 손이 결백하기만 하다면,
과자 한 조각, 반짝이는 소금 한 덩이로도
호사스러운 희생물보다 더 확실하게
페나테스의 분노를 가라앉히리라.
호라티우스 - P568

나는 사람들이 우리 수명을 정하려 드는 방식을 받아들일수가 없다. 내 보기에 현인들은 일반적인 견해에 비해 수명을 아주 짧게 본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자 자신을 막아서는 사람들에게 소 카토가 말했다. "무엇이라고? 내가 아직 삶을 버리기에 너무 이르다는 비난을 들어야 할 나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의 나이 겨우 마흔여덟이었다. 그는 그 정도 나이에 이르는 사람 수가 극히 적다는 것을 생각해 그만하면 충분히 원숙해지고 늙었다고 여긴 것이다. 자연적 수명이라고들 하는 그 무슨 흐름인지 하는 것이 그보다는 몇 해 더 살게 해 주리라며 스스로 위로하는 자들은 그렇게 해 보라고 둘 일이지만, 누구라도 자연적으로 피할수 없게 되어 있어 그들이 믿고 싶어 하는 그 흐름이라는 것을 언제라도 중단시켜 버리는 저 수많은 사고를, 자기들만은 비켜 가는 특권이라도 누리고 있다는 말인가. - P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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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책에 취미를 갖게 된 것은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에서 얻은 즐거움 때문이었습니다. 일고여덟 살 즈음에 그것들을 읽느라 다른 모든 재미를 잊었으니까요. 그 언어가 제 모어(母語)이기도 했고, 그것이 내가 아는 가장쉬운 책이었으며, 소재가 그 나이에 가장 알맞은 것이기도 했습니다. 호수의 랑슬로나 『아마디스」, 「보르도의 위옹 같은, 어린애들이 좋아하는 허접한 책들은 제목도 몰랐고 아직도 내용을 모릅니다. 그만큼 내가 받은 교육이 엄정했던 것입니다. 나는 책을 읽느라고, 주어진 다른 학과 공부에는 더욱 게을러졌습니다. 그 점에서, 이해심 있는 개인 교사와 공부를 한 것은 공교롭게도 나와 딱 맞아떨어진 것이지요.  - P323

우리의 옛 성직자들은 그들의 책에서, 음탕하고 무절제한사랑에 응하고 싶지 않아 자기 남편을 거부한 한 여인을 언급하며A칭송하고 있다. 요컨대 아무리 과도하고 무절제하게 추구해도비난받지 않을 만큼 정당한 쾌락이란 없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진심으로 말해서, 인간이란 가련한 동물이 아닌가? 자신의 자연스러운 조건으로 딱 한 가지 온전하고 순수한 쾌락을 겨우 음미하는데, 이성으로 그것을 잘라 내 버리려고 애쓰기까지 하니 말이다. 인위적인 수단으로, 공부로, 자기의 비참함을 늘이지않으면 충분히 초라하지 않은지, - P362

우리는 운명의 비참을 불리는 데 우리 재주를 썼다.
프로페르티우스


인간의 지혜는 우리를 위해 부지런히, 고통을 색칠하고 단장해서 그것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만들려고 술책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참으로 어리석게도 우리에게 속한 쾌락의 가짓수와 달콤함을 줄이는 데도 재간을 부린다. 내가 만일 철학 학파의 권위자였다면, 다른 길, 보다 자연스러운, 고로 참되고 편하고 거룩하다고할 길을 택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 길에 한계를 둘 수 있을 만큼 나 자신을 강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 P363

우리의 정신을 고치는 의사이건 마음을 고치는 의사이건, 마치 서로 공모라도 한 듯 괴롭힘, 고통, 고생을 주는 것 말고는 육체나 정신의 병을 치료할 다른 방법도 약도 찾아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 밤샘 기도, 단식, 말총 속옷, 멀고 적막한 곳에서의 귀양살이, 종신 투옥, 채찍, 그리고 여타의 괴B롭힘이 치료의 목적으로 도입되었다. 그것들이 진짜 고통, 찌르는듯한 쓰라림을 지녀야 하며, 그것도 갈리오라는 자에게 일어났던 것과 같은 결과가 생겨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달고 말이다. 갈리오는 레스보스섬으로 추방되었는데, 거기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고 고통을 주려던 처사가 오히려 그를 더 편하게 해주었다는 소식이 로마에 알려졌다. 그래서 그들은 생각을 바꿔 그를 아내 곁으로, 그의 집으로 다시 보내어 그 자리를 지키라고 명했다.
그가 느끼는 방식에 벌을 맞추려고 말이다. - P363

우리에게는 자기가 직접 가 본 적 있는 지역에 대해 정확한이야기를 해 줄 지지(地) 학자들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러나 팔레스티나를 보았다는 것을 내세워 나머지 모든 세상의 소식마저 이야기해 주는 특권을 누리려 드는 게 그들이다. 누구나 자기가 아는 것을 자기가 아는 만큼만 쓰면 좋겠다. 이 문제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주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이 강이나 우물의 특성에 관해서는 특별한 학식이나 경험이 있을 수 있지만 다른 것에대해서는 보통 사람이 아는 정도밖에 모르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한 줌밖에 안 되는 지식을 내세워 보려고 물리학 전체에 대해 저술하려 든다. 이 악덕으로부터 심대한 과오가적잖이 생겨난다. - P371

이제 다시 내 이야기로 돌아와 사람들이 전해 주는 바를 새겨보니, 각자가 자기 관습이 아닌 것을 야만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면, 이 신세계에는 아무것도 야만적이거나 원시적인 것이 없다고 생각된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의 세론과 관습이 보여 주는 본보기와 생각 말고는 무엇이 진리와 이성의 근거가 되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곳에만 항상 완벽한 종교, 완벽한 정치 체제, 삼라만상의 완벽하고 완성된방식이 존재한다는 식이다. 그들은 야만적이니, 자연이 그 자체의 - P371

힘과 그 자체의 평상적인 과정을 통해 생산해 내는 과일들을 우리가 야생이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에서 그러하다. 그런데사실은 우리가 인공적으로 변질시키고 평상의 질서에서 벗어나게만든 과실들이야말로 오히려 야만적이라고 불러야 할 일이 아닐까. 전자에는 진짜일 뿐만 아니라 훨씬 쓸모 있고 자연 그대로인효능과 속성이 생생하고 힘차게 살아 있는 반면, 후자에는 우리의부패한 취향을 만족시키려고 적당히 다듬느라 퇴화한 모습으로남아 있다. ‘참으로, 경작도 하지 않는 이들 나라에서 자란 갖가지 과일들은 우리의 것과 견주어 손색이 없을 만큼 그 풍미며 미묘한 맛이 우리 입맛에도 빼어나기 그지없다. 우리의 위대하고강력한 어머니 자연을 누르고 기예가 명예를 차지한다는 것은 당치 않다. 자연의 작품들에 깃든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은 우리가 거기에 얼마나 많은 허튼수작을 부렸던지 완전히 질식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순결함이 반짝거리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자연은 공허하고 얄팍한 우리의 기획을 놀랄 만큼 부끄럽게 만드니, - P372

담쟁이는 가꾸는 손길이 없을 때 더 잘 자라며,
산딸기나무는 인적 없는 동굴에서 가장 곱게 피어나고,
새들의 노래는 기교가 없어 더욱 달콤하기만 하네.
프로페르티우스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 봐야 작디작은 새 한 마리가 지은 둥지마저 흉내 낼 수 없으니, 그 조직이며 아름다움, 적절한 쓰임새를 우리는 따라 할 수 없다. 미미한 거미가 잣는 거미줄 또한 이와 마찬가지이다. 플라톤에 따르면 이 세상 모든 것은 자연 아니면 - P372

우연, 혹은 인간의 기예가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런데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자연이나 우연이 만든 것이요, 가장 미미하고불완전한 것들을 기예가 만들었다.
그러므로 이들 신세계의 민족들은 인간 정신에 의해 형성된 것이 거의 없고 아직도 그들의 원초적인 천진성에 아주 가까이머물러 있기 때문에 내게 그런 점에서 야만적으로 보인다. 그들을 다스리는 것은 여전히 자연의 법이며, 우리의 법에 의해 변질된 바가 매우 적다. 그들이 지닌 순결한 상태를 생각하면 나는 왜이들이 좀 더 일찍, 그들의 진가를 우리 시대보다 더 잘 평가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살던 때에 알려지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뤼쿠르고스나 플라톤이 이들을 몰랐다는 것을 생각하면 언짢다.  - P373

왜냐하면 우리가 경험으로 이들 민족에 대해 알게된 사실들은 황금 시대를 이상화하면서 시인들이 그려 본 온갖그림이며, 인간이 행복해질 수 있는 상태를 꿈꾼 온갖 풍경은 물론, 철학이 구상하고 열망해 온 것 자체를 뛰어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게 된 그토록 순수하고 단순한 천진성을 고대인들은 상상도 못했다. 그리고 인간 사회가 그토록 적은 기예와 최소한의 인위적인 땜질로 유지될 수 있다고 믿을 수도 없었다. 나는 플라톤에게 말하리라. 그 나라는 어떤 종류의 거래도 없는 곳이라고. 어떤 문자도 알지 못하며 어떤 숫자도 깨우친 바 없고, 판관이라는이름도 정치적 지배 계급도 없으며, 노예 제도도, 부유함과 빈곤 - P373

함이 습속이 된 바도 없다고. 어떤 계약도 없고, 어떤 상속도 재산분할도 없다고. 유유자적한 것 말고는 일이라는 것이 없으며, 모두가 모두를 보살피는 것 말고는 따로 친족을 따지지도 않고, 옷도 없고, 농사도 없고, 쇠붙이도 없고, 포도주나 밀의 사용도 없다고, 거짓말, 배신, 위선, 탐욕, 시기, 중상, 용서를 의미하는 단어들자체가 쓰인 적이 없다고. 그러면 플라톤은 자기가 상상했던 국가가 이 같은 완벽함에서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알리라. "신들의 손에서 방금 튀어나온 인간들." (세네카)

이것이 자연이 지어 준 최초의 법들이다.
베르길리우스 - P374

하느님은, 선인이라면 이 세상의 행불행이 아닌 다른 것을 희망해야 하고, 악인 또한 이 세상의 행불행이 아닌 다른 것을 두려워해야 함을 가르치시기 위해, 세상 일을 당신의 신비로운 뜻에 따라 조종하고 적용하여 우리가 어리석게 이용할 수 없게 하신다. 세상의 행불행을 인간적인 동기에 따라 이용하려는 자는 경박한자이다. 그런 자들은 찌르기 1점을 얻으면 반드시 2점을 잃는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적수들에게 이 점을 멋지게 증명해보였다. 이것은 이성이라는 무기보다는 기억이라는 무기에 의해 결정되는 말싸움인 것이다. 태양이 광선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는 빛에 만족해야만 한다. 태양 자체에서 보다 큰 빛을 잡겠다고 눈을 쳐드는 자는 그 자만심에 대한 벌로 시력을 잃더라도놀라지 말라. "사람들 중 누가 하느님의 의도를 알 수 있으며, 누가 주님이 원하시는 바를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지혜서 9:13) - P391

나는 사람들이 흔히 하듯 나를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잘못은 범하지 않는다. 그 사람에게는 나와 다른 점들이 있으리라 쉽게 이해하는 것이다. 내 삶이 어떤 틀에 속해 있다고느낀다고 해서, 남들이 다 그러는 것처럼 세상에 그것을 강요할 마음이 없으며, 살아가는 데는 서로 다른 수많은 방식이 있다고 생각하고 또 이해한다. 그리고 너나없이 모두가 하는 것과는 달리, 우리 사이의 닮은 점보다는 다른 점을 더 쉽게 받아들인다. 사람들이 원하면 원하는 대로, 내 의향이나 내 원칙으로 남을 구속하지 않으며, 그 사람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자신으로 바라보고, 그 사람 고유의 모습에 맞게 옷을 입히는 정도인 것이다.  - P409

그리고 나와 다르기 때문에 그만큼 더 그들을 사랑하고 존경한다. 사람들이 우리를 판단할 때는각자 한 사람씩 따로 보고, 일반적인 틀에 맞춰 나를 재려 들지 말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내가 약하다는 사실이, 제대로 평가받아 마땅할 사람들의힘과 활력에 대해 내가 가져야 할 견해를 변질시키지는 않는다.
"자기가 따라 할 수 있을 만한 것 빼고는 아무것도 칭찬하지 않는사람들이 있다." (키케로)  땅바닥 맨흙 위를 기어가면서도 나는 저기 구름 위까지,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높이 솟아 있는 몇몇 영웅적인 정신의 고매함을 알아본다. 행동은 그러지 못할 망정, 절도 있는 판단력을 견지하고 적어도 이 주요한 능력이 변질되지 않게 건사하는 것만도 내게는 대단한 일이다. 두 다리가 말을 듣지 않을때는 선한 의지를 갖는 것으로도 상당한 일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 적어도 우리의 이 땅은 너무나 우중충하여 덕성의 실천은 고사하고 미덕을 상상하는 일마저 드문 지경이다. 그것은 기껏해야 학교에서나 떠드는 상투어일 뿐이다. - P410

덕은 농 속에 걸어 두거나 장식용으로 귀 끝에 매달듯, 혀 끝에 달고 다니는 싸구려 장식품이 되었다.
덕스러운 행동은 더 이상 식별되지 않는다. 덕의 얼굴을 하고 있는 행위들은 외양에도 불구하고 덕의 정수를 담고 있지 않다. 이익이나 영예, 두려움, 습관 혹은 다른 엉뚱한 이유들이 덕행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우리가 행하는 정의나 용기, 너그러움 따위는 남이 보기에, 그리고 대중 앞에 드러나는 모습 때문에 그렇게 불릴 수는 있으나, 행하는 자 자신의 내면에서는 전혀 덕이 아니다. 의도했던 다른 목적, 다른 동기가 있기때문이다. 그런데 덕은 덕 자체에 의해, 그리고 오직 덕 자체를 위해 행해지는 것만 덕으로 인정한다. - P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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