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일을 정말 잘하고 싶어서 걷기를 감행하는 것 중에 가장 나쁜 경우는 건강해지기 위해서 걷는 것이었다. 이렇게 무기력하게 집에만 있다가는 점점 더 늪에 빠져드는 느낌에서 헤어 나올길이 없다 싶을 때 무릎에 용기를 불어넣고 기립하여 외투를 꺼내 입고 현관으로 걸어간다.

신발을 신고 걷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성큼성큼 보폭을 크게 하고서 걷는다.

얼마를 걸었을까 하고 핸드폰 속 앱을 클릭하고 확인해본다. 그리고 믿을 수 없어 한다. 좀 더걷기로 한다. 그래도 또 금세 지루해진다. 신발을잘못 신고 나왔나 싶을 만큼 발바닥이 아려올 때까지, 지난번보다 더 먼 곳까지 가보아야지 하면서 또 걸어본다. 체내 에너지가 부족해서 이런가하면서 편의점에 들러 이온 음료를 사서 벤치에 - P21

잠시 앉아본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거리의 상점들을 무관한 마음으로 흘낏대어본다.

너무 걸으면
집으로 돌아가 오늘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할수 있으므로 기운을 남겨놓아야 한다며 집으로돌아가기로 결정을 한다.

같은 길은 지루하니까 다른 길을 선택해서골목골목을 걷는다. 폐업한 가게와 신규 오픈한가게를 지나치고 세탁소에 들러 세탁물을 찾고 반찬가게에 들러 반찬들을 사서 양손 가득 들고 집으로 들어온다.

이 정도면 오늘은 정말 훌륭했어.
뿌듯해하지만 그래 봐야 언제나 칠천 보에서팔천 보 정도를 기록할 뿐이다. 이 정도가 나의 체력으론 최대치겠구나 싶어진다.
그럴 땐 피곤하지만 곯아떨어지지는 않는, - P22

얕은 잠과 쪽잠으로 이어지는질 나쁜 수면을 취한다.

다음 날 아침, 수상한 꿈을 온몸에 잔뜩 묻힌채로 찡그리며 이불을 걷고 일어난다. 찌뿌둥한 몸을 강제해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신다.

걷는 일을 정말 잘하고 싶어서 걷기를 감행할 때 정말 좋은 방법은쇼핑을 하러 나가는 것이다.

오늘은 돈을 왕창 써볼까 하면서 바깥으로나갈 때는 현관문을 열기도 전에 충전이 된다. 에너지가 올라가고 설렘까지 끼어든다. 즐거워서 저절로 걸음도 빨라진다. 가게가 즐비한 거리로 찾아간다. 지하철을 갈아타고 텅 빈 가방 속에 장바구니를 하나 더 넣는다. 초콜릿을 사고 감자칩을 사고 핸드크림을 사고, 감기에 효과가 좋다는 티백을사고 양말을 산다. 무거운 걸 들고 돌아다닐 수는 - P23

없으므로 생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야지 한다. 편집숍에 들어가서 향수 냄새를 맡아보고, 털모자를 써보고, 가방을 메보고, 마음에 드는 색깔코너에서 패딩점퍼나 코트 같은 것을 꺼내어 거울앞으로 가져가 몸에 대본다. 매대에 전시된 잡지들을 펼쳐보다 다시 향수 코너에서 다른 향수 냄새를 맡아보고 다른 털모자 써보고∙∙∙∙∙∙. 편집숍이 좁은 공간은 아니라 해도 그곳에서만 천 보를 넘게걸을 수 있다는 게, 천보를 전혀 지루하지 않게 걸을 수 있다는 게 즐거워서 문구점에도 들른다. 대형 문구점일수록 좋다. 펜들이 많이 구비된 곳일수록 좋다. 하나씩 그립감을 체험하고 하나씩 필기감을 체험하며 조금씩 조금씩 매장을 맴돈다. 크리스마스관련된 전시 코너에서 카드에 그려진 천사들과 아기 예수를 음미하다가 데스크 용품 코너에서는 더 오래 머문다. 스테이플러를, 테이프 디스펜서를, 수동 연필깎이와 자동 연필깎이를 직접 만져보고 집에 있는 것들과 사용감을 과학적으로 비교해본다. 세상에 이렇게나 다양한 자와 이렇게나 다 - P24

양한 클립과 이렇게나 다양한 종이와 이렇게나 다양한 붓이 있다는 것에 대해, 전혀 몰랐던 사람처럼 구경한다. 최종적으로 백화점 지하의 음식 코너로 진입을 한다. 음식을 직접 만들어 파는 코너보다는 세계 각국의 온갖 소스와 치즈, 그리고 와인과 맥주, 그리고 잼과 향신료 등을 파는 코너로 간다. 무화과잼이나 작은 병에 든 후무스 같은 것을골라서 장바구니에 넣는다. 이제 빵을 사고 생수를사서 숙소로 돌아가면 된다. 그 정도의 동선이면이만 보 정도는 충분히 넘긴다. 이만 보를 걸으면서 한 번도 지루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언제나 새삼스럽게 감동적이다.

걷는 일을 가장 잘할 수밖에 없는 때는
마음이 괴로운 경우이다. 마음의 응어리들이, 괴로움들이, 번잡한 걱정들이, 끝없이 불길하게 이어지는 번뇌들이,
먼데로부터 차곡차곡 도착해 온
울분들이 - P25

온몸에 꽉 차 있을 때마다
나는 오래 걸었다.

응어리들이 풀어지고 괴로움들이 사그라들고 걱정들이 잦아들고 번뇌들이 가시고 설움들을물리칠 때까지,
하던 생각을 또 하고 고개를 젓고 주먹을 꽉쥐고 한숨을 푹푹 쉬고 괜히 이마의 머리칼을 쓸어올리고
이 모든 동작들을 나도 모르게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나는 모르는 동네에 도착해 있었다.
오늘은 만 오천보 정도를 걸었다.
견딜 만했다는 뜻이다.

길모퉁이에서 정수리에서 신발 뒤축에서,
불균형했던 것들이 안정적으로 변해가는 
것을 느꼈다. 건물들의 기둥과 간판들이 겨우 수직 - P26

과 수평을 되찾는 것처럼.

집에 돌아와
욕조에 물을 받고 목욕용 소금을 풀고 들어가 누웠다.
물방울이 피부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을
지켜보았다.
정성스럽게 바디로션을 바르고
새로 빨아놓은 잠옷을 입고서
수면제의 도움 없이 깊은 단잠을 잤다.


지난 2022년 10월 30일은 삼만 보를 넘게 걸었다. 숙소에 돌아와 어지간히 걸었겠다 싶어 앱을켜니 ‘움직이기 신기록 배지‘가 화면 가득 뱅글거리며 나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이 앱을 사용한 지 꽤 오래되었는데 삼만 보를 넘긴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뉴스 - P27

를 보고, 우리에게 또다시 일어난 참사를 목격하고, 너무 멀리서 접한 소식이라 실감이 덜한 것인지 너무 믿어지지 않는 소식이라 실감이 덜한 것인지, 실감이 당도하기도 전에 비참과 참혹과 비탄이 익숙하다는 듯 엄습해 왔다. 무언가를 할 수도, 무언가를 안 할 수도 없는 이른 아침에 핸드폰을 손에 들고 뉴스들을 클릭해 읽으면서 숙소 앞 드넓은 공원을 몇 바퀴를 돌다가 어딘지 모를 동네까지 걸어가게 되었다.

핼러윈 장식을 해놓은 상점들,
핼러윈 행사를 안내하는 포스터들을 
지나치며
열심히 걸어갔다.

그렇게나 열심히 걸었지만 어딘가에 당도하지는 않았다.
다만 돌고 돌고 돌았다. 돌고 돌고 돌고
또 돌아서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 P28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답답함에 휩싸였던 것은, 내가 멀리에서 그 소식을 접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국가 애도 기간이 재빠르게 선포된 이후부터……. 나는 렉에 걸린 듯한 상태로 먼 곳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비애마저 국가가 빼앗아갔다고 생각했다. 국가 애도 기간은 짧게 종료됐다.
나의 애도는 시작도 못 했다. 우리의 애도는 시작도 안 했다. 애도는 많은 경우 종료되지 않는 세계이다. 영원히 현재에 있다. 해가 바뀌고 또 해가 바뀌고 다른 참사와 재난이 닥쳐도, 오히려 새로운 재난 앞에서 되살아난다.
우리는 올바른 애도를 하고 싶다. 그릇된 삶 속에서도 올바른 애도가 무엇인지 모르는 채로도. - P45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 지하 1층 엘리베이터로 향할 때 나는 커다란 거울 앞에 일부러 가서섰다. 거울 속에 있는 사람은 내가 분명했지만, 내가 모르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내가 너무도 오랫동안 되고 싶지 않아 해온 엄마의 모습 같기도 했고, 내가 십수 년 동안 외면해온 진짜 내 모습 같기도 했다. 그 사람은 거울 속에서 오래 나를 기다려온 것 같았다. 아니, 늘 거기서 나를 지켜보다가 오늘 불현듯 나에게 자기 존재를 들켜버린 듯 보였다. 내가 그런 모습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모를 수없게 된 날, 나는 4층으로 올라가 바쁜 사람처럼씩씩한 동작으로 엄마의 사물함에 기저귀를 넣어두고, 보호자용 간이 침대에 걸터앉아 노트를 펼쳤다. 그리고 습관처럼 시를 썼다. - P62

그때 나는 거울 앞에 서야 하고 거리감을 확보해야만 한다. 거리감을 확보한다는 것이 어떤 경우에는 잔인하고 매정하고 이기적임을 나는 안다. 그리고 잔인하고 매정하고 이기적인 것이 잔인하지 않고 매정하지 않으며 이기적이지 않은 상태를 어떤 방식으로 핍박하는지를 나는 안다. ‘엄마‘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걸 의식적으로 삼가기로 한 나의 결정을 나는 현명했다고 여긴다. 어떤 점에서? 도의적인 딸로서? 엄마로부터 가장 강력한 억압을 받아온 한 여성으로서? 아니면 미학적으로 좀 더 나은 시를 쓰고 싶은 욕망을 가진 시인으로서? 아니다. ‘엄마‘라는 단어에 내가 이미 포함되어 있어서다. ‘나‘ 라는 주어가 ‘엄마‘라는 자격을 이미 획득하고 있어서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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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에는 이미 장비가 들어와 있었으며 나무들은 뽑혀졌고 흙더미에 ‘조수 보호구역‘ 이라는 팻말이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분명관에서 설치한 것일 터인데, 수상골프장으로 허가는 났다니까 보호구역도 그럼 취소가 되었는지 영 모를 일이었습니다. 나뒹굴어진 팻말이 내 눈에는 아무래도 관의 무기력, 무질서로 보였고 관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현장에는 장비만 있을 뿐 일하는 사람이 없었고 넓은 학교도 아주 아주 고요했습니다. 상당한 거리가 있었기에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할 수도 있겠으나 원체 그곳에서도 소리는 없는 것으로 내 마음에 전해져왔습니다. 무성영화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풍경도 사람도 다 같이 무감동, 무관심으로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울먹이며 아뢰는 것은 다만 흙더미와 쓰러진 나무와 내동댕이쳐진 팻말뿐인 것 같았습니다. 이런 일에는 이력이 나 있을 환경부 기자도 내 설명을 귀담아듣고 있는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마음 밑바닥에서 스며나오는 비애, 과연 이 세상은 살아볼 만한 곳인가 그 자문을 마음속으로 되풀이하였습니다.  - P265

해악을 끼치려고 온 것은 아닌데 내심섭섭했으나 새들이 놀라서 떠나지 않을까 겁이 났습니다. 서둘러 모이를 뿌려주고 황망히 그곳을 떠났지요. 다음 날도 갔습니다. 이번에는 몇 마리의 새만 날아올랐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정찰하듯 빙빙 돌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지도자가있고 각기 분담하여 임무를 맡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모이를 놔둔 곳을살펴보았습니다. 콩은 그대로 남아 있었으나 보리는 없더군요. 마치 실험에 성공한 기분이었습니다. 다음 날도 갔습니다. 이번에는 한 마리의 새도 날아오르지 않았습니다. Q씨는 그때 내 마음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을 거예요. 철새들은 우리를 신뢰하고 환영했던 것입니다. 조용한 몸짓으로, 짐승은 은혜를 알아도 사람은 은혜를 모른다는, 흔히 하는 말이지만 나는 은혜보다 신의라는 말이좋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누가 머리 나쁜 사람을 새대가리라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 P270

산이란 산에는 무시무시한 덫이 깔려 짐승들의 울음이 하늘에 사무치고 터전을 빼앗긴 동식물은 굶주려 죽고 있습니다.
수만 마리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여 강가에 밀려와 썩어가는 것도 흔한 일이되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한이 없고 이미 다반사가 되어 사람들은 충격을 받는것 같지도 않더군요. 이와 같이 황폐한 영혼의 터전에서 시인은 무엇을 어떻게노래하는 걸까요. 소생의 계절이 아직도 시인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지요.
도대체 문학은 무엇이냐, 맨정신으로 묻는 것도 쑥스러운 노릇이나 문학은미를 추구하는 것이다. 하는 것도 상투적인 정의겠습니다만. 인생은 꾸미는 것이 아니며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아름다움에 취해 있는 것이 아니며 보다고통스럽게 무량한 우주의 비밀을 헤치고 나가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진실에대한 끊임없는 물음과 생명에 대한 자비, 혹은 연민이 핵이 되는 선성의 추구 없는 아름다움이란 종이꽃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요. 따라서 유미주의또는 탐미주의는 쾌락주의와 상통하는 일종의 허상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 P273

선배든 선생이든 부정과 부패에 보조를 맞추어야 관문을 통과하고 남먼저 사회에 나오게 되는, 참 살아가기가 힘든 세상입니다. 그와 같은 것이 거대한 물살이 되어 모든 것을 휩쓸고 가는 시대 흐름에 과연 자유가 있고 개성이 있겠습니까? 방향도 알지 못한 채 모두 한곳으로 뒤엉켜서 흘러갑니다. 경쟁이라는 채찍에 쫓겨 노예같이, 자동차의 부품같이. 이상이라는 말이 빈껍데기가된 지도 오래입니다. 흥분이나 투쟁도 얼빠진 말이 되었습니다. 네, 비켜서야지요. 다 군더더기 같은 얘기였어요.
노쇠한 봄이 지팡이를 짚고 흐느적거리듯 찾아온 것 같은 느낌이나 소생의계절이 한낱 수식어로서 진실을 감추고 있다는 분노 어린 마음이 망상이라면 내눈에 비치는 세태 풍경도 망상인지 모르지요. 내 머릿속이 뒤죽박죽인지 세상이뒤죽박죽인지 분간키 어렵습니다. 생각이 나갈 길이 없어요. 하루에도 몇 번 망상에 시달리고 절망에 사로잡히고 생각이 꽉 막혀버렸습니다. 그러면서도 뭔가이 혼돈을 바로 세워주는 것이 있을 것이다. 부딪치면 방향을 돌리는 것이 생존의 본능이요,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세상에 던져진 생명들은 삶의 방식을익혀가면서 전진하기도 하고 후퇴하기도 했던 것이 역사 아니었던가. 자위해보 - P278

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자정 능력이 있을 때의 얘기지요. 뭔가가 있어서도와줄 것이다, 방향을 잡아줄 것이다. 그런 바람은 인간의 가장 약한 부분의 속성이지요, 믿을 것이 못 됩니다. 우주의 질서는 가차가 없고 냉혹한 것입니다.
저만치서 서성거리고 있는 봄도 생명들의 아우성, 흐느낌을 뒤로하고 떠날 것입니다. 시인은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했습니다. 4월이 잔인했는지 존재의 처지가잔인했는지 혼란스럽군요. 인간들의 지칠 줄 모르는 파괴와 약탈로 아시다시피지구는 지금 만신창이가 돼 있습니다. 설령 지구가 멸망한다 하더라도 자업자득. 어디 봄의 죄이겠습니까. 소생시켜놓은 생명들이 참살을 당하고 멸종이 된들 봄에게는 임무 밖의 일이지요. 다만 길손일 뿐, 노쇠해가는 길손일 것만 같습니다. 어쩌면 그도 인간이 저질러서 맞이하게 될 재난에 희생되는 처지일 수도있고 지구와 생명들과 운명을 같이하게 될지도 모르지요. 노쇠한 봄이라는 말은물론 합당하지 않습니다. 늙는다는 것은 세월의 조화인데 계절 자체가 세월이니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봄은 늙고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궁지에 몰아넣고 오도 가도 못하게 합니다.  - P279

삶은 준열하고 나날의 노동 없이는 내 자신이 분해되고 말 것만 같았고긴장을 푸는 순간 눈을 감은 채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습니다. 모든 것을 거부하고 포기했으며 오로지 목숨을 부지한 것은 가엾은 내 딸, 손자의 눈빛때문입니다. 그때 머리가 다 빠지고 철색으로 변한 딸아이의 얼굴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내 마음속의 짙은 피멍입니다. 그리고 언어가 지닌 피상적인 속성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절감하고 있습니다. 진실에 도달할 수 없는 언어에 대한 몸부림, 그럼에도 우리는 그 언어에서 떠나질 못합니다. 그게 문학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 시절, 거부하고 포기한, 극한적 고독의 산물이 《토지》였을 겁니다.
삭막하고 을씨년스럽고 뼛속까지 얼어붙는 것만 같았던 낯선 고장 원주는 20년 동안 많이 변했습니다. 화려하고 풍성해 보이고 세련된 도시로 바뀌었으며 감나무가 자라고 백일홍의 꽃도 피게 되었습니다. 매지리로 이사한 내 집에도 감나무 세 그루, 백일홍 한 그루가 살고 있습니다. 20년 세월에 세상이 바뀌고 기후도 달라졌습니다. 아열대 기후가 북상해 온 거지요. 그 속도가 얼마나 되는지 알 길이 없지만 가속이 붙게 되면 시베리아까지 그리 먼 일도 아닐 것입니다. - P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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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 솜털을 달고 있는 씨앗들은 우리가 걱정하는 꽃가루 알레르기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존재랍니다. 그런데 이맘때면 꽃가루알레르기 문제와 함께 미움을 받고 있으니 억울해도 한참 억울할 것입니다.
솜털은 주로 바람에 의해 꽃가루를 옮기는 풍매화인 능수버들, 수양버들, 갯버들 같은 버드나무 종류, 은사시나무, 이태리포플러 같은사시나무 종류에서 많이 생깁니다. 이 솜털들이 도시의 거리를 몰려다녀서 좋을 것은 없습니다. 더러운 도시의 먼지까지 함께 묻어 다니니 말입니다. 물론 미움을 받으며 도시를 구석구석 떠돌다 씨앗을 묻을 한 줌의 흙도 만나지 못하고 싹조차 틔우지 못한 채 그 일생을 다할 씨앗에게도 불행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환경을 더럽힌사람 탓입니다.
어쨌든 오늘 제가 소풍길에서 만난 그 솜털은 무척이나 부드럽고사랑스럽고 자유로워 보였습니다. - P29

자연의 세계에는 아무런 의미 없는 것은 없는데 모두 사람의 작은 머리로 유용함과 불필요함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니 조릿대는 약도 되고, 차도 되고, 쓸모가 많지요. 조릿대란 이름도 조리를 만들던 대나무란 뜻이랍니다.
선거가 끝나고 보니 서로 나쁜 편이라고 갈려 싸우던 대립은 더욱 깊어만 갑니다. 아무리 나빠 보여도 제가 조릿대를 미워한 만큼은 아닐 듯 합니다.
그래서 편견에 갇혀 보지 못했던 가치를 자연에서나 인간사에서나다시 찾아볼까 싶습니다. - P46

은행나무가 이토록 오래 살아남은 것은 나무의 성분 속에 무언가 특별한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고, 이것을 연구하다 찾아냈다지요. 우리가 자연의 이치를 조금씩만더 엿볼 수 있다면 세상은 얼마나 달라질까요?
이산화탄소와 햇볕으로 에너지를 생산해내는 위대한 녹색의 생산자식물. 그러나 그 공(功)에 무관하게 대지에 뿌리를 박고 말없이 버티고 서 있는 모습에서 더 큰 경외감을 느낍니다.
혹시 세상살이에 한껏 움츠러들고 계신다면, 올 휴가는 나무의 초록기개를 배우고 기운을 얻어내 자신을 충전하는데 쓰셔도 좋을 듯합니다. 숲으로 다가가 두 팔을 벌리고 가슴깊이 나무를 한번 안아 보십시오. - P61

실제로 중요한 꽃가루받이를 하는 꽃들은 그 안쪽에 있는 꽃들입니다. 불필요한 꽃잎이나 꽃받침은 모두 퇴화하고 암술머리, 씨방, 꽃밥들이 잘 배치되어 딴 생각 않고 혀꽃을 보고 찾아온 곤충들의 도움으로 튼튼한 종자를 만드는 일에 열중합니다. 통모양으로 길쭉하다고 하여 통꽃 혹은 통상화라고 합니다.
코스모스는 이런 기능적인 역할을 달리하는, 하나로 보면 보잘것없는 그들이 모여 가장 아름다운 꽃차례를 만드는 꽃입니다. 코스모스라는 말이 ‘질서‘와 조화, 나아가 완전한 질서 체계를 가진 ‘우주‘를 의미하며, 한편으로 조화를 이룬 것은 아름답다는 뜻으로 ‘아름답다‘는어원도 갖고 있는 것을 보면, 코스모스 한 송이를 작은 우주라고 말하는 것은 전혀 지나친 비유가 아닙니다.
혹시 사랑하는 연인이 있는데 수십 송이의 장미를 선사할 만큼 주머니가 넉넉하지 않다면 코스모스나 구절초 같은 국화과 꽃 한 송이를건네십시오. 이는 실제로 수십 송이의 꽃들이며, 화려한 겉멋에 치우친 꽃들보다 작은 꽃들이 모여 조화와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것처럼 서로 나누고 합하며 살아가자는 마음도 함께 선사할 수 있을 테니까요.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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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철학을 음미한 사람이 있었나? 음미해볼 만할 텐데. 산다는 것이 움직이는 것, 세계라는 낯선 여행지를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겠는가. 움직인다는 것(동물의특권)은 어쩌면 지성의 열쇠다. 식물의 뿌리(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식물의 임)는 식물을 땅에 치명적으로 고정시킨다. 식물은 어쩌다 뿌리가 내려진 장소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그곳으로흘러오는 양분을 빨아들여야 하는 운명이다.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의 말이다. 하지만 한곳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일에 대해 그렇게 말할 수만은 없다. 한 장소에 머문다는 것이 그곳과 하나가 되어 그곳이 위험에 처할 때 함께 위험에 처하는 것이라면, 여행자가 되었다는 것은 아무 가진 것 없는 사 - P340

같이 되어 새로 세우고 새로 배울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고 가진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으로서의 나 자신을 나는 그렇게 여행하는동안 알아보기 시작했다.), 특정 장소에만 존재하는 기억과 풍경 간의 조응 관계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사건에 대한 기억이 존재하려면 사건이 발생한 장소가 남아 있어야 하고 사건을 같은프레임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커뮤니티가 있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움직인다는 것과 한곳에 머문다는 것이 꼭 반대말은 아니다. 예컨대 정해진 노선을 돌면서 여러 곳을 거점으로 삼는비정주민들은 정처 없이 앞으로만 움직이는 비정주민들과는 다르다. 변화한다는 것과 움직인다는 것이 꼭 비슷한 말인 것도아니다.  - P341

움직이는 것이 그저 변화를 따라잡거나 앞지르는 것이라면, 움직임의 반대말은 정주가 아니라 정체일 것이다. 나는 새편을 들겠다고 말하고 싶지만, 내가 새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휴가 때뿐이었다. 평소의 나는 다섯 살 때 살던 지역에서 지금도살고 있다. 오랫동안 한 지역의 여러 장소들을 지켜보고 있던나는 그런 장소들이 완전히 바뀌는 상황을 목격할 수 있었던반면에, 잠시 와서 살다가 떠나갈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기가 와있는 지역의 동네, 시내, 도시, 생태, 경제, 기후가 변하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었다. 풍경을 지나가고 있는 사람은 자기가 풍경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으니 풍경이 변하지 않는다고 느끼지만, 한곳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자기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하고 있다고 느낀다. 만약 내가 포터마에 와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 - P341

지 않은 채로 떠났다면, 과거의 결이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을만큼 빨리 풀려버리고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조용하기만 한 곳이라고 생각하고 말았을 것 같다.
돌처럼 단단한 정체성의 토대로 받아들여진다고 하는 조상의 나라가 그때 내 눈앞에서는 무수한 변신의 강이 되어 흘러나가고 있었다. 아일랜드인들에게, 그리고 아일랜드계미국인들에게도 모종의 단단한 토대로 받아들여지고 있을 아일랜드가 나에게는 그저 단절된 것들과 속도를 높이는 것들의 연속인 듯했다. 아일랜드 그 자체가 식민과 탈식민, 탈출, 도피, 해외 이민, 유출과 유입, 호황과 불황, 개발과 방치, 문화의 변용과전유를 옮겨 나르는 모종의 흐름인 듯했다. 다음 세대 사람들은농촌문화를 쓸어내고 농촌문화의 가톨릭 신앙을 새롭게 바꾸고 ‘유럽공동체‘와 세계시장을 흡수하고 해외 이민을 멈추지 않을 것이었고, 그들이 그렇게 넓혀놓은 구멍으로 세계가 쏟아져들어올 것이었다. 나는 버스를 타고 포터마를 떠나면서 창밖을내다보았다. 바람 한 점 없는 오후였고, 푸른 풀밭 위의 모든 가축들은 마치 성탄화 속 동물처럼 그 지극한 고요함 속에 머물러 있었다. - P342

지도로 그려질 수 없는 어떤 땅에 시간과 기억이 펼쳐져 있는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여름에 캐나다 여행으로 시작된 긴 여행이 겨울에 과테말라 여행, 늦봄에 아일랜드 여행으로까지 이어지던 그때, 세 가지 풍경은 나의 기억에서 세 가지 꿈을 불러냈다. 그렇게 세상 곳곳을 떠돌다 보면 언젠가 기억의 땅에도 가닿지 않을까, 새로운 장소를 요령껏 찾아다니다 보면 의식의 길에서 벗어나 헤매고 있었던 것들을 찾아낼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 그때였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장소를옮기는 평범한 여행이 시간 여행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꿈의지도를 구할 수는 없지만, 꿈의 땅이 지도로 그려져 있지도 않겠지만, 꿈의 땅을 지도로 그릴 수도 없겠지만, 낯선 나라에서낯선 베개를 베고 잠드는 밤에만 꿀 수 있는 꿈을 꾸기 위해 여행하는 여행자들이 있었을 것이고, 지금도 있을 것이다. - P371

캐나다에서 로키산맥을 여행하는 동안에는 친구와개가 뜻밖의 사고를 당한 적이 없다는 듯 살아 있을 때의 모습그대로 내 꿈에 자주 찾아와준 덕에 로키산맥이 낯설게 행복한그리움으로 물들었지만, 과테말라를 여행하는 동안에는 줄곧가족과 관련된 악몽에 시달렸고 나중에 되돌아보면서도 그 장소가 그토록 불안했던 것이 얼마만큼이나 꿈 때문이었는지, 그저 그 장소가 꿈을 얼어붙게 만들었을 뿐이었는지 잘 알 수 없었다. 장소마다 그 장소를 거처로 삼는 꿈이 따로 있다면, 로키산맥을 거처로 삼은 꿈은 친구의 꿈, 과테말라를 거처로 삼은꿈은 가족의 꿈, 아일랜드를 거처로 삼은 꿈은 남자들의 꿈이었다. 나를 사랑했던 남자들과 내가 사랑했던 남자들과 다른 여러 남자들이 꿈에 너무 많이 나타났다.  - P372

거의 잊고 있었는데 마치 어제 만난 듯 또렷하게 나타난 남자도 있었고, 마치 그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내가 한창 좋아하던 때의 모습으로 나타난 남자도 있었다. 한 친구는 내 책들을 전부 꺼내 내가어렸을 때 살던 집 뒤편 말 목장에 하나씩 내려놓았다. 푸른 잔디가 책의 액자 같았다. 그 친구에게 보낸 엽서에는 사람들의꿈을 꾸면서 혼자 여행 중이라고 적었지만, 여행의 마지막 구간을 지날 때는 여자들이 여행의 시간을 채워주기 시작했다. 여자들을 만나러 가는 시간 여행이었다.
이렇게 꿈의 땅을 탐험하는 것도 시간 여행이지만, 장소에 의미를 불어넣어주는 과거를 깨어나게 하는 것도 시간 여행이다. 팀 오툴이라는 친구는 자기 친구를 만나러 위클로에 가 - P372

서 친구 어머니로부터 아일랜드의 시간(Irish time)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친구 어머니가 어렸을 때는 시간이라고 하면농장 시간도 있고 시골 시간도 있고 관청 시간도 있었다. 그렇게세 가지 시간이 포개져 있어서 누구냐에 따라, 어디냐에 따라시간이 달랐다. 시간을 정해서 만나고 싶으면 상대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야 했다. 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 사람이 어떤시간을 선택하느냐가 그 사람이 어떤 과거와 이어져 있느냐를보여주는 것 같았다.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시간을 선택하는사람도 있었고 새로 만들어진 시간을 선택하고 시계를 맞추는사람도 있었다. 지금이 언제인지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을 언제로 정할 것이냐가 나의 정치적 입장, 내가 과거를 대하는 자세였다. - P373

꿈의 시간, 시계의 시간, 역사의 시간. 아일랜드에 와있는 동안에는 줄곧 과거의 한 지점으로 돌아간 듯했다. 낡은관행이나 주먹구구식 일처리를 목격할 때마다, 기억의 길이와행동의 여유를 목격할 때마다, 더블린에서 말이 끄는 수레를 목격할 때마다, 10년 전으로, 아니 50년 전으로 돌아간 듯했다. 웨스트포트의 관광기념품 가게에서 여름 아르바이트를 하는 브라이드라는 아일랜드 여자한테 그 여자의 가족 이야기를 듣던나는 40년 전에 그 여자와 똑같은 상황에 처했던 내 엄마를 생각했다. 브라이드가 결혼을 한 것도 아니면서 따로 집을 얻어서 나가자 남은 가족들이 모욕감을 느낀다는 이야기였는데, 내가사는 미국에서는 거의 없어진 상황이었다. 당신이 사는 미국 - P373

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래를 상상하지 못한다, 라고 브라이드는 나에게 무심히 말했다. 내가 다년간의 고민 끝에도달한 결론이기도 했다. 하지만 미래를 상상하지 못하기는 아일랜드도 마찬가지인 듯, 과거가 미래를 누르고 있었고, 내 과거도 거기에 힘을 보태고 있었다.
하지만 아일랜드에서 가장 먼 과거로 돌아간 느낌을준 것은 은둔자의 존재였다. 지금! 은둔자라니! 은둔성자 안토니가 세상을 떠난 것이 대략 355년이었다. 중세의 회화나 문헌에는 그런 은둔성자들이 자주 등장한다. 아서 왕 전설을 차용하는 중세 로맨스에서는 위험에 빠진 처녀나 길을 묻는 기사가 도움을 받기에 편하도록 깊은 숲속에 은둔자가 사는 것으로 되어 있고(그런 숲은 이제 베어진 지 오래인 것 같다.), 중세 전기에는 스켈릭스 같은 아일랜드 오지가 실제로 은둔자들과 소규모 수도원들의 활동 무대였다.  - P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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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극단 사이의 중간 길이 있다. 숲을 지나가는 길이ㄷ 언어와 이미지는 거짓말이나 참말이 아니라 무언가를 그린그림이다. 그려져 있는 것이 그리려고 했던 것에 완벽하게 상응하기는 불가능하지만, 다시 그리기와 고쳐 그리기는 가능하다. 그리려고 했던 것에 가닿기는 불가능하지만 그리려고 했던 것에 다가가기는 가능하다. 니체에 따르면, 진리란 은유라는 사실을 망각당한 은유다. "진리란 은유법들과 수사법들의 기동부대요. [.....] 은유와 수사를 통해 고양되고 변모되고 미화된 상태•로 오랫동안 통용됨으로써 불변성, 진정성, 규범성을 얻은 인간관계들의 총체요, [......] 닳고 닳은 탓에 감각적 위력을 잃어버린 은유들이다."  - P239

메타포가 그리스어라는 특정 언어에서 기원하는 단어이자 그리스라는 특정 지역에서 운행하는 교통수단이라면(자연사박물관 장(章)에서도 한 번 했던 이야기다.), 진리란 그저 맥 빠진 메타포다. 뉴에이지 신도들은 은유를 모르는 사람들, 갖가지 모순된 것들이 글자 그대로 진실이기를 바라는 사람들, 절대적 진리를 간직하고 있을 절대적 출발점 또는 절대적 종착점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그들은 여행을 멈출 수있는 곳을 찾아다니는 여행자들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들과 나의 차이는 그들은 여행을 그만하고 싶어 하고 나는 여행을계속하고 싶어 한다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 P239

세로로 길다는 것은 나무가 또 하나의 직립 생명체인인간과 비슷한 점이다. 킬라니의 나무들에서도 고대인들과 증언자들의 당당함이 느껴졌다. 뿌리와 가지로 땅과 하늘을 연결해온 존재들, 온몸으로 땅과 하늘을 감당해온 존재들이었다. 그렇게 그 나무들을 바라보던 나는 온갖 재난과 격변 속에서 하나의 장소를 지킨다는 것, 하나의 진실이 아니라 하나의 장소를지킨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무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상상해보기는 어렵지 않다. 고대 그리스신화에는 나무가 되는 인간이 많이 나온다. 두 발이 땅속에 박혀서 움직이지 않게 되고 두 팔이 축복기도를 하듯 들어 올려진 상태로 굳어지고 그렇게 나무로 변하면 엄청난 평화가 느껴진다. 수백 년이 지나도록 중력에 시달릴 일이 없다. 초현실주의 - P240

사진작가 만 레이(Man Ray)는 샌프란시스코 근처의 레드우드숲에 갔을 때 바로 그런 느낌을 받았다. "고대 이집트 때도 살아있었던, 자연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생명체들이다. 따뜻한 색감의 목피는 살처럼 물러 보인다. 그들의 고요는 포효하는 폭포들과 나이아가라보다, 그랜드캐니언에서 치는 천둥의 메아리보다. 터지는 폭탄보다 웅변적이지만, 그들의 웅변에는 아무 위협도 없다. 내가 있는 낮은 곳에서는 100미터 남짓한 높이에서 재잘거리는 나뭇잎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전쟁이 터지고 몇 달 동안 뤽상부르 공원으로 산책을 다니던 때가 기억났다. 공원에는 프랑스혁명 때도 살아 있었을 것 같은 나이 많은밤나무가 있었는데, 아주 자그마한 나무였지만, 나는 그 나무밑에서 걸음을 멈추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나무로 변해서 그렇게 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 P241

관광객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도 관광지였다. 늑대를잃고 시를 얻은 숲은 관광지인데, 유럽에서 자연 하면 떠올리는것이 바로 그런 관광지의 풍경, 늑대는 다 없어지고 자연 그대로의 숲도 거의 없어진 풍경이다. 러시아 시인 조지프 브로드스키(Joseph Brodsky)에 따르면, "자연과 대면하겠다고 생각한 유럽인은 친구들, 아니면 가족들과 함께 시골 별장 또는 작은 여관에 갔다가 혼자 저녁 산책을 나간다. 산책 중에 한 나무와 마주친 유럽인에게 그 나무는 역사의 소개로 안면을 트게 되는존재, 역사가 증인으로 내세우는 존재다. 나뭇잎들이 바스락거릴 때, 의미들이 함께 바스락거린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 P242

은 즐거우면서도 차분하다. 삶에 활력을 주는 만남이었을 뿐 삶을 바꾸어놓는 만남은 아니었다. [......] 반면에 자기 집에서 걸어 나와서 한 나무와 마주친 미국인에게 그 만남은 대등한 두존재 간의 만남이다. 인간이라는 존재와 나무라는 존재가 어떤소개장도 없이 각자의 원초적 능력만 가지고 대면한다. 둘 다 과거가 없는 존재이고, 둘 중 어느 존재의 미래가 더 위대할지는아직 미정이다. 미국인은 자기 손으로 지은 집으로 돌아오면서충격과 공포를, 아니면 최소한 당혹을 경험한다. 세상은 유럽일 것이고 자연은 관광지일 것이라는 기대를 아직 버리지 못한미국인이라면 그런 만남에서 당혹과 충격을 경험하겠지만, 불안정한 번역, 곧 문화에 완전히 흡수되지 않은 상징물을 선호하는 미국인이라면 그런 만남에서 희열을 경험할 것이다. 내가 지금보다 나이를 덜 먹었을 때는 유럽을 부러워했다. 그때 내가 보았던 유럽은 문화가 있는 곳, 모든 사람, 모든 장소에 기나긴 역사와 전통이 달려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 유럽에 가면, 유럽에서 내려지는 인간의 정의가 너무 협소하고 너무 인위적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 P243

아침에 클레어 해변과 모허 절벽행 버스에 오를 때도 장신의 여성과 함께였다. 나에게 상세지형도를 사게 했던 서퍼청년은 꼭 클레어에서 모허 절벽을 보라고 했지만, 나는 충동적으로 라틴치에서 내렸다. 다시 혼자 걷고 싶어서이기도 했고, 여자가 본인의 일정을 혼자서 용감히 소화해 나가는 여행 대신 나를 따라다닌다는 훨씬 쉬운 여행을 택하지 않기를 바라서이기도 했다. 내린 곳은 모허 절벽까지 몇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곳이었지만, 대상의 진가를 알아보는 데는 대상이 막간에 바뀌어버린 무대처럼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게 하는 것보다는 대상이주변 풍경으로부터 서서히 솟아오르게 하는 것이 훨씬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걷기 시작했다. 모래 바닷가를 지나시내 중심가, 시내 중심가를 지나 단조로운 국도, 단조로운 국도를 지나 비포장도로를 걷는 내내 시야는 해안을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몇 킬로미터를 걸었으니 지도상으로는 탑 하나가 나와야 할 때였다. 바다에서 멀지 않은 안길로 들어온 나는 눈에띄는 사람에게 탑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 P284

망각이 기억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아일랜드인의 정체성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일랜드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려면켈트족이 항상 아일랜드인이었던 것도 아니고 아일랜드인이 항상 켈트족이었던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해야 하고, 옛날에는 목축 부족이었던, 그리고 그 후에 몇 번이나 크게 변해온 아일랜드인들에게 지금의 보수적이고 완강한 전통은 임의의 선택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망각해야 한다. 인간에 대한 과학적 논의는 피(종족의 실체성)를 부정하면서 피보다 더 유동적이고 피보다 더 파악하기 힘든 시작점을 제시한다. 동아프리카의 뼈로 거슬러 올라가는 연구도 있고, 그렇게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 사이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지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연구도 있다.  - P304

생물학자들과 함께 거기서 더 거슬러 올라가면, 피라는 체내의 박동은 태고의 바다에서 원시 생물들에 부딪히는 체외 파동이 된다. (피와 바닷물은 아직 염분을 공유하고 있다.) 인간의 시작점을 찾는 인류학자들은 유인원이 아프리카의 초원으로 걸어나온 시점, 곧 두 발로 똑바로 걷는다는 의미에서의 보행이 시작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그들이 보행을 인간다운 인간의 시작점으로 꼽는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 숲을 떠난인간이 숲에 있던 나무처럼 직립 보행한다.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하늘을 향하는 나무. 인간의 시작점을 찾아 그렇게 점점 더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고정된 한 점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로 걸어가는 사람이 나온다. 아니, 이쪽으로 또는 저쪽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나온다. -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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