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문학과지성 시인선 490
허수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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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가을의 무늬


   이 가을의 무늬
                                허수경

 

  아마도 그 병 안에 우는 사람이 들어 있었는지 우는 얼굴을 안아주던 손이 붉은 저녁을 따른다 지난 여름을 촘촘히 짜내던 빛은 이제 여름의 무늬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올해 가을의 무늬가 정해질 때까지 빛은 오래 고민스러웠다 그때면,

   내가 너를 생각하는 순간 나는 너를 조금씩 잃어버렸다 이해한다고 말하는 순간 너를 절망스런 눈빛의 그림자에 사로잡히게 했다 내 잘못이라고 말하는 순간 세계는 뒤돌아섰다

   만지면 만질수록 부풀어 오르는 검푸른 짐승의 울음 같았던 여름의 무늬들이 풀어져서 저 술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새로운 무늬의 시간이 올 때면.

   너는 아주 돌아올 듯 망설이며 우는 자의 등을 방문한다 낡은 외투를 그의 등에 슬쩍 올려준다 그는 네가 다녀간 걸 눈치챘을까? 그랬을 거야, 그랬을 거야 저렇게 툭툭, 털고 다시 가네

   오므린 손금처럼 어스름한 가냘픈 길, 그 길이 부셔서 마침내 사윌 때까지 보고 있어야겠다 이제 취한 물은 내 손금 안에서 속으로 울음을 오그린 자줏빛으로 흐르겠다 그것이 이 가을의 무늬

             시집[누구도 기억하지 않은 역에서]



   ˝지난 여름을 촘촘히 짜내던 빛은 이제 여름의 무늬를 풀어내기 시작˝ 하여 지난한 과정을 거친다. 가을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여름의 뜨거운 볕과 바람, 습한 기후들과 이별을 견디는 야윈 등과, 무릎을 꿇게 만드는 좌절의 절절함을 지나, 억울하고 화나는 울분의 순간들을 참아온 나날들이 가을의 무늬를 결정한다. 가을은 결국 여름의 결정체구나. 뜨겁게 여름을 건너 온 이만 ˝속으로 울음을 오그린 자줏빛으로 흐르는˝ 가을을 만날 수 있다고 시인은 말한다.


   아침노을로 아름다운 하늘을 올려다보며 출근 하는 길, 내게 올 올해 가을의 무늬를 가늠해보았다. 푹 퍼져 쉬었던 이틀의 쉼으로도 찌뿌둥한 걸음이 조금씩, 조금씩 빨라졌다. 오늘은 40분의 도보에도 땀이 나지 않는다.
구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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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직선 창비시선 177
도종환 지음 / 창비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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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운 나무, 그리운 곳



  배롱나무

                     도종환

   배롱나무를 알기 전까지는
   많은 나무들 중에 배롱나무가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장 뜨거울 때 가장 화사한 꽃을 피워놓고는
   가녀린 자태로 소리없이 물러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남모르게 배롱나무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 뒤론 길 떠나면 어디서든 배롱나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루하고 먼길을 갈 때면 으레 거기 서 있었고
   지치도록 걸어오고도 한 고개를 더 넘어야 할 때
   고갯마루에 꽃그늘을 만들어 놓고 기다리기도 하고

   갈림길에서 길을 잘못 들어 다른 길로 접어들면
   건너편에서 말없이 진분홍 꽃숭어리를 떨구며
   서 있기도 했습니다.

   이제 그만 하던 일을 포기하고 싶어
   혼자 외딴섬을 찾아가던 날은
   보아주는 이도 없는 곳에서 바닷바람 맞으며
   혼자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꽃은 누구를 위해서 피우는 게 아니라는 말하듯

   늘 다니던 길에 오래 전 부터 피어 있어도
   보이지 않다가 늦게사 배롱나무를 알게 된 뒤부터
   배롱나무에게서 다시 배웁니다.

   사랑하면 보인다고
   사랑하면 어디에 가 있어도
   늘 거기 함께 있는 게 눈에 보인다고

                                  시집「부드러운 직선」중에서




   그랬습니다. 배롱나무를 알게 된 건 유홍준선생의 남도 답사 일 번지를 통해서였지요. 그리고 고향에 갔던 여름, 눈길 닿는 곳 어디에서나 배롱나무꽃을 볼 수 있었어요. 어느 집 마당에든, 가로수든, 논두렁이든, 절집이든 쉽게 눈에 들어오는 배롱나무, 그렇게 흔한 나무가 알게 된 이후에야 배롱나무로 각인 되어 내게로 왔습니다. 어느 해 여름, 명옥헌에서 만난 배롱나무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날의 하늘, 그 날의 바람, 그 날의 무등산, 그 날의 쓸쓸하면서도 충만하던 심경으로 마루에 앉아 몇 시간이고 흔들리는 꽃숭어리를 바라보면서 덩달아 흘러가던 마음결까지 고스란히 되살릴 수 있을 듯 해요. 그렇게 향수처럼, 아쉽게 놓쳐버린 한 시절처럼, 애닯은 추억처럼, 애잔하고 그리운 나무가 되었다지요. 도종환 시인도 그러셨나봅니다. 또 다른 시, 목백일홍에서도 그렇고.
   비가 지나간 수원 화성박물관 마당에서 오래오래 바라보았습니다. 만약에, 혹시라도 마당을 갖게되면 꼭 심고 싶다고 생각하며 지는 꽃을 바라봅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사무치는 마음으로 명옥헌이 그립습니다.
   아, 또 있습니다. 가슴 철렁하게 만들던 절집, 개심사에서 만난 배롱나무도 그러했지요. 무위사는 어떻구요. 그리운 게 나무인지, 장소인지, 추억인지, 떠나고 싶은 열망인지 모호해집니다. 아마도 그 모두겠지요. 팔월이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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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빗방울에 대고 할 말이 없습니다

                                  이승희



  상처 많은 사람처럼 자꾸만 부딪혀온다. 아무것도 담지 못한 생처럼 자꾸만 그렇게 부딪혀 온다. 세상은 그렇게 완강했다고 한없이 밀리는 나를 또 밀어댄다. 연두의 기억도 새들의 눈웃음도 맨드라미의 옆얼굴도 무엇 하나 적시지 못했는데 빈방들이 자꾸만 비명처럼 머리를 부딪혀오는 것이다. 그 어떤 것도 지상에 닿는 무게가 되기까지 살아냈어야 할 생이 있는 것이고, 당신의 얼굴에 내리는 빗방울은 모두 당신의 이야기, 당신이 처형한 사람들의 이야기, 더 할 말도 없으면서 자꾸만 나를 붙드는 마음 같아서 유리창에 대고 마구마구 편지를 쓰네. 불빛 두어 개 붙이면 누군가의 안부처럼 쓸쓸해질 테지. 나는 자꾸만 내 얼굴을 내어준다. 그것은 허공에 대한 이야기, 이젠 허공이 된 이야기, 앞으로 허공이 될 이야기. 그러므로 저 빗방울 속에 불을 켜두고 싶은 마음. 그 사이를 비틀 만한 것도 화해랄 것도 없었다. 낯섦만 깊어져 사이로 사이만 자란다고 어떤 힘만이 사이에서 갇혀 울기도 하였는데, 아주 먼 별의 뒷덜미를 볼 수 있다면 이 진부함이 좀 용서될까. 눈코입도 없는 얼굴을 씻다가 나는 무엇으로 울어야 하나.


     시집[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중에서



  가을장마에다 태풍까지 만나서 많은 비가 오시는 휴일, 정혜윤의 【그의 슬픔과 기쁨 】을 덮고 먹먹해진 마음을 도저히 가눌 길이 없다. 가슴 안으로 폭우가 쏟아진다. 몇 자 끄적거리다 깜박거리는 커서만 들여다본다. 결국 포기하고 집어 든 맨드라미 색상의 이승희 시집, 쩝~! 정말 '빗방울에 대고 할 말이 없'다. 어쩌자고 '상처 많은 사람처럼 자꾸만 부딪혀'오는지. 김대용, 윤충렬, 박호민, 이현준, 박정만, 김정욱, 최기민, 김득중, 한윤수, 서맹섭, 이갑호, 정형구, 고동민, 이창근, 김정운, 김상구, 문기주, 복기성, 한상균, 김남오, 유제선, 박주헌, 염진영, 오석천, 김성진, 양형근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담지 못한 생처럼 자꾸만 그렇게 부딪혀 온다.' 빗방울은 거세어졌다 여려졌다를 반복하는데 '아주 먼 별의 뒷덜미를 볼 수 있다면 이 진부함이 좀 용서될까'. 이 비 때문에 누군가도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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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남자네 집‘은 단편이었다. [친절한 복희씨]에 수록된 작품으로 먼저 읽었다. 이번에도 그런 반복으로 읽었다. 그래서인지 장편으로도 쉽게 쭉쭉 읽었다. 야간 근무중 짬짬히 신경의 반만 책에 걸쳐놓고 한쪽 귀는 다른 쪽으로 열어 놓고, 읽기로는 소설이 딱이다. 소설은 읽는동안 소설속으로의 몰입과, 일을하고 있다는 긴장감이 팽팽하게 평행을 이루면서 모든 신경들을 날카롭게 일으켜준다. 느슨해질수도 있는 정신을.
  4월, 박완서 다시 읽기를 시작하고 나서 나는 좀 바보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분명 읽었던 책들이고, 간혹 메모지도 꽂아 둔 책들인데도 처음처럼 생소하고 새로웠다. 정말 읽었던 것일까?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었다. 어떤 특정한 한 편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전반적으로 고르게 그러했으니 스스로가 얼마나 한심하고 바보 같은지. 이런 식의 독서를 줄기차게 해왔다는 자괴감까지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도대체 무얼 읽고 기억했다는 말인가. 어떻게 이렇게 새롭게 읽힐 수가 있지 싶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처음 만나는 것도 아니고 이미 읽었다해도 읽어내는 눈이 달라졌다는 것을. 그때의 나도 나였고 지금의 나도 가장 나다운 방식으로 이해하고 기억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고전은 계속 읽히는 것이란 사실을.

  2010년쯤이었을 것이다. 제주 올레길에서 만난 한 친구와 나눈 대화들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우리는 살아온 과정, 어느 곳에서도 겹치는 부분이 1도 없었으나 시와 소설의 얘기에서 많은 부분 겹쳤다. 둘 다 그 대화의 신명에 빠져 길을 걷기보다 더 자주 멈추고 쉬면서 미니올레를 했다. 일년의 절반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지내는 그 친구를 다시 만나 걷지 못한 것처럼 그런 미니 올레도 다시는 해보지 못했다. 그때의 화두는 미래의 노년을 작가[박완서]를 통해 미리 알아가는 즐거움과 여전히 현역인 작가에게 보내는 헌사에 가까웠다. 아직 억새가 성성하던 통오름에서 돗자리를 펼치고 앉아 붉은색 표지의 [못 가본 길이 아름답다]를 한 꼭지씩 나눠보던 그 겨울이 풍경화처럼, 기억의 폴더에 저장되어 있다. 아름다운 기억이다. 선생도 그렇다.

  내가 ‘아직 못 가본‘ 노년을 선생의 글로 미리 배웠다. 소설과 산문을 통해 한편으로는 수다스럽고, 자식 자랑에 주책맞기도하고, 감정의 기복이 심해 변덕스럽기까지한 그녀들의 세계를 미리 엿보고 내 노년까지 짐작하기도 했다. 선생은 원하지 않으실지 몰라도 내게는 스승이시다.



  한번 뒤집혔던 세상이 원상으로 복귀해서 미처 숨 돌릴 새 없이 다시 뒤집혔다가 또 한 번 뒤집히는 엎치락뒤치락의 틈바구니에서 우리집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고, 그 남자네 집에서는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다. 국가라는 큰 몸뚱이가 그런 자반뒤집기를 하는데 성하게 남아날 수 있는 백성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여 우리는 서로 조금도 동정 같은 거 하지 않았다. 우리가 받은 고통은 김치하고 밥처럼 평균치의 밥상이었으니까. 만약 아무도 죽지도 않고 찢어지지도 않고 온전한 가족이 있다면 우리는 그 얌체꼴을 참을 수 없어 그 집 외동 아들이라도 유괴할 것을 모의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의 아름다운 얼굴에서 창백하게 일렁이던 카바이트 불빛, 불손한 것도 같고 우울한 것도 같은 섬세한 표정, 두툼한 파카를 통해서도 충분히 느껴지던 단단한 몸매, 나는 내 몸에 위험한 바람이 들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 불쌍한 어머니를 맨날맨날 구박한다고 해도 그게 하나도 못돼 보이지 않았다. 피차 동정 같은 건 하지 않았지만 닮은 불운을 관통하는 운명의 울림 같은 걸 감지한 건 아니었을까. 나는 마치 길 가다 강풍을 만나 치마가 활짝 부풀러 오른 계집애처럼 붕 떠오르고 싶은 갈망과 얼른 치마를 다둑거리며 땅바닥에 주저앉고 싶은 수치심을 동시에 느꼈다. 장작을 아끼기 위해 우리 식구들은 다들 안방에 모여 자고 있었다. 깊이 잠든 살아남은 식구들, 두 과부와 두 어린 것들의 평화로운 숨소리가 들렸다. 마침내 더는 나빠질 수 없는 밑바닥에 도착한 안도감과 평화는 같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의 슬픔보다는 평화가 얼마나 더 거룩한가. 나는 내 안에서 회오리치는 위험에의 갈망과 이렇게 맞섰다. P36. 37



  ˝더는 나빠질 수 없는 밑바닥에 도착한 안도감과 평화는 같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의 슬픔보다는 평화가 얼마나 더 거룩한가.˝ 나는 이런 문장들에 무릎이 꺾인다. 밑바닥에 가 본 사람만이 저런 문장을 구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글로만, 역사로만 접해 본 전쟁을 생각한다. 지금의 아프카니스탄을.




  박수근 그림에 나오는 여자들은 다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는데 남자는 우두커니 앉았거나 놀고 있는 게 특징이라고 했다. 남자들에게는 일거리가 없어서 여자들이 나가서 무슨 일이라도 해야만 식구들을 먹여 살릴 수가 있었던 당시의 사회상을 본 대로 느낀 대로 그린 사실적인 그림이지만, 캔버스에다 옮기는 게 아니라 돌을 쪼듯이 그렸기 때문에 암벽에 새겨진 마애불 같은 시각효과를 나타낸다고도 했다. 전문가의 해설이 비전문가의 안목과 일치하는 게 신기했다. 전시장을 돌아 나오는데 회랑처럼 생긴 통로에 박수근의 판화가 걸려 있었다. 판화속의 여자들도 다들 임을 이고 어디론지 걸어가고 있었다. 그 중에 탑이 가운데 있고 그 주위를 임을 인 여인들이 맴도는 것 같은 구도의 판화를 보고 엄마의 손을 잡고 구경온 어린이가 큰 소리로 외쳤다.
  엄마, 저 아줌마 대빵 큰 모자 썼다. 그치?
  여인들이 머리에 인 빈 광주리가 대빵 큰 모자로 보였던 것이다. 그 아이는 아마 광주리는커녕 작은 보퉁이 하나도 머리에 인 것을 본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의 광주리는 정말이지 대빵 컸다. 지름은 일 미터 가까이나 되지만 운두는 손을 올려 잡을 수 있어야 하는 걸 감안해, 낮게 왕골로 엮은 광주리는 뚝섬에서 두세 평씩 밭떼기한 열무니 굵은 육쪽마늘 열 접도 한꺼번에 담을 수가 있었다. 어떻게 그 많은 것을 잘쟁여 담느냐가 문제지 목이 어떻게 그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느냐는 문제 삼지 않았다. 임만 이면 여자들의 목은 움츠러들기는커녕 오히려 빳빳이 일어섰다. 그 남자의 어마니처럼 굽은 허리까지 일으켜세우는 이상한 임질도 있었다. 등짐장사로 생업을 삼은 애비가 식구들에게 뼈가 부러지고 등가죽이 벗겨지도록 일했느라고 공치사하는 반면, 여자들은 광주리장사를 회고할 때 목이 빠지게 임질을 했다고 표현하는 것만 봐도 알 수가 있다. 어려운 시절이 지나고 여자들이 광주리 장수를 면하게 된 후에도 웬만한 집에선 대개 커다란 광주리 한두 개씩은 뒤란이나 광에 걸려 있었다. 김장때 무나 절인 배추를 씻어 건져 담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생활필수품이었으니까. 식구가 다섯 식구만 되어도 김장을 백 포기씩 할 때였다. 극도로 궁핍한 전시를 넘기자 김장을 몇 포기나 했냐로 그 집이 얼마나 살 만해졌나 부의 척도로 사는 시대가 왔다.
  박수근이 표현한 그와 동시대의 여인들은 판화 속에서나 유화 속에서나 빈 광주리를 이고 있다. 그래서 귀로歸路처럼 보인다. 귀로의 허기와 충만감, 귀로의 쓸쓸함과 조급증, 귀로의 피곤과 안도감, 그런 것들을 겪어보지 않고 어찌 읽어낼 수 있을까. 더군다나 미묘한 선이 생략되어 유화보다는 화강암에 새긴 부조처럼 보이는 작은 판화에서. p48~50


  5월이 되자 사랑마당에서 온갖 꽃들이 피어났다. 그렇게 여러 가지 꽃나무가 있는 줄은 몰랐다. 향기 짙은 흰 라일락을 비롯해서 보랏빛 아이리스, 불꽃 같은 영산홍, 간드러지게 요염한 유도화, 홍등가의 등불 같은 석류꽃, 숨가쁜 치자꽃, 그런 것들이 차례로 불온한 열정 - 화냥끼처럼 걷잡을 수 없이 분출했다. 이사하고 나서 조성한 정원이어서 그 남자도 이렇게 꽃이 잘 핀 건 처음 본다고 했다. 그런 꽃들을 분출시킨 참을 수 없는 힘은 남아돌아 주춧돌과 문짝까지 흔들어대는 듯 오래된 조선 기와집이 표류하는 배처럼 출렁였다.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싶을 만큼 아슬아슬한 위기의식을 느꼈다. 돈이 안드는 사치는 이렇게 위험했다.
  5월은 마치 미친 것처럼, 울부짖는 것처럼 격렬하게 제 명을 다하고 극성스러운 여름이 되었다. 나는 6월의 모란꽃처럼 피곤했다. 찌는 듯한 더위가 극에 달한 어느 날 휴전이 되었다. P53


  그렇다고 그 남자에게 싫증이 난 건 아니었다. 연애의 권태기가 온 것 하고도 달랐다. 만일 그 남자를 못 만났더라면 그 시절을 어떻게 넘겼을까. 그 살벌했던 날, 포성이 지척에서 들리는 최전방의 도시, 시민으로부터 버림받은 도시, 버림받은 사람만이 지키던 헐벗은 도시를 그 남자는 풍선에 띄우듯이 가볍고 어질어질하게 들어올렸다. 황홀한 현깃증이었다. 이 도시 골목골목에 놓인 어둠, 포장마차의 연탄가스, 도처에 지천으로 널린 지지궁상들이 그 갈피에 그렇게 아름다운 비밀을 숨기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었다. 그 남자의 입김만 닿으면 꼭꼭 숨어있던 비밀이 꽃처럼 피어났다. 그 남자하고 다닌 곳 치고 아름답지 않은 데가 있었던가. 만일 그 시절에 그 남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내 인생은 뭐가 되었을까. 청춘이 생략된 인생, 그건 생각만해도 그 무의미에 진저리가 처졌다. 그러나 내가 그토록 감사하며 탐닉하고 있는 건 추억이지 현실이 아니었다. 나는 이미 그 한가운데 있지 않았다. 행복을 과장하고 싶을 때는 이미 행복을 통과한 후이다. 그와 소원해진 사이에 느낀 휴식감도 절정감 못지않게 소중했다. 긴장 뒤엔 반드시 이완이 필요한 것처럼. 그러나 한번 통과한 그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 않았다. 전적인 몰두가 사람을 얼마나 지치게 하는지 알고 있었다.
  무릉도원의 도화桃花도 일주일만 만개해야지 만약 일 년 내내, 아니, 한 달만 만개 상태가 계속되어도 사람들은 지쳐서 몸살을 앓든지 환장을 하든지 할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이미 무릉도원의 주민이 아니게 될 것이 아닌가. p70,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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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패의 장소

                         김소연
 

  우리가 만난 곳을 생각해
  내가 기대어 한숨을 쉬었던 그 벽에서
  너는 두 손을 모아 균열에 대고 소원을 말했지

  나는 오후 세 시에
  너는 새벽 세 시에

  꽃잎을 먹었어요
  어차피 더럽게 떨어질 꽃잎이라서요
  이렇게 많이 먹었는데 왜 배가 고플까요

  언 귀를 비빌 때마다 우리가 만난 곳을 자주 생각해
  악몽을 피처럼 낭자하게 흘리며 네가 쪽잠을 자던
  알 깨진 가로등 같은 몰골로 내가 마중을 나갔던 골목

  오늘만 좀 재워주세요
  기린과 코끼리와 들쥐 그리고 화분 한 개
  내 짐은 이게 전부예요

  새벽 세 시의 네가
  오후 세 시의 나를

  찾아왔던 날을 자꾸자꾸 생각해
  언 발을 나무처럼 심어두고 싶었지만
  어쩐지 흙에게 미안해져 그만두었어요

  쓰러져 누운 모든 것들이
  이불로 보이던 그 동네를 생각해
  쓰러지며 발열하는 별 하나와 불빛 없는 상점들

  같은 악몽을 사이좋게 꾸던
  같은 소원을 사이좋게 버리던

                                                           시집 [수학자의 아침]중에서


  ˝알 깨진 가로등 같은 몰골˝을 골똘히 생각해본다. 모자라고 헐렁헐렁하고 궁끼있는 몰골, 즉 실패의 냄새가 풀풀한 그런 허접한 몰골이겠지. 내가 좀 그쪽에 가까운 것 같다. 반듯반듯하고는 거리가 먼 패배의 몰골로 ˝쓰러져 누운 모든 것들이/ 이불로 보이던 그 동네˝를 오가며 살았다. 변두리에서 변두리로. ˝우리가 만난 곳을 생각˝해 보아도 그렇다. 새벽이면 모퉁이마다 쓰레기 가득한 골목들을 헤집고 출근할 때마다 이 시가 떠올랐다. 실패보다는 슬픔을, 쓸쓸함이 가득한 후줄그레한 내 뒷태를, 아니 내 배후를 만나는 기분이 들었다. 벤치마다 쓰레기가 가득한 공원을 가로지르며 ˝언 발을 나무처럼 심어두고˝ 싶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시인들은 참, 시는 참.....


  ˝씩씩한 소연아,
  너의 새 시집이 슬픔으로 가득하구나. 내가 슬픔을 말하는 것은 시구의 갈피에 삶의 고독한 정경이 곤두서 있기 때문도 아니고, 이해받지 못하는 어떤 진실들이 망각의 웅덩이를 이루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 여전히 네가 일상의 곡절 속에서 낭비된 마음들을 바다와 같은 천 년의 잠으로만 회복하려 한다고 여겨서도 아니다. 내가 슬픔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른 것. 온갖 감정과 의지의 무변한 저수조가 아득하게 저기 있는데 너는 한 번의 물결을 실천할 때마다 저 온존한 바다를 잠시 잊어야 하는 것이 불안하다는 듯이 특별한 몸짓을 하며 특별한 목소리로 말하지. {해설, 황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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