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문학과지성 시인선 492
황인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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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황인숙 시집 [문학과 지성사(2016)]

 

우울

나는 지금

알 수 없는 영역에 있다

깍지 낀 두 손을 턱 밑에 괴고

짐짓 눈을 치켜떠보고

가늘게도 떠보고

끔벅끔벅, 골똘해보지만

도무지

부팅이 되지 않는다

풍경이 없다

소리도 없다

전혀 틈이 없는

알 수 없는 영역을

내 몸이 부풀며 채운다

알 수 없는 영역에

하염없이 뚱뚱한 나

덩그러니 붙박여 있다

    나는 지금/ 알 수 없는 영역에 있다/ 깍지 낀 두 손을 턱 밑에 괴고// 짐짓 눈을 치켜떠보고 / 가늘게도 떠보고/ 끔벅끔벅, 골똘해보지만/ 도무지/ 부팅이 되지 않는다// 풍경이 없다/ 소리도 없다// 전혀 틈이 없는/ 알 수 없는 영역을/ 내 몸이 부풀며 채운다// 알 수 없는 영역에/ 하염없이 뚱뚱한 나/ 덩그러니 붙박여 있다

    이런 증상이 우울이었다니, 아마도 시인이란 말씀의 사원[ 言+寺=詩]에서 수행하는 구도자임이 분명하다.

  

 

마음의 황지

아침신문에서

느닷없이 마주친

얼굴,

영원히 젊은 그 얼굴을 보며

끄덕끄덕끄덕끄덕 끄덕끄덕

칼로 베인 듯 쓰라린 마음

오래전 죽은 친구를 본 순간

기껏

졌다, 내가 졌다,

졌다는 생각 벼락처럼

그에겐 주어지지 않고 내게는 주어진 시간

졌다, 이토록 내가 비루해졌다

졌다, 시간에

나는 졌다

묽어지는 나

이상하다

거품이 일지 않는다

어제는 팔팔했는데

괜히 기진맥진한 오늘의 나

거품이, 거품이 일지 않는다

쓰지 않아도 저절로

소진돼버리는

생의 비누의 거품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하얗게

하얗게

눈이 시리게

심장이 시리게

하얗게

네 밥그릇처럼 내 머릿속

아, 잔인한, 돌이킬 수 없는 하양!

외로운 하양, 고통스런 하양,

불가항력의 하양을 들여다보며

미안하고, 미안하고,

그립고 또 그립고

            시인의 말

    매사 내가 고마운 줄 모르고 미안한 줄 모르며

    살아왔나 보다. 언제부턴가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렇게 됐다.

    인생 총량의 법칙?

    그렇다면 앞으로는 시를 끝내주게 쓰는 날이 남은 거지!

                                         2016년 가을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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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입니다 - 안희정 성폭력 고발 554일간의 기록
김지은 지음 / 봄알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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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은입니다

            안희정 성폭력 고발 554일간의 기록 [봄알람 (2020)]

   오후 4시인데 한밤중처럼 어둡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고 있다. 이렇게 30분만 쏟아진다면 어디선가 산사태가 날 것이고 하수가 역류할 것이란 생각을 잠시 한다. 이렇게 아는 게 많다는 것은 걱정이 많다는 것이고 쓸데없는 걱정이 많다는 것은 모든 일에 신랄해지고 조금만 아는 척을 해도 곧 잘난 체가되어버리기 때문에 나는 줄곧 어떤 이슈가 될 문제들에 내 생각을 드러내지 않으려 조심한다. 스물 중반이 넘어가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잘난체한다는 거였다. 그 말속에 담긴 비난과 시샘, 힐난과 깔아뭉개는 그 태도들에 너무나도 익숙해서 피하고 싶다. 말을 안 하면 안 해서, 말을 하면 저것 봐 저럴 줄 알았지로 피하려 할수록 내가 입은 잘난체한다는 손가락질의 외투는 물을 먹은 이불처럼 무거워질 뿐이다. 그래서 대부분 모른 척, 못 본 척 침묵을 택한다. 어느 정도 친하지 않으면 말을 섞지 않으려 조심한다. 그래서 또 잘난 체한다는 비난을 듣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오늘은 작정하고 해야겠다.

   왜냐하면 오늘은 5.18 민주화운동 40주기이고······, 종일 '김지은입니다'를 읽었기 때문이다. 먹먹하기도, 불편하기도, 화가 나기도 했다. 평소 책을 얌전히 읽는 편이다. 그러나 오늘은 책 내용 때문인지 죄책감 때문인지 온갖 포즈로 바꿔봐도 자세도, 머릿속도, 뱃 속도, 기타 등등 모든 신체 조직이 불편했다. 뉴스룸에서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경악했던 그 순간이 되살아났다. 모든 사실들이 놀라웠지만 특히 저 말, "미안하다. 미안하다. 괘념치 마라. 잊어라. 부디 잊어라." 어떻게 저런 말을 하지 싶어서 놀라웠다. 내가 아는 상식으로 '괘념치 마라' 저런 언어와 말투는 일반인이 쓰는 게 아니다. 보편적인 사람들은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권위를 가진 부류의 언어다. 조선 왕조의 언어다. 그런데 그 일로 뒤숭숭한 세상에서 많은 말들이 있었지만 저 말투를 문제 삼는 이는 없었다, 그래서 더 충격이었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의 균형이 기우뚱 흔들릴 만큼. 안희정이라는 권력은 부하직원한테 잘못을 저지르고도 그런 언어의 수혜를 내릴 만큼의 도덕성을 가진, 선택받은 너는 성은을 입은 것인데 너의 맘을 다독거리고 사과까지 한 나란 인간, 좀 멋지지 않니라고 자랑하듯 괘념치 마라~부디 잊어라를 반복하는, 너만 그냥 입다물고 있었으면 승승장구 대통령이 되실 몸이셨던 것이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내 작은 몸을 가려주는 큰 우산을 쓰고 거리를 걸었다. 우산 위로 거침없이 비가 막 내려오는 걸 보고 있자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우산이 날 지켜주는구나. 나를 이렇게 지켜주시는 분들도 곳곳에 계시겠구나' 머리 위에서 듬직하니 커다랗게 서 있는 우산이 마치 키다리 아저씨 같았다. 든든했다』 [p245]

   저 빗속에 우산을 쓴 김지은이 지나간다. 키다리 아저씨 로망을 가진 많은 우리들은 '설마! 안희정이, 그 안희정이 그럴 리가.' 반신반의하면서 그 사건을 알았고 그렇게 세월은 흘러갔다. 그 2년 동안 김지은은 빨가벗겨진 채로 길거리에서 짓이겨지고 끌려다니면서 생이 나달나달 해지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어떤 폭우에도 맞설 수 있는 우산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뉴스룸'에 나올 만큼 강단이 있고, 도와주는 이들이 있고, 많이 배운 사람이니까 잘 건너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익명 속에 섞인 우리들 중의 하나인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결국 그것이 불편했던 것이다. 모르는 것이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겨우 핑계나 변명에 불과한 것이라고 누누이 생각해오지 않았던가. 모른 척했다는 사실이 쳇증처럼 얹힌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 했던가. 그런 식으로 몇몇이 모여 거짓을 말하니 순식간에 나는 세간에서 '그런 여자'가 되었다. 사심으로 일을 한, 지사의 사생팬인, 신뢰할 수 없는 이상한 여자. 그리고 나를 향한 그런 프레임화는 이후 이어진 지난한 재판 과정 내내 그들의 집요한, 거의 유일한 전략이었다.』 [p 21]

   어쩌면 저 三人成虎의 시선 속에는 익명을 가장한 내 속내도 얹혀있는지 모른다. 우리는 성에 관한 한 피해자가 문제를 일으켰을 것이라는 편견 속에 살고 있지 않은가. '여자가 꼬리를 쳤을 거라는 둥, 어떻게 처신했으면 그 점잖은 사람이 그랬겠냐는 둥.' 나도 자유롭지 않은데 가해자 쪽에서 그런 전략으로 갔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런 여자', 프레임은 성공한 듯 보인다.

   『2018년 3월 5일, 살아 있는 권력 앞에서 '진실'을 말하기까지 나는 오랜 시간 두려움에 떨었다. 안희정은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였고 미래 권력이었다. 미래 권력은 현재 진행형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힘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었다. 청와대부터 정재계에 이르기까지 안희정과 관계를 맺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은 그를 차기 대통령이라 여겼다. 차기 1위라는 여론 조사 결과가 뒷받침해 주고 있었고 실제로 사람들은 안희정을 그렇게 대했다. 학생운동과 386이라는 끈끈한 연대도 있었다. 안희정은 그에 상응하는 의전과 예우를 받았다. 안희정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그 유명세를 함께 누렸고, 외부의 많은 사람이 그와 알고 지내고 싶어 했다. 사회 곳곳과 관계 맺어 생물처럼 다각도로 뻗어나가는 거대 조직, 그 자체가 안희정이었다.

   그런 대상을 향해 미투를 한다는 것, "지금 당신이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안희정 개인만을 향한 한정된 외침이 아니었다. 그가 가진 정치적 지위와 그가 관계 맺은 수많은 이에게 맞서는 일이었다. 나에게 미투는 가늠할 수 없는 크기의 힘과 싸움을 시작하는 일이었다. 말하고 나서 바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지 모를, 설령 산다 해도 남은 날이 죽은 것과도 같은 자살행위였다.

  하지만 죽게 되더라도 다시 그 소굴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첫 번째 성폭행 이후 안희정의 사과를 들었을 때 그 한 번으로 끝나리라 믿었던 피해는 반복되었다. 2018년 2월에 또다시 범죄를 겪고 나서야 여기서 영원히 도망칠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반복되는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신에게 제물로 바쳐지듯 성폭력을 당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주변의 사람들은 리더의 폭력을 묵인하는 그런 조직 안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p22, 23]

   "신에게 제물로 바쳐지듯 성폭력을 당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주변의 사람들은 리더의 폭력을 묵인하는 그런 조직 안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이 부분을 읽을 때부터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무리 중에는 리더의 폭력을 묵인하는 분위기에서 질투하고 선망하면서 닮아가려는 이도 있을 것이고, 뒷짐 지고 큼큼 헛기침하면서 점잔 빼는 이도 있을 것이고, 매번 뒷정리랍시고 어르고 달래고 협박하고 관리하는 실무자도 있을 것이다. 의리라는 이름으로, 대의를 위해서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양아치들. 이따위밖에 안 되는 것들을 이 땅을 이끌어 갈 미래 주자라고 믿었던 순간이 있었다는데 화가 난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어 안희정의 볼에 뽀뽀를 할 때 가슴 벅차오르던 환희가 이제는 구토 나올 거 같다. 또 노무현 대통령, 그분의 얼굴이 떠올라서 화가 나서 미칠 것 같다. 그분을 생각해서라도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거잖아, 싶어서 울화가 치밀었다. 김지은은 안희정만 미투 한 것이 아니다. 삐뚤어진 권력의 실체를 고발한 것이다.

   -- 여기까지 쓰고 비가 주춤하길래 산책을 다녀왔다. 비는 굵어졌다 가늘어지기를 반복하고 마침 걸려온 후배와 통화를 하면서 이 불편함과 울분을 얘기하고 나니 속이 좀 후련하다. 그 어떤 해결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부당한 걸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와 의무를 생각해 본다. 세 시간의 우중 산책에 신체적 불편함들이 많이 나아졌다.

   ······

  그래놓고 며칠.

  말이 되어 튀어나간 감정들은 다시 돌아오기가 힘들다. 한 번이라도 저렇게 격한 문장들을 토해낸 적이 있던가, 의기소침해지다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렇게 솔직하게 써보겠나 싶어 그대로 두기로 했다가 갈팡질팡이다.

pc 옆에 덩그러니 놓인 책을 아침저녁으로 쳐다보면서 마쳐야지, 마쳐야지, 하고 다시 며칠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채무변제 방법은 이 리뷰를 마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마음 다잡고 또 며칠.

   5.18을 관련해 올해 새롭게 알게 되거나 깨우친 건, 현장에 있던 그 많은 여성들이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인가였다. 가두방송을 하던 그 가슴 떨리는 목소리의 주인공들, 시위대에 주먹밥을 건네주던 많은 아주머니들, 도망치는 시위대를 숨겨주고 선두에 섰던 황금동 아가씨들, 마지막 도청 사수 때 묶인 채로 엎어져있던 사진 속의 여학생들, 윤상원과 영혼결혼식을 올려 세상에 드러난 들불야학 박기순의 죽음들을 통해 민주화에서조차 배제된 여성들의 삶과 희생이었다. 그런 사실들과 책의 내용이 맞물려서 혼란스러웠다. 이 땅에서 여성으로 사는 일은 인내와 희생의 연속인지도 모르겠다.

   열여덟 살 때 나는 '깽깽이'라는 별명을 공장의 최고참 선배한테 하사받았다. 그녀에게 내 이름은 '야~ 깽깽이'이에 불과했지만 그녀에게 기술을 습득해야 하는 나는 웃으면서 '자네는 나만 보면 왜 그렇게 부르는가'라고 물었다가 '자네'라는 호칭의 위력을, 내가 왜 깽깽이에 불과한지를 따귀 몇 대로 배웠다. 그때까지 언니들을 그렇게 불렀는데 손아랫사람에게 하는 하대였다는 '자네'때문에 세상의 자네들을 알게 되었다. 선배는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말이 거칠고 행동이 거친 센 언니였을 뿐, 몇 달 후 결혼으로 퇴직하면서 호탕한 웃음과 함께 잘해보라며 등짝 스매싱을 남겨 두고 떠났다. 40년 전이다. 그 선배는 기억에도 없을 어느 봄날의 일이다. 볼에 남겨진 손자국은 심장에 새겨졌다.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누가 뭐라 부르든, 잘한다고 등짝 스매싱을 하든 별말 없이 사는, 아프고 약하면 무시당하니까 철저하게 참고 참는 사람이 되었다. 흔적은 그렇게 흉터가 된다. 그런 작은 흔적도 흉터가 되는데, 죽는 것이 차라리 축복이었을 고통에 나달나달해진 사람으로 사는 것은 그 삶이 과연 사는 것일까?

  ​여기까지가 지난봄에 쓴 것이다.

  알라딘 메인 화면에 김지은입니다 가 올해의 주목받은 책으로 떠서는 계속 나를 따라다닌다. 떼먹고 달아난 돈 갚으라는 듯이.

  다시 모른 척한 불편함이 장을 꼬이게 한다. 마무리해야겠다고 결심한다. 이천이십년을 넘기기 전에(결국은 해를 넘기고 말았다).

​  지난봄 이후 세상에는 김지은을 소환하는 여러 일들이 있었다. 특히 '안희정 모친상'을 뉴스에서 접할 때는 생각이 많아졌다. 어머니를 잃은 슬픈 아들에게 조문을 건네는 정치권 인사들을 보는 것은 내내 불편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위로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렇게 대놓고 인산인해를 이룬다는 것은 그의 영향력이 아직도 펄펄 살아있다는 반증이다. 두려웠다. 그녀에게도 부모님이 계시고 아프시기도 한데 그녀가 딛고 선 세상은 이미 한쪽으로만 기운 천칭 저울이다. 이렇게 먼 곳에 있는 내가 무서운데 그녀의 두려움은 눈 감아 버리고 싶을 것이다. 간절하게 눈 감고, 귀 막고, 도망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간절한 것들은 언제나 너무 멀다.

   『나는 건강해야만 한다

   목이 아프면 엄마가 해주시던 밥이 생각난다. 하지만 가족이 있는 집에 갈 수가 없다. 수술 이후 계속 통원 치료를 받고 계시는 아빠가 내게서 감기라도 옮으면 안 된다. 내가 건강할 때만 뵈러 갈 수 있다. 집에는 가고 싶은데 감기가 도무지 낫지 않아 집 근처 가게에서 콩나물을 천 원어치 사 와 짬뽕라면에 청양고추를 함께 넣고 끓여 먹었다. 약보다 칼칼하게 매운 이 음식이 감기를 더 빨리 낫게 해줄 것만 같았다. 흔한 동네 병원도 내게는 방문하기 어려운 곳 중 하나다. 이름을 수없이 부르는 친절한 병원 시스템이 지금 내게는 힘들다.

지금 하고 있는 이 싸움의 전제 조건은 내가 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건강해야만 한다. 나는 무사해야만 한다. 나는 반드시 살아야만 한다. 나는 견뎌내야만 한다. 이기든 지든 싸움의 끝에 나는 있어야 한다. 나는 진실을 알고 있는 단 한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없어진다면 모든 것이 흐지부지될 것이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 그 범죄를 암묵적으로 방치했던 사람들, 그 범죄를 수면 아래로 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사람들 틈에서 꼭 증명해내고 싶다. 죽어서 인정받는 것이 아닌, 살아서 인정받을 수 있는 사례를 만들고 싶다.』 [p254]

   이 페이지는 가슴이 먹먹하다. 저 다짐들이 너무나 소소한 것이어서 눈물이 난다. 명치끝에서 올라오는 서러움과 외로움을 꾹꾹 누르고 다짐하고 다짐하는 나는 건강해야만 한다. 나는 무사해야만 한다. 나는 반드시 살아야만 한다. 나는 견뎌내야만 한다. 이기든 지든 싸움의 끝에 나는 있어야 한다. 살아야만 한다, 살아야만 한다고 자신에게 주문을 외웠을 긴 시간들의 흉통이 저 다짐 속에 있다. 읽는 것으로도 가슴 시린 이 문장들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었을, 아니 지금도 그러고 있을 김지은 생각에 다시 읽어도 눈물이 난다. 운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반.드.시.살.아.야.만.한.다.

   영화 [밤셀;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을 봤다. 실화를 바탕한 이 영화를 통해서 언론이 어떻게 거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알았다. 그 거대 권력을 쥐락펴락하는 폭스 뉴스 회장을 고소하는 세 명의 앵커, 미투 운동의 시작이 되었다 한다. 복선과 암투가 정교하게 얽힌 권력의 측근에서 용기를 내거나 도망가는 사람들의 관계나 심리가 복잡해서 집중해야만 줄거리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픽션이 아니기에 더 복잡했으리라. 영화는 아름답고 지혜로운 세 명의 여성 앵커들이 내린 힘겨운 결단이, 그 어려운 한 걸음을 내딛는 용기가 세상을 바꾼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보는 내내 [김지은입니다]가 읽혔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얼마나 고단하고 긴 싸움의 서막인지도. 이어서 일어난 '박원순 서울시장' 사건의 파장은 현재 진행형이다.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이라는 기상천외한 호칭으로 정리한 정치권의 민낯을 보는 데에도 어느덧 익숙해지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욱더 [김지은입니다]를 사고, 읽고, 주변에 알리는 일을 해야 한다. 김지은과, 세상의 많은 김지은들과, 김지은을 연대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보태는 일, 이렇게 리뷰라도 쓸 수 있어서 다행이다. 늘 잘난 체만 하는 비겁한 나도 오늘은 용기를 내어 김지은과, 세상의 많은 김지은들에게 토닥이고 싶다.

   괜찮아요.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당신이 잘못한 거 아니에요.

  '박원순 사건'에서 가장 공감한 시사인의 기사를 캡처해 둔다. 이런 용기 있는 한 걸음들이 조금씩 세상을 바꾸어가리라 믿는다.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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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차
                        도종환

오늘도 막차처럼 돌아온다
희미한 불빛으로 발등을 밝히며 돌아온다
내 안에도 기울어진 등받이에 몸 기댄 채
지친 속도에 몸 맡긴 이와
달아올랐던 얼굴 차창에 식히며
가만히 호흡을 가다듬는 이 하나
내 안에도 눈꺼풀은 한없이 허물어지는데
가끔씩 눈 들어 어두운 창밖을 응시하는
승객 몇이 함께 실려 돌아온다
오늘도 많이 덜컹거렸다
급제동을 걸어 충돌을 피한 골목도 있었고
아슬아슬하게 넘어온 시간도 있었다
그 하루치의 아슬아슬함 위로
초가을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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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가 이제 이틀도 남지 않았다.

   어제 오후에 알라딘에서 보낸 메일이다.

당신은 알라딘을 통해,

한 해 동안 이만큼의 책을 만났습니다.

작년보다는 72권 덜,

재작년보다는 7권 덜,

구매하셨습니다.

2019년

107권

2020년

35권

   내가 작성한 댓글

   와, 이렇게 알라딘과 거리를 두고 산 일 년이었군요. 쌓여있는 책 더미를 해결하고자 한 일 년이었습니다. 당연히 사기보다는 읽기를 많이 했지요. 35권을 사다니.... 돈이 없어서 서점을 돌던 20대 이후 처음일 듯싶네요. 그래도 아직 많은 책들은 쌓여있고, 리뷰를 쓰려고 쌓아둔 책들 사이에서 잠이 깨고는 합니다. 알라딘은 서운했을지라도 스스로에게는 알뜰했던 2020년이 되겠네요. 고맙습니다. 이렇게 제 일 년을 돌아봅니다. 산 책은 그러하니 읽은 책들의 목록을 정리해볼 작정입니다.

 

   그래서 올해의 마무리로 2020년의 독서 결산이라는 걸 해보기로 한다.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허블]

거짓말 1, 2; 노희경 [북로그컴퍼니]

벌새; 김보라 [아르테]

괜찮은 사람; 강화길 [문학동네]

다른 사람; 강화길 [한겨레출판]

쇼코의 미소; 최은영 [문학동네]

이만큼 가까이; 정세랑 [문학동네]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문학동네]

2020 제11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강화길 외 [문학동네]

디디의 우산; 황정은 [창비]

연년세세; 황정은 [창비]

작별; 한강 외 [은행나무]

진이, 지니; 정유정 [은행나무]

당신 옆을 스쳐 간 그 소녀의 이름은; 최진영 [한겨레출판]

네 이웃의 식탁; 구병모 [민음사]

오직 한 사람의 차지; 김금희 [문학동네]

경애의 마음; 김금희 [창비]

세 여자; 조선희 [한겨레출판]

기사단장 죽이기 1, 2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동네]

L의 운동화; 김숨 [민음사]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 10권; 김훈 외 [창비]

소설 보다 가을 2019; 강화길 외 [문학과지성사]

느림의 중요성을 깨달은 달팽이; 루이스 세풀베다 [열린책들]

 

 

   에세이

소설가의 일; 김연수 [문학동네]

여행의 이유; 김영하 [문학동네]

매우 초록; 노석미 [난다]

혼자가 혼자에게; 이병률 [달]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김하나, 황선우 [위즈덤하우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백세희 [흔]

런던을 속삭여줄게; 정혜윤 [푸른숲]

인생의 일요일들; 정혜윤 [로고플러스]

아무튼 메모; 정혜윤[위고]

작은 여행 다녀오겠습니다; 최재원 [휴머니스트]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현대문학]

가기 전에 쓰는 글들; 허수경 [난다]

오늘의 착각; 허수경 [난다]

참 괜찮은 눈이 온다; 한지혜 [교유서가]

아무튼 스웨터; 김현[제철소]

구본형의 마지막 편지; 구본형[휴머니스트]

익숙한 것과의 결별; 구본형[을유문화사]

일간 이슬아 수필집; 이슬아[헤엄]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이슬아[문학동네]

나는 지구에 돈 벌러 오지 않았다; 이영광[이불]

퇴사는 여행; 정혜윤[북노마드]

사라짐, 맺힘; 김현 [문학과지성사]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김소연 [문학과지성사]

그 좋았던 시간에; 김소연 [달]

 

   인문, 사회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에코리브로]

랩걸; 호프 자런 [알마]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정희진 [교양인]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정희진 [교양인]

혼자서 본 영화; 정희진 [교양인]

신영복 평전; 최영묵, 김창남 [돌베개]

지금 여기의 페미니즘; 정희진 외 [교유서가]

바보야 돈이 문제가 아니라니까; 고미숙 [북드라망]

가만한 당신; 최윤필 [마음산책]

함께 가만한 당신; 최윤필 [마음산책]

김지은입니다; 김지은 [봄알람]

역사의 쓸모; 최태성 [다산초당]

유럽 도시 기행 1; 유시민 [생각의길]

 

   시집

꽃의 고요; 황동규 [문지 시선]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허수경 [문지 시선]

시인의 모자; 임영조 [창비 시선]

극에 달하다; 김소연 [문지 시선]

뿔을 저시며; 이상국 [창비 시선]

입술을 열면; 김현 [창비 시선]

도선장 불빛 아래 서 있다; 강형철 [창비 시선]

붉은빛은 여전합니까; 손택수 [창비 시선]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안희연 [창비 시선]

삶이라는 직업; 박정대 [[문지 시선]

그녀에서 영원까지; 박정대 [문학동네]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는 헤어지는 중입니다; 김민정 [문지 시선]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김민정 [문학동네]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 정끝별 [문학동네]

당신은 첫눈입니까; 이규리 [문학동네]

 

 

 

  지금 읽고 있는 루이스 세풀베다의 마지막 소설 [역사의 끝까지 (열린 책들)]이다. 아마 오늘이면 마칠 테니까.

  쓰다 말고 비공개로 넣어 둔 리뷰들이 몇 편 있는데 틈나는 대로 정리해서 올릴 작정이다. 그 정리가 끝나야 책들도 정리가 될 것 같다. 적어도 내가 가진 책은 대충 어디 꽂혀있는지 기억하고 있다 생각해왔다. 그래서 엉망진창인 채로 쌓아두었다가 정리한다. 읽었는데 뭔가 써보고 싶은 책, 산 게 후회되는 책, 나쁘지는 않았지만 적어둘 게 없는 책, 무조건 소장각, 너무 애정 하는 작가라 무조건 샀지만 나중으로 미뤄둔 책, 긴가민가 하는 마음으로 쌓아두고 있다가 읽으면서 감탄하는 책등으로 쌓여있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책장에 꽂힌다. 책장은 종류, 출판사, 작가로 나뉘어 나름 질서 정연하게 정리해둔다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해 갑자기,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찾아 읽고 싶은 부분이 있는데 책을 찾을 수 없었다. (이유 없는 갑자기는 아니고 선생의 평론을 읽다가, 였을 것이다. 그런 식의 연관성으로 책을 계속 찾아보고 다시 읽는 편이다. 갖고 있는 지식도 딸리고 기억도 딸리니 물량이 많을 수밖에) 오래된, 햇볕에 바래고 낡은 책을 누구를 주었을 리도, 더더군다나 버릴 리도 없는 그 책을 찾느라 책꽂이를 샅샅이 뒤졌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다시 구입하나 망설이는 중이다. 그 이후로 계속 생각한다. 책을 좀 정리해야겠다고. 이런 식의 꽂아두기는 욕심에 불과하다고.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고 속이 쫌 쓰리기도 하겠지만 2021년에는 반으로 줄이리라 결심했다. 1순위는 다시 손 가는 적이 거의 없는 많은 소설들이나 여행서를 포함한 에세이집들이 목표다. 대신에 그 책들이 주었던 몰입이나 위로들은 메모로 남겨놓으려 한다. 생각대로 될지는 장담할 수는 없어도, 책을 살 때의 기대감이나 그 책이 내게 준 여러 감정들을 되살려서 몇 자 적어두는 게 그 책에 대한 예의일 것 같다.

   올해의 독서 목록을 보니 누구라도 알아볼 뻔한 독서 경향을 가지고 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라고나 할까. 이런 결산을 통해 그동안 감感으로 알고 있던 것을 데이터로 알게 되는구나, 싶다. 단순하지만 명쾌한 결론, 이게 바로 나구나. 한계구나. 끄덕끄덕~

 

 

   내년에도 허영으로 쌓아둔 책, 파먹기는 계속된다.

   그리고 혹독한 허영의 다이어트에 따른 부작용으로 블로그에 글 올리기 남발도. (염불보다 젯밥인 콩 모으기의 재미를 알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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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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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초엽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허블2019)]

   일 년 전, 2019년의 겨울은 평온했다.

   그렇게 적는다. 적는 순간, 일 년의 일들이 오래된 앨범의 빛바랜 사진들처럼 아련하게 지나간다.

   며칠 예정된 가게의 휴업이 갑작스럽게 폐업으로 결정되자 졸지에 실직자가 되었다. 건물을 새로 증축해서 open한다지만 그 시기가 언제일지, 얼마나 걸릴지는 오리무중이었다.

   가게를 접은 지 이년 사이에 다시 구직을 하려니 마음이 쓰라렸다. 별로 춥지 않은 겨울 날씨였음에도 시린 바람에 어깨를 웅크리고 다녔다. 뭘 해도 마음은 뒤숭숭하고 자존감은 떨어졌다. 자꾸만 안으로 안으로 파고드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습관적으로 날마다 몇 시간씩 산길을 헤매고 다녔고, 많은 책들이 배달되어왔다.

그중에 한 권, 이 책도 포함되어 있었다. 주문을 한 것도 나고, 읽은 것도 나인데 왜 선택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한국소설은 매번 선택하는 분야이지만 작가도 낯설고 더더군다나 과학도가 쓴 sf 물의 소설을.(함께 불려온 작가 군을 보면 전혀 예상 못 할 이유도 없다. 한동안 소홀했던 소설 읽기를 실업의 시간 동안 해보자는 의욕으로 젊은 작가들의 책을 일주일 단위로 뭉텅뭉텅 들이던 시절이었다. 읽어치운 책들도 뭉텅뭉텅 책상 위에 쌓여있다)

   그 시간이 일 년이 된 것이다.

   나아지겠지, 나아질 거야, 주문만 걸고 지나온 일 년이다.

   많은 삶들이 피폐해지고 많은 일상들이 박탈당했지만 그동안 쉽게 누린 그저 그런 하루하루의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했던 것인지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있을 때 고마움을 모르고 내 노력으로 얻은 것인 줄 알았던 당연한 것들의 부재 앞에서 지난겨울의 막막함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가볍게 느껴진다. 특별한 2020년을 보내고 나니 지난겨울은 얼마나 평온하고 여유가 넘쳤던 가 싶다. 그렇게 단 한 발자국 앞도 알지 못하는 미래, 상상하지 못한 미래의 다양한 사람들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속에 있었다. 책을 다시 소환해본다. 우리들의 시절도 그렇게 소환된다면 좋을 텐데, 이 또한 지나가리라 믿어본다.

   순례자들은 누구를 사랑했을까. 그들은 남미에, 서부 미국에, 인도에, 모두 흩어져서 살겠지. 그들은 아주 다채로운 모습으로 여러 방식의 삶을 살겠지. 하지만 그들이 어떤 모습이건 순례자들은 그들에게서 단 하나의, 사랑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를 찾아냈겠지.

   그리고 그들이 맞서는 세계를 보겠지. 우리의 원죄. 우리를 너무 사랑했던 릴리가 만든 또 다른 세계. 가장 아름다운 마을과 가장 비참한 시초지의 간극. 그 세계를 바꾸지 않는다면 누군가와 함께 완전한 행복을 찾을 수도 없으리라는 사실을 순례자들은 알게 되겠지.

  지구에 남는 이유는 단 한 사람으로 충분했을 거야.

   편지를 쓰는 지금도 나는 계속 생각해. 우리 이전의 순례자들은 지구를 조금이라도 바꾸어놓았을까? 그곳은 올리브가 갔던 수백 년 전만큼이나 여전히 비탄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을까? 분명 세계 곳곳에는 순례자들의 흔적이 남아 있을 텐데, 그들은, 릴리와 올리브의 후손들은 세계를 바꾸기 위해 무엇을 했을까······.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직접 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어. 궁금해서 더 기다릴 수가 없었지. [p53]

   일곱 편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은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로 시작된다.(순례자 하면 산티아고 순례길이 떠오르고 파울로코엘리의 순례자 이미지가 중첩된다)

   릴리와 올리브의 후손인 데이지는 자신이 속한 마을에서는 자각하지 못하고 살 수 있었던 유전적 장애를 지구에 와서 사람들의 차별적 시선으로 알아차리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길의 마무리는 저렇다. "그때 나는 알았어.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 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 거야."

   우리는 말한다. 장애와 다름은 죄가 아니라고, 그러기에 차별은 부당하다고. 과연 그런가, 내 안에 내게 묻는다. 연민에 기대는 동정심은 아닌가. 장애인 누구거나, 장애우 누구가 아닌 사람 친구 데이지가 행복한 세상은 내가 행복하기도 한 세상이다. 똑. 같. 다.

   '스펙트럼'

   

  내가 아는 그 스펙트럼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네이버 국어사전을 검색했더니 [1, 가시광선, 자외선, 적외선 따위가 분광기로 분해되었을 때의 성분. 파장에 따라 굴절률이 다르므로 분산을 일으키는데, 이것들은 파장의 순서로 배열된다. 스펙트럼 띠의 상태에 따라 연속ㆍ휘선(輝線) ㆍ 대상(帶狀) 스펙트럼으로, 또는 방출ㆍ흡수 스펙트럼으로 분류한다. 여러 가지 원자나 분자에서 나오는 빛이나 엑스선... 2, 조성(組成)이 복잡한 현상이나 물질을 단순 성분으로 분해하고, 성질을 특징짓는 양의 크고 작은 순으로 배열한 성분. 음향 스펙트럼, 자기 스펙트럼, 질량 스펙트럼, 에너지 스펙트럼 따위가 있다. 3, 한 함수를 합(合) 또는 적분의 형으로 분해한 것. 또는 선형 연산자의 고유치.]라 뜬다.

   벌써, 어질어질하다.

   마지막 탈출 때 할머니가 협곡에서 가지고 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한 뭉치의 종이뿐이었다. 할머니의 말대로 종이 위의 색채들은 마치 누군가 수백 종의 물감을 흩뿌려놓은 것처럼 다채로웠다.

  “이건 루이가 나를 기록하고 관찰한 일기였어. 일종의 연구노트라고나 할까. 내가 그들을 관찰하고 탐색한 것처럼 루이에게도 나는 연구 대상이었던 셈이지. 어쩌면 그들은 내가 아주 먼 곳에서 온, 도구가 없어 무력한 학자임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몰라.”

  할머니는 나에게 루이가 쓴 기록의 내용을 읽어주셨다. 지구에 돌아온 이후로 할머니는 여생을 색채 언어의 해석에만 몰두했다. 내용의 대부분은 그렇게까지 시간을 들여가며 알아낼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평범한 관찰 기록이었다. 그러나 그중 잊히지 않는 한 문장만큼은 지금도 떠오른다.

  “이렇게 쓰여 있구나.”

  할머니는 그 부분을 읽을 때면 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p95~96]

 

 

   놀랍게도 '스펙트럼'은 색채 언어였다. 60년 가까이 입으로 쓰는 우리말도 몇 가지에 불과한 내 언어영역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노래를 못하면 음치, 박자를 못 맞추면 박치, 길을 못 찾으면 길치, 방향을 못 찾으면 방향치, 색채 감각이 없으면 색치인가.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을 못하는 똥손에다 저 모든 것들의 치의 합인 몸치癡인 나는.

    '공생 가설'

   

  수만 년 전부터 인류와 공생해온 어떤 이질적인 존재들이 있다고 말이다.

  미토콘드리아가 세포 내로 들어와 핵과 별도로 DNA를 가진 채로 수십억 년의 공생을 시작한 것처럼, 별개로 출발한 두 종이 서로의 이득을 위해 공생하는 일은 흔하다. 인간은 수많은 체내 미생물과도 공생한다. 사람들은 외부에서 유래한 그들을 이질적 타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인간의 일부이다.

   하지만 만약 공생의 대상이 지구상의 생물이 아니라면 어떻까? 지구에서도 유래하지 않은 것, 수만 년 전,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전에 지구 밖의 어느 행성에서 온 것이라면, 그것이 우리의 뇌에 자리 잡았고, 우리의 유년기를 지배했고, 우리를 윤리적 주체로 가르쳐왔다면, 인간을 비 인간 동물과 구분하는 명백한 특질들이 사실은 인간 밖에서 온 것들이라면.

   “우리가 인간성이라고 믿어왔던 것이 실은 외계성이었군요.”

   수빈의 가설을 들은 연구팀장이 말했다.[p128~129]

   사람들은 왜 그렇게 류드밀라의 세계에 열광하고 환호했을까. 왜 사람들은 루드밀라의 세계를 보며 눈물을 흘렸을까. 왜 사람들은 그녀의 그림에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세계에 대한 향수를, 오래된 그리움을 느꼈을까. 인류 역사상 수많은 가상 세계가 창조되었지만 왜 오직 류드밀라의 행성만이 독보적이고 강렬한 흔적을 세계 곳곳에 남겼을까.

   “우리에게 그들이 머물렀기 때문이겠죠.”

   한나가 말했다.

   수빈은 그것이 그들의 존재에 대한 결정적 증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뇌에 자리 잡은 그들의 흔적, 막연한고 추상적이지만 끝내 지워버릴 수 없는 기억, 우리를 가르치고 돌보았던 존재들에 관한 희미한 그리움.

류드밀라의 행성을 보며 사람들이 그리워한 것은 행성 그 자체가 아니라 유년기에 우리를 떠난 그들의 존재일지도 모른다.[p140~141]

 

 

   '공생 가설'은 이해할 수 없는 과학적 용어들 덕분에 영화 한 편을 보는 듯 흥미진진했다. 7살 이전의 기억이 사라지는 상상력이 만들어 내는 가설, 첫 기억이 돌 무렵이라고 생각하는 내 기억은 조작된 것인가ㅎ 그럴지도. 나중에 어른들의 얘기로 상상하기를 좋아하던 어린아이가 만들어냈는지도 모른다.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가 창의적이다. 작가는 그런 루드밀라의 세계를 확장해서 단지 '가설'일 뿐인 하나의 상상력을 한 편의 소설로 완성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인류가 고작해야 달이나 화성에 발을 내디디고 태양계 밖으로는 무인 탐사선만 날려 보내던 시기를 지나, 진정한 의미에서 우주 곳곳을 개척하게 된 계기가 바로 워프 항법의 발명이었다.

   우주선은 비록 빛의 속도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이동하는 우주선을 둘러싼 공간을 왜곡하는 워프 버블을 만들어서 빛보다 빠르게 다른 은하로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지구에서 가까운 항성계의 자원이 많거나 지구와 비슷한 환경의 행성들부터 개척이 시작되었다.

   “딥프리징은 인류의 우주 개척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기술이었어. 아무리 공간 왜곡을 통해서 성간 거리를 줄이더라도 우주선이 지구에서 출발해 다른 항성계에 도달하는 데는 여전히 오랜 시간이 걸렸으니까. 가까운 항성계는 수 광년에 불과하다지만 그런 곳엔 인류에게 유용한 행성이 얼마 없었고, 먼 곳은 수백 광년부터 수만 광년이나 떨어져 있었으니 워프 항법을 이용해도 몇 년이 넘게 걸렸지. 굳이 그 시간을 다 버티자면 못할 것도 없었겠지만, 창밖 풍경이라곤 삭막한 검은 우주뿐이고 즐길 거리 하나도 없는 우주선에서 멀쩡하게 정신을 유지할 수 있던 사람들이 얼마나 되었겠나? 그래서 아주 진보한 인체 동결 수면 기술이 요구되었던 거라네. 잠든 채로 우주의 곳곳에 많은 사람을 보낼 수 있도록.[p156~157]

   “이제 상황 판단이 안 되는 거라네. 내가 여전히 동결 중인지. 사실 이 모든 것이 몹시 추운 곳에서 꾸는 꿈은 아닌지. 내가 사랑했던 이들이 정말로 나를 영원히 떠난 게 맞는지. 그들이 떠난 이후로 100년이 넘게 흘렀다면 어째서 나는 아직도 동결과 각성을 반복할 수 있는지. 왜 매번 죽지 않고 다시 깨어나는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고, 얼마나 많이 세상이 변했는지. 그렇다면 내가 그들을 다시 만나는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닌지. 그럼에도 잠들어 있는 동안에 왜 누구도 나를 찾지 않고, 왜 나는 여전히 떠날 수 없는지······.”

   안나가 빙긋 웃었다.

   “한번 생각해 보게. 완벽해 보이는 딥프리징조차 실제로는 완벽한 게 아니었어. 나조차도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몰랐지. 우리는 심지어, 아직 빛의 속도에는 도달하지 못했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우리가 마치 이 우주를 정복하기라도 한 것마냥 군단 말일세. 우주가 우리에게 허락해 준 공간은 고작해야 웜홀 통로로 갈 수 있는 아주 작은 일부분인데도 말이야. 한순간 웜홀 통로들이 나타나고 워프 항법이 폐기된 것처럼 또다시 웜홀이 사라진다면? 그러면 우리는 더 많은 인류를 우주 저 밖에 남기게 될까?”

   "안나 씨"

   “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어. 적어도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 같은 행성 위에서, 같은 대기를 공유했단 말일세. 하지만 지금은 심지어 같은 우주조차 아니야. 내 사연을 아는 사람들은 내게 수십 년 동안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네. 그래도 당신들은 같은 우주 안에 있는 것이라고. 그 사실을 위안 삼으라고. 하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조차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끄셔도 소용은"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 게 아닌가.”[p180~182]

   안나는 곧 파편이 없는 공간으로 들어섰다. 이제 그녀를 방해하는 것은 없었다. 안나의 셔틀은 점점 속도를 높이며 지구로부터 멀어져 갔다. 남자는 조종실 버튼에서 손을 놓았다. 문득 남자는 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어.’

   먼 곳의 별들은 마치 정지한 것처럼 보였다. 그 사이에서 작고 오래된 셔틀 하나만이 멈춘 공간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그녀는 언젠가 정말로 슬렌포니아에 도착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끝에.

   남자는 노인이 마지막 여정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p187~188]

   표제작이기도 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일 년 전의 문장들이 낯설어져서 이번에 다시 읽었다.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어." 자신이 갈 곳을 정확히 알고 그 길을 가려는 의지는 부럽다. 누구든 그럴 것이다. 우린 늘 불확실한 미래에 가여운 존재로 흔들리고 흔들리지 않은가.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끝에' 도착할지도 모를 목적지를 가진 사람만이 저런 결연함을 갖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 결정에 도달하기까지의 긴 시간의 족적이 남긴 결과인지도.

   이번에 읽으면서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이미 시도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그토록 시각적 이미지가 뚜렷한 작품이었다. '안나'역은 세상의 풍파를 겪어서 점점 아름다워지는 배우 윤여정씨가 맡으면 어떨까 싶은 엉뚱한 상상을 하면서 이미지로 읽었다.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인데 내게 세상은 '빛'보다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그래서인지 자꾸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으로 읽혀서 혼자서 실소를 깨물곤 했다. 그렇게 빨리, 휙~ 지나가서 무얼 만나게 될까.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그 길을 걷는 나를 만나게 될까?

    '감정의 물성'

 

   “널 이해 못 하겠어.”

   보현은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발목이 잡혀 있었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들이 그녀를 억압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런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건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우울체’가 그녀의 슬픔을 어떻게 해결해 주는가?

   “물론 모르겠지, 정하야. 너는 이 속에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내 우울을 쓰다듬고 손 위에 두기를 원해. 그게 찍어 맛볼 수 있고 단단히 만져지는 것이었으면 좋겠어.”

테이블 위의 휴대폰이 울렸다. 보현은 말을 이어갔다.

   “어떤 문제들은 피할 수가 없어, 고체보다는 기체에 가깝지. 무정형의 공기 속에서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가 짓눌려. 나는 감정에 통제받는 존재일까? 아니면 지배하는 존재일까? 나는 허공중에 존재하는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해. 그래. 네 말대로 이것들은 그냥 플라시보이거나, 집단 환각일 거야. 나도 알아.”

   보현은 우울체를 손으로 한 번 쥐었다가 탁자에 놓았다. 우울체는 단단하고 푸르며 묘한 향기가 나는, 부드러운 질감을 가진, 동그랗고 작은 물체였다.

   “하지만 고통의 입자들은 산산이 흩어져 내 폐 속으로 들어오겠지. 이 환각이 끝나면.”

   우울체 하나가 탁자 위를 굴러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게 더 나은 결론일까.”

   나는 시선을 피했고 그 순간 보현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어지는 진동 소리가 짧은 비명 같았다. 잠시 뒤 그녀가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달칵 닫혔다. 휴대폰의 진동이 멈췄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이제 허공을 가득 채운 침묵이 느껴졌다.

   보현을 무슨 말로 위로해야 했을까? 나는 순간 보현을 위로할 수 있는 어떤 언어도 나에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언가 중요한 것이 가슴속에서 빠져나가버린 듯 싸늘했고, 나는 그게 생각이나 관념이 아닌 실재하는 감각임을 알았다.

   그제야 어설프게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잠시 머물렀다 사라져버린 향수의 냄새. 무겁게 가라앉는 공기,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흐느끼는 소리. 오래된 벽지의 얼룩. 탁자의 뒤틀린 나뭇결. 현관문의 차가운 질감. 바닥을 구르다 멈춰버린 푸른색의 자갈. 그리고 다시, 정적.

  물성은 어떻게 사람을 사로잡는가.

  나는 닫힌 문을 가만히 바라보다 시선을 떨구었다.(p.216~218)

    '관내분실'

 

   엄마는 지민을 출산한 이후에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많은 산모들이 출산 직후에 산후우울증을 경험한다고 한다. 대개는 일시적인 현상이다. 아이가 자라고 손이 덜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때로는 약물 처방과 상담을 통해 해결된다. 그러나 엄마는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아버지는 엄마를 방치했다. 원래부터 예민한 성격이었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엄마의 병은 점차 심각해졌다. 지민과의 관계를 완전히 돌이킬 수 없게 된 건 어느 시점부터였을까. 지민은 엄마의 집착이 싫었고 자신을 소유물처럼 통제하는 것이 지긋지긋했다. 엄마의 병이 원인이었는지 아니면 틀어진 두 사람의 관계가 엄마를 더 약하게 만들었는지, 무엇이 선행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은하와 지민이 어느 날부터 서로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p240]

   스무 살의 엄마, 세계 한가운데에 있었을 엄마, 이야기의 화자이자 주인공이었을 엄마. 인덱스를 가진 엄마. 쏟아지는 조명 속에서 춤을 추고, 선과 선 사이에 존재하는 이름과 목소리와 형상을 가진 엄마.

지민은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는 지민을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도 아이를 가져서 두려웠을까. 그렇지만 사랑하겠다고 결심했을까. 그렇게 지민 엄마라는 이름을 얻은 엄마. 원래의 이름을 잃어버린 엄마. 세계 속에서 분실된 엄마. 그러나 한때는, 누구보다도 선명하고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이 세계에 존재했을 김은하씨. 지민은 본 적 없는 그녀의 과거를 이제야 상상할 수 있었다.

  그녀를 용서하거나 그녀에게 용서를 구할 생각은 없다. 그러기에는 너무 늦었다. 한때 그녀가 누구였건, 지민과 관계 맺었던 엄마는 한 번도 제대로 된 사랑을 준 적이 없는 형편없는 엄마였다. 살아 있는 동안 너무 많은 상처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해야 할 말이 있었다. [p266, 267]

   어떤 사람들은 마인드가 정말로 살아 있는 정신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이건 단지 재현된 프로그램일 뿐이라고 말한다. 어느 쪽이 진실일까? 그건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느 쪽을 믿고 싶은 걸까?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게 진짜로 엄마의 지난 삶을 위로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지민은 한 발짝 다가섰다. 시선을 비스듬히 피하던 은하가 마침내 지민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지민은 알 수 있었다.

   "이제······.”

   단 한마디를 전하고 싶어서 그녀를 만나러 왔다.

   "엄마를 이해해요."

   정적이 흘렀다. 은하의 눈가에 물기가 고였다. 그녀는 손을 내밀어 지민의 손끝을 잡았다. [p271]

   얼마 전에 티브이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보게 되었다. 지금은 떠나고 없는 그룹 '거북이'의 '터틀맨'을 AI로 복원시켜 완전체 그룹 '거북이'의 재현 무대를. 노래를 듣는 동안 다시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었던 어머니와 형님의 눈물 앞에서 덩달아 속수무책으로 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노래를 좋아했고 황망한 그의 죽음이 안타까웠기에 감정이 고양되었는지도 모른다.

   죽은 사람들의 생애 정보를 데이터로 이식한 '마인드'를 수집한 도서관이 있다. (그거 괜찮네.) 마인드와 접속하면 떠난 이의 영혼과 교류할 수 있는데 엄마의 인덱스가 도서관 내에서 분실되어 엄마의 마인드는 만날 수가 없다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단편은 묵직한 감동이었다. 애증이 교차하는 엄마를 향한 화해와 이해는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아무리 첨단화된 우주의 세계에도 진행형의 감동을 전할 것 같다. 노래하는 터틀맨을 다시 만나는 것처럼. 그렇다면 나는 엄마를, 아버지를, 둘째 오빠를 만나고 싶을까? 그들을 만날 수 있을 만큼의 그들의 생애를 기억하고 있는 것인가.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

 

   그날 밤 가윤은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생각했다. 재경 이모는 심해에서, 마침내 자신이 찾아 헤매던 목적지에 도달했을까.

   심해를 유유자적 유영하는 재경 이모를 상상하는 것은 우주에 있는 이모를 상상하는 것보다 차라리 쉬웠다. 심해로 내려간 재경 이모. 그건 너무 아득하고 비현실적이어서 오히려 아무렇게나 그려도 될 것 같은 그림이었다. 이모는 새로 단 아가미로 숨을 쉬고 있을 것이다.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을 따라 헤엄치겠지. 그러면서 지상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한심한 일들을 마음껏 비웃고 있을 것이다. 가윤은 그곳의 깊은 어둠이 우주와도 닮아 있으리라고, 그래서 이모는 망설임 없이 바닷속으로 떠났으리라고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가윤은 아직 한 가지가 궁금했다. 이모는, 우주의 저편을 보지 못한 것을 그래도 조금은 아쉬워할까?(P.313~314)

   캡슐을 조망 모드로 전환하자 격벽이 걷히고 캡슐 끝 구역의 조망대가 드러났다. 검은 육각 프레임 너머로 새로운 우주가 보였다. 터널 너머의 우주였다. 가윤은 휘청거리며 벽면의 손잡이를 잡았다. 벽을 밀며 조망대로 다가갔다.

   별들과 뿌옇게 흩어진 성운이 보였다. 더 많은 별이 보인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수도 없이 보았던 저쪽 우주와 별다를 바도 없었다.

   재경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래, 굳이 거기까지 가서 볼 필요는 없다니까. 재경의 말이 맞았다. 솔직히 목숨을 걸고 올 만큼 대단한 광경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윤은 이 우주에 와야만 했다. 이 우주를 보고 싶었다. 가윤은 조망대에 서서 시간이 허락하는 한까지 천천히 우주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언젠가 자신의 우주 영웅을 다시 만난다면, 그에게 우주 저편의 풍경이 꽤 멋졌다고 말해줄 것이다.(P.318~319)

   내게 영웅은 누구일까? 영웅은 없었지만 다양한 분야의 롤모델은 있다. 경험상 롤모델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전환점이나 고비가 왔을 때 그를 보며 방향을 찾을 수 있고. 다시 걸을 힘을 얻기도 하니까. 그러나 그들도 사람이기에 어느 순간, 실망하기도 한다. 롤모델의 잘못은 아니다. 상대방은 자신이 롤모델로 선택되기를 원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냥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 목표를 정할 때 닮고 싶은 특정인을 지정하는 것이다. 우주인이라는 설정이 다르긴 하지만 닮고 싶었던 '덕후'에 관한 이야기다. 결국 사람이었다.

   

  여기 실린 일곱 편 전체가 SF 소설이지만, 주인공들은 낯설지 않다. 그들은 우리가 영화에서 보던 주인공들처럼 힘이 세거나, 특출나거나 비범하지도 않다. 장애를 가진 소녀였고, 외로운 할머니였고, 과학자였고, 비혼모다. 그들은 바로 우리였다. 이렇게 길게 끄적거리고, 옮기고, 공을 들이는 이유도 그 안에 내가 있고, 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 작가를 롤 모델로 삼을 많은 우리들 때문이다.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 어떤 상상력의 결정체를 만나게 될지 기대된다. '감정의 물성'도 놀라운데 그보다 확장 시킨 상상력이라니.

   아, 무엇보다 빛보다 빠르게 이 바이러스의 시절이 지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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