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방식
잉게보르크 바하만 / 청하 / 198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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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죽음의 방식’

 

   프란짜의 죽음과 화니 골드만을 위한 진혼제, 두 편으로 이뤄진 바하만의 작품집이다.

  프란짜의 죽음은 작가의 죽음으로 미완성 장편으로 남게 되었다.

  두 편 모두 제목에서 보듯 ..죽음, ..진혼제로 이어지는 죽음의 방식들을 여성이기 때문에 타의에 의해 얻게 되는 죽음을 다루었다.

  프란짜의 죽음은 읽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반복과 숙고, 인내심을 요구하는 책읽기였다.

  상징적이고 암시적인 작법이어서 조금만 건성으로 읽으면 전체적인 맥락을 놓치고 다시 되돌아가야 했다.

  많은 복선이 깔려서 독자적인 판단으로 이해해야 했다.

  독특한 죽음의 방식은 작가에게도 해당했던 것일까.

  ‘소금과 빵’에서는 완벽한 시인의 모습을 보여준 작가가 이 책에서는 여성성이 여성임으로 인한 죽음의 실례를 보여 주고 있다.

  광속의 세상에서 그저 흘러 지나가는 무수한 죽음들의 내면을 작가적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기한에 쫓긴 빌려다 본 책이라 여운이 강렬하다.

  구입할 도서목록에 추가한다.

  인내심을 요하는 어려운 책읽기의 버거움은 재미있는 책에 자꾸만 길들여지는 뇌에 경종을 울린다.

  한계를 본다.

  오스트리아에서 출생하고 독일 문화권에서 생활하고 공부한 작가가 이집트 문명에 대해 그렇게 해박하다니...

  작가의 끝없는 탐구, 열정이 느껴진다.

  그저 얻어지는 것이라면 가치도 덜해지겠지.

  내 한심함을 마구 확인한 책이다.

  다음엔 30세를 읽어야겠다.

  30세가 되는 그 때, 덜 후회하는 삶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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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증보판 창비시선 20
신동엽 지음 / 창비 / 198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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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 사이엔 강물이 있다.
  늘 사람들 속에서 그 강물 소리를 듣는다.

  어떤 이와 있을 땐 그 강물은 달빛 젖어 흐르고, 어느 땐 흙탕물이 되어 흐르고, 누군가와는 가뭄에 말라가는 얕은 물소리를, 때로는 햇빛 잘게 부서지며 아름답게 흐르는 강물을, 어떤 이와는 살얼음 서걱이는 그 강을 건너는 발소리를 듣게 되기도 한다.
  사람들 마다에 서로 다른 물소리는 늘 사람들 속에 있게하는 이유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강물은 늘 아름다운 광경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물을 떠나 살수 없는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 속을 떠나 살수는 없을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흘러 만나도 한결같이 조잘조잘 흐르는 내 유년의 강, 그리운 드들강 물소리를 떠올리게 하는 몇 안되는 친구가 있다. 그중 두 친구를 만나서 가자고 한 곳은 봄이 오는 호수, 대청호 였다.
  해 마다 이맘때면 나를 부르는 바람이 있다. 이른 봄,이른 시간의 충주호 유람선의 뱃머리에 서있어 본적이 있었다. 그때 얼어붙게 만들던 추위에도 불구하고, 강렬하게 나를 사로잡던 산들과강물, 가슴에 스며드는 몽실한 물안개며, 폐부를 채워주던 달콤하고 맵짜하던 봄바람은 몸속에 숨어있다가 이맘때면 어김없이 내 안에 흐르는 강물을 흔들어데는데, 멀지않은 곳에 대청호가 있으니 무얼 주저하랴!
 비는 끈질기게 봄을 불러 대지를 적시며 그 속에 숨쉴 생명을 노크하고, 하늘 향해 두팔 벌린 나무는 그 비를 마셔 혈관을 통해 새잎을 불러오는 삼월인데...

  어른이 되어 만났다면 같은 길에서 한번도 부딪치지 못했을 각기 서로 너무 다른 셋이서 나누는 이런저런 얘기로 차안에서는 수십장의 접시가 깨져 나간다. 그 깨진 날카로운 사금파리 조각으로 누구나 베일것 같던 우리도 그 사금파리 무디게 갈아 꽃밥이며 꽃반찬을 차려낼 줄 아는 소꼽놀이때의 어른들이 되었다. 아직 어딘가에는 가끔은 햇빛에 쨍하게 빛날 사금파리 모서리를 숨기고 사는지도 모르지만 세월은 날카로움도 무디게 해준다는 얘기를 나누며 봄비에 젖어드는 풍경속으로 들어간다.

  차안에 남아 있겠다는 둘을 놔두고 가는비를 그냥 맞으며 수많은 계단을 오르려는 나를 불러대는 저 물소리를 쫓아 올라간다. 물소리보다 먼저 틀어놓은 테잎에서 유행가가 나를 반기지만 모른체 하고 가쁜 숨을 뱉으며 계단을 단숨에 오르지만 비릿한 물내음뿐, 물은 아직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공원화된 대청호 주변은 실제 물을 보기 위해선 한참 걸어가야 했다. 빠르게 나를 부르는 그 소리는 공원을 가로질러 뛰듯이 걷게 만들어, 한 우산아래 어깨 맞댄 연인의 모습도,가위 솜씨 자랑한 나무도, 눈에 들어 오지 않게 한다.
  드디어 대청호.
  산은 물을 감싸고 물은 산을 에돌아 그렇게 수런 거리는 하늘에 구름은 몽실몽실 떠돌고 있었다. 물 밖을 감싸안은 것도 산이고, 물 안을 채우고 있는것도 산 이었다. 산은 물을 떠나지 못하고 서로 그렇게 애타하며 가까이서 멀리서 서로에 속해 있었다.

꽃가룬들 아니 날러오랴
철은 이르지만
철은 이르지만

아름다운 하늘은 넘쳐 흐르는 햇빛
향긔론 바람은 머리칼에 속살대다

풍장이라도 들려올듯
풍경화처럼 조용한 대낮
유화빛 강물은 미끄러히 구비돌고

묵은 계절을 추억과 함께 작별하면
빛나는 가슴,가슴은 수줍음처럼 반가워...

홀로 놓인 돌방석
우리 함께 강 언덕에 올라와
그리움 처럼 노래 부르노라
그리움 처럼 노래 부르노라
머언 나라

강물을 건너 뚝길을 지나
까마아득한 산맥을 넘어
그곳이 어데라도 좋다
가다가서 쓰러져도 좋은 길

---신동엽의 '빛나는 강 언덕에서'전문---

  조용필의 단발머리가 물이며 산을 흔들어 대는 비 내리는 대청호를 바라보면서 내가 간절하게 떠올린것은 신동엽의 금강이었다. 뜬봉샘에서 발원하여 흘러 여기 잠겨있는 실제의 금강이 아니라, 산을 적시고 삶을 관통하여 생의 구비를, 민중의 숨결을 어루 만지며 흘러온, 아리게 아프고도 질긴 그리움, 금강이였던가 보다.
  하지만 하지만, 
   대청호는 그 안에 살던 마을만 사라지게 한 것이 아니라 정서도 그리움도 간절함도 사라지게 만들어 버린 모양이다.그저 대전과 청주 사람들의 목을 적시고 몸을 적시지만 정신은 적시지 못하게 꼭꼭 숨어서 사람들을 차단하고 그저 산속에 고요히 멈춰 있었다. 조용필이 뭐라든 말든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어찌 눈에 보이는 것만이 다 일 것인가!
  멈춰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속에 무수한 생명을 키우고 있을거라고, 저 먼 바다를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을거라고, 아픈 위로를 스스로 던지며 바라보는 대청호에 비는 가늘게 스며든다. 눈치 채지 못하는새 그 비는 물의 수위를 높여가리라. 정신은 그런 것임을.
  산은 결코 물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우리들이 떠나 온 고향을 생각하며 선생의 시, [고향]을 읽는다.

 

  하늘에

  흰구름을 보고서

  이 세상에 나온 것들의

  고향을 생각했다.

 

  즐겁고저

  입술을 나누며

  아름다웁고저

  화장칠해 보이고,

 

  우리,

  돌아가야 할 고향은

  딴 데 있었기 때문 .......

 

  그렇지 않고서

  이 세상이 이렇게

  수선스럴

  까닭이 없다.

                                시선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창비1992)] 중에서


                                                           2003. 3. 12.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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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 왔다 - 2000년 제31회 동인문학상 수상작품집
이문구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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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가 떠났다.
 떠나 버렸다.
 누구나 한번은 가서 돌아올 수 없는 먼길을.

 아무리 자주 접해도 익숙해 지지 않는 것 중 하나가 죽음일 것이다.
 나이에(?)비해 죽음을 많이 경험한 축에 속하지만 언제나 주변의 누군가가 갑자기 부재하는 상황은 생경하고 공포스럽고 피하고 싶은 느낌을 준다.
 일면식도 없고 전혀 교류하지 않았지만 이미 그의 삶에 깊숙히 빠져 있었는데 그가 갑자기 떠났다.
 너무 놀랍고 황망하다.
 많이 존경하고 좋아 했는데...

 죽음이 하도 흔한 세상이라 그는 한 줄의 짤막한 기사로 남고 말았지만 유용주 시인의 말처럼 '장산리 왕소나무'로 내 가슴에 있던 그.
 이문구님이 떠나고 말았다.
 25일밤 향년 62세로.
 우직한 소나무로"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그렇게 오래 서있거나 걸어서 단숨에 쓰러지고 만 것일까?
 62세라는 나이가 마음을 더욱 처연하게 한다.
 내 엄마가 돌아가신 그 나이여서.

 그의 소설을 처음 읽었을때, 그 투박하면서도 속시원하게하는 여운이 남는 감칠맛에 반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자신의 경험과 아픔이 녹아있지 않는 글은 죽은 글이라는 판단이 강할때 였는데 그의 글은 단번에 매료시켰다. 충청도 사투리가 주는 그 능청스러움속에 숨어있는 날카로운 비판이 얼음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 책이 아마 '우리동네'연작 이었을 것이다. 햇빛받은 얼음은 화려한 빛이 나지만 섬뜩한 차거움을 동시에 갖고 있다. 유순한 말투속에 숨어있는 차거운 기지를 내포한 글쓰기를 본 것이다. 그러면서도 재미를 반감시키지 않는 마력이 그속에 있었다.
 그후로 '관촌수필' '유자소전' '매월당 김시습' '내 몸은 너무...'까지 구할 수 있으면 구하는데로 다 읽었다. 많이 팔리는 책이 아니어서 조금 오래된 것은 구하기 힘들었던 기억도 난다.

 연좌제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청춘기에도, 막노동판을 전전하면서도, 목구멍을 조르는 궁핍함 속에서도, 농사를 짓고 살면서도 한 번도 글을 놓지 않았고 그랬기에 삶이 녹아있는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그의 고단함을 글속에서 읽으며 고단한 내 일상을 위로받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곤 했다.

 책을 읽는건 행복하다.
 특히 그 상황 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같이 느끼고 같이 행동하는듯한 그런 종류의 책을 읽는건 더 할 수 없이 행복하다.
 그의 책을 읽을땐 행복했다.
 일회적인 것들이 판을치는 세상에서 소나무처럼 문단을 지켜온,
 농촌을 지키면서 내게 행복을 준 그의 퇴장이 못내 가슴 아프다.
 그러나 작가는 책을 남겼고 다시 힘들때마다 그의 책을 읽어야겠다.
 다시 읽어도 처음처럼 새롭게 다가오는 글들이 살아서 내게 오기에 더욱 존경스러워지는 작가 이 문구님의 명복을 빈다.


                                                             2003. 2. 27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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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목례 애지시선 7
김수열 지음 / 애지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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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삿개에서 

                       김수열

 

그립다,는 말도

때로는 사치일 때가 있다

노을구름이 산방산 머리 위에 머물고

가파른 바다

漁火 점점이 피어나고

바람 머금은 소나무

긴 한숨 토해내는 순간

바다끝이 하늘이고

하늘끝이 바다가 되는 지삿개에 서면

그립다, 라는 말도

그야말로 사치일 때가 있다

 

가날픈 털뿌리로

검은 주검처럼 숭숭 구멍 뚫린

바윗돌 거머쥐고

휜 허리로 납작 버티고 선

갯쑥부쟁이 한 무더기!

                               시집 <바람의 목례> 중에서

                               김수열시인은 1982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어디에 선들 어떠랴], [신호등 쓰러진 길 위에서],

                                     [바람의 목례], [생각을 훔치다],

                               산문집 [김수열의 책읽기], [섯마파람 부는 날이면]이 있다.

 

 

 

지삿개는 주상절리의 제주 방언입니다.

 

숭숭 구멍 뚫린 검은 현무암 절벽에 피어난 갯쑥부쟁이

한 무더기!에서 치열한 생존을 봅니다.

경배를 올리고 싶은 생...

사는 것은,

견디는 일입니다.

오늘을 사는 그대에게 절 올립니다.

그립다는 말,도 아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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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날에 우는 사람 애지시선 14
조재도 지음 / 애지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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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날에 우는 사람

                                 조재도


슬픔의 안쪽을 걸어온 사람은

좋은 날에도 운다

환갑이나 진갑

아들 딸 장가들고 시집가는 날

동네사람 불러

차일치고 니나노 잔치 상을 벌일 때

뒤꼍 감나무 밑에서

장광 옆에서

씀벅씀벅 젖은 눈 깜작거리며 운다

오줌방울처럼 찔끔찔끔 운다

이 좋은 날 울긴 왜 울어

어여 눈물 닦고 나가 노래 한 마디 혀, 해도

못난 얼굴 싸구려 화장 지우며

운다, 울음도 변변찮은 울음

채송화처럼 납작한 울음

반은 웃고 반은 우는 듯한 울음

한평생 모질음에 부대끼며 살아온

삭히고 또 삭혀도 가슴 응어리로 남은 세월

누님이 그랬고

외숙모가 그랬고

이 땅의 많은 어머니들이 그러했을,

그러면서 오늘

훌쩍거리며

소주에 국밥 한 상 잘 차려내고

즐겁고 기꺼운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시집 [좋은 날에 우는 사람 (애지 2007)] 중에서

                                시인은 1957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청양에서 자랐다.

                                공주사대를 졸업한 후 대천고, 공주농고, 안면중학교에서 근무하였다.

                                 [민중교육]지 사건 (1985), 전교조 결성(1989) 으로 해직되었다가

                                 1994년 복직되어 지금은 온양 신정중학교에서 국어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시집 [백제시편] [그 나라] [사십 세] [교사일기] 등이 있고

                                 산문집 [내 안의 직은 길] 장편소설 [지난 날의 미래] 동화 [넌 혼자가 아니야]

                                 교육에세이 [일등은 오래가지 못한다] [삶· 사회· 인간· 교육]

                                 시 해설집 [선생님과 함께 읽는 윤동주] 등을 펴냈다.

 

 

좋은 날에 우는 사람, 누군가요?

우리들의 어머니인가요?

이모인가요? 외숙모? 고모???

아하~!! 슬픔의 안쪽을 걸어온 바로 그대!!!

그래요. 그대,

울어도 좋으니

날마다 좋은 날이었으면

울음도

변변찮은 채송화처럼 납작한 울음이라도

세월의 응어리

확 풀리는 좋은 날들이......하고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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