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태어나는 곳

 

아사부키 마리코 : 존 케이지가 딱 맞는 말을 했기 때문에 그 말을 빌리겠습니다. 그는 음악을 만들 때 소리라는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고 있고, 작곡할 때는 소리를 채집하러 가는 느낌이 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 말로 바꿔서 설명하면 말은 소리와 달리 처음부터는 존재하지 않잖아요. 이게 소리와 말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인간이 바깥 세계로부터 느끼는 것은 말과는 동떨어진, 무질서한 감정 같은 게 아닐까 해요. 그리고 말이라는 것은 다른 것과 쉽게 동기되지 않고, 끊임없이 엇나갑니다. 간혹 절묘하게 딱 맞는 표현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것은 한순간일 뿐이죠. 지금 여기서 계속 쓰는 것, 이것이 말에 있어 최초의 기점이자 최후의 기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사키 : 무함마드가 목소리를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로 골치 아픈 말을 합니다. “앞으로 너에게 신의 말을 할테니 읽어라라는 말을 한 거죠. 하지만 무함마드는 움미ummi’입니다. 움미라는 말에는 어머니같은글을 못 읽는, 문맹의라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무함마드는 글을 읽지 못하는’ ‘어머니인 거죠. 그래서 지브릴이 읽어라라고 말했던 경전 꾸란의 원본책의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게다가 무함마드는 고아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어요. ‘근원이 되는 고아와 절대적인 어머니 같은 책의 관계 속에서 탄생하는 겁니다.

 

저는 자크 데리다라는 철학자에게 좀 따질 게 있습니다. 그는 언어와 언어 바깥이라는 기존의 도식을 최종적으로 극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거든요. 헤겔을 비판하고 있지만, 언어와 언어 바깥을 설정한 후에 이 두 항이 변증법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사고방식에서 결국엔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언어 바깥이야말로 언어를 언어이게 하고, 언어가 생성되는 곳은 언어 바깥이다. 언어 바깥은 아마도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형태가 아니라 어쩌면 언어의 내부라고 생각해온 쪽에 존재하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액체에 비유해서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어요. “언어란 언어 바깥이라는 물로 얼룩진 몸을 가지고 있다,” 어쨌든 언어와 언어 바깥을 구분하고 이 둘을 분리시키거나 연결짓는 사고 방식은 좋은 결론에 이르지 못합니다.

 

언어와 언어 바깥을 설정한 후에 언어 외부가 언어 내부에 회수되어 갑니다. 언어가 되지 않는 그 무엇이 점점 사라져갑니다. 모든 것이 언어로 이해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는 것으로 변해갑니다. 이것이 변증법의 과정이고 이것이 진행되면 헤겔에 따르면 이 과정 자체가 신의 나라로 향하는 역사 자체가 되는데요 언젠가는 역사가 끝나게 됩니다. 마지막에는 모든 것이 언어로, 의미로 회수되고 절대지라는 것이 우뚝 솟아 종교나 예술은 폐기된다. 모든 것이 이성이 된다. 헤겔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역사가 끝나고, 예술이 끝난다. 종교도 끝난다. 그야말로 종말의 철학자고 예술의 종언을 선언한 철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매일 여러분도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그리스도교 유럽이라는 하나의 운동이 얼마나 특수한 것인지, 그것이 왜 그리고 어떻게 보편화되고 지구화되어갔는지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고자 한다면 지금도 헤겔을 읽는 것이 지름길입니다.


아사부키 씨가 말씀하신 더듬기도 중요합니다. 들뢰즈도 문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문체란 모어 속에서 더듬는 것이다.” 물론 필연성 있는 더듬기여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프루스트의 아름다운 책은 일종의 외국어로 쓰여 있다라는 문구를 인용하고 있죠. 작가는 모어 속에서 더듬고 끝내는 외국어처럼 된 언어를 쓰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아사부키 : 점균이 가장 빛날 때는 빈사상태에 있을 때입니다만 말도 그렇습니다. 말은 항상 최후에 존재합니다. 그리고 말이라는 것은 안녕?”이라는 인사말 하나만 봐도 의미가 난반사하죠. 여러 곳에서 그물망 형태로 접속해 의미가 수없이 증가합니다.

 

말은 결국 부싯돌과 같아서 불이 진짜 말 혹은 이미지 자체라고 생각해요. 혹은 음성 자체라고 해도 되고요. 말로서의 부싯돌이 탁 하고 울릴 때, 그 부싯돌이 내포하고 있던 이미지가 불이 되어 여기에 도래하죠. 소설을 읽을 때도 말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말에 담긴 이미지를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말은 공간도 시간도 갖고 있어 매우 재미있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서 만듭니다. 말을 전하고 싶은 게 아니라 말에 담긴 이미지를 당신이라는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거죠. 눈으로 읽는 순간, 당신만의 것으로 생성되기를 기도하고 있다고나 할까, 말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안도 : 무스비는 낳다라고 씁니다. 모토오리 노리나가가 <고자키> 첫 머리에서 추출한 신들의 근원, 세계의 근원에 위치하는 힘이죠. 하지만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노리나가는 무스비무스는 이끼가 생기는 것처럼 태어나, 거기에서 곰팡이가 피듯 성장하는 이라고 말합니다. ‘근원적인발생 장소에 이끼처럼 생겨나 곰팡이처럼 피어나는 신들, 구마구스의 점균과 오리쿠치의 무스비가 포개지는 장소가 제겐 말이 태어나는 곳입니다.

 

철학은 정말 중요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작품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은 사유가 아니라 입니다. 이념이 아니라 사물입니다. 작품은 사물과 조우해 홀로 맨손으로 사물과 맞서지 않는 한 성립하지 않습니다. 말은 넓은 의미에서 작품 자체를 뜻합니다. 사사키 씨도 자주 말씀하시듯 지식은 저절로 축적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천적으로 사물과 맞서서 사물을 형태로 변용시킬 때 비로소 획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식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누구든 처음에는 쉽게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없습니다.

 

안도 : 블랑쇼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에 직면한다. 죽음에 직면하면서 삶도 죽음도 아닌 장소를 방황할 뿐이다. 블랑쇼는 하이데거의 철학과 카프카의 소설을 대치시켜 <문학 공간>이라는 거대한 책을 완성합니다.

 

아사부키 : ‘점균의 삶을 실감하는 것인간의 질서에 기초한 이념이나 윤리처럼 답답하고 딱딱한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계기가 된다고 할까요? 점균을 보고 있으면 해방을 느낍니다. 이런 자유로움을 말에서도 느낍니다. 즉 말은 정의하는 것이지만, 실은 답답한 것이 아닐 겁니다.

 

사사키 : 하지만 모든 것에 응답하고 은혜를 갚으려면 한 글자도 쓸 수 없게 돼요. 그래서 일단 모두 잊은 채 뛰어들려고 합니다. 찰나마다의, 지금 이 언어의 준동, 동요 혹은 침묵에 집중하려 합니다.

 

몰라도 괜찮아

 

사사키 : 미셸 푸코가 이론을 구성하는 것, 사유하는 것, 어떤 시점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실천이라고 말했죠, 괴테도 같은 말을 했고요. 그건 창조 행위잖아요? 이론과 실천을 분리하다 보니 이론은 점점 야위어가고, 실천도 갈수록 헛도는 상황에 내몰리는 것 같아요.

 

사사키 : 두 번, 세 번, 네 번 읽기 위해 첫 번째 독서가 있다고 할까요? ....뭔가 마음에 걸리는 책을 반복해 읽음으로써 몸에 배게 한다고나 할까.....아마 제게 특정 커뮤니케이션을 신뢰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인지도 모르겠어요. ......이런 식으로 모든 집필 행위는 오랫동안 인생의 지하수처럼 숨어 흐르던 그 무엇이 불현 듯 솟아나는 경험을 동반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이 10여 년간 쌓아온 것을 한 번 읽음으로써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이해가 안 되면 무슨 이유에선지 화를 냅니다. “더 알기 쉽게 말해!”라고, 게다가 소설이나 만화의 경우 어려운 건 재미없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모르는 것은 곧 시시한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거죠. .....모르니까 재미없다는 생각은 독서에 권력욕을 투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은 아~ 하고 입을 벌리고 있으면 초콜릿을 넣어주는 할머니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물론 아주 가끔이지만 할머니의 초콜릿도 맛있어요. 다만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과 마주하며 반복해서 보거나 느끼는 동안 지각이 넓어져 뜻은 모르지만 왠지 모르게 재미있는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베르그송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술가에게는 보인. 사람에겐 원래 보이고’ ‘들리지만 모든 기능을 그런 인식에 돌리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평소에는 그 지각을 닫아놓고 있다. 물론 닫은 채로 있어도 되지만, 예술가의 역할은 인간이 유용성을 이유로 닫아놓은 인식을 열어 지각을 확대하는 데 있다.”

 

철학도 사유의 예술이라 할 수 있고, 이것이 모든 예술의 공통점이라고 생각해요. 이때 중요한 것은 역시 반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복이 있어야 좀 전에 말한 타르콥스키처럼 지각이 단련되어 재미있어지는 것이죠.

 

 

연애의 시작

 

 

‘love’ , ‘amour’란 무엇인가? 많은 논의가 있습니다만 한마디로 잘라 말하면 신이 왜 이 세계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학의 전통에서 신이란 물질 세계를 초월한 순수 정신입니다. 13세기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신은 무얼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신은 자신을 만끽하고 있다고 답하고 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신은 전지전능의 무한 존재기 때문에 굳이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마들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런데 굳이 세계를 만들고 우리 인류를 창조하셨죠. 도대체 왜? ‘사랑이라고밖에 답할 길이 없습니다.

 

그 육욕이 변하기 시작한 게 처음에 연애가 발명되었다고 얘기한 12세기 경입니다. 발명에 크게 관여한 사람들이 11세기경부터 유럽에 나타난 트루바두르라 불리는 음유 시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12세기 들어 기사도 연애 혹은 궁정 연애amour courtois’가 성립합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은 하나의 전환기였습니다. 궁정이 타도되면서 궁정 연애가 종지부를 찍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이로써 자유연애가 시작되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계급 내부 살롱을 무대로 궁정 연애를 모방한 연애 게임을 해갔습니다. 20세기 초 프루스트의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그때의 향기를 살짝 맡을 수 있습니다.

 

연애의 다음 전환기는 제 1차 세계대전입니다. 이때 이혼율이 비약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때 비로소 자유연애에 바탕을 둔 연애결혼이 급증합니다.

 

니체가 이런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환상의 파괴가 즉시 진리의 창조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거기에 나타나는 것은 무지, 진공, 황야다.”

 

연애는 후자에 속하는 것으로 결국은 환상이고, 영원한 연애 따위는 거짓 중의 거짓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지 말라고는 말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그것을 하지 않는다면 삶 자체가 사라지는 종류의 것이니까. 이는 사람은 죽는다. 어차피 죽는다면 빨리 죽어라라는 말이 성립하지 않는 것과 같다.

 

-사카구치 안고 전집 5. <연애론>

 

본디 철학이란 무엇입니까

 

사사키 : 니체는 여름의 더운 오후에 샘물을 남김없이 마시듯 내 책을 읽어달라고 말하고 있어요. 그러려면 우선 목이 말라야 하죠.

 

소설을 쓰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누군가가 되는 모험이다

 

이치카와 : 제게 사사키 씨의 백미는 첫째로 <야전과 영원>,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 잘 나타나 있는 사람을 발정케 하는 문체의 힘입니다.

 

사사키 : ‘행복했을 적에 그랬던 것처럼말인가요? 실은 다카하스 야스나리 씨 등이 번역한 제임스 놀슨의 방대한 <베케트 평전>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전에 있었던 행복옛날의 행복했던 기억이라는 주제는 베케트의 여러 작품 저변에 흐르고 있는 지하수와 같은 모티프잖아요? 그가 젊었을 때 쓴 프루스트론에도 나옵니다. <고도를 기다리며>에도 라틴어로 등장하죠.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는 전편이 다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행복했는데라는 의식은 베케트가 계속 반복하는, 매우 통절한 시간 의식입니다.

 

낭만주의라는 호칭 자체가 장편 소설에서 유래한 겁니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장편 소설이 문학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현상은 낭만주의적인 사태라고 할 수 있어요. 아마 들뢰즈=가타리는 이 문학 체제를 흔들려 했는지 누벨을 중시합니다. 문자 그대로 소설의 길이로 나누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 들은 <천개의 고원> 8장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콩트앞으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까하는 긴박감을 얘기하는 것이고 누벨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기술한 것이다. ‘로망’이란 이 콩트누벨을 절충하면서 현시점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이들은 시간을 기준으로 구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로망[ 대한 이런 설명은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세히 말씀드릴 시간은 없습니다만 오히려 과거를 미래로 만드는, ‘지금 여기를 변화시키고 절박하게 만드는 것이 소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장 끝부분에서 들뢰즈 = 가타리는 피츠제럴드를 논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게 됐다 우리는 자멸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를 망쳤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라는 아름다움 구절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되고 말았는데,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라는 누벨을 둘러싼 물음과 옛날엔 행복했는데라는 베케트의 근저에 흐르는 주제가 서로 공명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치카와 : 예를 들어 작품 마지막 부분에 있는 지금 세상에 너무도 달이 예쁘네요하는 식이 아닌가라는 구절이 그렇죠? 이는 물론 나쓰메 소세키가 “i love you”를 그렇게 번역했다는 얘기가 깔려 있습니다만 .....

 

특히 <행복했을 적에 그랬던 것처럼>은 일과되게 허위와 현실을 왕복하고 있으므로, ‘자기가 갖고 있는 현실의 기억현재의 자신’, ‘픽션으로서의 텍스트이를 쓰고 있는 나’, 이 모두가 각각 신뢰하기 어려우나 항상 거기에 있는 것이라는 스타일을 지니고 있기에 상호 침투하는 것은 구조적인 필연이 아닐까요? 조금 전에 베케트 얘기가 나왔습니다만 그야말로 행복했던 과거가 있기 때문에 지금 괴롭고, 행복했던 과거가 있기 때문에 지금 행복한, 이렇게 서로가 반전하면서도 참조하는 구조를 사사키 씨가 좋아한다는 사실과 이 작품은 잘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사키 아타루에게 소설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행복의 회상을 스스로 금하는 듯한, 그 자체가 모순된 마초적이자 마조히스틱한 행위가 아닐까요?

 

 

사사키 : 소설 내용이 딱 그렇습니다만, 남고 마는 잔혹함도 있고, 남김없이 사라지고 마는 잔혹함도 있고, 옛날엔 행복했다는 잔혹함도 있고, 지금 상실해야 할 행복을 살고 있다는 잔혹함도 있고, 이들 모두가 한낱 꿈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는 잔혹함도 있습니다. 실은 꿈이 아니었다는 잔혹함도......하지만 말입니다, 이 잔혹함 자체가 행복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아르튀르 랭보의 나는 터무니없는 오페라가 되었다. 나는 모든 존재가 행복의 숙명을 짊어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라는 구절과, 뒤이어 행복은 나의 숙명, 나의 회한, 나의 구더기였다라는 구절이 있지 않습니까? 이는 모든 행복의 잔혹함을 경험하면서 존재해야 하는 현실을 읊은 절창입니다. 제가 그런 위대한 문구를 쓸 수 있을 거라고는 꿈도 못꿉니다만 글을 쓸 때 이런 잔혹함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것만큼은 의식하고자 합니다.

 

블랑쇼, 푸코, 베케트, 들뢰즈를 비롯해 다들 말하고 있습니다만.....이는 곧 누가 말했든 상관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만 쓴다는 것은 이름을 잃고, 얼굴을 잃고, 내력을 잃고, 그 누구도 아닌 누군가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키르케고르는 “‘신앙의 기사는 어디에나 있으므로 소시민과 별다를 게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누군가가 되려고 시도하는 것, 그것이 쓴다는 행위입니다.

 

헨리 제임스는 소설가란 그에게 있어 쓸모없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을 말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뷔토르가 이를 인용하고 있죠? 소설에는 그런 힘이 있습니다. 그 누구도 아닌 누군가가 되려 하고, 그 누구도 아닌 누군가가 되는 사람. 나아가 그 누구도 아닌 누군가도, 그 무엇도 아닌 무언가도, 이 모든 것을 결코 쓸모없게 만들지 않는 자, 그런 이를 소설가라고 부를 수 있다면, 저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 누구도 아닌 누군가가 된다. 지각되지 않는 자가 된다. 이는 하나의 모험입니다. 들뢰즈는 이를 도주선이라 불렀죠. 생성변화라고도 불렀습니다.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채 완벽하게 사라져간, 푸코가 말하는 오욕투성이인 사람들되는것이죠. 역설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원래 소설이란 그 누구도 되지 않기 위한 행위입니다. 제가 이를 얼마나 잘 실천할 수 있을지는 저도 모릅니다. 저는 제 선을 그으며 찰나에 불과하더라도 저 자신의 방법으로 적어도 저는 아닌- 아마 저 자신도 모르는 누군가가 되기 위해 시도하고, 또 시도할 뿐입니다.

 

 

변혁을 향해, 이 치열한 무력을

 

그는 <정신현상학>에서 진리는 전체다. 그리고 전체란 자신을 전개함으로써 스스로 완성해가는 실재에 다름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법철학>에서는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에야 날개를 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여기서 인식하는 이성을 상징합니다.

 

헤겔은 이들 여러 사람이 주장을 논하고, 비판하고, 반비판하는 과정 자체가 역사, 역사 전체야말로 진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따라서 헤겔 철학은 근본적인 의미에서 역사 철학이며 종언의 철학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역사가 끝나지 않으면, 더 이상 인간이 진보하지 않는 종언이 도래하지 않으면 역사가 닫혀 원환, ‘전체를 이루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헤겔의 승리는 확실합니다. 틀림없이 진리를 골라냅니다. 왜냐하면 나중에고르기 때문입니다.

 

세슘 137은 반감기가 약 30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플루토늄 239의 반감기는 아시는 것처럼 24천 년입니다. 열화 우라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우라늄 23845억 년이라고 합니다.

 

끝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헤겔이 말하는 전체로서의 진리를 만드는 역사의 종말은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골라야 하는데 그 나중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는 도박입니다. 헤겔 이후의 철학자들이 목숨을 건 도약이나 행운그리고 도박을 강조한 것은 겉멋이나 허세, 말장난이 아닙니다.

 

원전 사고의 방사선 피해는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종류의 핵무기와 원전은 전 세계에서 신속하게, 완전히 폐기돼야 합니다. 인류는 모든 지혜를 모아 이를 향해 진화해야 합니다. 이는 후퇴도 철수도 아닙니다. 이는 변혁이자 새로운 세계의 시작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즉 이쪽에 걸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께서도 이쪽에 거셨으면 합니다.

 

하이데거가 말했죠. 인간은 언제 어디서든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잊은 채 살고 있다. 죽는 것은 항상 다른 사람이다. 이 죽음의 절박하지 않음, 망각 속에서 일상을 일종의 기분으로 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져야 할 책임은 책임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는 말은 책임 회피의 수단일 뿐입니다. .....누군가가 일으킨 일입니다.

 

 

치욕honte은 굴욕humiliation과 다릅니다. 치욕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치욕입니다. 자신에 기인한 그 무엇이 치욕입니다. 굴욕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항상 그 누구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굴욕을 느끼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바꿀 생각이 없습니다. 자기를, 자기 세계를 변혁하고자 하는 동기가 되는 것은 항상 치욕입니다. 굴욕은 그 무엇도 바꾸지 않습니다. 그것이 낳은 것은 약자에 대한 폭력과 차별 뿐입니다.

 

이 치욕의 이름 아래 이 재해는 우리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과 이 재해를 불러온, 거기에 가담한 사람들의 책임을 묻는 것은 모순되지 않습니다. 책임은 추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무능과 무책임을 허용해온 우리를 바꾸는 것이야말로 우리 손으로 책임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 속하는 그들로 하여금 우리의 이름으로, 치욕의 이름으로 책임을 지게 해야 합니다. 도망치게 내버려둬서는 안 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복구가 우선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 누군가를 돕고 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이 복구라는 작업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책임 소재가 갈수록 애매해질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니시타니 오사무씨가 번역한 <존재에서 존재자로>를 추천합니다. (레비나스)

 

폴란드의 브루노 슐츠라는 사람을 추천합니다.

 

지금 말한 첼란, 레비나스, 슐츠 등의 위대함은 .....괴테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바흐의 맛을 모르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 사람에게는 이생에서 최대의 지복 중 하나가 기다리고 있으니까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첼란, 레비나스, 슐츠를 모른다면 여러분의 미래는 장밋빛입니다.

 

 

그런데 <부정변증법>의 주어캄프 전집판 359. 잊히지도 않습니다. 아도르노는 그럼에도 아우슈비치 이후의 문화는 모두 Müll이다라고 썼습니다. “그에 대한 통렬한 비판도 포함해서 Müll이다. Müll은 먼지, 쓰레기, 폐기물 등을 뜻합니다.

 

Müll에 아톰을 붙여 Atommüll이라고 하면 핵폐기물이 됩니다. 그렇다면 후쿠시마 이후, 우리의 문화는 모두 핵폐기물일까요? 이에 대한 비판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아도르노 식으로 말하면 그렇습니다. 우리의 문화는 핵폐기물이 됐나요? 답은 하나입니다.

두고 봐이것이 유일한 답입니다.

 

 

우리의 제 정신을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가르쳐달라

 

특권적인 미나 예술만 대지진 이후 무력한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무력했다. 이 치열한 무력만이 성취할 수 있는 게 있다.

 

3. 먼저 사뮈엘 베케트의 다음 말을 기억하자. “제게 극장은 실러가 말하는 의미에서 도덕적인 시설이 아닙니다. 저는 사람들을 교육하고 싶지도 않고 향상시키고 싶지도 않으며, 또한 따분하게 만들 생각도 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연극에 시를 도입하는 것입니다. 허공을 뚫고 나가 새로운 여백에 새로운 시작을 새기는 듯한 시를. 새롭게 펼쳐지는 세계에서 저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이해받고 있는지 여부를 신경 쓰지 않습니다.

 

4. 예술art, Kunst은 라틴어로 아르스ars라고 하며, 원래 그리스어인 테크네의 번역이다. 자연 내부에서 때로는 이를 거스르며 살아남는 것을 가능케 하는 기예혹은 더 나아가 궁리라고 번역해야 할 말이다. 이는 오락이나 장식의 형태를 띤다. 그러나 결코 오락이나 장식에만 관계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변혁 가능한 삶의 양식을 의미한다.

 

5. (1)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트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아트란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다이 모방설은 17세기까지 계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2) 베이컨과 데카르트. 이 두 사람은 아트와 자연의 관계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이들에게 둘은 같은 것이다. 기계론이 커다란 영향력을 미쳤던 17세기 철학에서는 원칙적으로 인간도 물리 법칙에 따르는 기계며, 따라서 기예 또한 기계적인 것으로 여겼다. 이는 지금도 그러하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의 말로, 이때의 예술은 단적으로 의술을 뜻한다.

 

(3) 라이프니츠와 새프츠베리. 이 두사람에게 아트는 유한하지만 자연은 무한하다.”

(4) 칸트, 실러, 그리고 셸링. “아트는 유한하고, 자연은 무한하다. 하지만 예술가나 예술 작품은 유한한데도 그 안에 무한을 내재하고 있다.” 유한하고 개별적인데도 무한을, 즉 보편성을 배태하고 있다. 혹은 질료적인데도 형상을 내재하고 있다. 우연적, 필연적 등도 마찬가지다. 여기에서 근대 예술 개념이 탄생한다.

 

6. 실러는 순환의 사상가이자 칸트에게 큰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그에게서 탈출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사고의 명석함도 잃지 않았던 철학자다. 그런데도 그의 텍스트는 자신의 순환이 그리는 곡선에 이끌려 기묘하게 굽이치기 시작해 돌연 이해 불능을 강요하는 면이 있다.

 

7. 프랑스 혁명이 한창 진행되던 때 쓰인 그의 예술 철학은 프랑스 혁명에 찬동하면서도 왜 이 혁명이 허무한 바람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지를 논하고 있다. 아래로부터의혁명이 나중에는 위로부터의혁명으로 변질되면서 어떻게 해서 실패하게 되는가, 라는 문제를 논하고 있다.

 

거의 예언적이라 할 수 있는 이 사상을 전개하면서 순환의 사상가인 실러는 여기에서도 특이한 순환을 발견한다. 실러는 이 순환 속에서 개인과 국가가 어떻게 하면 합치할 수 있는지, 그 조건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그에 따르면 국가가 개인과 일치하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1) “경험적인 인간을 억압하고, 국가가 개개인을 폐기 =지양하는방식과 (2) “개인이 국가가 되는, “시간 안에 있는 경험 혹은 질료 안에 있는 구체적인 인간이 이념 속에 있는 인간으로 스스로를 고취하는 방식이다. 즉 도덕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법에 완전히 따를 수 있도록 인간을 고귀하게 하는길이다. 쉽게 말해 (1)위로부터의” -말하자면 톱다운식 - “강제, (2)아래로부터의법과 국가의 보텀업식 - ”형성이라는 것이다.

 

8. 그렇다면 실러는 어떤 변혁을 기획하는가? 진정한 보텀업에 의한 정치 변혁은 인간을 고귀하게 하는 것을 통해서만 실현된다. 하지만 이는 현존하는, 최종적으로는 톱다운에 의한 개개인의 억압, 폐기라는 수단을 취할 수 밖에 없는 야만적인 국가 기구에서는 실현할 수 없다. “국가가 부여한 것이 아닌”, “어떤 정치적 부패가 있어도가능한 수단, 실러에 따르면 그것은 예술이다”.

 

9. 예술가 또는 기술자(아티스트Künstler)를 그는 셋으로 분류한다. (1) “기계 아티스트번역하면 직공을 말한다. 기계 아티스트는 소재에 형식을 부여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한다.” 톱다운이다. 그가 힘을 행사하는 자연은 전혀 존경할 가치가 없다”. 석공은 돌의 인격같은 것은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2) 미적 아티스트. 이들 또한 소재를 존경하지 않으며 주저하지 않고 폭력을 가하지만, “소재에 대한 외견상의 양보를 통해 현혹한다. 즉 존경하고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척한다. “보텀업인 척하는 톱다운이다.

 

(3) 교육, 정치 아티스트 혹은 국가 아티스트이때 소재는 단적으로 인간이며 인격이 있고, ”존경의 마음을 갖고 다가가야 한다.“ 돌이나 흙처럼 소재를 절단하고 부수고 변형하고 탈색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이 예술은 객관적인 현실성을 소재로 한다. 이느 또한 자기 자신을 소재로 한다. 이 아티스트들도 똑같은 인간이며, 아트의 소재였을 것이고 그 효과기도 할 것이다. 여기에는 순환이 있다. 이는 보텀업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톱다운이 보텀업이 된다.“, ”톱다운과 보텀업이 순환하고 있다.“

 

 

10. 세 번째 아티스트만이 소재를 수단으로만이 아니라 목적으로도다루려 한다. 혁명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아티스트에 의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혁명이 개개인의 보텀업으로 일어나 그 보텀업이 관철돼야 하는 것이라면, 즉 우리 하나하나가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면 이런 수단은 예술, 세 번째 예술 밖에 없다. 그리고 이를 굳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야 하는 이유는 예술에 있어서만 감성, 우연성과 이성, 필연성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실러 자신의 술어를 사용하지 않고 쉽게 말하자면, 예술 작품은 물질이고 감성에 호소하는 그 무엇인데도 뛰어난 예술 작품을 제작하거나 감상하면서 일종의 이성’, ‘논리’, ‘법칙’, ‘필연성을 발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예술이야말로 감성을 이성과 잇는 길인 것이다.

 

 

Corps그리스도교 공동체라고 할 때의 공동체라는 뜻을 갖는다는 사실 그리고 욕망을 의미하는 désir라는 말을 강하게 번역하면 신을 고대한다는 뜻으로 근세까지 쓰였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들뢰즈 =가타리는 분명 정치 철학적인 함의를 넣어 이 개념을 고안했다.

 

아무것도 끝나지 않아, 왜냐면 열받았거든

 

진리는 그리스어로 알레테이아라고 합니다. 덮여 있지 않다’, ‘가려져 있지 않다는 뜻이죠. 베일이 벗겨진 노골적인 상태, 하지만 덮여 있지 않은상태란 실은 베일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걷어낼 수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거죠. 베일은 진리를 인식하는 데 있어 장애물이지만 베일이 없다면 덮여 있지 않은것 또한 사라져버립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리는 그것을 가리는 베일을 전제로 하고, 이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하이데거는 이 사태를 간략하게 진리란 드러내면서 덮여 있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보이지만 보이지 않기 때문에, 노출돼 있지만 감춰져 있기 때문에 진리라는 얘깁니다.

 

 

이토 세이코

 

희망없는 희망으로서의 소설을 위해

 

기원전 2300년경에 살았던 수메르 제3왕조의 공주 엔헤두안나. 즉 최초의 문학가는 여성이죠. 그리고 그 내용은 시에요, 역시. 신에게 바치는 시.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냐면 신관이었습니다. 왕의 딸이자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녀는 아카드어와 수메르어를 쓰는 바이링걸이었죠. 그야말로 번역입니다.

 

뭐냐면 축적’. 흄의 말을 빌리면 ‘stock of ideas’. 쉽게 말해 흄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아이디어의 축적 자체는 뛰어넘을 수 없지만, 그 축적된 샘플이나 구절 등을 조합하면 상상력을 이용해 제작할 수 있다. 이 상상력을 더 근대적인 창조성으로 끌어온 것이 버크입니다.

 

프루스트가 아름다운 소설은 일종의 외국어로 쓰여 있다고 말했는데, 바로 이를 의미한 것입니다. 모어가 돌연 타자의 언어가 되고 마는.

 

아날렉타라는 이름이 보여주듯 어떤 의미에서는 거리낌 없이 재미를 추구하며, 가벼운 기분으로 채워온 글들을 묶어 편찬한 책들이어서 시리즈라 해도 딱히 1권부터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고, 어느 쪽부터 읽어도, 어느 쪽에서 내던져도 상관없다. 그런 책이 있어도 된다.

 

 

다카하시 겐이치로,

오에겐자부로, <핀치러너 조서>

후루이 요시키치

맬컴 라우리, <화산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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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님과 알라딘에서 댓글과 답글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아직까지 그 분들의 책을 사시 않았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나와 친한 (.....?) 분들의 책을 사지 않다니? 미친 거 아님? 특히나 마태우스님으로부턴 공짜 책까지 받았거늘. 사람이 이토록 배은망덕해서야. 추석 연휴가 끝난 월요일에 주문을 넣고 토요일에 책을 받았다.

 

다락방님의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20153월에, 마태우스님의 <집 나간 책>201512월에 읽었다

(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목에 칼이 들어와도 책 안 산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다. ) 스텔라님의 <네 멋대로 읽어라>, 유레카님의 <소리없는 빛의 노래>는 주말을 이용해 다 읽었고, 로쟈님의 <그래도 책 읽기는 계속된다>는 계속 읽는 중이다. (두께가 꽤 만만치 않다.)

 

다락방님의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를 읽고선 이런 평을 남겼었다.


이토록 사랑스러울 수가.

, 작가한테 전화 걸고 싶어라.

우린 공통점이 많다구요.

 

전화 걸고 싶어라의 출처는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의 인용이었다.

 

"정말로 내가 감동하는 책은 말이야. 다 읽고 난 뒤에 그걸 쓴 작가가 친구가 되어 언제라도 전화를 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책이란다. 하지만 그런 기분을 주는 책은 좀처럼 없지

 

- J. D. 샐린져, <호밀밭의 파수꾼>

 

다락방님과 전화질을 하고 있진 않지만 북플을 통해 댓글을 달면 락방님은 언제나 답글을 달아주시지 않을까.

 (......?)

 

그러고보면 나는 꿈을 이룬 셈이다

 (돈에 대한 꿈도 좀 이루어져라.)  

 

책은 샀고, 다 읽었으니

마지막은 리뷰로.


작가에 대한 독자의 최소한의 도리가 아닌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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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9-26 17: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답글만 답니까, 이렇게 댓글도 답니다. ㅎㅎ

시이소오 2016-09-26 17:15   좋아요 1 | URL
전광석화와도 같은 댓글이라니요? ㅋㅋ

책 내시면 산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산 겁니다.

두번째 책, 편하게 쓰세요. ㅋ

북프리쿠키 2016-09-26 1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락방님 책 여기 있네요ㅎ마태우스님 저 책은 첨 봤어요ㅎ 흐음~스텔라님과 유레카님도 작가!!셨네요 몰라뵈서 죄송함당ㅎㅎ

시이소오 2016-09-26 17:33   좋아요 1 | URL
저도 몰랐더랬죠. ㅎㅎ

yureka01 2016-09-26 17: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헤헤 저도 알라딘 이웃 자격정도 얻을려고 굳이 사지 말라는거 구입했거든요..네..기본적인 예의차원에서라도..^.^. 그래서 책장에 저자가 보내준 책과, 구입한 같은 책이 나란히 진열될때..모종의 기쁨같은게 생기고 책장을 보면 즐거워지더군요..ㅎㅎㅎㅎ아 고맙습니다!~

시이소오 2016-09-26 17:45   좋아요 2 | URL
독자로서의 도리죠 ㅎㅎ

붉은돼지 2016-09-27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내신 알라디니 분들 은근히 많죠....<앵두를 찾아라> 프레이야님도 있잖아요^^
또 더 계시던데......기억이..ㅜㅜ

시이소오 2016-09-27 10:00   좋아요 0 | URL
아, 미처 몰랐네요. ^^;

stella.K 2016-09-27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책을 웬만해서 사시지 않으신다는 시이소오님께서
저책들은 친히 사셨단 말씀이옵니까? 제 책 꺼정...?!
영광입니다!!! 거기다 다 읽기까지...!
가문의 영광입니다!^^

시이소오 2016-09-27 18:54   좋아요 0 | URL
ㅋ 왜 이러세요? 민망하옵니다 ^^;

stella.K 2016-09-27 18:58   좋아요 0 | URL
헉, 저의 댓글에 전광석화 같은 댓글이라닛...!!ㅋㅋ

시이소오 2016-09-27 19:05   좋아요 0 | URL
ㅋ ㅋ ㅋ ㅋ ㅋ ㅋ 책 재밌게 읽었습니다. 강연회 후기가 인상적이었어요. 저는 게을러서 절대로 못 다닐텐데. 부지런하시네요. 열정때문이겠죠 ^^

2016-09-27 1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9-27 20:26   좋아요 0 | URL
취재후 혹평도 재밌겄네요 ㅋ

희망찬샘 2016-09-27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익히 보아왔던 닉네임을 가지신 많은 분들이 작가셨군요. 우와~~~

시이소오 2016-09-27 21:15   좋아요 0 | URL
여러작가님들과 소통할수 있다는게 알라딘 북플의 장점인듯 합니다^^

희망찬샘 2016-09-27 21:18   좋아요 0 | URL
전 시이소오님 글 읽으면서 님께서 언젠가 책을 한 권 내시겠구나...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시이소오 2016-09-27 21:21   좋아요 0 | URL
제 주제에 그럴리가요. 저는 쓰기위해 읽는다기보단 읽기위해 쓰는걸요. ^^

마르케스 찾기 2016-09-29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호밀밭의 파수꾼˝ 저 구절은 저역시 좋아해서, 저의 짧은 필력이 미치지 않은 좋은 책을 발견하면 제 짧은 글 대신 베껴쓰는 구절입니다ㅋㅋ
˝독서공감, 사람을 읽다˝를 읽고 저 구절을 남기셨다니,,, 그 책을 찾아보고 싶어졌어요ㅋㅋ
덕분에 이달도 책 값이 식비를 초과하겠네요ㅠㅠㅋㅋ
감사합니다
(다락방님이 작가라는 걸 방금 알았어요ㅋ 그분을 추천리뷰에서 보고, 읽고선 좋아서 친구신청했다가ㅋ 연락이 없으시길래, 아쉽게도 친구신청을 취소해야 했죠ㅠ
책은 수없이 많이 나오는 시대에 서점갈 시간은 없다보니,, 리뷰를 찾아 읽고 책을 구매하는 일이 일상이 되버렸어요ㅋ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시이소오 2016-09-30 00:31   좋아요 0 | URL
앗, 마르케스 찾기님도 저 구절을 좋아하셨다니 ㅎㅎ

친구신청이라기보단 팔로잉을 하시면 되는데요. ^^

마르케스 찾기 2016-09-30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그리 밝지 않은지라ㅋㅋ 먼저 신청해 본적이 별로 없어, 북풀에서 그닥 친구도 만들지 못했어요ㅋㅋㅋ

시이소오 2016-09-30 21:09   좋아요 0 | URL
저도 그리 밝은 편은 아니지만 초창기에는 제가 먼저 친구신청했어요. ^^

지금은 친구분들이 너무 많아 친구신청 엄두가 안나네요 ^^;
 

이런, 또 다시 10시에 기상. <하나기> 조식을 먹어 보고 싶었는데 물 건너 갔구나. 아버지와 함께 <락앤롤>에서 조식을 먹고서는 짐 정리, 방 하나는 체크아웃하고 새벽 비행기라 방 하나는 아예 1박을 추가했다. 짐을 옮기고 <조이너스 데판야키> 식당에서 중식. 그래, 밥은 이렇게 먹어야 하거늘. 밥도 이렇게 맛있는 것이거늘, 그동안 괌에서 밥맛을 따지지도 않고 먹었다.


 

중식 이후, 와이프와 아들은 숙소에서 쉬고, 아버지와 동생 식구들과 괌 관광을 다녀왔다. 남부를 돌고 왔더니 저녁 6. 숙소로 돌아와 <제프 버거>에서 사온 햄버거를 한 입 먹어보았다. 페티의 두께가 맥도날드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긴 가격도 15달러 정도 하니.

 

룸 하나가 살아 있기에 어른 둘, 아이 둘은 뷔페 석식 이용이 가능했다. 내가 대표로 뽑혀 아버지와 조카를 데리고 하나기로. 맥주나 실컷 먹고 가야지. 허걱, 이럴수가. 하나기 석식은 셋트 메뉴에 음료는 돈을 내야했다. , 스타라이트로 갈걸. 술은 포기하고 초밥 셋트를 시켰다. , 누구나 생각할만한 초밥 맛이군.

 

저녁 먹고 할 일이 없어 다들 대충 널부러져 잤다. 마지막 식사는 pic 맞은편 ABC 마트에서 사온 컵라면으로. 자정이 넘긴 시간에 체크 아웃. 기분 좋게 잘 놀다가는구나......어마어마한 착각이었다.



 

출국장으로 가기 위해선 양 손 다섯 손가락의 지문과 얼굴 사진을 찍어야 했다. 우리는 왜 관광객에서 한 순간에 범죄자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걸까.

 

출국 게이트로 들어가자마자 공기는 점점 삼엄해졌다. 출국 심사장 직원들 얼굴을 사진으로 찍었어야 했는데. 아구, 진지해라. 괌의 출국심사 직원들이 출국하는 관광객을 바라보는 시선은 마치 형사가 용의자를 바라보는 시선처럼 느껴졌다. 테러범을 꼭 잡고야 말겠다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그래, 허리 띠 푸르마. 해외여행 다니면서 신발을 벗었던 적이 있던가? 그래, 신발 벗으마. 그리고 나서는 심사대 안으로 들어가 한쪽 벽면을 보면서 다리를 벌리고 양쪽 팔을 들고 있어야 했다. 마치 꼼짝마, 움직이면 쏜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 취할법한 포즈랄까? , 차라리 팔을 구부려 하트 모양을 만들라고 하지?

 

괌은 일본인, 그리고 한국인 관광객들에 의한 관광 수입이 대부분의 수입원이다. 내가 출국한 시기는 추석연휴였던지라 거의 대개가 한국인 관광객들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이들은 가족 당 몇 천달러, 혹은 몇 만 달러의 돈을 괌에 뿌렸을 것이다. 떠날 때가 되었으니, 이제 관광객이 아니라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건가?

 

천지는 어질지 않아 만물을 추구(지푸라기 개)와 같이 여긴다

 

- 노자, <도덕경> 5

 

노자님 말씀치고 틀린 말이 없다. 추구는 제사를 지낼 때 쓰던 제물을 가리킨다. 추구는 제사가 끝날 때 까지는 최고의 예우를 받지만 제사가 끝나면 바로 내팽개쳐진다. 지푸라기 개는 비록 버려질지언정 적어도 한국인들마냥 잠재적인 범죄자로 경멸당하진 않는다. 고로 괌을 여행하는 한국인들은 지푸라기 개만도 못한 존재다.

 

 

이탈리아 여행 가서 이탈리아 경찰 다섯 명과 맞짱 뜬 내 성격 상 ( 니들 경찰은 무솔리니의 나라라서 인권 개념이 없냐! 베를루니코스의 개새끼들!? 이탈리아 시민들이 내 편을 들어주는 덕에 경찰서까지 끌려가지 않았다.) 만일 나 혼자 괌에 갔더라면 인격을 모독하고 인권을 무시하는 괌 출국 심사 절차에 응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굴욕이었다.

 

한국 정부는 중국인 관광객들의 온갖 행패는 묵인하고 자국민들이 해외에서 당하는 인권 탄압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다. ( 국민의 인권을 개 무시하는 것들이 잘도 국가를 사랑하냐고 설문 짓거리다. 국가보훈처지 정권보훈처가 아니라고. 국가와 박그네 정권을 혼동하지 마라. 궁금해? 나는 박그네보다 지푸라기 개를 더 사랑한다  )

 

괌에 가서는 있는 돈 없는 돈 펑펑 써대고,

나갈 때는 개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한국 여행객들.

세상에 호구도 이런 호구가 없다.

 

도대체 왜 아무도 문제제기를 안 하는 걸까?

한국인은 자국 내에서 개돼지로 취급받는 게 이미 습관화 돼서일까?

우리는 자국이든 외국이든 그 어디서든 간에 경멸당해야 마땅한 존재인가?


괌이 그렇게 좋은가? 개돼지 취급 받으면서 가야 할 정도로?

괌은 미국령이다. 아마도 9.11 사태이후 생긴 애국자법이후 강화된 출국절차겠지. 9 11 사태를 불러온 건 미국 정부의 오만과 독선 때문이 아니었나? 그런데 왜 우리가 범죄자 취급을 받아야 할까?

 

처음으로 우리 가족은 추석에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또한 오랜만에 우리 가족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미국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야 할 가족 여행에 결국

초를 치고 재를 뿌렸다.

 

두 번 다시 괌에 가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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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5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네요. 괌은 미국령이에요. 흠.

시이소오 2016-09-25 08:57   좋아요 1 | URL
괌은 독립하고 싶어한다는데 대악마 미국이 허락할리가 없죠. 전략적인 병참기지인데다 또 다른 미국 식민지 국인 한국과 일본의 호구 관광객이 넘쳐나는데요 ~~

북프리쿠키 2016-09-25 0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불편한 구석을 콕 집어내 주셔서 시원합니다. 넘치는 해외여행 후기에 식상했는데 역시 시이소오님은 달라요^^;

시이소오 2016-09-25 09:38   좋아요 2 | URL
비인도적인 공항 출국심사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여행후기들이 늘어나면 좋겠네요 ^^

낭만인생 2016-09-25 0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괌에 가서는 있는 돈 없는 돈 펑펑 써대고,
나갈 때는 개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한국 여행객들.
세상에 호구도 이런 호구가 없다.

마음이 아프네요.. 이게 단지 괌이 아니라 우리나라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으니.... 좋은 글 감사합니다.

시이소오 2016-09-25 09:59   좋아요 2 | URL
자국에서라도 개돼지가 아니라 인간대접을 받아야할텐데요 ^^;

나이니 2016-09-25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판도 가면 안 되겠군요.

시이소오 2016-09-25 17:03   좋아요 0 | URL
사이판도 출국 심사 그렇겠죠?

사마천 2016-09-25 1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911 직후에 미국 출장 갔던 한국 교수님이 공항에서 심한 모독적인 검문을 받았습니다. 이유는 악의 축으로 세 나라가 포함되었는데 하나가 코리아라는 거죠. ㅎㅎ 그런데 공항 직원들은 코리아가 사우시인지 노스인지 잘 모르더군요.. 정말 농담이 아니라 신발 벗고 다 뒤지고 등. 그때부터 이 난리입니다. 북이 더 못한다고 미국에 호소할수록 제제는 강해지지만 막상 실무진으로 가면 남과 북을 구별못하는 황당한 사태가 납니다. 피해는 고스란히 외교관 여권 없는 서민입니다.

시이소오 2016-09-25 17:06   좋아요 2 | URL
외국에선 구분이 안 갈것도 같아요. 도살자의 딸이 대통령 이니, 노스나 사우스, 어디가 악의축인지 헷갈릴법하죠 ^^;

곰곰생각하는발 2016-09-25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괌히 시이소오 님을 능멸하다니 ( 불끈 ! )

시이소오 2016-09-25 17:07   좋아요 0 | URL
ㅋ ㅋ 같이 분노해주시다뉘 감사요 ㅋ^^

비연 2016-09-26 1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 가길 잘했다 싶고 앞으로도 안 가겠다 결심하고요.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안에서 개돼지 취급 받으니 밖에서야 오죽하겠습니까... 싶기도 하구요. 갑자기 슬퍼지네요. 시이소오님. 우리 홧팅해요... 괌은 잊어버리시고!

시이소오 2016-09-26 13:44   좋아요 1 | URL
백남기씨 일로 우울한데 비연님 말씀대로 화이팅 하죠 ^^
 


오늘날에 있어서 시란시인이란?

시를 읽는 사람보다 시인이 더 많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던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들은

시를 쓰나보다.

내가 시를 다시 읽게 된 건 김경주 시인의 시 때문이었다


 

김경주 시인을 알게 된 건 아마도 김혜리의 인터뷰 집을 통해서 였던가김경주의 시를 읽고 나니 동시대의 다른 시인들은 어떤 시를 쓰는지 궁금했고이런 저런 시집들을 기웃거리다가 내가 꽂힌 시가 김민정 시인의 시들이었다.

 

시인은 뭔가 고상하고 세파에 시들지 않고 속세에 때 묻지 않은 이미지를 떠오르기 쉽상인데

김민정 시인은 누가 그런 시답잖은 소릴 지껄여하며 내 등짝을 후려치는 시를 쓴다.

 

김경주나 김민정의 시를 읽다 보면 시를 이렇게 써도 되는 건가?’하는 의문을 품게 되기도 하지만 시집을 덮을 때 즈음이면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볼 수 있다.

 

그럼 시를 어떻게 써야 되는데!!’

그런 그녀의 새 시집이면 더 좋았을 뻔했지만 에세이라도 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시인들이나 작가들은 어떤 단어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말하기도 한다어느 시인은 발목이란 단어를 좋아한다지발목발목계속 읽다보면 정말 발목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만 같다.

 

김민정 시인의 이번 에세이의 제목은 [각설하고,]. [여장남자 시코쿠]라는 기상천외한 제목의 작명자 치곤 너무 평범한 제목이 아닌가어쩌면 각설이라는 단어에 대한 시인의 특별한 애정 때문이 아닐까각설각설 계속 읽다보면 역시나 각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각설하고조각보 얘기를 해보자.

시인은 조각보 전시회를 보고 왔다고 한다몰랐다 조각보를 전시까지 하는 줄은시인은 누구든지 데려가 보여주고 싶었다지.

 

 

 뛰어난 예술성을 평가해보자는 얘기가 아니라 그 작업의 고유성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를 주고 싶어서였다조각보를 이루는 천 조각 하나하나가 생생한 기억을 가지고 엮어낸 것이기 때문이다우리네 할머니가 시집올 때 입은 당의와 청홍 치마저고리를 이어 붙이고 그들의 한복에 물을 들이고 조합하는 과정 속에 저마다 생겨나는 갖가지 문양들예상치 못한 패턴들의 조화가 감탄사를 절로 불러일으키는 까닭이다서로 다른 천과 천이 자석이 아니고서야 내 손과 손이 바느질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야 하나 될 수 없는온전히 사람만이 행할 수 있는 일의 귀함....”

 

어느 건물 옥상에서 거리 부감 샷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밑을 바라보고 있을 때 순간 눈에 들어온 조각보황급히 조각보로 씌운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가시는 할머니를 붙잡았다보조 출연을 부탁하고 흔쾌히 승낙해주셨는데

 

감독님 왈. “”.

군중 씬에서 조각보 하나가 무슨 대수겠냐마는 어찌나 서운하던지.

 

시인의 말마따라 그 화려한 빛깔들은 언제 다 사라졌을까?

 

시를 읽을 때 마다 느낀 건 나에겐 시를 전체적으로 이해할 만한 지능 자체가 아예 없는 것 같다.

세상엔 온통 불가사의한 시들 뿐인데김민정 시인의 시도 마찬가지그저 단편적인 언어의 유희를 즐기는 것 뿐그럼 안 되는 건가어쩔 수 없다능력 밖이니까.

 

그래서 빨기 바빴던

수많은 유방들의 속사정

몹시 문란하지 않으면

가족은 탄생할 수 없다.

 

[밤에 뜨는 여인들

 

11페이지에 달하는 장시고 그에 걸맞게 여인()의 삶을 말하는 시일텐데나로선 전체적인 의미를 말할 재간이 없고 그녀의 시집 [그녀가 처음느끼기 시작했다]처럼 성적인 함의혹은 중의의 묘미에 낄낄댈 뿐.

 

둥근 사과처럼

지구도 둥그니까

칼로 한번 깍아보라고 했다.

 

[밤에 뜨는 여인들

 

그렇다고 시인이 색녀도 아니고(...모르겠다나랑 무슨 상관?) 온통 성적인 것만 쓴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그러고 보니 에세이 집에 시 쓴답시고’ 시는 이거 달랑 하나?

 

시인은 최승호 시인을 만났나 보다시인의 시집 제목으로 최 승호 시인이 진지하게 만년필로 쓴 제목이 불닭이었다지평론가의 충고에 의기소침 한 시인에게 최 승호 시인은 네 멋대로 갖고 놀아봐라 격려하셨다고.

 


이성복 시인을 성복 언니라 부르고 싶다는 시인

 

겨울에 쓰러진 자전거를 얼까봐’ 일으켜 세워 줬다는 시인.

 

잠깐 실례 좀 해도 될까요?’ 라고 말하면 될 것을 잠깐 오줌 좀 싸고 올게요라고 말하는 시인.

 

그런 시인의 시를 기다리는 독자도 어딘가에 있다는 걸 생각해 주시고

좀 더 시를 갖고 놀아 보시길.

그래야 나도 갖고 놀잖아요.

 

참 그거 따뜻해요그치요전 졸라 빠를 수 있는 거북이를 상상하며 졸라 빠를 수 있는 달팽이를 격려하고 기대하는 마음의 여유시로 배우는 것 같아요그게 아마도 사랑이겠죠.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의 다음 시를 기다리며


(2014년 4월 25일 작성 )  


김민정 시인의 세번째 시집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간행을 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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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6-09-24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장남자 시코쿠라는 제목을 김민정 시인이 붙였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어요!
대학교 때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읽고 받았던 충격이 떠오릅니다. 여성관이 강제로 형성되는 느낌이었지요ㅎㅎ

시이소오 2016-09-24 08:58   좋아요 0 | URL
여성관이 강제로 형성됐다는건 무슨 뜻일까요, ㅋ

AgalmA 2016-09-24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각보가 베르트랑 <하늘에서 본 지구> 풍경 같네요~
튀면 전체를 위해 빼는 것, 퇴고할 때 그렇듯 그 조각보 할머니도 그랬겠죠. 그래서 시이소오님의 지금과 같은 다른 이야기가 또 만들어지는 것이겠고...

시이소오 2016-09-24 08:59   좋아요 0 | URL
그랬을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튀었겠죠 ^^;

꿈꾸는섬 2016-09-24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플 소식보다가 시이소오님 글 읽으며 눈이 번쩍하고 있어요. 김민정 시인 얘기와 다른 이들의 글은 많이 읽어서 궁금하고 관심은 있었는데 아직도 못 찾아 봤거든요. 시집과 에세이 찜해두었다 읽어야겠어요.^^

시이소오 2016-09-24 10:10   좋아요 0 | URL
시에대한 고정관념이 산산이 깨지실거에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6-09-24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민정 시집 읽고 고정관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습니다. 그래, 맞아. 시가 왜 항상 고상해야지 ?

시이소오 2016-09-24 16:34   좋아요 0 | URL
그쵸? 곰발님 문장이 시인의 시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

2016-09-25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적으로 고단해질 것 같은 `글` 중에 가장 큰 용기가 필요한 글을 쓰는군요, 김민정시인은요. 술자리서 참 지겨울 수도 있겠고. 사람은 다 다르긴 해도...;;;

시이소오 2016-09-25 09:06   좋아요 0 | URL
시인이 기존의 선입견과 대결을 벌인다는 느낌도 드네요. 김민정시인의 용기에 박수 쳐주고 싶어요 ^^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문학동네 시인선 84
김민정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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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한국 남자치고 민정이나 은정이란 여자와 사귀지 않은 남자가 있을까? 대학 시절 방학 때마다 비디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곤 했다. 손님들 중 내가 뽑은 미녀 넘버 쓰리가 있었으니, 한 분은 스튜어디스요 다른 한 분은 나중에 알고 보니 여배우였고, 그리고 나머지 한 분은 여대생이었다. 이 여대생이 내 대학 시절 첫 여자 친구였다. 여자 친구는 문창과에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시에 문외한인 내가 김민정 시인의 시집을 꼬박꼬박 읽게 된 것은?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를 읽었을 때, 혹시나 해서 시인의 얼굴을 찾아봤으나 역시나 예전의 여자 친구는 아니었다.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 7년 만에 나왔다. 어느덧 시인은 이제 마흔이라는데 시인은 여전하다. 김민정 시인의 시를 읽을 때마다 , 정말 이렇게 써도 괜찮은 걸까?’하고 독자인 내가 걱정이 앞선다. ‘아버지의 좆을 시의 제제로 삼은 건 김민정 시인이 처음이 아니었을까. 세 번째 시집을 보고 시인의 부모님들은 한숨 놓으셨겠다. ‘다행이다. 더 이상 내 물건에 대해 노래하지 않다니설마 섭섭해 하진 않으시겠지. ‘내 물건이 쓸모없어진 걸까하고?

 

정말 이렇게 써도 시란 말인가? 말장난 같기도 한 이것이 시란 말인가? 시란 뭔가 고상하고 우아해야 하는 거 아닌가? 김민정 시인은 고상하고 우아한 것’, 키치적인 것에 똥을 던지고 오줌을 갈긴다. 그녀의 시는 젠체하지 않는다. 거침없이 내달린다. 하여 유쾌 상쾌 통쾌하다. 

 

....동갑내기 히로키와는 가끔 만나 커피 마시며 시 얘기를 하는 사이인데 그는 윤동주의 시를 나보다 더 많이 외우고 나보다 더 많이 베껴본 터라 내가 모르는 윤동주의 시를 토론의 주제로 삼곤 하여서 내게 반강제적으로 송우혜 선생의 <윤동주 평전>을 사게도 하였는데 그런 그가 한국에 와 처음 배운 단어는 밤도 아니고 별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고 자지라 했다. 자라고 할 때는 자지, 보라고 할 때는 보지. 그렇지. 그건 맞지. 그래서 우리말 번역이 어렵다는 얘기지. 누가 저 문장을 히로키에게 가르쳤는지는 모르겠으나 웃음기 없이 술자리도 아닌 데서 듣는 아랫도리 사정이다보니 참으로 거시기하여 거시기하구나 하는데 그 거시기가 뭐냐 물으니 그러니까 나는 합치면 자보자라 하여 권유형의 자보지가 된다며 뻘쭘하니 한술 더 뜨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던 것이었다.

 

<그럼 쓰나>, p 17

 

 

-형부는 세상 빨고 빠는 일 중에

좆 빠는 일이 가장 쉽고

브라자 빠는 일이 가장 어렵다 하셨어

 

<엊그제 곡우>, p 18

 

수컷은 그때 그 순간에 잘도 싸기 위해 뭔가

참아주는 의뭉함이 늘 있는 모양이다

 

어디 가냐

집에 간다

대낮부터 마누라 너무 조지지 말고

해수탕 가고 없다 내 마누라

그럼 디비 자라 딸딸이 졸라 쳐대지 말고

손님 카드 긁을 힘도 없다 이 씹새끼야

 

, 그리고 헤어지나요

 

<오늘 하지>, p 30

 

어떤 망설임이 우리의 조준을 이토록 길게 끄는지

앞서거니 뒤서다가 결국엔 너 터지고 나 섞이는 소리

-

죽어도 오줌발로는 지고 싶지가 않았다

34일 동안 족히 서너 번쯤은 됐을 거다

그녀는 모를, 나만 아는

그녀와 나만의 오줌발 내기

문제는 솔직함이 아니라 유치함 같았다

 

- <시집 세계의 파편들> 첫 장면 p32

 

저거 쇼 아니야? 할 만큼 커다란 흑인 남자의 자지가 저거 쇼 아니네! 할 만큼 커다란 백인 여자의 두 젖퉁이 사이에 끼어 있다

 

<시집 세계의 파편들> 비약 삐약 p 33

 

술에 취한 남자가 어깨를 툭 쳤다

이불집 간판을 빤히 올려다볼 때였다

, 이 병신 같은 년아 뭘 야려?

꽃자리를 왜 꽃자지로 읽었을까마는

찌른다고 해서 죄다 무기가 되는 게 아니란 걸

이미 알아버린 마흔이었다

 

<시집 세계의 파편들> 운 같은 것, p 34

 

혹여 짐작이나 하시려나

당신이 이 쑤시던 이쑤시개를

내 코에 갖다 대지만 않았어도

자요, 식어요, 나요,

당신과 자주는 일쯤은

 

- <냄새란 유행에 뒤떨어지는 것>, p39

 

하자, 가 아니라

하면 할게, 라는 사람이

무조건 착할 것이라는 착각으로

우리는 오늘에 이르렀다

사랑은 독한가보다

나란히 턱을 괴고 누워

<동물의 왕국>을 보는 일요일 오후

톰슨 가젤의 목덜미를 물고 늘어진 사자처럼

내 위에 올라탄 네가

어떤 여유도 없이 그만

한쪽 다리를 들어 방귀를 뀐다

한때는 깍지를 끼지 못해 안달하던 손이

찰싹하고 너의 등짝을 때린다

 

<비오는 날 뜨거운 장판에 배 지질 때나 하는 생각>

 

 

몹시 문란하지 않은가? 이런 문란함이 없었다면 한국 현대 시사는 굉장히 황량하지 않았을까. 문란함이 없었다면 시는 탄생하지 않았다. (서른 세 편의 시) 삼삼한 시 중에 가장 삼삼한 시는 표제작인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이었다.

 

 

지지난 겨울 경북 울진에서 돌을 주웠다

닭장 속에서 달걀을 꺼내듯

너는 조심스럽게 돌을 집어들었다

속살을 발리고 난 대게 다리 두 개가

V자 안테나처럼 돌의 양옆 모래 속에 꽂혀 있었다

눈사람의 몸통 같은 돌이었다

 

물을 채운 은빛 대야 속에 돌을 담그고

들여다보며 며칠을 지냈는가 하면

물을 버린 은빛 대야 속에 돌을 놔두고

들여다보며 며칠을 지내기도 했다

 

먹빛이었다가 흰빛이었다가

밤이었다가 낮이었다가

사과 쪼개듯 시간을 반토막 낼 줄 아는

유일한 칼날이 실은 돌이었다

필요할 땐 주먹처럼 쥐라던 돌이었다

네게 던져진 적은 없으나

네게 물려본 적은 있는 돌이었다

제모로 면도가 불필요해진 턱주가리처럼

밋밋한 남성성을 오래 쓰다듬게 해서

물이 나오게도 하는 돌이었다

 

한창때의 우리들이라면

없을 수 없는 물이잖아, 안 그래?

 

물은 죽은 사람이 하고 있는 얼굴을 몰라서

해도 해도 영 개운해질 수가 없는 게 세수라며

돌 위에 세숫비누를 올려둔 건 너였다

김을 담은 플라스틱 밀폐용기 뚜껑 위에

김이 나갈까 돌을 얹어둔 건 나였다

돌의 쓰임을 두고 머리를 맞대던 순간이

그러고 보면 사랑이었다

 

-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전문, p 8

 

김민정 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내가 알던 단어는 더 이상 예전의 단어가 아니다. 생소하고도 낯설게 느껴진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쓰는 단어에 똥침을 날리는, 언어의 고슴도치 아가씨.

그녀가 다시, 느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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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9-24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시집 얼마전에 읽었어요..그런데 기억이 하나도 안나요..ㅎㅎㅎㅎ

시이소오 2016-09-24 09:02   좋아요 1 | URL
ㅎㅎ 저는 책 읽고 돌아서면 기억이 안납니다. ㅋ ^^

yureka01 2016-09-24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랑 비슷하네요..ㅎㅎㅎㅎ

시이소오 2016-09-24 09:13   좋아요 1 | URL
유레카 님 보다 제가 더 심각하죠 ㅎ ㅎ

꿈꾸는섬 2016-09-24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대단한 시인이군요.
금기시하는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것 같지만 그 속엔 많은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이런 파격적인 시인이라니 왠지 좋은데요.

시이소오 2016-09-24 10:06   좋아요 0 | URL
정말 파격적이죠? 웬만한 강심장 아니면 저렇게 못 쓸거에요 ^^

꿈꾸는섬 2016-09-24 10:13   좋아요 0 | URL
강심장! 그쵸 그것도 여자가라고 하면 비판 받으려나요. 아무래도 성과 관련한 것들은 발설하기가 쉽지 않은 저로서는 더 궁금하네요.
쓰진 못해도 읽는 것으로 대리만족해야겠어요.

시이소오 2016-09-24 16:38   좋아요 0 | URL
여자가 성에 관해 말하면 비판당하는 풍조도 하루빨리 없어져야할 것 같아요 ^^

stella.K 2016-09-24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민정 시인을 예전에 본 것 같습니다.
문학동네에서 무슨 일을 했던 것같은데...
털털하고 사람들과 눈을 잘 마주쳐서 이 사람이
나를 아나? 좋아하나? 뭐 그런 오해도 살짝 해 보기도 했습니다.
멋쟁이어서 설마 시인인가 했는데 시인이라고 해서 좀 놀랐습니다.
시인들 중에 그렇게 멋부리는 사람은 별로 못 봤거든요.

정말 시는 젠체하지 말아야 하는데 우리 학교 때 거 원 모라는 시인있지 않았습니까?
아, 이거 원 점점 생각이 안나 큰 일입니다.ㅠ
암튼 그 시인이 쓴 시집이 뭐 시냐 낙서 같다고 평론가들 엄청 까댓는데
과연 그런가 어리버리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늘 날 제가 평론가들을 그렇게 싫어할 줄 알았더라면 그 시 좋다고 바득바득 우겼을 텐데...ㅋㅋ


시이소오 2016-09-24 16:40   좋아요 0 | URL
김민정시인이 시 안 쓰고 편집자 일을 했잖아요. 작가를 직접 만나고 싶진 않은데 김민정시인은 만나보고 싶네요 ㅋ^^

책읽는나무 2016-09-25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저도 김민정 시인님 보고 싶어지는데요?^^
작가의 시는 통통 튀면서도 한 두 구절에서 반짝하는 관념들이 예사롭지 않단 생각과 함께 멋진 제목들요!! 이런 제목들을 순간적으로 창작할 수 있다는건 작가 본인도 좀 쎈스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봤습니다
근데 진짜 멋쟁이란 말씀에 오호라~~~먼발치서라도 한 번 보고 싶으네요^^
요즘은 왜 책을 읽고 나면 그책을 쓴 작가들이 그렇게 보고 싶은지 모르겠네요??ㅋㅋ


시이소오 2016-09-25 16:55   좋아요 0 | URL
김민정시인 예전보다 꾸미고 다니시는듯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