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무미함을 예찬하다.

 

무미함을 예찬하다. 무미예찬, 프랑수와 줄리앙.

 

음식에 관한 책인가 싶었는데, 프랑스 중국학자의 중국 예찬이라 하면 될까? 특히 적인 것들의 예찬. 담박하고 담백하고 단순한 것들. 담박한 음식 중 내가 먼저 떠올렸던 건, 을지로 을미면옥냉면이었다. 처음 먹을 땐 국물이 그저 맹물 맛처럼 느껴졌는데, 먹으면 먹을수록 중독된다. ‘아무런 맛이 없다는 건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이라기 보단 오히려 추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p.s 프랑스와 줄리앙, <운행과 창조>

<불가능한 누드>, <위대한 이미지에는 형태가 없다>

 

가난한 예술가의 초상, 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 한스 에빙

 

저자는 예술이란 사람들이 예술이라 부르는 것이다로 정의 내린다. 여기서 사람들은 대중이 아니라 예술계에 속하는 일부의 사람들이다. 계층의 차이에 따라 예술의 취향도 차이가 난다. 상위 계급에게 인정받는 예술은 존중된다. 저자는 이러한 측면을 문화적 비대칭성이라 부른다. 그러고 보면 문학은 상대적으로 대칭적이고 평등한 예술이다. 우리 같은 서민이 오페라나 음악회에 꼬박꼬박 다니긴 경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니까.

 

저자는 예술가들이 금전적 보상보다는 자신이 재능있고 뛰어난 인간이라는 자만심과 자기기만이 그들로 하여금 자발적인 가난을 선택하도록 만든다고 말한다. 이건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예술가들은 자만심보다는 오히려 열등감 속에서, 비자발적인 가난에 내몰리고 있다.

 

슈퍼노멀, 평범함 속에 숨겨진 감동, 슈퍼노멀, 제스퍼 모리슨, 후사카와 나오토

 

슈퍼노멀이란, ‘특별한 평범함을 뜻하는 말이란다. 노멀한 물건이 왜 특별해지는 걸까? 저자들은 일본의 전통적인 미의식을 드러내주는 용어로 와비사비슈타쿠로 이러한 특징을 표현한다. ‘와비사비는 어떤 물건이 시간이 가면서 갖게 되는 고요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실용적인 미를 통달한 이후에 나타나는 아름다움이다. ‘슈타쿠손으로 윤을 낸이란 뜻이다. 사용하면서 자연스레 만지고 또 만지다 보니 윤기가 흐르게 된 것을 가리킨다.

 

영화 촬영장에선 어떤 소품이 간지가 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쓴다. 한마디로 와비사비가 안 느껴진다는 거다. ‘시간의 경과없이 현실에서 와비사비는 있을 수 없다. 반면 영화는 소품에서도 시간을 창조해내야만 한다.

 

p.s 로쟈는 자신의 형광펜이 슈퍼 노멀이 아닐까하고 사족을 달았다. 저자들의 입장을 고려하자면 이런 건 슈퍼노멀이 될 수 없다. 형광펜은 그냥 형광펜이다.


 

오늘의 미술은 과거의 미술과 어떻게 다른가. 이것이 현대적 미술, 임근준,

 

미술평론가인 임근준 씨가 동시대 작가들의 현대 미술을 소개한다. 저자는 오늘의 미술은 세계를 보는 방법에 관한 성찰은 담은 예술이라 말한다. 나로선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현대 미술에 대한 탄식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미술 시장은 개들에게 넘어갔다. 러시아, 중국 등의 신흥 부자를 상대해야 하는데, 그들에겐 문화가 없다. 좀 느끼려면, 최소한 뭘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 미국과 서유럽의 미술 시장은 개들에게 넘어간 게 아니고?? 미술시장이 개들에게 넘어간 덕분에 리히터는 가난을 면치 않았나?

 

2009년 한국 미술계를 움직이는 인물 1위는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이고, 2위는 박명자 갤러리현대 회장 3위엔 유희영 서울시립미술관장이라고. 작가가 아니라 미술관 운영자들이 한국 미술계를 움직인다는 건, 세계적 추세와 더불어 한국 미술계도 돈에 놀아나고 있음을 증명한다. 현대 미술은 더 이상 예술이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추악해졌다.

 

앤디 워홀의 비누 상자, 일상적인 것의 변용, 아서 단토.

 

저자는 워홀의 브릴로 상자가 말해주듯이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기에 이제는 예술에 대한 정의가 가능하지 않다는 인식에서 제기된다. 그는 그의 전작 <에술의 종말 이후>에서 마치 헤겔이 역사가 자유에서 종말을 고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예술 역시 자유의 확장으로 종말을 맞이했다고 주장한다.

앤디 워홀을 여전히 예술가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나? 내가 보기엔 희대의 사기꾼에 불과하다. 워홀은 피카소를 보고 사기 치는 법을 배운 듯하다. 예술의 경지에 이른 사기꾼들.

 

미술관에서 만난 인문학, <미술관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박이문

 

4명의 철학자의 미술과 인문학의 통섭 강의를 책으로 묶었다.

박이문 교수는 예술작품의 구조적 모델로서 둥지를 제시한다. 임태승 교수는 동아시아 미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패턴과 원리이며 동아시아 예술은 철학적인 원리와 미학적인 범주 사이의 관계를 통해 구현된다고 말한다. 이광래 교수는 서양 미술사의 탈재현과 반재현의 과정을 기술한다. 조광제는 매체변화와 혁명이 가져온 의식 및 사회 변화의 양상을 기술하고 디지털 시대 새로운 형이상학의 밑그림을 그린다.


























로쟈의 페이퍼 04. 이런 책을 읽고 싶다.

 

크리스 하먼의 <1989년 동유럽 혁명과 국가자본주의 체제의 붕괴>

한스 굼브레히트 <1926: 시대의 가장자리에서 살아가기>

레이 황<1587 아무일도 없었던 해>

 

전체를 고민하는 힘

 

고민하는 힘, 강상중

쓰레기가 되는 삶들, 지그문트 바우만

승자독식사회, 로버트 프랭크, 필립 쿡

 

막스 베버는 일찍이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마지막 인간이 도달할게 될 지점을 이렇게 기술했다. 영혼이 없는 전문가, 가슴이 없는 향락자, 이 공허한 인간들은 인류가 과거에 도달하지 못했던 단계에 도달했다고 자화자찬할 것이다.” 강상중 교수에 따르면, 마지막 인간이란 더 이상 의미에 대해 생각하기를 그만둔 사람들을 가리킨다. ‘의미란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함께 살아감이다. 함께 살아감은 정치의 본래 목적이고 의의다. 그것은 또한 전체에 대한 관심이다.


 <쓰레기가 되는 삶들>에서 지그문트 바우만은 너무 많은 부자들이 양산되는 것을 문제로 보았다. 아프리카에 에이즈가 만연해 사람들이 죽어갈 때 다국적 제약 회사들은 국제협약을 무기로 싼 값에 약을 공급하길 거부했다. <유동하는 공포>에서 바우만은 다가오는 세기는 궁극적인 재앙의 시대가 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세넷은 <뉴캐피털리즘>에서 관료제 시스템이라는 쇠창살의 삶을 분석한다. 피라미드적 관료제 사회를 대신하여 들어선 것은 무한 경쟁을 독려하는 승자독식 사회.

 

우리는 어떤 혁명을 원하는가.

예수전, 김규항

예수 없는 예수 교회, 한완상,

 

김규항은 예수를 영성가이자 혁명가로 본다. 그는 오늘날 ‘NGO’, ‘시민운동’, ‘개혁운동’, 그리고 실현 가능한 진보’ ‘최소한의 상식의 회복따위를 내거는 양심적인 시민들은 위선자 바리새인들로 진단한다. 아무래도 김규항은 우리에게 너무 일찍 왔다. 그가 한 20년만 늦게 태어났더라면 그에게도, 우리에게도 좋았을텐데. 너무 빠른 건 느린건 만큼이나 멍청해 보인다.

 

한완상의 <예수 없는 예수 교회>에서 사회의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주요한 세력에는 한국 교회도 포함된다. 일명 개독. 개독들을 보면 예전 중세시대 마녀 사냥을 일삼던 카톨릭 수사들이 떠오른다. 한국 교회는 회개를 통해 거듭날 수 있을까.

 

로쟈는 회개에 대한 기대가 미덥지 않다면 프랑스 혁명을 숙고해보길 제안한다. <로베스피에르- 덕치와 공포정치>에서 로베스 피에르는 공화정의 가혹함은 미덕을 바탕으로 한 것이며 인류의 압제자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응징하는 것이 자비라고 말한다. 자비를 베풀고 싶은 압제자들이 수도 없이 떠오른다.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에서 프랑스 혁명은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기보다는 무정부 상태를 초래하고 결국엔 군사적 독재자를 출현시킬것이라 예언했다. 한나 아렌트 또한 <혁명론>에서 프랑스 혁명을 실패한 혁명으로 규정짓고 미국 혁명을 혁명의 새로운 모델로 추켜세웠따. - 프랑스아 르벨은 <마르크스 예수도 없는 혁명>에서 20세기 혁명은 미국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고 못 박았다. 유혈과 폭력이 없는 혁명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공적 선, 사적 선, 레이몬드 고이스.

 

저자는 책을 통해 자유주의의 교리의 비판과 해제을 말한다. 자유주의의 핵심적인 교리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분인데, 고이스에 따르면 이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저자는 니체의 계보학을 방법론으로 받아들여, 디오케네스와 카이사르,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례를 검토한다. 오늘날 사적인 것은 무엇인가? 저자에 따르면, “내 은행 잔고.

 

P.S 비판이론의 이념.

미조구치 유조의 <중국의 공과 사>

찰스 테일러, <근대의 사회적 상상>

퀜틴 스키너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

 

문화로는 국가에 대항할 수 없다국민을 그만두는 방법, 니시카와 나가오.

 

저자에 따르면 국민을 그만두려면 국민 문화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문명이나 문화나 유럽에 기원을 둔 개념이다. 문명이 인류의 보편성을 강조하면서 물질적인 진보를 예찬한다면 문화는 생활의 다양성과 개별성을 강조한다. 문명이 미래 지향적이라면 문화는 과거의 전통을 중요시한다. 문명은 프랑스, 영국, 미국등 주로 선진국으로 전파됐고, 문화는 독일을 중심으로 폴란드, 러시아 등 후진국으로 퍼져나갔다. 프랑스에서는 문명이 국민적 이데올로기로 정착되고 독일의 국민사는 기본적으로 문화사다. 프랑스와 독일의 반복된 전쟁은 문명과 문화 사이의 투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국가이데올로기로서 문화개념은 민족이나 국체개념과 일체였기 때문에 문화로는 국가에 대항할 수는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사상으로서의 일본 우익, 일본 우익사상의 기원과 종언, 마쓰모토 겐이치, 요시카와 나기.

 

저자는 근대 일본에서 권력을 장악한 지배계급은 좌익도 우익도 아닌 리버럴이었다고 주장한다. 이토 히로부미 내각이 출현하면서 리버럴은 근대 일본의 지배계급이 되며, 이들이 메이지 국가 체제의 근대화 노선을 적극적으로 주도해갔다. 이러한 노선에 반체제로 좌익과 우익이 마치 쌍둥이처럼 태어났다. 좌익은 계급의 입장에서 우익은 민족의 입장에서, 근대화 노선에 반대했다. 저자는 우익의 사생관은 전통적인 산화의 미학, 아름다운 죽음의 미학 위에 형성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우익이 타락하여 체제내로 편입하면서 아시아주의를 표방한 것이 대동아공영권이다. 로쟈의 지적대로 일본 우익과 한국 우익은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더 많아 보인다. 타락한 꼴통들이 모여 아무나 붙잡고 빨갱이라 욕하면 우익이 되는 실정이니.















 

18. 유동적 근대와 쓰레기가 되는 삶, 유동하는 공포, 지그문트 바우만

 

유동적 공포란 자연적 악이건 도덕적 악이건 그 공포의 대상이 되는 악이 불규칙하고 불확실하여 제대로 인식할 수 도 없고 대처하기도 어려운 공포를 말한다.

 

<근대 사상에서의 악>의 저자 수잔 니먼을 따라 바우만은 근대 철학이 시작되는 기점을 1755년 포르투칼 리스본 대지진에서 찾는다. 지진으로 수 만명이 죽었다. 이러한 대재난은 근본적으로 신 존재에 대한 질문을 묻게 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미신 역시 마찬가지다. 별자리 혹은 사주팔자가 다 무슨 소용이냐, 수만 명이 동시에 죽었는데. 세월호에서 죽은 사람들은 사주팔자가 다 똑같아서 죽었을까.

 

근대인은 이성에 의해, 자연적 악과 도덕적 악 모두 교정될 수 있을거라 기대했다. 지금까지 경험은 오히려 거꾸로 진행됐다. 자연재해는 관리 가능한 것이 되지 못했고, 오히려 도덕적 비리가 자연재해에 가까운 것이 돼버렸다. 인간의 부도덕한 악보다 관리가 불가능한 것은 합리적 행동이 산출하는 악이다. 일례로 관료제를 들 수 있다. 관료의 도덕성은 명령에 대한 복종과 빈틈없는 업무 수행으로만 판단된다. 아우슈비츠, 굴락, 히로시마는 이러한 관료제의 합리성이 얼마나 커다란 악을 낳을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게다가 문제적인 것은 유동적 공포가 차별적이라는 것이다. 자연재해 역시 차별적이다. 뉴올리지언즈 카트리나에서 볼 수 있듯 피해자는 대개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더 나아가 이제 사건 사고 역시 차별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강남의 잘 사는 아이들이 배를 타고 가다 좌초됐더라도 국가에서 가만히 앉아 아이들이 죽어가길 기다렸을까. 국가에선 법질서 유지와 경제발전(오늘날 신자유주의)만을 부르짖는다. 근대성은 배려할 만한 가치가 있는 부류가치가 없는 삶으로 구분하며 공포 또한 차등적으로 분배된다. 바우만은 이러한 차별은 근대성의 오작동이 아니라 본질이다.

 

다가오는 세기는 궁극적인 재앙의 시대가 될 것이다.”

 

그들이 너무 맣은가? <쓰레기가 되는 삶들> 지그문트 바우만

 

한마디로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들이 없다면 우리는 책상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을 수 없다.

 

우리가 기부해야 하는 이유,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피터 싱어.

 

살릴 수 있는 생명들이 덧없이 죽어가는 세계에서 저자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묻는다. 책의 제목이나 질문이나 왠지 저자가 세월호 사건을 예견하고 한국인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처럼 들린다.

 

저자의 질문은 마치 맹자의 우물에 빠진 아이의 일화를 상기시킨다. 신발이나 양복이 더럽혀지고, 지각을 이유로 우물에 빠진 아이를 그냥 지나치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한민국 도살자의 딸과 색누리당 국회의원말고는.

 

아직도 매년 970만명의 5세 이하 어린이들이 빈곤 때문에 죽는다. 저자는 기부가 이루어지긴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한다. 한국의 원조 규모는 0.09 퍼센트라고. 한국은 대외원조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꼴찌를 달린다.

 

거대한 고통의 기원을 찾아서, 거대한 전환, 칼 폴라니.

 

이 책의 부제는 우리 시대의 정치, 경제적 기원이다. 여기서 우리 시대1940년대를 포함한 20세기 전반기라고 한다. 1차 세계 대전, 러시아 혁명, 경제 대공황, 파시즘, 도로 2차 세계 대전. 대체 왜 이런 전대미문의 비극적인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한 것일까? 폴라니는 영국의 산업혁명과 시장 경제를 주범으로 지목한다. 식민주의자들은 원주민을 노동자로 만들기 위해 인위적으로 식량 부족 사태를 일으켰다. 모든 것을 상품화할 수 있다는 불가능한 믿음과 파행적 현실은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저자는 2009년이 거대한 전환이라고 보았다. 오늘날 다국적 기업과 신유주의를 주장하는 국가들은 식민지 국가의 전략을 그대로 반복한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99프로의 인간들을 굶주림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더더욱 신자유주의는 우리가 상상 못했던 새로운 전쟁을 불러올 지도 모른다.

 

인류학적 가치이론과 자본주의의 외부. 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데이비드 그레이버.

 

저자는 유럽중심의 지적 풍토를 비판하면서 인류학이야말로 사유와 개념의 전 지구적 민주화를 도모할 수 있는 최적의 학문이라고 주장한다. 1940년 대 후반과 1950년 초 인류학자 클라이드 클럭혼은 서른 다섯 부족에 대한 비교연구를 통해 가치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가치란 사람들이 여러 다른 행위의 가능성 중 하나를 선택하게 만드는 바람직한 무언가에 대한 개념이다. ‘가치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은 경제학에 포섭된다


그러나 경제학은 지역마다 다른 선호나 판단의 문제에 답하기가 어려워진다. 가치의 기본 대상을 단지 사물에 두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기준이 필요하지 않을까. 화폐와 상품만의 교환만을 다루는 시장경제 바깥의 다른 교환 방식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그레이버는 인류학의 역사에 가장 중요한 단 하나의 업적이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이라고 주장한다. 모스는 자본주의 체제 바깥의 부족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그들이 전혀 다른 가치 체계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로쟈는 저자의 이론을 나카자와 신이치의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나 가라타니 고전의 여러 저작에서도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사회언약론자가 꿈꾸는 사회, 사회의 재창조, 조너선 색스,

 

색스는 이 책을 통해 영국이 경험한 다문화사회로서의 문제점을 바탕으로 다문화주의의 극복과 다문화 사회의 통합을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기존의 다문화주의는 수명을 다했다. 기존의 호텔로서의 사회로는 다문화주의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기존 별장으로서의 사회역시 주인과 손님의 관계이기에 성공할 수 없다. 그가 제시하는 세 번째 모델은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고향으로서의 사회. 사회는 더 이상 국가와 시민 간의 계약관계의 산물이 아니라 상호존중과 신뢰에 바탕을 둔 언약의 산물이 되어야한다.





























 

19. 보편적 보편주의를 향하여

 

세계의 일부인 유럽

백색신화, 로버트,J, C , 김용규.

식민주의자의 세계 모델, 제임스 M 블라우트.

 

세계의 일부는 부유하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가난하다.”

 

식민주의와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하는 책들이 쌓여가는 가운데 제임스 블라우트의 <식민주의자의 세계 모델>은 유럽 중심주의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이다.

 

유럽중심주의가 은밀하게 작동하는 영역으로 저자는 지리학과 역사학을 지목한다. 인류사의 중요한 사건들은 모두 유럽쪽에서 발생했다는 시각이 대표적이다. 결론에서 블라우트는 우리 인식의 근원을 건드리는 네 가지 보편주의의 문제를 비판한다. 첫째. 데카르트에서 칸트에 이르는 철학적 이원론, 둘째, 빅뱅이론, 셋째, 아프리카에서 에이즈가 발생해 유럽으로 확산됐다는 역확산론, 넷째, 산업혁명 이후의 산업화 확산론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과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유럽중심주의 해체도 요원하다는 것이 블라우트의 주장이다.

 

로버트 영은 유럽의 기적이라는 신화백색신화라 부른다. 그의 주된 공격대상은 유럽마르크스 주의. 저자가 보기에 마르크스 주의는 여전히 유럽중심주의라는 한계를 갖는다.

 

유럽중심주의와 세계사의 해체,

유럽중심주의 세계사를 넘어 세계사들로, 한국서양사학회,

세계사의 해체, 사카이 나오키. 니시타니 오사무.

 

문명론적인 차원에서만 보더라도 아시아 지역에는 동아시아의 유교 문명, 남아시아의 힌두 문명, 그리고 서아시아의 이슬람 문명 등 각기 다른 세 개의 문명이 별개로 존재해왔지만 유럽 중심적 관점은 이를 한데 묶어서 동양이라는 말로 뭉뚱그린다. 일찍이 에드워드 사이드는 동양과 서양의 이분법적 분할이 허구적인 상상의 지리학이라 말했다


니시타니는 <세계사의 해쳬>에서 후마니타스안트로포스를 대립시킨다. 그리스 로마의 고전학을 가리키는 후마니타스가 앎의 주체로서의 인간을 다룬다면 인류학의 어원이 되는 안트로포스는 인류를 오직 앎의 대상으로만 다룬다. 때문에 인문학(후마니타스)은 유럽 연구 내지 유럽적 인간의 연구가 되는 반면에, 인류학(안트로포스)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연구가 된다. 한마디로 인문학의 탐구대상은 보편적 인간이 아니라 유럽적 인간이다. 로쟈의 말대로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은 가능할지언정 극복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제일터. (세계사, 인문학을 완전히 해체한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한단 말인가?)

 

보편적 보편주의를 향하여, 유럽적 보편주의, 이매뉴얼 월러스틴

 

월러스틴에 따르면 16세기에 형성되어 지금까지 지속되어온 하나의 긴 시기가 현재 종말을 고하고 우리는 새로운 시기로 진입하고 있다. 어떤 시기가 될지는 알 수 없다. 앞으로 전개될 20년에서 50년 사이의 싸움의 결과에 따라 기존의 세계보다 더 사악한 불평등의 세계가 될 수 있고, 생고르의 표현에 따르면 서로 주고받는 만남의 세계가 될 수도 있다. 월러스틴은 이것이 유럽적 보편주의와 보편적 보편주의 사이의 이데올로기 투쟁을 통해서 결정될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러한 시기에 지식인들이 거짓된 가치중립성의 족쇄를 벗어버리고 대안으로서의 보편적 보편주의를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주권의 너머와 환대의 사유, 주권의 너머에서, 우카이 사토시.

 

1964년 도쿄 올림픽, 소학교 4학년이었던 저자는 일본 선수를 응원하면서 히노마루(일본국기)와 기미가요(일본 국가)에 갈채를 보냈다. 그러다 5학년이 되자 이러한 행동에 무언가 불편함을 느꼈다. 일본 현대사에 대한 저자의 인식이 깊어질수록 나쁜 국가에 대한 그의 직관은 확신이 됐다.

 

국민국가의 패권주의와 폭력에 대해 저항의 논리로 맞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우카이 사토시가 주권의 너머를 모색하기 위해 제안하는 것은 환대의 사유. 주인은 손님을 배척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모 여성 개그맨이 일본 TV프로에 나가 기미가요를 열성적으로 불러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일본인들은 그 손님을 환대했을까. 아마 그랬을지도 모른다. ‘, 원숭이가 일본 노래를 부르다니하고 즐거워하지 않았을까.















 

20. 사회는 어느 때 망하는가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 4천원 인생, 안수찬 외.

 

기자들이 직접 체험한 비정규노동혹은 불안노동의 보고이다. 갈빗집에서 12시간 노동으로 35천원을 받은 임지선 기자는 말했다. “수많은 사람이 빈곤 노동으로 일생을 보내야 하는 사회구조를 만들어놨다는 점에 있어 우리 모두는 공범이다.”

 

명랑 좌파의 한국경제론, 괴물의 탄생, 우석훈

 

<88만원 세대>를 필두로 하여 그가 쏟아낸 한국경제대안 시리즈마지막 책이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일반화되면서 탄생하는 것이 홉스가 말하는 레비아탄’, 괴물이다. 이 괴물의 다른 이름이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린 자본주의. 우석훈의 대안은 사회적 경제’, ‘연대의 경제’, ‘증여의 경제. 이러한 제3부문을 형성하는 경로는 종교 기관, 대기업, 그리고 정부기관이다. 허걱, 한국에서 가능한 일일까? 종교기관, 대기업, 정부라니.

 

억울하면 서울 시민이 돼라? 지방은 식민지다.

 

강준만 교수는 교육 분산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쉽게 말해 서울에 편중된 대학들을 지방으로 분산시키자는 거다. 다산 정약용마저 자식들에게 폐자일지라도 사대문 안에서 버티라 했으니, 지방분권의 길은 요원해 보인다.

 

사회는 어느 때 망하는가?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 도정일 외.

 

2008년 이후 무너진 민주주의를 보고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에서 암시를 받은 도정일 교수는 사회는 어느 때 망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음을 알면서도 대처하지 못하면 그 사회는 망한다. 지금 당장 시급한 것은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의 위기에 처했음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고, 거기에 대해 때맞게 대처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시민의 양성이다.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 한홍구 교수의 말에 따르면 민주주의가 밥 먹여준다

 

대한민국 시민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주체라는 자각을 갖고서 각자가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해야 하고, 공부해야 한다. 국가가 무엇인가라는 주제도 긴급한 공부거리다. 로쟈는 우리가 시민에서 난민의 지위로 전락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는데, 2008년 이후 우리는 천민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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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2016-07-08 0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진짜 이새끼 글은 역겨워서 못읽겠다..

시이소오 2016-07-08 06:58   좋아요 0 | URL
역겨우면 안 읽으면 됩니다. ^^

만화애니비평 2016-07-08 0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아이디도 없고 비방글만 남기는 저런사람의 정신승리...
새벽에 잠도 안자고 뮈하는걸까요.

시이소오 2016-07-08 08:05   좋아요 0 | URL
일베가 아닐까요?? ㅎㅎ

만화애니비평 2016-07-08 08:10   좋아요 0 | URL
참 그분들은 바쁘네요. 새벽에 잠도 안자고 일하면서요 ㅎㅎ

시이소오 2016-07-08 08:1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일당은 잘 받으셔야 할텐데요^^

singri 2016-07-08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저러는건지ㅡ ㅇㅂ의 끝은 어디인가 노답.

시소님의 가열찬 독서를 응원합니다.

시이소오 2016-07-08 08:32   좋아요 0 | URL
아, 응원 감사해용. 싱그리님^^

wasulemono 2016-07-09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본을 못 갖춘 사람도 있었네요!

시이소오 2016-07-09 16:42   좋아요 0 | URL
저분덕분에 댓글이 늘었네요. 감사한 일이네요^^
댓글저장
 

 

11. 푸슈킨과 고골의 나라

 

나보코프와 예술이라는 피난처, 롤리타, 나보코프

 

푸슈킨과 레르몬토프를 제쳐놓고 나보코프가 뽑은 가장 위대한 작가는 1위 톨스토이, 2위 고골, 3위 체홉, 4위 투르게네프. 그가 보기에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류작가라고. 예전엔 인정할 수 없었을텐데, 지금으로선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싶다. 2007년 영어권의 대표적 현역 작가들이 뽑은 최고의 문학 작품으로 1위엔 역시 <안나 카레니나>, 2위는 플로베르의 <마담 보봐리>, 3위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4위는 나보코프의 <롤리타>였다고.

 

대부분 평론가들과 마찬가지로 나보코프 역시 레빈-키티 커플의 사랑과 대조적으로 안나 브론스키 커플은 육체적 사랑에만 기초해 있다고 평가한다. 실망이다. 이런 답안은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나올 수 있는 분석 아닌가.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이 단지 육체적 사랑에 기초한다는 평엔 동의할 수 없다. 그들도 레빈, 키티 커플 마냥 진정한 사랑을 했다. 아니, 했다고 생각했다. 안나, 브론스키 커플의 비극은 상대방 보다는 자기 자신을 더 사랑했다는 데 있다. 사실 그들의 사랑은 육체적 쾌락보다는 오히려 허영에 기초한 것이었다.

 

나비의 변태를 거친 기억의 아상블라주, <말하라, 기억이여> 나보코프,

 

나보코프는 기억력이 형편없어 메모리스트가 되었다고. 그래서 그에게 있어 상상력은 기억력의 한 형식이다.

 

그의 지론에 따르면, 모든 사건의 객관적 존재 자체가 하나의 불순한 상상의 형식이며 창조적 상상력의 도움이 없다면 우리의 정신은 아무것도 파악할 수 없다. 그러니 순수한 객관적 현실이나 순수한 기억이라는 개념이야말로 오히려 픽션일 따름이다. 따라서 진실은 언제나 기억과 상상의 창조적인 합성물이다.

 

(<말하라, 기억이여> 아직 절판 상태네요 ^^;;) 


예브게니 오네긴과 차이코프스키, 예브게니 오네긴

 

예전에 <예브게니 오네긴> 광팬 때문에 호기심에 이 책을 읽었다. 나로선 뭐가 좋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티치아나나 오네긴과 같은 경험을 했다면 공감할 수 있었을까? 상대방이 나를 사랑할 때 나는 시큰둥하다가, 상대방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자 이번엔 자신이 열정적인 사랑에 빠지는 경험? 아무튼 차이코프스키는 작품을 구상할 때 제자인 안토니나 밀류코바로부터 구애 편지를 받았다. 그는 제자의 구애를 받아들여 결혼을 했다.

 

우리는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외투, 고골.

 

역시 읽었으나 감흥이 없었던 작품이지만 로쟈는 매년 다시 읽으면서 경탄하는 작품이라니 나 역시 다시 읽어봐야 겠다. 주인공 아카키의 외투에 대한 욕망은 여전히 현대적으로 보인다. 라캉의 이론에 어울릴 듯.

 

도스토예프스키와 돈.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맞는 말이다. 돈을 빼놓고 도스토예프스키를 논할 순 없다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만큼 재밌을 듯.

 

사냥개 같은 시대의 증언 <회상> 나데쥬다 야코블레브나 만델슈탐

 

20세기 러시아 시의 거장 오십 만델슈탐의 부인 나데쥬다 만텔슈탐의 회고록이라고. 시인 만델슈탐은 두 번째 체포 때, 시베리아 강제수용소 이송 중 사망했다. “무슨 이유로 그를 잡아갔지?”라는 질문은 금기시되었지만, 누군가 그런 질문을 던지면 아흐마토바는 격분하여 소리쳤다고 한다. “무슨 이유가 있겠어? 아무 이유 없이 사람들을 잡아들인다는 걸 아직도 모르겠어?” 바로 그 시대의 목격담이자 증언이라고.















 

12. 한국 문학에 대한 믿음과 불신 사이

 

핏빛 어두운 조수가 퍼져, 도처에

순결한 의식이 침몰하고

최선의 무리는 확신이 없고

최악의 무리만이 열광적으로 날뛰고 있네

 

- W.B 예이츠, <2의 강림>

 

오늘날 한국 문학은 죽었다?’ 로쟈는 문학에 대해 가장된 순진한 믿음’, 즉 문학을 좀

더 진지하게 믿는 척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한국 문단 문학의 종언, 한국 문학과 그 적들, 조영일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 문학의 종언>을 번역한 평론가 조영일의 두 번째 평론집이다.

그는 한국문학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끝났다고 보는 것은 한국의 문단문학이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는 문학편집과 문학비평이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백전 백패의 운명을 찬양함, 자전거 여행, 김훈

 

살아서 아름다운 것들은 나의 기갈에 물 한 모금 주지 않았다. 그것들은 세계의 불가해한 운명처럼 나를 배반했다. 그러므로 나는 가장 빈곤한 한줌의 언어로 그 운명에 맞선다. 나는 백전백패할 것이다.

 

말해 무엇하랴, 김훈의 에세이는 무조건 읽어야 한다.

 

기형도의 보편 문법. <기형도 전집> 기형도

 

인간에게도 누구나 잎이 주렁주렁 달린 가지가 서너 개 이상 있다. 그 개별적 가지들은 시간의 묶음이며 그 시차인 공간인 가지 안에는 썩은 잎부터 부활해가는 잎, 돋는 잎 등이 달려있다. 그 잎들은 나무의 물관, 체관의 관다발로부터 양분 및 수분을 공급받으며 또 외적인 요소, 즉 햇빛을 이용하여 녹색 동화작용을 일으켜 내적 에너지를 확충한다. 고로 잎은 나무와 햇빛의 유기적 매체이다. 개별 인간과 보편 세계의 이질성을 이어주는 것은 동일인으로서의 인칭이다. 우리는 그러한 인칭을 2인칭화(사랑, 친구, 가족)한다. 그러나 과수뿐 아니라 인간의 사육 기간 중에서 우리의 관계들 속에는 엄연히 칼날 같은 전정이 가해진다. 그것은 소극적으로 타의에 의한 단절의 전정과 적극적 전정으로 구분한다.

 

식물적 상상력,모종전정의 시인(기형도의 전정에 최초로 주목한 비평과는 정과리라고. 정과리의 <무덤 속의 마젤란>은 기형도에 관한 필수적인 참고 문헌이라고 한다.)

 

둑방에는 패랭이 꽃이 무수히 피어 있었다. 모두 다 꽃씨들을 갖고 있다니

작은 씨앗들이 어떻게 큰 꽃이 될까. 나는 풀밭에 꽂혀서 잠을 잤다.”

 

부끄럽게도 나는 아직 기형도의 시를 안 읽었다. 죽기 전엔 읽어야.

 













13. “너 책이야? 나 장정일이야!”

 

장정일의 공부,

장정일의 독서일기 7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보트하우스

내게 거짓말을 해봐.

 

2004년 독서일기 10년째인 6권의 서문은 이렇다.

 

보혁갈등이 첨예하게 부딪치는 지난 몇 년간을 보내면서, 나의 독서관은 개인적으로 내밀한 쾌락을 좇아가는 독서에서 약간 다른 것으로 진화했다. <....> 시민이 책을 읽지 않으면 우중이 된다. 책과 멀리하면 할수록 그 사람은 사회 관습의 맹목적인 신봉자가 되기 십상이고 수구적 이념의 하수인이 되기 일쑤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내밀한 정신의 쾌락을 놓치는 사람일뿐 아니라, 나쁜 시민이다. <.....> 독서는 민주사회를 억견과 독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시민들이 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의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강유원은 장정일의 독서 일기 2권에 대한 독후감을 이렇게 적었다.

 

장정일은 많은 분량의 책을 읽지만 그것을 꿰어서 이론적 줄거리를 만들어내지는 못하는 듯하다.

 

, 로쟈의 말대로 강유원의 장정일 비판은 공감하기 힘들다. 누가 그랬더라. 언젠가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날이 기필코 올 것이라고. 장정일 역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자신의 무지를 밝히기 위해 공부한다고 말했다. 덧붙이자면, 또 다시 한나 아렌트를 빌어 말하자면 나는 내 무지가 이제 악이 될 수 있음을 알기에 공부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너희가 독서를 아느냐 <장정일의 독서일기5>

 

역시 장정일, 가차 없다. (그 이후 쓰인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에도 그의 돌직구는 여전히 곧다.) 지식인들 모두가 장정일처럼 말하길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단지 검은 것을 검은 것이라고 말해주었으면.

 

장정일 문학의 변죽, <정열의 수난 장정일 문학의 변주>, 문광훈

 

장정일에 대해 말한다면서 저자 얘기만 하는 책이라니, 추천이라기 보단 비추의 리뷰다.

 

로쟈의 페이퍼 03

 

가라타니 고진, <정치를 말하다>, <탐구>, <탐구2>

 

로쟈의 리스트 8. 에리히 프롬 읽기

 

<소유냐 존재냐>, <에리히 프롬의 현대성>,

백민정, <맹자 :유학을 위한 철학적 변론>

박홍규, <우리는 사랑하는가 :에리히 프롬의 생애와 사상>



 













14. 기적에 이르는 침묵

 

기적에 이르는 침묵, <봉인된 시간> 타르코프스키

 

타르코프스키에게 있어서 영화란 시간을 빚어내는 것이다. 로쟈는 타르코프스키 영화가 대단히 격렬하다고 말한다. 그는 <노스탤지어>의 분신 장면과 <희생>의 방화 장면을 예로 든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가 격렬하다는 의견에 적극 동감한다.(동지를 만났다) 그의 영화를 볼 때 나로선 몽타쥬보다는 시점의 파괴 때문에 깜짝 깜짝 놀라곤 했다.

 

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에 대하여, 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

 

타키역시 도키 빠였다.

 

이제 나는 우선 도스토예프스키 자신이 쓴 글을 모조리 읽어야만 하겠다. 그리고 그에 관해 쓴 모든 글들 그리고 러시아 종교철학자들이 솔로비요프, 베르쟈에프, 레온체프의 글들도 모두 읽어야 겠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내가 영화 속에서 실현시키고자 하는 이 모든 것들의 총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존재론적 살인과 정치적 살인. <데칼로그 십게, 키에슬로프스키, 그리고 자유에 관한 성찰>

 

로쟈는 살인하지 말지니라만을 읽고 쓴다. 저자는 야첵의 살인을 해명하기 전에 주인공 뫼르소를 분석하지만 로쟈는 곧바로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를 떠올린다. 그러나 그의 살인은 야첵이나 뫼르소와는 달리 합리적이고 계획적인 살인이었다.














 

15. 이미지가 들려주는 것

 

러시아에도 미술이 있어?” <러시아미술사> 이진숙

 

러시아 미술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이콘화와 19세기 이동파, 그리고 20세기 초반의 아방가르드 등이라는데, 로쟈는 특히나 19세기 미술에 관심이 있다고. 이동파의 가장 대표적인 화가는 일리야 레핀이다. 그의 <볼가 강의 배를 끄는 인부들>은 러시아 미술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바실리 페로프<트로이카>, <도스토예프스키의 초상>, 니콜라이 야로센코<삶은 어디에나>의 작품 등을 통해 러시아 미술의 메시지를 느낄 수 있다고. 그것은 삶의 고통과 분노, 비애와 절망에 대한 연민이면서 그럼에도 끝까지 버릴 수 없는 희망에 대한 송가다.

 


참고서적

조토프 <러시아 미술사>

캐밀러 그레 <위대한 실험>

이주헌, <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미술>

 

추의 이미지는 미의 이미지보다 다채롭다.

 

추의 역사, 에코

미의 역사, 에코

 

에코는 <미의 역사>의 자료를 1960년 대 초반부터 모았다고. 미에 대한 개념이 시대에 따라 달라지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비례와 균형과도 같은 기준이 있다면 추의 이미지는 훨씬 다채롭고 풍부하다. 형식의 결여, 불균형, 부조화, 외관 손상, 변형, 불쾌함의 다양한 형상들이 너무 방대해서 단순히 추를 미의 반대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는 게 에코의 주장이다. 즉 모든 아름다움은 서로 엇비슷하지만, 추함은 저마다 제각각이다.

 

미술의 고고학,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박이소.

 

원제는 <믿는 것이 보는 것이다>. 저자 스타니스제프스키는 우리가 보기 전에 이미 작용하고 있는 믿음들에 대해 폭로한다. 미술가가 미술작품을 창조한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오로지 미술의 제도 내로 순환해야만 깊은 의미와 중요성을 획득한다. 뒤샹의 변기를 전시회 좌대에 올려놓고 <>이라 명명함은 고대 인물상을 박물관에 전시하여 <비너스>와 명명한 것과 마찬가지다.

 

참고문헌

존 버거, <이미지>

 

곰브리치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 이미지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

 

곰브리치는 예술은 어떤 시대정신으로 환원하려는 시도에 반대한다. 그가 보기에 예술은 창조적 개인의 소산이다. 그가 미술사가로서 수호하려는 가치가 단지 서유럽의 전통문명이라니, 지나친 유럽중심주의적인 발상 아닌가.

 

철학자 마그리트, 르네 마그리트 수지 개볼릭.

 

로쟈의 말대로 마그리트 그림은 감동을 주진 않는다. 그러나 분명 지성을 자극한다. 저자는 그 유명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의 그림을 분석한다. 이 그림은 더 이상 재현적 회화의 불가능성을 선포한다. 이제 회화는 무한한 가능성과 함께 회화적 불가능성에 직면한다. 이러한 모순으로부터 현대 회화의 가능성과 과제가 동시에 산출된다.

 

베이컨이란 무엇인가, 베이컨 회화의 괴물, 크리스토프 도미노

 

들뢰즈에 따르면 베이컨은 형상적인 것에서 형상을 빼내고자 한다. 그는 외치는 사람들이 아니라 외침 그 자체를 그리고자 한다.

 

기술합성 시대의 예술 작품, 미디어 아트, 진중권

 

미디어아티스트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관심은 예술과 기술의 공조이고, 공진화다. 예술가들은 새로운 첨단 기술을 통해 표현의 가능성을 확장시켜나가고, 기술자들은 그러한 예술에서 더 나은 기술을 위한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근대 미학을 관장해온 칸트적 미학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듯하다. ‘미적 자율성이나 무목적의 목적성같은 개념이 예술과 기술의 극단적인 결합 형태인 미디어아트에는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히려 예술기술을 모두 뜻하던 아트라는 말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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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책 도나 타트 존 어빙 헤밍웨이

 

내가 소설 전체를 통째로 필사한 유일한 작품은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이다. 필사하는 내내 즐거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열권을 뽑자면 한 손가락은 <위대한 유산>에 바쳐질 것이다. 가장 디킨스다운 현대 소설가는 단연 존 어빙이다.

 

<작가의 책> 존 어빙 편을 들춰볼까.

 

당신의 삶을 바꿔놓은 책이 있다면요?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입니다.

 

그리고 가장 핫한 디킨스는 도나 타트가 아닐까.

 

도나 타트의 <황금방울새>는 곧장 디킨스를 떠올리게 한다. 골동품 점의 호비 아저씨는 <위대한 유산>의 조 가저리다

최근에 디킨스의 <오래된 골동품 상점>을 읽고서 그런 추측은 점점 강해졌다.

 

<작가의 책>의 도나 타트 편을 참고해볼까.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입니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들은, 제가 작가가 되고 싶게 만들어준 이들인데, 대부분 19세기 작가들이에요. 디킨스, 멜빌, 헨리 제임스, 콘래드, 스티븐슨, 도스토옙스키 같은 작가들인데, 그 목록에서 맨 앞 자리를 차지하는 이는 아마 디킨스일 겁니다. 20세기 소설가들이라면, 나보고프, 에벌린 워, 샐린저, 피츠제럴드, 돈 드릴로이고, 21세기 소설가들 중에서 지금까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에드어드 세인트 오빈과 폴 머리예요.

 

그런데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이 또 하나 있다.

 

가장 과대평가된 책을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 두 작가는 똑같은 작가를 뽑았다.

누굴까?

 

 

헤밍웨이다.

 

누군가 나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져줬으면 좋겠다.

가장 과대평가된 작가라면 누가 있을까요?”

 

그럼 이렇게 답할텐데.

 

헤밍웨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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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5-13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못미 헤밍웨이 -_- ㅠㅠ

디킨스 좋죠. 저도 무척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위대한 유산 짱짱 조음..

시이소오 2016-05-13 11:32   좋아요 0 | URL
작가의 선호야 그야말로 개인의 취향 아닐까요?
나보코프는 도스토예프스키 싫어했잖아요. ㅋㅋ

위대한 유산 넘 좋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3 11:47   좋아요 0 | URL
ㅋㅋ 무진장 싫어했죠.. 전 나보코프도 좋고 도스토도 좋습니다.

시이소오 2016-05-13 12:05   좋아요 0 | URL
저도 둘 다 좋네요. ㅋㅋ

blanca 2016-05-13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대한 유산>을 필사를 다 하셨다고요? 우아!! 저는 영화부터 봐서 너무 많은 간섭 현상이 일어나더라고요. 저는 <두 도시 이야기>도 좋았어요. 헤밍웨이는 ㅋㅋ 너무 많은 작가들이 부정적인 면을 거론해서 뭔가 넘치거나 부족한 면이 도드라진 것만은 분명한 듯 합니다.

시이소오 2016-05-13 15:04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저는 두 도시 이야기는 아직이네요. ^__^ <무기여 잘 있거라>를 읽고 의아했었답니다.`뭐지, 이게` ㅋ 헤밍웨이는 선호가 갈릴만한 작가 같아요 ^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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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드 (BOLD) - 새로운 풍요의 시대가 온다
피터 디아만디스.스티븐 코틀러 지음, 이지연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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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에 회사를 말아먹었다. 법인을 만들기까지 몇 달을 이리저리 뛰어다녔건만 폐업 절차는 너무도 간단해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였다. 사업을 말아먹는 경험으로 한 마디 하자면, 새로 창업을 준비하는 분들은 창업 전에 이 책을 꼭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백악기에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소행성 하나가 충돌했다. 420제타줄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 인류가 지금까지 터뜨린 가장 큰 핵폰탄보다도 200만 배나 더 큰 힘. 결과는 전 지구적 몰살이었다. 저자인 피터 디아민디스는 지금 또 다시 새로운 소행성이 덮쳐오고 있다고 말한다. ‘기하급수 기술exponentail technology’이 그것이다.

 

세계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를 만든 기업은 어디일까? 이런, 코닥이었다. 1975년도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의 해상도는 0.01메가픽셀이었다. 이스트만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가 기하급수적으로 곧 200만 화소가 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산술급수적으로 30번을 움직이면 나는 아마 30미터 떨어진 곳에 가 있을 것이다. 내가 기하급수적으로 30걸음을 걸으면? 지구 반대 까지 갈까? 아니다. 10억 미터 떨어진 곳. , 지구를 25바퀴 돌고 난 이후의 지점에 서 있게 된다.

 

디아만디스는 기하급수의 6D’ 도식을 제안한다.

 

Digitalization 디지털화

Deception 잠복기

Disruption 파괴적 혁신

Demonetization 무료화

Dematerialization 소멸화

Democratization 대중화

 

기하급수 기술엔 그렇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무한 컴퓨팅(클라우드), 센서와 네트워크, 3D 프린팅, 인공지능, 로봇공학, 크라우드소싱 등이다.

 

100여 개의 기업을 창립하는 데 관여한 아이디어랩 창립자 빌 그로스는 무엇이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지 분석했다. 그 결과, 가장 중요한 요인은 아이디어의 독창성도, 팀의 재능과 실행 능력도, 사업 모델의 질도, 가용 자금이 있는지 여부도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시기 포착이었다라고 그로스는 말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적절한 시기를 포착하는 일이 성공과 실패를 가름하는 데 42퍼센트의 비중을 차지했다.”

 

애덤 그랜트, <오리지널스>

 

기하급수 기업에 무작정 뛰어들기 전에 확인해 봐야 할 게 있다. 시기포착에 실패하면 환멸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트너 하이프 사이클을 확인해 봐야 한다.

 

 

스컹크 워크스와 몰입


1943년 록히드의 수석 엔지니어 클래런스 켈리 존슨은 미 국방부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는다. 유럽 상공에 독일군 제트 전투기가 떴으니, 미국도 그에 맞설 전투기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143일 뒤에 켈리 존슨은 미국의 첫 군용 제트기를 미 국방부로 배달한다. 이후, 록히드의 스컹스 워크스의 팀은 U-2, SR 71, 나이트 호크, 랩터 등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비행기들을 줄줄이 내놓았다. ‘스컹크 워크스팀은 어떻게 그렇게 빠른 시간에 최고의 제품을 만들 수 있었을까.

 

켈리의 규칙은 구글의 8대 혁신 원칙의 하나와 일맥상통한다. “크게 생각하고, 작게 시작하라.” 또한, 이것이 전 세계적으로 오트포르! 운동을 펼치는 포포비치의 원칙이기도 하다. 여기서 저자가 세운 피터의 법칙몇 가지만 살펴볼까.

 

피터의 법칙 끈질기고 열정적인 사람의 신념

 

1. 일이란 잘못될 수 있다. 그러면 고치면 된다.

2. 선택할 수 있을 때는 2가지 모두 선택하라.

3. 프로젝트가 여러 개라야 성공도 여러 개다.

5. 책에 쓰인 대로 하라. , 저자가 되라.

7. 이길 수 없으면 규칙을 바꿔라.

13. 의심될 때는 생각해라!

15. 우는 아이 젖 준다.

25. 일찍 실패하고, 자주 실패하고, 진취적으로 실패하라.


이 책의 1, 2부는 다른 책에서도 쉽사리 접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이 책의 백미는 3부다. 키바, 인디고고, 킥스타터 같은 크라우드 펀딩 및 크라우드 소싱에 대한 정보. 아이디어는 있는데 돈이 없다고? 크라우드 펀딩이 있다.

 

크라우드 펀딩은 투자자가 대가로 무엇을 받느냐에 따라 네 종류로 나뉜다. 기부형, 대출형, 주식형, 보상형이 그것이다.

 

기부형 ; 전통적인 자선 사업의 디지털 형태다. ex) 도너스추즈, 글로벌기빙, 코지스 등

대출형 ; 소액 대출 또는 P2P대출 방식. 기업가가 크라우드에게 대출을 요청하고 그 대출액에 이자를 붙여 갚는다

              ex) 키바나 랜딩클럽

주식형 : 기업가들이 회사 지분을 온라인으로 팔면서 투자자들에게 현금을 요청할 수 있다.

             ex) 크라우드펀더, 스타트업 크라우드펀딩, 에이전리스트 등

보상 또는 인센티브형 : ex) 인디고고, 킥스타터, 로켓허브 등

 

크라우드 펀딩 12단계 핵심원칙

 

1. 무엇을 가지고 크라우드펀딩할 것인가? ; 제품, 프로젝트, 서비스

2. 얼마나 추진하나? : 목표액 정하기

3. 얼마 동안 추진하나? 캠페인 기간을 정하고 일정 만들기

4. 보상 또는 인센티브와 확장 목표 정하기

5. 완벽한 팀 꾸리기

6. 도끼를 갈자 : 계획, 자료, 자원

7. 의미 있는 스토리텔링과 올바른 용어 선택

8. 홍보 영상 만들기 : 3가지 용도, 공유성, 인간화

9. 들어줄 사람 만들기 : 제휴자, 지지자, 활동가

10. 슈퍼 신뢰성을 가진 출범식, 초기 기부자 참여, 미디어 지원

11. 주별 실행 계획 : 참여, 참여, 참여

12. 데이터에 기초한 의사 결정을 내려라.

 

5. 완벽한 팀꾸미기

 

디아민스키는 5가지는 필수고 2가지는 선택이라고 말한다.

 

1. 유명인사 (캠페인의 얼굴)

2. 캠페인 매니저와 전략가

3. 전문가

4. 그래픽 디자인 담당자

5. 기술 매니저

6. 홍보 매니저(선택)

7. 슈퍼 인맥(선택)

 

최근 페블워치와 우분투 등 기존의 크라우드 펀딩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운 크라우드 펀딩이 있었다. 라이언 그레퍼가 진행한 클리스트 쿨러 캠페인에 62천 여명의 사람들이 13285,226달라의 후원을 약속했다. (한화로 대충 130, 허걱)

 

엘론 머스크, 제프 베조스, 이 책의 저자인 피터 디아만디스는 우주여행과 관련된 산업을 펼치고 있다. 장 지글러에 따르면 전 세계 84천 만 명이 기아 상태다. 5초마다 어린 아이 한 명이 굶어 죽어가는 판국에 우주여행이 무슨 소용인가? 소수를 위한 우주여행이 인류에 대한 헌신이란 말인가?

 

돼지 같은 자본주의와 전 세계의 기아를 종식시킬 아이디어가 있다. 만일 이 아이디어가 실현된다면 한국 족벌 재벌들도 끝장낼 수 있다. 다국적 기업이나 한국 재벌들은 이 아이디어를 절대로 실현시킬 수 없다. 탐욕 때문에. 오히려 기를 쓰고 막을까 걱정이다.

 

자본과 인력만 있다면 향후 2~3년 안에 실현시킬 수 있다.

크게 생각하고 작게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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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a 2016-05-12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터의 법칙 2번 가져가요

시이소오 2016-05-12 13:55   좋아요 0 | URL
다다익선이네요 ^^

:Dora 2016-05-12 13:57   좋아요 0 | URL
쉽지는 않네요 ㅎ말씀대로 열정적이지 않음 힘듬

시이소오 2016-05-12 14:11   좋아요 0 | URL
동감입니다. 열정을 불러일으키도록 끊임없이 채찍질을 ㅋ

:Dora 2016-05-12 14:14   좋아요 0 | URL
채찍..... -.-;;

시이소오 2016-05-12 14:20   좋아요 0 | URL
영혼의 채찍질이죠 ^____^;;

페크pek0501 2016-05-12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우주 여행이니 우주 개발이니 하는 기사를 보면 기아 문제를 떠올립니다. 그래도 되나? 무엇이 옳은가?
한쪽에서 굶어 죽더라도 발전을 향해 전진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깊은 밤에 켜 있는 건물 조명도 그래요. 그 전기를 아껴서 불우 이웃을 돕는 것이 나은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스치거든요.

피터의 법칙, 13. 의심될 때는 ‘생각’해라! - 최근에 이 법칙대로 하지 않았어요. 의심이 되었는데 그 생각을 하지 않고 수다만 떨었어요. 친구들과 음식점을 잘못 찾아 들어가서 그때 왔던 음식점과 다르네, 하면서 의심하지 않고 수다 떨며 밥을 먹고 나오다가 간판을 보고 나서야 잘못 들어간 걸 알고 친구들과 웃었답니다. 바보 짓을 한 거죠. 뭔가 이상하면 간판을 보든지 누구에게 물어 보든지 해야 하는 건데... 인간이 어리석다는 걸 저를 통해 잘 압니다... ㅋ

시이소오 2016-05-13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주여행도 좋은 일이겠지만 그걸 인류에 대한 `헌신`이라고 말하는건 너무 자기합리화가 아닌가 싶어서요.

잘못들어간 음식점 맛이 별로셨나봐요 ^^;

윙헤드 2016-06-18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시이소오님은 저보다 한참 선배셨군요!! 응원합니다!!

시이소오 2016-06-18 20:57   좋아요 0 | URL
선배라기보단 먼저실패한자죠
윙헤드님도 화이팅입니당 ^^
댓글저장
 

6.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천한 것과 돼먹잖은 놈의 진화 ,

<다윈의 대답1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은 있는가>, 피터 싱어,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다윈주의 좌파의 가능성을 타진한다고.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설명하듯 극단적인 이기주의 전략보다는 협력적 전략이 생존에 더 유리하다.

 

윤리적 노하우와 가상적 인격, <윤리적 노하우> 프란시스코 바렐라.

 

저자가 보기에 윤리는 노핫know what’의 문제가 아니라 노하우know how’의 문제. 즉 이성적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자발적 대처의 문제라고 한다. 윤리는 규칙보다는 오히려 습관을 따른다고. 바렐라는 특히 맹자의 인간 본성론에 주목한다. 또한 그는 앞 장에서도 언급했듯 우리의 자아가 비어있다고 주장한다. 동양인인 우리로서는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관점이다.

 

참고 서적

마투라나, <있음에서 함으로>

데닛, <자유는 진화한다>

지젝, <시차적 관점>


 














호모 무지쿠스가 부르는 여섯 가지 노래

 

호모 무지쿠스, 대니얼, J 레비틴

뇌의 왈츠, 대니얼 J 레비틴

 

레비틴은 인류학자, 고고학자, 생물학자, 심리학자 모두 인간의 기원을 연구하지만, 음악의 기원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다고 말했지만, 예외적인 인물이 스티븐 핑커다. 그는 음악을 귀로 듣는 치즈케이크라고 말했다. 비유는 말랑말랑하지만 의미는 가혹하다. 핑커가 보기에 음악은 치즈 케이크만큼이나 생존이나 번식에 도움이 되지 않기에, 딱히 연구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레비틴은 <뇌의 왈츠>를 통해 핑커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음악도 진화의 산물임을 주장한다. <호모 무지쿠스>는 이러한 주장의 확장판이라고.

 

즐거운 노래를 들으면 세로토닌의 수치가 증가하여 기분을 좋게 하고 활기를 불어넣으며 스트레스를 줄이고 면역계를 튼튼하게 한다. 슬픈 노래는 프롤락틴을 배출시켜 기분을 전환해 준다.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에 <역사상 가장 완벽한 사랑 노래>마이크 스코트의 <모두 가져와>를 꼽았다고.















 

아버지의 역사, 아버지들에 대한 찬사

<아버지들에 대한 찬사>, 시몬느 코르프 소스

<노아의 외투> 필리프 쥘리앵

 

<아버지들에 대한 찬사>아버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그렇지만 부성의 과거 모델이 작동하지 않기에 새로운 모델을 찾아야 하는 게 오늘날 아버지들이 직면한 현실이다. ‘부성의 과거 모델은 필리프 쥘리앵의 <노아의 외투>가 요긴하단다. 원래 아버지의 일차적 의미는 정치적, 종교적 아버지였다. 이런 의미에서 아들을 낳았기 때문에 아버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이기 때문에 아들을 낳는다.

 

이러한 아버지18세기 루이 16세의 처형으로 커다란 전환을 맞는다. ‘부친 살해에 의해 정치적, 종교적 아버지에서 오로지 가정으로 아버지의 역할이 축소된다. 또한 아버지의 권리를 말하던 시기는 지나가고 아이의 권리라는 새로운 관심사가 등장한다. ‘아이의 권리가 중시되고 어머니의 권리가 강화되면서 아버지의 권리는 더더욱 축소된다.

 

프랑스의 아버지는 다른 나라보다 더 독특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임신을 장려하기 위한 정부 정책의 일환으로 아버지가 아이를 양육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국가가 아이들을 양육하기 때문이다. 즉 프랑스 아버지는 더더욱 아버지의 권한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아버지로서 좋은 시절은 다 끝났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아버지의 권위가 무너지면 무너질수록 사회는 더 좋아질 것을 믿는다.

 

남성과 여성 그리고 소통

<남자를 토라지게 하는 말, 여자를 화나게 하는 말>, 데보라 테넌

<남자다움에 관하여>, 하비 맨스필드

 

저자인 데보라 터넌은 남성과 여성의 언어에도 성차가 있다고 주장한다. 남성의 대화 목적이 독립이라면 여성의 대화 목적은 친교. 이런 차이로부터 소통은 가능할까? 저자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길 충고한다. 그러나 <남자다움에 관하여>를 쓴 하비 맨스필드는 성별간의 차이를 부인할 수 없다면 언어적 차이 또한 부인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행동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7. 언어의 종말과 이야기의 향연

 

거꾸로 바벨탑 이야기. <언어의 종말>, 앤드류 달비.

 

저자인 앤드류 달비에 따르면, 오늘날은 언어의 분화 과정이 아니라 언어의 통합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것이 현재 인류가 처한 위험이라고 본다. 그는 21세기엔 25백개의 언어가 사라지고 약 200개의 언어만이 생존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렇다면 언어가 사라지는 게 왜 문제란 말인가?

 

언어학자로서 저자가 우려하는 것은 세계의 각 언어로 전승되고 보존되어온 지식을 우리가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번역할 때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직접 건너갈 수 없으며 항상 현실 세계를 거쳐서 가야만 한다. 이때 각 언어는 세계를 보고 나누고 구분하는 각기 다른 관점을 갖고 있으며 이에 따라 그것이 그려내는 현실 세계의 지도도 다를 수밖에 없다. 즉 각 언어는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에 대해서 각기 다른 통찰력을 제공해주며 우리에겐 그러한 대안적인 세계관이 필요하다. 한 언어의 소실은 곧 인간 경험을 이해할 수 있는 한 가지 대안의 상실이다. 게다가 보다 중요하게는 다른 언어와의 상호작용만이 우리 각자의 언어를 더욱 유연하고 창조적으로 만들어 준다.


외국어를 배울 때 마다 언어가 하나면 안 되는 거야? 그런 거야?’ 라는 투정을 부리곤 했었는데, 그렇구나. 소통되는 언어가 적어질수록 사유의 폭도 그만큼 얇아지리라.

 

이야기 탐구의 철학적 향연, <서사철학> 김용석

 

로쟈의 철학자 김용석에 대한 상찬이 인상 깊다. ‘유래없는 깊이와 넓이’, ‘거대한 향유 고래가 수면으로 솟아오르는 걸 보는 기분이라니. 부끄럽게도 난 이 책을 통해 김용석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했다. 로쟈의 상찬은 계속된다.

 

세상 자체가 이야기의 중층 구조다. <서사철학>은 이러한 이야기들의 세계, 이야기들의 우주에서 무엇을 읽을 수 있고, 무엇을 해석할 수 있는지 시범적으로 보여준다. 한마디로 장관이다.

 

내러티브적 인식과 인문 과학, <내러티브, 인문과학을 만나다>, 도널드 폴킹혼.

 

저자는 인간은 세 가지 존재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물질 영역과 유기체 영역, 그리고 정신(의미) . 이 중 오로지 의미 영역만이 인간 존재의 고유한 영역이고 내러티브는 의미 영역의 작용 가운데 하나다. 저자는 기존의 의미의 철학으로부터 한 걸음 나아가 의미의 영역이 사물이나 실체가 아니라 활동임을 강조한다. 물질 영역이 자연과학적 방법에 의해 연구되듯 의미영역은 역사학과 문학비평이 참조점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인문과학은 역사학과 문학이론에 더 치중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소설 이론의 역사> 윌리스 마틴

미케 발.

 













8. “ 너희가 한국어를 믿느냐?”

 

이것이 번역이다.

번역의 탄생, 이희재

<번역은 반역인가> 박상익

 

이희재는 들이밀기와 길들이기의 딜레마에 대해 말한다. 직역과 의역 사이에서의 고민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예전엔 발코니를 툇마루로 치즈를 소젖메주로 번역했다고 한다. 길들이기의 예다. 저자는 길들이기로서의 의역을 더 강조한다. “번역이란 외국어를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한국어를 바로 세우는 작업이다라고 말한다. 그가 외국어의 부자연스런 조어를 한국어의 특징을 최대한 살려 쓰자는 주장에 대해선 적극 동감한다. 번역이 저자를 위해서 라기 보단 독자를 위한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을 따르자면 과도한 길들이기는 오히려 독자에게 해를 끼치진 않을까. 로쟈는 번역에서도 들이미는일은 이제 그만했으면 싶다고 말한다. 내 바램은 적어도 한국 소설이라면 외국 소설인양 일명 번역체 문장이라는 마스카라로 떡칠하는 추태는 그만 벌였으면 싶다. 한국 문단은 포용심이 넓은 건가? 이런 소설가에게 상 좀 그만 안겨줘라. 정말이지 난생처음으로 책 읽다 토할 뻔했다.

 

너희가 한국어를 믿느냐?” <번역비평> 창간호.

 

정가 2만원인 책 2천부를 초판으로 찍었을 때 역자가 받을 수 있는 최대 수입은 320만원 정도라고. 번역료가 번역의 적이었다. <뉴욕 타임스> 서평란의 경우 30~40면이라니! 허걱.

 

번역가의 겸손 혹은 소명의식, <번역, 권력, 전복> 로만 알바레즈

 

오역을 언급한다. ‘하느님의 양신의 횃불이 되고. lamblamp로 해석했다.

 

니체와 문체의 속도, <번역 이론>, 라이너 슐테 외 엮음.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데 가장 어려운 것은 그 문체의 속도이다













 

니체, <선악의 저편>

 

예를 들자면 니체는 독일어의 경우 빠른 템포presto’를 거의 표현할 수 없다며 유감스러워했다. 한참 웃었다.

 

우리, 적어도 말인은 되지 말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얼굴 찌푸리게 하는 25가지 인간유형> 류짜이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는 ‘Übermensch’‘der letzte Mensch’를 말한다. 영미권에선 ‘superman/overman’으로 번역되고, 우리나라 번역서에선 주로 초인최종 인간으로 번역되곤 한다. ‘초인이란 역어는 대체적으로 합의를 이룬 듯 하나, ‘der letzte Mensch’비천하기 짝이 없는 인간’, ‘말종 인간’, 최후의 인간등등 아직까지 딱히 하나의 공통된 역어가 없는 실정이다. 이에 로쟈는 <얼굴 찌푸르기 하는 25가지 인간유형>을 참조해 말인末人이란 역어를 제안한다. 그에 따르면 말인이란 일반인들보다 하급으로 퇴화하여 위축되고 창조력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보잘것없는 인간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말인이란 말은 루쉰이 만들어냈다고. 루쉰의 Q‘가 이런 말인이었다. 류짜이푸의 설명에 따르면 소인은 생리적이거나 지적인 면에서 일반 사람과 동일하지만 품격이 떨어지고 인격이 보잘것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말인은 대부분 우매하면서 선량하다.

 

말인은 지혜가 없는 대신 어느 말에나 순종한다. 힘은 없는 대신 상대방의 기분을 잘 맞춘다. 이렇게 되면 사회적으로 대량의 바보 언니가 세세 대대로 뒤를 이을 것이며 미래 사회는 말인이 좌지우지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이러한 사회의 미래에 멸망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질 것은 누가 봐도 자명한 일이다. 우리들이 한사코 말인의 대량 출현을 막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로자의 페이퍼 02. 니진스키의 고백, 니진스키 영혼의 절규

 

무용가 니진스키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울었다니, 그 생각만 하면 로쟈도 눈물이 난다고.

이건 뭐 달리 대책이 없다. 읽으면서 같이 우는 수밖에

 














9. “어머니가 나를 사랑한다니까!”

 

수레바퀴 밑에서데미안의 차이.

 

<수레바퀴 밑에서> 헤르만 헤세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책은?”이란 질문에 로쟈는 단연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밑에서>라고 답했다고. 로쟈에겐 이 책의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가 죽었을 때만큼 슬픈 적은 없었다. 한편 <데미안>은 데면데면했다고. 몇 번씩이나 읽다 그만두고 얼마 전에야 완독했다고 한다. 로쟈는 누구나 한번은 미치게 만드는 책의 마력이 여전히 미심쩍다며 <데미안>나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한다. , 이 얼마나 특별한가. 나는 <데미안>읽고 미쳤었으니 또한 이 얼마나 평범한가.

계란이나 깨버릴까.

 

헤세의 차라투스트라 VS 니체의 차라투스트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디리히 니체

 

헤세는 열세 살 때 니체를 읽고 그의 추종자가 아니며 니체 철학은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열세 살 때?? 그러나, <데미안>의 싱클레어는 니체 빠였다.

 

카프카 문학의 기원.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 카프카

 

아버지야말로 카프카 문학의 기원이라는 것.

 

어머니가 나를 사랑한다니까!” <최초의 인간>

 

어머니야말로 카뮈 문학의 기원이라는 것.

 

카프카가 아버지에 대한 증오 때문에 펜대를 잡았다면

카뮈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 때문에 펜대를 잡았다.
















 

10.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단 한 번뿐인 삶 VS 영원회귀,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쿤데라가 보기에 영원회귀 사상이 역으로 주장하는 바는, 한 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삶이란 그림자에 불과하며 아무런 무게도 갖지 않는 무의미한 삶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한 번의 실수처럼 정상 참작의 대상이 되며 노스탤지어까지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반대로 인생의 매 순간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우리는 마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처럼 영원성에 못 박힌 형국이 된다. 더불어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는 엄청난 무게의 책임을 짊어지게 될 것이다. 영원회귀의 삶이 너무도 무거운 삶이라면, 단 한 번의 삶은 깃털만큼이나 가벼운 삶이다. 짐이 무거울수록 우리의 삶은 지상에 더 가까워지면서 생생한 현실감을 갖게 될 테지만, 반면에 짐이 전혀 없다면 우리의 존재는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워지면서 자유롭다 못해 무의미해질 것이다. 그리하여 쿤데라는 묻는다. “그렇다면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무거움, 아니면 가벼움?”

 

아인말 이스트 카인말Einmal ist Keinmal’, 한 번 일어난 일은 전혀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쿤데라는 토마스가 바로 이 한 문장에서 태어났다고 말한다. 토머스는 주로 여성들의 차이에 주목한다. 그는 여성들 간의 백만분의 일의 차이에 사로잡힌다. 테레사를 만나면서 토마스는 새로운 독일어 문장으로 대체된다. 에스 무스 자인Es muss sein”, 즉 그래야만 한다. 로쟈는 토머스가 가벼움의 세계에서 무거움과 필연성의 세계로 돌아갔다고 말한다.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서 진동하는 토마스의 삶은 한 번뿐인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그래야만 한다사이에 걸쳐 있는 삶이기도 하다. 어느 쪽이 옳은가? 오직 단 한 번밖에 살지 못한다면 그러한 가치판단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그것이 영원회귀의 사상이 던져주는 메시지다.

 

단 한번 뿐인 삶은 가볍고, 영원회귀하는 삶은 무거운 걸까? <무의미의 축제>에서 쿤데라는 말했다. 삶이 무의미하다고. 그렇지만 우리는 그 삶을 사랑해야 한다.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서정적 바람둥이와 서사적 바람둥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이 소설엔 두 가지 정본이 있다. 체코어본, 프랑스어본인데 현재는 프랑스어본 번역만이 통용된다. 쿤데라는 자신과 세계와 타인에 대한 인간의 두 가지 태도서정적인 것서사적인 것으로 구분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프랑스인에게는 낯설었다. 그래서 서정적 바람둥이낭만적 한량으로, ‘서사적 바람둥이자유주의적 한량으로 바꾸는 것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고. 이런 이분법은 우리에게도 낯선 것이 되고 말았다기보다는 지금도 낯설다.

 

쿤데라의 안나 카레니나와 비인칭적 열정

 

<안나 카레니나>

<소설의 기술>

<커튼>

 

토마스와 테레사의 강아지 이름이 카레닌이었다니. 쿤데라의 톨스토이에 대한 오마쥬? 쿤데라는 <안나 카레니나>자살의 산문성에 대한 톨스토이의 탐구라고 했다고.

 

로쟈의 리스트 6. 정홍수의 평론집 <소설의 고독>

가라타니 고진, <근대 문학의 종언>

신형철, <몰락의 에티카>

 

밀란 쿤데라의 보헤미안적 삶과 성찰, <커튼> 밀란 쿤데라

 

체코 작가로 활동했지만 체코에게 쫓겨나 프랑스에서 프랑스어로 소설을 쓰는 쿤데라는 체코 작가프랑스 작가로 불리기 보단 중부유럽 작가로 불리길 선호하고, 더 나아가 보헤미아인이라 불리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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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5-12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쿤데라도 그렇고 카프카도 그렇고... 좀 이쪽 사람들이 범세계적 글쓰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카프카적 글쓰기를 소수의 문학이라고 하더군요.

시이소오 2016-05-12 09:28   좋아요 0 | URL
앵글로 색슨적 문학보단 슬라브적 문학에 더 공감이 가네요.
주변인, 망명자, 유배당한 자, 디아스포라, 유목민적 글쓰기라고 할까요.
노마디즘을 주장하는 들뢰즈나 가타리에게도 카프카가 더 와닿을거에요.

읽는 책마다 체스와프 미워시의 <사로잡힌 마음>이 불쑥불쑥 튀어나와서
읽고 싶은데 아직 미번역이네요.

몇몇 작가를 제외하면 동유럽 작가들은 아직 우리에겐 낯선 문학이 아닐런지요?
그야말로 `소수자`문학인 듯.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2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적없음.. 혹은 소속 없음이 카프카와 쿤데라 문학의 정체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보코보도ㅗ 같은 부류... 이들도 늘 모국어보다는 다른 언어를 사요앴으니 말입니다.

시이소오 2016-05-12 09:53   좋아요 0 | URL
일본어로 쓰긴 하지만 한국에도 서경식 선생님이나 강상중과 같은 `디아스포라` 작가들이 있죠.

소수자, 경계인, 혹은 경계 밖으로 쫓겨난 자의 문학은 아무래도 기존의 가치에 의문을 제시하기에
`우리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동성애자, 여성에 대한 열등감이 있어요.)

`디아스포라 문학`의 계보를 추적해 보고 싶네요 ^______^

alummii 2016-05-12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읽고싶은 책 많네요 추천감솨...

시이소오 2016-05-12 12:56   좋아요 1 | URL
저도 차근차근 읽어봐야 겠어요 ^^

페크pek0501 2016-05-13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수레바퀴 아래서와 데미안을 읽었는데
지금 다시 읽어 보면 그때 놓친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될 것 같아요.

오늘 날씨가 아주 좋아 걸으면서 기분이 좋았어요. 미세먼지가 없는 날의 행복을 만끽했어요.
내일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좋은 밤 되세요...

시이소오 2016-05-13 09:40   좋아요 0 | URL
헤세, 저도 다시 읽어보고 싶어요. 어제 저도 가까운 근교 산책 다녀왔어요. 오늘은 서서히 날씨가 개일듯 합니다.

화창한 하루 되시길 ^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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