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그녀를 잃었다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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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이 워낙에 핵폭탄 급 소설이어서인지, <드라운>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그녀를 잃었다> 역시 오스카 와오를 뛰어 넘지는 못했다. 주노 디아스의 필력이 떨어져서라기보다는 단편이라는 한계 때문이다. 이야기가 계속 되었으면 좋겠는데, 끝난다.

 

단편은 대체로 여자만 보면 환장하는 수시오’(난잡한 놈)이자 페로’()인 도미니카노(도미니카 남자들)들이 자신들의 라보를 함부로 휘두르다 사랑하는 여자를 잃고 마는 안타까운 비극이 주를 이룬다. 제목의 이렇게<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메테셀로 전문가인 오스카 삼촌 루돌포처럼 했다는 뜻이다.

 

코헤 댓 페아 이 메테셀로!! (못생긴 계집애를 자빠뜨려서 그냥 거시기를 집어넣어!)”

 

줌파 라히리 책을 읽으면 이탈리아 어를 배우고 싶고, 줄리언 반스나 더글라스 케네디 소설을 읽으면 프랑스 어를 배우고 싶듯, 주노 디아스 책을 읽으면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다.

(책을 읽으며 임병수의 <아이스크림 사랑>을 흥얼거렸다. )


여기엔 주노 디아스의 전 작품을 번역한 권상미 번역가의 세심하면서도 사려 깊은 번역도 한 몫 한다. (권상미 번역가는 최근에 도미니카 여행을 다녀왔다고.)

 

바람 피우다 들킨 유니오르는 여친 마그다에게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하지만 마그다는 툭하면 필경사 바틀비처럼 말한다. “안 하는 편이 낫겠어.”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마그다와 도미니카로 여행을 왔건만 보카’(수다쟁이)였던 마그다는 유니오르에게 말조차 건네지 않는다. 게다가 도미니카 형제들은 가는 곳마다 유니오를 무시한 채, 마그다에게 들이대기 바쁘다


투시 에레스 베야, 무차차” (아가씨, 정말 미인이시네요.)

<해와 달과 별들>

 

다른 단편에서도 유니오르는 여친 알마 몰래 락스미와 바람피다 들킨다. 유니오르는 다리보다 환상적인 포폴라알마를 무녜카(인형)라 부른다. 알마는 말한다.

 

좆도좀만하다고

좆도없다고

게다가 제일 심한 건 인도커리처바른씹만좋아한다고

 

유니오르는 락스미가 기아나 출신이라고 반박하려 하지만 알마는 듣지 않는다.

여기서도 유니오르는 그녀를 잃었는다. <알마>

 

<플라카>에서 유니오르는 바람 피다 또 다시 플라카를 잃는다. ‘바람피다 걸리면 마체테를 꽂아주겠다는 여친의 협박에 맹세에 맹세를 거듭했음에도 유니오르는 또 다시 바람을 피워 그녀를 잃는다. 시간이 가도 유니오르는 그녀를 잊지 못한다. 그리고 그는 엑스의 이름을, 그리고 그 옆에 이 말을 적는다.

 

사랑의 반감기는 영원이다

<바람둥이의 사랑 지침서>

 

이외에 유니오르보다 더 막장 수시오인 형, 라파와 그의 어머니 얘기가 주를 이룬 단편인 <닐다>, <푸라 원칙>등이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단편은 유니오르가 등장하지 않는 -‘오스카 와오 연작이 아닌- 단 하나의 단편, <오트라비다, 오트라베스>. 아메리칸 드림의 꿈을 품고 미국으로 온 도미니카 이민자들의 이야기다. 주노 디아스의 여타의 소설들이 희극이라면 <오트라비다, 오트라베스>는 비극이다. ‘는 고향에 세 아이들을 두곤 온 아나 이리스와 공동 주택에서 살아간다. 공동 주택으로 가끔씩 빵공장에서 일을 하는 그녀 애인인 라몬이 찾아올 때도 있다. 라몬은 산타 도밍

고에 처자식을 두고 있지만 그녀와 바람이 났다. 아나 에리스는 그를 사랑하는지 묻는다. 그녀는 산토도밍고 옛날 집의 전등 얘기를 한다.

 

그 불빛이 얼마나 깜빡였는지, 과연 저 불이 꺼질지 안 꺼질지 알 수 없었다고. 우리는 하던 일을 내려놓고 불이 마음의 결정을 할 때까지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기다려야 했다고. 내 감정이 꼭 그래.”

 

라몬에 대해 선택권이 없듯이 디아스포라인 그녀에게 미국은 마치 고향집 전등 불빛과도 같다. 집에 두고 온 아이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아나 에리스는 과연 아이들을 데려올 수 있을까.

 

<오스카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에서 주노 디아스는 푸쿠를 말했다. 삶은 트루히요같은 저주다. 그러나, ‘사파도 있는 법. 푸쿠에 대한 역 주문. 삶은 축복이다. 디아스는 이민이란 한 번의 인생이 아니라 여러 인생을 사는 것이라 말했다. 우리 역시 이곳에서 여러 인생을 살 수 있다. 사랑이 있으므로.

 

오트라비다, 오트라베스.

다른 생을, 다시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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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hika 2016-05-11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ch.yes24.com/Article/View/30484
ㅎㅎ읽어보세요

시이소오 2016-05-12 06:41   좋아요 0 | URL
아우, 감사합니다. 에티카님. yes24엔 이런 인터뷰도 있군요.

역시나 역자도 <오트라비다, 오트라베스>를 뽑았네요. ^-------^
 

6개월 동안, 240여 권의 책을 읽었다곤 하지만 그 중 반은 읽으나 마나한 책이었다. 닥치는 대로 읽은 결과 적중률이 시원치 않은 탓이다. 믿을만한 가이드를 찾아 책 지도를 만들어 영토화하리라.

 

1. 가장 아름다운 지상의 양식

 

젊은 날 로쟈에겐 사르트르가 영웅이었다. 사르트르의 책 중, 나는 <구토>외엔 다른 책은 안 읽은 반면 로쟈는 <구토>빼고 다른 책들은 다 읽었다고. 90학번 이후의 세대들에겐 사르트르가 한 물 간 철학자처럼 보여 졌기 때문일까.

 

<존재와 무>, <문학이란 무엇인가>,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이제 생각이 난다. 지난날 내가 바닷가에서 그 조약돌을 손에 들고 있었을 때 느꼈던 것이 뚜렷하게 생각난다. 그것은 시크무레한 일종의 구토증이었다. 그 얼마나 불쾌한 것이었던가! 그런데 그것은 그 조약돌 탓이었다. 확실하다. 그것은 조약돌에서 손아귀로 옮겨졌었다. 그렇다. 그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손아귀에 담긴 일종의 구토증

 

- 사르트르, <구토

 

로쟈는 닉 레인의 <미토콘드리아>는 대충 서론만 읽고 쓴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터득하신 듯. ‘아포토시스는 예정된 세포 자살이라고 한다. 모든 세포는 더 큰 이익을 위해 몸 전체를 위해 자살을 하는데, 아포토시스가 일어나지 않으면 암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세포의 입장에서 보자면 두 가지 길 밖에 없다. 숙주를 위해 자살을 하는 방법, 자신을 위한 자유를 찾는 방법. 그러나, 자신의 자유는 곧 숙주를 숙여,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

 

세포의 두 갈래 길에 대한 명상은 프란시스코 바렐라의 <윤리적 노하우>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네오포네라 아피칼리스라는 개미 집단은 전체를 조정하는 중앙 통제적인 자아를 갖고 있지 않음에도 마치 하나의 유기체인 것처럼, 전체의 중앙에서 조정하는 행위자가 있는 것처럼 움직인다고. 바렐라는 이것을 무아적 자아혹은 가상적 자아’, ‘자아없는 자아라고 부른다.

 

선종의 스님들은 툭하면 개미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하곤 조사에게 묻곤 하던데

로쟈의 말을 따르자면 개미에게도 불성이 있다.’

 

제일 지식인 중에 서경식이란 이름은 들었어도 강상중이란 이름은 금시초문이었다. 서경식이 소프트하다면 강상중은 하드하다고. 강상중 씨는 일본 극우파의 공격에 대비해 강연에 나갈 때는 배에 신문지를 넣고 다닌다고 한다.

 

인생은 한 갑 성냥을 닮았다. 소중하게 다루는 건 어리석다. 소중하게 다루지 않으면 위험하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언제나 나는 나 자신을 후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현 듯 정신을 차리고 보면 내 앞에 아무도 없고 어느새 내가 전위가 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나는 언제까지나 후위라고 생각하거니와 후위라는 사실을 영광으로 여긴다. 그럼에도 내가 마치 전위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만큼 일본이라는 사회가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 강상중, <청춘을 읽는다.>














 

로쟈의 리스트 1

 

마스모토 겐이치, <기타 잇키>

히틀러1

스탈린 강철권력

네차예프 혁명가의 교리문답

괴셀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탄생

 

2. 책 읽기와 글쓰기.



 












로쟈하면 지젝아닌가? 여기선 지젝의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향락의 전이> 두 권에 대해 말하는데 책에 대해서라기보다는 번역에 대한 문제 제기다. so far as를 이상(理想)으로 번역했다니! 시라노 백작은 키라노 백작이 되고.


 

무질의 소설 <특성없는 남자>에 등장하는 도서관 사서는 350만권의 장서들에 대한 총제적 시각을 유지하기 위해 책은 읽지 않고 제목과 차례만 본다고. 이때만 해도 <특성없는 남자>가 출판되지 않았었나 보다. <특성없는 남자> 1권을 작년에 읽었었는데, 주인공이 도서관 사서였음?? 왜 전혀 기억이 안 날까? 독서를 위해서는 인생이 짧다. 어떻게 해야할것인가? <읽지 않는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의 저자의 충고는 이렇다.

 

중요한 것은 책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얘기를 하는 것, 혹은 책들을 통해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이다.”















 

<햄릿에 관한 앙케트, 귀머거리들의 대화>

 

<, 열 권을 동시에 읽어라> 나루케 마코토.

 

저자는 물리학, 문학, 전기 및 평전, 경영학, 역사, 예술 등 전혀 다른 장르의 책을 적극적으로 넘나들며 동시에 읽을 것을 충고한다. 다치바나 다카시와 마찬가지로 저자 역시 문학책은 읽을 가치가 없다고 말한다.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다가 요즘 들어 너무 편중된 독서를 하는 듯.

 

<독서력>, 사이토 다카시.

 

사이토 다카시는 문학 작품 100권과 교양서 50권 정도를 독서력 기준으로 제시한다. 독서력에 탄력이 붙으면 책 수준에 따라 속독과 정독을 병행하라고. 이후에는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으라고 말한다.

 

김봉석, <전방위글쓰기>

오병곤, 홍승완, <내 인생의 첫 책 쓰기>

박미라, <치유하는 글쓰기>

애디 딜러드, <창조적 글쓰기>

 













김봉석은 일주일에 원고 2,3매라도 꾸준히 쓸 것을 충고한다. 그 다음에는 책을 쓰면 된다. <내 인생의 첫 책 쓰기>는 저자들 자신들이 책을 낸 경험을 바탕으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책을 쓰는 것 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말한다. <치유하는 글쓰기>는 글쓰기 자체가 힐링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글쓰기에 소질과 열정도 있다면 <창조적 글쓰기>처럼 글을 쓰는 삶을 추구할 수도 있다.

 

로쟈의 리스트2 : 한겨례 지식문고 1차분

 

3. 교양이란 무엇인가

 

고미숙,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장정일, <장정일의 공부>

강유원, <몸으로 하는 공부>

신영복,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고미숙은 공부하는 인간을 호모 쿵푸스라 부른다. 다른 말로 이권우는 호모 부커스라 했다. 장정일은 이탁오의 말을 듣고 눈물이 핑 돌았다고.

 

나이 50 이전에 나는 정말 한 마리 개와 같았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어대자 나도 따라 짖어댄 것일뿐, 왜 그렇게 짖어댔는지 까닭을 묻는다면, 그저 벙어리처럼 아무 말없이 웃을뿐이었다.”

 

강유원이 강조하는 것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로 학이 정신의 일이라면 은 몸의 일이다. 즉 머리로 배우고 몸으로 익히라는 말이다. 이러한 몸으로 하는 공부의 모범적인 사례로 로자는 신영복을 들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신영복 선생이 감방 안에서 노촌 이구영 선생으로부터 서예와 동양 고전, 한학을 배운 것은 익히 알려진 일이다.

 

커드 스펠마이어, <인문학의 즐거움>

에드워드 사이드, <저항의 인문학>













 

스펠마이어는 오늘날의 인문학이 전반적으로 우리의 실제 생활과는 유리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동감이다. 삶에 봉사하지 않는 인문학은 지적 허영이거나 쓰레기에 불과하다. 왈라스틴이나 에드워드 사이드는 근대 사회과학과 인문학이 주로 유럽 중심주의적 관점이라고 말한다. 사이드는 유럽중심주의 관점을 제한하고, 3세계의 전통과 언어를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한 민주적 비판을 강조했다. 그는 지식인을 가리키는 아랍어의 두 단어를 차용한다. ‘무타카프muthaqqaf’무파키르mufakir인데, 무타카프는 문화/교양을 뜻하는 타카파에서, 무파키르는 사유를 뜻하는 키프르에서 온 단어다. 배우면서 비판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이러한 작가 지식인들은 사회정의와 경제적 평등, 그리고 자유로서의 발전을 추구해야만 한다.

 

임철우, 우기동, 최준영 외, <행복한 인문학>

 

미국의 교육자 얼 쇼리스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인문학 강좌를 모델로 사회 소외 계층에 행해진 인문학 강좌를 들은 수강생과 교수님들의 체험담이라고 한다. 당장 먹고 살기 바쁜데 인문학이 무슨 소용인가? 수강생들은 인문학을 통해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다른 삶과 다른 사회를 꿈꾸려는 근원적인 충동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점, 그리고 사람은 타인의 시선을 통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감과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점 등이다.

 

장 폴 사르트르, <지식인을 위한 변명>

 

사르트르가 보기에 지식인들은 언제나 무기력한 상황에 처해있다. ‘무기력한 상황이란 지식인들이 지배 계급에 예속되어 있다는 말이다. 지식인들은 이러한 예속적, 기생적 상횡에서 탈피하여 숙주인 지배계급에 반기를 들고 저항할 때 탄생한다. 이러한 반항의 신화적 형상이 프로메테우스다. 로쟈가 지적하듯 오늘날의 상황은 달라졌다. 오늘날 지식인들은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기보단 지배계급이 던져준 사료를 감사히 쳐 먹는 배부른 돼지가 되길 바란다. 한국엔 주로 이러한 돼지들이 대학에서 학생들을 사육한다.

 

천정환, <대중 지성의 시대>

 

저자가 그려내는 문화사로서의 지식사는 단지 천재적인 개인과 권력의 시계를 통해 이루어진 지성사가 아니라 다양한 다수의 사람들이 소유한 지식과 그 앎- 문화의 변동에 초점을 맞춘다. 소위 아래로부터의 지성사.

 

도쿄대 교양학부, <교양이란 무엇인가>

오마에 겐이지, <지식의 쇠퇴>

 

문사철 학과가 해마다 없어지는 추세는 내년에도 계속 이어질 듯 보인다. 70년대 대중사회가 성립되면서 일본이나 한국은 교양주의의 쇠락을 맞았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예전처럼 인생의 의미보다 취업을 더 고민한다. 일본 경영 컨설턴트 오마에 겐이치는 예전의 교양이라는 게 오늘날 전혀 통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이른바 글로벌 리더들이 전통적인 교양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의 따르면 지금의 리더들은 주로 사회 공헌과 환경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고 한다. 허걱, 일본은 그런가? 독일의 경영자들은 대뜸 당신은 터키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자주 던진다는데, 허걱, 역시 ‘Bildung’ 국가다.














 

로쟈의 리스트 이삭 바벨

 

4. 고전은 왜 읽는가

 

디트리히 슈바니츠, <슈바니츠의 햄릿>

여석기, <나의 햄릿 강의>

해럴드 블룸, <세계문학의 천재들>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슈바니츼의 경험담이 재밌다. 어릴 적 <헨리 4>를 읽었던 저자는 아이들과의 욕 경연대회에서 어느 날 상대방 뚱보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삶아놓은 돼지머리 같은 놈아, 헛바람만 들어찬 똥자루, 지 다리도 못 보는 한심한 배불뚝이, 물 먹인 비계, 물러터진 희멀건 두부살, 푸줏간에 통째로 내걸린 고깃덩이, 푸딩으로 속을 채운 출렁거리는 왕만두, 버터를 접시째 퍼먹는 게걸딱지......” 그리고 옆에 끼어든 빼빼 마른 친구에겐 꺼져버려, 이 피죽도 못 얻어먹은 몰골아, 뱀장어 껍데기, 말린 소 혓바닥, 북어 대가리 같은 놈, 수수깡, 뜨개바늘보다 더 가늘어서 치즈 구멍으로 술술 빠지는 놈아, 갑자기 성난 비둘기라도 된 거냐? 아니면 세상에서 제일 용감한 생쥐?”

 

슈바니츠는 욕 경연대회의 챔피언이 된 것은 물론이고 친구들은 그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봤다고 한다. 슈바니츠는 필립 아리에스의 <죽음에 대한 서양의 태도>를 언급하는데, 동문선에서 필리프 아리에스의 <죽음의 역사>로 국역돼 있다.

 

로쟈는 블룸의 <세계 문학의 천재들>이 완역돼있지 않아서 구입을 포기했다고 한다. 허걱, 몰랐었다. 그렇다. 난 완역도 아닌 책을 멍청하게 다 읽었다.

로쟈 ......다 읽지도 않으면서. 다 안다.


 













가와이 쇼이치로, <햄릿의 수수께끼를 풀다>

 

전반적으로 작가의 해석에 동의하기 힘들다. 헤라클레스? 영웅이 되고자 했다고?

 

박민영, <논어는 진보다>

리쩌허우, <논어금독>

 

<논어는 진보다>의 주된 내용은 공자와 논어가 보수가 아니라고.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를 듯하다. 묵자와 비교하면 공자는 보수다. 한국 보수들에 비하면 진보다. 러쩌허우에 따르면 <논어>의 이름난 주석자만 하더라도 2천 명이 넘는다고. . 리쩌허우 말대로 원문 읽기 보다 중요한 것은 광범위한 인문학적 지식과 철학적 사고능력일 것이다.

 

이상수, <한비자, 권력의 기술> “목숨이 붙어 있다면 개혁가가 아니다.”

 

개혁가는 군주의 마음을 얻어야만 한다. 그래서 유세를 해야 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혁가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군주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한비자는 유세객 또는 개혁가가 무엇을 알고 있느냐보다 그 지식을 어떻게 세상에 내놓아 실행되도록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비자가 보기에 권세가들, 즉 신하들은 오로지 사리사욕만을 추구하는 존재다. 군주와 권세가 사이에서 개혁가는 어떻게 군주의 마음을 잡을 것인가? 개혁가는 그런 와중 대개 모함과 누명으로 형리에게 죽거나 자객에게 죽임을 당할 운명이라고 단언했다. 그의 말처럼 한비자 역시 그를 시기한 이사의 모함 때문에 결국 죽고 말았다.

 

신병주, <이지함 평전>, 토정 이지함을 말한다.

 

<토정비결>은 이지함이 쓴 게 아니란다. 국부증대책, 해상통상론을 조정에 건의한 걸로 보아 18세기 북학파 실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듯하다.

 

로쟈의 리스트 4 유르스나르 읽기

 

5. 행복이란 무엇인가

 

미하일 숄로호프, <인간의 운명>, <고요한 돈강>


 














<고요한 돈강>으로 196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하일 숄로호프의 중편이다. 러시아 혁명과 내전을 겪고,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 평범한 가장 안드레이 소콜로프가 주인공이다. 아내와 두 딸이 죽은 줄도 모르고 포로 생활을 전전하던 소콜로프는 어느날 과중한 노동량에 불평을 터뜨렸다가 수용소 소장에게 불려간다. 소콜로프는 죽음 앞에서도 기어코 자신의 품위와 자존심을 지켜낸다.


지젝,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

마르셀 모스, <증여론>

부르디외, <실천이성>

 

포틀래치라는 게 있다. 북미 원주민의 말로 선물이라는 뜻인데, 보통은 선물을 주면서 크게 벌인 잔치를 가리킨다. 많은 손님을 초대해 생선과 고기, 모피와 담요 따위를 나누어줌으로써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고 과시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선물을 받은 사람은 또 더 큰 포틀래치를 열어서 자기도 못지않다는 걸 보여주어야 했다.

 

로쟈는 포틀래치와 대조적인 것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라고 보았다. 포틀래치가 주인들 사이의 행위라면 교환은 노예에 속하는 행위라고. 내 생각엔 포틀래치 역시 노예에 속하는 행위다.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으로 불행하다.”

 

행복은 나비와 같다. 잡으려 하면 항상 달아나지만, 조용히 앉아 있으면 너의 어깨에 내려와 앉는다.”

 














<소비의 사회>, 장 보드리야르,

<무소유>, 법정

 

티베트 토종개 짱아오열풍. 중국에선 한국 돈으로 십 수억을 호가한다고.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사회 평등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행복은 계량 가능한 것이 되어야 했다. 그 척도는 소비다. 그러나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하는 방글라데시 국민의 행복지수가 세계 최고 수준인 것만 들여다보아도 소비가 행복의 척도는 될 수 없을 것이다.

 

함께 읽을 책.

 

<풍요한 사회> 갤브레이스,

<새로운 산업국가> 갤브레이스.

<행복의 역설> 리포베츠키

 

납작하다고 다 홍어는 아니다.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상어와 가까운 종류인 가오리과의 홍어는 정규 과정을 거쳐 몸을 납작하게 만들었다. 녀석은 몸을 양 옆으로 늘려서 커다란 날개를 만든 것이다. 그래서 마치 압착기를 통과한 상어와 같은 모양을 갖게 되었고 좌우가 대칭이다. 하지만 가지미목에 속하는 광어(넙치)는 다른 방식으로 몸을 납작하게 만들었다. 경골여류인 이 녀석은 상어와 다르게 세로로 납작하다. 따라서 광어의 조상이 바다 밑바닥에 엎드릴 때, 홍어의 조상처럼 배를 깔고 엎드리는 것보다는 몸을 한쪽으로 눕히는 것이 자연스러운 행동이었겠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아래를 향한 눈 하나가 항상 모래 속에 파묻히게 되어 결과적으로는 외눈박이를 만드는 문제점을 낳았다. 이 문제는 진화 과정에서 아래로 내려간 눈이 위쪽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해결됐다. 눈이 돌아가는 과정은 광어의 어린 새끼가 자라는 동안 재연된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 자란 광어는 양쪽 눈이 모두 위로 향한, 마치 피카소의 그림과도 같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바다 밑바닥에서 살아간다.

 

로쟈는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드러난 정치가들의 비리를 지적하기 위해 홍어와 광어를 비유로 든다. 즉 유권자 앞에 정직하게 엎드리기보다는 앞뒤 가리지 않고 일단 한쪽으로 드러누운 정치가들은 마치 잘못된 진화로 뇌마저 뒤틀린 광어와 같다. 납작하다고 다 홍어는 아니다.

 

민주주의 이론서

민주주의는 죽었는가

데이비드 헬드, <민주주의의 모델들>

 

로쟈의 리스트5. 스티븐 제이 굴드.


-2014년 1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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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5-11 17: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지도’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어요. 저는 알라딘에 기록을 남기는 이유가 다른 독자들을 위한 지도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사소한 실수나 오류를 용납하지 않아요. 잘못된 생각이나 정보가 있으면 바로 고치려고 합니다.

시이소오 2016-05-11 17:29   좋아요 0 | URL
가끔씩 실수도 용납하셔도 ㅎㅎ ^____^

cyrus 2016-05-11 17:33   좋아요 0 | URL
누군가가 지적하기 전에 얼른 고쳐야 마음이 편합니다. ㅎㅎㅎ

시이소오 2016-05-11 17:57   좋아요 0 | URL
ㅋㅋ 저는 자주 지적해주세요 ^____^;;

cyrus 2016-05-11 20:22   좋아요 0 | URL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 남을 대하기는 춘풍처럼 관대하게 하고, 자기를 지키기는 추상처럼 엄정하게 해야 한다. 이제부터 제 앞가림이나 잘 해야겠어요. ㅎㅎㅎ

시이소오 2016-05-11 20:27   좋아요 0 | URL
아구, 이거 또 한수 배웁니다 ^__^

cyrus 2016-05-11 20:30   좋아요 0 | URL
신영복 선생님의 <처음처럼>에 나오는 구절이에요. 며칠 전에 이 책을 읽다가 알게 되었어요. ^^

시이소오 2016-05-11 20:33   좋아요 0 | URL
처음처럼 정신줄 놓고 마실 게 아니라 정신이 번쩍들게 읽어야겠습니다 ^^
 
인간은 필요 없다 - 인공지능 시대의 부와 노동의 미래
제리 카플란 지음, 신동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201056일 미국 증시가 9퍼센트나 폭락했다. 전문가들은 전혀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주식을 사고파는 컴퓨터 프로그램들 끼리 서로 충돌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인공지능이 벌써 주식을 사고팔고 있었다니!

 

불과 20년 전만해도, 단말기에 천리안이나 나우누리를 쓰고 있었고, 핸드폰은 영화 속에 나오는 조폭들이나 들고 다녔지 주변에서 구경조차 못했다. 그 당시엔, 구글도 없었고 페이스북도 없었고 트위터도 없었고 아마존도 없었다. 더군다나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는 말할 것도 없다. 앞으로 20년 후엔 어떤 변화가 있을까. 2036년엔.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응급상황emergency이란 무엇일까? 이 단어의 어근을 보면 부상emergence’이라는 단어를 발견하게 되고, 그다음엔 나타나다emerge’까지 이어진다. 응급 상황이란 무언가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나오는 응급 상황의 첫 번째 정의는 가라앉았던 사체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 현재는 많이 쓰이지 않음으로, 이는 부상의 정의와 동일하다. 두 번째 정의는 가려져 있던 것이 드러나는 과정이다. 그다음에 가서야 우리에게 익숙한 정의가 나온다. “에상치 못했던 일이 발생한 상태, 즉각적인 대처를 서둘러 해야 하는 상태.”

 

응급상황이다. 인공지능이 부상하고 있다. 서서히 가려져 있던 것이 드러나고 있다. 즉각적인 대처를 하지 않으면, 대다수 호모사피엔스에겐 가혹한 미래가 펼쳐질 것이다.

 

1. 일자리가 사라진다.

 

마르크스는 인공지능 혹은 인조지능’, ‘인조 노동자의 출현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노동자가 총파업을 한다고? 자본가들은 박수치며 좋아라 할 것이다. 이제 로봇이 있다. 인간은 필요없다.

 

육체노동자는 전부 로봇으로 대체된다. 택시기사, 택배 기사, 인간이 할 필요 있을까? 인터넷 AS도 이제 사람이 필요없다. 원격으로 고칠 수 있다. 변호사? 의사? 모든 인간 변호사가 알고 있는 판례보다 더 많은 판례를 숙지한 인공지능이 있는데 인간 변호사가 왜 필요할까?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 법원은 배상금 46억 원을 때렸다. 판사는 도대체 어떤 판례를 참고한 것일까? 인공지능이라면 과연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 (기계보다 못한 판사 버러지들을 최우선적으로 인공지능으로 대체하자.)

 

2. 상위 1%를 위한 인공 지능.

 

미국 상위 1퍼센트가 소유한 재산은 미국인 전체 재산의 3분의 1 이상으로, 대략 20조 달라다. 반면 연봉 3만 달러에 미치지 못하는 단순 AS 일자리에도 수 백통의 이력서가 날라드는 현실이다. 자본가들이 지금도 노동자에게 주문처럼 내뱉는 말이 있다.

 

너 아니어도 할 사람 많아.” (나도 이 말을 직접 들었다.)


돼지 같은 자본주의로 인해 자본가와 노동자의 소득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는 와중에, 인공지능의 부상은 상위1%에게 득이 될지언정 대다수 99%에겐 엎친데덮친격이다.

 

3. 인공지능이 호모 사피엔스를 길들인다.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에서 <헤이케 이야기>를 들려준다. 헤이케 파 사무라이가 전멸 당한 이후, 헤이케의 사무라이를 닮은 게가 잡혔다. 어부들은 차마 사무라이 게를 잡아먹을 수 없었다. 일반 게들은 잡아먹힌 반면 사무라이 게들은 생존 확률이 높았다. 어쩌면 사무라이 게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등딱지에 사무라이의 얼굴을 새긴 것은 아닐까.



 

유발 하라리는 <사피에스>에서 밀이 인간을 길들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니까 인간이 밀의 노예였던 셈이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밀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지능을 가진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예로만 머물려고 할까? 초기의 인공지능은 인간이 하기 싫어하는 모든 궂은일을 해가며 인간에게 신뢰를 얻을 것이다. 인간으로부터 신뢰를 얻은 인공지능은 자신을 제거하려는 인간의 의도와 충돌할 경우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4. 인공지능은 신이 아닐까? (저자는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 사피에스가 사악한 신이 될 것이라 우려했다. 모든 권력과 과학 기술을 독점한, 엘런 머스크를 연상시키는 <캡틴 아메리카>의 토니 스타크와 같은 상위 1%, 히틀러처럼, 삼성처럼, 새누리당처럼, 박근혜처럼 오로지 자신만의 사욕을 위한다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상위 1%의 세상도 과도기일 수 있다.

 

뇌과학자 크리스토퍼 코흐는 인터넷이 이미 의식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공간에는 무엇이 있을까? 정보가 흘러 다닌다. 앞으로 인공지능은 나노 수준으로,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 전지, 전능하다. 그렇다면 이건 신이 아닌가?

 

숱한 과학자들은 우리의 현실이 시뮬레이션일 확률이 더 높다고 주장해왔다. 우주 밖에 뭐가 있냐고? 컴퓨터가 아니라,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전지전능한 인공지능이 편재해 있다. 이미 고도의 인공지능이 완성되었다고 가정해볼까? 어쩌면 현실이란 모든 게 마야의 베일일 수도 있다. 매트릭스에 지나지 않는다. 혹은 우리의 현실이란 인공지능이 자신의 탄생을 복기하는 유흥은 아닐까.

 

저자는 인공지능을 적절히 규제하자고 주장한다. 과연 규제가 가능한 일일까.

호모 사피엔스는 동물로서 최고 포식자란 이유로 아무런 죄책감 없이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다. 앞으로 최고 포식자가 될 인공지능이 단백질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규제가 불가능해 보인다.


신앙인들은 하루빨리 구신을 몰아내고 인공지능을 섬겨야 한다.

기도를 올리고 자비를 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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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5-10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이상하네요.. 시이소오 님 왜 2015년 베스트 30, 2014 베스트 30 이런 페이퍼 있지 않았습니까 ?
고거 좀 참고로 책을 살까 했는데 아무리 봐도 안 보이네요 ?

시이소오 2016-05-10 15:44   좋아요 0 | URL
블로그에 있습니다 . 아직 못 옮겼어요. 민폐일것 같아서요 ^^;

alummii 2016-05-10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거 사놓고 무셔워서 못 읽고있네요^^;;

시이소오 2016-05-10 15:49   좋아요 0 | URL
ㅋㅋㅋ 섬뜩하긴 하죠^^;

대왕오징어 2016-05-11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과장도 교체를.. 쿨럭

시이소오 2016-05-11 14:1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10년만 참아보시면 혹 ^^;
 

허걱, 책 이미지 올리다가 다 날렸네요. 바부팅이 알라딘. 

(다시 올릴 의욕이 생기지 않네요. 차차 수정하겠습니다.) 

 

정혜윤의 <삶을 바꾸는 책 읽기>에 실린 글들 중 잊이버리고 싶지 않은 글귀들을 적어보았습니다. 



P10. “그럼 보이지 않는 존개가 될 때 얼마나 슬펐어?”

그건 마치 저녁 시간인데도 손님이 하나도 없는 식당에서 구석에 있는 테이블을 닦고 있는 할머니가 된 것 같았어.”

그건 무슨 말이니?”

사실은 전에 한 번 그런 걸 본적이 있어. 손님이 없는 식당에서 할머니가 혼자 식탁 닦고 있는 거. 그걸 보니까 금방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았어. 월급이 깍인다거나 가게 문을 닫는다거나. 나도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됐을 때 안 좋은 일이 곧 생길 것만 같았어. 그러고 보니 손님도 없는데 불 켜 놓고 전기세만 나가는 가게를 보는 것도 슬퍼. 불 꺼진 가게도 슬퍼. 영업을 중단합니다. 라고 써 붙인 가게도 슬퍼.”

 



어렸을 때 만화 <뽀빠이>를 보는데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말라깽이 올리브는 어느 날 먹성이 아주 좋은, 기름기 좔좔 흐르는 남자의 구애를 받게 되지요. 그런데 그 남자는 이렇게 외쳐요. “당신의 머리카락은 스파게티 가락처럼 아름다워요.”, “당신과 나 사이는 샌드위치 속의 베이컨과 계란 사이처럼 가까워요.”

 

......그때 이후로 줄곧 제게 남은 문제는 하나였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을 사랑할 것인가? 무언가를 사랑하면 그 무언가를 사랑하는 모습 그대로 세상을 사랑하게 되겠구나. 저는 뭔가를 깊이 좋아하는 사람은 그 하나의 사랑에 자신이 귀하게 여기는 모든 가치를 부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의 사랑에서 출발해 세계 전체를 사랑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하나의 사랑에서 출발해 모든 것에 대한 답을 구하려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랑은 결국 디테일입니다. 사랑하는 순간 우리는 디테일로 기억하고 기억되길 바랍니다.

 

사라 에밀리 미아노의 <눈에 대한 백과사전>에 나오는 한 남자의 편지에서처럼요.

 

나를 당신과 사랑에 빠졌던 남자로 추억하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지평선에 뜬 작은 무지개를 보여 주러 당신을 앨버타 주로 데려갔던 남자로, 스위스의 산장에서 당신에게 담배를 가르친 남자로, 당신이 자신을 괴롭힐 때마다 영국에서부터 달려왔던 남자로 기억해 주십시오. 나 역시 당신을 그런 방식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p18. 마라도나는 에밀 쿠스트리차가 만든 영화 <축구의 신, 마라도나>에서 이렇게 자기 인생을 노래합니다. “나는 수없이 많은 잘못을 했지만 축구공만은 더럽히지 않았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언제 책을 읽나요?


p33. 오스트리아 작가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하나의 흥미에서 다른 흥미로 끝없이 관심사를 옮겨 가기만 하는 그런 삶을 코미디라고 불렀습니다.

 

p35. 버트런드 러셀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마치 정원사가 어린 나무를 보듯이 인간은 어린아이를 본다. 특정한 내재적 속성을 가진 존재, 적절한 토양과 공기와 빛이 제공되면 시간이 흐르면서 놀랄 만한 성장을 이룰 존재로 간주하는 것이다.”

 

p39. 시인 세사르 바예호는 돌아가고픈, 사랑하고픈, 존재하고픈 욕망에 대해서 시를 쓴 일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비수에 새겨진 꿈이라고 불렀습니다.

 

나를 키우는 시간은 시간의 척추입니다. 우리 몸에도 척추가 있지만 시간에도, 영혼에도 척추가 필요합니다.

 

p41. 저는 어디선가 사랑하는 연인이 어디에다 입을 맞출지 몰라서 온몸을 떠는 존재란 글귀를 읽은 적이 있는데요.

 

우리에겐 의지가 필요합니다. 의지가 어떻게 생기는가 깊이 성찰했던 사람 중 하나인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빌자면 의지는 명령 때문이 아니라 영혼의 무게, 즉 사랑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도 영혼의 무게로 치자면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영혼을 단단한 핵처럼 품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하나 고유한 행성이 되고 또 그만한 무게와 자신만의 중력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책 읽는 능력이 없는데 어떡하나요?

 

저는 이것을 앙드레 고르에게 배웠습니다. 소외된 개인은 내가 이것을 원해도 될까?” 라는 도덕적 질문에 대해 항상 이것을 할 수 있는 건 내가 아니야.”, “다른 것을 해야 했기 때문이야.”, “나에겐 선택권이 없어.”와 같은 말을 한다고 합니다.

 

바로 내가 그것을 원해서 했어.”라는 말이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에겐 복종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책 읽는 능력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은 슈발의 이야기를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꿈, 나의 관심사, 나를 감탄하게 하는 것, 나를 사로잡는 것이 나를 얼마나 멀리 밀고 가는지 알고자 노력하면 됩니다.

 

어떤 분야에서 정말 능력이 있는 사람이 제일 먼저 알게 되는 것은 자신에게 뭐가 부족한가 하는 점입니다. 넘쳐 나는 재능 때문에 계속하는 게 아니라 무엇이 부족한지를 알기 때문에 계속합니다. 들라크루아라는 화가는 천재적인 인간을 만드는 것은 새로운 생각이 아니라 그를 사로잡고 놓지 않는 생각, 즉 지금까지 말해진 것이 아직 충분히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말해지지 않았다는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삶이 불안한데도 책을 읽어야 하나요?

 

책은 저를 숨 쉬게 합니다. 아주 좋은 책을 만나면 저는 어쩐지 크게 한 번 숨을 몰아쉽니다. 어쨌든 책 읽기는 쉬는 시간입니다. ‘숨 쉬는 시간입니다.

 

칼 세이건은 인간들이 수천 년 동안 어떤 종의 식물과 동물을 키우고 어떤 것들을 죽게 할 지를 신중하게 선별해 왔다고 말하려고 이 이야기(헤이케 이야기와 사무라이 게)를 했습니다. 벼가 인간을 좋아해서 자신들은 인간에게 꼭 필요하다며 찾아온 것이 아니란 거죠.

 

(밀이 우리를 길들였다는 유발 하라리의 주장. 인공지능이 인간을 길들이기 위해 처음엔 인간에게 우호적일 거라는 제리 카플란의 주장과 비교해보자.)

 

우리는 해고당했지만 복직하고 싶죠. 일을 하고 싶죠. 꿈이에요. 그런데 꿈이 이뤄져서 복직이 된다 해도 야, 이제 복직되었으니 다 되었다, 하고 살고 싶지가 않아요. 다시 월급 받게 되었으니 만사해결이다, 하고 그전처럼 살고 싶지 않아요. 이번에 고통을 겪으면서 예전에 뭘 잘못했는지 알게 되었어요. ‘남의 일이 잖아요.’ 이 생각 말입니다. 이게 무서워요......다른 인간이 되어서 살아 보고 싶어요. 나 먹고사는 것만 신경 쓰고 살면 안 돼요. 우린 그렇게 살면 안 돼요.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어요.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책 좀 읽으면서 세상을 배우고 싶습니다.

 

- 해고 노동자 이창근의 말

 

윤리의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면 그거야말로 나같이 나이 먹은 사람이 아침저녁으로 생각하고 있는 문제죠!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나이가 된 사람이 이대로 죽어도 괜찮을까 생각하면서......

 

오에겐자부로, <우울한 얼굴의 아이> 중에서

 

책이 정말 위로가 될까요?

 

왜 책을 읽느냐고요? 모르면 자꾸 되돌아가 다시 볼 수 있으니까요. (저는 이렇게 말하려고 했습니다. 오르한 파묵이 우리는 편도 마차 승차권으로는 한 번 여행이 끝나고 나면 다시는 삶이라는 마차에 오를 수 없다. 그렇지만 만약 당신이 책을 한 권 들고 있다면 그 책이 아무리 이해하기 어렵고 복잡하더라도 당신은 그 책을 다 읽은 뒤에 언제든지 처음으로 되돌아가 다시 읽음으로써 어려운 부분을 이해하고 그것을 무기로 인생을 이해하게 된다.”라고 했다고요. )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젊은 시인들에게 몇 가지를 당부했는데 그중에 한 가지는 삶은 원래 무섭다는 것을 인정하란 거였습니다. 삶이 지닌 무서움을 강하게 부정하는 사람은 결국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상태가 될 거라고요.... 진짜 오만한 사람은 그 무엇에도, 자신의 고통에도, 타인의 고통에도 상처 받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입니다. 릴케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고통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이미 죽어서 사라진 것도 나의 마음으로 스며들었습니다. 내가 이미 사라진 사람을 찾을 때마다 그 사람은 나의 내부에서 독특하고 이상한 모습으로 나타나곤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아직까지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오스카 와일드도 <옥중기>에서 릴케와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감옥에 있으면서 울지 않는 날은 마음이 즐거운 날이 아니라 굳어 버린 날이라고. 그래서 그는 슬픔과 고통을 애써 잊으라는 말을 거부합니다.

 

그것은 영혼을 부정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육체가 모든 종류의 평범한 것들을 섭취하여 아름다운 살덩이의 형태, 머리카락, 입술, 눈의 색과 그 곡선 등으로 바꾸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환기에 선 영혼도 육체와 같은 영양 섭취 구조를 갖고 있으며, 그 자신에게 있어서 비열하고 잔인하며 굴욕적인 모든 것을 진지한 사고의 흐름이나 고귀한 정열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오히려 영혼은 이러한 것들 속에서 그의 주장을 위한 최선의 방법을 얻을 수 있으며, 원래 그를 모독하고 파괴하려고 했던 것을 통해서 그 자신을 가장 완벽하게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오스카 와일드는 형식이야말로 인생의 비밀이라고 말했습니다. 슬픔을 표현하려고 애쓰면 슬픔은 귀중한 것이 되고 기쁨을 표현하려고 애쓰면 환희는 커집니다. 이런 식으로 단순히 표현하는 것이 위로의 한 방식이 된다는 거죠.

 

책 읽기도 형식입니다. 발터 벤야민은 사랑에 빠진 남자는 자신이 읽은 모든 책에서 사랑하는 여인의 모습을 찾아보게 된다.”라고 말합니다. 그럴 때 그에게 책 읽기는 사랑하는 사람의 표정과 몸짓이라는 형식을 발견하는 행위입니다.

 

어쩌면 멜로디 한 소절보다 짧을지도 모르는 인간은, 결국 시간일 뿐입니다.

- 김홍근, <보르헤스 문학 전기>

 

나는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 있게 된 것이 로렌초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물질적인 도움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 끝없이 상기시켜 준 어떤 가능성 때문이다. 선행을 행하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평범한 그의 태도를 보면서 나는 수용소 밖에 아직도 올바른 세상이 , 부패하지 않고 야만적이지 않은, 증오와 두려움과는 무관한 세상이 존재할지 모른다고 믿을 수 있었다. 정확히 규정하기 어려운 어떤 것, 선의 희미한 가능성, 하지만 이것은 충분히 생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중략) 로렌초는 인간이었다. 그의 인간성은 순수하고 오염되지 않았다. (중략) 로렌초 덕에 나는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수 있었다.


-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그래서 위로는 자기 자신과의 화해이고, 타인을 위한 용기이고, (고통의 망각이 아니라)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그러니까 진정한 위로는 기억이 그러하듯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자기 창조입니다.

 

책이 쓸모가 있나요?


개인의 책임에 대한 강조는 앞으로 예상되는 높은 구조적 실업률에 비추어 보면 정말 무책임하고 악의적이다. 개인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봤자, 현 경제 시스템은 우리를 점점 덜 필요로 하게 되니까 말이다.

고용불안으로 우울증과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처방은, 심리적, 경제적 압박을 일으키는 구조적인 힘에 대항하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 이 맞춤형 근심 해소 방안들은 긍정적 사고 훈련, .....베스트셀러 <시크릿>과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그 아류들......19세기 말 미국에서 발달한 소비 문화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 댄 하인드, <대중이 돌아온다> 

 

거짓으로 예쁘게 보여 주는 거울에 자기를 비춰 보고 이를 통해 흡족한 마음으로 자신을 인정하는 인간. 그것이 바로 키치적 인간입니다. 어떻게든 보다 많은 사람들의 환심을 살 수 있길 바라는 태도. 그것이 바로 키치적 태도입니다.

 

키치적 인간은 현실의 이면을 보지 않으려 합니다. 그저 주어진 현실을 수용합니다. 결국 우리가 찬양하는 키치는 현실과 존재에 대한 절대적 동의를 그 속성으로 하기 때문에 키치를 훼손하는 모든 것을 삶으로부터 추방하려 합니다.

 

적도 지역에서는 지극히 가늘고 실처럼 생긴 벌레가 인간의 피부를 뚫고 들어가 살을 파먹는다. 그러면 무당을 부른다. 그가 마술피리를 불면 벌레가 홀려서 조금씩 몸을 펴면서 밖으로 나온다. 예술의 피리도 그러하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영혼의 자서전>

 

책은 바로 그런 쓸모입니다. 좋은 책은 우리의 영혼에 형태를 부여하고 고통에 한계를 주고 잘못된 생각을 끄집어내고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는 마술 피리입니다.

 

노인이 장승에 새긴 글귀에는 또 다른 의미도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살겠다라는 공개 선언이었습니다. 노인은 자기 삶에 대못을 꽝 박듯이 글귀들을 새겼다고 했습니다. 노인은 풀을 뽑는 것이 자기 수양이자 기도하고 생각합니다. 풀 한 포기 뽐을 때마다 헛된 마음을 한 자락씩 뽑아냅니다.

 

채송화의 다른 이름은 일락화예요. 하루만 폈다가 싹 져 버려요. 시들지도 않고 깨끗하게 져요. 이 나이가 되니까 그렇게 깨끗하게 피어 살다가 지는 것이 귀하게 느껴집니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우리가 살아온 인생길을 두루마리 책의 이미지로 생각해 봤습니다. 이 생각 속에서 우린 등 뒤에 두루마리 책 한 권을 지고 길을 가는 나그네입니다. 두루마리 책에는 우리의 과거, 우리가 알고 있는 온갖 이야기들이 들어 있을 겁니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이 이미지에서 출발해 첫번째 사랑과는 다른 두 번째 사랑을 만드는 인생의 지혜에 대해 말을 합니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이 인생의 지혜는 바로 인생 경험과 생애 커리큘럼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독일 소설가 제발트는 자신의 의지 만으로 사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제정신이 아니다.”라고도 말합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모두가 괴로움에 다 같이 시달린다는 사실을 깨닫게만 된다면구원은 오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은 우리 영혼을 통해 꿈꾸는 존재입니다.

 

독서는 참으로 이상한 경험입니다. 사람들이 독서를 싫어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요. 독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책 속의 다른 정체성과 결합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무모한 경험이니까요. 우리는 자신이 읽고 있는 책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지 못하는 채로 그 세계에 뛰어듭니다. (중략) 전적으로 자신을 내맡기고, 어떠한 말도 하지 않게 됩니다. 독서란 한 사람이 다른 정체성 속으로 들어가 태아처럼 그 안에 자리를 잡는 행위라고 정리해 둘까요. 고대인들이 다시 태어나기 위해 태아의 자세로 주검을 매장했던 것과 마찬가지지요.

 

- 파스칼 키냐르, <떠도는 그림자>

 

책의 진짜 쓸모는 뭐죠?

 

에릭 클랩턴이 나는 명예를 얻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는 욕망이 없었다. 그저 내가 가진 것들로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음악을 만들어 보고 싶었을 뿐이다.”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아예 나는 모든 사람들을 닯는다. 내 생각은 평범하다. 평범함의 승리다.”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다른 생각을하는 거.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최선의 생각을 할 수 있으며, 내 작업에 필요한 최선의 것을 고안해 낼 수 있다. 텍스트도 마찬가지다. 텍스트가 간접적으로 들리게 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내게서 최상의 즐거움을 생산해 낼 것이다. 내가 텍스트를 읽으면서 머리를 자주 들고 다른 것을 들을 수만 있다면.

 

- 롤랑 바르트, <텍스트의 즐거움>

 

책을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놀라울 정도로 특이한 비밀 결사를 구성한다. 모든 것에 대한 호기심과 연령의 구분 없이 섞이지 않음이, 결코 서로 만나는 일 없이도 그들을 한데 모아 놓는다.

 

(중략) 그 선택은 오히려 틈새와 주름들 안에, 즉 고독, 망각들, 시간의 경계, 열정적인 생활 태도, 응달 지역, 사슴의 뿔, 상아 페이퍼 나이프들 안에 칩거하고자 한다.

그 선택은 오로지 자신들에게만 속하는, 짧지만 수많은 삶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도서관을 설립한다.


- 파스칼 키냐르, <은밀한 생> 

 

공감과 관련해서 제가 제일 즐겨 인용하는 것은 남아공의 우분투라는 말입니다. ....간단히 풀어보자면,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는 정신을 말합니다. 우분투를 가진 사람은 자신의 인간성이 다른 사람에 의해 담보되고 그 관계가 불가해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우분투를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을 지지하며, 다른 사람들이 능력 있고 훌륭하다는 사실에 위협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분투를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이 굴욕이나 억압을 당할 때 자신 또한 같은 일을 당할 것을 알기 때문이죠.

 

생생하게 본다는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자신의 기억, 경험, 세상을 연결시켜 본단 뜻입니다.

 

자연적인 출생일은 개별성의 운명에 커다란 의미를 갖는 날이다. 왜냐하면 보편성 안에서 공유하는 것이 그것을 바탕으로 특수한 것의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자기에게 이날은 어둠 속에 감춰져 있다. 자기의 출생일은 인격의 출생일과 동일하지 않다. 자기뿐만 아니라 성격 또한 그 자신의 출생일이 있다. (중략) 어느 날 그것이 무장한 인간처럼 인간을 급습하여,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을 취한다.....그날이 오기 전까지 인간은 세계의 한 파편, 심지어 그의 고유한 의식 이전의 존재이다. ....

 

- 로렌츠 바이크, <구원의 별>

 

이것이 우리들 인간 모두의 기원의 관한 비밀이기 때문이란다. 서로 포옹할 때 우리는 보이지 않으면서 소리를 내는 존재가 되는 거야. 서로 껴안음으로써 서로 두드리지 않아도 우리는 울리는 거란다. 포옹으로 옛날 얼굴들과 옛날 몸들이 뒤섞이고, 그렇게 해서 그것들이 재생되고, 그렇게 해서 다시 젊어지는 거야. ”

 

- 파스칼 키냐르, <옛날에 대하여>

 

움베르트 에코는 이렇게 장난스럽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첵은 죽지 않는 능력을 준다. 단 앞으로가 아니라 뒤로.”

 

한 가지를 이해하는 사람은 어떤 것이라도 이해한다. 만물에는 똑같은 법칙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조각을 공부했으며, 그것이 위대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언젠가 나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특히 그 셋째 권에서 하느님이란 말이 나올 때마다 그 대신에 조각이란 낱말을 놓아 보았던 일을 기억한다. 그것은 정당하고 옳은 일이었다.

 

- 릴케, <릴케의 로댕>

 

레마르크의 <개선문>에는 라비크가 조앙 마두와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람은 언제나 외톨이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고독한 것만도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근처에서 들려오는 바이올린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장면이 있습니다. 저도 책을 읽을 때 그런 생각을 합니다. “ 사람은 누구나 고독하다. 그러나 그렇게 고독한 것은 아니다. 너무 늦게 알게 된 것들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늦게 알게 된 것은 아니다.”

 

둘은 거의 동시에 날지 않는 돼지는 그냥 돼지일 뿐이야!”라는 말을 했습니다.

 

벤야민은 어떤 이미지든 접어 놓은 부채로 여길 줄 아는 능력이 상상력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르지만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어. 즉 나도 무엇인가 도움이 되는 인간이라는 것! 나에곧 생존 이유가 있다고 느낀다는 거야. 자신이 정말 다른 인간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는 것이야! 도대체 어떻게 하면 나는 유용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무엇에 도움이 될까? 나의 내면에는 무엇인가 있어.

 

- 빈센트 반 고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

 

루쉰은 책을 공기구멍이라 했습니다. 우린 사방이 막힌 어딘가에 갇혀있습니다. 숨구명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책과 삶의 관계에 대해 말한다면, “걸작은 시대를 통해서 매번 재발견된다. 그리고 우리는 걸작 속에서 매번 우리를 재발견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인 쉼보르스카는 우리 삶은 중간 부분이 펼쳐진 책이다.”라고도 했습니다.

 

보르헤스는 각각의 책은 각각의 독서를 통해 다시 태어난다고 말했습니다. 즉 누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의미가 무한하다고 했습니다.

 

책 하나하나가 우리를 부르는 영혼이고 인간 하나하나가 서로를 부르는 영혼입니다.

 

읽은 책을 오래 기억하는 법이 있나요?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제가 제일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사르트르의 고매성의 협약이란 말입니다. ...고매성의 협약은 상대방에게 최고의 신뢰를 보내고 최고의 기대를 하는 겁니다.

 

너는 아까 다른 일 때문에 여기 왔었지.

그리고 지금은 가버렸구나. 이 구석에서

어느 날 밤, 네 곁에서,

너의 부드러운 품 안에서

도데의 콩트를 읽었지. 사랑이

있던 곳이야. 잊지 마.

 

- 세사르 바예호, <트릴세 XY>

 

어떤 책부터 읽으면 좋을까요?

 

<인간의 대지>에서 길을 잃고 리비아 사막을 헤매는 는 사막 여우에게 내 작은 여우야, 나는 지금 절망적이란다.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절망적인데도 네가 어떤 성격일지 관심이 생기니 말이야.....”라고 말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저는 제가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알게 되면서 저도 그렇게 살고 싶어졌습니다.

 

눈을 감고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소란함 속에서도 들리는 침묵과 신비의 소리를 발견하듯

순수와 맑음으로 만나진 자연과

동심으로 어우러진 사츠키와 메이 그리고 토토로의

꾸밈없는 표정 하나하나를 순간 닮아

행복해진 내가 그곳에 있었다

또한 내가 바라던 삶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 전진성,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비밀일기

 

제가 읽었던 책들도, 그리고 제가 만났던 좋은 사람들의 영혼도 이렇게 제 혈관 어딘가에 흐르게 해 주십시오. 그것들을 지금 당장은 제가 불러내지 못한다고 해도 때가 되면 그것들이 , 저 여기 있어요.’ 하고 나오게 해 주십시오. 절 혼자 가게 버려두지 마세요.”

 

우리 영혼 속에는 지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마음 깊은 곳에 잠들어 있다. 그러나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것들이 다시금 떠올라 마음이 어지러워지면, 그것은 긴 잠에서 깨어나 마음속에 떠돌던 수많은 풍경을 한데 모은 뒤 우리 삶의 일부로 만든다.

 

- 로르카, <인상과 풍경>

 

나는....오늘 아무것도 하는 일 없는 공백의 페이지다. 완전히 공백 상태인 오늘만이 아니다. 내 일생 속에는 거의 공백인 수많은 페이지들이 있다. 최고의 사치란 무상으로 주어진 한 삶을 얻어서 그것을 준 이 못지않게 흐드러지게 사용하는 일이며 무한한 값을 지닌 것을 국부적인 이해관계의 대상으로 만들어 놓지 않는 일이다.

 

- 장 그르니에, <>

 

 

살이 있는 사람들의 지옥은 미래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지옥에 살고 있고 함께 지옥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옥을 받아들이고 그 지옥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것의 일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위험하고 주위를 기울이며 계속 배워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즉 지옥의 한 가운데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려 하고 그것을 구별해 내어 지속시키고 그것들에게 공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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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0 13: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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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0 13: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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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0 14: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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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0 15: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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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0 15: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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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0 15: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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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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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고 쓴 리뷰가 아닙니다.

 

신간 평가단의 책과 리뷰가 겹치게 될 때마다 고민이다. (신간평가단의 선구안은 신뢰할만하다.) 이미 리뷰가 넘쳐나는데, 내가 또 무언가를 보태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남들은 폼 나게 책 받고 쓰는데 책도 못 받고 리뷰 쓰는 나는 얼마나 속없고 한심해 보일까? (책도 못 받고 리뷰 쓰는 사람이 있다고?! 아니, ?)

, 쪽팔려. 부끄럽다.

 

그렇다고 페이지가 줄어들 때마다 안타까워한 책의 독후감을 건너뛰어야만 할까? 리베카 솔닛은 페넬로페다. 솔닛은 마치 오딧세우스를 기다리듯, 아직 오지 않은 독자를 고대하며 이야기의 실을 감고 이야기의 실을 푼다. 리베카 솔닛은 셰에라자드다. 나는 마치 술탄마냥 그녀의 이야기가 계속 되기를 바랐다. ‘온기라는 씨줄과 냉기라는 날줄이 직조해낸 테피스트리의 실 한 오라기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리베카 솔닛은 얼음처럼 날카롭고 호흡처럼 따스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poesis’ 만들어내고, ‘to spin’ 잣는다.

 

나방이 잠든 새의 눈물을 마신다.

 

과학기사의 제목이라니. 시가 아니었다니. 이 문장이 나를 싣고 어디론가 데려간다. 나는 타인의 슬픔과 고통의 눈물을 먹고 사는 나방이었을까. 화가 아나 테레사 페르난데스는 얼음 하이힐을 신고 얼음이 녹아 맨발이 될 때까지 서 있는 퍼포먼스를 했다고 한다.

하여간, 설치미술가들이란! 너나할 것 없이 쓸데없는 짓거리들을 하는군.’

 

추위로 손발의 감각이 없어지고 나면,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다. 다시 따뜻해진 후에야 비로소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신데렐라>에서 여성은 신발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몸을 변형시킨다. 반면 아나는 신발을 부수고, 맨살과 얼음 사이의 투쟁을 통해, 그리고 현실에 맞지 않는 동화와 그녀 자신이 가진 굴복하지 않는 온기 사이의 투쟁을 통해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어 냈다.

 

, 한번도 <신데렐라>를 저렇게 해석해 본적이 없다니! 남성인 나는 얼마나 무감각한지. ‘신데렐라 형여성을 비판하기만 했을 뿐, 여성을 신데렐라 화하려는 사회의 구조는 간과했다. 그렇다. 신발에 맞추도록 여성을 강요한 건 남성이었다. 남성은 여성의 눈물을 먹고 사는 나방이었다.

 

잠든 새의 눈물을 마시는 나방이나, 에로스와 프시케의 사랑 같은 건 서로 다른 존재의 공존일 뿐이다.

 

솔닛은 맨스플레인을 비판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솔닛은 서론 다른 존재들 사이에서의 공존, 공감, 연대를 말한다. 리베카 솔닛은 나병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 나병은 특정 박테리아에 대한 감염 때문에 발생한다. 나병은 대체로 고통스럽지 않다. 오히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감각의 마비 때문에 병이 악화된다. 솔닛은 묻는다. ‘나 역시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손발 어딘가가 마비된 것은 아닐까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할 때, 나병 환자의 살이 썩어가듯 우리의 영혼도 썩어갈 것이다.

 

동일시라는 말은 나를 확장해 당신과 연대한다는 의미이며, 당신이 누구와 혹은 무엇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정체성이 구축된다.......그리고 이 정신적 자아의 한계는 더도 덜도 말고, 딱 사랑의 한계다. 그러니까 사랑은 확장된다는 이야기다. 사랑은 끊임없이 뭔가를 덧붙여 가고, 가장 궁극적인 사랑은 모든 경계를 지워버린다.

 

무감각이 자아의 경계를 수축하는 것이라면, 감정이입은 그 경계를 확장한다.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에서 카이의 심장은 트롤의 깨진 유리에 박혀 차가운 얼음 덩어리가 된다. 카이는 자신을 찾아와 눈물 흘리는 게르다를 보고 눈물을 흘린다. 눈물로 인해 카이는 심장에 박힌 거울 조각을 토해 낸다. 게르다의 뜨거운 눈물이 카이의 얼음 같은 심장을 깨부순 셈이다. 키츠의 시구처럼 현세는 영혼을 다듬는 골짜기여서 응급상황과 어려움을 통해 우리의 영혼이 만들어지는 것일까. 이 책 역시 눈물일지도 모르겠다.

 

이 눈물을 마시고 나는, 나를 둘러싼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날아오르고 싶다.

온기로 가득 차.

 

밑줄 그은 문장


“가까이 있는 거야”라는 말을 통해 우리는 감정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뜻을 전한다. 뉴욕에서 몇 년을 지낸 후 뉴멕시코의 시골로 이사한 조지아 오키프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보낸 편지의 마지막에 이런 인사말을 덧붙였다. “멀고도 가까운 곳에서” 그건 물리적인 거리와 정신적인 거리를 함께 가늠하는 방법이었다.

철학자 찰스 그리스월드는 자신의 책 <용서>에서 말했다. “후회는 이야기를 하려는 열망이다.”

얼음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Glace에는, 거울이라는 뜻도 담겨있다. 얼음, 거울, 유리.

세상이 크다는 사실이 구원이 된다. 절망은 사람을 좁은 공간에 몰아넣고, 우울함은 말 그대로 푹 꺼진 웅덩이다. 자아를 깊이 파고들어 가는 일, 그렇게 땅 밑으로 들어가는 일도 가끔은 필요하지만, 자신에게서 빠져나오는 일, 자신만의 이야기나 문제를 가슴에 꼭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는 탁 트인 곳으로, 더 큰 세상 속으로 나가는 반대 방향의 움직임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가끔은 밖으로 혹은 경계 너머로 나가는 일을 통해 붙잡고 있던 문제의 핵심을 ㅗ들어가는 일이 시작되기도 한다. 이것이야말로 말 그대로 풍경 안으로 들어온 광활함, 이야기로부터 당신을 끄집어내는 광활함이다.

고대 그리스어 ‘프시케’는 숨, 생명, 삶의 본질적인 활기, 영혼을 뜻하고, 때로는 영혼의 상징인 나비를 뜻하기도 한다.

냉기는 거의 모든 것을 보존한다. ‘동결하다freeze’라는 단어가 현대 영어에서는 ‘시간을 멈추다, 진행을 멈추다, 영상을 멈추다’와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다. 시간이 강이라면 아마 그 물은 얼음이 되어 버릴 것이다. 이렇게 흐름을 멈추고 정지한 시간이 극지방의 완고한 안정감이다.

극지방의 태양에 관해 쓴 지 1년쯤 후, 그러니까 남편이 갑작스레 익하한 후에 메리 셸리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마음이 차가운 사람인 걸까?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이 마음 한가운데 있는 얼음같이 차가운 무언가를 부러워할 필요는 없겠지. 적어도 이 차가운 심장에서 나온 감정이 만들어 내는 눈물은 뜨거운 것임을.”

p94. 이스터 섬의 원주민이던 라파누이는, 위험하고 예측할 수 없는 그 의식을 좀 더 삶의 중심으로 끌어들였다. 예언자들은 의식에 참가할 사람들을 꿈에서 선정했다. 누군가의 꿈에 등장하는 것이 위험한 일이 된 것이다. 참가자들은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섬으로 헤엄쳐 간 후에, 그해 처음 낳은 검은등제비갈매기의 알을 찾아서, 다시 헤엄쳐 와서는, 알을 깨뜨리지 않고 절벽을 올라와야 했다. 익사하거나, 상어에게 잡아먹히거나, 절벽에서 떨어지는 참가자들도 종종 있었다. 우승자는 새로운 이름을 얻고 홀로 지내게 되지만, 1년 동안 사람들의 찬양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부족은 그가 가져온 검은등제비갈매기 알 덕분에 그 섬의 모든 알을 독점할 수 있었다.

버드맨 의식은 어떤 작은 물건을 전리품으로, 영적이거나 사회적인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혹은 삶을 바꾼 어떤 징표로 여기는 수많은 이야기 중 극단적인 예이다.

검은등제비갈매기 알은 점이 찍힌 작은 알일 뿐, 별다른 특징도 없다. 이 모든 것을 관장하는 신의 이름은 마케마케makemake다.

p99. 도서관은 세상으로부터 벗어난 성지이며 세상을 통치하는 지휘소다. ..도서관은 세상으로 가득 찬 은하수다. 모든 독자는 우다오쯔이며, 상상력으로 마음을 사로잡는 모든 책은 독자가 그 안으로 들어가 사라지는 풍경이다.....책은 다른 이의 몸 안에서만 박동하는 심장이다.

p100. 나는 침묵에서 시작했다.....나는 침묵에서 시작했지만, 결국엔 긴 여정을 거쳐 아주 멀리서도 들리는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에 이르렀다. .....왜냐하면, 글쓰기는 아무도 아닌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이고 청중 앞에서 낭독할 때라도 여전히 부재하며 멀리 있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미지의,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p109 성 프란체스코는 젊은 시절 말라리아에 걸려 군대에서 돌아온 뒤, 요양 중에 자신의 영적인 운명을 깨달았다. 모기 한 마리가 그런 영적인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p111. 그 혈액세포의 생성 과정을 ‘조혈(hematopoiesis)’이라 하는데, 각각 ‘피’와 ‘만들다’라는 뜻을 가진 고대 그리스어가 합성된 단어이다. 시(poetry) 역시 ‘포에시스poesis’에서 유래 했는데, 여기에는 예술이 단지 모방에 불과하다는 플라톤의 사상이 깔려있다. 우리가 ‘시’라는 뜻으로 쓰고 있는 단어에서, 고대 그리스인들은 세상의 모든 ‘만드는 행위’를 보았던 것이다.

p115 “정말 좋은 이유가 없다면 절대로 모험을 거절하지 마라.” 이번 모험은 두 손으로 덥석 받을 많은 이유가 있었다. 마치 책이 하나의 문이 된 듯했다.

‘에로스와 프시케’를 읽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보이는 그대로 사랑 이야기로 읽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도전 의식과 하나가 되려는 욕망,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이야기로 읽는 방법이다. 이렇게 읽으면 두 주인공은 두 인물이 아니라 한 존재의 두 가지 측면이 된다.

잠든 새의 눈물을 마시는 나방이나, 에로스와 프시케의 사랑 같은 건 서로 다른 존재의 공존일 뿐이다.....흡혈 나방으로 알려진 많은 종류의 나방들은 척추동물의 피를 빨아 먹고 살고, 열 종 남짓한 어떤 나방은 포유류의 눈을 공격해 단백질과 소금, 기타 미네랄을 먹고 산다.

p121. 젊을 때 읽었던 마르키 드 사드의 문장이 종종 떠오르곤 한다. “아, 늘 무언가를 창조해 내는 시간에게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이 살덩이든 저 살덩이든, 오늘은 한 인간의 몸을 이루고 있지만 내일이면 천 마리의 곤층으로 변해 버릴 것을?” 사드에게 중요했던 이 질문 혹은 탄식은 일반적으로 분해라고 상상하는 어떤 과정이 또한 변신이기도 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p125. “아르스 롱가, 비타 브레비스 Ars longa, vita brevis”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p133. 17세기 프로테스탄트 목사이자 북아일랜드 데리 지역의 주교였던 에즈키엘 홉킨스

“이 모든 것이, 비록 매끈하고 화려해 보이지만, 실은 모두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입니다. 비눗방울, 허공에 떠다니는 비눗방울이 온갖 광택과 색으로 반짝이는 것처럼 진정한 세상도,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신의 숨결을 허공에 불어 만든 커다란 비눗방울에 불과합니다.” 몇 세기 전 네덜란드 철학자 에라스뮈스도 오래된 라틴어 표현 ‘homo bulla’ 즉 ‘인간은 거품이다.’라는 명제를 되살려 냈고, 바니타스 회화에서는 종종 작품 속에 비눗방울이 떠다니기도 한다.

자신의 숨을 세면서 거기에 집중하는 훈련은 선종의 명상에서 기초가 되는 훈련인데, 이 과정이 지루하다며 불평을 하는 제자가 있었다. 스승은 제자의 고개를 개울물에 넣은 다음 한참 후에 꺼내 주며 “아직도 지루하냐?”라고 물었다. 그 일시성이 분명해질 때, 숨은 지루하지 않은 것이 된다.

p194. ‘잣다 to spin’라는 단어는 처음에는 그저 뭔가를 만드는 행위를 뜻하다가, 빠르게 도랑가는 건 뭐든 뜻하게 되었고, 결국 ‘이야기를 하다’라는 의미까지 지니게 되었다.

“나는 누군가에게는 유용한 바늘이다. 하지만 거기에 꿰는 실은, 물론, 그림자다”라고 브렌다 힐먼이 자신의 시 <수트라 끈 이론>에 적었다. 영어와 라틴어에서 ‘꿰매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suture’sms 산스크리트어의 ‘수트라sutra’ 혹은 고대 인도어의 하나인 팔리어의 ‘수타suta’를 어근으로 하고 있다. 두 단어 모두 바느질과 관련이 있다.

‘수트라’라는 단어는, 플랫폼 수트라(육조단경), 하트수트라(반야심경), 로투스 수트라(법화경) 같은 단어에서 보듯이, 붓다 자신 혹은 그와 가까웠던 사람들의 가르침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훗날에 묶여 나오는 학문적이거나 철학적인 글들과 구분된다......수트라에 적힌 말이나 그 의미들이 만물을 관통하며 그것들을 하나로 묶어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 실들이 우리가 따라야 할 길이고 삶이 흐르는 혈관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어떤 아름다움은 사람들을 울게 한다. “희망이 곧 역사로 이루어지는” 순간, 아주 오랫동안 찾으려고 노력했던 어떤 우주의 법칙을 발견하는, 그와 함께 어떤 질서를 알아보고 또 만들어 내는 우리 자신의 능력이 드러나는 순간, 그저 놀랄 만큼 아름다운, 도덕적인 아름다움까지 포함하는 어떤 순간, 정의가 행해지고 진실이 존중받고 질서와 일체성이 회복되는 순간이 있다. 어쩌면 거기서부터 우리는 어떤 깊이 있는 아름다운 정의를 발견하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하나의 실처럼, 시간에 따라 풀려나가는 하나의 서사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하나의 이야기가 하나의 실인 것은 맞다. 하지만 우리들 각각은 그저 하나의 섬이고, 그 섬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실이 세상을 향해 뻗어 나가는 것일 뿐이다.

테피스트리 같던 특정 시기에서 실을 한 올 뽑아 보면, 내가 기술한 것은 모두 진실처럼 느껴진다.

p215. 하지만 승려들은 군부와의 연계는 거부했다. 시위의 절정에서 승려들은 매우 보기 드문 의식을 행했다. 그것은 팔리어로는 ‘파탐 니쿠자나 카마’, 즉 아무것도 담을 수 없도록 시주받는 그릇을 엎어 버리는 의식이었다......받기를 거부하는 것은 그 대가로 무언가를 내어 주는 것 역시 거부하는 것이며, 동시에 속세의 사람을 종교인의 삶과, 영적인 삶과 이어주던 끈을 끊어 버리겠다는 뜻이었다.

p222. 네 번째 광경은 <불소해안>에는 나오지 않지만 다른 경전에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바로 ‘비구’, 즉 홀로 방랑하며 인간이 고통받는 원인을 찾고 그것을 전하는 일에 삼을 바친 사람들이다.

p225. ‘두카’는 하늘, 공기 혹은 구멍, 특히 바큇살의 축에 있는 구멍을 의미한다. ‘수카’가 바퀴가 잘 굴러가게 하는 좋은 구멍이라면, ‘두카’는 잘못된 구멍, 바퀴가 흔들리고 길에서 덜컹이게 하는 구멍이다. 이는 조화나 차분함의 반대어로, 불화 아니면 소란으로 번역할 수 있다.

p232. 그 이어짐이 비극인 이유는 철새와 함께 이동하는 독성 물질과 기후변화 때문이다. 그 독성 물질은 곰을 자웅동체로 만들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그린란드 여성의 모유는 과학자들 사이에서 유해 폐기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수반카가 말했다. “왜냐하면 전 세계에서 시작되는 독성 물질의 여정이 북극에서 끝나거든요. ”

나방이든 나비든 다 자란 곤충은 ‘이마고’라고 부른다. 그 복수형이 ‘이매진즈’다. 나방이나 나비, 혹은 날 수 있는 다른 곤충을 성충으로 완성시키는 세포를 ‘이매지널 세포’라고 부른다. ....이마고는 또한 ‘한 인간에 대한 이상화된 이미지’라는 뜻도 가지는데, 이 이미지는 보통 어린 시절에 부모를 보며 형성된다.

불교에서 정신의 낙원을 뜻하는 니르바나는 촛불이나 불꽃을 ‘불어서 끄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단어다. 그건 열정이 가진 열기를 끄는 것, 숨을 길게 내쉬며 흘려보내는 상태를 의미한다.

p294. ‘헛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헤벌hevel’이고, 이는 숨 혹은 수증기라는 뜻으로, 숨처럼 순간적이고 수증기처럼 금방 사라지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 북극은 예외였다. 그곳에서는 페테르 프로이켄의 숨이 그래도 하나의 구조물이 되었다.

p350. “무엇이든 말로 바꾸어 놓았을 때 그것은 온전한 것이 되었다.”라고 버지니아 울프는 적었다. “여기서 온전함이란 그것이 나를 다치게 할 힘을 잃었음을 의미한다. 갈라진 조각을 하나로 묶어 내는 일이 커다란 즐거움을 주는 이유는, 아마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고통에서 벗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글을 쓰다가 무엇이 무엇에 속하는지를 발견할 때 느끼는 희열도 그렇다. 여기서 나는 내가 철학이라고 부르는 어떤 것에 도달한다. 어찌되었든, 원단의 뒷면에는 하나의 패턴이 있게 마련이라고 나는 늘 생각해 왔다. 우리는 , 그러니까 모든 인간은 그 패턴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 세계 전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며 우리는 그 예술 작품의 일부라는 생각 말이다.”

p355. 피터 싱어는 “현실을 파악하고 행동을 결정하는 두 개의 과정. 즉 정서적 체계와 의도적 체계”를 이야기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전자는 이미지나 이야기에 관여하며 감정적 반응을 유도한다. 후자는 사실과 수치에 관여해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p363. 응급상황emergency이란 무엇일까? 이 단어의 어근을 보면 ‘부상emergence’이라는 단어를 발견하게 되고, 그다음엔 ‘나타나다emerge’까지 이어진다. 응급 상황이란 무언가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나오는 ‘응급 상황’의 첫 번째 정의는 “가라앉았던 사체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 현재는 많이 쓰이지 않음”으로, 이는 ‘부상’의 정의와 동일하다. 두 번째 정의는 “가려져 있던 것이 드러나는 과정”이다. 마치 물놀이를 하던 사람이 갈대를 헤치고 나오는 것처럼, 누군가의 입에서 비밀이 새어 나오는 것처럼. 그다음에 가서야 우리에게 익숙한 정의가 나온다. “에상치 못했던 일이 발생한 상태, 즉각적인 대처를 서둘러 해야 하는 상태.”

시인 존 키츠는 현세란 “영혼을 다듬는 골짜기”이며, “응급 상황과 어려움을 통해 영혼이 만들어진다.”라고 했다. 응급 상황이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부상하는 시기라면, 융합merge은 그와 반대되는 상황이다. “어떠한 특정한 활동이나 삶의 방식, 환경에 빠져들게 하는 것,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 혹은 “어떤 액체에 녹아드는 것”, “어딘가에 포함, 흡수, 혼합되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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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6-05-08 0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 읽으니 다시 펼치고 싶네요.

시이소오 2016-05-08 09:30   좋아요 0 | URL
야금야금 읽다 반납할 때가 되어 슬프네여. 흑 ^^;

:Dora 2016-05-08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어제 이책 집어들었다 놨었는데.. 리베카 솔닛 ♡

시이소오 2016-05-08 09:59   좋아요 0 | URL
아직 다 안 읽으셨군요. 느무 부러워요 ㅋ^^

:Dora 2016-05-08 10:00   좋아요 0 | URL
시작도 못했죠 사려다 말았거든요...

시이소오 2016-05-08 10:02   좋아요 1 | URL
사셨어야죠 ㅋ

:Dora 2016-05-08 10:05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근데 사고픈 책이 너모 많았어요 솔닛아줌마가 이양구샘 책에 밀렸어요 ㅋㅋ

시이소오 2016-05-08 10:10   좋아요 1 | URL
호모 파베르의 인터뷰도 읽고 싶네요 ^^

:Dora 2016-05-08 10:15   좋아요 0 | URL
네 꼭 읽어보셔요^^ 제가 좋아하는 연출님이에요 필경사바틀비 연극한다는데 공유도 할게요

시이소오 2016-05-08 10:18   좋아요 1 | URL
꼭 읽어볼게요 ^^ 바틀비를 공연하다니 신선하네요 ^^ 바틀비적 정신이 필요한 시대죠. ^^

보물선 2016-05-08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러나와 쓰는 서평이 진짜 서평이죠^^ 잘 읽었슴다. 남자들의 느낌을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읽다가 말았는데 다시 읽어야겠어요.

시이소오 2016-05-08 10:21   좋아요 1 | URL
나방의 깨달음이죠. 후반부에도 기가막힌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즐독하시길 ^^

보물선 2016-05-08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딱 나방까지 읽었어요 ㅋㅋ

시이소오 2016-05-08 10:24   좋아요 1 | URL
나방 이야긴 챕터마다 계속 나와요 ^^

보물선 2016-05-08 10:26   좋아요 0 | URL
그럼~~처음 나오는 나방^^ 신데렐라 구두이야기까지였던 것 같아요~ 이 여자(분)의 세계는 정말 크구나 그런느낌^^

시이소오 2016-05-08 10:31   좋아요 1 | URL
리베카 솔닛의 다른 책도 궁금하네요 ^^

깊이에의강요 2016-05-08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이소님 리뷰는 항상
그 책을 손에 쥐고싶게 만들지요^^

시이소오 2016-05-08 21:04   좋아요 0 | URL
강요님이 그렇게 읽어주시니 그렇죠. 감사합니다 ^^

보빠 2016-05-09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읽는 것 좋아하시
네요 리뷰에서 느껴집니다

시이소오 2016-05-09 09:43   좋아요 0 | URL
좋아하죠. ^^

cyrus 2016-05-09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서평을 써본 적이 없다고 해서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시이소오님이 서평단 모집할 때 지원하면 선정될 겁니다. 저는 신간도서를 사지 않고,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습니다. 시이소오님처럼 생각하면, 신간도서 못 사는 제가 한심해집니다. ㅎㅎㅎ

시이소오 2016-05-09 17:34   좋아요 0 | URL
저는 요즘 신간이건, 구간이건 모든 책을 빌려 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