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먼드 카버는 고생했다.

 

하루키에 대한 글을 쓰면서 의문이 생겼다. 하루키는 스콧 피츠제럴드, 레이먼드 카버를 좋아했다. 그런데, 난 왜 피츠제럴드는 싫어하고 카버는 좋아하는 걸까? (그러고보니 둘 다 알코올 중독자다.)

 

어쩌면 계급때문일지도 모른다. 피츠제럴드는 단편 몇 편만으로도 1920년대 당시에 만 달러 수준의 돈을 받았다. 오늘날로 치자면 단편 몇 편으로 억대의 돈을 받은 셈이다. 넘치는 돈을 주체하지 못하고 스콧은 젤다와 함께 흥청망청 돈을 써댔다. 반면 카버는 그야말로 죽도록 고생했다. 스콧이 귀족이라면 카버는 거의 노예다. 혹시 내가 재벌 2세로 태어났으면 카버보단 스콧을 더 좋아할 수 있지도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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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실제 경험에 기초해야만 한다.”


- 헤밍웨이.


작품을 말할 때 그 사람의 전기에 기대어 혹은 프로이드식 정신분석학을 들먹여 작품을 해석하는 평론은 들여다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이 작품을 위한 평론이 아니라 평론을 위한 평론에 그칠 뿐이기 때문인데, 우리가 카버에 대해서 말 할 땐 일종의 예외가 허용될 수도 있지 않을까?


10대 시절 버로우의 <화성의 공주>를 읽고 읽고 또 읽던 카버의 정신적 스승은 다름 아닌 헤밍웨이였다

그리고 헤밍웨이의 위와 같은 단언은 죽을 때까지 그의 신조가 된다.



이미 발생한 사건이라고 해서 반드시 개연성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을 역사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예술은 아니다.

-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그러나, 카버는 일상의 경험만으로 예술이 될 것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카버는 약간의 자전적 요소로 출발하긴 했지만 거기에 풍부한 상상력을 덧붙여야 한다는 걸 지각하고 있었다.

작가는 엄청나게 대담하고, 기술적으로 능란하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 모든 것을 말할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작가는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 쓰도록 끊임없이 요구받는데, 자기 자신의 비밀보다 더 잘 아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많은 인물을 그려내는 건 필요하지 않아. 중력의 중심은 두 사람 안에 있어야 해. 그 남자와 그 여자


- 체홉의 편지.


카버의 두 번째 정신적 멘토는 체홉이었다. 체홉의 위와 같은 단언 역시 그의 평생의 글쓰기의 방향을 결정짓는다. 카버의 작품 중 주를 이루는 것은 이제 그 남자와 그 여자이야기가 될 것이었다.


그는 19살에 결혼을 하고, 21살에 두 아이의 아빠가, 41살에는 할아버지가 된다. 그리고 쉰 살에 죽음을 맞이하는데 평균의 삶에 비하면 마치 그의 글처럼 응축된 삶을 살았다고 해야 할까? 그의 때 이른 가장의 경험은 절망적이긴 했지만 한편으론 그것이 그의 글의 자양분이었다.


글쎄....대답이 될 수 있을까. 열아홉 살에 열여섯 소녀를 임신시켜 가장이 되고, 스물한 살에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가난한 청년의 절망을 상상해 본 적이 있소. 내겐 기억이 생생해요. 빨래방에서, 젖은 빨래를 한 아름 안고 빈 건조기가 나기를 기다리던 젊은 아버지는 빙빙 돌아가던 건조기 한 대가 멈추자, , 이제 저 건조기는 내 차례가 되겠구나, 그랬어요. 감히 희망이라는 걸 몇 초쯤 품어 보았다오. 하지만 희망이라는 가능성을 조롱하듯, 건조기 속 빨래의 주인이 다가오더니, 문을 열어 빨래를 만져보고는 다시 동전을 넣는 거요.

 

순간, 다시 돌아가기 시작하는 건조기 앞에서 울컥 눈물이 솟을 정도로 서러워지더군요. 그 순간, 나는 두 아이의 아버지라는 그 사실만큼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을 일은, 아무것도,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그 애들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테고, 막중한 책임감은 영원히 내 어깨를 짓누를 테고, 언제나 그 생각은 아무 데도 가지 않고 뇌리에 남아 있으리라는 사실을.”


카버의 위의 고백은 셔우드 앤더슨이 말한 카버 작품에서의 세련된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삶의 한계와 관련된 메시지를 속삭여주는 밖으로부터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말이다.


마치 시지푸스처럼 어깨에 커다란 돌을 짊어진 카버는 절망하긴 했지만 단 한 번도 문학을 포기하진 않았다.


높은 곳을 향한 투쟁 그것 자체만으로도 한 남자의 가슴을 충분히 채울 수 있다.

우리는 시지푸스가 행복했다고 상상해야만 한다.


- 알베르 카뮈, <시지푸스의 신화>



카버가 행복했다고 상상해야만 할까?


내 아내와 내가 가지고 있던 성스러운, 모든 정신적인 가치들이 산산이 부서져 흩어지는 시절이 오고 또 갔다. 그것은 다른 어느 가족에게서도 일어나는 걸 본 적이 없는 그런 일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침식이었고, 우린 그걸 멈출 수 없었다. 우리가 다른 곳을 보고 있는 동안 어찌하다 보니 아이들이 운전석에 올라앉아 있었다. 지금에 와서는 정신 나간 소리처럼 들리지만, 고삐와 채찍이 아이들 손에 들려있었다.

-카버의 에세이, <>


1962년 카버의 창작 단막극 <카네이션>에 관한 학교신문 럼버 잭의 평자는 이 인상주의적 등장인물들은 무섭다. 왜냐하면 당신은 자신이 무대 위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노출되고 있는 광경을 보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이러한 초기의 평은 앞으로의 카버작품에도 여전히 유효할 것이었다.


카버는 후기 산업사회의 주변부- 캘리포니아의 떠돌이 들이 모여 사는 동네들- 에 살던 사람들에 대해 썼어요. 이들은 침실 두세 개 짜리 집에서 살고 있는 아주 선량해 보이는 사람들이었지만,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가정 내 불화로 인해 갈가리 찢겨 있고, 항상 파산지경에 처해 있었죠. 이 사람들에게는 삶이란 언제나 임시이고, 또 임대로 얻은 거죠, 은퇴도 없고, 소유도 없고, 관계가 지속될 것이라거나 아이를 키우게 될 거라는 보장도 없어요. 카버는 이런 종류의 작은 비극들과 유머가 발생하는 순간들에서 뭔가 중요한 것을 봤어요.


- 첨단 :70년대의 미국의 젊은 소설. 잭 힉스


카버 단편의 내용적인 특징을 블루칼라 가정내의 불화라고 한다면 형식적 특징은 우선은 생략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부분을 생략시킴으로 해서 독자들에게 머리로 이해하는 것보다 더 풍부한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작가는 어떤 것이라도 생략할 수 있다.

- 헤밍웨이, <이동 축제일>


생략했을 뿐만 아니라 카버의 단편에는 세세한 묘사라고 할 만한 부분들이 없다.



진술의 기본적인 정확성은 글쓰기의 유일한 도덕이다” 


- 에즈라 파운드


카버의 글이 지적이지 않다고 불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체홉의 말에 따르면 그는 거기에 책임이 없다.



예술가가 작품에 임할 때 지적인 태도를 갖춰야 한다는 당신의 요구는 타당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두 가지, 즉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문제를 정확하게 서술하는 것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예술가는 오직 두 번째 사항에 대해서만 책임이 있습니다.


- 체홉 <체홉의 편지>


카버의 아버지가 그랬고 헤밍웨이, 잭 런던, 치버도 그랬듯 카버 역시 알코올 중독자였다.

카버의 친구는 말한다. ‘, 당신도 술 먹는 거 좋아하고 나도 술 먹는 거 좋아하지만, 레이가 술 먹는 거 좋아하는 것처럼 술 먹는 거 좋아하는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이러한 시기에 카버는 아내인 메리엔이나 자식들에게 폭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또한 카버가 만난 진정한 사랑역시 가뜩이나 불운한 가정에 불을 붓는 격이었다.



우리에게 잠재되어 있는 것의 최대치를 이끌어내며 살지 못하는 하루하루마다 우리는 우리안에 들어 있는 세익스피어, 단테, 호머, 예수를 죽이고 있다.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한 굴레에 묶여 살고 있는 하루하루마다 우리는 사랑할 수 있는 힘과 우리가 높이 평가하는 여자를 차지할 힘을 파괴하고 있다.

-헨리 밀러, <우주적인 눈>


아마 이 당시의 카버는 자기가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술은 끊을 수 없고 글은 써지지 않고 새로운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모든 환상을 꿰뚫어보고 모든 가치들을 다른 가치기준에서 바라본다. 신은 악이고, 진실은 속임수이고, 인생은 농담이다. 고요함-광기의 높이에서 신의 확신을 가지고 그는 모든 삶이 악이라고 바라본다. 아내, 자식들, 친구들, 그것들은 그의 논리의 선명하고 하얀 빛 속에서 사기와 허위였음이 드러난다. 그는 그것들의 덧없음, 빈약함, 야비함, 비루함을 본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의 자유를 알고 있다. 자신의 죽음의 날을 미리 알 수 있으리라는 것. 자살, 빠르건 느리건, 갑작스럽게 쏟아져버리든 여러 해에 걸쳐 서서히 새어나가든 그것이 존 발리콘이 요구하는 대가이다.

- 잭 런던, <존 발리콘>


발작 탓이었을까? 아니면 존 치버의 말년을 보아서 였을까? 1977년은 카버에게 기념비적인 날이다. 그 해 이후론 죽을 때까지 술은 단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는다. 카버는 금주이후의 삶을 그레이비라고 부르고, 그 전의 자신을 나쁜 카버, 그레이비 이후의 카버를 좋은 카버라 부른다.


질서는 모든 세대, 모든 예술 분야, 모든 개인에게 자치권적 승리를 의미한다. 질서는 모든 개인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바이다. 이것은 모든 예술가들이 추구해야 할 비밀스런 이미지이고, 그의 존재 이유이고, 그가 창조해 내는 것의 핵심이다. 질서를 창조해 내지 않는다면, 예술가는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는 셈이다.

-미셀 쉐퍼, <이 세기의 조형예술>


이 좋은 카버 시기의 작품이 <별 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내가 전화를 거는 곳>, <대성당>등이 있다. , 중반기의 출구가 없는 등장인물들은 빵을 먹거나, 한 번의 키스로, 혹은 맞잡은 손으로 그리는 그림 등에 의해 어떤 희망을 본다. 위협의 대상들은 구원의 대상으로 전복된다. 카버는 칼라일 호텔에 묵을 때 해럴드 핀터의 대사를 자기식으로 바꾸어 사람이란 게 이런 방에 있으면 자기한테도 기회가 있다고 믿게 되는 법이지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술을 끊고 테스 갤러거를 만나고 왕성하게 시를 창작하던 이 시기는 나쁜 카버의 시기에 비하면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순탄했다. 마치 그가 새로 사들인 벤츠같은 삶이었다. 그는 그야말로 잘나가는 작가였다.


뉴요커의 편집자. 찰스 맥그래스는 말한다.



카버는 내가 목격한 바로는 가장 광범위하게 모방된 작가로서, 한 세대 전체의 인솔자였습니다. 내가 처음 <뉴요커>에 갔을 때 가장 영향력이 컸던 작가는 샐린져였고 그 다음에는 도널드 바셀미, 그 다음이 앤 비티, 그 후가 카버였어요. 카버가 얼마나 뛰어난지는 그의 작품과 그의 모방자들의 작품의 차이를 보면 알 수 있어요.


톨스토이가 동시대 러시아 작가들을 두고 고골리의 외투에서 떨어졌다.”가 말했다는데 1990년 대 맥커너니에 말에 의하면, 카버의 외투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고 할 만한 작가는 아마 단 한 사람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좋은 카버시절의 카버의 작품은 경이롭긴 하지만 시시하다.



<세잔의 그림들에 대해서> 이 색상들은 마치 우유부단함 중의 한 부분을 완전히 치유할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붉은 색들과 푸른 색들에 들어있는 선한 마음, 이것들의 단순한 진실성, 이게 당신을 가르칩니다. 당신은 또한 사랑을 넘어선 지점까지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매번 조금씩 더 분명하게 알아가고 있겠죠. 하나씩 만들어나갈 때 마다 그것들 각각을 사랑하게 되는 건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드러내면 작품이 조금씩 더 안 좋아집니다.......별다를 게 없는 작품에서 사랑을 완전히 비워냄으로써 어떤 순수한 것을 만들어내는 일, 이런 것이 이 노인네의 작품에서처럼 완벽하게 성취된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 릴케, <세잔에 관한 편지>


어쩌면 좋은 카버는 비우기보다 채워서, 감추기보다 드러내기 때문은 아닐까?


























<알래스카에 뭐가 있지?> 1971년 작.


칼은 구두를 새로 사 신고 집으로 들어온다. 아내인 메리는 알래스카에 일자리가 생길 것 같다며 기대에 부푸는데, 칼 역시도 알래스카에 가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친구 사이인 헬렌과 잭 부부가 잭의 생일 선물로 산 물담배를 같이 하자며 칼 부부를 초대한다. 칼과 메리 부부는 소다수와 먹을 것 등을 사서 잭과 헬렌의 집에 방문한다. 소다수를 마시며 담뱃대를 돌려 피우려는 찰나, 메리는 칼은 오늘 밤 좀 짜증이 나 있어요라고 말한다. 메리의 말에 칼은 날 짜증나게 하는 좋은 방법이군 그래하고 대꾸한다. 두 커플은 이내 소다수를 마시고 물담뱃대를 돌려 피우며 잡담을 나눈다. 그러다 또 다시 칼은 메리에게 아까 자신이 짜증이 나 있다고 한 말이 무슨 뜻이냐며 메리에게 재차 되묻는다. 메리는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요라고 말하고는 눈물이 나도록 웃는다.

 

칼은 알래스카에 갈 거라고 잭 부부에게 말한다. 또 다시 잡담 등이 뒤섞이다가 잭과 메리는 음식을 가지러 부엌으로 간다. 칼은 메리가 잭의 허리를 껴안는걸 지켜본다. 칼은 소다수를 흘려 그의 구두에 엎지른다. 잭은 알래스카에 왜 가는지를 묻는다. 칼은 알래스카에선 할 일이 아무것도 없어라고 대답한다. 문을 긁는 소리가 들려오고 잭은 고양이 신디를 들여보내기 위해 일어서는데 메리는 잭에게 내 것도 하나 갖다 줘요, 여보라고 말하는데, 남편인 칼에게 말하는 줄 알았다며 자신이 실수했음을 말한다. 신디는 쥐를 물고 들어와 그들 곁에서 쥐를 먹는다. 잭과 헬렌 부부의 만류를 물리치고 칼은 메리를 부축해 집으로 돌아온다. 이미 취한 메리는 마시던 맥주를 내려놓고 잠이 들어 이내 코를 곤다. 칼이 막 램프를 끄려고 했을 때 그는 현관에서 한 쌍의 작은 눈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구두 한 짝을 쥔 칼은 그것이 한 번 더 움직이기를 기다린다.



<알래스카에 뭐가 있지?>보단 <이게 뭐지?>가 어울릴 법한 작품이다. 가히 핀터에 버금갈 만 하다. 카버의 단편들은 구석 구석 은밀한 암시들을 깔아놓긴 하지만 이 작품만큼 애매모호한 작품은 없는 것 같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카버가 주로 쓴 단편들은 그 남자 그 여자이야기이지만, 이 작품처럼 두 커플의 이야기로 분류할 수 있는 작품들도 꽤 있다. (예를 들면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 이 작품을 해석하기 위해 카버의 글들과 그의 노트에 쓰여져 있던 글들을 따라가 본다.



내 책상 맡에는 체홉의 단편에서 따온 문장 하나가 적힌 카드도 붙어 있다. “...갑자기 모든 것이 그에게 있어 명료해졌다.” 나는 몇 안되는 이 단어들이 경이와 가능성으로 채워져 있음을 발견한다. 나는 그 단순한 명징성을 사랑하고, 그것이 암시하고 있는 계시를 좋아한다. 거기에는 또 미스터리도 포함되어 있다. 그 전까지는 무엇이 그렇게 불명료했을까? 왜 그것이 지금에야 명료해졌을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무엇보다도,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한 갑작스런 깨달음으로 인해 초래되는 결과들이 있다. 나는 날카로운 안도감, 그리고 나름대로의 예감을 느낀다.


실제로 다른 작품들에선 갑자기 모든 것이 .....명료해졌다.”와 비슷한 문장들이 제법 나온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선 그도 말하지 않을뿐더러 내게 있어서도 아직까지 모든 것이 불명료하다. 이 소모되는 듯한 대사들은 뭘까?

시나 단편 소설에서 지극히 상식적이면서도, 정확한 언어를 구사하여 지극히 상식적인 사물을 글로 표현하는 것, 또한 그러한 사물-이를테면 의자나 창문의 커튼, 포크, 돌멩이, 여자의 귀걸이 등-들에 거대하고 놀라운 힘을 부여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또한 독이 없는 대화를 통해 읽는 이의 등골에 오싹한 한기를 전달하는 글을 쓰는 것도 가능하다. 그것이 예술적 기쁨의 원천으로 작용하는 작가로는 나보코프 Nabokov를 들 수 있다. 내가 가장 흥미를 가지는 것이 바로 이러한 종류의 글쓰기이다.



소다수가 의미하는 바가 있을까? 일종의 맥거핀일까? ‘소다수는 아무 의미가 없어 보이는데 그 단어가 계속 반복되다보니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기이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나는 단편 소설에 어떤 위협이나 협박 같은 느낌이 있는 것을 좋아한다. 소설에는 약간의 협박이 들어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그 작품이 널리 유포되는데도 도움이 된다. 긴장 역시 꼭 필요하다. 무언가 절박한 상황, 처절한 행동이 곧 벌어질 것 같은 느낌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의 경우, 소설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소설 작품 속에서 긴장을 만들어 내는 것 가운데 하나는 가시적인 행동을 표현하기 위해 구체적인 단어들을 연결시키는 방법이다. 그러나 다 털어놓지 않은 것, 그저 암시만 된 것, 사물의 평평한(때로는 망가지고 뒤집어진) 표면 아래 감춰진 풍경 등에서도 그런 긴장이 발생한다.


문을 긁으며 쥐를 물고 들어오는 고양이 신디는 일종의 협박 같다. 다른 소설에서도 이런 협박 집으로 들어오려는 공작, 너무나 못생긴 아이 등 은 그가 주의해야한다고 말했던 트릭이라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서도 무언가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을 받는다.


그가 말했다, 그녀가 말했다식의 문장이 있어야 하는지도 의문이었다. 등장인물이 많아서? 일종의 실험일까? 카버와 메리엔은 그가 말했다, 그녀가 말했다라는 텔레비전 퀴즈 프로그램의 내용을 받아 적었다고 한다. 어쨌든 이런 식의 문장이 독특한 음률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다. (그는 소설가 이전에 시인이었다.)


프리체트 V. S. Pritchett는 단편 소설을 눈꼬리로 힐끗 본 스쳐 지나가는 무언가라고 정의했다. 여기서 힐끗 본다라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무언가를 힐끗 본다. 그 다음에는 그것을 통해 생명력이 부여되고 그 순간을 조명하는 무언가가 탄생한다. 나아가 운이 좋으면-또 운을 들먹인다-보다 깊이 있는 결과와 의미에 도달할 수도 있다.

 

단편 작가의 임무는 자신의 모든 힘을 이 힐끗 보는데 투자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지혜와 문학적 기술이 무르익고(재능), 균형 감각과 사물의 합당성에 대한 감각이 길러진다. 사물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가, 그것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도 감지할 수 있다. 또한 명쾌하고 구체적인 언어, 디테일한 부분에까지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그런 숙제를 해결할 수 있다. 디테일은 구체적이고 의미를 전달해야 하므로, 언어는 정확하고 정밀하게 구사되어야 한다. 단어는 지극히 평범하게 들릴 정도로까지 정확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를 전달해야 하는 임무에는 변함이 없다. 제대로 사용된 단어는 모든 음계를 아우를 수 있는 힘을 가진다.


그가 집에서 본 듯한 한 쌍의 작은 눈의 정체는 뭘까? 그것이 무엇이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이와 비슷한 알 수 없는 결말을 내리는 다른 단편이 있다. 원제는 <제재소 사장의 죽음>이었지만 <오리들>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는데, 그 작품 속에서도 아내는 남편 먼저 잠들고 남편은 창밖을 바라본다. 그리고 남편은 침대로 돌아와 아내를 깨운다. “여보, 일어나”..... .......“일어나”,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에는 체호프적인 명료함이 존재하지만, 또한 이면의 무언인가가 끔찍하게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카프카적 의식도 존재한다.”

 

-마이클 코프.


아마도 내가 카버를 좋아했던 건 체호프적인 명료함때문이라기 보단 (그런데 체홉이 명료한가?) ‘카프카적 의식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가 보는 게 무엇이고, 그가 듣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등장인물들의 심리적 상관물이라는 데엔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섬뜩하다.


카버는 한 인터뷰에서 서로의 얘기를 듣고 있지 않는 사람들의 대화를 좋아한다고 말했는데, 그런 대사를 쓴 대표작은 아마도 이 작품이 아닐까?


농담 아니야?

헬렌이 말했다.

진담이야

칼이 대답했다.

알래스카 말이야.”

헬렌이 말했다.

칼은 그녀를 응시했다.

당신이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칼은 헬렌이 무슨 말을 하건 전혀 관심이 없다. 칼은 부엌으로 간 잭과 메리에게 온 신경이 가 있을 뿐이다.

잭이 말하며 빙긋이 웃었다.

뭣 때문에 그렇게 웃는 거야, 헬렌?”

나도 몰라. 메리가 말한 게 우스워.”

헬렌이 말했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데?”

메리가 물었다.

기억 안 나.”


헬렌은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기억도 못한다. 그러면서 웃기만 할 뿐이다. 잭은 그런 헬렌이 못 마땅하다

쥐를 먹어치우는 고양이같다. 아마도 메리와 잭은 여보라는 말을 쓰는 걸로 봐서 내연의 관계일지도 모른다. 칼은 그 두 사람의 관계가 미심쩍다. 그리고 이러한 등장인물들의 심리적 역학관계에 대해서 절대로 묘사하려 들지 않는다. 단지 상황만을 만들고 암시적인 대사를 들려준다.


말들, 정확하고 진실한 말들은 행위가 지니는 힘을 가집니다. 여러분의 말들의 영혼, 여러분의 행위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그것으로 준비는 충분합니다. 더 이상 다른 말은 필요 없습니다. ”


<너무나 많은 물이 집 가까이에>. 1974


클레어의 남편과 그의 친구들인 고든 존슨, 멜 던과 번 윌리엄스는 매년 봄과 초 여름, 정기적으로 낚시를 다니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가정적인 사람들이다. 이번 낚시에서 그들은 알몸의 소녀의 시체를 발견한다. 토론 끝에 그들은 계속 낚시를 하기로 하고 시체가 물에 떠내려가지 않게 소녀의 손목을 나일론 줄로 나무에 묶어놓는다.

 

그리고 그들은 평소대로 카드를 치고 위스키를 마시고 소녀 옆에서 설거지를 한다. 이틀 동안. 다음 날 산을 내려온 그들은 경찰에 신고를 한다.

집으로 돌아온 클레어의 남편은 클레어의 다리를 벌린다.

다음날이 되어서야 클레어는 남편과 그의 친구들에게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듣게 된다.

죽은 소녀와 어릴 적 친구사이였던 클레어는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차를 몰고 가는데, 픽업트럭을 탄 남자가 치근덕거린다.

 

집으로 돌아온 클레어에게 남편은 클레어에게 필요한 게 뭔지 알 것 같다며 블라우스의 단추를 벗긴다. 클레어는 맞아요라고 말하며 남은 단추들을 자기 손으로 푼다. 마당에 있는 아들 딘이 오기 전에 서두르라며.

이 작품은 카버의 그 남자- 그 여자 이야기에 속하긴 하지만 기존의 작품들과 비교해 약간은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작품 중에 폭력이나 섹스를 다룬 작품은 많이 있지만 직접적으로 살인을 소재로 삼은 작품은 이 작품이 유일하다. 아마도 이 작품만을 따로 읽다 보면 별다른 감흥을 느낄 수 없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작품집을 순서대로 읽어가다 보면 좀 더 기이한 느낌을 받게 된다.


첫 작품을 읽었고, 그리고 나서 다음 걸 읽다가 감정적으로 너무 벅차올라서 나머지 작품들도 읽어나갔는데, 문자 그대로, 끝날 때까지 책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어요. 그 작품집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어요. ”

아마도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을 읽은 독자들도 위와 같은 크리스틴(카버의 딸)과 똑 같은 느낌을 받지 않을까?


고든 리시는 이 작품을 <목욕>, <여자들에게 우리가 간다고 말해줘>, <청바지 다음에> 놓았다. 특히나. <여자들에게 우리가 간다고 말해줘>와 이 작품은 카버 작품 중 유일하게도 친구들끼리의 사소한 일탈을 다룬다. <여자들에게>의 제리는 내치즈 강을 굽어보는 언덕위에 멋진 집을 갖고 있고 주말이면 그의 친구인 빌이 아내와 애들을 데리고 정기적으로 방문한다. 어느 토요일 남자들은 밖으로 나다녀야 해.”라고 말하곤 아내와 애들을 남겨두고 차를 몰고 나가 자전거를 탄 여자들에게 수작을 건다. 여자들이 자전거를 버려두고 내치즈 협곡을 오르자 빌과 제리도 그녀들의 뒤를 쫓는다. 그리고 여자들을 발견한다.


그는 제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결코 알지 못했다. 하여튼 그건 바위로 시작하여 바위로 끝났다. 제리는 같은 바위를 두 여자에게, 처음에는 샤론이라는 여자에게, 그 다음에는 빌리의 몫인 여자에게 사용했다.”


카버의 단편은 다른 단편과의 어떤 느슨한 결합을 이루고 있는데, 이 두 작품은 친구들 간의 일탈, 그리고 내치즈강을 무대로 하는 한다는 점에서 내치즈강을 소재로 하는 유일한 두 작품- 그렇다. 그리고 그런 유추를 하자마자 끔찍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그야말로 상상이다.


<너무 많은 물이>의 화자는 시체의 목격자인 클레어의 남편과 친구들이 아니라, 클레어다.

그는 가고 있는 길에 집중하려 한다. 하지만 그는 계속 백미러를 쳐다본다.

그는 알고 있다.“

도대체 뭘 알고 있단 말인가?


너무나 많은 물이 집 가까이에 흐른다.

왜 몇 마일이나 멀리 갔어야 했어요?”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는 동안 클레어는 미용사에게 말한다.

그건 살인이었어요


맞다. 그건 살인이었는데, 굳이 왜 저런 말이 필요할까? 그들이 클레어의 죽은 친구를 물 속에 그대로 방치한 행위 때문에? 아니면 혹시 그들이 살인을 저지르기도 했단 말인가?


그렇지만 클레어는 장례식에서 살인자가 잡힌 걸 듣는다.


그들은(독자들) 자신들이 오직 액션에만 관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이 실제로 관심을 가졌던 것은, 그리고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대화와 묘사를 통한 감정의 창조였다. 독자들이 기억하고 또 그들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남아있는 것은, 예를 들자면 한 사내가 살해당하는 장면이 아니라 바로 그 죽음의 순간에 매끈거리는 책상위에서 종이 클립을 집어들려 애쓰는 모습이다.

 

-레이먼드 챈들러


클레어의 남편과 친구들이 직접 살인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카버는 대사와 묘사를 통해 어떤 감정을 창조한다.


살인이 없었다고 하자. 그러나, 여전히 죽은 사람을 이틀 동안 방치하는 행위에 대해선 윤리적인 질문을 제기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토론을 통해 남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이미 오 마일을 올라왔고, 일 년에 몇 번 밖에 없는 자신들의 유희를 포기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건 합리적인 행위였을까?


나무들 아래로 흐르는 강물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바로 그때 나는 그 픽업트럭이 다시 돌아오는 소리를 듣는다.

폭력은 어디에나 있다. 강가에서, 차도에서 심지어 집에서도.

그토록 많은 물이 흐르니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다.


딘이 걱정된 클레어는 위스키를 마신 남편 스튜어트 앞에서 남은 단추들을 자기 손으로 풀 수 밖에 없다.

알코올 중독시기에 카버는 아들, 딸들에게도 그리고 아내인 메리엔에게도 폭력을 휘둘렀다. 한때 두 번째 사랑이라 여겼던 세실리의 집에서 메리엔에게 컵을 던져 메리엔은 육체의 60프로의 피를 흘려 하마터면 죽을 뻔 한 적도 있었다. 혹시나 이 작품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과 알코올 중독에 대한 자기반성적 작품은 아닐까?


제임스 아틀라스는 윤기없는 문체와 감정표현의 의도적인 기피가 따분해진다.”라고 비판했고 어떤 이들은 카버의 작품을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으론


그가 쓰고자 한 것은 단 하나의 레이먼드 카버 이야기였다. 레이먼드 카버만이 포착해낼 수 있는 세상의 풍경을 레이먼드 카버만이 풀어낼 수 있는 어법으로 픽션에 담아 이야기하는 것. 레이먼드 카버가 레이먼드 카버로 존재하는 것이 때로는 고통스럽고 부끄럽고 죄 많은 일이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고달픈 일이었다. 그러나 레이먼드 카버는 레이먼드 카버라는 화자를 얻음으로써 그러한 고달픔에서 일시적으로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스스로 조금이나마 구제함으로써 우리 역시 아주 조금은 구제받을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카버를 떠올리면 홍상수의 영화가 떠오른다. ‘일상 속에 감추어진 낯섬을 말한다는 점에서 그렇고 그 역시 술을 어지간히 좋아 한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그 역시 나쁜 홍상수의 시기를 거쳐 이제 좋은 홍상수의 시기를 즐기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의 영화는 그야말로 훨씬 좋아졌다. 하지만 나는 그의 데뷔작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나쁜 홍상수가 그립다. 어차피 절망을 말할 수 있는 건 희망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오늘 바다는 거칠다. 갑자기 힘차게 불어 닥치는 바람과 더불어.

- 로렌스 더렐 <저스틴>.


카버가 가장 좋아하던 문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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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6-04-10 0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부분만 좀 읽었어요. 피츠제럴드는 개츠비처럼 엄청 벌어 화르르한 것 같아 저도 카버에게 한표를 :-)

시이소오 2016-04-10 03:44   좋아요 0 | URL
너무 길죠? ㅋㅋㅋ

초딩 2016-04-10 03:45   좋아요 0 | URL
:-) 나중에 다시 한 번 보려구요. 셋다 애정해서요

시이소오 2016-04-10 03:48   좋아요 0 | URL
하루키, 스콧, 카버를 다 좋아하신다면, 제가 스콧을 싫어하는게 단지 계급의 문제는 아니군요. 다른 가설을 찾아봐야겠습니다. ^^

초딩 2016-04-10 04:07   좋아요 1 | URL
음 :-) 통독을 거칠게 해봤어요. 스콧은 시대에 편승해서, 문학작품에 더 가깝게 시대상을 중의적으로 표출한 것 같아요. 문학책? 같은 느낌
카버는 - 저는 대성당만 읽었어요 - 칼 같이 거칠게 그리고 승화의 어떤 단계를 벅차게 맞이해 분출 한 것 같구요.
이승우작가의 생의 이면에서 이승우작가가 앙드레 지드를 인용하며, 소설은 작가를 - 생을 - 반영한다고 하듯이,
둘다 자신의 생을 각자의 방식으로 반영한 것 같아요.
세계대전 이후 미국인들의 불편한 부분을 변호하고 덮어주듯 써낸 스콧의 개츠비가 대순풍을 맞은듯 위대해졌다는 사실을,
위대한 사진작가가 운과 우연에 의지하는 것을 끄덕끄덕 인정하듯이 인정하긴 해야하는 것 같도해요.
하루키는 앞 두 작가를 - 특히 카버 - 후에 읽고 나니 그들의 반영과 서사의 방식을 동양적으로 동양인에게 맞게 써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앙 ㅜㅜ 협소한 입력창이 ㅜㅜ 두서 없이 썼네요.
내일 다시 ㅜㅜ 봐야겠어요.
좋은 밤 되세요~

시이소오 2016-04-10 04:12   좋아요 0 | URL
늦은 새벽에 이렇게 장문의 댓글이라니요.
<위대한 개츠비>리뷰를 쓸 때 초딩님 말씀을 참고해야겠네요.
곧 아침이 옵니다.
부디 굿 밤되세요.~~ ^^

2016-04-10 1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10 14: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연 2016-04-11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이먼드 카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체호프의 명료함과 카프카의 의식이라. 다시한번 읽어봐야겠어요.

시이소오 2016-04-11 09:11   좋아요 0 | URL
제가 느끼기에 카버 소설은 어떤 위협, 협박의 요소들이 있어요. 카프카적인 느낌이 들어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6-05-10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wnrehfhr죽도록 고생한 작가 중 한 명이 바로 코맥 메카시입니다. 한동안 풀만 뜯어먹고 살아닸네요..

시이소오 2016-05-10 16:4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존경스럽네요 ^^
 
뇌는 왜 삽질을 시킬까?
데이비드 디살보 지음, 김현정 옮김 / 청림출판 / 2014년 9월
평점 :
품절


어릴 때, 아이큐 검사 결과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대충 동물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었던 것 같습니다. ‘, 어쩌자고 나는 이다지도 허접하고 미성숙한 뇌를 가지고 세상에 나왔단 말인가하고 참 고민을 많이 했답니다. 그러다보니 뇌에 관심을 쏟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진화해야죠.)

 

언제부터인가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란 말이 두루 쓰이는 듯합니다. 뇌가 고정된 기관이라는 기존의 상식과 달리, 운동을 하면 근육이 생기듯 뇌 역시 훈련과 노력에 의해서 좋아질 수 있다는 말이죠.

 

메타인지

 

정신은 뇌의 작용입니다. 우리의 의식적인 정신 세계에 추진력을 부여하는 일종의 점화장치에 대해 인지과학자들은 메타인지라고 부릅니다. 메타인지란 생각에 대한 생각을 말합니다. 저자는 타고난 능력만으로 메타인지를 활용할 수 없고 훈련과 노력을 통해 삶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인지 과학자들에 따르면 우리의 의식은 초당 40개의 정보를 처리할 수 있습니다. 반면 우리의 무의식은 초당 1,100만개의 정보를 처리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의 무의식을 개발할 수만 있다면 영화 루시의 주인공처럼 초능력자도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저자는 그러한 자기 성찰의 착각은 주로 사이비 종교나 영화에서나 가능할 뿐이라고 일축합니다.

 

우리는 오로지 의식 수준에서 사유할 뿐이고, 우리의 의식은 초당 40개의 정보를 처리하는 수준으로 무의식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결코 하찮은 수준은 아니죠. 메타인지를 활용하면 정보 처리 능력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훌륭한 저널리스트의 특징으로 메타인지를 활용하는 다섯 가지 방법을 제시합니다.

 

1. 신속하게 행동한다

2. 확실한 근거에 의존한다.

3. 올바른 질문을 던진다.

4. 이야기가 흐르는 대로 따라간다.

5. 불편한 사실을 기꺼이 인정한다.


뇌의 자동성을 막는 인지 행동 치료의 문제 해결 방법

 

해결 가능한 문제에 집중하라. 무한 반복 고리에 빠져들어 당신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는 문제에 집중력을 쏟아 부어서는 안 된다.

한 번에 한 가지 문제에 집중하라. 또한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진지하게 임하라.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변화시키는 데 집중하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하나의 방안으로 여겨라.

당신은 당신의 생각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굳이 다섯 개의 규칙을 언급한 이유는 마지막 다섯 번째 규칙 당신은 당신의 생각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때문입니다. 저도 그렇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생각이 자신이라고 착각하고 사는지요? 자신의 생각과 전혀 다른 증거들, 사실들 앞에서 우린 대개 외면하곤 하지 않나요? 어떤 경우엔 생각을 바꿀 필요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생각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니까요.

 

한계를 극복하는 30가지 습관

 

1. 머리 아픈 언쟁을 피하기

 

가장 기초적인 메타인지 도구 중 하나는 잠깐 멈춰서 생각하는 능력이라고 합니다. 누군가와 논쟁 중일 경우, 우리는 인식 쐐기를 박아놓고 잠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건설적인 논쟁인가?’

 

우리에게는 짧은 시간 동안, 혹은 긴 시간 동안 생각을 중지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압박감이 극심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생각을 중지시킬 수 있다. 생각을 중지시키면 다음 행동을 취하기 전에 상황을 재평가하는 소중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처럼 간단하게 느껴지는 행동이 심오한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2. 후회하고 또다시 반복하는 행동 끊기

 

얼마나 빨리 반복 행동을 바꿀 수 있을지 기대치를 낮추기 바란다. 하지만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변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면 언젠가는 변할 수 있다.”

 

3. 어떤 상황에서도 강한 믿음 가지기

 

인생의 목표를 검토할 때 스스로에게 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얼마나 확신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라. 나는 이런 방식을 철저한 믿음 검사라고 부른다. 당면한 문제를 의식적인 정신 공간 속에 밀어 넣고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믿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믿음이 없으면 당신의 뇌는 당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을 공급하지 않을 것이다.

 

4. 껌 씹기로 긴장한 두뇌 이완시키기

 

많은 연구 결과 껌이 기억력, 민첩성, 불안감 감소, 식욕 억제, 기분, 학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하네요. 20분 정도 껌을 씹으면 두뇌에 좀 더 많은 혈액을 공급할 수 있답니다. 또한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코르티솔 수치가 감소되고 전반적으로 불안감도 줄어든다고 합니다.

오랜 기간 동안 껌을 씹으면 두뇌의 특정부위가 활성화되어 우울한 감정을 덜 느낀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합니다.

 

껌이 왜 이런 효과들을 일으키는지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저렴하면서도 가장 간단한 두뇌 혁명 도구라고 하니, 내일이라도 당장 껌 한번 씹어 보시죠?

(저는 껌 씹으며 쓰는 중)


5. 특별한 글쓰기로 생각의 관점 바꾸기: 부고 쓰기.

 

부고를 쓰는 것의 장점으로는 첫째, 객관적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고, 둘째, 잊혀던 기억의 조각들을 다시 불러올 수 있으며, 셋째로 기존의 자기 서사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고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 의식적으로 답할 수 있게 된다고 하네요.

 

6. 필요 이상의 과도한 동기 제한하기

 

실험에 따르면 더 많은 현금의 유혹이 제시됐을 때 참가자들은 많은 양의 도파민이 분비되었다고 하는데, 이들은 다른 참가자들 보다 실수를 더 많이 저질렀다고 합니다.

 

7. 이성으로 감정을 통제하는 연습하기

 

오랜 시간 동안 반복적으로 연습하면 우리의 감정적인 경험을 좀 더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이는 감정의 강도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최대한 좋은 방향으로 감정을 유도한다는 뜻이다.”

 

8.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동기 관리하기

 

메타인지적인 통제력을 발휘하려면 우리의 무의식적 동기를 뒤덮고 있는 베일을 벗겨내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자기기만을 감지하는 도구를 활용하면 우리가 무시하기 쉬운 동기, 즉 자신의 이익에만 도움이 되는 동기를 찾아낼 수 있다.”

 

9. 머릿속 갑갑한 틀에서 벗어나기; 상호적인 뇌.

 

다니엘 시겔은 비단 뇌와 신경계 내에서만 에너지와 정보가 조절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과 다른 사람들의 정신 사이에서도 에너지와 정보의 조절이 이뤄진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통합이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통합은 상관적인 것이다.

 

바꿔 말하면, 당신의 뇌 활동만이 당신의 정신이라고 볼 수 없다. 당신이 살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맥락 내에서 당신의 뇌가 하고 있는 활동이 바로 당신의 정신이다. 정신은 개별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관적인 개념이다.”

 

10. 집중력을 향상시키는 침묵 지키기

 

집중력을 향상시키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는 능력을 발달시키려면 주기적인 외적 침묵과 내적 침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혼란스럽게 흘러가는 외부 소음과 내면의 소음에서 벗어나야 할 때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소음에 휩쓸려버릴 수도 있다.”

 

11. 자동적 판단에 이의 제기해보기

 

판단 휴리스틱은 생존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자칫 이로 인해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될 수도 있다. 판단 휴리스틱이 어떻게 악용되는지 알고 있으면 위험을 막을 수 있다.”

 

12. 자제력이 필요할 때 당분 섭취하기: 설탕, 포도당 섭취

 

실험에 따르면 인공 감미료가 아닌 설탕이 들어있는 음료로 입을 헹군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성취율이 높았다고 한다. 포도당이 혀를 자극해 뇌의 동기부여 센터를 자극했기 때문이랍니다. 설탕은 단순히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가 하는 행위에 개인적으로 좀 더 많은 투자를 하게만든다고 하네요.

 

13. 정지 버튼을 누르듯 생각 멈추는 훈련하기

 

셸리 카슨의 <우리는 어떻게 창의적이 되는가>에서 제시된 방법이라 하네요. 자신이 특정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언어적 명령이나 심상을 활용해서 스스로에게 그 생각을 멈추라고 이야기하면 됩니다.

 

14. 타인을 돕고 공감 능력 키우기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긍정적인 행동을 하는 모습을 목격하면, 뇌는 그 사건을 내게도 똑같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근거로 인식한다. 다른 누군가의 성공을 돕는 것이 달성 가능한 보상이 되고, 우리는 이런 보상을 얻을 기회를 탐색하기 시작한다.

 

15. 문제에 압도당해도 밀고 나가기

 

우리는 대개 압도적인 에너지가 치밀어 오르는 현상으로부터 스스로를 차단하기 위해 관심을 돌릴 수 있는 다른 대상을 찾고자 한다. 하지만 문제에 대한 관점을 바꾸고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방안을 찾는 것이 좀 더 건설적인 방법이다. 가장 도움이 되는 방법은 어디에서건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다시 시작하는 것은 임의성이라는 미심쩍은 가치에 호소하는 방법이 아니라 정신적인 마비를 약화시키기 위해 실속 있고 전략적인 방식으로 생각을 바꾸는 방법이다.”

 

16. 예민해질수록 의식적으로 잠자기

 

불빛이 어두워야 잠 호르몬이 나온다.

시원한 상태가 잠들기에 가장 좋다.

야식을 먹더라도 단백질은 피하자.

 

17. 생각의 균형으로 유연해지기

 

자기주장은 유연성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 버틀러와 호프는 자기 주장을 펼치면 좀 더 많은 길이 생기고 만족할 만한 적용 방안이 탄생한다고 이야기한다. 자기주장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을 지니면 자신의 욕구와 갈망, 느낌이 다른 사람들의 그것보다 더 중요하거다 덜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18. 적응하고 바꾸며 회복력 키우기

 

끈기라는 상호 보완적인 용어를 추가해도 된다. 회복력을 발휘하려면 끈기, 즉 꿋꿋하게 밀고 나가고, 극복하고, 중단하라고 위협하는 뭔가를 넘어서려는 투지가 필요하다......만일 당신이 목표 달성을 꾀한다면 끈기가 틀림없이 당신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19. 실패의 덫에 빠지는 원인 찾기

 

실패에 빠지는 10가지 이유

 

반드시 필요한 믿음이 빠져 있다.

다른 사람들이 정해놓은 분수를 받아들인다.

파괴자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내가 내일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기억할지 궁금해 한다.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의 경력이 안정돼 보인다. 좋은 일 아닐까?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자리를 잡는것인가?

이미 이뤄놓은 것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한다.

내가 천장에 다다랐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한다.

어디로 가야할지 혼란스러워 한다.

 

20. 알코올에 의지하지 않기

 

21. 열정이 만드는 효과 이해하기

 

맨 처음 관심을 사로잡은 사건을 기억한다

자신의 어린 시절과 잘 어울리는 삶을 산다

포트폴리오 사고에 능숙하다.

 

포트폴리오 사고(자기 자신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보는 태도)에 능숙한 사람들은 자신의 경력이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로 뒤섞여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들은 부정적인 요소 때문에 숨 막혀 하지도 않을뿐더러 긍정적인 요소로 인해 과도하게 들뜨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신경 쓰지 않는다.

계승 계획을 짜는 능력을 타고났다

머물러 있지만 또한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다른 사람의 말에 휩쓸리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을 끌어 들인다

지금 이 순간을 산다

건강하게 경쟁한다

 

22. 이미지를 각인시킬 멋진 비유 활용하기

 

너무나 미묘해서 우리의 생각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좀처럼 깨닫기도 힘든 것이 비유의 힘이다. 머릿속에 한 번 들어온 이미지는 웬만해선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23. 우울과 불안을 날려버리는 문화 생활 찾기

 

주기적으로 문화 생활을 하면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이로우며, 특히 남성에게 커다란 도움이 된다. 또한 문화 노출량이 많을수록 좋다. 이 방법은 삶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지금 즉시 사용해볼 수 있는 도구다. 더 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24. 지적 감동을 얻을 매체 가까이 하기.

 

읽고 싶은 책, 보고 싶은 영화를 골라보자. 똑같은 메시지도 책이나 영화를 통해 전달되면 상상 이상의 효과가 있다.

 

25. 함께 성취하는 기쁨을 맛보기

 

꾸준한 노력

숭고한 실용주의

전략적인 결단력

책임감

 

26. 효율적인 사고방식 익히기

 

생각이 개선되면 에너지 소모량도 그만큼 줄어든다.

 

27. 달리기 등 몸을 많이 움직이기

 

달리기가 대뇌 작용을 이토록 강력하게 개선시킬 수 있는 것은 신경 형성, 즉 새로운 뇌세포의 성장을 촉진하는 역할 때문이다. 달리기가 어떻게 이런 역할을 하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달리기를 하면 혈류량이 늘어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코리티솔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 생성이 줄어들기 때문일 수도 있다.”

 

최근 연구결과에 의하면 달리기를 한 쥐들의 뇌에서 새롭게 회백질이 생성됐다고 하네요.
당장 헬스권 끊어야 할까 봐요.

 

28. 위대한 사람들의 생각 읽기

 

예를 들면,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읽기.

 

 

 

29. 언젠가 다가올 슬픔을 그려보기

 

상실을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상실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려할 수는 있다. 또한 상실 시나리오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면 실제로 뭔가를 상실하게 됐을 때도 최악의 결과를 피할 수 있다.”

 

30. 두뇌 습관의 중요성 인식하기

 

다니엘 시겔, 전전두엽의 아홉가지 기능

 

신체제어, 의사소통 조절, 감정적인 균형, 반응 유연성, 두려움 조정, 공감, 통찰력, 도덕적 인식, 직관

 

라마찬드란, 자아의 일곱 가지 측면

 

통일성, 지속성, 구체화, 사생활, 사회적 수용, 자유의지, 자기 인식

 

열 두 개의 메타 표현

 

저널리스트 조사하고, 까다로운 질문을 던지고, 신뢰할 수 있을 만한 정보원의 도움을 받아 답을 찾는다.

엔지니어 피드백 고리를 설계, 관리

통치자

조종사

이야기꾼 계속되는 자기 서사를 쓴다. 자아상을 관리한다

시뮬레이터

고문

감독

기술자

협력자

후견인

창조자

 

의심받지 않는 정신은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이다.

-바이런 케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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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강요 2016-04-09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주말이어요^^
지치고 치친 뇌에
딱 맞는 시이소님 글이 눈뜨자마자 올라와서 정독했어요~~^^
감사

시이소오 2016-04-09 14:02   좋아요 0 | URL
제가 항상 더 감사하죠^^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 내 방식대로 읽고 쓰고 생활한다는 것
임경선 지음 / 마음산책 / 2015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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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선은 왜 작가가 되었나? 하루키를 읽었기 때문이다.

 

임경선의 책을 읽고 싶었는데 마침 도서관에 있길래 그냥 집어 들고 와서 읽었다.

이런, 하루키에 의한, 하루키를 위한, 하루키에 대한 책이라니!’

또 하루키구나.

 

이 책은 하루키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라고 할 수 없다. 자신을 작가로 우뚝 세워준 하루키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열정에 대한 고백이다. 그러므로 임경선이 하루키를 우상화, 이상화한다고 해서 비판해봤자 소귀에 경 읽기. 제 눈에 콩깍지. 사랑을 하면 원래 다 그런 법 아닌가.

 

임경선은 하루키가 젊은 시절 엄청나게 고생을 하고 고통을 당했다고 말한다. 아니, 재쯔 카페에서 고생을 하면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종업원도 아니고 사장이었는데. 하루키는 손님들 주문대로 서빙한 다음에는 뭐했나? 손님들과 잡담 따위는 하지 않고 멀찍이 떨어져 책만 읽었다. 장사도 꽤나 잘 됐다. 도대체 무슨 고생을 했다는 건지?

 

하루키는 결혼을 일찍 했다고 하지만 애를 낳아 양육하지도 않았다. 19살에 애를 낳아 21살에 두 아이를 키웠던 레이먼드 카버와 비교해 보라. 할 수만 있다면 하루키보다 고생한 작가들을 임경선 집 대문 앞에 한 트럭 실어 보내고 싶다. (작가들의 동의를 얻는 게 더 큰 문제겠지 ^^;)

 

임경선은 하루키가 죽을 둥 살 둥 고생고생하다 굉장히 늦은 나이에 등단한 것처럼 묘사한다. 하루키는 <일식>의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처럼 23살에 등단한 건 아니었지만 29살에 군조신인상 받으며 등단했다. 그 정도면 꽤 이른 등단이다.

 

오히려 하루키만큼 등단이후부터 아무런 우여곡절 없이 성공한 작가가 또 누가 있을까. ‘하늘이 내린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

임경선은 전공투 세대 우리로 치면 386세대-처럼 하루키가 변절하지 않은 것을 윤리적이라 치켜세우고 양심적으로 묘사하지만 그렇다고 하루키가 데모를 하거나 작품 안에 사회적인 비판을 투영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하루키가 사회의식이 없었다고 그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에 거리를 두겠다는 것도 작가의 선택이다. 내가 보기에 하루키와 김영하는 비슷한 구석이 있다. 그들은 이념이 퇴색된 시기에 사회에 대한 무심함, 냉소를 통해 새로운 세대의 욕구를 대변해 준 최초의 작가다. 새로운 세대의 욕구는 한마디로 미국식 소비지상주의였다. 하루키와 김영하가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선호, 번역한 것도 단지 우연이 아니다.

 

평론가들은 하루키를 바타쿠사이 (버터 냄새가 난다’) 라고 비판했다. 임경선의 입장에선 부당하다고 생각할 순 있다. 그러나, 평론가들의 비판을 단지 하루키의 성공을 깍아내리기 위한 질투로만 해석할 순 없다.

하루키의 무의식엔 미국에 대한 선망이 자리잡고 있다. 실제로 하루키의 문학은 일본 문학이라기보다는 미국 문학에 가깝다. ‘미국 선망 문학이랄까. 하루키는 비치보이스를 듣고 째즈를 듣고, 고베의 헌책방에서 영어로 된 미국 문학을 읽었다. 하루키에게는 미국 문화가 멋있어 보였다. 한마디로 해 보였다. 하루키는 미국 문화에 내재된 소비지상주의를 간파할 만큼 성찰적인 작가는 아니었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데이지가 셔츠를 붙잡고 우는 장면이 하루키에겐 이상하지가 않다. 아마도 하루키는 그 셔츠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하루키는 재즈 카페 경영할 때도 셔츠는 매일 매일 꼭 다려 입었다.

 

여성독자들은 왜 하루키 소설에 끌리는가? 여성 독자들은 왜 하루키가 좋은지 딱히 설명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루키 소설은 표면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은근히 여성의 무의식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면 재벌남과 가난한 여자의 사랑을 소재로 한 막장드라마다)

신데렐라 콤플렉스, ‘데이지 콤플렉스. 편협한 일반화일까? 나는 여성들이 가장 좋아할만한 하루키 문장을 제시할 수 있다.

 

내가 바라는 건 그냥 투정을 마음껏 부리는 거야. 완벽한 투정. 이를테면 지금 내가 너한테 딸기 쇼트게이크를 먹고 싶다고 해. 그러면 넌 모든 걸 내팽개치고 사러 달려가는 거야. 그리고 헉헉 숨을 헐떡이며 돌아와 자 미도리, 딸기 쇼트케이크하고 내밀어. 그러면 내가 , 이제 이딴 건 먹고 싶지도 않아라며 그것을 창밖으로 집어던져버려. 내가 바라는 건 바로 그런 거야. (....) 그리고 난 남자애가 이렇게 말해줬으면 좋겠어. ‘알았어. 미도리. 내가 잘못했어. [가 딸기 쇼트케이크를 먹기 싫어졌다는 거 미리 알았어야 했는데. 난 정말 당나귀 똥만큼 멍청하고 센스가 없어. 사과하는 의미에서 다른 걸 하나 사다줄게. 뭐가 좋아? 초콜릿 무스, 아니면 치즈 케이크?”

 

<노르웨이 숲>의 미도리는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다. 내가 다른 남자와 결혼 했더라도 여전히 나를 사랑해 줄 남자. 어떤 여자가 개츠비를 외면할 수 있을까? 게다가 그 남자가 봄날의 곰처럼 네가 좋아”, “너를 보고 있으면, 가끔 먼 별을 보고 있는 느낌이 들어”, “너는 마치 카폐오레의 요정 같아라고 말하는데?

 

스콧 피츠제럴드와 마찬가지로 하루키 소설에서 소비지상주의낭만적 사랑과 결합되어 있다. 이 둘은 마치 초콜릿 무스마냥 뗄레야 뗄 수가 없고, ‘소비지상주의는 빙산 아래 얼음처럼 낭만적 사랑밑에 가라앉아 있어 좀처럼 드러나지도 않는다.

 

또한 하루키 소설에서 남자 주인공들의 원형은 <위대한 유산>의 개츠비다.

어떤 남자가 개츠비이고 싶지 않겠는가?

 

하루키 소설은 인간의 욕망을 이상화한다. 독자인 우리는 하루키를 읽으면 아무런 죄책감없이 소비할 수 있다. 오로지 나의 행복만을 바란다. 세월호 사건으로 몇 백명이 죽건 말건,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이 수십 명 죽건 말건 부당한 권력, 불합리한 사회 따위를 생각하는 건 귀찮다. 오히려 무관심하고 무심한 게 멋진 거다.

 

진지빨일 있나? 그나저나 왜 내 앞에 현빈 같은 남자가 안 나타나는 걸까.

오늘 낮엔 초콜릿 무스나 먹을까. 살 찔텐데.’

 

하루키와 김영하의 또 다른 공통점을 들자면 외국에 나가서야 자국의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두 작가는 아마도 사회의 문제를 외면하고 살아온 시간에 대한 죄책감이 클 것이다. 일종의 속죄다.

 

나는 하루키 소설도 좋아하고 김영하 소설도 좋아한다.

헐리웃 영웅 영화도 좋아한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다 좋아하지는 않는다.

내가 진정으로 무언가를,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내가 그 안에서 어떤 점을 경계해야 하는지도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어떤 것이 내 무의식을 장악하면 그 이후엔 방법이 없다.

습관화된 무의식, 즉 아비투스는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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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6-04-10 22:40   좋아요 0 | URL
에고 답신이 늦어 죄송해요 ^^:

물고기 자리님은 어쩜 이리 말씀을 잘 하시는지요?
따듯한 에세이를 한 편 써보시는 건 어떨까요?
혹시 제가 모르지만 이미 책을 내셨나요?
책 내셨으면 사서 읽어보겠습니다. ^^

그리고 저, 자는 거 좋아해요 ^^


물고기자리 2016-04-11 00:13   좋아요 0 | URL
에세이라뇨!ㅋ

자기 전에 일기라도 열심히 쓰겠습니다ㅎ

시이소오 님의 칭찬은 제가 불편하지 않을 만큼 알아서 가감해 들을게요^^


그리고 정말 멋진 정의를 하셨습니다!

시이소오 님께서 하루키에게 하실 수 있는 칭찬 중 가장 높은 레벨을 하신 건 아닌가요?ㅋ 혹시라도 나중에 억울해하시면 안 됩니다!ㅎ

근데 시이소오 님은 제게 계속 `동의`한다고 하시고, 저는 `공감`한다고 하는 걸 느끼셨나요? 이렇게 서로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집요하게 나눈 대화의 끝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입니다^^

시이소오 2016-04-11 00:23   좋아요 1 | URL
물고기님의 성품이 워낙 물같으셔서 불같은 제가 짚을 들고 뛰어간들 백전백패겠어요. ㅋ 저 임계혼탁 비유를 어디다 써먹어야겠다 생각했는데 하루키한테 쓰게 될줄은 미처 예상못했네요. 후회할것 같아요 ㅋ ^^; 덕분에 사례로 남길만한 바람직한 토론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아, 그리고 에세이든 소설이든 좋은글 기대하겠습니다. 재능을 썩혀서야 되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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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 마르크스의 쓸모.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농업혁명에서 설명한 허구를 상상하는 능력이었다. 하라리에 의하면 호모사피엔스는 허구를 상상하는 능력때문에 여러 호모 종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아이디어 때문에 <사피엔스>에 결정적으로 별 다섯 개를 던졌다. 하라리는 이 아이디어를 도대체 어디서 얻었을까? 김용규의 <데칼로그>를 읽다 하나의 가설을 찾아냈다.

 

흥미로운 것은 카를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이처럼 신이 아닌 것을 마치 신처럼 여기는 것을 허위의식false consciousness’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역시 우상숭배와 묶어 설명했다는 사실입니다. 허위의식이란 말 그대로 잘못된 의식, 곧 현실 또는 진실을 왜곡하고 있는 사상이나 이념을 뜻하지요. 때문에 허위의식은 항상 ‘~을 마치 ~처럼이라는 형식을 갖기 마련인데,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라는 것이 마르크스의 생각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돈을 예로 들어 설명했습니다.

 

돈이란 본디 상품교환이라는 목적을 위한 매개수단에 불과하지요. 그런데 노동자가 돈을 위해 자신의 상품인 노동을 팔 때 그에게 돈은 더 이상 수단이 아니고 목적이 됩니다. 수단을 마치 목적처럼 여기는 허위의식이 생긴 거지요. 그리고 일단 허위의식이 생겨나면 돈이 진정한 신또는 보이는 신이 되고 그것의 숭배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된다는 거지요.

 

<데칼로그> p169. 김용규

 

아마도 마르크스를 읽은 분들은 진작에 눈치 채지 않았을까. ‘허구를 상상하는 능력은 마르크스의 허위의식개념을 변형시켜 조금 더 확장했을 뿐이다. ‘허위의식신이 아닌 것을 마치 신처럼숭배하는 것이라면 허구를 상상하는 능력은 신마저 아우른다.

 

20대 때 나는 마르크스의 책을 읽지 않았다. 사유 재산을 폐지하겠다는 마르크스의 사상이 너무도 순진하고 너무도 멍청해보였기 때문이다. ‘인간 심리에 저렇게 무지하다면 읽을 가치가 없다라고 단정했었다.

 

최근에서야 이사야 벌린의 <칼 마르크스>를 읽었다.

그것도 칼 마르크스를 알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이사야 벌린이 썼기 때문에.

 

(10 여년 전에 듣보잡 작가의 <낭만주의의 뿌리>를 읽었다. 문학사조를 이렇게 재밌게 쓸 수 있다니! 모리스 블랑쇼의 <문학의 공간>을 발견했을 때만큼의 충격!

이사야 벌린의 책이었다. 당시엔 이사야 벌린이 세계적인 작가라는 걸 전혀 몰랐다.)

 

하라리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다시 읽고 <사피엔스>를 쓴 셈이다.

고전을 읽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

마르크스를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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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2016-04-14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사야 벌린의 칼마르크스 아직인데,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좋은하루되세요~~^^

시이소오 2016-04-14 16:43   좋아요 0 | URL
저도 벌린책 다 읽고싶어요. 사랑님도 좋은 봄날 되세요^^
 

스크롤 주의, 북풀 실행 결사 반대합니다. 


P116. 만일 내가 숲속의 무성한 나무들과 교감을 하면 내 마음은 그 나무들만큼 넓어진다. 파란 하늘을 보고 내 마음이 맑아진다면 파란 하늘도 역시 내 마음이다. 내가 남의 말에 공감한다면 그 역시 내 마음이다. 이처럼 마음은 두뇌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마음이 닿는 곳까지 무한하게 확장된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셸드레이크 교수도 한 목소리를 낸다.

 

당신이 나무를 볼 수 있는 것은 당신의 마음이 나무에까지 이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당신의 마음이 그 사람의 마음과 교감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두뇌 속에 갇혀 잇다면 불가능한 일이죠.”

 

이처럼 마음은 무한하게 퍼져 나간다. 마음은 빛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치를 이용해 성적을 높일 수도 있다. 알래스카 대학의 마하니 교수는 성적부진으로 고민 중인 한 학생에게 수학과 나는 하나다’, ‘서양문화사와 나는 하나다라고 반복적으로 되뇌어 보도록 했다. 그 결과 평소 C, D 학점이었던 그 학생의 성적은 A, B 학점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수학과 나는 하나다라고 생각하면 의 공간이 수학까지 확장되는 것이다. 단지 내가 얼마나 진심으로 수학을 나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뿐이다.

 

(“책과 나는 하나다반복하자. )

 

P118. 시력을 잃고도 일상생활을 훌륭히 해내는 키쉬는 아주 어릴 때부터 사물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하고 궁리했다. 그러다가 소리를 내면 메아리처럼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면서 주변의 사물을 향해 조금씩 소리를 보내보기 시작했다. 혀와 입천장 사이에 진공을 만들어 딱딱소리를 내면 사물에 부딪쳐 되돌아왔다. 되돌아오는 소리에는 사물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소리도 빛처럼 에너지의 물결이에요. 이 물결이 주변의 사물에 부딪혀서 되돌아오죠. 그 물결 속에는 사물의 위치, 크기, 높이, 재질 등에 관한 모든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P120. ‘이스트게이트 센터는 다른 건물에 비해 전기는 90%, 물은 80% 덜 쓴다. 인간의 생각으론 불가능한 일이다. .....이 건물을 지은 건축나는 피어스다. 그는 누구한테서 이 놀라운 건축술을 배웠을까? 흰개미한테서 배웠다. 아프리카의 낮 기온은 40도 넘게 치솟지만 밤엔 0도 가까이 떨어진다. 이렇게 기온차이가 크면 흰개미들은 번식하지 못한다. ? 여왕개미는 하루 평균 3만 개의 알을 15년간 매일같이 낳는다. 그런데 알이 부화하기 위해서는 개미집의 내부온도가 30도 정도로 일정하게 유지돼야 한다. 여왕벌의 먹이를 적당히 발효시키기 위해서도 역시 30도 정도로 일정하게 유지돼야 한다. 하지만 땅 밑의 개미집엔 무려 2백만 마리의 개미들이 몰려 산다.

 

공기가 탁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공기를 정화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땅위에까지 개미집을 연장시킨다. 최고 9미터 높이의 개미집도 있다. 개미집 한가운데엔 큰 굴뚝이 있다. 낮에는 이 굴뚝을 통해 내부의 탁하고 더운 공기가 위로 올라온다. 하지만 개미집 꼭대기는 막혀있다. 그럼 탁한 공기를 어떻게 내보낼까? 개미집 벽에 무수히 많은 작은 구멍들이 송송 뚫려 있다. 이 구멍들을 통해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고 탁하고 더운 공기는 밖으로 빠져 나간다. 구멍에 유입되는 바람의 힘으로 신선한 공기는 개미집 아래까지 내려간다. 그렇다면 밤에는 어떻게 기온을 30도로 유지할까? 벽에 송송 뚫린 구멍들을 막아서 벽에 저장된 태양열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다.

 

p184. 내가 견디기 힘들어했던 건 시끄러운 소리에 초점을 맞춰놓고 그 소리와 맞서 싸웠기 때문이다. 소리가 싫어지자 싫다는 생각을 마음속에 꾹꾹 짓눌러놓았다. 그러다 보니 짓눌린 생각은 탈출구가 없었다. 그래서 더욱 발악을 해댔다. 그럼 나는 더욱 짓눌렀다. 자연히 나는 점점 더 힘들 수밖에.

시끄러움은 내가 선택한 것이었구나!’

시끄러운 소리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시야를 넓혀 텅 빈 공간의 고요에 귀를 기울여보았다. 그러자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다.

, 이렇게 조용한걸!’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면 시끄러운 소리가 점점 커졌다. 거꾸로 텅 빈 공간의 고요에 초점을 맞추자 고요함이 점점 깊어졌다.

 

(도서관에 학생들이 많다. 학생들은 무신경하게 책의 페이지들을 넘긴다. 이상하게도 내 옆에 앉는 학생들마다 신경질적으로 끊임없이 페이지를 넘겼다. 손가락을 부러뜨리고 싶었다. 노트에 왜 내 옆에 앉는 학생들마다 시끄러울까라고 적은 다음날 이 책을 읽었다. ‘, 시끄러움은 내가 선택한 것이었나?’ 그런데 왜 여전히 시끄러울까? 깨달음은 물 건너 간지 오래다. )

 

p188. 텅 빈 공간은 만질 수도 있다. 양 손바닥을 벌려 서로 가까이 했다 멀리했다 해보라. 손바닥 사이의 공간이 살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밀면 밀리고 끌어당기면 끌려온다. 컬럼비아대의 물리학자 브라이언 그린은 공간은 구부릴 수도, 비틀 수도, 물결칠 수도 있는 것이라고 했다.

 

p191. 런던 대학의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 박사도 크게 보면 우주는 하나의 마음이다리고 했다. 인간은 무한한 마음이 쪼개진 조각들이다. 프린스턴 대학의 물리학자 휠러 박사도 우리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우주의 작은 마음조각들이다라고 했다.

 

p204. 맨 왼쪽의 작은 슬릿 (가늘고 긴 구멍)을 통해 빛 알갱이들을 발사해보자.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MIT 물리학자 르윈은 레이저 광선을 사용한다. 슬릿을 통과한 레이저 광선의 빛 알갱이들은 벽면에 가운데 사진처럼 슬릿 모양의 타원형 자국을 남긴다. 당연한 일이다. 그럼 슬릿의 폭을 점점 더 가늘게 좁히면? 자연히 벽면에 생기는 빛 알갱이들의 자국 모양도 맨 오른쪽처럼 점점 더 좁아진다.

 

여기까지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슬릿의 폭을 더 이상 좁힐 수 없을 때까지 좁혀나가면? 돌연 기철초풍할 일이 벌어진다.

, 빛이 더 이상 좁아지는 게 아니라 갑자기 확 넓어지네!”

 

P208. 야구공을 콘크리트 벽을 향해 던지면 튀어나온다. 그럼 빛 알갱이를 벽에 발사하면 어떨까? 처음엔 튀어나온다. 하지만 잠시 후 벽 반대편에 홀연히 나타나는 알갱이들이 생긴다. 어찌 된 일일까?

알갱이가 어떻게 벽을 꿰뚫고 반대편에 나타났지? 귀신이 곡할 일이네?”

이처럼 빛 알갱이는 어떤 장벽이 가로막고 있어도 아무 상관없이 생각하는 곳에 나타난다. 마치 터널을 통과하듯 말이다. 이것이 이른바 양자 터널효과다.

 

P213. 그렇다. 1990~1994년 사이 입원했던 환자들을 위해 6~10년이 지난 2000년에 기도한 것이었다.

“2000년에 기도한 효과가 1990년 초에 나타났다고?”

어안이 벙벙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분명하다. 1990년대 초 환자들의 기록을 조사해보니 기도를 받은 환자들이 하나같이 열도 떨어졌고, 입원기간도 짧았다.

 

P214. 캘리포니아대의 물리학자 커트너는 혀를 내두른다.

혼비백산할 일이죠. 이미 물결 형태로 두 개의 슬릿을 동시에 통과한 알갱이들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어느 한쪽 슬릿만 통과한 것처럼 행동하다니. 원래부터 고체였던 것처럼 행세하는 거죠. 알갱이들이 실험자의 마음속 생각을 미리 읽고 행동한다고 볼 수밖에 없어요.”

 

P218. (팔 다리가 없는 닉 부이치치)는 갑자기 앞으로 고꾸라진다. 청중들은 숨을 죽인다. 그는 이마를 바닥에 대고 목과 허리의 반동을 이용해 일어서려고 한다. 하지만 실패다. 다시 시도하지만 역시 실패다. 허우적거리기만 하고 도저히 일어서지 못할 것 같다. 돌연 그는 엎어진 자세로 고개를 들고 말한다.

 

여러분은 100번 시도해서 100번 실패하면 그냥 포기하나요? 100번 넘어진다고 해서 그게 끝인가요? 저는 수천 번, 수만 번 이렇게 넘어졌습니다. 그럴 때마다 다시 한 번, 또다시 한 번 시도했어요. 그러다 마침내 벌떡 일어서는 방법을 깨우쳤답니다. , 보세요!”

그는 책과 전화기에 이마를 대고 아까처럼 목과 허리를 곧추세우더니 벌떡 일어섰다.

 

P221. 때로는 인생이 장애물로 가득한 미로처럼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럴 때 육안으로만 바라보면 아무 출구도 보이지 않는다. 물질인 육안은 시야가 짧다. 반면, 마음의 눈은 물리적 한계를 초월해 모든 걸 다 본다. 시야가 무한하다. 위에서도 보고, 아래에서도 보고, 멀리서도 보고, 모든 방향, 모든 시점에서 다 본다. 정말 출구가 안 보일까? 만일 출구가 없다면 그건 설계가 잘못된 미로이다. 인생의 모든 시련도 마찬가지다. 벗어나지 못할 시련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 영혼이 영적 성장을 위해 스스로 설계해놓은 시련이기 때문이다. 시야를 넓혀 바라보면 인생의 가장 귀중한 기회가 최악의 시련을 가장해서 나를 찾아왔음을 깨닫게 된다.

P243.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해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크릭은 자유의지는 착각이라고 말했다. “, 나의 기쁨과 슬픔, 나의 기억과 야망, 나의 개체적 정체, 자유의지라는 것도 알고 보면 사실은 엄청난 양의 신경세포와 관련 분자들이 뭉쳐진 덩어리의 행동일 뿐이다. 쉽게 말해 나는 신경세포 덩어리에 불과하다. 우리는 자유의지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우리의 선택을 이미 결정해놓았고, 우리가 이를 바꿀 수는 없다.”

 

P253. 커다란 고무 보자기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한 가운데에 무거운 큰 구슬을 놓아두면? 보자기 가운데가 휘어서 움푹하게 들어간다. 그런 다음 움푹 들어간 주변의 한 지점에서 작은 구슬을 옆으로 굴리면? 작은 구슬은 빙빙 돌면서 점점 큰 구슬 쪽으로 내려가게 된다. 이 움직임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큰 구슬이 작은 구슬을 끌어당기는 것처럼 보인다.

 

뉴턴은 사과가 지구로 떨어지는 이유가 중력때문이라고 했다. 지구가 사과를 끌어당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력이 왜 생기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무려 250년쯤이나 지나서야 아인슈타인이 처음으로 그 문제에 의문을 품었다.

 

만물이 항상 중력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는 무릎을 탁 쳤다.

알았다. 저 사람은 중력 때문에 떨어지는 건 아니야! 중력이 없어도 떨어져. 공간이 그를 누르기 때문에 떨어지는 거야

 

그는 공간도 살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거운 게 누르면 공간도 휜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 이유도 태양이 지구를 끌어당기기 때문이 아니다. 무거운 태양이 공간을 휘어놓기 때문에 지구는 그 휜 공간을 돌고 있는 것이다.

 

뉴욕대 물리학자 미치오 카쿠 교수도 공간이 태양을 향해 지구를 밀기 때문에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설명한다. 캘리포니아 공대의 천문학자 엘리스 교수도 공간도 무거운 걸 올려놓으면 눌린다라고 말한다. 공간이 내 몸을 돌아가게 한다면 공간이 다른 만물도 돌아가게 하는 게 당연하다.

 

P256. 우리는 눈에 보이는 물질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물질을 크게 과장해서 본다. 우주 전체를 보면 99.9999퍼센트 이상이 텅 빈 공간이다. 태양이나 지구는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일정기간 존재하는 환영이다. 그 모든 환영을 품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텅 빈 공간이다.

 

텅 빈 공간에 흐르는 무한한 마음이 이 환영들로 하여금 완벽한 연기를 펼치게 한다. 내가 시야를 무한히 넓히면 나는 이 무한한 마음과 하나가 된다. 우주만물이 내 마음속에 들어온다. 이처럼 우주만물이 내 마음속의 환영이라는 사실을 진심으로 이해할 때 나는 비로소 우주만물을 움직이는 진정한 창조자가 된다.

 

과학을 진지하게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주의 법칙 속에 마음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이 마음은 사람의 마음보다 어마어마하게 월등하다. ” - 아인슈타인

 

우리는 이 놀라운 힘의 이면에 의식적이고 지능적인 존재가 있음을 가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음이 모든 물질의 모태이다.” - 막스 플랑크

 

P261. 마음의 공간을 열어놓는 만큼 실제로 답을 얻을 확률도 높아진다.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소크 박사는 어떤 문제에 대한 답도 이미 존재한다. 답이 드러나도록 옳은 질문만 하면 된다고 했다. 당연한 말이다. 어떤 답도 무한한 공간 밖에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P267. 현대그룹의 창업자 고 정주영 회장은 <이 아침에도 설렘을 안고>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젊었을 적부터 새벽 일찍 일어났습니다. 왜 일찍 일어나느냐하면 그날 할 일이 즐거워서 기대와 흥분으로 마음이 설레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의 기분은 소학교 때 소풍 가는 날 아침 가슴이 설레는 것과 꼭 같습니다. 또 밤에는 항상 숙면할 준비를 갖추고 잠자리에 듭니다. 날이 밝으면 일을 즐겁고 힘차게 해치워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

 

설레는 마음은 이럴까, 저럴까’, ‘될까, 말까?’등과 같은 잡념을 품고 있지 않다. 오로지 문을 활짝 열어놓고 결실을 맞이하길 기다릴 뿐이다.

 

P272.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었을까?

1. 문제가 이미 풀렸다고 상상한다. - 성공률이 가장 낮았다.

2. 현실의 부정적인 면만 생각한다. - 성공류이 두 번째로 낮았다.

3. 문제가 이미 풀렸다고 상상한 뒤, 현실의 부정적인 면과 대조해본다. - 성공률이 단연 최고였다.

 

그렇다면 세 번째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 이유는? 문제가 이미 풀렸다고 상상하면 첫 번째 방법처럼 일단 마음의 공간이 열린다. 그런 다음 근데 걸림돌이 있는데 어떻게 풀었지?’하고 부정적인 면을 들여다본면? 문제를 풀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보게 된다. 구체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의심이 끼어들지도 않는다. 이처럼 마음의 공간이 열린 상태로 문제를 풀면 긴장 상태로 푸는 것보다 훨씬 더 쉽게 풀릴 수밖에 없다.

 

P275. 진심으로 현실을 바꾸고자 한다면 근원적인 진실을 이해해야 한다. 내 몸을 포함한 우주만물은 죄다 생각이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두뇌는 끊임없이 생각을 하기 때문에 자꾸만 허상에 속아 넘어간다. 그래서 아인슈타인도 현실은 허상이다. 단지 대단히 끈덕진 허상일 뿐이다라고 했다. 우주는 무수히 많은 생각들이 만들어낸 무수한 허상으로 가득하다. 무수한 평행우주, 무수한 지구, 무수한 나가 존재한다. 이론물리학자 미치오 카쿠 교수의 말대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이 다른 우주에 펼쳐진다.”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보어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은 가능성으로 잠재해 있다가 관찰자가 바라보는 순간 현실로 나타난다.”

우리가 꿈꾸는 모든 것이 무한한 공간 속에 실재로서 이미 존재한다. 단지 관찰자인 내가 시야를 넓혀 바라보지 못할 따름이다.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고자 한다면 끊임없이 마음속을 들여다보라. 들여다보면 이미 깔려 있는 생각들이 사라진다.

 

P279. 노스웨스턴대의 신경과학자 융 비만 교수도 창의성 문제를 직감으로 푼 사람들의 뇌파를 촬영해봤다. 그 결과 직감이 떠오르기 0.3초 전에 이미 두뇌에 고주파인 감마파 활동이 돌연 왕성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생각이 텅 비어버렸다는 얘기다.

영감을 얻으려면 생각부터 멈춰야 하는군.”

 

P281. 영국 국영 BBC TV는 이 그림을 2백만 명의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고 어떤 모습인지 알아맞혀보라고 했다. 거의 알아맞히지 못했다. BBC TV는 곧 답을 알려주었다. 답은 춤추는 남녀였다. .....“거참 신기하네. 독일 시청자들에게는 답을 알려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실험을 주도했던 케임브리지 대학의 셸드레이크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마음은 머릿속에 국한되어 있는 게 아니다. 텅 빈 공간이 마음이다. 그래서 영국 시청자들에게 답을 알려주면 독일 시청자들은 텅 빈 공간에서 저절로 답을 보게 된다.”

 

P282. ‘플린 효과라는 게 있다. IQ 테스트가 시작된 지난 1930년대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IO테스트 점수가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 현상이다. 후세는 선조들보다 IQ가 높다. 후세의 후세는 더 높다. ....세월이 흐를수록 아이들이 언어를 배우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세계적인 언어학자인 MIT의 촘스키 교수마저 의아해하고 있다.

 

P283. 소나 양을 많이 키우는 미국이나 유럽, 호주엔 캐롤 그리드라는 게 있다. 자동차는 지나가도 소나 양은 못 지나가게 도로에 구덩이를 파고 그 위에 쳐놓은 쇠막대기판을 말한다. 소들이 쇠막대기판을 밟으면 발이 쇠막대기판 사이로 빠져 고통을 겪는다. 첫 세대 소들은 쇠막대기판에 발을 디뎠다가 혼쭐이 난다. 몇 번 그러다가 , 여기는 밟으면 안 되겠구나!’ 하고 깨닫는다. 다음에 태어나는 송아지들은 어떨까? 놀랍게도 쇠막대기판을 밟는 횟수가 크게 줄어든다. 어미 소가 가르쳐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럼 다음 세대 송아지들은 어떨까? 아예 밟지 않는다! 역시 어미 소가 가르쳐준 건 아니다. 스스로 알게 된 것이다.

 

P285. 쉘드레이크 교수는 두뇌는 정보의 송수신 장치일 뿐이라고 말한다. 텅 빈 공간에 저장된 정보를 송수신한다는 것이다. 마치 TV처럼 말이다. “TV에서 사람이 나온다고 TV속에 사람이 들어 있나요? TV에서 소리가 들린다고 TV속에 소리가 들어 있나요? TV수상기는 공중에 떠 있는 그림과 소리 신호를 수신하는 기능만 하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사람의 두뇌도 텅 빈 공간에 저장된 정보를 송수신하는 기능만 합니다.”

 

P298. 스위스 과학자들이 사람들의 눈을 가린 채 음식을 먹도록 해보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평소보다 25퍼센트나 덜 먹었다. 눈을 감고 먹으면 음식의 맛이나 입안에서의 감촉 등을 제대로 음미하며 먹게 되기 때문이다. , 음식을 제대로 음미하며 먹을수록 몸이 꼭 필요한 만큼 먹게 되는 것이다.

 

P302. <테니스의 내면 게임>의 저자 골웨이는 하버드대에서 수십 년간 테니스 코치로 일하면서 신기한 사실을 발견했다. 학생들에게 자세가 틀렸어”, “그렇게 하면 안 돼”, “이렇게 해야 돼등 잔소리를 많이 할수록 실수도 더 많아진다는 것이었다.........

 

테니스를 하다가 공이 라켓 한가운데에 맞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지요. ‘공이 잘 안 맞는다고 불평하지 마세요. 그럼 공이 더 안 맞게 됩니다. 뭘 바꾸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공이 라켓의 어느 부분에 떨어지는 지만 그냥 관찰해보세요. 그럼 공이 저절로 라켓의 한가운데에 맞게 됩니다.”

 

P304. “공이 라켓에 맞는 순간 낮게 날아오는지, 높게 날아오는지, 평행하게 날아오는지 주의를 기울여 관찰합니다. 뭔가를 바꾸려 하지 말고 오로지 공이 어떻게 날아오는지만 관찰하세요.” 그에 따르면 사람들이 공을 못 치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다. 공을 100퍼센트 관찰하지 않고 다른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100퍼센트 공에 가 있다면 공은 100퍼센트 맞게 된다. 이런 말을 듣는 사람들은 처음엔 반신반의한다. 하지만 그가 코치해주는 대로 하면 누구나 최고가 된다.

 

P308. 펜실베니아 대학의 벡 교수가 실시한 실험이다. “어항만 봐도 혈압이 약간 떨어지긴 하지만, 곧 다시 올라가요. 반면, 어항 속의 물고기를 보면 혈압이 지속적으로 낮아져요.”

 

P313. 좋아하는 게 단 하나만 있어도 마음은 닫히지 않는다. 마음만 닫히지 않으면 어두운 생각에도 갇히지 않는다. 청소년기까지 외톨이로 살았던 아인슈타인은 이런 글을 남겼다.

 

비록 나는 일상에서 전형적인 외톨이였지만, 진실, 아름다움, 정의를 추구하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고립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P318. <마음속 들여다보기>

내 마음속엔 지금 어떤 생각이 떠 있지? 하고 가만히 들여다본다. 들여다보면 사라진다.

다른 생각이 또 떠오르면 똑같은 방법으로 공간 속을 들여다본다. 그럼 또 사라진다.

생각이 사라지면 다음 생각은 어디서 떠오를까하고 주시한다. 텅 빈 공간이 지속된다.

 

P324. “우주는 자신의 마음속에 무슨 생각들이 들어 있는지 들여다보기 위해 물질 세계를 창조했다.”는 메시지이다.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도 우주는 자신을 알기 위해 우리를 만들어냈다라고 했다. 텅 빈 공간에 흐르는 무한한 마음이 환영의 세계인 우주를 창조했다면 분명한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 목적은 바로 자신의 마음속에 어떤 생각들이 숨어 있는지 들여다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P330. 이 모든 생각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이 생각을 무한한 공간에 풀어놓아줍니다하고 되뇌었다. 한 번에 안 되면 두 번, 세 번, 네 번, 몇 번이고 반복했다. 텅 빈 공간은 모든 걸 보고 듣고 안다. 모든 말도 알아듣는다. 생각을 떠올리며 이 생각을 무한한 공간에 풀어놓아줍니다.”하고 되뇌면 실제로 풀려나간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효과를 확인하고 싶다면 마음속에 떠오르는 어두운 생각의 강도를 1~10까지의 눈금으로 수치화시켜 바라보라. 예컨대 화나는 일이 자꾸 거세게 떠오른다면 내 마음속에 지금 떠오르는 화의 강도가 얼마나 될까? 8 정도? 9 정도?’하고 가늠해 본다. 그리고는 이 화를 무한한 공간에 풀어놓아줍니다.‘하고 되뇌어본다. 되뇌면 되뇔수록 화의 강도는 7,5, 4,2 등으로 점점 약해지다가 나중엔 0이 돼 버린다.

 

P337. 교수는 학생들을 세 그룹으로 나눠 각기 다른 방법으로 45초간 화나는 장면들을 되돌아보라고 말했다.

 

2그룹 남의 관점에서 화나는 장면을 되돌아보세요. 화나게 했던 장면들로부터 몇 발짝 떨어져 제 3자의 눈으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겁니다. 그러면서 저런 감정이 왜 저 사람한테 생기는 거지?’ ‘저런 감정이 저 사람한테 생기는 이유는 뭐지?’하고 거리를 두고 분석해보세요.

 

화나는 장면들을 멀찌감치 남의 시각에서 되돌아본 2그룹 학생들만이 화를 지속적으로 가라앉힌 것으로 나타났다. ‘의 시작으로 화나는 장면들을 되돌아보는 것은 화를 가라앉히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 딴생각을 함으로써 화를 덮어두는 것도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P339. 미슈코프스키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처한 불행한 상황을 벽에 붙은 파리는 어떻게 바라볼까? 나를 벽에 붙은 파리라고 상상하면 내가 처한 불행한 상황에 파묻히지 않게 됩니다.”

 

P343. 하지만 지금은 화를 삭이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대개 몇 분, 혹은 몇 초면 사라진다. 비결은? 화의 물결이 온몸의 혈관을 타고 몸 밖의 무한한 공간으로 자유로이 퍼져나간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화가 내 몸속에 들어 있다고 생각하면 실제로 화는 내 몸속에 갇혀버린다. 그래서 독이 된다. 하지만 는 몸에 갇힌 존재인가? 아니다. 시야를 넓히면 넓힐수록 무한히 퍼져나가는 존재이다. 그래서 화가 몸 밖으로 퍼져 나간다고 상상하면 실제로 퍼져 나간다.

 

P349. 생각이 완전히 사라지면 시간도 사라진다. 시간도 생각이 만들어낸 허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일엔 사실 앞뒤가 없다. 따라서 온갖 괴로운 생각으로 가득할 때 먼저 텅 빈 공간을 상상해보라. 모든 생각이 즉각 텅 비어버린다. 생각이 먼저 사라져도 텅 빈 공간이 되지만, 텅 빈 공간을 먼저 상상해도 생각이 사라진다.

 

P351. 페미 박사는 40여 년간 뇌파를 연구해온 최고의 권위자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온갖 방법을 다 써도 안 되는 게 하나 있었다. 바로 생각을 텅 비우는 일이었다.

왜 뇌파가 바뀌지 않는 거지?’

...... “끝내 안 되는구나! 수년간의 연구가 물거품이 되는구나!”

긴장이 탁 풀렸다.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몽땅 포기했다. 모든 걸 내려놓고 한숨을 길게 내뿜으며 머리에 착용한 뇌파 측정장치를 벗으려는 순간이었다.

, 이게 뭐야?”

뇌파 측정장치가 연결된 뇌파 측정기에 알파파가 큰 폭으로 물결치고 있는 것 아닌가!

모든 걸 내려놓는 순간 생각이 텅 비어버리네?”

 

P352. “? 별 효과가 없네?”

자연이나 음악 감상, 혹은 향기나 빛이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효과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부정적 생각에 가득한 마음을 근본적으로 비워주지는 못한다. 그러다가 그는 마침내 이런 주문을 해보았다.

두 눈 사이의 공간을 상상해볼래요?”

갑자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뇌파 기록장치에 큰 폭의 알파파가 그려지는 것이 아닌가!

 

이번엔 두 귀 사이의 공간을 상상해볼래요?”

역시 큰 진폭의 알파파가 그려졌다. 박사는 이번에는 학생들에게 더 큰 부위의 공간을 상상해보도록 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공간을 상상해 보세요.”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다. 몸속 어느 부위의 공간을 상상해도 알파파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생각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럼 사람이 아닌 벽과 벽 사이의 빈 공간을 상상해보라고 했다. 놀랍게도 똑같은 효과가 나타났다.

 

....그는 무릎을 탁 쳤다.

아하! 모든 게 공이로구나. 그래서 빈 공간을 상상할 때마다 모든 게 정말 공이 되는구나!”

만일 만물이 텅 빈 공간이 아니라면 텅 빈 공간을 상상한다고 해서 공이 될 리 없다.

 

몸도 마음의 거울이다. 마음이 맑아질수록 몸도 맑아진다. 텅 빈 공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과 몸이 맑아진다. 세상에서 가장 쉽고 간단한 명상법이다.

 

P354. 눈뜨고 왓칭하려면?

먼저 허리를 곧게 펴야 해요. 자칫하면 잠들게 되거든요. 그런 다음 눈의 초점을 완전히 풀고 멍하게 허공을 바라봐요. 그럼 아무 생각도 안 들어요.”

이것이 바로 눈 뜨고 명상하는 원리다. 눈의 힘을 완전히 풀고 시야를 최대한 넓혀 허공을 바라본다. 시야를 넓히면 육안이 초점을 맞추지 못한다. 그럼 생각도 못하게 된다.

 

시야를 최대한 넓혀 넓은 공간 전체를 바라본다. 육안의 초점을 완전히 풀고 힘도 완전히 뺀다. 육안으로 보지 않고 마음의 눈으로 본다고 상상한다.

시야를 넓히면 마음의 공간이 넓어져 갇혀 있던 생각들이 풀려나간다.

텅 빈 공간에 또 어떤 다른 생각이 떠오르는지 지켜본다. 지켜보고 있으면 안 떠오른다.

 

왓칭할 때 난 육안으로 보지 않고 마음의 눈으로 본다’, 혹은 마음의 눈에서 사방으로 빛이 퍼져나간다라고 상상하면 왓칭이 편해진다. , 생각이 금방 사라지면서 마음이 공간이 무한히 넓어져 가는 걸 알 수 있다.

 

P361. 인생은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나를 알면 신을 알게 된다. 내 마음을 수정처럼 맑게 닦아 시야기 무한해지면 무한한 신과 하나가 된다. ‘원래의 나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영적으로 성장하는 길이다. 모든 것은 영적 성장을 위해 설계된 수업이다. 지구는 거대한 학습장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 것 자체만으로 시야는 무한히 넓어진다. 모든 걸 배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P363. 지구는 육신의 옷을 걸친 무수한 영혼들이 연기를 펼치는 연극무대이다. 모든 등장인물은 연기자들이다. 연극의 이야기도 각자의 영적 성장을 위해 짜인 각본대로 전개된다. 때로는 각본에 정해진 나의 배역이 너무 견디기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배역을 맡은 연기자는 연기자일 뿐이다. ‘진정한 나는 연극 전체를 멀리서 지켜보는 무한한 마음이다. 시야를 넓혀 멀리서 큰 눈으로 내려다보면 무수히 많은 개체 나들이 한 무대 위에서 다 함께 연기를 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따라서 내가 중간에 배역을 포기하지만 않으면 반드시 도움의 손길이 나타나 연극을 무사히 마치도록 해준다.

 

견디지 못할 시련은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나 스스로 써놓은 각본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겪는 가장 힘겨운 시련이 내 인생의 가장 귀중한 선물이 될 수 있다.

 

P377. 누구나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누군가를 찾는다. 하지만 그 누군가는 영영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땐 희망이 끊어진다. 그 누군가를 밖에서 찾기 때문이다. 내가 찾는 그 누군가는 내 마음속에 있다. 마음속을 들여다본다. 배에 음식이 들어오지 않으면 피어오르는 배고프다는 생각, 누군가가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피어오르는 슬프다는 생각, 사랑을 느끼지 못하면 피어오르는 절망스럽다는 생각....이 모든 생각에 어떤 감정도 덧대지 않고 가만히 바라본다.

 

어디서 피어오르는 생각인가?

왜 피어오르고 있는가?

어디로 흘러가는가?

스쳐가는 것인가?

영원한 것인가?

 

P378. 이태리 파비아 대학 심장학과 베르나르디 교수는 사람들에게 베토벤, 비발디, 테크노 음악 등 모두 여섯 가지 음악을 차례로 들려줘보았다. 그러면서 혈압, 심박과 호흡 횟수 등을 살펴보았다. 결과는 너무나 간단했다. 고전음악이든 테크노 음악이든 상관없이 빠른 음악은 혈압과 심박수 등을 빨라지게 했고, 느린 음악은 혈압과 심박수 등을 느려지게 했다. 그러다가 문득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 음악이 바뀌는 중간에 형랍이 가장 많이 떨어졌네?”

.....“침묵이 가장 느린 음악보다 더 큰 휴식 효과를 갖다니!”

참으로, 참으로 깊은 수준의 휴식은 생각을 텅 비운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P380. 내 힘으로 안 될 땐 너무 애쓰지 마라. 내 팔다리의 힘도, 내 몸뚱이의 열정도, 내 두뇌의 생각도, 나를 휘감는 온갖 감정도, 사실은 바깥세상에 속한 것이다. 바깥세상을 움직이는 모든 건 내 마음속에 들어 있다. 바깥세상은 착각의 세계이다. 그 속에서의 몸부림을 멈추고, 대신 마음 속을 들여다보라. 들여다보면 무한한 공간이 열린다. 시야기 무한해진다. 내가 그토록 매달리던 것도, 붙들고자 했던 것도, 얻으려 애쓰던 것도, 죄다 스쳐가는 허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무한한 공간 속에 사랑으로 가득한 무한한 존재가 들어 있다. 그 존재와 분리될수록 나는 점점 작아진다. 그 존재와 하나가 될수록 나는 점점 커진다. 그 존재 앞에 나의 모든 아픔과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맘껏 눈물을 뿌려라. 나에 대한 모든 비판과 심판을 내려놓아라. 나를 완전히 열어놓고, 나의 모든 것을 완전히 내려놓을 때 무한한 존재와 하나가 된다. 그래야 비로소 참다운 안식을 얻게 된다. 참다운 안식 속에서 모든 새로움이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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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2016-04-07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사반대를 무릅쓰고 클릭했다가...OTL.

p.188 손바닥이야기를 저는 중학교수련회에서 ˝기체험˝의 일환으로 첨 접했었는데.. 그때 엄청 신기해서 룸메이트들 베개싸움하고 놀 때 저는 그거하고 있다가 결국 베개로 응징당한 기억이 나네요 ㅎ

시이소오 2016-04-07 13:22   좋아요 0 | URL
우왕, 고생하셨네요 ^^
베개로 응징을, 고생하셨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