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 테리 이글턴의 아주 특별한 문학 강의
테리 이글턴 지음, 이미애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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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학적 평론가와 섬세한 평론가가 있다.

현학적 비평이 작품을 난도질한다면 섬세한 비평은 작품을 감싸 안는다.

정성일 평론가를 존경한다. (이제 감독이라 불러야 할까, 혹은 영화인?)

현학적 평론가의 수장은 정성일이다. 고로, 정성일 평론은 읽지 않는다. 정성일은 마치 소개팅을 주선해 놓고 소개해주는 친구의 장점을 말해주기는커녕 자기자랑만 일삼는 주선자와 같다.

 

도대체 문학이나 영화 평론에 라캉이나 들뢰즈가 왜 필요한가? 허세에 가득 차 현학적인 용어를 남발하는 교만과 자만에 빠진 비평은 관객/독자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다. 히브리스 비평, 수페르비아 비평. 그가 비평하는 영화는 보고 싶은 생각이 눈곱만큼도 들지 않는다.

 

섬세한 평론가의 수장은 단연 신형철이다. 신형철이 비평의 대상으로 삼은 책은 보고 싶다. 보고 싶어 미치겠다. 신형철은 작품 안에 머무르면서 왜 이 작품이 좋은 작품인지 독자에게 조곤조곤 설명해준다. 손수건 같은 비평. 벙어리장갑 같은 비평.

 

정성일은 끊임없이 작품 밖으로 나가 온갖 쓸모없는 잣대를 가져와 들이밀기 바쁘다. 정성일 식 비평은 프로쿠르스테스의 침대다. 들뢰즈, 라깡 및 온갖 철학자의 이론에 들어맞지 않으면 작품은 잘려지고 만다. 잘려진 작품은 이제 온데간데없다. 심지어 살아남은 작품마저 온데간데없긴 마찬가지다. 철학자의 헛소리만 메마른 대지에 남아 유령처럼 맴돌 뿐이다.

(, 주여, 용서하소서, 저들은 지들이 뭐하고 자빠졌는지 모릅니다.~~ )

 

테리 이글턴은 신형철 같은 비평가다. 이 책에선 그 어떤 철학자의 이름도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소설을 깊이 있게 읽을 뿐이다. 왜 어떤 문장이 좋은지, 왜 어떤 문장이 나쁜지를 문학 안에서 설명해준다.

 

테리 이글턴은 포스터의 <인도로 가는 길> 첫 문장으로 책을 시작한다. 영어 원문이 실려 있어 우리는 소설 첫 문장의 운율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테리 이글턴은 말한다. <요한 복음>의 도입부 문장이 왜 뛰어난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첫 문장의 아이러니가 왜 탁월한지, <모비딕> 첫 문장이 왜 유명한지. 모더니스트들과 사실주의자들 사이에 캐릭터, 서사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문학을 감정이입으로 해석하기엔 어떤 오류가 있는지, 등등.

 

이 책의 원제는 ‘how to read literature’. , 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문학 읽기의 방법을 제시한다. 테리 이글턴은 소설가를 믿지 말고 소설을 믿으라고 충고한다. 심지어 소설은 소설을 쓴 소설가의 사상과 다를 수도 있다.

 

우리는 소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글턴은 서사의 흐름에서 뒤로 물러서서 되풀이되는 관념이나 관심사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인물을 고립시켜 보지 말고, 주제와 플롯, 이미지와 상징을 포함하는 패턴의 한 요소로 파악하라고. 도덕적 비젼 역시 중요하다. 신형철 역시 <몰락의 에티카>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학이 윤리와 무관했던 적이 있었던가. 적어도 그것이 진정한 문학이라면.’


혹은 계보를 추적하며 문학을 읽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탐 존스부터 해리 포터까지 고아 문학의 계보를 만들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문학을 좋은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독창성? 이글턴에 따르면 새롭다고 해서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변화는 진전보다는 퇴보를 의미할 가능성이 더 높다. 보편적인 호소력? 그것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작품이란 무릇 세월이 흐르면서 새로운 의미를 산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재미? 그것도 아니다. 테리 이글턴은 사적 선호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자면,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부분의 소설이 재미가 없다. 테리 이글턴은 좋은 문학에 대한 공적인 기준, ‘규범적 이론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심오하고 복잡함? 그것도 문학을 가치있게 하는 것은 아니다. 플롯이 조화롭고 통일된 문학? 그것도 아니다. 그에 따르면, 20세기에 가장 위대한 희곡은 <고도를 기다리며>이고 가장 훌륭한 소설은 <율리시스>이며 가장 훌륭한 시는 <황무지>. 이 세 작품 모두 플롯이랄 게 없다. 어휘가 풍부하고 화려한 문학? 그것도 아니다. 조지 오웰의 산문은 풍부하지 않다.

 

테리 이글턴은 문학 작품의 몇 구절의 분석을 통해 좋은 문학의 정의를 내리려 시도한다. 여기서 테리 이글턴은 존 업다이크와 윌리엄 포크너를 물 멕인다. 테리 이글턴에 따르면 업다이크의 문장은 반질반질할 정도로 기교적이고, 포크너의 문장은 그저 망할 일들이 줄줄이 이어지며조야하고 수다스럽다.

 

그에 비해 에벌린 워나 나보코프, 캐럴 실즈의 문장은 뛰어나다. 이글턴에 따르면, 에벌린 워의 문장은 선명하고 불순물이나 군더더기가 없다. 억제하지도 과시하지도 않는다. 기교를 의식하지도 않는다. 나보코프의 <롤리타>의 문장은 젠체하긴 하지만 풍자적이고 유머러스하고 <문학적>이다. 캐럴 실즈의 <사랑 공화국>의 문장은 섬세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테리 이글턴은 좋은 문학이 어떤 것인지 딱히 결론 내리지 않았다. 꼼꼼한 읽기를 통해 몇몇 작품 단락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내놓았을 뿐이다. 혹시 테리 이글턴은 좋은 문학이란 독자인 우리가 문학을 좀 더 섬세하게, 깊이 있게 읽을 때, 그때서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하고 싶었던 걸까?

 

이상한 말이지만 사람은 책을 읽을 수 없다. 다시 읽을 수 있을 뿐이다. 좋은 독자, 일류 독자,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독자는 다시 읽는 독자다.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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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북 2016-03-30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옷~ 저랑 비슷한 시간에 같은 책에 대한 리뷰를 올리셔서 반가워요~ 이런 이유로도 친밀한 느낌이 드네요^^

시이소오 2016-03-30 14:54   좋아요 0 | URL
원더북님, 저도 화들짝 했네요. 반갑습니다^^

프레이야 2016-03-30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읽는 독자가 되어야겠군요. 섬세하게 작품을 품어 안는 비평가가 저는 좋더군요. ^^

시이소오 2016-03-31 00:05   좋아요 0 | URL
그쵸? 저만 그런거 아니죠 ㅋ^^

eL 2016-03-31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첫문단 보고 오? 하면서 클릭해서 끝까지 읽었네요. 두가지 서로 다른 비평에 대한 이야기가 와닿아요. 어떤의미에서는 두 비평의 차이가 대상을 분석하느냐 대상에 다가가느냐의 차이인 것 같은데.. 저도 후자가 좋으네요 ^^

시이소오 2016-03-31 23:34   좋아요 1 | URL
비평은 사랑입니다 ^^

포스트잇 2016-06-07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쿠, 오래전에 이미 이 책을 정리하셨군요. 대단한 책이죠? ㅎㅎ

시이소오 2016-06-07 12:16   좋아요 0 | URL
테리이글턴 책도 이미오래전에 번역되었더라구요

이글턴의 다른 책도 읽어봐야겠어요^^
 
작가의 책 - 작가 55인의 은밀한 독서 편력
패멀라 폴 지음, 정혜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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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작가의 책 토머스 하디 줌파 라히리.

 

줌파 라히리의 <저지대>를 읽으면서 우다얀과 수바시가 사랑한 가우리 캐릭터는 어디서 연원한 걸까 궁금했었다. 테리 이글턴의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을 읽다 토머스 하디 <무명의 주드>에 나오는 수 브라이드헤드와 가우리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수에 대해 비판적인 한 비평가는 이렇게 썼다고 한다.

 

결국 수를 변호해보려고 해도, 그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말이 많지 않다. 그녀는 첫 애인의 죽음을 재촉한 후 사랑받는 기쁨을 누리려고 주드를 유혹한다. 그러고는 수상쩍은 동기로 기이하게도 무감각하고 무심하게 필롯슨과 결혼하며 그 과정에서 놀랍게도 냉담하게 주드를 대한다. 필롯슨과의 잠자리를 거부한 후 그녀는 그를 버리고 다시 주드에게 돌아감으로써 그 교장의 경력을 일시적으로 파탄 내고 주드와의 잠자리도 거부한다. 그런 다음에 아라벨라에 대한 질투심 때문엥 주드와 결혼하기로 동의하고, 도다시 마음을 바꿔서 결국에는 필롯슨에게 돌아가고 주드가 죽도록 내버려둔다......

 

D. H 로렌스는 수를 신체적 발기불능이라 비난할 정도였다. 테리 이글턴은 얼토당토않은 논평이라고 수를 옹호한다.

 

그녀는 결혼과 성이 여자의 독립성을 뺏는 덫이라고 간주합니다. 그리고 소설은 그녀의 이런 견해를 충분히 지지합니다. “여자들이 비난을 받아야 하는 거요? (주드가 말했다.) 아니면 정상적인 성적 충동이 진전을 바라는 사람을 올가미에 씌우고 억누르는 집안의 지독한 덫이 되어버리는 부자연한 체제가 문제인 거요?”

 

- p140. 테리 이글턴,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저지대>의 가우리는 우다얀이 죽자 올가미에 씌우고 억누르는 집안의 지독한 덫이 되어버리는 부자연한 체제에 갇힌다. 수바시는 가우리에게 청혼을 하고 그녀를 집안에서 빼내 영국으로 데려온다. 수바시가 가우리를 덫에서 구해준 셈이다. 수바시는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한다. 가우리는 냉담하다. 어느날 가우리는 수바시와 딸 벨라를 버리고 도망친다. 자신의 자유를 찾아서.

 

줌파 라히리는 가우리 캐릭터를 토머스 하디의 <무명의 주드>에서 차용해 온 것은 아닐까

<작가의 책> 줌파 라히리 편엔 이런 질문이 나온다.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의 이름을 말해야만 한다면 누구를 꼽으시겠습니까?

 

토머스 하디요. 고등학교 시절 그의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부터 그의 작품 속 인물, 장소에 대한 감각, 인간에 대한 인정사정없이 냉혹한 시각에 어떤 동류의식을 느꼈거든요. 그래서 가능한 한 자주 반복해서 읽으려 하고 있지요.


 

.... 두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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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6-03-31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구입하려다가 두꺼워서 포기했어요. 후후~~

시이소오 2016-03-31 14:29   좋아요 0 | URL
여러 작가들이 나와서 지루하지 않답니다 ^^
 
읽다 (2015년판) - 김영하와 함께하는 여섯 날의 문학 탐사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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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랑과 독서의 공통점이 뭘까요?

 

답은 광고 후에.....아니고요. 잠깐만요. 또 다른 퀴즈가 있습니다. 버지나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그리고 김영하의 <읽다>의 공통점은 뭘까요? 십 초 드리겠습니다. 1.2.3.....10.

 

와우, 역시. 그렇습니다. 강연을 정리한 글인 듯 경어체로 쓰였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리뷰를 경어체로 쓰겠습니다.

 

, 다시 사랑과 독서의 공통점은 뭘까요?

 

해럴드 블룸은 <교양인의 책 읽기>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독서는 자아를 분열시킨다. 즉 자아의 상당 부분이 독서와 함께 산산이 흩어진다.”

 

사랑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요? 사랑은 자기분열이요, 자아상실입니다. 자아상실은 무슨 뜻인가요? 나와 나 아닌 것들의 경계가 흐려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하면 세상이 아름답게 느껴져요. 아이들의 웃음소리, 길가에 핀 장미 꽃 한 송이도 유난히 사랑스럽습니다. 또한 경계가 없어진다는 말은 한편으론 제정신이 아니란 뜻입니다. 사사키 아타루가 그랬잖아요? 책을 제대로 읽으면 미쳐버린다구요. 김영하는 <돈키호테>를 예로 듭니다.

 

돈키호테에게 현실과 책의 경계는 아예 사라져버립니다. 풍차는 기사가 되고 이발사의 대야는 투구가 되죠. 돈키호테는 온갖 미친 짓에도 불구하고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에 반해 책 읽고 미친 보바리 부인은 어떻게 되었죠? 자살합니다.

 

쥘 드 고티에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다르게 상상하는 기능보바리즘이라 명명했습니다. 다니엘 페나크에 따르면 보바리즘이란 상상이 극에 달하고 온 신경이 떨려오고 심장이 달아오르며 아들레날린이 마구 분출되는 가운데 주인공의 세계에 완전 동화되어, 어처구니없게도 대뇌마저 일상과 소설의 세계를 혼동하기에 이르는현상입니다.

 

책 속에 길이 있을까요? 김영하는 카프카의 소설 <>을 예로 듭니다. 요제프 K는 사실 성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성을 찾습니다. 길은 계속 등장합니다. 과연 길을 따라 간다고 성을 찾을 수 있을까요? 김영하 역시 오르한 파묵이 말한 감춰진 중심부를 인용합니다. 독자는 감춰진 중심부를 찾아가는 셜록홈즈같은 탐정과도 같습니다. ‘중심부를 찾기 위해서는 주의 깊게 읽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보바리 부인>의 중심부는 무엇일까요? 플로베르는 루이즈 콜레에게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내가 볼 때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것은 내가 실천에 옮겨보고 싶은 바로 무에 관한 한 권의 책, 외부 세계와의 접착점이 없는 한 권의 책이다. 마치 이 지구가 아무것에도 떠받쳐지지 않고도 공중에 떠 있듯이 오직 스타일의 내적인 힘만으로 저 혼자 지탱되는 한 권의 책, 거의 아무런 주제도 없는 아니 적어도 주제가 거의 눈에 뜨이지 않는 한 권의 책 말이다. 가장 아름다운 작품들은 최소한의 소재만으로 된 작품들이다. 표현이 생각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어휘는 더욱 생각에 밀착되어 자취를 감추게 되고 그리하여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과연 <보바리 부인>엔 아무런 중심부가 없는 걸까요?) 김영하는 소설을 읽는 다는 것이 감춰진 중심부에 도달하기 위한 여정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김영하에 따르면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헤매기 위해서입니다. ‘아무 의미도 없는 이상한 세계에서 어슬렁거리기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시간 낭비 아닐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김영하에 따르면 독서는 고유한 헤맴이고 유일무이한 감정적 경험이며 교환불가능하기에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현실의 우주가 빛나는 별과 행성, 블랙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크레페케이크를 닮은 우리의 작은 우주는 우리가 읽은 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것들이 조용히 우리 안에서 빛날 때, 우리는 인간을 데이터로 환원하는 세계와 맞설 존엄성과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소설은 꿈이다.

 

<하자르 사전>에 나오는 유수프마수디는 음악가이면서 꿈을 읽는다고 합니다. 또한 그는 꿈을 따라 여행하는 유령을 쫓아다녔다고 하죠.

 

마수디가 알아낸 바에 따르면,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꿈을 꾸고 그중 한 사람의 꿈이 다른 한 사람의 현실을 구성하는 경우, 꿈의 작은 일부분이 언제나 남겨진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꿈의 아이들이다. 꿈은 물론 꿈에 나오는 사람의 현실보다 짧다. 하지만 꿈은 언제나 아주 깊기 때문에, 어떤 현실과도 비교할 수 없다. 그래서 언제나 약간의 찌꺼기가 남게 된다.

 

이러한 잉여물질은 꿈에 나오는 사람의 현실 속으로 완전히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제 3의 인물 현실 속으로 흘러들어가 거기에 붙어 있게 뙨다. 결과적으로 제 3의 인물은 엄청난 어려움과 변화를 겪게 된다. 3의 인물은 처음의 두 사람보다 더욱 복잡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 인물의 자유의지는 다른 두 사람에 비해 두 배는 더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다.

 

- 밀로라드 파비치, <하자르 사전>

 

재밌는 관점입니다. 꿈에 따라 현실을 만들고 나면 남는 부분이 생깁니다. 잉여 물질이 엉뚱한 사람의 현실 속으로 들어가 이상한 작용을 하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제가 간혹 엉뚱한 짓을 하는 걸까요?

 

(유수프마수디가 꿈을 따라 여행하는 유령을 쫓아다녔다고 하는데, 실제로 루시드 드리머들 사이에 유령의 몽타쥬가 돌아다닙니다. 제가 보기엔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과 닮았습니다. 저 유령 빨리 잡혔으면 좋겠네요. 저 놈 때문에 제 현실이 엉망진창인지도 모르잖아요. 참고로 저는, 루시드 드림, 우리말로는 자각몽이라고 하죠. 6개월 훈련하고 포기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김영하는 마치 <하자르 사전>에서의 꿈처럼, 소설에서도 현실로 다 치환되지 않는 잉여 물질이 남는다고 말합니다.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우리가 소설을 읽는 지도 모른다구요.

 

왜 소설을 읽느냐?”하는 질문에 김영하는 말합니다.

거기 소설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소설 자체가 목적이란 뜻이겠죠. 소설을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소설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파묵에 따르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2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블랑쇼처럼 말해볼까요? 소설은 삶이고 소설은 죽음입니다. 소설을, 책을 읽는다는 것은 카프카가 말한 것처럼 얼어붙은 감수성, 우리의 응고된 자아를 해체하고 깨부수는 도끼질입니다. ‘가 죽을 때마다 새로운 가 탄생하는 셈이죠.

 

아우구스티누스를 따라, 사사키 아타루를 따라 반복하시겠습니까?

 

 

 

집어 들고 읽어라, 집어 들고 읽어라, 집어 들고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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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99 2016-03-29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시이소오 2016-03-29 13:36   좋아요 1 | URL
저런, 어안이 벙벙한 상태신가요? ㅋ ^^

kitty99 2016-03-29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이소오 타고 하늘까지 슈웅~~~^^

시이소오 2016-03-29 13:40   좋아요 1 | URL
김영하 작가님을 타셔야죠. ^^

kitty99 2016-03-29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 위에서 만나고 왔음 ㅋㅋㅋ

시이소오 2016-03-29 13:45   좋아요 2 | URL
김영하 작가님이 뭐라든가요? `이 놈의 인기는 하늘, 땅을 안가리는구나`, 만년필을 꺼내 묻지 않던가요? 이름? ㅋ

꿈꾸는섬 2016-03-29 1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오랜만에 김영하작가책을 만나볼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요새 애정이 좀 식었었는데 시이소오님 글 읽으니 읽고싶네요.

시이소오 2016-03-29 13:46   좋아요 1 | URL
김영하 작가님, 나이먹고 철들었어요. ^^

꿈꾸는섬 2016-03-29 13:48   좋아요 0 | URL
ㅎㅎㅎ철든 김영하작가님~
왠지 매력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ㅎㅎㅎ 기대되게해요. 철들었다는 말이요.

시이소오 2016-03-29 13:50   좋아요 0 | URL
한껏 성숙해진 김영하를 기대하세요^^

kitty99 2016-03-29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뇨 그냥 째려보시던대요 그것도 한 쪽 눈으로 ...

시이소오 2016-03-29 13:49   좋아요 1 | URL
ㅋㅋㅋ 짝눈이라 그렇게 보일수도 있어요. (농담입니다. 독자, 김영하 외모비하, 뭐 이런 기사 나오면 안 됩니다)

kitty99 2016-03-29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cyrus 2016-03-29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번 들어가면 정말 제대로 헤매는 소설이 있습니다. 카프카의 소설입니다. 특히 <성>은 미완성이라서 탈출구가 없어요.

시이소오 2016-03-29 20:38   좋아요 0 | URL
그래서 카프카 소설들이 재밌는 것 같아요^^

룰루라떼 2016-03-29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프카...ㅎ
하자르 사전도 올만에
제목보네요^^
스미스요원 보이믄
제가 잡겠습니다^^
자각몽 잘 꾸거든요~하핫!

시이소오 2016-03-29 21:49   좋아요 0 | URL
오호. 부럽습니다. 잡아주세요. 대머리에요. ㅋㅋ

룰루라떼 2016-03-29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대머리 맞아요?
성질 드러워 보이는?
눈매가 부리부리하고?
지난번에 함 봤는데...ㅎ

시이소오 2016-03-29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맞는것 같은데요. 혼자서는 잡기힘드실텐데. 자각몽자들하고 연합하셔야할듯 ^^

룰루라떼 2016-03-29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연합은 무쓴~ㅎ
피하는게 상책일듯~했어요
그때도
느낌 넘 안좋더라고요
큰소리 쳤는데..죄송합니다^^

룰루라떼 2016-03-29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농담이 아니고,
자각몽이라고
상황을 100% 컨트롤 하는것이
아니라서
위험할때는
장소를 재빨리 바꾸는것이
안전하거든요
그리고 그곳이 현실화 된 세계일지도 모르고요^^

시이소오 2016-03-29 22:18   좋아요 0 | URL
맞아요. 농담이었어요. 그 놈 만나면 도망쳐야죠. ^^
꿈에 갇히면 어떡해요? 룰루라떼도 드셔야하는데 ^^

룰루라떼 2016-03-29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이소오님
대머리 본거 저는 농담
아니었어요
자각몽이 거의 안전하다고
저는 생각하지만
성질 드러워 보이는 존재를
아주 가끔 볼때가 있거든요.
그렇다고 일종의 자기계발?
방편으로 자각몽을 시도하시는 분들께 위험하다고만 말할수도
없구요.분명 현실세계에서
깨어있는, 자각생이 더 중요하지만,
장자의 비유처럼 이 세상이
꿈일지도 모르죠.
꿈이 현실보다 더 생생할때도
많거든요.
말이 길어졌는데,
대머리!!!
진짜인줄 알았는데,
농담이라 하셔서
살짝 기분 나빴어요^^

시이소오 2016-03-29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잡아달라는 말 농담이었다구요. ^^ 대머리 만나신건 믿죠.
저도 한때 자각몽 공부해서 대충은 아는걸요 ^^ 위험하다고 들었거든요. ^^
 

달이 뜨지 않아도 내 마음에 달은 떠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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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3-28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문구입니다.
글씨도 깔끔하시네요.

시이소오 2016-03-28 21:16   좋아요 0 | URL
달이 뜨지 않아도, 아무도 전화하지 않아도 왠지 신나는 밤이네요^^

coolcat329 2016-03-28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씨가 멋지네요~맥주 한 잔 하며 시를 크게 읽어봤습니다!

시이소오 2016-03-28 23:09   좋아요 0 | URL
저는 와인한잔 했더니 해롱해롱 기분이 좋네요. ㅋ ^^
 
작가의 문장수업 - 미움받을 용기 고가 후미타케
고가 후미타케 지음, 정연주 옮김, 안상헌 감수 / 경향BP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누구나 책을 쓸 수 있다?

 

고가 후미타케에 의하면 문체는 두 가지 요소에 의해 달라진다.

 

문장의 어미를 평서체와 경어체로 나누기

’, ‘’, ‘필자등 주어로 나누기

 

또한 문체는 리듬이다. 저자에 따르면 리듬은 감각적인 요소가 아니라 논리적인 결과다. (고가 후미타케는 논픽션 작가다.) 따라서 문장의 리듬은 논리 전개에 의해서 결정된다. 여기서 다른 작가와의 차별점은 저자의 접속사에 대한 강조다. 고종석은 접속사를 되도록 쓰지 말라고 말했었다. 한동안 고종석의 말만 믿고 접속사 안 쓰려고 무던히 노력했는데......

써도 되는 거얌?

 

저자는 문장을 마치 영화처럼 다루라고 말한다.

카메라 기법처럼 문장으로 거리감을 조성하기, 도입부를 영화 예고편처럼 쓰기.

 

흥미를 유도하는 도입의 3패턴

 

1. 임팩트 우선형 : 강렬한 결론을 클로즈업처럼 보여준 후, 롱 숏으로 빠지기

2. 감질 내기형 : 슬금 슬금 정보를 노출하면서 결정적인 내용은 감추기.

3. Q&A : 질문과 대답으로 구성. 재미는 덜하지만 가장 간단한 도입.

 

논리적인 문장의 3단계

 

주장 : 문장을 통해 전하고 싶은 주장

이유 : 주장을 호소하는 이유

사실 : 이유를 보강하는 객관적 사실

 

리뷰를 쓰다보면 이유를 보강하는 객관적 사실에 소홀해진다.

그러다보니 우격다짐이 되곤 하는데, 독후감도 객관적 사실에 치중해야 할까.

 

다수보다는 특정한 사람을 향해 써라.

, 그렇다면 경어체로 써야할까? 편지처럼?

 

남의 일이 아닌 독자의 일로 만들어라.

새겨들을 조언이다. 독자가 남의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게끔 해야 한다.

 

독자가 스스로 가설을 세우게 하라.

 

기승전결이 아닌 기전승결로 구성하라.

 

아하.

 

서두에는 자신의 주장과는 정반대인 일반론을 제시하라.

 

예시.

 

기 흔히 달콤한 음식은 다이어트의 적이라고 말한다.

전 하지만 먹고 싶어지면 케이크나 도너츠를 먹어도 좋다.

(먹어도 좋은 이유, 객관적 사실 등)

결 너무 참기만 하는 다이어트는 오래 지속할 수 없다.

 

독자보다 먼저 트집을 잡아라

 

리뷰 쓸 때 이걸 전혀 안 했다. 그냥 윽박지르기!!

 

반론을 고려한 본격적인 구성의 예시.

 

1. 주장. 고등학교는 일본사를 필수 과목으로 삼아야 한다.

2. 이유. 세계사가 필수 과목이고 일본사가 선택 과목인 현 상황은 이상하다.

3. 반론. 한편, ‘국제화에 대응하려면 세계사가 중요하다는 반대의견도 있다.

4. 재반론. 그러나 국제 사회에서 자국의 역사나 문화를 말할 수 없는 쪽이 더 문제다.

5. 사실. 실제로 다른 나라는 자국의 역사 교육에 힘쓰고 있다.

6. 결론. 이후로도 국제화는 계속 진행될테니 일본사 교육이 중요하다.

 

눈이 번쩍 뜨이는 요소는 전체의 30%로 충분하다.

 

‘70% 정도는 남이 알고 있는 사실로 채우고, 그래야만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원고는 쓰기 힘들다?

 

저자에 따르면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보다 모르는 분야일수록 쓰기 쉽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독자의 입장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쓸까가 아니라 무엇을 쓰지 말까이다.

 

잘라 내라! 잘라 내라! 잘라 내라!

 

문장을 읽으면 영상이 떠올라야 한다.

 

세부를 묘사하면 영상이 떠오른다고 한다. 말콤 글래드웰 글들은 마치 소설처럼 읽힌다.

세부 묘사에 치중하기 때문일테지.

 

가장 유용한 조언은 역시 맨 마지막에.

 

글을 쓰다 막히면 폰트를 바꿔라.

 

아하! 이런 생각을 전혀 못했다. 폰트를 바꾸기도 하고, 워드 프로그램을 바꾸거나, 가로 쓰기를 세로 쓰기로 바꿔보라고. 글이 안 써질 때 실험해 봐야겠다.

 

 

고가 후미타케는 글쓰기에 재능 따위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에게 좋은 문장이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 행동까지도 움직이게 하는 문장이다.

 

저자의 조언을 받아들여 알라딘 ‘Thanks to’의 달인에 도전해 볼까.

리뷰만 읽으면 저절로 땡스 투를 누르고 책을 사게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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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3-28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것도 모르는 독자’의 입장에서 글을 쓰는 것도 단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글을 쓰려고 하면, 근거가 있는 배경지식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글을 쓰기 전에 사전조사를 하는데, 문제는 수집한 지식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지도 않고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출처가 있는 곳에서 가져온 정보라고 해서 그것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어요. 특정 분야에 대한 기본적 지식이 없으면 내가 아는 정보의 진위 여부를 판별하는 것이 어려워요.

시이소오 2016-03-28 16:03   좋아요 0 | URL
저는 단점보다 장점에 점수를 더 주고싶네요. 대다수의 자칭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정부나 대기업을 옹호하면서 꼬리치기 바쁘죠. (공병호 씨의 최근 책을 보다 이렇게까지 사람이 사악해질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또한 저자보다는 독자 관점으로 쓰다보면 가독성도 좋을거구요. ^^

eL 2016-03-28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접속사 써도 되는거얌? 에서 웃고갑니다 ^^ 읽다보니 미움받을용기가 쓰여진 틀도 조금씩 보이네요.

시이소오 2016-03-28 20:55   좋아요 0 | URL
접속사 쓸 때마다 죄책감이 들어서요 ㅋ^^

samadhi(眞我) 2016-03-29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후배 웹툰 교정할 때 접속사를 밥먹듯 쓰던 글들에서 접속사를 거의 다 잘라냈었죠. 접속사는 확실히 우리식 문법과 맞지 않고 쓰지 않아도 좋은데 우리가 외국어를 회화가 아닌 문법으로만 철저히 배우다보니 다른나라식으로 쓰는게 버릇되어 그리 된 듯하거든요. 그런 잡다한 설명까지 덧붙여가며 교정하곤 했지요.

시이소오 2016-03-29 12:22   좋아요 0 | URL
접속사 안 쓰면 문장이 훨 깔끔하죠^^ 후배님이 웹툰을 쓰시는군요 ^^

2016-03-29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0%는 남이 알고 있는 거로 채운다. 이 얘기 상당히 고무적이군요. 사실 70% 보다 훨씬 더 남도 아는 거를 쓰면서 머릿속은 마치 100% 내 것으로만 채우는 것처럼 법썩을 떠니 말이죠 ㅋ

시이소오 2016-03-29 16:13   좋아요 0 | URL
99%의 인용과 1%의 편집으로 이루어진 책들은 쉽게 볼수 있는 반면, 100% 전부 새로운 책은 아마도 가능하지 않겠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