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게 뭐라고 - 시크한 독거 작가의 죽음 철학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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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인칭의 죽음.

 

<사는 게 뭐라고>에 이어 <죽는 게 뭐라고>까지 나왔다. <죽는 게 뭐라고><사는 게 뭐라고>보단 삶 보다 죽음에 대해 더 관심을 둔다. 겹치는 내용들도 많다. 두 책 중 한 권만 읽어야 한다면 단연 <사는 게 뭐라고>를 권하고 싶다. 한국인으로선 그녀가 한국 드라마 때문에 목이 돌아간 이야길 빼먹고 읽기엔 아무래도 좀 아쉽다.

 

성욕은 있는데 정욕은 없다는 골동품 상 주인인 싱글벙글 씨도 다시 등장한다. 여전히 이 책에서도 산 송장마냥 생기가 없다. 암 선고를 받고 재규어를 산 일화 역시 빠지지 않는다.

 

사노 요코는 암이라고 호들갑 떨지 않는다. 암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담배를 끊을 생각도 없다. 일흔은 딱 죽기 좋은 나이라고 생각한다. 죽기를 기다리는 게 오히려 지겹다. 그녀는 기운차게죽고 싶다. 그녀는 암과 싸워 투병기따위를 쓰고 싶어 하지 않는다. 대신 주변에 암이라고 퍼뜨려 지인들로부터 자잘한 친절을 이용하기 바쁘다.

 

유전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쉰 다섯 살 이상의 연령대는 굳이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종족 보존에 적합하지 않은 종이 왜 살아남아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요즘 남자들의 정자 수가 부실하다는 점, 또한 지구에 꽤나 많은 인간이 살아 있다는 점을 고려하자면 나(딱히 실험을 해보진 않았지만 정자 수가 현격히 부족할 것이다)를 포함한 40대 이후의 남자들은 전부 죽어도 좋을 것 같다. 여자는? 나이를 불문하고 여자들은 공동체에 도움이 되지 않나?

 

저자가 베를린 유학 시절, 같은 하숙집에 쉰 살 쯤 되어 보이는 한국인이 있었다고 한다. 경성에서 가장 큰 서점의 아들. “미스터 리”. <사는 게 뭐라고>에서 매번 사노 요코에게 일제 침략에 대한 일본의 사과를 요구한 이도 미스터 리였을까. 미스터 리의 일본식 이름은 하치야 신이치. 그는 하치야 마유미와 함께 198711월에 대한항공 비행기를 폭파한다. 하치야 신이치는 독약 캡슐을 씹어 먹고 자살했고, 하치야 마유미, 즉 김현희는 자살 직전 저지당했다. 그가 죽었기 때문이었는지 김승일에 대해선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노 요코는 이래저래 한국과 인연이 깊은 작가인 듯하다. 2년 동안 목이 돌아갈 만큼 누워서 한국 드라마만 주구창창 보면서 행복해했던 사노 요코. 나중에는 한국 드라마는 쓰레기라고 제 정신을 차리기도 했다. 그 순간에 행복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누구나 죽는다. 죽기 전엔 살아 있을 것이고 사는 한 죽음은 찾아오지 않는다. 따라서 죽음에 대한 고민, 공포 등은 부질없는 짓이다. 인간은 모두가 특별하다. 때문에 인간은 모두가 특별하지 않다. 사노 요코를 본받아 우리 모두 기운차게죽음을 맞자.

 

그럼에도 그녀의 죽음은 아무래도 아쉽다.

2.5인칭의 죽음이기에.

 

밑줄 그은 문장

 

p81. 히라이 : 죽음에 대한 감상에도 1인칭, 2인칭, 3인칭이 있다는 군요. ‘, 그녀의 죽음은 아, 죽었구나 정도로 별로 슬퍼하지 않아요. 반면 2인칭인 당신의 죽음 (부모, 자식, 형제 등)’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죠. 그래도 그건 자신의 죽음이 아니에요. 1인칭의 죽음, 나의 죽음은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인 데다 남들한테 물을 수도 없으니 어려운 거죠. 의사에게 환자의 죽음은 어떤가 하면, , 그녀의 죽음처럼 3인칭은 아닙니다. 환자와의 관계가 있으니 2인칭도 아니고 2.5인칭 정도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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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6-15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목돌아가면 책만 볼것같은데 목 돌아가면 책보기도 힘들까요?ㅎ

시이소오 2018-06-15 19:56   좋아요 1 | URL
책은 목돌아가기전에 읽으심이. 그렇다면 카알벨루치님은 목이 돌아가건 안돌아가건 책만 읽으실수 있겠네요. ㅎ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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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이렇게 불공평해도 되는 건가? 누구는 모국어로 간신히 리뷰를 쓰고 있는 마당에 인도에서 태어난 줌파 라히리는 영어로 소설을 써 각종 문학상을 휩쓸더니 이번에는 이탈리아어로 소설을 냈다. 이탈리아에 대한 사랑의 은유라며.

 

밀라노 스칼라 극장에서 오페라를 관람한 적이 있다. 2층에 칸막이로 된 좌석이었다. 이탈리아 소년이 멀찍이 뒤에서 구경하길래 앞쪽으로 와서 보라고 얘기했었는데 그것 때문인지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소년은 계속 나에게 우호적인 웃음을 지어보였다.

 

소년은 일본인이냐고 묻고서는 두서없이 애니매이션 이야길 꺼냈다.

, 일본 애니매이션이 이탈리아에서도 인기구나!’

소년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그나마 아는 이탈리아 어를 말했다.

 

부에노 쎄라

 

, 뭐지, 이 장중함은? 단지 인사말을 했을 뿐인데.’

 

이야기가 장황했다. 요점만 말하자면 줌파 라히리의 20년간의 이탈리아어에 대한 애정에 충분히 공감한다는 것이다. 내가 불어를 공부한 건 오로지 알랭 래네 감독의 <히로시마 내 사랑>때문이었다. ‘, 이건 시잖아!’

 

현실에서 프랑스인들이 하는 말을 듣고는 어찌나 실망했던지. 이건 뭐 돼지들의 꿀꿀거림? 불어에 대한 환상이 처참히 깨졌다. 그 어떤 프랑스인도 <히로시마 내 사랑>의 주인공처럼 음절 하나하나를 음미하듯 시처럼 말하지 않았다.

 

불어를 공부하게 된 이유를 말하면 교수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 영화 그저 그렇던대. 영화 속 불어가 딱히 뛰어난 것도 아니구.”

그 시나리오 뒤라스가 썼거든요. 교수님은 뒤라스를 읽어 보기는 했어요?”

라고 말하진 않았다. 굳이 뭐 하러??

 

언어는 쓰지 않으면 잊혀지기 마련이다. 나는 이제 불어를 거의 모른다. 줌파 라히리는 이탈리아어에 대한 애정을 유지하기 위해 20년간 이탈리아어를 공부하고 외국어인 이탈리아어로 소설을 쓸 정도였으니 가히 대단한 노력이고 열정이다.

 

단편 <변화>는 그녀의 이탈리아어에 대한 미칠듯한 열정과 사랑을 드러낸다. 낯선 도시에 어느 집안으로 들어간 번역가는 자신의 스웨터를 벗고 집주인이 권한 스웨터를 입어본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번역가는 원래의 스웨터를 찾을 수 없고 집주인은 번역가에게 낯선 스웨터를 내밀고 그것이 번역가의 스웨터라고 말한다. 할수없이 번역가는 남의 스웨터를 입고 집으로 돌아온다. 다음날 번역가는 스웨터를 입어보자 잃어버린 스웨터를 다시 찾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았다.

 

스웨터는 언어에 대한 은유다. 옷은 언어다.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스웨터(이탈리아어)는 이제 자신의 것이 된다.

 

새로운 언어는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이다. 더 이상 기존의 언어로 생각할 수 없다.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만 한다. 그것은 변신이고 새로운 도약이다. 그 결정체가 이 작은 책이다.

그러므로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고 클 것이다.

 

 

밑줄 그은 문장

 

p76.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리고 삶은? 결국 같은 것이리라. 말이 여러 측면과 색조를 갖고 있고 그래서 복합적인 특성을 갖고 있듯 사람도 인생도 마찬가지다. 언어는 거울, 중요한 은유다. 결국 말의 의미는 사람의 의미처럼 측정할 수 없고 형언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p128. 그는 이탈리아어를 소유하고자 하는 나의 갈망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썼다.

새로운 언어는 새로운 인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문법과 고문이 당신을 바꾸고, 다른 논리와 감정으로 이끌어 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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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6-03-26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지에서 또 한국에 온 대부분의 인도인들은 기본 세개 많으면 다섯개 언어를 하더군요. 기본 세개는 태어난 지역어, 힌두어, 영어인데, 인도 지역별 말들도 거의 다른 언어 수준이니,
정말 그들의 언어와 `수`에 대한 능력은 엄청난 것 같습니다.

시이소오 2016-03-26 12:54   좋아요 1 | URL
인도인들이 대체로 언어 감각이 뛰어난가 보군요. 부럽네요^^

아애 2016-03-26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을 변화하는 큰 방법의 하나 중에 다른 언어로 사는 삶도 큰 것이겠지요. 전 모국어로부터 한 발짝도 벗어나질 못하니 맨날 같은 날이라 불평할 자격도 없지요.

시이소오 2016-03-26 13:43   좋아요 1 | URL
다른 언어를 공부하거나 문화를 공부해도 창의력이 상승한다고 하네요. 아프리카 역사책을 읽을려구요. 아애님은 새로운 외국어를 배우면 어떨지요? ^^

프레이야 2016-03-26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같은 경우, 다른 언어권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평생의 소원이 이루어지긴 어렵겠지요ㅎㅎ

시이소오 2016-03-26 13:44   좋아요 1 | URL
여행을 가서 현지인과 사랑에 빠질수도. 안 되면 여행간걸로 만족하면 되니까요^^

룰루라떼 2016-03-26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이 책
멋질것 같아요^^

시이소오 2016-03-26 21:12   좋아요 0 | URL
멋지지요? ㅋ ^^

룰루라떼 2016-03-26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그렇듯이
읽는 속도보다
사는 속도가...ㅠㅠ^^ㅋㅋ

책벌레 2016-03-26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인도인들은 천재인가봐요 ㅠㅠ
한국어랑 영어 두가지도 잘 못하는 저에겐 ㅎㅎㅎ 캐나다에는 영어랑 불어 두가지를 사용해요 요즘 언어 배우기 삼매경입니다~^^
그런데 언어마다 표현법이 조금은 달라서
언어를 알아야 그 나라와 민족을 전부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어요^^

시이소오 2016-03-26 21:13   좋아요 1 | URL
오옷. 캐나다. 부럽습니다
다른 문화권에서 생활할수록 창의력이 높아진다네요. ^^

깊이에의강요 2016-03-27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라스는 저도 사랑합니다~^^

시이소오 2016-03-27 11:55   좋아요 0 | URL
저는 강요님을 사랑합니다^^

깊이에의강요 2016-03-27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급작스런 고백은 ㅋㅋㅋ
♥^^♥

시이소오 2016-03-27 12:23   좋아요 0 | URL
고백이 받아들여지다뉘!!!! ^^

큐브 2016-03-28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로시마 내 사랑을 본 것도 같고.. 기억이 안 나네요. 뒤라스 책이 한 권 있는 것도 같고요. 이 영화를 다시 한번 볼까봐요..^^

시이소오 2016-03-28 20:54   좋아요 0 | URL
영화 좋아요 ^^

스텔라 2016-03-28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제목 자체가 흡입력있네요. 작가가 역시 대단하군요. 멋지네요

시이소오 2016-03-28 21:15   좋아요 0 | URL
그쵸? 저 작은 책은 언제나 저보다 클거에요^^
 

P27. 생물학이 사람들에게 저지른 위대한 장난은 다른 사람에 관해 뭔가 알기 전에 친밀해지기부터 한다는 거야. 첫 순간에 모든 걸 이해하는 거지. 처음에는 서로의 거죽에 이끌리지만 동시에 직관적으로 전체를 다 파악해. 서로 끌리는 건 등가일 필요가 없어.

P28. 곡 필요한 매혹은 섹스뿐이야. 섹스를 제하고도 남자가 여자를 그렇게 매혹적이라고 생각할까? 섹스라는 용건이 없다면 어떤 사람이 어떤 다른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매혹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P32.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에로서의 혼돈이고, 그 자극이 되는 근본적 불안정성이야. 너는 섹스와 함께 숲으로 들어가는 거야. 수렁으로 돌아가는 거라고. 본질은 지배를 거래하는 것, 영원한 불균형이야. 지배를 배제하겠다고? 굴복을 배제하겠다고? 지배하는 것이 부싯돌이야. 그게 불꽃이 일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힘이야.

P35. 아직 잘 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노력은 해. 내가 약이 올라 선생한테 "제대로 칠 수가 없네요. 이 문제는 어떻게 푸는 겁니까?" 하고 물으면 그 여자는 "천 번 쳐보세요"하고 대답해. 즐길 만한 게 다 그렇듯, 알다시피 여기에도 즐길 수 없는 부분이 있어. 하지마 음악과 나의 관계는 깊어졌고 이제 그건 내 삶에서 핵심이 되었어. 이제는 이렇게 하는 게 현명해. 내게 앞으로 언제까지 여자들이 있겠어?

P41. 콘수엘라의 몸에는 눈에 확 띄는 두 가지가 있어. 우선 젖가슴. 내가 본 가장 찬란한 젖가슴 – 잊지 마, 나는 1930년에 태어났어. 난 지금까지 아주 많은 젖가슴을 봤어. 그런데 이 젖가슴은 둥글고, 풍만하고, 완벽했어. 받침접시 같은 젖곡지가 달린 쪽이었지. 소의 젖통 같은 젖꼭지가 아니라 너무나도 자극적인, 장밋빛을 띤 연한 갈색의 큼지막한 젖꼭지.

두 번째는 음모에 윤기가 반지르르 흐른다는 것이었어. 보통은 곱슬곱슬하잖아. 그런데 이건 아시아인의 털 같았어. 윤기가 흐르고, 납작하게 누웠고, 너무 무성하지도 않았어. 음모는 중요해. 그건 다시 나니까.

P50. 죽어가는 것과 죽음은 구별해야 해. 아무런 중단 없이 계속 죽어가기만 하는 게 아니야. 건강하고 몸이 좋다고 느끼면 보이지 않게 죽어가고 있는 거야.

P56. 보통의 포르노그래피는 질투를 미화해. 괴로움을 제거해버리지. 뭐가 – 왜 "미화할까 aestheticizing? 왜 마취하지 anesthetizing않을까?" 글쎄, 어쩌면 둘 다겠지. 그건 대신하는 거야. 보통의 포르노그래피는 타락한 예술 형식이야. 그것은 진짜인 체할 뿐 아니라 노골적으로 진실을 버려. 포르노 영화에 나오는 여자를 원하지만 누가 그 여자와 씹을 하든 그 사람이 자신의 대리가 되기 때문에 질투는 일어나지 않아. 아주 놀랍지만 그게 심지어 타락한 예술의 힘이야.

그 사람은 대역이 되어, 그렇게 보는 사람에게 봉사를 하는 거야. 그것이 가시를 제거해서 영화를 즐길 만한 것으로 바꾸는 거야. 보는 사람이 그 행위의 보이지 않는 공모자이기 때문에 보통의 포르노그래피에서는 괴로움이 제거되는 반면 내 포르노그래피에서는 괴로움이 그대로 유지돼. 나의 포르노그래피에서는 신물날 정도로 자신을 잔뜩 채운 사람이나 얻는 사람이 아니라, 얻지 못하는 사람, 잃는 사람, 잃어버린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니까.

p88. 오직 섹스를 할 때에만 인생에서 싫어하는 모든 것과 인생에서 패배했던 모든 것에 순간적으로나마 순수하게 복수할 수 있기 때문이야. 오직 그때에만 가장 깨끗하게 살아 있고 가장 깨끗하게 자기 자신일 수 있기 때문이야. 부패한 건 섹스가 아니야 – 섹스 아닌 나머지가 부패한 거야. .....섹스는 죽음에 대한 복수이기도 해. 죽음을 잊지 마.

p123. 데이브, 나를 섬겨라, 아이는 말하죠, 피를 흘리는 여신의 신비를 섬겨라, 그리고 선배는 섬겨요. 선배는 어디에서도 멈추지를 않아요. 그걸 핥지요. 그걸 먹지요. 그걸 소화하지요. 그 아이가 선배를 뚫고 들어가는 거예요. 그다음엔 뭡니까? 데이브? 그 아이 오줌 한 잔? 아이에게 똥을 달라고 간청하기까지 얼마나 걸렸을까요? 그게 비위생적이라서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그게 역겹기 때문에 반대하는 게 아니에요. 그게 사랑에 빠지는 거라서 반대하는 거예요. 모든 사람이 원하는 유일한 강박, 그게 ‘사랑’이에요.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면 완전해진다고 생각하지요? 영혼의 플라톤적 결합? 내 생각은 달라요. 나는 사람은 사랑을 시작하기 전에 완전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사랑이 사람을 부서버린다고. 완전했다가 금이 가 깨지는 거지요. 그 아이는 선배의 완전성 안으로 들어온 이물질이에요.

"애착은 파멸을 초래하는 적이에요. 조지프 콘래드가 그랬어요. 유대를 맺는 자가 진다. 선배가 지금 같은 꼴로 거기 앉아 있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맛은 봤잖아요. 그걸로 부족해요? 맛보는 것 말고 뭘 더 얻으려는 거예요? 그게 인생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전부고, 인생이 우리에게 주는 전부라고요. 맛보기. 그 이상은 없어요."

p127. 이게 콘수엘라는 쾌락의 걸작으로 만든 붓질이었으니까. 아이는 내가 아는 여자 가운데 보지를 밖으로 밀어내, 자기도 모르게 그걸 쌍각류 조개의 나뉜 데 없이 부드럽고 거품이 이는 몸처럼 밖으로 밀어내 절정에 이르는 소수 가운데 하나였어. 처음에는 깜짝 놀랐지. 그게 느껴지면 다른 세상의 동물, 바다에서 온 어떤 동물을 만나는 듯한 기분이 들어. 마치 그게 굴이나 문어나 오징어, 몇 마일 물 아래 몇 겁 전의 생물과 관계가 있는 것인 양. 보통 질을 보면서 손으로 벌릴 수는 있지만, 이 아이의 경우 꽃이 피듯 열렸어. 씹이 저절로 은신처에서 떠오르는 거야. 안의 입술이 밖으로 밀고 나오는데, 밖으로 부풀어오르는데, 그게 아주 흥분이 되더라고, 그렇게 미끈거리며 부드럽게 부풀어오르는 게. 만지기에도 자극적이었고 보기에도 자극적이었어. 환희에 젖어 드러나는 비밀. 실레라면 그걸 그리기 위해 송곳니라도 내주었을 거야. 피카소라면 그걸 키타로 바꾸어놓았겠지.

p129. 우스꽝스럽다는 게 뭘까? 자신의 자유를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것 –그게 우스꽝스럽다는 말의 정의야. ......이 영토는 이오네스코의 가장 유명한 희곡을 떠올리게 하고 또 실제로 문학 전체에 걸쳐 희극의 원천이기도 해. 자유로운 사람은 자유롭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미치거나 어리석거나 비참할지는 몰라도 우스꽝스럽지는 않아.

p131. 환멸에 빠진 한 아이가 나한테 이러더군. "실제로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해도 그사람이 누구겠어요? 가면을 쓴 예전 사람들이이에요. 전혀 새로울 게 없어요. 그냥 사람들이에요."

p135. "아내와 나는 혀에 있는 잇자국 수로 결혼의 건강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하곤 합니다." 나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면 궁금해. 이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벌을 받고 있나? 삼십사 년이라니. 거기에 필요한 마조히즘적 엄격함에 경외감을 느끼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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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루라떼 2016-03-25 14: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럴까요?
왠지 쓸쓸해 지네요^^

시이소오 2016-03-25 14:19   좋아요 1 | URL
어느 부분을 말씀하시는건지? 사랑인가요? 조지는사랑이 인간의 완전함을 깨뜨린다고 주장하지만 사랑 때문에 깨지지 않고서 인간이 완전함에 도달할 것이라 보진 않아요. 사랑하지 않는것, 그것이 죽어가는 짐승이죠.
 

필립 로스 W.B 예이츠 정영목 VS 김용규

 

필립 로스의 소설 <죽어가는 짐승>은 예이츠의 <비잔티움으로의 항해> 3행의 시 구절에서 따온 제목이다.

 

정영목 역자는 소설말미에 <비잔티움의 항해> 전문을 번역했다.

 

어느 벽의 황금 모자이크 속에 있는 것처럼

, 신의 거룩한 불 속에 서 있는 현자들이여,

소용돌이치듯 맴을 돌며 거룩한 불에서 나와

내 영혼의 노래 선생이 되어다오.

내 심장을 살라다오, 욕망에 병들고

죽어가는 짐승에 단단히 들러붙어 있어

이 심장은 자기가 무엇인지도 모르니. 그렇게 나를

영원의 작품 속으로 거두어다오.

 

- W.B 예이츠, <비잔티움으로 가는 배에 올라> 3

 

그런데, 김용규의 <데칼로그>를 읽다 또 다시 이 시를 접했다.

 

, 벽에 걸린 황금 모자이크처럼

신의 불길 가운데 서 있는 성인들이여

소용돌이치는 성스러운 불길에서 걸어 나와

내 영혼의 노래 스승들이 되어주오.

내 심장을 불태워주오. 욕망으로 병들고

죽어가는 육신에 매달려

자신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하니, 나를 거두어

영원한 세공품으로 만들어주오.

 

<데칼로그> P145. 김용규.

 

이렇게 되면 궁금해진다. 과연 어느 분의 번역이 더 정확할까?

원문은 이렇다.

 

O sages standing in God's holy fire

As in the gold mosaic of a wall,

Come from the holy fire, perne in a gyre,

And be the singing-masters of my soul.

Consume my heart away; sick with desire

And fastened to a dying animal

It knows not what it is; and gather me

Into the artifice of eternity.

 

저도 한 번 해석 해볼까요?

 

벽에 걸린 황금모자이크 속에 서 있듯이

, 신의 거룩한 불길 속에 있는 현자들이여,

소용돌이치듯 맴도는 성스러운 불속에서 나와

내 영혼의 노래 스승이 되어주오.

욕망으로 병들고 죽어가는 짐승에 매달린

내 심장을 불살라주오.

심장은 자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

나를 영원한 예술작품으로 거두어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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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25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딴 얘기지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도 이 시가 등장하죠. 그 나라 지도처럼. 그 번역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

시이소오 2016-03-25 13:11   좋아요 0 | URL
아, 1연 첫구절이죠
그 번역도 궁금해지네요 ^^

박현진 2016-03-25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시이소오님 네이버 블로그는 없으신가요~~?

시이소오 2016-03-25 18:22   좋아요 0 | URL
네이버블로그 있어요^^

21세기컴맹 2016-03-26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욕망에 몸서리쳐지는 것에 세공품이란 단어가 더 불가항력적인 울림이 있네요 아주 적합합니다. 여기 와서 읽는 것이 참 좋네요,

시이소오 2016-03-26 14:29   좋아요 1 | URL
세공품, 그런가요? 좀 더 구체적인 느낌이 들죠? ^^
 


가와바타 야스나리 마르케스 박범신 토마스 만

 

역시나 이번에도. 필립 로스는 줄기차게, 지치지도 않고, 젊고 아름다운 여자를 꼬셔 씹을 하는노인네의 이야기를 또 다시 써냈다. (죽어가는 짐승은 2001년도 소설이다) 정말 존경스러울 정도의 정력이다. 아마도 필립 로스는 지금보다, 앞으로 더 자주 읽히게 되지 않을까. 바야흐로 전 세계적인 고령화 시대므로.

 

문학을 가르치는 예순 다섯 살 교수인 24살의 쿠바 태생의 제자 콘수엘라 카스티요를 카프카와 벨라스케스를 보여주는 체 꼬드겨 관계를 갖는다. 그러나 그는 곧장 괴로워한다. ‘젊은 남자가 아이를 발견하고 낚아채 가겠지라는 질투의 감정에 휩싸인다. 그는 예전의제자였던 캐럴린 라이언스와 양다리를 걸치고 있음에도.

 

교수가 자신의 졸업 파티에 불참했다는 이유로 콘수엘라는 메다 아스코 (토 나와요)”라는 말을 끝으로 교수와의 관계를 청산한다.

 

교수는 찬란한 가슴콘수엘라를 생각지 않고는 오줌을 누는 적이 없을 정도로 그녀를 그리워한다. 콘수엘라는 1년 반 만에 교수를 찾아온다. 유방암에 걸려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한 콘수엘라는 교수에게 자신의 벌거벗은 전신사진을 찍어 주길 부탁한다.

 

어느 날 교수는 자동응답기에서 콘수엘라의 목소리를 듣는다. 교수는 콘수엘라가 있는 병원으로 가려하지만 청자(독자인 우리로선 누구인지 특정할 수 없는, 후배 교수 조지일까? 혹은 그의 아들일까?)는 소설 마지막에 되어서야 단 한마디의 말을 한다.

가지 말라고. 가면 망하는 거라고.

 

후배 교수인 조지는 두 번 다시 콘수엘라를 찾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가 사랑에 빠지기 때문에. 조지에 따르면 사랑은 모든 사람들의 유일한 강박이고, 사랑은 사람들의 완전성에 금을 내 깨뜨린다.

 

과연 그는 콘수엘라를 찾아 갔을까?

 

 

필립 로스의 성에 대한 묘사는 익히 악명이 높다. 로스보다 우위에 선 작가는 부코우스키나 사드, 미셀 우엘벡 정도랄까. 그러나, 엄연히 이 소설은 노년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노년의 사랑을 에로스타나토스의 투쟁이라 해석해도 될까?

 

이 장르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잠자는 미녀>. ‘성욕은 있지만 정력은 없는노인 에구치는 잠자는 미녀의 집에서 알몸으로 잠든 여인들을 탐닉한다. (이 소설이 절판 중이라 아직 읽지 못했다.)

 











마르케스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잠자는 미녀>을 읽고서 이것이야말로 내가 쓰고 싶은 유일한 소설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을 썼다. 라틴문학의 거장답게 마르케스는 늙음 앞에서 지나가 버린 과거에 대한 회한이나 탄식보다는 삶에 대한 끊임없는 긍정, 사랑에 대한 찬가를 들려준다.

 









노인 문학한국 소설은 단연 박범신의 <은교>. <은교>를 읽고 나는 쓰레기 표절 작가가 10년 만에 작가가 되었다는 감상을 토로했는데..... 착각이었다. <은교>는 표절작이다. <은교>애 비하면 신경숙의 표절은 애들 낙서 수준이다.

 

박범신은 주로 일본 작가의 책을 베껴다 쓴다. 다른 작품을 다 확인해 볼 수도 없고 그럴 만한 가치도 없지만 (내 시간은 소중하다), <은교>는 주로 다자이 오사무를 베꼈다. 문장이 아니라 문단을 통째로 베꼈다. 왜 박범신의 표절에 대해선 쉬쉬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이 모든 소설들의 성취(?)에도 불구하고 노년의 사랑의 최고의 작품은 역시나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 죽다>가 아닐까. 탓치오를 향한 아센바흐의 다다를 길 없는 사랑을 생각할 때 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

 

아센바흐는 사랑하는 이를 만져보지도, 이름을 불러보지도 못한 채, 병에 걸릴 줄 알면서도 사랑하는 이를 보고 싶다는 열망 때문에 쓸쓸히 죽음을 감내한다.

 

후배 교수인 조지의 말처럼 사랑은 사람을 완전히 부셔버린다. 사랑은 자기분열이고 자아상실이다. 사랑에 의해 깨지지 않은 사람을 과연 완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랑하지 말아야 할 시기란 없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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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16-03-25 0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어가는 짐승도 사놓고 아직 못 읽고 있는 책들 중 하나입니다. 노년의 라이프 스타일에 관심을 가질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요즘에는 관심을 갖고 보고 있습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관심사가 저로서는 참 신기하고 재밌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ㅎㅎ

시이소오 2016-03-25 06:25   좋아요 0 | URL
저도 나이를 먹다보니 로스 책은 들여다보게 되네요^^

2016-03-25 0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25 06: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madhi(眞我) 2016-03-25 0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어도 좋아˝ 지요. 그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제목하나는 기막히게 잘 지었다 생각해요. 생물학적 나이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저 힘이(?) 딸릴 뿐. 언제나 마음은 청춘인 게 문제지요.

시이소오 2016-03-25 09:12   좋아요 0 | URL
ㅋㅋ 맞습니다 `죽어도 좋아` 제목 죽이죠 .^^

cyrus 2016-03-25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 묘사를 심하게 한 작가로는 아폴리네르도 있습니다. 아폴리네르는 사드의 문학적 후예입니다. 그가 쓴 포르노 소설이 많이 알려져 있어서 그렇지 성 묘사가 정말 대단합니다. 포르노 동영상을 보면서 그래도 문장으로 옮긴 듯한 기분이 듭니다. ^^;;

시이소오 2016-03-25 18:24   좋아요 0 | URL
아폴리네르가 소설을 쓴 지는 몰랐네요. 역쉬 사이러스님. 짱이지 말입니다^^

cyrus 2016-03-25 18:38   좋아요 0 | URL
소년 돈 주앙의 회상
http://blog.aladin.co.kr/haesung/7929549

일만 일천 개의 채찍
http://blog.aladin.co.kr/haesung/8104451


제가 쓴 글을 늘 부끄럽게 생각해서 다른 사람에게 링크 주소를 알리면서까지 읽어보라는 말을 잘 하지 않아요. 그래도 시이소오님이 궁금하실까 봐 제 글의 링크 주소를 알려드립니다.

아폴리네르가 시인으로 정식 데뷔하기 전에는 포르노 소설을 썼어요. 이 두 권의 작품이 <일만 일천 번의 채찍질>(출판사: 문학수첩)이라는 제목으로 묵여서 종이책이 나온 적이 있었지만, 절판되었습니다. 예문출판사의 ‘밤의 문학’ 시리즈로 다시 나왔는데, 내용이 너무 야해서 그런지 종이책으로 나오지 못한 상태입니다. 현재 전자책으로만 나와 있습니다.

시이소오 2016-03-25 18:38   좋아요 0 | URL
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