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투쟁 1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손화수 옮김 / 한길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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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는 별 세 개. 역자 때문에 할 수만 있다면 별 하나도 주고 싶지 않다.


제목 <나의 투쟁>은 세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 작가인 칼 오베가 독자에게 날리는 퍽 유둘째, 역자가 독자에게 날리는 또 한 번의 강렬한 퍽 유셋째, 독자인 우리가 역자와 벌여야 하는 와의 투쟁. 역자는 제목 <나의 투쟁>에서 점 하나를 지운’ ‘의 투쟁을 감행한다.

 

역자인 손화수 씨는 설마 어머니를 점 하나 지워 어미니로 부르지 않을까싶을 정도로 어미 를 사랑하신다. 지루해질까 싶으면 가끔씩 어미 로 끝내시는 센스.

 

소설 속 그 어떤 캐릭터도 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이가 많건 적건, 여자건 남자건, 귀를 뚫건 안 뚫었건 누구나 로 대화를 끝내야만 한다.

 

무슨 일이니

소년 칼 오베에게 던지는 오베 아버지의 첫 대화문은 일종의 전조였을까.

혹은 역자가 독자에게 보내는 은근한 암시?

 

노르웨이를 모르니 번역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다. 그러나, 인물의 성격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대화체 문장을 거의 로 끝내는 건 이 소설을 죽이겠다는 심산인가.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역자 소개를 찾아보니 역자는 1998년부터 노르웨이에 이주해 살고 있었다. 아마도 거의 20년 간 한국어를 쓸 일이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역자가 번역을 개차반으로 해놨어도 4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길사에는 일 하는 편집자가 없나.

 

비판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하실 분들도 계실 테니 예문을 살펴보기로 한다.

 

그런데 이불 밑에는 뭘 숨겨두었니?” - 30대 초반의 오베 아버지.

내 카세트를 만졌니?”, “내 방에서 뭘 하고 있었니

그럼 내 방에서 아무것도 안 할 수 없니?” - 18살의 오베의 형 윙베 (p25)

 

학무보 회의가 6시라고 했니?” , “너는 계속 여기 있을거니?” - 오베 아버지 (p79)

왜 진작 말하지 않았니?... 내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짐작이라도 할 수 있겠니?” - 오베 아버지 (P80)

 

그게 정말이니?”, “그래서 어떻게 되었니?”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거니?” - 오베 형 윙베

잘 놀다 왔니? ” - 오베 엄마

재밌게 잘 놀았니?” - 오베의 단짝 친구 얀 비에르의 아버지.

너희들 왔니?”, “언제 성탄절 방학식이 끝나니?”- 오베 할머니.

 

그래 좋다. 위의 예문은 연장자가 오베에게 말했기 때문에 로 번역했다고 하자.

그럼 오베와 친구들 사이는 어떨까? 참고로 10대의 오베는 양쪽 귀를 뚫고 밴드에서 드럼을 쳤다.

 

지금 뭐라고 했니?” - 리타에게 말하는 오베 (P101)

널 이렇게 찾아왔는데 기쁘지 않니?”, “시간당 얼마 받니?”, “혹시 날 좋아하니?”

오베에게 말하는 리네

그럼 우린 이제 헤어지는 거니? ” - 오베의 첫 여자친구 수잔네

더 좋은 방법이라도 있니?” - 오베 단짝친구 얀 비다르.

병 따개 있니, 양주 가져온 사람 있니?” - 오베

지금 뭐라고 했니?” - 오베가 짝사랑한 이레네

, 그러니?” -오베의 절친 페르

안녕, 오래 기다렸니?” - 오베가 사랑한 힌네

 

1부는 주로 오베의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이 주를 이룬다. 그저 누구나 겪었을만한 평범한 일상이다. 2부는 결혼하고 애를 낳고 작가가 된 어른 오베가 화자다. 2부는 오베 아버지의 죽음을 골자로 한다. 오배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으로 할머니 집에서 운명했다. 그리고 2부의 핵심내용은 청소. 오베와 윙베는 아버지 사망이후 몇 일간이나 아버지가 운명한 할머니 집을 청소한다. 그리고 끝이다.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된 오베와 윙베.

 

의 투쟁이후 역자는 2부에서 의 투쟁을 가미한다.

 

몇 시에요? 있었어요? 지금요? 누워요? 안 돼요? 알잖아요. 당신이에요. 고집을 피우고 있군요. 알고 있어요. 느껴져요? 느낄 수 있어요. 신기해요. 미안해요........“ - 오베 아내 린다.

 

소금은 어디 있나요?” - 오베

여기요” - 오베 형수 카리 안네

토리에는 어디 있나요?” - 오베

아직 자고 있어요.” - 형수

 

그런데 주전자는 어디 있나요?” - 윙베가 할머니에게

저기 있네요” - 오베가 윙베에게

커피는 어디 있나요? 찬장에 있어요?” - 윙베가 할머니에게

 

그렇다고 역자는 를 포기한 것도 아니다.

 

윙베는 어디 있니? 벌써 집으로 돌아갔니?” - 오베 할머니

 

이게 무슨 동화책인가.....?

 

역자는 현실과 유리된 번역으로

모든 등장인물을 의미와 내용도 없는꼭두각시로 만들어버렸다. 나이, 성별, 계급, 계층에 따라 대사의 톤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역자는 그런 언어의 뉘앙스들을 말살한다.

(역자는 번역의 히틀러가 되고 싶었던 건가요?)

 

역자는 <나의 투쟁>이 어떠한 문학 사조에도 포함되지 않고 어떠한 문학 이론으로도 정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피아노만 치시던 분이.....확실한가요?

 

<나의 투쟁>은 일본 사소설 형식을 차용한다. 그런데 단지 좀 길 뿐이다.

한마디로 <나의 투쟁>‘21세기 노르웨이 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다른 독자 분들은 어쩜 이리 관대한지. 만일 내가 이 책을 구매해서 읽었더라면

한길사에 리콜을 요구했을 것이다. <나의 투쟁> 2권 번역 역시 1권과 똑같은

손화수 씨 번역이라면 나는 이 책과 더 이상 투쟁하지 않겠다.

 

이해할 수 없는 옷으로 치장한 배우의 코디가 안티라면

이 책은 역자가 작가의 안티다.

 

밑줄 그은 문장

 

p296. 글을 쓴다는 것은 우리가 아는 것들을 그림자 속에서 꺼내오는 작업이다. 그게 바로 글쓰기다.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가 아니라 그곳자체다. 그것이 글쓰기의 장소이며 목적이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그곳으로 갈 수 있을까.

 

p313. 아우구스트 스트린드 베리는 교란적 정신 상태에서 하늘의 별은 벽에 난 구멍이라고 아주 깊고 진지하게 말한 적이 있다.

 

(P337~345는 작가의 예술론)

p337. “물리학은 세상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해석하고 정리해내는 한 방편에 불과할 뿐이다라는 니체의 말을 접하게 되면서 내 생각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는 카테고리라는 개념을 사용해 허구적이고 가공적인 세상의 가치를 재고 분석해왔다.”

 

p338. 상황이 이러다 보니, 당연히 세상은 우리를 중심으로 존재하며, 세상에는 밖으로 통하는 통로나 문이 없고, 심지어는 우리가 근친상간적인 협소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도 하기 마련이다. 실제로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고, 세상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우리가 이 세상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세상 밖을 뛰쳐나가고 싶은 욕구를 가끔 느끼는데, 어떤 때는 그 욕구가 너무 커서 통제가 불가능할 때가 있다.

 

나는 이 욕구의 동경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글을 쓴다. 글을 씀으로써 세상 밖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글을 씀으로써 나는 좌절한다. 미래를 찾아갈 수 없다는 것은 유토피아가 무의미하다는 말과 비슷하다. 문학은 항상 유토피아를 지향해왔다. 유토피아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면, 문학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말이 된다. 내가 시도했던 것은, 짐작건대 모든 작가가 한 번쯤은 시도해본 것이기도 하겠지만, 픽션으로 픽션과 맞서 싸우는 일이었다.

p390 조크 스터지스의 사진.

 

p501. 나는 아도르노를 읽으며 내면이 풍요로워짐을 느끼곤 했는데, 그건 내가 아도르노의 글을 이해해서가 아니라 내가 아도르노를 읽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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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ri 2016-03-06 07: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니니 거리니 내귀가 니글 ㅋ

시이소오 2016-03-06 09:24   좋아요 1 | URL
정말 읽는 내내 대화문은 니글 거려요^^

stella.K 2016-03-06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기준으로 보자면 저는 관대한 독자 중 한 사람인가 봅니다.ㅠㅋ
솔직히 전 그게 그렇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해 보지 못했거든요.
님의 글을 읽으니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는 이책의 최대의 난제는 재미가 없다는 거였습니다.
문체가 어려운 것도 아니고, 공교롭게도 저자의 연대와 제가 좀 비슷하거든요.
그래서 공감할 게 그래도 좀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지루하더군요. 뒤로 가면 어떨지...
전 단지 프로메테우스적 저자의 글 쓰기에 그저 박수만 보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서전이나 자전 소설에 관심이 많은데 우리나라에서 이런 식으로 쓰면 욕 먹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우리나라에선 편집자의 위상이 그다지 높지가 못한 것 같습니다.
아마 번역자 보다 못하며 어느 출판사의 한 부서에 속한 존재일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저 오탈자나 보는 정도가 아닐지?
외국에선 작가 보다 높은 권력과 위상을 갖는가 본데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작가가 자기 글을 편집자가 함부로 제단한다고 하면 난리 날 걸요?

시이소오 2016-03-06 17:54   좋아요 0 | URL
이책이 뭐가 그렇게 대단한건지 1권만 보고선 저도 잘 이해가 안가네요. 일종의 스캔들 문학이 아닐까 의심스럽기도 해요^^;

samadhi(眞我) 2016-03-06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어떡하죠. 평이 좋기도 하고 매력적인 북구 출신 작가이기도 하여 이 책 사두고 읽던 책 마저 읽고 읽어야지 하고 있었는데. 웬만해선 신간 안 사는데요. 두께도 어마어마한데 재미 마저 없으면 어떡한답니까. 게다가 번역에도 민감한 성격인데... 중고로 파는 것도 일이고 ㅠㅠ 시이소오님의 평을 일부러 다 읽지는 않았어요. 곧 읽을 책이니, 선입견 생길까봐. 에효~

시이소오 2016-03-06 17:56   좋아요 0 | URL
호평이 더 많아요. 읽고 판단해 보시는건 어떨지요? ^^;

samadhi(眞我) 2016-03-06 17:59   좋아요 0 | URL
그럼요, 읽을 거예요. 번역에 민감한 편이라 신경이 쓰일 것 같네요.

시이소오 2016-03-06 18:01   좋아요 0 | URL
대화문 말고는 괜찮습니다 ^^

samadhi(眞我) 2016-03-06 18:06   좋아요 0 | URL
대화체에서 더 잘 드러나는 법 아니겠습니까.
일단 읽어봐야죠.

시이소오 2016-03-06 18:09   좋아요 0 | URL
기대감을 버리고 읽으시면 더 재밌게 읽으실 수 있겠네요 ^^

cyrus 2016-03-06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장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직접 확인하고싶군요. 비슷한 문장 구조가 자주 나오면 인물 간의 대화 분위기가 영혼이 없는 로봇이 대화하는 듯한 느낌이 들 것 같아요.

시이소오 2016-03-06 17:58   좋아요 0 | URL
영혼없는 기계들의 대화같아요. 차라리 AI의 대화가 더 흥미진진할 것 같습니다^^

가을벚꽃 2016-03-06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많이 기대하고 있었는데... 역시 번역이 문제군요 ㅠㅠ 그래도 미리 문제점을 알고 접하면 실망이 덜 하겠죠?

시이소오 2016-03-06 22:17   좋아요 0 | URL
기대를 접고 읽으시면 더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거에요^^

아애 2016-03-06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문제가 있었군요. 사실 전 투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작가의, 번역자의, 독자의 투쟁. 그래서 눈가리개로 가리워진, 이 참으로 아픈, 투쟁의 삶을 잠시 직시할 수 있다는 생각, 혹은 착각을 잠시 해더랬습니다.

시이소오 2016-03-07 00:01   좋아요 0 | URL
저자는 아이들을 키우며 글을 쓰는 게 얼마나 힘든일인지를 토로하기 위해 투쟁이란 제목을 붙인 것 같습니다. 21세기에 글을 쓰는 것 자체가 투쟁이긴하죠^^

yamoo 2016-03-07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겁나 두껍던데....두깨보고 그냥 포기하게 되더군요.

대단하십니다!

시이소오 2016-03-07 17:52   좋아요 0 | URL
두께의 반은 오베가 가끔 훌쩍거리면서 청소만 합니다. 이건 프루스트랑 한판 해보자는거죠 ^^

:Dora 2017-06-30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 년도 더 전에 쓰셨네용. 저는 지금 읽는 중인데.. 이 분 영혼이 저랑 닮았는지 낱낱이 밝혀놓은 일상이 재미있네요. 문체나 번역 등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색다른 관점으로 보게해 주시니 땡큐에요^^ ☞노르웨이어로 읽는다면 어떨까요?

시이소오 2017-06-30 15:24   좋아요 1 | URL
노르웨이어로 읽고 리뷰 써주시면 감솨요 ㅎ

:Dora 2017-06-30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흘ㄹㄹㄹ한 삼십 년만 기다려주세용ㄹㄹ

시이소오 2017-06-30 17:06   좋아요 0 | URL
이천사십칠년 칠월 칠일을 마감일로 할까요? 기다리겠습니다 ㅎ

Falstaff 2019-01-12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책 나온지 한 3년 됐으니 이제 좀 슬슬 읽어볼까, 싶어서 구매 버튼 누르기 바로 전에 이 글을 봤습니다.
사이오님 때문에, 탓에, 덕분에 ,안 읽기로 했습니다. 무엇보다 역자가 20년 넘게 모국어를 떠나 있었다는 놀랍고 중요한 정보를 들어서요. 고맙습니다. ㅋㅋㅋ

시이소오 2019-01-12 11:20   좋아요 0 | URL
역대급 번역이었습니다. 폴스타프님의 세계문학 읽기는 여전하시군요. 놀라울 뿐입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건승하세요 ^^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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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요?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은 결코 짧은 분량은 아니지만, 그야말로 놀라운 소설임에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이보다 Hot 하고 Cool한 소설이 있다면 가르쳐 주세요. ‘도미니카 판 21세기식 <백년 동안의 고독>’이라고 할까요? 샐린져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그라스의 <양철북>, 존 어빙의 <가아프가 본 세상>같은 성장 소설을 재밌게 읽으신 분이라면 필독하시길 추천합니다.

 

푸쿠 아메리카누스, 흔히 푸쿠라고 부르는 그것은 대개 모종의 파멸이나, 저주를, 특히 신세계의 파멸과 저주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유럽인들이 이스파니올라(아이티와 도미니카가 있는 섬)에 오면서 이 푸쿠를 풀어놓았고 그 이후 도미니카는 염병할 저주속에 살아가고 있는데, 이 푸쿠는 트루히요와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작가는 묘사합니다. 트루히요가 누구냐구요? 1930년부터 무려 약 30년 동안 도미니카를 통치해온 독재자로서 우리 식으로 치자면 박정희와 전두환, 이명박을 다 섞어놓은 듯한 무시무시한 놈이죠.

 

JFK를 누가 죽였냐구요? 작가말로는 ‘‘염병할 마릴린 먼로의 유령도, 외계인도, KGB도 아니고’‘ 트루히요요 푸쿠였답니다. 그런 작가에게 있어서 푸쿠 넘버원이라 할만한 이야기가 오스카 와 오와 그의 가족이야기인거죠. 그러나, 푸쿠만 있는 건 아니라죠. 푸쿠에 대항할만한 역 주문이 있으니 그것은 사파. 작가의 삼촌은 불운이 들러붙을 틈을 주지 않기 위해, 24시간 사파를 중얼거린다고. 작가는 이 책이 일종의 사파가 되길 바란 듯 싶습니다.

 

오스카는 그의 엄마가 케 옴브레(저 마초 녀석좀 보게)”할 정도로 올가와 마릿사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쳤던 정상적인 도미니카 남자였으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마릿사의 협박에 눈물을 흘리며 올가를 버렸더니, ‘달을 하나님이 잊어버리고 닦아내지 않은 얼룩이라고 생각하는멍청한 넬슨 파드로(하느님이 곧 닦을거야)에게 마릿사를 빼앗기고 나서부터 그의 인생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하여 급기야 고등학교 2학년 때는 117kg 되는 꼴통 돼지가 되었음에도 눈에 띄는 모든 여자를 사랑하는 열렬한 포스를 그 몸무게 전체로 내뿜지만, 그 어떤 여자도 팔짱을 풀지 않았고, ‘메테셀로 전문가였던 삼촌 루돌포는 코헤 댓 페아 이 메테셀로!! (못생긴 계집애를 자빠뜨려서 그냥 거시기를 집어넣어!)”란 애정어린 충고에도 그저 누나 롤라의 열라 탐스런친구들을 꿈속에서 외계인으로부터 구출하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었죠.

 

졸업반이 되어서도 오스카의 몸무게는 더욱 늘어날 뿐이었고, 자신보다 괴짜라고 생각하는 그의 친구들(앨과 믹스)마저 여자친구가 생겼음에도 그는 여전히 혼자였을뿐더러, “걔들 다른 친구는 없냐란 절박한 질문에도 친구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없어라는 짤막한 대답을 듣고서야 오스카는 친구들마저 자신을 쪽팔려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거울을 쳐다보다 오스카는 엄마에게 나 못생겼어요?”라고 물어보지만, 엄마는 한숨을 쉬며 글쎄다, 날 안 닮은 건 확실하지란 위로 아닌 위로를 해 줄뿐이죠.

 

도미니카 부모들이란! 사랑할 수 밖에 없다니까!!”

 

그런 오스카에게도 엄연히 대화가능한 여인이 찾아왔으니 이름하여 아나 오브레곤, ‘생리중이라는 표현대신 돼지처럼 피가 철철 나라고 말하는 깜찍한 여자였으나, 그가 친구이상으로 발전해 볼려고 궁리할 때 즈음, 그녀의 마약중독자 애인이자 해부학적인 거대함을 지닌 매니가 돌아오자 아나는 큰 거시기에 굴복하여서 인지 그녀를 갈보라 부르며 두들겨 패는 것도 모잘라 중학생 여자애들과 바람 피우는 매니를 사랑한다니 오스카의 꿈은 또다시 그렇게 산산 조각이 나버리고 맙니다.

 

11부의 내용을 대충 말씀드렸는데요, 주노 디아스의 필력을 느끼실 수 있으셨는지요? 다른 장에선 오스카의 누이인 롤라가, 그의 엄마인 배티가, 그의 할아버지인 아벨라르가, 롤라의 남자 친구인 유니오르가 화자가 되어 오스카를 중심으로 한 3대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주노 디아스는 주목받은 단편집 이후 11년 만에 자신의 첫 장편을 세상에 내놨는데요, 퓰리쳐상등 많은 상을 통해 그 노력에 보답 받은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론 퓰리쳐 상을 탄 작품 중 최고의 작품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옮긴이의 말처럼 이 책은 엄청난 푸쿠인 트루히요가 등장함에도 궁극적으로 사랑에 관한 이야기인듯 싶습니다.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다가가 게임이라면 전 당신에게 카리스마 18을 줄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꼴통에게도 과연 사랑이 찾아올까요? 유니오르에게 도미니카 남자 중에 숫총각으로 죽은 사람은 없대....그게 사실일까 ?”라고 진지하게 묻는 오스카는 과연 숫총각 딱지를 떼고 진정한 사랑을 만날 수 있을 까요?

 

우리나라엔 이 푸쿠가 언제 들어온걸까요? 6,25때 미군을 통해? 아님 미친 소들을 통해? 그러나 걱정하지 마세요. 사파가 있으니까. 푸쿠로 점철된 오스카의 삶에도 사파는 찾아옵니다. 사랑을 얻기 위한 그의 골통 짓에 경악하기도 하지만, 그의 마지막 한 마디에 왈칵 눈물이 솟을 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말하는게 바로 이런 거로군! 젠장! 이렇게 늦게야 알다니, 이토록 아름다운 걸! 이 아름다움을!” 


-2010년 즈음에

주노 디아스의 신작이 나왔다니 반가운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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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ri 2016-03-05 08: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읽다말다 하던 책인데 읽어봐야겠네요.

시이소오 2016-03-05 08:28   좋아요 0 | URL
아, 전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강추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16-03-05 15:35   좋아요 1 | URL
저도 강추합니다^^

cyrus 2016-03-05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이소오님은 알라딘 블로그 말고도 다른 개인 블로그를 가지고 있는건가요? 시이소오님의 글 마지막 부분에 지나간 날짜가 적혀 있던데 알라딘 가입 전에도 꾸준히 글을 기록하신거군요. ^^

시이소오 2016-03-05 09:22   좋아요 0 | URL
네이버 하고 있구요. 2010년경에도 책 블로그 하다 망했던 적이 있습니다 ^^;

sb 2016-03-05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들어보는 작가군요. 두근두근!! 기회가 되면 읽어보겠습니다.^^

시이소오 2016-03-05 15:06   좋아요 0 | URL
주노 디아스 완전 사랑합니다
추천해서 실패한 적 없어요. 강추에요^^

고양이라디오 2016-03-05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네요. 저도 이 책 너무나 재미있고 감명깊게 읽었어요. 그리고 저도 제가 읽은 퓰리처상작품 들 중에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시이소오 2016-03-05 15:41   좋아요 1 | URL
공감해주시는 분이 계셔 저도 반갑네요. 게임이라면 카리스마19를 드리겠습니다 ^^

2016-03-06 1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퓰리쳐 중 최고라는 말씀에 감히 동의합니다. 와오! 이렇게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 삼십년 전 백년동안의고독이었을 거에요. 저도 강추입니다 ^^

시이소오 2016-03-06 17:47   좋아요 0 | URL
이렇게 재밌는 소설 흔하지 않은데요 ^^

ICE-9 2016-03-06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극적으로 사랑이야기라는 것에 저도 동의합니다. 시이소오님의 리뷰를 읽으니 제가 어디서 이 작품의 매력을 느꼈는지 더욱 선명해지는 것 같네요. 빈약한 제 메모리 사양을 타박하며 빨리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와, 추천 수도 어마어마하네요^^

시이소오 2016-03-06 23:46   좋아요 0 | URL
저도 워낙 오래전에 쓴 글이라 다시 한번 읽고 싶어졌어요^^
 
호모도미난스 - 지배하는 인간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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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플을 한지 이제 두 달 정도 되었을까. 북플을 하면서 화들짝 놀란 사실 하나.

 

10년 전 즈음 술자리에서 어느 여성분이 하루키를 좋아한다고 해서 하루키도 소설이냐고 빈정거리다 결국 그 여성분을 울려버린 적이 있었다. (아니, 그렇다고 울 것까지야)

 

이번에 북플을 통해 내가 가장 많이 읽은 소설가를 알게 됐다.

하루키였다. 17. 더 놀라운 건 아직도 내가 읽은 하루키 소설 중 절반 정도 밖에 체크가 안 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의 30. 고작해야 3,4권 읽었겠지 싶었는데. 어찌나 놀랐던지.

하루키가 무슨 만화가도 아니고.

 

(강신주는 하루키 소설을 포르노라고 하지 않았나. <1Q84>이후로 나는 더 이상 하루키 욕을 하지 않았다. 부끄럽게도 그렇게 재밌는 소설은 첨 봤다.)

 

지난달 장강명의 <호모도미난스>를 읽고 미처 리뷰를 쓰지 못했는데 <댓글부대>를 읽어 버렸다. 나는 장강명 소설이 싫다,....고 고백했었다. 그런데 왜 장강명 소설을 네 권이나 읽었을까. 생각해보니 세 권 읽은 소설가들은 얼추 되지만 네 권이나 읽은 한국 소설가는 편혜영 말고는 떠오르지 않는다.

 

장강명은 <호모도미난스>pc시절에 쓰다 중단했던 걸 다시 손봤다고 했다. ......그때 완결했어야 했다. 장용민의 <궁극의 아이>도 있고, 결정적으로 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도 나온 마당에 <호모도미난스><제노사이드> 아류작에 불과하다.

 

호모도미란스란 제목도 불편하다. 지배받은 인간들이 대부분인 현실에 지배하는 인간이 어떻게 미래의 진화한 인간 종을 지칭하는 단어가 될 수 있을까. 또한 제목 앞에 호모붙이는 거 너무 안일한 작명법 아닌가. 호모 사피엔스로서 부끄럽기 그지없다. 유발 하라리 책 제목을 상기해보자. <사피엔스>. 호모 빼는 추세거늘.

 

최준식, 지영해 교수의 <외계지성체의 방문과 인류종말의 문제에 관하여>에서 최준식 교수는 외계인들이 인간 의식을 조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외계인들은 물질과 비 물질의 상태로 변신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크리스토퍼 코흐는 인터넷도 의식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만일 그렇다면 다음 인류는 유기물과 무기물이 혼합된 상태에서 점차 무기물로 진화하다 아예 입자 상태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 파동으로서만 존재할지도 모른다. 에너지의 형태로.

 

그러니까 염력이 불가능하다고만 말할 순 없지 않을까.

<댓글부대>리뷰 쓰려다 엉뚱한 이야기만 늘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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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esar 2016-03-05 08: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

시이소오 2016-03-05 08:27   좋아요 2 | URL
앗, 아침 댓바람부터 댓글이라니요? 너무 감사하자놔요^^

caesar 2016-03-05 08:29   좋아요 1 | URL
혹시 이 말이 너무 가볍게 느껴질까봐 적지 않았는데, ˝재밌게˝ 읽었어요. ㅎㅎ 그래서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요^^

시이소오 2016-03-05 08:30   좋아요 2 | URL
재밌게 읽으셨다니 더 감사하자놔요 ^^

singri 2016-03-05 0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전 하루키 좋아하긴 하지만 울어버린 여자분이 좀 안타깝긴 하네요

시이소오 2016-03-05 08:34   좋아요 4 | URL
이후로 미안해서 술 많이 사 줬어요. 게다가 항상 엄지를 꼽으며 ˝하루키 최고˝라는 멘트도 잊지않고 했죠 ^^

꼬마요정 2016-03-05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하루키 별로.. 라고 생각하고 쳐다도 안 봤어요.. 아직도ㅠㅠ 상실의 시대 때 너무 실망해서요. 지인이 그거 빼고 다 좋아.. 라길래 읽어볼까 고민 중이랍니다. 근데 읽을 책이 넘 많아요 ㅎㅎ

시이소오 2016-03-05 11:24   좋아요 2 | URL
하루키 책이 웬만해선 재미없진 않죠. 막장드라마를 보는 심정이랄까요? 욕하면서도 보게 되는 ㅋㅋ

룰루라떼 2016-03-05 1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도 하루키랑 코드가 맞지 않다고
생각했는데..1Q84이후
쪼큼~달라졌어요^^하하!
전 처음에 그게 IQ84준 알고...
지 아이큐인가 ..했다는
모잘라는건 저인데^^
옛날 생각나서 즐겁네요
요 책도 함 읽어봐야겠어요^^
시이소오님 유쾌한 글 땡큐~입니다^^

시이소오 2016-03-05 11:58   좋아요 2 | URL
ㅋㅋ IQ84. 룰루라떼님 덕에 저도 유쾌해졌습니다. 땡큐~에요^^

박작가 2016-03-05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하루키 작품중...재즈관련책 빼고는 모두 재밌었어요..재즈이야기는 무슨말인지 공감이 안가더라구요 ㅠ

시이소오 2016-03-05 13:07   좋아요 2 | URL
전 째즈 몰라도 재밌던대요. ㅋ ^^;

박작가 2016-03-05 1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두 울리실라구 그러시는거죠...흑 ㅠ

시이소오 2016-03-05 13:11   좋아요 1 | URL
ㅋㅋ 재미없었던 것 같기도.....하네요^^

깊이에의강요 2016-03-05 14: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키는 왠지 손이 가지 않아요ㅠ

시이소오 2016-03-05 14:16   좋아요 2 | URL
그러시군요. 그럼 발을 사용해보시는건 .....죄송합니다. 바보같은 농담이네요^^;

깊이에의강요 2016-03-05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발...을^^;ㅋㅋ

시이소오 2016-03-05 14:26   좋아요 0 | URL
하루키 말고도 훌륭한 소설가들이 한 열 트럭 넘게 있을테니 계속 안 읽으셔도 ㅋ^^;

깊이에의강요 2016-03-05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딱 한권 읽고 (섣부르게도) 저는 ‘쩝’ 했습니다만..
누구나 한명쯤은 가지고 있다는 하루키에 반한 지인을 저 또한 가지고 있어서...ㅋ
호기심에.. 읽고 그 이유를 추적해 볼까 합니다ㅎㅎ

시이소오 2016-03-05 14:53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1Q84 추천이요 ^^

깊이에의강요 2016-03-05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양을 쫓는 모험을 사두었습니다ㅋ
감사^^

시이소오 2016-03-05 15:01   좋아요 0 | URL
리뷰 써 주세요. 하도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이 가물가물 하네요^^

yamoo 2016-03-07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키도 소설이냐...

이 정도의 수위....엔날에 어느 누군가로부터 들은적이 있지요. 혹해서 시이소오 님의 글을 따라가 본 결과는 예상과는 다르지만...엔날 생각이 새록 났습니다~

재미난 글 잘 읽었어요~^^

시이소오 2016-03-07 17:54   좋아요 0 | URL
이상한 글을 재밌게 읽어주셔 감사합니다^^

지니 2016-03-07 1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댓글들이 너무 재밌네요~
전 2000년도에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접하고 뭐...지? 다른 소설들과 또 다른 묘한 하루키 만에 뭔가가 있달까~ 자꾸 궁금해서 읽다 보니 어느새 하루키 마니아가 되었더군요. 하루키는 호불호가 넘 확실해서 남에게 잘 안 권해요. 제 주변에도 하루키 때문에 싸운 남녀가 있었거든요~^^.
아는동생한테 해변의 카프카 권해줬다가 한쳅터 읽고 전화 오고 또 한쳅터 읽고 전화 오고 설명해주다 지쳐서 그냥 읽지 말라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ㅋ

시이소오 2016-03-07 18:29   좋아요 2 | URL
ㅋㅋㅋ 하루키가 여러 사람 울리는군요. 하루키는 불화의 여신 이리스의 환생이 아닐까요?
 
아주 보통의 연애
백영옥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이동진의 <밤은 책이다>를 읽고 가장 끌렸던 소설 중의 하나다. 장편이라 예상했었는데 단편집이었다. 재밌는 단편들이 여럿 있지만 역시나 표제작인 <아주 보통의 연애>가 가장 눈에 띈다. 몇 개의 숫자와 몇 개의 단어로 한 인간의 삶을 투명하게 보여 줄 수 있을까? 그렇다. <아주 보통의 연애>는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도 세상을 바라 볼 수 있음을 증거 한다고 할까? ‘기이한 미니멀리즘의 세계다.


한 장의 영수증에는 한 인간의 소우주가 담겨 있다.

취향이라는 이름의 정제된 일상

흡연처럼 고치지 못한 악습들.

....그리고 연말 정산이라는 이름의 집단적인 자기반성.

이렇게 많이?”

부인하기도 하고,

이런 델 왜?”

의아해하기도 하며,

아직도!”

육만오천원씩 꼬박꼬박 빠져나가는 육 개월 할부의 잔해를 보며

실패한 연애를 한탄한다.

.......영수증은 우리가 토해낸 일상을 투명하게 반영한다.

몇 개의 숫자, 몇 개의 단어로.

 

인생이 쓸데없이 길어지는 걸 비웃는,

기이한 미니멀리즘의 세계.


주인공은 잡지사 관리팀에서 일하며 직원들의 영수증을 처리한다. 영수증의 숫자와 단어들은 침묵 속에서 말한다. 주인공은 영수증을 통해 누가 알코올 중독자인지 누가 불륜에 빠졌는지를 알 수 있다. 그녀는 <모드>의 패션팀 수석 이정우를 짝사랑한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인생의 도돌이표와 같은 이정우의 영수증을 모은다. 그녀는 거의 5년 치, 서른 두 권의 영수증으로 이루어진 비밀 일기장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언제쯤 그녀는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게 될까?

 

<청첩장 살인사건>의 주인공은 청첩장 쇼핑몰을 운영한다. 청첩장을 디자인하고 수 백 가지의 모시는 글을 만들어내지만 정작 그는 결혼식에 모셔지지않는다. 비록 아무도 그를 초대하지 않지만 그는 자신 고객의 결혼식에 참석해 가족 사진을 찍는다.

 

굳이 마르크스를 불러내지 않더라도 백영옥의 단편 속에 주인공들은 자신의 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일은 행위자를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감춘다.

 

영수증을 통해 타인의 삶을 알 수 있다하더라도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넌 그냥 형용사야 독립된 명사가 될 수 없지. 당연히 동사도 될 수 없어. 넌 섹스나 키스도 책으로 배워야 하는 사람이니까. 살아서 뜨거운 피가 도는 인간이라는 종에 대해 애정이 있긴 한거야? 사랑과 질투를 구별하는 건, 편집자로서 중요한 자질이야. 넌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질투하는 거야. 네가 쓰지 못한 내 책을 질투하는 거지.

<강묘희 미용실, >

 

백영옥의 소설들의 등장인물들은 형용사에 불과하다. ‘겨우 겨우라고 말해왔지만 한 번도 희망 비슷한 것을 포기한 적은 없었다.’고 말하는 화자처럼 등장인물들은 언젠가는 독립된 명사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2014. 8. 20 작성. 백영옥의 새로운 소설을 반기는 마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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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권력

 

슬픔의 노래, 정찬


 

한국 소설 중 나만의 ‘3부작이 있다. <슬픔의 노래>, <얼음의 집>, <> 모두 한 작가의 작품이다. 우연이다. 우리 사회에서 인생은 생잔(生殘, 살아남기’), 권력은 폭력, 슬픔은 실패를 의미한다. 이런 현실에서 폭력과 권력 탐구를 짊어지는 작가는 흔치 않다. 어쨌든 정찬같은 캐릭터의 지식인이 많아야 한다고 절실히 주장한다.

 

내가 이해하는 정치신학자정찬의 주제는, 권력과 폭력 앞에 선 인간의 선택이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그들의 모습은 작가를 통해 예술과 신학의 이유가 된다. 그는 권력과 폭력을 비판하거나 혐오하기보다, 사유한다.

 

<얼음의 집>의 주인공은 고문 기술자다. 그는 사정에 버금가는 쾌감이라는 권력 행사를 자제하면서, 진실(자백)을 만들어내는 임무를 수행한다. 쾌락을 통제하는 것,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 어떤 인간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20여 년간 가정 폭력 상담을 하면서 열 대를 때릴 수 있는데 여덟 대에서 멈추는 남자를 만난 적이 없다.

 

정찬의 주인공들은 타인의 신체적 고통으로부터 획득되는 권력의 전능함을 알고 있다. 권력의 경험을 사유하는 그들은 기술자가 아니라 예술가’. 최소한 방황하는 영혼이다. <슬픔의 노래>에 등장하는 ‘80년 광주가해자의 보개. “칼이 몸속으로 파고들 때 칼날을 통해 생명의 경련이 손안 가득 들어오지요.......생명의 모든 에너지가 압축된 움직임. .......한 인간의 생명이 이 작은 손안에 쥐어져 있다는 것이죠.......그것은 상상할 수 없는 쾌감입니다.” 이후 그는 죄의식의 갑옷을 벗는 배우가 되었다.

 

정찬의 작품을 읽을 땐 머리와 심장의 분간이 사라진다. 독자의 몸은 무간 지옥에 빠진다. 작가가 먼저 부서져 강이 된 까닭이다.정말 사족. 박정희 체제의 공과를 논할 때 공은 경제 성장, 과는 인권 탄압이라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고문은 정권의 흠이 아니다. 통치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리바이어던, 토머스 홉스.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인간 해방에 국가가 어떤 의미를 지니며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매뉴얼수준의 규범과 철학을 제시한다. 홉스는 중세가 저물고 원자화된 개인의 개념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대에 살았으며, 정신도 미세한 물질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유물론자였다.

 

그는 자연상태에서는 남녀가 평등하다고 믿었다. 그의 관심사는 자연 상태가 어떻게 가부장제 사회가 되었는가였다. 홉스가 분석한 원인은 이기적인 남성들의 집단적 동의에 의한 시민법의 일종인 결혼법때문이다. 자연 상태가 국가의 탄생과 시민사회로 넘어오면서 결혼 제도를 통해 여성은 개인이었다가 개인의 여자로 강등되었다. 성차는 당위가 아니라 인위적 제도라는 것이다.

 

홉스에게 결혼은 여성을 인간의 범주에서 제외시킨 결정적 사건이었으므로 개인 간 범죄의 경중을 비교할 때 기혼녀의 정조 유린은 미혼녀의 그것보다 더 큰 범죄다.”

 

천자문, 주홍사


 

내가 읽은 책 중 최고의 라스트신이 <천자문>일 줄이야. 역시 고전은 고전이다. <천자문>의 마지막 문장은 위어조자 언재호야이다. “뜻은 없지만 말을 잇는 조사가 있는데, ()은 앞 문장을 가리켜 이에’ ‘여기에서라는 뜻이다. ()와 재()는 탄식할 때, 의심할 때 혹은 반어적으로 사용한다. ()는 대개 끝내는 말(~이다)로 쓴다.


위어조자 언재호야’ 996자를 알아도 마지막 네 글자 조사를 모르면 글을 쓸 수 없다. 문장의 성립은 조사로만 가능하니, 문장은 결국 조사의 기술이다. 글자와 조사의 관계를 실과 바늘, 나사와 볼트처럼 짝 개념으로 볼 수도 있다. 둘의 위치는 동등하고 불가분이다. 하나가 없으면 나머지도 소용없다.

 

그러나 이들은 동등하지 않다. 사실은 조사가 더 우월하다. 글자들의 관계, 즉 문장의 내용을 결정하는 것은 뜻이 있는 글자가 아니라 뜻이 없는 글자, 조사다. 무의미는 모든 의미다. 뜻의 무게를 진 자는 사용이 한정되지만, 조사는 자유로운 영혼이면서 문자를 배치하고 지배한다. 의미(권력)없음이 의미를 통제하는 것이다.

 

실은 좋은 글귀 색거한처 침묵적요(한가한 곳을 찾아 사니 조용하다) - 말고 갖고 싶은 문장이 있었다.

 ‘탐독완시 우목낭상’ “돈 없이 책방에 가도, 한 번 읽으면 머릿속에 책 내용이 다 들어온다.”

 

극단의 시대, 에릭 홉스봄, 무솔리니가 집권하자 기차가 정시에 도착했다.


 

내가 평소 좋아하는 글귀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사랑(관계)은 아무나 하나, 그 누가 쉽다고 했나.”이고 하나는 이 글 제목이다. 전자는 인간을, 후자는 세상을 요약한다. 고민의 순간마다 상기되면서 할 말을 잃게 하는 매혹이 있다. 이 매혹의 정체는 인간()의 무능과 이중성.

 

원래는 무솔리니가 기차를 정시에 달리게 했다”(Mussolini made the trains run on time)인데, 내가 조금 고쳤다.

 

에릭 홉스봄은 당대를 대표하는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라이벌에드워드 톰슨(영국 노동계급의 형성)과 함께 영국 지성의 자부심이다. 원제는 ‘1914 ~1991’이라고 시기가 표기되어 있다. 자본주의가 지구를 목 죄기 시작한 1990년대까지 포함했다면 저자는 극단의 시대를 넘어 종말론의 시대를 분석해야 했을 것이다. 20세기 들어 인류는 7천 년에서 8천 년 걸릴 변화는 70여 년 동안 겪었다. 옮긴이의 전언대로, 이 책은 “20세기의 자서전이다.

 

무솔리니가 집권하자 기차가 정시에 도착했다.” 히틀러의 스승이자 변절한 사회주의 언론인 베니토 무솔리니가 파시즘의 우월성을 시위하기 위해 만든 프로파간다였다. 이는 실제가 아니라 담론의 효과였다. 이탈리아 기차는 이미 잘 달렸고, 무솔리니 집권 후에도 기차는 시간표대로 정확히 운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파시즘을 향한 대중의 지지는 질서의 효능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현행 주폭단속이 좋은 예다. 싹쓸이! 질서(order)는 글자 뜻 그대로 대중의 주문이자 지배자의 명령이다. 통치자의 입장에서는 편리하고, 나만 희생자가 아니라면 대중은 기차가 정시에 도착하리라는 환상에 동의한다.

 

군대를 버린 나라, 아다치 리키야, 평화의 근원은 빈곤과 고립

 

전쟁과 평화. 이 두 단어가 늘 붙어 다니는 이유는 둘 다 뜻이 모호하기 때문이 아닐까. 같이 써놓으면 인식 가능할 것이라는 착각. “전쟁은 안개와 같다카를 폰 클라우제비츠가 시작해서 로버트 맥나마라가 답한 전쟁의 의미다. 불확실하고 부정확한 정보 때문에 그 추이나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뜻이다. 전쟁도 모르겠는데 평화는 얼마나 알기 어렵겠는가.

 

이 글의 제목은 저자가 코스타리카 여행 중 외교부 직원에게 들은 말이다. 빈곤과 고립이 평화의 비밀이라니! 코스타리카는 실질적, 합법적으로 군대가 없는 지구상 유일한 국가다.

 

모든 국민이 군대가 없다는 삿길에 자부심을 품고 있으며 환경, 인권, 평화 선진국의 정책과 이미지를 전 세계에 선전하여 이를 방위력과 외교력으로 전환시켰다. 군대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침략당할 가능성이 적다.

 

미국과 북한만 외국이 아니다. 지구상에는 다양한 사회가 있다. 책이 전하는 몇 가지 감동. 코스타리가 교도소에는 담장이 없다. ‘탈출 가능한 철조망은 있다. 교도 행정의 목표는 수감자가 자신에게 어떤 권리가 있는지 알게 하는 것이다. 갱생의 첫걸음은 자기 인식, 자기 평가, 자기 긍정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재범률은 20%에 불과하다. 보험료를 못 낸 사람이나 불법체류자도 국립병원에서 무료로 치료해준다.

 

군주론, 마키아벨리. 사랑과 외경 중 어느 것이 나은가.


 

박근혜 대통령이 시장에서 감자를 사면서 냄새를 맡는 사진은 정치적, 미학적 충격이었다. 나는 대통령들의 채소류에 대한 무지와 무시에 분노한다. 먹을거리는 민생의 기본이다.

 

냄새를 맡고 구입하는 식자재는 거의 없다. 생선조차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런데 흙 묻은 감자를 코에 바짝 대고 과일 향기를 맡는 듯 포즈를 취한 여자 대통령의 모습은 그로테스크하다. 대통령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여성스러운 포즈의 진부함과 오브제의 야릇한 부조화는 비/웃음을 생산했다.

 

군주가 국민에게 사랑받은 것과 외경 받은 것 중 어느 것이 나은가마키아벨리는 둘 다 겸비하면 좋겠지만 이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므로, 택일한다면 외경의 대상이 되는 편이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군주론>의 요약이자 유명한 구절이다.

 

감자의 향기는 사랑도 두려움의 대상도 아닌 웃음거리, 트러블 메이커, 국민을 당황스럽게 하는 지도자를 연상시킨다. 클린터의 섹스중독이나 부시 2세의 무식, “왜 나만 미워해!”라고 투정 부리면서 갑자기 사임한 후쿠다 전 일본 총리......이들은 바람직한 군주와 거리가 먼 것이 아니라 군주에서 논외인 경우다.

 

폭군 정치는 당연히 저항을 불러온다. 그러니,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다.’ 나는 국민과 다른 세상에서 사는,

현실에서 탈구된, 감자의 향기를 연출하는 여성 리더십이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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