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초 : 한 남자 사랑의 기초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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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이건 소설이다. 그러나, 소설이라기보단 에세이에 가깝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기 보단 <불안>,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같은 보통의 에세이를 떠올리게 한다. 보통 역시 이 작품을 일반적인 소설로 고려하진 않은 것 같다. 이 작품을 소설로 읽는다면 이보다 더 밋밋한 플롯의 소설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한마디로 완벽한 17년 만의 실패작이다.(보통의 17년 만의 소설) 이 작품을 구제하려면 우리는 사랑의 기초를 소설을 빙자한 에세이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결혼이 낭만적 사랑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알기 위해서 - 정이현의 주장과는 달리- 굳이 이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이보다 식상한 주제는 상상하기조차 힘들 정도다. 아무런 기대없이 보통의 문장을 둘러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에로티시즘이란 결국 벌거벗은 몸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를 욕망하고 있다는 심리적 기대감에서 비롯되는데, 어쩌면 스키복과 모자로 꽁꽁 싸매고 나란히 리프트에 앉아 산기슭을 오르는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p22

 

정신분석은 이에 대해 가혹하지만 타당한 의견들을 내놓았다. 우리가 사랑에서 기대하는 것은 행복이라기보단 친밀함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단순하게 그 자체로 좋은 것보다는 평범한 것을 더 선호한다. 왜냐하면 우리들 대부분은 이상적인 방식으로 양육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p56

 

조금 과장하자면, 우리가 자본주의로 알고 있는 것은 부르주아가 발명했거나 적어도 그들의 강력한 옹호와 지지 덕분에 발전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실천하고 있는 낭만적 사랑도 부르주아의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관습은 서로 공생관계에 있다. 자본주의의 스트레스를 견디기 위해 우리는 낭만적 사랑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다. p65

 

이 달콤한 삶. 그리고 배후에서 전개되는 어른의 고달픈 삶. 그 둘의 대비를 인식할 때면 벤의 눈가는 축축해졌다. 동화 속 악당이 못된 짓을 그만두거나, 버릇없던 어린 주인공이 엄마를 다시 만나게 되는 장면에선 목놓아 울고 싶어졌다. <정글북>을 읽어주다 말고 황급히 방밖으로 나와야 했던 적도 있었다. 그가 눈물나는 이유는 슬퍼서가 아니었다. 세상의 아주 많은 것들이 아름답지도 순수하지도 않건만, 유년기에 속한 어떤 특별한 것들은 너무나 아름답고 순수하기 때문이었다. p81

 

예전엔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을 집중해서 읽는 게 어렵지 않았다. 체호프와 경쟁할 만한 거라곤 골목길을 따라 이십 분 걸어가서 나누는 이웃과의 수다가 유일했으니까. 하지만 델 컴퓨터의 모니터 창을 두 개로 나눠서 한쪽에는 치어리더 사진을 띄워놓고 다른 창으로는 MSN 메신저로 스물다섯 살의 날씬한 뮌헨 아가씨와 미네소타에 사는 십대 풋내기 레즈비언 행세를 하며 실시간 채팅도 가능한 시대에 체호프든 다른 어떤 문학작품이든 간에 읽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다. P 101

 

그가 원하는 것을 섹스라고 기술하는 것은 벤의 흥분 상태의 근원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다. 베키는 섹스에 해당하는 고대영어 단어 알다와 완전한 동의어였고, 본질적으로 어울렸다. , 그녀는 알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여인이었다. 그는 그녀의 허벅지와 발목, 그리고 목덜미를 알고 싶었다. 그녀의 옷장, 책장에 꽂힌 책들, 샤워를 마친 그녀의 머리카락 냄새를 알고 싶었다. 어린 소녀였을 땐 어떤 성격이었는지, 친구들과 나누는 비밀 얘기는 뭔지 전부 다 알고 싶었다. P117

 

지금까지 보아온 대로, 현대의 결혼은 섹스, 사랑, 가족이라는 세 가지 욕구를 조화시킬 수 있는 무대로 정의되었다. 그러나 사실 이들은 각각 다른 것들에 위협이 되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와 섹스하는 능력을 위태롭게 한다. 특별히 사랑하진 않지만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누군가와 섹스하는 것은 사랑하지만 더 이상 흥분되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를 위태롭게 한다. 아이를 갖는 것은 사랑과 섹스 모두를 위태롭게 한다. 그리고 사랑과 섹스에만 몰두하는 것은 다음 세대의 육체와 정신의 안녕을 위태롭게 한다. P139

 

통상적인 시각에서 약간 비켜나면, 외도 자체가 죄는 아니다. 외도가 거부감을 주는 이유는 그 부조리한 천친난만함, 그 속에 담긴 희망, 그것의 감상주의 때문이다. , 그것에 깃든 낭만성이 거슬리는 것이다. P 140

 

벤은 극적인 운명을 원했다. 그런데 자신이 이미 그런 운명을 가졌음을 이제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을 잘 지켜내는 것, 온전한 정신상태와 생활할 수 있는 경제력을 유지하고, 결혼생활에서 살아남고, 아이들이 잘되는 것. 이런 계획들은 노르웨이 시인의 서사시만큼이나 영웅이 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제공한다.

 

한때 그는 용기를 다르게 상상했다. 어렸을 적 그는 용을 잡고 사막을 가로지르는 행군을 그렸었다. 지금 그는 새로운 그림을 가졌다. 진정한 용기는 불안에 시달린다고 쉽사리 파괴되지 않는 것이다. 상대의 약한 모습에 좌절하여 상처주지 않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을 자신과 똑같이 상처받은 사람들로 보는 것이다. 자신과 같은 죄에 오염되었다고 아이를 비난하지 않는 것이다. 미치거나 자살하지 않는 것이다.

 

지극히 평범한 삶이라는 엄청나게 어려운 과제를 그럭저럭 계속해나가는 단순한 일. 이것이 진짜 용기이며 영웅주의다. 헬리콥터 안에서의 짧은 순간, 그리고 그 뒤로도 가끔씩 우리의 영웅 벤은 이 과제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P165

 

보통은 평범한 삶을 견뎌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라고 결론짓는다

현명한 대답이긴 하나 시시하거나 거짓처럼 들린다.

 

사랑의 기초를 읽으며 나는 엉뚱하게도 소설의 몰락을 생각한다. 디킨스의 소설을 읽기 위해 항구에 몰려든 19세기의 독자들에겐 배트맨도 슈퍼맨도 아이언맨도 없었다. LA 다저스도 없었고 첼시도 없었다. 심지어 포르노도 없었다. 현대 소설은 TV, 영화, 인터넷, 페이스북, 트위터, 온갖 종류의 게임, 스포츠, 포르노와 대결해야 한다.

 

도서관은 어느새 소설책들의 납골당이 된지 오래다.

그나마 읽히는 소설들은 말초적일 수밖에 없다. 섹스나 살인, 낭만적 사랑을 다루지 않는 소설은 대부분 읽히지 않는다.


예술은 자본주의와 불가분의 관계다. 현대 미술 역시 쓰레기들만이 잘 팔린다. 이런 상황에서 문학은 언제까지 순문학을 고집할 것인가? 올해 출판계에서 한국 문학은 거의 아사상태다. 한국 소설가들은 분명 다른 나라 작가들보다 진정성이 느껴지는 좋은 소설을 쓴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아무도 읽으려 하지 않는다. 순문학을 읽을 수 있을만한 독자층도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감소할 것이다. 소설 좀 읽는다는 나 조차도 도서관에 꽂힌 한국 소설들을 둘러보면 꽂히는 작품이 없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 2015. 5. 17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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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6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범한 삶을 견뎌내는 것이 진짜 용기라는 결론은 저 역시 시시하면서 거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불순하기까지 하고.

그닥 재미 없는 농담이지만 보통은 정말 보통이네요.

시이소오 2016-02-16 16:21   좋아요 0 | URL
저는 그래도 보통은 보통이상이라고 생각해요^^

시이소오 2016-02-16 16:32   좋아요 0 | URL
그냥 보통의 농담으로 ㅋ^^

2016-02-16 1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재미 없는 농담쯤으로... ^^

깊이에의강요 2016-02-16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ㅠ
나는 많이 읽는 사람이라 생각...아니, 상상했습니다ㅋ


시이소오 2016-02-16 17:19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게 상상 아니 착각했어어요 ^^;

깊이에의강요 2016-02-16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착각 아니신데요ㅡㅡ
저는 모래정도인지
먼지 정도인지...
가늠이...

시이소오 2016-02-16 17:37   좋아요 0 | URL
아직 청춘이시잖아요? 저는 살 날이 얼마 안 남았어요. 대략 ......50년?! 음 .....희망사항이네요 ^^;;

서니데이 2016-02-16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이소오님 ,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시이소오 2016-02-16 18:25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도요^^
댓글저장
 

※※ 경고문 ※※ 본 페이퍼에는 얼어붙은 감성을 산산조각 낼 숱한 명시들이 즐비하나 

핸드폰 북플 이용시 손가락 골절이 우려되므로 컴퓨터로 읽으실것을 권고드리며 

아예 본 페이퍼를 패스하시고 책을 사서 읽으시는 방법을 추천드립니다. ^^



저런, 그래도 들어오셨네요.   

손가락에 행운을 !! 

 


p40. 김지하의 시는 한국에서는 판매 금지를 당했지만, 일본에서는 널리 읽히고 있었다. 그의 수많은 시, 특히 <타는 목마름으로>를 나는 그야말로 목이 말라 애타는 사람처럼 되풀이해서 읽고 또 읽었다.

 

타는 목마름으로 김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는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라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이 시는 내게 폴 엘뤼아르가 대독 레지스탕스를 노래한 시<자유>를 연상하게 했다.

 

 

조국의 시인들 가운데 특히 김수영에게 친밀감을 느낀 것은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 역시 경력으로 보아 디아스포라적인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 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중략)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중략)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역사 박일호 (서경식 선생님이 고등학교 3학년 때 자비 출판한 시집에서의 필명)

 

여기는 일본

현해탄 너머 나라를 사랑하려는

나의 슬픔을

이 나라 사람들은 모른다

 

지금 이땅에서

흙이니 물이니 하늘이니 구름,

흑은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처럼

나는 조국을 사랑할 순 없다

 

나에겐

조국을 이야기할 언어가 없다

나에겐

조국을 느낄 살갗이 없다

 

하지만 나는 언제가 들었다

동양의 진창에서 피를 흘려가며 부르던

혼잣말처럼 나직한, 그러나 사라지지 않을

조상들의 노래

 

들이밀어진 칼날 앞에서

짓밟힌 군화 아래서

태어나 노래하는

내 아버지들 내 어머니들

 

어둠속을 걷는 수많은

유민들처럼

눈물을 흘리면서 묵묵히

여기까지 온 조국의 역사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나의 이 슬픔의 근원

남의 땅 일본에 나를 태어나게 한

고통스런 역사를 고통스런......

 

오늘도 내 밖에 있는 나의 조국을

사랑하고자 몸부림치는 것이다 사랑하고 싶어서

이제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 이런 슬픔은

이렇게 고통스런 역사는

 

그러니 살고 싶은 것이다

역사의 진창 속에 있어

이 슬픈 역사를 응시하면서

응시하면서 살고 싶은 것이다

 

p117. 일본 지배 아래 있던 1909, ‘조선민적령이 발령되었다. ‘민적이란 호적의 전신이다. 새로 일본의 지배하에 들어간 수많은 조선인을 모두 파악하기 위해 민적을 만들어 등록한 것이다. 당시를 경험한 시인 한용운은 <당신을 보았습니다>라는 시를 남겼다.

 

당신을 보았습니다 한용운

 

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가 없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은 거지는 인격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

너를 도와주는 것은 죄악이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돌아 나올 때에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여 민적이 없습니다.

민적이 없는 자는 인권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거 무슨 정조냐하고

능욕하려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를 항거한 뒤에 남에게 대한 격분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화하는 찰나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아아 온갖 윤리, 도덕, 법률은 칼과 황금을 제사지내는 연기인 줄을 알았습니다.

영원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 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설일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p121. 이때 조선 반도 내에서 평화적인 독립운동을 이어갈 수 없게 된 이들이 중국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만들어 항일독립투쟁을 계속했다. 1932년에 도쿄 사쿠라다몬에서 천황에게 폭탄을 던진 이봉창이나 중국 상하이의 홍커우 공원에서 일본군과 정부 요인에게 폭탄을 던진 윤봉길도 그 일원이었다. 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현재 한국의 국가적 정통성의 원류로 여겨진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간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끄을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게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갑부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마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손에 호미를 쥐여 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팔목이 시도록 매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스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잡혔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p129. 윤동주는 어쩌면 일본에서 가장 잘 알려진 조선 시인일지도 모른다. 시집이나 평전도 나와 있고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가 그에 대해 쓴 에세이가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별 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 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 ,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게외다.

 

p132. 8개월간에 이르는 가혹한 취조 끝에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로 이송되었고, 결국 그곳에서 옥사했다. 19452월의 일이다. 반년 후면 일본이 패전하고 그도 석방되었을 것을. 시 속의 부끄러운 이름이란 창씨개명을 가리키는 것이라 여겨진다.

 

p133. 한때 수상이었던 아소 타로는 아소 재벌가의 도련님인데, 전쟁 중엔 아소 재벌이 소유하는 탄광에 수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끌려와 있었다. 아소 씨는 창씨개명은 조선인들이 원해서 한 일이다. 기뻐하는 사람도 있었다라는 발언을 자민당 총재 시절에 했는데, 일본 국민 다수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아소는 한국으로 부터도 재일조선인에게도 항의를 받았지만, 일본 사회에서는 그다지 문제시되지 않고 넘어갔다.

 

그때까지 창시개명을 거부해오던 윤동주 일가는 그 때문에 몹시 고심했지만 끝내 어쩔 수 없이 히라누마라는 창씨명을 갖게 되었다. 현재도 도시샤 대학에 남아 있는 윤동주의 학적부에는 히라누마 동주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고통과 고뇌와 굴욕으로 점철된 기록이다.

 

p135. 서시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p140. 이번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여당 쪽, 즉 김지하 자신을 비롯하여 민주화 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던 독재자의 딸을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민주주의는 무자가한 채로 단말마의 시기를 맞이하고, 한국에서는 일찍이 타는 목마름으로라고 노래했던 시인이 스스로 자신의 시를 배반하는 비참한 꼴을 드러내고 있다.

 

p142. 겨울 공화국 양성우

 

여보게 우리들의 논과 밭이 눈을 뜨면서

뜨겁게 뜨겁게 숨 쉬는 것을 보았는가

여보게 우리들의 논과 밭이 가라앉으며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으면서

불끈불끈 주먹을 쥐고

으드득 으드득 이빨을 가로 헛웃음을

껄껄껄 웃어대거나 웃다가 새하얗게 까무라쳐서

한꺼번에 한꺼번에 죽어가는 것을

보았는가

 

총과 칼로 사납게 윽박지르고

논과 밭에 자라나는 우리들의 뜻을

군화발로 지근지근 짓밟아대고

밟아대며 조상들을 비웃어대는

지금은 겨울인가

한밤중인가

 

(중략)

 

삼천리는 여전히 살기 좋은가

삼천리는 여전히 비단 같은가

거짓말이다 거짓말이다

날마다 우리들은 모른 체하고

다소곳이 거짓말에 귀기울이며

뼈 가르는 채찍을 견뎌내야 하는

노예다 머슴이다 허수아비다

 

(중략)

 

여보게 화약 냄새 풍기는 겨울 벌판에

잡초라도 한 줌씩 돋아나야 할 걸세

 

이런 때면 모두들 눈물을 닦고,

한강도 무등산도 말하게 하고,

산새도 한번쯤 말하게 하고

여보게

우리들이 만약 게으르기 때문에,

서른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가도

끝내 못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한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처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서른, 잔치는 끝났다 최영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p151. 돌 정희성

 

돌을 손에 쥔다

고독하다는 건 단단하다는 것

법보다 굳고

혁명보다 차가운

돌을 손에 쥐고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불과하다는

시를 보며 돌을 쥔다

배고프지, 내 사람아

어서 돌을 쥐어라

입술을 깨물며

손에 돌을 쥐고

청청한 하늘을 보며 내 사람아

돌밖에 쥘 것이 없어

돌을 손에 쥔다.

 

세상이 달라졌다 정희성

 

세상이 달라졌다

저항은 영원히 우리들의 몫인줄 알았는데

이제는 가진 자들이 저항을 하고 있다

세상이 많이 달라져서

저항은 어떤 이들에겐 밥이 되었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권력이 되었지만

우리 같은 얼간이들은 저항마저 빼앗겼다

세상은 확실히 달라졌다

이제는 벗들도 말수가 적어졌고

개들이 뼈다귀를 물고 나무 그늘로 사라진

뜨거운 여름 낮의 한때처럼

세상은 한결 고요해졌다

 

p153. 그러나 폭압적인 시대현실이 나를 고전적인 안온함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게 가만 놓아두지 않았다. (중략) 유신에 반대하던 나의 벗들은 직장에서 쫓겨나고 감옥에 갇힌 바 되었다. 마침내 나는 고전적인 시인이 되기를 포기하고 현실적인 시인이 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중략) 시인은 자기 시대의 사람들을 숨 막히게 하는 산소 결핍 징후를 남보다 먼저 감지하고, 아무도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해야 하며 모든 사람이 침묵할 때에도 침묵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 나도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였다.

 

이것은 마지막에 소개한 정희성이 자신의 시를 돌아보며 쓴 문장 <시를 찾아나서며>에서 인용한 것이다.

 

p155. “상처 입고 소외된 사람들은 정희성의 말이다. 한국에서도 상처 입고 소외된 사람들과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하는 것이 시인에게 부과된 커다란 과제다. 1970년대, 1980년대 같은 피투성이 잔치는 끝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인은 지금 눈앞에 있는 현실을 노래할 방법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물론 옛날과 같은 자락으로 같은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 지금 이 상황 속에서 소외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노래해야만 한다. 그것이 시인의 소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도 똑같다.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이 사회에 소외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상, 시인의 일은 끝나지 않는다. 지금 이 시대가 시인들에게 새로운 노래를 요구하고 있다.

 

 

p270. 하지만 수업 마지막에, 아시가키 린의 <산다는 것>을 소개했더니, 그때까지 무표정하던 학생 하나가 반응을 보였다.

눈물 날 것 같아. 이거 내 얘기예요......”

모든 것을 픽션화해왔던 젊은이가 시의 힘으로 처음 생명을 실감하는 순간.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산다는 것 이시가키 린

 

안 먹고는 살 수가 없다.

밥을

푸성귀를

고기를

공기를

빛을

물을

부모를

형제를

스승을

돈도 마음도

안 먹고는 살아 남을 수 없었다.

부풀어 오른 배를 안고

입을 닦으면

주방에 널려 있는

당근 꼬리

닭 뼈다귀

아버지 창자

마흔 살 해질녘

내 눈에 처음으로 넘치는 짐승의 눈물.

 

p277. ‘시의 힘이란 시적 상상력을 가리킨다. 루쉰에게 있어 서정시 형태의 정치적 태도 결정(나카노 시게하루)” 역시 그러한 상상력이 가져온 것이다.

 

문학이 저항의 무기로서 유효한지 의심스럽다. 내가 쓰는 것을 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지는 더욱 의심스럽다. 그럼에도 이런 책을 내려는 이유는 본문에서 루쉰의 말을 빌렸듯, “걸어가면 길이 되기때문이다. 아직 걸을 수 있는 동안은 걷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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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아의서재 2016-02-16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읽느라고 정말 한참을......^^

시이소오 2016-02-16 09:41   좋아요 0 | URL
아, 죄송해요. 경고문을 붙일까 한참 고민하다 그냥 올렸네요.
고생하셨습니다. ^^;;

새아의서재 2016-02-16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읽는건 읽으면 되지만 ˝복붙˝이 아니라면 글올리신 시이소오님이 몇배 더 고생.. 김수영씨 읽으면서 잠깐이나마 뜨거워져서 좋았습니다. 지금은 좀 뜨거워져도 좋은 시대, 지않습니까.

시이소오 2016-02-16 09:50   좋아요 0 | URL
달걀부인님의 댓글을 보고 바로 경고문을 띄웠습니다. ㅋ
김수영 <고궁을 나오며>는 마치 제 얘기 같아요.


새아의서재 2016-02-16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가락관절우려되는 ㅣ오호!

시이소오 2016-02-16 09:54   좋아요 0 | URL
손가락 골절이요. ^^

깜장앨리스 2016-02-16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올리시느라 힘드셨겠어요. ^^
잘 읽었습니다.

시이소오 2016-02-16 16:14   좋아요 1 | URL
긴 글 읽으시느라 고생하셨네요 ^^
댓글저장
 
시의 힘 - 절망의 시대, 시는 어떻게 인간을 구원하는가
서경식 지음, 서은혜 옮김 / 현암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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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a Japanese”

 

일본의 어느 중학교 교실, 모든 학생들이 선생님의 아이엠어 재피니즈를 따라 할 때

유독 한 소년만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뭐시여, 왜 안 따라 혀? 개기는 거여, 시방?”

 

선생님이 소년을 다그치자 소년은 우물우물 말했다.

 

저는..... 조선인....인데요.”

 

안아주고 등을 토닥이고 싶었던 이 소년은 어느덧 예순을 훌쩍 넘겼으니

<소년의 눈물>의 저자 서경식 선생님이다.

(위의 상황은 약간의 윤색을 했으니 너그러이 이해해주세요 ^^)

 

<시의 힘>은 저자의 강연과 에세이들 중에 문학과 관련된 글들을 추려 엮은 책이다. 책을 통해 저자는 오에 겐자부로의 <읽는 인간>처럼 자신이 어떤 책을 읽어왔고, 어떤 작가들에게 영향을 받았는지를 회고한다. 오에 문학 출발점이 <허클베리 핀>이었다면 저자의 경우엔 라이너 마리아 릴케였다.

 

이것이 나의 투쟁이다.

천만 줄기 뿌리를 뻗어, 저 멀리 인생 밖으로 성장해가는 것이.

저 멀리, 세상 밖으로.

 

이외에도 프란츠 파농, 폴 니장, 에드워드 사이드, 루쉰, 나카노 시게하루, 프리모 레비 등등

 

고등학교 축제 때 자신의 시집을 직접 팔았을 만큼 시에 열정을 보였던 저자는 청년시절 주로 한국 시인들의 시에 영향을 받는다. 김지하, 신동엽, 신경림, 양성우, 고은, 한용운, 윤동주, 이상화, 김수영, 박노해, 정해성 등등. 특히나 그는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을 애타게 읽었다.

(어린 시절 그에게 영웅 같았던 김지하가 도살자의 딸을 지지하는 걸 보고 그 역시 꽤나 충격을 받았다)

 

한국에 독립투사들이 있었다면 일본에도 침략 전쟁을 반대한 열사들이 있었다. 고바야시 다키지. 일본의 대표적인 프롤레타리아 작가로 일본 경찰의 고문에 의해 죽었다. 그의 죽음을 애도한 대표적 인물이 중국의 국민작가인 루쉰이다.

 

30년 동안 나는 많은 젊은이들의 피를 목도했다. 그 피들은 켜켜이 쌓여 숨도 못 쉴 만큼 나를 매장했다. 나는 그저 붓과 먹만으로 몇 줄의 글을 쓸 수 있을 뿐이며 그것은 진흙 속에 조그마한 구멍을 내고 목숨을 부지하고자 거기서 계속 헐떡이려고 하는 바와 같다. 어떤 세상인가? 밤은 길고, 길은 멀다. 차라리 망각이 나을지도 모른다. 잊어버리고 말하지 않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령 내가 아니더라도 언젠가 반드시 그들을 기억하여 다시 그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임을 나는 안다......

 

그리고 나카노 시게하루는 루쉰의 글에 감동을 받는다.

 

생각해보니 희망이란 본시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거였다. 이는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시 땅위엔 길이 없다. 걷는 이가 많아지면 거기가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나카노 시게하루는 루쉰의 정치와 문학의 결합을

서정시 형태의 정치적 태도 결정이라 명명했다.

 

나도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어떤 일이 있어도 올바른 인간이 되어야지, 하는 것 이상으로 (중략) 일신의 이해, 이기라는 것을 떨쳐버리고, 압박이나 곤란, 음모가들의 간계를 만나더라도 그것을 견뎌내며 어디까지나 나아가자, 고립되고 포위당하더라도 싸우자, 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그곳으로 간다.

 

<시의 힘>이란 제목은 나카노 시게하루로부터 연유한 것이다.

 

생각하면 이것이 시의 힘이다. 말하자면 승산 유무를 넘어선 곳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다.

 

그러한 시는 차곡차곡 겹쳐 쌓인 패배의 역사 속에서 태어나서 끊임없이 패자에게 힘을 준다. 승산 유무로 따지자면 소수자는 언제나 패한다. 효율성이니 유효성이라는 것으로는 자본에 진다. 기술이 없는 인간은 기술이 있는 인간에게 진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원리로서 인간은 이러해야 한다거나, 이럴 수가 있다거나, 이렇게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며, 그것이 사람을 움직인다. 그것이 시의 작용이다.

 

 

프리모 레비의 시를 읽은 저자는 이것은 후쿠시마를 노래한 시가 아닐까하고 생각했다. 프리모 레비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을 읽고 내가 이것은 세월호가 아닌가하고 생각했던 것처럼.

 

저자는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를 쓸 만큼 레비의 삶과 제노사이드 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책에 실린 일본의 레비 연구 일인자인 다케야마 히로히데의 말에 무릎을 쳤다.


프리모 레비와 프랑클은 같은 강제수용소에 있었지만 문제의식은 전혀 달랐다. 프랑클은 강제수용소에서의 인간의 정신적 변화에 흥미를 느꼈다. 하지만 그는 강제노동 끝에 쇠약해져서 죽음에 이르는 일반적 억류자, 즉 레비가 말하는 익사하는 자의 변화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어떻게 강제수용소에서 살아가는가, 극한의 생존 상황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정신을 고양시킬 수 있는가에 주안점을 둔다. 그는 고통받는 것의 의미에 관해 생각한다.

 

가혹하기 짝이 없는 외적 조건이 인간의 내적 성장을 부추기는 일이 있다그리고 외면적으로는 파탄되고, 죽음마저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있어서조차, 인간으로서의 숭고함에 이르는것과 통한다. (중략) 여기서 프랑클은, 아우슈비츠를 만들어낸 이유를 묻기보다는, 그런 곳에서의 극한상황이 어떻게 인간의 정신을 고양하는가 하는 점을 중시한다. 그리고 희생이 되는 것에는 깊은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는 다른 곳에서는 순교자라는 단어까지 사용한다.


프랑클은 극한 상황을 어떻게 하면 극복할 것인가에 관심을 두었던 반면 레비는 내가 왜 이런 극한 상황에 처해있는지 그 시스템 자체를 문제시 삼았다. 과연 누가 옳았던 것일까?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장 아메리, 브루노 베텔하임, 프리모 레비, 말년엔 결국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었다. 온전히 살아남은 이는 프랑클밖에 없다. 그렇다면 과연 프랑클이 옳았던 것일까.

 

프랑클은 감동적으로 소비되었으나, 저자의 말처럼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을 막는 데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프랑클의 순교자라는 표현에 베텔하임은 이렇게 말했다.

 

나치 희생자들을 순교자라고 부름으로써, 우리는 그들의 운명을 속이는 것이다. (중략) 그들이 자신의 신앙을 버리더라도, 단 한 사람도 죽음을 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기독교로 개종한 자도 무신론자들이나 깊은 종교심을 지닌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가스실로 보내졌다.

 

그리하는 것은 그들의 것일 수 있는 마지막 인식을 그들에게서 빼앗는 것이며, 그들에게 부여할 수 있는 마지막 존엄을 부정하는 것이고, 그들의 죽음이 무엇이었는지 직시하며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는 일이다. 우리는 이러한 왜곡이 우리에게 가져다줄지도 모르는 하찮은 심리적 해방감을 위해 그들의 죽음을 미화해서는 안 된다.

 

베텔하임의 지적에 따르면, 프랑클의 저서는 그 처절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고통에는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는 감동적결말에 의해 오히려 독자에게 거짓 위로와 해방감을 주고, 방어적 부인과 억압에 도움을 준다고 할 수 있다.

 

빅터 프랑클의 <죽음의 수용소를 찾아서>는 분명 감동적인 책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타인의 고통을 소비함으로써 우리가 거짓 위로를 받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성찰해 봐야 하지 않을까.

 

국가주의에 물든 한국인들은 대개 국민과 국가를 동일시하는 오류를 저지른다. 특히나 꾸준한 독서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잘못된 범주화 오류를 저지르기 쉽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국민은 하나의 가족이라거나 피를 나눈 우리와 같은 식으로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가족관계나 혈연관계에 비유하는 것은, 구성원 각자의 자발적인 참가를 전제로 해야 할 사회 조직을 마치 운명 공동체인 양 묘사하여 구성원들을 권력관계로 묶어둘 위험을 내포한다. 그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가족이라는 것이 각 개인에 의해 구성되는 사회적 단위라는 사실을 새삼 인식해야만 한다.

 

일찍이 니체는 국가는 훔친 이빨로 물어뜯는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국가는 나를 대표하지 않는다. 루쉰이 자신들을 침략한 일본의 국민들에게 친구라는 표현을 썼듯 우리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친구로 받아들여야 한다. 일본인이나 중국인이라고 해서 다르겠는가. , 국가의 수장들과 기득권자들의 악랄하고 비열한 행태에 침묵해서도 안 될 일이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모국일지언정.

 

얼마 전 우리 박근혜 각하께서 노동자들을 자르기 쉽게 해달라고 서명을 받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저건 박정희 유신시절, 장준하가 주도한 유신 철폐 백만인 서명운동을 보고 따라 한 것일까?’

 

각하를 따라 대기업 임원들도 길거리로 나와 서명을 받았다지.

시인 정희성의 시처럼 이제 가진 자들이 저항을 하고 있다니!!

 

 

저자의 마지막 말에 울컥하였다.

 

시의 힘이란 시적 상상력을 가리킨다. 루쉰에게 있어 서정시 형태의 정치적 태도 결정(나카노 시게하루)” 역시 그러한 상상력이 가져온 것이다.

 

문학이 저항의 무기로서 유효한지 의심스럽다. 내가 쓰는 것을 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지는 더욱 의심스럽다. 그럼에도 이런 책을 내려는 이유는 본문에서 루쉰의 말을 빌렸듯, “걸어가면 길이 되기때문이다. 아직 걸을 수 있는 동안은 걷는 수밖에.

 

나 역시, 다짐해본다.

 

 

걸을 수 있는 동안 걸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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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2-16 0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빅터 프랑클의 책은 많이 알려진 반면에 프리모 레비는 아직까진 대중에게 폭넓게 알려지지 않았어요. 레비는 진짜 서중석 선생, 디아스포라에 관심 많은 독자들이 잘 알지, 보통의 독자는 잘 모를 겁니다.

시이소오 2016-02-16 09:37   좋아요 0 | URL
레비 전도사가 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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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살아 있는 자의 의무 - 지그문트 바우만 인터뷰 궁리 공동선 총서 2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인디고 연구소 기획 / 궁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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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최근 인문 서적을 읽다보면 압도적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저자는 지그문트 바우만이다. 그의 <리퀴드 러브>를 읽고선 참담한 기분이었는데 그가 희망을 말할 줄이야! 이 책은 바우만의 인터뷰를 담았다. 의외였다. 감동을 기대한 것도 위안 받고자 한 것도 아니었는데. 생계를 고민하며 살아야 하는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푼돈을 받고자 비굴하게 영혼을 팔며. 고작 이렇게 살려고 태어난 건가. 그만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을 읽고서 엄청난 힘을 느꼈다. 이 책은 바다에 띄운 편지.

 

나는 쓰레기이자 벌거벗은 생명이고 난민이며 프레카리아트다. ‘프레카리아트인 나는 언제나 불안정하다. 바우만의 글은 비관적이기보다는 냉정하다. 기존의 가치들은 무너졌다. 새로운 가치는 도래하지 않았다. 이런 공위의 시대에 그는 여전히 희망을 말한다.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라 의미없음이다. 따라서 우리는 의미를 찾아내야만 한다. 그것이 우리의 소명이다. 닿을 수 있는 미래를 향해 우리는 희망해야만 한다.

 

그래서 좋은 사회에 대한 저의 정의는 아주 간단합니다. 좋은 사회란 자신이 속한 사회가 결코 현재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입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실패나 패배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가 사라집니다. 우리는 늘 이런 실패의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만 하죠. 또한 이것은 희망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성공에 대한 보장없이도 우리는 무언가 희망해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희망하기를 멈출 때, 우울한 기운과 불길한 예감이 당신을 덮칠 것입니다. 그렇기에 희망을 잃지 않는 것만이 우리 삶에서 가능한 최상의 조건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희망을 잃지 않고 끝없이 시도하기를 멈추지 않을 때, 모든 것은 괜찮아질 겁니다.

 

그는 힘닿는 데까지 지치지 말고 계속 하라고 말한다. 계속 하세요. 계속 시도하고, 또 시도하세요.” 그는 낙관주의도 비관주의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희망하는 자들이란 제 3의 길을 제시한다.

 

저는 여기에 제 3의 부류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희망하는 자들이 그것입니다. 지금과는 다른 대안적인 세계가 가능하다고 희망하는 자들이죠. 저는 새로운 세계가 불가능해지는 지점은 오직 우리가 희망하기를 멈출 때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멈추지 않는 한, 우리는 오랫동안 희망해 온 것들에 분명 도달할 수 있을 겁니다.

 

왜일까. 2차 세계 대전 전, 무명작가의 말이 심금을 울린다.

모든 것이 끝장났다. 진정한 작가였다면 전쟁을 막을 수 있어야 했다.”

 

윗 문장을 읽고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그와 동시에 한국의 지식인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진정한 지식인이 있었다면 세월호 학살을 막을 수 있어야 했다. 그들은 스스로 속죄할 갈망이 눈곱만큼이라도 있는가.

카네티의 선언처럼, “말로 표현될 수 있는 모든 것에 책임을 지려는 의지와 또 말의 어떠한 실패에 대해서도 자기 스스로 속죄하려고 하는 갈망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위의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카네티는 이렇게 결론내립니다. “오늘날 진정한 작가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바로 진정한 작가가 되도록 간절히 바라야 한다.”고 말이지요.

 

지그문트 바우만이란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이 책을 통해 형용하기 힘든 힘을 얻었다.

정신에 힘줄이 불끈 불끈 솟았다고나 할까. (물론 내 육체는 물렁물렁하다.)

 

숨 쉬는 한, 나는 희망한다.Dum spiro spero”


-2015. 8.11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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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2-15 1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우만이 사회학 분야에서 대세인 건 인정하는데, 우리말 번역이 불만스러워요. 어떤 책은 번역체가 이상해서 읽다가 말았어요.

시이소오 2016-02-15 17:37   좋아요 1 | URL
번역이 아쉬울 때가 많죠 ^^;; 번역가들 처우도 워낙 안 좋아서 뭐라 말도 못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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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 있는 사람
이병률 지음 / 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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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세상은 정말 불공평하다여행하면서도 먹고 살뿐만 아니라 섬세한 시인이고

베스트셀러 작가에 심지어 잘 생기기까지.

게다가 착하기까지!!

(사진을 못 찍는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구도가 영..... )


재수 없어서 책을 대충 흘겨봤다.


뭐 자기한테만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나!’


의심을 가득 담아 시비 걸 대목을 찾아 문장을 꼬치꼬치 쫓아갔다.

지하철 역사에 책을 몰래 갖다 두는 걸 보고 살짝 미안해졌는데

시인이 한 번 스친 일본 사세보에서 태어난 노인 장례식에 참석한 일화를 읽다가 포기했다.

미워하는 것도 쉽지가 않다.


어느 책이었더라.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화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요

이 책은 시인이 여행 중에 만난 내 옆에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앞이건 옆이건 뒤건 중요하지 않다.

잠깐.... ‘지금 내 뒤에 있는 사람이요는 좀 이상할라나)


여행조차 허락되지 않는 현실

잠깐 동안의 꿈에 젖는다.



나의 계절은 아직 겨울이어서.


밑줄 그은 문장 


p. 인생에 겉돌지 않겠다는 다짐은 눈빛을 살아나게 한다.


무구한 눈빛은 사람을 사로잡는다그 눈빛과 마주하는 순간 살고 싶어서 일순간 발바닥에 힘이 들어가기도 한다그 눈빛이 내가 잃은 지 오래된 것이기도 하고 그 눈빛으로 내가 씻겨지는 기분마저 들기도 해서 마치 좋은 바람 앞에 서 있는 것만 같은 것이다.

커피를 맛있게 내리는 사람은 커피콩을 갈고 뜨거운 물로 커피를 내리는 동안 그 옆을 떠나지 않는다좋은 눈빛으로 주시하고 집중한다그런 사람이 내주는 커피는 이미 마시기도 전에 맛있다는 생각을 머릿속 가득 채워준다어떻게 보면 그 좋은 눈빛이 커피에 닿아서일 거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우리는.


p. 다시는 이런 시간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요.


시 한 편을 낭송하는 시간이었다한 사람이 시 낭송을 마치고 울컥하였다

나중에 왜 울컥했어요라고 물으니 그가 말했다다시는 이런 시간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요.


p. 이 말들은 누구의 가슴에서 시작됐을까


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단풍 이야기다단풍이 말이다계속해서 남쪽으로 남쪽으로 물들어가는 속도가 사람이 걷는 속도하고 똑같단다낮밤으로 사람이 걸어 도착하는 속도와 단풍이 남쪽으로 물들어 내려가는 속도가 일치한단다.


어떻고 어떤 계산법으로 헤아리는 수도 있다는데 도대체 이런 말은 누가 낳아가지고 이 가을집 바깥으로 나올 때마다 문득문득 나뭇가지들을 올려보게 한단 말인가말과 말 사이에 호흡이 배어 있는 것 같은 이 말은이 근거는 누구의 가슴에서 시작됐을까.


또하나의 믿을 수 없는 것은 식물의 이름에 관련되어 있다백리향이라는 풀의 이름에도 그만한 쉼표와 호흡이 장치되어 있다백리향은 낮게 자라는 나무의 일종으로 주로 높은 산에서 볼 수 있는데이 식물의 향은 가을 풀 향 중에서 단연 으뜸이다단지 식물 냄새만이 아닌 동물적인 냄새까지도 포함하고 있는데다 진하고 또 강렬하여 늦은 밤 책상에 앉은 사람마음이 허전한 사람,종일토록 기력이 없는 사람사는 것이 지옥 같아서 자꾸만 먼 데만 보는 사람을 자극하는 데 직방이다백리향도 발 끝에 붙은 향기가 백 리를 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p. 만약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거든.


만약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거든.

많이 먹지 말고 속을 조금 비워두라.

잠깐의 창백한 시간을 두라.

혼자 있고 싶었던 때가 있었음을 분명히 기억하라.

어쩌면 그 사람이 누군가를 마음에 둘 수도 있음을,

그리고 둘 가운데 한 사람이

사랑의 이사를 떠나갈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라.

다 말하지 말고 비밀 하나쯤은 남겨 간직하라.

그가 없는 빈집 앞을 서성거려보라.

우리의 만남을 생의 몇 번 안 되는 짧은 면회라고 생각하라.

그 사람으로 채워진 행복을

다시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함으로써 되갚으라.

외로움은 무게지만 사랑은 부피라는 진실 앞에서 실험을 완성하라.

이 사람이 아니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예감과 함께 맡아지는

운명의 냄새를 모른 체하지 마라.

함께 마시는 커피와 함께 먹는 케이크가

이 사람과 함께가 아니라면 이런 맛이 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만날 때마다 선물 상자를 열 듯 그 사람을 만나라.

만약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거든.


p. 봄이 왔는데 당신이 가네요


동백이 피었는데요

봄이 가네요

내 마음이 피었는데

조금만 머물다 봄이 가려고 하네요

나에게도 글씨가 찾아와서

이제는 편지를 쓸 수 있게 됐는데

봄이 왔는데요

당신이 가네요


(글씨를 배운지 얼마 안 되신 할머니의 시가 이 정도라니,

왠지 눈물이 난다.)


비록 증명사진 크기이긴 했지만 서로의 사진이 붙은 수험표를 편지로 교환해 나눠 갖기도 했던 그 어느 봄날의 기운이 묵직하게 내 가슴 한쪽께에 맺히는 것 같았다한번은 내가 나가지 않았고 또 한번은 그녀가 나오지 않아 싱겁고 싱겁게 어긋났던 두 번의 기회를 떠올렸다.


p. 아무도 모르는 사이거의 모든 일들이.


시간의 시침과 분침의 끝은 지금도 우리를 향하고 있습니다우리를 겨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지켜주기 위해서입니다.


p. 이토록 서서히 퍼지는 광채


좋아하는 술 가운데 마음을 전한다라는 뜻을 가진 전심이라는 술이 있다이 술은 어떤 맛이 나는가 하면 일단 첫맛에서 이러면 안 되지하는 맛이 난다.


p. 사랑은 어디로부터 왔을까.


점선처럼 만나 실선처럼 하루를 보냈습니다.

엄마는 하지 못했지만 너는 사랑을 하라고어떻게든 사랑이 나를 밟고 지나가지 않으면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게 되며 모르게 될 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그 어떤 엉킨 선도 풀어나갈 힘이 없는거라고.


p. 잊지 못한다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길고 먼 여행이 끝나고 나는 정신을 차리지도 못했으면서 정신을 차린 사람처럼 자를 사서 모으기 시작했네나라는 사람은 30센티에 불과하다고 평소에 생각했었으니까. 30센티 자 막대기를 볼 때마다 내 한도와 내 한계를 그것에 걸어보면 정신이 들까 하는 거였어자에는 1밀리미터의 눈금만 표시되어 있지사람이 눈으로 쉽게 볼 수 있는 최소한의 거리일 걸세한데 자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나는 30센티는커녕 그 1밀리미터의 간격을 표시하는 두 칸의 작은 눈금 사이에 웅크린 채 살고 있었네. 30센티 자 안의300개의 눈금그 사이 고작 두 칸만이 인생의 전부이자 내가 사랑한 전부라고 믿었던 거였네.


1밀리미터에서 시작되어 백 미터를 넘어 몇 킬로를 넘어 몇만 킬로까지 이어지는 눈금의 행진들그 눈금들이 촘촘히 만들어내는 마음 안의 파도들파도를 멈추게 할 힘이 있는가그럴 수 없어서 사랑이지 않겠는가.


p. 지금 어느 계절을 살고 있습니까.


대뜸 어린아이가 그리움이 뭐냐고 나에게 물은 적 있었다그때 나는 그리움은 눈 같은 것이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이해되었다는 듯 확신에 찬 얼굴로 그럼그리움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예요?”라고 돌아온 아이의 질문에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으니 나는 쓸데없는 고집이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사람에게도 저마다 계절이 도착하고 계절이 떠나기도 한다나에게는 가을이 왔는데 당신은 봄을 벗어나는 중일 수도 있다나는 이제 사랑이 시작됐는데 당신이 이미 사랑을 끝내버린 것처럼.


그러니 당신은 지금 어떤 계절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지금 어떤 계절을 어떻게 살고 있다고 술술 답하는 상태에 있으면 좋겠다적어도 계절은 지금 우리가 어디에 와 있는지를어디를 살고 있는지를 조금 많이 알게 해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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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02-15 0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비 붙는 볼거리를 놓쳐서 아쉽지만 (농담) 포기가 참 아름다웁군요~ ^^

시이소오 2016-02-15 08:33   좋아요 2 | URL
애초에 아름다운 사람한테 시비걸어 자빠뜨리겠다는 심보가 고약했던거죠 ㅋ ^^

2016-02-15 0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2-15 09:13   좋아요 0 | URL
글도 잘 쓰더라구요. ^^

깊이에의강요 2016-02-15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위의 어떤이가 아름답게 늙어야지 그래야지...
입에 달고 살아서
그이 몰래 입을 삐죽거렸던 적이 있습니다.
젊은 너도 아름답지 않거늘 늙어서는 말해 무엇하겠냐고...
이병률은 제가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아름답게 늙어 가고 있는 사람 같습니다.
젊어서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시이소오 2016-02-15 10:32   좋아요 0 | URL
아름다운 여성 독자분이 이러시면 저는 이병률이 도로 미워집니다. ^^ ;;

깊이에의강요 2016-02-15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질투는 나의 힘 ㅎㅎ^^

시이소오 2016-02-15 14:14   좋아요 1 | URL
이 경우엔 힘이 돼지 않아요. 질투와 질타만 남아요
`모래야, 나는 얼만큼 작은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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