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집 - 불굴의 인간 토니 주트의 회고록
토니 주트 지음, 배현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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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토니 주트의 대표작이라 말할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열쇠 책이다. 즉 토니 주트라는 세계를 열어젖힐 수 있는 key. <기억의 집>은 루게릭 병에 걸린 말년의 그가 자신의 삶을 담담히 회고한 유고작이다. 런던 태생이었으나 유대인이었던 주트는 젊은 시절 이스라엘 키부츠 농장으로 가 청년 시온주의 단체에서 무급으로 일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곳의 유대인들을 보고 경악했다. 유대인들은 패전한 아랍인들을 잔혹하게 대했고 자신들이 아랍 땅을 점령하고 지배할 거라는 기대에 들떠 있었다. 그러한 경험을 통해 일찌감치 그는 마르크수스의는 물론이고 마오주의, 극좌주의, 3세계주의 등 당시 유행하는 그 어떤 이데올로기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시온주의와의 결별이후 그는 보편적 사민주의자의 길로 나아갔다.

 

자신을 영국인으로도 유대인으로 규정짓지 않은 그는 주트는 뉴요커였다- 자신에게 유대인의 피가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역사에 책임감을 느낀다. (한국은 일본에 사죄를 요구하기 이전에 필리핀에 먼저 사죄해야 한다. 역사적 낭만화라고 해야 할까? <국제시장>에서 묘사된 것처럼 우리는 필리핀 사람들의 구원자가 아니었다. 살인자. 박정희가 그러하듯 도살자였다.)유대인을 학살했다는 죄악 외에 히틀러의 또 다른 죄를 추가하자면 갈가리 찢겨있던 시온주의를 공고히 했다는 것이다. 젠장, 히틀러이전 유대인들은 그 누구도 시온주의를 원하지 않았거늘.

 

오늘날 유대인은 히틀러만큼이나 잔혹한 만행을 스스럼없이 일삼는다.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여자와 어린 아이들의 배를 가른다. 오늘날 종교는 신이 고안했다기보다는 악마가 고안한 것처럼 보인다. 절대적으로!

 

타인의 관습을 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가차 없는 비판자가 되어야 한다. 나는 이 과거에 대해 책임감이라는 빚을 지고 있다. 바로 이것이 내가 유대인인 이유다.

 

중년의 위기로 인해 다른 남자들이 차를 바꾸거나 아내를 바꿀 때, 주트는 체코어를 공부했다. 체코에 대한 관심 덕분으로 그는 대표작 <포스트 워>를 집필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미워시의 <사로잡힌 마음>과의 만남도.

 

미워시는 그의 동시대인 네 사람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 그들이 자율에서 출발하여 복종의 희생양이 되는 과정에서 보인 자기기만을 드러내면서, 지식인들에게 <복종 감정>이 필요했다는 데 방점을 찍는다.

 

그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두 개의 이미지다. 하나는 <무르티빙의 약>이다. 이 약은 스타니스와프 이그나치 브트키에비치가 쓴 모호한 소설 <탐욕>에서 미워시가 찾아 낸 것이다. 이 소설의 중앙 유럽인들은 동쪽에서 온 정체불명의 유목민 무리에게 정복당하기 일보 직전, 어떤 약을 먹게 된다. 이 약은 두려움과 불안을 덜어 주며, 그 약효를 본 사람들은 새로운 지배자들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들을 환영하며 기뻐한다.

 

두 번째 이미지는 <케트만ketman>인데, 이는 아르튀르 드 고비노가 쓴 <중앙아시아의 종교와 철학>에서 빌려온 것이다. 그 책에서 프랑스 여행가인 고비노는 이란에서 생겨난 선택적 정체성이라는 현상을 보고한다. <케트만>이라는 존재 방식을 내면화한 자는 자신이 하는 말과 다른 것을 믿으면서 모순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지배자가 새로운 것을 요구할 때마다 자유롭게 순응하는 한편, 자기 내면의 어딘가에는 자유사상가로서 적어도 타인의 사상과 독재에 스스로 복종하겠다고 자유롭게 선택한 사상가로서 자율성을 지켜 왔다고 믿는다.

 

미워시는 말한다. <동유럽 사람이기에, 미국인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 사람들이 판단하고 생각하는 방식은 언제나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미국인들은 경험을 통해 배운 적이 아직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 미워시 탄생 후 100, 시대의 획을 그은 에세이 <사로잡힌 마음>이 출판된 지 57, 노예근성을 가진 지식인들을 향한 미워시의 고발은 그 어느 때보다 진실 되게 들린다. <그의 주된 특징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두려워하는 데 있다.>

 

케트만의 존재 방식을 내면화한 노예근성을 가진 지식인들을 향한 미워시의 고발은 그 어느 곳보다 이 땅에서 진실 되게 들린다.

 

유대인이었으나 끔찍한 유대인들을 서슴없이 비난했던 주트, 루게릭 병으로 예고된 죽음을 기다리면서도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낳은 온갖 불평등과 극심한 빈부격차에 분노하던 주트. 그는 죽었으나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던 그의 가르침은 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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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절로 가는 사람
강석경 지음 / 마음산책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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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불면의 등불이 나를 인도한다>를 보면 담양 토지문학관에 입소한 시인이 강석경의 <신성한 봄>을 허겁지겁 읽은 일화가 나온다. 시인은 강석경의 문장이 손이 데일 듯 뜨겁다고 말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서민 박사의 서평집 <집 나간 책>에서도 강석경을 찬양하는 글을 보았다.

 

그러니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강석경이란 이름을 보았을 때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냉큼 집어왔다. 어라, 그런데 소설이 아니었다. <저 절로 가는 사람>

주로 스님들, 혹은 절에 관한 에세이다.

소설이 아니었지만 글자를 삼키듯 허겁지겁 읽은 건 나 역시 시인과 마찬가지였다.

 

책을 읽으면서 엉덩이가 들썩거려 혼났다.

오늘이라도 당장 삭발하고 출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고요히 앉아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치킨 안 먹을 자신 있어? 한우 안 먹을 자신 있어? 삼겹살은? ...... ’

 

왠지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송광사에서 나오는 표고가 들어간 떡국과 짬뽕이 더 먹고 싶었다.

 

섹스는? 섹스 안 할 자신 있어?’

 

예상과 달리 그것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출가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속세와 인연을 끊을 수 있을 것 같은데......

 

, 싸질러놓은 애새끼는 어쩌란 말인가.

 

혹시 변명 아닐까. 애를 빙자해 미련을 버리지 못한 닭다리와 닭 날개,

섹스에 대한 욕망을 은폐하는 것은 아닐까.

우선은 참기로 했다. 재가 불자 박문호 박사도 있지 않은가.

 

심산 명당은 오대산이고 야지 명당은 통도사라고, 통도사에도 가보고 싶다.

화엄산립법회의 정수라는 법문도 듣고 싶다.

해인사, 송광사, 화운사에도.

 

작가가 송광사 가는 길에 만난 숙녀의 말은 얼마나 황당하던지. 특목고 다닐 때 인간의 양상이 아수라장이어서 빨리 제도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리고 숙녀는 유학 이후 실제로 출가했다.

 

작가가 소개한 스님들의 면면은 실로 파란만장하며 경이적이기까지 하다.

송광사 인석 스님은 경율이 암기가 안 되자 한 번 읽고 직도직해 했다고 한다. 대장경을 위해 일생을 바친 해인사 성안 스님. 선일 스님은 인도 유학, 팔리어 공부만으로 9년을 보냈다. 공부를 더 하기 위해 스님은 스리랑카로 떠난다. 그곳에서 6~7년 동안 등이 아플 정도로 경전 공부에만 매진한다. 한국에 돌아와 암에 걸렸지만 투병 3년 만에 암을 완치한다.

 

신동화가로 이미 15세 때에 원각사 탱화불사 5축을 혼자 완성한 석정스님. 석정스님과 17년간 한국의 불화작업을 함께 한 송천스님. 초등학교 때도 장례 희망 직업란에 스님이라고 적었던 정우 스님.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에 나가 상을 받을 정도였으나 15세 때 출가를 결심한다.

 

뇌과학자면서 지치지 않고 수년간 불교 경전을 강의하는 박문호 박사. 미국에서 한국인 최초로 대학 강단에 선 화공스님. 하루 만에 천수경을 외워버릴 정도로 천재였던 덕민 스님. 스님은 추연 권용현 선생 밑에서 유학을 공부한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닌데 입을 못 마출 게 뭐 있냐며 여자들에게 키스를 하고 가슴을 만지는 둥 기행을 일 삼치 않았던 종표 스님. 덕민 스님은 그 종표 스님을 탁구로 꼬셔 유,,선의 고전과 경전들을 가르친다.

 

이 스님들을 다 만나고 싶지만 특히나 몬스터종표 스님을 만나고 싶다.

지금은 장자, 맹자, 논어를 지나 두보 시를 공부하신다고.

두보를 공부해야겠다.

 

종표스님은 화엄사에 계신다.

 

기독교인에서 무신론자였다 다시 유신론자(모든 종교를 믿었다)였다가

지금 나는 불가지론다.

 

비록 불교도가 아닐지라도 강추한다.

진리가 비처럼 쏟아질테니.

 

만일 내가 애새끼를 버리고

기어코 출가하게 된다면 이건 모두 다 강석경 작가 때문이다.

 

책을 통해 누구나 삐-(기쁨)를 느끼시길.

 

아따 딧빠!! (너 자신을 섬으로 삼아라)

 

밑줄 그은 문장

 

p22. 아만의 산을 무너뜨리고 공덕의 숲을 키운다는 뜻의 산림법회에서는 돌아가신 부모 조상과 유주무주의 영가까지 청하여 천도를 실시하면서 회향한다. 회향이란 세간의 생사가 없는 저 언덕으로 가는 것

 

p25. 영취산은 부처님이 인생의 후반부를 보낸 인도 마가다국 라자그리하의 산 이름을 한자식으로 번역한 것으로 영축이라고도 읽는다.

 

모든 진리를 회통하여 중생을 제도한다는 통도사 현판이 걸린 일주문 앞까지 걸어가면 좌우 기둥에 쓰인 불지종가 국지대찰 글씨가 보인다.

법광 스님이 쓴 <선객>에 통도사 스님의 자기 도량 자랑이 나오는데 이러하다. “저희는 지난해 동지 때 가마솥의 팥죽을 젓기 위해 나룻배를 타고 수평선 너머로 간 스님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p26. 자료에 의하면 원나라 사신들도 고려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진신 사리탑이 있는 적멸보궁에 참배했다고 한다. 이웃 나라에 알려진 만큼 고려 말에 왜구들은 두 차례나 통도사에서 부처님 사리를 가져가려 했고 조선시대에는 한때 사리를 약탈당했으나 천신만고 끝에 찾아왔다고 한다.

 

p32. “형상은 세간법이고, 법계는 무상법이에요. 몸은 세간이지만 자세히 보면 법계예요, 중생은 법계를 모르고 형상만 봐요. 보이는데 보이는 것이 없어. 들리는데 들리는 것이 없어. 거울의 그림자처럼 드러나는 것이 법계예요. 넓고 넓은 바다에 많은 그림자가 비치는데 바닷속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없어요. 물뿐이야. 물속에 별이 보이는데 별이 아니라 물이고, 해가 보이는데 해가 아니라 물이에요. 일체 만물이 지혜의 바다에 비친 그림자인데 중생은 미혹해서 그림자만 알고 마음인 물을 몰라. 우리 마음의 물에 비친 그림자는 아무리 큰 것도 작은 것도 그림자일뿐 자체가 없어요. ”

 

p41. “인간은 구하다 구하다 죽어요. 기러기는 날다가 날다가 죽어요. , 명예, 사람, 건강, 어떤 것을 구해도 남는 것이 하나도 없어. 그러니 다음 생애 또 구해요. 생사윤회야. 중생은 구하는 데 머물고 부처님은 깨닫는데 머물러요.”

 

p53. 지눌이 혜심을 알아보았듯이 인석 스님도 사람을 알아본다. 모든 생명은 육도 윤회를 하는지라 동물보다는 식물, 식물보다는 패류가 영이 낮고 전생에 동물로서 윤회한 사람은 지능이 낮고 착하다고 들려준다. 대부분의 동안들은 천상에서 떨어진 사람인데 언젠가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와 함께 온 동안의 여대생을 원주실에서 맞고 인석 스님의 동공이 벌어졌다. 영이 맑기가 바로 천상에서 떨어진 사람 같았다.

 

p55. 수처작주, 어느 곳을 가든 주체가 되리라.

 

청나라 순치 황제의 출가시가 그의 마음을 굳혔다.

곳곳이 수행처요, 쌓인 것이 밥이거늘/ 대장부 어디 간들 밥 세 그릇 걱정하랴.”

 

p56. 프로적인 사고로 일을 하려 하지만 차 타는 시간이 쉬는 시간이 될 만큼 몸이 피곤한 것도 사실이다. 그럴 때면 눈을 감고 검은 묵과 다크의 느낌이 왜 다른가를 생각한다. 누가 다크 초콜릿을 가져와서 다크란 단어가 머리에 박혔다. 묵이 강이라면 다크는 강가의 바위다. 묵이 선()이라면 다크는 정()이다.

 

p65. “당신에게 사막이란 무엇일까, 중사여, 그것은 당신 쪽으로 끊임없이 걸어오는 신이었다. (....) 사막은 우리에게는 무얼까? 그것은 우리 속에서 생겨나는 무엇이다. 우리 자신에 관해 우리가 배우는 그것이다.”

 

p68. 해인(海印)이란 아름다운 이름도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대승 경전의 최고봉으로서 동양 문화의 정수라고 일컬어지는 <화엄경>에 나오는 해인삼매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인이란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한없이 깊고 넓은 바다에 비유하여, 거친 파도 곧 중생의 번뇌 망상이 비로소 멈출 때 우주의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속에 비치는 경지를 말한다. 이것이 부처님의 깨달음의 모습이요 오염되지 않은 무구한 우리 중생의 본디 마음이다.”

 

p80. 말로 들으면 평범한 일 같지만 행자 일이 결코 만만하지는 않다. 세속의 습관을 버리고 중물 들이기의 시작이므로 하심이 먼저 요구된다. 시선을 밑으로 내리고, 오른손을 왼손 위에 얹어 모으는 차수 자세도 행자가 지켜야 할 하심 사항이다. 중노릇 모든 것이 행자 기간과 강원 교육까지 5년 동안에 형성되므로 중요한 만큼 엄하다. 사찰 중에서도 해인사 행자 노릇이 가장 힘들기로 꼽히는데 군대로 치면 해병대고 인원도 가장 많아서 전국 절의 행자들이 모여 집체 교육을 받을 때면 으레 해인사 행자가 반장을 맡았다.

 

p90. 선일 스님의 법문대로 철마다 철마다 우린 모두 곧 떨어질 꽃처럼 살고 있다.”

 

p107. “부모가 돌아가실 때도 울지 않았지만 우리 스님이 돌아가실 땐 울었어요. 나고 죽음이 없으니 무상하다는 건 알지만 정이란 게 고약스러워. 이치는 알지만 상좌를 떠나보내니 육신을 가진 마음이 미어져요. 논리적으론 불생불멸이나 가슴이 아프고 허전한 정. 부처님이 돌아가실 때도 산천초목이 울었고 오백아라한이 슬피 울었어요. 이치만 알아서는 냉혈이 돼요. 이치도 알고 감정이 풍부해야 자비가 생겨요.”

 

p119. 절망에 휩싸인 여인은 옷이 훌러내린 줄도 모르고 광녀처럼 돌아다니다가 부처님이 계신 곳까지 왔다. 사람들이 뒤에서 몰아내려고 하자 빳따짜라야하고 부처님이 부르셨다. ’빳따짜라옷이 풀어진 채 다니는여인이다. 부처님의 부름에 여인은 그제야 정신이 들어 황급히 천으로 몸을 가리고 자신의 고난을 호소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걱정하지 말라, 그대가 그대의 안식처이고 피난처이며 귀의처이다. 너 자신을 섬으로 삼아라.“ 맨 마지막 말씀이 바로 팔리어로 아따 딧빠.

 

중생심의 너 자신, 탐진치의 자신을 섬으로 삼으라는 말이 아니에요. 몸에서 몸을 관찰하고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는, 그러한 수행을 하는 너 자신을 섬으로 삼으라는 말씀입니다. ”

 

p125. “ -띠라는 팔리어가 있어요. 기쁨이라는 뜻이에요. 수행은 기쁨이 있어야 가능해요. 수행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삐-띠예요. 기쁨을 알면 더 큰 기쁨을 알고 싶고, 기쁨이 있어야 진보가 있어요.”

 

p127. 스리랑카에서 돌아와 한 첫 법문은 자애경(멧따수따)이었다. 자애경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팔리어 구절이 있었다. “모든 생명 모두 다 행복하여지이다!”

 

p132. 몸 받은 생명, 몸 없는 존재까지,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멀리 있거나 가까이 있거나

숨 쉬는 이라면 누구라도 모두 다

모든 생명 모두 다 행복하여지이다!

 

삽베 삿따아 바완뚜 수키땃따아!

 

p178. 간경 시간에 <금강경> 5장의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구절을 외우는데

환희심에 눈물이 났다.

 

p185. 울란바토르는 붉은 영웅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울란바토르에 가보았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일이었다. 특히 나처럼 아름다운 지명에서 살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대단한 일이었다고 자서전에 썼다.

 

p210. 지구 산소의 기원인 시아노박테리아가 자라고 있는 남호주 샤크베이의 스트로마톨라이트라는 암석 덩어리에 대해. 35억 년 전 생명의 시원을 담은 살아 있는 화석이 지금도 산소를 보글보글 내뿜으며 샤크베이 해멀린폴 바닷가에 펼쳐져 있다고.

 

p224. 실크로드 답사 때도 버스에서 법성게를 강연하며 우보익생만허공, 중생수기득이익을 강조했다. “진리가 비처럼 쏟아지는데 중생은 자기 그릇만큼만 가져갑니다. 제발 그릇 좀 넓히세요라고.

 

p233. 물과 바람이 만나 생기는 파도라는 현상. 파도는 본연이 아니다. 파도처럼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상념들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인위적이다. 포도주도 칭찬을 들으며 마시면 더 향기롭고 화날 때 마시면 쓰다. 인위적인 염심이 없는 것이 자연이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는 말했다. “나는 생각할 줄 압니다. 나는 기다릴 줄 압니다. 나는 단식할 줄 압니다.”

 

지상의 수많은 생물 중 인간만이 깨달을 수 있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깨달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이것이 천상천하유아독존의 뜻이다. 아란 인간의 생명을 가리킨다.

 

p243. 사회학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불교는 사회운동이다. 화공 스님은 2014년에 펴낸 저서 <유마경과 이상향>에서 불교의 종교 사회학적 측면을 강조했다. “붓다의 제행무상과 제법무아의 가르침은 카스트제도의 근간을 이루는 아트만(자아의 본질, 영혼) 사상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문화 혁명이었다.” 이 세상에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은 없으며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운명을 살아야 할 주체(영혼, 자아)도 없다는 것. 카스트라는 고정관념의 허구를 밝힘으로써 인류 최초의 노예해방을 일으킨 개념이다.

 

p245. 사바세계란 참고 견디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계를 말한다. 천재지변, 길흉화복은 언제든 찾아오고 나가지만 주인공이 중생이다 보니 고통스럽다. 중생인 우리는 무엇으로 고통 받나? 고통의 주체는 마음이다. 인도인들은 마음의 형태를 관했고, 불교는 마음을 연구한 것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내 마음의 진정성은? 견성이란 마음을 들여다보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원인 구명하여 번뇌를 정화시키는 것. 우리 마음속에 온갖 번뇌 망념이 파도처럼 일렁이는데 탐욕, 분노, 어리석음이라는 원인을 제하니 실체가 없는 공이더라. 무어든 담을 수 있는 장이더라. 그것이 여래장이다. 심즉불. 인간의 마음이 곧 부처이니 둘이 아니다. 한 발을 내딛음으로써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간다. 즉사이도다. 번뇌즉보리. 번뇌가 곧 깨달음이다.

 

p246. 원리 자체를 무시하는 사회에서 고통을 겪었지만 직심이 정토라는 <유마경>구절을 명상했다. 사바세계가 얼마나 삐뚤어져 있으면 곧은 마음을 가지는 것 자체가 바로 정토(부처가 사는 청정한 국토)라고 할까. 중생이 얼마나 왜곡되게 살면 직심의 소유자가 바로 보살이라고 할까.

 

흔히 민주주의를 다수결과 연결시키지만 진정한 민주주의는 다수라는 양이 아니라고 스님은 강조한다. 민주주의는 다수가 아니라 옳은 길로 가는 것이다. 집단이 개인에게 작용하는 힘이 개인이 집단에 미치는 영향보다 더 크게 작용할 때 그 사회는 하강이나 타락이 일어난다고 한 슈바이처의 말을 경청하자고.

 

p250. 더 이상 노력할 길이 보이지 않으니 할 일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을 마쳐도 될 것 같았다. 폭포 가까이 걸어갈수록 가슴을 에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토록 슬픈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누굴까, 나보다 더 슬픈 놈이 있네. 나이아가라 폭포에 거의 다가갔을 때야 그 슬픈 놈이 누구인지를 알았다. 그건 지구가 우는 소리였다.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무섭게 때리는 소리가 세상 어디 있을까. 아픈 지구가 흐느끼고 있었다. 자신보다 더 슬픈 지구 앞에서 수행자는 가만 돌아섰다.

 

산천초목도 한다는 무정설법이었다. 명망 있는 선사를 시험하러 갔다가 도리어 당하고 정신없이 마을 타고 가다 계곡의 물소리에 돌연 깨달아 오도송을 읊은 소동파.

절망적으로 갈구한다면 깨달음을 얻으리라.

 

p. 266. 자로가 공자의 원을 듣기를 청하자 공자가 말씀하셨다. 노자안지 붕우신지 소자회지.

어른은 공경하여 편안하게 하고 친구에게는 믿음을 주고 아랫사람은 품어준다. 이것이 유교의 진리다. 평이한 말 같지만 엄청난 힘이 있는 소리다. 여기서 내 문제를 다 해결했다.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걸 알아버렸다.”

 

p.268. 종표 스님은 거경궁리에 대해 자주 말한다. 경에 머물고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라. 경은 우리가 천지로부터 태어날 때 가지고 온 프로그램이라 인류가 다 갖추고 있다고 일러준다. 일체가 부처니 경에 머문다. 경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서 사물의 이치에 맞추어 노인은 공경하고 친구에게 신의를 지키고 아랫사람은 감싸준다.

 

지금 종표 스님에게 <맹자>강의를 듣는 현학 스님이 질문했다. “경이 어떻게 항상 유지됩니까?” 종표 스님은 답했다. “사상(아상,인상,중생상, 수자상)이 무너져야 한다. 젊은 현학 스님은 눈물을 흘렸다. 그만큼 고뇌를 많이 했기에 종표 스님의 말을 제일 잘 알아들었다. “너는 나를 의심하지 말라. 유가는 꿰뚫었다.”고 했다. 공자가 말한 오도일이관지였다. 종표 스님도 오십에 천명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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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4 0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2-14 09:16   좋아요 1 | URL
또 다시 윤회할까 두렵네요 ㅋㅋ

samadhi(眞我) 2016-02-14 2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절에 들어가는 것은 좀 어려울 것 같고(그것도 사람마다 다르겠지만요. 뭐든 의지의 문제일 것이라 여기는데요.) 머리 미는 건 생각보다 쉽습니다. ㅋㅋ 저도 마음 수련한답시고 계룡산에 들어갔다 일주일만에 머리를 밀었거든요. 머리 미는 동안에 미용사분과 즐겁게 웃었습니다. 굉장히 후련한 기분이 들어요. 사람들이 치어다봐서 좀 그렇지만.

시이소오 2016-02-14 20:40   좋아요 0 | URL
깨달음 고수들이 와글거린다는 계룡산 계셨군요. ^^

samadhi(眞我) 2016-02-14 20:42   좋아요 0 | URL
겨우 2주만에 뛰쳐나왔어요. ㅋㅋ 선배들 사이에서, ˝걔가 글쎄 머리깎고 절로 들어갔다더라.˝는 소문이 파다했답니다.

시이소오 2016-02-14 20:46   좋아요 0 | URL
ㅋㅋ 2주 있기도 힘들지 않나요? 대단하시네요^^

samadhi(眞我) 2016-02-14 20:48   좋아요 0 | URL
마음먹고 가는 사람들이라 다들 몇 개월씩 버티던데요. 제가 딸려서 못 참고 나온거죠. 마음이 허해서 벼르다 큰 마음 먹고 간 건데도 여전히 의지가 없었던 거죠.

시이소오 2016-02-14 20:53   좋아요 0 | URL
책만 있음 한 2-3년은 버틸수 있을것 같아요 ^^

samadhi(眞我) 2016-02-14 21:10   좋아요 0 | URL
그때 그리스인 조르바를 들고 갔는데 수행에 방해된다 하여 압수합디다. 그 책을 돌려받지도 못 하고 나왔는데요.(아까운 그 책 ㅠㅠ) 책 없이 면벽수행해야 해서 못 버텼는지도 모르겠어요.

시이소오 2016-02-14 21:17   좋아요 0 | URL
이 책에도 보면 스님이 작가에게 인간의 대지를 빌려달라는 일화가 나오던데
스님들은 대개 책을 못 읽나봐요? 그래도 경전이라도 읽을 수 있으면 좋을텐데
면벽수행 후덜덜하네요
제가 촛불명상은 자신있는데
벽보고 있으라면 얼마나 버틸론지 ㅋ

samadhi(眞我) 2016-02-14 21:41   좋아요 0 | URL
제가 갔던 곳은 절이 아니고 마음수련원이라는 마음닦는 단체입니다. 처음엔 가야산(경남쪽에 있는)에 있었다가 나중에 계룡산으로 근거지(?)를 옮겼구요. 말 그대로 마음 닦는 곳인데 그곳에 있는 동안 종교적 색채가 느껴져 그게 싫어 나왔습니다.
못내 마음을 버리지 못 해 뛰쳐나오고 만 자신이 한심했는데 계룡역으로 마중 나온 남편이(그땐 연애할 때) 저를 보고 씨익 웃더라구요. 그 웃음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시이소오 2016-02-14 21:44   좋아요 0 | URL
남편미소에 깨달으셨네요^^

samadhi(眞我) 2016-02-14 21:45   좋아요 1 | URL
깨닫지는 못 했고요^^. 마냥 좋았죠. 호호호.
 
생각하는 인문학 - 5000년 역사를 만든 동서양 천재들의 사색공부법
이지성 지음 / 차이 / 201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대체적으로 수긍할만 하다. 그러나, 믿을 수가 없다. ?

 

젊은이들을 일본 군대의 총알받이로 내몰던 친일파 작가들이 해방이후 대한 독립만세라고 아무리 목청껏 부르짖는다 한들 당신이라면 그 사람 말을 믿겠는가? 비슷한 이유다.

 

이지성, 황광우의 <고전 혁명>을 읽고서 나는 이지성 작가를 대단히 존경할 만한 사람이라 생각했었다. 책을 읽자마자 다음 폴레폴레에도 가입했었으니까. 그런데 그가 <27살 이건희처럼>이란 책을 썼다는 걸 몰랐었다. 동명이인이겠지 싶었는데 아니었다. 그 사람이었다. 그때의 배신감이라니!! 선호하던 작가들, 예를 들면 김동인, 모윤숙, 채만식, 서정주 등이 친일파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만큼의 충격이었다.

 

이 책에서도 이지성은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타락한 지배계층의 아이를 가르치는 것 보다는 저소등측 아이들을 위해 교육 봉사를 했었음을 자랑하고 있다. <27살 이건희처럼>을 쓴 사람이?? 스스로 생각해도 역겹지 않은가.

 

이지성과 같은 지배계급에 기생하는 작가들 김난도, 공병호, 안상헌, 김병완 기타등등의 공통점이 있다면 모든 책임을 개인으로 환원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알려져있다시피 OECD 국가 중 자살율 1위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가 시스템적으로 어딘가 문제가 있지 않을까 의심해 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들은 사회의 문제는 외면한다. ? 밥벌이가 안되기 때문이다. 방송, 언론사가 재벌들 나팔수로 전락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아마 이들은 일제 강점기였다면 언제든지 일본 제국주의 나팔수가 됐을 것이다. 오늘날 기득권층의 나팔수이듯.

 

이지성은 지엽적으론 돈을 벌기위한 인문학을 비판한다. 그러나, 끊임없이 인문학을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라고 떠들어댄다. 모순임을 깨닫지 못하는가. 심지어 거부가 된 사람들은 모두 사물의 이치를 깨달은 자들이다라고 주장한다. 이지성의 논리에 따르면 오늘날의 대기업 총수들은 전부 사물의 이치를 깨달은 자들이다. (기업 총수들 입이 쫙쫙 찢어지는 게 눈에 그려진다. 얼마나 좋을까? 비서에게 당장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이번 강연에 몇천만원이 들어도 좋으니까 이지성 작가를 불러들여”)

 

그리고는 삼성 이건희와 LG 구자경의 사례를 든다. 그들이 격물치지를 통해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다고. 그들이 말하는 격물치지사물의 이치를 깨달아라는 원래의 의미라고는 볼 수 없다. ‘팔리는 상품을 만들어라로 봐야하지 않을까. ‘노조같은 거 만들생각하지 말고 물건이나 만들어라의 뜻이다.

 

책의 초반부에서 이지성은 금융공학의 기초가 되는 수학, 과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키코 사태를 예로 든다. 파생금융상품인 키코로 인해 한국은 약 10조원의 피해를 입었다. 그래서 일반인들도 파생금융상품을 공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파생금융 상품의 거래 규모는 한 해 3경이라고 한다. 거래 규모는 세계1위라고 한다. 월스트리트의 퀀트들은 수학의 편미분 방정식과 물리학의 열전도 방정식을 활용해 파생금융상품을 설계해 우리의 호주머니를 털어가고 있음으로 우리 역시 수학과 과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게 이지성의 주장이다.

곧장 의문이 떠오른다. “파생 금융상품은 도박과 같은 건데, 안 하면 되잖아요?”

이지성은 이렇게 말했다.

 

물론 투자니 재테크니 도박이니 하는 것들은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한다. 이것들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자니 재테크니 도박이니 하는 것들은 엄연히 인간사회의

커다란 축을 형성하고 있다. 나는 이같은 현실을 인정하고 조금이나마 변화시키고 싶다. 인문학을 핑계로 현실을 부정하고 자기 세계에 갇혀 사는 바보는 되고 싶지 않다.“

 

즉 그의 말을 정리해보자면 강원랜드에 가서 빠찡코를 하지 않거나, 인터넷 포커를 하지 않거나 파생금융상품에 투자하지 않는 사람들은 현실을 부정하고 자기 세계에 갇혀 사는 바보에 불과하다.

 

나는 투자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어서......” 같은 식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감히 말하고 싶다. 다름 아닌 이런 태도 탓에 인생을 망치게 될 것이라고.

 

다시 정리하자면 이지성에 따르면 강원랜드에 가서 빠찡코를 하지 않거나, 인터넷 포커를 하지 않거나 파생금융상품에 투자하지 않는 사람들은 바보이자 인생을 망치는사람이다.

 

파생금융상품에 투자하기 위해 그가 제시하는 일반인들이 알아야할 최소한의 수학과 과학을 나열해보자.

 

물론 일반인들이 이런 것들을 구체적으로 알 필요까지는 없다. 하지만 이것들의 기초가 되는 수학적, 과학적 발견을 한 제논, 아폴로니오스, 슈피텔, 네이피어, 데카르트, 페르마, 파스칼, 뉴턴, 라이프니츠, 가우스, 해밀턴, 드모르간, 실베스터, 바이어슈트라스, 케일리, 리만, 칸토어, 소피야 코발렙스카야, 칼 피어슨, 화이트헤드, 러셀, 힐베르트, 바일, 괴델, 토머스 영, 맥스웰, 볼츠만, 아인슈타인, 닐스 보어,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 등의 삶과 사상과 업적 정도는 알아야 한다. ”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그는 아마도 최근에 금융 공학을 공부했던 것 같다. ? 파생금융상품에 투자해 돈을 벌려고 했을 것이다. 돈을 잃기위해 투자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이제 한번 거들떠 볼까. 첫 번째로 일반 서민은 투자하고 싶어도 투자할 돈이 없다. 두 번째로 일반인들은 그 정도로 수학과 과학에 공부할 시간도 없다. 세 번째로 파생금융상품이 고스톱이 아닌 이상 일반인들이 공부한다고 해서 알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만든 사람들도 모르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왜 이지성은 파생금융상품에 투자를 종용하는 걸까. 파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아닐까. 혼자만 투자하면 무슨 수로 돈을 버나? 혹시 이지성의 다음 책은 파생 금융 상품에 관한 책이 될까? 혹은 조만간 파생금융상품강연을 하려할까.

 

후반부에서 이지성은 인문고전을 원어로 읽을 것을 주장한다. 일면 수긍한다. 그런데 과연 생계에 내몰린 서민들이 원어로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이 책의 주장은 일반 서민들이 실천하기에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지성도 생각이라는 걸 한다면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왜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는걸까. 첫 번째로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고 싶은 자기과시의 욕망 때문이다. 두 번째로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심어주고 사회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은폐하기 위해서다.

 

네가 불행한 것은 사회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네가 드모르간, 실베스터, 바이어슈트라스, 케일리를 읽지 않았을뿐더러 파생금융상품에 투자하지도 않았고 성경을 히브리어로 읽지도 않았기 때문이야!’

 

셋째로 여기저기서 짜깁기한 책을 써놓고는 자신의 지식을 과대포장하여 강연료를 높이기 위해서다. 한마디로 돈 벌려고 저런 개수작을 하는 거다.

 

이 책은 허섭한 자기계발서와 마찬가지로 벌거벗은 생명인 우리에게 자유를 주기위해 씌여진 것이 아니다. 사랑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우리를 노예화하기 위해 씌여졌다. 신자유주의의 노예, 지배계급의 노예, 삼성의 노예, 금융자본주의의 노예. 이지성의 노예.

 

우리는 자유 자체가 강제를 생성하는 특수한 역사적 시기를 살고 있다. 할 수 있음의 자유는 심지어 명령과 금지를 만들어내는 해야 함의 규율보다 더 큰 강제를 낳는다. 해야 함에는 제한이 있지만, 할 수 있음에는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할 수 있음에서 유래하는 강제는 한계가 없다......스스로 자유롭다고 여기는 성과주체는 실제로는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 성과주체는 주인에 묶여 있지 않으면서도 스스로를 자발적으로 착취한다는 점에서 절대적 노예라고 할 수 있다. ”

 

한병철, <심리 정치>

 

그는 성공한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가 20억의 빚을 졌었다는 것, 교사 시절에도 하루 세 권의 책을 읽었다는 것, 포토그래픽 메모리 능력을 지니고 있어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 등등은 거짓말일 공산이 크다. 이 책에서 언급한 책들을 과연 읽었는지도 의심스럽다. 왜 저러는 걸까. 드라미틱한 성공담으로 비춰지길 원하기 때문이다. 만일 <27살 이건희처럼>처럼 교언영색으로 기득권에 꼬리를 살랑거리는 책을 쓰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그의 말을 무턱대고 신뢰했을 지도 모른다.

 

이지성은 시도 때도 없이 인문학은 사랑이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파생금융상품에 투자하는게 사랑인가.

 

이지성씨는 인문학 운운하기 이전에 위선과 기만과 거짓된 삶에서 벗어나

먼저 사람이 되야 할 것이다.

 

인간되자고 인문학하는 거다.

만권의 책을 읽으면 뭐하나.

배부른 돼지에 불과하다면.

 

 

 - 2015. 6. 11 작성


인문학 사기꾼들 공유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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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ummii 2016-02-13 15: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보고 짜집기 했다는 생각이 들어 리뷰 썼던 기억이나네요

시이소오 2016-02-13 15:54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이지성씨는 돈도 많이버셨으면서 다음에서 기부받으시드라구요. 댓글들이 다 비난일색이던데, 얼마후에 보니 댓글 다 막아놓으시고.
참 왜 저러는건지,
거기 기부하시는분들 말려야할텐데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6-02-13 15: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이소오 님 블로그를 발견한 후 계속 역주행 중입니다..

시이소오 2016-02-13 15:57   좋아요 0 | URL
저 네이버 망해서 이사왔잖아요 ㅋ 감사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2-13 16: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열정을 착취하죠. 사회를 건들기엔 부담이 많이 가고, 전적으로 대중적 취향은 사디즘보다는 매조흐`이니, 자신을 향한 채찍질을 해야 잘 팔리는 거 아니겠습니까.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고 말하지만, 내가 바뀐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사회가 바뀌면 개인의 삶의 질이 바뀌죠...

시이소오 2016-02-13 16:10   좋아요 0 | URL
동감이에요. 사회적으로 영향력있는 지식인들이
입바른 소리를 해줘야되는데
오히려 침묵하거나 왜곡하기 바쁘니, 반대로 제대로 된 인문학자들 책은 어찌된건지 잘 안팔려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6-02-13 16: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문학은 말 그대로 인간을 탐구하는 학문이잖습니까 ?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정의는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은 수문학으로 정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짐승 수(獸)자를 써서 말이죠. 인문학은 인간이 상황에 따라서 짐승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합니다. 인간의 이성은 그닥 신뢰할 수 없으니깐 말이죠. 인간을 탐구하다 보면 니체가 말하는 심연 속 악마를 만나게 되죠. 그것을 경계하는 학문이 인문학이 아닐까 싶습니다. 종종 인문학을 자기계발서와 혼동하는 사람이 있씁니다. 대표적 인물이 이지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시이소오 2016-02-13 16:46   좋아요 0 | URL
수문학 ㅋ 한자를 응용한 언어유희의 달인이신듯. 이지성씨는 심연을 너무 오래보신거죠. 괴물이 되셨으니

책한엄마 2016-02-13 16: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꿈꾸는 다락방 저자죠.

시이소오 2016-02-13 16:47   좋아요 1 | URL
제가 감사하죠. 꾸벅^^

cyrus 2016-02-13 1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지성이 강조한 `일반인들이 알아야 할 수학자들` 명단을 보면서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제가 수학에 무식해서 이지성의 주장을 비판할 수준은 아니지만, 인간적으로 우리에게 생소한 수학자들을 알아야 되는 게 말이 안 됩니다.

시이소오 2016-02-13 19:06   좋아요 0 | URL
목적이 더 황당합니다. 파생금융상품 투자하기위해 알아야한다니 ^^;;

cyrus 2016-02-13 19:13   좋아요 1 | URL
제 지인이 금융공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입니다. 지인이 공부한 흔적들을 확인한 적이 있었어요. 수학 기호 같은 것들이 많았어요. 지인이 열심히 공부하는 이론을 만든 학자들을 보면 최근에 활동하고 있어요. 이지성 씨가 언급한 수학자들은 대단한 사람들인 건 분명해요. 그러나 과거의 지식을 공부하지 않습니다. 꼭 알아야 할 이유도 없고요. 이지성 씨가 금융공학을 뭘 몰라도 너무 모릅니다.

시이소오 2016-02-13 19:17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읽고 파생금융상품 투자하기위해 위의 책을 공부하신분들은 없겠죠? ㅋ 말려야할텐데.....

짜라투스트라 2016-02-13 1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파생상품을 일반인들이 공부해야 한다고ㅎㅎㅎ 너무 웃기네요..

시이소오 2016-02-13 19:49   좋아요 0 | URL
편미분방정식과 열전도 방정식도 공부해야 됩니다. 제 머리로 공부하려면 백살이 돼도 투자는 못하고 방정식 풀고 있을것 같아요^^;

짜라투스트라 2016-02-13 19:51   좋아요 1 | URL
이러다 열역학 동역학 같은 4대 역학도 공부하라고 할까 두렵군요^^;;

시이소오 2016-02-13 20:35   좋아요 0 | URL
혹시 일반인들을 공부시키려는 깊은 뜻을 제가 곡해한건 아닐까요? ^^;;

2016-02-14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그 프로 보듯 유쾌하게 읽었습니다. 덕분에 인간 파생상품 하나 피해가겠네요. 감사합니다. ^^

시이소오 2016-02-14 06:19   좋아요 0 | URL
인간 파생상품 이라 ㅋ. 제가 더 감사하죠 ^^

오쌩 2016-02-14 2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지성뿐만 아니라 김병완 같은 작가도 문제에요.
3년동안 만권의 책을 읽었다고 하는데 물리적으로 그게 가능한지.
만권읽고도 그정도 수준인지....


시이소오 2016-02-14 20:07   좋아요 0 | URL
아, 김병맛 동감입니다
수십권의 책이 내용이 거의똑같아요. 인문학사기꾼들 널리 알리자구요^^

커피소년 2016-02-15 2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많이 배우고 갑니다. ^^

시이소오 2016-02-16 07:38   좋아요 1 | URL
앗, 댓글이 늦었네요. 죄송해요^^;;
이렇게 찾아주시니 제가 감사하죠 ^^

커피소년 2016-02-16 08:22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ㅎㅎ 댓글이 실시간 채팅이 아니니까요. ^^

제가 느끼기에는 굉장히 댓글이 빠르신 것 같습니다.

시이소오님 서재는 추천 책도 글도 괜찮아서 자주 들어오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시이소오 2016-02-16 08:24   좋아요 1 | URL
아, 그 시간에 잤어요 ^^;;

edreamer 2016-02-20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지성 작가의 독서천재가된 홍대리를 읽고 많이 동기 부여가 되었던 적이 있었죠

이지성작가도 성장을 하는 게 아닐까요? 사람은 조금씩 달라지잖아요, 본인도 모르는 새,,

어쨋든 저는 이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시이소오님 생각에 동의를 하게 되네요,,

시이소오 2016-02-20 12:03   좋아요 0 | URL
어느분 말씀처럼 책을 읽고 동기부여를 받았다면 나쁘다고 말할순 없을것 같아요. 단지 종교처럼 그 책의 저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건 경계해야 할것 같아요^^

계몽의변증법 2016-02-20 2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는데, 이 글을 보니 더 명확해 지는군요!
제 블로그에 공유하겠습니다~

시이소오 2016-02-20 20:4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옆구리왕짜 2016-05-27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가지만 취사 선택하려고요, 허언증의 냄새는 좀 나네요. 그래도 배울거 몇 개는 있는 것 같아요~

시이소오 2016-05-27 15:12   좋아요 0 | URL
배울거는 배워야죠^^

니페딘1T 2016-07-02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시이소오 2016-07-02 17:30   좋아요 0 | URL
폭풍 댓글을 남겨주시면
감사하죠 ^^
 

읽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 오에 겐자부로 <읽는 인간>에 언급된 책들을 추려본다.

읽어가겠다. 

 

첫 타자는. 아마르티아 센.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에 대해 냉철한 비판을 가한 경제학자.

 

<불평등의 재검토>, <센코노믹스, 인간의 행복에 말을 거는 경제학>, <자유로서의 발전>



 













시몬 베유. 34세에 급성폐결핵 및 영양실조로 숨을 거두었다는데

방대한 양이라니, 도대체 언제부터 글을 쓴 것인지 

 

<중력과 은총>, <시몬느 베유의 불꽃의 여자>, <시몬 베유 노동일지>, <신을 기다리며>



 

















에드워드 사이드.

 

<바렌보임/사이드 음악과 사회> - <평행과 역설>

<지식인의 표상>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지성의 거장>, <문화와 제국주의>, <에드워드 사이드>

 

 


























윌리엄 블레이크.


 

                            












<Blake and Tradition>, Kathleen Raine

<Narrative Unbound>

<Blake Studies : Essays on His Life and Works>, Geoffrey Keynes.

 

맬컴 라우리.














 

더글러스 데이, <맬컴 라우리 평전>

<화산 아래서> <샘으로 가는 숲길>

 

단테.
















<단테 더 메이커>, 윌리엄 앤더슨

<Dante : the poetics of Conversion>, 

존 프레체로, 연옥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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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3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3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3 1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2-13 11:27   좋아요 2 | URL
그래서 제가 마인드컨트롤을 해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책은 지금 읽고 있는 책이다˝ ㅋㅋ

책읽는나무 2016-02-13 1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는 인간`에 나온 책들인가요?
음~~~제가 아직 `읽는 인간`을 읽지 못하고 주저하는 이유입니다
저책들을 먼저 읽고 읽어야 하는 것인지?`읽는 인간`을 먼저 읽고 저책들을 읽고 다시 `읽는 인간`을 다시 읽어야 하는 것인지?
어떤 순서가 맞을까요?^^

시이소오 2016-02-13 13:34   좋아요 1 | URL
아, 그냥 읽으셔도 무방할거에요. 읽는 인간 먼저 읽으시고 관심가는 다른 책이 있다면 그때 읽으셔도. 일단은 읽는 인간을 읽으시길^^

비연 2016-03-23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읽고 있어요, <읽는 인간>. 오에 겐자부로가 얘기하는 책들 중에서 에드워드 사이드와 다니엘 바렌보임의 대담집... 읽어보고 싶더라구요.

시이소오 2016-03-23 17:03   좋아요 0 | URL
저도 사이드 책 더 읽어보고 싶어요^^
 
읽는 인간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50년 독서와 인생
오에 겐자부로 지음, 정수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그래 좋다. 나는 지옥으로 가겠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허클베리 핀>의 이 한 문장이 한 소년을 노벨문학상 작가로 만들 줄이야! (, 나도 소년 시절 허클베리 핀을 읽었건만...... 안 읽었나?)

 

소년 오에는 그렇게 살기로 결단했고 노년의 오에는 그렇게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책이여, 안녕!’이라고 말할 만한 노년의 오에는 현재의 자신을 만들어준 인생의 책들을 회고한다.

 

허클베리 핀, 프랑스 르네상스 단장, 포 시집, 오든 시집, 엘리엇 시집, 에드워드 사이드, 시몬 베유, 블레이크, 맬컴 라우리, 플라톤, 단테의 <신곡> 등등.

 

얼마 전 엘리엇의 <네 개의 사중주>에 꽂혀 있었는데 오에 겐자부로도 좋아했다니 반가웠다.

보르헤스도 여러 나라의 언어로 <신곡>을 읽었다고 하는데, 신곡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 그러고 보면 <신곡>청소년 권장 도서라기 보단 노년 권장 도서가 아닐는지.

 

작고한 영화감독 이타미 주조와 처남, 매제간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릴 적부터 둘도 없는 친구 사이인 줄은 전혀 몰랐다. 랭보를 이타미 주조에게 배웠다니! 오에가 싱클레어라면 이타미 주조가 데미안이었던 셈. 그는 이타미 주조의 영향으로 수상한 이인조식 소설을 써왔다고 한다. 비평가는 이러한 이인조의 원형으로 사무엘 베케트를 언급하지만, 베케트보다는 헤세에 더 가깝지 않을까. ‘수상한 이인조문학은 실은 문학의 시초로 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기원전 3000년 경, <길가메시 서사시>의 길가메시와 엔키두가 그 원형이므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소년 오에에게 이타미주조였다면

노년의 오에 에게는 에드워드 사이드다.

(이럴 수가, 에드워드 사이드 책을 단 한권도 안 읽다니!!)

 

권력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는 에드워드 사이드와 마찬가지로 오에 역시 인권을 침해하는 권력에 날을 세운다. 오에는 천황의 문화훈장을 거부했다. (대통령 표창이라고 하면 한국 지식인들은 너도 나도 받으려고 야단법석이었을 텐데. 경제학자라고 우기는 공 모씨 같은 이들은 환장했을테지.)

 

금수와도 같은, 말라리아 같은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에게 (기생충이라고 표현하면 안 된다. 서민 박사의 책을 보면 알 수 있는데 기생충에 대한 모욕이다.) 책을 읽혀야 한다.

 

신곡을 권하고 싶다.

 

너희는 짐승처럼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덕과 지식을 구하기 위해 태어났다.”

 

 

밑줄 그은 문장

p14. 몸도 마음도 얼어붙게 만드는 궤주의 반려, ‘공황에 빠져 용맹하기로 이름난 군사들마저도 견디기 힘든 비탄에 젖어서 의욕을 잃었으니

 

p16. 그리고 센 씨는 엘리엇이 <네 개의 사중주> 세 번째 시 <더 드라이 샐비지즈>에서 크리슈나를 지지하고 있음을 덧붙입니다. 엘리엇은 이 시에서 분명 전투를 계속하는 쪽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Fair well(무사하기를)”이라 하지 않고, “Fair forward(나아가라)”라고 하지요. “나아가라, 항해자여!”라고 말입니다. fare여행하다, 나아가다라는 뜻의 옛말입니다.

 

P20. 나는 숨을 죽이고 일 분간 가만히 생각했다. 그러고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래 좋다, 나는 지옥으로 가겠다.” - 그렇게 말하고는 그 종잇조각을 찢었다. 그것은 무시무시한 생각인 동시에, 무시무시한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말한 대로 행하고 있다. 그 마음을 바꾸려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당시 웬만해서는 손에 넣기 힘들던 공책을 구해서, 첫 페이지에 그 문장을 적었습니다. 문장 주변에 장식을 두르고는, ‘좋다, 나는 지옥으로 가겠다...... 지금껏 이걸 원칙으로 살아온 듯합니다. 사실 우왕좌왕할 때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런 마음가짐을 지녀왔습니다.

 

p23. < 프랑스 르네상스 단장>에 제가 붉은색으로 선을 그어둔 부분 중 하나를 인용하겠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책의 내용과 저자의 말투를 알아채시리라 믿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난제들 가운데 어떤 것에도 답할 수가 없다. 다만 한 가지 아무리 해도 포기할 수 없는 편견은, 르네상스기에 인간이 회복한 자유 검토 정신인 휴머니즘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으며, 이를 올바로 발전시켜나감으로써 필연적 통제주의마저 불관용과 기계화, 비인간화에서 벗어나 인간의 것이 될 기회를 주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이런 생각이 신중세로부터 거부당한 케케묵은 태도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p52. 그렇다면 과거의 파토스는 어떻게 되는 거지? 내게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야. 이미 지나간 것으로서의 과거 말이지. 경의를 표하고, 격찬하고 중시하는 것은 그것이 이미 지나간 것이기 때문이야. 그걸 요즘 유행하는 식으로 갱신해서 현대적인 것과 관계가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만은 아니라고 생각해. 내가 뭘 이야기하고 싶은지 알겠나? 역사에는 무자비한 측면이 있어서 인간의 경험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지. 어떤 것들은 결코 돌이킬 수 없어. 그것은 과거에 속한 것이니.

 

p56. 지금 자신이 있는 곳으로 들어오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열렬히 환영하는 가톨릭다운 환경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저는 어느 하나의 환경 속에 받아들여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바라지 않는다는 말만으로 제 기분을 제대로 표현했다고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쉽고 편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가능하다면 저도 바라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그런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는 기분이 듭니다. 저는 혼자이고, 예외 없이 어떠한 인간적 환경과도 인연이 없는, 추방된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제게 필요하며, 또한 그런 부름을 받았다는 기분이 듭니다......

 

p68. 그것은 3년마다 읽고 싶은 대상을 새로 골라서 그 작가, 시인, 사상가를 집중해서 읽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말이죠, 자기가 읽어온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아울러 자신의 새로운 언어 감각을 발견하게 됩니다.

 

p82. 이렇듯 외국어 책을 읽는 것과 일본어 소설을 쓰는 것이 본질적으로 서로에게 여운을 남깁니다. 어떤 소설의 근본적인 톤, 음악으로 보자면 선율 같은 것이 떠오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문체라고 부릅니다. 소설의 스타일이란 바로 이런 것을 말하며, ‘grief’라는 작은 단어 하나에서 문장으로, 이어서 작품 전체로 전개됩니다. 나아가 한 사람의 소설가가 지닌 인간을 바라보는 견해, 사고방식, 소설가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 본연의 자세와도 이어지는 것이죠. 그것이 문체이며, 결국 우리는 이것을 읽어내기 위해 소설을 읽고 소설로 쓰기도 하는 것입니다.

 

p122. 그리스어로 아남네시스anamnesis’상기하다’, 떠올리다, 생각해내다라는 뜻인데요. 이 아남네시스라는 것이 오늘날 세계에서 우리를 자기도 모르는 아름다움, 올바름으로 이끌어준다는 플라톤의 널리 알려진 철학을 다뤘습니다.

 

처음 기 형은 신약성서 <마태 복음>에 나오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워라. 그 가지가 부드러워져 싹이 트면 여름이 다가옴을 알리니라는 구절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편지에 씁니다. “나뭇가지가 부드러워진다는 부분은 실제로 깊은 숲 속 나무에 둘러싸여 사는 내게 중요하게 다가왔다하여 이번에는 플라톤의 <파이드로스>를 다시 읽게 되었다는 내용이 이어지지요.

 

옛날 우리는 천사처럼 하늘을 날았고, 지금도 우리는 가끔씩 새의 날개가 돋는 부분, 어깻죽지 부근이 근질근질하다 부풀어 오르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기 형은 아까 말한 무화과나무에 대한 성서 말씀으로 돌아갑니다. 나뭇가지에서 싹이 나는 계절, 작은 가지가 돋아나기 직전에 무화과나무를 보면, 아주 약간 부풀어 있고 부푼 부분을 눌러보면 부드럽다고 합니다. 식물이 새로 잎을 낼 때에는 딱딱한 나무 살결이 부드러워지고, 조금 부풀어 오릅니다.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육체도, 영혼도, 거기서 뭔가 새로운 것이 싹트려 할 땐 약간 부풀어 오르면서 부드러워지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새로 움트는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안 된다고 플라톤은 말합니다.

 

지금이야말로 내 안에 무언가 새로운 것이 움트려 하면서, 몸과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있는 듯하다. 나는 지금 완전히 새로운, 따라서 대단히 위험할 수도 있을 일을 하고자 한다.

 

124. 그 가운데 하나가 <토성 아래서>라는 시입니다. “지금 내가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다 해서 상실한 사랑에 대한 기억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라 생각하지는 말아다오. 그게 아니라 나는, 이제 더는 젊은 날을 경험할 수 없다는, 바로 그것이 괴로운 것이다.”

 

p134. 인생의 중반기에 올바른 길을 잃고 헤매던 나는, 어느 어두운 숲 속 가운데 있었다.

 

p136. 네가 올라가 저들 옆으로 가기 원한다면 그곳에 나보다 더 나은 영혼이 있으리라. 우리는 헤어질 때가 왔으니 너를 여기에 두고 가겠다.

 

p151. 조금이나마 너희 마음에 합당하다 싶으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너희 중 하나가 가르쳐다오. 너희는 정처도 없이 어디를 헤매다 죽었느냐.

 

p152. 너희는 짐승처럼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덕과 지식을 구하기 위해 태어났다.

 

p174. “서로를 신뢰하고 사랑하기까지 하지만 서로 미워하는 듯도 한, 어쨌든 서로를 필요로 하는 이인조가 오에의 소설에는 등장한다.” 고 제임슨은 말합니다. 이러한 이인조에는 원형이 있다고 하면서, 그는 사무엘 베케트의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을 인용했어요. 베케트가 생애 최후에 쓴 소설 삼부작 <몰로이>, <말론 죽다>, 그리고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입니다.

 

p183. 그리하여 그곳을 나와 다시 하늘의 별을 우러렀다.

 

p186. 그 단편은 이토 시즈오라는 시인의 시를 인용하는 것에세 시작합니다.

 

나의 영혼이 무엇인지는 말할 수 없다.

그 증거를 나는 너에게 이야기하겠다.

 

p190. ‘나의 영혼이 무엇인지는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나의 영혼은 기억한다.

 

p193. s 씨에 따르면, 시인은 영혼의 자발성을 믿지 않고, 영혼이 말하자면 악기처럼 외부에서 오는 울림이라고 생각했다 한다. (중략) 자체적인 힘에 의해 자기 안으로부터 노래를 발산하는 나의 영혼이 아니다. 그러나 일단 악기가 되어 울리기 시작한 노래를 나의 영혼은 기억한다.......

 

p204. 또한 죽은 자들이 살아 있을 때에

말로 꺼내지 않은 것을

죽은 뒤에는 말할 수 있다.

죽은 자들의 전달은 살아 있다

인간의 언어를 초월하여 불로서

드러나는 것이다.

 

p224. 그는 지식인의 역할이 사회 속에서 어떤 특권도 지니지 않는 아마추어로서 권력을 비판하는 움직임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지식인의 표상>을 읽어본 분들은 잘 아시겠지요.

 

p230. 본질적으로 보자면, 고향 상실의 주변인으로 언제까지나 권력을 향한 비판을 멈추지 않는 사이드가, 예를 들어 이슬라엘 지식인으로 안주한 작가 아모스 오즈에 비하면 분명히 유대계 지식인다운 특성을 지녔으며, 나는 그러한 최후의 인간이라 할 수도 있다라고 한 건 사이드다운 유머이면서 아울러 그의 진심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p231. 사이드는 아도르노에 대하여라고 주석을 달아 말합니다.

 

만년성은 받아들여지는 것이나 정상적인 것을 뛰어넘어, 그 너머에서 계속해서 살아나가겠다는 사싱이다. 아울러 만년성은 인간이 만년성을 뛰어넘고, 인간이 이를 초월해 거기서 탈피하는 것은 실제로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담고 있다.

 

아도르노는 베토벤이 화해 불가능한 것을 하나의 이미지로 화해시키는 것을 거부했다고 썼습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사이드 자신의 음악과 세계에 대해 몇 번이고 똑똑히 들었던 음성입니다.

 

내가 아도르노 안에서 발견하는 중요한 부분은 이런 긴장감에 대한 고찰, 내가 화해시키기 어려운 것이라 부르는 부분에 강렬한 빛을 비추어 극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고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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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환희 2016-02-13 08: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어쩜 이렇게 잘 쓰시는지요 ^^ 글쓰시는 분같아요 ^^

시이소오 2016-02-13 08:41   좋아요 1 | URL
허걱 그런 칭찬 처음 들어요. 환희의 도가니!! 감사합니다. 잘 쓰도록 해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