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권유 - 시골에서 예술가로 산다는 것
장석주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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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가난이라. 안성 정도에 땅을 사서 집을 지을 정도라면 과연 가난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집도 없고 차도 없이 빚만 한없이 많은 나로선 글만 써서 먹고 살 수 있는 시인이 부러울 따름. 어느새 시인은 스무 권 이상의 책을 내셨다니 그만큼 열심히 살아온 결과일터.

 

절망, 그것은 삶의 심연에서 나오는 것이다. 참으로 절망한 자들은 그 극한에 이르면 성자같이 겸허해진다. 그들은 결코 나태와 쾌락으로 도망가지 않는다. 서둘러 나태와 쾌락으로 도피하는 자들은 절망한 자들이 아니라 포기한 자들이다.

 

나르시시즘, 혹은 자기애의 헛구렁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들. 그들은 쉽게 절망을 입에 올리지만, 진짜 절망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 진짜 절망한 자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저 많은 사람들이 절망한 척할 뿐이다. 책임과 의무에 대한 불철저성으로 말미암아 필연적으로 귀결된 참담한 실패 앞에서 그들은 비겁한 자기 정당화의 수단으로 절망을 이용한다. 그들은 절망속에 제 몸을 은신함으로써 타인들의 연민과 동정심을 자극한다. 그들은 다만 인생의 패배자에 지나지 않는다. ‘절망은 나약한 자들의 것이 아니라 참으로 강한 자들의 정서에 속하는 것이다.

 

나는 절망했다고 생각했다. 나는 절망했으나, 나태 속에도 (그럴 시간도) 쾌락 속에도(그럴 돈도 없었기에) 빠지지 않았고, (말할 사람도 없었기에) 타인들의 연민과 동정심에 전혀 기대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강한 것일까?

 

나를 사로잡는 것은 새로워진다는 것, 끊임없는 자기 갱신에의 열정적 의지, 세계를 향하여 열려 있는 의식의 유연성, 본질을 꿰뚫는 천재적 직관, 늘 창조적인 것에 바쳐지는 시간의 가치에 대한 인식, 자기 성찰,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고마움, 앎에의 욕구와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정신의 건강함,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 심미적 감각, 도덕적 균형, 이 모든 것을 수렴하여 자기의 것으로 감싸 안고 있는 타인의 시선에 붙잡히는 내 외관, 그 격동하는 내면을 감춘 가시적 실체가 표면으로 보여주는 고요함과 부드러움!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고 즐겁게 만드는 화술.

 

이 모든 것들은 어디서 왔는가? 나의 혈관을 흐르는 피와 근육들은 책의 자양분에 의해 형성된 것들이다. 책은 나의 유일한 학교였다. 그것은 획일화된 규율과 책임을 강요하지 않는 학교다. 사람이 저마다 타고난 인격, 개성, 자유의지를 존중하고, 어떤 억압도 정당화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것은 탁월한 학교였다.

 

장석주는 시인으로도 유명하지만 독서가로도 유명하다. 소장한 책만 23천권이라니.

시인의 발뒤꿈치라도 따라가려면 방법이 없다.

책을 읽는 것 말고는.

 

절망할 시간이 없다.

 

 

-2014. 9.9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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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e 2016-02-13 1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집도 없고 차도 없이 빚만 한없이 많은 나...˝,

집도 있고 차도 있고 빚은 없는데,
라디오 tv도 있는데 마냥 즐겁지만 않으니
나는 가진게 너무 많은 건가?

한참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시이소오 2016-02-13 11:56   좋아요 0 | URL
그레이스님 부러워요. 누구나 각자의 고민은 있는 법이고
생계와 같은 저차원 고민을 안 하는것만으로 감사할 일 아닌가요?
라디오 tv도 있으시잖아요 ^^

yureka01 2016-02-13 1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외로울 시간도 없어요..ㅎㅎㅎ 장석주 시인은 다독가이기도 하죠.책을 어마무시하게 읽고 ㅎㅎㅎ그런데 장 시인의 심장에는 피만 흐르는게 아니라 언어가 흐르나 봐요..계속 끝없이 문장을 수혈하는 분이라서 ㄷㄷㄷㄷ그런말 있죠...누구나 할 수는 있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다고 ^^..

시이소오 2016-02-13 13:25   좋아요 1 | URL
작년 겨울에도 공저포함 책 세 권 내신걸로 알고 있어요. 시도 시지만 무시무시 읽고 쓰시네요. 존경스럽죠^^
 
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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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국 문학의 4대 작가는? 해럴드 블룸에 따르면 코멕 맥카시, 토마스 핀천, 돈 드릴로, 그리고 필립 로스다. .....조이스 캐롤 오츠는 왜 빠졌을까? 여자라서, 약간 미친년 같은 포스에??

 

필립 로스 책 중에서 가장 읽고 싶은 책은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포트노이의 불평>인데 살 돈도 없고, 도서관에도 없길래 도서관에서 제일 얇은 책을 골랐다.

 

주인공 마커스의 십대 시절과 이십 대 초반 시절이 주된 시간적 배경인지라 여러 작품들이 연상되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좀 더 하드 보일드한 버전? 코드웰 학생과장과의 대화에선 카뮈의 <이방인> 혹은 카프카가 연상되기도 하고, 존 어빙의 <가아프가 본 세상>역시. 허걱

그러고 보니 존 어빙은 왜 4대 작가에 빠졌을까? , 해럴드 블룸!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1951년을 주로 해 1953년까지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의 3부의 내용을 말해도 되는 걸까? (말하지 않을께요)

 

이 시대 미국 젊은이들의 불안은 주로 한국전쟁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주인공 마커스의 아버지는 점점 비정상적으로 보일만큼 아들의 신변문제에 집착한다. 마커스는 아버지 곁에 있다간 아버지를 죽일 지도 모르겠다는 변명으로 집에서 멀리 떨어진 오하이오의 와인스버그 대학에 진학한다. 그러나, 마커스에겐 어디를 가든 방해자들이 끊이질 않는다.

 

첫 기숙사의 플러서는 새벽 네 시까지 베토벤을 틀고 연극 대사를 연습한답시고 큰 소리로 암송하기 일쑤다. 참지 못한 마커스는 플러서의 레코드를 부수고서 기숙사를 옮겨 엘윈의 방으로 옮기지만 마커스가 대학 시절 유일하게 데이트하고 유일하게 사랑한 올리비아를 엘린은 씨발년이라고 모욕한다. 그래서 아무도 없는 기숙사로 옮겼더니 학생과장 코드웰이 잦은 이사를 이유로 꼬치꼬치 그의 사생활을 캐묻는다.

 

한쪽에 아버지, 플러서, 엘윈, 코드웰 같은 대립적 인물이 있다면 반대편엔 어머니, 올리비아, 서니 코틀러가 있지만 다른 소설들에서처럼 주인공에게 동조적인 인물들과 주인공과의 관계는 다소 느슨하다.

 

살갗이 투명하고 윗입술이 도톰한 올리비아와의 첫 데이트를 하고 나서 마커스는 혼란스러워 한다. 왜냐하면 올리비아는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기꺼이 그의 물건을 빨아주었기 때문이다. 왜지? ? 마커스는 올리비아를 피한다. 자신이 피한다는 걸 느낀 올리비아는 대뜸 이렇게 말한다. “네가 너무 좋아서 그런 거 였어.” 그러나, 여전히 어리둥절해 하는 마커스를 보고는 이번엔 올리비아가 마커스를 피하게 된다. 올리비아가 자신을 상대해 주지 않자 마커스는 올리비아에게 자신을 용서해달라는 편지를 보낸다. 올리비아에게서의 답장은 금방 왔다. 올리비아는 19살의 어린 나이에 이미 알코올 중독에 잦은 자살 미수 사건을 겪었음을 고백하며 마커스가 자신을 견딜 수 없을 것이라며 자신과의 관계를 끝내길 요구한다. 그녀의 편지를 읽고 마커스는 올리비아를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밀당 중에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자 잘 생기고 공부도 잘하는 그야말로 엄친아인 서니 코틀러는 올리비아와의 관계를 정리하라고 충고한다. ? 올리비아는 코틀러도 빨아줬다고. 첫 데이트이자 마지막 데이트 때. 올리비아는 실로 ‘1951년의 빨아주기 여왕일까?

 

그러나, 마커스가 병원에 실려 갔을 때 가장 먼저 면회를 온 사람은 올리비아였다. 올리비아는 매일 병원에 면회를 오고 그들의 관계는 나날이 발전하지만 병원에 면회를 온 마커스의 엄마와 올리비아의 만남으로 올리비아는 더 이상 면회를 오지 않는다. 마커스의 엄마는 팔뚝에 자살 흔적이 있는 여자와 만나지 말 것을 마커스에게 부탁하고 마커스는 엄마의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 마커스는 올리비아를 만날 수 없었다. 마커스는 퇴원 후 올리비아를 찾지만 그녀는 마커스에게 알리지 않고 신경쇠약이라는 병명으로 학교를 떠난 후였다.

 

 

이 책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마커스와 학생과장 코드웰과의 첫 번째 면담 부분이다. 코드웰은 두 번의 기숙사 이사의 이유로 마커스를 타인과 타협할 줄 모르는 학생으로 몰아간다. 코드웰은 이어서 아버지가 코셔 정육점을 하는데 왜 코셔 정육점이라고 하지 않고 정육점 운영이라 적었는지 묻는다. 두 사람의 대화는 흡사 카프카의 세계에 와 있거나, <이방인>의 뫼르소와 재판관들의 대화를 보는 것 같다. 결국 그러한 부조리함에 마커스는 울분을 터뜨린다.

 

 

저는 학위를 따려면 졸업을 하기 전에 채플에 마흔 번 참석해야 한다는 규정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과장님. 대학이 저에게 어떤 종교에 속한 사람이든 성직자의 말을 한 번이라도 들을 것을 강요하고, 기독교 신을 찬양하는 기독교 찬송가를 한 번이라도 들을 것을 강요할 권리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무신론자이고, 그렇기 때문에 솔직히 체계화된 종교의 관행과 믿음을 몹시 불쾌하게 여기는 데 말입니다.

 

세계 최고의 철학자이면서 수학자이자 또 논리학자인 버트런드 러셀이 논리로 논란의 여지 없이 제 1원인설, 자연법설, 신의 계획설, 신을 도덕적으로 옹호하는 설, 불의를 교정하기 위해 신을 옹호하는 설을 논파한다는 사실을 아시게 될 겁니다.

 

두 가지 예만 들도록 하죠. 첫째, 1원인설이 왜 타당성이 없느냐 하는 문제에 관해서 러셀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것에 원인이 있어야 한다면 신에게도 원인이 있어야 한다. 원인 없이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다면, 신만이 아니라 세상도 있을 수 있다’. 둘째로 신의 계획설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당신에게 당신의 세상을 완벽하게 만들 수 있는 전지전능과 수백만 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큐클럭스클랜이나 파시스트보다 나은 것을 만들 수 없겠는가?

 

러셀은 또 복음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결함을 논하면서, 역사적으로 그리스도가 실존했다는 것 자체가 매우 의심스럽다고 말합니다. 러셀이 보기에 그리스도의 도덕성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지옥의 존재를 믿었다는 점입니다. 러셀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 진정으로 심오하게 인간적인 사람이라면 영원한 벌은 믿지 않을 것 같다‘ .....러셀은 아주 솔직하게 교회가 인간의 진보를 방해했다는 점, 교회가 자기들의 도덕성을 고집하는 바람에 여러 사람에게 부당하고 불필요한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러셀은 종교가 일차적으로, 또 주로 공포에 기초하고 있다고 선언합니다.....패배에 대한 공포, 죽음에 대한 공포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거죠....러셀은 신이라는 개념 자체가 자유로운 인간에게는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채플에 대한 주인공의 발언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나는 대학 시절 무신론자였다. 미리 알았더라면 채플을 강제적으로 들어야 하는 대학엔 가지 않았을 것이다. 종교를 강요하는 그런 학교를 졸업했다는 게 내겐 비굴함의 징표다. 채플을 얼마나 싫어했으면 채플을 이수 안 했다는 이유로 그해에 졸업을 못했겠는가? 제발 대학들이여, 학생들에게 종교를 강요하지 말아라.

 

필립 로스는 버트런드 러셀의 <왜 나는 기독교인이 아닌가>의 글들을 지금도 신봉하고 있는 듯하다. 니체에게 열광했듯, 이십대 때의 나라면 아마 러셀의 주장에 환호했을 것 같은데 나이가 먹어서일까? 지금은 러셀의 주장이 유아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데, 러셀의 비판이 옳지 않다고 생각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초등학생들의 투정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내가 유신론자이기 때문일까? 혹은 모든 종교를 선별적으로 수용하기 때문일까?

 

 

청춘은 그야말로 울분의 시기가 아닌가? <울분><호밀밭의 파수꾼>의 하드보일드한 외침이다. 마커스는 학생과장과의 두 번째 면담 때 결국 울분을 넘어 폭발한다.

 

좆까, 씨발

 

말죽거리 잔혹사의 명 대사, “대한민국 학교, 좆까라 그래!!” 만큼 속 시원하다.

 

권위에, 부조리함에, 불평등에, 온갖 부당함에 순응하지 않고

좆까, 씨발이라 울분을 터뜨리며 행동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나이에 상관없이 여전히 청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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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2-05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까 시발.. 이런 표현 좋죠. 문학에서 이런 말 쓰면 은근 쾌감이 전해진달까요 ? ㅎㅎ

시이소오 2016-02-07 20:06   좋아요 0 | URL
어우 이제야 댓글다는 법을 알았네요. 지송^^;;
욕하진 마세요 ㅋ

북깨비 2016-08-01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로 만들어졌다기에 원작을 구경하러 왔다가 시이소오님 리뷰를 읽고 갑니다. 트레일러 분위기가 상당히 심각해 보였는데 심각한 이야기군요. 음.. 일단 사놓은 에브리맨과 죽어가는 짐승을 먼저 읽고 도전해봐야겠어요.

시이소오 2016-08-01 19:30   좋아요 0 | URL
울분이 영화화 됐나요? 보고싶네요 ^^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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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읽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넉넉해 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그림도 그림이려니와 옛 선인들의 문장은 어쩜 이리 단아하고 담백할 수 있단 말인가?

 

해질 녘 서편 하늘을 물들이는 장엄한 노을 앞에 섰거나, 한밤중 아득한 천공에서 무수히 쏟아져 내리는 별무리의 합창을 들을 때, 혹은 동틀 녘 세상 끝까지 퍼져나가는 황금빛 햇살의 광휘를 온몸에 맞으면서, 어느 누가 감히 예술을 논하겠는가. 봄날 작은 꽃망울을 터뜨리는 햇가지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길고 짧고 굵고 가는, 물기 오른 여린 가지들이 이루는 조화와 오만 가지 빛깔, 그것은 기적이다. 가을 새벽 거미줄에 붙들린 조그만 이슬 알갱이에 다가서 보자. 그 깜찍한 비례며 앙증맞은 짜임새도 경이롭지만 알알이 비치는 방울 속마다 제각기 살뜰한 우주가 숨어있다.

머리말 중에서

 

김홍도의 송하맹호도

 

소나무 아래 호랑이가 문득 무언가를 의식한 듯 갑자기 정면을 향해 머리를 돌렸다. 순간 정지한 자세에서 긴장으로 휘어져 올라간 허리의 정점은 정확히 화폭의 중앙을 눌렀다. 가마솥 같은 머리를 위압적으로 내리깔고 앞발은 천근 같은 무게로 엇걸었는데 허리와 뒷다리 쪽에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서 금방이라도 보는 이 머리 위로 펄쩍 뛰어 달려들 것 같다. 그러나 당당하고 의젓한 몸집에서 우러나는 위엄과 침착성이 굵고 긴 꼬리로 여유롭게 이어지면서 부드럽게 하늘을 향해 굽이친다

 

작가의 말대로 금방이라도 호랑이가 화폭을 찢고 뛰어나올 태세다. 그러나, 소나무와 소나무 잔가지 사이의 여백이 힘을 완화시켜 적절한 균형과 조화를 이룬다. 정중동이라기 보단 동중정의 묘미라고나 할까?

 

속의 질박함이 바깥 꾸밈을 압도하면 촌스러워지고, 바깥 꾸밈이 속 바탕을 압도하면 얄팍해진다. 속과 바깥, 바탕과 꾸밈이 서로 잘 어우러진 다음에야 군자다

-       논어 옹야편

군자를 예술로 바꾸어도 무리 없지 않을까? 바탕과 꾸밈이 적절히 균형과 조화를 이룬 작품, 그것을 우린 예술이라 부른다

표구를 포함한 <송하맹호도>의 호랑이는 작가의 말마따라 철창 속에 갇힌듯한 느낌을 준다. 일제시대에 우리 그림의 7,8할이 이런 일본식 표구로 바뀌었다고 한다. 식민지 시기, 일본인들이 일본 정부의 지원아래 한국의 호랑이를 잡았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 먹어서? 아니다. 호랑이가 한민족의 기상을 상징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림 속의 호랑이마저 가둘 지경인데 더 이상 무슨 말을 하랴!

 

김홍도의 <마상청앵도>

 

고요한 봄날의 정적속에 ! 삐요꼬 삐요!’ 환하게 퍼지는 소리가 지척간 버드나무 위에서 들려온다. 온몸에 선명한 황금빛을 두른 노란 꾀꼬리 한 쌍이다. 선비는 말 위에서 가만히 숨을 죽인 채, 어여쁜 꾀꼬리가 노래하는 갖은 소리 굴림을 듣는다. 참 맑고 반가운 음성이요 생각 밖의 곱고 앙증맞은 자태가 아닌가. 선비의 입에서 절로 제시 한 수가 터져 나온다

 

어여쁜 여인이 꽃 아래에서 천 가지 가락으로 생황을 부나

운치 있는 선비가 술상 위에다 밀감 한 쌍을 올려 놓았다

어지럽다 황금빛 베틀 북이여, 수양버들 물가를 오고 가더니

비안개 자욱하게 이끌어다가 봄 강에 고운 깁을 짜고 있구나.

 

내리막길이라 그런지 밑으로 하강하는 중력이 느껴진다. 그러나 꾀꼬리의  ‘! 삐요꼬 삐요!’ 소리가 선비의 시선을 잡아 끈다. 선비의 올려다보는(상승하는) 시선, 버드나무 위의 꾀꼬리, 그리고 화폭 윗 부분의 여백이 하강하는 힘을 상쇄시켜 이 작품에서도 균형과 조화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날로 각박해지는 세상. 잠시만 짬을 내어 옛 그림을 바라보자. 봄날 꾀꼬리 소리에 가던 길을 멈추고 사색에 빠질 수 있는 옛 선비들 마음자리의 드넓은 여유를 닮아보자.

 

중년에 이르러 자못 도를 좋아해서

늘그막 집 자리를 남산에 터 잡았네

흥이 오르면 매양 혼자 그대로 떠나가니

뛰어난 경개를 그저 나만이 알 뿐이라

걸음이 다다르니 물이 끊긴 그곳이요

앉아서 바라보니 구름 이는 끄때로다

우연히 숲에서 나무하는 늙은이 만나

웃고 이야기하느라 돌아갈 줄 모르네

-       왕 유 , 당나라의 시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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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대제 6 - 월웨허 역사소설, 전면 개정판 제왕삼부곡 1
얼웨허 지음, 홍순도 옮김 / 더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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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로부터 철번의 명이 떨어졌다오삼계는 대명왕조를 복벽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워 반란을 도모한다흠차인 절이긍부달계가 강희의 수유(친필 지시)를 오삼계에게 전달하나 오삼계는 당최 철번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손연령은 왕사영의 은근한 회유에 청나라를 배신하고 오삼계 편에 선다왕보신은 흠차로 온 막락의 회유에 청나라 편에 서려고 한다그러나 왕보신 휘하의 장건훈이 병변을 일으킨다왕사영은 왕보신에게 막락의 잘려진 머리를 들이민다왕보신으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북경에 유배되어 있는 오응웅은 주삼태자와 손을 잡기로 한다주보상의 눈을 피해 오차우와 운낭은 북경으로 향한다.

 

오삼계는 대명 복벽의 기치를 내세우며 부하들에게 금은보화를 나눠준다오삼계는 주국치를 죽여 살인제기 의식을 벌인다.

 

강희는 소마라고와 함께 궁밖으로 나왔다가 저잣거리에서 악기 연주하는 오차우와 재회한다.

 운낭은 오차우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는 노래를 부르다 자결한다.

 

강희는 왕보신의 아들 왕길정을 죽이는 대신 왕보신을 설득하라며 풀어준다.

오차우는 강희의 소개로 양대산으로 가 보리대사를 만난다보리대사는 출가한 숭정황제였다.

오차우는 보리 대사의 제자로 출가한다.

 

주삼태자 역시 반란을 모의하는데 오응웅이 방문해 오삼계가 주삼태자의 신분을 인정한다는 전갈을 건넨다오응웅이 소모자에게 누구의 사람인지를 묻자 소모자는 강희의 사람이라 대답한다소모자는 왕진방과 함께 마지막 술잔을 마시다 새치 혀로 왕진방을 죽이고는 도주한다.

 

도주한 소모자는 강희에게 주삼태자의 빨간모자들의 계락을 고해바치고 강희는 시위들과 함께 반란에 대비한다황후 혁사리씨는 노새의 이름을 무단이라 고치고 반란을 진압하라 명한다무단을 비롯한 시위들은 빨간모자들을 잔인하게 죽이고반란은 곧장 진압된다.

 

양기륭은 부하들의 충성 덕분에 목숨을 건지고 도주한다.

 

강희는 오응웅을 처단하고 열병식을 갖는다황후 혁사리씨는 윤잉을 낳고 눈을 감는다.

 

삼번의 난은 2년째 접어들고 70만 명의 양측 병력이 형주와 악주에서 사생결단을 내기 위해 집결한다상지신은 왕사영을 회유해 오삼계도 강희도 아닌 제3의 길을 제시한다손연령은 식량난에 처하자 도로 강희에게 돌아가기 위해 공사정을 찾아가 사죄한다.공사정은 손연령을 용서하고 상지신과 맞서 싸워야 공로를 인정받을 것이라 충고한다.

 

찰합이마저 반란을 꾀하나 도배와 주배공은 12일 만에 반란을 평정한다기세를 몰아 도해와 주배공은 왕보신을 잡기 위해 출정한다주배공과 형제 사이인 공영우는 싸움을 피하기 위해 왕보신을 설득하나 왕보신은 죽음을 각오하고 싸움에 임한다.

 

하룻밤 동안의 경하대첩에서 패한 왕보신은 도주한다휴전 중 주배공은 왕보신을 설득하기 위해 성으로 들어가고 공교롭게도 왕사영과 마주친다왕사영은 주배공의 세치 혀 때문에 피를 토하고 죽어간다이를 본 왕보신은 주배공에게 투항한다.

 

왕보신이 투항하자 오삼계마저 도해에게 투항한다.

개선장군으로 돌아온 주배공은 어느날 하계주의 결혼식에 참석한다.

하계주의 신부가 주배공이 평생 그리워하던 아쇄일줄이야!!

 

밑줄 그은 문장  


P26. 산에 비가 내리려고 하니 누각에 바람이 그득하구나......

 

P120. 넝쿨이 오래 된 가지에 감기니뿌리와 잎이 서로 의지하는구나.

그러다 둘 모두 사라지면 날아온 새는 어디에 가서 쉴까?

 

P137. “성인이 이르기를 육합지외 존이불론’ 이라고 했어우주에 있는 모든 존재는 마음대로 논하지 말라고 했지

내가 보기에는 귀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야운명의 장난에 놀아나고 보니 저절로 크게 깨닫게 되더군.”

 

P140. “거사께서는 선에 대해 물어보려면 불에 대해 물을 필요는 없습니다불에 대해 물을 것이라면 선을 묻지 마십시오

상하천광 일벽만경’, 하늘과 물이 온통 푸르고넓은 호수가 한없이 펼쳐져 있네.”

 

P185. 하늘이 장차 이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리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지치게 한다뼈마디가 꺽이는 고난을 당하게도 하고몸을 굶주리게도 한다또 생활을 빈궁에 빠뜨리고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만든다이는 그의 마음을 격동시키고 참을성을 길러줘 지금까지 할 수 없던 일도 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P297. “천지간에는 오륜이라는 것이 있습니다선생은 그중에서 올바르게 지킨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이 어찌 인간의 비극이 아니겠습니까선생은 정말 좋은 재주를 가지고서도 바른 길로 가지 않고 자신을 망가뜨리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살아서는 천하의 신뢰를 깡그리 잃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죽어서는 무슨 면목으로 주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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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톨로지 (반양장) - 창조는 편집이다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에디톨로지editology, 일명 편집학, 김정운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그리 새로운 관점은 아니다. 큐레이팅, 콜라보레이션이 유사한 개념이다. 들뢰즈가 말한 배치역시 editing이다. 영화에서의 편집 역시 배치다. 김정운은 일본의 두 학자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가라타니 고진과 마츠오카 세이고. 고진은 일본문화를 저수지 문화라고 말했다. “일본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인다. 그래서 하나도 안 받아들인다세이고는 이이토코도리좋은 것은 기꺼이 취한다!’가 일본의 정체성이라 주장했다.

 

지식과 문화의 에디톨로지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심리학에선 이를 선택적 지각이라 부른다. 그 반대편에는 무주의맹시inattentional blindness’라는 현상이 있다. 크리스토퍼 차브리스와 대니얼 사이먼스의 보이지 않는 고릴라실험에 대해선 여러 책에서 이미 접한 바가 있었지만 이 책에서 실험 동영상 사진을 처음 보았다. 사진을 보기 전까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고릴라가 화면 한 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하고 가슴을 두드리는데 이걸 못 보았다니!!

 

인간 의식과 행동은 도구에 의해 매개된다고 한다. 하루에 세 번 숟가락으로 뜨고젓가락으로 집는사람과 포크로 찌르고나이프로 자르는사람의 의식은 근본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단다.

 

독일 유학을 간 김정운은 독일 학생들의 특이한 공부법에 주목한다. 한국 학생들이 노트에 필기하는 반면 독일 학생들은 카드에 필기한다.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느껴질지 몰라도 편집 가능성에선 어마어마한 차이가 난다. 노트는 편집이 불가능한 반면 카드는 무한히 편집할 수 있다.

 

창조적 발견은 절대 논리적 사유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연역법과 귀납법은 순환 논리에 불과하다. 퍼어스는 창조적 사유를 가능케하는 제 3의 추리법을 주장한다. 유추법abduction이다. 유추법이란 혹시 그런게 아닐까하는 창조적 추론이란. 미국 하버드 대학원생 마사 매클린톡은 생리대를 사러 기숙사 근처 상점에 가면 매번 생리대가 다 팔린 사실에 호기심을 느껴 이 의문을 추적했다. 이후 그녀는 생리 주기 동조화 현상<네이처>지에 발표한다. 이후 매클린톡 효과는 함께 생활하는 여학생들의 생리 주기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비슷해지는 현상을 일컫는 용어가 됐다.

 

스티븐 시걸의 감정 차트를 보고 뒤집어졌다. 김정운은 시걸의 똑같은 표정의 사진 밑으로 다른 감정들을 표기했다. 행복한, 슬픈, 심술부리는, 외로운, 등등. 김정운의 말대로 영화는 편집의 예술이다. 그러나, 연기력이 형편없는 배우로 좋은 영화를 만들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관점과 장소의 에디톨로지

 

김정운은 독일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서 교수가 되었을 때 자유로운 토론 수업을 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 됐다고. 한국 주입식 교육의 폐해일까. 그러나 야외수업을 해보니 활기로운 토론 수업이 가능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토론 수업이 불가능한 이유는 강의실 구조 때문이었다. 강의실에 앉으면 학생들은 앞쪽 칠판만 바라보게 되어 있다. 한편 독일 대학 세미나실에는 학생들끼리 서로를 마주보게 책상과 의자가 배치되어 있다. 즉 공간 편집이 교육 내용을 결정한다. 천장이 높아져도 사람들의 문제 해결 능력은 향상된다고 한다.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다면 레스토랑에서 어떻게 앉아야 할까. 마주보게 앉아야 할까? 아니면 같은 곳을 바라보게 나란히 앉아야 할까? 아니다. 모서리를 사이에 두고 앉는 게 가장 좋다.

 

마음과 심리학의 에디톨로지

이 장에서 가장 내 눈을 끈 내용은 항문기 고착의 일본인과 구강기 고착의 한국인이다. 일본에선 여름에 환기가 조금만 안 되어도 집 구석구석에 곰팡이가 바로 핀다고 한다. 매번 창문을 열어 환기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일본 가옥은 벽이 얇아질 수 밖에 없다. 창문도 통풍이 잘 되어야만 한다. 그러다 보니 옆집의 소음이 다 들린다. 그래서 생긴 게 러브호텔이라는 것이 김정운의 가설이고 읽자마자 고개가 끄덕여졌다.

 

또한 일본의 다다미 바닥은 아이들 양육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젖은 다다미는 금방 썩는다. 따라서 똥오줌 못 가리는 아이는 다다미에 치명적이다. 그래서 일본에선 아주 어릴때부터 철처한 배변 훈련을 시킨다. 때문에 일본인들 대다수가 항문기 고착이라는게 김정운의 주장이다. 그럴듯하지 않은가? 반면 한국의 경우엔 항문기 고착 성격은 별로 없다. 왜냐하면 한국은 장판문화기 때문이다. 장판에 아무리 똥오줌을 싸질러놔도 걸레로 슥 닦아내면 그만인다. 김정운은 그대신 한국인들은 구강기 고착이라고 주장한다. 입이 거칠고 목소리도 크고 담배도 많이 피운다. ? 너무 못 먹어서 그렇다는데, 이 주장에 대해선 선뜻 동의할 수가 없다.

 

김정운은 책은 끝까지 읽을 필요없다라는 주장을 해서 욕을 먹었다고. 나는 그의 주장에 동의한다. 문학책은 예외로 하고 책을 끝까지 읽을 필요는 없다. 특히나 김정운의 이 책 역시 그렇다. 한번 쓱 전체를 둘러보고 재밌는 부분만 골라 읽으면 된다.

 

김중혁은 <메이드 인 공장>에서 에버노트를 쓴다고 말했는데 이런, 김정운도 에버노트 예찬론자다. 자료 입력은 삼성 갤럭시 노트가 최고? 에버노트는 써볼 맘이 있지만 나는 삼성불매자라 죽기 전까지 갤럭시 따위는 쓰지 않는다.

 

 - 2015. 6.9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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