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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5-03-14 16: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련하게 기억나네요. 상부 구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오래전이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5-03-14 16:15   좋아요 1 | URL
그대 머릿속 어딘가 남아있습니다. 그러니 후다다닥 🥰
 




아침 느즈막히 먹고 빨래 다 널고 체조하고 있는데 친구에게서 연락옴. 맥락 없이 인연생기, 만 달랑 보낸 까닭이 궁금하지도 않고 인연생기,라 세상 모든 일은 인연에 의해서 일어난다, 그러니까 사람이 하는 일이란 어떤 사람과 닿아 없던 것이 생겨나는 것이다. 마리아 포포바의 글을 읽을수록 닿게 되는 것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 까닭은 어떤 울타리를 짓고 어떤 이들과 함께 하느냐 이게 인생을 확확 뒤바뀌게 하기 때문이다. 이걸 처음 깨달은 건 모파상의 소설을 읽은 중3이었을 무렵이었고. 친구가 얼마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가족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친구와 연인은 다르지 않은가, 우리가 그들을 선택하고 그들이 우리를 택하여 함께 한다는 것. 함께 하고 서로를 버린다는 것. 서로를 버리는 일에 일말의 후회와 안타까움도 느끼지 못한 채. 지금이야 뭐 그러려니 하지만 분노의 촉발점은 언제나 그 지점이었다는 걸 알았다. 이별 후 다시는 영영 보지 않을 거라 생각을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서로를 찾게 되는 그 관계들, 그러니까 그 가치들. 이거야 내가 한 말이 아니라 붓다가 하신 말씀이지만 봐라, 지금 너를 둘러싸고 있는 네 가족과 네 친구들과 네 적들과 네 사랑들은 이미 과거의 너를 둘러싸고 있던 이들이었으니 그들을 다음 생에도 다시 함께 마주할지 아니면 영영 마주하지 않을지는 과연 누가 결정하는가. 말하나마나 뻔한 소리지만 지금 나를 그토록 아프게 한 이들이었다면 전생에 내가 그들을 그만큼 아프게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될 테고 지금 나를 그토록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내가 전생에 그들을 그토록 사랑하였던가 싶은.

어제는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 맞으며 얇게 입고 나가 바들바들 떨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봄이라면서 왜 이래, 투덜거리면서. 털조끼를 입고 나갔어야 했는데. 오늘은 날이 좋다. 얇게 입고 나갈 것인가. 아니면 도톰하게 입고 나갈 것인가. 브레디 코베의 영화 호평이 대단해서 언제 볼까 시간을 둘러보고 있다. 아이는 명료하게 긴 시간이 아니고 너무 많은 곳을 원하는 건 아니고, 말했다. 그 시간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날 지는 모르는 거란다. 아가. 사람 인생은 사람이 결정한단다, 라고 속으로 웃으며 대꾸했다. 읽던 책에 레이먼드 윌리엄스가 언급되어 서가 한쪽에 꽂혀 있던 레이먼드 윌리엄스를 꺼내어 먼지를 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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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5-03-13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이먼드 윌리엄스, 저 책에 리뷰가 하나도 없더래요. 페이퍼는 수이님꺼 이거 하나~~
더 써 주세요! 🤪

수이 2025-03-13 23:26   좋아요 0 | URL
왜 인기가 없을까요 ㅋㅋ
 

내가 사랑한 이들은 모두 뿔을 달고 있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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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리쾨르 컴북스 이론총서
이양수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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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와 문자가 동등하다고 여겼던 때. 이양수의 폴 리쾨르를 무람없이 읽고난 후 막 고등학교에 입학하고난 후 꽃샘추위에 벌벌 떨면서 했던 그 생각, 혀와 문자는 동등하다, 떠올랐다. 미세먼지 그득한 서울 하늘, 이야기들과 이야기들이 서로 얽혀서 새로운 이야기들이 생성될 것이다. 삶과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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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한별의 문장들을 읽다가 자꾸 멈칫거리는 순간들, 그러니까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언제나 그 첫 순간이 떠오르는데 그때가 딱 중학교를 졸업하고 막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이 시점이었던 걸로. 아침 운동 나가기 전에 오늘 아침 페이지들.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고 아무에게도 가닿지 못한다."


우리 엄마가 지옥을 표현할 때 하는 말과 흡사.

지옥과 천국 사이일지도 모른다. 싶은 건 에밀리 브론테가 잠깐 스쳤기 때문이지만.

열락의 고통이라는 표현이 인간의 온갖 감정들을 담아낼 수도 있는 거고.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까지 공통적으로 아우르려 할 때

고개가 저절로 옆으로 기우는 버릇은 아마 죽기 전까지 고쳐지지 않을 거 같다.


홍한별을 읽으면서 멈칫멈칫, 자꾸 생각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이런 에세이는 오랜만인지라 반갑고 또 반가운 마음뿐.

















이양수의 [폴 리쾨르]를 완독. 우연히 접한 책 [역사와 사회적 상상에 관한 대화]를 읽고 읽어봐야겠다, 싶어 그러니까 나는 코르넬리우스보다 자꾸 폴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어 언젠가는 읽겠지 했다가 또 우연히. 이양수가 들려주는 [폴 리쾨르]는 무람없이 그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을 내주었다. 어제 친구와 공원에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다들 미세먼지에도 불구하고 공원 벤치에서 너나없이 어울려 수다를 떠는 중년의 아줌마들을 생각없이 바라보다가 텍스트를 읽는 태도가 생을 살아가는 방식과 유사하다는 걸 알았다. 같은 텍스트를 읽어도 모두 다 제각각. 굳이 어둠 속을 헤치고 들어가야 하는가. 물어볼 까닭이 없는 건 그 길을 선택하는 이는 자신이기 때문이다. 판단 유보를 잘 하는 엄격한 얼굴이 자신의 욕망 앞에서는 어떤 표정으로 바뀌는지 그걸 볼 수 있는 이는 그 표정을 짓고 있는 그 얼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를 바라보는 타자가 존재한다고는 볼 수 없지만. 천천히 읽어나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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